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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ey S] 김창성 기자 17.04.23 


 

민간인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여파가 반년째 이어진다. 피같은 국민 세금으로 모인 국가 예산이 사리사욕 추구에 사용된 상황을 알게 된 국민들은 충격과 상실감에 휩싸였다. 비단 최순실 사태가 아니라도 국가 예산이 적재적소에 쓰이지 못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20여년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등 공공기관의 예산 편성과 집행을 분석해 조언과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던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 소장은 예산 낭비의 시작이 경제분야에 과도하게 집중된 잘못된 방향 설정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한다. 경제 살리기에 모든 이목이 집중된 요즘 오히려 경제 분야 예산을 줄여야 한다는 게 무슨 뜻일까. 정 소장을 만나 예산 편성의 문제점과 개선 방향에 대한 철학을 들어봤다.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 소장. /사진=김창성 기자


◆경제 분야 예산 집중 수정해야 

“국민소득이 300달러 수준이던 1970년대는 경제분야 예산 집중이 당연했지만 3만달러 수준인 지금은 오히려 줄여야 합니다.” 

정 소장은 경제분야에 과도한 예산이 집중되는 것은 잘못된 방향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경제 살리기를 최우선 과제로 삼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사회 분위기에서 정 소장의 말은 언뜻 이해하기 힘들다. 그는 알기 쉽게 식사비 지출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300달러를 벌 때 식비로 100달러를 썼는데 3만달러를 버는 지금 똑같은 비율인 1만달러의 식비 지출을 상상해보라는 것. 많이 벌면 그만큼 고급 음식을 먹을 수 있겠지만 매일 고급 음식만 먹는 건 오히려 과소비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경제분야에 전체 예산의 30%가량을 집중하는 과도한 예산 편성은 1970년대나 지금이나 변함없다”며 “우리나라 낭비예산의 핵심은 대부분 경제분야인 만큼 이 분야의 지출을 줄이는 것이 예산 낭비를 막는 출발점”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경제분야 예산을 줄이는 일은 쉽지 않아 보인다. 정부기관을 상대로 예산 편성에 대해 단순한 조언을 넘어 지적과 채찍질도 서슴지 않았던 그 역시 경제예산 줄이기는 쉽지 않은 도전이자 과제라고 말한다. 가장 큰 난관은 우리나라 공공기관의 뿌리 깊은 관료주의라고 정 소장은 지적한다. 그가 말한 관료사회는 어떤 구조적 문제를 품고 있을까. 

◆변화 거부하는 관료사회 개혁 해야 

우리나라 관료사회는 대체로 변화를 두려워한다. 각 부서별로 칸막이를 설치해 자기 영역의 이익만 추구하려 한다. 농업, 중소기업·에너지·연구개발(R&D) 등을 포함한 산업 전반에 정부와 국회·기업 등이 얽혀 서로의 이익 추구를 위한 예산 편성에 목을 맨다. 정작 필요한 곳에 예산을 편성하지 못하는 이유다.  

정 소장은 “우리나라 관료사회는 각 조직의 이익을 대변하려는 정부·국회·기업 등이 얽힌 구조적 정경유착에 각종 비리는 부록으로 딸려가는 기막힌 구조”라며 “과도한 경제 분야 예산 지출을 줄이려면 관료사회의 구조개혁이 선행돼야 하지만 서로 밥그릇을 놓치지 않으려 하니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그들이 변화를 두려워하며 새로운 도전에 소극적인 이유는 하던 걸 바꾸면 사람들이 불안해한다는 인식 때문이다. 마치 대기업 한곳이 흔들리면 국내 경제 전체가 휘청일 것이라는 생각과 비슷하다. 따라서 시대가 변해도 예전에 하던 걸 쉽게 포기하지 못하고 불필요한 곳에 매년 예산이 투입된다.

정 소장은 “관료사회가 변화와 함께 가장 두려워하는 건 자신이 속한 조직의 사업이 중단돼 예산이 끊기는 것”이라며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시대에 아직도 총액 기준 세계최대의 석탄보조금을 주는 우리나라 예산 편성 구조를 보면 답답할 따름”이라고 한숨지었다.

이어 “1%의 기득권을 위한 경제분야 예산 편성 때문에 미래 신재생에너지나 복지 등 정작 필요한 곳에는 예산이 집행되지 못한다”며 “나는 이 같은 구조개혁을 위해 끊임없이 예산을 분석하고 지적하며 관료사회의 의식변화를 돕고 있다”고 말했다.  

◆‘무심과 호기심’의 자세로 일한다 

관료사회 구조 개혁을 주장하며 그들의 의식 변화에 힘쓰는 정 소장은 시민단체 활동 시절에도 주로 예산감시 활동에 집중했다. 특히 예산을 낭비한 지자체 등 공공기관에 한달에 한번씩 36개월 동안 ‘밑 빠진 독 상’을 꾸준히 수여하며 관련 보고서도 발표했다.

실제로 상만 준 게 아니라 불필요한 사업을 16번이나 중단시키는 성과도 냈다. 한 지자체는 예산 편성을 꼼꼼히 분석해 지적한 정 소장 덕에 불필요한 예산을 10%나 삭감했다고 한다.

“지자체 등 공공기관뿐만 아니라 국가 예산에 의존하는 정부 산하 조직만 5000개나 됩니다. 불필요한 곳으로 언제든 돈이 새나갈 수밖에 없는 구조예요. 구조개혁이 필요한 이유죠.”

정 소장은 그들에게 본인은 눈엣가시겠지만 열심히 발로 뛰며 자료를 모으고 분석해서 성과를 낼 때마다 뿌듯하다며 웃었다. 

특히 그를 뒷받침한 철학은 ‘무심과 호기심’이다. 그는 예산 관련 사안에 대해 진보와 보수 등 성향을 떠나 철저하게 사안 자체만 놓고 분석한다. 쉽게 말해 편견을 버린다.

그는 “1% 기득권이 주장하는 틀에 갇혀 아직도 옛날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관료사회의 예산 편성을 편견 없이 바라보며 경종을 울리는 것이 나의 막중한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편견을 접고 사안 자체만 집중하다 보니 특정 계파에 속한 것 아니냐는 오해를 많이 받는다는 정 소장. 그는 예산 분석을 통해 얻는 성과와 보람은 달콤한 열매를 맛보는 것과 같다며 미소 지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8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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