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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귀향 1부 ‘북녘 할머니의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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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귀향 1부 ‘북녘 할머니의 증언’

익명 (미확인) | 금, 2016/03/04- 19:17

사람이 갖고 있는 잔악함의 끝은 어디일까

일본 저널리스트 이토 다카시가 99년에 담은 북한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을 듣고 제작진에게는 이같은 물음이 생겼습니다.

이토 씨는 일제가 저지른 전쟁범죄에 피해를 입은 아시아 각국의 사람들을 20년 넘게 취재해왔습니다. 한국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북한 지역도 취재했습니다. 특히 99년에 이토 씨가 영상에 담은 북한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에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일본군의 잔악함이 여과 없이 담겨있었습니다.

▲ 이토 씨는 1992년부터 2015년까지 북한 ‘위안부' 할머니 14명의 증언을 영상에 기록했다.

▲ 이토 씨는 1992년부터 2015년까지 북한 ‘위안부’ 할머니 14명의 증언을 영상에 기록했다.

북한의 ‘종군위안부 및 태평양전쟁피해자 보상대책위원회’에 따르면 북한에 거주하는 일본군 ‘위안부’는 2000년 10월 기준, 218명으로 추산됩니다. 그러나 북한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이야기는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뉴스타파 <목격자들>은 일본군 ‘위안소’에서 벌어진 참상을 보다 더 자세히 알리기 위해 이토 씨가 담은 북한 ‘위안부’ 할머니의 증언 영상을 2주에 걸쳐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북한 지역에도 일본군 ‘위안부’가 존재하는 사실이 알려진 것은 1992년 故 리경생 할머니(1917~2004)의 공개 증언을 통해서였습니다. 리경생 할머니는 12세의 어린 나이에 일제 순사에게 끌려가 일본군의 ‘위안부’가 됐습니다.

“도교상이라는 놈이 “여기서 대일본제국의 천황폐하에게 몸 바쳐 말 잘 들으면 너를 잘 돌봐주겠다”고 말하고 그 장교 놈이 한 며칠 와서 그렇게 성노예 생활을 시작하더구먼. 이제 12살 난 게 어머니 품에서 어린양 노릇하던 아이가 성노예 생활이 뭔지 아나? 그놈이 들이대니까 아이 아래가 다 파괴돼요. 온통 구들바닥에 피가 쏟아지고 이래도 군인들이 쭉 들어와서 성노예 생활을 하다가…”
– 리경생 할머니

▲ 故 리경생 할머니(1917~2004). 12세에 경상남도 창원에 있는 군수공장에 끌려갔다.

▲ 故 리경생 할머니(1917~2004). 12세에 경상남도 창원에 있는 군수공장에 끌려갔다.

일본군이 ‘위안부’에게 했던 고문과 만행은 차마 입에 담기 힘들 정도로 반인륜적이었습니다. 리경생 할머니는 자신이 열여섯 살에 임신이 되자 일본군은 그의 배를 가르고 태아를 꺼낸 뒤 자궁을 들어냈다는 만행을 자행했다고 증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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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이 배에 아이 있다고. 임신했다고 ‘저년을 써먹어야겠는데 나이도 어리고 인물도 곱고 써먹어야겠으니 저년 자궁을 들어내 파라'”
– 리경생 할머니

리경생 할머니의 최초 증언 이후 북한 지역 곳곳에서 자신도 일본군 위안부였다는 증언이 이어졌습니다.

2000년 북한 단체인 ‘종군위안부 및 태평양전쟁 피해자 보상대책위원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0대의 어린 나이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사람은 70%나 됐습니다. 강제 연행된 경우가 96명으로 44%, 일자리를 미끼로 유인당한 경우가 74명으로 34%, 나머지는 빚에 팔리거나 근로정신대에 모집됐다가 위안부가 됐습니다. 이 가운데 43명이 공개적으로 증언했습니다.

“철부지 13살이 뭘 압니까. 하나도 모릅니다. 그 성기가 들어갑니까? 안 들어갑니다. 그러니까 주머니에 있던 칼을 꺼내더니 잡아 둘러 매쳐놓고 그 칼로 쭉 잡아 찢습니다. 그렇게 하곤 자기 할 노릇을 했는지 까무러쳐서 나는 모릅니다. 벗지 않곤 말이 되지 않아.”
– 김영숙 할머니(1927~2010) 13세에 ‘위안소’ 끌려감

▲ 故 김영숙 할머니(1927~2010). 13세에 중국 심양에 있는 ‘위안소'에 끌려갔다.

▲ 故 김영숙 할머니(1927~2010). 13세에 중국 심양에 있는 ‘위안소’에 끌려갔다.

일본군들에게 ‘위안부’ 할머니들을 고문하는 것은 일종의 ‘놀이’였다는 증언도 있었습니다. 성고문을 당한 지 수십 년이 흘렀지만, 정옥순 할머니(1920~1998)의 가슴과 아랫배에는 당시에 겪었던 고문의 상흔이 고스란히 남아있었습니다.

▲ 故 정옥순 할머니(1920~1998). 14세에 양강도 혜산시 일본군 병영에 끌려갔다.

▲ 故 정옥순 할머니(1920~1998). 14세에 양강도 혜산시 일본군 병영에 끌려갔다.

“이 고문을 받을 때는 완전히 정신을 잃었어요. 문신을 독약으로 하는데 어떻게 정신을 안 잃어. 살이 다 헐었어요. 바늘 쏙쏙 들어간 자리죠. 이거 봐. 그 자리에서 열두 명이 죽었는데…”
– 정옥순 할머니

‘위안부’가 되기를 거부하기라도 한다면 그 순간 돌아오는 것은 일본군의 가차 없는 학살이었습니다.

“한 처녀가 “차라리 내가 죽는 게 낫지. 너희 개 같은 놈들한테 이렇게 맨날 이 단련을 받겠나?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하니까 일본군이 “어 좋다.” 그 다음에는 가마니를 하나 끌어다 놓고 졸병을 시켜서 “모가지 잘라라.” 모가지 잘라 가마니에 넣고 “팔 잘라라.” 팔 잘라서 가마니에 넣고. “다리 잘라라.” 다리 다 잘라 담고 몸뚱이도 그저 몇 토막을 쳐서 가마니에 다 주워 담는 것을 보고 그걸 보고는 처녀들이 다 악악 소리치고 그 자리에서 다 죽어 널브러졌습니다.”
-리경생 할머니

이런 광기 어린 일본군의 학살에 죽어 나간 ‘위안부’는 수없이 많았습니다.

“한 400명 데려다 놓고 하룻밤에 40명씩 타면서 아이들이 아래 하초가 깨져서 피를 쏟다가 죽은 아이들이 수백 명 됐다. 내가 말을 안 들으니까 팬티만 입혀서 이 하초를 쇠막대기로 다 지졌다. 왜 말 안듣냐고 지지고… 말 듣겠느냔 하고 또 지지고. 그렇게 아래 하초가 다 데여서 번직번직하니 거기 껍데기가 쭉 벗겨졌는데 군인들이 40명씩 또 달라붙더라.”
-정옥순 할머니

일본군이 ‘위안부’를 개만도 못한 취급을 해가며 저지른 학살은 ‘엽기’ 그 자체였습니다.

“계집애들이 말을 안 듣는다고 못판에 못을 300개를 심었어요. 그게 못판에 팬티가 다 찢기고 하초에 닿으니까 살에 구멍이 뚫려서 국숫발 같이 피가 팍팍 뿜어요. 그렇게 15명을 죽여 놓고서는 “너희 계집 애들도 말 안 들으면 이렇게 죽인다. 말 안 듣는 계집애들 죽이는 건 개 죽이는 것보다 아깝지 않다” 그렇게 말했다. 내가 피 눈물이 나와.”
-정옥순 할머니

리상옥 할머니(1926~2005)는 ‘위안소’에서 목숨을 걸고 탈출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그곳에서 겪은 성고문과 함께 끌려간 동네 친구가 일본군에 의해 학살당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나랑 같이 온 탄실이, 영순이. 하루는 신음소리가 나길래 보니까 사람이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어요. 내 방이 아니고 남의 방이니까. 그런데 그들이 죽는 것을 보고 ‘아, 이제는 이렇게 죽는 거다’하고 몇 달 지나갔어요.
리상옥 할머니

▲ 故 리상옥 할머니(1926~2005). 17세에 평안남도 순천시에 있는 일본군 부대에 끌려갔다.

▲ 故 리상옥 할머니(1926~2005). 17세에 평안남도 순천시에 있는 일본군 부대에 끌려갔다.

리상옥 할머니는 그 당시 후유증으로 임신을 할 수 없게 됐습니다. 평생을 홀로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60년동안 홀로 떠안고 온 상처를 치유받지 못한 채 2005년 숨졌습니다.

어느 누가 자식도 하나 없고 그런 삶을 살 수가 있나요? 당신네도 아들딸 있겠지요. 나는 아무도 없이 나 혼자 살았어요. 나는 이제 다른 것 바랄 거 없어요. 당신네가 준 모욕 보상하라요. 왜 못하나요. 60년이 됐어요. 60년. 생각해보세요. 나도 남들이 잘사는 거 보면 부럽고 얼마나 가슴이 터져오는지 알아요?
리상옥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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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위안부’ 할머니들처럼 북한의 ‘위안부’ 할머니들도 한 분, 두 분 세상을 떠나고 있습니다. 이 같은 할머니들의 증언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단지 남한만이 아닌 한반도 전체가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임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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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 <목격자들>은 농촌진흥청이 전국 7곳에서 10개 GMO 품종을 개발하고 있다는 사실을 최초로 확인했다. 이번 주 <목격자들>에서 공개한다. 또 GMO 다국적기업 몬산토와 우리나라 GMO 이익단체와의 관계도 추적했다.

▲ 전북 익산소재, 농촌진흥청이 진행하는 GMO벼 시험재배장의 모습

▲ 전북 익산소재, 농촌진흥청이 진행하는 GMO벼 시험재배장의 모습

GMO (Genetically Modified Organism) 흔히 유전자 조작 또는 변형 식품의 약자다. 지난해 9월, 농촌진흥청은 산업용 GMO 쌀에 대해 상용화 방침을 밝힌 이후 논쟁은 다시 불거졌다. 한국은 최대 식용 GMO 수입 국가 중 하나다.

GMO에 대한 안전성과 표시 제도 논란은 여전하다. 일각에서는 GMO는 안전하다고 주장하지만, 최근 미국의 버몬트주 등에서는 식품의 GMO 포함 여부를 표시하도록 법제화하고 있다 .

지난해 법원은 경실련이 주요 GMO 수입업체의 수입현황을 공개하라며 식약처를 상대로 낸 정보공개 청구 소송에서 경실련의 손을 들어줬다. 소비자의 알권리를 보장한 것이다. 하지만 식약처는 즉각 공개하지 않은 채 항소했다. 정보 폐쇄성은 여전하다.

목, 2016/04/21-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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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와 김정은의 '시간표' 맞추기

북미 정상회담 공동성명 분석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북한과 미국의 정상,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6월 12일 9시 4분부터 아세안 국가인 싱가포르에서 만났다. 북한과 미국 정상의 '첫' 만남은,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인민복을 입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빨간 넥타이에 정장을 한 트럼프 대통령이 인공기와 성조기를 배경으로 서로의 손을 잡는 '역사적' 순간, 전 세계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발목을 잡는 과거"를 넘어서는 시공간으로 정상회담의 첫 순간을 정리했고, 트럼프 대통령의 모두 발언은 정상회담의 "성공"이었다. 2017년 9월 트럼프 대통령이 유엔총회 연설에서 "북한을 완전히 파괴할" 수도 있다고 발언했음을 상기한다면, 상상이 불가능했던 첫 북미 정상회담이었다. "첫"(first)과 "역사적"(historic)은 두 정상이 서명한 "공동성명"(Joint Statement)의 첫 머리였다. 이 두 단어는 미지의 길을 가야하는 현재의 한반도를 정의한다.

 

첫째, 이차대전이 계속되고 있던 1945년 미국이 한반도를 소련과 분할점령하기 위해 38도선을 그었을 때, 한반도의 북쪽지역은 미국과 적대할 소지를 가지게 되었다. 냉전과 열전과 냉전을 거치며 한반도 북쪽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미국은 적대적 관계를 생산해 왔다. 조선에게 미국은 "철천지 원쑤"였고, 미국에게 조선은 "악의 축"이었다. 이차대전 이후 패권국가 미국은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국가들 가운데 전쟁을 했던 중국과 베트남과, 적대적 관계를 유지했던 쿠바와 관계개선을 했지만, 북한만은 미국에게 예외국가였다. 패권국가 미국과 작은 국가 북한의 싱가포르 정상회담은 70여 년의 적대 역사, 최후의 냉전을 종식시키려는 첫 걸음이었다.

 

둘째, 핵확산금지조약 밖에서 핵국가가 된 북한과 핵확산금지조약 안에서 공식적인 핵국가인 미국이 비핵화와 평화체제의 병행협상을 위해 만났다는 점도 주목의 대상이다. 탈냉전시대에 북한은 미국적 주류 국제정치학의 문법과 다른 국가행동을 계속해 왔다. 미국과 중국이란 강대국들의 틈새에서 한 국가에 편승하여 안보를 보장받는 방식이 아니라 핵억제력의 확보라는 내적 세력균형정책을 통해 체제와 정권을 유지하고자 했다. 북한은 작은 국가로서는 역사상 처음으로 핵무기 운반체인 대륙간탄도미사일 실험을 통해 미국 본토를 위협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하고, 그 능력을 미국으로부터 인정받고자 했다. 북한의 핵은 인정투쟁을 위한 도구였다. 핵국가를 선언한 북한이 남북 대화를 통해 비핵화의 길을 가겠다고 하자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정상회담 제의를 수용했다.

 

셋째, 오리엔탈리즘의 발로이겠지만, 북미 정상회담은 서구적 시각에서 '문명국가' 미국이 '야만국가' 북한을 인정하는 자리였다. 미지의 국가 북한의 지도자 김정은 국무위원장 개인에 게 관심이 쏟아질 수밖에 없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숭고한 의무"라고까지 표현했던 중국방문과 판문점 남측지역에서의 남북 정상회담을 제외한다면, 싱가포르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첫 해외방문지였다. 더불어 미국적 민주주의의 문법을 벗어난 지도자이자 이차대전 이후의 국제정치경제질서를 파괴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과 '야만국가'의 지도자가 만난다는 사실도 북미 정상회담을 역사적 사건으로 만든 이유였다. 아시아적 가치를 담지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네팔 출신의 용병을 쓰는 권위주의 도시국가 싱가포르가 북미 정상회담의 장소라는 사실도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만남을 역사적 사건으로 만드는 데 한 몫을 했다.

 

첫, 역사적 만남에서 북미정상은 공동성명을 만들어냈다. 2018년 3월 8일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을 수용한 후 북미 정상회담에 이르기까지 북미 간에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과 관련한 실무협상이 전개되었음을 생각하면, 생각보다 간략한 합의문이었다. 그러나 70여년의 북미 적대역사를 생각한다면, 이견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과 관련한 세부내용보다는 북미의 "새로운" 관계를 '정치적으로 선언'하는 간략한 공동성명 일 수밖에 없었다. 북한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싱가포르를 향해 출발했다는 <조선중앙통신> 6월 11일 자 보도를 통해, "새로운 조미관계", "조선반도의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 "조선반도비핵화"를 둘러싸고 의견교환이 있을 것임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북미 정상회담의 공동성명을 예시했다.

 

공동성명은 "첫 역사적인 수뇌회담"을 언급한 이후, "새로운 조미관계수립"과 "평화체제구축"과 관련하여, 비핵화는 언급하지 않은 채, 두 정상이 논의했음을 밝히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다.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안전담보를 제공할 것을 확언했으며", "김정은 위원장"이 "조선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확고부동한 의지를 재확인하였다"는 구절이 이어진다. 대통령과 위원장이 개인이 아니라 제도이기는 하지만, 미국과 조선이란 두 국가가 아니라 두 정상의 이름으로 "안전담보"(security guarantees)와 "완전한 비핵화"(complete denuclearization)가 언급되었다. "호상 신뢰구축이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추동할 수 있다는" 그 다음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개인적 신뢰구축이 북미 정상회담의 일차적 목표였음을 보여준다. 트럼프 대통령이 6월 2일 김영철 조선로동당 부위전장을 만난 이후 북미 정상회담을 "과정"(process)이라 언급한 것과 상통하는 대목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 중국이 주장해 온 단계적, 동시적 비핵화에 동의했음을 추론하게 한다.

 

공동성명 1항은 북한과 미국이 "새로운 조미관계를 수립해나가기로 하였다"는 내용이다. 핵심은 "새로운"에 있다. 낡은 과거가 70여 년의 적대의 역사였다면, "새로운"은 사실상 적대의 종언을 선언하는 표현이다. 공동성명 2항에는 한반도에서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할 것이다" 라는 내용이 담겼다. 2018년 4월 27일 남북 정상이 합의한 '판문점 선언' 3항과 같은 표현으로, 주체만이 "남과 북"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미합중국"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즉 남북미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협력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공동성명 2항은 읽힌다. 그러나 새로운 북미관계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경로에 대한 세부계획이 공동성명에서 제시되지는 않았다.

 

공동성명 3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2018년 4월 27일에 채택된 판문점선언을 재확인하면서 조선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향하여 노력할 것을 확약하였다"이다. 1항, 2항과 달리 3항의 주어는 북한이다. 북한이 '자발적' 비핵화를 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북한은 판문점 선언 이후인 5월 24일 풍계리 핵실험장을 폭파 방식으로 폐기했고, 이 사실을 5월 12일에 발표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성 공보"를 <로동신문>에 게재하는 형태로 북한 주민들에게도 알린 바 있다.

 

이 3항은 몇 가지 쟁점을 담고 있다. 

 

첫째, "판문점선언"의 "재확인"이란 구절이다. 판문점 선언에서 남북은 "완전한 비핵화"와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하기로 합의했다. 공동성명 3항은 남북의 합의에 기초하여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의 길을 가겠다는 것에 미국이 동의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비핵화와 관련하여서도 북미관계만큼이나 남북관계가 자율성을 갖는 단위가 될 수 있다고 해석될 여지가 있는 부분이다.

 

둘째,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하루 전 기자회견을 통해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verifiable) 불가역적인(irreversible) 비핵화'가 미국이 수용할 수 있는 유일한 결과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공동선언 3항에는 판문점 선언과 마찬가지로 완전한 비핵화만이 담겼다. 남한의 대북특사가 북한을 방문하고 3월 8일 미국에 가 트럼프 대통령의 북미 정상회담 수용의사를 확인한 후 6월 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직전까지 전개된 실무협상에서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는 핵심 의제였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공동선언 3항에 완전한 비핵화만 담긴 것은, 북한의 반대 때문이었을 것이다.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까지 벌어진 미국과 북한의 말의 공방에서, 북한의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과 최선희 외무성 부상은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를 받아들일 수 없음을 분명히 한 바 있다. 비핵화의 실행과정에서 다시금 검증과 불가역이 정치적 타협을 통해 선언될 수는 있지만, 북한은 주권의 문제와 관련된 검증과 '잠재적' 핵국가의 지위를 포기하게끔 하는 불가역이란 두 문구가 공동성명에 표현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것처럼 보인다. 공동성명 3항은 미국의 후퇴로 읽힌다. 비핵화가 상당 시간이 소요되는 '과정'(process)으로 보기 시작한 트럼프 대통령의 인식 전환도 3항과 같은 미봉을 가능하게 했을 것으로 보인다.

 

셋째, 비핵화를 둘러싼 북미협상에는 북한이 비핵화의 길을 갈 때 그에 상응하여 제공되는 교환 품목들이 있다. 그 품목들은 미국이 제공하는 '군사적', '외교적', '경제적' 조치들이다. 비핵화의 내용과 시간표가 공동성명에 등장하지 않으면서, 외교적 보상은 "새로운 조미관계"와 "평화체제 구축"으로 모호하게 표현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전에 언급했던 종전선언도 공동성명에 담기지 않았다. 반면 미국이 제공하는 군사적 보상은 공동성명에 포함되어 있지는 않았으나 북미 정상회담 직후 열린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에서 그 일단이 제시되었다. 한미 연합 군사 훈련의 중단이 바로 그것이다. 북한은 2015년 1월부터 자신의 핵미사일실험의 중단과 한미 연합 군사 훈련의 중단, 이른바 쌍중단을 교환하고자 했다. 북한이 요구하는 "조선반도 비핵화"는 한반도 안보딜레마의 한 축인 북한의 비핵화가 시작되면 한미동맹에 기초한 핵관련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를 금지하는 '최소 비핵지대화'를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미국이 한국에 제공하는 핵우산의 제거가 '최대 비핵지대화'이지만 북한은 이를 의제화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 이후 기자회견에서 한미 연합 군사 훈련이 방어적이라는 공식 담론을 폐기하고 "도발적"(provocative)이었음을 인정했다. 사실상 한반도 안보딜레마를 인정하는 발언이었다. 한반도 비핵화, 한반도 평화체제, 한미동맹의 지속이란 세 목표가 동시에 달성될 수 없는 삼중모순(trilemma)의 해결을 위해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동맹의 수정을 선택한 셈이다. 미국의 전통적인 동맹국들과 무역전쟁을 하는 것과 비슷하게, 한미 연합 군사 훈련과 주한미군의 주둔의 비용 대비 효과를 계산하는 트럼프식 외교도 이 수정에 기여한 것처럼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연합 군사 훈련의 중단이 자신의 제안이라 밝혔다. 그러나 북한은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직후인 6월 13일 <로동신문>을 통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서는 "상대방을 자극하고 적대시하는 군사행동들을 중지하는 용단부터 내려야 한다고" 하자, 트럼프 대통령이 "이에 리해를 표시하면서, 조미 사이에 선의의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조선 측이 도발로 간주하는 미국-남조선합동군사연습을 중지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북미 서로의 국내정치적 필요 때문에 발생한 차이인 것처럼 보인다. 북한은 한미 연합 군사 훈련의 중지를 미국이 제공하는 군사적 보상, 즉 "안전 담보"로 해석했다. 북한이 미국에 제공한 상응의 대가는, <로동신문> 보도에 등장하지 않았지만, 미사일엔진 실험장의 폐쇄였다.

 

그리고 북한은 <로동신문> 보도에서 미국이 "대화와 협상을 통한 관계개선이 진척되는데 따라 대조선 제재를 해제할 수 있다는 의향을 표명하였다"는 내용을 첨가했다. 비핵화에 대한 경제적 보상도 북미 정상회담의 의제였음을 추론하게 하는 대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 이후 기자회견에서 북중 국경이 느슨해지고 있다는 말로 중국이 사실상 대북제재를 해제하고 있음을 암시하는 발언을 했다. 그럼에도 중국을 종전선언 또는 평화협정의 당사자로 인정하는 또 다른 인식의 전환을 보여주었다.

 

북미 공동성명 4항은 북미가 "전쟁포로 및 행방불명자들의 유골발굴을 진행하여 이미 발굴 확인된 유골들을 즉시 송환할 것을 확약하였다"는 내용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제기한 의제였고, 과거 미군 유해발굴과 송환작업을 한 경험이 있는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즉각 이 의제를 수용했다고 한다. 4항은 트럼프 대통령의 국내정치적 고려가 담긴 추가였다.

 

북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대한 북한의 해석은, 미국이 "조미관계 개선을 위한 진정한 신뢰구축을 취해나간다면" "다음단계의 추가적인 선의의 조치를 취해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북미 정상이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정,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이룩해나가는 과정에서 단계별, 동시행동원칙을 준수"하기로 합의했다는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쌍중단을 선언한 북미 정상회담을 비핵화와 평화체제의 쌍궤병행으로 가는 첫 걸음으로 평가했다. 북한의 북미 정상회담 해석은 중러의 이해관계와 일치한다. 일본은 북미 공동성명에 대해 일단 비판적이지만, 북미관계의 진전에 따라 중국과 한국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인 납치자 문제의 해결을 명분으로 내세우며 북일관계의 개선을 도모할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미국 본토에 대한 위협과 한반도에서의 전쟁 위기가 제거되었다고 자평했다. 

 

미국 내에서는 북미 공동성명에 비핵화의 내용과 시간표가 나오지 않은 것에 대해 '야만 국가' 북한을 인정한 것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있다. 북한의 비핵화에 따른 미국의 외교적, 경제적 조치는 미국 국내정치를 통과해야만 가능한 보상이란 점을 고려한다면, 북미 공동성명의 실행이 관건일 수밖에 없다. 북미 공동성명 이외의 부속합의서가 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이익에 따른 시간표와 그 시간표에 조응하는 북한의 조치가 결합될 때, 북미 공동성명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향한 전환의 기록으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목록 바로가기(클릭)
 
* 본 내용은 참여연대나 참여사회연구소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

 

 

시민정치시평은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 기획·연재합니다. 

 

월, 2018/06/25-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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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8월말 큰비로 인해 황해남북도에 큰 수해가 발생했다고 한다. 유엔의 인도주의업무조정국은 신속히 이에 대한 상세한 내용을 파악하여 전세계에 실상을 알려 왔다. 종전선언과 한반도 평화체제를 논의가 진행과정에서 발생한 북한의 자연재해에 대하여 남한 사회가 도울 수 있는 방도와 경로는 없는 것일까? 북한이 이미 핵실험장을 폐쇄하고 미사일 엔진실험실과 발사대를 해체한 만큼, 북한동포가 겪는 고통을 생각하면서 이번 수해를 계기로 유엔안보리의 북한에 대한 무자비한 제재에 대한 완화조치를 본격적으로 논의해야 할 시점이 되었다고 판단된다. 마침 정상회담차 9월 18-21일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 방문시, 북한당국이 동의한다면 수해현장을 돌아보는 것도 고려해 볼만하다.


 

칼럼_180908

개요

8월 29일과 30일, 48시간동안 지속된 끈질긴 호우로 북한 남서부 지방인 황해북도와 황해남도에서 갑작스러운 홍수가 발생했다. 정부의 자료에 따르면 10,700명에 육박하는 이재민이 발생했다. 발표된 사망자수만 최소 75명이며, 수백명 이상이 부상을 입거나 실종되었다. 앞으로 조사가 진행됨에 따라 이 수치는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황해남북도 내 수천만개의 주택이 홍수로 인해 손상되거나 완전히 망가졌고, 주민들은 모든 가재도구를 잃은 것으로 알려졌다. 공공건물과 유치원은 물론 철도, 도로 등 사회기반시설까지 훼손돼 많은 지역이 접근이 접근하기조차 어려워졌다.

 

긴급 요구

최초 조사 결과, 식량, 영양공급, 보건, 식수 및 위생, 이재민 보호소, 재난위험축소가 긴급하게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재난위험축소의 경우, 이미 피해를 입은 마을이 추가적인 호우와 홍수에 더욱 취약하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북한 정부의 보고에 따르면 황해북도와 황해남도의 농경지 중 17,000 헥타르가 홍수로 타격을 입었다. 곧 수확을 앞두고 있었던 많은 농작물이 홍수에 휩쓸려 간 결과, 식량생산에 끼칠 악영향과 북한주민의 장기적 식량안보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칼럼_1809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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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이 공식적으로 본 지도에 표시되는 경계선과 지명을 지지 또는 동의하는 것은 아님. 2018년 9월 북한정부가 제공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함.

 

토, 2018/09/08-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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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4월 18일, 울산 현대중공업에서 일을 하던 한 노동자가 굴삭기에 몸이 끼는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그는 현대중공업의 사내하청 노동자였다. 사람이 죽은 사고가 난 다음날인 19일, 같은 곳에서 일하던 또다른 노동자가 지게차에 치여 숨졌다. 2016년 올해 6개월 사이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 3명과 정규직 노동자 2명이 작업 중에 숨졌다.

▲ 울산 현대중공업의 전경. 올해만 현대중공업에서 일하는 노동자 5명이 작업 중 사망했다.

▲ 울산 현대중공업의 전경. 올해만 현대중공업에서 일하는 노동자 5명이 작업 중 사망했다.

설상가상으로 국내 3대 조선사(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는 사상 최대 적자를 이유로 대규모 구조조정을 예고했다. 국내 최대 규모의 조선 업체 노동자가 끊임없이 생존권을 위협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뉴스타파 <목격자들>이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만나봤다.

방송업로드 : 5월 6일 금요일 오후, 뉴스타파 홈페이지

수, 2016/05/04-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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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T, “한국 정부, 위안부 문제 해결에 충분히 노력하지 않아” –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 한국 정부 상대로 소송 제기 소식 상세 타전 – 12.28 한일 위안부 합의를 바라보는 한국 국내 정서 전달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부와도 법적 다툼을 벌이는 상황이 왔다. 피해 할머니 12명이 이 정부를 상대로 각 1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 ...
목, 2016/09/01-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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