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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학습동향리포트 ‘와’] 청소년에게 “옆을 볼 수 있는 자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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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학습동향리포트 ‘와’] 청소년에게 “옆을 볼 수 있는 자유”를!

익명 (미확인) | 수, 2016/03/23- 17:00

[기획] 청소년에게 “옆을 볼 수 있는 자유”를!

[인터뷰]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꿈틀리 인생학교”

홀로 잘 사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스스로 익히게 한다는 꿈틀리 인생학교. 정승관 교장선생님을 만나 꿈틀리 인생학교의 고민과 지향을 들어보았습니다. 온전히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 그 힘으로 더불어 사는 삶을 꾸려나갈 수 있는 아이들을 생각합니다.

[소개] 한국형 에프터스콜레는 어떻게 운영되고 있을까?

덴마크 에프터스콜레에서 영감을 얻어 시도교육청, 시민단체, 언론사 등 관과 민에서 한국형 에프터스콜레에 대한 실험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지향은 비슷하지만 주체별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운영되고 있는 다섯 곳을 살펴봅니다.  

[유시주의 시민으로 살아가기] 우리가 공유하는 연약함에 대하여

인구의 70%가 아파트를 비롯한 공동주택에 사는 ‘아파트 공화국’ 대한민국. 주민을 대표하는 입주자대표회의는 각종 비리와 진흙탕 싸움으로 종종 뉴스에 오르내리는 데 어째 그 모습이 낯설지 않다. 데칼코마니 같은 국회와 입주자대표회의의 자기유사성은 한국사회를 대변하고 있다.

[혁신·교육思考] 선데이 어셈블리

사회적으로 고립된 도시민들이 종교의 공동체 기능과 방식을 활용해 새로운 협력적 공동체를 만들어 가고 있다. 사회와 인생을 풍요롭게 하기 위한 이들의 노력을 살펴보자. 

[분투의 기록_마지] 우리의 관계 맺기

우리는 마을과 어떤 방법으로 관계 맺기를 해야 하는 걸까. 어느 방향으로 가야하는 걸까. 아니,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새로운 질문들이 떠오른다. 기분 좋은 변화를 기대한다.

평생학습동향_수원

평생학습동향_국내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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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학습 매체에 대한 몇 가지 궁금증

【기획】평생학습 매체에 대한 몇 가지 궁금증

[NILE], [다들], [와], [평생학습타임즈]. 들어보신 적 있나요? 애독자이신가요, 아님 스팸함이나 휴지통으로 직행하는 그저그런 메일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언젠가부터 평생학습계에 웹을 기반으로 한 매체들이 하나둘 생겨났습니다. 누군가 읽어주길 고대하며 만드는 이들은 왜, 무엇을, 어떻게 발신하고 있을까요? 4개 매체를 살펴봤습니다. 마음가는 매체가 있으신가요? 그렇다면 ‘구독’을 눌러주세요.
[혁신·교육思考] 난민들의 삶을 다독이다

전쟁과 죽음의 공포로부터 탈출하려는 난민들의 삶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럽고 불안하다. 이들에게 제때, 적절하게 주어지는 문화예술교육은 어두운 상처를 스스로 성찰하고 치유하여 다시 살아가는 힘을 줄 수도 있다. 지리적, 심리적으로 난민에 대해 이해하고 공감하기 어려운가. 주변을 둘러보자. 일자리를 찾아 이주해오는 생계형 난민들이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분투의 기록_시흥청년아티스트] 잘하고 있는지 자꾸 의문이 든다. 회의감이 들고 한계가 올 때, 활동의 의미를 다시 깨닫기 위해 처음부터 질문하고 답을 찾아간다. 난 지금 수많은 질문을 던지면서 활동과 내 삶을 지켜나가고 있다.
평생학습동향_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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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16/09/21-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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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이 만드는 혁신적 사회 변화, 우리는 그것을 '사회 혁신(social innovation)'이라
월, 2018/09/17-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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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2018년 여름 우리는 혹독한 더위를 장기간 경험하면서 이대로는 인류사회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더구나 최근 북미를 덮친 허리케인과 필리핀 및 남중국 지역을 강타한 어마어마한 태풍의 영향을 통하여 기후변화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다시 절감하게 되었다. 전문가 그룹에서는 조만간 인류역사에 없었던 강력한 6등급의 허리케인(나무껍질을 벗기는 정도의 위력을 지닌)이 미국을 강타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기도 하였다. 문제는 눈앞에 닥친 기후변화와 환경보존의 문제를 해당 국가 또는 지역연합 단위의 정책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Friends of the Earth International 의장으로 있는 Ms. Karin Nansen은 전지구적으로 횡행하고 있는 탐욕적인 자본주의를 근본적으로 전환하여 인간과 사회와 자연보호를 우선하는 새로운 시스템으로 바꾸어내지 못하면 인류에게 미래가 없다고 단언한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늦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오늘 이 땅에 사과나무를 심는다는 심정으로 그녀의 주장에 귀를 기울어야 한다.

 


우리는 뿌리 깊은 기후, 사회, 환경의 위기를 마주하고 있으며, 현재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경제 시스템으로는 이를 해결할 수 없다. 이제 시스템을 바꿔야 할 때다. 세계 최대 민간환경단체 중 하나인 지구의 벗(Friends of the Earth International)의 관점에서 시스템을 바꾼다는 시민의 주권과 환경 및 사회, 경제적 그리고 성(性)적 정의를 바탕으로 한 사회를 구축하는 것이다. 우리는 반드시 자본주의적 축적의 논리에 이의를 제기하고 해체해보아야 한다. 기후재앙은 억압, 기업권력, 기아, 물부족, 생물다양성의 손실 및 산림파괴 등 많은 사회적, 환경적 위기와 뒤섞여 있다.

칼럼_181002
2009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UN 기후변화정상회의에 운집한 시위자들

평등과 상호주의

이러한 위기의 핵심은 오로지 끝없는 성장과 이익만을 추구하는 지속 불가능한 경제 시스템에 있으며, 이 시스템은 인구의 극소수에 부와 권력, 터무니없는 특권을 집중시킨다. 기업과 국가의 엘리트들은 바로 이 시스템을 통해 보통 사람들의 삶을 거리낌없이 착취할 힘을 얻게 된다. 우리는 자연과 사회의 민영화, 금융화, 상품화 그리고 지속 불가능한 생산 및 소비 시스템 등 근본원인을 해결하기 위한 신속하고 과감한 조치를 취함으로써 기후 변화와 그에 연결된 사회적, 환경적 위기에 대응해야 한다. 우리 앞에 놓인 이 엄청난 규모의 위기에는 시스템의 변화가 필요하다. 시스템의 변화는 지속 가능한 사회의 구성은 물론 평등과 상호주의를 바탕으로 한 사람들 사이의 관계 변화, 사람과 자연의 관계 변화로 이어질 것이다.

 

자본의 확대

그러나 시민들의 힘을 강화하지 않고는 이러한 사회를 구성할 수도, 시민의 권리를 주장할 수도 없다. 우리는 정치를 재건해야 한다. 정치를 재건한다는 것은 국민의 주권과 참여를 중심으로 한 진정하고, 근본적이며 정당한 민주주의를 창출하는 것을 의미한다. 국제법은 반드시 기업의 이익보다 사람을 존중함으로써 기업이 따라야 할 규칙과 다국적 기업의 희생자를 위한 사법접근권을 보장하는 메커니즘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시스템의 변화를 위해서는 가부장제, 인종주의, 식민주의, 그리고 계급과 자본주의적 착취와 같은 억압에 대항하는 투쟁이 표현되어야 한다. 여성의 신체 및 노동 착취에 맞서기 위한 의지 또한 필요하다. 우리는 어떻게 자본의 영역 확대가 여성의 권리 침해와 함께 여성에 대한 폭력 증가로 이어지는지 목도하고 있다.

 

경제적 정의

성적 정의는 우리가 여성을 정치적 대상으로 인식하고, 여성에 대한 폭력을 중단하고, 여성의 자주성을 강화하고, 여성주의경제의 원칙을 발전시키고, 성별에 따른 분업을 해체하고, 보살핌 노동을 재편할 때에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시스템의 변화를 위해서는 현재의 에너지 시스템을 바꾸는 것이 필수이다. 이는 근본적인 질문, 즉 누구와 무엇을 위해 에너지를 생산하는가에 대한 민주적인 답안을 내포하며, 화석연료 의존과 기업의 지배로부터의 완전한 탈피를 함의하고 있다. 이는 노동자와 공동체의 권리에 기반한 변화의 과정이어야 한다. 이러한 변화는 기술의 진화와 재생가능 에너지, 나아가 대중과 공동체의 주인의식과 통제에 의한 것으로, 에너지를 상품화하여 에너지에 대한 모두의 권리를 부정하는 시스템의 근본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러한 변화에는 평등과 정의가 필요하다. 이미 기후변화의 타격을 입은 제3세계 시민들에게는 특히 그러하다.  

진정한 시스템의 변화는 기존의 식량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꿔 식량주권과 생태농업을 향해 나아가게 할 것이며, 전세계에 식량을 공급하고 파괴적인 농업산업에 대항하고자 현지의 지식을 존중하고, 사회경제적 정의와 주민들의 영토 통제권을 강화하고, 토지와 물, 종자에 대한 권리를 보장하고, 정의와 연대를 근간으로 한 사회적 관계를 발전시키고, 식량 생산에서 여성이 수행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인정하도록 할 것이다.  생물다양성과 산림은 그 공동체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가장 잘 보호할 수 있다. 산림을 보호하면 천연의 탄소 저장소를 얻게 되고, 벌목으로 인한 탄소 배출을 줄여 기후변화를 해결하는 동시에 공동체에는 식량과 섬유, 쉼터, 약, 물을 공급할 수 있다. 그런데 전세계 숲의 8%만이 공동체에 의해 관리되고 있다. 숲과 그에 관련된 생계에 대한 공동체의 권리를 확보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이다.

 

국민적 행동

시스템의 변화로 시민들의 개인적 및 공통적 필요를 충족하면서 상호주의와 재분배, 공유를 증진할 수 있어야 한다. 그 해법 중 하나는 공공서비스로 조세정의와 사회적 소유권, 협력주의, 지역시장 및 공정 무역, 공동체의 산림관리, 시민과 지구의 행복을 위한 노력 등을 통해 성취 가능하다. 이미 전세계 시민들은 정의를 구현하고 자본주의 논리에 반론을 제기하는 수천개의 이니셔티브를 정착시켰거나 실행 중에 있다. 이제 우리는 이들을 확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국제적, 국가적 정책을 통해 자신의 권리 확보와 환경과 사회에 적합한 공공서비스와 시민의 참여가  가능한 민주적 상태, 물, 토지, 영토, 식량, 보건, 교육, 양질의 일자리에 대한 시민의 권리를 보장하는 상태를 위하여 투쟁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모두는 각 지역 및 국제적 저항운동을 지지하고, 국민적 행동에 참여하고, 정책 변화를 위해 분투하면서 시민들을 위한 진정한 솔루션의 가치를 수호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시스템의 변화이다.

 

 

카린 난센 (Karin Nansen)

카린 난센은 세계최대 풀뿌리 환경연합인 지구의 벗 의장이자 REDES와 지구의 벗 우루과이의 창립회원이다.

화, 2018/10/02-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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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성 충돌 2시간 전, 당신은 누구를 살릴 것인가?

사회혁신? 문제는 불평등이다

 

이승원 경희대학교 전환과 사회혁신 연구센터장

 

 

혜성이 다가오고, 탈출할 우주선이 있긴 하다.

 

지금부터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미래. 모든 수단을 동원했지만 막을 수 없는 거대한 혜성이 지구를 향해서 돌진한다. 남은 시간은 오직 두 시간. 두 시간 후 혜성과 지구가 충돌한 직후 지구의 모든 존재는 물론 지구 자체도 남지 않게 된다. 지금 인지 가능한 범위 내에 살아있는 사람은 열 명이다. ① 31살의 산모이자 수학교사, ② 40세의 베테랑 군인 남자, ③ 14살의 흑인 무슬림 중학생 남자, ④ 3살 여자 아이, ⑤ 56세의 가톨릭 신부 남자, ⑥ 22세의 인기 아이돌 스타 남자, ⑦ 51세의 경험 많은 농부 여자, ⑧ 44세의 지리학을 연구한 여자, ⑨ 37세의 만능 수리공 남자, ⑩ 29세의 의사 여자. 

 

다행일까? 그들이 모여있는 곳엔 최첨단 무한동력 자율주행 우주선이 이륙할 준비를 하고 있다. 탑승 직후 탑승자는 동면상태에 취하게 되고, 얼마나 시간이 흐를지 모르지만, 우주 어딘가에서 인간이 생존하기에 적합한 행성을 찾게 되면 우주선은 자동 착륙하고 탑승자들은 동면에서 깨어나 새로운 삶을 개척해 나갈 수 있다. 이제 이 우주선에 타기만 하면 지구 폭발에 대한 두려움은 쉽게 사라질 수 있다. 그런데 불행일까? 이 우주선에 탑승 가능한 인원수는 단 다섯 명뿐이다. 여러분이라면 열 명 중 어느 다섯을 선택할 것인가? 그리고 그 선택의 기준은 무엇인가? 

 

지난 십여 년 수많은 사람들과 토론해보니 몇 가지 경향이 보인다. 하나는 대부분 선택의 기준이 새로운 인류의 번식과 생존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결국 일부일처 이성애 사회의 윤리는 그리 중요하지 않게 된다. 측은지심이 앞서는 3세 여아도 생존력 앞에선 선택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산모인 수학교사는 의견이 크게 나뉜다. 한 생명이 추가로 보존될 수 있기에 (혹은 가임이 확실히 증명되었기에) 우선 선택되기도 하지만, 산모도 3세 아이처럼 생존력이 약하기에 탈락하기도 한다. 가장 많이 선호되는 인물은 남자 군인이다. 생식력과 생존력을 모두 갖추었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막강한 지도력으로 새로운 인류를 지키리라는 것이다. 대부분 이 경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전지적 작가 시점

 

토론이 여기에서 끝나면 큰 의미가 없다. 토론이 마무리될 즈음 추가 질문을 던지게 된다. 열 명을 선택한 자는 누구인가? 토론자 대부분의 선택 방식과 관점은 '전지적 작가 시점'이다. 자신을 3세 여아나 힘센 군인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이타적인 가톨릭 신부는 말할 것도 없다. 방 안 장난감, 혹은 중국집 메뉴판 요리 목록에서 몇 가지 선택하듯 그리 큰 갈등이 없다. 만일 자신이 저 남아있는 열 명 중 하나라면, 그리고 우주선에 타지 못해 혜성과의 충돌 속에서 처참한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면, 과연 선택된 다섯 명의 명단에 쉽게 합의할 수 있을까? 그리고 선택된 자들은 남은 자들과 쉽게 이별을 고하고 유유히 우주선에 탑승할 수 있을까?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벗어나 일인칭 시점으로 바뀌는 순간 현실은 잔인해진다. 선택된 자와 선택되지 못한 자들 사이에 아름다운 합의는 없다. 미래를 위한 어떤 원칙도 죽음을 목전에 둔 자들의 희생을 강요할 순 없다. 오히려 생식과 생존의 원칙은 남은 자들에게 열등감을 주는 모욕일 수 있다. 

 

두 가지 다른 이야기

 

아주 예외적인 두 개의 결론이 있었다. 두 결론은 전혀 다른 이야기이지만 둘 다 열 명 모두 지구 폭발과 함께 죽음을 맞이한다. 하나는 아비규환의 끝이다. 군인이 무력을 사용해서 자신을 포함해 다섯 명을 선발해 우주선에 탑승하려 하지만, 남은 다섯이 남아서 죽기보다 싸우는 것이 살 확률이 높다는 판단 아래 군인 세력에게 반기를 든다. 결국, 혈투 끝에 남은 자들이 우주선에 타지만, 배제된 누군가 설치한 시한폭탄이 우주선의 이륙과 함께 폭발한다. 동시에 지구가 혜성과 충돌하면서 모두가 죽음에 이른다. 흥미로운 것은 이와 전혀 다른 또 다른 열 명 모두의 죽음이다. 이야기는 이렇다. 열 명 모두 처음 얼마 동안은 다섯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논쟁과 몸싸움을 벌인다. 그러다 갑자기 어느 한 명이 우주선의 엔진을 부숴버린다. 잠시 다른 아홉은 허탈감과 함께 분노를 폭발한다. 그 한 명이 말한다. 어차피 저 우주선을 타면 행복할 것이라는 기대감은 판타지에 불과하다고. 그리고 우주선은 우리에게 희망의 자원이 아니라, 갈등과 번뇌의 원인이라고. 그래서 죽음을 두려하고 우리 남은 삶을 탐욕에 빠뜨리기보다, 우리가 살아온 날을 감사하고 남은 시간 서로를 위한 축복 속에서 보내면서 기쁘게 최후를 맞이하자고.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많은 이들이 사회혁신을 말한다. 기업혁신, 과학혁신, 정부혁신, 시장혁신 등 혁신 앞에 붙은 다른 수식어와 달리 사회혁신은 우리가 마주친 공존의 문제, 사회적 가치의 위기를 사회적 관계의 변화를 통해 해결하려는 시도를 의미한다. 사회는 임의적 복합체다. 습관, 상식, 윤리, 문화가 어우러져 관계와 경계를 형성하고, 그 속에서 개인의 정체성이 규정되기도 하고, 그 정체성이 흔들리기도 한다. 사회에 대한 어떤 정의든 중요한 것은 '사회'는 그 사회에 속한 존재들을 '보호'할 때 유지할 의미가 있다. 사회가 구성원들을 보호하지 못할 때, 사람들은 도시 난민이 된다. 대한민국에서 사회적 삶을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는 그래서 이 복합체로서의 사회를 담고 있는 그릇이자 둥지인 국가와 시장에게 그 보호의 역할을 위임했을지 모른다. 단지 육체적 생존을 넘어 그 생존에 의미를 부여하는 존엄성의 보호라는 위대한 역할 말이다. 그렇다면 지금 많은 이들이 사회혁신의 열정을 드러내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속한 사회, 그리고 국가와 시장이 우리를 보호하기보다 우리를 불안하고 하게 만들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은 아닐까? 

 

사회혁신의 일반적 정의 자체가 이를 나타낸다. 사회혁신은 국가와 시장이라는 가장 강력한 사회의 합리적 두 주체가 해결하지 못하는, 혹은 사각지대에 놓인 사회적 난제들을 시민이 주도해서 새로운 방식으로 해결해 가는 것이라고. 무거운 책임이 따르는 정의다. 그런 난제를 새로운 방식으로 수많은 시민들이 함께 풀어가는 것은 사회의 보호를 위해 국가와 시장이 설정한 전통적 경계를 넘어설 때 가능하기 때문이다. 경계를 넘어선다는 것은 국가-시장-시민 사이 근대적 위임관계를 넘어서는 것일지 모른다. 그렇지 않으면 여전히 난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저 합리적 두 주체의 어깨 위에 앉아서 거인의 걸음에 방향을 맡겨야 하기 때문이다. 거인의 어깨에서 내려오는 것 자체가 우리 시민들이 풀어야 할 또 다른 난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회혁신은 그 엄청난 난제에 직면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용어이자 실천이면서도, 너무 쉽게 남용돼서도 안 되는 단어이다. 

 

그런데 사회혁신을 위해 관료제와 행정 절차라는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다. 국가와 시장이 '근대'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 전유해온 자원, 제도, 통제, 절차에 대한 모든 권력을 시민역량(capabilities) 강화와 권한 부여(empowerment)라는 명목으로 시민들에게 나눠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쩌면 사회혁신은 정부와 기업에게는 열지 말았어야 할 판도라 상자일지 모른다. '생식력과 생존력'처럼 GDP 중심 양적 성장과 취업률이라는 성과지표보다 다른 가치를 내세우기도 어렵고 복잡하다. 그뿐 아니다. 정부나 기업이 공모, 위탁, 지원 등올 제공하는 한정된 자원을 우주선의 다섯 석처럼 절대적인 자원으로 생각하는 판타지를 포기하기에도 걱정과 두려움이 앞서는 것이 사실이다. '거버넌스', '협치', '공론장'이라는 표현이 시민들 사이 복잡하게 얽힌 수많은 이해관계와 갈등을 잠시 덮을 수는 있을지 몰라도 해결할 수는 없다. 사회혁신이 민주주의와 사회운동을 대체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불평등을 난제의 전면에 내세워야 한다

 

그렇다면, 거대한 합리적 두 주체가 해결하지 못한, 그래서 우리가 보호받지 못하는 위기의 사회를 만든 그 난제는 무엇일까? 문제는 '불평등'이다. 지역과 지역 사이 불평등은 물론 우리가 사는 지역 내에서도, '당신과 나' 사이에도 불평등의 간격은 과학기술과 생산력의 발전을 비웃듯 계속 늘어나고 있다. 지금까지의 경제발전이 특정한 민주적 제도의 필요조건인지는 몰라도, 불평등은 경제발전이 지닌 동전의 양면처럼 되어버렸다. 불평등은 빈곤은 물론, 차별과 혐오로 이어지고 결국 육체적 생명이 무의미해지는 존재의 존엄성을 무너뜨린다. 불평등은 그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을 타율적이고 무기력하고, 그래서 모멸감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에너지, 의료, 교육, 주거, 이동권, 정체성, 문화, 노동과 쉼, 젠트리피케이션, 문화적 다양성 속의 불평등은 물론, 대의제 정치와 스마트 시티가 누구를 어디까지 포용하고, 권한을 부여할 것인가에도 불평등의 문제는 도사리고 있다. 

 

불평등이라는 공멸의 혜성이 우리에게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사회혁신을 앞세우는 '시민들'은 수많은 정치·경제·사회적 불평등의 현실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얼마 전 발표된 대통령의 '혁신적 포용국가의 비전과 전략', 행정안전부 사회혁신추진단과 서울시 혁신기획관실을 비롯하여 들불처럼 퍼지는 지방자치단체와 정부 부처의 혁신정책과 실험들의 진짜 관심과 목표는 무엇일까? 필요한 것은 속도와 규모가 아니라 불평등의 원인, 현실, 구조 그리고 넘어서야 할 방향을 위한 깊은 성찰이 아닐까? 사회혁신은 이 불평등으로부터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이승원 센터장은 서울대 아시아도시센터 선임연구원을 겸임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목록 바로가기(클릭)
 
* 본 내용은 참여연대나 참여사회연구소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

 

 

시민정치시평은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 기획·연재합니다. 

 

월, 2018/10/01-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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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께 희망제작소는 어떤 곳인가요? 시민단체? 연구소? 한마디로 정의 내리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곳에서 일하는 저와 제 동료들에게도 희망제작소는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운 곳인데요. 하지만 우리 모두 동의하고 믿고 있는 명제가 있습니다. ‘희망제작소의 주인은 시민’이라는 점입니다.

평창동 희망제작소 건물에 들어오면, 2층으로 오르는 계단에서 365명 시민의 얼굴을 만날 수 있습니다. 희망제작소가 창립한 해인 2006년 서울역에서 만난 시민의 모습을 촬영한 것인데요. ‘우리 사회의 희망은 시민’이라는 희망제작소의 최우선 가치를 보여드리기 위해, 건물 벽을 시민의 얼굴로 빼곡히 채워둔 것이지요. 12년이 지나 사진의 색이 바래고 희미해졌지만, 그 의미는 여전히 선명하게 빛나고 있습니다.

2018년 봄, 희망제작소는 12년 만에 보금자리를 마련합니다. 그 이름은 ‘희망모울’인데요. ‘시민의 초상’ 캠페인은, 희망모울에 다시 한번 시민의 얼굴을 기록하여 그 가치를 되새기려는 프로젝트입니다.

‘시민의 초상’ 홍보 포스터에 담긴 사진을 보셨나요? 공룡 인형을 들고 있는 어린아이, 화려한 무늬가 있는 옷을 입은 할머니, 쑥스러운 듯 미소 짓는 아버지, 12살 된 강아지까지… 다양한 세대와 성별의 시민을 있는 그대로, 또 멋지게 담고자 큰 노력을 쏟았습니다. 이번 캠페인에 참여를 원하시는 분들은 주저하지 마시고 신청해주세요. 여러분의 모습을 사진에 정성스레 담아드릴게요. (‘시민의 초상’ 캠페인 신청하기)

이번 캠페인은 ‘바라봄 사진관’과 함께 합니다. 바라봄 사진관은 장애인과 그 가족이 마음 편히 사진을 찍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탄생한 장애인 전용 사진관인데요. 나종민 대표님은 희망제작소의 ‘행복설계아카데미’ 수료생이기도 합니다. 바라봄 사진관의 작가 선생님들은 촬영에 참여하는 분들이 최대한 편한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시종일관 배려를 잊지 않으셨는데요. 열두 살 노견 준이가 높은 곳을 무서워하자 바닥에 어떤 망설임 없이 바닥에 납작 엎드리셨고, 세 살 아가 선우를 위해서는 손뼉을 치며 노래를 불러주셨습니다. 사진 촬영이 어색한 어르신을 위해 자연스러운 표정을 유도하며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시기도 했습니다. 덕분에 각각의 특성이 잘 담긴 사진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 앞모습을 찍고 난 후, 여기에 맞추어 뒷모습을 촬영했어요.

▲ 앞모습을 찍고 난 후, 여기에 맞추어 뒷모습을 촬영했어요.

▲ 여러 컷을 찍은 후 최종 컷을 선정합니다.

▲ 여러 컷을 찍은 후 최종 컷을 선정합니다.

▲ 공룡 장난감과 상어가족 동요로 신이 난 선우의 B컷

▲ 공룡 장난감과 상어가족 동요로 신이 난 선우의 B컷

▲ "여기보자! 여기!" 간식으로 사진을 완성할 수 있었던 열두 살 준이의 촬영

▲ “여기보자! 여기!” 간식으로 사진을 완성할 수 있었던 열두 살 준이의 촬영

희망제작소는 ‘시민의 초상’ 캠페인으로 ‘우리는 모두 다르지만 한 사회를 함께 살아가는 시민’이라는 의미를 상기시키려 합니다. 우리는 시민이기 때문에 연대하며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노력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희망제작소는 새 보금자리 희망모울에서 시민과 함께 우리 사회의 문제를 탐구하고 대안을 만들려 합니다. 지속적인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 글 : 유다인 | 이음센터 연구원 · [email protected]
– 사진 : 바라봄사진관

수, 2018/04/11-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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