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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생각] 수치의 '막후정치', 버마 앞날이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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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생각] 수치의 '막후정치', 버마 앞날이 불안하다

익명 (미확인) | 수, 2016/03/23- 23:09

* 한국은 아시아에 속합니다. 따라서 한국의 이슈는 곧 아시아의 이슈이고 아시아의 이슈는 곧 한국의 이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에게 아시아는 아직도 멀게 느껴집니다. 매년 수많은 한국 사람들이 아시아를 여행하지만 아시아의 정치·경제·문화적 상황에 대한 이해는 아직도 낯설기만 합니다.
 
아시아를 적극적으로 알고 재인식하는 과정은 우리들의 사고방식의 전환을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또한 아시아를 넘어서 국제 사회에서 아시아에 속한 한 국가로서 한국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나가야 합니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 기반을 두고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는 2007년부터 <프레시안>과 함께 '아시아 생각'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필자들이 아시아 국가들의 정치, 문화, 경제, 사회뿐만 아니라, 국제 사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인권, 민주주의, 개발과 관련된 대안적 시각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2016 아시아생각] ① '쯔위 사건', 돈벌이에만 혈안인 K-팝에 '경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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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의 '막후 정치', 버마 앞날이 불안하다

[아시아 생각] 54년 만에 출범하는 문민 정부

장준영 한국외국어대학교 연구교수

    


지난 3월 15일, 버마(미얀마) 의회는 민간 대통령을 선출했다. 영연방(Commonwealth)에 가입하지 않고 독자적 온건 사회주의를 표방하며 출범한 민간 정권이 1962년 쿠데타로 인해 군정 치하가 된 지 꼬박 54년 만의 일이었다. 비민주적 헌법의 존치, 군부의 보장된 이익, 국민의 의지가 반영되지 않는 간접 선거는 대통령의 정통성을 완전히 보장할 수 없다. 이로 인해 국민의 신망을 받는 아웅산 수치(Aung San Suu Kyi)가 대통령이 되지 못한 결과는 두말할 나위 없고, 대통령 당선인인 틴쩌(U Htin Kyaw)를 아는 국민은 거의 없다. 

 

더군다나 명색이 한 국가의 지도자임에도 불구하고 아웅산 수치의 대리인이 되어야 한다는 현실과 여전히 군부가 정부를 적극적으로 견제하거나 때로는 국정 운영의 동반자가 될 것이라는 해괴망측한 구도는 반세기 만에 민주주의를 회복한 이 나라의 미래를 암울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작년(2015년) 총선에서 버마 국민들이 보여주었던 것처럼 새로운 시대를 향한 열망의 불씨가 꺼지지 않았다면, 지난 20년간 이 나라를 기웃거리던 나와 같은 관찰자의 눈에도 몇 줄기 희망의 가능성은 보인다. 

 

▲ 버마의 새 대통령 선출 후에도 실질적인 최고 지도자로 알려진 아웅산 수치. ⓒAP=연합뉴스 
 

 

막후 정치→군정→공개적 막후 정치가 정치 발전? 

 

곧 출범할 문민 정부의 가장 큰 고민은 국정 수행 능력이고, 이는 여당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의 내부 사정과 직결된다. 1989년 창당한 NLD는 1990년 총선 이후 주축 인사들이 투옥 또는 망명하여 사실상 기능이 마비되었고, 당내 한 축을 담당하던 퇴역 군인들의 고령화로 인해 당내 공백이 불가피했다. 만약 아웅산 수치가 아웅산 장군의 혈육이 아니거나 국제적인 지지를 얻지 못했다면, 그녀도 감옥에서 정치적 생애를 마감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가택 연금 당한 상태였지만 아웅산 수치는 NLD와 국민이 기댈 수 있는 단 하나의 희망이었다. 

 

그러나 현실 정치는 목숨만 연명하던 NLD에게 녹록치 않은 대상이다. 작년 총선에서 보았듯이 NLD가 승리한 배경은 NLD의 정치력이 아니라 군부 통치에 대한 국민적 반감과 아웅산 수치에 대한 기대감이었다. NLD는 국민을 위한 현실적 공약 하나도 내세울 수 없을 만큼 허약한 정당 그 자체였다. 2012년까지 당론으로 채택된 서방의 경제 제재 존치는 아웅산 수치의 언급 한 번으로 뒤집히기도 했고, NLD 소속 출마자는 정치 신인이 다수를 이루었다. 정강은 미사여구와 정치적 수사로 뒤덮인 창당 당시 짧은 문구로 여전히 생명력을 유지한다. 

 

아웅산 수치를 중심으로 해서 여전히 많은 논의가 진행되고 있겠으나 아직 문민 정부의 국정 운영 방향은 발표되지 않았다. 올 초 아웅 산 수 치는 국민 화해와 국민 통합을 국정 운영의 최대 과제로 발표했는데, NLD의 역량을 참고할 때 그 방식과 절차는 여전히 의문이며 궁극적으로 역대 모든 정부가 성공하지 못한 이 거대한 과업을 신생 문민 정부가 달성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여기서 군부는 그들이 정치권에 지속해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한다. 지금까지 총 세 차례에 걸친 군부의 정치 개입은 혼란한 사회 질서의 회복이 그 명분이었고, 특히 1988년 쿠데타 당시에는 그들의 역할을 첫 번째 정치 개입이었던 1958년으로 맞추었다. 즉 군부에 따르면 소수 종족의 분리주의로 인한 국론 분열을 봉합하기 위해 문민 정부의 요청을 수용했고, 그들이 집권한 18개월은 평화와 통합의 시기였다. 마찬가지로 군부는 정치적 '통치자'는 아니지만, 최소한 연방이 분열되지 않게 하는 국가의 '수호자'로서 국가 통합의 주역이 될 것이며, 이를 빌미로 정치 개입의 명분을 유지할 것이다. 동구 유럽과 아랍 세계의 전례는 군부를 위한 역사적 교훈이다. 

 

필자는 독립 이후 군부 통치로 얼룩진 버마 현대 정치의 특징을 인적 관계에 바탕을 둔 '막후 정치'로 정의한다. 견고한 위계질서와 상명하복의 지휘 체계를 갖춘 군 조직의 특성이 버마에서는 과두제의 전통과 결합함으로써 정치적 근대 제도는 필요에 따라 선택되거나 상황에 따라 곡해됐다. 모든 공직에서 사퇴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주요 현안에 대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권력자는 사망하고 나서야 비로소 그의 시대는 끝난다.

 

막후 정치를 부정하는 군부의 정치 관행과 달리 아웅산 수치는 한 단계 더 나아가 공개적 막후 정치를 선언했고, 그녀의 선택이 적절했다면 틴쩌 당선자는 그녀의 의중대로 움직이는 '꼭두각시'가 될 것이다. NLD 내 반발 기류는 전혀 목격되지 않고, 대리 통치인을 선출한 의회와 아웅산 수치에 대한 국민의 그 어떤 평가도 없다. 필자는 이런 현상이 매우 불만이다. 아웅산 수치를 염두에 둔 헌법 조항이 효력을 발생함으로써 군부는 등을 돌려 웃을 수 있겠지만, 비민주적 헌법을 만든 군부에 대한 비판과 함께 현대 정치 제도를 완전히 무시한 아웅산 수치의 선택도 상식을 벗어나기 때문이다.

 

아웅산 수치는 법치와 인권이 민주주의의 핵심이고, 버마에서는 민주주의를 달성하기 위해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고, 대신 버마의 민주주의는 자비(metta)가 추가되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또 그녀는 국민의 정치 참여를 독려하며 국민이 더 나은 미래를 개척하는데 조력자에 불과한 평범한 정치인으로 자신을 정의했다. 그런데 그녀는 잘못된 헌법을 고치기보다 버마 권위주의의 상징을 채용함으로써 막후 권력 체제를 통한 정치 의지를 실현하고자 한다. 만약 그녀가 막후에서라도 최고 지도자의 역할을 수행할 때 버마의 민주주의가 달성될 수 있다고 믿는다면, 이는 곧 민주주의로 위장한 변형된 권위주의를 위한 변명에 불과할 것이다. 

 

냉정하게 판단하면 버마의 민주주의는 국민의 투쟁으로 쟁취한 것이 아니라 헐거워진 군부 권위주의의 유산을 청산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부산물이다. 군부를 견제할 사회 세력이 없는 상황에서 통치자로서 해야 할 역할을 상실했지만, 군부는 여전히 국민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고, 문민 정부에는 부담스러운 존재가 될 것이다. 도입한 민주 제도는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멀리 있고, 민주주의를 시행하고 정착시킬 당사자들은 여전히 권위주의적 환경을 벗어나지 못했다.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권위주의적 통치 행태는 신생 민주주의 국가가 경험한 성장통으로 버마를 괴롭힐 것이다. 

 

이렇게 보면 버마의 정치 발전은 암울해 보일 수도 있지만, 정치적 과도기라는 사실을 고려할 때 부정적인 현실은 긍정적인 미래로 전환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궁극적으로 문민 정부는 이데올로기에 자신을 가두지 말고 철저하게 실용적인 정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역대 정부는 지도자가 구상한 이념을 실행하는 차원에서 현실보다 이상을 추구해 왔고, 그로 인해 세계사적 특수성은 확보했을지 몰라도 국가 발전에는 어떠한 도움도 되지 못했다. 

 

불교 사회주의 시기에도, 군부 권위주의 시기에도, 이제 시작될 문민 정부에도 변하지 않는 국민의 희망은 물질적 혜택과 복지이다. 정치권에서 군부의 배제, 민주적 헌법으로의 개헌도 당연한 과제이다. 그러나 국민이 아웅산 수치가 현재 문제점을 일시에 해결해 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하는 것처럼 문민 정부는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군부와 대립각을 세우기보다 사안에 따라 협력, 타협, 배제와 같은 탄력적인 태도를 보여야 할 것이다. 아웅산 수치는 기형적인 정치 구도에서 권력을 행사하는 일에 천착하기보다 여당의 당수로서 의회 내에서 더 민주적인 법안을 마련하고 시행하기를 기대한다. 1990년 총선에서 승리할 때처럼 NLD가 고자세를 유지한다면 국민의 지지를 얻기에는 힘들어 보인다. 군부에 실망한 국민은 NLD에게 희망의 기회를 준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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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아시아에 속합니다. 따라서 한국의 이슈는 곧 아시아의 이슈이고 아시아의 이슈는 곧 한국의 이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에게 아시아는 아직도 멀게 느껴집니다. 매년 수많은 한국 사람들이 아시아를 여행하지만 아시아의 정치·경제·문화적 상황에 대한 이해는 아직도 낯설기만 합니다. 

 

아시아를 적극적으로 알고 재인식하는 과정은 우리들의 사고방식의 전환을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또한 아시아를 넘어서 국제 사회에서 아시아에 속한 한 국가로서 한국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나가야 합니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 기반을 두고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는 2007년부터 <프레시안>과 함께 '아시아 생각'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필자들이 아시아 국가들의 정치, 문화, 경제, 사회뿐만 아니라, 국제 사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인권, 민주주의, 개발과 관련된 대안적 시각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쿠데타 후 4년간 총선 4번 연기한 나라, 태국

[아시아생각] 2014년 쿠데타 이후 '자유 없는 국가'로 전락

 

 

김홍구 부산외국어대학교 교수

 

태국은 2014년 5월 쿠데타 이후 아직도 군사통치 하에 놓여있으며, 2017년 만들어진 새 헌법은 군사통치를 제도화하고 있다. 군사통치의 장기화와 정치개입의 제도화, 정치적 반대세력에 대한 가혹한 탄압 등이 지속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싱크탱크인 프리덤하우스(Freedom House)는 연차 보고서에서 쿠데타 후 태국 상황을 "자유 없는 국가"로 평가하고 있다.

 

태국의 전반적인 프리덤 스코어는 100점 만점 중 31점이다. 특히 정치적 권리에 대한 점수가 낮았고, 새 헌법이 친군부적이며 정당정치를 약화시킨다고 평가하고 있다. 선출되지 않는 국가평화유지위원회와 국가입법회의의 정당성 부재를 지적하고 있으며, 민간통치 로드맵의 지연도 우려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정치활동의 금지, 언론탄압, 부정부패, 연고주의를 비판한다. 

현재 가장 중요한 정치적 쟁점이 되고 있는 것은 총선일정이다. 군정이 4년을 훌쩍 지나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총선시기에 대해서 설왕설래하고 있다. 쁘라윳 짠오차 (Prayut Chan-o-cha)총리는 2018년 11월에 총선을 실시할 것이라고 언급했지만 2018년 1월 국가입법회의가 하원의원 선거법의 시행일을 90일 연기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올해 내 총선 실시가 다시 불투명해지고 2019년 2월 개최설이 유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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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14년 쿠데타로 태국에 군부통치가 들어선 이후 프라윳 총리를 대표로 한 군부가 장기집권 기반을 다지기 위한 총선일정에 고심하고 있다.ⓒAP=연합

 

 

쿠데타 후 4년 넘도록 총선 일정 4차례 연기 

 

사실상 쿠데타 후 2015년 치르겠다고 약속한 총선은 공식적으로 4차례나 연기된 셈이다. 하지만 쁘라윳 총리는 얼마 전 또다시 내년 5월로 총선이 연기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국왕에게 제출한 상하원 선거법이 승인을 받고 발효되면 법적으로는 빠르면 내년 2월에 개최될 수 있지만 늦으면 5월까지도 늦추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근래 총선연기 가능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건이 한 가지 발생했다. 국왕의 대관식 개최소식이다. 쁘라윳 총리는 총선에 앞서서 대관식이 열릴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표명함으로써 대관식이 총선일정의 주요한 변수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이 같은 발언의 의미는 대관식이 열린 후에야 총선이 실시될 수 있다는 것이다. 푸미폰 국왕이 2016년 10월 13일 사망한 후 한 달 반이 지난해 12월 1일 와치라롱껀이 즉위했으나 그해 말로 예정된 대관식은 아직까지 치러지지 못하고 있다. 대관식의 개최시기는 아마도 새로운 왕권이 충분히 강화되었다고 생각되는 시점일 것이다. 총선을 연기시킬 수 있는 또 다른 의외의 변수는 푸미폰 전 국왕의 부인이며 현 국왕의 생모인 씨리낏왕비의 신변문제일 수 도 있다. 1932년생인 왕비는 2012년 후 심각한 뇌혈관 질환을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공식석상에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군부는 앞으로 총선에 쁘라윳 총리를 내세워 장기집권을 획책하려 한다. 비상사태가 발생하지 않는 한 현실적으로도 차기 총리 가능성이 가장 큰 인물은 쁘라윳 총리이다. 현재 그가 어떤 방법으로 총리가 될 것인가만 문제가 되고 있는 상황이다. 

새 총리가 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원외 총리가 되는 것이다. 500명의 하원에서 정당 추천 총리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못하면 상하 양원에서 원외인사를 총리로 선출할 수 있는 데 250명의 상원의원(군부임명)과 하원의원 125명 이상의 지지를 받아(상하 양원의 과반수인 375표) 총리에 당선될 수 있다. 둘째는 처음부터 특정 정당의 총리 후보가 돼 하원에서 다른 정당의 지지를 받아 총리가 되는 방법이 있다. 이 경우 총리 후보를 내는 정당은 최소한 25석의 하원 의석을 확보해야한다.  

총리 선출 방식만 남은 군부 장기집권 


총리선출과 관련된 현 추세는 군부가 초기에 선호했던 원외총리에서 정당추천총리로 기울어져 있다. 사실상 원외총리 임명은 심각한 정치적 후폭풍을 불러 올 우려가 있다. 1991년 찻차이 춘화완 문민정권에 대한 쿠데타가 발생하고 치러진 1992년 총선 후 쿠데타를 주도한 육군사령관 쑤찐다 크라쁘라윤이 원외 임명총리가 되자 이른바 5월 민주화운동이 발생하고 쑤찐다는 총리의 직에서 물러난 전례가 있다. 쁘라윳의 경우도 닮은꼴일 수밖에 없다. 
  
이런 우려로 쁘라윳은 원외총리보다는 정당추천 후보로 출마하기 위한 유리한 정치환경 조성에 적극 나서고 있다. 하지만 원외 총리 추대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버렸다고 볼 수 는 없다. 지난 몇 개월 동안 쁘라윳 총리와 측근들은 수차례 여러 정당과 파벌 지도자들의 포섭에 나섰다. 그들이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지역구에 대해 재정지원을 하고, 정부 요직에 임명해서 우호세력을 확대시키고 있다.  

군부는 직접 신당인 팔랑 쁘라차랏 당(People's State Power Party) 창당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신당은 이른바 쌈밋(Sam Mit, Three Friends)그룹을 통해서 타이락타이당(Thai Rak Thai Party)과 그 후신인 프어타이당 (Pheu Thai Party)의 거점인 동북부 지역의 국회의원과 탁씬을 지지하는 원외 외곽단체인 레드셔츠 반독재 민주주의 연합전선(UDD)회원을 빼내와 조직을 와해시키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쌈밋 그룹은 민주당 의원 빼돌리기에도 공을 들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그룹은 과거 탁씬이 이끌던 타이락타이당의 주요 인사였던 현 경제 부총리 쏨킷 짜뚜씨피탁), 전직 장관 쏨싹 텝쑤틴과 쑤리야 쯩룽르엉낏이 주요 인물이다. 이들은 탁씬 정부의 대표적인 브랜드인 탁시노믹스(Thaksinomics)의 주요한 입안자들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들 뒤에서 진짜 실세로 군림하고 있는 인물은 2014년 쿠데타를 주도한 군부의 맏형 격인 부총리 쁘라윗 웡쑤완(Prawit Wongsuwan)이다.  

뿐만 아니라 프어타이당과 함께 양대정당인 민주당을 견제하게 될 쑤텝 트억쑤반(Suthep Thaugsuban)이 지지하는 루엄팔랑쁘라차찻타이 당(Action Coalition for Thailand Party)도 창당되었다. 쑤텝은 민주당 정권에서 부총리를 지내기도 했으나 2013년 말 민주당에서 떨어져 나와 소위 민주개혁위원회(PDRC)를 만들어서 임명총리제를 주장하고 쿠데타를 지지한 극우세력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 당은 민주당의 아성인 남부지역에서 민주당세를 약화시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쑤텝은 남부지방에서 가장 큰 규모의 쑤랏타니 도에 지역구를 갖고 있는 정치인이다.  

군사정권은 총선 후 프어타이당을 배제한 다당제 연립정부 구성을 이상적인 정치구도로 생각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얼마 전 탁씬은 쌈밋그룹의 동북부 의원 빼돌리기에도 불구하고 총선에서 프어타이당이 220석 내지는 230석을 얻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탁씬 스스로 과반수에 못 미친다는 예상을 하고 있긴 하나 정치활동 규제가 해제되고 본격적인 총선국면으로 들어가면 상황은 바뀔 수도 있다. 2006년 쿠데타 후 치러진 두 차례 총선에서 탁씬 계열 정당은 모두 예상을 뛰어 넘는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프어타이당이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하고 제1당이 된 상태에서 연립정부를 구성할 가능성은 낮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현재는 군부 신당인 팔랑 쁘라차랏 당과 쁘라윳 지지를 선언한 다수 군소정당간의 연정 가능성이 좀 더 높아 보인다.  

프어타이당과 적대관계였던 민주당은 군사통치의 제도화(원외총리와 임명직 상원제도 등)에 반대하면서 점차 군정과 거리를 두고 있다. 민주당은 위에서 언급한 쑤텝의 루엄팔랑쁘라차찻타이 당의 도전을 받게 되었으며, 쌈밋 그룹의 의원 빼돌리기에도 시달리고 있다. 얼마전 민주당 사무총장은 프어타이당과의 연정도 배제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표명하기도 했다. 양당의 정치성향상 그 가능성이 높지는 않지만 여러 정치상황을 고려하면 관심을 가질만한 대목이다. 다른 한편으로 민주당이 군정과 거리를 두고 있다고는 하지만 탁씬을 축출한 2006년 쿠데타와 2014년 쿠데타를 지지한 전력으로 봐서 총선 후 실제로 군부세력이 연립정부 합류를 요청할 경우에 응할 가능성도 배제하지는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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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18/08/06-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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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아시아에 속합니다. 따라서 한국의 이슈는 곧 아시아의 이슈이고 아시아의 이슈는 곧 한국의 이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에게 아시아는 아직도 멀게 느껴집니다. 매년 수많은 한국 사람들이 아시아를 여행하지만 아시아의 정치·경제·문화적 상황에 대한 이해는 아직도 낯설기만 합니다.
 
아시아를 적극적으로 알고 재인식하는 과정은 우리들의 사고방식의 전환을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또한 아시아를 넘어서 국제 사회에서 아시아에 속한 한 국가로서 한국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나가야 합니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 기반을 두고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는 2007년부터 <프레시안>과 함께 '아시아 생각'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필자들이 아시아 국가들의 정치, 문화, 경제, 사회뿐만 아니라, 국제 사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인권, 민주주의, 개발과 관련된 대안적 시각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7년 전인 2011년 3월15일은 '아랍의 봄’ 을 맞아 시리아 주요 도시들에서 민주화 시위가 대규모로 벌어진 날이다. 시리아 전쟁은 21세기 최악의 인도적 재난으로 기록된다. 해마다 적게는 5만 명, 많게는 7만 명 이상의 사망자가 생겨난 것으로 추정된다.

 

시리아는 팔레스타인 난민을 웃도는 최대 난민 배출국가가 됐다. 국제연합(UN)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시리아의 참극을 끝장내지 못하고, 강대국들과 주변국들은 저마다의 이해관계를 저울질하는 동안 희생자는 더 늘어났다.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는 2회에 걸쳐 시리아 전쟁의 실상과 문제점을 다룬다. 편집자 주

 

UN조차 집계 포기한 21세기 참극 시리아 전쟁 7년 

시리아 전쟁 발발 7년 연속 기고 

김재명 국제분쟁전문기자 

 

▲ 전쟁으로 파괴된 시리아 중부 도시 홈스의 구시가지 ⓒ유네세프한국위원회

 

21세기 접어들어 생겨난 최악의 인도적 재난이라 일컬어지는 시리아 유혈충돌이 3월15일로 7년째 접어들었다. 2대에 걸친 독재체제, 즉 하페즈 알 아사드(1970~2000)→바샤르 알사드(2000~현재)에 걸쳐 45년 동안 시리아에서 철권을 휘둘러온 아사드 일족의 권력 의지는 완강하다. 반군은 여러 갈래로 나뉘어 통합적인 지도력이 없고 지친 상태이다. 전쟁 초기에 다마스쿠스로 진격해 들어갈 기세는 지금 찾아보기 어렵다. 이즈음의 흐름을 보면, 자칫 시리아 독재정권의 군사적 승리로 전쟁이 끝날 판이다.  

 

돌이켜 보면, 역사의 격랑은 처음엔 아주 작은 것에서 비롯된다는 말은 시리아에서도 맞아떨어진다. 튀니지에서 동쪽으로 이웃 리비아, 이집트를 거쳐 시리아로 '아랍의 봄' 바람이 다가올 무렵인 2011년 2월16일, 시리아 남부에 위치한 고대도시 다라에서 14살 소년들이 학교 담벼락에다 "의사 선생님, 이번에는 당신 차례야"라고 적었다. 여기서 '의사 선생님'은 영국에서 안과 의사 교육을 받은 뒤 2000년 아버지 독재자 하페즈 알 아사드의 뒤를 이어 집권한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을 가리킨다.  

 

문제는 시리아 비밀경찰 조직인 무카바라트 요원들이 그곳 소년들을 잡아가 배후를 밝힌다면 고문으로 가혹행위를 했다는 점이다. 그런 사실이 알려지자 가뜩이나 아랍의 봄바람에 술렁대던 민심이 요동쳤다. 급기야 3월15일 수도 다마스쿠스를 비롯한 주요 도시에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고, 아사드 정권의 강경 대응과 그에 맞선 무장저항은 오늘까지 7년째 유혈 분쟁으로 이어졌다.  

 

제1차 세계대전 때 강제징집 당한 젊은이들은 4년 동안 이어진 전쟁에서 젊음을 송두리째 잃었다. 그들은 스스로 '잃어버린 세대'라고 일컬었다. 지난 7년 동안 시리아 사람들은 젊은 세대뿐 아니라 모든 세대에 걸쳐 삶을 망쳤다. 전쟁이 터지기 전에는 비록 민주적인 정치체제를 누리진 못했지만 최소한의 평화로운 삶을 누렸다. 지금 시리아 사람들에게 평화로운 일상이란 아득한 옛날 얘기처럼 기억조차 흐려진 모습이다.  

 

사망자 50만명? UN조차 집계 포기 

 

지난 7년 동안 시리아에선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집과 재산을 잃었다. 한 마디로 '21세기 초 지구촌이 맞닥뜨린 최대의 재앙'이라 할 만큼 많은 사람이 피와 눈물을 흘렸다. 시리아 현주소가 얼마나 혼란스러운 상황인지는 통계 분야를 보면 금세 드러난다. 해마다 적게는 5만 명, 많게는 7만 명 이상의 사망자를 낳아온 것으로 추정될 뿐 전쟁 희생자의 정확한 통계조차 잡기가 어렵다. 국제사회의 중심인 국제연합(UN)조차도 2015년부터는 시리아 전쟁 희생자 집계를 포기한 상태이다. 

 

UN은 전쟁 3년째인 2014년 봄 전쟁 희생자 규모를 25만 명으로 잡았었다. 하지만 그 뒤 이슬람국가(IS)가 세력을 떨치며 시리아-이라크에 걸쳐 점령지역을 넓혀가면서 내전이 더욱 격화되고 중동 전역이 혼란에 빠지자, 통계 작업을 멈추었다. UN 시리아 특사 스테판 데 미스투라는 전쟁 5년째인 2016년 봄 희생자 숫자를 40만 명쯤으로 잡았었다. 그러면서 40만이란 숫자는 UN 공식통계가 아닌 개인적 추정일 뿐이라 했다. 

 

희생자 집계를 UN이 포기한 상황에서 그나마 참고할 자료가 있긴 하다. 영국 버밍햄에 있는 '시리아 인권 관측소'(The Syrian Observatory for Human Rights, SOHR)의 집계 자료이다. 2000년 시리아를 떠나 영국으로 온 라미 압둘 라흐만(47)은 200명쯤의 시리아 현지의 활동가들로부터 얻는 실시간 정보를 바탕으로 피해 상황을 혼자서 집계해왔다. 이에 따르면 사망자가 50만 명에 이른다고 하지만, 이마저도 어디까지나 추정치일 뿐이다.

 

일반적으로 전쟁 연구자들이 널리 합의하는 전쟁 개념의 양적 기준은 '1년 동안 쌍방 사망자 1000 명'이다. 시리아는 이 기준선을 분쟁 발생 첫해인 2011년에 이미 넘어섰고 2012년에서 2018년에 이르는 7년 동안 해마다 사망자가 1000명을 훨씬 웃도는 '전쟁 중인 국가'가 됐다. 정확한 숫자는 누구도 알 수 없지만, 해마다 5만 명에서 7만 명의 희생자가 시리아에서 생겨난 것으로 추정된다.  

 

국제분쟁 관련 통계로 이름이 널리 알려진 스웨덴 웁살라대학의 분석 자료 Uppsala Conflict Data Program에 따르면, 21세기 들어와 해마다 1년 동안 전쟁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 숫자는 4만 명을 넘기진 않았었다. 하지만 시리아 전쟁의 영향으로 2014년부터 1년 동안 전쟁 사망자가 10만 명을 넘어섰다. 시리아 한 군데에서 전쟁 사망자의 절반 이상이 생겨나는 셈이다.  

 

시리아는 취재기자의 무덤 

 

시리아는 취재 기자를 포함한 언론인들의 무덤이기도 하다. 기자보호위원회(Committee to Protect Journalist, 이하 CPJ) 자료에 따르면, 1992년부터 2018년 현재까지 시리아에서는 1279명의 언론인이 목숨을 잃었다. 그 가운데 821명이 누군가가 언론인을 죽이려고 마음먹고 살해한 것으로 알려진다. 시리아 독재정권이 비판적인 언론인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데 만족하지 않고 아예 목숨을 끊으려 조직적인 범죄를 저질러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CPJ에 따르면, 2011년 내전이 터진 뒤로 시리아 내전 취재 과정에서 죽은 언론인은 최소한 116명에 이른다. 시리아의 혼란 상황을 떠올리면, 물론 일부 언론인들의 죽음이 이 집계에서 빠졌을 것으로 보인다. 내전이 터진 뒤로는 오히려 독재정권의 보복에 따른 언론인 살해가 줄어들었다는 점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하겠으나, 116명이란 희생자 숫자도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다. 

 

필자는 내전이 터지기 전인 2007년과 2009년 두 차례 시리아 현지 취재를 다녀왔다. 시리아 분쟁 1년이 되던 해인 2012년 그곳으로 취재를 떠났었다. 1980년 광주에서의 민중 항쟁과 군사 압제를 기억하는 한국의 민주 시민들에겐 시리아의 상황이 남의 일처럼 보이지 않는다. 시리아 민중 항쟁을 직접 보고 그들의 목소리를 한국에 생생히 전하고 싶었다. 하지만 발길을 돌려야 했다. 여권에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와 이란, 레바논 등을 다녀온 기록으로 미뤄 단순한 '관광' 목적의 방문이 아니라는 것이 입국 거부 이유였다. 

 

시리아의 참상은 현재진행형이다. 이즈음 수도 다마스쿠스 동쪽의 반군 장악지역인 동구타(Eastern Ghouta)는 시리아 정부군, 그리고 이들과 합동군사작전을 펴는 러시아군의 포격으로 엄청난 사상자를 내고 있는 중이다. 2월 19,20일엔 단 이틀 사이에 공습과 로켓 공격으로 250명이 죽었다. 이들 희생자 가운데는 여성과 어린이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지난 3개월 사이에 이 지역에서만 적어도 7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병원과 학교도 포격을 받았다.

 

전쟁에 관한 국제법상 써서는 안 될 염소가스 성분의 화학무기로 동구타 지역의 참상을 키웠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화학무기금지기구(OPCW)가 이 문제를 조사하기로 했지만, 현장 접근이 현실적으로 어렵다. 국제사회는 시리아 정부를 비난만 할뿐 제대로 된 조치나 제재를 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팔레스타인을 웃도는 난민 위기 

 

전쟁은 난민을 낳는다. 시리아 난민문제는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유엔난민기구(UNHCR)가 시리아내전 7년을 맞아 3월9일 발표한 <시리아 분쟁 7년> 문서에 따르면, 국경을 넘은 난민은 560만 명에 이른다. 시리아 내전의 심각성은 시리아가 세계 최대의 난민을 배출한 국가라는 점에서도 나타난다. 시리아 인구는 1800만 명. 시리아 국민 3명 가운데 1명이 피란 보따리를 싸고 국경을 넘은 셈이다.  

 

시리아에서 전쟁이 터지기 전까지만 해도 세계 최대의 난민은 팔레스타인 난민이었다. UNHCR이 해마다 세계난민의 상황을 집계해 발표하는 <글로벌 동향보고서>(Global Trends Report, 2017년 6월)에서 시리아 난민이 팔레스타인 난민 숫자를 넘어선 것은 2015년부터였다. 이 보고서는 세계 난민 숫자를 2130만 명(2015년말 기준)으로 발표하면서 △시리아 난민 550만 명 △팔레스타인 난민 520만 명이라 했다. 지난 1년 사이에 시리아 난민이 10만 명 더 늘어난 셈이다.  

 

시리아를 떠난 난민들이 안전한 정착지를 찾아 헤매며 겪는 고난은 말로 다하기 힘들다. 지난 2015년 터키 해변에서 발견된 3살배기 쿠르디의 시신은 시리아 전쟁의 비극성을 새삼 일깨운 바 있다. 허술한 고무보트를 타고 건너 터키, 그리스, 이탈리아로 향하는 시리아 난민들이 지중해에서 빠져 죽었다는 소식은 너무나 자주 우리 귀에 들려온다.

 

국경을 넘은 전통적 의미의 난민(refugee)들과 구별되는 국내 실향민(internally displaced persons, 이하 IDPs)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시리아 IDPs 숫자는 610만 명으로, 전 세계 IDPs 4080만 명 가운데 가장 많다. IDPs는 국경을 넘은 난민들의 고난 못지않은, 아니 국제구호기관의 도움도 받지 못해 더 어려운 상황에서 날마다 죽음의 공포에 떨어야 한다. 

 

UNHCR의 <시리아 분쟁 7년>에 따르면, 전쟁이 터지기 전보다 식료품 가격이 8배나 올랐다. 이 때문에 시리아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10명 가운데 7명꼴로 극빈층이나 다름없는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긴급 구호가 필요한 상황이지만 국제 구호기관의 손길이 닿기 쉽지 않다. 반군 지역의 경우 시리아 정부가 의도적으로 접근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3월5일 다마스쿠스 동쪽 반군장악 지역인 동구타에 국제 구호차량이 생필품을 싣고 들어간 것은 독재자 아사드가 드물게 보여준 '인도적 결단'이다.  

 

전쟁으로 문 닫은 학교들 

 

전쟁은 어린이들에게 더 무시무시한 괴물로 다가온다. 아이들은 7년 전쟁으로 정상적인 교육을 받을 기회조차 빼앗겼다. UNICEF에 따르면, 시리아 난민 가운데 학교에 다녀야 할 연령층 170만 명 가운데 43%가 아예 학교 공부를 하지 못한다. 시리아 국내에 남은 어린이들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시리아 학교 3개 가운데 1개가 포격으로 파괴된 상태이다. 건물이 멀쩡히 남아있더라도 정상 수업이 어려워 문을 닫았다. 학교 문이 열려 있다 하더라도, 가족이 생존의 벼랑에 내몰려 무엇이든 일을 해 생계를 도와야하기에 공부할 엄두를 내기 어렵다. 

 

전쟁이 끝나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려면 엄청난 시간과 복구비용이 들 것이다. 시리아 전쟁 4년째를 맞던 2015년 3월, 비영리 구호단체인 세이브더칠드런(Save the Children)은 시리아 아이들의 교육 중단을 걱정하면서 <전쟁의 비용>(The Cost of War)이란 이름의 보고서를 냈다. 이에 따르면, 전쟁으로 무너지거나 파괴된 학교 시설을 복구하려면 30억 달러가 들 것으로 내다봤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났으니 비용은 더 늘어날 것은 말할 나위 없다.

 

7년째 이어진 전쟁으로 시리아는 문명국가의 모습을 잃었다. 많은 시설물이 파괴되었기에 시리아가 석기시대로 되돌아갔다는 말까지 들린다. 이어지는 다음 글에서 살펴보겠지만, 국제사회가 머뭇거리는 사이에 일어난 일들이다. 2011년 '아랍의 봄' 바람을 타고 벌어진 유혈 갈등 속에 죽음을 일상적으로 목격해온 시리아 시민들은 지금의 고통스런 극한상황인 '아랍의 겨울'에서 벗어나기만 바라고 있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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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18/03/13-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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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늬만 민주주의', 집권연정은 어떻게 96%를 득표했나

[아시아생각] 정적제거용으로 전락한 과거청산...이슬람 극단주의 증폭

 

이유경 국제분쟁전문기자

 

 

지난해 12월 30일 실시된 방글라데시 제 11대 총선은 아와미 리그(Awami League)가 이끄는 집권연정 '민족 대동맹(Grand National Alliance, 이하 "대동맹")'이 전체 298석 중 288석을 얻어 96% 이상을 휩쓰는 압승을 거뒀다. 1월 15일 기준 방글라데시 선관위 업데이트 현황에 따르면 이중 아와미 리그가 얻은 의석은 257석이다. 

 

세속주의 성향의 아와미 리그와 전통적으로 경쟁해온 보수정당 방글라데시 민족주의당(Bangladesh Nationalists Party, 이하 "BNP")은 5석밖에 얻지 못했다.

 

BNP는 2014년 치러진 10대 총선을 보이콧 하면서 의석수가 전무했다. 이번 총선도 보이콧 할 거라는 예상을 깨고 참여했지만 결국 턱없이 모자란 의석수를 얻어 야당으로서 존재감을 거의 완전히 상실됐다. 이념적으로 거리가 먼 BNP와 손을 잡고 '자티야 오이캬 프런트'(Jatiya Oikya Front '민족단합전선'이라는 뜻. 이하 "JOF")라는 야권 연대를 구성한 진보 성향의 고노 포럼(Gono Forum)도 2석을 얻는데 그쳤다. 고노 포럼은 1992년 아와미 리그 출신 인사들과 시민사회, 방글라데시 공산당(CPB)출신들이 모여 출범시킨 정치 그룹이다. 아와미 리그를 좀 더 개혁적 입장에서 견제하는 정치 세력이라 볼 수 있다. 

 

방글라데시 공산당(CPB)이 주축이 된 또 다른 정치 동맹 좌파민주주의동맹(LDA)은 이번 선거에서 단 1석도 얻지 못했다. 아와미 리그를 "파시스트"라 맹비난했던 LDA는 8개 정당이 연대하여 131개 선거구에 147명의 후보를 냈지만 처참한 성적표를 받았다. 이로써 아와미 리그의 하시나 대표는 3선 총리가 됐다. 그는 지금 방글라데시 역사상 최장기 집권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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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부터 장기집권에 성공한 셰이크 하시나가 지난해 12월30일 총선 투표 직후 승리를 확신한 듯한 표정을 보이고 있다. 그는 방글라데시 초대 대통령으로 '국부'로 불리는 셰이크 라만의 맏딸이다. ⓒAP=연합

 

최장기 집권, 3선 총리 

이번 선거가 공정하지도 자유롭지도 않았다는 비판은 비단 야권만의 목소리가 아니다. '국제 투명성 기구 방글라데시'(Transparency International Bangladesh, 이하 TIB)는 1월 15일 기자회견을 열고 "11대 총선은 부분적으로만 참여적이었으며 곳곳에서 부정행위가 발견됐다"고 지적했다. TIB가 전체 299개 선거구에서 50개 선거구를 표본조사한 바에 따르면 47개 선거구에서 복수의 부정행위가 발견됐다.

 

97% 선거구에서 부정행위가 있었다는 추론이 가능한데, 이는 흥미롭게도 집권 연정대동맹이 득표한 비율과 맞먹는 수준이다. TIB는 또한 이번 조사에서 50개 선거구 중 33개 투표소 투표함은 선거 이전부터 이미 꽉 차있었다고 말했다. 여러 정당이 선거법 위반을 저질렀지만 아와미 리그의 위반 정도는 심각하다. 아와미는 전체 위반 사례 중 95.1%에 연루됐고, BNP는 30.6% 위반 사례에 연루된 것으로 확인됐다는 게 TIB의 설명이다. 

 

공신력 있는 활동으로 신뢰 받아온 방글라데시 국내 시민단체인 오디카르(Odhikar)는 보다 구조적 문제점을 짚었다. 오디카르는 지난해 11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아와미 리그가 국가기구를 동원한 (야권) 탄압으로 선거과정에서 일방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자유롭고, 공정하며, 신뢰할만한 선거는 불가능하다"는 것. 무엇보다도 "국가억압 시스템이 계속되면 이 억압에 대응한다는 명분으로 이슬람 극단주의가 부상할 수 있다"는 게 오디카르의 경고다. 

 

방글라데시는 1971년 동파키스탄 시절 무장독립투쟁을 통해 대학살을 딛고 파키스탄으로부터 독립한 국가다. 세속주의, 민주주의, 사회주의를 건국 이념으로 자랑스럽게 공표하며 여러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절차적 민주주의와 세속주의 전통을 조화롭게 지켜온 방글라데시가 오늘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1월 14일자 <뉴욕타임즈>사설은 "아와미 리그가 굳이 부정ㅍ선거를 하지 않아도 이겼을 터인데 왜 부정ㅍ선거를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타임즈는 "지난 10년간 하시나 정부 하에서 방글라데시 GDP 대비 국민소득이 증가했고, 성장은 절대 빈곤율 역시 19%에서 9%로 떨어뜨렸다"며 경제 성장과 빈곤 퇴치의 성과를 언급했다. 맞는 말이다. 그럼에도, 과반도 아니고 2/3 압승도 아닌 1당 독재 국가에서나 나올법한 96%의 압도적 승리로 집권을 연장한데는 경제 성장과 빈곤 퇴치의 성과 외에 다른 배경이 없을 리 없다. 

 

2008년 하시나 정부가 정권을 잡은 이래 지난 10여 년간 여당의 독주와 야당 탄압은 물론, 일련의 사법 판결은 야권을 서서히 그러나 철저히 무력화시켰다. 독주하는 여당의 행보와 야권에 치명적인 사법 판결, 이 두 가지 흐름이 반드시 '짜여진 각본'에 의한 거라고 단언하긴 어렵다. 그러나 야당의 정치 기반이 무력화됨으로써 방글라데시의 절차상 민주주의 체제가 타격을 입은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예컨대, 지난해 10월 10일 선거를 코앞에 둔 시점에서 다카 법원은 2004년 8월 21일 아와미 리그 유세장에서 벌어진 수류탄 연쇄 공격 사건과 관련해 파장이 큰 판결을 내렸다. 이 공격은 당시 야당 대표였던 하시나를 암살하려는 정치 테러였다. 하시나는 다행이 목숨을 건졌지만 24명이 사망하고 수백 명이 부상당했다. 이 공격은 당시 집권연정인 BNP와 종교정당 자마떼 이슬라미(이하 'JeI')가 계획하고 방글라데시 내 이슬람 극단주의 조직인 하르카툴 지하드(Hark-a-Tul Jihad)가 실행한 '정치권과 극단주의자들의 합작 테러'로 밝혀졌다. 

 

법원은 피고인 19명에게 사형을 언도하고 다른 19명에게는 종신형을 선고했다. 이미 부패 혐의로 기소되어 현재 수감 중인 BNP 칼레다 지아 총재의 아들이자 영국에 머물고 있는 타리크 라흐만도 부재중 종신형을 받았다. 그는 수감 중인 어머니를 대신하여 BNP 총재 권한 대행을 맡고 있는 인물이다. 결국 당총재도, 총재 권한대행도 중형을 선고받은 BNP는 회복 불능 상태로 치달았다. 

 

그보다 앞서 아와미 리그는 1971년 파키스탄으로부터 독립할 당시 자행된 전쟁 범죄 처벌 과정에서 BNP의 오랜 정치 동맹 JeI을 우선 퇴출시켰다. 아와미 리그는 2008년 정권을 잡고 이듬해인 2009년 국제범죄재판(International Crimes Tribunal, ICT)를 출범시켰다. 71년 독립 전쟁 당시 친 파키스탄 민병대 노릇을 하며 독립운동 진영에 대한 대학살과 강간 등의 전쟁 범죄를 저지른 JeI에 대한 처벌 수순에 들어간 것이다. 

 

이 재판은 과거청산작업으로서, 전후(post-conflict) 정의 실현 매커니즘의 일환으로 충분히 의미있는 과정이었다. 기소된 이들 다수는 JeI 소속이고, BNP 소속도 3명이나 됐다. 문제는 재판 과정이 이슈의 중대함에 비해 국제 수준에 턱없이 미치지 못한 데다 재판 후 거세게 몰아닥칠 후폭풍에 대해 국민 통합과 화해 매카니즘을 전혀 고려 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그리하여, 방글라데시는 과거 청산과 진상 규명의 소중한 기회를 하시나 총리의 '정적 제거 용도'로 전락시켰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결국 이 재판 과정은 JeI를 포함하여 민주적 선거 절차에 참여해온 '이슬람주의 정치' 세력을 제도권 밖에 던져 놓음으로써 더욱 급진화시키는 효과를 낳았다. 민주적 선거 절차를 거부해온 폭력적 극단주의 세력은 마침 급성장중인 글로벌 지하디즘과 화학반응을 일으키며 정치적으로 불안한 방글라데시로 파고들었다. 세속주의와 이슬람주의간에 전례없는 갈등이 방글라데시를 강타했다. 세속주의 블로거, 성 수소자(LGBTI) 등에 대한 끔찍한 참수 테러가 잇따른 건 이 즈음이다. 

 

아와미 리그 : '권위주의형 세속주의'로 질주 

 

그동안 방글라데시가 군부 독재와 쿠테타, 암살과 보복 정치의 악순화 속에서도 선거 민주주의의 불씨를 되살리며 유지할 수 있었던 건 방글라데시의 독특한 민주주의 전통과 노력에 기인한다. 1996년 제 13차 헌법 개정 당시 공정한 선거를 위한 장치의 일환으로 선거 기간 '과도내각'(일명 'caretaker 정부')구성 조항을 박아 놓았던 것도 그런 노력의 일부라 할 수 있다. 이후 1996, 2001, 2008년 세 번의 선거가 선거를 위한 과도내각 하에서 공정하고 자유롭게 치러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과거 청산 과정의 사법 판결과는 별도로 아와미 리그가 권위주의 노선으로 급 선회하기 시작한 건 바로 이 조항과 관련이 있다. 그 현상은 2011년부터 뚜렷이 감지됐다. 

 

그해 5월 방글라데시 고등법원은 '과도내각 하에서 선거를 치르고 무난한 정권 이양을 마련한 헌법 조항'이 "불법"이라 판결했다. 그리고 두 달 후 방글라데시 국회는 15차 개정을 통해 '선거를 중립적으로 치르기 위한 중립 과도내각 구성' 조항을 폐지했다. 야당 BNP가 부재한 가운데 이뤄진 개정이었다. 

 

그럼에도 개정안은 다음 두차례 선거는 "국가와 국민의 안전을 위해" 중립 내각 하에서 치를 수도 있다고 부가 조항을 달았지만 2014년 총선과, 2018년 총선 모두 적용되지 않았다. '선거를 위한 과도내각 구성'안은 선거에 대한 불신과 정당간 적대감이 극에 달하는 방글라데시 정치 풍토에서 갈등을 잠재우고 공정하게 선거를 치를 수 있는 합리적 방식이었다. 

 

그렇게 치른 2008년 9대 총선에서 아와미 리그는 집권이 가능했다. 아이러니 하게도 당시 야당 지도자였던 하시나는 이 과도내각 도입을 강하게 지지한 반면 BNP는 강하게 반대했다. 오늘 두 정치 세력은 정반대 입장을 내고 있다. BNP는 물론 모든 야권이 중립 선거를 위한 과도내각 구성을 요구에 한 목소리를 내는 반면 일찌감치 이 조항을 폐기한 아와미 리그는 야당의 요구에 전혀 귀 기울이지 않고 있다.

 

중립적 과도내각 하 재선거 요구하는 야권 

 

아와미 리그 정부의 권위주의를 향한 질주가 이번 11대 총선 전후 과정에서 극에 달했다는 점을 잘 보여주는 두 가지 바로미터가 있다. 

 

첫째, 폭력이 난무한 거리정치다. 지난해 7월 29일 안전 불감증이 만연한 운전으로 두 학생이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즉각 도로 안전을 요구하는 학생들의 시위를 촉발했다. 그런데 시위 학생들을 향해 공권력과 나란히 서서 폭력을 휘둘렀던 이들은 아와미 리그의 청년 조직 '차트라 리그'(Bangladesh Chatra League, 이하 BCL)였다. 그해 8월 5일 BCL은 시위를 취재하는 사진 기자 등 언론인 5명을 공격하기도 했다. 

 

이들은 아와미 리그 정부에 대한 비판 세력을 용납지 않으며, 그런 이들을 가차없이 집단적으로, 정치적으로 '린치'하는 거리의 무법자로 등장했다. BCL은 과거 이슬람 정당인 JeI 학생 조직 방글라데시 이슬라미 챠트라 쉬비르(Bangladesh Islami Chatra Shibir, 이하 '쉬비르')와 폭력적으로 충돌한 적이 종종 있다. 그러나 도로 안전을 요구하는 불특정 시위대와 언론에 폭력을 휘두르는 상황은 다분히 이례적이다. 

 

집권 여당 산하 청년 조직이 거리에서 반정부 시위를 '폭력 진압' 하는 그림은 대단히 위험한 정치 현상이다. 공교롭게도 이 시기는 BCL 지도부가 교체되는 시기였다.  이 교체는 BCL 조직 구성원에 의해 민주적 절차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하시나 총리가 직접 인선하는 방식이었다는 점은 아와미 리그 정당 내 권위주의 척도를 잘 보여준다. 

 

두번째 바로미터는 고노포럼의 대표로서 BNP와 손을 잡고 JOF의 대표 역할을 맡았던 카말 후사인이라는 인물이다. 하시나 정부의 권위주의 맹주에 맞선 카말은 하시나 총리 부친 라흐만의 측근으로 하시나 총리가 '엉클'로 부를 만큼 친분이 두터운 사이로 알려져 있다. 카말은 라흐만 초대 정부 하에서 세속주의를 골자로 한 방글라데시 헌법 기안 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건국 이념의 기초를 다진 인물이다. 그 초대정부 하에서 외교부 장관(1973~1975)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런 노장 정치인조차 한때 "조카"로 통하던 하시나 총리의 권위주의에 제동을 걸겠다고 나섰고, 그런 카말조차 지난 12월 14일 선거 캠페인 차량으로 이동 중 아와미 리그 지지자로 보이는 무리들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이 공격으로 카말은 다치지 않았지만 25명이 부상당했다는 보도다. 

 

카말이 하시나의 아와미 리그 정부와 대척점에 선 작금의 현실은 방글라데시 정치의 주 대립각이던 '세속주의 vs. 종교정치' 갈등 구도가 보다 다면화됐다는 점을 말해준다. 물론 카말 후사인의 고노포럼과 BNP가 손잡은 JOF 야권 동맹은 이미 한계를 드러내는 중이다. JOF 동맹에는 정당 등록이 거부되었지만 여전히 BNP의 정치동맹세력인 종교정당 자마떼 이슬라미가 가담하고 있다. 

 

카말은 13일, 그가 평생 치를 떨며 거부하던 종교정당 자마떼 이슬라미와의 연정은 "실수"였다고 말했다. BNP 역시 카말을 JOF 지도부로 동의한 건 자기들의 실수였다고 말했다. 야권의 지리멸렬은 단연코 아와미 리그의 독주와 민주주의 위축를 초래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민주주의가 위축되자 시민들의 자유로운 소통을 입막음하는 시도는 더욱 급물살을 타고 있다. 예컨대, 지난해 9월 19일 야당 없는 국회를 통과하여 10월 8일부터 효력을 발휘한 '디지털 보안법'(Digital Security Act)은 주로 하시나 총리, 총리의 부친이자 건국의 아버지인 쉐이크 무지부르 라흐만, 그리고 아와미 정부에 비판적인 세력을 체포 구금하는데 이용되고 있다. 10월 8일 이래 기자, 활동가등 63명이 이 법 위반으로 구금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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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 2019/01/19-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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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class="xe_content"><h1>두테르테의 실토? "초법적 살인 말고는 죄 없다"</h1> <h2>[아시아생각]'마약과의 전쟁' 이름으로 빈민 학살과 정적. 반정부 언론 탄압</h2> <p style="text-align:right;"> </p> <p style="text-align:right;">박성현 자유언론실천재단 기획편집위원</p> <p> </p> <p> </p> <p>지난 4월 2일 필리핀 대법원은 경찰의 '토캉(Tokhang)작전'(마약전쟁) 희생자들과 관련된 모든 문서(2016년 7월~2017년 11월 기간)를 청원자인 두 인권단체에 공개하라고 명령했다. 청원인은 마닐라시 산안드레아스 부키드 지구의 26개 바랑가이(행정단위) 거주민들을 대신한 '국제법센터(CenterLaw)'와 '무료법률지원단체(FLAG)'로, 이들은 2017년 말 고등법원에 탄원서들을 제출한 이래 힘겨운 줄다리기 싸움을 계속 해오고 있다. 2018년에 이미 문서 사본을 제출하도록 고등법원·대법원의 판결을 받았지만 호세 칼리다 법무차관이―실질적으로는 필리핀 정부가―국가 안보를 핑계로 이를 거부하며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필리핀 법무부는 2018년 5월 마지못해 문서 사본의 일부만 제출했다.  </p> <p> </p> <h3>인권단체들 "마약과의 전쟁 2년에 2만 명 살해 추정" </h3> <p> </p> <p>대통령 취임일 다음날인 2016년 7월 1일 필리핀경찰청(PNP) 전국본부를 방문한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의 의무를 이행하십시오. 그 과정에서 당신이 의무를 수행하느라 1000명을 죽인다면 나는 당신을 보호할 것입니다." 이른바 '토캉'이라 불리는 '마약과의 전쟁' 혹은 '마약소탕작전'은 이렇게 시작됐다. 두테르테 행정부의 마약전쟁이 시작된 2016년 7월부터 인권단체들이 청원서를 제출할 당시인 2017년 11월까지 경찰은 마약전쟁 과정에서 사살된 수가 5050명이라고 발표했지만 인권단체들은 초법적 살인의 희생자를 1만2000명이 넘고, 현재는 2만 명이 훨씬 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p> <p> </p> <p>두테르테는 2018년 9월 27일 대통령궁 연설에서 "내 잘못이 뭔가? 내가 1페소라도 훔친 적이 있는가? 나의 유일한 죄는 초법적 살인(extrajudicial killings)이다."라고 자신의 초법적 살인 행위를 고백했다. 그의 혐의는 이미 2018년 2월 국제형사재판소(ICC)의 예비조사에 올라와 있던 터라,  스스로 범죄 사실을 인정해 버린 셈이다. 그러나 필리핀 정부는 2018년 ICC 탈퇴를 선언했고 2019년 3월 17일 공식적으로 탈퇴 처리됐다. </p> <p> </p> <p>한편, 지난 3월 14일 밤 두테르테 대통령은 경찰(PNP)과 군(AFP)의 합동지휘회의에서 '마약 정치인' 46명의 명단을 발표했는데, 그들은 모두 다가오는 5월 상·하원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을 선출하는 중간선거에 출마한 이들이다. 이들 중 몇 명이 실제로 마약에 연루되어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필리핀 자유당 상원의원 레일라 데 리마가 법무부 장관 시절 마약거래에 연루되어 있었다는 혐의로 2017년 2월 이래 수감되어 있는 사실을 상기할 때, 마약전쟁이 정치적으로 이용된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인권운동가로 잘 알려져 있는 리마 상원의원은 두테르테의 마약전쟁과 초법적 살인을 끊임없이 비판해 온 인물이기 때문이다. </p> <p style="text-align:center;"> </p> <p style="text-align:center;"> </p> <p style="text-align:center;"><img alt="art_1554704988.jpg" class="sm-image-c" src="http://cdn.pressian.com/data/photos/cdn/20190415/art_1554704988.jpg&quot; style="border-width:1px;border-style:solid;margin:0px auto;clear:none;float:none;vertical-align:middle;font-family:'맑은 고딕', 'Nanum Gothic', verdana, '굴림', gulim, AppleGothic, sans-serif, dotum;font-size:17px;text-align:justify;background-color:rgb(255,255,255);" title="▲ 지난 2017년 8월 26일 17살 소년 키안 델로스 산토스가 마약전쟁 작전 중 살해돼 시민들의 애도 속에 장례식이 거행됐다. 많은 시민들은 두테르테 정부가 무고한 시민을 '마약과의 전쟁'이라는 이름 하에 살해하고 있다고 항의하고 있다. ⓒ로이터=연합" /></p> <div class="imgcaption2" style="margin:0px;padding:7px 10px;clear:both;line-height:19.6px;font-size:14px;font-family:'맑은 고딕', 'Nanum Gothic', verdana, '굴림', gulim, AppleGothic, sans-serif, dotum;background-color:rgb(255,255,255);"> <p style="padding:0px;">▲ 지난 2017년 8월 26일 17살 소년 키안 델로스 산토스가 마약전쟁 작전 중 살해돼 시민들의 애도 속에 장례식이 거행됐다. 많은 시민들은 두테르테 정부가 무고한 시민을 '마약과의 전쟁'이라는 이름 하에 살해하고 있다고 항의하고 있다. ⓒ로이터=연합</p> </div> <p> </p> <p> </p> <h3>빈민 학살과 언론 탄압의 수단, '마약과의 전쟁' </h3> <p> </p> <p>두테르테는 다바오 시장 시절에도 강력한 마약퇴치작전을 펼쳐왔지만, 대통령이 된 이후 전개된 '마약과의 전쟁'은 빈민 학살의 무기이자 언론인 탄압의 유용한 방법이 되어 왔다. 필리핀 경찰의 '토캉작전'(Oplan Tokhang)에서 '토캉tokhang'은 비사야어의 'tuktok'(노크하다)와 'hangyo'(설득하다)의 조합으로, 다바오시에서 마약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경찰과 지역공무원이 마약중독이나 밀매로 의심받는 사람들의 집을 방문해 노크하고 항복을 설득, 경고한다는 뜻에서 나온 것이다.  </p> <p> </p> <p>"대법원이 경찰작전 중 희생된 사람들에 관한 수사기록을 제출하라고 요구했을 때 경찰은 대통령이 명령할 때만 제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법은 없고 명령만 있다." 필리핀 최대의 민영방송사 ABS-CBN의 뉴스데스크 편집인인 인다이 에스피나-바로나의 말이다. 메트로마닐라의 빈민가에서 희생자 가족들을 취재해 온 그녀는 토캉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경찰은 증거도 없이 쑥덕거려서 만든 명단을 가지고 와 당신의 집 문을 두드리면서 '우리가 당신을 친절하게 초대하니 항복 명령에 따라주기를 바란다. 그러지 않으면...'이라고 말한다." 에스피나-바로나에 따르면,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강제로 '항복'했고 항복한 이들은 바랑가이 센터로 가 종이 한 장을 받는데, 그 종이에는 마약밀매자인지 마약중독자인지를 표시하는 두 가지 선택만이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p> <p> </p> <p>경찰이 만든 '죽음의 명단'에 올라간 이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일거리를 구하기 위해 거리를 배회하거나 더위를 피해 골목길에 나온 빈민가 주민들은 토캉작전의 표적이 된다. 마약전쟁이 휩쓸고 지나간 메트로마닐라 외곽의 빈민가에서 만난 주민들의 목소리는 이런 상황을 고스란히 증언하고 있다. "그들이 마약에 연루되었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수사가 먼저 필요하다. 하지만 이 사람들은 충분한 증거 없이 살해당했다." 케손시 산로케 바랑가이에서 파작(삼륜자전거) 운전사로 일하는 미아 그라시아의 말이다. "우리는 파작 운전사이기 때문에 때때로 경찰에 잡힌다. 하지만 우리는 도덕적으로 산다." 16세 된 그녀의 친척 소년도 무고하게 살해된 희생자들 중 한 명이다.  </p> <p> </p> <p>메트로마닐라의 케손시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살해된 곳은 칼로오칸시로, 골목길 한쪽에 쓰레기 카트 두 개를 붙여 개조한 공간에서 가족과 함께 사는 고등학생 제랄드(18세)는 십대로서 현 상황이 두렵다고 말하면서도 진실을 말하기 위해 용감하게 인터뷰에 응했다. "나도 경찰에게 신원 오류로 붙잡힐 수 있다. 한번은 나는 학교에 있었고 마약중독자가 내 옆에 앉아 있었다. 누군가가 와서 내 옆에 있던 그를 총으로 쏘았다. 나는 이 동네에 살다가 살해된 사람들을 알고 있다. 이 동네에서만 약 100명이 죽었고 그들 중 50%는 아는 사람들이다."</p> <p> </p> <p>제랄드가 사는 칼로오칸시에서 무고하게 살해된 많은 청소년들 중 키안 로이드 델로스 산토스(당시 17세)의 사건은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왔다. 2017년 8월 16일 경찰이 마약 단속 중 이 소년을 사살한 뒤 그가 필로폰과 총기를 소지하고 있어 총격을 가했다는 거짓말로 사건을 조작한 것이다. 마약과 전혀 관련이 없었던 소년을 살해하고 누명까지 씌워 시민들의 공분과 항의시위를 야기한 이 사건은 처음으로 법적 처벌을 실현시켜, 2018년 11월 29일 산토스를 살해한 경찰관 세 명이 징역 40년을 선고받았다. </p> <p> </p> <p>프리랜서 사진기자로, 마약전쟁을 다룬 다큐멘터리영화 <두테르테의 지옥>(Duterte's Hell, 2017)을 공동 감독한 루이스 리와낙은 "희생자의 50% 이상이 미성년자들"임을 강조하며 이렇게 덧붙이고 있다. "통계를 보면 살해된 이들 거의 모두가 빈민이다. 부자들은 대문이 있는 동네에 살아서 도피할 수 있다. 경찰이 그냥 들어가 집을 수색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길거리나 빈민구역에 가면 집 앞을 어슬렁거리는 사람들에 대한 대공세가 이뤄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영화를 만든 후 리와낙은 두테르테의 추종자들인 '트롤 아미'(troll army, 온라인 공격부대)'에 의해 괴롭힘을 당했다. 마약전쟁을 보도하는 언론인들은 온라인상에서의 협박뿐만 아니라 실제 생활에서도 목숨의 위협을 받으며 취재해야 한다. 두테르테가 다바오 시장이던 1998년에 만들어진 자경단 '다바오 죽음의 분대'(DDS)는 살인을 자행해 온 대표적인 두테르테 지지자 그룹이다. "마약전쟁을 취재할 때는 조심해야 한다. 책임이 있는 이상, 언론인은 내일의 취재를 위해 살아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리와낙) </p> <p style="text-align:center;"> </p> <p style="text-align:center;"> </p> <p style="text-align:center;"><img alt="art_1554704997.jpg" class="sm-image-c" src="http://cdn.pressian.com/data/photos/cdn/20190415/art_1554704997.jpg&quot; style="border-width:1px;border-style:solid;margin:0px auto;clear:none;float:none;vertical-align:middle;font-family:'맑은 고딕', 'Nanum Gothic', verdana, '굴림', gulim, AppleGothic, sans-serif, dotum;font-size:17px;text-align:justify;background-color:rgb(255,255,255);" title="▲다바오 시 곳곳에 있는 군 차량 ⓒ박성현" /></p> <div class="imgcaption2" style="margin:0px;padding:7px 10px;clear:both;line-height:19.6px;font-size:14px;font-family:'맑은 고딕', 'Nanum Gothic', verdana, '굴림', gulim, AppleGothic, sans-serif, dotum;background-color:rgb(255,255,255);"> <p style="padding:0px;text-align:center;">▲다바오 시 곳곳에 있는 군 차량 ⓒ박성현</p> </div> <p> </p> <h3>필리핀의 언론 탄압 상황 </h3> <p> </p> <p>필리핀전국언론인노조(NUJP)의 자료에 따르면, 1986년부터 현재까지 비판적 언론활동(직무관련)으로 인해 살해된 언론인 수는 총 185명이고 두테르테 행정부 하에서만 12명이다. 대부분 지방의 언론인인 것은 그들이 처한 상황이 수도권보다 훨씬 열악하기 때문이다. 정치인의 부패를 폭로하고 비판한 언론인이 살해되어도 살해 이유를 마약 연루로 몰아가기도 하고, 심지어 토캉작전을 가장해 언론인을 살해한 사건도 일어났다. 지역신문 <카탄두아네스 뉴스 나우>의 발행인이자 칼럼니스트인 라리 케는 2016년 12월 19일 오전 자신의 사무실로 들어가던 중 오토바이를 탄 킬러들에게 암살당했는데, 그는 죽기 얼마 전, 마약 제조 시설이 발견되었음에도 이를 무시한 지역공무원들을 비판하는 칼럼을 썼었다. 케를 살해하도록 지시한 것은 카탄두아네스 주지사 조세프 쿠아로, 그는 자신의 보좌관 수비온을 시켜 경찰관 타코르다에게 토캉작전을 가장해 케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p> <p> </p> <p>두테르테는 가짜뉴스의 생산과 유포, 온라인 군대 트롤아미의 활용 외에도, 언론사에 대한 직접적인 압박 정책을 펼치고 있다. 비판적인 온라인 뉴스매체 <래플러>(Rappler)에 대한 폐쇄 시도와 ABS-CBN 방송국의 사업권 박탈 위협, 주요 일간지인 <필리핀 데일리 인콰이어러>의 소유권 이전 강요가 그 예이다. 또한, 두테르테 행정부에 대해 비판적 논조를 유지해 온 이 언론사들은 모두 세금 체납 혐의로 탄압을 받았다.  </p> <p> </p> <p>특히 대표적인 탄압 대상은 래플러로, 이 뉴스웹사이트는 마약전쟁의 인권 유린을 지속적으로 비판해 왔다. 2018년 1월 필리핀 증권거래위원회(SEC)는 래플러가 외국인의 언론사 지분 소유와 현지 언론 통제를 금지하는 법률(반더미법, Anti-Dummy Law)을 위반했다고 판결하고 법인 등록 취소를 결정했다. 2018년 7월 항소법원은 이 결정에 잘못이 있다고 판결했고, 그해 8월 래플러는 등록 취소 명령을 부분적으로 재고하도록 항소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2019년 3월 11일 법원이 이전 판결을 지지한다고 발표함으로써 3월 28일 래플러의 대표이자 편집국장인 마리아 레사와 그녀의 동료들에게 체포 영장이 발부된다. 동료들은 당일 보석으로 풀려났고, 당시 해외 출장 중이던 레사는 다음날인 29일 아침 귀국길 공항에서 체포되어 역시 보석금을 내고 석방됐다. 그녀는 이보다 한 달반 전인 2월 14일에도 사이버 명예 훼손으로 체포되었다가 보석으로 풀려난 적이 있다.</p> <p> </p> <p>필리핀의 여론조사기관인 사회기상관측소(SWS)의 2018년 4분기 조사(2018년 12월 16일~19일)에 따르면, 필리핀 국민의 78%가 자신이나 자신의 지인들이 초법적 살인의 희생자가 될까봐 두려워한다고 한다. 그러나 두테르테는 마약전쟁과 언론탄압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그는 현행법상 마약조직이 청소년들을 교역에 이용한다는 점을 이유로 들어 형사책임의 최저연령을 현 15세에서 9세로 낮추도록 2016년 이래 꾸준히 추진해 왔고, 올 1월에도 이 문제가 부각된 바 있다. 한편, 고등학생 산토스가 무고하게 살해되었던 칼로오칸의 교구장 파블로 비르길리오 데이비드 주교는 지난 2월 그와 다른 주교·사제들이 살해 위협을 받았음을 밝혔고, 루이스 안토니오 타글 추기경은 이에 대해 두테르테에게 경고하기도 했다. </p> <p> </p> <p>이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두테르테와 마르코스 지지자들의 대표적인 공격 표적인 신문 기자 출신 언론인 에드 링가오(TV5와 원뉴스 앵커)의 다음 말은 인상적이다. "비판적이어야 할 우리의 일을 멈추고 침묵을 지킨다면 우리는 신뢰받지 못할 것이다."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취재와 보도를 계속하는 언론인들이 있는 이상, 마약전쟁에 희생되는 필리핀 민중과 탄압받는 필리핀 언론의 미래에는 희망이 있다.</p> <p> </p> <p> </p> <p><a href="http://www.pressian.com/news/article?no=235862#09T0&quot; target="_blank" rel="nofollow">프레시안에서 보기>></a></p> <p><a href="http://www.peoplepower21.org/PeopleTV/1617082&quot; target="_blank" rel="nofollow">동남아시아 언론의 자유가 궁금하다면? >></a></p></div>
화, 2019/04/09-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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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프레시안 공동기획 아시아생각 칼럼 시리즈 

 

<편집자 주> 한국은 아시아에 속합니다. 따라서 한국의 이슈는 곧 아시아의 이슈이고 아시아의 이슈는 곧 한국의 이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에게 아시아는 아직도 멀게 느껴집니다. 매년 수많은 한국 사람들이 아시아를 여행하지만 아시아의 정치·경제·문화적 상황에 대한 이해는 아직도 낯설기만 합니다.

 


아시아를 적극적으로 알고 재인식하는 과정은 우리들의 사고방식의 전환을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또한 아시아를 넘어서 국제 사회에서 아시아에 속한 한 국가로서 한국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나가야 합니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 기반을 두고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는 2007년부터 <프레시안>과 함께 '아시아 생각'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필자들이 아시아 국가들의 정치, 문화, 경제, 사회뿐만 아니라, 국제 사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인권, 민주주의, 개발과 관련된 대안적 시각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프레시안 바로가기 http://www.pressian.com/news/review_list_all/?rvw_no=1626" style="background:0px 0px;color:rgb(51,51,51);" target="_blank" rel="nofollow">>> 클릭

 

☮​ 2020년 아시아생각

 

1. http://www.peoplepower21.org/index.php?mid=International&document_srl=16... target="_blank" rel="nofollow">인도 시민권법 개정안, 인도주의 포장한 인종주의(1/1) / 이유경 국제분쟁전문기자

 

 

☮​ 지난 아시아생각 모두 보기

 

[언론기획] 아시아생각 칼럼 연재 (2019) >> http://www.peoplepower21.org/index.php?mid=International&listStyle=list&... target="_blank" rel="nofollow">바로가기 

[언론기획] 아시아생각 칼럼 연재 (2018) >> http://www.peoplepower21.org/International/1553991" style="background:0px 0px;color:rgb(102,153,204);" target="_blank" rel="nofollow">바로가기

[언론기획] 아시아생각 칼럼 연재 (2017) >> http://www.peoplepower21.org/International/1499202" style="background:0px 0px;color:rgb(102,153,204);" rel="nofollow">바로가기 

[언론기획] 아시아생각 칼럼 연재 (2016) >> http://www.peoplepower21.org/International/1389863" style="background:0px 0px;color:rgb(102,153,204);" target="_blank" rel="nofollow">바로가기 

[언론기획] 아시아생각 칼럼 연재 (2013~2015) >> http://www.peoplepower21.org/International/1010693" style="background:0px 0px;color:rgb(102,153,204);" target="_blank" rel="nofollow">바로가기

수, 2020/01/01-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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