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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및 K-콘텐츠 창의산업 클러스터 조성 - 충남 박수현 님의 공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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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에 문화유산과 K-콘텐츠를 연계한 창의산업 클러스터를 조성하여 문화 콘텐츠 산업을 육성하고, 새로운 일자리 창출을 도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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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용비리 혐의 신한금융 조용병 회장을 엄벌하라!

조용병 회장의 연임 결정한 신한금융 강력히 규탄한다!

사회의 공정성·신뢰성 훼손한 채용비리에 선처는 용납 안돼

 

다가오는 1월 22일 신한금융 조용병 회장의 채용비리 혐의에 대한 1심 판결 선고가 있을 예정이다. 수많은 청년들을 좌절시킨 ‘은행 채용비리’ 사태에 대한 재판이 지난해부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검찰은 “채용의 공정을 기대한 사회 전반의 신뢰를 훼손했다.” 라며 신한금융 조용병 회장에게 징역 3년을 구형한 바 있다. 그러나 앞서 선고된 채용비리 관련 판결에 비추어보면, 엄벌은커녕 재판부의 솜방망이 처벌이 이어지고 있고, 신한은행 또한 재판부에 조용병 회장에 대한 선처 탄원서를 내며 후안무치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검찰 수사결과에 따르면 신한은행은 외부인이 채용청탁을 할 경우 청탁받은 지원자를 ‘특이자 명단’으로, 신한은행 부서장(본부 부장, 지점장급) 이상 임직원 자녀들은 ‘부서장 명단’으로 인사부에서 특별 관리하였다. 2016년 하반기 일반 지원자는 단 1.1%만 합격한 반면 부서장 자녀 합격률은 5.48%로 일반 지원자 대비 5배 이상 높고, 청탁을 받은 특이자의 경우 합격률이 10.53%에 달하여 일반 지원자의 10배 가까운 합격률을 보였다. 이는 신한은행이 ‘무늬만 공채’인 채용을 실시하며 돈 없고 빽 없는 일반 청년들을 들러리로 세워 기만한 것이다. 더군다나 신한은행 부정합격자 154명 중에는 임직원(고위층 포함) 자녀가 25명(약 16%)이나 포함되어 있어 ‘고용세습’까지 이루어진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현대판 음서제’나 다름없으며 비리로 얼룩진 신한은행의 실태가 낱낱이 밝혀졌다.

 

또한 신한은행은 15~16년 신입행원 채용 과정에서 사전에 남녀 채용비율을 3:1로 정한 다음 그에 맞춰 남녀 합격자 수를 인위적으로 조정하는 방법으로 남녀를 차별하여 채용하였으며, 그 수는 전체 부정합격자 154명 중 무려 101명에 달했다. 신한은행의 성차별 채용의 민낯이 검찰 수사결과로 드러난 것이다. 좋은(?) 부모를 넘어 좋은(?) 성별까지 타고나야 하는 수많은 여성 청년들은 능력만으로는 되지 않는 절대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했다는 사실에 또다시 좌절하고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신한금융은 수많은 청년들을 고통으로 내몰았던 채용비리에 대한 책임을 채 다하기도 전에 지난해 말 회장후보추천위원회를 열어 조용병 회장을 단독 회장 후보로 선임하였다. 참으로 무책임하고 뻔뻔한 행태다. 채용비리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고,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현직 회장의 책임을 묻고 사임시켜도 모자를 판국에 연임을 결정한 신한금융이 과연 채용비리 사태에 책임의식이 있는지 의문이다. 

 

심지어 조용병 회장은 재판 과정에서 채용비리 혐의 자체를 부인하고 있으며, 신한은행 직원들은 조용병 회장이 ‘직원들 복지를 위해 힘썼다’, ‘은행 이익에 반하는 채용과정이 아니’라며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외면한 채 제 식구 감싸기에 급급한 신한은행의 내부 행태는 비난받아 마땅하며, 반성과 사과는커녕 여전히 자신들의 권력구도 구축을 위해 채용비리 책임자인 조용병 회장의 연임을 결정한 신한금융을 강력하게 규탄한다. 

 

우리는 사회에 힘겹게 한 발 한 발 내딛고 있는 청년들에게 공정성과 도덕성이 성공의 지름길이라는 신호를 주어야한다. 하지만 시중은행은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수많은 청년들을 들러리로 세우면서 특혜채용을 지속하였고, 법원은 솜방망이 처벌로 면죄부를 주고 있는 형국이다. 사회적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시중은행의 채용비리는 사회의 공정성·신뢰성을 훼손했다는 점에서 더욱 엄중하게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 따라서 재판부가 신한금융 조용병 회장을 엄벌하여 사회에 본보기를 보일 것을 촉구한다. 강력한 처벌만이 재발을 막을 수 있으며, 공정한 채용의 가치를 확인하는 길이다. 

 

금융정의연대/민달팽이유니온/빚쟁이유니온/서울청년겨레하나

재벌개혁경제민주화네트워크/청년유니온/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청년참여연대

화, 2020/01/21-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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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는 환경보호를 찾다
  대학 다닐 시절, 기말고사 대체 레포트 공지 도중 교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있다.
- 여러분의 과제물을 인쇄할 종이에게 미안하지 않을 만한 글을 써오세요.
  동기들은 웃었지만 나는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인쇄값 50원이 아까워서 4쪽 모아찍기를 해본 적은 있었어도 종이를 만들기 위해 베어진 나무에게 미안하지 않기 위해 과제물에 정성을 들인 기억은 없었다. 교수님께서는 그저 ‘열심히 하라’라는 말을 위트 있게 하고 싶으셨던 것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 한 문장 때문에 유래 없을 만큼 최선을 다해 레포트를 썼다. 나중에 내가 ‘고작 이런 글을 쓰려고 종이를 허투루 낭비한 건가?’ 라는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서. 나무 앞에서 당당할 수 있도록. 물론 그 후기를 들은 친구들은 너도 참 이상한 애라고 말했고 나 또한 웃고 넘어갔지만 그 때 당시의 심정은 그랬다.
  나의 ‘환경에 위한 행동’이라고 명명할 법한 것들은 모두 죄책감에서 시작되었다. 콧구멍에 빨대가 꽂혀있던 거북이 사진을 보고난 후에는 빨대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고, 새들이 마스크 끈에 발목이 묶여 구조되는 경우가 늘었다는 기사를 읽은 다음에는 무조건 마스크 끈을 잘라 버렸다. 집에 쌓여가는 플라스틱 테이크아웃 잔에 다육식물을 심어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준 적도 있었고, 지구촌 불끄기 운동 이야기를 듣고 난 뒤에는 밤 11시 이후에는 불을 끄고 지내는 게 습관이 되기도 했다. 어린 시절 내가 그린 환경 보호 포스터에는 무조건 ‘지구야 미안해’ 류의 표어가 들어갔다 -대상은 특정 동물로 대체되기도 했지만-. 누군가는 지구를 보호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텀블러나 에코백을 들고 다닌다는데 나는 환경 문제 관련으로 이야기를 하다보면 미안하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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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테이크아웃잔을 활용하여 심은 다육식물
  나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만큼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 또 지구를 위해 많은 불편함을 감수할 정도로 이타적인 성격도 되지 못한다. 플라스틱을 많이 사용하는 게 문제라는 걸 알면서도 코로나를 핑계 삼아 음식을 배달시키고, 잔뜩 쌓인 배달용기 앞에서 한숨 쉬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그나마 있던 양심을 지키기 위해서 매번 ‘일회용 젓가락/포크는 넣어주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라는 요청사항을 기입하고는 있지만, 가게 측에서 깜빡하고 동봉해주시는 건 어떻게 처리할 방도가 없어 서랍 안에 차곡차곡 쌓아두는 중이다. 숫자가 늘어가는 나무젓가락이 내 한계를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져서 가끔은 모두 내다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들기까지 한다.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진 탓에 그렇게 되었다면, 집에 있으면서 환경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지 고민하던 차에 일단 쓰레기를 줄여보자고 결론지었다. 우선 쓰레기 중 비율을 가장 많이 차지하던 청소포와 휴지 및 물티슈, 그리고 생리대를 일회용에서 다회용 물건으로 교체하였다. 청소가 끝나고 밀대용 걸레를 세척하는 일이나 외출할 때마다 손수건을 챙기는 건 불편함을 동반했다. 그렇지만 환경뿐만 아니라 내 몸에도 좋은 선택이었을 거라 믿고 몇 달간 이용해본 결과, 일반 쓰레기가 많이 줄어든 것과 동시에 함께 나오던 재활용 쓰레기-휴지심, 물티슈 비닐 등- 또한 덜 나오게 되었다. 가끔은 쏟은 물을 휴지로 닦아 버리는 실수를 저지르긴 하지만 그래도 익숙해지는 과정이라고 믿고 있다.
  ‘지구가 점차 더워지고 있다는 증거’라는 제목을 클릭하면 작은 얼음 위에 균형을 잡고 서있는 북극곰 사진이 나오는 게시글을 최근에 열람했다. 묘기에 가까운 자세로 바다에 빠지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던 북극곰의 사진에서 얼굴을 알아보긴 어려웠으나, 금방이라도 울 것만 같은 표정처럼 보였다. 그 날 마트에 갔다가 다회용 봉투에 그려진 바다표범을 보니 기분이 편치 않았다. 계산대에서 순서를 기다리다 평소 발견하지 못했던 코너가 눈에 띄었다. 분리수거함이었다. 칫솔이나 분무기 같이 플라스틱이지만 다른 재질의 부품이 섞여있어 분리수거가 까다로운 물건들을 모아 재활용한다는 안내문구가 적혀있었다. 그동안은 플라스틱이니 괜찮겠지, 하고 버렸던 것들이 분리수거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 집에 돌아와 올바른 분리수거 방법을 검색해보았다. 다른 것들보다도 과일 포장지가 스티로폼이 아닌 일반 쓰레기였다는 점은 조금 충격적이었다. 분리수거를 열심히 하는 편인 우리나라가 실질적인 재활용 비율은 그렇게 낮을까, 하던 의문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단순히 종류에 따라 따로 버리는 게 전부인 게 아니라 재활용할 수 있도록 이물질을 제거하고 분리배출하는 작업이 중요하다는 걸 실감했다.
  학창 시절 선생님의 지휘 아래 반 아이들과 학교 근처 공원으로 환경 미화를 나갔던 다음 날, 그 공원을 찾아가 본 적이 있다. 분명 모두들 집에서 가져온 쓰레기봉투를 한가득 채워 떠났는데 여전히 산책로에는 담배꽁초들이 굴러다녔다. 그 때 처음 우리가 애써봤자 다른 사람들이 안 하는데 무슨 소용인지 의문을 품었다. 나의 노력은 무력해보였고, 큰 흐름을 이겨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아파트 분리수거장에서 산처럼 쌓여있는 플라스틱 쓰레기들을 볼 때도 똑같은 의문이 고개를 쳐들곤 한다.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은 그저 자기만족에서 그치는 정도의 힘만 가지고 있는 건 아닌가. 대단한 효과를 내고 있다고 단언할 만한 자신감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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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렇게 내가 지구에게 느끼는 미안함의 이유는 더 잘 할 수 있지만 환경보호에 대한 실천들을 귀찮고 피곤하다는 핑계로 덮어버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물론 내가 하는 실천이 대단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모두가 실천력과 용기를 낼 수 있다면, 조금만 더 주의를 기울인다면 조금은 나아질 수 있는 부분들이 있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투명 플라스틱 병의 라벨을 제거하고, 카페의 컵 홀더들을 모아 냄비받침을 만들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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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유스토리(Youth Story)는 기후위기의 끝에서 청년이 당신에게 보내는 이야기를 담고자 하였습니다.


3부 필자: 김단아


문예창작과 대학원생.



곳곳에서 뛰쳐나오는 환경문제 때문에 양심통을 앓으며 살아가고 있다.


월, 2021/01/25-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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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남성, 소위 '이대남' 현상이 정치계를 뒤흔들고 있다. 그 직접적인 계기는 서울시장 보궐선거였다. 20대 남성과 여성의 표심이 극명하게 엇갈렸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20대 남성의 '보수화'를 지적하는 목소리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또 최근 GS25 홍보물을 둘러싼 소위 '남성혐오' 논란은 분노한 청년세대 남성들의 안티 페미니즘 성향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사건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이러한 '이대남' 현상 자체가 실체가 없다거나 일부의 현상에 지나지 않는 것에 불과하다는 목소리 역시 존재한다. 과연 '이대남' 현상의 실체는 존재하는가? 우리는 지금의 현상들을 어떻게 인식하고 이에 대해 어떠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까? 우리는 이와 관련하여 20대 남성 당사자, 여성주의 학자, 사회단체 활동가 등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물어보기로 했다. 총 6편의 글을 연재한다. 편집자주.

 

① http://www.peoplepower21.org/index.php?mid=Research&listStyle=list&docum... rel="nofollow">한국의 '이대남'과 미국의 '브로플레이크'...'백래시의 시간'이 왔다 / 손희정 경희대학교 교수

http://www.peoplepower21.org/index.php?mid=Research&document_srl=1795593" rel="nofollow">'이대남' 허상을 신화로 만든 언론...'反페미'와 취업난이 대체 무슨 상관? / 지우개 충북대학교 학생

③ https://www.peoplepower21.org/index.php?mid=Research&document_srl=179657... rel="nofollow">이준석이 '82년생 김지영'을 공격하는 이유는? / 권명아 동아대 교수

https://www.peoplepower21.org/index.php?mid=Research&document_srl=179772... rel="nofollow">'인국공 사태'의 교훈이 반페미니즘? / 권명아 동아대 교수

https://www.peoplepower21.org/index.php?mid=Research&document_srl=179885... rel="nofollow"> 촛불 이후 우파정치의 재구성과 '이대남' 현상 / 전지윤 다른세상을향한연대 실행위원


 

"당신은 '이대남'입니다"라고 강요하는 사회

'이대남' 현상은 실재하는가? ⑥

 

조기현 작가

 

4.7 재보선 이후 20대 남성 시민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다. 몇 년 전에는 '이남자'라고 부르더니, 이번에는 '이대남'이라고 부른다. 20대 남성이 보수화되고 있다는 문제의식 때문이다. 20대 남성은 정말 보수화되고 있을까? 이런 질문 자체에 반발심이 드는 게 사실이다. 왜 20대 남성만 주목의 대상이 되는지, 20대는 보수적이면 안 되는지 말이다. 동시에 질문 속에 내재한 우려도 공감이 간다. 자신을 피해자라고 느끼는 20대 남성들이 이 사회에 해악을 끼칠지 모른다는 짐작 때문이다. 언론과 몇몇 정치인에 의해 안티 페미니즘의 목소리가 계속 커질수록 사회에 해악을 끼치고 민주주의를 파괴할 수 있는 토양도 마련되는 것 같다.

 

이런 우려가 20대 남성 시민을 악마화하는 데서 그치지 않으려면, 우리는 질문을 바꿔볼 필요가 있다. 20대 남성 시민이 사회에 해악을 끼칠 것이라고 짐작하기 이전에, 그들에게 어떤 '사회'가 있는지부터 물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사회란 일상적인 상호작용을 하는 관계 전반이라고 할 수 있다.

 

20대 남성은 생애 이행 과정에서 자신이 역차별의 피해자라고 느낀다는 가설이 있다. 군대도 다녀와야 하는 데다, 20대에는 여성이 학업 성취나 취업률에서 앞서기도 한다. 그러다가 30대에 들어 사회적 관계가 확장되면 자연스럽게 역차별을 당한다는 감각이 사라진다. 직장에서나 애인, 배우자를 통해 성차별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년들의 진로 이행 시기가 점점 더 길어지는 요즘, 30대가 되어도 사회적 관계가 확장될 계기가 쉽게 마련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고민을 하다 보면 다양한 20대 남성들을 만났던 순간이 떠오른다. 나는 2017년부터 3년 정도 청년 모임을 진행했다. 참여 인원은 10명 안팎으로 서울시의 지원을 받아 참가비는 무료였다. 참여 대상은 '청년수당'을 받는 20대에서 30대 초반의 청년들로, 대부분 미취업 기간이 긴 상태였다.

 

모임의 목적은 청년의 '관계망 지원'이었다. 영화 만들기, 서울 탐방, 독서, 보드게임 등 관계망을 지원하기 위한 소재는 다양하다. 이런 소소한 모임을 왜 공공이 나서서 지원하냐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이 일하고 싶어도 일하지 못하거나, 불안정 일자리를 전전하다 보면 돈, 관계, 심리 모두 위축된다. 친구를 만나러 나갈 때도 돈이 필요하고, '아직' 준비를 하는 청년에게 인정이나 지지가 있을 리 만무하다. 자존감은 바닥이 나고, 사람을 만날 때 필요한 대면 능력도 고갈된다. 그런 상태는 고립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만약 자신이 어떤 상태이든 상관없이, 안전하게 교류할 수 있는 관계가 있다면 고립을 피할 수 있다. 공공이 나서서 관계망 형성을 지원했던 이유다.

 

당시 모임을 진행하면서 커뮤니티 게시판이나 인터넷 뉴스 댓글 창의 전파 속도를 실감했다. 이를테면 제주도에 예멘 난민이 도착했다는 뉴스가 나면 다음 모임에서는 그들 중 IS가 숨어있다는 말이 나온다. <82년생 김지영>이 회자가 되면 남성 차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코로나 1차 유행 때는 중국인과 관련된 가짜뉴스를 친목 단톡방에 퍼 나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정보들은 빠른 만큼 얕게 전파된다. 모임을 시작할 때 차별이 될 수 있는 말에 대해 조심할 것을 요청하고, 타인의 의견에 경청할 것을 부탁한다. 그런 규약은 자신이 본 정보에 대해 말하더라도 순화해서 말하게 하고, 자신이 말한 후 타인의 의견을 경청하게 한다. 이때의 모임 분위기는 단순히 팩트를 체크하는 수준을 넘어선다.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 천천히 의견을 나누다보면 감각적인 지점에 가닿기도 하기 때문이다.

 

대개는 불안이다. 지금 느끼는 자신의 실체 없는 불안에 실체를 부여해주고 구체적인 피해를 보여주는 사건에 이입하게 되는 것이다. 모임에서 상호작용은 자신이 피해자라는 확신보다 피해가 왜 발생하는지, 내 의견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보이는지, 내가 느끼던 감정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등을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안전한 소통 환경에서 학습의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다.

 

물론 모든 모임이 이렇게 진행된 것은 아니며, 수습하기 급급했던 순간들도 많다. 그럼에도 모임의 사례를 공유하는 것은 인정과 지지, 소속감, 타인의 의견을 경청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관계를 어떻게 청년들에게 보장할지에 대해 함께 고민해보자고 제안하기 위해서다. 지금 20대 남성의 논의를 이런 맥락을 빼놓고, 이슈만으로 소비한다면 변화는 없다. 선거 결과와 같은 거대한 수치에 10명 안팎이 모여서 벌인 상호작용을 말하는 게 무색해 보일지 모른다. 세습되는 불평등과 사회보장의 부재 등의 큰 문제를 손보지 않고는 미봉책으로 밖에 보이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사회적 갈등을 풀 수 있는 실마리가 일상적 관계에도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부족(tribe)의 시대'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은 요즘이다. 전환사회연구소 기획위원 장석준은 이대남, 이대녀, MZ세대 등 최근 등장하는 용어를 '부족명'이라고 규정한다. "한국 사회의 다른 구성원과는 결코 공유할 수 없다고 '가정되는' 특성으로 집단을 나누고, 한국 사회가 마치 그런 집단들의 무더기인 양 여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정치권이 이대남, 이대녀로 젠더 갈등을 부추기는 건 결국 20대 시민들에게 이 세상을 그렇게 느끼라는 강요나 다름없다. 이 강요를 벗어나고 감각을 재편하기 위해서는 상호작용이 필요하다. 젠더 갈등을 부추기는 몇몇 정치인을 탓하는 것을 넘어, 그런 정치인을 거를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갈등이 더 심화되기 전에 사회를 만드는 것, '청년정책'이라는 이름으로 해볼 만한 일이다. <끝>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목록 바로가기(https://www.pressian.com/pages/author/10069" rel="nofollow">클릭https://www.pressian.com/pages/search?sort=1&search=%EC%8B%9C%EB%AF%BC%E... rel="nofollow">)

 

* 본 내용은 참여연대나 참여사회연구소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수, 2021/06/09-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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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이 '민주당식 정치'를 안 믿는 이유

기성세대로서 성찰부터 해야

 

장은주 영산대학교 교수

 

이준석 씨가 돌풍을 일으키며 국민의 힘 당대표로 당선된 이후, 민주당이 바싹 긴장을 했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 4.7 재보궐 선거에서 민주당이 참패한 원인이 그동안 확고한 민주당 지지층이라 여겨졌던 청년 세대, 특히 20대 남성의 이탈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더랬다. 아닌 게 아니라 이준석 대표에 대한 남성 청년 세대의 지지는 꽤나 열광적인 것 같고, 이 대표도 그런 지지에 고무되어 편을 갈라 세우는 트럼프식 포퓰리즘 정치에 더욱더 열을 올리고 있다. 그는 '여가부 폐지'를 넘어 이제는 '통일부 폐지'까지 들고 나와, 페미니즘에 비판적이고 통일에도 회의적인 청년 세대의 지지를 더 확고히 하려 하고 있다. 확실히 보수를 표방하는 당이 통상적으로 진보 지지층으로 분류되는 청년 세대의 지지를 얻는다는 건 진보를 자처해 온 민주당에게 결코 사소한 일일 수 없다.

 

하지만 이에 대한 민주당의 대응은 안쓰럽기만 하다. 청와대에 갑작스레 청년비서관을 신설하거나 대선 후보들이 무슨 '청년 코스프레'를 하는 거야 그러려니 하더라도, 청년에게 다가가겠다며 하는 일들을 보면 하나 같이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마치 조국 전 장관이 청년 이탈의 핵심 원인이라도 되는 모양이다. 당대표가 뜬금없이 '조국 사태'에 대해 사과하고, 대선 후보 경선에서 '조국의 강'을 건너니 마니 하며 '반 조국' 인사들을 면접관으로 초청하는 엉뚱한 기획을 해서 논란을 벌였다.

 

내가 볼 때 진단부터 피상적이다. 비록 검찰의 연성 쿠테타로 촉발된 조국 사태가 청년들의 민주당에 대한 지지 철회의 중요한 명분이었다는 데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인정하고 있지만, 진짜 중요한 이유는 그동안 민주당이 펼쳐 온 '정치의 실패'에 있다는 걸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이래서는 민주당이 청년들의 지지를 다시 회복하여 정권재창출에 성공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공정성의 도전

 

물론 나라고 해서 무슨 만능열쇠 같은 답을 가지고 있지는 못하다. 많은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청년 세대가 민주당에 등을 돌린 가장 중요한 이유가 공정과 능력주의에 대한 일그러진 지향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는데, 이 문제를 중심으로 민주당이 가야 할 기본 방향에 대해서만 몇 마디 해 두려 한다.

 

돌이켜 보면, 우리 사회에서 공정은 새삼스러운 화두가 아니다. 멀리는 이명박 정부 때부터 공정사회론이 대두되기 시작했었다. 박근혜 정부 때도 최순실의 딸 정유라가 '부모 잘 만나는 것도 실력'이라는 식으로 주장한 데 대해 청년들이 능력주의적 관점에서 반발한 게 2016년 겨울 촛불집회의 동력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들어 좀 더 본격적으로 특히 청년 세대를 중심으로 공정에 대한 아주 날카로운 요구가 들끓고 있다. 평창올림픽 아이스하키 팀 단일화 시도에 대한 청년 세대의 반발, 비트코인 규제 방침이나 부동산 대출 규제에 대한 청년 세대의 비판, 학교 내 비정규직 철폐 시도에 대한 교총과 전교조의 일치된 거부, 학생부종합전형 방식에 대한 거부 정서, 사시부활에 대한 지속된 요구, 이른바 '인국공 사태', '전교 1등' 의사들의 반-공동체적 파업, 정글 식 경쟁을 공정하다고 외친 이준석 국민의 힘 대표 당선 등 무수히 많은 사건에서 청년 세대는 나름대로 일관되고 간절하게 공정성을 외쳐왔다. 내 생각에 이건 단순히 우연이 아니다.

 

청년 세대를 중심으로 한 이런 유의 '공정성의 도전'은 일단은 우리 사회가 성숙했다는 데 대한 지표라고 이해해야 한다. 시민들이 단순히 돈과 성장 따위에만 집착하지 않고 우리 사회가 시민들을 공정하게 대우하는 법과 제도 및 정책을 가졌는지를 묻는다는 것은, 단지 어느 정도 제대로 작동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만 가능하다고 해야 한다. 물론 당연하게도 그 이면에는 우리 사회의 광범위한 불의와 불공정에 대한 민감한 비판의식이 깔려있다. 그래서 청년 세대가 공정을 외치면서 민주주의나 연대의 가치를 외면하고 평가나 시험의 객관성 등에 집착하는 게 우려스럽더라도, 그걸 단순히 무슨 사회적 착시 현상 탓으로만 돌려서는 안 된다.

 

그 도전의 배경에는 우리 사회가 심화된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토대 위에서 시험 성적이나 학벌 또는 자격시험 등으로 사람들을 나누어 놓고는 그 결과에 따라 너무도 현저한 보상의 격차를 둔다는 근본 문제가 깔려있다. 쉽게 말해, 우리 사회는 이른바 명문대를 나온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또는 자격증을 가진 사람과 못 가진 사람 따위를 구분해 놓고, 승자에게만 모든 혜택과 특권을 몰아주고 패자에게는 쓰라린 고통과 억압과 배제만 안겨주는 불평등 체제를 갖고 있다. 그러다 보니 모두가 무슨 희생을 치르더라도 승자가 되려 하고, 승패의 기준에 집착한다. 이때 그 기준은 최대한 객관적이고 투명해야 한다. 승자와 패자의 차이를 없애는 것은 부당한 '무임승차'에 불과하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맞닥뜨리고 있는 공정성이라는 이름의 도전이 가진 진상이다.

 

민주당이 해야 할 일

 

청년들이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주어진 틀 안의 경쟁에만 매달리고 있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그들을 비난하기 전에 더 큰 책임은 기성세대가 지는 게 맞지 않을까? 민주당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그 잘난 586 민주화 세대 말이다. 이제 막 사회적 삶을 시작하려는 청년들에게 세상은 너무 가혹하기만 하다. 비록 이 586세대가 앞장서 이런 세상을 만들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기성세대는 자식 세대가 맞고 있는 이 가혹함을 어떻게든 완화시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 마땅하다.

 

해법의 방향은 좀 더 근본적인 사회 개혁일 수밖에 없다. 진짜 문제는 사회에서 명문대 출신과 '지잡대' 출신, 대졸자와 비대졸자, 나아가 정신노동과 육체노동 등의 사이에 주어지는 보상의 심각한 격차다. 이 격차를 줄이지 않고서는 어떤 문제도 제대로 해결할 수 없다. 나아가 일자리도 더 만들고 광범위하고 촘촘한 사회안전망도 마련해서, 청년 세대의 삶에 인간적 품위와 최소한의 안정성이 확보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바로 정치가 해야 할 일이다. 특히 진보를 자처하는 민주당의 정치가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와 집권 민주당은 그동안 이런 방향으로의 사회 변화를 제대로 이끌지 못했다. 비록 짧은 시간 안에 모든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할 테지만, 집권 세력은 이른바 '내로남불'의 양상마저 드러낸다고 비판받으면서 그러한 방향의 개혁에 대한 신뢰를 전혀 제공하지 못했다. 이에 우리 청년 세대는, 사회의 민주적인 개혁에 대한 전망보다는 능력주의적으로 정당화되는 기존의 사회경제적 불평등 체계를 불가피한 것으로 보면서, 그 체계가 만들어 낸 피라미드의 상층부에 진입할 수 있는 사다리에 오를 공정한 기회라도 달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청년들은 어리석어서가 아니라 도무지 민주당식 진보 정치에 기댈 수가 없어서 각자도생의 길을 선택한 거다.

 

어떤 식으로든 청년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처지에 공감하려고 노력하는 건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옳다. 그들이 직접 정치의 무대에 나설 수 있도록 힘을 기르게끔 도와주고 새로운 정치지도자를 길러내는 일도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그러나 피상적인 사과나 청년스러움을 과시하는 코스프레 따위로 청년들의 신뢰를 다시 회복할 수는 없다.

 

만약 민주당이 어쩔 수 없이 586으로 상징되는 기성세대를 위한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벗어던질 수 없다면, 그 주류 정치인들은 기성세대로서 스스로 져야 할 책임을 다하기 위한 뼈아픈 성찰부터 보이는 게 먼저다. 그 세대가 민주화운동을 통해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반석에 올려놓았다고 자부하고 있는 세대라면, 더더욱 이 민주주의가 예기치 못했던 문제들로 인해 엉뚱한 방식으로 위기에 처하도록 내버려 두면 안 된다.

 

지금 우리 민주주의는 특히 청년 세대를 희생양으로 삼은 너무도 심각한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덫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그리고 그 사이 트럼프식 포퓰리즘이 우리 사회를 갉아먹기 시작했다. 깊은 성찰의 바탕의 위에서 청년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신뢰할만한 정치적 비전을 제시하고, 한 걸음 한 걸음씩이라도 그 비전에 확실하게 나아가는 실천을 쌓아가며, 그 길이 진짜 청년들을 위하는 길임을 설득해 내는 일, 바로 여기에 민주당이 가야 할 길이 있지 않겠는가?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목록 바로가기(https://www.pressian.com/pages/author/10069" rel="nofollow">클릭https://www.pressian.com/pages/search?sort=1&search=%EC%8B%9C%EB%AF%BC%E... rel="nofollow">)

 

* 본 내용은 참여연대나 참여사회연구소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토, 2021/07/17-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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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구천 암각화를 중심으로 세계유산 역사문화단지를 조성하여 울산의 역사적 가치를 보존하고 관광 자원화하겠습니다.
토, 2026/06/20-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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