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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아랍의 봄’ 이후 시리아 – 8개의 핵심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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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아랍의 봄’ 이후 시리아 – 8개의 핵심 사실

익명 (미확인) | 화, 2016/03/15- 16:11
러시아 군이 폭격한 지역에 서 있는 소녀©REUTERS/Bassam Khabieh

러시아 군이 폭격한 지역에 서 있는 소녀 ©REUTERS/Bassam Khabieh

5년 전 발사르 알 아사드(Bashar al-Assad) 정부는 2011년 3월 15일에 시작한 대규모 시위를 난폭하게 진압했다. 그러한 폭력적인 대응은 최악의 무력 충돌을 일으켰다.

1. 유엔에 따르면 25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죽었다. 전쟁범죄와 인도주의에 반하는 범죄가 만연하다.

2. 그 이후로 시리아 내에 있는 7백만명의 사람들과 터키, 레바논, 요르단 등 해외에 있는 4백만명의 난민을 포함하여 1,100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집을 잃고 떠돌아다니게 됐다. 수만명의 시리아 난민들은 생명의 위험을 무릎쓰고 유럽으로 피난을 갔다.

전쟁을 피하고자 국경을 넘는 시리아 사람들©BULENT KILIC/AFP/Getty Images

전쟁을 피하고자 국경을 넘는 시리아 사람들©BULENT KILIC/AFP/Getty Images

3. 정부군은 반복적으로 ‘드럼통 폭탄(barrel bomb)’ 등의 무차별적 무기를 사용해 민간인 지역을 공격하고 폭격했다. 정부군은 음식과 의약품 및 다른 필수품들을 약탈하기 위해 병원을 폭격하고, 의료진들을 겨냥하는가 하면, 반대진영에 대한 장시간의 포위를 감행했다. 인권의사회(Physicians for Human Rights)에 따르면 2015년 한 해 동안 112개의 의료 시설이 공격받았는데, 대부분이 정부군의 소행이었다.

“그 친구가 사라졌다는 것이 아직도 믿기지 않아요. 제 자신과 제 영혼의 일부를 잃은 것 같아요. 그의 생사를 아는 것은 우리의 권리입니다.”
– 2011년 11월 이후 실종된 의사이자 활동가인 무하마드 바시르 아랍(Mohamed Bachir Arab)의 친구

폭격을 피해 도망치는 사람들 ©AFP/Getty Images

폭격을 피해 도망치는 사람들 ©AFP/Getty Images

4. 시리아인권네트워크(Syrian Network for Human Rights)에 따르면 대략 6만 5천 명의 사람들이 정부 보안군에게 체포되고 비공식적 수용소에서 실종된다. 전쟁 때문에 집을 잃은 사람들을 도와주는 활동이나 시리아의 상황을 공개적으로 알리는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투옥되기도 했다. 변호사, 의사, 기자들은 자신의 역할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구금되었다.

5. 정보국과 정부군은 광대한 범위에서 고문을 자행했다. 2011년 이후, 수천명이 식량 및 의료 접근에 대한 결핍 등의 이유로 감옥에서 죽었다.

6. 자칭 이슬람국가(IS)인 무장단체는 민간인 지역을 폭격했고 많은 수의 민간인과 포로를 살해했다. 무장단체는 기자, 평화활동가, 반대 세력으로 감지되는 사람들을 납치하고 고문하고 사형시켰다. IS는 음식과 의료 공급 및 필수품을 얻고자 고투하는 사람들이 사는 민간인 지역을 포위하기도 한다.

7. 자브하트 알누스라(Jabhat al-Nusra) 등의 다른 무장단체도 민간인 지역을 공격하고 반대 세력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을 납치하고 억류된 사람들을 살해했다.

8. 알 아사드 정부의 지원으로 한 러시아의 공습은 수백명의 민간인을 살해하고 의료시설을 파괴했다.

러시아군의 공습 이후 생존자를 찾고 있는 주민들 © Khalil Ashawi/REUTERS

러시아군의 공습 이후 생존자를 찾고 있는 주민들 © Khalil Ashawi/REUTERS

영어전문 보기

Syria after the ‘Arab Spring’: Eight key facts

Five years ago, Bashar al-Assad’s government brutally suppressed mass protests which began on 15 March 2011. The violent response sparked the region’s most severe armed conflict.

1. More than 250,000 people have been killed, according to the UN. War crimes and crimes against humanity are rife.

2. Since then, more than 11 million people have been forced from their homes, including around 7 million people within Syria and more than 4 million who are now refugees abroad, mostly in Turkey, Lebanon and Jordan. Tens of thousands of refugees from Syria have also fled to Europe, often risking their lives in the process.

3. Government forces have repeatedly shelled and bombed civilian areas using indiscriminate weapons, including barrel bombs. They’ve also bombed hospitals, targeted medical workers and mounted long-running sieges of opposition-held areas, depriving people of food, medicines and other necessities. According to Physicians for Human Rights, 112 medical facilities were attacked in 2015 alone, the majority by government forces.

4. According to the Syrian Network for Human Rights, approximately 65,000 people have been arrested by government security forces and are now missing in a network of unofficial detention centres. Others have been jailed for helping people forced from their homes by the fighting, or for speaking out about the situation in Syria. Lawyers, doctors and journalists have been locked up just for doing their jobs.

5. Intelligence agencies and other government forces continue to use torture on a massive scale. Thousands have died in custody since 2011 due to torture and other factors, including lack of food and medical access.

6. The armed group calling itself the Islamic State (IS) has shelled civilian areas and killed scores of civilians and prisoners. The group has abducted, tortured and executed journalists, peaceful activists and other perceived opponents. IS also besieges civilian areas, which means people struggle to get food, medical supplies and other necessities.

7. Other armed groups including Jabhat al-Nusra have also attacked civilian areas, abducted suspected opponents and killed captives.

8. Russian air strikes in support of the al-Assad government have killed hundreds of civilians and struck medical facilities.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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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제르바이잔 전 대통령의 동상에 낙서 한 혐의로 2016년 5월부터 구금돼 있는 청년 활동가 바이람 맘마도프(Bayram Mammadov)에게 바쿠 중대범죄재판소에서 징역 10년형을 선고한 것은, 반대세력을 완전히 축출해내려는 아제르바이잔 정부의 몰염치한 시도이다.

데니스 크리보시에프(Denis Krivosheev) 국제앰네스티 유럽중앙아시아 부국장은 “바이람 맘마도프는 조각상에 그래피티를 남겼다는 이유로 체포된 후, 중대한 마약범죄를 저질렀다고 ‘자백’하도록 고문을 당했다. 바이람에게 적용된 혐의는 그의 활동을 이유로 처벌하려는 목적만으로 날조된 것이다. 이미 오랜 시간 동안 부당한 구금을 당했던 바이람에게 이처럼 터무니없이 긴 징역형을 선고한 것은 아제르바이잔의 모든 평화적 활동가에게 충격적인 일”이라며 “아제르바이잔 정부는 표현의 자유를 철저히 무시하고 있으며, 모든 비판을 틀어막고 있어 진실을 짓밟으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바이람이 당했던 고문과 부당대우에 대해서도 독립적인 조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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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람 맘마도프와 동료 활동가인 기야스 이브라히모프(Giyas Ibrahimov)가 체포된 것은 2016년 5월 9일이다. 전 아제르바이잔 대통령이자, 현 대통령인 일함 알리예프(Ilham Aliyev)의 아버지이기도 한 고(故) 헤이다르 알리예프(Heydar Aliyev)의 동상에 페인트 스프레이로 낙서를 한 사진을 바이람이 페이스북(Facebook)에 포스팅 한 뒤 벌어진 일이었다. 기야스 이브라히모프는 바쿠 중대범죄재판소(Baku Grave Crimes Court)에서 마약 관련 혐의로 지난 10월 25일 징역 10년형을 선고받았다.

경찰은 이들의 소지품에서 헤로인 8g가량을 발견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바이람과 기야스는 누군가 몰래 넣은 것이라고 밝혔으며, 심문 과정에서도 경찰은 마약이 아닌 낙서에 관해서만 질문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들에게 헤이다르 알리예프 전 대통령을 모욕한 것에 대해 공개적으로 사과하라고 거듭 요구했으며, 거부할 경우 심한 폭행을 가했다. 두 사람의 변호인은 이들이 심문 이후 온 몸에 멍이 들 정도였고, 강간하겠다는 위협도 당했다고 밝혔다. 또한 경찰은 두 사람에게 경찰서 화장실을 청소하게 하고, 수치를 주기 위해 그 모습을 촬영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바이람 맘마도프와 기야스 이브라히모프는 국제앰네스티의 2016 Write for Rights 캠페인의 사례자이다. 이번 12월 전세계 수백만 명이 아제르바이잔의 일함 알리예프 대통령에게 바이람과 기야스를 즉시 조건 없이 석방하라고 촉구할 예정이다.

배경

기야스 이브라히모프와 바이람 맘마도프는 대학생이자 민주화운동 청년단체인 NIDA의 회원이다. 이들의 체포 원인이 된 낙서 문구는 “즐거운 노예의 날(Happy Slave Day)”로, 5월 10일 고 헤이다르 알리예프 전 대통령의 생일을 기념하는 “즐거운 꽃의 날(Happy Flower Day)”이라는 문구를 비꼰 것이다. 조각상의 반대편에는 비속어를 사용해 정치적 항의의 메시지를 남겼다.
아제르바이잔의 시민사회와 정치적 반대세력은 혹독한 억압을 받고 있으며, 인권단체는 괴롭힘과 박해를 당하는 일이 빈번하다. 모든 주류 언론매체는 정부의 통제 하에 있다. 독립적인 매체는 괴롭힘을 당하고 폐쇄 위기에 있으며, 독립적인 기자들 역시 협박과 괴롭힘, 위협, 폭력에 직면해 있다.

수, 2016/12/14-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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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병우, 민정수석 되기 직전 최순실과 여러번 골프쳤다”…특검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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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수석에 임명되기 전 비선실세 최순실 씨와 여러 차례 함께 골프를 쳤다는 관련자 진술을 특검이 확보했다. 이 중 최소 한 차례 이상의 골프 회동에선 우 전 수석의 장모 김장자 씨와 프로골퍼 A씨도 함께 했다. 이들이 함께 골프를 친  곳은 우 전 수석의 장모 김장자 씨가 운영하는 기흥CC이다. 특검은 최근 프로골퍼 A씨에 대한 참고인 조사 과정에서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뉴스타파는 특검과 기흥CC 등에 대한 취재를 통해, 이들의 골프 회동 시점 중 하나를 확인했다. 또 일시가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골프 모임도 여러번 있었다는 관련자들의 증언을 특검이 확보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그 동안 우병우 전 수석이 국회 청문회 등에서 최순실 씨를 전혀 모른다고 증언해 왔기 때문에 우 전 수석과 최순실 씨의 골프 회동 사실은 큰 파장을 몰고 올 것으로 보인다.  

기흥CC에서 우 전 수석 장모 김장자, 프로골퍼 한 명도 동행

특검이 확인한 우 전 수석과 최순실 씨의 골프 회동 시기는 우 전 수석이 민정수석이 되기 직전이다. 우 전 수석이 2015년 2월 민정수석에 올랐음을 감안하면, 골프 회동은 2014년 말~2015년 초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우 전 수석은 민정비서관으로 재직중이었다. 다음은 특검 등을 통해 확인한,  우병우-최순실 골프 회동 동반자인 프로골퍼 A씨의 특검 진술 내용.

“우병우 전 민정수석, 최순실 씨와 골프를 친 사실이 있다. 여러번 골프 회동을 가졌다. 우 전 수석의 장모인 김장자 씨도 함께했다. 당시 우 전 수석은 민정비서관으로 재직중이었다. (같이 골프를 치고) 얼마 후 민정수석이 됐다.” (프로골퍼 A 씨)

우 전 수석은 그 동안 국회 청문회 등에서 최 씨를 전혀 모른다고 주장해왔다. 지난해 12월 22일 국회 청문회에 출석한 우 전 수석은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의원과의 질의응답에서 이렇게 답했다.

“손혜원 의원 : (우 전 수석이) 2013년 변호사 시절, 최순실 씨와 기흥CC에서 여러번 골프 회동을 했다는 얘기가 있다. 여러차례 골프회동을 했다는 증언이 있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 : 전혀 사실이 아니다. 나는 최순실을 모른다.
(2016년 12월 22일 국회 청문회)

우 전 수석은 장모인 김장자 씨와 최순실 씨의 관계에 대해서도 부인해왔다. 지난해 11월 최순실 씨의 측근이었던 차은택 씨 변호인이 “최순실 씨와 우 전 수석의 장모인 김장자 삼남개발 회장이 지난 2013년 기흥CC에서 라운드를 함께하는 등 수차례 골프회동을 했다”고 폭로했지만, 우 전 수석은 의혹을 부인했다.

최순실 씨도 서울구치소에서 진행된 청문회에서 우병우 전 수석은 물론 장모인 김장자 씨를 모른다고 주장한 바 있다.

특검 관계자는 우 전 수석이 그동안 해온 주장에 대해 이런 입장을 내놨다.

“최순실 씨를 모른다는 우 전 수석의 주장은 거짓말이라고 특검은 판단하고 있다. 국회 위증 혐의도 있다.”

(특검 관계자)

“우 전 수석 국회 위증 혐의 있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 측과 최순실 씨의 관계는 뉴스타파 보도를 통해서도 이미 수차례 확인된 바 있다. 뉴스타파는 2015년 4월부터 9월까지 수 차례에 걸쳐 우 전 수석의 장모인 김장자 씨 측이 최 씨 소유 회사인 티알씨와 존앤룩씨앤씨에서 여러차례에 걸쳐 600만 원대 원두커피를 구매한 사실을 보도했다. (관련기사1 , 관련기사2) 우 전 수석 측과 최 씨가 이 같은 거래를 한 때는 우 전 수석이 민정수석에 임명된 직후였다.

20170209_002

블랙리스트와 이화여대 관련 의혹에서 상당한 성과를 낸 특검은 최근 우 전 수석에 대한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혐의 내용이 20개가 넘는다는 말도 특검 주변에서 나올 정도다. 최순실 씨의 국정농단을 묵인, 방조했다는 의혹부터 아들의 병역특혜 의혹, 처가 회사의 돈으로 고가의 미술품을 사들였다는 의혹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특검은 블랙리스트 수사 과정에서 우병우 전 수석이 문체부 소속 공무원들을 불법 감찰한 뒤 한직으로 좌천시키는 데 관여한 의혹도 확인한 상태다.

특검은 지난 8일 “다음주 중 우 전 수석을 소환조사”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 동안 확인되지 않았던 우병우 전 수석과 최순실 씨의 관계가 결국 특검 수사로 확인됐기 때문에 우 전 수석에 대한 수사와 신병처리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목, 2017/02/09-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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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지기스탄 대통령 에모말리
라흐몬 © AFP/Getty Images

타지키스탄 정부가 형사사법제도에 정치적으로 개입하고 억압적인 법률을 도입하며 법조계에 중대한 타격을 입히고 있다.

타지키스탄 정부는 정당한 직업 의무를 행사했다는 이유로 처벌하는 등, 국내 변호사들을 위협, 탄압하고 침묵시키기 위해 다수의 억압적 전략을 사용했다. 지난 2년간 변호사 자격 보유자 수는 절반 이하로 급격히 감소했다.

데니스 크리보셰프(Denis Krivosheev) 국제앰네스티 유럽중앙아시아 부국장은 “정부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감금되고 독립된 언론이 침묵하는 등 기본적인 자유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 국가에서 변호사, 특히 인권변호사들은 권리가 위협받은 사람을 보호하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했다.

정부의 변호사들을 향한 무자비한 공격으로 변호사 수는 급격히 줄어들었으며 이들의 독립성은 제한됐다. 직업적 의무를 우선시한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데니스 크리보셰프(Denis Krivosheev) 국제앰네스티 유럽중앙아시아 부국장

변호사 자격 보유자 수는 2015년 1200명 이상이었으나 현재는 600명에 불과한 수준으로 급감했다.

“극단주의” 혐의로 기소된 고객을 변호한 변호사들은 자신들 역시 보복성 체포를 당하거나 불공정재판에 따른 장기간의 징역형을 받는 등 정부로부터 부당한 박해와 괴롭힘을 받을 위험이 더욱 높아졌다. 변호사 가족들 역시 타지키스탄 정보당국과 지역 정부로부터 괴롭힘과 위협을 당하고 있다.

변호사 부조르그메크르 요로프(Buzurgmekhr Yorov)와 누리딘 마크카모프(Nuriddin Makhkamov)는 2015년 9월, 최근 활동이 금지된 야당인 타지키스탄 이슬람부흥당 소속으로 구금된 당원들을 변호했다. 현재 두 변호사는 테러 관련 혐의로 각각 20년 이상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가족과의 면회도 거의 허용되지 않은 채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다.

요로프와 마크카모프가 체포된 후 일부 동료 변호사들이 이들을 변호할 준비를 했다. 변호를 맡은 무아자마콘 카디로바(Muazzamakhon Kadyrova)도 체포될 위험이 임박해 해외로 피할 수밖에 없었다.

타지키스탄 정부는 변호사들을 비롯해 모든 사람의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 타지키스탄의 변호사들은 모두 아무런 방해나 보복의 우려 없이 자신의 직무를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월, 2017/05/29-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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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출마를 선언한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이 지난해 공직자 재산 신고에서 부친으로부터 상속받은 거액의 부동산을 누락해 신고한 사실이 뉴스타파 취재를 통해 확인됐다. 공직자 윤리법 위반에 해당되는 것으로 현행 공직자윤리법은 상속 재산이라도 사실상 소유한 재산에 대해 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뉴스타파 대선후보 검증팀은 유 의원과 그의 부친 유수호 전 의원의 신고 재산을 전수조사했다. 그 결과 지난 2015년 11월 사망한 유수호 전 의원 명의의 부동산 일부가 유 의원과 그의 형제들에게 분할 상속됐다는 사실을 확인할수 있었다.

이 가운데 유 의원이 상속받은 부동산은 모두 4건이었다. 4건의 부동산 모두 유 의원의 형인 유승정 전 서울남부지법 법원장과 공동 상속을 받았다.

유승민 의원이 상속 받은 소유 지분은 유수호 전 의원이 거주하던 대구 대명동 자택의 토지 일부(공시가 기준 약 2.65억 원)와 건물(공시가 기준 약 3.37억 원), 유 전 의원이 생전에 보유했던 대구 남일동 빌딩의 상가(가액 8.1억 원), 그리고 영주시 풍기읍 백리에 있는 임야 18700여 ㎡(가액 1,600만 원)다. 일반적으로 시세보다 낮게 책정되는 공시가와 신고가로 환산해도 이들 부동산의 가액은 14억 원이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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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대구 도심에 위치한 남일동 상가의 경우, 별도의 임대료가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이 상가에는 대형 학원이 입주해 있다. 인근 부동산업자는 한 달의 300만 원 안팍의 임대료가 가능한 위치라고 말했다. 빌딩 관리업체는 상가 임대료가 유의원 형제에게 바로 지급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2016년 3월 공시된 유 의원의 재산 신고 내역에는 이들 상속 부동산 4건을 신고하지 않았다. 공직자윤리법(6조 ‘변동사항 신고’)에 따르면,  재산변동신고는 이전 연도의 12월 말일 기준으로 작성해 이듬해 2월까지 신고하도록 돼 있다. 유 의원의 부친 유수호 전 의원이 별세한 시점은 지난 2015년 11월 7일이다. 당시 상속받은 재산은 현행법 상 공직자 재산 신고 대상에 포함된다.   

이번에 뉴스타파 취재를 통해 확인된 상속 재산까지 합하면 유승민 의원의 전체 재산은 50억 원이 넘는20170302다. 그는 2016년 3월 국회공보에 공개된 유 의원의 재산 신고액은 36억여 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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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의원이 상속받은 재산의 등기부 등본에 따르면, 상속 후 부동산의 등기는 유수호 전 의원이 별세한지 6개월이 지난 2016년 5월에서야 이뤄졌다. 시점상 유 의원이 20대 총선을 치르고 난 뒤다.  현행법상 상속받은 부동산의 등기 시기를 제한하는 규정은 없다.  

하지만 공직자윤리법 시행규칙 등에 따르면 상속중인 재산 등 등기 명의인이 아직 아니지만 사실상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는 경우에도 반드시 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공직자윤리위원회 관계자는 뉴스파와의 통화에서 “등기 명의인이 아니더라도 사실상 소유하고 있는 부동산을 재산 신고 과정에서 누락한 것은 엄연히 위법”이라고 설명했다.

“시행규칙 등에 따르면 상속 재산을 포함, 본인의 명의로 되어있지 않은 재산이라도 실소유하고 있으면 사유를 기재하고 신고도록 되어 있다. 누락했을 경우 상급기관에 통보하여 징계에 처하게 하거나 경고를 할 수 있다.” – 공직자윤리위원회 관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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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직자윤리법 시행규칙 별지 ‘재산변동사항 신고서’의 ‘작성방법’란에는 ‘상속 중인 재산’ 역시 신고 대상에 포함된다고 명기 돼 있다.

이 때문에 이른바 금수저 논란을 피하기 위해, 새로 생긴 상속 재산을 고의로 누락해 전체 재산 규모를 줄이려 하지 않았냐는 의혹을 불러일으킨다. 실제 유 의원은 20대 총선에서 이른바 ‘배신자 파동’으로 인해 새누리당 공천 탈락과 무소속 출마라는 정치적 시련을 겪었다.

이에 대해 유승민 의원은 취재진과의 만남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얼마되지 않아 신고하지 못한 것”이라며 “2017년 재산신고 때는 (누락됐던) 부분들을 다 반영했다”고 말했다.

또 유 의원 측 관계자는  “(당시 재산 신고 과정에서) 실무자의 실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2016년 재산신고 당시 공직자윤리위나 선관위의 지적이 없었고 상속재산 신고에 대한 별도의 설명도 없었다”고 해명했다. 또 상가 임대료 부분에 대해서도 “임대사업자등록과 관련 세금 납부 등 모든 과정을 정상적으로 완료한 상태다”고 밝혔다.   

최근 경제력 없는 대학생 자녀가 2억 원 가까운 예금을 보유한 것으로 드러난데 이어, 공시지가 등으로만 14억 원 넘는 상속 재산을 신고하지 않은 사실까지 확인되면서 유승민 의원을 둘러싼 도덕성 논란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은 대구에서 4선을 한 중진 의원이다. 미국 위스콘신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고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을 지낸 ‘경제통’이다. 2015년 2월 새누리당 원내대표에 선출됐지만, ‘배신자 파동’을 겪고 중도 사퇴했다.   


취재: 오대양

촬영: 김기철, 김남범

편집: 정지성

목, 2017/03/02-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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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은 해방과 한반도 분단 70년이 되는 해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한반도의 평화는 여전히 요원해 보입니다. 70년 전, 일본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의 비극은 핵무기가 인류에 미치는 재앙적인 영향을 생생하게 보여주었지만 갈등과 대결, 군비경쟁의 악순환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북한의 핵 위협, 그에 따른 미국 핵 자산의 한반도 진입과 일본의 재무장, 그리고 여기에 대응하기 위한 중국의 군사력 확충까지 한반도를 둘러싼 국가들의 군비 경쟁은 70년이 지난 지금 당시보다 더 심각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이 불안하고 위험한 악순환의 고리를 언제까지 그냥 두어야 할까요?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과 '참여연대'는 이 악순환의 출발 지점인 정전체제의 한계를 진단하고, 한반도에 살고 있는 시민들의 안녕과 평화를 보장하는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2015, 이제는 평화' 연재를 시작합니다. 다양한 분야의 필진을 통해 현안에 대한 분석과 대안, 국방·외교 분야를 바라보는 평화적인 관점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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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자 수도 모르는 시리아 내전…돌파구 없나

[2015, 이제는 평화] 2차대전 이후 최대 난민 위기, 해법은?

 

김재명 (성공회대 겸임교수, 평화군축센터 실행위원)

 

 

UN조차 사망자 집계 포기

 

지난 4년 동안 인구 1800만의 시리아 민중은 내전의 불길에 휘말려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다. 2011년 '아랍의 봄' 이후 시리아 민주화를 둘러싸고 일어난 내전은 국제연합(UN)조차도 사망자 집계를 포기했을 정도로 혼란 상태다. 영국에 본부를 둔 '시리아 인권 관측소'(The Syrian Observatory for Human Rights, SOHR)는 시리아 내전 사망자가 30만 명에 이른다고 밝혔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추정치일 뿐이다.

 

통계의 신뢰도를 둘러싼 논란 때문에 유엔은 아예 희생자 집계를 하지 않고 있지만, 시리아 내전 사망자는 20만 명쯤으로 추정된다. 전쟁 연구자들이 널리 합의하는 전쟁 개념의 양적 기준은 '1년 동안 쌍방 사망자 1000명'이다. 시리아는 이 기준선을 내전 발생 첫해인 2011년에 이미 넘어섰고 2012년, 2013년, 2014년, 2015년에도 사망자가 1000을 훨씬 웃도는 '전쟁 중인 국가'가 됐다. 정확한 숫자는 누구도 알 수 없지만 2014년 한 해 동안에만 7만 명이 사망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2차 대전 이후 최대 난민 위기

 

사망자도 엄청나거니와, 전쟁이 일어나면 어김없이 생기는 난민 문제도 심각하다. 6월 20일 '세계 난민의 날'(World Refugee Day)을 맞아 난민을 돕는 유엔의 국제기구인 유엔난민기구(UNHCR)가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시리아 인구 절반을 넘는 1천만 명에 이르는 난민(국내 760만, 국외 388만)이 생겨났다. 시리아 난민 규모는 지구촌의 고질적인 분쟁지역인 아프가니스탄(259만 명), 소말리아(110만 명)보다 많다. 시리아는 '최대 난민 배출국'이란 오명을 얻었다. 

 

내전을 피해 이웃 국가들로 떠난 시리아 난민
내전을 피해 이웃 국가들로 떠난 시리아 난민 ⓒAP=연합뉴스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인 2000년 12월 4일, 유엔총회는 6월 20일을 '세계 난민의 날'로 정하자는 결의안(A/RES/55/76)을 통과시켰다. 돌이켜 보면 '난민의 날'을 처음 정한 곳은 아프리카 대륙이다. 콩고, 나이지리아를 비롯한 아프리카 대륙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난민을 가장 많이 만들어낸 곳이다. 아프리카 지역 기구인 아프리카통일기구(AU)는 1974년부터 6월 20일을 '아프리카 난민의 날'로 정하고 해마다 이날을 기림으로써 난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UNHCR이 6월 20일 난민의 날을 맞아 밝힌 최근 통계자료에 따르면, 난민의 숫자는 전년보다 크게 늘어났다. 2014년 말 현재 전쟁으로 집을 떠난 실향민 숫자는 5770만 명에 이른다(2013년 말 5000만 명). 이 가운데 국경을 넘은 전통적 의미의 난민(refugee)은 1950만 명이다(2013년 말 1670만 명). 이 가운데 510만 명의 팔레스타인 난민이 포함되어 있다.

 

시리아 내전이 터지기 전까지만 해도 가장 많은 난민을 보유하고 있던 분쟁 지역은 팔레스타인이었다. 앞의 통계대로 전 세계 난민 4명 가운데 1명이 이스라엘에 의해 삶의 터전을 빼앗긴 팔레스타인 사람들이다. 이제 햇수로 내전 5년을 맞이한 시리아는 팔레스타인에 버금가는 난민 공급국이라는 서글픈 현실을 맞이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난민 위기가 지금 시리아에서 생겨나는 중이다. 

 

난민 400만 명, 중동 5개국에 밀집

 

국경을 넘은 시리아 난민의 숫자는 해를 거듭할수록 늘어나고 있다. UNHCR에 따르면 2012년 말에 등록된 시리아 난민은 50만 명이었으나, 2013년 말 232만 명, 2014년 말 322만 명, 2015년 6월 현재 400만 명에 이르는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는 중이다. (출처 : Syria Regional Refugee Response)

 

현재 시리아 난민의 98%가 머무는 곳은 터키, 레바논, 요르단, 이라크, 이집트 등 지리적으로 가까운 중동 주변 5개 국가다. 시리아와 북쪽 국경을 맞댄 터키에 가장 많은 180만 명의 난민이 머물고 있고, 그다음이 서쪽 국경을 맞댄 레바논에 120만 명, 남쪽 국경을 맞댄 요르단에 63만 명 순이다. 그리고 24만 명의 난민은 이슬람국가(IS)와의 군사적 대치 상황으로 정세가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인 이라크로까지 피난 보따리를 쌌다.

 

난민 홍수 경계하는 서유럽

 

중동 주변 국가들에 머무는 시리아 난민은 절대 빈곤선 이하의 어려운 삶을 이어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UNHCR에 따르면 시리아 난민 중 75%는 여성과 아이들이다. 일부 여성 난민들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거리 매춘에 몸을 내맡기고, 어린이들은 구걸이나 벽돌 나르기 등 힘든 노동에 동원된다는 소식이다. 중동의 이슬람 자선단체들이 무슬림 형제애를 바탕으로 난민들을 도우려 하지만, 워낙 숫자가 많아 큰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많은 시리아 난민들이 서유럽으로 떠나고 싶어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일부 사람들은 귀금속 등 가진 재산을 팔아 마련한 현금을 브로커에게 건네고 목숨을 건 먼 길을 나선다. 하지만 브로커에게 사기를 당해 중간에 오도 가도 못하는 처지가 되거나 바다 또는 육로에서 목숨을 잃기도 한다. 

 

어렵사리 목적지에 닿는다 해도 이들 난민을 따뜻하게 반겨줄 이는 없다. 이미 1990년대 발칸 반도의 보스니아와 코소보 전쟁 때 난민 홍수를 겪은 바 있고, 리비아 등 아프리카 난민으로도 머리가 아픈 서유럽 국가들은 시리아 난민을 흔쾌히 받아주지 않으려 한다. UNHCR은 시리아 난민 수천 명을 유럽 북부 지역 국가로 이주시키는 계획을 마련했지만 당사국들의 태도는 미적지근하기만 하다. 

 

국내실향민(IDPs) 문제는 더 심각 

 

국경을 넘는 전통적 의미의 난민이 겪는 고통도 문제이지만, 국경을 넘지 못한 채 시리아 국내를 떠도는 760만에 이르는 '국내 실향민'(Internally Displaced Persons, IDPs)의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이들은 말 그대로 생존의 벼랑 끝에 내몰려 있다는 소식이다. 안토니오 구테레스 유엔 난민고등판무관이 "시리아인들을 악몽과도 같은 고통에서 구제하기 위하여 더욱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고 외쳐도, 현실적으로 내전 중인 시리아 안으로 들어가 피난민들에게 다가가기는 쉽지 않다.

 

지난 1951년에 제정된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The Refugee Convention)에 규정된 '난민'의 전통적인 개념은 '인종, 종교, 국적,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다는 충분한 근거가 있는 공포로 인하여, 자신의 국적국 밖에 있는 자', 다시 말해서 국경을 넘은 사람들을 가리켰다. 

 

국경을 넘은 난민은 국제사회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지만, 국경을 넘지 못하고 국내에 머무는 국내 실향민(IDPs)에게 도움의 손길이 미치기는 어렵다. 2011년 말 전 세계 IDPs 숫자는 2600만 명쯤으로 집계됐었다. 그런데 2015년 3800만 명을 훌쩍 넘어섰다. 시리아 내전으로 760만 명에 이르는 새로운 국내 실향민들이 생겨난 탓이다. 

 

시리아 북부도시 알레포와 중부도시 하마, 홈스, 그리고 수도인 다마스쿠스 주변은 정부군과 반군 사이의 뺏고 빼앗기는 격전을 거듭하면서 주거지가 크게 파괴됐다. 많은 도시민들은 거듭되는 포격전을 피해 지하실에서 어렵게 살아가거나 저마다 살길을 찾아, 연고지를 찾아 지방으로 떠났다. 하지만 피난처라고 해서 내전의 불똥이 튀지 않을 이른바 '안전지역'이란 거의 없다. 기본적인 생필품이나 의약품은 바닥이 났다. 그야말로 한계상황에 내몰렸다.

 

시리아 반군들이 정부군의 공습으로 파괴된 홈스의 건물 주위에 모여 있다
시리아 반군들이 정부군의 공습으로 파괴된 홈스의 건물 주위에 모여 있다.  ⓒAP=연합뉴스

 

시리아 내전이 끝나 고향으로 돌아갈 희망은 지금으로선 실낱같다. 예전의 삶을 복원한다는 것은 꿈도 꾸기 어렵다. 문제는 갈수록 처지가 더욱 각박해진다는 것이다. 처분할 재물도 바닥이 나고 건강 상태도 나빠지기 마련이다. 국경을 넘은 난민이든 국내에 남은 실향민이든 삶이 고단하기는 마찬가지다. UNHCR이 레바논 도시지역에 머무는 4만 명의 시리아 난민을 조사해보니, 3분의 2가 절대 빈곤선을 밑도는 궁핍한 처지인 것으로 나타났다. 

 

내전이 그쳐 난민이 돌아가려면

 

시리아 내전은 언제 끝날 것인가. 난민은 언제 돌아갈 수 있을까. 지금은 긴 어둠의 터널 속이다. 2대에 걸친 독재체제, 하페즈 알 아사드(1970~2000)에서 바샤르 알 아사드(2000~현재)에 걸쳐 45년 동안 시리아에서 철권을 휘둘러온 아사드 일족의 체제 수호 의지는 완강하다. 그에 맞선 반정부 무장세력도 친미(자유시리아)와 반미(이슬람국가)로 갈려 수도인 다마스쿠스를 점령할 힘을 하나로 모으지 못하고 있다. 

 

특히 미국의 중동 정책이 시리아 내전을 끝내지 못하도록 만들고 있는 것도 문제다. 미국은 최대 동맹국인 이스라엘의 안보를 위협하지 않는 한 다마스쿠스의 시리아 내전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의지가 없다. 오히려 시리아 아사드 독재정권의 최대 위협세력인 이슬람국가(IS)에 대한 군사적 공세를 강화함으로써 독재정권을 이롭게 하는 모습이다.

 

여기에 수니파 종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이 저마다 지역 패권을 노리며 시리아 내전에 개입하는 바람에 내전의 성격은 더욱 복잡해졌다.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 그리고 사우디와 이란 등 중동 주변 국가들이 저마다의 이해관계를 저울질하며 시리아 내전을 바라보는 한, 시리아 평화는 어렵다는 얘기다. 

 

6월 20일이 '세계 난민의 날'이라지만, 시리아 난민들에게는 몇 해 동안 이어져 온 고통의 날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큰 틀에서 보면 국제사회가 시리아 내전을 끝장내도록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난민을 돕는 최선의 길일 것이다. 내전 5년을 치르면서 교전 당사자들 사이에는 증오의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졌고, 내전을 멈추려는 국제사회의 평화중재 노력도 지지부진하다. 그런 가운데 시리아 민중들의 희생은 커지고 좌절감은 깊어만 가고 있다.

 

토, 2015/06/20-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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