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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슬란드 총리, 조세도피처 회사 통해 수백만 달러 소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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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슬란드 총리, 조세도피처 회사 통해 수백만 달러 소유

익명 (미확인) | 월, 2016/04/04- 03:00

아이슬란드 총리, 질문을 회피했지만 대답은 계속 그를 따라다니고 있다.

그는 아이슬란드 은행이 발행한 수백만 개의 채권을 역외에서 보유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숨긴 채 금융 붕괴 이후 총리가 되었다.

기사 : 라이언 치툼(Ryan Chittum), 요하네스 Kr 크리스탠슨( Jóhannes Kr. Kristjánsson), 배스티안 오버메이어(Bastian Obermayer), 프레드릭 오베르마이어(Frederik Obermaier)

레이캬비크 – 2014년 5월 15일, 아이슬란드 총리는 의회에서 정부가 비밀 역외 회사를 이용하는 사기꾼들과 탈세를 찾아내기 위해 얼마나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답변했다. 과연 아이슬란드도 독일처럼 역외 탈세 지역의 내부 고발자들로부터 폭로 데이터를 구매할 것인가?

시그뮌뒤르 다비드 귄릭손 총리는 이에 대해 모호하게 말을 흐렸다.

“사람들이 이에 대해 함께 노력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라고 말했지만 이러한 정보를 입수하는 것이 현실적이고 유용할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대답했다.

당시 알려져 있지 않던 사실은, 아이슬란드가 구매를 검토했던 역외 탈세 지역 데이터들에는 귄릭손 총리 자신과 최소한 2명의 현정부 고위급 인사와 연계된 조세 도피처 회사들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조사결과는 국제 탐사보도언론인 협회, 독일신문 쥬트도이체 차이퉁 Süddeutsche Zeitung 그리고 그 외 여러 제휴 언론사들이 입수한 수백만 개의 비밀 파일들을 통해서 나온 것이다. 천 백만 개 이상의 문서들(1977년부터 2015년 12월까지의 이메일, 현금 지급, 회사 설립 정보 등)을 통해서 우리는 역외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페이퍼 컴퍼니 등록 에이전트 가운데 하나인 파나마의 법률회사 모색 폰세카의 내부 활동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파일들은 2007년에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에서 설립된 ‘윈트리스’라고 불리는 회사를 포함, 200개 이상의 국가와 지역에서 개인과 회사로 등록된 약 214,488개 법인에 관한 비밀 정보를 밝혀주고 있다.

귄릭손 총리의 역외 활동

귄릭손 총리는 2008년 10월에 총리가 되었다. 3개의 주요 아이슬란드 은행들이 지난 수 년간 행했던 투기와 사적 금융거래의 결과 불과 며칠 만에 붕괴되었던 금융 위기의 여파로 은행들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했던 시기였다. 저널리스트이자 라디오-TV 방송인(그는 2004년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섹시한 남성 순위에서 3위를 차지하기도 했다)이었던 귄릭손은 인디펜스(InDifence)라고 불린 그룹을 이끌었는데, 이 그룹은 금융 붕괴 이후 은행에 예치되어 있는 수십억 달러를 국제 채권자들에게 지급하는 것을 거부해야 한다는 캠페인을 펼쳤다. 그 이후 두 차례의 국민투표에서 유권자들은 인디펜스 그룹을 지지했고 성공적인 선거운동으로 귄릭손과 그의 당이 정권을 차지했다.

2009년 1월, 진보당은 민족주의자인 귄릭손(그는 한 때 아이슬란드 음식만으로 구성된 식사를 하기도 했다)을 의장으로 선출했다. 아이슬란드의 과거 농업에 뿌리를 두고 있는 정당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였다. 38살이었던 2013년, 그는 해외 채권자들에 단호히 맞서고 어려움을 겪고 있는 주택 보유자들의 채무를 구제해주며 긴축 프로그램을 끝내겠다는 약속과 함께 아이슬란드 역사상 최연소 총리가 되었다. 2015년 귄릭손 정부는 채권자들과 합의를 도출했으나 그의 그룹인 인디펜스는 이 합의가 지나치게 관대하다고 비판했다.

모색 폰세카 문서는 귄릭손의 가족이 (당시 합의에 따라) 채권자들이 얻게 되는 결과 덕분에 상당한 이권을 얻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부유한 아이슬란드 도요다 대리점주의 딸인 귄릭손 총리의 부인이 2015년에 서명한 문서에 따르면, 귄릭손과 그의 부인은 2007년 12월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큰 3개의 은행 중 하나인 Landsbanki의 룩셈부르크 지점을 통해서 모색 폰세카로부터 ‘윈트리스’(Wintris)라는 페이퍼 컴퍼니를 인수했다. 이들은 이 회사를 이용해 상속받은 돈 수백만 달러를 투자했다.

“예를 들어 아이슬란드 은행들은 룩셈부르크와 영국에서 지점을 설립했으며 이곳에서 이들이 한 일은 고객들이 여러 자산들을 보관할 수 있는 역외 회사를 설립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역외 회사들은 탈세 기회를 제공해 주었으며 아마도 몇몇 사람들이 이러한 기회를 이용했을 것입니다.” 금융위기로 붕괴된 한 소규모 은행에 대한 청산을 주도했던 레이캬비크의 변호사, Rob Jonatansson은 윈트리스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말했다.

모색 폰세카 파일에는 ‘윈트리스’가 이 돈을 어디에 투자했는지 안 나오지만, 법원 기록에 의하면 ‘윈트리스’는 3개의 주요 아이슬란드 은행들이 발행한 채권에 상당한 금액을 투자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법원 기록에 따르면 이 회사는, 은행들이 파산할 때 수백만 달러를 청구한 채권자였다.

2009년 11월 Landsbanki 은행을 청산할 당시 이사진은, 윈트리스를 1억7천4백만 크로나(16억 원)를 청구한 채권자로 등록했다. 또한 윈트리스는 2010년 1월에 Kaupthing 은행의 청구 목록에도 세 차례 언급되었으며 액면가로 2억2천1백만 크로나(20억 원)에 해당되는 채권을 보유했다. 그리고 윈트리스는 1억1천4백만 크로나(10억 6천만 원) 에 달하는 Glitnir 채권을 보유했다. 정통한 관계자에 따르면 윈트리스는 금융 붕괴 이후 이 채권을 한 아이슬란드 투자자에게 매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귄릭손은 “벌처”와 같이 이러한 채권을 매입하는 해외 펀드들을 비판했다). 결국 윈트리스는 현재의 환율로 은행에 있는 자산 4백만 달러(금융 붕괴 이전 환율로는 8백만 달러)를 청구했다. 그리고 페이퍼 컴퍼니를 통해, 은행들의 파산 기록에 등장하는 채권 외에도 주식과 같은 다른 자산들을 보유했을 수도 있다.

ICIJ가 입수한 파일에 따르면 귄릭손은 2009년 4월 의회에 입성했을 때 부인과 함께 윈트리스를 공동 소유했으며 그가 총리가 되었을 때 이 회사의 존재를 계속 숨겨왔다. 귄릭손 총리는 오직 상업적 활동을 하는 회사들에 대해서만 보고 의무가 있다며 아이슬란드 윤리 규정을 위반했다는 것을 부인했다. 그러나 의회 사무 총장은 모든 회사에 대해 보고 의무가 있다고 반박했다. 윈트리스의 채권은 여전히 액면가의 15%에서 30% 정도에 해당되는 상당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모색 폰세카 문서에 따르면 귄릭손은 2009년 12월 31일 윈트리스 지분의 절반을 1달러에 자신의 부인에게 매각했다.

2016년 3월 15일에 총리 부인 Pálsdóttir는 처음으로 이 조세 도피처 회사를 공개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포스팅했다. 그녀는 “이 회사의 존재는 절대로 비밀이 아니었다”라고 언급했다. Pálsdóttir는 지난 2007년 귄릭손과 그녀가 해외에서 거주할 것인지에 대해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했을 때 자신이 윈트리스를 설립했으며 그녀의 집안 사업체를 매각해서 받은 자금을 투자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해명했다.

이 글에 게시된 것은, ICIJ 제휴사인 레이캬비크 미디어와 SVT(스웨덴 공영 텔레비전)가 카메라 인터뷰에서 귄릭손 총리에게 윈트리스에 대해 질문하고 난 지 4일 뒤의 일이었다. 이 인터뷰에서 SVT는 귄릭손에게 조세 도피처 회사를 소유한 적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제가요? 없습니다. 저와 함께 일했던 아이슬란드 회사들은 조세 도피처 회사들과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노동조합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이 회사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항상 제가 가진 모든 자산과 제 가족의 자산에 대한 모든 세금을 납부했습니다. 따라서 어디에도 숨겨진 자산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이슬란드 정치가가 이러한 질문을 받는다는 것은 대단히 이례적입니다. 이것은 마치 뭔가에 대해서 비난을 받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절대로 숨겨진 자산이 없다는 것에 대해 자신 있게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윈트리스에 대해서 무엇을 알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귄릭손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이 회사는, 제 기억이 정확하다면 제가 이사로 활동했던 여러 회사들 중 하나와 관련되어 있으며 제가 언급했듯 이 회사는 설립 이래 계속해서 세금 계정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질문들이 점점 이상하게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제 세금 신고서에 있는 회사에 대해 저에게 질문을 할 때 마치 뭔가 잘못을 저질렀다는 듯이 저를 비난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나서 귄릭손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인터뷰장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로부터 4일 후에 Pálsdóttir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서 윈트리스에 있는 자산이 오로지 자신의 것이며 귄릭손이 공동 소유자로 등록된 것은 은행의 실수였다고 밝혔다. 그리고 2009년 이 실수를 확인한 뒤 실수를 바로잡아 그녀가 이 회사의 단독 소유자가 되었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모색 폰세카 문서는 귄릭손이 자신의 지분을 Pálsdóttir에게 매각하는 문서에 서명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Pálsdóttir는 이 자산이 그녀의 집안 사업체를 매각해서 얻은 자금 중 일부이며 부과되는 모든 세금을 항상 납부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서 귄릭손의 대변인은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공개적으로 설명된 것처럼 귄릭손 총리와 그의 부인은 이 회사를 설립하면서 자산과 증권, 2008년 이후의 세금 환급 등에 대해 모두 신고하는 등 아이슬란드 법을 준수했습니다.

귄릭손의 정치적 입장이 이 채권의 가치를 높여주었는지 혹은 손상시켰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아이슬란드 대학교의 경제학자인 Þórólfur Matthíasson은 이것이 매우 어려운 문제이며 총리 그 자신 이외에 아무도 대답할 수 없다고 말했다.

역외 회사를 운영하는 정치가들

이 문서는 다른 아이슬란드 정치가들의 자산 운용에 대해서도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그들이 국민들을 분노케 했던 기업가들과 똑같은 형태로 자산을 운용해서 이득을 얻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귄릭손 총리의 정치적 동료이자 아이슬란드 금융경제 장관인 Bjarni Benediktsson은 2015년 2월 텔레비전으로 방송된 인터뷰에서 “저는 조세 도피처 같은 곳에 자산을 보관한 적이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Benediktsson은 지난 2005년, 다른 2명의 아이슬란드 사업가들과 함께 인도양의 악명 높은 비밀 조세 도피처인 세이셸에 모색 폰세카가 설립한 ‘팰슨’(Falson & Co)이라는 이름의 페이퍼 컴퍼니에 대해 “위임권”이라고 알려진 권한을 함께 소유했다. 위임권은 이 3명이 회사의 거래를 승인할 수 있는 권한을 보유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팰슨’은 무기명 주식을 발행했다. 무기명 주식은 누구든 주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자산에 대한 소유권을 부여해주는 주식이다. 누군가의 이름으로 등록되지 않기 때문에 기밀 보안에 더 유리하다. 무기명 주식은 사기와 탈세에 널리 이용되기 때문에 많은 국가들에서 불법이 되었다. 모색 폰세카 문서에 따르면 팰슨은 2012년 세이셸의 기업등록부에서 삭제될 때까지 페이퍼 컴퍼니로 이용되었다. Benediktsson은 이 회사를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회나 일반 대중에 공개하지 않았다.

ICIJ와 제휴 언론사인 쥬트도이체 차이퉁 (Süddeutsche Zeitung)이’팰슨’에 대해 물었을 때 Benediktsson은 이 회사가 두바이에서 건설 중인 4개의 아파트를 보유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자신이 회사의 지분 3분의 1을 소유했었다고 대답했다. “모든 문제를 하나의 법인을 통해서 처리할 수 있는 편의성을 위해서 지주회사를 설립합니다. ‘팰슨’의 소유자들이 2008년 이 회사에서 손을 떼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아파트가 완공되기도 전에 이 자산이 매각되었고 결국 이 자산은 손실을 안고서 매각되었습니다. 이 자산의 처분에 제가 관여했다는 점은 지난 수년 동안 공개된 정보였습니다.”

이 두바이 부동산에 대해서는 지난 2010년 아이슬란드 신문사인 DV가 입수한 이메일을 근거로 보도한 바 있다.

이에 대해 Benediktsson은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소유권을 숨기고자 하는 의도나 필요가 전혀 없었습니다. 저는 이 회사에 대한 소유권을 아이슬란드의 세무 당국에 신고했습니다.” ‘팰슨’에 대한 자신의 지분을 의회에 신고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묻자, Benediktsson은 “(공개) 규정은 2009년 5월에 시행되었으며 당시에 저는 운영 중인 사업체나 신고해야 할 부동산을 전혀 소유하고 있지 않았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그 뒤 Benediktsson은 Falson의 제휴자 중 1명으로부터 이 회사의 사업이 2009년 9월까지 청산되지 않았음을 언급한 서신을 받아 이를 ICIJ에 제출했다. Benediktsson은 이 회사가 2008년 11월에 인수 합의를 취소한 이후에 운영되지 않았다고 언급했다. 그는 “그 이후부터 ‘팰슨’은 이 재산을 통제하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소유자가 확인될 때까지 이 회사의 유일한 목적은 상환을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조세 도피처에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했던 지난해의 인터뷰와 관련해 Benediktsson은 “저는 조세 도피인는 세이셸에 이 회사가 등록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이것을 룩셈부르크 회사로 알고 있었습니다”라고 언급했다.

또 다른 내각 구성원인 Ólöf Nordal 내무부 장관 역시 2006년 11월에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에서 설립된 비밀 회사를 운영했다. 그는 ‘둘리 시큐어리티 SA’라는 회사를, Landsbanki 은행의 룩셈부르크 지점을 통해 모색 폰세카로부터 사들였다. ‘윈트리스’나 ‘팰슨’과 마찬가지였다. 이 문서에 따르면 Nordal은 그녀의 남편 Tomas Mar Sigurdsson(미국의 거대 알루미늄 업체인 ‘알코아’의 글로벌 고급 제품 사업부의 최고 운영 책임자다.)과 함께 둘리 시큐어리티에 대한 위임권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이 회사의 주식은 Landsbanki 은행의 룩셈부르크 지점 이름으로 보유하고 있었다. 2007년 8월 Sigurdsson은 Landsbanki 은행으로부터 받은 융자의 담보로서 둘리의 주식을 내놓기도 했지만 이 은행은 1년 후에 붕괴되었다.

ICIJ로부터 ‘둘리 시큐어리티’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Sigurdsson은 Landsbanki 은행이 알코아 스톡 옵션 매도와 관련한 과정에 대비해 이 회사를 설립하라고 조언해 주었다고 대답했다. 그는 그 함의에 대해 인지하지 못했다고 언급하면서 “실제로는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 옵션을 실행하지 않았고 이 회사로 전혀 자금을 보낸 적이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명확하게 저와 제 아내 모두 이 당시에(혹은 그 이후에도) 둘리 시큐어리티의 지분을 소유한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어떠한 조세 도피처 회사도 갖고 있지 않으며 가진 적도 없습니다.

유출된 문서에는, 귄릭손 총리가 속해있는 진보당의 이사이자 총리의 고문을 맡고 있는 Hrólfur Ölvisson이 이 데이터에 언급된 2개의 회사(‘셀코 파이낸스’와 ‘카밀레 마케팅 SA’)와 관련을 맺고 있다는 사실도 드러나 있다. 2005년, Ölvisson은 진보당의 간부를 지냈던 Finnur Ingólfsson에게 셀코 파이낸스에 대한 지배권을 양도했다. Finnur Ingólfsson은 Kaupthing 은행이 민영화되었을 때 이 은행의 인수를 지휘하는 데 도움을 준 인물이다.

Ölvisson은 이 회사가 보험이나 다른 상품들을 아이슬란드에 판매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이 회사들이 수년간 운영되지 않았다고 언급한 Ölvisson은 “저와 관련된 모든 일은 합법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와 관련된 모든 일은 회계사가 모두 처리했으며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Ingólfsson은 자신이 운영하던 회사가 ‘셀코’를 인수했으며 그 과정에 어떤 조세상의 이득도 없었다고 말했다.

바이킹 침입자

아이슬란드는 비교적 최근까지도 금융 분야에서 매우 뒤처져 있었다. 아이슬란드에는 1985년까지 주식시장이 없었고 이곳의 거대 은행들은 국가 소유였다. 아이슬란드는 1990년대에 국가소유로 인한 왜곡을 없앰으로써 경제의 효율성을 높이고자 경제 자유화를 조치를 취했다. 이에 따라 아이슬란드 정부는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에 은행들을 민영화했고 밀려드는 해외자본은 아이슬란드 금융산업의 급속한 확장을 부추겼다. 2008년에 3개의 주요 은행인 aupthing 은행, Landsbanki 은행, Glitnir 은행의 자산은 국가 경제 규모보다 11배 더 큰 1천8백억 달러까지 팽창했으며 이것은 역사상 가장 거대한 금융 버블 중 하나였다.

언론은 아이슬란드의 거대 기업과 은행들을 새로운 바이킹 침입자라고 칭찬했다. 아이슬란드의 경제 엘리트들은 수십 억 달러 규모의 해외 사업을 유치했고 개인 파티에 엘튼 존이나 50센트와 같은 뮤지션들을 초청하기도 했다. 그리고 과거의 어부들은 이제 투자자가 되었다. 아이슬란드 주식시장은 2001년에서 2007년 사이에 800% 상승했다.

그리고 2008년 10월, 불과 3일만에 이 모든 것이 붕괴되었다.

아이슬란드의 거대 은행 3개가 붕괴됨으로써 국가 경제가 불황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주식시장은 97% 폭락했고 아이슬란드 통화인 크로나 가치는 절반으로 하락했다.

아이슬란드는 거대 은행들을 국유화했고 해외 투자자들의 예치된 자금에 대해 지급 정지를 선언함으로써 영국 및 네덜란드와의 외교적 마찰이 발생했다. 수천 명이 의회 앞에서 시위를 했고 건물에 돌과 폭죽을 집어 던졌다. 결국 이로 인해 아이슬란드 정부도 붕괴되었다. 의회는 당시의 총리였던 Geir Haarde를 과실 혐의로 기소했고 법원은 상징적인 조치로서 자신의 내각에 위기 상황을 알리지 못한 것에 대해 총리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다.

이 혼란 속에서, 아이슬란드의 고위급 은행가들 중 상당수는 조세 도피처 회사를 통해 가까운 동료들에게 돈을 보냈고 실제보다 은행이 더 건전하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 시장을 조작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은행 내부자들은 서로 간에, 그리고 은행 소유자들과 주요 관계자들에게 수백억 크로나(몇 억 달러)를 융자해 줌으로써 아무런 위험 없이 아이슬란드 은행들의 지분을 소유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로 인해 투자자들과 규제 기관들은 아이슬란드 은행 지분에 대한 수요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오인하게 되었다.

엉킨 실 풀기

서구 국가들 중 오직 아이슬란드 정부만이 은행 간부들을 엄격하게 기소했고 최소 20여 명이 구속됐다. 최상위 은행 임원 7명 중 4명, 3개 거대 은행들의 주요 주주들이 모색 폰세카를 통해서 등록된 조세 도피처 회사들을 지배했다. 그러나 모색 폰세카와 그 외 다른 중개인들로 인해서 이러한 거래는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었기 때문에 금융 붕괴 이후 7년 이상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법 행위와 보상 등이 제대로 해결되지 못하고 있으며 이중 일부는 밝혀내는 것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

금융 붕괴 이후에 구성된 특별검사 팀을 지휘했던 Olafur Hauksson은 ICIJ와 쥬트도이체 차이퉁(Süddeutsche Zeitung)이 입수한 정보가 공개되기 이전에 이루어진 어느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틀림 없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뭔가가 진행되고 있을 것입니다” Hauksson은 특별 검사로 임명되기 전에는 인구 6,600여명의 어촌 마을인 아크라네스의 건장한 경찰서장이었다. 당시에 그는 특별 검사직을 원했던 유일한 아이슬란드인이었다.

핵심 인사들을 구속시키는 데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Hauksson은 조세 도피처 회사 때문에 숨겨진 기밀로 인해서 자신이 알아채지 못한 것들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케이먼이나 토르톨라 등과 같은 곳에 있는 회사 그리고 룩셈부르크에 지점을 두고 있지만 실제로는 아이슬란드에 위치해 있는 은행들을 보십시오. 이로 인해서 사건의 전체 그림을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여러 군데에 분산돼 있는 조각들을 하나로 맞추는 것은 상당한 노력을 필요로 합니다. 그리고 무엇을 찾아야 할 것인지 파악하려면 여러 다양한 분야에서의 협력과 지식이 필요합니다.

은행 부채

ICIJ가 입수한 문서들은 부자들과 권력자들이 사업 거래를 은폐하고 돈을 더 많이 보유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다른 납세자들로 하여금 더 많은 세금을 납부하게 하는 글로벌 비밀 장치에서 모색 폰세카가 수행하는 상당히 폭넓은 역할에 대해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또한 이 문서들은 인구 329,000명의 작은 섬에서 형성된 엘리트들 간의 긴밀한 유대관계를 밝혀주고 있다.

아이슬란드 은행들의 패스트-앤-루스 관행에 대해 가장 먼저 경고했던 학자이자 국회의원인 Vilhálmur Bjarnason은 “아이슬란드는 매우 작은 나라이기 때문에 우리는 누군가를 만나게 되면 그 가족들까지도 알게 됩니다”라고 말했다.

총리의 자산 운용 시점을 보면 그 중의 일부는 논란을 일으킨 아이슬란드 사업가들이 지배하는 기업들의 일정과 일치하는 것이 발견된다.

‘윈트리스’와 다른 두 개의 무기명 회사(이 회사들도 아이슬란드인들이 통제한다.)는 2008년 3월 같은 날에 런던의 크레딧 스위스에서 별도의 은행 계좌를 개설했다. 이 3개의 회사들은 각각 동일한 지명 이사들을 두고 있었다(이들은 모색 폰세카가 여러 결정들을 승인하고 소유자들의 신분을 숨기기 위해 제공한 허수아비다). 이 3개의 회사(윈트리스, 잘 유니버설 SA, 제이드 트레이딩 서비스) 모두 Landsbanki 은행의 룩셈부르크 지점을 통해서 인수되고 운영되었다.

이중에서 ‘제이드 트레이딩’과 ‘잘 유니버설’은 평범한 회사가 아니다. 이 두 회사는 아이슬란드를 혼란에 빠뜨렸던 시장 조작 스캔들에서 조사(기소되지는 않았지만)를 받은 막강한 Landsbanki 은행 임원들을 통해서 지배되고 운영되었다.

제이드 트레이딩 서비스는 2004년부터 2007년까지 Andri Sveinsson이 지배했는데, 이 인물은 Landsbanki 은행의 회장인 Björgólfur Guðmundsson과 아이슬란드에서 최고 부자인 Guðmundsson의 아들인 Björgólfur Thor Björgólfsson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다.

2008년 1월 ‘제이드 트레이딩’은 아이슬란드 투자자인 Sigurdur Bollason에게 위임장을 발급해 주었다. Sigurdur Bollason은 2008년 여름 동안에 주식을 매수하기 위해 Landsbanki 은행, Kaupthing 은행, Glitnir 은행으로부터 무담보 대출로 1억4천4백만 달러를 확보하기 위해서 다른 회사들을 이용했던 인물이다. 그 뒤 Bollason은 집단 소송에서 공동 피고로 지목되었고 시장조작 스캔들에 대해서 룩셈부르크의 Hauksson 특별검사 팀의 타깃이 되었다. Bollason은 기소되지 않았다.

‘잘 유니버설’ 역시 Bollason이 지배했다. ‘잘 유니버설’은 그가 지배했던 다른 회사들과 연계되어 있는데, 이 가운데는 Landsbanki 은행이 정부에 넘어가기 4일 전, Landsbanki 은행의 룩셈부르크 계좌로 622,000달러의 배당금을 보낸 회사도 포함되어 있다.

모색 폰세카 파일을 통해서 공개된 정보조차도 이 회사들이 정확히 어떠한 활동을 했는지 밝혀주지 못하고 있다. 이 파나마 법률 회사는 아이슬란드 은행 제도에서 사용된 기밀 체인의 핵심적인 고리이다. 이에 대한 전체 그림을 보기 위해서는 은행, 투자 자문 그리고 페이퍼 컴퍼니와 연계된 다른 법률 회사의 내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해 Hauksson 특별검사는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일부 사례들은 너무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실제로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살펴보기가 어렵습니다. 과연 이것의 배후 실세는 누구일까요? 앞으로 수사관들과 자금을 숨기고 싶어하는 사람들 간에 전투가 펼쳐질 것입니다.

아이슬란드 세무 당국은 탈세자들을 찾아 미납된 세금을 회복하기 위해서 내부 고발자들로부터 모색 폰세카와 관련된 문서들 중 일부를 구입했다. 이렇게 구입한 문서들에는 현재 귄릭손의 부인이 단독으로 소유하고 있는 페이퍼 컴퍼니인 ‘윈트리스’에 관한 정보가 포함되어 있다.

현재까지 당국은 알아낸 사실들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 기사 원문 보기(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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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테라바이트 규모의 파라다이스페이퍼스 데이터에서는 전세계 최상위 부자들의 개인 자산을 신탁 관리해주는 은밀한 서비스에 관한 문서들도 발견됐다. 이 자산 신탁 관련 문서들은 부자들이 왜 조세도피처를 이용하는지, 그곳에서는 대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그 구조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마치 조세도피처의 교과서 같은 자료들이다. 물론, 여기에서도 어김없이 한국인들의 이름이 나왔다(파라다이스 페이퍼스에 등장하는 한국인은 뉴스타파 취재결과 현재까지 모두 232명이다).

세계에서 7번째 오래된 은행 쿠스(Coutts)….신탁고객 명단에 한국인

영국의 프라이빗 은행 쿠스(Coutts & Co)는 1692년에 설립된, 세계에서 7번째로 오래된 은행이다. 유럽 귀족 등 전통적인 부호들의 자산을 은밀하게 관리해주는 프라이빗 뱅킹 서비스로 유명하다. 이렇게 부자들만 상대하다보니 어지간한 고객들은 상대도 하지 않는다. 실제 뉴스타파 취재진이 영국 런던의 쿠스 본점에 들어가 프라이빗 뱅킹 서비스에 가입하려고 해봤지만 Coutts의 직원은 “영국인의 경우 최저 100만 파운드(14억 원), 외국인의 경우 최저 300만 파운드(42억 원)의 자산을 맡기는 사람만 고객으로 받는다”며 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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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 신탁… 소유하면서도 소유하지 않는 ‘마법’

쿠스가 특히 강점을 갖고 있는 분야는 신탁 관리 (Trust administration) 분야다. 트러스트, 즉 신탁은 어떤 자산을 은행이나 신탁회사에 맡기는 제도다. 이때 자산에 대한 명목상의 소유권은 은행이나 신탁회사로 넘어간다. 그러나 수탁기관은 원래 자산의 소유자, 즉 신탁 설정자가 정해준 조건에 따라 자산을 운용해야 한다. 이에 따라 신탁 설정자는 ‘Beneficiary owner’, 즉 실제 수혜자를 지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영국 귀족이 신탁회사에 막대한 자산을 맡긴다고 치자. 그러면 이 영국 귀족은 일정한 기간이 지난 뒤 (예를 들어 20년 뒤, 아니면 자신이 사망한 지 1년 뒤) 신탁에 맡겨놓은 자산을 자신의 아내와 자식과 사촌에게 4:4:2의 비율로 분배해서 나눠주라고 ‘조건’을 설정할 수 있다. 물론 그 시점까지 신탁회사는 자산을 계속 운용하기 때문에 자산은 상당히 불어나 있을 것이다. 이때 이 영국 귀족에게 좋은 점은 자산의 소유권이 신탁으로 넘어가버린다는 점이다. 따라서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또 자신이 신탁을 설정해 자산을 맡겨둔 사실은 철저히 비밀에 붙여지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세금 없이 증여나 상속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자기 자신을 실수혜자로 지정할 수도 있다. 이 경우에는 명목상 소유권을 신탁회사에 넘기면서도 실제로는 계속 소유권을 가지게 되는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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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스의 신탁사업 애플비가 인수…사업 암호명은 ‘프로젝트 골드’

뉴스타파 취재진은 파라다이스 페이퍼스를 검색하는 과정에서 바로 쿠스의 이 자산 신탁 서비스를 이용한 사람들의 명단과 그들이 조세도피처에 설정해 놓은 신탁 회사 이름 등을 발견했다. 원래 Coutts의 프라이빗 뱅킹 분야는 스코틀랜드 왕립은행의 소유였는데, 이 사업 부문을 버뮤다 애플비가 인수하게 되면서 고객 명단을 넘겨 받게 됐고, 이 고객 명단이 이번 유출로 세상에 드러나게 된 것이다. 애플비와 쿠스는 이 거래에 ‘프로젝트 골드’라는 이름을 붙였다. 뉴스타파는 이 ‘프로젝트 골드’ 거래를 설명하는 00쪽 짜리 프리젠테이션 파일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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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 명에 이르는 고객 명단에는 루이비통 브랜드를 소유한 LVMH 회장인 베르나르 아르노, 폴란드의 영화감독 로만 폴란스키의 이름 등이 올라가 있었고, 한국인 고객의 이름도 2명 발견됐다.

뉴스타파가 쿠스의 고객 명단에서 발견한 한국인 2명 가운데 1명은 카이스트 교수인 안성태 씨다. 안 교수는 지난 2000년 리디스 테크놀로지라는 회사를 창업한 뒤, 2004년 미국 나스닥 시장에 직접 상장하는데 성공한 벤처업계의 신화적 인물이다. 당시 상장 규모는 8천 4백만 달러, 우리 돈으로 9백억 원이 넘는다. 그는 나스닥 상장이라는 대성공을 거둔 뒤 2년 만인 2006년 회사를 미국인 후임자에게 넘겼고, 2015년부터는 카이스트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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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비를 통해 유출된 쿠스의 고객 명단에 따르면, 그는 2009년 11월 24일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에 파자모르(Pazamor Ltd.)라는 페이퍼 컴퍼니를 만들었다. 그리고 보름 뒤인 12월 7일 이 회사 명의로 케이먼 아일랜드에 파자모르 트러스트(Pazamor trust)를 설립했다.

뉴스타파가 안 교수에게 이 페이퍼컴퍼니와 신탁회사에 대해 묻자 그는 사업을 그만두고 회사를 매각한 돈을 투자하기 위해 신탁을 만들었다고 답했다. 혹시 상속이나 증여 목적은 아닌지 묻자 전혀 그렇지 않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애플비를 통해 유출된 쿠스의 고객 명단에 따르면 그가 설정한 신탁의 Beneficiary owner, 즉 실수혜자는 안 교수 자신을 포함해 그의 아내와 딸, 이렇게 3명으로 되어있었다. 안 교수를 찾아가 이같은 점을 지적하고 다시 질의를 하자 안 교수는 “신탁을 설정할 당시 상속이나 증여에 대한 구체적인 조건들을 명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속이나 증여 목적이라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 자신의 투자 내역을 모두 과세 당국에 신고했으며 적법하다는 해석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투자 신고서 등을 보여달라는 뉴스타파의 요청은 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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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교수의 주장처럼 그가 단순히 투자를 위한 신탁을 만든 것이고, 관련 세금을 모두 납부하고 있는지 확인할 방법은 없다. 그러나 단순히 투자를 위한 목적이라면 왜 굳이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와 케이먼 제도를 거치는 이중의 구조를 만들어 조세도피처에 신탁이라는 형식으로 재산을 보관했는지, 증여 목적이 아니라면 왜 굳이 아내와 딸들을 실제 수혜자로 지정한 것인지 의문이 남는다.

쿠스의 고객 명단에 이름을 올린 또 다른 한국인은 코스닥 상장 제약회사인 메지온의 박동현 회장인데 자세한 내용은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취재 : 심인보
영국취재 : 장정훈 독립피디
촬영 : 김남범
편집 : 박서영
CG : 정동우

목, 2017/11/09-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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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 원인을 밝히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될 화물칸 차량 블랙박스 영상 파일을 뉴스타파가 단독 입수했다. 이 블랙박스 영상은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이하 세월호 선조위)가 민간 포렌식 업체에 의뢰해 복구한 것이다. 세월호 선조위가 민주당 김현권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이 민간업체는 지난 8월 말까지 세월호 선체에서 수습된 디지털 기기 265점을 인계받았고, 이 가운데 휴대전화 26개, 차량 블랙박스 8개, 노트북 2개 등에서 모두 43개의 메모리를 복구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뉴스타파는 이 가운데 ‘주차중 녹화’ 기능이 작동돼 세월호가 급격히 기울어지는 순간의 상황이 녹화된 블랙박스 4개의 영상 파일을 입수해 분석했다.

급격히 왼쪽으로 쏠린 차량들… 바닷물 차 들어오는 모습도

입수된 블랙박스 영상들은 모두 화물칸 C데크와 C데크 2층 트윈데크에 있던 차량 4대에서 나온 것들이다. 이 차량들의 선적 위치와 블랙박스 화각은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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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운데 트윈데크에 주차됐던 차량의 블랙박스에는 세월호가 급격히 기울면서 차체가 앞으로 튕겨져 나와 왼쪽으로 쏠려 내려가는 모습이 담겼다. 지금까지의 조사 내용 상 4월 16일 오전 8시 50분 무렵의 상황으로 추정되지만 블랙박스 화면 상의 시각은 4월 12일 오전 9시 무렵으로 표시돼 있다. 장비에 입력된 시각이 실제와는 큰 오차가 있는 것이다.

C데크 엔진 케이싱 벽면에 붙어 주차된 차량의 블랙박스는 선체 뒤편 모습을 화면에 담고 있다. 미동도 느껴지지 않던 화물칸에서 갑자기 바로 앞 트럭에 실린 화물이 슬그머니 오른쪽으로 밀리는가 싶더니 이내 주변 차량들과 멀리 보이는 트윈데크 위 차량들이 일제히 오른쪽으로 급격히 쏠리는 모습이 포착됐다. 선체의 진행 방향을 기준으로 하면 모두 왼쪽으로 쏠려 내려간 것이다. 이 무렵 시각이 해당 블랙박스 화면엔 오전 7시 28분쯤으로 돼 있어, 역시 실제와는 적지 않은 오차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블랙박스 속 또 다른 영상에는 바로 옆쪽 화물차량에 실렸던 박스가 툭 떨어지고, 이어 앞쪽에 있던 승용차 한 대가 튕겨져 나와 천장에 부딪히는 모습도 남아 있다. 이미 선체가 90도 이상 넘어간 시점임을 짐작할 수 있다. 곧이어 1분 뒤에는 멀리 트윈데크 쪽에서부터 바닷물이 빠른 속도로 차 들어오는 장면도 남아 있다.

C데크 정중앙 앞쪽에 주차됐던 차량의 블랙박스 영상에도 화물들이 충돌하는 소음이 들린 직후 주변 화물차들이 일제히 왼쪽으로 넘어지는 장면이 담겨 있다. 이 블랙박스 화면에는 시간 표시가 없고, 파일명에만 오전 8시 48분 58초라는 시간 정보가 남아 있었다.

마지막 4번째 블랙박스 영상은 C데크 좌현 벽 쪽에 실린 차량의 것이었다. 이번에도 화물 충돌음이 들려오더니 멀리서부터 차량들이 연쇄적으로 밀려 넘어지고, 곧이어 이 차량도 좌측 벽에 강하게 부딪힌다. 곧이어 벽면 쪽에서 상당한 양의 물이 분출돼 차량을 덮친다. 이때 화면에 표시된 시각은 오전 8시 49분 무렵이었다.

민주당 세월호특위 소속인 김현권 의원은 이번에 복원된 블랙박스 영상에 대해, “세월호 침몰 순간 화물칸에서 발생한 일을 포괄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대단히 소중한 1차 자료로서, 이를 복구해 낸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의 입장에서 보자면 대단한 쾌거”라고 말했다. 이어 “이 자료를 바탕으로 세월호 선조위와 전문기관들이 협력해 세월호가 급격히 기울어진 과정과 원인에 대해 어떤 의혹도 남기지 않을 수 있는 세밀한 조사가 진행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취재 : 김성수
영상취재 : 김기철
영상편집 : 정지성
CG : 정동우

금, 2017/09/15-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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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인천교구 산하 병원인 국제성모병원의 경영을 사실상 책임지는 신부가 본인 개인 명의의 회사를 만들어 병원 측과 내부거래를 하고 있는 사실이 드러났다.

뉴스타파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국제성모병원의 박문서 의료부원장 신부는 지난 2013년 7월 지주회사인 (주)엠에스피를 설립하고 2개월 뒤인 9월, ‘엠에스피’라는 이름이 들어간 4개의 자회사를 설립했다. 이 중 한 곳인 엠에스피생활건강(현 브리스헬스라이프)은 국제성모병원과 병원 옆에 있는 의료테마파크몰(엠티피몰) 내의 마트를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 다른 자회사인 엠에스피씨앤에스(현 지엠에스)는 국제성모병원 주차, 외래수납, 응급수납, 콜센터, 보안, 미화, 의료정보시스템 운영 및 유지보수 등을 맡고 있다. 종합병원에서 할 수 있는 용역 사업의 대부분을 계약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엠에스피씨앤에스는 국제성모병원뿐만 아니라 인천성모병원의 주차, 보안, 의료정보시스템 운영은 물론 100억 원 대의 인천성모병원 뇌센터 건립까지 수주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 인천 서구 심곡동에 위치한 국제성모병원. 천주교 인천교구 산하 학교법인 인천가톨릭학원 가톨릭관동대학교 부속병원이다.

▲ 인천 서구 심곡동에 위치한 국제성모병원. 천주교 인천교구 산하 학교법인 인천가톨릭학원 가톨릭관동대학교 부속병원이다.

문제는 엠에스피생활건강과 엠에스피씨앤에스가 사실상 박문서 신부 소유의 회사라는 점이다. 이 두 회사의 모회사인 엠에스피는 1인이 100% 주식을 소유한 기업인데 그 소유자가 박문서 신부인 것으로 확인됐다. 두 자회사의 내부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에 따르면 엠에스피생활건강과 엠에스피씨앤에스의 지분은 모회사인 엠에스피가 70%, 나머지 30%는 박문서 신부가 개인 명의로 보유하고 있다. 사설 기업분석 보고서에도 이를 뒷받침하는 정황이 나온다. 또 다른 자회사인 엠에스피이앤이(현 이앤에이)는 국제성모병원의 시설관리직 인력 파견 업무를 맡고 있다. 엠에스피의 감사보고서를 확인한 결과 엠에스피의 자회사는 이 밖에도 4개가 더 있었고 대부분 인천교구 내 성모병원들과 수익이나 용역 사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사정을 잘 아는 또 다른 관계자는 박문서 신부는 이들 자회사들 중 일부에서도 개인 명의로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래 표 참조)

▲ 국제성모병원 의료부원장을 맡고 있는 가톨릭 인천교구 소속 박문서 신부는 지난 2013년 7월 엠에스피라는 지주회사를 만들었다. 엠에스피에 속한 8개 자회사들은 국제성모병원과 관련된 각종 수익사업, 외주용역 사업 등을 맡아 하고 있다.

▲ 국제성모병원 의료부원장을 맡고 있는 가톨릭 인천교구 소속 박문서 신부는 지난 2013년 7월 엠에스피라는 지주회사를 만들었다. 엠에스피에 속한 8개 자회사들은 국제성모병원과 관련된 각종 수익사업, 외주용역 사업 등을 맡아 하고 있다.

국제성모병원 의료부원장을 맡고 있는 가톨릭 인천교구 소속 박문서 신부는 지난 2013년 7월 엠에스피라는 지주회사를 만들었다. 엠에스피에 속한 8개 자회사들은 국제성모병원과 관련된 각종 수익사업, 외주용역 사업 등을 맡아 하고 있다.

뉴스타파가 엠에스피와 8개 자회사의 등기부등본을 확인한 결과 62년생 박 모 씨, 57년 생 김 모 씨, 61년생 김 모 씨, 59년생 홍 모 씨, 54년생 이 모 씨, 69년생 이 모 씨 등이 반복해서 등장했다. 이 중 박 모 씨는 국제성모병원 기획예산실장, 57년생 김 모 씨는 국제성모병원 기획조정실장으로 확인됐다. 또한 엠에스피생활건강의 대표이사 김 모 씨는 현재 국제성모병원의 직원인 것으로 드러났다.

천주교 서울교구 산하 성모병원들도 특정 업체에 일감을 몰아주고 있지만 일감을 받는 업체들은 학교법인 가톨릭학원이 100% 출자하고 업체명도 병원 홈페이지에 공개돼 있다. 하지만 국제성모병원의 경우 학교법인이 아닌 박문서 신부 개인이 지분을 가진 회사들에게 일감을 몰아주고 있는 것이다.

뉴스타파가 김경율 회계사에게 의뢰해 주요 대학 5개 병원의 의료수익(매출) 대비 외주용역비 비율을 비교해본 결과 국제성모병원은 다른 병원보다 외주용역비 비율이 서너배 높게 나타났다. 서울교구 산하 성모병원들의 외주용역비 비율과 비교했을 때도 두 배 이상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 주요 5개 대학병원의 의료수익(매출) 대비 외주용역비 비율을 비교해본 결과 국제성모병원은 의료수익 대비 외주용역비 비율이 11.4%로 다른 대학병원의 서너배 이상인 것으로 드러났다.

▲ 주요 5개 대학병원의 의료수익(매출) 대비 외주용역비 비율을 비교해본 결과 국제성모병원은 의료수익 대비 외주용역비 비율이 11.4%로 다른 대학병원의 서너배 이상인 것으로 드러났다.

뉴스타파는 국제성모병원 홍보팀을 통해 여러차례 박문서 신부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아무런 답변을 듣지 못했다. 인천교구 측도 “병원에 관한 사안이니 박문서 신부에게 물어보라”는 입장만 되풀이 했다.


취재 : 조현미
촬영 : 김기철
편집 : 윤석민
CG : 정동우

월, 2017/12/04-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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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도피처와 연예 산업

파라다이스 페이퍼스 데이터에서는 세계적인 스타들의 이름도 많이 나왔다. 세계적 가수인 마돈나는 조세도피처인 버뮤다에 설립된 의료기기 회사에 투자를 한 사실이 드러났고, 록밴드 U2의 리더인 보노는 몰타의 페이퍼 컴퍼니를 통해 리투아니아의 쇼핑몰에 투자했다. 영화 ‘비긴 어게인’의 배우 키이라 나이틀리 역시 조세도피처인 저지섬의 부동산 업체에 투자한 것으로 드러났다. 라틴 팝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샤키라는 조세도피처인 몰타에 설립한 페이퍼 컴퍼니에 자신의 음악 저작권을 모두 옮겨둔 사실이 밝혀졌다.

▲ U2의 리더 보노(왼쪽)와 배우 키이라 나이틀리

▲ U2의 리더 보노(왼쪽)와 배우 키이라 나이틀리

애플비 유출 문서를 통해 한국의 영화산업계도 조세도피처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드러났다. 장동건 씨가 대주주로 있던 회사가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의 영화 관련 페이퍼 컴퍼니에 투자한 사실이 확인됐다.

영화 ‘워리어스 웨이’와 조세도피처의 페이퍼 컴퍼니

지난 2010년 12월 한미합작영화 ‘워리어스 웨이’가 한국과 미국에서 동시 개봉했다. 제작비가 5천 2백만 달러, 우리 돈으로 570억이나 들어간 대작 영화다. 한국과 미국의 합작 영화지만 한국 영화사가 제작을 담당하고 한국 배우인 장동건 씨가 주연을 맡았다.

▲ 영화 '워리어스 웨이' 스틸컷

▲ 영화 ‘워리어스 웨이’ 스틸컷

그런데 뉴스타파는 버뮤다 법률 회사 애플비의 유출 문서에서 이 영화의 제작과 관련된 문서들을 발견했다. ‘워리어스 웨이’를 제작한 한국의 보람엔터테인먼트와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에 설립된 한 페이퍼 컴퍼니의 계약서였다. 페이퍼 컴퍼니의 이름은 ‘론드리 워리어 리미티드’. ‘론드리 워리어’는 영화 ‘워리어스 웨이’의 기획단계 명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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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것은 계약서의 내용이다. 보람엔터테인먼트는 저작권을 포함해 영화와 관련한 일체의 권리를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의 페이퍼 컴퍼니 ‘론드리 워리어 리미티드’에 넘겼다. 왜 이런 계약을 맺은 것일까?

지적 재산권과 조세도피처

장사가 무척 잘되는 햄버거 가게가 있다고 치자. 이 집의 영업 비밀은 특별한 맛을 내는 비밀소스다. 영업이 너무 잘돼서 세계 여러 나라에 매장을 세웠다. 수입이 늘어나자 매장이 있는 각국에 내야할 세금도 늘어난다. 그러자 한 영악한 컨설턴트가 나타나 세금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한다. 그 방법은 1단계, 비밀소스의 레시피를 저작권으로 등록하고 모든 매장으로부터 이 저작권에 대한 사용료를 받는다. 이렇게 되면 다른 나라의 매장들은 대부분의 이익을 저작권 사용료 명목으로 본사에 보내야 한다. 2단계, 조세도피처에 페이퍼 컴퍼니를 만들어 비밀소스 레시피의 저작권을 이 페이퍼 컴퍼니로 보낸다. 이렇게 되면 각국 매장들의 수입은 본사가 아니라 페이퍼 컴퍼니로 흘러들어 간다. 매장이 영업을 하는 나라나 본사가 있는 나라에서는 과세를 할 수가 없게 된다(※ 성공을 위한 레시피 – 비밀 소스를 숨겨 거액을 챙기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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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소스 레시피’를 음악 저작권으로 바꾸면 어떨까? 앞에서 언급했던 라틴 팝의 여왕 샤키라가 했던 일이 이와 유사하다. 샤키라는 자신의 음악 저작권을 모두 조세도피처인 몰타의 페이퍼 컴퍼니로 보냈다. 그러면 어느 나라에서 음반이나 음원이 팔리든, 그 수입 가운데 상당부분이 저작권료 명목으로 몰타로 흘러들어가고, 음반이나 음원이 팔리는 나라에서는 과세 대상이 사라져 버린다.

▲ 가수 샤키라

▲ 가수 샤키라

영화 판권 역시 ‘비밀소스 레시피’나 음악 저작권과 같은 지적 재산권이다. 영화가 흥행에 성공해 세계 곳곳에서 수입을 거두게 되면, 그 판권을 가진 회사로 수입이 모인다. 그런데 그 회사가 조세도피처의 페이퍼 컴퍼니라면? 어느 나라도 그 수익에 대해 과세를 할 수 없게 된다.

물론 영화 ‘워리어스 웨이’에서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영화가 흥행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보람엔터테인먼트 대표 이주익 씨는 이와 관련해,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더라도 일단 수익이 생기면 그 수익을 투자자의 국적에 따라 분배하게 되고 그 뒤에 각 나라의 세법에 따라 세금을 납부하기 때문에 세금 탈루는 있을 수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여러 나라의 투자를 받는 과정에서 공동제작자나 투자자측의 요구로 페이퍼 컴퍼니를 만들었으며, 미국에서는 영화를 제작할 때 조세도피처에 페이퍼 컴퍼니를 세우는 것이 매우 흔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장동건이 대주주였던 스타엠, 조세도피처 페이퍼컴퍼니에 투자

애플비 유출문서에서는 영화 ‘워리어스 웨이’와 관련된 또다른 계약서도 발견됐다. 스타엠이라는 한국 회사가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에 있는 페이퍼 컴퍼니 ‘론드리 워리어 리미티드’에 투자를 한다는 내용이다. 투자 금액은 천만 달러, 우리 돈으로 110억 원 가량이다. 투자금은 ‘론드리 워리어 리미티드’가 지정하는 뉴질랜드의 은행 계좌에 넣도록 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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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스타엠이라는 회사는 장동건 씨의 매니저 출신이 설립한 회사다. 장동건 씨 역시 회사 설립 당시 5% 이상의 지분을 가진 대주주였으며, 조세도피처의 페이퍼 컴퍼니와 계약이 체결됐던 2007년 11월에는 3%에서 4% 가량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스타엠의 주가는 장동건 씨가 유상 증자를 받을 때나 론드리 워리어에 대한 투자 계약이 공개됐을 때 이른바 연예인 효과로 인해 급등하기도 했다. 장동건 씨는 대주주로서 조세도피처에 대한 투자 결정에 어떤 영향력을 행사했을까?

뉴스타파는 장동건 씨 측에 대주주로 있던 회사가 조세도피처의 페이퍼 컴퍼니에 투자를 한 이유를 물었다. 그리고 당시 투자에 대해 금융당국에 신고한 해외투자 신고서를 갖고 있다면 보여달라고 요청했다. 장동건씨 측은 이에 대해 “당시 스타엠의 주식을 일부 보유하기는 했으나 회사의 임원이나 직원이 아니었고 회사의 실질적인 경영에 관여한 바가 없어 전혀 알지 못한다”고 답변했다.

영화 제작사가 탈세를 할 목적으로 조세도피처의 페이퍼 컴퍼니에 저작권을 넘긴 것인지 아니면 국제 영화계의 관행에 따른 정상적인 절차인지, 장동건 씨가 대주주로 있던 회사는 어떤 목적으로 투자를 했으며 수익이 났을 경우 국내에 이를 모두 들여와 정상적으로 세금을 납부할 예정이었는지에 대해 확실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 모든 투자와 수익 배분이 조세도피처인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서 은밀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에 누구도 그것을 제대로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설령 이들의 해명대로 영화 흥행에 따른 수익을 한국에 들여오고,그에 따른 세금을 낸다 하더라도 그게 전액인지 아니면 일부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뜻이다.


취재 : 임보영, 심인보
촬영 : 김남범
편집 : 윤석민
CG : 정동우

목, 2017/11/09-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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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다이스페이퍼스 프로젝트 팀 기자들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첫 민주적 대통령인 고 넬슨 만델라 관련 자금 추적이 맨섬(Isle of Man)까지 이어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아일랜드 해의 작은 섬인 맨섬은 조세도피처로 악명높은 곳이다.

만델라 명의의 수상스러운 역외 계좌와 관련된 자료는 독일 일간지 쥐트도이체 자이퉁이 입수해 국제탐사언론인협회(ICIJ)와 공유한 1천340만여 건의 문서들 가운데서 발견되었다.

이 신탁에 대한 첫번째 단서는 버뮤다 로펌 애플비가 지난 2015년 5월 작성한 자료에서 발견됐다. 당시 애플비 측은 만델라의 유산을 집행하는 인사들로부터 “맨섬에 등록된 ‘매드 트러스트’(Mad Trust)라는 신탁이 법적으로 효력이 있는지 법적 의견”을 제공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만델라의 부족 ‘마디바(Madiba)’의 이름을 딴 것으로 보이는 ‘매드 트러스트’가 정확하게 어떤 경로로 세계에서 가장 비밀보장이 용이한 조세도피처 중 한 곳인 맨섬에 설립됐는지에 대해 최근 몇 년간 법정에서는 열띤 토론이 오갔다.

만델라는 인종차별에 맞서 싸우며 27년 간의 수감생활에서 견뎌낸 후 석방돼, 1994년 인종분리정책(아파르트헤이트)의 철폐를 이끌었다. 때문에 사후 4년이 다 돼가는 현재 시점에도 남아공의 신적인 존재로 남아있다.

▲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

▲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

그러나 취재진은 이 ‘매드 트러스트’의 자금 흐름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만델라의 전 변호사인 이스마일 아욥과 만델라의 유산 집행인단이 이 신탁에 예치된 1천780만 남아공 랜드 (한화 약 13억 6천400만원)를 두고 다툼을 벌인 방대한 뒷 이야기를 발견하게 됐다. 이들 유산 집행인단은 디캉 모세네케 전 남아공 부대법관이 이끌고 있다.

17쪽에 달하는 신탁 양도증서에는 아욥이 지난 1995년 1월 21일 만델라를 대신해 매드 트러스트를 설립한 것으로 나와있다. 만델라에 들어온 후원금을 모아 “교육, 자선 목적으로 지역사회가 실수혜자 (beneficiaries)로 등록”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신탁이었다. 증서에는 “신탁은 맨섬에 주소지를 두고 맨섬 현지법의 적용을 받는다”고 적혀있다.

아욥이 맨섬을 선정한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국제 단체인 조세정의네트워크는 투명성 측면에서 맨섬에 낮은 순위를 매겼다. 신탁의 등기 문서를 등기소가 보유하지 않고, 신탁을 설립하려고 할때 설립자의 모국에 적절한 정보 공개를 요구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만델라의 신탁 증서는 1995년 1월에 작성되었다. 아욥이 1994년 9월 남아공 은행인 네드뱅크 런던지점에 매드 트러스트의 명의로 240만 파운드가 예치된 계좌를 개설한 이후 4개월이 지난 시점이다. 신탁의 설정자는 “만델라 부부(Mr. and Mrs. Mandela)”로 되어 있다. 즉, 해당 신탁을 설립한 지 얼마 안 된 1996년에 만델라와 이혼한 그의 전 부인 위니 마디키젤라-만델라가 설정자에 포함돼 있다는 얘기다.  

회계법인 딜로이트&투쉬가 만델라의 유산과 관련해 작성한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03년 10월 기준 그 런던 계좌에는 209만 6천220달러 (한화 약 23억원)가 예치돼 있었다. 그리고 6년이 지난 2009년 매드 트러스트 소유의 이 자금은 남아공 소재의 네드뱅크 지점으로 옮겨져 있었다.

현재 75세인 아욥은 만델라가 생전에 마지막으로 살던 집에서 아주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남아공 휴턴에서 여전히 로펌을 운영하고 있다. 아욥은 만델라와 1970년대부터 알고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로, 만델라의 수감생활 중 면회가 허락된 몇 명 중 한 명이었다.

아욥의 사무실에는 여전히 인종차별 반대를 위한 투쟁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만델라와 투쟁을 벌이던 모습이 담긴 빛바랜 사진들과 투쟁으로 인해 받은 체포영장, 그리고 1994년 남아공 최초로 흑인들이 참여한 자유총선거 당시의 투표용지가 액자 안에 보관돼있다.

ICIJ 파라다이스 페이퍼스 프로젝트 팀과의 인터뷰에서 아욥은 만델라가 “해외에서 ‘좋은’ 활동을 벌였거나 자금이 필요한 사람에게 돈을 보내주기 위해 신탁을 만들고 싶어했다”며 “만델라는 언제나 넉넉한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아욥은 만델라가 매드 트러스트에 들어있던 자금 중 일부를 동독의 마지막 서기장이었던 에릭 호네커의 부인인 마르고트 호네커를 지원하는데 사용했다고 전했다. 에릭 호네커는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몇 주 전에 사임한 바 있다.

당시 공산국가였던 동독에서 가장 강한 권력을 지닌 여성이었던 마르고트 호네커는 남편이 러시아에서 독일로 인도돼오고 얼마 후 칠레로 망명했다. 호네커 전 서기장 또한 이후 부인을 따라 칠레 산티아고에 정착했고, 1994년 5월 칠레에서 사망했다.

▲ 에리히 호네커 전 동독 서기장(왼쪽)과 마르고트 호네커(출처 : imago)

▲ 에리히 호네커 전 동독 서기장(왼쪽)과 마르고트 호네커(출처 : imago)

아욥은 마르고트가 당시 힘든 상황에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당시 그녀는 연금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금전적으로 힘들었다. 그래서 만델라는 그녀를 지원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런 식으로 가끔 만델라는 [신탁 명의로 런던에 있던 자금]의 일부를 돈이 필요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전달하라고 말했다. 우리는 신탁을 그런 용도로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이것은 주목할만한 증언이다. 마르고트 호네커가 가진 것 없는 미망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강렬한 담색 머리와 터프한 성격 때문에 동독의 ‘보라색 마녀’라는 별칭이 붙은 인물이었다. 수년간 교육부 장관 자리를 거치며 강경노선의 사회주의 교육이 수행되도록 교육 과정 개정에 나서기도 했다.

신탁에 맨섬의 현지법이 적용될 수 있도록 요청한 이유에 대해 묻자 아욥은 “당시에는 남아공 밖 외국으로 자금을 유출입하기 어려운 시절이었기 때문”이라며 신탁이 합리적인 해결책이라 생각돼 개설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법원 서류에 따르면 이 신탁은 남아공 중앙은행인 SARB에 신고된 상태였다. 이에 대해 아욥은 그런 이유에서 이 신탁이 “완전히 법률을 준수”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만델라의 측근 중 일부는 만델라가 사망한 2013년 12월 전까지는 이 신탁의 존재를 몰랐던 것으로 보인다. 만델라의 자산 목록의 정리 작업이 사후에 시작됐기 때문이다. ICIJ가 접촉한 만델라의 측근 중 계좌의 존재를 몰랐던 일부 인물은 만델라가 이 같은 역외 계좌가 운용되는 원리를 알고 있었는지 여부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었다.  남아공 현지 로펌인 ‘에드워드 네이선 소넨버그(ENSafrica)’ 회장이자 만델라의 유산 집행인단의 변호인 마이클 캐츠는 “만델라가 만약 역외에 자산을 옮겨두라고 지시를 내렸거나 자신이 역외에 자산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면 나는 매우 놀랄 것 같다”고 말했다.

캐츠 외 측근들은 해당 신탁이 아욥의 역외 계좌일 수 있다는 의혹을 품고 있었다. 아욥이 지난 2004년 만델라와 공개적으로 결별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욥은 수십년 간 만델라의 법적인 일을 도맡아온 인물이다. 그러나 2004년 만델라의 고문들은 아욥이 만델라의 명의를 팔아 미국에서 수백만 달러를 호가하는 미술품을 판매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당시 만델라는 아욥을 ‘사기’ 혐의로 고소하고 그에게 자신 명의의 모든 신탁의 이사직에서 사임하라고 말했다.

파라다이스 페이퍼스를 통해 유출된 문서에 따르면, 애플비는 고객 검증 과정에서 아욥에 대해 “2003년 1천500만 랜드 [11억5천만원] 규모의 만델라 트러스트에 로열티를 보내려다 실패한 혐의로 경찰의 조사를 받고 있다고 알려져”있으나 그가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고 서술했다.

만델라의 친한 여성인사 중 한 명은 “난 만델라를 오래 알고 지냈는데 그는 아욥과 함께 할 때는 유독 화를 내거나 감정적이었다”고 증언했다.

지금으로부터 2년 전인 2015년, 만델라의 유산 집행인단이 맨섬에 개설된 계좌를 발견한 이후 법정 싸움이 시작되었다. 만델라의 권리 집행인단은 매드 트러스트의 은행 계좌에 들어간 자금이 마지막으로 산출된 시점 기준의 현금으로만 110만 유로에 22만 3천 랜드까지 합친 규모의 자금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이는 오늘날의 1천980만 랜드 (한화 15억 원)에 이른다. 

그러나 여전히 매드 트러스트의 유일한 이사로 이름이 올라있는 아욥은 요구를 거절했다. 이 때문에 이 진흙탕 법정 싸움은 요하네스버그 고등 법원으로 갔다. 법정 기록에 따르면 2003년 11월 만델라는 서면을 통해 아욥에게 매드 트러스트에 대해 문의한 적이 있다. 문의 내용은 신탁의 공식 서명인이 누구이며, 계좌의 입출금 내역서는 어디에 있고 어떤 성격의 자금이 이 계좌에 들어있는지 등이었다. 

아욥은 만델라가 신탁의 ‘소유권자’로 올라가 있었지만 자세한 사항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었다고 해명했다. 법정 기록에는 아욥이 이후 자신의 변호인에게 만델라의 유언 집행권자들이 자신에게 “신탁 설립 시점부터 당시까지의 모든 거래 기록을 그들에게 설명”하라고 요구했지만 해당 정보가 없었다”고 증언한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아욥은 “매드 트러스트에 들어있는 자금은 모두 해외에 있는 실수혜자들로부터 들어온 돈이고, 남아공 현지에서 유출된 자금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만델라의 “수많은 해외 일정”을 통해 돈이 들어왔고, 매드 트러스트에 예치된 자금 중 일부가 만델라의 새 부인 그라사 마셸을 포함한 그의 가족에게도 전달됐다고도 덧붙였다.

▲만델라 전 대통령을 수십년 간 변호해 온 이스마일 아욥 변호사

▲만델라 전 대통령을 수십년 간 변호해 온 이스마일 아욥 변호사

그러나 아욥이 매드 트러스트에 예치된 자금을 만델라의 자산 집행인단에 넘기기를 꺼려하는 기색을 보이자 집행인단을 이끌고 있는 모세네케 판사는 크게 분노했다. 모세네케는 아욥을 “비협조적이며 방해가 되는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모세네케는 매드 트러스트가 적법하게 설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신탁에 들어간 자금이 만델라의 개인적인 자금’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아욥은 이 같은 주장에 반박했다. 아욥은 지난 2015년 5월 유산 집행인단에 쓴 서한에서 자신이 “지금까지 매드 트러스트가 맨섬의 현지법이 적용되는 적법한 신탁이라고 확실히 주장해온 바 있다”며 “신탁의 설립 목적 또한 주로 교육과 자선사업을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서한에서 아욥은 “(만델라는) 자금을 적법한 신탁에 기부한 것”이라며 “그는 평생 자신이 한 후원을 철회한 적이 없는 인물이며, (나의 법적) 조언을 듣지 않은 적 또한 없다”고 주장했다.  

모세네케는 법정에 제출한 자료에서 이 같은 주장을 반박했다. 그는 만델라가 이미 2004년 아욥에게 이사로서 신탁관리 업무를 그만두기를 요구했으므로 그가 더 이상 매드 트러스트에 이름을 올려서는 안되는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아욥은 2015년 9월 제출한 진술서에서 모세네케의 주장에 대해 “고 만델라 대통령을 법적으로 대행할 권한은 이미 종료됐지만, 그렇다고 해서 매드 트러스트의 유일한 이사로서 신탁관리할 권한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다시 반박했다.

모세네케는 이 같은 아욥의 주장에 대해 대부분 법적 효력이 없고 신뢰성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만델라의 요청에 의해 매드 트러스트를 설립했다는 주장이 좋은 예시”라며 “만델라가 언제, 어디에서 어떤 이유로 그와 같은 지시를 했으며, 왜 그가 신탁 양도증서에 사인하기도 전에 계좌를 미리 만들었는지, 왜 이 신탁이 정식으로 등록된 기록이 없는지 모두 미지수”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유산 집행인단은 매드 트러스트가 맨섬에서 적법한 절차를 걸쳐 설립됐는지 여부에 대한 판정을 전문가에 의뢰했다.

그 중 한 로펌이 바로 애플비였던 것이다. 지난 2015년 낸 의견서에서 애플비는 이에 대한 판단을 내리기 힘들다고 말했다. 맨섬에는 신탁에 대한 등기부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애플비는 그러나 “맨섬 법에서는 매드 트러스트가 [처음부터] 무효”라며 “신탁의 실수혜자를 규정대로 제대로 표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 애플비 버뮤다 본사

▲ 애플비 버뮤다 본사

맨섬 소재 로펌인 ‘메이트랜드’는 “신탁을 설립하려고 했던 의도는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며 “신탁에 맨섬 현지법이 적용되도록 한 것이 유효한 선택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메이트랜드 역시 이 신탁은 “불확실한 정보 때문에 무효”일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마침내 2015년 11월 11일 최종 판결이 나왔다. 사건을 담당한 루시 마이룰라 판사는 만델라의 유산 집행인단이 매드 트러스트에 예치된 자금의 “실수혜자(beneficiary owner)”이며, 아욥은 이 자금에 대해 “권한이 없다”고 판결했다.

판결 당시 1천780만 랜드 규모였던 자금은 이후 집행인단에게로 넘어갔다. 파라다이스 페이퍼스 프로젝트를 통해 고 만델라 대통령의 자금 관련 수수께끼의 퍼즐 한조각이 맞춰졌지만, 그의 유산 집행인단은 아직도 이 자금의 미스터리한 행방을 찾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만델라의 유산에 대한 분쟁은 이 뿐만이 아니다. 이번 주 만델라의 전 부인 마디키젤라-만델라는 남아공 대법 상소법원에 만델라 소유였던 쿠누에 있는 농가를 그의 유산 집행인단이 아닌 그녀가 상속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지난 2013년 남아공 경찰청의 범죄조사단 ‘호크’는 사라져버린 만델라의 수백만 달러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현재 제이콥 주마 대통령 하에 경찰의 권한이 크게 약화됐기 때문이다.


취재: ICIJ ‘파라다이스 페이퍼스’ 프로젝트 팀
번역, 정리: 김지윤

화, 2017/11/14-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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