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근정 항공모빌리티 건립 - 울주군 정우식 님의 공약
문제는 경제다
“어떻게 바라보고 무엇을 느낄 것인가. 그것은 정보의 문제도, 지식의 문제도 아니고 나 자신에 대한 성찰의 문제이다.” 오래 전 책을 읽다가 메모해둔 구절이다. 작가는 문학작품에 대해서 한 이야기였지만, 우리가 현실에서 직면하는 대부분의 문제들에 해당하는 말이고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환경, 생태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기후변화와 문화적 인식과의 관계를 분석한 연구’(미국 예일대의 문화인지 프로젝트) 결과에 따르면 새로운 정보가 자신의 신념체계를 흔들어놓을 우려가 있을 때 인간의 두뇌는 불청객을 격퇴하기 위해 ‘지적인 항체’를 생산한다. 사람들은 현실과 가치관 사이의 갈등을 경험할 때 현실을 부정하는 편향을 갖는다는 의미이다. 우리는 왜 생태위기 징후에 대해 이런 ‘지적인 항체’를 갖게 되었을까?

뉴욕 타임즈가 레이첼 칼슨의 『침묵의 봄』 이후 가장 중요한 환경 관련 저작으로 꼽은 책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에서 저자 나오미 클라인은 “기후변화는 자본주의와 지구와의 전쟁”이고 자본주의가 언제나 아주 쉽게 승리를 거두고 있다고 진단한다.
이 전쟁은 벌써부터 진행되어 왔고, (…) 매번 경제성장의 필요성을 내세워 기후행동을 미루고 이미 합의한 온실가스 감축 약속을 깨뜨리면, 자본주의는 이긴다. 위험성 높은 석유와 가스 채취 산업에 아름다운 바다를 내주는 것만이 경제위기에서 벗어날 유일한 방법이라고 그리스 사람들을 설득하면, 자본주의는 이긴다. (…) 베이징에서 숨이 차 쌕쌕거리는 어린 자녀에게 귀여운 만화 주인공이 그려진 방진 마스크를 씌워 학교에 보내는 수고쯤은 당연히 감수해야 경제성장이 이루어진다고 주장하면, 자본주의는 이긴다. 어차피 우리 앞에는 채취냐 내핍이냐, 오염이냐 가난이냐 하는 암울한 대안만 남아 있다고 자포자기할 때마다, 자본주의는 이긴다.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 나오미 클라인, 이순희 옮김, 열린책들, 2016: 45-46)
여기에는 비단 기업만이 아니라 우리들의 자연과 세상에 대한 생각, 그리고 그에 기반한 삶의 태도와 생활방식도 포함된다. 현재의 글로벌 세계경제질서가 기후변화를 악화시키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위기를 만들어낸 주범은 아니다. 이미 인류는 1700년대 말부터 석탄을 본격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했고 그 이전에도 생태계 파괴를 자행했다. 자본주의뿐 아니라 사회주의 경제권에서도 다를 바 없었다.
앨프리드 노스 화이트헤드가 『관념의 모험』에서 지적한 대로 인류 역사에는 언제나 너무나 근본적이어서 인식하지 못한 채 넘어가곤 하는 관념이 있어왔다. 그 관념은 그로 인한 피해자들조차도 그러한 관념을 공유할 위험이 있다. 진정한 변화가 이루어지려면 인식되는 관념뿐 아니라 인식되지 못하는 관념의 전환이 필요하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의 문화적 서사가 달라져야 하기에 문명적 수준의 전환이 필요하다. 생태적 위기의 근원 역시 “자연은 무한하고 통제와 지배가 가능한 대상이고 인류는 자연을 지배할 권리와 능력을 부여 받았다”는 우리들의 관념에 닿아 있다.
그렇다면 생태와 조화를 이루는 경제로의 전환은 어떻게 가능할까? 그것이 기존 사회, 경제 모델의 기저를 이루는 논리적 가정들은 물론이고 거기에 내재한 가치 체계와 그것을 정당화하는 세계관에까지 의문을 제기하는, 문명적 수준의 전환을 필요로 하는 것이라면 생태적 위기를 초래하는 자연관과 세계관을 넘어 생태와 조화를 이루는 경제시스템에 대한 상상과 전망이 필요하다.
자연의 경제와 인간의 경제
오늘날 우리가 생태계라 부르는 개념은 지질학자였던 찰스 다윈이 『종의 기원』을 집필하면서 언급한 “상호 연관된 종들의 얽힌 복합체”에서 유래한다. 다윈은 동물과 식물을 “복합적 관계의 그물에 의해 함께 묶여진 존재”로 규정했고, 에른스트 해켈은 훗날 다윈이 생존경쟁의 조건(들)이라 부른 동식물 간의 “복잡한 상호 관계들에 대한 연구”를 생태학이라 이름 붙였다.
생태(ecology)와 경제(economy)의 영어 표기와 발음은 서로 닮았다. 실제로 다윈은 생명체의 생존과 생활을 위한 활동을 묘사하면서 “자연의 경제”라는 표현을 『종의 기원』 여러 곳에서 직접 사용한다. 그는 “자연의 경제”를 생물학적 개인, 종과 환경 사이에 상호 작용하는 복잡한 망을 의미하는 것으로 썼고, 이를 반영해서 해켈 역시 생태학을 “자연의 경제에 관한 지식의 본질”이라 정의했다. 다윈이 자연을 “경제”라고 부른 최초의 사람은 아닐 수 있지만 자연과 경제 사이의 연관과 유사성을 언급한 최초의 사람이었음은 분명하다. (Hardy-Vallée, Benoit, “The Economy of Nature: A Brief Introduction”, y, http://naturalrationality.blogspot.com/search?q=Darwin, 2007)
지구가 제공하는 자연의 경제 내에 인간의 경제가 하위체계로 존재하고 있음은 불변의 사실이다. 생산, 분배와 소비 등 인간의 모든 경제활동은 변환된 에너지를 이용해서 물질이나 비물질적 재화를 하나의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변환하는 과정이다. 자연 생태계에서 경제 시스템으로 에너지와 물질이 유입되어 경제활동에 사용되고 이후 폐기물 형태로 자연 생태계로 배출되는 것을 자원흐름(through-put)이라 한다. 우리의 경제 시스템은 이 같은 자원흐름의 과정을 매개로 자연 생태계 안에 배태되어 있다. (조영탁, 『한국경제의 지속 가능한 발전: 생태경제학의 기획』, 2013)
그러므로 생태와 경제는 시스템으로나 순환으로나 당연히 서로 연결되어 있고, 더 정확하게 말하면 경제의 순환은 생태계의 순환체계 안에 포함되어 진행된다. 그러나 경제학은 지구 생물권의 존재에 무관심하며 생태계의 순환에 무지하고 경제순환의 물리적 한계를 무시한다. 생태와 경제의 다양한 연관 속 상호작용과 그 효과를 외부성이라는 개념 안에 집어넣은 다음 경제분석의 영역 밖으로 밀어내고 예외적인 경우 아주 제한된 방식으로 그 효과를 고려할 뿐이다. 더욱이 토양이나 기후, 생물다양성 등 지구 생물권의 대치할 수 없는 역할은 전혀 고려 사항이 되지 않는다. 하나의 사례로 인류가 먹는 농작물의 70%는 식물이 열매를 맺도록 꽃가루 운반자 역할을 하는 꿀벌의 도움으로만 경작이 가능하지만 경제학자들 중 다수는 그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 (세르주 라투슈, 탈성장사회, 양상모 옮김, 오래된 생각, 2014)
스웨덴의 환경학자 요한 록스트롬이 제시한 후 UN 리우환경회의 등을 통해 수용된 행성한계는 1)기후변화, 2)해양의 산성화, 3)오존 고갈, 4)질소 순환, 5)물 사용, 6)토지 이용 변화, 7)생물다양성 손실, 8)에어로졸 증가, 9)물질 오염 등 9개 영역으로 구성된다. (Rockström et al., 『Bankrupting Nature: Denying Our Planetary Boundaries』, Kindle Edition, 2013) 행성한계가 말해주는 것은 우리가 유한한 생태계에 속해 있고 유한한 세계에서 무한한 성장이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지구 자원의 소비가 생물계의 수용 능력, 즉 지구의 생태용량 한계를 넘어 변곡점에 이르면 지구 시스템의 회복력이 손상되어 돌이킬 수 없는 파국적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사회경제 시스템이 사용하는 “자원흐름의 규모”가 커지고 “자원흐름의 독성”이 강할수록 자연 생태계의 부담과 피해는 커진다. 지금은 자원흐름의 규모가 자연 생태계의 수용범위를 넘어서려는 상황이고 자원흐름에서의 “감량화”와 “탈독성화”가 절실하게 필요한 상황이다. (조영탁, 위의 책, 2013: 349)
그럼에도 경제학은 거의 대부분 이러한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지 않는다. 아마도 언젠가 우리의 미래세대는 생태와 경제가 하나의 동일한 과정임에도 당시 세대가 왜 그렇게 생태와 경제의 연관을 파악하지 못했는지 놀라움과 의문을 가질 것이다. 이 간극을 연결하고 단절을 메우는 새로운 경제학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다. 실은 이미 오래 전에 미국의 경제학자 케네스 볼딩이 “유한의 세계에서 기하급수적인 경제성장이 끝없이 계속될 것으로 믿는 자는 미치광이이거나 또는 경제학자이다”라고 말했지만 그 말은 거의 주목 받지 않았다. 생태학에서 다루는 에너지 흐름과 물질순환을 경제학에서의 경제순환에 명시적으로 도입하고 연결하려는 시도가 생태경제학의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경제학의 가장 변방에 머물고 있는 상황이다. (Costanza Robert, Herman Daly, Richard Norgaard et. al., 『An Introduction to Ecological Economics』, St. Lucie Press, 1997)
생태학과 경제학의 통합, 생태와 경제의 통합은 당위적 차원의 필요성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현상유지는 더 이상 선택 가능한 대안이 아닌 것이 확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스턴 보고서(『Stern Review: The Economics of Climate Change』, 2006. 세계은행 부총재를 지낸 영국의 경제학자 니콜라스 스턴이 온난화의 위험성을 경고한 7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의 보고서로, 기후변화를 경제적 관점에서 분석하고 환경과 경제가 상충하는 의제가 아니라는 내용을 담았다)에 따르면 지금과 같은 방식의 경제, 사회적 행태가 지속되면 20세기 전반기 공황이나 세계대전과 같은 규모의 파괴적 영향이 나타날 것이고, 그에 따른 온갖 위험과 효과를 전부 고려하면 기후변화가 초래하는 비용으로 매년 인류 전체 GDP의 5~20%를 지불하게 될 것이라고도 추정한다. 또한 앞으로 10~20년의 시기가 이후 21세기 후반 기후에 미치는 영향이 아주 크고, 지금 행동에 나선다면 최악의 효과를 피하기 위한 비용은 매년 전체 GDP의 1% 정도이므로 비용 대비 편익이라는 경제적 고려에서도 합리적 선택이라고 강조한다.
피크오일, 즉 화석에너지 시대의 임박한 종언 또한 현상 유지가 선택 가능한 대안이 아님을 말해준다. 웬델 베리와 웨스 잭슨은 화석연료의 고갈과 탄소배출의 한계점이 새로운 삶의 양식을 선택하도록 강요하지만, 그러한 한계가 없다면 우리는 원하는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기대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비록 전환이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겠지만 이러한 전환이야말로 인간 사회가 지닌 성찰과 적응의 능력을 보여준다는 점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Mary Berry, 『A Conversation Between Wendell Berry and Wes Jackson』, Kindle Edition, 2017)
제4차 산업혁명이 운위되고 “노동의 종말”과 “고용 없는 성장”이 현실화되는 상황도 생태적 경제로의 전환을 위한 기회를 제공한다. 프란츠 알트가 강조한 대로 고용 없는 성장과 생태 위기는 우리가 조망할 수 있는 시간표 안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 사회, 경제적 문제이자 동시 해결이 모색돼야 할 문제이다. 알트는 재생에너지로 전환함으로써 생겨나는 일자리는 낡은 에너지원으로부터 벗어나면서 없어지는 일자리의 5배에 달하며, 앞으로 에너지 전환만큼 일자리를 많이 창출하는 것은 없다고 강조한다. (프란츠 알트, 『생태적 경제기적』, 박진희 옮김, 양문, 2004: 15, 82)

생태적 전환과 사회적 경제
생태적 전환을 위한 대안적 경제의 단위 요소들은 당위와 윤리의 차원에서 이미 실행의 차원으로 내려와서 현실사회 곳곳에서 새로운 실험의 사례들과 성과를 축적하고 있다. 세계경제 위기에서 협동조합으로 대표되는 사회적 경제가 주목 받고 성장하는 동시에, 화석연료에 의존하고 대규모 자원의 집중과 소비에 기반한 자본주의적 경제와는 다른 대안경제를 시도하는 소규모 프로젝트들이 성장하고 있다.
에너지 전환의 대표적 사례인 독일의 경우, 체르노빌원전 사고를 보고 충격을 받은 독일 남서부 슈바르츠발트 지역의 작은 마을에서 주민 650명이 원자력 발전으로 생산한 전기를 독점 공급하는 민간기업에 대항해서 1986년 시작한 재생에너지 사용 캠페인이 그 첫걸음이었다. 그로부터 25년후 독일에서는 지역사회의 참여민주주의를 통해 에너지 협동조합이 활발하게 결성되어 2011년말 현재 439개가 되었다. (Osha Gray Davidson, 『Clean Break: The Story of Germany’s Energy Transformation and What Americans Can Learn from It』, Kindle Edition, 2012) 에너지 협동조합 설립 성과로 독일에서는 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의 47%가 시민들이나 협동조합을 통해 이루어지고 태양열, 풍력, 바이오매스 등으로 구성되는 재생전기의 65%가 개인이나 협동조합, 지역공동체 소유로 운영된다. 에너지 전환은 단순히 깨끗한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 아니라 기업이 지배하는 집중된 에너지 시스템으로부터 소규모의 분산적이고 분권화된 사회로의 사회경제적 전환이다. (Arne Jungiohann, Craig Morris, “Germany Shows It Is Worth Fighting for Energy Democracy”, Resilience.org, June 22, 2017)
제레미 리프킨의 제3차 산업혁명 논의는 지금 우리 사회에 유행하는 ‘제4차 산업혁명’ 논의와는 달리, 경제산업구조 재편과 고용전략 수준에 머물지 않고 에너지 분산과 사회권력의 분산이라는 이중의 의미에서의 “파워 투 더 피플(시민에게 권력을 넘기는)” 기획임을 강조한다. 지역과 공동체가 기반이 될 때 보다 수평적이고 분권화된 정치시스템과 보다 분산된 공동체, 협동조합 등의 사회적 경제를 지탱하는 에너지 시스템이 발전하게 된다는 것이다. 웨스 잭슨 또한 로컬을 지켜내고 유지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고 가치 있는 일이며 그것이 바로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것이라 말하며, 로컬푸드 운동 역시 단순히 음식의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경제와 새로운 시스템에 필요한 결정적인 계기라는 의미를 부여한다. (Wes Jackson, “Toward an Ignorance-based Worldview”, Bill Vitek and Wes Jackson, 『The Virtues of Ignorance: Complexity, Sustainability, and the Limits of Knowledge』, Kindle Edition, 2018)
제레미 리프킨은 한걸음 더 나아가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발달과 새로운 에너지 체계의 결합을 통해 “협력적 공유사회”라는 새로운 경제시스템이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세계 무대에 등장했다고 선언한다. 그는 『한계비용 제로 사회』(안진환 옮김, 민음사, 2014)에서 공유경제 확산과 확대의 기술적, 경제적 배경을 설명하는데 현대 자본주의 발전의 성과로 만들어진 커뮤니케이션, 에너지, 물류인터넷 등으로 구성된 글로벌 신경네트워크는 거의 대부분의 재화와 서비스의 한계비용을 거의 0으로 수렴되게 함으로써 자유재와 풍요로운 자원(제한된 자원이 아닌!)을 보편적인 상황으로 만들면서 자본주의적 생산과 배분에서의 시장 영역과 이윤 창출 영역을 축소시키고 글로벌 공유자원의 영역을 급격히 확장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협력적 공유사회”는 앞에서 말한 대로 이미 다양한 형태로 우리의 일상 경제생활 속에 들어와 있는 대안적 경제의 다른 이름이다. 주거, 돌봄, 재생에너지, 도시농업과 도농교류, 보육, 의료, 온라인 오픈 플랫폼과 쉐어웨어 등 다양한 영역에서 출현하고 성장하는 협동조합과 사회적 기업, 공유경제, 공동부엌, 지역재단, 전환마을 등이 그 형태들이다. 여기에 사회적 금융, 크라우드 펀딩, 지역화폐, 대안화폐, P2P 대출, 타임 뱅크, 크레딧 유니온, 윤리적인 은행 등 새로운 금융 거래 형태들이 협력적 공유경제의 지속가능성을 높여줄 것이다. 제레미 리프킨 역시 이 같은 사회적 경제의 구성요소들을 이윤 중심의 자본주의 경제와 구별되는 협력적 공유경제의 핵심 경제단위로 제시하고 있으며, ILO(국제노동기구)는 이미 10여년전 “생태적, 사회적, 공동체적 목표가 하나로 수렴되는, 지속 가능한 사회발전 모델”로서 사회적 경제의 가능성에 주목했다.
생태문명을 위한 경제 체제
인간은 자신이 빅뱅으로 창조된 우주의 일부로서 최소한 두 번 초신성을 통해 재활용된 우주먼지로부터 만들어진 존재라는 것을 아는, 우주에서 유일한 존재이다. 인간이 자신의 우주적 기원에 대한 인식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인간이 지구 생태계의 교훈을 받아들일 수 있고 그것을 자신의 삶에 적용할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것이 우주와 우리의 관계이며, 웬델 베리와 웨스 잭슨이 청지기 역할이라 표현했던(Mary Berry, 위의 책, 2017), 지구에서 아주 특별한 존재인 인간의 책임 있는 역할이다.
인간이라는 종은 이제 스스로를 파괴하거나 구원할 위치에 있다. (찰스 버치∙존 캅, 『생명의 해방: 세포부터 공동체까지』, 양재섭∙구미정 옮김, 2010:132) 생태적 경제로의 전환이 가능하다면, 그리고 너무 늦지만 않다면 그것은 인류 출현 이래 인류가 행한 가장 위대한 선택이 될 것이다. 여기서 출발해야 한다. 사물과 세상, 자연을 인식해온 방법에 대한 성찰에서 출발해서 “무한성장” 이란 관념이 갖는 반생태적, 반우주론적 함의를 돌아보고, “생태적 인간(Homo Eologicus)”을 향한 문화적 진화의 길로 들어서야 한다.
생태위기는 우리가 익숙한 사회, 우리가 익숙한 문명의 급진적 변화를 요청하고 있다. 산업사회, 산업문명의 전환은 실로 지난한 과제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궁극적으로 새로운 문명으로 전환해야 한다. 새로운 문명의 명칭이 무엇이든 핵심은 생태문명, 생태친화적 문명이 될 수밖에 없다. 생태문명을 위한 경제 체제는 지구의 수용능력 안에서 운용되는 생태적 경제가 되어야 한다. 무한의 이익을 추구하는 경제주의 대신 경제생활의 목적과 가치가 반영된 경제활동을 하는 개인과 경제조직, 새로운 경제주체를 만들어내고 경제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한 제도와 유∙무형의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 그것은 재생에너지와 농업, 교통과 휴먼서비스를 중심으로 분권화된 지역들에 기반한 사회적 경제 생태계의 구축이 될 것이다.
정건화
한신대 경제학과 교수
공매도 등 청문질의 및 국정감사 금융개혁 과제 전달
어제(8월 23일) 경실련 금융개혁위원회와 정의로운 주주모임 회원들은 고승범 금융위원장 후보자 인사청문 및 금융부처 국정감사에 대비하여 (1) 공매도 투기종목 조사 촉구 탄원서 (http://ccej.or.kr/71343), (2) Q&A 대정부질의서(http://ccej.or.kr/68205), (3) 불법공매도 등 공매도 제도·시스템 개혁과제 (http://ccej.or.kr/70071) 등을 국회에 전달하고, 공매도 등 금융개혁과제 현안에 대해 면담을 갖었습니다.
아울러, 은행의 신용대출 내부 평가기준 공개·개선 및 국고금관리법 등 위반(국고금 등 각종 무코스트자금 법인·개인 무단운용 “비자금” 조성) 혐의를 조사토록 건의하였습니다.
관련 정책자료는 위 링크를 직접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인사청문회 및 국정감사 철저히 준비하시길 당부드립니다.
버크셔 해서웨이(Berkshire Hathaway)는 보유한 많은 Portfolio 사업을 진행하면서 아이오와 주에 있는 풍력 터빈 및 기반시설에 약 30억 달러를 투자해왔다. 버크셔 해서웨이의 전략에는 ‘세계 풍력의 중심, 풍력 발전 사업의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국가’로 우뚝 서고자 하는 목표가 있다.

일부 투자가들은 화석 연료에서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은 ‘선을 행하면서 이윤을 추구하는’ 문제와 함께 해당 사회에 대해 회사가 짊어진 책임을 반영한다고 말할 것이다. 전 세계 기업들의 연례 보고서 및 광고에서는 진심이건 아니건 현재 기업에서 위와 같은 내용을 동의했음을 나타낸다. 그러나 버크셔의 워런 버핏(Warren Buffett)의 판단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는 오직 정부가 정책을 통하여 자신에게 수익을 가져다 주기 때문에 풍력 발전에 투자했을 뿐이었다.
“우리는 생산의 부가가치에 대한 세액의 공제가 없다면 [그것에 투자를]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른바 오마하의 현인이 말을 더 이어갔다. 올해 초, 그는 파이낸셜 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기업에게 사회에 ‘선행을 한다’는 시각을 강요하는 행위는 잘못되었다고 주장했다. 무엇 때문에 기업들 자신이 더 잘 판단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을까? “아주 어렵습니다. 거대 기업 20곳을 평가하자면 어떤 기업이 가장 잘 운영되는지 정말로 모르겠습니다. 저는 공공기업 20곳의 이사로 재직해왔는데, 기업들의 행동을 평가하는 일은 점점 어렵게 느껴집니다. 아주, 아주 어렵습니다. 저는 사탕 먹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면 사탕은 제게 좋은 것인가요? 나쁜 것인가요?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버크셔 경영진들이 세상을 위해 무엇이 옳은 지 분명 알았다고 해도 세상을 위한 신념을 바탕으로 투자한다고 믿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들은 단지 투자자인 주주들을 위한 대리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기업은 주주들의 재산입니다”라고 말했다. 버크셔 조직에서는 자선 기부가 원칙적으로 배제된다.

“많은 기업의 경영진은 납세자의 재산에 대한 정부의 과세 할당을 개탄하면서도 투자자 수익에서 자신들에게 할당되는 몫에는 열렬히 동의합니다”라고 그가 씁쓸하게 지적했다. 기업에 대한 버핏 회장의 관점은 그를 이례적으로 (오마하의 현인) 만든 현 시점에서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 시카고 대학 경제학자는 50년 전에 “사업의 사회적 책임은 이윤을 늘리는 것이다”라는 내용을 작성했다. 이러한 관점은 최근까지도 경영대학원을 거쳐 이사회에서도 신조로 여겨진다.
버핏 회장은, 버크셔 해서웨이를 통해 막대한 부를 창출하는 데 성공하는 과정에서, 자본주의가 마치 다정한 할아버지와 같은 무해한 대중적 이미지를 창조한 것이 가장 큰 업적일지도 모른다. 그는 이를 통해 다른 이들이 감히 생각밖에 할 수 없었던 것을 입 밖으로 꺼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버핏 회장의 견해는 완전히 혼자가 아니다. 산업 센서를 생산하는 Cognex의 로버트 쉴만 회장은 지난 연례 보고서를 통해 “자유기업 체계와 수익에 기반한 사업을 모두 혹독하게 비난하는 추세에 우려를 표합니다”고 전했다.
그는 “특히 환경, 사회, 지배구조(ESG) 라는 주제를 통한 기업들의 통제”를 문제 삼았다. 그는 정부가 여전히 기업의 ESG 관리 통제에 이르지 못했으며 “불행하게도 이러한 사항들은 거대한 투자 기관 내 펀드 매니저에게는 적용되지 않습니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산 운용자가 뮤추얼 펀드 내 투자자들이 빌려준 대리의결권을 활용하여 “사업상의 결정을 할 때 자신의 기업을 ESG 요인에 포함시키도록 압력을 가하는” 것은 주제를 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만약에 그들[펀드 투자자들]이 ‘당신은 이사회 및 회사 경영진이 환경, 사회 및 지배 구조 사안에 시간 및 에너지를 소비하기를 바랍니까? 혹은 당신은 그들이 당신의 주식의 가치를 높이는 일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기를 바랍니까?’라고 질문을 한다면 그들은 압도적인 수로 후자를 선택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모럴 머니(Moral Money)는 지속 가능한 사업, 금융, 투자 내용을 다루는 본사의 새로운 주간 뉴스레터입니다. 이런 류의 뉴스레터를 구독하고 이들이 소개하는 획기적인 사안에 대한 속보 및 통찰력 있는 분석을 확인해 보시길. 최근 ESG 주도형 투자 펀드의 고도 성장은 쉴만 회장이 틀렸을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하지만 종업원과 지역사회 및 거래처 등의 이익을 고려하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사람들도 상기의 질문이 잘못된 선택을 전제로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ESG 투자펀드가 크게 확장되는 배경은, 운용자들이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해당 기업의 영업 허가를 관련 기관이 취소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올해 초, 앨런 슈워츠(Alan Schwartz) 투자은행인 구겐하임 파트너스 회장은 “수 세기 동안 우리는 대중들이 엘리트 계층의 부가 지나치다고 여길 때 두 가지 중 하나가 발생한다는 것을 보아왔습니다. 부의 재분배를 위한 법규의 제정 또는 빈곤의 재분배를 위한 혁명이 그 두 가지입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본주의가 위태롭게 불안정해졌음을 인정하면서도, 주주들의 수익에 근시안적으로 집중하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임에는 모두가 동의하지는 않는다. 폴 싱어(Paul Singer) 행동주의 헤지펀드인 엘리엇 매니지먼트 대표는 오히려 반대의 견해를 보인다. 정부의 나쁜 정책으로 야기된 기업들의 이사진 및 경영진의 이기적인 행동들이 ‘자본주의는 조작된 게임’이라는 인식을 형성시켜 왔다는 것이다.
싱어 대표에 따르면 기업 자본주의는 투자자가 기업을 소유하고, 투자자가 이사진을 임명하여 기업 전략을 수립하며 이사진은 전략 실행을 위해 경영진을 고용하는 시스템이다. 2017년 회의에서 싱어 대표는 그런데 현실의 상황은 역으로 경영진이 이사회를 활용하여 자신의 이익을 위한 전략을 선택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투자자들은 부차적이었다. 그는 “미국의 현재 자본주의에는 엄청난 어리석음이 횡행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금융 위기를 초래한 대형 은행 경영진들의 모험적인 행동 및 이를 통제하지 못하는 이사회가 전형적인 예시라고 전했다.
위기에 대한 무능한 정책, 느슨한 통화 정책은 시민 대다수를 위한 것이 아니라 투자자들의 자산 가격을 높임으로써 자본주의에 대한 위기와 불만을 키울 뿐이었다. “금융 부문 및 자산 소유자들은 현란하게 활동하고 있는 반면에, 중산층은 위기로 인한 엄청난 압박을 받고 있습니다. 이는 또한 경제적 자유를 포괄적으로 수용하는 점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포퓰리스트의 민첩한 공격 지점입니다.” 즉, 주주 자본주의에는 더 견고하고 확실한 통제가 필요하고, 주주 자본주의를 유연하게 방치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버핏 회장은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매우 단순한 비전을 가지고 있다. 그는 변화를 이끌어야 하는 주체는 자본주의가 아니라 정부의 정책이라고 여긴다. 그는 오래된 버크셔의 석탄 발전소를 예로 들었다. “만약에 시장에만 맡긴 상태에서, 사람들이 우리가 소유한 석탄 발전소를 폐쇄하길 바란다면 이후 주주 또는 수요자가 해당 비용을 감당하게 될 것입니다. 수요자들이 폐쇄에 따른 비용을 지불한다는 주장에 이견이 있을 수 있겠죠. 하지만 이들이 발전시설에서 사용하는 에너지의 50%를 석탄으로부터 공급받는 지역에 거주할 경우에 폐쇄에 따른 고통이 발생하는 반면에, 그들이 다른 조건의 지역에 거주한다면 그러한 댓가를 치르지 않아도 되겠죠. 하지만 누군가는 댓가와 비용을 감당해야 합니다. 이러한 (불균등)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이도록 해야 할 지가 문제입니다. 이것의 해결은 전적으로 정부에서 담당해야 합니다.”
현 시대의 가장 위대하다고 여겨지는 투자가(워렌)는 “정부는 시장 체제를 수정(규제)하는 데에 있어 핵심의 역할을 담당해야 합니다” 라고 말했다.
FT ESG Team

댓글 달기
댓글 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