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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주제3]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방향

[기획주제3]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방향

익명 (미확인) | 금, 2015/04/10- 15:29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방향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 이찬진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제도는 과거 직장별 의료보험조합과 지역별 의료보험조합, 공무원․교직원 의료보험조합 체제로 운영하다가 1차로 1998년 법률에 따라 지역별 의료보험조합과 공무원․교직원 의료보험조합의 조직통합을 이루었다. 그리고 2차로 2000년 7월 직장 의료보험조합까지 통합하여 단일보험자인 국민건강보험공단 체제로 운영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재정적자인 지역의료보험조합과 재정흑자를 이루고 있던 직장의료보험조합이 직장조합을 중심으로 재정통합을 진행되었다. 결국 투명한 소득을 갖고 있는 직장가입자들이 소득파악률이 낮은 지역가입자들보다 보험료를 더 많이 부담하게 되어 평등권을 침해한다는 등의 이유로 여러 차례에 걸쳐서 헌법재판을 제기하였으나 2012년도 헌법재판소의 2009헌마299호 사건의 합헌결정에 이르기까지 모두 합헌 결정이 내려진 바 있다.  2000년 7월 통합 건강보험체계가 출범하면서 법률에는 소득이 없는 자로 규정하여 기존의 직장가입자들의 피부양자 제도를 존치하였으나 실제 운영기준은 기존의 기준대로 적용하였고, 그 대신에 지역가입자들의 재정 부족분을 메우기 위하여 100분의20 범위에서의 국가재정지원금 제도를 도입하였다.

 

그리고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 인정 기준은 그간 5차례 강화되어서 2013년 6월 현재 근로․기타 소득의 연간 합계액 4000만원 초과자, 연금소득의 100분의50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2000만원 초과자를 피부양자에서 제외하였다. 한편, 현금영수증 제도 및 신용카드 소득공제 제도의 지속적인 시행으로 인하여 지역가입자들의 소득파악률이 크게 개선되었다. 통계적으로는 건강보험제도의 통합 당시 직장가입자(피부양자 포함) 대 지역가입자가 1:1 수준이었으나, 2013년 연말 기준으로 7;3으로 변경되었으며, 피부양자 역시 15,281,000명에서 같은 기간 20,400,000명으로 증가하였다. 이와 같은 피부양자는 건강보험 적용대상자의 40.8%에 해당하는 매우 기형적인 구조이며, 이들에 대한 요양급여 비용은 전체 요양급여비의 49.3%인 18조 8055억 원에 이르고 있다. 

 

한편,  직장가입자들의 보험료 부과 대상의 98.5%는 월급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이에 반하여  지역가입자들의 경우는 소득이 25%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재산과 자동차, 경제활동참가율 등의 요소로 이루어져 있어서(생활수준 및 경제활동 참가율을 소득 유사기준으로 포함하여도 53%에 불과함.) 나머지 47%는 재산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건강보험제도 통합 초기에는 지역가입자의 보험료 중 소득을 기준으로 한 것이 60%이상이었던 것이 크게 악화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최소한의 생계책임재산에 해당하는 전․월세보증금 및 영세 주택 보유분까지도 재산부과 대상으로 적용되는 등, 소득이 없는 저소득층 가입자들에게 가혹한 구조로 지역가입자의 보험료 부과체계가 운영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2015.3.10.자 감사원 감사결과 보도자료 참조) 

 

사정이 위와 같기에, 2010년 이후에는 지역가입자들 집단에서 보험료부과기준이 지역가입자에게 불리하게 되어 있다면서 헌법재판을 제기하는 등 집단적이고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고 있는 형편이다. 위와 같은 제도 현실을 기초로 할 때, 우리는 적어도 통합 건강보험 제도 초기의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의 보험료 부담의 형평성을 감안한 기형적인 피부양자 제도, 나아가 지역가입자들 중 빈곤층에 가혹한 재산중심적 보험료부과체계는 전면적으로 개선되어야 할 사항임을 받아들여야함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간에 이원화된 부과체계에 관하여 정부와 상당수의 전문가들이 소득 중심의 부과체계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여 왔고, 그 내용에 있어서도 다양한 입장을 전개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이원화된 보험료 부과체계는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의 소득유형이 다르다는 점을 감안하여 보험료 부담능력의 형평성을 제고하기 위하여 다른 것은 다르게 설계된 것으로서 나름대로의 역사성과 정당성을 갖고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여기에 현재 한국 사회의 급격한 고령화에 따른 향후 직장가입자 숫자의 지속적인 감소 등 인구구조의 변화 및 노인 인구 1인당 진료비가 그 밖에 인구 진료비보다 평균 4.4배 이상 지출을 하고 있는 현실과 제도의 지속가능성 역시 함께 고려되어야 할 요소 중요한 요소가 된다. 결국 고액자산에 대한 부담능력의 형평성을 감안한 보험료 부과체계의 유지와 향후 고령화에 따른 보험재정의 소요를 충족하기 위한 조세(국고지원비율)의 지속적인 확대 역시 부과체계 개편과 함께 추진되어야 할 시대적 과제임을 알 수 있다.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과 관련한 고려 사항

 

이상과 같은 점에서 볼 때,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은 건강보험 재정을 부담하는 3대 축인 가입자, 직장가입자의 사용자, 정부가 주체라는 측면에서 종합적으로 접근하여야 할 문제라 할 수 있다. 가입자 상호간의 보험료 배분의 형평성을 제고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이나 이에 국한되어서는 안 되며 여기에 우리나라의 인구구조 변화의 추계전망은 매우 중요한 변수로 접근되어야 할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생애주기적 관점 및 향후의 인구구조의 변화 및 노후소득보장의 변화를 아울러 볼 때 가입자 종별에 따른 단순 구분에 의한 보험료 부과기준을 소득을 단일 기준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현재와 같이 지역가입자의 재산을 포함한 부담능력을 기준으로 할 것인지의 문제는 당위론적으로 접근할 문제는 분명 아니다. 여기에 우리나라의 지역․직장조직의 통합과정에서 불완전한 재정통합에 따른 갈등 봉합의 유산으로, 법률에 반하여 남아 있는 소득있는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 청산 문제를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에 관한 부분도 사회적 합의의 기조 하에 접근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 과정은 기존과 같은 정부 주도 하에 특정 전문가 집단의 연구 성과물에 갇혀서 정부와 여당 내부의 당정 협의만으로 진행되어서는 안 될 것이며, 노․사․정․국회․시민사회를 망라한 민주적이고 투명한 절차와 과정을 거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노인진료비 폭증과 인구구조 변화의 위험

 

<표 3>에 의하면 현재 건강보험적용대상 인구 중 65세 이상 노인 인구비율은 매년 0.3%에서 0.5%씩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표 4>에 의하면 65세 이상 노인 인구의 월평균 진료비는 65세 미만의 그것보다 평균 4.4배 이상임을 알 수 있다. 여기서 현재 건강보험 급여비용 중 65세 이상의 인구 11.7%가 사용하는 보험재정은 전체의 51.48%(=0.117X4.4.)를 상회하는 것을 추정할 수 있다. 이것은 노인장기요양보험의 급여비용을 제외한 순수한 건강보험급여비용을 기준으로 산출된 결과이다. 또한, 건강보험급여비는 2014년 기준 전년 대비 6.6%가 증가하고 있는데 이는 같은 기간 중 수가 인상이 미미한 점을 고려하여 보면 대부분의 원인이 고령화에 기인한 것임을 추정할 수 있다. 

 

문제의 심각성은 우리 사회의 급격한 인구구조의 변화에 있다. 아래 <표 5>는 우리나라의 과거 노년부양비와 미래의 노년부양비 추정표이다. 2013년의 노년부양비 16.7%를 기준으로 할 때 저출산의 여파로 2020년까지는 연0.8%, 2030년까지는 연 1.65%, 2040년까지는 연 1.86%,  2050년까지는 연 1.38%, 2060년까지는 연 0.96%로 매년 가파르게 노인인구 및 노년부양비가 증가되며, 그 결과 2060년에는 노년부양비가 무려 80%를 초과할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노년부양비 적용 인구를 현실적으로 20세 이상으로 변경 적용할 경우 현재 경제활동인구 1인당 65세 이상의 인구가 0.2명 정도로 추산하면 2060년에는 1:1 정도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역설적으로 현재의 직장가입자 숫자의 절대적 감소가 지속된는 것을 의미한다. 

 

2015년 3월 3일 통계청의 장래인구 추계에 따르면 올해 생산가능인구 100명당 고령인구(65세 이상)의 부양비는 18.12명으로 추산하고 있다(이것은 위 통계보다 인구고령화 속도가 훨씬 빠르게 진행되고 있음을 말함). 2015년 기준 15∼64세 인구는 3719만4000명, 65세이상의 인구는 674만 명인데 통계청은 앞으로도 급속한 고령화가 진행돼 2060년에는 생산가능인구가 2692만3000명, 65세 이상 인구가 2077만 3000명에 이를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2015. 3. 4. 서울신문기사에서 인용) 경제활동인구 즉, 직장가입자로 지칭할 수 있는 인구집단은 향후 45년간 34%정도가 절대적으로 감소함에 반하여 그 피부양자나 지역가입자로 전환될 집단은 2.9배가 증가할 것임을 시사하는 것이다.  이를 통하여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은 현재의 직장가입자(피부양자 포함) 대 지역가입자의 비율인 7:3은 다시 바뀌어 지역가입자의 비율이 본격적으로 증가할 것임을 시사한다. 따라서 인구구조의 변화(저출산-고령화)는 건강보험의 지속가능성이라는 측면에서 반드시 우선적으로 고려하여야 할 독립변수임을 확인할 수 있다.

 

 

결국 청년인구 감소와 고령인구 폭증이 국민총소득 중 근로소득의 비중 감소를 초래할 것임이 넉넉히 추정되며 이를 대체하여 기업소득의 비중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노동의 자본소득 배분율은 지속적으로 하락할 것을 시사한다. 또한, 2012년도 기준으로 근로소득 외의 소득 대 과세소득 기준 근로소득의 규모가 266.6.조원 : 201.2조원으로 근로소득 외의 소득이 늘어나는 추세는 더욱 증가할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결국 현재와 같은 직장가입자의 근로소득을 중심으로 한 보험료 부과체계만으로는 건강보험의 재정을 책임질 수 없다. 오히려 자산 양극화의 현실에서 노년 계층이 다수의 자산을 과점하고 있고, 이들 계층이 건강보험재정의 대부분을 소비하는 집단이라는 점을 아울러 볼 때, 이들의 부담능력에 따른 보험료 부담이 재정부담의 형평성이라는 관점에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의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기업퇴직연금이 확대되어 2040년 정도에는 노인 인구의 50-60%가 비록 낮은 수준이지만 현재기준 월 100만원의 연금 소득을 실현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특수직역연금 수급자들도 증대되어 현재기준 월 200만원 이상의 연금 소득을 실현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같이, 은퇴자들이 일정한 노후 현금 소득을 보편적으로 확보하는 시점이 되면 현재의 피부양자들 상당수가 연금소득자의 지위도 고려되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기업부담의 여력이 증가에 따른 기업부담분의 증가가 필요하며, 전반적으로 GDP 대비 근로소득의 비중 저하에 따른 보험료 수입을 메울 수 있는 국고부담 확대 방안과 고액자산가의 보험료 부담능력, 연금소득을 포함한 총체적인 소득에 대한 보험료 부과체계를 고려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재정적 요인을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선방안에서 고려해야할 것이다. 

 

 

 소득 중심의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선안에 대하여

 

보건복지부 산하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선 기획단’은 1년 남짓의 활동결과를 기초로 최근 7개의 개선모델을 발표하였다. 모든 모델은 직장가입자의 보험료 부과대상 소득을 현재 수준으로 고정하고, 보수 외 별도 종합소득(7안은 연 336만 원 이상의 모든 소득)과 지역의 성․연령, 자동차 폐지 및 재산에 있어서 기초 공제, 소득에 있어서 직장가입자와 동일한 연5.89% 정률 부과를 기초로 한 것이다. 마지막 모델만 1687억 원 상당의 재정 흑자를 전망하고 있고, 6가지의 모델 모두 재정 적자를 전망하고 있다. 특히 직장가입자로부터 추가로 확보되는 재정규모가 1번 모델은 2533억 원, 7번 모델은 3.3조원이 증가하는 반면, 지역가입자에게서는 1조원~3조원 정도의 감소를 추정하고 있다. 결국 7개의 모든 개선안들은 근로소득에 대한 현재의 80%상당의 비중을 고정한 채 향후 인구구조 변화 및 근로소득의 비중감소, 소득유형의 변화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서 중․장기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선방안으로서는 크게 부족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현재의 개선방안을 기초로 부과체계 개편을 논의하는 것은 미시적인 접근이라는 한계를 띨 수밖에 없다.

 

 

 총소득 중심 및 일정 수준 이상의 자산에 대한 보험료 부과를 포함한 대안

 

지속적인 사회고령화와 자산양극화의 현실 및 고령화에 따른 의료비지출의 지속적인 증가, 경제활동인구의 절대적 감소라는 명백한 조건 하에서 건강보험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 방향은 현재와 같은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로 이원화된 보험료 부과체계만을 전제로 하여 진행되어서는 곤란하다.

 

최우선적으로 보험가입자들의 총 소득을 보험료 부과기준으로 하여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명제이며, 현재와 같은 국고지원 14%와 건강증진부담금 6% 수준의 재정지원비율도 연차적으로 지속적으로 증가시키는 법․제도 정비가 수반되어야 한다. 현재와 같은 지역가입자에 대한 형평성과 비례성조차 의문시되는 재산보험료 제도는 즉시 개정하여 일정 자산 이상의 가입자에 대하여 상한선 없이 재산보험료 부과제도로 대폭 전환할 필요가 있다.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 제도 역시도 대폭 개선되어야 한다. 연금소득을 감액하여 보험료 부과대상 소득을 축소하는 것 역시 형평성과 제도의 지속 가능성을 저해하는 것이므로 철폐되어야 한다. 나아가, 소득과 재산 양자에 있어서 부과대상 소득 및 재산의 상한선은 당연히 철폐되어야 하지만, 그것이 여의치 않다면 보험료와 별도로 사회보장세나 이에 유사한 법인세와 소득세, 상속세 및 증여세 등에 부가하는 형식의 직접세 방식을 함께 도입할 필요가 있다. 

 

특히, 노후소득 보장제도가 보편화되는 2040년을 전후한 시기까지 현재와 같이 직장가입자들의 경우는 소득중심으로,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 및 지역가입자의 경우에는 소득과 재산을 매칭한 방식으로 구분하는 보험료 부과체계는 보험료 부담능력에 맞는 보험료 부과체계로서의 일정한 정당성과 역사성을 유지할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현재의 구분을 무시하고 소득 단일 부과체계로 개편하여 직장과 지역을 구분하지 않고 소득 단일 부과체계만을 내용으로 한 제도를 설계하는 것은 자칫 근로소득자들의 보험료 부담만 가중시키는 것으로서 인구구조 변화나 근로소득 비중 감소 전망에도 맞지 않는 것이어서 동의하기 어렵다.

 

나아가, 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은 조세에 의한 정부부담을 확대하는 방안 및 기업의 보험료 부담 확대 방안과 가입자들에 대한 보험료부과체계 개선 방안  3대 분야 모두를 균형있게 다루어야 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보험료 부과 대상 소득은 직장이나 지역 모두 모든 소득(분리과세 소득 포함-상속, 증여, 양도소득 일체 포함)으로 단일화하는 것을 기조로 하여, 단기적으로는 근로소득, 사업소득을 제외한 나머지 소득 중에서 일정한 기준을 정하여(적어도 개선단의 2000만원 기준보다는 하회되어야 할 것임) 시행하고 해야 한다.  중기적으로 지역가입자에게 보험료 부과를 하지 않는 연소득 기준(그 이하는 의료급여 제도를 적용함)을 공제한 나머지의 모든  합산소득에 보험료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다만, 공적 연금소득에는 자신이 이미 연금보험료를 납부할 때 건강보험료를 납부한 가입자부담분이 있으므로 연금소득배율을 감안한 일정한 공제율을 적용하여야 할 것이다. 보험료 부과 상한선은 법률에 위임되지 않은 것을 시행령을 통하여 설정한 것이므로 위법하며, 즉시 폐지하여 부담의 형평성과 불평등을 시정하여야 할 것이다. 일정한 소득있는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는 원칙적으로 지역가입자로 전환되어야 할 것이다. 그 기준은 모든 소득 합산 2000만 원 이상(여기에 연금소득의 경우 일정 공제율이 적용되어야 할 것임)부터 단계적으로 확대․시행하되 사회적 합의를 통하여 직장가입자 측의 갈등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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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근 주민에게 피해만 주는 집회에도 ‘민주적 관용’이 필요할까?

이장희 창원대학교 법학과 교수

 

영국의 시사지 이코노미스트는 매년 세계 국가들의 민주주의 지수(democracy index)를 발표하는데, 우리나라는 지난 2018년에 이어 2019년에도 아시아 1위(세계 23위)의 민주국가로 기록되었다. 우리나라가 반만 년의 유구한 역사와 전통 문화를 자랑하지만, 대학에서 헌법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연구하는 필자로서는 우리가 ‘아시아 최고의 민주국가’라는 사실만큼 자랑스러운 것이 또 있을까 생각한다.

물론 이러한 놀라운 성과가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1917년에 조소앙 선생이 기초하였던 ‘대동단결선언’이나 1919년에 제정되었던 ‘대한민국 임시헌장’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 선조들은 일제에 의해 나라를 빼앗긴 암울한 상황에서도 과거와 같은 왕정으로의 복귀가 아니라, 민주주의와 인권 보장에 기초하는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려는 꿈을 꾸었다. 특히 1919년의 3·1운동이야 말로 우리 민족이 새로운 민주국가를 건설하겠다는 자주독립을 향한 의지의 표출이었으며, 그 결과 바로 우리 역사에서 처음으로 민주주의 헌정질서인 ‘대한민국임시헌장’과 ‘대한민국임시정부’가 탄생하였다. 그래서 3·1혁명은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민주혁명’인 것이다.

1945년 광복 이후에도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역사는 끈질긴 민주화의 역사였다. 이승만 독재를 물리친 1960년의 4·19민주혁명을 비롯하여, 박정희 독재에 저항한 1979년 부마민주항쟁, 신군부의 등장에 항거한 1980년 5·18광주민주항쟁, 오랜 군부독재에 종지부를 찍은 1987년 6·10민주항쟁, 그리고 박근혜·최순실의 국정농단에 항거하여 대한민국 헌정사상 최초로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 낸 2016년 12월의 촛불혁명까지, 반민주적 세력에 저항하여 나라다운 나라, 제대로 된 민주국가에 한번 살아보고 싶다는 국민적 의지와 참여, 크고 작은 희생이 마침내 대한민국을 ‘아시아 최고의 민주국가’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민주화의 국민적 의지와 열망을 담아 표출한 주요한 형태가 바로 ‘집회’였다는 점에 유념해 본다면, 지난 민주화의 역사는 곧 ‘집회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집회는 민주화의 과정에서뿐만 아니라, 이미 성숙한 민주화된 사회에서도 아주 중요한 기능을 한다. 특히 ‘집회의 자유’는 한 나라가 얼마나 민주화되었는지를 평가하는 잣대가 되기도 한다. 도대체 ‘집회의 자유’가 없이는 제대로 된 민주화된 사회라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과연 어느 독재국가에서 집회가 평화롭고 자유롭게 보장된다는 얘기를 들어봤는가?

집회가 민주주의에서 중요한 비중을 가지는 이유는 바로, 민주주의가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을 존중하고 그 자유로운 표현의 가능성을 보장하는 정치질서이기 때문이다. 어느 한 가지의 생각만 강요되고 그와 다른 생각이나 의견, 사상, 신념이 존중되지 않는 상황이라면 그것은 결코 민주주의라고 할 수 없다. 진정으로 민주주의에 가까워지려면 일단은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공존하고 서로를 존중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생각의 다양함과 갈등의 가능성을 인정하면서 그 속에서 공통의 의사를 수렴해 나가는 과정이란 점에서 다른 정치체제와 달리, 다소간에 좀 소란스럽고 혼란스러워 보일 수밖에 없다. 아마도 과거 군부독재 시절의 ‘총화단결’이란 구호에 익숙했던 사람들 중에는 이러한 혼란스러워 보이는 민주주의에 다소 답답하고 불안한 마음을 품는 경우도 있으리라 본다.

물론 생각이나 의견을 표출하는 방법에 꼭 집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요즘은 인터넷과 스마트폰 등 정보통신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시대여서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언제 어디서든 인터넷 게시판이나 SNS에 글을 올리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 아주 쉬워졌다. 물론 아직도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정보통신망을 통제하는 국가도 적지 않지만 우리는 그런 나라를 민주국가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집회는 나름의 고유한 특징을 가진 표현방법이라는 점에서 여전히 선호되고 있으며, 특히나 정보통신수단의 활용 덕분에 집회의 개최나 참여가 더 편리해진 환경도 생겨나고 있다. 예컨대 SNS로 함께 의견을 나누던 사람들은 좀 더 효과적인 항의 방법을 모색하면서 집회를 계획할 수도 있을 것이고, 또 그렇게 모인 참가자들끼리 서로 확신을 공유하거나 서로에게 의지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무엇보다 집회는 사회 내 힘없는 ‘소수자’에게 특히 중요한 의사표현 수단이 된다. 주류 언론에 접근이 어려운 사회 내 소수자들로서는 거리에서의 집회를 통해 단합된 힘을 과시하면서 효과적으로 의사를 표현하고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집회는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집단적으로 항의(抗議)하는 방식이란 점에서, 그 밖의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야기할 가능성이 매우 크기도 하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사람들이 통행하는 거리에서 교통 소통에 불편을 야기한다는 점이 그러하다. 또 여러 사람들이 모여 항의하다보면 흥분이 고조되기도 하여 자칫 폭력 등의 불법적 행동이 발생할 우려도 큰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한편으론 최고법인 헌법은 ‘집회의 자유’를 기본적 인권의 하나로 보장하면서도, 동시에 집회가 안전하고 질서 있게 개최될 수 있도록 법적 한계를 설정하고 있다. 그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법률이 바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집회 장소의 인근 주민들과 충돌이 발생하고 있어 사회적 관심을 끌고 있다. 특정 장소에서 집회가 반복적 또는 계속적으로 개최될 뿐만 아니라, 확성기 등을 이용하여 과도한 소음을 발생시켜 인근 주민들의 평온한 주거생활을 매우 어렵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청와대 인근 주민들이 연일 계속되는 집회와 확성기 소음으로 인해 주거생활에 많은 피해를 입고 있고, 심지어 그 인근 서울맹학교 장애학생들의 학습권까지 심각하게 피해를 입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집회가 사람들이 전혀 살지 않는 무인도나 산속에서 개최되는 경우가 아닌 한, 어떤 집회든 인근 주민의 삶에 다소 간의 피해나 불편을 야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것은 다시 두 가지 상황으로 나누어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하나는 집회란 것이 언제나 일정 정도의 소음을 유발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또 그런 집회의 자유가 법적으로 보장되고 있다는 점에서 한편으로는 인근 주민에게 주거 생활의 불편함을 다소 감수해 달라고 요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다.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도하게 집회 소음을 유발하거나 특정 장소에서 지속적으로 집회를 개최하여 그 인근의 주민들에게 과도한 불편이나 피해를 계속적으로 유발하는 상황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역시 두 번째 상황일 것이다. 이 경우 과연 어떤 장소에서 또 어느 정도로 소음이 발생해야 인근 주민에게 과도한 소음 피해가 생겼다고 할 수 있는지를 따져볼 필요도 있다. 하지만 그런 세세한 기준을 잠시 접어두면, 원론적으로 볼 때 타인에게 과도한 피해를 야기한다는 것은 ‘자유’의 정당한 한계를 벗어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 누구의 자유도 타인의 자유를 부정하면서까지 보장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과도한 소음 피해로 인해 그 인근의 주민들이 전혀 주거 생활을 영위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더 이상 그러한 집회의 ‘자유’는 법적으로도 정당화되기 어려울 수 있다. 

물론 우리는 지난 2016년에 국정농단사태를 경험하면서 거국적인 대규모 촛불집회를 경험하였고 그 과정에서 인근 주민들까지 합세하여 촛불을 들었던 일을 기억한다. 그렇다면, 흔히 말해서 “그 때는 옳고 지금은 틀리다”고 말할 수 있는가, 속칭 ‘내로담불’은 아닌지 의문이 제기될 수도 있겠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것은 바로 ‘비례성’이라는 법원칙이다. 말하자면 그 목적이 공적으로 중요한 사안일 경우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사용되는 수단으로부터 야기되는 피해가 좀 크더라도 그 수단은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그 목적이 공적으로 중요성을 가지지 못한다면 그 수단으로 인해 야기되는 피해 역시 그에 상응하여 작아져야 할 것이다. 지난 날 민주화의 과정에서 수많은 집회가 공권력과 충돌하면서 거리가 폐쇄되고 가게가 문을 닫는 등 피해가 적지 않았지만, 그 집회로 인해 발생하는 생활의 불편쯤은 다들 감수해주었고 심지어 그런 집회를 응원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청와대 인근의 주민의 평온한 주거생활의 방해, 특히 학생들의 학습권 침해까지 있는 경우에도, 우리는 그런 집회가 얼마나 중요한 공익적 목적을 위한 것인지를 먼저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만약 그 집회가 정말로 국가를 위기에서 구하는 중요한 공익적 목적을 가졌다면 아마도 지난 2016년의 촛불집회 때처럼, 그 인근 주민들이라도 집회에 공감하고 함께 동참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지금의 그 집회는 인근 주민들에게조차 공감을 얻지 못하고 오히려 심각한 피해를 호소하게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적어도 그 집회 참가자들 자신에게만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집회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게 한다.

그렇다고 피해를 끼치거나 공감할 수 없는 집회라고 하여 함부로 강제 해산해야 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어떤 집회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사실과 상관없이, ‘집회의 자유’라는 가치 자체가 축소되거나 경시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민주주의 하에서 또 소수자들에게 ‘집회’는 소중한 의사표현의 수단이기 때문이며, 또 그렇게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는 집회에 참여하는 사람들 역시 이 사회의 구성원이며 어떤 면에서는 또 하나의 ‘소수자’일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공감을 얻지 못하고 또 남에게 피해를 야기하고 있는 불순한 집회이더라도 우리가 함부로 그 자유를 부정하거나 해산하려 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떤 집회라도 근본적으로는 민주국가가 건강하게 유지·발전할 수 있는 근본적 기초이기 때문이며, 상황에 따라서는 거꾸로 우리 자신이 그런 집회에 참가하는 당사자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회의 자유’와 같은 기본적 인권을 함부로 배제해서는 안 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 헌법질서의 ‘근본적 가치’라고 부르는 것이다.

집회를 통해 사람들의 생각이 자유롭게 표출되고 또 그를 통해 민주주의가 건강하게 유지·발전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사회구성원들의 건강한 민주시민의 정신, 특히 민주적 관용과 공감의 자세 덕분이라 할 수 있다. 그와 반대로 우리 사회에 그런 민주적 관용과 공감의 노력이 사라진다면 결국 어떠한 집회도 불가능하고 민주주의도 시들해지고 말 것이다. 비록 지금은 공감하기 어려운 내용의 집회가 지금 내가 사는 동네에서 개최되면서 나에게 극심한 피해를 입히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법적으로 위법하다고 평가되어 당국의 처분을 받는지 여부를 떠나서, 적어도 민주시민을 자처하는 나로서는 더 큰 대의(大義)라 할 수 있는 ‘민주주의’가 더 튼실하게 뿌리내릴 수 있도록, 나와 생각이 다른 집회를 존중하고 용인하는 자세를 가져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소의 뿔이 비뚤어졌다고 하여 뿔을 바로잡으려다 소를 죽이고 말았던 ‘교각살우(矯角殺牛)’의 교훈을 알기 때문이다. 

이와 동시에 집회 개최자나 참여자들은 인근 주민이나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최대한 노력해야 할 것이다. 남에게 피해를 주더라도 오직 자신의 생각만 옳다고 여기고 관철하려는 사람들이 거꾸로 남에게는 관심과 이해, 민주적 관용까지 바라는 것이야 말로 독선적이고 자기 모순적 태도가 아닐까.

 

월, 2020/03/09-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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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진료와 지역의료의 실험

- 집을 찾아가는 의료가 만드는 다른 가능성

 

홍종원 방문의료클리닉 건강의집의원 대표원장

 

바람의 빛깔


"자기와 다른 모습을 가졌다고 무시하려고 하지 말아요. 그대 마음의 문을 활짝 열면 온 세상이 아름답게 보여요."
바람의 빛깔, 포카혼타스OST


 

가을이 되니 자연스럽게 올 한해 지나온 일들이 머릿속에 스친다. 존재감 없이 하루하루 성실히 살아가는 것이 삶의 신조인데 겁도 없이 방문진료 전문 의원을 개원해서 여러 사람들의 집을 찾아다니고 있다. 헤매고 있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우왕좌왕하고 있다. 집만 찾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배드민턴 치시는 분을 따라가고 하모니카 부는 모임에 간다. 방문을 하는 분들이 중증 장애인이기에 휠체어를 타고 배드민턴을 쳤고, 2층에서 1층으로 까지 하모니카 부는 분의 휠체어를 옮기는 것을 도와드렸다. 운 좋게 인연이 닿아 집을 찾고 있는 종국씨는 척수장애로 전동휠체어를 타고 생활하시는 분이다. 말씀이 많은 분이 아니라 항상 어떤 말을 건네야 할지, 어떻게 대화를 시작해야할 지 막막함을 느끼는 분 중 한 분이다. 그래도 차근차근 건강상태를 점검하였고 혈액검사를 통해 당뇨 위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만성질환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알려드리고 생활 습관에 대해서 질문하고 또 조언하였다. 집에서 진료 하다보면 의학 상담만하는 것이 아니라 식습관, 음주, 취미 생활, 사회적 관계망 혹은 신변잡기 이야기까지 한다. 그렇게 대화하던 중에 대학로에서 노래 연습을 하고 있다고 말씀해주셨다. 처음 해보는 일이라 힘들다고 하셔서 몇 번 가다 안 가시려고 하시나 걱정했다. 노래가 어떤 약보다도 좋은 치료라는 생각에 나름대로 지속하시도록 격려했다.

 

그렇게 6개월 정도 종국씨 집을 드나들었다. 다행스럽게 혈액검사 소견이 호전 되어 서로 기분 좋은 관계를 이어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공연 소식을 알려주셨다. 노래 연습이 힘들다고 하셔서 그만두시는 것은 아닐지 조마조마 했는데 공연 소식을 전해주시니 정말 반가웠다. 조심스레 언제, 어디서 하는지 여쭤보았다. 간다고 하면 부담스럽게 느끼실까봐 대단하시다고 잘하실 거라고 격려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공연 날이 되었다. 이 집, 저 집 다니느라 정신없이 살고 있지만 장소와 시간을 수차례 확인하여 공연을 보러 갈 여유를 만들었다. 대학로 이음센터 5층 공연장에 승강기를 타고 딱 내렸는데 마침 종국씨가 있었다. 반갑게 인사드렸다. 종국씨는 깜짝 놀라며 "어떻게 오셨어요." 하신다. "인터넷으로 찾아봤어요. 유명하시던데요." 종국씨가 속한 중창단은 한 장애인자립지원센터에서 진행하는 문화 프로그램 일환으로 탄생한 팀이었다. 스치듯이 말해준 이야기를 듣고 미리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공연관련 정보를 확인한 터였다. 겸손히 말하였지만 이 팀은 버스킹도 하고 가요제에서 상도 탄 실력파 팀이었다. 종국씨는 뒤 늦게 합류한 팀원이었다. 공연장에 온 아내분과 자녀분도 만나 인사 나누고 조용히 뒷자리에 앉았다.

 

멤버이자, 장애당사자인 장애인자립지원센터 센터장이 사회를 보며 공연을 시작하였다. 음악을 전공하지 않은 순수 아마추어라고 소개를 하고 노래 중간 중간 "들을만하시죠."하고 겸손하게 말하였다. 실상은 꽤 실력 있는 중창단이었다. 노래를 듣는데 지난 시간이 떠오르며 자꾸만 눈물이 흘렀다. 그들이 장애인이서 특별히 감동을 받은 것이었을까? 우리 사회는 정상과 비정상을 철저하게 갈라 인간 사회에 층위를 만들고 자기와 다른 모습의 사람들을 무시하고 차별하는 것이 일상이다.1) 나 역시 인지하든 못하든 차별의 시선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사실 의사란 직업이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나누고 비정상을 정상화 하는 역할을 한다. 중증 장애인들의 집을 찾으며 스스로는 다른 의사가 되고자 했다. “의사가 뭐 이래? 약도 안주고” 라는 소리를 듣더라도 집을 찾아가는 의료는 다른 의료여야 하지 않을까 고민했다. 8개월 동안 장애인 대상자를 만나며 장애란 단어 자체를 쓰지 않으려 했다. 내가 다시 그들을 장애인이라는 정체성으로 호명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 치료 대상으로 그분들을 대하지 않고 그저 이웃이자 친구가 되고 싶었다. 치료가 시급한 문제가 있다면 해결하고자 노력하였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그들의 삶의 이야기를 들었다. 정상(normal)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서로의 다른 점(비정상성) 덕분에 우리는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고 그 덕분에 아픈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다.

 

공연 사회자는 종국씨의 솔로 공연을 앞두고 소개하며, “이 분이 경추장애에요. 배에 힘을 못줘요. 그런데 노래를 기가 막히게 잘합니다.”고 소개하였다. 그랬다. 노래를 정말 잘하였다. 사회자는 노래가 끝나고 “노래 잘 하죠? 배에 힘을 못줘도 이렇게 잘 합니다. 여러 분도 잘 할 수 있습니다.” 감사하게도 노래를 못하는 비장애인인 나에게 희망을 전해주었다.

 


"얼마나 크게 될지 나무를 베면 알 수가 없죠. 서로 다른 피부색을 지녔다 해도 그것은 중요한 게 아니죠. 바람이 보여주는 빛을 볼 수 있는 바로 그런 눈이 필요 한 거죠. 아름다운 빛의 세상을 함께 본다면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있어요."
바람의 빛깔, 포카혼타스OST


 

집을 찾아가는 의사가 된다면

운 좋게 의사가 되었지만 병원이 내가 일해야 하는 공간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의사인 나에게도 병원이라는 공간은 답답하고 지루하며, 삭막하다고 느껴졌다.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만든 효율적인 공간 배치 속에 의사와 환자 모두 아늑한 돌봄의 기운을 받기 보다는 차가운 대상화의 시선을 느낀다. 의사와 환자의 관계는 검사나 기술에 의존하게 되었고 본질적인 만남은 사라졌다. 섬세한 진찰과 손길은 이미 낡은 것이 된 병원은 가지 않을 수 있다면 가지 않는 것이 이득인 곳이 되었다. 의사가 된 후 대형병원에 발을 들이진 않았지만 환자들을 만나고 싶었기에, 또 먹고는 살아야했기에 틈틈이 동네 의원에서 진료해왔다. 큰 열정 없이 반복적으로 진료를 해오며 차라리 나름의 철학으로 병원을 열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했다. 원체 끈기가 없고 오래 일하는 것을 힘들어 하는 사람이라 의료기관을 운영하는 데에는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새로운 환경이 다가오고 있었고 이 흐름 속에서 새롭게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학의 기술이 발달하여 보건의료 빅데이터를 통한 건강 관리기술이 유행하고, 유전자 치료를 통해 희귀질환을 정복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하지만 아직 완벽히 무르익지 않았는지 연구 자료를 조작해서 국민 건강에 피해를 끼치는 사례도 나타났다.2) 그럼에도 정부는 나서서 원격의료 및 바이오 헬스 산업을 도입하려고 서둘렀다. 오래된 시도들이지만 시간이 지나며 구체적인 모습을 갖췄고 기업과 정부는 한 편이 되어 장밋빛 전망을 전하고 있다.

 

한편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하는 체계에 대해서 관심이 커졌다. 과거와 다르게 질병의 양상이 만성질환 위주로 변하여 치료(cure)보다는 돌봄(care)의 중요성이 커졌다. 2018년 정부는 커뮤니티케어 종합계획을 발표하며 지역사회중심의 일차의료와 돌봄 서비스 체계를 만들겠다고 하였다. 방문의료, 재택의료 혹은 왕진 등의 이름으로 의사가 환자의 집으로 찾아가는 진료에 대한 논의도 활발해졌다. 그 동안 한국에서는 의사가 환자의 집을 찾는 진료는 활성화 되지 않았다. 오히려 불법으로 인식되었다. 의사의 선의가 환자들을 자신의 병원으로 유인하기 위한 노력으로 해석될 여지가 컸다. 의료행위를 의료기관이 아닌 곳에서 진행하는 것이기에 안전이 보장되지도 않는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방문 진료는 사회에 필요한 진료 방식으로 인정받고 있다. 일본의 경우 왕진은 국가 의료 제도 속에 적절한 지불 체계가 자리 잡았다. 영화, 드라마 등을 봐도 의사가 집으로 찾아가는 것이 문화적으로 익숙한 듯 했다. 왕진을 통해 불필요한 의료이용을 줄일 수 있고 적절히 처치를 제때 못 받고 응급실을 이용하여 소요되는 사회적 비용도 줄일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고령사회에 대비해 주기적으로 건강을 확인하여 질병을 예방 할 수 있다. 미국, 싱가포르 등의 국가도 다양한 방식으로 방문 진료를 시행하고 있다. 물론 한국 역시 보건소에서 시행하는 방문진료 및 방문간호 사업이 있고 노인장기요양제도 안에 방문간호 제도가 있다. 그런데 일반 의료기관에서 의사가 방문 진료를 전문하는 경우는 없었다. 가장 큰 이유는 방문해서 진료를 하는데 대한 수가가 책정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환자가 병원에 와서 진료 받는 경우와 찾아가서 진료하는 경우 받는 비용이 똑같다. 교통비 등을 환자에게 실비로 청구할 수 있다고는 하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병원 내 진료가 의사, 환자 모두에게 익숙하기에 집에서 하는 진료는 서로에게 어색하다. 무슨 대화를 어떻게 해야 할지 서로 모르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장애인 건강주치의 제도가 시작되었다. 장애인 건강주치의 제도는 중증 장애인도 건강할 권리가 있다는 취지로 거동이 불편한 중증 장애인에게 의사가 찾아가서 건강관리를 돕는 한국사회에서 처음으로 제도화된 왕진이다. 이 제도를 통해서 중증 장애 환자에게 의사가 방문해서 진료하고 적절한 처방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단순히 치료만 제공하는데 그치지 않고, 상담을 통해 생활습관을 개선하고 만성질환을 예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렇게 2019년 3월 중증 장애인 및 거동 불편자들의 집을 찾고자 건강의집 의원을 개원하였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시도하는 외래진료는 하지 않는 방문진료 전문 의원이다. 1회 방문당 30분에서 1시간 정도의 충분한 진료시간을 갖는다. 가정 방문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 돌봄 체계에 참여하고 실질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여러 기관 및 관계자들을 만나는 데 충분한 시간을 쏟았다. 지역사회에서 중증장애인과 칩거 노인들을 위해 헌신하는 가족, 이웃, 요양보호사, 활동지원사, 사회복지사, 동주민센터 행정직원, 보건소 방문간호사 및 치료사들을 만나서 고민을 나누고 도움을 서로 주고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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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진료, 그 너머의 가능성

의사의 역할은 병을 치료하는 것이다. 그런데 의사의 일상적인 진료가 사회의 건강을 증진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병원이라는 건강 생산 공장은 그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는가? 수명의 증가라는 근대적 목표 설정은 그 어느 나라보다 빨리 달성을 했으나 한국의 국민들은 아픈 몸을 이끌고 살며, 죽고 싶다는 생각을 언제나 곁에 두고 산다. 실제로 죽음을 시도한 사람도 많다. 그런데 의사는 계속 치료를 강제하고 건강하라고 이야기하는 것만 같다. 건강에 환장한 사회인데, 그것이 어떤 건강인지는 질문되지 않는다. 건강은 생산 가능한 가치인가? 치료기반의 의료가 건강한 사회를 담보하는가? 구매하는 건강, 강제된 건강이 우리가 성취해야할 목표인가? 어떻게 건강의 가치를 재구성할 수 있을까? 가령 고급 분양아파트의 주민들이 임대아파트 주민들과는 어떻게든 마주치지 않으려고 한다면 그것은 건강한 사회일까? 청년들의 불안이 향 정신 약물을 통해 조절되는 것은 장려되어야 하는가? 현재 의료의 제공 방식은 이런 질문들에 대한 적절한 대답을 제시하는가?

 

의학 기술은 날로 발전하는 것 같은데 역설적으로 건강을 돌보기 어려운 사회가 되었다. 어떤 질병도 치료할 준비가 된 사회이지만 여전히 가난한 이들은 죽지 못해 산다. 때론 죄송한 마음으로 사회와 작별한다.4) 건강을 지킬 수 있는 조건이 많을 때 우리는 건강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충분한 경제적 여유는 중요한 조건 중 하나이다. 장시간 일해야 하는 노동자는 돈의 많고 적음과 별개로 건강을 돌볼 여유가 없다. 4차 산업혁명의 유행 아래 그럴싸한 이름의 플랫폼 노동자들은 최소한의 안전망을 가지지 못한 채 생업에 종사하고 있다.

 

경제적 조건이 다소 부족하다면 꼭 갖춰야 할 조건 중 하나는 곁에서 잔소리를 끊임없이 해줄 존재이다. 도시에서 이웃과 관계를 맺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대부분의 관계는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구성된다. 일종의 거래로 경제적 이득이 매개되지 않으면 관계가 생기지 않거나 이어지지 않는다. 친구를 사귈 때도 어떤 이득을 줄 것이 기대될 때 흔쾌히 응한다. 많은 사람들이 사람들을 만나는데 드는 비용 때문에 집 밖을 나서지 않는다. 게다가 시간은 더욱 귀하기 때문에 아무나 만나서 낭비할 수는 없다.

 

아픈 사람에게는 절대적인 돌봄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 아픈 시간을 함께 견뎌내는 것은 외면하고만 싶은 어려운 일이다. 아픔 속에 있는 사람을 곁에서 바라보는 일은 참 버겁다. 의사이기 때문에 뭔가 해야 한다. 아프지 않도록 도와야 한다. 약을 처방하든지 주사를 놓든 뭘 하든 말이다. 그런데 나름의 노력을 해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온다. 가족과의 관계에서 오는 난감한 문제. 결코 개선되지 않은 통증. 그런 것들이 분명히 있다. 신이 해결해주지 않으면 해결이 되지 않은 상황들.

 

모든 아픔이 치료되지 않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는 치료받아야 할 존재인가? 생명이 있는 이상 아픔은 필연이다. 그런데 아픔을 다루는 방식은 다를 수 있다. 자신이 통제하지 못하는 아픔을 겪을 때 서럽지만 또 그것을 통해서 자신을 이해하고 세상을 이해할 수도 있다. 극복되지 않은 손상도 물론 있다. 아픔과 손상을 극복하는 것 아니라 자기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는 것은 서로의 존재를 받아들일 수 있는 관계라고 생각한다. 손상과 아픔을 ‘함께’ 겪는 것, 그 자체에 의미가 있다. 손상과 아픔을 누구와 어떻게 대처해나갈 것이냐. 그것이 신체든, 정신이든.

 

건강을 도모하는 일은 대단한 검사와 치료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신체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서 잠시 기술적 도움 받을 뿐이다. 건강을 홀로 돌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함께 사는 이들이 곁에서 긴 인생을 겪으며 울고 웃으며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는 것이 서로의 건강을 돌보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이다. 병원의 진료를 집으로 옮겨 놓는 것이 방문 진료의 전부일까? 그저 움직이지 못하기에 움직일 수 있는 쪽이 움직이는 편의성 제공인가? 방문 진료의 가능성을 더욱 생각해보려고 한다. 집이라서 가능 한 것들, 사는 곳이 알려주는 여러 단서들이 분명 있을 텐데 말이다. 방문 진료 전문 의원을 열기 전 나는 ‘집’을 운영했었다. 의사였지만 의료기관이 아닌 삶의 장소에서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어서 오래된 동네 상가를 얻어 ‘건강의집’이라고 이름 짓고 딸린 방 한 칸에 몸을 뉘었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모였고 모일 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편히 지내는 모두의 집이 되었다. 집을 구하기 어려운 청년 활동가들이 함께 살았다. 사적공간의 대명사인 집은 해방의 공간이 되었다. 운영했다기보다 문을 열어두었을 뿐이다. 오는 사람 안 막고, 가는 사람 안 붙잡으니 여러 사람이 드나들었다. 건강의집 의원을 여는데 계기가 된 이 공간 운영 경험을 통해 집은 관계를 촉진하는 장소가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같은 집을 여러 번 찾아가면 그 집의 모양과 냄새가 익숙해진다. 그 곳의 삶이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이후엔 그 너머의 삶을 함께 그려 볼 수 있다. 더 나아가 방문진료 경험이 차곡차곡 쌓여 새로운 건강 생산 체계를 모색해볼 수 있지 않을지 작은 기대를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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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원 건강의집 의원 대표원장의 모습(=맨 왼쪽) <사진 = 건강의집의원>

 


1) ‘장애인이기 때문에 차별받는 것이 아니라, 차별받기 때문에 장애인이 된다.’, 장애학의 도전, 김도현, 오월의봄

2) 종양유발세포가 들어간 골관절염치료제가 충분한 검증 없이 환자들에게 투여되었다. https://news.v.daum.net/v/20191115204105469 뉴스타파, 인보사를 ‘기적의 신약’으로 만든 언론.

3) 2019-10-20 제1회 사회적의료기관연합회 학술대회, ‘왜 방문진료인가’, 건강의집의원 김창오 원장 발표자료.

 

4) ○○구 N모녀 사건이 반복되지만 정부는 발굴 혹은 색출에만 혈안일 뿐 근본적인 해결을 위한 접근은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다. 그렇게 가난한 이들은 조용히 사라진다. http://beminor.com/detail.php?number=14036&thread=03r01 비마이너, 다가오는 ‘디지털 복지 디스토피아의 그림자.

수, 2019/12/04-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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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집다운 집’에 살 수 있기를

 

김승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경기아동옹호센터 소장

 

지난 10월 24일 국토교통부·보건복지부·여성가족부·법무부 등 관계부처 합동 「아동 주거권 보장 등 주거지원 강화 대책」 발표가 경기도 시흥시에 있는 한 초등학교에서 있었다. 사각지대가 없는 더 촘촘한 복지망을 만들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담은 「꿈을 키우고 꿈을 찾는 집」 선포식도 함께 진행되었다. 이 대책은 주거복지로드맵(2017.11) 발표 이후 취약계층·고령자 주거지원방안(2018.10)의 성과와 수요자·시민사회단체 등의 의견수렴을 통해 보완된 ‘지원방안 2.0’이다.

 

특히 이번 발표는 「아동 주거권 보장」이라는 이름으로 발표된 정부 최초의 정책이라는 데 큰 의미가 있다. 그동안의 아동에 대한 주거복지정책은 다른 정책들에 비해 우선순위 밖에 있었다. 사회통합형 주거사다리 구축을 위한 주거복지로드맵의 생애단계·소득수준별 맞춤형 지원방안에서도 청년, 신혼부부, 고령층에 대해서는 향후 추진계획이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만 아동가구의 경우 저소득·취약계층 내 빈곤아동가구 지원으로만 명시돼 있고 구체적인 계획이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전국적으로 아동주거빈곤 규모는 97만 명이다. 이 가운데 10명 중 1명은 더욱 열악한 주거환경 속에서 살고 있다. 비좁은 단칸방에서 다수의 가족들과 함께 지내고 있거나 방 안의 가득한 곰팡이로 폐렴 등의 질환을 달고 산다. 또, 화장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주변의 관공서 화장실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그림 1-1> 전국·서울·경기도의 아동주거빈곤 현황

<그림 1-1> 전국·서울·경기도의 아동주거빈곤 현황https://lh4.googleusercontent.com/FrJaah4bGAmBXhf-MCn0mBc_Ok9rmOalXMn1T0... />

자료: 통계청, 2015, 인구주택총조사

 

아동이 적절한 주거 환경을 제공받지 못하는 것 즉, ‘주거권’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것은 ▲안전권 ▲건강권 ▲발달권 등 다른 권리도 함께 침해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보호자만의 책임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가 함께 책임지고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그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을 포함한 시민사회단체는 정책에서 소외된 아동의 주거권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해 왔다. 또한 열악한 주거환경이 아동들에게 얼마나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알려왔다.

 

그 결과, 지난 2018년 3월, 2019년 7월 주거취약계층주거지원 업무처리지침 지원 대상에 최저주거기준 중 필수설비미달1) 아동가구, 최저주거기준 중 용도별 방 개수 미달인 아동가구, 출산예정의 미혼모가 포함되었다. 해당 가구는 보증금 50만 원과 주변시세 30% 금액의 월 임대료로 매입임대주택이나 전세임대주택 등의 공공임대주택에 우선 입주할 수 있게 됐다.

 

이와 함께 지난 4월 주거기본법 제3조 3항의 주거지원이 필요한 계층에 ‘아동’이 포함되었고, 10월 「아동 주거권 보장 등 주거지원 강화 대책」 이라는 결실을 맺었다. 이번 정책은 특히 아동의 주거권을 언급한 첫 번째 정책으로서 의미가 크다. 아동주거정책을 시혜적 관점이 아닌 권리로 보장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발표라는 점에서 기존의 대책과 다르다. 기존 신혼부부, 청년, 고령자 등에게만 별도로 있던 공급계획이 다자녀 아동가구로 확대되는 것이다.

 

이번 정책에는 아동 및 비주택 거주자 등 주거지원이 시급한 대상가구에 2022년까지 맞춤형 공공임대주택 3만 가구2)를 공급한다는 것과 금융지원 및 아동돌봄정착 등 맞춤형 서비스를 지원하고 수요를 추가 발굴하고자 하는 계획 등을 담고 있다. 아동가구의 경우 무주택·저소득이면서 최저주거기준 미달 주택에 거주하는 두 자녀 이상 가구가 적정 규모의 주택에서 살 수 있도록 정부가 전세, 매입 자금 지원을 늘려서 1만 1천 가구를 보급하고 주택구입 및 전세자금 대출시 금리를 인하하기로 했다. 또한 다자녀 가구가 사는 공공임대주택 안에 돌봄 공간을 조성해 주택 공급뿐 아니라 아동의 정서 발달도 지원한다. 보호종료아동3) 6천명에게는 지원주택의 유형을 기존의 전세임대에서 매입임대·건설임대 등으로 다양화하는 한편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또한 비주택거주자에게도 주택공급 뿐만 아니라 이주 및 정착까지 지원한다. 정부는 이를 위해 지자체를 통해 오는 연말까지 공공임대주택 수요조사를 실시 후 2020년부터 공급에 들어갈 전망이다.

 

<그림 1-2> 2019 아동주거권 보장 등 주거지원 강화대책

<그림 1-1> 전국·서울·경기도의 아동주거빈곤 현황https://lh4.googleusercontent.com/Akl3rX8Raebf_qcYsb0IpJJMyAa4h1KdQeoHX4... />

자료: 국토교통부

 

특히 이번 대책에서는 탁상행정이 아닌 시민사회단체의 의견을 듣고 여러 차례 현장 방문을 통해 수요자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직접 듣고 반영하려는 노력을 볼 수 있었다.

 

시흥시 정왕지역은 아동주거 빈곤 비율이 전국 1위이나 외관상으로는 주거 빈곤 형태의 확인이 어려운 지역이다. 하지만 실제로 집 안을 들어가 보면 불법 쪼개기를 통해 원룸으로 개조되어 여러 명의 아동과 부모가 함께 살고 있는 경우가 많으며 대부분 과도한 월세부담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LH가 매입을 통해 매입임대주택을 확보하려 했지만 구입할 수 있는 조건의 주택이 거의 없었으며, 그나마 매입할 수 있는 조건의 주택 또한 대부분 원룸이었다. 국토부와 LH 관계자들은 적합한 주택 매입이 어려운 상황을 파악하고 원룸 주택을 매입·리모델링하여 2룸형 주택으로 개조하는 공공리모델링 시범사업을 정왕동에서 시범사업으로 추진하게 되었고, 현 대책에도 포함해 발표했다. 이를 통해 정왕지역의 아동가구 중 적은 수이나 전학 없이 기존 살던 지역에서 매입임대주택으로 이사해 자신의 방을 가질 수 있게 됐다. 기존의 법령이나 제도 안에서는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림 1-2> 공공 리모델링 시범사업<그림 1-2> 공공 리모델링 시범사업https://lh5.googleusercontent.com/8-AXpee30DOc-cy0qivEYLXcvY97MGwf-SY8_5... />

 

두 번째로 다자녀 가구유형을 신설한 것이 유의미하다고 볼 수 있다. 전세임대제도는 신혼부부, 청년, 소년소녀가정, 기존전세임대제도 등으로 구분된다. 이중 신혼부부와 청년을 대상으로 한 전세임대지원금은 수도권 기준으로 1억2천만 원이나 소년소녀가정과 기존 전세임대제도의 임대지원금은 이보다 적은 9천만 원이다. 가구원 수가 많은 아동가구의 경우 신혼부부와 청년보다 더 넓은 면적과 방이 필요하지만 9천만 원으로 집을 구하다보니 면적이나 방의 개수가 최저주거기준에 미달인 집을 구하거나 반지하 또는 옥탑 등의 주택을 구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대책에서는 아동 성장에 필요한 적정 주거면적을 확보할 수 있도록 매입·전세임대 ‘다자녀 유형’을 신설하고, 호당 지원금액을 인상하여 자녀수에 적합한 면적(46~85㎡)을 갖춘 2룸 이상 주택을 지원한다. 수도권의 경우 아동 2명인 가구는 1억2천만 원까지 전세임대금을 지원 받을 수 있고, 아동 3명부터는 한 명당 2천만 원씩 추가 지원받아 임대주택을 구할 수 있게 된다. 매입임대 주택도 호당 구입단가가 인상되어 기존 생활권 내에서 다자녀 가구가 살기에 적합한 전세·매입임대주택 입주가 용이해졌다. 대책 발표 시 김현미 국토부장관이 언급한 “어린이도 성별에 따른 독립된 공간을 보장받고 갑작스러운 전학으로 친구들과 헤어지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정책이라 할 수 있겠다.

 

<표 1-1> 전세임대, 매입임대의 호당, 지역별 단가

<표 1-1> 전세임대, 매입임대의 호당, 지역별 단가https://lh3.googleusercontent.com/a83L1i4rTmHNvYgDvppU0BBEpPiFyZykEHWfHA... />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점과 향후 과제는 남아있다. 첫째 이번 발표의 정책대상이 아동가구 중 두 자녀 이상의 다가구에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최저주거기준미달인 1인 아동가구, 두 자녀 이상이나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지 않는 지하, 옥탑방, 구옥 등에 살고 있는 아동가구는 해당 되지 않는다. 현재 최저주거기준은 필수설비미달과 가구원수에 따른 방수, 면적만으로 미달여부를 측정하고 반지하, 옥탑 등의 구조, 성능, 환경 등에 따른 최저주거기준 미달여부는 판단하지 않는다. 때문에 반지하, 옥탑, 구옥 등과 같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사는 아동가구의 경우 최저주거기준 미달이라는 조건에 맞지 않으면 지원받기 어렵고 사각지대에 놓일 수 있다. 또한 두 자녀가 아닌 최저주거 미달가구인 경우 여전히 기존의 공공임대물량 한도 내에서 경쟁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사례1

반지하 방 2칸, 거실에서 부모 자녀 총 6명(부모, 자녀4-초ㆍ중ㆍ고) 거주, 계약형태는 전세(보증금 2,400만 원), 반지하이다 보니 집안가득 핀 곰팡이로 인해 아이들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는 상황이고 아버지 소득이 적은편이나 수급대상이 아니어서 전세나 매입임대 1순위가 아님. 또한 거실이 방으로 포함되어 최저주거기준 중 방 수 미달의 대상으로 분류되지 못하며 면적 미달에도 해당되지 않음.아동주거빈곤 사례#1https://lh4.googleusercontent.com/k5x4tkcSgfLTXvWW7vfkBSwGCQ7nYBqyNqFXt_... />


 

둘째, 기존 공공임대입주자에 대한 실태조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재 기존의 공공임대인 영구임대, 전세임대 등에 거주하고 있는 아동 가구 중 최저주거기준 미달인 환경에서 거주하고 있는 아동들이 있다. 임대주택의 과밀한 주거환경에서 지내거나 정부의 지원금으로 마땅한 전세임대주택을 구하기 어려워 반지하에 거주하기도 한다. 현재 공공임대로 입주해 있는 아동가구에 대한 실태조사를 통해 좀 더 나은 환경으로 이전하도록 지원하는 정책도 병행해 추진해야 한다.

 


#사례2

영구임대주택(11평)에 조모, 외삼촌, 아동5명(초중고) 총 7명 거주. 방은 총2개로 하나는 외삼촌이 사용하고 있으며 또 다른 하나는 거실과 이어져 아동들과 조모가 함께 사용하고 있음. 거실이 비좁아 아동 1명은 베란다에서 생활, 협소한 주거환경으로 인해 아동들끼리 서로 싸우며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는 상황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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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정책의 적극적인 홍보와 지자체의 역할 강화가 필요하다. 다양한 주거복지정책들은 모두 ‘신청주의’이다. 즉 수요자가 정책을 알고 해당기간에 직접 신청해야만 가능하기에 정부의 정책이 필요한 대상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으면 혜택을 받을 수 없다. 때문에 이번 정책이 실효성을 가지고 주거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홍보와 지자체의 적극적인 역할을 기대해 본다. 수많은 전문가들이 필요계층에 비해 공급물량이 너무 적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 올 연말에 계획된 다자녀 가구와 비주택 이주 희망 수요조사와 더불어 이에 따른 이주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이번에 확보한 3만 가구의 물량마저도 원활한 공급이 어려울 수 있다. 수요조사를 통해 수요량이 제대로 파악될 경우 보다 많은 물량을 정부에 요구 할 수 있다. 아동의 주거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관련 주거지원 정책이 마련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나 이후 정책이 제대로 가동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지자체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모든 아동들이 주거권이 보장되고 적절한 주거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게 되는 날까지 우리의 목소리는 계속될 것이다.

 


1) 전용 입식부엌 또는 전용 수세식 화장실을 구비하지 못한 주거환경

2) 다자녀 가구 1만1천 가구, 보호종료아동 등 6천 명, 비주택 가구 1만 3천 가구

 

3) 가정위탁 종결, 아동보호시설ㆍ청소년쉼터ㆍ자립생활관 퇴소

수, 2019/12/04-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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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를 넘어선 광기’, ‘혐오를 녹이는 온기’

: 제1회 매드프라이드를 개최하기까지

 

심명진 안티카 대표

기록 및 인터뷰 김경희, 홍정훈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간사

 


2019년 10월 26일 ‘제1회 매드프라이드 서울’이 열렸다. 1993년 캐나다에서 시작된 매드프라이드(Mad Pride)가 한국에서도 처음 열린 것이다. 성소수자의 축제인 ‘퀴어퍼레이드’가 이제 제법 큰 연례행사로 자리잡아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듯, 일상적인 혐오와 차별을 마주하고 있는 정신장애인의 축제인 매드프리아드도 점점 그 규모가 커지지 않을까. 사회적 소수자를 배제하고 억압하는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도 ‘혐오를 넘어선 광기’, ‘혐오를 녹이는 온기’라는 슬로건으로 매드프라이드를 준비하고, 정신장애인 당사자들과 창작문화예술 활동을 펼치고 있는 심명진 안티카 대표를 만났다.

 


- ‘안티카’의 활동을 소개해달라

“안티카는 ‘DSM-5’라는 의료학적 기준을 판정받은 사람만이 아니라, 자신이 정신장애인이라고 생각하는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단체다. 안티카는 정신장애인 당사자들과 함께 창작을 하고, 다양한 당사자들을 연결하는 네트워킹하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당사자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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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명진 안티카 대표 <사진 = 안티카>

 

- 당사자의 자립을 지원하기 위한 의미를 강조해서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달라

“사회활동을 하지 않는 당사자들이 안티카를 통해 사회활동을 시작하곤 한다. 안티카는 당사자들이 사회와 제대로 만날 수 있는 지점들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본인 삶의 주기성을 찾아서 사회로 편안하게 스며들고, 당사자 운동에 직접 참여하는 것을 돕는다. 안티카 사무실에서 주14시간을 일하는 상근 정직원들이 있다. 1주일에 하루 이틀 정도 본인이 원할 때 나와서 일하면 된다. 상근 활동가는 1명으로 시작해서 지난달에는 4명, 이달에는 6명이 됐다. 단원들을 만난 건 3년 전이고, 단체등록증이 나온 지는 2년이 됐다. 올해부터 상근할 수 있는 구조를 꾸렸다. 당사자들이 상근할 수 없다는, 일을 할 수 없다는 편견이 있는데, 그걸 깨는 것이 가장 큰 목표다. 직원들에게 서울시 생활임금보다 약간 높은 수준의 임금을 지급하고 있다.”

 

- 안티카의 상근 직원들은 어떤 일을 맡나?

“사람들을 만나는 일을 주로 한다. 가깝게는 매드프라이드 행사의 실무부터 시작해서 페이스북, 유튜브, 트위터 등 SNS 운영, 영상 제작, 자원활동가 업무 관리, 시설 관리, 대외 협력 및 홍보, 행정 업무  등 굉장히 다양한 역할을 맡아가면서 활동하고 있다. 매드프라이드의 상징인 ‘마르코’도 당사자들이 직접 만들었다.”

 

- 당사자들을 어떻게 만나게 됐는지 궁금하다

“한 정신건강복지센터의 팟캐스트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당사자들을 처음 만났다. 프로그램이 끝난 이후에도 만남을 유지하면서 서로 고민을 나눴다, 그냥 만나는 것보다 무얼 하면서 만나면 좋을지에 대해서. 단원들이 참여했던 프로그램 중 가장 좋았던 경험을 공유하면서 연극이 가장 즐거웠다는 걸 알게 됐다. 사람들에게 거부당한 경험,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았을 때 당하는 폭력, 끊임없는 자기검열에 시달리며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고 억압된 사람들이 가진 에너지는 상상을 초월한다.”

 

- 가장 기억에 남는 연극이 있다면?

“당사자 창작 단원들이 직접 대본을 쓰고, 캐릭터도 만들어서 만든 연극이 기억에 남는다. 특히 ‘약 먹어도 괜찮아’, ‘하얀방’은 당사자들이 직접 인생 그래프를 그려보고,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를 찾아보는 과정에서 다들 병원과 관련한 이야기를 골라서 그걸 풀어내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병원에서 있었던 이야기, 약을 먹는 이야기를 너무 싫어하는 사람들이 연극을 통해 억압된 에너지를 분출하기로 한 것이다. 병원에 입원했을 때 ‘코끼리 주사’, ‘빨간 약’을 투여받고 모든 감각이 끊긴 상태에서 시작해서 감각이 하나씩 허용되는 경험을 모두 공통적으로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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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공연을 준비 중인 안티카의 단원들 <사진 = 안티카>

 

- 제1회 ‘매드프라이드 서울’이 개최된 배경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한다면?

“12개 당사자 단체들에서 매드프라이드 부스에 참여했고, 전국에서 모인 소규모의 창작단체들도 함께했다. 한국에 중증장애인이 50만 명이 있는데 그 중에서 실제로 활동하는 사람은 소수다. 지역 재활시설에 있는 사람이 18%, 의료기관이나 요양시설에 있는 사람이 15% 정도 된다. 나머지 67% 정도의 사람은 사각지대에 있고, 어딘가에 갇혀 있다고 보면 된다. 당사자들이 자율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당사자들이 그냥 방치되거나 고립되거나 관리되는 환경을 벗어나서, 주체적으로 살아가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소규모의 창작단체들이 자신들의 활동을 알릴 수 있는 기회도 많지 않아서, 당사자들의 창작물을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을 알릴 수 있게 멍석을 깔아주는 역할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행사에는 인권운동하는 단체들도 많이 참가했다. 자원활동가도 50여명이 넘었다.”

 

- 매드프라이드를 개최하기까지의 과정이 순탄하지 않았을 것 같다

“처음에는 많이 힘들었다. 당사자 단체나 정신건강복지센터 등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쉽지 않았다. ‘10년 뒤에나 통할 걸 지금 하고 있다’, ‘비당사자가 당사자 운동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라는 등의 비판을 많이 받아서 힘들었다. 당사자들이 만든 창작물에 대한 비판도 있어서 가슴 아팠다. 최근에 크고 작은 당사자 축제가 굉장히 많아졌다. 이제 시작하는 단계라 그렇겠지만, 행사를 주최하는 단위별로 참여하는 당사자들의 결도 다르고, 행사를 준비하는 주체들 간의 연대도 쉽지 않다는 걸 느꼈다. 그중에서도 매드프라이드가 갖는 가장 큰 특징은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개인과 단체들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 당사자들이 참여하는 행사를 서울시청 광장에서 개최했다는 점도 큰 의미가 있지 않나?

“주최 측은 처음부터 광장에서 매드프라이드를 개최하는 것을 목표로 했고, 퀴어 퍼레이드를 오랫동안 준비했던 한채윤 선생님, 조성화 선생님도 많은 조언을 해주셨다. 나중엔 큰 조력자가 되어 주었지만 매드프라이드의 공간을 접수할 때 경찰, 서울특별시 시민건강국 보건의료정책과, 서울시 정신건강복지센터 등에서 굉장히 비협조적이었다. 자원봉사센터도 행사시 안전 요원을 반드시 배치하고, 자원활동가는 안전상의 이유로 성인만을 배치하는 것을 조건을 요구했다. 막상 광장에서 행사를 개최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우려했던 혐오는 상상에 불과했다는 걸 확인했다.”

 

매드프라이드의 상징 ‘마르코’와 행진하는 참가자들https://lh6.googleusercontent.com/k36A-3GLk6M7mWnEg4TLz1AmPrZFv4i1xUYkCS... />

매드프라이드의 상징 ‘마르코’와 행진하는 참가자들 <사진 = 안티카>

 

- 정신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어떻게 하면 극복할 수 있을까?

“비(非)장애인보다 정신장애인의 범죄율이 훨씬 낮은데, 그러한 사실조차 왜곡하는 보도가 많다. 일본만 해도 장애인은 공기처럼 비장애인들에게도 노출되어서 그런지 편견이 심하지 않은 것 같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옆집에 ‘정신장애인이 살아서 무섭다’는 경험을 아무렇지 않게 토로하기도 한다. 막상 내가 만나본 당사자들은 ‘힘내’, ‘넌 잘못한 게 없어’라는 환청을 듣는다. 누군가를 죽이고 싶은 충동에 시달리는 것이 아니라.”

 

- 앞서 지적했듯, 언론보도의 문제점을 짚어본다면?

“그동안 한국에는 정신장애인을 지칭하는 말은 ‘미친놈’, ‘또라이’, ‘정신나간 놈’과 같은 혐오표현밖에 없었다. 그러다보니 정신장애인을 지칭할 때 정신‘질환자’라는 표현을 서슴없이 쓴다. 20년을 맞은 퀴어 퍼레이드는 언론보도에 대한 명확한 지침을 만들어놓아서, 이번 매드프라이드에서도 미디어 기록팀이 많이 준비해서 미디어 가이드라인을 만들기도 했다. 최소한 기자협회 인권보도준칙을 지켜달라고 당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BS는 당사자들을 여전히 정신질환자로 표현했고, 매드프라이드 자체도 비장애인을 배제한 ‘정신질환자들만이 기획한 행사’ 정도로 의미를 축소해서 보도했다. 굉장히 실망스러웠다.”

 

- 비장애인들이 장애인을 불쌍하게 바라보는 시각을 어떻게 바꿔야 할까?

“그냥 비장애인과 똑같은 사람인 것을 인정하고 내버려두면 되지 않을까? 당사자들도 그냥 인간이고 사람이지, 불쌍한 존재로 보이고 싶지 않다. 비장애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없다. SNS에서 떠도는 곰돌이 푸 정신병리 테스트를 해보면 나도 과잉행동 장애가 있는 사람이다. 사실 내 별명이 ‘폭주기관차’다. 장애라는 것이 어떤 사람도 시기에 따라 겪을 수 있는 경험이 있다는 인식이 있으면 장애가 모두의 문제로 확장될 수 있는데, 그 기회를 자꾸 저버리는 환경이 반복되는 것 같다. 안티카를 포함해 매드프라이드에 참여한 단체들은 당사자들이 ‘회전문’ 효과에 갇혀버리지 않기 위해서 활동하는 것이고, 현재의 문제적인 정신건강의학 시스템 자체를 바꾸기 위해서 이 활동을 하는 것이다.”

 

- 회전문 효과에 대해서 더 자세히 설명해달라

“당사자들은 병원에서 퇴원해도 갈 곳이 없고, 지역사회에서 치료를 지속적으로 받을 수 있는 환경을 구하기 쉽지 않다. 정신병원에 다닌다는 이유만으로 취업 과정에서 차별을 당하거나, 취업을 하더라도 사직을 요구받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치료를 거부하거나 받을 수 없게 되고, 그렇게 되면 결국 병원에 다시 입원하게 되는 과정을 말한다. 보호자들이 당사자를 집에서 돌보기 버거운 문제도 있겠지만, 사회생활을 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의 특이한 표현방식을 문제행동으로 규정해버리는 것이 큰 문제라고 본다.”

 

- 지역의 정신건강복지센터는 현재 어떤 역할을 맡고 있나?

“현재의 지역정신건강복지센터 환경은 당사자를 엄청나게 수동적으로 만든다고 생각한다. 정신장애인은 학력, 표현력, 경제력 등에서 굉장히 다양한 층위의 사람들이 있는데, 모든 사람을 하향평준화하고 유치원생처럼 대우하거나 환자처럼 취급하는 문제가 있다. 창작에 대한 욕구를 분출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크레파스로 그림 그리기, 음악 듣고 감상 나누기와 같은 일차원적인 수준의 프로그램에만 참여하도록 하면 당사자들이 어떤 효능감을 느낄 수 있겠는가? 현재의 시스템에서는 정신장애인이 그저 선택권을 박탈당한 사람이 되는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주거시설도 사람들을 훈련시킨다는 명목으로 규제하고 억압한다. 이런 시스템에 연 11조 원을 쓰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정부나 이 사회는 정신장애인이 그저 관리하기 쉬운 대상이 되길 원하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가 얼마든지 재미있게 놀 수 있다는 것도 대중에게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 정신장애인이 지역사회에 동등한 구성원으로 정착하기 위해서 더 필요한 것을 제안한다면?

“은평구에서는 우리가 공연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주고, 청년허브와 같이 일하고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공간도 좋다. 이런 공간에서 경험하는 것들이 굉장히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작년에는 은평구 연극제에 정신장애인들이 참여해, 은평구민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그걸 해석해서 즉흥 연극을 했다. 그때처럼 정신장애인이 직접적으로 대중을 만나면 당사자들에 대한 인식이 개선될 수 있다는 걸 매번 체감하고 있다. 당사자가 가진 감정적 깊이, 경험, 표현력은 상상 그 이상이다. 그런 감정을 하나씩 풀어놓을 수 있도록 장을 열기만 해도, 당사자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처음에는 보호자들도 많은 반대가 있었지만, 단원들이 공연하는 것을 보고 많이 변화하기도 한다. 행사가 있는 날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함께하기도 한다. 그래서 안티카는 대중과의 접점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당사자들은 60-70명이 모이는 극장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것부터 시작해 광장에서 수백 명의 사람을 만나고, 미디어에도 소개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됐다.”

 

- 사회복지인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당사자들이 주도권을 가지고 선택할 수 있는 주체라는 것을 인정하고 인식했으면 한다. 다양한 공립, 사립 기관에서 관리되는 당사자들과 관계자들이 관객인 공연에 참여했었다. 단원들이 준비한 연극에 당사자들이 관심이 없게 만든 것에 대해 돌아봤으면 한다. 센터에 소속되지 않았던 당사자들이 자발적으로 매드프라이드에 참여했던 것과는 달리, 어떤 자극에 대해서도 반응하지 않는 당사자들을 보면서 많은 문제의식을 느꼈다. 매드프라이드에서도 사회적 혐오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위해 가면을 준비했지만, 막상 참가자들은 가면을 얼굴을 가리는 용도가 아니라 최대한 멋을 내는 용도로 썼다. 당사자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틀어막고 있는 문제 중 하나가 정신건강의학 관련 서비스의 공급자들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으면 한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 나 자신이길 원합니다’ 매드프라이드 참가자들https://lh3.googleusercontent.com/01x581LCaVHFWPqwPe-xjKCaLKHsnldFl3g8rP... />

‘우리는 있는 그대로, 나 자신이길 원합니다’ 매드프라이드 참가자들 <사진 = 안티카>

 

- 안티카의 다음 목표는 무엇인가?

 

“당사자들이 안전하고 행복할 수 있는 시공간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다. 한국 사회에서는 사회적 소수자가 정신장애를 갖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사회적 소수자와 연대하고, 당사자 단체들이 모일 수 있는 국내외 포럼을 만들고, 당사자들이 직접 2020년의 현실을 진단하고 연구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보려고 한다. 당사자 상근 활동가들을 앞으로 더 많이 늘려나갈 계획이다. 제2회 매드프라이드 서울도 내년에 꼭 개최할 거다. 아시아권에서 정신건강 서비스에 대한 인식과 시스템이 당사자의 선택권,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 공통점이 있는데, 당사자들 간의 국제적 연대도 꼭 필요하다. 내년에는 올해 준비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새롭게 참여하는 사람들과 같이 준비했으면 한다.”

수, 2019/12/04-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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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정부의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공약 불이행, 포용적 복지국가에서 가난한 이들이 죽어간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

  

부양의무자기준 때문에 떠나간 사람들

2010년 10월, 서울에서 한 장애아동의 아버지가 목을 맸다. 그는 “아들이 나 때문에 못 받는 게 있다”라며, “내가 떠나고 나면 동사무소 분들께 잘 부탁드린다”라는 유서를 남겼다. 일용직 노동자였던 그는 아들의 장애 판정 후 재활치료비를 감당하기 어렵게 되자 동주민센터를 찾았지만 근로능력이 있는 아버지가 있다는 이유로 수급신청을 거절당했다. 질병이나 장애가 있는 가족의 돌봄을 가족들에게 떠넘기고, 최종적 위기에서는 다시 가족 때문에 수급자조차 될 수 없는 제도에 많은 사람들이 분노했다.

 

2010년 겨울, 부양의무자기준 폐지와 기초생활보장법 개정을 요구하며 시민사회단체들은 조계사 앞에서 천막 농성을 진행했다. 그해 12월 마지막 날에는 강북에 살던 노부부가 함께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되었다. 그들은 이혼으로 위장한 뒤 1인 가구 수급비로 두 명이 함께 살고 있었다. 부양의무자기준 때문이었다. “수급비 가지고는 생활이 안 돼 죽음을 선택한다. 5개월이 넘도록 어떻게 살고 있는지 물어보는 자식 있느냐”라는 물음을 유서에 남겼다.

 

2011년 4월, 78세의 김선순 할머니가 시립병원 입구에서 객사했다. 부양의무자기준 때문에 수급조차 받지 못했던 할머니의 사인은 폐결핵과 영양실조. 의료급여 수급자도 아니었기 때문에 적절한 치료조차 받지 못했다. 평생 가난한 삶과 씨름했을 그녀의 삶은 2평 월세 15만 원 여인숙을 마지막 보금자리로 내주었고, 치료를 구걸하기 위해 찾은 병원 입구에서 스러졌다. 2012년 7월에는 사위의 소득 때문에 수급에서 탈락한 거제에서 이씨 할머니가 사망했다. 그녀는 차례 시청을 찾아 읍소했지만 수급권은 회복되지 않았고, “법도 사람이 만드는데 법이 사람에게 이럴 수 있냐”라는 유서를 남겼다. 바로 그 법은 가난에도 불구하고 가족에게 먼저 도움을 청하라는 부양의무자기준이다.

 

1,842일의 광화문농성

수많은 죽음을 기억하며 2012년 8월 21일,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 공동행동>은 광화문역사 지하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우리의 농성은 부양의무자기준을 폐지하고자 하는 노력인 동시에, 그저 죽음으로 들려오는 가난의 증언을 잊지 않기 위한 것이었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 전쟁 50년 만에 이룩한 성장을 자랑하는 사회에서 가난에 쫓겨 죽음에 내몰리는 삶이 공존하는데 우리 사회는 이 죽음에 너무나 무심했다.

 

미담이나 동정으로 소비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법과 제도를 바꿔야 했다. 우리의 농성은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를 이루기 위한 곳이자 곳곳에 흩어져 있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신호이기도 했다. 부양의무자기준이 폐지되지 않은 세상이 잘못된 것이지 당신의 탓이 아니니, 죽지 말고 같이 살아서 세상을 바꿔보자는 신호를 보내는 ‘벙커’가 광화문역 지하에 마련됐다. 1,842일의 싸움 끝에 우리는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를 대선후보들의 공약으로, 보건복지부 장관의 약속으로 받아냈다. 그러나 가난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너무나 아슬아슬한 것으로 만들며, 지금도 사람들은 속절없이 죽어간다. ‘빈곤문제 해결을 위한 1호 과제,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는 대통령의 약속 이후 3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뤄지지 않았다.

 

2017년 대선과 문재인 정부의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진행 정도

2017년 대선에서 대부분의 후보가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를 약속했다. 문재인후보는 2017년 3월 22일, 참여연대가 주관한 시민사회단체 공동 대선후보 초청 토론회인 <개발국가, 재벌독식을 넘어 돌봄사회, 노동존중, 평등사회로>에서 부양의무자기준을 폐지하겠다고 발언했다. 당시 대선에서 <부양의무자기준 폐지행동>은 각 정당과 후보들의 부양의무자기준 폐지에 대한 약속과 당론채택 여부, 법안 발의 계획에 대해 질문했다. 답변은 다음과 같다.

 

<표1-1> 부양의무자기준 폐지에 대한 2017년 대선 당시 각 후보들의 입장https://lh3.googleusercontent.com/Up9qD780cO3BoUBt5Rw-whuGf2B2CR1O8Jq0tp... />

 

2017년 7월,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 이후 100대 국정과제에서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는 2018년 주거급여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생계 의료급여는 소득하위 70% 이하 노인, 중증가구에 대해서 적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시민사회단체는 단계별로 수행할 수 있으되, 완전 폐지를 전제로 한 급여별 부양의무자기준 폐지의 순서를 밟을 것을 요구했다. 다시 인구학적 기준으로 부양의무자기준 폐지의 순서를 정한다면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이룩한 근로능력 여부와 관계없이 수급권을 보장한 법 제정의 취지에서 후퇴하며, 사각지대 해소 효과 역시 적기 때문이다. 더불어 임기 내 완전 폐지에 대한 계획을 요구했다. 당시 국가기획위원회(대통령 인수위원회)는 <부양의무자기준 폐지행동>과의 면담에서 100대 국정과제는 당면한 계획만을 담은 것이며, 이후 추가 계획을 제출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구체적이고 지속적인 후퇴

2017년 8월, 보건복지부는 기초생활보장제도 1차 기본계획을 발표하며 이 계획을 후퇴시켰다. 2018년 폐지한다는 주거급여 부양의무자기준은 2018년 10월로 시행시기를 미뤘고, 2019년 중증장애인과 노인이 부양의무자인 경우 소득하위 70%로 기준을 완화한다는 계획은 각각 2019년과 2022년으로 미뤄졌다. 2017년 8월 25일, 박능후 보건복지부장관이 광화문 농성장에 방문해 농성장 영정들에 조의를 표하고,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를 약속했다. 박장관은 부양의무자기준 폐지가 ‘우리 사회 복지가 가야 할 길’이며, 최대한 빠른 시일 내 조속히 폐지를 이행하겠다고 했다. 구체적인 계획으로는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민관협의체’를 만들 것, 그리고 제2차 기초생활보장제도 종합계획에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를 위한 로드맵을 넣을 것을 약속했다.

 

<표1-2> 맞춤형 급여로의 개편 이후 부양의무자기준 완화 과정 및 계획https://lh4.googleusercontent.com/PZjwrUWFr3520MstbskrYiBmsK66f035jOVO5F... /> 

 

주거급여 부양의무자기준 폐지와 생계 의료급여에서의 부양의무자기준 일부 완화가 꾸준히 진행되어 왔지만, 부양의무자기준이 폐지 된 주거급여를 제외하고 기초생활수급자수의 획기적인 변화는 없었다. 2022년까지 계획되어 있던 부양의무자 가구에 노인이 포함된 경우 생계급여에서 부양의무자기준을 미적용하는 완화안은 3년을 당겨 2019년 시행되었지만 수급자 숫자에 큰 차이는 없다.

 

현재 국민기초생활수급자는 187만 명이다. 지난해 주거급여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전 수급자 숫자가 158만명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마치 큰 차이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부양의무자기준이 폐지 된 주거급여와, 일부 완화에 그친 생계의료급여의 수급자 증감 차이를 보면 부양의무자기준 폐지와 완화의 서로 다른 효과에 대해서 볼 수 있다. 부양의무자가 중증장애인이나 노인인 경우 생계급여 부양의무자기준을, 중증장애인인 경우 의료급여까지 부양의무자기준을 완화했다지만 그 증감은 거의 의미가 없는 수준에 불과하거나 도리어 하락했다.

 

<표1-3> 주거급여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전(2018년 9월)과 후(2019년 11월) 급여별 수급자 수https://lh5.googleusercontent.com/MGpWBxMuWdK0e-SNppA76egOH1RUoy0GV5appi... />

 

부양의무자기준 완화, 왜 효과가 없는가?

왜 부양의무자기준 완화의 효과는 나타나지 않는가? 우선 현재 정부의 완화안은 극히 일부 인구집단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중증장애인 가구가 수급을 신청할 때 부양의무자기준을 완화하는 2020년의 완화안은 1만 8천 가구만을 대상으로 한다. 기초생활보장제도 사각지대 개선을 위한 여러 가지 모델 중 가장 적은 인구를 수급으로 진입시키는 방식이다.

 

더불어 언뜻 합리적으로 보이는 부양의무자기준 완화안은 상당히 여러 사람들을 제외하고 있다. 중증장애가 아닌 경증의 장애로 판정받은 모든 사람은 여기에서 제안하는 완화안에 포함되지 않는다. 소득중단과 노인성 질환으로 65세 이상의 노인과 별로 다르지 않은 신체, 생활을 가진 장년 빈곤층 역시 해당하지 않는다. ‘만 30세 미만 한부모가구와 보호종료아동’의 경우 부양의무자기준을 폐지한다지만 30세 이후에는 다시 부양의무자기준이 생긴다는 기상천외함을 가질 뿐 아니라, 보호종료아동 본인이 수급을 신청할 때는 해당하지만, 부양의무자가 될 때는 해당하지 않는다는 세부적 운영 방침도 있다. 가정위탁이나 시설에서 자란 아동이 보호종료 후 성인이 되어 사회에 나왔을 때 수급자인 1촌의 혈족이 있으면 부양의무자가 되는 것은 막을 수 없다는 뜻이다. 이 모호한 경계는 사람들의 복잡한 삶을 담아내는 합리적 기준이 결코 되지 않는다. 부양의무자기준이 완화됐다지만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다시 제외된다.

 

<표1-4> 여전히 부양의무자기준 때문에 수급권을 주장할 수 없는 사람들https://lh6.googleusercontent.com/pMiFFa1a5jIWmPrFMkCq-O7PLFvYTgcHDk_Xbf... /> 

 

복잡한 기준완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해

뿐만 아니라 지난여름 관악구에서 아사한 한씨 모자의 경우처럼 사회보장제도의 신청 단계에 ‘보증인’을 요구하거나, 부양의무자의 임대차계약서나 월급명세서처럼 구하기 어려운 서류들을 일방적으로 요구받는 경우가 빈번하다. 부양의무자의 금융정보제공동의서나 관련 서류를 준비하지 못해 신청을 포기하는 사람들을 조사나 계측조차 되지 않지만 여전히 많다. 정부는 실제 부양 받지 못하는 경우 지방생활보장위원회를 통해 적극적으로 보장을 실시하고 있다지만 지방생활보장위원회에 판정을 의뢰한다고 수급신청을 접수해도 ‘지생보위 판정은 본인이 원한다고 의뢰할 수 있는게 아니다’라고 판정의뢰를 거절하거나, 신청서를 접수하지 않고 동주민센터의 초기상담을 통해 구두로 수급신청을 거절, 탈락시키는 일은 지금도 빈번하다.

 

성북 네 모녀, 그리고 인천에서 모녀와 친구가 사망하고, 강서구에서 부양의무자에 의한 가족 살해가 일어났다. 그러나 보건복지부의 대책은 오히려 반대로 향했다. 구체적인 계획은 나오지 않았지만 보건복지부장관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여러 차례 ‘부양의무자기준을 폐지하겠다’고 공언했으며, 2차 종합계획안에 싣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느린 속도와 뿌연 계획에도 불구하고 시민사회단체와 당사자들이 믿고 기다린 것은 오로지 2020년 발표되는 2차 기초생활보장제도 종합계획안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난 9월 이 2차 종합계획에 대한 언급이 수정됐다. ‘생계급여’로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논의를 한정시켰다. 보건복지부는 뒤늦게 이에 대해 ‘생계급여 등’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억지를 부리지만 국민들을 기만하는 일일뿐이다. 약속에 대해 계획으로 답해야 하는 보건복지부는 교묘히 일정과 약속을 후퇴시키는 것으로 자신의 책임을 저버리고 있다.

 

지난 10월 17일,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공약 이행 의지에 대해 대통령에게 다시 물으며 청와대 앞에서 농성에 들어갔던 이유는 바로 보건복지부의 계획 후퇴 때문이다. 이 문제에 대해 공약 당사자인 대통령에게 질의를 했으나 돌아온 것은 ‘재정적 뒷받침’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답변이었다. 농성 64일 만인 12월 19일, 청와대 농성은 마무리되었다.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가난으로 인한 죽음과 빈곤의 대물림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

당황스러운 것은 부양의무자기준 폐지가 대통령의 공약이었다는 점이다. 공약하고 선출된 대통령이 공약 이행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운운하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올해 11월 CBS의 의뢰로 진행된 리얼미터의 부양의무자기준 폐지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는 55.5%의 찬성이었다. 이는 문재인 정부의 국정수행 지지도보다 높은데, 어떤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것인가? 국민의 가장 마지막에 변화하겠다는 정치는 누구도 대표할 수 없다. 문재인정부는 가장 가난한 국민들의 요구에 어떤 의지나 책임감도 보이지 않았다.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를 위한 청와대 농성단은 청와대에 총 4차례 공개서한을 보냈다. 두 달 여간 아무런 답변이 없어, 지난 12월 5일 열린 <제5차 포용복지포럼>1) 입구에서 보건복지부장관과 청와대 김연명 사회수석에게 서한을 전달하기 위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은 경찰의 봉쇄 속에 진행됐고, 서한문 전달을 위해 이동하는 길은 경찰 방패에 가로막혔다. 결국 서한은 전달했지만 이렇게 전달된 서한에 대한 청와대의 공식적인 답변은 없었다.

 

“아버지와 나의 미래는 양립할 수 있을까?”

치매에 걸린 49세 아버지의 보호자가 된 조기현씨는 아빠의 발병과 간병에 대한 기록, <아빠의 아빠가 됐다>를 책으로 썼다. 이 책에서 그는 “아버지와 나의 미래는 양립할 수 있”을 것인지 묻는다. 어린 시절 이혼한 뒤 아버지의 형제라야 남 같은 사이인 이들 부자에게 법적 권한을 비롯한 최종적 ‘보호자’는 서로가 된다. 일용직 노동과 대체복무를 위한 공장일에 매진하면서도 치매 아버지를 간병해야 했던 그의 삶은 전장이었다. 이 책에서 그는 박능후 장관이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를 약속했고, 곧 ‘나를 괴롭힌’ 제도가 사라질 것이라 전망했지만,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중증도의 치매라 할지라도 이는 중증장애가 아니고, 치매를 앓고 있지만 그는 노인도 아니다. 조기현씨 역시 중증장애인이나 노인이 아니기 때문에 조기현씨에게 기준 이상의, 그러니까 그의 상황을 기준으로 2019년 기준 월 170만 원 이상의 소득이 생기면 ‘부양능력이 있는’ 부양의무자가 되며, 252만 원 이상2)의 소득이 생기는 순간 그의 아버지는 수급에서 탈락한다.

 

우리 사회는 가족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짐 지우고 있다. 사회가 함께 해야 하는 양육을 비롯한 돌봄은 가족들, 가족 안에서도 낮은 위계의 성별이나 신체를 가진 사람들에게 돌봄의 책임은 전가된다. 최종적으로 빈곤의 위기에 빠졌을 때 최저생계비 이하의 빈곤층이 된 사람의 소득에 대한 ‘의무’가 가족들에게 생긴다. 가난한 이들의 현실에서 보면 부양의무자기준은 부양능력이 있는 부양의무자가 되는 순간 오히려 서로의 삶이 양립할 수 없는 조건이 된다.

 

 부양의무자기준 완전폐지를 요구하는 1인시위 피켓을 들고 있는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https://lh4.googleusercontent.com/kt0KKhZp9Zf-5zew_dGR09NpTTQardRNipvIXB... />

부양의무자기준 완전폐지를 요구하는 1인시위 피켓을 들고 있는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 <사진 = 빈곤사회연대>

 

시효만료, 정상가족 중심 복지

우리나라의 가족부양의 원칙은 가장 가난한 가족들에게 가장 엄격하게 작동하고 있으며, 부양의무자기준이 아니더라도 가장 힘든 가족들이 부양의무자기준 때문에 가장 어려운 상황에 빠지고 있다. 주지하듯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는 빈곤문제 해결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이며 가장 시급한 조치다. 이조차 이행하지 못하는 정부가 빈곤문제 해결이나 포용을 운운할 자격 없다.

대통령의 선언 이후 이행되지 않은 복지제도 아래 빈곤층이 고사하고 있다. 부양의무자기준 때문에 수급에서 탈락한 뒤 친구가 자살했다며 빈곤사회연대로 전화를 건 여성은 대통령이 약속만 지켰어도 내 친구는 살았을 것이라고 분노했다. 과연 문재인 대통령은,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 할 수 있는가? 내년 7월 마련될 2차 종합계획에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를 위한 로드맵을 마련하는 것은 사회와 정치가 약속한 최소한의 목표다. 이를 실현시키기 위한 각별한 관심과 싸움이 필요하다.


1) 제5차 포용복지포럼: 해외석학과의 만남 – 소득분배 흐름과 혁신적 포용국가의 과제(한국보건사회연구원 주관, 서울 포시즌스 호텔)

 

2) 수급가구와 부양의무자가구가 각각 1인가구일 때, 더불어 수급자가구의 가구원이 전원 근로능력이 없는 사람으로 구성되어 있을 때 부양의무자의 판정소득액에 따른 수급탈락 기준선

화, 2020/01/07- 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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