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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강산애 산행 / 안내] 노랑제비꽃과 철쭉이 만개한 축령산으로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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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강산애 산행 / 안내] 노랑제비꽃과 철쭉이 만개한 축령산으로 가요

익명 (미확인) | 금, 2016/04/22- 18:16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강산애’는 희망제작소 후원회원들의 산행 커뮤니티입니다. 우리 사회 다양한 분야의 소셜디자이너들이 매월 첫째 주 토요일 산에 오르며 희망을 노래합니다. 남녀노소 누구나 함께 할 수 있는 건강한 모임 강산애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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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애 5월 정기산행은 봄꽃이 만개하고 숲이 우거진 가평 축령산으로 떠납니다. 경기도 가평군과 남양주시의 경계에 걸쳐 있는 축령산 (해발 876m)은 울창한 잣나무 숲으로 이어진 등산로를 따라서 호젓한 기분을 만끽하며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는 산입니다.

이맘때면 자연휴양림에 노랑제비꽃, 서리산으로 이어지는 길에 철쭉이 활짝 피어납니다. 5월, 흐드러진 봄꽃을 즐기며 이성계와 남이장군의 설화가 깃든 봉우리와 바위를 따라서 가벼운 산행을 즐기기 더없이 좋은 축령산! 함께 하고 싶은 분들 어서오세요! 희망제작소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누구나 환영합니다!

○ 산행일정
* 모이는 시간 : 2016년 5월 7일(토) 오전 8시 50분
* 모이는 곳 : 경춘선 마석역 1번 출구
– 상봉역에서 오전 8시 9분에 출발하는 경춘선 열차가 마석역에 오전 8시 43분에 도착합니다.
– 마석역에서 오전 9시 5분에 출발하는 30-4번 축령산행 버스를 반드시 타야 합니다. (약 45분 소요)
– 버스 탑승 후, 축령산입구에서 하차하여 약 10시쯤부터 등산을 시작합니다.

○ 산행코스안내
* 축령산휴양림 – 수리바위 – 축령산 – 서리산 – 화채봉 삼거리 – 축령산 휴양림
(총 8.7km, 휴식 및 식사시간 포함하여 약 5시간 소요예상)
– 산행코스는 현지사정에 따라서 변경될 수 있습니다.

○ 준비물
– 참가비 1만 원, 점심 도시락, 과일, 간식, 물 및 산행에 필요한 복장과 장비

○ 참가신청
– 희망제작소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누구나 참가하실 수 있습니다! ☞ 클릭

○ 보험 안내
– 안전사고를 대비해 레저보험에 가입하실 분들은 별도로 신청해 주시기 바랍니다.
※ 보험가입비는 개인부담입니다.

○ 참가문의
– 나은중(강산애 회장 010-6343-4995)
– 이원혜(희망제작소 후원사업팀 팀장 02-2031-2186)

강산애 카페 바로가기 ☞ 클릭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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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옆집 남자의 얼굴을 모른다. 인사 한 번 해본 적 없다. 하지만 그의 여자친구 이름은 안다. 그가 어느 학교에 다니는지,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지, 어떤 술버릇을 가졌는지도 알고 있다. 방음이 되지 않는 원룸의 건물 구조 때문이다. 그도 나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하니 살짝 오싹해진다. 나는 그에게, 그는 나에게 ‘얼굴 없는 동거인’이다. 칸과 칸 사이, 분리된 듯 분리되지 않은 생활이 매일 계속된다.
‘희망다반사’는 희망제작소 연구원이 전하는 에세이입니다. 한 사회를 살아가는 시민의 시선이 담긴 글을 나누고, 일상에서 우리 시대 희망을 찾아봅니다. 뉴스레터와 번갈아 격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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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옆집 남자의 얼굴을 모른다. 인사 한 번 해본 적 없다. 하지만 그의 여자친구 이름은 안다. 그가 어느 학교에 다니는지,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지, 어떤 술버릇을 가졌는지도 알고 있다. 방음이 되지 않는 원룸의 건물 구조 때문이다. 그도 나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하니 살짝 오싹해진다. 나는 그에게, 그는 나에게 ‘얼굴 없는 동거인’이다. 칸과 칸 사이, 분리된 듯 분리되지 않은 생활이 매일 계속된다.

부실한 건물에 사는 현실이 슬프지만, 벽간소음 덕분(?)에 누군가와 ‘함께’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진부한 격언을 차치하더라도, 우리는 삶의 많은 부분에서 사람들과 끊임없이 마주한다. 가족, 학교, 친구, 직장 등을 넘어 거리에서 잠시 스쳐 지나가는 사람도 나와 많은 것을 공유하는 ‘사회적 동거인’인 셈이다.

외로움을 많이 타는 나에게 ‘함께 사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하지만 불쾌한 일의 연속이기도 하다. 얼마 전, 건물주에게 단체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청소 아주머니가 힘들어하시니 쓰레기 분리수거에 신경 써달라는 내용이었다. 출근길 무심코 지나쳤던 건물 앞 쓰레기더미가 생각났다. 악취로 코를 틀어막았던 것도 기억났다. 마침, 실제 많은 원룸촌에서 같은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기사가 화제였다. ‘조금만 신경 쓰면 될 텐데…’ 공중화장실에서, 극장에서, 버스정류장에서 에티켓을 지키지 않는 일부 사람들 때문에 눈살을 찌푸렸던 적도 떠올랐다. 동시에 나 역시 누군가에게 알게 모르게 불쾌함을 줬을 거라 생각하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나의 행동과 삶이 다른 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조금 더 깊게 생각해보기로 했다. 작년에 읽었던 한 책의 내용을 떠올렸다.

“수도권과 대도시의 전기공급을 위해 지방 소도시에 핵발전소와 송전탑을 짓는다. 소도시 사람들은 방사능과 전자파 위험에 노출된다. 콩고의 어린아이들은 스마트폰의 배터리 원료인 코발트를 채굴하며 학대를 당한다. 언제 어디서나 편리하게 사 먹을 수 있는 생수는 수원지 오염과 고갈, 페트병 양산 등의 문제를 일으킨다.”

내가 누리는 생활의 많은 것들이 다른 누군가의 비합리적인 희생 위에서 피어나고 있었다. 이 누림은 당연하지도 않을뿐더러 어쩌면 불필요하거나 과잉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당장 내 손으로 송전탑을 없애거나 편의점의 생수를 판매 금지할 수는 없었다. 대신,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해보기로 했다. 쓰지 않는 가전제품의 플러그를 빼고, 주전자에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사실 별것 아닐지도 모른다. 번거롭고 불편한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작은 행동이 모이면 누군가의 불쾌한 감정을 지우고, 또 다른 누군가의 눈물을 거둘 수 있으리라 믿는다. 내가 함께 사는 것이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이 이유 때문이 아니었을까. 우리의 삶이 누군가의 비합리적인 희생과 눈물이 아니라, 조금씩 모인 불편함과 번거로움 위에 피어나길 바란다.

글 : 최은영 | 미디어홍보팀 선임연구원 · [email protected]

목, 2017/03/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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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감사의 식탁은 강제 위안부가 된 소녀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아픈 역사의 진실을 마주하는 영화 <귀향>의 조정래 감독과 함께 합니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겠다고 결심하고 무려 14년 만에 완성된 영화, 그 오랜 시간과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던 힘, 마침내 관객을 만나기까지 뜨거운 영화 밖 이야기들을 조정래 감독과 나누는 자리에 후원회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화, 2016/06/07-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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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이라는 책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나 역시 김지영 씨와 마찬가지로 1980년대에 태어났다. 다른 게 있다면 그녀는 대도시, 나는 농어촌 소도시에서 유년기를 보냈다는 점이다. 믿기 힘든 이야기지만, 내 고향에는 그 흔한 슈퍼 하나 없었다. 대신 이장님이 가정집 한 편에 생필품을 대량으로 사두고 마을 사람들에게 되팔곤 했다. 버스는 하루에 5번 정해진 시각에만 오갔다. 혹여라도 늦잠자서 첫차를 놓치는 날에는 1시간을 걸어 등교해야 했다.

2018년 3월, 희망제작소는 평창동 시대를 마무리하고 성산동으로 보금자리를 옮깁니다. 새 터전에서 희망제작소는 ‘모든 시민이 연구자인 시대’를 실현하려 합니다. 생활 현장을 실험실로 만들고, 그 현장에서 뿌리내리고 있는 시민이 연구자가 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2006년부터 2017년까지 수송동과 평창동에서 희망제작소는 여러 실험을 했고, 이를 통해 많은 시민을 만났습니다. 희망제작소는 우리 사회의 어떤 요구에서 탄생했을까요? 시대적 흐름 속에서 시민과 함께 어떤 변화를 만들었을까요? 밀레니얼 세대(millenials)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글은 총 다섯 번에 걸쳐 연재됩니다.

* 밀레니얼세대(millenials) : 198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출생한 세대. 모바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정보기술(IT)에 능통하며 대학 진학률이 높다는 특징을 가진다. 2007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사회에 진출해 고용 감소, 일자리 질 저하 등을 겪어 평균 소득이 낮으며 대학 학자금 부담도 안고 있다. 이 때문에 결혼을 미루고 내 집 마련에 적극적이지 않다. (출처 : 박문각 시사상식사전)

[기획연재] 밀레니얼세대 다이어리 : ① 내 고향은 ‘식민지’?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책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나 역시 김지영 씨와 마찬가지로 1980년대에 태어났다. 다른 게 있다면 그녀는 대도시, 나는 농어촌 소도시에서 유년기를 보냈다는 점이다.
믿기 힘든 이야기지만, 내 고향에는 그 흔한 슈퍼 하나 없었다. 대신 이장님이 가정집 한 편에 생필품을 대량으로 사두고 마을 사람들에게 되팔곤 했다. 버스는 하루에 5번 정해진 시각에만 오갔다. 혹여라도 늦잠자서 첫차를 놓치는 날에는 1시간을 걸어 등교해야 했다.
차를 타고 50여 분 달려야 당도할 수 있는 ‘시내’라고 불리는 곳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도 그곳에는 작은 규모나마 병원과 슈퍼, 음식점 등이 자리하고 있었다. 어머니를 따라 장이라도 보러 가는 날에는 신세계를 경험한 것처럼 길거리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미지는 이해를 돕기 위한 것으로 실제 내용과 무관합니다)

▲ 나는 농어촌 소도시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 이미지는 이해를 돕기 위한 것으로 실제 내용과 무관합니다

불편은 당연한 것?

고등학교 입학 후 얼마 되지 않았을 즈음 아버지가 암으로 쓰러지셨다. 아버지는 한 달에 한 번씩 항암 치료를 위해 서울에 있는 병원을 찾았다. 치료가 끝난 후에도 추적 관찰을 위해 정기적으로 병원에 가야 했다. 병원에 가는 날에 아버지는 다른 일정을 일절 잡지 않았다. 이동에만 왕복 다섯 시간, 대기와 진료시간까지 합치면 일곱 시간이 넘게 걸리다 보니 하루를 꼬박 반납해야 했기 때문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보호자 역할로 아버지 따라 병원에 가는 날에는 다른 약속을 잡을 수 없었다. 평생을 시골에서만 자라 처음으로 서울 땅을 밟게 됐지만, 그곳이 어떤 세계인지 살필 겨를 없이 병원만 찍고 집에 돌아가기 바빴다. 우리 부녀의 하루는 돌아볼 여유 없이 그 어느 때보다 잽싸게 지나갔다.
대학에 진학하면서 대도시로 ‘유학’을 가게 됐다. 고향에는 4년제는 물론 2, 3년제 대학도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처음으로 부모님 곁을 떠나 자취라는 것을 하게 됐다. 대도시에서 나고 자란 친구들보다 생활비가 배로 들었다. 부모님 부담을 덜어드리겠다는 생각에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했다. 고달픈 생활이 이어졌지만 ‘유학’ 온 입장이니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부모님 부담을 덜어드려야겠다는 생각에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했다(이미지는 이해를 돕기 위한 것으로 실제 내용과 무관합니다)

▲ 부모님 부담을 덜어드려야겠다는 생각에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했다 / 이미지는 이해를 돕기 위한 것으로 실제 내용과 무관합니다

아니, 당연하지 않았다

그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 의심을 품게 된 것은 친구가 아프면서부터다.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의 병원에서 이상 징후 소견을 들은 친구는 그다음 날 대학병원에서 검사를 했고 한 주 뒤부터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수업이 끝나면 친구는 병원으로 향했다. 진료 후에는 영화 한 편을 보고 애인과 데이트도 했다. 밤늦은 시간에는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며 책을 읽는다고도 했다.
친구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하루를 꼬박 반납하면서 아버지와 서울 병원을 오갔을 때가 떠올랐다. 미묘한 이질감과 박탈감이 몰려왔다. 돌이켜보니 병원뿐만이 아니었다. 수능시험을 본 후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을 보겠다고 서울에 갔던 때를 떠올렸다. 공연 관람비는 2만 원이었지만 왕복 교통비는 4만 원에 달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셈. 하지만 서울에서는 왕복 2천 원이면 공연장과 집을 오갈 수 있다 했다. 내 고향에는 대학이 하나도 없다. 하지만 서울에는 4년제만 해도 60여 개에 달한다.
아! 이상해도 너무 이상하다.
그렇다. 내가 당연하다고 여기던 것들은 당연한 게 아니었고, 어쩔 수 없다고 여기던 것들은 그냥 받아들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교육, 의료, 문화, 일자리 등 내 삶의 궤적과 직결된 모든 것이 대도시, 특히 서울에 집중돼 있었다. 그렇다보니 지역에서 나고 자란 내 생활은 철저히 대도시에 종속될 수밖에 없었다. ‘지방은 식민지다, ’서울공화국‘이라는 말은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 서울러(서울사람)과 지방러(지방사람)의 차이 / 트위터 갈무리

▲ 서울러(서울사람)과 지방러(지방사람)의 차이 / 트위터 갈무리

식민지의 삶은 ‘여전히’ 유효

지금 내 일터는 서울에 있다. 생활터전 역시 서울이다. 부모님은 대도시에서 일하는 자식을 자랑스러워 하시지만, 화려한 싱글은 영화에서나 가능할 뿐 1인 가구의 삶이 녹록할 리 없다. 언제라도 고향에 내려가 부모님과 함께 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가서도 일자리를 찾는 게 쉽지 않아 망설이고 있다.
이제는 병원에 가기 위해 하루를 꼬박 쓰지 않는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왕복 3천 원의 교통비로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을 보러 갈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끝일까? 지금 이 순간에도 어떤 이는 내가 과거에 경험했던 것들을 그대로 겪고 있을 것이다. 주체와 대상만 바뀔 뿐 현상은 그대로다. 근본적인 것이 바뀌지 않는 이상 식민지의 삶은 유효하다.
그간 지역 격차를 줄이기 위한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 문제는 역대 정권의 빠지지 않는 공약과 과제였다. 하지만 성과는 늘 미약했다. 문재인 정부 역시 지방분권을 핵심 국정과제로 제시했다. 헌법 개정안에 이를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대도시에서 나고 자란 대부분의 친구는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이 사안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지방자치가 시행된 지 몇 년이 되었고, 국세와 지방세 비율이 8대 2라서 뜯어고쳐야 한다는 말은 나에게도 어려운 내용이다. 하지만 지방분권, 즉 분산이 필요하다는 것은 저런 설명 없이도 잘 알 것 같다. 어린 시절부터 겪어 온 지역 간 격차가 체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신년사에서 '지방분권과 자치를 강화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청와대 홈페이지 갈무리)

▲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신년사에서 ‘지방분권과 자치를 강화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 청와대 홈페이지 갈무리

‘서울’이 아니라 ‘지역’에 집중

민선 5기 이후, 많은 지방자치단체에서 분권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지역의 사정을 가장 잘 아는 곳이 지방정부이다보니, 현안에 따라 기민한 대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 성과도 있었다. 포켓몬고 게임이 속초, 고성, 양양 등지에서만 가능하던 때에, 속초시는 이를 마케팅에 적극 활용해 지역경제 활성화를 꾀했고 해외에 ‘속초’라는 지역을 널리 알렸다. 전주시는 ‘한옥마을’이라는 자산을 근처 남부시장과 엮어 전통시장 살리기에 성공했다. 모두 ‘서울’이 아니라 ‘지역’에 집중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당장 많은 것을 바꾸거나 격차를 한순간에 줄일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서울과 중앙에 몰려있는 것들을 분산하려 계속 노력하다 보면 조금씩 나아지지 않을까. 그 출발이 지방분권이 되길 바란다. 이번에는 부디 용두사미로 끝나지 않기를. 내 고향이 더는 식민지라는 단어와 엮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덧붙임.
오해의 소지가 있는데, 나는 농어촌에서 나고 자란 것을 누구보다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곳에서 얻은 소중한 추억은 내 삶을 지탱하는 큰 힘이 되고 있다.

지역 간 격차는 한국 사회의 고질적 문제 중 하나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1960년대에 한국에서 미국 외교관으로 활동한 그레고리 헨더슨은 “파리가 곧 프랑스이듯이, 서울이 곧 한국이다”라며 모든 것이 중앙에 집중된 한국의 현실을 꼬집기도 했지요.

희망제작소는 2006년 창립 이래, 지역 문제에 꾸준히 천착해 왔습니다. 지역은 우리 삶의 자양분이고 국가의 중심이며, 지역이 살아야 모두가 행복해진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에 지역과 중앙의 균등한 발전을 도모하고 지방자치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한 활동을 꾸준히 진행했습니다.

* 대표 활동
– 목민관클럽 : 지방자치 혁신을 고민하는 지방자치단체장들의 연구모임입니다. 정기포럼과 소식지 발간 등으로 서로의 경험과 노하우를 공유하고 있으며, 희망제작소가 사무국을 맡고 있습니다. (자세히 보기)
– 협치 아카데미 : 지역의 정책을 기획하고 만드는 데 주민과 행정이 함께할 수 있도록 다양한 협치 아카데미와 프로그램을 운영했습니다. 이를 통해 지역의 지속가능성을 도모했습니다. (사례 보기)
– 지방분권 매니페스토 운동 : 2016년 20대 총선을 앞두고 지방분권을 위한 7대 과제 실천서약(매니페스토) 운동을 펼쳤습니다. 약 120여 명의 여야 후보가 서명하였습니다. (자세히 보기)
– 주민참여예산교육 : 2011년 지방재정법 개정으로 주민참여예산제도가 의무화되었습니다. 희망제작소는 주민이 더욱 쉽게 제도를 이해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매해 각 지역 특성에 맞춘 주민참여예산학교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사례 보기)
– 지역리더교육 : 통·반장, 자치위원 등을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했습니다. 이를 통해 지역의 문제를 스스로 고민하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주민을 지원했습니다.
– 목민관학교 : 지역을 새롭게 변화시키려는 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 교육감과 교육의원 출마 희망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아카데미입니다. 2008년부터 총 7기에 걸쳐 프로그램을 운영하였고, 약 170여 명의 역량 있는 지역사회리더를 발굴, 양성하였습니다. (사례 보기)

* 이 글에 등장하는 인물, 설정 등은 실제와 무관하며, 현실에 기초하여 창조되었음을 밝힙니다.

– 글 : 최은영 | 커뮤니케이션센터 선임연구원 · [email protected]

월, 2018/01/15-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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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취업포털사이트 조사에 따르면, 성인남녀 중 절반 이상인 51%가 ‘명절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취업포털 ‘사람인’ 성인남녀 966명 대상 조사 / 2017년) 이번 설에는 ‘배려’의 말과 행동으로 서로의 ‘힘’을 북돋아주는 것은 어떨까요? 황금개띠의 해, 무술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월, 2018/02/12-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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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희망제작소입니다.
공개채용 서류전형 합격자를 다음과 같이 공지합니다.

이번 채용에 많은 분들이 지원해주셨습니다.
아쉽게 함께하지 못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관심을 갖고 지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좋은 일이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 서류 합격자 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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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면접 장소 : 희망제작소(오시는 길)

● 면접 일정
– 12/21(목)

※ 합격자에게는 메일로 세부일정 및 과제를 보내드리니, 확인 부탁드립니다.

※ 문의 : 커뮤니케이션센터 박정호 연구원 (02-2031-2192)

월, 2017/12/18-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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