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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대학은 민주주의와 전혀 상관없는 곳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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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대학은 민주주의와 전혀 상관없는 곳이 되었다

익명 (미확인) | 월, 2016/03/28- 13:00

그날은 ‘민주주의가 퇴행한’ 사회적 이슈를 가지고 토론을 한 날이었다. 공교롭게도 최근 몇 년 사이에 그런 일들이 많다. MB정부의 민간인 사찰사건, 2012년 대선 때 국가공권력 개입 등 국가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굵직한 사건만이 아니라, 대학 내에서도 민주주의가 후퇴한다는 신호를 감지할만한 여러 일들이 비일비재다. 교수의 성추행, 선배의 폭력은 물론이고 재단의 부패, 총장 선출을 둘러싼 잡음, 학교의 각종 갑질(언론사 장악, 학생회 선거 개입, 동아리 자치활동 예산 삭감), 그리고 누군가에게 생사의 문제라 할 수 있는 학과 통‧폐합을 구성원과 일체의 상의 없이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일 등이 그러하다. 나아가 이런 대학의 문제점을 지적한 교수들에게 “그들이 제 목을 쳐 달라고 목을 길게 뺐는데 안 쳐주면 예의가 아니다. 가장 피가 많이 나고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내가 쳐줄 것”이라고 말하는 초현실주의 이사장까지 현실에 버젓이 존재한다. 나는 이런 일들을 민주주의 가치를 훼손한 ‘나쁜’ 경우로 규정하고 ‘우리가 왜 분노해야 하는지’를 설명하는 시간을 자주 갖는다.

하지만 ‘그날’, 학생들의 반응은 너무나도 차가웠고 이유는 명쾌했다. 한 학생의 단호한 발언에 등골이 오싹해진다. “말씀해 주시는 사례들이 민주주의 가치가 퇴행되었다는 것은 분명하고 이견도 없습니다. 그런데요, 알겠는데요, 별 느낌이 없어요.” 그리고 이는 한 학생만의 의견이 아니었다. 대부분이 공감을 표출한다. ‘느낌이 없다’를 학생들을 이렇게 표현한다. “민주주의가 훼손되는 어떤 사실이 머릿속에 인지되어도 ‘심장을 송곳으로 찌르는 그런 아픔’이 느껴지지 않아요.”

왜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은 힘들지 않았다. 대학생들은 여태껏 단 한번도 ‘그것이 다른 어떤 것에 비할 바 없이 중요한 것’이라고 들어본 적, 교육받은 적 없는데 민주주의가 훼손되는 것에 ‘무감’(無感)한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항변했다. 과거보다 경쟁은 빨라졌고 강해졌다. ‘더러운’ 사회를 떠날 수 없다면 ‘자본주의 사회는 어쩔 수 없다’는 세뇌가 한결 전략적이다. 그 과정에서 민주주의는 ‘별다른 효용이 없는 것’으로 해석되어 “그래서 그게 돈이라도 돼?”라는 질문 앞에서 극도로 무기력해진다. 그래서 지금의 대학생들에게 민주주의는 ‘있으면 좋겠지만’, 없다고 무슨 청천벽력이 아니다.

문제는 사회가 이상한 분위기에 노출되어 이상하게 흘러가는 것을 (정녕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 별로 없지만) 비판해야 할 의무가 있는 대학이 오직 자본의 논리에 ‘진격 앞으로!’를 외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회수요 맞춤형 고등교육 인재양성 방안’이라면서 교육부가 2천억이 넘는 연구비를 책정하여 야심차게 준비하는 ‘프라임’사업을 보면 지금의 대학에서 ‘사회’가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다. 취업 안 되는 학과의 정원은 과감히 줄일수록 유리한 평가를 받는 이 사업의 이름, ‘프라임’(PRIME)의 뜻은 이렇다. Program for Industry needs Matched Education. 즉, 산업이 사회 자체가 되어버렸다. 사회 ‘안’의 시장이 아니라, ‘사회=시장’이다. 이를 천명하는 대학은 ‘선두’(prime)가 된다. 자본주의에 잘 적응하는 교육을 지향하는 공간에서 민주주의는 부차적으로 이해된다.

세월호가 침몰했을 때, 학생들과의 대화에서 내가 느낀 충격은 이런 분위기의 산물이었다. 나는 사회학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세월호의 침몰 원인을 우리 역사에서 찾는 작업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저 슬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왜 저런 일이 발생한지를 정확히 따져 묻고 그 사회적 기원을 이해하고 반성하는 것은 학문의 도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청해진 해운’을 붙들고 늘어지는 것은 언론에서 하면 되지만 왜 한국에서 기업이 지켜야 할 규정이 저리도 엉성한지, 그런데 그런 규정조차 ‘관례’라는 이름으로 지켜지지 않는 일이 왜 이리도 잦은지를 따지는 건 교육의 임무 아닌가. 이 과정은 필연적으로 ‘어두웠던’ 한국의 현대사를 동반할 수밖에 없다. 정경유착, 재벌중심의 경제발전 등 경제민주화를 달성하지 못한 지난 역사의 물줄기를 끄집어와 이런 것을 비판하지 않은 우리 모두가 이 사건의 가해자이기도 함을 인식하는 것, 그런 강의를 했다. 하지만 반응은 “그 사건을 말하는데 재벌 이야기가 왜 나와요?”였다.

놀랍지 않다. 지금의 대학생들은 특정한 문제를 큰 그림에서 이해하는 훈련을 받아본 적이 없다. 효율성을 유일한 잣대로 삼은 대학에서 “문제의 원인을 사회구조에서 찾자!”와 같은 발상은 매우 덧없다. 그런 건 대학평가 지표에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다. 그렇기에 우리의 미래는 어둡다.

글 : 오찬호 | <진격의 대학교 : 기업의 노예가 된 한국대학의 자화상> 저자

P.S) 이 글의 일부는 필자의 다른 글 “한국의 대학에서 교양강의는 이미 다른 개념이 되었다”(『대학의 배신: 인문학은 N포세대를 구원할 수 있는가』(2016, Michael S. Ruth, 최다인 역, 지식프레임)의 해제)를 재구성했습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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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의 고민하면 떠오르는 것 중 하나가 '취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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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15/09/16-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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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과 2014년 사이, 인도의 한 마을에서 ‘어떤 실험’이 있었습니다. 당신의 소득은? 당신의 직업은? 당신의 재산은? 실험 참여를 위한 자격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단, 한 가지 원칙은 꼭 지켜야 했습니다. ‘무조건적일 것’. 주민들은 노동여부와 소득수준, 자산규모에 상관없이 매월 한 사람 당 성인은 200루피씩, 아동은 100루피씩 받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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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16/10/21-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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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다래꽃 본 적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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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여기저기 꽃이 만발한 가운데 저는 참다래 골드(골드키위) 꽃 솎기를 하고 있어요. 참다래는 꽃이 피기 전 꽃망울이 한창일 때 1차 솎기를 합니다. 꽃이 피는 대로 놔뒀다간 키위가 오백 원 동전 만하게 작게 열릴 거예요. 게다가 참다래 꽃엔 가운데 꽃 양쪽에 자화 또는 측화라 불리는 꽃이 두 개 달리는데, 얘들을 반드시 따 주어야 해서, 손도 많이 가고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무성하게 달린 꽃 중에서 한 가지에 3~4개만 남겨야 한답니다. 큰 나무일 경우엔 오후 내내 한 그루 손보기도 버거워요. 우아하게 꽃을 따는 것 같지만 고개도 아프고요. 오늘 보니, 성질 급하게 핀 꽃들도 보이더라고요. 서둘러 작업을 마쳐야겠어요.

22면_참다래-1
조재현 제주 큰수풀공동체 생산자

수, 2016/06/01-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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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정치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한 정치학자 3인의 목소리
① 최장집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3.9)
② 강원택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3.15)
③ 손호철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3.20)

※ 북DB는 ‘문제는 정치다!’라는 주제 아래 정치학자 연속 인터뷰를 준비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상징되는 부패한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시대를 연다는 기대감이 높아진 요즘. 정치학자들의 식견을 통해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고 더 나은 미래를 고민해 보고자 한다.

2017년 3월 10일 오전 11시. 대한민국 역사의 새로운 한 페이지가 쓰여진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촉발한 촛불 시위는 결국 대통령 탄핵의 불씨가 됐고, 헌법재판소가 인용을 결정하면 대한민국은 사상 최초로 살아 있는 권력을 자리에서 끌어내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 선고 결과와 상관없이 우리에겐 과거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가기 위해 정치 체제와 민주주의를 고민해야 할 책임이 있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를 3월 6일 오전 서울 광화문에 자리 잡은 그의 집필실에서 만났다. 최장집 교수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진보적 정치학자 중 한 명이다. 그는 활자화된 현실이 아닌 대한민국 사회의 현실을 기반에 둔 정치 연구를 계속해 왔다. <한국의 노동운동과 국가>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 등의 책을 통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노동 현실을 보여줬다. 최근 펴낸 <양손잡이 민주주의>에는 촛불 시위에서 탄핵에 이르기까지 다단하고 복잡한 한국정치 지형에 관한 그의 명쾌한 시각이 담겨 있다.

“나는 세잔이라는 화가를 좋아합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을 그린 인상파 화가들과는 다르게, 변화하는 풍경 속에 변하지 않는 본질을 그리려 했기 때문입니다. 정치학 연구도 이런 작업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집필실이 광화문 근처에 있었기에 자주 촛불 시위에 참여했다는 최장집 교수. 최근 펴낸 <양손잡이 민주주의>(후마니타스/ 2017년)의 내용을 중심으로 혼란과 희망이 혼재하는 대한민국 사회에 대해, 더 나은 나라를 만들어갈 수 있는 길에 대해 그에게 물었다.

 

“민주주의 자체가 만능은 아냐…정부 잘 운영하는 게 중요”

 

Q 전화위복이라고 해야 할까. 이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계기로 국민들의 태도가 변화했다. 그 어느 때보다 정치에 대한 관심이 높고, 정치를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기대감이 충만하다.

 

이명박 정부에서 박근혜 정부까지 보수 정당이 정부를 운영하는 동안 민주주의의 가치나 원리를 통해 정치를 보고 발전시키려는 관심이나 분위기가 많이 약해졌다. 이 상황에서 촛불 시위는 모든 사람들이 민주주의에 관심을 갖도록 했고, 그 결과 시민 의식이 고양되고, 민주주의에 대한 활력과 에너지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계기로 분출되었다. 한국 사회가 좀 더 민주적인 사회가 되고 사회경제적으로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는 일에 관심을 갖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본다.

 

Q 2008년 미국산 소고기 파동 때도 대규모의 촛불 집회가 열렸다. 하지만 2016년의 촛불만큼 강력한 화력을 갖진 못했다. 8년의 시차를 둔 양 촛불집회가 각기 어떻게 다른 성격을 띤다고 보는가?

 

2008년에도 굉장히 많은 시민들이 정치에 참여했다. 하지만 당시 이슈는 이른바 미국 쇠고기 수입 파동, 즉 이명박 정부의 정책 사안에 대한 반대였다. 당시는 한나라당이라고 하는 보수적 정당이 최초로 집권한 때이기도 했다. 물론 그보다 앞에 있었던 노태우 정부나, 김영삼 정부도 보수적이라고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따로 설명이 필요하다.

 

두 번의 민주적 정부를 경험한 후 등장한 최초의 보수적 정부에서 민주주의의 가치나 원리와 상충하는 정책이 만들어지면서 보수 정부에 대한 항의나 비판이 이 집회가 일어난 하나의 배경이었다. 또 다른 하나의 배경은 노무현 정부가 속했던 정당이 선거에 패배하고 보수 정당이 집권했으니 노무현 정부를 지지했던 사람들의 반격이 촛불 시위로 나타난 것이다. 그래서 2008년 촛불 시위는 시민참여, 시민정치, 시민이 중심이 되는 운동의 측면이 강했다.

 

그런데 2016년 박근혜 탄핵을 둘러싼 촛불 시위는 성격이 그것과 다르다. 민주주의 규범과 정면으로 상충하는 면을 보인 현 정부에 대한 부정으로 나타난 촛불 시위는 상당히 근본적인 문제를 건드릴 수밖에 없다. 이번 탄핵은 단지 하나의 정책에 관련된 것이 아니다. 연이은 보수 정부에게서 나타나는 통치 방식과 정책 내용이 과거 유신 때 경험한 권위주의가 복원되는 걸 느끼게 했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는 이 촛불 시위를 통해 과연 민주주의의 가치가 무엇인지 근본적인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Q 민주주의가 궁극적으로 단 한 번에 이뤄지는 게 아닌 하나씩 학습해 가는 것이란 걸 경험적으로 알게 된 것 같다.

 

민주주의에서 ‘주의’는 자유주의, 민족주의, 사회주의에서처럼 이념이나 이데올로기를 표현하는 언어다. 민주주의도 이념의 형태로 이해하기 쉽다. 원래 서양에서 기원전 500년대에 나타났던 민주주의와 서양에서 현대까지 쭉 발전한 민주주의는 이념이라기보다는 하나의 통치형태, 정치체계였다. 그 원리는 아주 간단하지만, 이것이 현실의 정치로 나타날 땐 굉장히 복잡한 요소를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민주주의만 되면 갑자기 억압되었던 인권이 실현되고, 좋은 사회가 이뤄질 것이라고 이해를 해왔다. 그러니까 상당히 낭만주의적이고 이상주의적인 면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지난 30년간 실행된 실제 민주주의는 상당히 형식적이었다. 선거에서 1인 1표를 갖고 다수결 원리로 선거를 통해 통치자를 선출하고 정부를 구성하는 것은 굉장히 단순한 민주주의의 원리다. 하지만 민주주의 자체가 좋은 결과까지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국민들은 80년대 민주화 운동 이후 2016년 촛불 시위에 이르기까지 30년간 경험하면서 정부를 잘 만들고 잘 운영하는 게 중요하단 걸 이해하게 되지 않았을까. 나는 이것을 <양손잡이 민주주의>에서 ‘정부의 모멘트’란 말로 표현했다. 이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의 중요한 변화라고 본다.

 

 

“체제만 민주주의…내용적으론 박정희 패러다임 지속해 왔다”

 

Q <양손잡이 민주주의>에서 “박근혜-최순실 사태가 민주화 이후에도 이어진 ‘박정희 패러다임’의 효능이 다한 결과”라며 “정치적 기반과 사회 운영논리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됐다”고 평가했다.

 

우선 박정희 패러다임이 무엇인지를 간단히 언급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해방 후 분단되고 전쟁을 치르며 굉장히 큰 격변을 거쳤다. 60~70년대 한국사회가 근대화하기 위해 산업화는 상당히 필요한 변화였다. 그럴 때 박정희 군부세력이 등장해서 정부를 세우고 산업화를 주도했다. 그러다 보니 국가로 모든 권력과 사회적 자원이 집중되었다. 정치적으로는 권위주의와 결부된 체제였다. 그래서 관치경제로부터 나타난 정경유착이나 비리, 부정이 많았다.

 

박정희 패러다임은 경제발전을 모든 사회적 가치나 목표에 최우선 순위로 두고 작동했기 때문에 국가와 재벌 동맹이 필요했고, 이것과 짝을 이루어 노동의 배제가 발생했다. 1960~1970년대 권위주의적 산업화는 국가 재벌 동맹을 한 축으로 하고 노동을 배제하는 것을 다른 축으로 해서 두 요소가 결합한 것이 박정희 패러다임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민주화를 통해 박정희 패러다임의 권위주의가 부정당하면서 민주정부를 만들게 되었지만, 민주정부를 한다고 해서 박정희 패러다임이 폐기된 것은 아니었다. 민주화가 되면서 정당정치가 본격적으로 시작하는데 정당들이 진보/보수를 구분해 경쟁하지만, 내용적으로는 박정희 패러다임이 만들어 놓은 틀 위에서 정치체제만 민주주의가 되었지 내용은 지금까지 지속되어 왔다. 지금 이 시점에서 되돌아보면 박근혜 정부는 이 패러다임을 다시 재현해왔다고 본다. 탄핵에 이르는 박근혜 정부의 실정에 대해 박정희 패러다임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해석을 하게 한다.

 

이번 촛불 시위를 계기로 박정희 패러다임이 큰 타격을 입은 것은 사실이나 완전히 해체되고 소멸하였다고 말할 순 없다. 박근혜 정부가 탄핵된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차기 대통령 선거 이후에 나타날 체제에서 정당과 정치인들이 어떤 국가 운영의 방향과 비전과 정책을 만들어 가는지에 달렸다. 우리는 이미 박정희 패러다임에 익숙해져 왔고, 모든 사회 시스템이 이것의 결과물이기 때문에 다시 그대로 복원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촛불 시위 결과로 새누리당이 분당하지 않았나. 하지만 다시 이번 대선에서 제대로 된 대안을 만들어 내고, 새로운 국가 운영 방향에 따라 정부를 운영하지 못하면 다시 원위치로 돌아가게 된다. 친박계나 극보수주의의 자유한국당 같은 정당이 기존 박정희 패러다임에서 약간 변형된 형태로 국가를 운영하게 될 수도 있다.

 

Q 박정희 패러다임을 대체하는 대안을 만들기 위해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나?

 

앞서 말했듯 60~70년대 박정희의 권위주의가 산업화를 만들고 경제발전을 이뤄냈지만 현재에는 완전히 시대착오적이고 변하지 않으면 더는 사회가 움직이고 발전할 수 없는 한계에 도달했다. 따라서 여기에 반대되는 원리가 필요하다. 한국사회에서 그동안은 국가의 권력이 너무 강력했고, 그것을 행사하는 영역(scoop) 또한 너무 넓었다.

 

이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도 드러났듯이 국가는 무소불위로 경제는 물론이고 체육, 대학 교육, 문화 모든 영역에 관여했다. 마치 모든 걸 제어하는 전체주의 사회와 비슷한 모습이다. 일단은 국가의 권력이 분산되는 것이 우선 과제다. 분산은 즉 다원화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사실 한국사회는 모든 분야에서 많은 발전을 이뤘고, 이대로 내버려 두면 상당히 역동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 국가가 끊임없이 개입하고 왜곡해서 결국엔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Q 촛불 집회의 반대편엔 태극기 집회도 있었다. 책에서도 “박 대통령의 개인적 위기가 그의 지지 기반인 사회 세력으로까지 확장될 때, 새로운 갈등과 대립이 동원될 것”이라고 염려를 표하기도 했다.

 

탄핵 반대를 위한 보수 세력의 동원이나 결집이 굉장히 강하다는 걸 볼 수 있다. 현직 대통령을 헌법재판소를 통해 탄핵하는 문제는 두 차원에서 볼 필요가 있다. 하나는 이성적 차원이다. 촛불집회 전반기까지만 해도 민주주의의 기본적 가치와 규범을 인정한다면 탄핵이 되어야 하지 않느냐는 의견이 압도적 다수였다. 여론 조사 결과를 봐도 80%에 가까운 시민들이 탄핵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성적 차원에서는 이렇지만, 또 다른 차원이 있다. 정치는 이성의 영역만이 아닌 비이성 또는 반이성도 포괄하는 굉장히 큰 영역이다. 여긴 열정 분노 같은 감정을 비롯해 온갖 것들이 다 들어와 있다. 우리가 정치에서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할 요소는 아이덴티티(identity, 정체성) 표현의 영역이기도 하다. 아이덴티티는 이성적이지 않은 감성적이고 문화적인 영역이다. 어떻게 보면 보수에 가까운 정조다. 인간은 이성만으로 살 수 없는 존재이며 양면을 모두 갖고 있다. 18세기 영국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이성은 감정의 노예”라는 말을 했다. 감정이 발동할 때 이성이 그걸 합리화하는 하나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그래서 정치가 복잡하고 힘든 것이다.

 

또한 보수파들은 수는 적지만 강도(intensity)가 굉장히 높다. 이런 상황에서 헌재가 제삼자적 입장에서 냉철하게 법의 내용을 따른 판결을 통해 해결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감정과 감정이 충돌하고 아이덴티티를 중심으로 대결하기 시작하면 해결이 되지 않는다. 이게 심각해지면 큰 문제가 될 수도 있다.

 

 

“개헌은 시기상조…사회 분열 봉합과 박정희 패러다임 대체가 우선”

 

Q 당장 대선과 개헌을 동시에 치르는 것은 불가하다는 입장을 책에서 확인했다. 정치권에서 개헌이 다분히 정략적 이슈로만 활용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여기에 대한 의견은 어떤가?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헌법을 고치는 문제는 신중해야 하고, 지혜로워야 하고, 심도 있고 광범위한 토론의 과정을 거쳐 의견합치(consensus)를 통해야 한다. 특정 시점에서의 정치적인 필요나 그 당시의 대안적 제도라고 할 수 있는 걸 주장하고 그 방향으로 개헌하는 건 굉장히 위험한 일이다. 더군다나 이번 대선은 특별한 대선이다. 이번 대선은 시민이 동원된 촛불 시위라는 사건이 있었고, 현직 대통령이 탄핵되는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큰 사건 이후에 치르게 된다.

 

한편으론 여기서 나타난 정치적 사회적 분열을 치유해야 하고 다른 한 편으론 박정희 패러다임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걸 만들어야 한다. 시기도 앞당겨졌다. 이와 같이 여러 차원에서의 문제들이 중첩된 와중에 치러지는 대선이기 때문에 앞에 있었던 대선과는 성격이 다르다.(3월 6일 인터뷰 당시 최 교수는 탄핵 인용을 예상했다-기자 주) 이 대선을 치르면서 개헌까지 한다는 건 합리적으로 수용하기 어렵다.

 

Q 헌재에서 대통령 탄핵이 인용되면 본격적으로 차기 대선에 돌입하게 된다. 정치권을 향한 제언이 있나?

 

우리나라의 대통령 선거는 캠프 중심이다. (선거철) 정당은 대통령 캠프를 서포트만 한다. 주객이 전도된 셈이다. 후보 중심으로 돌아간다. 그렇게 구성된 정부와 대통령은 패당적이 될 수밖에 없다. 사적 관계망을 통해서 정치가 조직되고 이 사람들에게 모든 공직을 줘야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포섭적이지 않고 배제적 구조를 가질 수밖에 없다. 사회적 기반이 약해지게 된다. 인사문제도 진보면 진보, 보수면 보수라는 범정당 차원에서 좋은 인재들을 임명해 봉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엄청난 규모와 복잡한 사안을 다루고 수많은 공적 기구들을 통솔해서 사회전체를 이끌어야 하는데 대통령과 가까운 협소한 소집단에 의해서 이뤄지는 국가통치는 성공적일 수 없다. 이 구조를 혁파해야 한다.

 

Q 올해는 6월 민주항쟁 30주년이 되는 해다. 지난 30년간 대한민국 민주주의에 성적을 매긴다면 어떤 점수를 주고 싶나?

 

우리나라는 민주주의가 실현되기 어려운 조건들이 있었다. 분단되어 있고, 전쟁도 경험했고, 서구의 자유주의 이념이나 민주주의 가치를 충분히 습득할만한 역사적 경험을 갖지도 못했다. 이런 조건에서 민주주의를 했다는 것은 굉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독재로 산업화를 했지만 어쨌든 경제발전을 이뤄낸 것은 사실이다. 경제발전이 토대가 되지 않은 민주화는 쉽지 않다. 이런 조건을 거치면서 이것이 민주주의를 제약하는 힘이 될 수 있었음에도 민주화 운동도 했다. 후발 민주주의 국가이기에 정당 정치의 경험도 갖지 못했고 사회적 기반도 없는 상태에서 (정당 정치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세계의 수준에서 평가한다면 한국의 민주주의를 거의 우등생에 가깝다고 평가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열등생이나 낙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진 : 남경호(스튜디오 2M)

원문보기 : http://news.bookdb.co.kr/bdb/Interview.do?_method=InterviewDetail&sc.mreviewTp=1207&sc.mreviewNo=76722&Nnews#

목, 2017/03/09-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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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제작소 콘텐츠기획팀의 방연주, 안영삼 연구원이 미디어오늘이 주최한 에 다녀왔습니다. 이 콘퍼런스는 ‘저널리즘의 미래’라는 주제로 3년째 매해 열리고 있는데요. 정통 저널리즘부터 뉴미디어, 디지털스토리텔링, 브랜드저널리즘, 마케팅 콘텐츠까지 다양한 영역의 주제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8월 30일~31일 이틀간 총 32개 특강과 세 차례 라운드 테이블이 진행됐습니다. 자칫 비영리섹터와 저널리즘은 동떨어져 보일 수 있지만, 콘텐츠 생태계의 흐름과 맥락을 둘러볼 기회가 되었기에 유용한 발언과 사례를 전합니다.

손석희 JTBC 사장, “새로운 스토리텔링이 필요하다”

콘퍼런스 첫 연사로 나선 손석희 사장은 디지털과 혁신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콘텐츠 플랫폼 환경이 급변하면서 새로운 스토리텔링과 관계 비즈니스의 중요성을 체감했다는데요. 핵심은 시류에 따르기보다 다양한 채널 이용자들을 솔직하게 만나고 소통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일례로 JTBC의 “방송과 소셜을 하나로 묶는 방식”을 소개했는데요. JTBC는 메인뉴스 <뉴스룸>이 끝나면 페이스북과 유튜브 채널에서 기자들이 <소셜 라이브>를 통해 못다 한 뉴스를 전합니다. ‘동시시청족’, ‘뉴스세컨룸’, ‘환승한다’는 표현이 만들어질 정도로 화면 밖이 궁금한 콘텐츠 이용자들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기자와 디지털이 한 몸이 된다는 건, 다매체·다채널이라는 분산된 미디어 환경에서 공정한 정체성을 표출하는 방식이 될 뿐 아니라 콘텐츠 이용자에게 이슈에 관한 문제의식을 확산시키면서 공동체의 상식과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 자료 ▶ 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386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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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혁신의 최전선에 서 있는 사람들의 한 마디

강정수 메디아티 대표는 “콘텐츠 이용자의 습관과 시장구조 자체가 변하고 있다”고 일갈합니다. 전통 매체가 콘텐츠를 제작해 유통하면 이용자가 이를 수동적으로 소비하던 이전과 달리, 이용자의 행위와 습관을 반영한 콘텐츠를 제작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용자의 만족을 좌우하는 초크 포인트(Choke-point) 점검은 물론 누구를 만족시킬지, 무엇으로 만족시킬지 등 타깃 이용자를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고 합니다. 페이스북 167만 명의 팔로워 수를 보유한 배윤식 MCN 셰어하우스 대표는 “기업의 이야기를 꾸준히 발굴하며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콘텐츠를 생산해야 한다”고 강조했고, 김혁 SBS 미디어비즈니스센터 센터장은 “타깃도 타깃이지만, 맥락에 따른 콘텐츠를 시의성 있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거대 방송사라고 해서 어려움이 없는 게 아닙니다. 김 센터장은 “선택과 집중이 어렵기 때문에 모든 걸 조금씩 실행하며 가능성을 테스트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 자료 ▶ 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38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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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영리단체, 디지털 전략을 세워야 한다면

콘퍼런스에서 소개된 키워드를 비영리섹터 활동으로 해석하면 후원회원이 누구인지, 후원회원이 관심 있는 이슈가 무엇인지를 살펴보면서 맥락이 담긴 콘텐츠를 플랫폼 형태에 맞게끔 재가공해 전달하는 게 중요해 보입니다. 그러나 막상 양질의 콘텐츠가 있더라도 ‘디지털 혁신’이라는 옷에 걸맞은 방법을 찾기란 쉽지 않은데요. 아름다운재단이 ‘International Fundraising Congress-ASIA’를 참관한 뒤 소개한 내용은 비영리단체가 콘텐츠를 제작할 때 어떤 항목을 고려해야 할지 시사점을 던져줍니다. 일례로 비영리조직의 SWOT 분석을 거친 뒤 ‘측정 가능한 목표설정’, ‘목표 청중 구체적 기술’, ‘콘텐츠 기획’, ‘채널 기획’, ‘실행계획’으로 나눠 그에 맞는 콘텐츠를 기획해 배포하는 방식을 소개합니다.
* 자료 ▶ https://goo.gl/q22fZE
* IFC Asia 웹사이트 ▶ http://www.resource-alliance.org/asia

미디어오늘 저널리즘 콘퍼런스에서 나온 사례들은 인력과 예산의 규모 면에서 확연히 차이 나기 때문에 비영리단체가 바로 적용하는 데는 한계가 따를 것입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겪는 어려움은 비슷해 보입니다. 제아무리 덩치가 큰 언론사나 기업이라고 해도 디지털 혁신을 체화하기 위한 어려움은 크기만 다를 뿐 희망제작소를 비롯한 비영리섹터 내 단체들이 겪고 있는 시행착오 과정과 유사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시민 한 명 한 명의 힘에 기댄 희망제작소는, 일상의 접점에 있는 크고 작은 이슈(콘텐츠)를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시민에게 전할 수 있을지 계속 고민하고 있습니다.

– 자료 및 정리 : 방연주 | 커뮤니케이션센터 선임연구원 · [email protected]

월, 2017/09/25-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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