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 포기할래? 바꿔볼래!”라는 다소 도전적인 주제로 시작한 KYC 체인지리더 6기.
한 달여에 걸친 기본교육 후 2월 말부터 총선을 코앞에 둔 4월 9일까지 “청년이 투표하는 이유”라는 제목으로 청년 정책을 평가해보고, 내가 투표하는 이유를 찾아보는 모임을 진행했습니다.
현재 정부에서 시행하고 있는 대표적인 청년 일자리 사업인 청년인턴제와 취업성공패키지, 취업 성과만을 염두에 둔 학과 통폐합으로 논란을 빚고 있는 대학 프라임사업, 사회안전망에 대한 시사점을 주는 서울시 청년수당, 청년희망아카데미 확대, 일자리 72만개 창출, 공공임대주택 공급 등 총선을 앞두고 각 정당이 내건 분야별 청년 공약들, 청년 창업, 최저임금 문제까지
성북동에서, 사당에서, 신촌에서, 동대문에서, 종로에서, 포항에서..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는 진행되었습니다.
12개의 모임에서 정책 평가를 할 때 주로 나왔던 이야기들은 청년 일자리 문제와 생활에 밀접한 문제들이었는데요,
청년들이 중소기업에 가지 않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지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것만이 아니라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격차를 좁혀야 하지 않을까, 흙수저에서 벗어날 수 없는 청년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최저임금을 올려야 한다, 청년 문제를 너무 일자리 문제로만 국한해서 바라보는 것이 아닌가 하는 평가도 있었습니다. 또한 각 정당의 공약과 관련해서는 총선을 앞두고 생색내기용 공약은 아닌지, 구체적인 방법이 결여되어 있는 상태에서 과연 추진할 의지가 있는지 의심된다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모임에 참가한 청년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는 12번의 이야기를 통해 모은 ‘내가 투표하는 이유’를 통해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칼퇴근을 위해, 여유로운 삶을 위해,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위해 최저임금 인상을 위해, 교통비, 주거비, 등록금 인하를 위해 정당한 권리와 대가 보장을 위해, 선택의 자유, 말할 수 있는 자유를 위해 삶의 질 향상을 위해 투표하겠다는 청년들.
혹자는 청년 일자리 문제를 일자리 개수만 늘려주면 해결되는 문제로 바라보고, 청년들이 ‘용돈’을 요구한다고 하지만 모임에 참가한 청년들이 원하는 것은 단순한 일자리가 아니라 ‘최소한의 여유로움과 개인적인 자유를 가질 수 있는’ 일자리, 용돈이 아니라 ‘사람다운 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권리 보장’이었습니다.
“청년이 투표하는 이유”는 청년만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청년 정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어쩔 수 없이 우리 사회 전반에 관한 문제로 이어집니다. 최저임금 문제를 다루면서 자영업자들을 간과할 수 없고, 우리 사회가 노동의 가치를 다시 평가해야 한다는 이야기로 나아갑니다. 청년 일자리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비정상적인 격차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학 문제는 우리나라 교육 전반의 문제, 능력주의 그리고 기업화에 대한 문제로 연결되고, 청년 주거문제는 국민연금 활용에 대한 논의를 통해 전 세대를 아우르는 문제가 됩니다.
매회 테이블토크에서 지적된 사항은, 청년 문제가 청년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전 세대부터 누적되어온 우리 사회 전반에 관한 문제이며 우리 사회 구조를 변화시켜야 하는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차례의 테이블토크를 통해 청년이 말해온 바람들, 원하는 변화들은 당장 이번 총선에 이루어질 수는 없을 것입니다. 모임에 온 청년들도 당장 투표 한번으로 바로 더 나은 세상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았습니다.
또한 선거를 앞두고 청년을 위한다는 공약을 내세우면서도 정작 정책의 내용은 청년의 삶과 동떨어져 있거나 선거 과정에서는 청년을 그저 들러리로 내세우고, 폄하하는 기존 정당들의 행태를 마주할 때처럼 씁쓸해지거나 어안이 벙벙해지는 순간들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번 총선에서 투표를 하고, 변화를 말하는 이유를 테이블토크에 참가한 한 청년의 말을 통해 상기하고자 합니다.
“‘빨리빨리’, ‘성장’의 시대는 지났다. 지금은 뒤를 돌아보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동행할 수 있을지 청년들과 다른 세대가 함께, 권위가 아니라 대화를 통해 해답을 찾아가야 할 때이다.”
우리 사회는 더 이상 성장이 능사가 아닌 상황을 앞에 두고 권위주의와 과거로 돌아갈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실험을 해볼 것인지의 기로에 서 있고, 그 중심에는 집약된 우리 사회의 문제에 맞닥뜨린 ‘청년’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우리는 변화를 선택하려 합니다.
체인지리더 6기 활동은 4월 16일 활동 수료식을 끝으로 모두 마무리됩니다. 6기 활동은 끝나지만 이후에도 ‘헬조선’을 바꾸기 위한 노력은 계속될 예정입니다.
KYC는 체인지리더와 더불어, 총선 과정에서 목소리를 내기 위한 활동으로 2016 총선청년네트워크에도 함께해왔습니다. 20여개 단체가 함께한 2016 총선청년네트워크 활동을 몇 차례에 걸쳐 소개해 드린 적이 있는데요, “우리는 변화에 투표할 것입니다”라는 슬로건을 내건 총선청년네트워크는 청년을 위한 12가지 우선 정책(다시보기- 클릭)을 선정하고 각 정당에 이를 질의한 결과를 토대로 토론회를 개최하기도 하고, 4월 2일 신촌에서 플래시몹을 통해 투표를 독려하는 "VOTEr DAY" 행사를 열기도 했습니다. (플래시몹 보러가기 - 아래 이미지 클릭)
또한 1,000여개의 시민단체가 모인 총선시민네트워크에서는 “위기에 처한 민주주의, 민생, 평화를 위해 행동”할 것이라는 기자회견을 연 바 있으며, 낙선 리스트를 선정하고, “3분 총선” 사이트(http://vote0413.net/, 아래 이미지 클릭)를 통해 각 지역구 후보자 정보를 제공해서 유권자들의 선택을 돕고 있습니다. 투표장에 가기 전, “3분 총선”을 통해 우리 지역구 후보자가 어떤 사람인지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소개해드린 활동은 모두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총선 투표일을 앞둔 지금, 체인지리더 6기와 2016 총선청년네트워크가 지금까지 물어온 것을 다시 한 번 질문 드립니다. 4월 13일 제20대 총선, 무엇을 위해 투표하시나요?
언론들은 평화로운 시위를 칭찬했고, 이제 한국은 민주주의 모범국가가 됐다고 추켜세우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고, 그의 절친 최순실이 철창에 갇혔다고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이제 새로운 도전이 남아 있습니다.
반동으로 끝난 시민혁명들
1960년 4월 26일에도 한국에서 어떤 대통령이 사임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학생들과 시민들의 요구에 밀려 사임했을 때, 학생들은 환호했고, 새로운 민주정부가 들어설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학생들은 정세에 어두웠고, 앞으로 어떤 정부를 세우고, 어떤 정책을 추진할지에 대한 분명한 계획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승만 사임 이후의 권력공백기를 틈타 누군가가 권력 찬탈을 노린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장면 정부는 분명한 비전이 없었고, 위험한 정치게임에만 몰두했습니다. 그 결과는 잘 알고 있을 겁니다.
박정희라는 영리한 젊은 장군이 군대 내 불만세력을 규합해 1961년 5월 16일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그 후 수 십년 동안 한국의 민주주의는 질식당했습니다.
한국의 현대사는 시민혁명의 열광이 잦아들 쯤, 항상 반동이 찾아왔다. 이런 과오를 다시는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 왼쪽 사진부터 1961년 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 1979년 정치적 혼란을 틈타 집권에 성공한 신군부의 전두환, 그리고 1987년 야권의 분열을 틈타 합법적으로 독재권력을 연장한 노태우.
혹은 1980년 서울의 봄을 떠올려 보십시오. 3김의 정치적 분열은 결국 전두환 장군의 야만적 통치로 귀결됐습니다.
1987년에도 3김은 분열했고, 결국 노태우 장군이 집권했습니다. 한국 현대사를 잠시만 들여다보면, 시민들의 수많은 민주화 투쟁이 정치인의 분열, 그리고 정치적 기회주의자의 득세로 실패하곤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물론 한국은 그후로 꾸준히 발전했습니다. 그렇다고 더 이상 과거처럼 실수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순진한 생각입니다. 박근혜를 몰아내는 것이 결코 최후의 목표가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정경유착 해체를 위한 첫걸음일 뿐입니다.
한국이 처한 상황
한국경제는 무역에 크게 의존하며, 식량과 에너지를 수입합니다. 올해에는 심각한 경기침체가 예상됩니다. 언론은 애써 감추고 있지만, 이미 해운업, 조선업, 그리고 철강업이 붕괴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하는 일이라곤 근근히 버티는 산업에 국민의 혈세를 뿌려 겨우 유지하는 정도입니다. 그건 결국 실패하고 말 것입니다.
한국은 사드배치에 대한 보복으로 경제교류를 빠르게 줄이려는 중국, 그리고 관세 등 보호무역주의를 추구하는 미국의 트럼프정부 사이에 끼여 있습니다. 부모세대가 믿어 의심치 않았던 완전자유무역체제는 붕괴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더군다나 트럼프정부는 한국에 보수정권을 세우기 위해 혈안이 돼 있을지도 모릅니다.
트럼프 주위에는 중국의 군사적 위협을 강조하는 매파가 가득합니다. 신임 국방장관 제임스 마티스는 중국을 미국의 직접적 위협으로 간주하고, ≪중국에 의한 죽음(Death by China)≫이라는 논쟁적인 책을 쓴 무역보좌관 피터 나바로는 미국이 겪는 모든 어려움을 중국의 불공정무역 탓으로 돌립니다.
어쩌면 여러분은 박근혜 대통령이 물러나면 사드계획도 철회될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에 맞서 한국을 미일 동맹으로 묶으려고 갖은 수를 다 쓰고 있습니다.
사드는 드론, 헬리콥터 등 한국이 구매하는 미국 무기 세트의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한국은 2014년 78억 달러의 미국 무기를 산 최대 고객이었습니다. 미국 경제가 어려워질수록 한국에 대한 무기 구매 압력은 더욱 커질 것입니다.
한국 청년들의 처지
한국의 학생들은 진정으로 자기 나라의 발전에 관심이 많지만, 사실 잘못된 교육시스템이 그들을 망치고 있습니다. 인문학은 고등학교와 대학의 커리큘럼에서 사라졌고, 많은 젊은이들이 지루함을 참아가며 경영, 경제, 회계학 수업을 듣습니다.
아무리 삼성그룹이 경영 전공자를 찾더라도, 만약 여러분이 좋은 정부와 건강한 사회를 갖고 싶다면, 정치철학, 역사, 문학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특히 인문학은 지금과 같은 정치적 혼란을 극복하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어떻게 권력을 견제하고, 책임있는 시민성을 만들며, 독재의 위험을 피할 수 있을지 알고 싶다면, 플라톤과 공자, 베버와 맑스를 읽으십시오. 또 그들을 읽는 방법도 배워야 합니다.
지금 듣고 있는 경영학 수업은 지금과 같은 정치적 위기를 극복하는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어쩌면 부모세대들, 그러니까 1960년, 1979년, 1987년의 시민항쟁에 참여했던 그 세대들은 지금의 젊은세대보다 철학과 윤리학,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전략에 더 밝았습니다.
혹시 이번 촛불집회 이후에 함께 모여 정치개혁과 정부의 본질 등에 대해 토론해본 적이 있나요? 한국의 민주주의가 어디로 가야 하고, 어떻게 국민을 섬기는 정부를 만들지 밤늦도록 토론한 적 있나요?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 또는 홉스의 ≪리바이던≫을 읽으면서 책에다 빼곡이 메모를 한 적이 있나요?
만약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꼭 그렇게 하십시오. 다시 한 번 정치인에게 속지 않으려면 젊은이들이 정치와 정부, 공공정책의 원리를 제대로 확실히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촛불시민은 위대하다고 부추기는 언론의 감언이설을 조심하십시오.
오마이뉴스나 프레시안 같은 언론도 상당히 상업화되면서 날카로움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기사는 심층 분석보다는 호기심을 자극하는데 더 몰두합니다. 그래야 수입이 생기니까요.
그러나 호기심만 자극할 뿐 세상이 진짜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말하지 않습니다.
대중매체와 전자 콘텐츠, 그리고 SNS는 정부의 무능과 부패를 감시할 기회를 줬습니다. 그렇지만 이들 매체는 한국사회를 병들게 하는 부패에 눈을 감고 있습니다. 이들 매체는 24시간 내내 최순실 사태를 보도함으로써 정작 한국을 위태롭게 하는 경제적, 사회적, 환경적, 외교적 도전에 대해 알지 못하게 합니다.
보수매체든, 진보매체든 의회를 통과한 법안, 정부지원금을 받고 법을 집행하는 기관에 대해서는 거의 보도하지 않습니다. 언론이 정책에 대해 말해주지 않으니, 우리도 알 길이 없는 것입니다.
예컨대 이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이들이 갈취한 금액은 이명박정부에서 4대강사업에 쏟아부은 21조 원 또는 자원외교에 낭비된 수 십조원에 비하면 적은 편입니다. 그런데도 이명박 대통령은 멀쩡하고,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됐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명박의 경우 정부 관련 기관을 중간에 끼고 정책결정을 했기 때문에 대통령 개인의 비리가 감춰졌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이 새누리를 보수정당, 민주당과 정의당을 진보정당으로 착각합니다만, 정치인이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서는 안 됩니다.
기후변화, 또 다른 위협
혹시 촛불집회를 할 때, 바깥 공기가 매우 나쁘다는 것을 눈치챘나요?
박근혜정부는 대기 관련 규제를 없애고, 공장 감독관을 축소했습니다. 그 공장들은 앞으로 20년 동안 암과 수많은 질병을 야기할 미세먼지를 배출하는 곳입니다. 지금 우리들은 헌법 10조에 규정된 ‘행복추구권’을 박탈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이미지는 이 글의 저자가 직접 디자인 한 것입니다.
한국의 스모그가 매일 중국에서 건너온 오염물질과 결합됩니다. 지금은 중국의 오염이 한국보다 심하지만, 중국은 향후 10년 동안 태양광과 풍력 발전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OECD국가 중 재생에너지 사용비율이 가장 낮고, 오히려 화석연료 사용이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그러나 이번 촛불집회에서 이 문제는 20번째 의제에도 들지 못했습니다. 유일한 의제는 박근혜 탄핵이었습니다. 마음 속에 갖고 있는 의제가 20개는 되는지 궁금합니다.
지난해 12월 얼마나 이례적으로 따뜻했는지 아십니까? 물론 여러분의 어머니가 아침 출근 때마다 매우 추우니 꼭 껴입으라고 말해주곤 했겠지만, 그것은 진실이 아닙니다.
진짜 진실은 서울이 지난해 12월처럼 따뜻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왜 그럴까요? 수많은 과학자들이 화석연료, 환경파괴로 인한 생태지옥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를 복구하려면 천 년이 걸릴지도 모릅니다.
기후변화는 한국을 사막으로 만들 것입니다. 벌써 중국 베이징은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고, 북한의 땅도 황폐해지고 있습니다. 가까운 미래에 해수면 상승은 부산과 인천을 삼켜버릴지도 모릅니다.
정치인이 이런 진실을 말하지 않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여러분까지 이에 대해 눈감는 것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외에도 수많은 의제가 있을 것입니다. 예컨대 기술문명에 대한 과도한 의존, 초경쟁문화에 따른 가족과 공동체의 붕괴 등 우리가 당면한 문제는 차고 넘칩니다.
손 잡고, 행동하라!
여러분들에겐 한국과 세계를 바꿀 힘이 있습니다. 우리의 운명은 여러분들에게 달려 있습니다. 하지만 위에서 말한 문제들은 단순히 촛불집회를 하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수 십 년의 싸움이 필요할지 모릅니다. 그러니 일단 호흡을 고르십시오.
우선 고등학교 시절부터 체화된 과도한 경쟁에서 벗어나십시오. 동료와 힘을 모아 서로 돕는 따뜻한 공동체를 만들어야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유연하게 생각하십시오.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십시오. 부모의 시선, 대중매체의 시선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산업화와 소비주의의 낡은 이데올로기에서도 벗어나야 합니다.
기존의 시스템은 실패했습니다. 스스로 학습해야 합니다. 설사 진보적이라고 평가되는 정치인의 말이라고 하더라도 의심해 보시기 바랍니다. 정치인의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그들을 판단하십시오. 특정 경제시스템을 절대선 또는 절대악이라고, 또는 어떤 나라를 영원한 적 또는 동지라고 제단하지 마십시오.
규칙을 지키고, 열심히 공부하면 좋은 직장을 얻고 잘 살게 될 것이라는 부모의 말을 거부하십시오. 그것은 다 거짓말입니다.
경쟁에서 이겨라! 이것이 지난 세대의 모토였다. 그 결과 공동체가 무너졌고, 개인의 삶은 위협받고 있다. 개인이 살기 위해서라도 공동체와 그를 위한 시민의 덕성이 살아나야 한다. (사진 출처: 동아일보)
설사 당신이 아직 선거권이 없더라도 당신의 행동으로 이 사회를 바꿀 수 있습니다. 이 나라를 바꿀 사람은 바로 여러분입니다.
당신이 무엇인가를 요구하지 않는데, 대통령이나 재벌회장님이 당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결정할 가능성은 제로입니다. 젊은이에게 투자하는 것이 한국을 발전시키는 길임을 적극적으로 설득하십시오.
권위 또는 권위있는 인물에 기대지 마십시오. 그런 권위가 없더라도 당신이 바꿀 수 있습니다.
정치인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지 마십시오. 그들은 자신의 권력을 당신을 돕는데 쓰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당신을 돕는 것이 자신의 권력 유지에 도움이 된다면, 즉시 발벗고 나설 것입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정치인이 아니라, 우리 자신입니다.
“사람들은 리더가 아니라, 기적을 일으킬 메시아를 원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투표장에서 우리의 문제를 일거에 해결해 줄 초인을 뽑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초인은 절대, 어떤 경우에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대신 밤낮으로 여러분이 뽑은 정치인들을 관찰하고 감시해 보십시오. 그러면 작은 변화가 생길 것입니다.
당신을 이끌 리더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거울을 보십시오. 거기에 당신이 찾던 사람이 있을 겁니다.
열정적인 풀뿌리운동이 정치인을 움직이고, 세상을 진보시킵니다. “차분하게, 조직하라(don’t get mad; organize!)” 이 말처럼 한국 젊은이에게 필요한 말도 없을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촛불집회는 과거와는 달랐습니다. 여전히 변화를 위한 시간이 남아 있습니다.
앞으로 어떤 사회를 만들지 장기적인 관점에서 고민하십시오. 여러분의 부모세대들은 더 이상 정치에 관심을 갖지 않고, 안주하다가 실패했습니다. 그들은 한국이 이미 선진국이 됐다고 착각합니다. .
여러분은 리무진 뒷자석에 몸을 기댄 정치인이나 재벌회장님과 달라야 합니다. 변화의 주인공이 되십시오. 용기를 가지십시오. 상상하고, 확신하십시오.
지난 5월 30일(토)~31일(일) 도성길라잡이가 정기답사를 다녀왔습니다. 매년 다섯번째주가 있는 달을 정해 1박2일로 다녀옵니다.
강화산성 일주와 고려산부터 해서 해미읍성과 개심사, 수원화성과 남한산성, 공주일대와 공산성 그리고 마곡사
도성길라잡이로서 역량강화도 하고, 또 멤버쉽도 돈독히 하는 도성길라잡이 정기답사!!
올해는 작년에 이어 백제역사와 문화의 상징인 부여를 다녀왔습니다.
4월에 사전답사를 다녀오고 그 다음날 뉴스에 백제문화권 (공주,부여,익산) 세계문화유산등재 확실이라는 기사를 읽고선, 아~ 도성길라잡이와 세계문화유산과는 밀접한 관계가 있구나하면서 2017년 서울 한양도성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겠다는 알 수 없는 자신감도 생겼습니다.
마지막 백제의 흥망성쇠를 함께한 부여의 역사와 문화가 어떤 점에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는지 그 근거도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부여국립문화재연구소에 계시는 양숙자 학예사님을 모시고, 부여를 샅샅히 살펴보았습니다.
첫 장소는 국립부여박물관. 백제문화의 이동경로를 알수 있는 전시물들. 혼자가면 몰라서 그냥 지나치던 청동검과 아름답기는 하지만, 그저 기와일뿐인 백제유물이 학예사님의 설명을 들으니, 생생한 백제의 역사가 되고, 살아있는 유물이 되었습니다.
부여박물관의 감동은 역시 백제대향로입니다. 국사책에서 배운 세대와 못배운 세대로 나눌 만큼 최근에 발굴된 대향로 ! 보는 순간 절로 감탄이 나옵니다. 그리고 바로 박물관 바로 가까이에 있는 발굴지로 가서 기초석만 있는 모습만으로도 당시의 건축물을 상상해보았습니다. 이동하면서 보니, 파란천막이 씌여있는 곳들이 많았는데, 전부 발굴하는 현장이라고 합니다.
점심으로 연잎밥을 먹고 나니, 떨어진 당이 재충전되었습니다. 좋은 기분 갖고 능산리 고분군으로 갔습니다. 백제 금동대향로가 나왔던 곳이기도 하고, 부소산성의 외곽성인 나성이 연결되어 있는 능산리 고분군으로 이동하였습니다. 고분군에 대한 설명도 이어집니다. 원래 백제의 무덤은 사진으로 보는것처럼 봉분이 저렇게 거대하지 않다며, 이는 복원하면서 보기좋게 신라의 형태를 따라하게 된 모습이라는 것과 백제의 무덤형식때문에 많은 도굴을 당하게 되었다는것과 함께 능을 지키는 능사의 모습 그리고 신분에 따른 무덤의 위치등등... 박물관에서 들을수 없는 현장감넘치는 백제의 문화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아..이런 지난번 사전답사 때 정림사지는 시간과 동선때문에 이번 답사에는 넣지 않았던 장소인데, 선생님의 말씀에 의하면, 백제의 생활문화를 엿볼수 있고, 백제의 석탑 2기중 하나가 바로 이 정림사 5층석탑이라는 말씀에, 바로 정림사로 향했습니다.
설명을 듣고 보니, 예사 석탑으로 안보입니다. 좀더 꼼꼼하게 보게 되고, 보다보니, 계측장치들도 눈에 보입니다. 한양도성에 요즘 많이 붙여있는 것과 비슷합니다.
눈이 오거나 해가 질 무렵에 오면 더 멋지다고 하는데, 다음에 기회되면 다시 한번 찾고 싶은 공간이었습니다. 특히나 기와로 만들어진 기단이 눈에 띄었습니다. 한가지 아쉬운것은 석불좌상을 모셔놓은 그 시멘트 덧집이라는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1970년대에 복원된 한양도성의 모습도 생각나고 그랬습니다.
오후 일정의 백미 부소산성으로 갑니다. 백제의 마지막을 함께 했던 장소이고, 도성길라잡이들에겐 포곡식 산성과 테뫼식산성을 만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사비백제의 주거형태와 한성백제의 주거형태를 비교해보고, 판축기술에 대한 강의도 듣고, 현재의 부소산성의 형태가 일제강점기때 이루어진 형태, 일본인들도 자신들 문화의 뿌리가 백제임을 인식하였고, 이 자리에 신궁을 지으려고 했던 사실도 놀랍습니다. 한양도성도 일제강점기때 많은 부분이 훼손되었는데 말이죠.
산성을 돌아 삼천궁녀의 전설이 내려오는 낙화암에도 가보고, 고란사에 가서 젊어지는 약수도 마시고, 산성에 있는 루에 올라 부여일대도 조망해보면서, 부소산성 일주라고 큰마음 먹고 왔는데, 생각보다 여유있게 걸어볼 수 있었습니다.
부소산성이 끝나는 지점에서 만난 관북리 유적. 부소산이 후원으로도 사용되었으니, 당연히 그 앞에는 왕궁이 자리했을 터, 왕국의 기단석과 흔적들, 그리고 당시의 주작대로로 추정되는 공간배치 등등. 기단석 하나에서 당시의 왕궁의 규모를 상상하고, 거리의 흔적에서 당시의 공간배치를 상상해 보았습니다.
저녁식사하는 장소에서 계속 전화가 옵니다. 도대체 언제 도착하느냐고...음식 다 식는다며 재촉전화를 3통 정도 받은 후에 끝난 첫날의 답사. 끊이지 않는 질문은 잠시 후 특강시간에 하기로 하고 해지는 백마강을 뒤로 하고 식사장소로 이동했습니다.
저녁은 매년 늘 그렇듯 간단하게 산채 비빔밥을 먹고, 이어진 양숙자 선생님의 [우리가 만들어가는 백제왕도] 특강이 이어집니다. 백제문화권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는 과정에 부여의 유산에 대한 강의와 질의응답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교류의 시간~!! 답사에 대한 소감도 듣고, 또 빠질수 없는 바베큐 파티 본 파티를 위해 마장동에서 30년동안 고기장사만 하신 조사장님께 직접 구매한 우주 최고의 육즙을 간직한 돼지목살을 참나무에 구워 먹는...햐~~생각만해도 군침 돕니다. 거기에 재간둥이 최원명 선생님이 만들어주신 웃음 넘쳐나는 퀴즈와 이야기 시간 맛있는 음식과 좋은 사람들이 서로의 마음의 열고,오늘의 이 시간을 좋은 추억으로 만들어가는 시간입니다.
둘째날은 조금 여유있는 일정입니다. 아침에는 상콤하게 요가와 접시돌리기로 몸도 풀어주고 궁남지로 갑니다. 선화공주와 호동왕자의 전설이 전해지는 궁남지에 가서 연꽃을 보며 우주만물을 찾아봅니다. 그리고 셀카봉 들고 추억만들기도 해보았습니다.
한결 첫날보다는 여유있는 표정들입니다. 그리고 들뜬 마음도 진정시킬겸 무량사도 이동하였습니다. 백제가람의 특징인 일탑일당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사찰이고, 매월당 김시습의 부도와 영정을 직접 확인해보면서 각자 갖고 있는 지식을 서로 나누어주는, 참여와 나눔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무량사를 마치고 유홍준교수가 늘 이곳에 오면 방문한다는 삼호식당에서 산네들네 물씬 풍기는 산채비빔밥으로 점심까지 먹고, 서울로 출발~~
이렇게 1박2일의 도성길라잡이 2015 정기답사는 마무리 되었습니다.
『三國史記삼국사기』의 저자 김부식은
백제 온조왕 15년에 지은 왕궁 건출물에 대한 평으로
儉而不陋 華而不侈(검이불루 화이불치)하여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라 하였습니다.
부여에서 만난 문화유산들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은 백제의 미학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는 가장 기본이 되는 OUV (탁월한 보편성) 아닐까 합니다.
부여를 보면서 높은 건물이 없는 주변경관또한 백제의 문화를 간직할수 있는 중요한 요소이기도 합니다. 부여를 톺아보고 나니 한양도성이 많이 생각났습니다. 한양도성의 관리보존과 도성길라잡이로서의 역할 등등 많은 숙제도 안고 온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도성길라잡이 선생님들의 후기도 잠깐 옮겨봅니다. - 도성길라잡이 7기 유나래 선생님 후기 중 일부
토요일의 알찬 답사 덕분에 2박 3일 처럼 느껴졌던 1박 2일 부여 답사였습니다. 답사의 첫걸음. 부여 톺아보기 에서도 강조한 백제 금동 대향로가 있는 부여 박물관에서 시작했습니다. 항상 보아오던 박물관 초입의 다른 고대 유물과 비슷해 보여 슥 지나칠만도 한데, 선생님의 안내와 같이 걸으니 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능산리 고분에서는 많은 유물이 있는 박물관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습니다. 언제 발굴이 되었고, 지금의 묘가 왜 이러한 크기가 되었는지 능산리 고분에 얽힌 이야기를 듣는데, 한편으로는 수학여행으로 능에 오면 아무 설명 없이 차에서 내려 적당히 보기만 했던 그 때, 이러한 안내가 있었더라면 무덤 있는 넓디 넓은 잔디밭이 아니라 조금 더 다르게 기억했을까 싶었습니다. 정림사지도 부소산성도 유유자적했던 궁남지도 무량사도 다시 볼 기회였다는 말 밖에는 할 말이 없고, 개인적으로 이번 답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마지막 PPT 설명이었습니다. 오늘 걸어왔던 유적을 되새겨 보기도 하고, 가지 못한 다른 백제 유적을 살펴보는데 왜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고,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다고 하는지 자세히 보고 이야기를 들으니 알 것 같았습니다.
이제 한성백제의 흔적도, 웅진백제의 흔적도, 사비백제의 흔적도 다 찾아보았으니 다음에는 익산에 한 번 가봐야지 하며 다음 답사를 생각하게 된 부여 답사였습니다.
-도성길라잡이 7기 박형록 선생님 후기 중 일부 이번 답사는 전문가의 해설과 함께 해서 더 유익하고 즐거웠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을 실감한 답사였습니다. 박물관에서도 설명을 들으면서 보니 정말 문화재들이 새롭게 다가오더군요. 청동거울은 그냥 보면 어떻게 얼굴이 보일까 싶지만 물을 묻히면 얼굴이 잘 보인다고 합니다. 청동검은 짧은 검 가운에 길게 홈이 파여 있는데 이렇게 해야 치명상을 입힐 수 있다고 합니다. 피가 솟구쳐나와 그 홈으로 흘러내린다고 하네요...흐미... 수막새와 암막새 설명도 듣고...보통은 수막새이고 암막새는 여기서만 발견되었다고 했던가요? 그리고 부여를 먹여 살리고 있는 느낌이 드는 금동대향로.. 그리고 백제의 무덤은 산비탈에 많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앞쪽으로만 무덤을 크게 만들면 되니 훨씬 힘이 덜 들었겠지요. 자연환경을 알차게(?) 이용해 수고로움을 던 백제인들의 현명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본 무덤의 크기는 가짜라고 합니다. 실제로 어느 정도의 규모였는지
알 수 없다고 하더군요. 신라의 무덤을 보고 대충 이 정도지 않았을까? 하고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하더군요...일본인들이-.- 그리고 백제 무덤은 문만 열면 들어갈 수 있게 되어 있어서 일본인들이 참 알차게(?) 도굴을 해갔다고 합니다... 소중한 문화재는 다 어디에 있을까요?-_- 그리고 정림사지 5층석탑을 보러 갔을 때 출입구가 바뀌었다고 합니다. 원래는 정문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주차장을 만드는 바람에 옆 문으로 들어가야 했습니다. 이런 일도 생깁니다... 정림사지는 중문, 탑, 금당, 강당이 일직선으로 되어 있습니다. 금당 안에는 은지 쌤 동생과 똑같이 생겼다는 불상이 있습니다. 정림사지박물관도 꽤 볼 만했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거겠죠?^^ 그리고 부소산성... 여기는 옛 유물이 널려 있습니다. 보이는 것은 가져가도 된다고 하시더군요. 아래를 보고 걸어가다 보면 여기 저기서 보인다고. 정말로 여러 선생님들께서 마구마구 발견하셨습니다...그저 신기할 뿐이었지요. 이곳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무척 좋아했다고 합니다. (좋은 것은 알아가지고...-.-) 그런데 이곳에 신사를 지으려고 했다는군요. 그래서 땅을 파서 그 흙은 저 멀리... 그런데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면서 다행스럽게도 신사는 세워지지 않았고 부소산성은 무사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때 파낸 흙이 부소산성 밖으로 나가게 되면서 땅을 이루었고 그 위에 건물이 세워졌기 때문에 어떤 유적지는 꽤 많이 파야 유적지의 흔적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낙화암은 3천 궁녀가 떨어져 죽었다는데 해설자 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보시면 알겠지만 거기에 어떻게 3천 명이 떨어졌겠어요. 아마 나중에 떨어진 궁녀는 다 살았을 거예요. 사람 위로 떨어져서" 그래서! 확인하러 갔습니다....여기에 3천 명이 떨어져 죽기는 힘들겠죠? 그런데 우리 은지 쌤은 말합니다. "3천 명이 떨어져 죽을 수 있지 않을까요?" 흐음...은지 쌤, 그건 아닌 것 같아요-.- 그리고 고란사로 향합니다. 고란사에 있는 물을 마시면 젋어진다나요? 신윤아 선생님이 묻습니다. "선생님은 10년 전으로 돌아가면 뭐하고 싶으세요?" 제가 대답합니다. "제가 왜 10년 전으로 돌아갑니까? 어떻게 지나온 10년인데... 저는 지금이 가장 좋습니다 ㅋㅋㅋㅋㅋ" 이렇게 여기저기 다 보고 내려왔습니다. 내려온 곳이 왕궁터. 학예사 선생님 말씀에 의하면 그런 터로 추정이 된다...이 정도셨습니다. 위치를 보면 과연 그런 것도 같습니다. 앞으로 가면 정림사지가 있고 더 앞으로 가면 궁남지가 있습니다. 일직선으로 쭉 늘어서게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왕궁 터 앞에 건물들이 있는데 분명히 그 건물들 아래에 뭔가가 있을 거라고 합니다.. 제 생각에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건물들은 교회와 모텔이었던 것 같은데(제 기억이 맞는지-_-)...건물 철거가 쉬워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옛 부여박물관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다른 곳으로 쓰이고 있는데 김수근 건축가가 상까지 받은 건물이라고 하는군요.. 그런데 건물 모습이 일본 사무라이가 쓰는 투구(?) 같습니다. 철거해야 하는 게 맞겠죠?? 저녁에는 해설자 선생님의 프레젠이션까지 보고 질문도 이어집니다. 프레젠테이션 하기도 전부터 이것저것 질문을 해댔습니다. 선생님이 많이 피곤하셨을 거예요...-.- 제가 물었습니다. "일본사람들은 한국에서 문화가 전파된 것을 인정하나요?" 선생님이 대답해 주셨습니다. "그럼요...인정합니다. 정치적으로는 뭐 아닐지 모르겠지만 아니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많은 학자들이 이곳에 옵니다." 역시...그렇군요... 그리고 또 묻습니다. "부여 자체가 문화유적지으로 된 것에 대해 주민들의 불만은 없나요?" 선생님이 대답해 주십니다. "당연히 있지요...이것저것 제약이 많으니까요" 이 또한 역시...그렇군요... 그렇게 질의응답까지 마치고 답사도 거의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다음 날은 궁남지로 향했는데 연꽃이 여기저기 보였습니다. 여름이 되면 훨씬 더 많은 꽃들이 필 것이고 그러면 정말 아름다운 장관을 연출하겠지요?^^ 그리고 무량사에서는...아, 어떤 보살님께서 저희를 부르시더니 사과와 수박을 주셨습니다. "보살님, 감사합니다~성불하세요~~~" 그리고 저희는 마지막으로 무량사 앞에서 점심을 먹습니다. 유홍준 교수가 추천했다는 그 맛집! 맛은! 정말 좋았습니다 ㅋㅋㅋ 맛있었어요~ 그곳에서는 표고버섯도토리묵(?)도 있었는데 정말 맛있었어요~이거 사오신 선생님들도 계셨는데 많이 사신 분께는 쥔장이 선물로 막걸리도 주셨다는 ㅋㅋㅋㅋㅋ 쌤들이 여기서 폭풍 쇼핑을 하신 듯이요 ㅋㅋㅋ 우미정 쌤에게 물었습니다 "쌤, 식당 쥔장에게 커미션 얼마나 받으셨어요?ㅋㅋㅋㅋㅋ" -도성길라잡이 7기 신윤아 선생님 후기 일부 -
설레는 마음으로 선생님들과 함께한 부여답사가 벌써 일주일이나 지났네요. 일박이일동안의 즐겁고 행복했던 기억이 날아가기 전에 속닥속닥
남겨봅니다??
1)국립부여박물관과 금동대향로
: 부여에 도착해서 향한 곳은 국립부여박물관이었습니다. 드디어 "금동대향로"의
실물을 마침내 보게되었습니다.
우아하면서 아름다운 백제인의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를 한눈에 보여준 감동적인 문화재였죠.
2)정림사지
오층석탑
:우리가 하마터면 지나칠뻔 한, 유홍준 교수님께서 극찬을 하셨다는 정림사지 오층석탑은
백제의 탑의 아름다움을 보여준 문화재였습니다.
석탑 뒤의 불상집(?)이 NG였지만요.
3)부소산성 일대
:한양도성을 알게 된 후 변화가 있다면 그동안 지나쳤던 우리 주변에
있던 "성"에 관심이 생겼다는거죠.
참여연대 16기 청년공익활동가학교는 2015년 7월 6일(월)부터 8월 6일(목)까지 5주 동안 진행하게 됩니다. 이번 프로그램에는 26명의 10~20대 청년친구들이 함께 참여하는데, 이 5주 동안 우리 청년공익활동가학교 친구들은 인권과 참여민주주의, 청년문제 등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이슈에 대해 공부하고 토론하는 과정을 통해 직접행동을 기획하고 진행함으로써 미래의 청년시민운동가로 커나가게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 후기는 변현지님께서 작성해주셨습니다 :)
* 청년공익활동가학교란?
청년공익활동가학교는 그 동안 방중마다 실시되었던 참여연대 인턴프로그램의 새로운 이름입니다. 청년들의 공익활동을 위한 시민교육과 청년문제 해결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며 공부하는 배움 공동체 학교입니다.
7월 9일 청년공익활동가학교 친구들은 춘천으로 MT를 떠났습니다. 참여연대에서 만나서 차를 타고 오거나, 용산이나 청량리에서 ITX를 타고 오는 등 다들 삼삼오오 짝을 지어 가평역에 도착했습니다. 만난 지 4일째지만 첫 날 느꼈던 어색함은 이제 많이들 사라진 것 같습니다. 더 친해질 기대를 가지고 펜션으로 출발!
도착해서 휴식시간을 조금 가지고 나서 시작된 프로그램은 서로가 더 가까워 질 수 있는 게임들로 구성되었습니다. 먼저 다음날 설거지할 두 명의 사람을 뽑기 위해서, ‘당신은 당신의 이웃을 사랑하십니까?’라고 묻는 게임이었는데, 대답자가 ‘네’하면 양 쪽에 있는 사람과 질문자가 자리를 쟁탈하고, ‘아니오’라고 하면 ‘흰색 양말을 신은 사람들을 사랑합니다’, ‘반바지를 입은 사람들을 사랑합니다’ 등 대답자가 원하는 말을 만들어서 해당사람들이 자리를 서로 바꾸는 간단한 게임입니다. 끝내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사람이 술래가 되고, 세 번 술래가 설거지당번을 하기로 했습니다. 게임을 통해 다들 설거지를 피하고자하는 열정이 느껴졌습니다.
두 번째는 차분히 앉아서 서로의 얼굴을 그려주는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한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다 그리는 것이 아니고 얼굴, 눈, 코, 입 등 부위별로 하나씩 그리고 옆 사람에게 종이를 넘겨주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진지하게 시작되었으나 가면 갈수록 나타나는 형상에 다들 박장대소를 하며 한 획을 추가하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안타까운 얼굴들도 나타나고, 반대로 그렇게 그렸음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실물과 닮아있던 김민주님도 있었습니다.
그 다음 게임으로는 ‘몸으로 말해요’인데 정치, 영화, 노래, 생물 등 각 네 파트로 나눈 주제로 팀별로 진행되었습니다. 특히 정치팀은 ‘살려야한다’,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나서 도와준다’ 등 어떻게 맞추지 싶은 것들을 몸으로 잘 표현하셔서 높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이후 풍선 터뜨리기, OX퀴즈 등의 게임도 하고, 이런 프로그램들을 통해 서로가 더욱 친밀해지게 되었습니다.
몸과 머리를 썼던 게임들로 지쳐있던 친구들에게 맛있는 저녁을 투여하시고 다시 힘을 얻어 저녁프로그램을 시작하였습니다. ‘예스맨 프로젝트’라는 영화는 앞으로 진행할 직접행동의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시청하였는데, 피곤해서 잠들다 코골아서 깨신 이수종님을 비롯하여 여럿친구들이 중간내용을 모르는 건 비밀입니다. 영화시청 후 본격적으로 직접행동을 위한 팀을 나누기에 앞서, 각자 하고 싶은 주제 세 가지를 포스트잇에 써서 비슷한 주제끼리 그룹을 형성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많은 득표율과 내용의 중요성을 고려하여 주거, 대학교, 정치적 무관심, 노동으로 최종 네 팀으로 나누었습니다. 이제 각 팀으로 가서 앞으로 4주 동안 진행에 대해 토론하고, 어떻게 직접행동을 할 것인지 간단히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마침내 모든 프로그램이 끝나고 뒤풀이시간을 가지는 찰나에, 멋있는 주영주님을 시작으로 두 시간동안 신나게 춤과 노래로 피곤함을 해소하였습니다. 끝날 때 까지 계속 노래를 부르려는 혼이 나간 친구들을 멈추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열정 넘치는 친구들이라는 것을 다시 상기시키며 하루를 마쳤습니다. 이번 엠티를 통해 서로 많이 친해졌고 앞으로 남은 4주를 더 재밌게 보낼 수 있는 좋은 기회였음을 느꼈습니다.
군산에 도착해 첫 번째로 방문한 곳은 경암동 철길마을입니다. 제지원료를 역까지 실어나르기 위해 사용된 철길인데요, 회사 근로자들이 철로 바로 옆에 집을 지어 살기 시작하면서 만들어진 마을입니다. 2008년까지는 기차가 운행되었으나 지금은 다니지 않고,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 되었습니다. 이 철로는 일제강점기에 쌀을 군산항까지 실어나르기 위한 수탈의 길로 사용된 내력 또한 가지고 있습니다.
군산 근대역사박물관을 방문해서 군산의 근대를 잠시 훑어보았습니다. 군산에는 이전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는 집들도 많지만, 관광객들을 유치하기 위해 새로 적산가옥으로 개조할 예정인 곳들도 많다고 합니다.
일제강점기 군산의 모습과 더불어 군산에서 일어났던 민족운동, 사회운동을 소개하고 1930년대 거리를 그대로 재현해놓은 듯한 시설을 통해 군산 근대 역사를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이곳에서는 모형으로 수탈하는 모습을 만나볼 수 있었는데요, 부잔교(뜬다리) 또한 수탈의 상징 중 하나입니다. 부잔교는 조수간만의 차로 인해서 큰 배들이 항구에 정박하기 힘들기 때문에 물높이에 따라 조절할 수 있도록 한 다리인데, 이 다리를 통해 쌀이 옮겨져 일본으로 반출되었습니다. 항구 주변에는 굶주린 사람들이 쌓여 있는 쌀을 훔쳐가지 못하도록 보초를 세웠다고 합니다.
밖으로 나가 부잔교의 모습도 직접 확인해볼 수 있었습니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옛 군산세관입니다. 이곳 또한 일제가 쌀을 수탈하던 창구로 이용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1908년부터 1990년대까지 세관으로 사용되었는데, 지금은 전시관으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옛 조선은행 군산지점과 일본 제18은행 군산지점도 돌아보았습니다. 조선은행 군산지점과 18은행은 일제 식민지 지배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금융시설입니다. 쌀 반출 자금과 토지 강매 등 수탈한 자금이 이 은행들에서 관리되었습니다. "이 금고가 채워지기까지 우리 민족은 헐벗고 굶주려야만 했다"는 문구가 이곳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나타내줍니다.
다음으로 임피역에 도착했습니다. 일제는 호남 평야의 쌀을 운반하기 위해 군산선을 건설했는데요, 군산선의 간이역인 임피역은 호남 지역에서 수확한 쌀을 군산항으로 옮기기 위한 중간 거점이었습니다. 해방 후 돌아오지 못한 가족들을 하염없이 기다리던 모습 또한 임피역이 가지고 있는 기억입니다. 이 역을 스쳐 지나갔을 많은 식민지 시대 사람들의 모습들이 떠오릅니다.
일본 본토에 낮은 가격으로 쌀을 공급해야 하기 때문에 일본인 지주들은 농민들에게 높은 소작료를 요구했는데요, 1927년에는 터무니 없는 소작료를 요구한 농장주에 대항해 수 백명의 농민이 들고 일어난 옥구농민항일항쟁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이외에도 1919년 만세운동, 20~30년대 총파업투쟁 등 군산에도 저항 운동은 지속되었습니다.
군산의 대표적인 일본인 대농장주는 구마모토 리헤이입니다. 현 발산초등학교 한편에는 정원에 마구잡이로 가져다 놓았던 발산리 5층 석탑, 석등 등 여러가지 문화재가 남아 있고 귀중품을 보관했던 금고 건물도 한켠에 텅 빈 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견고한 벽, 두꺼운 철제 문과 숨겨진 가파른 계단이 이 건물의 용도를 말해줍니다.
근처에는 1920년대 구마모토에 의해 별장으로 지어진 가옥이 있습니다. 당시 구마모토가 불러온 이영춘 박사가 해방 후에도 이곳에서 계속해서 거주하며 우리나라 보건 분야에 유의미한 족적을 남겼기 때문에 이영춘 가옥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동국사에 들렀습니다.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유일한 일본식 사찰입니다. 대웅전 뒷편에는 일본식 대나무숲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동국사 한 켠에는 군산 평화의 소녀상이 있습니다. 아직 돌아오지 못한 분들을 뜻하는, 서 있는 소녀상입니다. 소녀상 뒤에는 일본 조동종의 참사문, 즉 참회와 사죄의 글이 적혀 있는데요, 메이지유신에서 태평양 전쟁에 이르는 시기 일본의 지배 야욕에 불교가 가담한 행태에 대해 아시아인들에게 사죄하는 내용입니다.
이렇게 일제강점기 쌀 수탈의 거점이었던 군산을 돌아보았습니다. 함께한 민족문제연구소 김재호 선생님은 일제에 의해 계획적으로 수탈의 도시로 만들어진 군산이 식민 유산에 대해 근대문화유산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을 우려한다면서, 관광객을 모으기 위해 새로운 건물조차도 일제식으로 만드는 등 식민지 근대화론의 긍정적 해석이 될 수 있는 오늘날 군산의 모습이 안타깝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수탈을 위해 만들어지고 사용된 철길, 항만시설, 은행, 세관, 조선인들에게 높은 소작료를 징수하고 대농장을 가졌던 일본인 지주... 군산이 가지고 있는 유산은 대체로 일제강점기 수탈이라는 잔혹한 기억을 담고 있습니다. 그대로 남아있는 건물과 시설을 보면서 역사를 다시 한번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습니다.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도시가 가지고 있는 유산을 지금 시대에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표현해야 할지도 생각해보게 됩니다.
근현대사아카데미는 8월에도 계속됩니다. 시민들이 만든 대통령, 시민들과 많은 것을 나누고자 한 대통령이 머물던 곳, 가장 최근의 역사를 품고 있는 김해를 방문해 참여민주주의를 생각해봅니다.
서울KYC 회원들을 만날 수 있는 소중한 시간 서울KYC 회원인터뷰 "지금 만나러 갑니다."
6월에는 어느분을 소개해드릴까 고민하던 중 서울KYC의 다양한 영상을 만들어줬던!!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서울KYC의 20대 회원인 이분이 생각났습니다~
누군지 궁금하시죠? 지금 만나보시죠!
류승진 회원님~ 안녕하세요! 본인 소개를 부탁드릴게요.
23살에 KYC를 만나, 20대를 함께 보내고 어느덧 29살이 된 류승진입니다. 저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드는 일을 주업으로 삼고 있지만 왠지 요즘은 돈 될 만한 예쁘고 샤방샤방한 영상만 만들고 있네요.. 얼른 돈 안 되고, 칙칙하고, 아파해도 유쾌하게 공감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ㅠ
어떻게 서울KYC를 알게 되었고, 회원이 되었는지 궁금해요.
KYC는 저와 운명 같은 만남을 가졌죠. KYC의 전 대표님이었던 천준호 대표님께서 영상 만드는 일을 함께 해보자고 제안해주셨어요. 그 때 한참 다큐 꿈나무로써 여러 세상들을 만나고 발견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던 시기여서 무조건 좋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2010년에 KYC의 핵심 사업이었던 ‘한국청년상’ 홛동을 함께 하였습니다. 주로 명사들이 이야기하는 ‘청년’에 대한 인터뷰 영상을 제작하였었죠. 그 때 만났던 분들이 역사학자 이이화선생님, 고재열기자, 개그우먼 김미화, 시골의사 박경철, 당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였던 박원순시장 등등 알록달록하고 즐거운 분들 많이 만났었던 것 같아요. 100만원 주고 샀던 중고카메라 하나와 삼각대만 달랑 들고 촬영했었는데 인터뷰 한 분들이 당시 저에게는 큰 분들이어서 한편 한편 긴장하면서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 그 영상들은 지금도 유튜브에 ‘한국청년상’을 검색하면 나옵니다. ㅋㅋ)
이 후 KYC는 저의 가치를 담아낼 수 있는 영상들을 함께 만들자고 제안해주셨어요. 분명히 벅찬 부분도 있었지만 그 때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땀 빼면서 만들었던 영상들이 있어서 즐겁게 20대를 보낼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하나둘 영상을 만들면서 서울KYC의 회원이 되었습니다. ㅎㅎ
20대 파티 활동을 되돌아봤을 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무엇인가요?
20대파티 활동은 한국청년상 활동이 끝나고 같이 했던 활동인데, 으하하 그 당시에 정말 저는 진지하게 카드라이팅이 세상을 바꾼다고 믿었습니다. 체리의 주된 활동 중 하나가 우리들의 담론을 만들어가는 것이었는데요. 현재의 우리나라보다 청년이슈들이 반짝거렸었고, 우리는 카드라이팅을 통해서 우리들의 담론을 만들어갔었습니다. 우리가 모여서 포스트잇에 끄적인 단어들이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지는 부분이 되게 멋졌어요. 그런 광경을 카메라로 한컷한컷 담는 것에 보람도 느꼈었구요. 가끔 하드정리를 하다보면 체리활동을 했었을 때의 영상들을 보는데 우리는 참 진지했고 유쾌했던 것 같아요. 세상을 엄청 바꾸고 싶었고요. ㅋㅋ 우리가 한 장 한 장 써나갔던 카드라이팅. 그게 가장 기억에 남아요.. 지금이라도 같이 할래요? (ㅋㅋ)
활동을 하면서 스스로 달라진 점이 있었나요?
그냥 같이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 게 너무 즐거웠어요. 그리고 영상을 지속적으로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좋았고요. 분명히 그 영상들은 유튜브에서 조회 수 100을 겨우 채우거나 아니면 그마저도 채우지 못하고 잊혀질 수 있었겠지만 긴 호흡으로 만드는 다큐멘터리 영화보다 빠른 피드백이 있는 영상들을 만들 수 있는 소중한 순간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 기억이 있어서 요즘 제가 만드는 상업적인 영상들도 제 숨결을 담아서 만들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때 아마 영상을 만드는 저의 태도를 만들어갔던 것 같아요. 아무리 작은 영상도 그걸 바라보는 순간에 같이 즐거울 수 있는 영상. 같이 기억할 수 있는 꺼리가 하나가 더 생겨도 좋은 영상. 그런거요.
매년 순성놀이 홍보 영상도 만들고, 당일에도 함께 순성을 하며 촬영 및 영상 편집을 담당해주고 계신데요. 순성놀이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추억은 무엇일지 궁금해요~
순성놀이는 정말 힘듭니다.ㅠ 하루 동안 산을 4개를 넘어야 하고, 하루 만에 촬영편집 모든 과정을 시간 내에 마쳐서 함께 보아야 하죠. 그런 어마어마한 과제를 던져준 하준태 대표님이 미웠습니다. 2012년 처음 촬영했을 때의 악몽이 선합니다. 분명 힘든 여정. 각오를 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게 저에게 추억이라면 추억입니다. 그런데 영상 만든다는 건 봐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행복할 수 있는 건데, 하루 동안 4개의 산을 넘고 서울한양도성을 순성한 사람들이 함께 고생한 시간의 영상을 볼 때의 쾌감이 있어요. 만드는 과정에서도 쾌감과 성취감이 있구요. 그래서 포기하지 않고 계속 하게 되는거 같아요. 이쯤 되면 좀 중독이 되가는 거 같기두 하구요. ㅎㅎ
올해에도, 또!! 순성놀이를 함께 하게 될텐데, 이번 순성놀이에는 '이런 영상을 더 많이 담고 싶다'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나요?
이건 작년부터 생각한 건데, 개인을 담고 싶어요. 순성놀이에 참여하는 사람들 의외로 다 각자의 사연을 갖고 순성을 하더라고요. 산하나 넘을 때 서울의 어떤 길을 걸을 때 갖는 각자의 느낌과 생각이 있을거에요. 그런 부분들을 영상에 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걷는 모습에 집중했는데, 올 해에는 각자가 품은 이야기들을 속속 발견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땅도 프로덕션'을 만들어 활동하고 계신걸로 아는데 어디에 있는지,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알려주세요!
지금 저는 수원에서 땅도프로덕션이라는 이름으로 영상제작프로덕션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크고 작은 영상은 물론이고, 미디어교육과 다큐멘터리 제작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일단 지속가능하게 영화를 제작하고 싶어요. 그래서 버티기 위해서 조그만 알바를 하다보니 공간이 필요했고, 냅다 간판먼저 달고 시작했습니다. 시작은 혼자 했는데 이젠 2명이 되었어요. 작은 규모이지만 함께 영상을 만들 수 있는 친구가 생겨서 되게 두근거리는 요즘이에요. ㅎㅎ
아무리 사소한 영상이어도, 누군가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역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우리가 하는 일은 누군가의 역사를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하구요. 단순히 기록하고, 재연하는 일일 수 있지만 지금 내가 촬영하고 구성하고, 편집하는 이 영상이 그 사람의 한 순간을 간직 할 수 있는 소중한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개인들의 사소한 영상들에 관심이 많습니다. 지금은 시작하는 단계인 만큼 아직 만들고 싶은 것도, 보여드리고 싶은 것도 많습니다. 앞으로 기대를.... ㅎㅎㅎ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해요. 관심갖고 하는 활동이나 해보려는 활동? 영화감독으로서 다시 뭔가를 해볼 계획은 없으신지?ㅎㅎ
당연히 영화는 계속 만들고 있어요. 다만 땅도프로덕션을 만들면서 속도가 많이 더뎌졌죠. 영화작업도 개인의 역사를 탐구하는 것에 하나의 방점이 찍혀 있습니다. 현재는 어떤 할머니와 함께 다큐멘터리를 만들어가고 있어요. 벌써 그 분을 알고 지낸 시간이 3년이 되었네요. 이젠 정말 스스럼없는 관계가 되었는데, 오히려 관계가 가까워지니까 어려워진 부분도 없진 않네요.
곧 영화를 완성시킬 수 있을 겁니다. !!
류승진 회원에게 서울KYC란 _______이다?
자양분이 아닐까요?
사실 지금 수원에 와서 살게 된 것도, 이곳에서 사무실을 차리게 된 것도 KYC의 힘이 작용했었어요. ㅎㅎㅎ 서울KYC에서 간사로 활동하다 현재에는 수원 KYC 대표로 활동하고 있는 최융선 대표님께서 재작년쯤 수원에서 뭔가를 함께 해 보자고 제안해주셨어요. 그래서 아무 연고도 없던 수원에서 정말 즐겁게 활동 할 수 있었죠.
이런 식으로 어떤 계기마다 동기부여가 되었던 거 같아요. 그래서 20대를 함께 보낸 KYC가 소중할 수밖에 없죠. 고마워요 KYC!
마지막으로 서울KYC와 회원 분들께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KYC가 있어서 행복한 사람들이 분명 있잖아요. 우리 함께 더 행복할 수 있도록 힘냅시다!!
한국청년상, 체인지리더, 20대파티, 순성놀이, 그리고 수원에서의 다양한 활동까지~ 20대를 함께 보낸 KYC가 소중하고 고맙다는 류승진 회원님! KYC도 류승진 회원에게 참 많이 고맙습니다!!
순성놀이때 카메라를 들고 있는 류승진 회원이 보인다면~ 반갑게 인사 나눠주세요. 그리고 곧 완성될것 같다는 영화 소식도 다시 전해주시길! 회원인터뷰에 정말 흔쾌히~ 응해주신 류승진 회원님 감사합니다.^^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