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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주제1] 소득중심의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 반드시 필요하다

[기획주제1] 소득중심의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 반드시 필요하다

익명 (미확인) | 금, 2015/04/10- 15:17

참여연대 기고글

 

소득중심의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 반드시 필요하다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건강보험하나로 팀장 김종명

 

기대를 모았던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이 결국 흐지부지될 위기에 처해 있다. 보건복지부가 백지화 선언이후 비판적 여론에 밀려 새누리당과 정부간 당정협의로 재추진하겠다고 공언하고 있지만, 애초의 후퇴된 정부안조차 제대로 추진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여론에 밀린 정치적 액션인 만큼 여론이 잠잠해지면, 유야무야될 것이기에 그렇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저소득층의 건강보험료를 조금 경감해주는 선에서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을 마무리 지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한편, 건강보험료 부과체계를 제대로 추진하도록 감시하고 요구해야할 시민사회진영은 엉뚱하게도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심지어  일부에서는 소득중심의 건강보험료 부과체계를 노동자증세, 혹은 서민증세로 바라보는 시각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기도 하다. 이런 시민사회진영의 입장은 비록 의도치 않더라도 부과체계 개편을 소폭으로 마무리 짓고 싶어 하는 정부에 명분을 주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이글에서는 다시 소득중심의 부과체계 개편이 왜 필요한지를 살펴보고, 현재 일부 시민사회단체 내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쟁점을 다시 한 번 짚어보고자 한다.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의 필요성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 요구는 주로 학계와 보험자단체인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주도해 왔다. 10여년 전부터 건강보험료 부과체계가 공평하지 못하다는 지적이 계속되어 왔고 많은 연구보고서들이 제출되었다. 특히 불공평한 건강보험료 부과체계로 인해 지역가입자들의 항의와 민원들이 쏟아졌기에,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일찍부터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이 필요함을 인식해 왔었다. 이에 보수적 인사로 분류되는 김종대 전이사장 조차 건강보험료 부과체계는 반드시 필요하다며, 임기동안 핵심과제로 추진하게 된 것이다. 반면, 진보적 보건의료 시민사회단체 진영은 상대적으로 이에 대한 관심이 적었다. 솔직히 얘기하자면 관심뿐 아니라 입장조차 갖고 있지 못했다. 현재 부과체계 개편에 대한 혼선은 여기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본다.

 

건강보험료 부과체계가 공평하지 못하다는 인식은 지역가입자에서 먼저 쏟아져 나왔다. 자신의 부담능력에 비해 과다하게 건강보험료가 부과되고 있기에 그렇다. 지역가입자는 직장가입자와 달리 소득기준 외에도 재산, 자동차에도 건강보험료가 각각 부과되고 합산되어 부담한다. 특히 재산에 부과되는 건강보험료가 매우 과다하고, 공평하지도 못하다. 특히 소액재산에도 과다하게 건강보험료가 부과고 있다. 5천만 원의 재산이 있으면 4만 7천원이 부과되고, 1억에는 7만7천원, 3억이면 12만원이 부과되고 있다. 재산으로부터 소득이 발생되기 어려운 전월세, 소액의 1주택에 매우 과도하게 건강보험료가 부과되고 있는 것이다. 지역가입자들이 부담하는 건강보험료의 47%가 재산요소에서 발생한다. 지역가입자는 소득기준이 아니라 재산기준으로 건강보험료가 부과된다고 할 정도다. 이 재산기준으로 인해 지역가입자들은 소득이 실제로 없는데도 건강보험료가 과다하게 부과되고 있다. 더욱이 연 소득이 500만 원 이하인 경우에는 가구원수와 성/연령에 따라 건강보험료를 부과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송파세모녀의 건강보험료가 5만원이 부과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른 한편 건강보험료의 형평성 문제는 직장가입자에서도 발생하고 있다. 직장가입자는 근로소득을 기준으로 건강보험료를 부과한다. 근로소득 외의 종합소득이 연 7천200만원을 초과한 경우에만 건강보험료가 추가로 부과되고 있긴 하다. 하지만 그 대상자는 3만 7천 명 정도에 불과하다. 더욱이 분리 과세되고 있는 금융소득, 임대소득 등은 제외되어 있어 실제로는 1억 원 이상의 근로 외 소득이 있더라도 건강보험료가 부과되고 있지 않다. 이는 또 다른 형평성 문제를 낳고 있다. 근로소득만을 유일한 소득원으로 가진 대다수 평범한 직장가입자는 자신의 소득만큼 건강보험료를 부담하고 있는 반면, 근로소득 외의 종합소득이 있는 경우에는 건강보험료가 부과되고 있지 않아, 부담능력(소득)에 비례한 건강보험료 부과라는 사회보장제도의 원칙이 어긋나고 있다. 직장가입자 중 15%정도가 종합소득을 갖고 있다.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 역시 마찬가지다. 현재 피부양자는 소득이 있더라도 금융소득이 연 4천만원이하, 연금소득이 연 4천만원이하, 기타소득이 4천만원이하라면 피부양자가 될 수 있다. 더욱이 이 소득기준은 총 소득기준이 아니라, 개별소득기준이라서 마찬가지로 각 소득 기준에만 부합하면 총 소득이 1억이 넘더라도 피부양자로 유지되어 건강보험료를 한 푼도 내지 않아도 된다. 따라서 고소득이 있는데도 피부양자로 등록되어 무임승차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별소득기준이 아니라 총소득기준으로 변경해야 한다는 점을 감사원조차 지적한 바 있다. 이렇듯 고소득이 있는데도 근로소득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건강보험료를 부담하지 않고 무임승차하고 있는 사례가 적지 않다. 그로 인한 부담은 지역가입자와 평범한 직장가입자에게로 전가되고 있다.  

 

한국사회는 점차 소득의 불평등과 부의 불평등이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고소득으로부터 금융자산과 부동자산을 축적하게 되고, 그 자산은 또 다시 불로소득을 만들어 낸다. 이 불로 소득의 규모는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금융소득, 임대소득, 양도소득, 상속증여소득은 모두 자산으로부터 발생하는 소득이다. 그 자산(금융 및 부동산)은 자식에게 대물림되고 그로부터 불로소득이 발생된다. 그런데 이러한 소득에는 건강보험료가 부과되지 않고 있다. 건강보험료 부과의 불공평은 우리사회의 부의 불평등을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 결과 건강보험료 부담에 대한 형평성도  날로 악화되고 있다.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이 절실히 요구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불공평한 부과체계는 또 다른 문제도 발생시킨다. 요즘은 일부 안정된 고용계층을 제외하면 직장의 불안정성이 커서 이직률이 크고, 그때마다 직장가입에서 지역가입자로 전환되는 일이 빈번하게 벌어진다. 그런데 직업을 잃어 지역가입자로 전환되면 소득은 사라지는데도 오히려 건강보험료가 더 높게 부과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안정된 직장으로부터 정년퇴직을 하게 되더라도 같은 문제가 발생한다. 특히 지금은 베이비붐 세대가 대거 정년퇴직을 앞둔 시점이다. 정년퇴직을 하게 되면, 또 다시 가입자격이 변동된다. 정년퇴직 후 다행이도(?) 직장이 있는 자녀의 피부양자로 등록되면 건강보험료를 부담하지 않아도 되지만, 자녀가 무직이거나 실직상태라면 지역가입자로 전환되어 건강보험료를 부담해야하는 문제가 발생된다. 이원화된 부과체계로 인해 황당한 일들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렇듯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간의 건강보험료의 부과방식의 불형평성, 또, 건강보험료가 부과되는 소득의 종류에 따른 불형평성은 매우 심각하다.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이 필요한 이유이다. 정의롭지 못한 건강보험료 부과체계는 사회보장제도인 국민건강보험제도의 신뢰를 추락시키고 있다. 

 

건강보험료 개편, 왜 ‘소득중심’인가?  

 

그렇다면 어떻게 건강보험료 부과체계를 개편할 것인가. 그 기준을 무엇으로 삼아야 공평하다고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여기에서 제시된 기준이 바로 ‘소득’이다. 현행 건강보험료 체계는 이원화되어 있고 건강보험료가 부과되는 소득 범위도 제한적이다. 지역가입자는 소득, 성·연령, 재산, 자동차를 기준으로 부과하는 반면, 직장가입자는 근로소득을 중심으로만 부과하고 있다. 공평한 부과방식이라면 동일한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 여기에서 가장 공평한 잣대는 ‘소득’일 것이다. 현행 사회보험제도는 ‘부담능력’에 비례하여 건강보험료를 부과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기에 그렇다. 소득을 기준으로 건강보험료를 부과하게 되면, 현행 이원화된 체계로 인해 발생되는 문제를 대부분 해결할 수 있다. 소득의 종류를 따지지 않고 소득이 같으면 동일한 건강보험료를 부과하게 되면, 소득이 있는데도 건강보험료를 부담하지 않는 무임승차 문제가 해결된다. 또한, 실직이나 퇴직 후 소득이 사라지는데도 건강보험료가 오히려 급등하는 문제도 해결이 가능하다. 소득의 종류를 따지지 않고, 소득만큼 건강보험료를 부과하는 것이 공평할 것이다. 따라서  건강보험료 부과의 형평성을 제고할 가장 공평한 기준은 소득기준이라는 점은 두말할 나위 없다. 

 

한편 어느 소득까지 건강보험료를 부과할 것인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현행 소득세법상 소득에는 종합소득(근로, 이자, 배당, 사업, 연금, 기타소득), 양도소득, 퇴직소득이 있고, 상속세및증여세법상 재산이전으로 인한 소득이 있다. 애초 정부안은 근로외 종합소득까지만 확대하는 안을 담고 있다. 그 역시 연 2,000만원 이상의 종합과세소득에만 부과하자는 안이다. 그리고, 양도소득 퇴직소득은 일회성 소득이라는 점, 상속 및 증여소득은 재산이 성격이 강하다는 점을 근거로 배제했다. 이에 반해 소득중심의 건강보험료 부과체계방안은 양도, 퇴직 소득뿐 아니라 상속 및 증여소득까지 포함하자는 안이다. 양도, 퇴직소득도 소득이며, 상속재산과 증여재산 역시 부의 무상이전에 따른 소득이기에 그렇다. 원칙적으로 모든 소득에 건강보험료가 부과되어야 할 것이다. 

시민사회진영의 일부는 지역가입자에게 ‘재산’ 요소를 배제하는 것에 비판적이다. 특히 고액재산가의 건강보험료 부담을 줄여주는 정책으로 판단하기도 한다. 지난해 무상의료본부가 이를 두고 고액재산가의 건강보험료 부담을 경감해주는 ‘부자감세’라며 비판했다. 그러나 이는 완전한 착각이다. 객관적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데에서 기인한다. 

 

사실 고액재산가의 문제를 지역가입자의 문제로 여기는 것 자체가 잘못된 판단이다. 현재 고액재산가들은 대부분이 지역가입자가 아니라 직장가입자로 전환되어 있다. 과거 한때는 고액재산가들은 대체로 지역가입자였지만, 현재는 대부분이 직장가입자다. 현행 건강보험제도는 1인 이상을 고용하고 있는 개인사업자는 모두 직장가입자로 편입하고 있다. 고액재산가들은 이런 규정을 편법적으로 활용하여 직장가입으로 편입하고, 소액의 근로소득을 책정하여 여기에만 건강보험료를 납부하는 사례가 매우 많다. 과거 이명박 전 대통령이 한때 건강보험료를 2만원만 낸 사례가 대표적인 예이다. 지금은 대부분의 고소득 자영업자들은 과거엔 지역가입자였지만, 지금은 대부분 직장가입자로 편입되어 있다. 의사, 변호사, 약사 등의 고소득 전문직 개인사업자들, 음식·숙박업을 영위하는 개인사업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 결과 지역가입자는 고용 없이 자가 노동력만으로 운영하는 영세자영업자, 일용직, 특수고용직, 농어업 자영업자, 은퇴자, 노인, 무직자, 실직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전형적으로 서민, 영세민들이다. 이들은 소득도 적기에 재산도 많지 않다. 그런데도 재산기준으로 인해 과다한 보험료가 부과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현황은 부과체계 기획단의 자료에서도 확인이 가능하다. 지역가입자의 중위 재산은 1천 1백만 원에 불과하다. 지역가입자의 81%가 1억 미만의 재산을 갖고 있을 뿐이다. 3억 이상을 소유한 지역가입자는 6.3%에 불과하다. 즉, 대다수의 지역가입자는 소액재산만을 갖고 있으며, 그 재산으로부터는 소득이 발생하지 않는데도 건강보험료가 과다하게 부과되고 있는 것이다.

 

만일 일각의 주장처럼 ‘재산’기준을 유지하고자 한다면 형평성 있는 방식은 직장가입자에게도 동일하게 ‘재산’기준 보험료를 적용해야 한다. 이게 과연 합당한가? 그리고 직장가입자에게도 재산기준 보험료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아마 못할 것이다. 더욱이 현행 재산기준은 고액재산가의 부담을 늘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서민의 부담을 늘리는 방식으로 설계되어 있기에 더 그렇다. 

물론 여전히 고액재산가들을 중심으로 해서는 ‘재산’기준 건강보험료를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일리 있다. 그러나 남는 문제가 있다. 고액재산가의 건강보험료 부과 방식을 지역가입자에게만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더욱 고액재산가들의 대부분은 지역가입자가 아닌 직장가입자라는 점을 고려하면 그렇다. 즉 직장가입자에게 적용을 확대하자는 주장을 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재산기준을 배제하는 것을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이를 주장한 바가 없었다. 지역가입자에게만 적용하는 것은 여전히 형평하지 못하다. 

 

또 다른 문제도 있다. 지역이든 직장가입자든 고액재산에 건강보험료를 부과한다고 하자. 그러면 ‘재산으로부터 발생되는 소득’에는 건강보험료를 부과하기가 매우 어렵게 된다. 이중부과논란 때문이다. 특히 양도소득, 임대소득, 상속증여소득은 ‘재산으로부터 발생되는 소득’이라는 성격을 갖고 있다. 여기에 부과하기가 어려워진다. 따라서 합당한 부과기준이라면 재산이 아니라, 재산으로부터 발생되는 소득에 부과하는 것이 훨씬 바람직할 것이다. 건강보험료 부과 소득 범위를 ‘모든 소득’에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자산의 불평등이 심각한 현실을 고려할 때 재산에 건강보험료를 부과하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가 여전히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고액 자산 자체에 건강보험료를 부과하는 것은 사회보험의 원리에 꼭 부합하진 않는다. 오히려 이는 조세정책으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재에도 종합부동산세와 같은 부유세가 존재한다. 비록 MB정부가 부자감세를 하여 고액재산가의 세부담을 줄여주었지만, 이는 반드시 다시 강화할 필요가 있다. 더욱이 사회보험방식에서는 정률방식을 취하지만, 조세방식은 누진율을 적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고액재산에 대한 접근은 조세방식을 적용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여겨진다.

 

  따라서, 공평한 건강보험료 부과체계는 현행 사회보험의 원리에 충실한 방향이라면 재산, 자동차, 성, 연령과 같은 기준을 폐지하는 대신 ‘모든 가입자’에게 ‘모든 소득’을 기준으로 부과하는 것이 가장 합당할 것이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소득중심’의 부과체계 개편 역시 한계가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여전히 소득파악문제가 남아 있기에 그렇다. 십분 동의한다. 현행 세무행정 구조하에서는 100%완벽한 제도를 설계하기란 실제로 어렵다. 여전히 자영업자의 소득파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은 남는다. 그러나 그 문제 역시 지역가입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직장가입자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자영업자의 소득탈루 문제 역시 주로는 현행 직장가입자로 편입되어 있는 고소득 자영업자에서 발생된다는 점에서 그렇다. 따라서, 무엇을 원칙으로 삼을 것인가와 그 원칙을 보완해야할 문제는 무엇인가를 구별해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소득기준’이 완벽하지 못하다고 그 원칙을 버리는 것과, 그것을 보완하는 것은 전혀 다른 접근방식이다. 소득을 기준으로 부과하되, 소득파악이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보완장치가 필요할 것이다. 자영업자의 소득파악의 문제는 소득중심의 부과체계 개편 원칙을 흔드는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보완할 것인가의 문제로 접근해야할 문제일 뿐이다. 

 

몇 가지 논쟁지점에 대한 평가 

 

소득 중심의 부과체계 개편안에 대해서는 적지 않은 비판들이 있다. 몇 가지만 간추려 보자. 

우선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보다 국고지원과 사업주 부담률 조정에 대한 문제제기이다. 특히 국고지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상황을 지적하며 건강보험료 부과체계의 핵심은 국가가 약속을 지키는 것이 일차적으로 중요하다는 지적을 한다. 국고지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은 당연히 문제가 있다. 하지만, 부과체계 개편 문제는 건강보험 재원의 세 주체인 국민, 국가, 기업 중 ‘국민’이 부담하는 건강보험료의 형평성을 어떻게 제고할 것인가의 문제라는 점에서 논점이 다른 주장이다. 설령 국고지원이 제대로 이뤄지더라도 여전히 국민들이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로 이원화되어 발생되는 건강보험료의 형평성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즉, 국고지원 문제와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은 다른 문제일 뿐이다. 국고지원율을 현행보다 더 상향하더라도 부과체계 개편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또한, 건강보험 재정에서 국고지원을 상향하게 되면 그만큼 국고수입을 늘려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이는 또 다른 사회적 논란이 추가로 발생할 것이다. 조세로 이뤄지는 국고 역시 국민이 부담하는 세금이다. 현재 조세의 형평성이 결코 건강보험료의 형평성보다 우수하다는 근거는 없다. 간접세 비중이 매우 크기에 그렇다. 조세와 건강보험 재정에서 기업이 부담하는 비중은 오히려 건강보험이 더 크다. 건강보험 재정의 30%는 기업주의 부담이지만, 조세에서 법인세 부담이 차지하는 비중은 20%정도 수준이다. 조세보다 오히려 기업부담이 더 많다. 어찌되었든 건강보험료의 부과체계 개편 문제는 국고지원이나 사업주부담률 조정과는 다른 논점이다. 논점을 정확히 하고 대응할 필요가 있다.

 

  또, 소득중심의 부과체계 개편을 서민증세, 노동자 증세로 바라보는 주장도 있다. 이런 주장은 황당하기 그지없는 주장이다. 소득중심의 부과체계 개편은 오히려 그간 과도하게 부담해온 서민들, 특히 지역가입자의 건강보험료 부담을 부담능력에 맞게 조정하자는 것이다. 소득중심의 부과체계 방안을 실행하게 되면 대부분의 지역가입자의 건강보험료 부담은 줄어들게 되어 있다. 굳이 붙인다면 이는 서민감세에 해당하지 서민증세라고 볼 근거는 없다. 단, 지역가입자의 하위 15%정도는 최저보험료 설정으로 실질적인 부담경감은 없다는 문제는 남아있다. 이들은 사실상 빈곤층으로 건강보험료를 면제해 주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을 저소득층의 건강보험료 부담을 늘리는 방안이라고 비판하는 것도 맞지 않다. 부과체계 기획단과 정부는 최저보험료 설정으로 저소득층의 보험료가 인상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입장을 몇 차례 밝힌 바도 있기에 그렇다. 송파세모녀의 예처럼 최저보험료를 설정하더라도 대부분의 서민들의 건강보험료 부담은 대폭 경감되기에 그렇다. 

 

한편 노동자 증세라는 주장도 그렇다. 소득중심의 건강보험료 부과체계를 온전히 시행하게 되면, 직장가입자중 16.7%는 건강보험료 부담이 늘어난다. 이들은 소액이라도 근로 외소득을 갖고 있다. 여기에는 적지 않은 상위 소득을 가진 노동자가 포함되어 있다. 그들은 건강보험료 부담이 늘어난다. 부과체계 개편을 노동자증세로 바라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기에는 전적으로 상위 노동계층의 이해를 대변하는 시각이 짙게 깔려있다. 그러나, 이는 온당치 않다. 소득중심의 부과체계 개편은 부자의 부담을 늘리고, 서민의 부담을 줄이자는 취지에서 제기된 것이 아니다. 단지 건보료 부과의 형평성을 제고하고자 함이다. 누구는 소득이 없는데도 건강보험료를 부담하고 있고, 누구는 똑같이 100만원의 소득있는 데도 소득의 종류가 다르며 근로소득에는 부과하는 반면, 금융소득에는 건강보험료가 부과되지 않는다. 이게 공평한가. 그렇지 않다. 단지 소득중심의 부과체계 개편 방안은 그간 무임승차해왔던 근로외 종합소득에 대해서도 근로소득과 같은 동일한 소득이라면 동일하게 건강보험료를 부담시키자는 것이다. 그런데 대체로 소득중심의 부과체계 개편의 효과는 근로외 소득을 가진 상위 소득계층은 건강보험료 부담이 늘어나게 되고, 지역가입자의 대부분인 서민들은 부담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을 뿐이다. 거기에 상위 노동자가 포함되어 있다고 해서 이를 노동자증세로 바라보는 것은 절대 온당치 않다. 대부분의 평범한 노동자들이라면 근로외 소득을 갖긴 어렵다. 근로외종합소득이라면 이자소득, 금융소득, 임대소득이기에 그렇다. 노동자의 85%는 오직 근로소득만을 갖고 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부과체계 개편을 노동자증세라고 한다면, 명확히 단서를 붙여야 한다. ‘상위 10% 노동자증세’라고 말이다. 이를 노동자 일반의 증세로 포장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왜 상위 10% 노동자의 이해를 대변해야 하나? 왜 대다수 평범한 노동자의 시각으로, 과다한 건강보험료로 고통 받고 있는 지역가입자·서민의 눈높이에서 바라보지 않는 건가. 더욱이 ‘증세’라는 표현도 가당찮다. 그건 증세가 아니라, 그간 부당하게도 무임승차를 누려왔던 특혜를 환수하자는 것에 다름 아니다. 

 

다른 한편, 소득중심으로 건강보험료를 부과하는 소득범위에 연금소득이 포함된 것에 대한 문제제기도 있다. 연간 2천만 원의 연금소득자가 부자냐는 항변이다. 노동자 증세라는 비판과 상통하는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의 기저에는 노동자이 부담은 가중시키는 것은 절대 반대하는 논리가 깔려 있다. 그러나 그렇게 볼일은 아니다. 우리 사회는 연금소득자가 점차 증가하고 있다. 연금소득자 입장에서는 여기에 건강보험료가 부과되는 것이 마땅찮을 수 있다. 그러나, 현행 공적 연금체계는 시장소득이 연금소득으로까지 이어지는 특성이 있다. 고용이 안정되고 소득이 많은 계층일수록 연금수령액도 높다. 반면, 고용이 불안하고 소득이 적은 계층은 연금수령액이 적다. 더욱이 비정규직, 영세자영자 등을 중심으로 광범위한 국민연금 사각지대가 발생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국민연금제도가 안정화된 후라도 전체 국민이 절반이상은 국민연금의 혜택에서 배제되어 있다. 노후의 연금소득 역시 시장소득의 양극화가 그대로 이어지는 구조이다. 또한 온전히 소득중심의 부과체계를 개편했을 때와 현행 체제를 유지했을 때를 비교하자면, 연금소득에 건강보험료를 부과하는 소득중심의 개편안이 더 유리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현행 구조에서는 연금소득이 발생하는 시점인 퇴직 후에는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이거나, 혹은 지역가입자가 될 것이다. 그런데 피부양자라면 연금소득에 대해 건강보험료가 부과되지 않지만, 지역가입자로 전환될 경우에는 현행 체제에서도 연금소득에 대해 건강보험료가 부과되고 있다. 지역가입자의 소득에는 연금소득이 20%가 반영될 뿐 아니라, 재산, 자동차 기준이 적용되어 오히려 건강보험료가 소득에 비해 과다하게 부과되고 있는 실정이기에 그렇다. 여전히 연금소득에 대해 형평성 문제가 남게 된다. 더욱이 소득중심의 부과체계 방안에서는  연금소득 전체가 아니라 일부인 25%정도만을 반영하고 있기에 그 부담이 크지 않다. 

 

소득중심의 부과체계 개편,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의 디딤돌

 

지금까지 소득중심의 부과체계 개편이 왜 필요한지, 왜 소득중심의 개편이 필요한지, 그리고 관련하여 진보진영 내에서 제기되고 있는 몇 가지 논점들에 대해 살펴보았다. 소득중심의 부과체계 개편안에 대한 시민사회단체의 비판 논리를 보자면 답답하기 그지없다. 이것은 일차적으로는 애초부터 자신의 입장을 갖지 못한 데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여기에 보수적 인사로 알려진 김종대 전이사장이 강력히 추진함에 따라 오히려 왜곡된 시각으로 바로보지 않았나 싶다. 더불어 우리사회의 다양한 현안을 너무 이념적 잣대로만 바라보는 것도 문제라고 보여진다. 부자 대 서민(혹은 노동자) 프레임이다. 소위 1%대 99% 프레임이다. 건강보험료 부과체계는 단지 공평한 부과체계를 위함이지 부자증세(혹은 노동자증세)를 하고자 함이 아니다. 그런데, 이런 프레임으로만 바라본다. 그러다 보니 형평성 문제는 사라지고, ‘왜 내가 더 내야 하느냐’는 항변만이 존재한다. 이런 잘못된 프레임은 올바른 개혁조차 못하게 가로막는 장애요인으로 작용할 뿐이다. 소득중심의 부과체계 개편이 상위 1%만이 아닌 상위 10%의 고소득 노동자의 부담이 늘어난다며, 이를 ‘노동자 증세’로 규정하는 주장은 결국 상위 10%의 ‘나는 더 내기 싫다’는 반증세 정서를 대변해주는 것에  불과하다. 상위 소득계층의 건보료 무임승차를 정당화시켜 주고 있을 뿐인 거다. 우리 사회가 복지국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사회연대 의식’ 형성을 가로막는 역할을 해줄 뿐이라고 본다.

 

건강보험료 부과체계를 개선하는 것은 향후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확대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전제조건이다. 그렇지 않는다면 우리가 바라는 무상의료는 요원할 것이다. 형평성 있는 부과체계 없이 재원을 확충하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설령 그 책임을 국가와 기업에 온전히 넘긴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많은 국민들은 복지확대를 위해 증세의 필요성을 공감하고 있으나, 증세의 가장 큰 걸림돌은 조세의 형평성과 그것이 과연 복지에 제대로 쓰일 것인지에 대한 신뢰부족으로 인해 선뜻 동의하지 못하고 있다. 조세든, 건강보험료든 동일한 숙제가 놓여 있는 셈이다. 기업의 부담률을 높이는 것 역시 간단하지는 않다. 기업 소득은 대부분 대기업에 집중되어 있는 반면, 고용은 그 반대이기에 그렇다. 여전히 형평성 논란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나는 건강보험의 보장을 위한 개혁은 현행 건강보험제도 자체에서 찾는 것이 현실적으로 올바른 해법이라고 본다.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건강보험의 형평성을 개선해야 하는 것이다. 그 잣대로 소득기준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대중적 동의도 간편하다.

 

소득중심의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을 발판삼아, 건강보험의 보장성 확대를 획기적으로  확대하자.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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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7 빈곤철폐의 날, 개발 때문에 쫓겨나지 않는 세상, 

가난 때문에 죽지 않는 세상, 빈곤을 철폐하라!

 

정성철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심화되는 빈곤과 불평등

작년 연이어 하락한 빈곤층의 소득하락이 2019년 2/4분기로 멈추었다. 하지만 하위20%의 처분가능소득은 86만원에 불과하다. 상위20%의 소득을 하위20% 소득으로 나누어 불평등 격차를 나타내는 5분위 배율이 5.30배로, 2003년 통계작성 이후 최대치를 보이고 있다. 범위를 좁혀서 상위10%의 소득 비중은 50.6%, 자본주의 발전국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다. 상위 0.1%의 연평균 소득은 14억 7,400만원 에 달한다. 국세청에서 파악하지 못하는 소득까지 감안한다면 그 액수는 더 클 것이다. 상위0.1% 2만 2천여 명의 연소득의 합이 하위27%의 629만 5천여 명의 연소득의 합과 같다. 불평등은 소득뿐만 아니라 점유하고 살아가는 공간에서도 심각하다. 30명의 가진 사람들이 1만여 채의 집을 소유하고 있는 반면 227만여 가구는 거리·쪽방·고시원·반지하·옥탑과 같은 건강을 갉아먹고 안전이 담보되지 않는 집답지 않은 집에서 살아가고 있다. 경제가 불황이어서 살기 어렵다는 말은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진 않는다. 가진 사람들이 더 많은 돈을 쌓아가는 동안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은 계속 더 가난해지며 삶의 공간에서, 거리에서, 사회에서 밀려나고 있다.

 

2019년 1017 빈곤철폐의날을 맞아 열린 추모제https://lh6.googleusercontent.com/bWK2TSuu8KzjtgvU7D965ScIv60zJ-wfC0DVVB... />

2019년 1017 빈곤철폐의날을 맞아 열린 추모제 <사진 = 빈곤사회연대>

 

빈곤 퇴치의 날이 아닌 빈곤 철폐의 날

10월 17일은 UN에서 정한 <세계 빈곤퇴치의 날>이다. 1992년 세계적인 기아와 빈곤 문제를 없애겠다고 선언했고, 2000년 UN총회에서 2015년까지 절대빈곤 대폭감소를 목표로 ‘새천년개발목표’를 설정했다. ‘화이트밴드 캠페인’은 빈곤퇴치의 날의 대표적인 행사이다. ‘END POVERTY’라고 적힌 흰색 실리콘 팔찌를 착용한 사람들이 한 데 모여 앉았다 일어서는 퍼포먼스로 ‘가난의 굴레에서 스스로 일어나자’는 의미를 갖고 있다. 국제기구와 자선단체를 중심으로 아픈데 치료받지 못하는 아이나 노인, 가난하지만 해맑게 웃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전시하며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구호와 원조를 호소한다. 다소 불편하다. 가난이 개인의 의지와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인가? 빈곤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사회구조 속 오만가지 문제가 다양하게 얽히고설켜있다. 세계적으로 심각한 빈곤문제가 구호와 원조의 부족이 아니라 소수의 기업과 탐욕스러운 자본 그리고 빈곤문제 해결에 의지 없는 정치권력의 결착에 있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빈곤을 만들어내는 고리들을 끊어내지 않는다면 운 좋게 구호에 의해 구조된 누군가도 다시 빈곤의 늪에 빠질 가능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10월 17일을 <빈곤철폐의 날>이라고 부른다. 노점상, 철거민, 임차상인, 노동자, 홈리스, 쪽방주민, 장애인, 청년 등 다양한 삶의 현장에서 빈곤을 만들어내는 폭력에 맞서 저항하는 사람들이 함께 목소리 내고 연대하여 싸운다. 빈곤을 없애는 방법은 가난을 동정거리로 소비하며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차별과 처벌을 정당화하는 구화와 원조가 아니다. 서로의 삶을 공유하며 마주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대하여 행동할 때 끝장낼 수 있을 것이다. 1017 빈곤철폐의 날 투쟁은 세계주거의 날인 10월 첫째 주 월요일을 시작으로 한 달 동안 진행된다. 올해 1017 빈곤철폐의 날에 우리는 “개발 때문에 쫓겨나지 않는 세상, 가난 때문에 죽지 않는 세상, 빈곤을 철폐하라!”라는 슬로건과 10가지 투쟁과제를 내걸고 함께 싸웠다.

 


△ 2019 1017 빈곤철폐의날 투쟁과제

▴ 부양의무자기준, 장애등급제, 장애인 수용시설 완전 폐지!

▴ 노점상강제철거·노점관리대책 중단, 용역깡패예산 전면삭감!

▴ 선대책 후철거, 순환식개발 시행!

▴ 고시원‧쪽방 등 비적정 거처에 대한 주거, 안전 대책 마련!

▴ 사회복지 공공인프라 확대! 사회서비스 공공성 강화!

▴ 노동기본권 쟁취! 노동개악 저지! 비정규직 철폐!

▴ 공공임대주택 확대! 전월세 상한제 도입으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

▴ 누구도 배제하지 말라!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 반인권적 공공개발 중단! 강제퇴거 전면 중단!

▴ 상가법 개정으로 임차상인 생존권 보장!


 

개발폭력 철거폭력에 쫓겨나는 사람들

2018년 12월 아현동 철거민 박준경이 한강에 투신했다. 개발지역에 동절기 강제철거를 금지한 서울의 경우 겨울을 앞두고 철거폭력이 몰아친다. 원 주민과 상인들의 삶이 아니라 건설사와 투기꾼들의 이윤만을 위한 개발사업은 가난한 사람들을 삶의 터전에서 쫓아내려 한다. 대책 없이 쫓겨날 위기에 처한 사람들, 갈 곳 없는 사람들 앞에는 용역깡패를 동원한 철거폭력이 등장한다. 철거민들이 온갖 욕설과 희롱, 물리적 폭력과 매일을 마주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이 가난하기 때문일 것이다. 화려해지는 도시에 어울리지 않는 가난한 사람들은 쫓겨나야 하고 밀려나야 하고 가려져야 한다. 박준경의 죽음으로부터 1년, 최근 강서구 재건축 지역 세입자였던 50대 남성이 ‘힘들었다. 죄송하다’는 유서를 남긴 채 생을 등졌다. 이웃 주민은 조합 측으로부터 ‘명도소송을 할 것이라는 협박에 심리적으로 힘들고 겁이 났다, 그이도 그랬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준경의 죽음 이후 서울시 차원에서 재건축 세입자에 대한 대책을 발표했지만 현장에서 변한 것은 하나 없었다. 다섯 명의 철거민과 한 명의 경찰이 사망한 용산참사로부터 근 11년이 지났지만, 지금 이 시간에도 미아3구역 철거민들이 망루에 올라 투쟁하고 있다. 방배5구역, 자양1구역을 비롯한 전국각지에 개발현장의 철거민들은 매일을 폭력에 맞서 싸우고 있다. “여기 사람이 있다” “우리가 박준경이다”라는 구호는 여전히 유효하다. 

 

개발폭력은 정부에서 진행하는 공공개발에서도 다르지 않다. 도시나 지역의 발전을 내세우고 ‘도시재생’과 같이 그럴듯한 단어로 포장하여 가난한 사람들을 밀어내려 한다. 공공개발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공익보다 사익을 앞세우는 파렴치한으로 매도되며 철거폭력과 마주하게 된다. 청계천복원이라는 이름으로 쫓겨난 상인들, 현대화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쫓겨날 위기에 저항하고 있는 노량진수산시장 상인들의 상황이 그렇다. 또한 철거폭력은 개발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초등학생에서부터 심지어 인기 있는 연예인까지 건물주를 꿈꾸는 사회에서, 건물주의 더 많은 이윤을 위한 야만에 임차상인들이 철거폭력과 마주하게 된다. 더 화려한 도시공간을 만들기 위해 가난한 사람들은 거리와 공공공간에서도 치워진다. 문재인정부에 들어서 국가폭력에 의한 첫 번째 희생자는 강북구에서 좌판을 깔고 장사하던 노점상인 이었다. 디자인, 거리미화 등을 이유로 가난한 사람들의 마지막 생계수단 노점상인들은 자치구가 구입한 용역폭력에 의해 철거된다. 서울로 7017 고가공원에 공사가 시작되어 개장되기 까지 서울역 지하도에는 노숙금지 팻말이 하나둘 붙기 시작했고 결국 그곳에서 생활하던 거리홈리스들은 치워졌다.

 

반복되는 가난한 사람들의 죽음

지난 7월 관악구에서 탈북모자가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발견당시 모자의 집에 있던 식료품은 고춧가루가 전부였다고 한다. 모자는 생전 생활고로 인해 기초생활보장제도 신청을 위해 주민센터를 찾았지만 이혼한 전 남편이 아들의 부양의무자로 되어있어 수급신청을 포기했다고 한다. 그리고 지난 9월 강서구에서 50대 남성은 치매가 있는 노모와 장애가 있는 형을 살해한 뒤 자살했다. 세계 경제순위 12위, 30-50클럽의 7번째 가입국인 2019년 한국 사회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굶어죽고 가족에게 살해당했다. 2014년 송파 세 모녀의 죽음이후 사회보장 이용 및 발굴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고 기초생활보장제도가 개정되는 등 복지제도의 신설, 개선조치가 계속 있어 왔지만 가난한 사람들의 삶의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의 투쟁으로 장애등급제폐지와 부양의무자기준폐지를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으로 만들어 냈지만 장애등급제는 이름만 바뀌었고, 부양의무자기준은 완화조치만 취해지고 있다. 빈곤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복지제도에 필요한 예산을 반영해야 하지만 예산에 복지제도를 끼워 맞추는 작당만 계속되기 때문이다.

 

‘햇빛이 들어오고 주방이 있는 집에 살고싶다’ 피켓을 제작한 참가자https://lh5.googleusercontent.com/tkCknZrJg0mYtCWWMPZVAdt5T85lP0ZaYMuYKH... />

‘햇빛이 들어오고 주방이 있는 집에 살고싶다’ 피켓을 제작한 참가자 <사진 = 빈곤사회연대>

 

치솟는 집값에 선택 가능한 머물 공간이 적은 가난한 사람들은 쪽방‧여인숙‧고시원 등 최소한의 안전조차 담보되지 않는 비주택에서 살아간다. 한 평 남짓한 공간에 방음과 환기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비주택은 건강을 갉아먹으며 삶까지 집어삼킨다. 작년 1월 종로구 쪽방촌에 난 화재로 1명이 사망했다. 같은 해 12월 종로 국일고시원에 난 화재로 7명이 사망했다. 화마에 휩쓸린 7명은 4만 원 더 저렴한 창문 없는 방에 살던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지난 8월 전주의 한 여인숙에 난 화재로 또다시 3명이 사망했다. 비주택에서의 비극이 반복되고 있지만 사망사고 이후 발표되는 대책은 비상벨 설치나 스프링클러 설치와 같이 굉장히 지엽적일 뿐이다. 비주택에서 발생되는 죽음에 대한 대책이 안전과 안정되지 못한 주거권에 초점 맞춰지지 않는다면 삶을 삼키는 비극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빈곤없는 세상, 평등과 평화가 도래한 세상을 향해

2000년 UN총회에서 목표한 ‘새천년 개발목표’는 실패했다. 2015년 한국을 비롯한 세계 곳곳의 도시가 화려하게 변화했지만 화려한 도시에 가려진 빈곤과 불평등은 더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UN은 목표기간을 2030년으로, 이름을 ‘지속가능개발목표’로 재설정했다. 하지만 원조경제 중심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력갱생을 요구하는 기존과 다르지 않은 방식은 빈곤을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1017 빈곤철폐의 날 조직위원회는 이러한 폭력과 죽음을 멈추고 빈곤과 불평등을 끝장내는 싸움에 동의하고 연대하는 단체와 개인들로 구성된다. 2019년 빈곤철폐의 날에는 2019 주거의 날을 맞아 주택임대차보호법개정연대 발족에 함께 하며 모두를 위한 주거권을 함께 소리 냈고 민중열사 묘역참배, 무연고사망자 합동 추모제, 빈곤철폐의 날 퍼레이드와 기자회견을 통해 “개발 때문에 쫓겨나지 않는 세상, 가난 때문에 죽지 않는 세상, 빈곤을 철폐하라!”라는 슬로건과 10가지 투쟁과제를 함께 외쳤다. 그리고 1017빈곤철폐의 날 당일, 가난한 사람들의 죽음이 반복되는 상황에서 지켜지지 않고 있는 부양의무자기준 진짜폐지 공약이행을 촉구하며 청와대 앞 천막 농성에 돌입했다.

 

가난은 죄가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데 그 말을 선뜻 입 밖으로 꺼내기 어렵다. 가난은 무엇인가. 가난한 사람들은 어디에 있으며, 가난한 사람들이 있어야 할 자리는 어디인가. 무엇이 가난한 사람들을 만들어내고 차별하고 처벌하게 만드는가. 함께 고민해야 한다. 1017 빈곤철폐의 날 투쟁일정은 끝났지만 각각의 현장에서 빈곤없는 세상, 평등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싸움은 계속된다.

 

2019년 1017 빈곤철폐의날 기자회견을 마치고 청와대 앞 농성에 돌입한 참가자들https://lh3.googleusercontent.com/quGzbNUTi1XoIVYeGWVW0KmrA0dGPE7EU_M4Re... />

 

2019년 1017 빈곤철폐의날 기자회견을 마치고 청와대 앞 농성에 돌입한 참가자들 <사진 = 빈곤사회연대>

월, 2019/11/04-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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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차의료체계의 중요성과 함의

: 효과적이고 민주적인 ‘서로 돌보는 공통체’로의 전환

 

신영전 한양의대 보건대학원 교수

 

일차의료 강화의 당위와 불가피성

일차의료란?

‘일차의료’란 의료서비스의 제공 중 첫 번째 수준을 담당하는 의료체계를 말한다. 하지만 일차의료가 가지는 의미는 문자 그대로의 의미보다 다양하다. 일반인들에게 일차의료는 단순히 ‘개원 의사’, ‘가정의학 의사’, ‘주치의’ 등이 제공하는 초기 의료서비스라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일차의료가 적극적으로 지향하는 가치와 특성은 각별하다. 먼저 일차의료는 한 인간의 출생, 유아, 청년, 장년, 노년, 죽음까지 전 생애에 걸쳐 그가 속한 가족을 포함한 건강, 질병 문제의 일차적, 전문 조력자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질병 예방과 조기 발견, 다양한 초기 질병의 비특이적 증상에 적절히 대응해야 하는 의료를 제공해야 한다. 셋째, 또한 복합 만성질환자의 통합적이고 지속적인 의료적 관리와 사회 재활에 이르기까지 건강과 질병의 전 스펙트럼에 개입하는 전문가이기도 하다. 요약하면, 일차의료를 제공하는 의사는 ‘최초 접촉’, ‘포괄적 의료서비스 제공’, ‘지속적 관계유지’, ‘조정역할’을 특징으로 하는 주치의로서 자기 환자와 가족들에 대해 전 생애에 걸친 지속적인 상담, 질병예방 및 건강증진을 책임진 의사를 의미하기도 한다. 

 

일차의료 강화라는 ‘당위’의 실패

일차의료가 가지는 의의와 중요성에 근거해 일차의료를 강화해야 한다는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 일차의료 강화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면에서 실패를 거듭해 오고 있다. 첫째, 대부분의 의료적 필요는 스스로 돌봄이나 일차 의료서비스로 해결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의료서비스 공급체계는 양적으로 볼 때,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의료수요와는 반대의 삼차의료가 비대한 역삼각형 구조를 보이고 있다(<그림 1-1>). 의사 중 일반의나 가정의학 등의 일차의료 중심 과를 택하는 비율이 전체의 30%도 안되는 것이 그 대표적인 증거이다. 

 

<그림 1-1> 의료수요와 삼차의료가 비대한 역삼각형 구조의 비교

<그림 1-1> 의료수요와 삼차의료가 비대한 역삼각형 구조의 비교https://lh3.googleusercontent.com/Qb6ekWTOpC8sGjfyJ5XK6-XUSO_-jZjVDmWCrN... />

 

둘째, 전체 의료인 중에서 차지하는 일차의료 규모의 왜소함보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일차의료를 병원이나 대학병원에서 제공되는 의료서비스보다 질이 낮은 것으로 여기는 잘못된 인식이 만연하고 있는 것이다. 의료서비스의 질이 높다는 것이 고가의 첨단 의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질병의 성격에 적절히 조응하는 의료서비스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일반인들은 무조건 대형병원을 선호하는 경향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 강한 실정이다. 최근 상급병원, 종합병원으로의 환자쏠림 현상은 이러한 문제를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일차의료 강화의 ‘불가피성’

일차의료의 대폭적인 강화의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이루어내는 데 실패한 한국 사회에서 최근 새로운 ‘계기’가 다가오고 있다. 이 계기는 종래처럼 당위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 변화에 따른 불가피한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와 차이가 있다. 그 변화의 불가피성을 주도하고 있는 주된 힘은 인류가 경험하지 못한 속도의 고령화다. 이로 인해 의료 분야에서는 여러 가지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노인의료비의 규모와 증가 속도이다.  지난해 65세 이상 노인이 쓴 진료비는 31조 8235억 원으로 전체 의료비의 40.8%를 차지했다. 노인의료비의 연간 증가율도 2014년 10.4%에서 2018년 12.4%로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고령화가 야기하고 있는 또 하나의 문제는 현재 의료보험재정의 재원을 담당하고 있는 고용인구의 규모가 점차 감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국내 산업구조의 변화와 세계의 장기 경제 둔화는 급격히 사회보험으로서의 의료보험재정을 지속적으로 악화시킬 것 것이다. 요약하면, 고령화로 인한 진료비 증가와 보험재원 조달의 어려움이 만나면서 현재 의료보장체계의 지속가능성을 급격히 낮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의료제공체계 등의 변화는 ‘불가피’하다. 우리 사회가 이 변화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한다면 현재 60% 전후에 불과한 의료보장수준은 급격히 낮아져 사실상 사회안전망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일부 부유한 사람들은 민간의료보험을 통해 그럭저럭 버티겠지만, 대다수 국민들은 매일매일 아플까 봐 불안해 하고 많은 이들이 의료비로 인해 파산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파국을 막기 위한 ‘적절한 사회적 대응’의 핵심에 일차의료의 강화가 자리하고 있다. 전술한 바와 같이 이것은 과거의 당위성에 기반하기보다, 한 사회의 사회안전망의 붕괴를 막기 위해서는 일차의료를 강화해야 한다는 ‘불가피성’에 기반한 것이다.

 

일차의료 강화와 동상이몽

일차의료 강화와 관련해서는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주장이 존재한다. 우선 일차의료 강화에 반대하거나 무관심한 이들이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대형병원의 이익을 우선하는 이들이다. 또한 높은 본인부담금을 내더라도 별 불편 없이 대형 병원을 이용하는 고소득자들이다.

 

일차의료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 사이에도 ‘동상이몽’이 존재한다. 무엇보다 민간의료보험이 중심이 되는 수직적 전달체계를 구축하려는 세력이다. 이 수직적 전달체계는 그 체계의 내적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지만, 일차 의료는 결국 최상위에 있는 영리목적 보험회사의 지시를 따르게 된다. 강력한 ‘문지기(gate keeper)’가 아니라 ‘문차단자(gate shutter)’로써 역할을 하고 있는 미국의 일차의료체계가 이 모형의 예라고 할 수 있다(<그림 1-2>). 이 영리목적 보험회사는 한편으로 이익창출에 한계가 있는 행위별 수가제가 아니라 인두제를 기반으로 하는 주치의제도를 가동함으로써 ‘대량 관리 회원의 안정적 확보’와 ‘원가절감’이라는 방식으로 이윤창출 모형을 설계하고 현재 가장 적극적으로 일차의료 강화와 주치의제도를 주장하고 운영하고 있다. 미국의 건강관리기구(HMO)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림 1-2> 미국 일차의료체계의 모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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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보험회사로 대변되는 영리적 대형자본은 자신의 수익창출을 위해 다른 목적으로 일차의료를 강화하고자 하는데, 최근 대표적인 것이 영리유전자검사 등을 통해 의료서비스의 수요를 지속적으로 창출하려는 것이다. 또한 개인의 질병정보의 활용하기 위한 규제개혁에도 전력을 다하고 있다. 이른바 의료민영화 프로젝트가 그것이다(<그림 1-3>).

 

‘일차의료의 강화’를 주장하는 또 다른 세력은 대다수 국민의 이해에 기반한 진보적 시민사회와 전문가들이다. 이들은 일차의료가 가지는 본연의 가치, 즉 전술한 바와 같은  ‘최초 접촉’, ‘포괄적 의료서비스 제공’, ‘지속적 관계유지’, ‘조정역할’을 통해 불필요한 의료비의 급증을 막고, 한 개인과 가족, 공동체에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일차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림 1-3> 한국 의료민영화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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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직한 일차의료의 강화 원칙과 과제

이렇듯 ‘일차의료 강화’의 주장하더라도 그 목표가 다를 수 있는 만큼 국민들의 편안한 온존(well-being)을 지향하는데 기여하고자 하는 이들은 ‘바람직한’ 일차의료 강화의 원칙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이 과정은 단순히 기존의 일차의료를 강화가 아니라 바람직한 일차의료의 강화가 필요하고, 이에서 더 나아가 기존 일차의료의 개념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개념의 재구성/재정의 필요

일차의료가 국민들의 온존에 기여하는 것이 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이 기존의 개념을 재구성/재정의할 필요가 있다. 첫째, 질병에 대한 인식의 변화이다. 기존 의학적 접근이 질병에 대해 가진 태도는 그것을 퇴치할 대상으로 바라본 것이다. 그러나 이는 감염성 질환이 주를 이루던 시대에 만들어진 생각이다. 현재와 같이 만성질환이 주를 이루는 시대에 이러한 질병관은 옳지 않을 뿐만 아니라 비현실적이다. 오히려 질병과 장애를 인간의 본질로 받아들이고 이들과의 평화로운 공존을 선택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는 대부분의 감염균과 감염병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둘째, 기존 의학적 모델의 극복이다. 최근 과학적 기술의 발전은 오히려 인간이란 존재가 유전자로 환원할 수 없는 다양한 층위 요소들과 그것들 간의 상호작용 속에서 운명지어지는 것으로 밝혀졌다. 질병을 유전자 또는 그 이하 요소에 기인한다고 보고 인간의 신체를 기계적으로 이해해왔던 기존의 주류 의학적 모델이 한계에 봉착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새로운 시대의 의사는 사람들의 건강을 보호증진하고 치료하기 위해서 다양한 분야와 다양한 층위의 사람들과 협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다분야, 다층적 협력 모델은 포괄성과 지속성을 그 핵심으로 하는 일차의료 의사들에게는 더욱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셋째, 구성원의 역할에 대한 변화이다. 이러한 질병관의 변화와 의학적 모델의 극복은 자연스레 건강증진, 예방, 치료와 재활 과정에서 그 과정에 속한 구성원들 간의 역할 조정을 요구한다. 기존의 일차의료의 제공 과정에서 의사들이 사실상 독점적인 권위를 유지해왔다면 새로운 모델에서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더 나아가 일반 시민, 환자들과도 민주적이고 협력적인 관계를 구축하여야 할 것이다.

 

소결: 효과적이고 민주적인 ‘서로 돌보는 공동체’로의 전환

요약하면, 고령화 등으로 인한 사회적 변화는 과거 당위론에 머물렀던 일차의료의 강화를 불가피한 것으로 만들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일차의료의 강화는 단지 기존의 체계를 양적으로 확대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보다 적극적인 재구성/재정의를 필요로 한다. 최근 커뮤니티케어와 관련한 논의와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도 이러한 맥락과 무관하지 않다.

 

 

모든 이들의 온존(well-being)’에 기여하는 일차의료가 되기 위해서는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궁극적으로는 개인의 몸을 사적 이윤의 식민지로 만들려는 다양하고 집요한 시도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해야 하며, ‘일차의료’라는 이름을 바꾸던, 아니면 그 의미와 정의를 바꾸던, 그 핵심적 성격이 효과적이고 민주적인 ‘서로 돌보는 공동체’를 지향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수, 2019/12/04-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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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관점에서 본 일차보건의료의 개선과제

 

김준현 건강세상네트워크 대표

 

들어가며

일차보건의료는 의료이용의 첫 번째 관문으로 이해될 수 있으며, 의료이용자의 요구가 처음 표출되는 단계이기도 하다. 또한, 일차보건의료는 국가 보건의료체계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성에도 영향을 준다. 의료이용 첫 단계에서 시민들의 불만이나 부정적인 경험이 발생할 경우 전체 보건의료체계에 대한 신뢰성 저하로 확장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민들의 요구에 제대로 반응할 수 있도록 일차보건의료 기능에 부합 하는 체계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지역적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지리적 접근성을 개선하는 것 외에도 심야시간·공휴일 등 특정 시간대에 발생하는 미충족 수요에도 대응할 수 있어야 하며, 의료비 가계부담으로 인한 의료이용 장벽도 고려해야 한다. 지속적인 환자관리나 상담 및 예방 중심의 포괄적 진료 제공은 일차보건의료영역에서 수행해야 하는 중요기능 중의 하나이며, 환자상태에 따른 타 의료기관 의뢰나 지역사회 자원과의 연계도 일차보건의료의 역할 범위에 해당된다.

 

그러나 의료이용을 하는 일반 시민들의 입장에서 볼 때 우리나라 일차보건의료가 갖는 차별성이나 중요성은 쉽게 인지되지 않는다. 초기에 질병이나 증상 발생 시 어떤 의료기관이나 의사와 접촉해야 하는지 알기 어려우며, 이를 안내하고 개입할 만한 제도적 장치도 존재하지 않는다. 과거의 의료이용 경험이나 다른 정보 등을 토대로 시민들이 자의적 기준에 따라 의료기관을 선택하며, 동일한 증상으로 가까운 지역의 병·의원에 방문하더라도 의료기관간의 진단 및 처치가 상이하고 비용 발생도 제각각인 상황이 발생한다. 우리나라는 의료전달체계가 왜곡되어 있어 일차보건의료 본연의 기능을 담보하기 어려운 구조이며, 의원을 중심으로 한 일차의료 영역의 질적 격차와 치료효과의 신뢰성 저하로 시민들의 동네의원 만족도도 높지 않은 것으로 보고된다. 여기서는 일차보건의료에 대한 시민들의 경험과 인식수준을 살펴보고, 우리나라 보건의료체계의 구조적 문제 중심으로 기술하였다.

 

일차보건의료에 대한 환자와 시민들의 인식

과거와는 달리 보건의료제도 운영에 있어 환자의 관점을 중요하게 반영하는 추세이며, 보건의료의 관리 방식도 접근성이나 재정 관리측면의 효율성 위주에서 벗어나 ‘환자 중심성’이나 ‘반응성’을 강화할 것을 제언하고 있다(NERA, 2002). ‘반응성’은 환자가 의료에 대해 갖는 기대를 의료체계가 얼마나 충족하는지를 의미하며, WHO(2000)가 의료체계 성과의 평가항목으로 처음 제시한 개념이기도 하다. ‘반응성’의 하위 지표는 ‘환자에 대한 인격적인 대우’(환자관점에서 평가된 존엄성, 자율성, 비밀보장)와, ‘환자와 가족들이 표출하는 일반적인 관심사에 대한 반응’(공급자 선택권, 사회적 지원체계에 대한 접근성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와 같은 반응성 개념에는 치료과정에서 환자들의 존엄성과 자율성이 존중되어야 하고 의료이용의 일반적인 관심사에 대해 의료체계가 대처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반응성’과 유사한 개념의 ‘환자 경험’이나 ‘환자 중심성’이 강조되고 있으며, OECD에서도 국가간의 의료의 질을 비교하는데 있어 ‘환자 경험’을 평가 지표로 산출하고 있다. ‘비용 문제로 의료서비스 이용(진찰, 약품 등)에 제약이 있었는지’, ‘의사의 진찰시간은 충분했는지’, ‘의사에게 질문이나 우려 사항을 말할 기회가 있었는지’, ‘치료 결정 과정에 환자 참여 경험이 있었는지 여부’ 등 총 12가지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OECD, 2019).

 

일차보건의료는 의사와 환자간의 지속적인 관계 형성이 요구되는 영역이며 진료와 상담, 예방, 건강증진 등 다양한 서비스의 연계와 조정이 필요한 영역이기도 하다. 일차보건의료는 전체 보건의료체계에서 환자를 대리하는 문지기 역할을 담당한다고 볼 수 있고, 보건의료체계와 첫 번째로 접촉하는 관문이라는 점에서 이 단계에서의 ‘반응성’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볼 수 있다.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일차의료기관(의원)의 이용행태와 인식수준을 살펴보면, 동네의원을 주로 이용하는 이유는 ‘집에서 가까운 곳이라서’ 찾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최초 문제 발생 시 접근성에 대해서는 의원이 충분한 역할을 하고 있으나 야간, 휴일 등 원하는 시간이나 급할 때 의원 방문이 어렵고, 예방 및 건강관리 등 포괄적인 서비스 제공이나 가족 또는 지역사회 보건의료 활동 제공은 부족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동네의원의 역할 수행과 관련해서는 의사의 질 향상과 진료 표준화에 대한 응답이 가장 많았으며, 2·3차 의료기관간의 의료전달체계 확립 문제도 주요 우선 순위다(이진용 등, 2016).

 

<그림 3-1> 동네의원이 일차의료기관으로 역할 수행을 잘 하기 위해 필요한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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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의원의 접근성, 상담의 충분성, 의료비 부담수준은 전반적으로 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보이나 지역 및 소득수준별로는 차이가 있어 농어촌 거주자나 소득수준이 낮을수록 의원의 접근성, 의사 상담의 충분성, 비용부담에 있어 만족도가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나며, 의료의 질과 관련해서는 의원의 경우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과 비교시 만족도가 가장 낮고 지역 및 소득계층간 격차도 발생하여 농어촌 지역에 거주하거나 소득 수준이 낮을수록 불만족 응답이 상대적으로 많은 것으로 나타난다(황도경·안수인, 2018).

 

이와 같은 결과는 지역사회를 포함한 일차보건의료체계 전반에 대한 시민들의 기대나 인식수준을 나타낸 결과는 아니다. 일차의료 공급기관으로 볼 수 있는 의원에 국한된 조사결과라는 한계가 있다. 다만, 의원의 역할 수행과 관련된 접근성, 비용, 의료의 질(의사 상담 포함)에 있어 시민들의 인식수준은 차이가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특히, 지역 및 소득계층별 격차와 의원급 의료기관의 전반적인 의료의 질 저하 문제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한편, 시민들이 의사를 보는 일반적인 평판은 전문직종으로서 신뢰하는 긍적적인 측면도 있으나 권위적이고 불친절하다는 부정적인 이미지도 동시에 갖고 있다. 의사와 환자간의 수평적인 관계로의 변화는 국민들이 원하는 보건의료제도 운영의 두 번째 우선순위로 꼽고 있어(보건복지부, 2011), 환자의 건강관리와 지속적인 대면접촉을 중시하는 일차보건의료의 특성상 의사와 환자와의 동반자적 관계가 요구된다고 불 수 있다.

 

보건의료체계의 구조적 문제와 일차보건의료

일차보건의료는 기본적으로 의료전달체계를 포함한 보건의료체계의 구조적인 특성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일차보건의료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도 우리나라 보건의료체계에 내재되어 있는 특성과 문제점에 노출되면서 나타난 경험적 반응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 보건의료 공급체계는 몇 가지 고질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보건의료의 재원은 국민들이 부담하는 세금과 건강보험료로 조달되는 공적재정(public fund)을 토대로 하고 있으나 실제 보건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급체계는 민간이 주도하고 있어 정부 개입은 항상 한계를 보여 왔다.

 

보건의료 자원(의료인, 의료기관 등)의 지역간 균등한 분배나 의료전달체계의 확립 등 일련의 정부 주도 방식의 보건의료계획이 작동되기 어려운 구조이다. 민간주도의 공급기반은 시설·장비 중심의 규모 위주의 공급량 증가로 귀결된 반면 공급부문 과잉을 통제하기 위한 정책수단은 점차 완화되어 왔다. 예를 들어, 병상 관리의 경우 병상 증가를 억제하던 정책들이 1990년대부터 규제개혁 차원에서 단계적으로 페지되어 왔다. 서울 및 수도권을 위주로 한 의료자원의 편중과 의료기관간의 양극화 문제 등 자원배분의 불균형이 점차 심화되었고, 자본력에 우위가 있는 대형병원들이 건강보험 재정지출의 상당부분을 점유하면서 입원과 외래 영역을 모두 잠식하고 있다. 시설과 장비 등 고비용 중심의 왜곡된 경쟁방식은 의원, 병원 구분 없이 의료 생태계 전체를 관통하는 일반화된 질서체계가 된지 오래이다. 무분별한 고가장비 도입이 고급의료로 상징화 되면서 과잉투자를 회수하기 위한 유인수요나 과잉진료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구조이다.

 

고비용·비효율로 요약되는 공급체계의 왜곡은 일차보건의료 본연의 기능을 담보하기 어려운 구조적 요인으로 작용한다. 의원의 접근성에 지역격차가 발생하는 이유도 도시와 농촌지역간의 의원 기관수 불균형에 기인하며, 시민들이 의원의 낮은 의료서비스 질을 지적하는 이유도 표준화된 진료에 우선하기 보다는 수익성 위주에 비급여 진료에 치중하는 진료행태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실제로 의원의 총 진료비 가운데 비급여 비중은 19.6%로 종합병원급 이상 의료기관(대학병원 포함)의 비급여 비중 14.8%보다 높은 수준이다(국민건강보험공단, 2018). 건강보험 보장성 정책도 암, 희귀난치질환 등 중증질환 중심의 선별적 접근의 영향으로 질환별 보장률 격차도 심화되어, 본인부담 산정특례 대상인 4대 질환의 평균 보장률은 81.7%로 타 질환에 비해 높으며, 전체 인구집단의 평균 보장률 62.7%(2017년 기준)를 크게 상회한다. 특정질환 중심으로 치우친 보장성 대책은 근본적인 의료비 부담 절감에 있어 한계가 있는 것으로 지적되어 왔다. 연간 본인부담 진료비 합계가 500만 원 이상인 환자 중에는 4대 중증질환 이외의 질환을 가진 환자가 47%에 달하며(국회예산처, 2012), 재난적 의료비 발생 가구(소득 대비 의료비 비중 10% 기준) 중 위암 환자 보유 가구는 1.2%인 반면 오히려, 고혈압이나 당뇨 환자가 있는 가구 비율은 무려 32.2%로 압도적으로 높다(윤희숙, 2013). 일차보건의료의 주요 대상자인 만성질환 환자들의 재난적 의료비 발생 비율이 높다는 점은 경제적 이유에 따른 일차보건의료의 접근성 제약으로 귀결되는 문제이다. 그동안의 보장성 정책의 접근방법 등 구조적 원인이 질환별 보장률 격차를 초래하면서 일차보건의료의 접근성 격차에도 영향을 주었다고 볼 수 있다.

 

소결

앞서 살펴보았듯이 보건의료의 왜곡된 질서 체계 속에서 일차보건의료 본연의 기능을 담보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시민들도 일차보건의료의 중요성을 인식하나, 증상 발생시 실제 이용 행태는 병의원 구분없이 자의적 판단에 의해 의료기관을 찾는다. 지난 9월 보건복지부는 상급종합병원(대학병원 등)의 환자쏠림 현상을 방지하겠다며 의료전달체계 개선대책을 발표했다. 상급종합병원이 중증질환 위주로 진료를 하도록 지정기준을 개선하고, 상급종합병원과의 의뢰․회송방식에도 변화를 주어 병·의원 의사 판단에 따른 직접 의뢰를 강화한다는 등의 내용이다. 경증질환은 동네 병·의원에서 중증질환은 대형병원에서 진료를 받도록 하는 원칙에 반대할 국민은 없을 것이다. 가벼운 질환인데도 굳이 대형병원에 가서 불필요한 비용부담을 할 이유가 없고, 중증질환이라도 지역에 있는 병원에서 양질의 진료를 받을 수 있다면 수도권에 있는 큰 병원으로 가야 할 이유도 없다.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믿고 신뢰할 만한 적합한 의료기관을 이용하는 것이 중요하나 환자를 대리하여 이를 안내하고 보장해 주는 구조나 체계는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정부의 판단은 여전히 대형병원을 선호하는 수요자의 의료이용 행태가 문제라는 의식이 깔려 있으며, 경증질환의 경우 환자본인부담금을 높이는 방식으로 대형병원 의료이용을 억제하겠다는 입장이다. 단순히 상급종합병원 집중을 방지하고자 국민들의 비용부담을 높인 것이라면 이러한 제도운영은 절대로 실효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국민들이 믿고 신뢰할 수 있는 의료기관이 국민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공적 개입의 필요성도 여기에서 찾아야 한다. 공급자나 정부관료의 관점이 아니라 ‘환자 경험’이나 ‘반응성’을 근거로 의료기관의 신뢰성을 저해하는 요인들을 찾아내야 하며, 일차의료 영역에서는 환자를 대리하는 주치의 제도 도입 등 문지기 역할도 분명히 있어야 한다.

 


참고문헌

국민건강보험공단, 2017년도 건강보험환자 진료비 실태조사, 2018.

국회예산정책처, 건강보험사업평가, 2012.

보건복지부, 보건의료 정책방향 대국민 설문조사, 보건의료미래위원회, 2011.

윤희숙, 고령화를 준비하는 건강보험 정책의 방향, 한국개발연구원, 2013

이진용 등, 의사, 일차의료에 대한 인식, 의료정책연구소, 2016.

 

황도경·안수인, 미래 보건의료 정책 수요 분석 및 정책 반영 방안, 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18.

수, 2019/12/04-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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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의글

http://www.peoplepower21.org/1672963" rel="nofollow">복지동향 제254호 | 정형준 월간 복지동향 편집위원,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부위원장

 

기획주제: 한국 일차보건의료체계 현황과 대안

http://www.peoplepower21.org/1672986" rel="nofollow">[기획1] 일차보건의료체계의 중요성과 함의 | 신영전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http://www.peoplepower21.org/1673002" rel="nofollow">[기획2] 일차의료와 주치의제도 | 이재호 가톨릭의대 가정의학교실 교수

http://www.peoplepower21.org/1673017" rel="nofollow">[기획3] 시민 관점에서 본 일차보건의료의 개선과제 | 김준현 건강세상네트워크 대표

http://www.peoplepower21.org/1673042" rel="nofollow">[기획4] 방문진료와 지역의료의 실험 | 홍종원 방문의료클리닉 건강의집의원 대표원장

 

동향

http://www.peoplepower21.org/1673056" rel="nofollow">[동향1] 아이들이 ‘집다운 집’에 살 수 있기를 | 김승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경기아동옹호센터 소장

http://www.peoplepower21.org/1673069" rel="nofollow">[동향2] 유엔 아동권리위원회 채택 최종견해 이행을 위한 당사국의 책무 | 김희진 국제아동인권센터 변호사

  

복지톡

http://www.peoplepower21.org/1673083" rel="nofollow">[복지톡] 제1회 매드프라이드를 개최하기까지 | 심명진 안티카 대표

 

생생복지

http://www.peoplepower21.org/1673099" rel="nofollow">[생생복지1] 평균의 함정에 빠진 서울시 복지사업 | 김경훈 서울복지시민연대 간사

http://www.peoplepower21.org/1673135" rel="nofollow">[생생복지2] 어떻게 협력이 변하니? | 김경훈 서울복지시민연대 간사

수, 2019/12/04-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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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의 글

 

김형용 월간 복지동향 편집위원장, 동국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2020년,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고 세 번째 해에 들어섰다. 햇수로는 4년차다. ‘나라를 나라답게’ 세울 것이라는 약속에 대한 기대가 허튼 것이었는지 아니면 현실 정치에 대한 무지였는지, 그만큼의 실망과 좌절 그리고 허탈한 목소리가 곳곳에 들린다.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는 정치는 그리도 무리한 것이었는가? ‘국민의 생존권 보장’이란 집권을 위한 수사에 불과한가? 2020년 복지동향은 현 정부의 복지국가 공약 이행에 다시금 주목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 첫 번째 기획은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부양의무자기준 완전 폐지이다.

 

2019년 하반기만 해도 8월 관악구 모자의 아사, 11월 성북구 다가구주택과 인천시 임대아파트 일가족 자살, 12월 대구에서 성탄절을 앞두고 생계비관 가족 자살 등 빈곤가족의 비극은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 국가는 그동안 열심히 복지사각지대 발굴을 위해서 뛰어다녔다지만, 복지총량과 보장수준 그리고 제도개선이 없어 수급권의 획기적인 변화도 없었다. 여전히 빈곤가족은 부양의무자기준이나 부양의무자 금융정보동의서 제출 등 생계급여 신청과정에서 탈락하고 있다. 이에 120만 명 수준의 생계급여와 140만 명 수준의 의료급여의 수급자는 문재인 정부 출범 전과 후의 변화가 없다. 당초 약속은 어디쯤 와 있는가? 부양의무자기준 완전폐지를 공약한 문재인 정부는 교육급여와 주거급여에서만 부양의무자기준을 폐지하였지만, 이는 어차피 빈곤완화의 효과는 거의 없는 부가적인 급여에 불과하기 때문이었다.

 

언제나처럼 부양의무자기준 완전 폐지는 정치적 결단의 문제가 아니라, 재정적 뒷받침과 사회적 합의의 문제로 호도되고 있다. 그러나 이는 팩트가 아니다. 본 호 기획글에서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1,842일의 광화문 농성을 언급하였다. 이 농성은 빈곤한 이들이 죽지 말고 같이 살아서 세상을 바꾸자는 싸움이었고, 끝내 부양의무자기준 완전폐지라는 공약을 얻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공약은 소득기준과 장애기준을 적용한 극히 일부의 인구집단만을 대상으로 하는 안으로 후퇴하였고, 중증장애인 가구 부양의무자기준 완화로 단지 1만 8천 가구만 추가적인 수급대상이 될 뿐이었다. 재정적 이유로 가장 적은 인구만을 제도 내로 진입시키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한편 손병돈 교수는 생계급여에 대한 부양의무자기준을 완전히 폐지할 때조차 소요되는 1년 예산은 최대 1조 3,250억 원으로 추정하였다. 이 추정치도 비수급빈곤층이 100%로 신규 수급자로 전환된다는 가정에 기초한 것으로 실소요액은 이보다 훨씬 낮을 것이다. 김승연 연구위원은 서울형기초보장의 사례를 통해 비수급빈곤층을 해소하기 위한 제도는 소득과 재산 기준의 완화가 아니라 부양의무자기준 폐지임을 지적하고 있다. 서울은 주거급여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이후 수급가구 수가 10개월 만에 약 3만 4천 가구가 증가한 것에서 비춰보아 생계급여의 비수급빈곤층의 대다수도 부양의무자기준에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김경서 민달팽이유니온 활동가는 30세 미만 인구의 주거급여 수급 제한의 문제를 지적하였다. 30세 미만 미혼 청년의 경우 주거급여를 지원해도 2만 6천여 가구에 연 400억 원 정도에 불과하다. 전혀 과다한 예산이 아니다. 문제는 청년의 빈곤을 들여다보려는 노력 없이 정형화된 인구집단으로만 빈곤을 규정하려는 관료적 태도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결국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부양의무자 원칙은 여전히 시대환경 변화에도 불구하고 민법의 가족과 인륜, 즉 직계가족은 ‘남’이 아니라는 도덕적 시각에 기초할 뿐이다. 가족부양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하는 사회의 비극이 연일 나타나고 있는데, 여전히 국가는 가구 단위로 수급을 규정하여 공적 책임보다 사적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이 원칙은 가장 빈곤한 가족들에게 가장 엄격하게 적용되고 있다. 인간다운 생활보장은 최종적으로 국가의 책무이다. 정치공동체가 약속한 최소한의 목표다. 더 늦기 전에, 기초적인 생활보장이라는 공적 약속을 적극적으로 이행할 것을 촉구한다.

화, 2020/01/07- 0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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