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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대 국회에 필요한 건 ‘지방분권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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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대 국회에 필요한 건 ‘지방분권 강화’

익명 (미확인) | 월, 2016/03/14- 17:00

20대 국회의원을 뽑는 4․13총선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거리엔 예비후보들이 출퇴근길 인사를 하고 명함을 돌리며 본인의 존재감을 알리기에 바쁘다. 누굴 뽑아야 할까? 평소에 지지하는 정당이 있거나 특별한 관심이 있지 않는 한, 후보자 공약사항이 정리된 선거공보물만 보고는 정하기가 쉽지 않다. 다들 지역발전을 위해 열심히 일하겠다며 포부를 밝히고, 그럴싸한 내용으로 공약들을 포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희망제작소는 이번 총선에서 선택의 기준을 하나 제시하기로 했다. 바로 ‘지방분권공약 실천약속’이다. 지방자치를 제대로 실천할 수 있도록 하는 지방분권 7대 과제를 제시하고, 국회의원 후보들에게 실천약속을 받아 20대 국회에서 실현해 내자는 취지다.

지방분권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권한이 배분되어 있는 상태 또는 권한을 배분하는 일을 말한다. 입법부인 국회와 행정부인 대통령 및 행정부처의 막강한 권한을 지방자치단체와 지방의회로 적절하게 배분하여 자율과 참여, 책임의 원칙에 따라 지방자치가 제대로 운영되게 하자는 것이다. 지방분권은 여러 지방정부가 권한을 나누기 때문에 혁신적인 정책들을 다양하게 추진해 볼 수 있고, 실패의 위험을 분산시킬 수 있다. 아울러, 저출산 고령화 사회로의 구조변화 속에서 지역공동체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지방정부의 적극적 역할을 요구하고 있어 시대적인 과제이기도 하다.

고난의 지방자치 역사

지방자치가 제대로 운영되려면 지방분권이 적절하게 이루어져야 하는데, 우리나라 지방자치의 역사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1948년 제헌헌법에 지방자치를 규정하고 지방자치법도 만들었지만, 당시 이승만 정권은 치안상태가 불안하다는 이유로 차일피일 미루다가 한국전쟁 중이었던 1952년 4월 25일 최초의 지방선거를 실시하였다. 그러나 몇 년 뒤 자유당의 독선으로 선거여론이 나빠지자 1958년에는 지방자치단체장을 임명제로 전환해 버렸다. 이어서 1960년엔 4·19혁명을 통해 지방자치 직선제도 도입되는가 싶더니, 또다시 5·16 군사 쿠데타로 인해 지방자치는 중단의 운명을 맞이한다.

그 뒤 30년의 암흑기를 지나 1987년 민주화 항쟁의 결과로 1991년 지방의회가 구성되었고, 1995년 지방자치단체장까지 직선으로 선출되면서 온전한 지방자치시대가 열렸다. 우리에겐 지방자치를 실시하는 것 자체가 민주화 과정이며, 중앙의 권력을 지방으로 나누는 지방분권의 과정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고난의 과정을 거쳐 부활한 지방자치는 많은 우려와 문제들이 있었지만, 우리 사회에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무엇보다 주민의 손에 의해 대표가 선출되면서 통치와 계몽의 대상에 머물렀던 국민이 행정이 주인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이제 당당하게 시장, 군수, 구청장실을 드나들며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필요한 것들을 요구한다.

일상적 삶과 밀착된 복지정책들이 다양하게 추진되면서 주민의 삶의 질이 조금씩 개선되고 있고, 지역에서 성과를 거둔 혁신적인 정책들은 중앙정부 정책으로 수용되어 국민복지 향상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이는 지속적인 지방분권을 통해 지방자치를 발전시켜 나가야 하는 이유다.

지방정부의 발목에 채워진 족쇄를 풀어라

지방정부 부활 이후 질적인 내용 변화와 함께 지방정부가 담당하는 사무의 범위나 사업의 양이 크게 확대되었고, 재정규모는 국가가 거둬들이는 세금의 60%를 지출하는 수준으로 커졌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성년이 된 지방자치가 여전히 중앙정부가 정해놓은 틀 속에서 수많은 제약을 받으며, 어린아이 취급을 당하고 있다.

최근 메르스 사태에서 보듯이 지방정부가 지역주민의 건강을 위하여 긴급조치를 취하려 해도 국민의 기본권 제한은 법령에 의한다는 헌법조항에 막혀 할 수 있는 역할이 제한적이었다. 서울시나 성남시의 청년수당을 둘러싼 보건복지부와의 갈등은 지방자치의 고유사무인 주민의 복리증진을 위한 활동조차 중앙부처의 허락을 얻어야만 가능하다는 현실을 보여주었다.

이렇게 지방정부가 자치에 필요한 자기 결정을 하지 못하고 중앙정부의 틀 속에 갇히게 된 배경에는 지방자치가 부활할 당시 근거가 되었던 헌법과 관련 법제도 때문이다. 민주화 항쟁의 요구로 1988년 헌법이 개정되었는데, 당시에는 대통령 직선제에 초점을 두었을 뿐,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할 지방자치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못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우리나라의 지방정부의 자치권은 지방자치에 있어 앞서가는 나라들에 비해 매우 약한 상태에 있다. 보충성의 원칙 등 지방자치에 대한 강한 의지를 천명하고 있는 국가들과 달리 헌법규정부터 지방정부의 권한을 ‘법률’이 아닌 ‘법령’의 범위 내로 묶는 등 지방정부의 자치권을 강하게 제한할 수 있는 요소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법령’에는 국회의 심사를 거치는 소위 형식적 의미의 ‘법률’ 이외에 헌법 제75조 및 제95조 등에 의거한 ‘대통령령’, ‘총리령’ 및 ‘부령’과 같은 법규명령이 포함되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런데 이외에도 헌법재판소는 “법령의 직접적인 위임에 따라 수임행정기관이 그 법령을 시행하는데 필요한 구체적인 사항을 정한 것이면 그 제정형식이 비록 법규명령이 아닌 고시, 훈령, 예규 등과 같은 행정규칙이더라도, 그것이 상위법령의 위임한계를 벗어나지 아니 하는 한, 상위법령과 결합하여 대외적인 구속력을 갖는 법규명령으로 기능하게 된다고 보아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다. 즉, 지역 주민의 의해 선출되어 운영되는 지방정부가 고시, 훈령, 예규와 같은 행정규칙에 의해서도 제한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헌법상 지방자치권을 제약하는 것은 지방자치를 직접 규정하고 있는 117조와 118조 외에도 죄형법정주의를 규정한 제12조 제1항, 기본권제한 법률주의를 규정한 제37조 제2항, 납세의무 법률주의를 규정한 제38조, 조세법률주의를 규정한 제59조 등이 있다. 이렇게 헌법과 관련 법률에 의해 지방자치권은 그 범위가 더욱 좁아지고 있어 근본적으로 지방분권형 헌법으로 개정이 필요하다.

지방정부는 하부행정기관이 아닌 중앙정부의 동반자

지방자치란 일정한 지역에서 지역 주민이 자치사무를 자신의 책임 하에 자신들이 선출한 기관을 통하여 직접 처리하는 제도이다. 자치를 위해서는 스스로 재원을 마련하고, 규칙을 정하고, 조직을 운영하여 자치사무를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 헌법과 법률은 이렇게 지방정부가 자치사무를 처리할 수 있도록 조례를 제정하고, 지방세를 부과하며, 지방행정조직을 지역특성에 맞게 운영할 수 있도록 보장하여야 한다. 이러한 질적 변화는 지방정부를 중앙정부의 하급행정기관이 아니라 국정 운영의 동반자로 인식전환을 하는 것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

바야흐로 세계는 무한경쟁에 돌입하며 다양성을 요구하고 있고, 저출산 고령화로 이어지는 사회경제적 구조 변화는 지역공동체 단위의 대응이 중요해지고 있다. 중앙에서 지방으로 권한과 재원을 나누는 지방분권은 주민의 요구에 부응한 생활복지서비스를 제공하여 효율성을 높이고, 지역별 특성에 기초한 내생적 발전전략을 통해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지방자치 부활 20여 년을 맞이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지방분권은 큰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그 이면에는 지방자치를 부활시키며 설계한 헌법과 관련 법제도의 구조적 문제와 함께 중앙집권세력의 저항, 국민적 관심부족이 존재한다. 이제 지난 20여 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지방자치를 재설계해야 할 때이다.

지방분권을 위한 7대 과제

희망제작소는 지방자치의 질적 변화를 위하여 20대 총선에 나서는 후보들에게 7가지 지방분권과제를 제안한다. 우선, 지방정부가 중앙정부와 대응한 입장에서 지방자치와 관련된 중요 정책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중앙-지방 협력회의’를 설치하는 일이다. 다음으로 지방정부가 자치사무 처리에 필요한 자치법규를 제정할 수 있도록 자치입법권의 법률적 효력을 강화하고, 자치기구의 자율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국가사무를 지방정부에 위임하는 기관위임사무는 원칙적으로 폐지하고 법정수탁사무로 전환하여, 재원 이전과 지방정부의 자치권을 보장해야 한다. 또한 지방재정은 지방소비세 및 지방소득세율을 인상하여 자체세원을 확대함으로써 자율과 책임을 부여한다. 끝으로 국회 내 지방분권상설위원회를 설치하여 지방분권에 관한 법률을 상시적으로 다루도록 하며, 궁극적으로 지방분권형 헌법 개정을 통해 풀뿌리 지방자치를 혁신하고 지역주권을 실현할 수 있도록 한다.

이제 지난 20여 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지방자치를 재설계해야 할 때이다. 지속가능한 지방자치 실현을 위하여 시급해 해결해야 할 7대 과제를 제시하며, 20대 국회에서 실현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여기엔, 유권자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가 꼭 필요하다. 지역별로 총선후보에게 지방분권과제를 제안하고 실천할 것을 함께 제안해 보자.

글 : 송정복 | 목민관클럽팀 선임연구원 · [email protected]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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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코로나19 이후를 이야기하다’에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전국 최초로 재난기본소득 지원을 결정하고 실행하고 있는 김승수 전주시장의 인터뷰를 전합니다. 전주시가 지원하는 재난기본소득은 중위소득 80% 이하인 5만 명에게 52만 7천 원을 체크카드에 담아 지급하며 전주시 내에서 3개월 동안 쓸 수 있습니다.
김승수 시장은 희망제작소가 사무국을 맡은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천하며 지역민과 함께 지속가능한 지역발전을 이루어나가는 지방정부 단체장 모임인 목민관클럽의 공동대표를 맡아 지방정부의 자발적 협력과 연구에도 앞장서고 있습니다.
전주형 재난기본소득과 코로나 이후 사회를 준비하는 지방정부의 고민을 듣기 위해 김제선 희망제작소 소장이 직접 김승수 시장을 만났습니다.

현재 코로나19 관련 전주시의 상황은 어떤가요.

대한민국 전체가 재난 현장이고 시민들의 삶이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전주 역시 모든 분야에서 초유의 충격을 받고 있습니다.

유동인구가 많은 도시인만큼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클 것 같습니다.

모든 도시는 여러 군락으로 경제생태계가 만들어져 있습니다. 현재는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는 거지요. 예를 들면 전주경제의 중심인 관광생태계만 보더라도 여행사 매출이 ‘0’입니다. 여행사 매출이 ‘0’이면 전세버스, 관광해설사, 음식점, 숙박업 등 줄줄이 영향을 받기 때문에 지역 경제와 일자리에 직접적인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전주는 특히 그렇지요.

전주시가 ‘착한임대운동’을 국내에서 제일 먼저 시작했습니다. 시에서 관심을 쏟았던 건가요.

‘착한임대운동’은 이미 4년 전부터 준비되고 있었습니다. 젠트리피케이션도 계속 연구해 왔고, 건물주와 임차인 상생협약인 ‘함께가게’, 착한 공인 중개 정책인 ‘사회적 부동산’도 운영해 왔습니다. 아울러 구도심에서 임대계약을 ‘매출 연동형 임대료’나 ‘임대료 동결’을 유지할 경우 건물 리모델링 비용을 시에서 직접 지원하는 정책도 시행해 왔습니다. 이 기반을 바탕으로 ‘착한임대운동’을 시작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건물주들 설득하는 시작단계에서 많은 분이 우려했습니다. 취지는 좋지만 불가능할 것이고, 실패할 경우 시장의 정치적 부담이나 행정의 권위 실추 등이 이유였습니다. 그러나 현장에서 느끼는 임차인들의 절박함과 삶은 무게는 저에게 한 치의 주저함 없이 ‘착한임대운동’을 결단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좋은 취지이지만, ‘착한임대운동’을 마냥 반기진 않았을 것 같습니다.

실행단계에서 건물주들이 반발했고 공무원들이 굉장한 고생을 했습니다. 여러 차례 긴급간부회와 동장 회의를 통해서 공무원들이 직접 건물주들을 찾아다녔습니다. 처음엔 건물주들로부터 모멸도 당하고 핀잔도 들었는데 그 진심이 전해지면서 많은 분이 호응해 주셨습니다. 사실, ‘착한임대운동’에 참여해 주신 대부분의 건물주들은 영세한 분들입니다. 나도 힘들지만 나보다 더 힘든 분들을 위해 마음을 내어 주신 겁니다. 특히, 초기 단계에서는 1년 전부터 꾸준히 모임을 갖고 고민해 온 한옥마을 상인들과 주민들이 선뜻 응해 주셔서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이후, 대통령께서 페이스북을 통해 ‘전주시 착한임대운동’을 칭찬해 주시면서 전국으로 파급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건물주들도 시민들도 큰 자부심을 느끼게 되었고 전주가 ‘가장 인간적인 도시’로 가는 큰 문이 하나 열었다고 생각합니다.

전주형 재난기본소득도 지방자치가 국가 운영의 틀을 바꾸는 모델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본격적으로 추진하게 됐나요.

재난은 평등하지 않습니다. 경제 위기가 오면 가장 먼저, 가장 깊게, 가장 늦게까지 고통을 받는 층이 바로 저소득층을 포함한 취약계층입니다. 고통이 지속하면 인간의 존엄마저 해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일상을 뛰어넘는 과감한 결단과 상식을 깨는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당시 처음 시작하는 ‘전주형 재난기본소득’이 바로 그런 일이었습니다. 누구나 처음 가는 길은 어렵고 예측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가야 할 길이 있다면 용기를 내서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원래 의미의 기본소득 개념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의 위기에 즉각 대응하는 ‘한시적인’, 그리고 취약계층에 한정하는 ‘제한적인’ 재난소득으로 결정한 것입니다. 아울러 ‘구호 수당’이라는 낙인감을 덜기 위해 ‘전주형 재난기본소득’이라는 용어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전주시장으로서 결단을 내릴 때 어떤 부분을 고려했나요?

위기 때 찾아오는 공동체 파괴를 어떻게 막아 낼 것인가?(아니면 더 강화할 것인가?) 중앙정부 지원의 사각지대와 천차만별 상황에 놓인 취약계층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 멈춰버린 지역경제를 어떻게 재작동 시킬 것인가? 크게 이 세 가지였습니다.

첫째, 전주형 재난기본소득의 기본 철학은 “전주형 기본소득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지만, 누군가 힘들 때 ‘당신 곁에 우리가 함께 한다’는 사회적 연대”에 있습니다. 시민들의 따듯한 마음과 마음이 반드시 서로 이어지리라 믿고 있습니다. 둘째, 직접 지원이기 때문에 취약계층 시민들께서 가장 급하고 어려운 곳에 우선 사용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셋째, 선불카드로 지급되고 3개월 이내에 전주에서 소비해야하기 때문에 263억 원이 지역에서 돌게 되고 지역 상권도 지금보다 활기를 띠게 될 것입니다.

아울러 모든 정책에는 실험적 요소가 있습니다. 전주가 전국에서 처음 시행하는 사업이기 때문에 더욱더 그렇습니다. 전문기관을 통해 전 과정을 객관적으로 분석-평가할 것이고, 그 결과는 향후 유사한 사업을 진행할 때 유용한 참고가 될 것입니다.

재난기본소득을 실시하기로 하면서 전주시의 우려는 없었나요.

많은 분이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막대한 예산 소요, 엄청난 행정력 낭비와 소모, 현실적 기준 마련의 어려움, 제외된 시민들의 불만 등으로 인한 정치적 부담 등등이 지적됐습니다. 물론 다 일리 있는 지적입니다. 그러나 그 지적이 모두 옳다고 하더라도, 우리 할 수 있는 힘만 있다면 어려움에 부닥친 시민들을 우리가 따뜻하게 안아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려움에 부닥친 시민들이 희망의 끈을 놓치면 삶을 포기할 수도 있습니다. 그때 우리가 겪을 고통과 상처, 후회보다는 지금 결단하는 것이 훨씬 현명하고 가치 있다고 보았습니다.

전주시 의회는 어땠나요.

재난기본소득 도입 초반에는 ‘의회 패싱’이라는 지적도 있었지만, 워낙 긴급한 사안이었기에 잘 받아주셨습니다. 의원들께서도 현장의 절박함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비교적 순조롭게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전주시 의회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총선 국면을 앞둔 가운데 중앙정부의 긴급재난지원금(소득 하위 70% 대상) 관련해 여야 할 것 없이 전 국민에게 지급하자는 쪽으로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습니다. 다만 지자체의 재원 20%를 부담하게 하는 등 지방정부의 입장과 재정을 봤을 때 마냥 반길 순 없지 않나요.

지방정부는 현장과 가장 밀접해 있습니다. 시민들의 직접적인 삶과 맞닥뜨려 있기 때문에 중앙보다 더 어렵고 힘든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위기상황일수록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서로 탓하거나 미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렵지만 서로 소통하고 지혜를 짜내서 위기를 극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코로나 19 관련해 중앙정부 중심의 방역/관리체계가 이뤄지고 있는데 지방정부에서는 어떤 역할을 주목하나요.

국가 단위에서 방역/관리 체계를 만들어 가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중앙에서 큰 원칙과 방향을 잡아주면 지방정부에서는 각자 처한 상황에 맞게 창의적인 대책을 세웁니다. 예를 들어 “코로나 방역에 마스크 착용과 소독이 중요하다”는 지침이 발표되면 전주시는 ‘매주 수요일은 전주시민 일제소독의 날’로 정해서 대대적인 소독을 합니다. 해외입국자 격리지침이 발표되면 대학기숙사나 시내 호텔 등을 섭외하여 철저한 검진과 격리를 추진합니다. 이처럼 지방정부는 이른 시일 안에 구체적이고 현실 가능하며 실효성 있는 방법을 찾아내야 합니다. 중앙정부가 뼈대를 만들어 간다면 지방정부를 피를 돌게 하고 살을 붙여가는 역할을 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금, 2020/04/10- 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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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정부에서는 정책을 결정하기 위한 방법으로 시민과 함께하는 다양한 숙의 유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전 시리즈에서는 다섯 가지 숙의 유형(⓵시민배심원제, ⓶합의회의, ⓷시나리오 워크숍, ⓸공론조사, ⓹타운홀 미팅 방법 등) 중 시민배심원제, 합의회의, 시나리오워크숍 등을 살펴봤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숙의 유형 중 공론조사에 관해 전합니다. 일반적인 여론 조사 내 숙의 과정을 포함한 것으로 특정 안건에 관해 새로운 의미와 여론을 측정하는 데 의의를 두고 있습니다. 공론조사는 시민의 의견을 수집하고 확인한다는 점에서 기존 여론조사와 같은 맥락이지만, 능동적인 학습과 토론이라는 숙의 과정을 거친 시민의 의견을 측정하는 점에서 다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2017년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여부와 2018년 대입제도개편과 관련해 국가 단위의 공론 조사를 실시했고, 지방정부 단위에서는 김해의 장유소각장 현대화 사업, 남해의 망운산 풍력발전소 건립에 관한 공론 조사를 벌였습니다.

숙의를 거치며 변화하는 시민의 생각과 의견

공론조사의 첫 단계는 공론화 의제와 관련한 1차 여론조사를 시작으로 조사결과에 근거해 대표성을 갖춘 시민참여단을 선정하는 것입니다. 약 200~300명 정도로 구성된 시민참여단은 균형 잡힌 정보를 제공 받고, 전문가 강의를 포함한 상호 토론 과정을 거칩니다.

충분한 학습과 토론이 진행되었다면, 1차 여론조사와 동일한 질문으로 2차 여론조사를 진행해 학습과 토론에 따른 참여자의 태도와 인식의 변화를 살펴봅니다. 다시 말해 의제를 학습한 시민의 의견을 청취하고, 숙의 과정을 거치며 발생하는 의견 변화에 초점을 맞추는 등 사회적 수용성을 높이고, 정책을 결정하는 데 공론 조사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여부에 대한 공론조사

신고리 5·6호기는 지난 2016년 건설 허가 이후 2017년 6월에는 종합공정률이 28.8%에 이르는 상황이었습니다. 2017년 대선 당시 ‘안전한 대한민국’을 천명하고, 신고리 5·6호기 건설의 중단을 공약으로 내세운 문재인 대통령은 공사 자체가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는 점을 고려해 신고리 5·6호기 건설중단 관련한 사회적 합의를 따르겠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따라 2017년 7월 17일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 구성 및 운영에 관한 규정이 제정되었습니다.

공론화위원회, 시민참여단 구성

공론화위원회 위원 선정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각 분야 별 전문기관 및 단체 당 3인의 후보를 추천 받아 1차 후보군을 구성했습니다. 후보군 내 원전 찬반 입장을 갖는 기관 및 단체의 제척 의견을 받은 뒤 제척된 인사를 제외한 나머지 17인 중 8인의 후보군을 선정했습니다. 공론화위원회는 위원장 1인과 인문사회, 과학기술, 조사 통계, 갈등 관리 분야 등 각 2인을 포함해 총 9명으로 구성됐습니다.

시민참여단 구성은 국민의 대표성 확보를 위해 층화추출을 위한 이중추출법을 사용했습니다. 대한민국 국적의 만 19세 이상 국민을 지역, 성별, 연령으로 3차원으로 층화한 후, 비례 배분한 20,000명을 층화 무작위 추출헤 1차 표본을 구성해 1차 공론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1차 표본을 건설 재개/중단/판단유보, 성별과 연령으로 층화한 뒤, 비례 배분한 500명을 무작위로 추출해 2차(478명), 3차(471명), 4차(471명)에 걸친 공론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시민참여단은 학습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숙의 프로그램은 오리엔테이션(1일), 숙의 자료집, 2박 3일 종합토론회, 이러닝(e-learning), 온라인 교육 등이 제공됐고, 지역순회 공개토론회, TV 토론회, 미래세대 토론회도 열렸습니다.

건설 재개, 그러나 원자력발전은 축소

1차 공론 조사 결과는 건설 중단에 비해 건설 재개의 비율이 유의미한 차이로 높게 나타났습니다. 회차를 거듭할수록 그 차이가 더욱 커지면서 되어 최종 공론 조사 결과에서는 건설 재개를 선택한 비율이 59.5%로, 건설 중단을 선택한 40.5%보다 19.0%p 더 높았습니다.

한편, ‘원자력발전의 축소’가 53.2%로 ‘원자력발전 유지’, ‘확대’보다 높게 나타나 원자력발전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에너지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시도된 전국 단위 대규모 공론 조사

문재인 정부의 출범 이후 처음 시도된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시민참여형 공론 조사는 전문성을 이유로 관련 전문가 또는 지역 주민 등 직접 이해관계자 중심으로 논의되던 방식을 국민의 생활 이슈로 끌어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특히 양자택일 상황을 요구하던 과거 공적 의사결정구조에서 벗어나 선택의 폭을 넓혀서 대안을 모색하고, 국민을 대상으로 사회적 논의를 실시했다는 데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기존 공론 조사에 비해 표본의 규모가 대폭 확대된 점과 고도화된 표본 추출방식을 활용한 점은 조사의 신뢰성을 높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시민참여단의 높은 참여 덕분에 숙의 과정에서 다양한 관점의 기회를 제공하면서 서로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공론의 장’이 마련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전문가가 아닌 왜 일반 시민이 결정하는가

그러나 공론화 의제와 방식을 정하는 단계에서 충분한 논의와 검토가 필요했다는 의견도 제기됐습니다. 갈등이 첨예하고, 공론화를 저해할 만한 요인이 다수 존재하는 사안이었던 만큼 공론화 의제와 방식에 충분한 의견 수렴과 숙고가 없다면, 공론화는 또 다른 사회적 갈등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전문 영역의 결정을 전문가가 아닌 왜 일반 시민이 결정하는가”에 관한 의문 등 공론화 자체를 부정하거나 참여를 거부하는 이해관계자도 있어, 공론화 방법을 선정하는 단계에서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이 치밀하게 설계돼야 하는 부분입니다.

이처럼 공론화 절차에 관한 신뢰도를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찬반이 팽팽한 만큼 공론 조사라는 숙의 유형만으로 의사 결정의 공정성을 확보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이번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숙의 과정이 모든 문제에 해답을 제시하거나 갈등을 완전히 해소할 수 없습니다.

‘민주주의’라는 시스템이 전문가의 결정으로만 실현될 수 없듯이 민주주의를 이끌고 가는 시민의 참여와 숙고로 갈등을 해소하고, 대안을 찾는 게 요구되고 있습니다.  “기존에는 전문가와 생산자가 논의를 주도했다면 이제는 원자력 에너지를 실제 소비하는 시민들이 논의의 주체가 됐다”라는 김지형 공론화위원장의 말처럼 숙의를 활용해 사회적 논의를 이끌어가는 ‘시민 주인공’이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인터뷰 출처: BBC코리아, 김지형 공론화위원장: “좋은 절차가 정의일 수 있다”(링크)

– 글: 안영삼 미디어센터장·[email protected], 감수: 이규홍 대안연구센터 연구원·[email protected]

토, 2020/04/11-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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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코로나19 이후를 이야기하다’에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을 대응하고 있는 지방정부의 소식과 코로나19 시대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전문가의 시각을 시리즈로 전하고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언택트’(Untact: 비대면)와 공동체에 관한 고민을 담았습니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면서 ‘사회적 거리 두기’가 일상 속 깊숙이 스며든 가운데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짚어봅니다. 지역, 주민자치, 공동체 등의 키워드로 연구와 현장을 누비는 권선필 교수(목원대 행정학과)와 지난 4월 29일 화상회의를 통해 진행한 인터뷰를 전합니다.


▲지난 4월29일 화상회의를 통해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는 권선필 교수

Q.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학계에 몸담은 교수로서 어떤 변화를 겪고 있나요.
가장 큰 변화는 물론 강의입니다. 올해 초부터 시작해서 비대면 강의를 하고 있는데요. 비대면 강의 방식도 여러 형태로 실험 중입니다. 예컨대 화상회의 같이 실시간으로 하는 인터넷 강의, 파워포인트에 목소리를 입힌 발표자료 중심의 강의, 학생들과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인터넷 설문과 강의영상을 병행하는 블랜디드 러닝(blended learning) 방식 등을 다양하게 실험을 해보고 있습니다. ‘줌’ ‘마이크로소프트 팀즈’ ‘구글 클래스룸’ ‘시스코 웹엑스’ 등 다양한 영상협업 툴과 웹켐, 마이크, 필기마우스 등 다양한 도구들도 실험해 보고 있습니다.

Q. 갈수록 비대면 강의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코로나19가 지속되면서 대학본부의 지침도 다양한 수위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초기만 해도 수업시간에 해당하는 과제제출로 대치하다가, 강의 시간을 대치하는 멀티미디어 강의 파일을 업로드하면 되었는데, 이제는 강의 영상으로 제작하였고, 현재는 실시간 온라인 강의를 하는 방안까지 변화해왔습니다. 이전부터 구글 클래스룸이라는 도구를 활용해 강의한 적이 있지만, 본격적으로 비대면 강의를 진행하면서 여러 문제점과 대응 방안들도 눈에 들어오고 있습니다.

Q. 어떤 지점이 눈에 띄나요.
비대면 강의이다 보니 학생들이 얼마만큼 이해했는지를 중심으로 진행하고 있지만, 학생들의 반응은 갈라지는 것 같습니다. 대부분 교수가 어떻게 강의할지를 고민하는 입장에서 주로 이야기 하는데, 사실 중요한 것은 학생들이 얼마큼 동기부여가 되고 또 참여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는지가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참여 학생 중 약 4분의 1은 수업에 참여하기 어려운 상황에 있구요, 또 다른 4분의 1은 참여해도 집중하지 못하는 것 같고요. 학생의 처지와 상황에 따라 참여하기 어려운 경우도 종종 발생하기도 합니다. 결국 절반의 학생들만 온라인 강의에 제대로 적응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이렇게 역량이나 조건 동기부여 등의 측면에서 다양한 상황에 있다는 현실을 어떻게 반영해서 온라인 수업을 할지는 매우 어려운 과제라고 봅니다.

 

교육현장, 비대면 강의에 학생들의 다양성 반영이 관건

Q. 코로나19 국면이 장기화되고 있습니다. 어떤 지점이 눈에 띄나요.
우선 코로나19로 인한 현상에 대해 구체적인 근거(evindence)를 만들고 이 근거를 가지고 논의를 전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이러한 근거가 많이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정책이나 해결책이 이야기되는 것은 매우 위험할 수 있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지난 3월 말 대전광역시노동자권익센터와 코로나19 이후에 소득이 어떻게 변했는지에 관해 노동자 360명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였습니다. 정규직이 대다수인 55%는 소득의 변동이 없다고 답했지만, 나머지 45%는 소득이 줄었다고 답했고, 이 중 14%(프리랜서, 교육강사)는 수입이 아예 없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조사내용 보기)
이를 빗대어 보면 우리 사회의 10~15%가량 최악을 경험하고 있다는 건데 이런 구체적인 근거를 가지고 이들을 대변하는 목소리도 내야하고 또 이들을 도와줄 수 있는 방안의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방역 중심으로 논의들이 이뤄지고 있지만, 코로나19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현장 데이터에 기반해 의사결정을 하고, 혁신적 정책을 만들어가야 하는데 아직까진 기존의 생각하는 틀에 근거해서 해결책을 찾고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Q. 코로나19가 일상에 미치는 여파가 큽니다. 코로나19는 본질적으로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요.
코로나19가 가져오는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를 그려보면 ‘건강’에 대한 위협을 들 수 있습니다. 바이러스로 인한 생명의 위협은 매우 근본적인 문제인데요. 현재로선 그 누구도 코로나19가 언제쯤 끝날 거라고 예측하지 못하는 상황이기에 우리 스스로 보호할 수밖에 없습니다. 보호의 방법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이뤄지고 있습니다만, 이러한 ‘물리적 거리 두기’는 사람들 사이에 ‘무형적 관계’와 ‘유형적 거래’의 패턴을 모두 바꾸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시대에 ‘거리 두기’를 통해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관계 맺기를 하고 거래를 하는지를 면밀하게 관찰해야 합니다.

Q. ‘물리적 거리 두기’를 통한 새로운 관계 맺기를 좀 더 설명해주신다면요.
우리가 당장 바이러스로부터 스스로 보호하는 방법으로 ‘물리적 거리 두기’를 하고 있지만, 물리적 거리두기가 불가능해지기 지점이 있습니다. 자가격리를 해도 가족이나 주변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확진된 중환자가 되면 의료진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처럼요. 결국 물리적 거리두기와 사회적 관계맺기가 만나는 지점을 탐색하고 이 지점을 어떻게 바람직한 방식으로 끌고 갈 수 있을지를 살펴야 합니다. 기존처럼 ‘거리 두기’만 강조하므로 나타나는 불편함을 감수하고 견디는 방향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회적 관계 맺기’가 요구되고 있는 것입니다. 즉, 가족, 친구, 직장과 같은 가까운 사회부터 지역사회, 국가, 세계 차원과 연결되는 먼 사회의 구별이 재조정될 수밖에 없을 겁니다.

물리적 거리두기와 사회적 관계맺기 탐색 필요해

Q. 시민사회에서는 줄곧 사람이 모이는 공동체의 역할을 강조해왔지만, ‘언택트’가 확산하면서 공동체의 의미도 흔들리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다양한 공동체 활동이 벌어졌지만 실제 공동체는 이미 파편화되거나 아주 취약한 상황에 놓여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내가 거주하는 곳, 내가 일하는 곳, 내가 사람을 만나는 곳, 내가 문화를 향유하는 곳, 내가 여행하는 곳에서 각각 다른 공동체를 형성하고 그 공동체들 간에 별다른 연결점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시작된 거리두기 때문에 이러한 분절적 공동체들이 제 역할을 유지하기 어려워졌습니다. 과거처럼 자유로운 이동과 연결을 중심으로 바라보는 공동체는 현재로선 불가능합니다. 대신 오히려 주로 활동하는 물리적 근거를 중심으로 한 공동체가 필요하다는 것을 점점 더 확인하고 있습니다. 내가 발을 딛고 있는 물리적 기반이 어디인지, 그리고 거기서 출발하여 누구와 어떠한 신뢰 관계를 맺어갈지를 짚어봐야 합니다.

Q. 물리적 기반으로부터 공동체를 바라본다는 건가요.
우리가 공동체를 말하는 이유는 삶의 기반이 되는 의식주, 교통, 에너지 등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는 것이 원초적 이유입니다. 일례로 먹거리 문제를 떠올려보면 전염병으로 인한 사재기가 논란이 됐는데요. 사재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따져보면 내가 살고 있는 장소와 연관된 공동체로 해결할 수밖에 없습니다. 멀리 있는 곳에서 물건을 가져올 수 없으니까요. 삶의 모든 문제는 물리적으로 가까운 곳에서 해결할수록 비용도 적게 들고, 안전하며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습니다. 자가격리자의 경우 가족이 도와줘야 버틸 수 있고, 만일 가족이 없다면 가까운 거리에 있는 이웃이 함께 해줘야 견딜 수 있습니다. 지금껏 공동체를 말할 때 ‘물리적 거리(distance)’에 관해 아무런 고민을 하지 않았는데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거리두기(distancing)‘을 하면서 우리가 바라본 공동체가 거리 개념에 얼마나 취약했는지를 환기하고 있습니다.

Q. 코로나19를 겪고 있는 시민은 향후 어떤 가치를 염두하면 좋을까요.
그간 지나치게 사회성과 네트워크 중심의 공동체를 강조해온 반면 ’물리적 거리‘ 혹은 ’물리적 관계‘에 관해선 덜 관심을 쏟았던 것 같습니다. 물리적 관계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뿐만 아니라 자연과의 관계도 물리적 관계이지요. 이렇게 보면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17개 영역 중 어느 특정 영역이 중요한 게 아니라 전체 영역 고루 균형이 이뤄져야 하는 시점에 왔다고 봅니다. 공동체가 갖는 자연과, 물질과 이웃과의 관계가 갖는 다양한 측면이 고려되어야 하고, 이 모든 영역에서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도록 해야합니다. 모든 영역에서 최하 수준 이하로 떨어져도 안되고, 그렇다고 어떤 영역이 최상 수준 이상으로 넘쳐서도 안 됩니다. 우리는 통합적이고 균형적인 관점으로 사회와 공동체 활동을 다시 바라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통합과 균형적 관점이 반영된 공동체 사례를 알려주신다면요.
구체적으로 로컬푸드를 들 수 있습니다. 대전 지역에서 만든 로컬푸드생산자협동조합이 있는데, 코로나19 이후 매출 50%가량 상승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거리 두기’로 인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요리하는 분들이 늘었다는데요. 요리하는 사람이 단순히 늘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사람들끼리는 소비자협동조합이 왜 필요한지, 생산자협동조합은 어떻게 연결되어있는지 등 지역 내 믿을 수 네트워크를 새삼 확인하는 과정이 되고 있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백화점과 대형마트에서는 이익 극대화에 치우쳐져 있다면,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불안감을 겪은 사람들은 공동체성이 담긴 생협에서 누가 작물을 키웠는지, 어떻게 유통됐는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등 서로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나누며 신뢰를 쌓아가고 있습니다. 로컬푸드가 단순히 먹거리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삶의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되면서 통합해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Q. 마지막으로 코로나19 이후를 바라볼 때 시사점은 무엇일까요.
코로나 19 이후 시대는 결국 가까운 주변의 사람과 신뢰를 쌓은 다음에 협력하는 방식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관계에 대한 새로운 측면을 발견해서 공동체로 연결하는 지점을 찾아가는 게 필요합니다.

– 인터뷰 진행: 안영삼 미디어센터 센터장
– 인터뷰 정리: 방연주 미디어센터 연구원

수, 2020/05/06-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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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코로나19 이후를 이야기하다’에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을 대응하고 있는 지방정부의 소식을 비롯해 전문가와 현장 활동가의 이야기를 시리즈로 전하고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코로나19 대응과 보건의료의 개편방향에 관한 기고를 전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가 남긴 상처는 참혹하기 짝이 없다. 세계보건기구(WHO)는 1월 31일 중국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에 해당된다고 선언하고, 유럽, 미국 등 제반국가에 제대로 대비책을 갖추지 못하고, 속절없이 확진자와 사망자가 급증하는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장기전을 준비해야 한다는 전문가의 의견이 나오는 가운데 코로나19 이후 우리 사회가 어디로 가야 할까.

첫째, 보건의료 돌봄의 개편방향에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급속한 고령화와 빈곤이 가져오는 끔찍한 현실 앞 존엄한 삶에 대한 절실한 요구가 나온 것이 커뮤니티케어다. 커뮤니티케어는 고령화와 건강 불평등이 심화되는 우리 사회에서 고령화의 사회적 부담을 덜어주고, 건강 불평등을 완화하고 감염병의 대응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우리보다 고령화를 앞서 경험했던 유럽과 일본 사례를 보면, 지자체가 커뮤니티케어(통합돌봄)에 직접 나서서, 지역사회에서 필요한 돌봄의 수요, 서비스의 내용 등을 조사하고, 지역사회에서는 돌봄수요에 맞춰 서비스 제공인력을 발굴하고 역량강화를 했던 만큼 우리나라에서도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통합돌봄에 나서야 한다.

둘째, 보건의료, 돌봄의 개편은 시민들의 참여를 기반으로 해야 한다.

코로나 19는 전파가 빠른 특성을 가진다. 시민이 협조하지 않으면, 코로나19의 전파를 차단할 수 없고, 환자를 위험군에 따라 분류해 신속하게 치료하는 일도 불가능하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시민들의 차분한 대응은 코로나19 극복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향후 성숙한 시민이 각 사회 분야에서 역할을 할 수 있는 사회 구조로 개혁해야 한다. 중앙정부의 권한을 지방분권을 통해 지방정부로 내리고, 지방정부는 주민자치를 활성화하고 시민들과의 협력체계를 공고히 해야 한다. 보건의료 돌봄의 개편에서도 시민들의 참여가 중요하다.

셋째, 음압병상을 갖춘 공공병원을 확충한다.

사회적 위기에서 노인, 만성질환자, 장애인 등 건강 취약계층이 가장 큰 피해를 입는다. 이번 코로나19 감염자 가운데 만성질환이 있는 노인의 사망률은 일반인보다 10배 이상 높았다. 그러나 현재 (5월 15일 기준) 확진 환자만 6,868명이 발생한 대구에 국가지정 음압병상은 10개에 불과하다. 유럽과 일본에서는 감염병 전문병원을 공공으로 설립해 평소에는 사용하지 않아 적자가 나더라도 전문인력을 훈련·교육하며 운영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대선 공약으로 이를 약속했지만 사실상 하나도 진척시키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공공병원 병상은 10.4%에 불과해 OECD 꼴찌로 민간의료 의존도가 높다. OECD 국가에서 공공병원의 평균 비율인 73%까진 어렵더라도 최소한 20∼30% 정도로는 공공의료 병상을 확충해야 한다.

넷째, 주치의제 도입을 통해 시민들의 일상적인 건강관리를 강화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일차의료에 대한 개념이 부재하고, 소위 동네의원에 대한 국민의 만족도와 신뢰도가 낮은 관계로 환자가 여러 의료기관을 전전할 수밖에 없다. 환자의뢰체계의 부재로 인한 병원 의료이용 시 혼선과 낭비, 의료전달체계의 미숙한 발달로 인한 의료기관의 종별을 뛰어넘는 무차별적 경쟁 등 비효율적인 의료공급체계를 갖고 있다. 국민의 신뢰와 만족도가 높은 양질의 보건의료시스템을 가진 의료선진국은 제도화된 일차의료시스템, 즉, 주치의제도를 갖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의 전문의 중심인 동네의원체계보다 효율적이다. 일차의료의 질적 향상을 위한 투자와 노력이 있어야 하며, 의료제공자 중심이 아닌 시민 중심으로 일차의료를 재구성해야 한다.

다섯째, 지역에 기반한 정신보건의료체계를 구축한다.

코로나 19를 통해 정신병원의 반인권적 실태가 드러났다. 청도 대남병원 103명의 입원자 중 확진자가 101명으로 발병률이 무려 98%이다. 이중 사망자가 7명이다. 정신장애인들은 정신뿐만 아니라 몸도 오랫동안의 감금을 통해 황폐화되고 있다. 이미 선진국에서는 정신장애 대응의 방향을 탈수용화로 분명히 정하고, 지역에서 정신보건체계를 구축하기에 이르렀다. 만시지탄이지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정신장애인들의 건강관리를 병원에서 지역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반인권적인 요소를 지닌 정신병원 강제 입원은 없어져야 한다.

– 글: 임종한(한국일차보건의료학회장, 한국커뮤니티케어 보건의료협의회 상임대표, 인하의대 교수)

* 해당 기고의 원문은 <목민광장>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금, 2020/05/29-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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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제작소는 기획연재 ‘코로나19 이후를 이야기하다’ 시리즈와 함께 시민의 목소리를 담은 에세이 공모전 ‘코로나 19,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를 진행했습니다. 시민들이 공동체, 일상, 회복, 희망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편지, 칼럼, 수기 등 자유로운 형태로 일상을 전합니다. 이번에는 이원기 님의 에세이를 소개합니다.

코로나로 인해 우리가 겪은 물리적, 정신적 피해가 막대하고 아직도 그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 비록 사회에는 우울한 얘기가 가득하지만 나는 코로나 사태로 인해 내가 알게 된 사소하지만 즐거운 일들을 정리하면서 시간을 가져보았다. 요즘 나에게 위안이 되는 것들은 마스크 착용에서 비롯된다. 마스크 덕분에 내가 알게 된 것들은 다음과 같다.

1) J군의 헤어스타일 규칙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J군의 헤어스타일에는 규칙성이 있다. 평소에 나는 J군의 헤어스타일을 보고 ‘신경 쓴 날’과 ‘신경 쓰지 않은 날’로만 구분했다. 하지만 이 두 가지 헤어스타일에는 속에는 비밀이 있었다. 퇴근 전에 업무를 끝마친 날 다음 날에는 머리를 넘기고, 고정한다. 하지만 전날의 업무를 끝내지 못한 날에는 제품을 사용하지 않고 그냥 출근 한다. 이유를 물어보니 일종의 습관같은 것이라고 한다. 학부 때부터 인연이 되어 알고 지낸지 6년이 되어가는 J군의 헤어스타일의 규칙을 마스크 덕분에 발견할 수 있었다.

2) 검은색을 선호하는 B군

최근에 사무실에 들어온 B군은 검은색을 좋아한다. 그는 사무실에서 나눠준 흰색 마스크를 사용하지 않고 따로 구매한 검은색 마스크를 착용한다. B군에게 이유를 물으니 자신은 검은색이 좋아서 따로 구매했다고 한다. 얘기를 듣고 생각해보니 평소에도 B군은 검은색 옷을 자주 입었던 것 같다. 회식이나 부서 사진 속의 B군은 검은색 옷과 함께 있다. 다음에 B군에게 무언가 선물을 할 일이 생긴다면 그가 좋아하는 검은색으로 사줘야겠다.

3) 눈이 선한 K군

대학부터 동기였던 K군은 선한 눈을 가졌다. 사실 K군의 외모를 전체적으로 보면 이목구비가 뚜렷해서 강한 인상을 준다. 나 역시도 그래서 장기자랑을 하던 그의 첫 모습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나와 K군을 함께 아는 친구의 말에 따르면 K군은 처음 만났을 때 다가가기 힘든 인상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마스크를 낀 K군을 보니 그동안 몰랐던 그의 여린 눈빛을 알 수 있었다. 인상과 달리 다정하여 반전매력을 뽐내곤 했는데 이제서야 그가 가진 따뜻함이 눈에 담겨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코로나가 바꿔놓은 나의 사무실 풍경은 외관에서 느껴지는 거리감과는 달리 온기가 있다. 우리 사이에는 마스크 착용 덕분에 알게 된 사실들에서 이어지는 시시한 이야기 주제가 있다. 조용한 사람들끼리 모여 있어서 적적했던 사무실은 이제 나름 서로의 목소리로 북적거린다. 코로나 사태가 빨리 마무리되길, 우리의 일상에 예상치 못한 유쾌한 일들이 생기길 응원한다.

– 글: 이원기 님

화, 2020/06/09-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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