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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향2] 서울행정법원의 최근 실업급여 판결에서 엿본 실업인정 운영실태

[동향2] 서울행정법원의 최근 실업급여 판결에서 엿본 실업인정 운영실태

익명 (미확인) | 금, 2015/04/10- 15:43

서울행정법원의 최근 실업급여 판결에서 엿본 실업인정 운영실태

 

이상훈 변호사(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

 

1. 들어가며

지난 1월 서울행정법원은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가 16년간 대한항공에서 부사무장으로 일하다 퇴직한 A씨를 대리한 실업급여 부지급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선고하였다. 

사실 센터가 진행한 사건은 법리적으로 어려운 사건은 아니다. 그보다는 최근 각국에서 점차 강조되어 오던 activation 정책과 관련한 사건이기에 activation 정책을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를 되돌아 볼 수 있는 사건으로서의 의미가 강하다. acivation정책이란, 실업수당(내지 부조)에 안주하거나 일할 수 있음에도 복지혜택에 의존하는 경향 때문에 재정부담 증가와 경제활력 저하 등의 문제점이 발생하는 것을 고려하여, 좁게는 실업급여나 실업부조 지급을 적극적 구직노력과 연계하여 실업자들에 대한 구직을 독려하는 정책이고, 넓게는  다른 사회보장혜택 역시 적극적 구직노력과 연계하는 정책을 말한다.  

아래에서는 서울행정법원의 최근 실업급여 판결을 소개하면서 우리나라 실업급여의 현황과 관련하여 주목하여야 할 여러 자료들과 함께 판결을 통해 발견된 운영과정에서의 문제점을 살펴본다.  

 

 

2. 우리나라 실업급여의 현황: 다른 나라 실업급여와의 비교

(1) 지급기간의 비교

 

실업급여제도는 크게 단기간의 실업급여만 있는 유형, 장기간의 실업급여만 있는 유형, 실업급여와 실업부조가 있는 유형, 실업부조만 있는 유형 4가지로 나눌 수 있다.

제1유형인 단기간(1년 미만)의 실업급여만 있는 국가로 캐나다. 이태리, 미국, 일본 등이 있다.

제2유형인 장기간(1년 이상)의 실업급여만 있는 국가로 벨기에, 덴마크, 네덜란드, 노르웨이, 스위스 등이 있다.

제3유형인 실업급여와 실업부조가 있는 국가로 오스트리아, 핀란드, 프랑스, 독일, 아일랜드, 스페인, 스웨덴, 영국 등이 있고, 제4유형인 실업부조만 있는 국가로 호주와 뉴질랜드가 있다.

 

이 중 우리나라는 제1유형의 국가로서 상대적으로 낮은 실업급여수준과 짧은 지급기간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급여 상한(4만원)이 최저임금액에 근접할 정도로 매우 낮은 형편이며, 지급기간도 최대 8개월로 미국, 영국과 함께 매우 짧은 국가에 속한다. 또한 자발적 실직자에 대해 수급자격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실질적인coverage는 낮은 편이고, 사각지대 또한 넓다. 

 

 

(2) 순소득대체율(net replacement rate)의 비교

 

실업급여수준을 나타내는 기준 중 하나로 순소득대체율(net replacement rate)이 있다. 

순소득대체율이란 실업전 순소득(총소득에서 세금 등을 공제한 가처분소득) 대비 순실업급여(실업급여에서 세금 등을 공제한 가처분소득)의 비율을 의미한다.

 

우리나라는 실업급여의 순소득대체율이 OECD 국가 중 최저 수준이다. OECD에서는 여러 유형(자녀가 몇 명인지, 맞벌이인지,다른 주거용 지원을 받는지 등)으로 분류하여 순소득대체율을 비교하고 있는데, 그 분석결과가 흥미롭다. 이에 따르면 2012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실직자의 실직 후 5년 동안의 순소득대체율은 매우 낮아서 불가리아와 동일한 수준이다. 특히 두 자녀가 있는 상태에서 맞벌이가 아닌 혼자 버는 가장이 주거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5년 이내의 순소득대체율은 OECD 내외의 비교 국가들 중에서 아예 꼴찌다.  

 

(3) 낮은 실업급여에 따른 빈곤에의 진입가능성

 

OECD의 자료들은 이병희 (한국노동연구원)의 “한국형 실업부조 도입의 필요성과 과제” 논문 결과와도 연결된다. 이 논문에서는 통계청의「가계동향조사」의 월별 자료를 이용하여 우리나라에서 실직할 경우 얼마나 빈곤 상태로 전환하는지를 분석하였다. 

 

이 논문에서 기술한 아래 <표 >는 가구주가 실직하였을 때 빈곤 지위의 변화와 빈곤 진입률을 보여준다. 가구주가 실직하였을 때 비빈곤 상태에서 빈곤 상태로 진입하는 비중은 38.7%에 이르고, 가구 소득이 적을수록 가구주 실직시 빈곤 진입률이 높다. 

 

(4) 분석

 

앞서의 자료들을 종합하면, 우리나라는 실업급여의 지급수준과 지급기간이 짧은데다가 아동수당이나 주거지원비 등 실업급여 이외에 다른 사회안전망도 부실하다. 그렇다보니 실직 후 조기에 재취업하지 않을 경우 버틸 힘이 부족하여 빈촌층으로 전락하는 비율이 상당하고, 특히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4인 가족의 형태, 즉 주거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두 자녀와 배우자를 홀로 부양하는 가장이 실직한 경우의 사회안전망의 부실은 세계적으로도 최악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해고는 살인이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는 쌍용차 노동자의 사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2007년 쌍용차 노동자의 평균 임금은 308만원이었는데 이들이 일자리를 잃는 순간 얼마 안 되는 실업급여를 받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평균 부양가족이 3명인 쌍용차 노동자들은 생존의 위협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3. 서울행정법원의 최근 판결을 통해 본 Activation정책

(1) 사실관계    

 

A 씨는 16년간 대한항공에서 부사무장으로 일하다 퇴직했고, 10년간 서울시 영어 문화관광해설사로 자원봉사 활동을 하기도 했으며,  미국에 2년간 거주하면서 한인방송국에서 일한 적도 있다.   A 씨는 영어와 관련된 일을 하면서도 영어실력에 부족함을 느껴 경제적 어려움으로 그만둘 때까지 영어학원을 다니기도 했다. 

구직활동 4개월째인 2013년 8월 A 씨는  취업정보사이트인 잡코리아에서 해커스 어학원의 채용공고를 발견했다. A 씨는 그동안 자신이 영어와 관련된 일을 하였기에 새로운 직장 역시 영어와 관련된 업무를 희망하였다. 그래서 학원에서 일하다 보면 영어를 접할 기회도 많고 수강할인의 혜택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어학원의 채용공고를 발견하자마자 지원하였으나 서류 탈락하였다. 

 

구직활동 5개월째인 2013년 9월 A 씨는 다시 취업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해커스 어학원의 채용공고가 새로 뜬 것을 발견하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른 부서이었고, 그래서 A씨는 다시 지원했으나 또 탈락하였다.

그런데 고용센터에서는 A 씨가 해커스 어학원에 재차 지원 신청한 것을 두고 ’동일 사업장에만 반복해 구직활동을 하는 것’에 해당한 형식적 구직활동으로 보았고, 그래서 A씨가 ‘허위 혹은 형식적 구직활동’을 했기 때문에 실업급여를 줄 수 없다고 하여 소송이 제기되었다. 

 

(2) 사건의 숨은 배경 

본 사건은 언뜻 보기엔 까다로운 고용센터 직원을 만나서 그랬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본 사건 처리과정에서 다른 고용센터에 확인한 바로는, 이런 경우 현재는 보통 1차로 주의를 주지 바로 실업급여지급을 거부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그 이유는 2013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이었던 한명숙 의원이 발표한 자료에서 추측할 수 있다. 이 자료에 따르면 2013년 1~9월 실업급여 불인정 건수가 2만5497건으로 2012년 전체(1만2462건)의 2배를 넘어섰는데, 실업급여 불인정 건수는 2010년 9293건, 2011년 1만880건, 2012년 1만2462건으로 조금씩 늘어나다 2013년 들어 갑자기 대폭 증가하였다』라는 것이고, 그 원인으로 『노동부가 ‘2013년 지방관서 평가 기준’에 실업급여 불인정률 1% 이상이면 30점, 0.8~1%이면 27점, 0.6~0.8% 24점, 0.4~0.6% 21점, 0.4% 미만 18점 등 구간별로 세부적인 평가 기준을 정하고 있기 때문에 고용센터별로 평가 기준에 맞춰 좋은 점수를 얻기 위해  경쟁적으로 불인정률을 높이고 있는 상황이고 특히 취약 계층인 20대와 50~60대 이상에서 불인정률 증가폭이 크다”고 분석하고 있다

 

판결에서의 처분일은 2013년 9월 26일로서 바로 실업급여 불인정 건수가 급증한 기간에 발생한 것이고, A씨 또한 54년생으로 불인정률 증가폭이 큰 연령대에 속하기 때문에 한명숙 의원의 발표 자료에 정확히 부합된다. 결국 수급자 중심에 서서 과연 그 수급자자 실업급여를 필요로 하는 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어느 정도까지 허용할 지에 대한 목표치를 정하고 그  목표치 범위를 중심으로 실업급여를 지급하는 형태로 운영된 것이 이 사건의 숨은 배경이다. 

 

(3) 판결(서울행정법원 2015. 1. 23 선고 2014구합13980판결) 

 

<판결 내용> 동일 사업장에만 반복하여 구직활동을 하는 경우를 실업 인정을 하지 않는 이유는 허위․형식적 구직활동을 하는 수급자가 실업급여를 부당하게 수령하는 것을 방지하고자 함에 있는데, ① 원고는 대한항공에 20여년간, 서울특별시 영어 문화관광해설사로 10년간 근무하였고, 그러한 원고의 경력에 비추어 원고가 해커스 어학원에 근무를 희망하는 것이 허위라고 단정하기 어려워 보이는 점, ② 원고는 2013. 8. 9.과 2013. 9. 11. 해커스어학원의 각기 다른 구인공고에 대하여 구직활동을 하였을 뿐, 그 외에는 별도의 사업장에 지속적으로 구직활동을 하여 왔던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원고가 2013. 9. 11. 해커스 어학원에 다시 구직활동을 한 점만으로는 원고가 근로의 의사와 능력을 가지고 적극적인 재취업활동을 하지 아니하였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따라서 원고의 해커스어학원에 대한 구직활동이 허위․형식적이어서, 원고가 근로의 의사와 능력을 가지고 구직활동을 하지 않았음을 근거로 한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므로 취소되어야 한다.

 

(4) 분석

 

금융위기로 촉발된 세계 경제위기 속에서 각국은 실업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대응하고 있다. 그런데 고용에 대한 사회보장 지출비용이 상승하게 되면서 사회보장 재정에 상당한 부담을 초래하였다. 그러자 1990년대부터 서구에서는 시기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고용을 촉진하고 복지급여 수급자가 노동시장으로 진입하여 일자리를 구하도록 지원하는 정책을 우선하는 방향으로 선회하였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서구에서 사용했던 일련의 정책이 Activation정책이고, Activation정책의 특징은 공급 측면의 노동시장정책을 강조하는 것이다. 

 

실업급여에 대한 Activation정책은 실업급여의 수급자격 조건, 구직탐색 요건, 구직탐색노력에 대한 모니터링, 일자리나 ALMP(적극적 노동시장 프로그램) 참여 제의 거부에 대한 제재 등의 여러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 중 하나가 ‘구직활동을 증명’토록 요구하는 것이고, 센터에서 진행한 사건은 Activation정책 중 구직활동의 증명도에 대한 현장에서의 다툼에 대한 사건이다.   

 

Activation정책은 취업우선(work first)과 인적자본개발(human capital development) 측면을 조화롭게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취업우선전략은 “어떤 일자리든 일자리가 없는 것보다는 낫다”는 방향 속에 취업에 우선적인 가치를 부여하는 접근방식을 말하고, 시간과 비용이 많이 소요되는 교육과 훈련보다는 단기간의 구직활동을 통해 실업급여 혹은 복지급여 수급자가 빠른 시일 내에 노동시장에 진입하여 일자리를 얻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을 더 중시하는 전략이다.  

 

반면 인적자본개발 전략은 장기적으로 수급자의 고용가능성을 제고하여 안정적인 자리에 취업할 수 있도록 인적자본에 대한 투자를 강조하고, 조기에 노동시장에 진입하도록 요구하기보다는 교육과 훈련 프로그램을 제공하여 수급자의 능력을 개발하는 것을 더 중시하는 전략이다. 

 

어느 나라든지 취업우선과 인적자본개발 중 하나의 전략만을 일방적으로 추구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취업우선전략은 단시간 내에 고용률 상승이라는 계량화된 개선 수치를 산출 할 수 있기 때문에, 행정 관료나 현장 담당자로서는 취업우선전략을 우선하려는 유혹을 뿌리칠 수 없다. 반면 이에 따른 일자리들은 대체로 고용이 단기적이고 불안정하며 훈련의 기회도 부족하기 때문에, 이들은 취업과 실업 그리고 비경제활동 상태를 오가거나 다시 복지제도로 복귀할 가능성이 높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취업우선전략이 가지는 한계와 단점을 어떻게 보완하느냐가 중요하다. 즉 수급자가 신속하게 취업하는 것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고용을 유지하고 더 좋은 일자리로 이동하도록 지원하는 최선의 전략과 수단을 조합하여야 한다. 그렇기 위해서는 고용센터에서 충분한 인력과 시간을 갖고 수급자의 취업 의욕․기술․능력 등 개별적 특성을 파악한 후 수급자에게 적합한 일자리를 제공하는 재취업지원서비스를 제공하여야 한다. 

 

본 사건의 경우도 A 씨는 그동안 대부분의 사회활동을 영어와 관련된 일을 하였기에 새로운 직장 역시 영어와 관련된 업무를 희망하였다. 그렇다면 고용센터에서는 A 씨의 특성에 맞추어 상담 및 구직지도를 하는 것이 취업우선과 인적자본개발 전략의 조화로운 접근법이다.

 

그런데 현장에서는 구직자와 직업상담원이 만나는 짧은 시간에 적극적인 구직활동을 확인하는 등 실업급여 지급을 중심으로 한 실업인정절차에 엄청난 행정력을 투입하고, 수급자에게 적합한 일자리를 제공하려는 재취업지원서비스는 상대적으로 소홀한 것이 현실이다. 

 

대상판결의 경우 그 과정에서 실업 불인정 비율이 너무 낮다는 지적이 나왔고, 그러자 정부 차원에서 실업인정을 어느 정도까지 허용할 지에 대한 목표치를 정하였으며, 경직된 행정으로 말미암아 원고와 같은 선의의 피해자가 나오게 되어 소송까지 이르게 된 것으로 분석된다. 

 

따라서 Activation정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단시간 내에 고용률 상승이라는 계량화된 개선 수치에만 매몰되지 않고, 구직자의 특성에 맞는 프로파일링, 심층상담 등 실질적인 고용지원서비스가 조화를 이루어야 하도록 기본 접근 방향을 다시 추슬러야 한다. 이를 위해서 고용센터 현장에서도 실적 위주의 실업급여 관리업무 보다는 실직자에 대한 실질적인 고용지원서비스가 제공되도록 충분한 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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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차의료와 주치의제도

 

이재호 가톨릭의대 가정의학교실 교수

 

일차보건의료, 일차의료, 일차진료

세계보건기구가 1978년 카자흐스탄의 알마아타(현재 명칭은 알마티)에서 개최한 일차보건의료(primary health care)에 관한 국제학술대회를 공중보건을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 학술대회에서 134개 국가가 선언문에 서명을 하였다. 이 선언은 건강 패러다임 전개 과정의 전환점이 되었으며, 오늘날까지 알마아타 이념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지난 40년 동안 국제연합의 어떤 결의도 그 정도 규모의 도전할 만한 목표를 제기한 적이 없었다. 2000년까지 ‘모든 이에게 건강을(Health For All)’ 이라는 기치를 내세운 알마아타 선언은 일차보건의료를 보건의료체계의 주춧돌로 만드는데 필요한 목표였다. 이 선언은 과도하게 ‘병원 중심적’이고 의료화된 체계를 피하고, 보다 사회학적 접근방식을 선호하였고, 오늘날까지도 이어지는 1978년 시점의 냉전 논리 속에서 의미 있는 일련의 주요 요소들을 명확히 하였다 ─ ①협력과 세계 평화, ②새로운 국제 경제 질서, ③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 인식, ④건강증진에 있어서 다른 부문들을 참여시킬 필요성, ⑤일차보건의료의 기획, 실행, 관리에 지역사회 참여, ⑥건강 형평성.

 

알마아타 선언에서의 일차보건의료란, 지역사회에서 개인과 가족에게 보편적으로 접근 가능하며, 지역사회와 국가가 감당할 수 있는 비용으로 이루어지는 필수적인 보건의료이다. 일차보건의료는 국가의 보건의료체계와 지역사회 전반의 사회적 경제적 발전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을 구성한다. 또한 개인과 가족, 그리고 지역사회가 국가 보건의료체계와 첫 번째로 접촉하는 지점으로서, 보건의료를 사람들이 살며 일하는 곳에서 가능한 가깝게 놓이도록 하며, 보건의료 과정의 첫 번째 요소를 구성한다. 일차보건의료는 지역사회의 주요 건강문제들을 다루며, 건강증진, 예방, 치료, 지지 및 재활 서비스를 제공한다.

 

일차의료(primary care)와 일차보건의료는 유사한 용어로서 종종 혼용한다. 일차보건의료는 필수적이고 보편적인 접근이 가능한 서비스, 국가의 전반적인 사회경제적 발전의 중요한 부분, 지역사회와 국가가 감당 가능한 비용, 다학제 협력와 팀워크 등을 강조한다. 반면에, 일차의료는 질병이 아니라 사람에 초점을 둔, 오랜 시간 동안 지속하는 의료서비스, 환자와의 지속적인 동반자 관계 등을 강조한다. 선진국에는 일차의료라는 용어를 개발도상국에서는 일차보건의료라는 용어로 더 잘 사용한다. 일차의료는 그 기능과 특징에 있어서 가정의학(general practice/family medicine) 업무와 대체로 일치한다. 일차의료가 일차보건의료의 중심에 위치하는 국가에서 일차의료 의사는 여러 일차보건의료 활동들을 조정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한편, 일차의료를 일차진료(primary medical care)로 오해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국내 보건의료 현실에서 일차진료는 지나치게 활성화되어 있지만, 일차의료는 매우 취약한 상태이다. 일차의료는 일차보건의료와 일차진료를 포괄해서 사용하기도 하지만, 일차진료가 지역사회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변화하여 일차보건의료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개념으로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표 2-1>)

 

<표 2-1> 일차진료, 일차의료, 그리고 일차보건의료

<표 2-1> 일차진료, 일차의료, 그리고 일차보건의료https://lh4.googleusercontent.com/b7daTt7E-eAN2ilcYA30q9MGuC9whW3wMmaL8P... />

 

일차의료라는 용어의 기원

일차의료라는 용어의 기원은 1920년 영국의 도슨(Dawson) 보고서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보고서는 의료 제공 단계를 일차보건센터, 2차 보건센터, 교육병원으로 구분하였다. 일차보건센터에서 치료가 어려운 경우는 2차 보건센터로 의뢰하며, 교육병원은 의과대학과 연계되어 어려운 질환을 주로 취급하면서 교육 수련을 담당하는 곳이라고 하였다. 이 같은 개념 구분은 훗날 많은 나라에서 보건의료체계 개편의 틀을 제공하였으며, 일차의료 부문의 역할을 강조하는 계기가 되었다. 일차의료라는 용어가 문헌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미국에서 의료 전문화가 한창일 때인 1960년대 화이트(White) 등의 일차의료 연구에서였다. 그들은 ‘의료 생태계(The Ecology of Medical Care)’라는 제목의 논문(1961)에서 역학적인 분석을 이용하여 대부분의 보건의료 문제들이 일차의료 영역에서 적절하게 다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일차의료 개념 정의

미국 의학연구소(1996) 일차의료 미래 위원회는 일차의료를, 개인적으로 필요한 보건의료 서비스의 대부분을 담당하는 의료인이, 환자와 지속적인 동반자관계를 형성하면서, 가족 및 지역사회 맥락에서, 통합적이며 접근성 있는 보건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과정이라고 정의하였다. 일차의료 석학인 바바라 스타필드(Barbara Starfield, 1998)는 일차의료를 “보건의료체계 최초접촉 진입 지점으로서 오랜 시간에 걸쳐 질병이 아니라 사람에 초점을 두고, 매우 드문 질환들을 제외한 모든 질환들에 대한 서비스를 제공하며, 다른 제공자 의해 다른 장소에서 제공되는 서비스들을 조정하고 통합하는 보건의료체계의 단계”로 정의하였다. 국내에서 일차의료 관련 전문가 77인이 참여한 델파이 연구와 한글학회 자문과정을 거쳐 ‘우리나라 일차의료 개념’을 다음과 같이 정의(2007)하였다 ─ "건강을 위하여 가장 먼저 대하는 보건의료를 말한다. 환자의 가족과 지역사회를 잘 알고 있는 주치의가 환자-의사 관계를 지속하면서, 보건의료 자원을 모으고 알맞게 조정하여 주민에게 흔한 건강 문제들을 해결하는 분야이다. 일차의료 기능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여러 분야 보건의료인들의 협력과 주민의 참여가 필요하다."(이재호 외, 2007)

 

일차의료의 핵심속성

일차의료의 정의는 공통적으로 최초접촉, 포괄성, 조정기능, 지속성을 포함한다.

 

1) 최초접촉

  • 일차의료는 보건의료체계 최초접촉 진입지점이라는 특징을 지닌다. 이 같은 진입지점이 필요한 이유는 의료서비스의 내용, 그 적절한 시기나 적합한 제공자에 관한 사항들을 일반인들이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최초접촉은 접근성을 포함하는 의미이다. 접근성은 지리적 위치, 진료시간, 예약 없이 방문하는 환자를 받아들이는 정도, 비용부담 등을 포함한다. 일차의료 접근성 향상은 다른 전문의 또는 응급실의 불필요한 방문을 감소시키며, 질병의 이환율과 사망률을 줄일 수 있게 된다. 최초접촉 지점으로 일차의료 의사(vs 질병 전문의)를 이용하는 경우, 보다 적절한 건강관리와 우수한 건강결과에 이르게 한다.

2) 포괄성

  • 일차의료는 건강증진, 예방, 흔한 질환의 진단과 치료, 다른 제공자들에게로의 의뢰, 만성질환, 재활, 완화의료, 그리고 때로는 사회적 서비스까지 포함한다. 일차의료는 남녀 구분이 없이, 모든 연령에서, 질병과 건강의 모든 스펙트럼에서 환자의 건강을 위해 부족한 것들을 찾아내고 해결한다는 의미에서 포괄성을 지닌다.

3) 조정기능

  • 일차의료는 지역사회 자원의 합리적 배열, 유기적 연결, 적절한 자문과 의뢰를 통하여, 환자의 건강요구에 적합하게 건강 서비스와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의미하는 조정기능을 지닌다. 부적절한 의뢰는 의료비를 증가시킬 뿐만 아니라 치료에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으며, 적절한 의뢰는 치료 효과와 치료 만족도를 증가시킬 수 있다. 일차의료 의사는 의뢰 여부를 결정하는 문지기(gate-keeper)가 아니라 조정자로 기능한다.

4) 지속성

  • 일차의료는 환자-의사 신뢰관계 속에서 질병이 아니라 사람에 초점을 두는 의료서비스를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제공한다는 의미의 지속성을 지닌다. 일차의료 지속성은 진료의 지속성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개인이 상용기관(또는 주치의)을 가지고 있는가의 여부로 평가할 수 있다. 의료기관 또는 팀이 상용치료원인 경우는 주치의가 상용치료원인 경우보다 조정기능에 문제가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지속성은 주치의가 환자를 보다 잘 파악하게 하고, 처방된 약물의 순응도를 높이며, 예방 서비스를 더 잘 받게 하여 효율적인 건강관리가 가능하다.

 

일차의료 구조의 취약성에 기인하는 우리나라 건강통계

1) 국민 1인당 연간 의사 방문 빈도 회원국 중 최고

일차의료 영역에서 각 분야 전문의들이 자유롭게 의원을 개설하여 일차진료를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병원도 임상과별로 일차진료를 제공하여 서비스 분절화가 매우 심하다. 우리 국민은 증상별로 스스로 의사 또는 의료기관을 선택하는 경우가 흔하다. 우리나라의 국민 1인당 연간 의사 진료 빈도는 2012년에 일본을 추월하여 OECD 회원국 중 최고를 기록하며 계속 상승하고 있다. 2017년 현재 연간 16.6회로 회원국 평균(6.8회)을 크게 상회한다. 최근 10여 년 동안 큰 변화가 없어 왔던 다른 국가들과 크게 비교된다.

 

2) 인구 천 명당 병상 수, 가파르게 증가하는 유일한 국가

행위별 수가제 하에서 단독진료가 대부분인 동네 의원에서, 양질의 일차의료 서비스를 받기 어려운 상황이다. 당뇨, 천식 등 일차의료 영역에서 충분히 관리 가능한 질환으로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 받는 경우가 흔하다. 게다가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및 검진 확대 정책은 우리 국민으로 하여금 대형병원을 찾도록 유인하였다. 그 결과 최근 수십 년 동안 대형병원들은 경쟁적으로 병상을 확충해 왔다.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중 병상 수가 가파르게 증가하는 유일한 국가가 되었다. 인구 천 명당 병상 수는 2017년 현재 12.3 병상으로, 회원국 평균(4.7 병상)을 크게 상회하고 있다. 일본(13.1 병상)에 이어 2위이나 조만간 일본을 추월할 것이다.

 

3) 국가 보건의료비 증가율 회원국 중 2위

인구의 고령화와 만성질환 증가로 의료비 증가는 각국의 공통적인 현상이지만, 우리나라는 최근 10여 년 간 연간 의료비 증가율이 OECD 회원국 중 최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2017-2018년 의료비 증가율은 9.0%로 회원국 평균(2.4%)을 크게 넘어섰고, 리투아니아(10.1%)에 이어 2위였다. 일차의료 영역에서 조정기능 결여는 건강자원에 대한 무분별한 접근을 가능하게 하여 불필요한 의료비 상승을 초래한다.

 

4) 일차의료 민감 질환 입원율 상위권

일차의료에서 효과적으로 예방하고 관리가 가능한 만성질환들 중 대표적인 질환이 당뇨이다. 당뇨 환자가 양질의 일차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한다면, 합병증이 발생하거나 관련 질환들 때문에 병원 입원 사례가 증가한다. 2017년 기준 우리나라 15세 이상 인구 십만 명당 당뇨병 입원율은 245.2명으로 OECD 회원국 중 멕시코(248.5명) 다음으로 높으며, 회원국 평균(129명)을 크게 넘어섰다.

 

5) 갑상선암 과잉진단율 세계 최고

주치의의 근거에 바탕을 둔 권고에 의해 건강검진이 이루어진다면, 질병 조기발견으로 사망을 피할 수 있다. 국내에서 건강검진은 시장에 맡겨져 있어 과잉진단 가능성이 높다. 국가 건강검진도 일차의료 지속성을 저해하고 의료서비스 분절화와 대형병원 환자쏠림을 조장하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우리나라는 갑상선암 발생률(사실상 발견율)에 있어서 지구상에서 예외적으로 높다. 특히 여성 갑상선암 과잉진단율은 90%로 추정된다.

 

일차의료 강화의 핵심은 주치의제도 도입

일차의료 강화는 보건의료체계의 형평성과 효율성을 위해서 필수적이다. 그렇지만 보편적 건강보험의 역사가 30년이 지난 국내에서 일차의료 영역은 거의 변화가 없어왔다. 일차의료에 대해서 그 개념조차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다른 선진국들의 건강보장체계는 물론이거니와 미국의 민간보험도 권장하는 일차의료 의사(주치의) 보유·이용을 우리나라 정부와 건강보험은 의사협회의 눈치를 보면서 말을 꺼내지도 못하고 있다. 의약분업(2000) 실시로 발생했던 의사파업에 대한 정신적 상처가 남아 있는 듯하다. 주치의제도에 대한 인식도 90년대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가의 책임 방기가 아닐 수 없다.

 

국내에서 주치의제도 도입은 일차의료 강화를 위한 핵심 정책이다. 주치의제도는 지역사회 주민 개인 또는 가족이 일차의료 의사와의 지속적인 관계(rapport)를 유지할 수 있도록 보험자 또는 국가가 지원하는 제도이다. 주치의제도 하에서의 지불제도는 전통적인 인두제를 연상하기 쉽지만, 행위별수가제, 성과급제, 봉급제 등을 혼합한 방식이 세계적인 동향이다. 주치의제도는 주치의가 환자의 합리적인 의료서비스 이용을 돕는 제도이며, 의료서비스 이용을 규제하는 제도가 아니다. 주치의 제도는 일차의료 의사 본연의 역할을 지원하는 제도이며, 희생을 요구하거나 통제를 위한 제도가 아니다.

 

주치의라 하면, 병원 의사와 구분해야 하며 지역사회에서 건강 전반을 담당하는 일차의료 의사를 의미한다. 일차의료 의사는 일차보건의료팀과 더불어 주민의 건강증진, 질병예방, 만성질환 관리, 그리고 의뢰-회송을 포함한 건강자원의 효율적 활용을 위한 조정기능을 수행한다. 일차의료 의사는 대체로 가정의(GP 또는 family physician)를 의미하며, 일차의료 의사가 되기 위해서 의대 졸업 후 3~6년의 전공의 수련 과정을 이수하는 것이 세계적인 동향이다. 대부분의 선진국은 일차의료 의사의 범위를 한정한다. 그렇지만 우리나라는 일차의료 의사로 가정의(가정의학 전문의)를 양성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단과 전문분야 의사들이 일차의료 영역에서 일차진료를 담당하고 있다. 따라서 주치의제도 도입 과정 주요 과제 중 하나가 일차의료 의사 범위 한정이다. 일차보건의료팀은 일차의료 의사, 간호사, 영양사, 물리치료사, 사회복지사 등 다학제 보건의료진(15∼20인)을 의미한다. 일차의료 의사 1인 진료보다는, 일차보건의료 팀과 더불어 그룹 진료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이다.

 

의뢰제도와 주치의제도 보유여부에 따라 해당 국가의 일차의료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데, OECD 국가들을 분류하면 다음 표 2와 같다. 이 중에 최근 20년간 주치의제도를 도입했거나 도입 중에 있는 국가들은 노르웨이, 프랑스, 캐나다, 스웨덴, 터키, 동유럽 국가들이다. 우리나라는 미국, 일본, 독일과 함께 둘 다 없는 10개 국가에 속하지만, 그 중에서도 일차의료 개념부재와 공공의료 취약성을 고려하면 일차의료 수준이 최하위권으로 평가된다.

 

<표 2-2> 의뢰제도 또는 주치의제도 보유여부에 따른 OECD 회원국 분류

<표 2-2> 의뢰제도 또는 주치의제도 보유여부에 따른 OECD 회원국 분류https://lh5.googleusercontent.com/RlIPJYjmV3lwgl6F_K62MxdmxYbP3--C6_T1wk... />

 

주치의제도 도입의 편익

주치의제도 도입은 국민, 의료인, 국가 입장에서 다음과 같은 편익을 예상할 수 있다.

 

<표 2-3> 주치의제도 도입의 편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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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치의제도 도입 단계적 방안

우리나라 보건의료체계는 민간 부문이 주도해 왔으며, 대형 병원 중심의 치료 위주의 의료가 발달해 왔다. 상대적으로 공공 부문의 역할과 기여는 부족했으며 일차의료는 그 개념조차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는 단계적인 주치의제도 도입이 필요하다. 최소 5년의 시간이 도입을 위해 필요할 것이며, 정착을 위해서는 10년 이상 소요될 것이다. 90년대 방식의 의사(제공자) 주도형 제도 도입이 아니라 국민(이용자) 주도형 제도 도입이 바람직하다. 제도 도입에 관한 국가 지도자의 의지 표명 후에, 단계적으로 집중해야 할 과제로 여론 형성, 합리적인 의료이용, 일차의료 기반조성, 의사 참여, 지불제도 개편과 같은 5단계로 설명할 수 있다.(<표 2-4>)

 

<표 2-4> 주치의제도 도입 단계적 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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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단계: 여론 형성> ‘주치의 보유의 필요성 홍보’ 최소 1년

국민적 관심사가 될 수 있도록 주치의 보유에 관한 긍정적인 인식의 확산을 목표로 한다. 주치의를 두고 합리적으로 의료서비스를 이용하도록 대국민 홍보를 시행한다. 주치의 보유의 필요성과 그 편익을 홍보한다.

 

<제 2단계: 합리적인 의료이용> ‘이용자 편익 부여’: 제 2년차부터 시행하여 지속

주치의를 지정하고 이용하는 환자에 대해서 혜택을 부여한다. 이 단계에서 주치의 자격 기준이 엄격할 필요가 없다. 환자가 원하는 어떤 의사도 주치의로 지정이 가능하다. 일단 주치의로 지정한 후에는 자신의 모든 건강문제에 대해서는 가장 먼저 그 주치의와 상의해야 하도록 한다. 주치의 의뢰를 통한 건강 서비스 이용이나 단과 전문의 진료에 대해서, 본인부담 비중을 연차적으로 줄여 나간다.

 

<제 3단계: 일차의료 기반조성> ‘일차의료 강화’: 1∼2년차에 준비, 3년차부터 추진

일차의료의 개념과 일차의료 의사의 범주에 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고, 일차의료 의사의 장기적인 육성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한다. 동네의원 단과 전문의에게는 희망할 경우 일차의료 의사로 기능 할 수 있도록 연수교육의 기회를 제공한다. 세제 혜택, 수가 조정 등으로 그룹 진료를 권장한다. 국가가 표준 일차의료 기관(‘마을 건강센터’)을 지원하거나 설치한다.(표 2.) 의과대학·간호대학과의 제휴를 통해 일차의료와 일차보건의료에 관한 교육과 수련 기능을 갖출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한다.

 

<제 4단계: 의사 참여> ‘주치의에게 혜택부여’: 제 3년차에 준비, 4년차부터 추진

환자가 주치의로 지정하고 이용하는 그 주치의에게 환자의 수에 따라서 보험자가 환자 당 일정액의 건강관리 비용을 지불한다. 아울러 주치의로부터 의뢰된 환자를 진료하는 단과 전문의에게는 수가조정을 통해서 일정부분 보상이 이루어지도록 한다.

 

<제 5단계: 지불제도 개편> ‘혼합형 지불방식 시행’: 제 5년차부터 추진

환자가 주치의로 지정한 의사가 자신을 주치의로 지정한 환자 명단을 확보하여 보험자에게 제출하면, 일정비율 인상된 건강관리 비용을 제공한다. 일차의료 질 평가(예, 환자경험에 근거한 일차의료 속성 평가, 임상 질 지표 평가, 구조 평가 등)의 결과에 따라 추가로 보상이 이루어지도록 한다.

 

 <표 2-5> ‘마을 건강센터’(표준 일차의료 기관)의 구조와 9가지 기능

 

<표 2-5> ‘마을 건강센터’(표준 일차의료 기관)의 구조와 9가지 기능https://lh6.googleusercontent.com/bDa-z7KB7IgkdSLWDmyOC75d7XZvoZO-N6GpOa... />

 

수, 2019/12/04-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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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양의무자기준 폐지에도 여전한 주거급여의 사각지대 - 정형화된 빈곤을 넘어서

 

김경서 민달팽이유니온 정책국장

 

현 주거급여의 한계

문재인 정부가 ‘혁신적 포용국가‘를 내세우며 출범한 지 2년 반이 지났다. 그러나 정부가 2년 반이라는 시간 동안 꾸려온 사회정책의 기조를 살펴보면, 과연 ’누구‘를 포용하는지 ’무엇‘이 혁신적인지 되물을 수밖에 없다. 이는 주거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촘촘한 주거복지 로드맵을 발표한 지 2년이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손가락 사이의 모래알처럼 빠져나가고 있다.

 

2018년 10월, 주거급여에 한하여 부양의무자기준이 폐지되었다. 맞춤형 급여로 전환될 당시, 교육급여에서의 부양의무자기준이 폐지된 이후 3년만의 성과였다. 이것이 일종의 진전이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하나의 개별급여에서만 부양의무자기준을 폐지하는 것은 사각지대에 놓인 비수급 빈곤층을 포괄하는 데에 명백한 한계로 작용하였고, 문재인 정부의 “촘촘한 사회안전망”이라는 당초 약속은 실효성 있게 지켜지지 못했다. 한편, 부양의무자기준이 폐지되었다고 알려진 주거급여는 다시 사각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현재 주거급여에서의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는 사실상 20대를 배제한 채 이루어지고 있다. 만 30세 미만의 경우, 원가족과 거주지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부모의 부양을 받는 것으로 취급되어 하나의 가구로 인정되기 때문이다. (참고자료1) 가구를 분리하기 위해서는 결혼을 하거나 일정 소득 (2019년 기준 1인 가구 85만원) 이상을 벌어 자신이 부양받고 있지 않음을 증명해야한다. 그러나 애초 주거급여는 중위소득의 44% 이하의 소득이 있는 가구에게만 해당되기 때문에 결국 20대 독립가구는 대부분의 경우 주거급여를 받을 수 없는 셈이다. 이에 민달팽이유니온과 같은 시민단체는 관련 부처에 ‘만 30세’라는 기준의 근거를 문의하였다. 그러나 돌아오는 답은 ‘20대는 원가족의 부양을 받지 않냐’는 국민정서상의 이유였다. 누군가의 실체적인 고통을 해명하기에는 너무나 추상적인 대답이었다.

 

 <표 3-1> 현행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보장가구 범위 안내https://lh6.googleusercontent.com/gphldL3kqNICZwmuD88PkPNLKo-dn0S5fiddR-... />

 

이처럼 20대 청년, 특히 빈곤하고 ‘비정상’적인 청년들은 출처불명의 ‘30세 미만’ 기준으로 인해 주거복지의 사각지대로 내몰리고 있다. 민달팽이유니온은 이러한 현행법상의 부작용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고자 사례를 수집하였다. 우선 원가구가 보장가구인 20대에 한하여 인터뷰가 이루어졌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소득인정액 합산의 모순점을 지적하며 현 복지체계가 빈곤을 재생산하고 있다고 증언했다. 한 인터뷰이는 ‘마음껏 아르바이트를 해보는 게 소원’이라며, 원가구의 소득인정액이 증가되어 수급자격을 박탈당하는 일이 생길까봐 늘 조마조마하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스스로 주거비를 충당하지 않으면 원가족의 생계급여를 끌어다 쓸 수밖에 없기 때문에 결국 소득신고가 되지 않는 불안정하고 단기적인 일자리만을 전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결국 이들은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노동시장에서 착취당하거나 원가족과 생활을 재결합하거나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셈이다. 이처럼 복지가 장악하지 못한 빈곤의 자리는 개인의 희생과 선택지의 축소로 이어진다.

  

빈곤에 대한 상상력의 결핍

중앙생활보장위원회는 제58차 회의를 통해 원가족이 보장가구인 20대 개별가구에 한해 주거급여를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현행 주거급여에 위와 같은 사각지대가 있다는 사실을 파악한 후 정부가 대책을 세운 것이다. 다만 이는 2021년부터 시행될 예정이므로 2년간의 공백이 발생하는데, 이 기간에 대한 대책이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2년의 세월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는 빈곤상황을 포함시키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이를테면 부모와 독립해서 살고 있는 혼인제도 바깥의 20대 청년들은 소득수준이 주거급여 수급조건에 충족하는 경우에도 지침상의 이유로 주거급여를 받을 수 없다. 부양의무제의 고질적인 문제점이었던, 실질적인 빈곤상황을 통제하지 못하는 일이 다시 발생하는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제도적 실태는 청년을 바라보는 시각과 가족구성에 대한 고정관념의 반영으로서, 소수자를 빈곤으로 내모는 수단으로 작동되고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30세 미만 주거급여 수급제한은 약 세 가지 지점에서 비판가능하다.

 

첫째, 이는 연령에 따른 차별이자 보편적 시민권에 대한 침해이다. 30세라는 기준이 어디에서 기인하였는지 정부에게 여러 차례 물었으나, 돌아오는 답변은 하나같이 통념적이었다. 20대에게 대부분 부모가 있을 것이며, 그들의 지원을 받을 것이고, 사회에서 말하는 ‘근로능력’이 있을 것이라는 고정관념. 이처럼 관념을 바탕으로 복지의 대상자를 결정하는 행위는 그 프레임 바깥에 존재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지우는 것이나 다름없다. 동시에, 한 개인의 상황을 근거로 복지의 대상 여부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전적인 판단을 통해 애초 그 자격을 박탈할 수 있다면 그는 다른 이들과 동일한 권리를 가졌다고 볼 수 없다.

 

둘째, 이는 혼인제도로 제한되는 정상가족 중심의 복지혜택이다. 실제로 30세 미만이더라도 결혼을 한다면 주거급여 정책의 대상자가 될 수 있다. 이런 현상에 대해서는 다층적인 해석이 가능한데 우선, 국가는 절대 원가족보다 앞서서 개인을 책임지지 않겠다는 제스처다. 결국 누군가와 부양-피부양의 관계를 맺을 때라야만 복지를 허락한다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가하면 이성애혈연가족의 구성원으로서 인구생산에 기여할 때라야만 시민권을 인정해주겠다는 일종의 시그널이기도 하다. 같은 소득에 같은 원가족, 주어진 상황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는데 그저 결혼제도에 포섭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갑자기 급여가 주어지는 것은 결혼제도의 유무가 당사자의 권리와 직결된다는 결론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셋째, 이는 도시거주 청년 및 소수자들의 빈곤상황을 배제하는 결과를 낳는다. 원가족과 불가피하게 단절되어야 하는 상황, 이를테면 가정폭력, 착취, 단절 등 주로 사회적 약자 혹은 소수자들이 겪게 되는 상황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가족이 폭력과 고통의 원인이 되는 경우는 너무나 흔함에도 불구하고, 국가는 가족 관계를 마치 고통을 나누어지는 족쇄처럼 취급한다. 실제로 학업/취업 등의 이유로 도시에 거주하게 되는 이들은 자신의 이주가 원가족에게 미칠 영향을 끊임없이 생각하여야 한다. 당장의 상황을 버틸 여력이 없어 기회를 포기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처럼 30세 미만 주거급여 제한이라는 현상은 단순히 청년 세대의 빈곤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얼마나 정형화된 형태로만 빈곤을 정의하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는 사례이다. 부정수급, 예산낭비와 같이 의심하고 배척하는 상상력은 좋아진 반면, 빈곤이 사람의 자리를 협소하게 만드는 방식 내지 현실에 대한 상상력은 날이 갈수록 결핍되어 간다.

 

같은 맥락에서 만일 부의 이전 현상을 걱정하는 것이라면, 이것은 연령과 무관하므로 상속세-증여세를 높이면 될 일이다. 만일 이것이 독립이 늦어지는 현상을 반영한 결과라면, 국가는 그간의 정책이 원가족과 대상자를 묶어두는 역할을 해왔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고 더더욱 실질적인 부양의무제 폐지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만일 주거급여를 인정함으로써 1인 가구가 증대될 것을 염려하는 것이라면, 한 사람이 독립하면서 발생하는 비용 중에 주거급여가 커버할 수 있는 비율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그것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걱정인지 알 수 있다. 누구도 30만 원을 얻자고 100만 원을 지출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국가는 100만 원을 지출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30만 원이라도 보전할 수 있다는 그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예산 부족이 아닌 정치적 결단력의 미비

30세 미만 주거급여 수급제한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지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에게 문의하였으나, 이에 대해 급여를 인정할 계획이 없으며 기준을 없앤다더라도 아주 제한적인 범위 내에서만 시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 이유로 과다한 복지 예산 지출을 들었다. 하지만 지난 10월 발표된 예산안을 보면, 수급자가 확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주거급여 예산은 절감되었다. 본래 예상했던 인구의 약 40%만이 신규진입하여, 나머지 60%에 대한 1860억 가량이 불용되었기 때문이다.

 

한편, 한국도시연구소의 김기태 연구원이 2018년 가계금융조사 자료를 기반으로 추계한 결과, 30세 미만의 미혼 청년이 가구주인 경우는 2만 6천여 가구에 달했다. 또한 이들에게 모두 주거급여를 지원한다 해도 연간 400억 가량이 지출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불용액의 30%도 되지 않는 금액이다. 결국 예산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어떤 정치적 결단을 내리느냐의 문제이다. 복지예산의 불용액은 단순히 쓰이지 않은 돈이 아니라 지금 필요한 누군가에게 가닿지 못한 돈이다. 따라서 현 정부는 ‘나중에’라는 말 대신 지금 당장, 누가 승인받지 못한 것인지 찾아내고 그 벽을 넘을 수 있도록 조치해야 한다.

 

<표 3-2> 기준 중위소득에 따른 30세 미만 주거급여 대상자 규모 추정https://lh5.googleusercontent.com/xl3ZJW-PK3MUsmFcIDaM3xzi1KBWbt5FduoP25... />

 

 

<표 3-3> 30세 미만 미혼·청년·임차가구 주거급여 대상자 포괄에 따른 소요예산 추정https://lh4.googleusercontent.com/t3trBVpZheEf6c8Cg-hzPKvDxw9pBmnc_Kghqh... />

화, 2020/01/07- 0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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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의 온전한 탈시설을 위한 첫 걸음이 시작되다

 

김정하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상임활동가

기록 및 인터뷰 김경희, 홍정훈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간사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는 한국 정부에 대해 장애인권리협약 제19조에 해당하는 장애인의 지역사회 통합 조치의 미흡함을 지적하며 ‘효과적인 탈시설 전략 수립’, ‘탈시설을 위한 지원서비스 확대’ 등을 권고했다.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제19조는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한 조건으로 거주지를 선택하고 특정한 거주형태에서 사는 것을 강요당하지 않아야 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거주하며 생활하는 것이 결코 녹록하지 않다. 최근 서울시에서 탈시설 장애인의 지역사회 정착을 보장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시작된 장애인지원주택 정책이 반가운 이유다. 탈시설 운동에 오랫동안 참여했으며, 현재 사회복지법인의 공익이사를 겸하고 있는 김정하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상임활동가를 만나 서울시 지원주택과 탈시설 운동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이 주력하는 이른바 ‘탈시설’ 운동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1980년대 후반부터 시설 인권문제가 제기되기 시작했다. 말도 안 되는 환경에서 집단적으로 강제수용된 형태의 사회복지시설 인권침해 문제가 제기되어 왔고 언론에도 계속 보도됐다. 그러다 1990년대 해외의 사회통합 탈시설과 정상화, 자립생활과 사회통합 이론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2000년 초반에 자립생활이념을 표방한 IL센터(장애인자립생활센터, a center for independent living)가 생겼다. 자립생활은 기본적으로 시설 수용을 거부한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끊임없는 인권침해 문제에 대해 시설별 각종 대책위원회가 구성되며 시민사회 조직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사건별로 각종 대책위원회가 너무 많이 생기자, 인권운동사랑방,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등을 중심으로 ‘시설생활인 인권 확보를 위한 대책위원회’로 통칭하여 2003~2005년까지 활동을 했다. 발바닥행동(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의 약칭)도 2005년에 탄생했다.”

 

- ‘시설생활인 인권’이라는 운동의 표어가 갖는 의미는 ‘탈시설’과 차이가 있었던 것인가?

“2005년에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연구용역을 받아 전국 시설을 조사했다. 문제 시설을 조사한 것이 아니라 무작위로 뽑아 조사했는데, 시설생활이 폭행, 성폭력, 강제노역, 감금, 강제 의약물 투약 등의 신체적 학대 외에도 기본적으로 외출이 불가하고 핸드폰도 소지할 수 없어 외부와 소통할 아무런 수단도 갖지 못했다. 일상생활 자체에도 인권침해 적이었다. 오후 4시 반에 저녁을 먹고 오후 8시에 일괄 소등하는 등 전혀 인간답지 못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결국 이것은 시설의 인권침해 여부와는 상관없이 시설생활 자체가 구조적으로 인권침해를 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시설을 보다 인간다운 조건으로 만들려던 운동 방식에서 방향을 선회하기 시작했다. 시실인권운동에서 탈시설운동으로의 선회다. 물론 그전에도 탈시설 이론에 대해 알고 있었고 방향에 대한 동의는 있었지만, 당시만 해도 시설 밖으로 나오면 활동지원시스템이나 주거지원도 없었고, 기초생활수급비도 20만 원 나오는 정도에 그쳤기 때문에 시민사회운동에서 탈시설을 전면으로 내세우기 어려웠다.

 

그러나 2005년부터 탈시설에 힘을 싣기 위한 활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시민사회조직의 반성이 있으면서 탈시설 운동을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때 탈시설한 사람의 경우 자립지원이 없는 상황에서 탈시설했던 사람도 있었다. 탈시설 운동 이전에 시설 내의 인권침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부터 시작했지만, 시설이 가지고 있는 격리성, 집단성, 권력불평등성 등의 구조적 문제들로 시설이라는 곳에서 인간다운 조건에서 살기 어렵다면, 정부는 이 사람들을 어떻게 지원해야 하는가를 답하고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게 되었다.”

 

- 당시 장애인 수용시설의 실태는 얼마나 심각했나?

“김대중정부이던 당시 미신고시설 비닐하우스에서 생활하던 장애인이 화재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러면서 2002년 미신고시설 양성화 정책을 하게 되었다. 전 세계가 지역사회로 통합하는 추세였는데 한국은 오히려 미신고 시설을 ‘신고 시설화’해서 지원하겠다는 정책으로 1200개까지 시설이 증가하게 되었다. 시설에 대한 예산을 지원하면서 계속해서 시설수가 증가했기 때문에 잘못된 정책이었다고 평가한다.

 

그당시 미신고 시설을 양성화하기 위해서 정부는 기금을 지원했는데 복권기금을 활용해 총 1200억 원을 투자했다. 당시 지원금을 받은 곳을 조사하니 그 돈으로 예배당을 짓거나, 거주공간을 지어놓았더라도 홀 같은 곳에 30명이 자게 만들고, 낙상사고 위험에도 청소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시설의 벽이랑 바닥을 타일로 만들어 놓은 곳도 있었다. 시설당 4~5억 원씩 주고도 관리감독조차 제대로 하지 않아 벌어진 일이다. 시설장에게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주기 위해 단기 교육을 통한 자격증이 난무했고, 직원은 명단만 있으면 되니 교인이나 가족명단으로 채우는 경우도 있었다. 어느 시설은 화장실에 칸막이 없이 변기만 여러 개 있는 경우도 있었고, 예전 고문시설과 같은 구조의 거주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건축물을 복권기금으로 지었었다. 우리는 그당시 차라리 그 돈을 당사자들이 민간주택의 전세를 구하도록 전세자금을 빌려주고 활동보조 지원을 하라고 주장했었다.”

 

- 2005년 즈음 대응했던 사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꼽는다면?

“2005년 발바닥행동이 만들어질 때 S재단 사건으로 한창 싸울 때였다. 현재도 S재단 산하에 4개 시설이 남아있고 운영되고 있다. 재단의 비리가 고발된 당시에는 13개 시설을 운영하고 있었다. 1,500명이 넘는 거주인들의 주부식비 등 영수증을 부풀려 회계를 마음대로 유용하고, 심지어 하루에 온수가 나오는 시간이 30분 정도밖에 없어 따뜻한 물을 쓰기 위해 경쟁해야 했었다는 증언, 거주인들에게 생리대 보급도 제대로 안 되서 직원들이 자기 집에서 면생리대를 만들어 가져왔다는 증언, 너무 추워서 직원들이 거주인들의 바지와 양말을 꿰매주었다가 퇴근하면서 다시 풀어주었다는 증언 등이 쏟아져 나왔다. 이사장 배우자가 세탁부로 허위 직원 등재를 하여 월급을 받아가고, 횡령된 금액의 일부가 해외에서 사회복지 공부를 하러 유학 간 아들의 유학자금으로 보내졌다는 것도 밝혀졌다. 허위로 작성된 문서를 직원들이 소각장에서 발견해서 드러내는 등의 고발도 있었지만 처음에는 형사고발도 되지 않았다. 유학에서 돌아온 아들은 지금 이사장이 됐다.

 

이런 대형법인의 비리가 제보되었는데도 해당 지자체는 고발도 안하다가, 해당 재단의 시설에서 성폭력 사건이 있었는데, 경찰이 성폭력 사건에 대한 수사를 하다가 비리수사까지 확장된 것이었다. 그제서야 법인이사장이 구속됐다. 공익제보가 힘이 없었던 이유는 사회복지기관이 공공시설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개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공무원들의 생각도 강했기 때문인 것 같다. 오히려 시설을 비호하고 미온적 태도를 보였고, 비리는 잘못이지만 이사장만 바꾸고 이사진은 그대로 두는 등 운영권 개입은 어렵다는 인식이 컸다. 하지만 그 후로 도가니사건 등 많은 사건들을 거쳐오면서 이제는 시대와 인식이 많이 변화했고, 여러 일을 계기로 이제는 이사를 해임시키는 등 규제하고, 임시이사로 들어갈 때 정부가 추천하고 시민사회단체가 의견을 내서 공공이사들이 들어가 비리집단을 배제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탈시설 정책 토론회에서 발언 중인 김정하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https://lh3.googleusercontent.com/h1v5DLc_-y4fxN0zvL_jOOXE9jZY9_5RBwSfF0... />

탈시설 정책 토론회에서 발언 중인 김정하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 <사진 = 웰페어 이슈 Youtube>

 

- 시설에서 생활하는 장애인은 어떤 경로로 입소하게 되는가?

“시설을 사용하는 사람 중 발달장애인 사람이 76%로 높은 비율 차지한다. 발달장애는 사람마다 그 장애정도가 다르겠지만 집단 통제나 규율을 지키기 어려운 사람이 많다. 그런데 시설에 가보면 다 일렬로 줄을 서 있는 발달장애인의 모습을 보게 된다. 발달장애인들이 어떻게 일렬로 조용히 줄을 서 있을까?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그들이 폭력적이거나 강압적인 상황을 경험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발달장애는 그 자체가 집단적 통제나 규율을 이해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집단서비스가 맞지 않다. 그러나 입소자 중 76%가 발달장애인이고, 서울시는 통계중 94%가 비자의 입소로 조사된 내용도 있다. 즉, 나는 시설에 가기 싫다고 자기항변을 하기 어려운 대상들이 비자의적으로 시설에 입소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 장애인 시설과 관련한 명칭도 굉장히 많은 것 같다

“장애인시설을 나타내는 명칭은 수용시설, 생활시설, 거주시설로 바뀌어왔다. 수용이란 단어의 거부감 때문에 생활시설로 바뀌었다가 전일적 생활을 시설 공간 안에서만 하는 것이 문제가 되어 거주시설, 즉 거주만 하는 시설이라는 의미에서 거주시설로 바뀌어 왔다. 거주시설은 낮 생활을 외부에서 하는 것을 목표로 활동하려 했는데 사실상 시설의 위치 때문에 불가능한 곳이 많다. 경사가 높은 곳에, 대중교통이 원활하지 않은 곳에 위치한 시설들이 많다. 휠체어를 타든 아니든 간에 밖에 나가 사회생활을 한다는 생각 자체가 불가능했다. 또 다른 이유는 직원 한 명이 동시간에 지원해야 할 장애인이 4명 많게는 8명이 넘었다. 개인생활, 즉 개인지원이 불가능한 구조다. 그러니 이름만 거주시설이지, 실제로 모든 생활을 시설안에서 하고 있다는 측면에서는 수용형 생활시설인 셈이다.

 

그래서 탈시설, 시설폐쇄법을 주장하며 ‘시설은 감옥이다’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이건 탈시설한 당사자들이 말한 표현에서 따온 것이다. 시설이 법률적으로는 복지관까지 포괄하는 용어지만, 여기서 말한 ‘시설’은 거주형, 수용형 시설을 말한다. 그런데 거주시설의 입장에서 이것이 기분이 나빴는지, 한국장애인복지시설협회쪽 발표자가 장애인복지학회 학술대회에서 거주시설이라는 용어를 거주서비스로 바꾸자는 내용의 발표가 하기도 했다. 무기력함을 낳는 구조에 대한 문제제기에 대해 용어 변경을 대안으로 내세운 것이 언어도단이라고 생각하고, 장애인 당사자 한 명, 한 명의 삶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이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 기존에 여러 형태로 운영되고 있던 그룹홈도 탈시설의 범주에 포함되는가?

“그룹홈도 자신의 집과 같이 되기엔 부족하다. 거주인들이 낮 시간에는 보호작업장, 학교 등에서 생활을 하고 돌아와야 하고 그 시간부터 직원이 일을 한다. 혹시라도 몸이 안 좋더라도 낮에 그룹홈에서 일하는 사람이 없어 그룹홈에 남아 있을 수가 없다. 한국의 그룹홈은 4명의 거주인대비 1명의 직원이 근무한다. 운영방식도 시설과 규모만 다를 뿐 유사하다. 인천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 당사자의 경험을 전하면, 그는 신체장애가 있어 휠체어를 이용하는데 그룹홈에서 소풍 가는 장소는 휠체어가 접근할 수 없는 곳이었다. 그런데도 소풍을 안간다고 하니, 빠지면 안된다하여 억지로 가게 됐고, 다른 사람들이 계단을 올라가서 구경할 동안 혼자 휠체어를 타고 기다려야 했다고 한다. 개인에 대한 고려를 할 수 없는 구조가 그룹홈이다. 그녀는 그룹홈에서 나와 자립했다.”

 

- 탈시설 운동은 주거권 차원에서도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갖지 않나?

“처음에는 탈시설 운동을 주거권 운동이라고 등식화해서 보기 어려웠다. 주거권 영역은 전통적으로 철거민의 권리와 그로부터 연결된 세입자의 권리를 중심으로 활동을 하고 있어서, 장애인의 주거권도 재가장애인에 대한 이슈가 주였다. 탈시설장애인의 주거권은 영구적인 주거공간보단 탈시설과정에서 거쳐가는 ‘중간집’ 형태가 많이 생겨났다. 처음 이 개념은 외국의 사회주택을 참고했었다. 그당시 외국에서 사회주택은 청년, 노인, 노숙인, 장애인 등에 모두 지원하는 개념이었다. 그래서 탈시설한 장애인에게도 사회주택처럼, 처음 자립할 사회주택을 주라고 주장했는데, 그것이 용어가 강해 보였는지 처음 이 정책을 도입한 서울시는 이를 ‘자립생활가정’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공급했다. 자립생활가정은 1인1실로 3명 이하가 한 집에서 최장 7년까지 생활하도록 제공하는 것이다. 기존의 공동생활가정(그룹홈)에서 공동을 자립으로 용어만 바꾼 것이고 제한적인 입주기간을 둔 것을 더 싸울수도 있었지만, 시설에서 나와 거쳐 갈 수 있는 중간집이 생기면 더 많은 사람들이 지역사회에서 생활할 수 있는 출구가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수용했다. 그리고 자립생활주택을 거친 탈시설장애인은 그 이후에 일반의 재가장애인의 공공임대주택에 들어가는 것과 유사한 프로세스를 거쳐 주거권 보장을 받을 수 있도록 하자고 했었다.”

 

- 온전한 탈시설을 위해서는 주거지원 그 이상의 서비스가 필요하지 않나?

“이제 탈시설 운동은 중간집 형태를 넘어 ‘지원주택’ 같이 본인이 계약하는 본인의 집으로 가야 하고 제한적인 서비스가 아닌 영구적인 주거지원이 되어야 한다는 과제가 있다. 장애인 직업재활 쪽에서 ‘선 배치 후 훈련’이라는 것이 있는데, 일을 하게 될 현장에 우선 배치한 후에 잡코치를 붙여 직무훈련 하는 형태를 말한다. 주거도 마찬가지로 임시로 머무는 집이 아닌 실제 살아야 할 곳에서 주변 환경과 생활방식을 익힐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자립생활주택이라는 중간집을 형태를 뛰어넘어 지원주택이라는 개념의 도입이 필요했다. 또한 동시에 활동지원 서비스가 필수적이고, 활동지원서비스가 있어야 개인생활이 가능하다. 탈시설운동은 장애인이 지역사회에 살아 가기 위해서 이동권, 활동지원서비스제도화, 최근에는 주간활동 등 그런 서비스가 제공되는 환경을 조성하는 운동과 연대해 왔다.”

 

서울시 탈시설정책의 시작이 된 2009년 '마로니에 8인'의 투쟁을 기념한 동판 <사진 =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https://lh4.googleusercontent.com/nNFVcZjYL8VPQ2SFtpGvJJC9arBrTySQaz0RWY... />

서울시 탈시설정책의 시작이 된 2009년 '마로니에 8인'의 투쟁을 기념한 동판 <사진 =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 최근 서울시가 도입한 지원주택의 의미를 설명해달라

“지원주택은 주거와 서비스의 결합이다. 지원주택의 입주자는 주택점유권뿐 아니라 시민으로서 누릴 사회서비스를 일반 재가장애인처럼 받을 수 있다. 시설에 있으면 여러 서비스를 시설 서비스로 대체하기 때문에 다른 사회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시설서비스는 운영자가 장애인에 대해 서비스전권을 가지고 있는 것이 문제다. 그러나 지원주택은 주거 서비스만 제공하고, 집과 생계비는 정부에서, 활동지원, 평생교육 등은 다른 서비스 기관을 이용하는 등 한 기관에 의존하는 방식이 아니라 여러 기관을 이용하는 방식으로 서비스 공급처가 나눠져 있어서 당사자 권한 강화의 의미도 있다. 기존의 대형시설에서 집단생활을 해 왔던 장애인의 입장에서는 주택점유권을 당사자가 갖으면서도 영구적인 주거서비스를 받을 수 있으며, 활동지원서비스나 평생교육, 중증장애인일자리, 주간활동 등의 개인서비스나 일자리를 갖는 등의 개인생활이 가능하기 때문에 장애인의 새로운 주거유형으로 그 의미가 크다. 이는 서울시에서만 시행하고 있지만, 복지부의 커뮤니티케어 선도사업의 일환이나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지원사업으로 일부 시행되는 곳도 있다.”

 

- 서울시 지원주택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내가 참여하고 있는 사회복지법인 프리웰에서는 2016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업으로 지원주택 모델화 사업으로 예산을 받아, 희망하는 사람에게 오피스텔, 원룸에서 1년 동안 살아보는 시범사업을 운영해보았다. 그곳에서 생활한 사람들은 본원에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했고 매우 만족했다. 이후 SH가 주도해 홈리스, 알코올중독, 발달장애, 정신장애 등 분야를 나눠 시범사업을 했다. 시설운영비 중 한 사람의 피복비, 주부식비, 운영비 등의 개인 몫을 계산하여 시범사업주택에 주어 살게 했다. 그러나 시범사업이었기 때문에 본인이 직접 기초생활수급비나 활동지원 등을 받을 수 없는 문제가 여전히 있었다. 그렇게 SH지원주택 시범사업을 2년 동안 운영한 후에, 2018년 지원주택 조례가 만들어지고, 2019년 본 사업이 시작되었다. 프리웰 법인이 본 사업의 운영사업 기관이 되어 현재 3개 자치구에 24호의 지원주택을 운여하고 있고, 입주자는 32명이다.

 

우리는 서울시 지원주택이 최중증 장애를 가진 사람도 입주가 가능하며, 지원이 가능해야 한다고 보기 때문에, 현재 다양한 장애를 지닌 분들이 서울시 지원주택에 입주하게 되었다. 주거코디네이터는 입주자의 주거생활전반을 지원해 주고, 본인이 희망하는 주거생활이 될수 있도록 지원한다. 활동보조 공백시간에 서비스를 보충해주거나, 본인이 명확하게 필요서비스를 말하지 못하는 분들에 대해서는 서비스를 점검하고 개입해 서비스 내용을 변경하는 등의 역할도 한다. 현재 입주한 분들은 활동지원서비스를 이용해 개인 생활을 하고 보호작업장 등 일자리를 계속 다니거나, 평생교육이나 주간활동을 신청하거나, 자유를 만끽하며 계속 돌아다니는 등 다양하게 살고 있다.”

 

- 여러 긍정적인 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쉬운 점이 있다면?

“주택에 사람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 주택을 맞춰야 하는 과제가 남아있다. 이번에 지원주택 본 사업으로 공급받은 주택은 ‘따뜻한 동행’이라는 곳을 통해 주택을 수리해 장애인 편의시설을 갖추었다. 현재 지원주택은 매입임대주택 물량에서 공급되는데, SH가 주택을 매입할 때 아예 설계단계부터 편의시설을 갖추도록 하고, 그걸 매입하면 좋겠는데, 국토부의 매입기준과 안 맞다고 들었다. 우리는 앞으로 지원주택 뿐 아니라 공급하는 모든 공공임대주택에는 장애와 고령 등의 사람에 맞게 배리어프리 디자인(Barrier Free, 무장애 디자인)을 해달라고 요청했더니 국토부가 기함했다. 장애인에게 지원되어야 하는 주택은 마을버스에는 저상버스가 없기 때문에 지하철역 근처여야 하고, 지하철도 엘리베이터가 있는 지하철역, 건축물에 유니버셜디자인(universal design)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적정조건과 물량을 찾고 공급하는 체계가 갖춰져 있지 않아 답답하다. 정부는 자신들이 정치적으로 타겟팅하기 좋은 청년, 신혼부부에게 역세권의 주택을 지원하는 경우가 많아서, 정말 필요한 사람들이 후순위로 밀리는 문제가 있다.

 

또한 장애인지원주택을 운영해보니 부부도 싸우고 이혼하는데, 신청자와 딱 맞는 룸메이트를 찾아주는 것이 매우 어려웠다. 노숙인쪽은 모두 단독형인데 비해, 단독형 공급은 너무 좁아서, 장애인이 입주하기에는 생활이 되지 않으므로 장애쪽은 쉐어형도 공급되고 있다. 현재 2룸이나 3룸에 2명이 거주하는데, 화장실문크기 확장, 변기위치를 개조해서 겨우 휠체어가 들어갈수 있게 개조했다. 결국 집크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쉐어형에 살아야 한다는 거다. 혼자 살고 싶다고 해도 단독형에 비해 큰 집을 혼자 쓰자니 임대표 부담이 있다. 그래서 결국 원치 않는 룸메이트와 살게 된다. 그러니, 장애인에게 맞는 단독형 공급도 필요하다.

 

그리고 화동지원서비스 등 사회서비스가 자립한 그 첫날부터 이용이 가능해야 하는데, 우리정부의 행정시스템은 기존의 거주시설서비스를 받는 장애인이 활동지원서비스를 신청함에 있어서도 제한이 따른다. 신청은 할수 있으되, 기존주소지가 경기도, 이전할 주소가 서울이면 그에 따른 사회서비스신청에 제한을 받는다. 관할 주소지가 다르다는 이유다.”

 

- 당사자와 그 가족이 속한 지역사회 내에서 서비스를 받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나?

“서울시 지원주택 사업은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서울지부가 농성하며 만들어낸 정책이다. 지금까지 탈시설 한 장애인이 지원주택을 통해서 자립하는 이야길 했는데, 또하나의 핵심적인 문제는 시설화를 예방하는 것이다. 즉, 장애인 가족의 고령화, 질병 등으로 장애인에 대한 가족의 지원이 부재할 경우 시설로 가기 때문에 시설화를 예방하려면 재가장애인일 때 지원하여 시설화를 막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부모연대 서울지부는 성인발달장애인의 위한 시설이 아닌 주거서비스를 서울시에 요구했고, 그 결과로 지원주택에 대한 연구, 시범사업, 조례제정, 본사업 시작의 과정을 거쳐 왔다. 그러나 재가장애인을 대상으로 지원주택시범사업을 했을 때 생각외로 인기가 높지 않았다. 그것은 재가장애인이 그동안 맺어온 사회관계, 즉 해당 지역사회에 지원주택이 있어서 지역을 옮기지 않고도 지원주택서비스가 공급되어야 하는데, 현재 공급되는 지원주택은 SH가 공급가능한 주택이 있는 곳으로 한정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재가발달장애인의 입장에서 지금까지 자기가 살아온, 그리고 가족이 있는 지역사회를 떠나 새로운 곳에서 적응하라는 셈이다. 그러니 지원주택서비스는 SH공사가 공급하는 주택 뿐 아니라 현재 가족과 사는 집에서도 주거지원서비스가 가능해야 한다. 즉 자가형까지도 지원주택서비스가 되어야 하고, 민간주택 공급까지도 열려 있어야 그 속한 지역사회를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한 예로, 치매 증상이 있던 어머니가 급격히 상태가 악화되어 요양병원에 입원하게 되었고, 발달장애인 분이 혼자 남게 되는 일이 있었다. 처음 3개월 동안에는 단기보호시설을 이용하게 되었는데, 세 개 시설을 다니는 동안 이 발달장애인분에게 욕창이 생겼다. 와상장애인도 아닌데 욕창이 생겼다는 것에서 과도하게 약을 먹어 계속 누워있게 만든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그래서 노들야학과 노들IL센터 활동가들은 이분을 원래 살던 집에서 거주하면서 지원하는 체계를 만들려고 노력했다. 활동지원서비스가 없을 때 활동가들이 당번을 정해서 매일 24시간 활동지원을 했다. 그러는 사이, 서울시와 해당 자치구에 계속 요구해 결국 24시간 활동보조서비스를 받아냈다. 그래서 본인이 살던 집에서 활동지원서비스와 주거지원서비스를 받으며 살고 있다. 주거지원서비스는 정부지원이 없지만, 노들IL센터에서 자체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만약 어머니가 요양병원에 입원했어도 장애인 당사자가 본인 집에서 활동보조서비스를 받으며 자가 생활을 유지하도록 지원하는 시스템이 있었다면 이 분이 3개월 동안 3개 시설에 보내지면서 욕창이 생기고 여기저기 내돌려지는 듯한 불안경험을 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어머니는 병원에 입원했더라도 40년이상 자기가 상던 집에서 서비스를 받는 것이 발달장애인 당사자에게 가장 안정감을 주는 서비스 형태이다.

 

지금 시설로 들어가고 싶은 사람은, 결국 지역사회에서 살수 없기 때문이며 이를 해결하는 것이 시설화를 예방할수 있다. 따라서 지원주택서비스, 즉 주거생활지원서비스는 재가장애인에 맞게 구체적으로 설계되어 지원되어야 한다.”

 

- 마지막으로 남기고픈 말이 있다면?

“탈시설의 문제는 인권의 문제이다. 탈시설이 지역사회로 사람들을 내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지역사회가 튼튼해야 하고, 지역사회가 이들을 이웃으로 품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설을 나오도록 유도하면서 필요한 지원과 환경적인 조건을 갖추어 가면 지역사회 구성원으로 함께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장애인들의 인권을 지키지 못했음에 대한 반성을 철저히 하고 새롭게 제시된 세상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정해야 할 것이다. 탈시설과 지역에서의 생활이 원활한 환경을 만드는 속도, 예산을 계속 늦추는 동안 장애인들의 삶과 시간은 망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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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광장에 모인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들의 모습 <사진 =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화, 2020/01/07- 0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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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노동 증가, 보호를 필요로 하는 노동에 대한 정부정책 검토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

 

몇 년 전과 달리 일자리 지도가 바뀌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우버나 배달앱으로 표현되는 ‘플랫폼노동’이 사회적 이슈다. ‘타다’ 드라이버, ‘요기요’ 라이더, ‘쿠팡’ 플렉스 기사, ‘대리주부’ 가사서비스 직업 등이 대표적이다. 이미 배달업 다수는 플랫폼노동으로 이동했다. 그렇다면 플랫폼노동은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나.

 

기술혁신의 미명하에 증가하는 플랫폼노동

플랫폼노동 대부분은 정보통신기술(ICT)과 융합되어 하나의 산업 생태계가 형성된 곳이다. 영국이나 미국은 물론 유럽연합 국가들에서 플랫폼노동 취업자는 2% 정도로 알려져 있다. 특히 기술발전으로 온라인 노동의 증가는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2019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를 보면 해마다 온라인 노동은 26% 이상 성장하고 있다.

 

특히 소프트웨어 개발 및 크리에이티브, 멀티미디어 직업군의 성장이 두드러진다. 이를 두고 일부 학자들은 ‘디지털 부둣가’나 ‘디지털 갤리선 노예’처럼 일감 찾는 가상이민과 같은 표현도 사용한다. 유럽연합이나 미국, 영국에서 플랫폼노동 규모는 취업자의 0.5~4.0%로 추정된다. 우리나라도 2019년 플랫폼노동 규모가 발표되었는데 취업자의 약 53만 명(1.5%∼2.3%)이다. IT나 물류유통이나 온라인 노동(크몽, 위시켓 등) 규모를 보면 이보다 더 많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플랫폼노동자들이 일을 선택한 이유와 노동조건은 어떤 상황이고, 플랫폼노동은 전업과 부업 중 어떤 형태가 더 많을까. 그리고 플랫폼노동자의 사회보험 적용 비율은 어느 정도일까.

 

<표 3-1> 주요 국가 및 한국 플랫폼노동자의 전체 수입 대비 플랫폼노동 통한 수입 비중

<표 3-1> 주요 국가 및 한국 플랫폼노동자의 전체 수입 대비 플랫폼노동 통한 수입 비중http://www.peoplepower21.org/files/attach/images/37219/801/679/001/8df85... style="width:964px;height:446px;" />

 

첫째, 플랫폼노동자들의 직업 선택은 일감을 찾기쉽거나 소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일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일거리를 구하기 쉬워서(28.9%)’와 ‘생활비 등 당장 수입이 필요해서(28%)’가 다수였다. 그러나 플랫폼노동자들은 적절한 계약을 체결하지도 않았다. 거의 대부분이 계약체결이 없거나(65.4%), 표준계약(16.4%)을 체결했다. 플랫폼노동은 일과 삶의 균형이 실현되거나 소득이 높은 것도 아니다. 일주일에 평균 5.1일 일하고 6일 이상의 비율도 56.9%나 되었고, 3일 이하는 13.7%에 불과했다. 일주일 평균 노동시간은 36.9시간이었으나, 52시간 이상 비율도 23.5%나 되었고, 15시간 미만은 21.1% 정도였다(한국고용정보원,2019). 결국 삶에 직업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직업에 삶을 맞추고 있는 플랫폼노동의 현실을 확인할 수 있다.

 

둘째, 플랫폼노동으로 얻는 소득은 주 소득이 많았지만 일부는 부업 성격도 확인된다. 플랫폼노동이 주 소득인 비율은 65.5%였다. 이들은 일을 하면서 실적급 형태의 수수료(69.9%)가 거의 대부분이었다. 플랫폼노동 수수료는 평균 1,534원(3천 원 이상 29.4%, 5백 원 이하 45.8%)이었는데, 시장경쟁으로 수수료가 낮아진 탓에 소득 불안정에 놓일 수밖에 없다. 플랫폼노동자들 대부분은 임금노동자가 아닌 이유로 사회보험 가입률이 낮다. 비정규직 노동자에 비해서도 낮았다. 특히 고용보험 적용률은 비정규직의 절반 수준이며, 음식배달, 퀵서비스 직종의 고용보험 적용률은 더 낮았다.

 

<표 3-2> 국내 보호를 필요로 하는 사회보험 적용 현황 비교(2018)

<표 3-2> 국내 보호를 필요로 하는 사회보험 적용 현황 비교(2018)http://www.peoplepower21.org/files/attach/images/37219/801/679/001/0c2df... style="width:959px;height:362px;" />

 

셋째, 플랫폼노동은 3자 혹은 4자 체계인데, 플랫폼 제공자-대행자-수요자(고객)-공급자(독립계약자) 관계로 구성된다. 다면적 시장에서 계약관계를 형성하기 때문에 플랫폼노동은 불법파견이나 위장도급 문제가 제기될 수밖에 없다. 주로 배달이나 운송서비스 및 가사서비스 플랫폼노동에서 불법파견이 논쟁되고 있다. 플랫폼노동 특성상 대부분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매개로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한다. 표준적인 서비스와 매뉴얼이 중요하기 때문에 불법파견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기술혁신 속에 숨겨진 플랫폼노동의 명암

플랫폼노동이 노동시장 유연화나 자율적인 근무형태 같은 유인이 있다고 하지만 여성 일자리가 남성보다 더 많이 창출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정규직을 찾을 수 없어 더 많은 시간 동안 일하기를 원하는 ‘저고용’(under-employment) 문제가 가사서비스 플랫폼노동에서 확인된다. 게다가 정보통신기술의 젠더격차는 IT나 전문기술 플랫폼노동 분야에서도 확인된다.

 

이런 이유로 국제노동기구(ILO)는 디지털 경제시대 노동의 미래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ILO는 플랫폼노동을 온라인 작업의 ‘웹’(web) 기반 온라인 노동 형태의 일자리와 배달운송ㆍ가사서비스 작업처럼 ‘지역 장소’(local) 기반 일자리로 구분한다. 언론에 알려진 몇몇 사례만 보더라도 플랫폼노동은 전 세계 다양한 지역의 노동자들에게 새로운 소득 수단을 제공한다. 앞으로 디지털 경제 시대의 핵심은 데이터 가치 창출인데, 제조업 못지않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바퀴 달린 컴퓨터’라는 표현처럼 플랫폼노동은 기존 유해 환경에서 벗어난 일자리 창출 효과도 있다. 또한 일과 삶의 균형이 자유로운 일자리도 있다. 꼼꼼히 봐야겠지만 가사 서비스 영역처럼 비공식 부문의 일이 공식부문으로 전환된 긍정성도 있다.

 

하지만 플랫폼노동 산업은 명확한 사용자가 없어 고용 없는 성장이라고도 한다. 플랫폼노동자 다수가 근로계약이 아닌 개인사업자 계약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최저임금이나 휴일 휴가, 퇴직금, 사회보험 등을 적용받지 못하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에게 익숙한 플랫폼노동은 보수가 낮고 최저임금 미만의 임금을 제공받고 있다. 게다가 플랫폼노동자들은 기존보다 더 심각한 정도의 시간 압박과 스트레스를 받는 직업도 많다. 대표적으로 일감이나 콜 대기 상태의 시간 압박(being on call)이다. 일감을 찾는 시간이나 응답시간을 놓치면 소득이 상실되기에 항상 긴장 속에 놓여 있다. 재택 근무자들 중 일부는 집에서 대기시간과 노동시간을 혼재하여 지불노동과 가사노동, 일하는 시간 사이의 모호성도 확인된다.

 

특히 플랫폼기업의 고객 서비스 평점이나 리뷰 시스템이 그렇다. 고객 평가는 소득과 일자리에 직결된다. 좋은 평가는 등급 향상으로 연결되고, 본인 소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일부 기업은 서비스 평가가 낮은 사람들을 회원 목록에서 탈퇴시키기도 한다. 플랫폼노동자들 스스로 ‘별점 노예’라는 표현은 이를 잘 반영한다. 게다가 작업과정의 실시간 GPS(위치 추적기)나 APP(응용 소프트웨어)을 통한 전자감시기술의 IT통제도 작동되고 있다. 결국 고객에 의한 통제가 단순 통제가 아닌 일자리 상실의 신호인 것이다.

 

 

플랫폼노동, 사회적 보호 필요

이미 플랫폼노동은 국경을 초월하기에 노동법 준수 여부를 모니터링하기 어렵다. 계약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불공정한 대우를 시정할 공식적인 제도도 없다. 일부 고숙련 일자리를 제외하면 중간 수준의 일자리들이 저숙련 플랫폼노동으로 대체될 개연성도 많다. 앞으로 플랫폼노동은 더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기에 최소한의 권리 보호가 필요하다. 이미 대안적 논의는 시작되고 있다. 시장에서의 표준적인 계약과 수수료 책정, 계약방식이나 고용형태와 상관없는 사회안전망 적용, 데이터 및 사생활보호, 알고리즘과 정보 비대칭성 논의까지 여러 대안들이 제시되고 있다.

 

국제노동기구(ILO, 2017) 조사자료에서는 플랫폼 소득자의 68%가 스스로를 단지 소비자 또는 고객과 연결하기 위해 플랫폼 서비스를 이용하는 독립적인 노동자로 생각하고 있는 반면, 26%는 스스로를 피고용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시민들은 플랫폼노동자를 어떻게 생각할까. 서울시 조사결과(2019)를 보면 다수의 시민은 플랫폼노동자를 노동자보다 자영업자에 더 가깝다고 인식(51.3%)하고 있었다. 다만, 임금노동자나 학생은 상대적으로 자영업자나 가사ㆍ주부에 비해 플랫폼노동을 노동자에 더 가깝다고 인식하고 있다. 이런 맥락 때문일지는 모르겠지만 시민 대부분은 플랫폼노동의 사회적 보호와 가이드라인과 같은 제도적 모색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갖고 있었다.

 

현재 국내에서는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내에 ‘디지털 전환과 노동의 미래위원회’에서 2년 동안 노사정 이해당사자들이 모여 플랫폼노동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지난 2019년 1월 노사정 대응 방향과 협력을 위한 공동의 정책과제에 관한 기본 합의(2019. 2. 18.) 정도를 도출한 상황이며, 일자리위원회 내에 플랫폼노동TF가 꾸려져 운영되고 있다. 한편 지방정부에서는 서울시가 플랫폼노동을 2019년 시민 공론화 과정을 통해 조례제정 정책 수립 등을 제시(2019. 11.)하고 2020년 주요 정책을 준비 중이다. 그 밖에 경기도, 성남시 등에서도 플랫폼노동 관련 사업을 논의하고 있다.

 

한편 민주노총 서비스연맹에서는 플랫폼노동연대를 구성(2019)하고, 조직화와 정책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 밖에도 여성노조 미디어콘텐츠창작지회(2019)와 미가맹상태인 라이더유니온(2019)이 설립되면서 플랫폼노동 조직화가 진행 중이다. 이와 맞물린 시기에 배달, 물류, 운송 등 플랫폼업체(운영, 대행사) 중심의 ‘코리아스타트업포럼’(2017)이 만들어지면서 국내 플랫폼 노사관계가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현재 플랫폼노동연대와 라이더유니온은 ’배달의민족‘의 우아한 형제들과 초기업형태 교섭을 신청한 상태다.

 

결국 플랫폼노동의 기존 산업의 디지털 전환이나 새로운 산업의 성장 과정에서 출현한 노동의 형태로 보아야 한다. 문제는 자본의 성장과정에서 이윤은 플랫폼기업이 향유하지만 노동자도 영세사업자도 시민도 편리함과 사업의 확장 이외에 큰 도움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정부 플랫폼노동 관련 정책은 일부 직종에 한해 산업재해 적용만을 검토할 뿐, 종합적인 정책 수립이나 제도개선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표 3-3> 한국 플랫폼노동 제도화 및 정책 과제 방향 검토 영역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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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노동의 대안적 논의는 비고용기간의 사회적 보호 접근, 사회적 재생산을 위한 소득 안정성과 교육훈련 제공, 고용 위계구조 속 공정한 대우확보, 차별받지 않을 권리, 노동자 발언 및 대표 권리 확보 등이 보장 혹은 적용될 필요가 있다. 구체적으로는 조세와 사회보장의 통합시스템 설계와 프로그램을 모색하는 것이다. 일부 학자들은 ‘디지털 플랫폼 과세’를 통해 플랫폼노동자의 소득과 실업급여, 유급휴가, 교육훈련 등의 비용에 활용하자는 주장도 있다. 프랑스와 미국 캘리포니아(법률), 덴마크와 이탈리아(단체협약), 독일과 이탈리아(사회협약)에서는 플랫폼노동자들에게도 임금노동자들과 동등한 권리를 부여한 사례도 있다.

 

올 한 해 정부 부처, 국책연구기관이나 학계에서 플랫폼노동 연구를 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작년 한 해 동안 토론회만도 10여 차례 있었다. 과잉 연구나 토론회일지도 모르지만 그만큼 변화하는 노동환경에 대응하는 사회적 현상인 것 같다. 다만, 이론적 틀에 천착한 학계, 진정성이 결여된 성과에 기반한 국책연구기관 연구와 관심이 아니라, 노동과 시민사회와 함께 논의하는 연구와 정책이 만들어질 필요가 있다. 이제는 과거 15년 전부터 시작된 특수고용노동 논의를 되풀이하지 않고 당사자들에게 보탬이 되는 연구와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화, 2020/02/11-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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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금지법 제정은 사회복지사의 과제다

- 사회정의 실현을 약속한 사회복지사들께 드리는 요청의 글

 

김지혜 강릉원주대학교 다문화학과 교수

 

청소년 성소수자에 관한 연구의 수상한 단절

2006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당시 한국청소년개발원)의 연구과제로 ‘청소년 성소수자 생활실태 조사’를 공동으로 수행한 적이 있다.1) 당시 135명(동성애자 126명, 양성애자 9명)이 설문조사에 참여했고 이 중 6명을 인터뷰했다. 연구결과, 당시 청소년 성소수자는 평균 13.8세에 성정체성을 인지하였고, 부모나 교사에게 자신의 성정체성을 알리는 일이 매우 적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괴롭힘 당한 경험이 많고 우울 수준이 높았으며 응답자 중 47.4%가 자살시도를 경험하는 등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도움을 요청할 곳을 찾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결과를 토대로 청소년 성소수자를 위한 서비스와 제도개선 등 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정부출연연구기관의 하나인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서 수행된 연구였던 만큼, 후속 연구가 나왔다면 본격적으로 청소년 성소수자에 관한 서비스와 제도들이 발전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이후 더이상 청소년 성소수자를 위한 정책연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사이 유엔아동권리위원회가 반복해서 한국사회의 청소년 성소수자가 겪는 차별 문제를 지적하며 이를 개선하기 위한 정책을 수립하도록 권고했지만, 이 역시 정책연구로 이어지지 않았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유엔아동권리협약에 따른 정부의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2009년부터 매년 ‘아동·청소년 인권실태조사’를 시행하는데, 여기에도 성소수자에 관한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연구용역으로 성소수자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기는 했지만, 국책연구기관에서 정책의 대상으로 청소년 성소수자를 고려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이 주제에 관심 있는 연구자가 없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개인적인 경험이 있기도 하다. 2015년경 정부출연연구기관에 ‘청소년 성소수자에 관한 국제적 연구 및 정책 동향’을 연구하고자 과제를 제안했다가 선정에서 탈락된 적이 있다. 물론 연구계획의 부족함도 있었겠지만 그 결정과정에서 나온 검토내용이 놀라웠다. 당시 관계 부처에서 이 제안에 대해 ‘무분별한 국제동향에 대한 도입’으로 ‘정책기조에 부정적인 혼선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정책연구 불필요’하다는 의견을 보냈기 때문이다. ‘무분별한 국제동향’이라니, 국내외의 동향을 검토하는 것은 연구의 기본인데 제안을 거절하는 이유로 도저히 납득되지 않았다. 

 

마치 청소년 성소수자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청소년 성소수자에 관한 이 이상한 연구의 단절은 2007년 차별금지법안 훼손사태와 상관있다고 생각한다. 당시 정부발의로 준비된 차별금지법안이 차별적으로 훼손되고 결국 폐기되는 과정에서 성소수자 이슈가 중심에 있었다. 보수기독교계가 성소수자 차별금지에 대해 거세게 반발하자, 정부가 ‘성적지향’을 비롯해 학력, 병력,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 언어, 출신국가, 범죄 및 보호처분의 전력 등의 차별금지사유를 삭제한 것이었다. ‘성소수자를 차별해야 하므로 차별하지 못하게 하는 법을 반대한다’는 주장을 정부가 받아들이면서 차별금지법은 제정할 수 없는 법이 되었다. 

 

규범적으로 생각하면 차별을 옹호하는 주장이나 특정 종교의 교리를 국가정책에 반영하는 것이 다원주의에 기반한 민주주의를 채택한 헌법에 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정부는 ‘성소수자를 차별하라’는 주장을 수용했다. 그 구체적인 실천은 성소수자에 관한 내용을 정책에서 삭제하는 것이었다. 교육부는 2015년 발표한 ‘국가 수준의 학교 성교육 표준안’에서 ‘성적지향’이라는 용어와 성소수자 인권에 관한 내용을 삭제하도록 하였다. 성소수자에 관한 언급을 불온하거나 정치적인 것처럼 취급함으로써, 성소수자를 실존하는 시민으로 인정하지 않고 정책의 대상에서 배제해 버리는 고의적인 차별을 행해왔다.  

 

당연히도, 국가가 청소년 성소수자를 외면한다고 이들이 현실에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청소년 성소수자들의 삶은 계속되고 있었고 또 죽음도 있었다. 2009년에는 한 동성애자 청소년이 집단괴롭힘으로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고등학교 1학년이던 청소년은 또래로부터 ‘여성스럽다’며 놀림 받고, “걸레년” 등의 욕설과 “스치기만 해도 더듬더라”는 등 소문에 시달렸으며, 수업 도중 지우개 가루와 감기약 시럽을 뿌리는 일을 당하는 등 폭력을 당했다. 심리검사에서도 우울상태가 심각하고 자살충동을 보였지만 학교에서는 오히려 피해자인 청소년에게 전학을 권했던 상황이었다.2)

 

많은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괴롭힘을 겪고 있다는 사실이 2015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연구용역으로 수행된 조사에서도 나타났다. 설문에 참여한 청소년 성소수자 중 54.0%가 다른 학생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했고, 20.0%가 교사로부터 괴롭힘을 당한 경험이 있었다. 차별과 괴롭힘을 경험한 응답자의 58.1%가 우울증을 호소하고 19.4%가 자살시도를 한 경험이 있었다. 혐오발언과 차별, 아웃팅의 두려움, 교사의 자퇴 종용, 트랜스젠더의 경우 성별이 드러나는 학교환경 때문에 학교생활이 어려워 학교를 그만 둔 사례 등도 보고되었다.3)

 

청소년 복지체계에도 청소년 성소수자는 없다

청소년 성소수자가 가정, 학교, 사회에서 혐오, 차별, 괴롭힘 등으로 상당한 수준의 고통을 겪는 현실이 엄연히 드러났음에도, 공식적인 청소년 복지체계에서 청소년 성소수자는 고려되지 않았다. 청소년복지지원법은 가정이나 학교 등에서 어려움을 겪는 이른바 ‘위기청소년’을 위한 상담, 교육, 의료, 활동 등의 지원을 마련하고 청소년 쉼터와 같은 보호서비스를 두고 있다. 하지만 국가는 그러한 위기 상황이 성적지향이나 성별정체성을 이유로 한 차별과 폭력에 의해 초래될 수 있음을 인정하고 대안을 마련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대신 청소년 성소수자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을 민간이 감당해야 했다. 2013년 5월부터 인권활동가들이 국내외 모금활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후원과 민간재단의 지원을 받아 2014년 12월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을 개소했다. 위기 상황에 놓인 청소년 성소수자를 위해 위기상담, 심리상담, 생필품지원, 의료지원, 법률상담 등을 제공하고, 안전하고 편안한 공간으로서 쉼터를 제공하며, 다른 청소년 성소수자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모임을 마련하였다. 청소년 성소수자 서비스를 위한 연구사업과 청소년 기관, 교사, 양육자를 위한 교육 및 캠페인 등의 활동도 전개한다. ‘띵동’의 설명대로, “청소년 성소수자들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위기에 침묵하는 사회”4)라는 산을 넘어가는 일을 해 온 것이다. 

 

아직까지 청소년 성소수자를 위한 공식적인 지원기관은 전국에서 ‘띵동’ 하나다. ‘띵동’을 이용할 수 없는 전국의 더 많은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자신이 성소수자임을 밝혀도 되는 안전한 공간을 찾지 못한 채 일상적인 혐오와 차별에 노출되어 생활하고 있다. 수많은 청소년 기관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 명시적으로 청소년 성소수자를 환대하고 포용하는 안전한 공간임을 표방하며 청소년 성소수자를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을 찾기는 쉽지 않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주장에 정부가 귀 기울인 지난 14년은, 사회가 청소년 성소수자의 어려움을 빤히 보면서 차별을 방치하고 묵인한 아주 긴 시간이었다. 

 

사회복지사는 사회정의 실현의 의무를 다 하였을까

청소년 성소수자를 비롯해 성소수자에게 가해진 차별에 대해 사회복지사는 책임이 없을까? 모든 사회복지사가 준수할 의무가 있는 ‘사회복지사 윤리강령’에는 차별금지조항이 있다. “사회복지사는 클라이언트의 종교, 인종, 성, 연령, 국적, 결혼상태, 성 취향, 경제적 지위, 정치적 신념, 정신·신체적 장애, 기타 개인적 선호·특징·조건·지위를 이유로 차별 대우를 하지 않는다.”(강조는 필자)고 명시한다. 여기서 ‘성 취향’은 성적지향(sexual orientation)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된다(추측건대 외국의 사례를 참조해 번역하면서 용어가 잘못 사용된 것으로 보이므로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사회복지사로서 차별과 폭력을 당하고 있는 성소수자를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사회적으로 만연한 편견을 제거하고 평등을 실현하도록 제도적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냈어야 마땅하지 않은가? 분명 사회복지사윤리강령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사회적 지위와 기능을 향상시키기 위해 저들과 함께 일하며 사회제도 개선과 관련된 제반 활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한다.”고 선언하고, “사회정의 실현과 클라이언트의 복지 증진에 헌신하며, 이를 위한 환경 조성을 국가와 사회에 요구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으니 말이다. 

 

미국의 경우, 성소수자 차별에 대항하는 일에 사회복지사들이 분명하게 입장을 표명해왔다. 전국사회복지사협회(NASW)는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에 기반한 모든 형태의 차별을 금지하는 지역·주·연방·국제적 정책과 법의 채택을 지지한다.”는 공식입장을 채택했다.5) 또 “사회복지사라고 밝히는 사람이나 사회복지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밝히는 기관에 의한 성적지향 변화시도 또는 이른바 전환 치료의 사용을 규탄한다.”고 밝혔다.6) 2013년 연방대법원의 동성혼 사건 판결에 관해서도 전국사회복지사협회는 “모든 성소수자와 그 가족의 지위와 복지를 향상시키는 정책과 실천의 발전에 헌신한다.”고 공식적으로 옹호했다.7)

 

지난 15년 동안 ‘차별금지법 반대’의 구호는 어떤 의미에서 ‘성소수자 차별’의 구호이기도 했다. 정부와 국회가 ‘사회적 합의’를 말하며 차별을 묵인하고 동조하는 동안, 그 어느 때보다 노골적이고 광범위하게 성소수자 차별이 이루어졌다. 한국의 사회복지사협회는 그동안 성소수자 차별에 관해 어떤 입장을 표명해 왔는가? “사회복지사는 … 특히 사회적·경제적 약자들의 편에 서서 사회정의와 평등·자유와 민주주의 가치를 실현하는 데 앞장선다.”8)는 원대한 선언 뒤에서 과연 어떻게 행동해왔는지 진지하게 물어야 할 때다. 

 

사회복지사협회가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기를

차별금지법은 사회적으로 차별받는 사람들이 비로소 평등하게 대우받을 권리를 보장받게 만드는 기초가 되는 법률이다. 현장에서 만나는 클라이언트가 맞닥뜨린 높은 사회적 벽을 한 번이라도 실감한 적이 있다면, 그 벽을 부수는 법이 될 것이다. 더이상 그 벽 앞에서 클라이언트에게 체념하라며 토닥이는 대신, 불합리하게 낙인찍고 기회를 주지 않는 사회를 함께 바꾸자고 말하는 법이다. 사회복지사로서 진정으로 “사회적·경제적 약자들의 편”에 서는 일이며, “사회정의와 평등·자유와 민주주의 가치를 실현”하는 일이다. 

 

지난 6월 14일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국민동의청원이 10만 명의 동의를 얻었다. 시민의 힘으로 차별금지법을 국회의 테이블로 끌어 올렸다. 이어 16일에 이상민 의원 등 24명이 ‘평등에 관한 법률안’을 발표했다. 작년 6월 장혜영 의원 등 10인이 발의한 ‘차별금지법안’에 이어, 여당이 주도가 되어 발의한 법안이다. 이미 많이 늦었지만, 이제라도 본격적으로 국회에서 차별금지법이 논의될 것을 기대한다. 이번에는 누구를 차별하라는 주장보다 어떻게 모든 사람의 권리인 평등을 실현할 것인가에 국회가 고민과 노력을 기울일 것을 바래본다. 

 

이 역사적인 시점에, 나는 사회복지사의 한명으로서 한국사회복지사협회와 전국의 사회복지사와 사회복지분야에서 활동하는 모든 분들께 정중히 요청하고자 한다.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비롯해 모든 차별을 금지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제정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공식적으로 채택하고 발표하기를 바란다. 사회복지 관련 학회와 각종 모임에서도 차별을 철폐하고 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법, 정책, 서비스를 채택하도록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면 좋겠다. 이미 곁에서 만나고 있는 사회복지사와 클라이언트 중에 성소수자가 있음을 기억하고, 그 존재를 외면하고 차별을 묵인해 온 이 잔혹한 정치를 멈추도록 사회복지사들이 앞장서기를 희망한다. 

 


  1. 강병철·김지혜 (2006). 청소년 성소수자 생활실태 조사. 한국청소년개발원. 




  2. 한가람 (2014). “동성애혐오성 집단괴롭힘으로 인한 학생 자살의 학교 측 책임”, 민주사회를 위한 변론 제104호 하반기. 




  3. 장서연 외 (2014). 성적지향‧성별정체성에 따른 차별 실태조사. 국가인권위원회. 




  4.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활동연혁, https://www.ddingdong.kr (2021. 6. 16. 방문).




  5. National Association of Social Workers. (2008). Transgender and Gender Identity Issues. In Social work speaks (9th ed., pp. 337-345). Washington, DC: NASW Press (National Association of Social Worker (2015). National Committee on Lesbian, Gay, Bisexual, and Transgender Issues Position Statement: Sexual Orientation Change Efforts (SOCE) and Conversion Therapy with Lesbians, Gay Men, Bisexuals, and Transgender Persons 에서 재인용) 




  6. National Association of Social Workers. (2014). Lesbian, Gay, and Bisexual Issues. In Social work speaks (10th ed.). Washington, DC: NASW Press (National Association of Social Worker (2015). National Committee on Lesbian, Gay, Bisexual, and Transgender Issues Position Statement: Sexual Orientation Change Efforts (SOCE) and Conversion Therapy with Lesbians, Gay Men, Bisexuals, and Transgender Persons 에서 재인용)




  7. NASW statement on Supreme Court’s same-sex marriage rulings, Jun 26, 2013, https://www.socialworkers.org/News/News-Releases/ID/268/NASW-statement-o... (2021. 6. 18. 방문).




  8. 사회복지사 윤리강령.



금, 2021/07/02- 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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