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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교체와 시대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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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교체와 시대교체

익명 (미확인) | 수, 2016/03/23- 08:00

안녕하세요.
이원재입니다.

요즘 이런 질문을 종종 듣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세대갈등이 심해지고 있는데, 왜 더 부추기려고 하시나요?”
“나이가 중요한 게 아니고 생각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닌가요?”
‘시대가 바뀌었으니 리더십이 젊은 층으로 옮겨가야 한다’는 내용의 책을 쓰고 나서
받게 된 질문입니다. 그때마다 저는 “‘세대가 아니라 시대가 교체되고, 패러다임이 변해야
한다’는 취지를 설명한 것입니다”라고 대답합니다.

20년 전인 1990년대 중반을 떠올려 봅니다.
당시 한국은 ‘열심히 일하고 꾸준히 노력하면 잘 살 수 있다’는 생각이 상식으로 통하던 나라였습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성공적으로 이뤘다는 자부심이 넘쳤습니다.
그리고 문제 해결의 패러다임은 이렇게 정리되었습니다.
국가가 잘 살면 기업도 잘 살게 되고, 기업이 잘 살면 직원들도 잘 살게 되고,
직원들이 잘 살면 동네 가게들과 시장 상인들도 잘 살게 되고,
이렇게 되면 결국 모두가 잘 살게 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학생 때 열심히 공부하고 좋은 직장에 입사해 평생 노력하며 살면,
내 집 마련도 하고 따뜻한 가족을 꾸려 잘 살 수 있다는 약속이기도 했습니다.

20년 뒤인 지금, 약속은 그리 잘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대기업들은 더 커지고 강해진 것 같은데, 경제는 저성장 기조로 접어들었다고 합니다.
경쟁은 더 치열해진 것 같은데, 사회는 점점 경직되어 갑니다.
청년실업률은 사상 최고치이고, 노인자살률 또한 OECD에서 가장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동력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과거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룬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때와는 전혀 다른 사회가 되었으니까요.
다른 생각,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가야 합니다.
시대가 바뀌었으니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해야지요.

패러다임을 바꾸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새로운 시대를 몸으로 익힌 젊은 세대가 사회 의사결정을 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하지만 한국사회의 리더십은 계속 고령화되고 있습니다.
정치에서도, 경제에서도, 시민사회에서도 청년층이 리더가 되는 시간은 과거보다 오히려 더 늦춰지고 있습니다.
젊은 세대의 리더십 경험이 메말라가고 있습니다.
이런 추세라면, 앞으로 우리는 새로 훈련된 리더가 고갈되는 사태를 맞이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앞서 제게 질문을 던지신 분들의 이야기도 맞습니다.
다만 세대공감을 위해서도, 시니어 세대의 지혜를 더 잘 활용하기 위해서도,
젊은 사람들에게 경험의 기회를 주고 리더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필요하다는 게 제 생각이었습니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성공한 벤처기업인으로 꼽히는 이들은 30대 초중반에 리더 역할을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민주적으로 선출했던 대통령들도 20대나 30대에 리더 역할을 시작했다는 점을 떠올려 봅니다.

늘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희망제작소 소장
이원재 드림

우리 사회의 희망을 찾는 길을 고민하며 쓴 ‘이원재의 희망편지’는 2주에 한 번씩 수요일에 발송됩니다. 이메일로 받아보고 싶으신 분은 희망제작소 홈페이지 메인에 있는 ‘희망제작소 뉴스레터/이원재의 희망편지’에 이메일 주소를 입력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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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출근길, 자하문터널을 지나 신영동 쪽으로 향하는 길에 있는 ‘소림사’(진짜 절 이름이다) 앞 만개한 벚나무가 시야에 환하게 들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별 기미가 없었는데 어느새 저렇게 활짝 피었다. ‘어? 저 벚꽃!’하는 순간 작년이 떠올랐다. 처음 출근하던 날, 공연히 몇 정거장 먼저 내렸다. 그리고 이 벚나무를 찍어 SNS에 올렸다. 벌써 1년이 지났다. 당시 그 사진에 누군가 ‘여기가 어디야? 서울이야?’라고 물었던가.
‘희망다반사’는 희망제작소 연구원이 전하는 에세이입니다. 한 사회를 살아가는 시민의 시선이 담긴 글을 나누고, 일상에서 우리 시대 희망을 찾아봅니다. 뉴스레터와 번갈아 격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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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출근길, 자하문터널을 지나 신영동 쪽으로 향하는 길에 있는 ‘소림사’(진짜 절 이름이다) 앞 만개한 벚나무가 시야에 환하게 들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별 기미가 없었는데 어느새 저렇게 활짝 피었다. ‘어? 저 벚꽃!’하는 순간 작년이 떠올랐다. 처음 출근하던 날, 공연히 몇 정거장 먼저 내렸다. 그리고 이 벚나무를 찍어 SNS에 올렸다. 벌써 1년이 지났다. 당시 그 사진에 누군가 ‘여기가 어디야? 서울이야?’라고 물었던가.

관계는 사람을 흔들어?

평생 살아온 도시의 낯선 동네로 출근한 지난 1년은 자신을 곱씹느라 하루하루가 10대처럼 길게 느껴졌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은 과장 같은데, 자리를 통해 얻는 관계는 분명 사람을 흔드는 것 같다. 첫 출근 후 몇 달 동안은 매일 낯선 상황 위에서 흔들리다 보니 나의 흔들리지 않는 부분이 명확히 보였다. 뜻밖에 신념이나 태도 같은 것보다 느낌이었다. 한창 업무 메일을 쓰다 말고 어깻죽지로 떨어지는 햇볕이 간절해질 때, 출장 가는 기차 안에서 독서에 깊이 몰입할 때, 이전에는 대수롭지 않던 ‘좋음’에 관한 느낌이 돌연 위안이 되었다. 생활의 변화 속에서도 좋은 건 그대로 좋다는 것이 또 좋았다.

그래서 한동안은 이 느낌을 만든 기존 관계와 과거 경험을 곱씹으며, 그 안에서 자신을 일터와 분리해 지키려 했다. 원치 않는 모습으로 흔들릴 때 나 자신에게 기댈 수 있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내가 한 고생을 동료에게 시시콜콜 말하고 싶다든가, 누군가의 칭찬과 격려에 지나치게 위안 받아 그것에 의존하는 사람이 되어버리면 어쩌나 싶어 불안감이 밀려왔다. 위로의 자급자족 시스템을 완성해서 계속 혼자 좋을 줄 알아야겠다고, 모처럼 예전에 듣던 노래를 들으며 생각했다.

아니, 관계는 나를 밝힌다

그로부터 또 몇 달이 지나 변함없이 근사한 벚나무 너머로 출근해서 보니, 어느새 나는 밥 먹으며 업무량에 대해 투덜거리거나, “오늘 옷 괜찮은데?”라는 말에 “원래 괜찮은 편인데” 같은 뻔뻔한 대답을 웃음 섞어 주고받는 사람이 되어있다. 얼마 전에는 내가 어색하게 느꼈던 격려의 말을 자연스레 건네 놓고 속으로 당황하기도 했다. 혹시 나는 자신을 지키지 못한 걸까? 아니면 성장하고 변화한 걸까? 둘 다 아닌 것 같다. 다만 이 자리에서 이렇게 만난 사람들이 아니었다면 영원히 볼 일 없었을 나의 어떤 측면을 알게 된 것 같다.

그러니까, 관계는 나를 밝힌다. 새로운 내가 잘 보이지 않을 때는 흔들리는 것처럼 멀미가 나고 친숙해지는 데 시간이 걸리지만, 그 시간은 축적된 의미로 이렇게 돌아온다. 그렇게 무언가 이해하게 되면, 나는 아주 약간 새로워질 수 있다. 벚나무처럼 또 변함없는 것은 내가 맡은 사업인데, 올해는 카피를 새롭게 써 봤다. ‘우리 안에서 나를 재발견하는 세대공감프로젝트’라는 문장을 적어놓고 좀 더 고민하다가 ‘우리를 재발견하는’으로 시작하기로 했다.

– 글 : 백희원 | 시민사업팀 연구원 · [email protected]

목, 2017/04/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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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희망제작소는 마음에 ‘희망’을 품고 걸어왔습니다. 우리 곁 시민을 만났습니다. 시민과 함께 아파트 경비원을 찾아 상생 방안을 찾고, 도심의 아파트를 찾아 지역 공동체의 활성화를 독려했습니다. 우리 곁 일상을 들여다봤습니다. 한창 일하면서 가정을 꾸린 30~40대의 안녕을 묻고, 우리의 일이 과연 좋은 일, 공정한 노동인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고령화 사회 속 세대 간 공감을 위한 ‘세대 통합’이 무엇인지 고민했습니다.

목, 2016/12/29-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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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겨울, 유학을 위한 재정 마련을 위해 나는 부모님을 열심히 설득하고 있었다. MBA를 다녀왔을 때 얻을 많은 기회와 보상에 대해 강조하며(예컨대 MBA 후 받을 수 있는 연봉), 부모님께 용돈도 많이 드릴 수 있다는 약간의 사기성(?) 발언을 가미해 딸에게 투자해달라 말씀드렸다. 그리고 1년 후, 나는 부모님의 투자금(?)과 그간 모아둔 자산을 탈탈 털어 유학길에 올랐다. 어렵게 온 만큼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열심히 경험하고 배우자는 생각이었다. 후회 없이 3년의 유학 생활을 보내고 작년 여름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희망제작소 연구원이 되었다.

투자금 상환 실패로, 엄마는 나에게 ‘사기꾼’이라는 타이틀을 붙여주셨다. 나는 5년 전과 비슷한 수법으로 엄마에게 말했다. 희망제작소는 돈 이상의 사회적 가치를 만드는 곳이고 나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곳이기에 동반 성장할 수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입사 초기였기에 확신은 없었다. 확신을 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1년 동안 나는 엄마를, 아니 나 자신을 설득할 수 있는 희망제작소의 특별한 무언가를 찾고자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하기를 반복했다.

나는 왜 희망제작소에서 일하는가?

한 사람의 연구원으로, 시민으로, 후원회원으로 나는 희망제작소가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곳인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희망제작소의 캐치프레이즈인 ‘시민과 함께 사회혁신을 실천하는 민간 독립 싱크앤두탱크(Think&Do Tank)’. 이 말을 일곱 가지로 쪼개서 생각해보기로 했다. 희망제작소가 함께 하고자 하는 ‘시민’은 누구이며, 희망제작소가 시민과 어떤 방식으로 ‘함께’ 사회혁신을 실천한다는 것인지, 희망제작소가 말하는 ‘사회혁신’의 상은 무엇인지, ‘실천’ ‘민간’ ‘독립’ 그리고 ‘싱크앤두탱크’가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지 하나씩 떼어놓고 바라봤다.

우선 10년 동안 발간된 활동보고서와 홈페이지의 글, 관련 기사를 살폈다. 그리고 희망제작소와 인연이 스친 사람이라면 누구든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연구원들과 이사회뿐만 아니라 후원회원인 사람, 과거 후원회원이었던 사람, 희망제작소에서 일했던 사람, 프로그램에 참가했던 사람까지…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그들의 입을 통해 희망제작소가 어떤 곳인지 느꼈다. 지나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 그 ‘확신’은 절실했다. ‘희망제작소를 후원해주세요’라는 말 뒤에 한 치의 부끄러움과 불안이 없어야 했기에. 저 말에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 나는 온 힘을 다해 희망제작소의 가치에 대해 고민했다.

경계에 서 있다는 것, 불확실성과 모호함은 옵션

하나의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넘어가기 위해 꼭 지나야 하는 것, 바로 경계(Frontier)다. 경계에 서 있을 때 우리는 이도 저도 아닌 불확실함과 모호함에 힘들어한다. 이쪽을 바라보면 이게 옳은 것 같고, 저쪽을 바라보면 저게 옳은 것 같다. 인도해주는 사람도, 이정표도 없기에 감당해야 할 불확실성은 더욱 커진다. 새로운 대안을 찾아야 하는 희망제작소의 미션 상, 희망제작소 연구원들은 항상 사회의 경계에 서서 한 영역과 다른 영역을 연결해야 한다. 이런 특성 때문에 연구원들은 항상 불확실성 속에서 자신을 믿고 방향을 잡아야 한다. 그래서 확신이 중요하다. 완벽할 수는 없지만 자기 생각과 경험에 기초하여 방향을 잡고 뚜벅뚜벅 걸어나가야 한다.

희망제작소 연구원들은 자신의 연구와 사업에 관한 확신을 위해 작게 자신의 생각을 실험하고 시민을 만나 피드백을 구한다. 그렇게 자신이 만드는 희망에 관한 확신을 쌓아간다. 지난 1년간 후원사업팀의 연구원인 나는 이 사람들에 대한 확신을 쌓아왔고 그것이 충분하다고 느끼고 있다. 마음속 가득한 뜨거운 확신을 고이고이 포장해 시민에게 전달하면 된다.

희망제작소 3층 주방에는 ‘희망제작소스러움’이라는 게시판이 마련돼 있다. 연구원들은 각자 생각하거나 원하는 희망제작소에 대해 자유롭게 적을 수 있다. 몇 개의 문구를 뽑아봤다.

– 경계 없이 무엇이든 연결하고 연대하는 희망제작소
– 불확실성도 수용하는 희망제작소
– 우리 사회의 침묵을 깨는 희망제작소
– 가슴 설레는 재미가 있는 희망제작소
– 나를 믿고 너를 믿고 우리를 믿는 희망제작소
– 다양한 기회를 만드는 것에 두려움이 없는 희망제작소.
– 치고 나가는 희망제작소
– 오지라퍼 집합소, 희망제작소

내가 이런 곳에 다니고 있다니! 가슴이 설렌다. 후원회원과 연구원의 경계에 서서 두 영역을 이어야 하는, 그리고 이어줄 수 있는 후원사업팀의 일원으로 하고 싶은 일이 참 많다. 후원회원을 비롯한 시민의 피드백이 우리의 연구로 흘러들어 가고, 이 연구에 시민의 관심이 커져 삶에 적용되고, 더 나은 연구를 위한 자원이 우리 주변으로 모이고, 그 자원을 가지고 우리는 더 많은 대안을 제시하고… 희망제작소의 에너지가 우리 사회에 넓게 확산하는 선순환 구조! 이것이 후원사업팀 연구원인 나의 꿈이고 희망이다.

글 : 박다겸 | 후원사업팀 연구원 · [email protected]

화, 2016/12/20-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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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땅, 쿠바. 깊은 밤 첫발을 디딘 그곳은 더운 공기로 가득했다. 공항은 작고 어두침침했지만, 걱정과 달리 입국 심사를 받고 짐을 찾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뜨거운 공기를 맡으며 버스에 올라 호텔로 가는 길, 가로등 하나 없는 깊은 어둠을 지나는 그 순간에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익숙하다 못해 삶이 되어버린 ‘문명’과의 단절을 말이다.
‘희망다반사’는 희망제작소 연구원이 전하는 에세이입니다. 한 사회를 살아가는 시민의 시선이 담긴 글을 나누고, 일상에서 우리 시대 희망을 찾아봅니다. 뉴스레터와 번갈아 격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dabansa_170629

혁명의 땅, 쿠바. 깊은 밤 첫발을 디딘 그곳은 더운 공기로 가득했다. 공항은 작고 어두침침했지만, 걱정과 달리 입국 심사를 받고 짐을 찾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뜨거운 공기를 맡으며 버스에 올라 호텔로 가는 길, 가로등 하나 없는 깊은 어둠을 지나는 그 순간에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익숙하다 못해 삶이 되어버린 ‘문명’과의 단절을 말이다.

세상 어디에서도 길을 잃지 않고 어떤 정보도 놓쳐서는 안 될 것 같은 한국의 인터넷 환경에 익숙했던 나. 그런 나에게 쿠바라는 곳은 절대적인 문명과의 차단과도 같았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불안하게 만들던 스마트폰은 카메라와 시계 기능을 제외하고는 무용지물이 됐고, 인터넷을 사용하려면 국영 통신사에서 전용 카드를 구매해야 했다. (그마저도 계속 연결이 끊겨 시도하고 또 시도해야 했다) 지루한 순간의 반복은 그곳의 여유를 맛보기도 전에 불편함과 답답함을 머릿속에 박아버렸다.

나는 왜 불편했던 걸까?

10여 년 전 쿠바를 꿈꿨던 적이 있다.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지, 어떤 세상을 만들고 싶은지를 도서관에 박혀 이 책 저 책 읽으며 고민하던 시기에 만났던 한 자전거 여행기 덕분이었다. 그땐 무엇을 봐도 가슴이 뜨거웠고, 나도 어서 빨리 세상을 탐험하고 바꾸는 사람이 되길 바랐다.

그러나 여전히 텍스트에선 감동하고, 몸은 움직이지 않고, 순간순간의 열정은 모래알처럼 빠져나간다. 상상만 해도 즐거운 것들이 조금씩 사라졌다. 중독처럼 SNS를 찾고 웹서핑을 그리워하며, 호기심과 열망으로 새로운 세상을 바라보기보다 파편적인 장면을 자랑하기 바쁘다. 그곳에서 내가 왜 불편했는지에 관한 고민 없이, 그 불편함마저 액세서리처럼 이용하는 ‘관종’(관심에 목매는 사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빠른 것, 새로운 것, 편리한 것에 대한 집착

그래서 아직 쿠바에서의 시간을 떠올리는 게 말끔하지 않다. 내 머릿속에 박힌 불편함은 혁명, 사회주의, 경제봉쇄, 이중화폐 등의 배경과 이슈에 갇혀 대화 한마디 나눠보지 않은 쿠바인의 삶을 재단했다. 재미없는 삶, 의욕 없는 삶, 벗어나고 싶은 삶. 피상적 느낌과 섣부른 판단, 나의 기준과 세상에 맞춰 그들을 바라봤다. 내 손에 들린 카메라를 보며 자신을 찍어달라던 쿠바의 청년에게 난 어떤 눈빛을 하고 있었을까?

여행이 좋은 건, 낯선 공간에서 그동안 알지 못했던 나를 만나고 만나지 못했을 너를 만나며 비우고 또 채울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툰 색안경은 비움을 훼방 놓고, 마음속에 엉뚱한 것들을 채워 버린다. 내게 남은 쿠바의 잔상이 그렇다. 빠른 것, 새로운 것, 편리한 것에 대한 선호와 집착이, 있는 그대로의 속도와 자연, 그리고 그 안의 삶에 무뎌지게 만들었다. 이건 일종의 반성문이다. 언제든 내가 다시 쓰게 될지 모를 색안경을 좀 더 빨리 자각하기 위한.

– 글 : 조현진 | 목민관클럽팀 연구원 · [email protected]

목, 2017/06/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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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싱크탱크 희망제작소는 후원회원님의 후원금으로 우리 사회의 대안을 만드는 다양한 활동과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어떤 분들이 후원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시죠? 인포그래픽으로 소개
목, 2015/07/0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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