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또 무슨 '경제민주화선언'인가, 이미 발표했던 것부터 챙겨라
<'경제민주화특별시' 선언에 포함된 사항들은 이미 개별 계획이나 선언으로 발표된 내용들이다>
<'경제민주화특별시' 선언에 포함된 사항들은 이미 개별 계획이나 선언으로 발표된 내용들이다>
사단법인 오픈넷은 오늘(2020. 12. 18.) 일명 ‘인터넷 준실명제’를 규정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 (박대출 의원 대표발의, 의안번호: 2106387)에 대한 반대의견을 국회에 제출했다.
본 개정안은 이미 위헌으로 판단된 인터넷 게시판 본인확인제를 사실상 강제하는 것으로, 헌법상 비례의 원칙에 위반하여 표현의 자유, 개인정보자기결정권 등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위헌적 법안으로 폐기되어야 한다.
문의: 오픈넷 사무국 02-581-1643, [email protected]
본 개정안은 일일 평균 이용자수가 10만명 이상이면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준에 해당되는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로 하여금 게시판 설치·운영시 게시판 이용자의 아이디(이용자식별부호)와 인터넷 프로토콜 주소(이하 ‘IP 주소’)를 공개하는 조치를 취하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음.
본인확인제(혹은 실명제)는 인터넷 서비스 이용시 이용자가 본인인지 여부를 확인하는 제도를 의미함. 본 개정안에서 공개의 대상인 ‘아이디’는 안 제44조의5 제2항 1호에 따르면 ‘정보통신망의 정당한 이용자임을 알아보기 위한 이용자 식별부호’임. 즉, ‘아이디’ 정보란 직·간접적인 방법으로 개인의 동일성을 식별할 수 있는 신원정보의 제공을 통한 본인확인절차를 거쳐야 부여될 수 있는 부호이며, 아이디의 부여와 공개의 의무화는 결국 본인확인제, 실명제를 강제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음.
헌법재판소는 인터넷 게시판을 설치·운영하는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에게 게시판 이용자로 하여금 본인확인절차를 거쳐야만 게시판에 정보를 게시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를 마련할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의 본인확인제를 규정했던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44조의5 제1항 제2호(이하 ‘인터넷 게시판 실명제 조항’)에 대하여, 과잉금지원칙에 위배하여 인터넷게시판 이용자의 표현의 자유, 개인정보자기결정권 및 인터넷게시판을 운영하는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의 언론의 자유를 침해함을 이유로 위헌결정을 내린 바 있음(헌법재판소 2012. 8. 23. 결정, 2010헌마47). 결정요지에서는 “이 사건 법령조항들이 표방하는 건전한 인터넷 문화의 조성 등 입법목적은, 인터넷 주소 등의 추적 및 확인, 당해 정보의 삭제 ·임시조치, 손해배상, 형사처벌 등 인터넷 이용자의 표현의 자유나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제약하지 않는 다른 수단에 의해서도 충분히 달성할 수 있음에도, 인터넷의 특성을 고려하지 아니한 채 본인확인제의 적용범위를 광범위하게 정하여 법집행자에게 자의적인 집행의 여지를 부여하고, 목적달성에 필요한 범위를 넘는 과도한 기본권 제한을 하고 있으므로 침해의 최소성이 인정되지 아니한다. 또한 이 사건 법령조항들은 국내 인터넷 이용자들의 해외 사이트로의 도피, 국내 사업자와 해외 사업자 사이의 차별 내지 자의적 법집행의 시비로 인한 집행 곤란의 문제를 발생시키고 있고, 나아가 본인확인제 시행 이후에 명예훼손, 모욕, 비방의 정보의 게시가 표현의 자유의 사전 제한을 정당화할 정도로 의미 있게 감소하였다는 증거를 찾아볼 수 없는 반면에, 게시판 이용자의 표현의 자유를 사전에 제한하여 의사표현 자체를 위축시킴으로써 자유로운 여론의 형성을 방해하고, 본인확인제의 적용을 받지 않는 정보통신망상의 새로운 의사소통수단과 경쟁하여야 하는 게시판 운영자에게 업무상 불리한 제한을 가하며, 게시판 이용자의 개인정보가 외부로 유출되거나 부당하게 이용될 가능성이 증가하게 되었는 바, 이러한 인터넷게시판 이용자 및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의 불이익은 본인확인제가 달성하려는 공익보다 결코 더 작다고 할 수 없으므로, 법익의 균형성도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시하였음. 이와 같은 위헌성 판단은 본 개정안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할 것임.
표현의 자유는 국민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자유로운 인격발현의 수단임과 동시에 합리적이고 건설적인 의사형성 및 진리발견의 수단이 되며, 국가와 사회적인 차원에서는 민주주의 국가와 사회의 존립과 발전에 필수불가결한 기본권이며, 특히 익명이나 가명으로 이루어지는 표현은, 외부의 명시적 ·묵시적 압력에 굴복하지 아니하고 자신의 생각과 사상을 자유롭게 표출하고 전파하여 국가권력이나 사회의 다수의견에 대한 비판을 가능하게 하며, 이를 통해 정치적 ·사회적 약자의 의사 역시 국가의 정책결정에 반영될 가능성을 열어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님. 그러나 실명제는 인터넷 이용자가 본인 확인을 위하여 자신의 신원정보를 직·간접적으로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에게 밝히지 않을 수 없도록 함으로써 표현의 자유 중 표현주체가 자신의 신원을 누구에게도 밝히지 아니한 채 익명으로 자신의 사상이나 견해를 표명하고 전파할 익명표현의 자유를 필연적으로 침해함.
또한 익명 표현의 자유뿐 아니라, 이용자의 표현의 자유를 사전에 제한하여 일반적인 의사표현 자체를 위축시키고 자유로운 여론의 형성을 방해함. 즉, 실명제는 정보 등을 게시하고자 하는 자가 본인의 신원정보, IP 주소 등의 제공·확보에 따른 규제나 처벌 혹은 각종 사회적 불이익을 염려하거나 절차적 번거로움으로 인하여 표현 자체를 포기하게 만들 가능성이 높고, 그 결과 국민의 전반적인 표현행위를 억제·위축시킴. 실제로, 실명제 실시 이후 게시판에 글을 올린 참여자 수가 약 1/3로 대폭 감소하여 이용자 간의 대화나 소통량 자체가 줄어들었다는 연구결과도 있음.
입법례를 보더라도 선진국들 중 인터넷 실명제를 시행하고 있는 나라는 찾아볼 수 없음. ‘프랭크 라 뤼 (FrankLa Rue)’ UN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의 한국보고서에서는 공직선거법상 선거기간 인터넷 실명제 조항에 대해서도 개정을 권고하며, 실명제는 사전검열이자, 익명성에 바탕한 인터넷상의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한 바 있음. 인터넷 실명제는 국제법상 인권기준에도 명백히 어긋나는 제도임.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가 자신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익명제로 운영할지, 실명제로 운영할지, 이용자들의 어떠한 정보를 수집할지 등은 사적 자치의 영역에서 자율적으로 결정하여야 할 사항임.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의 서비스 운영에 대하여 헌법상 비례의 원칙에 위반하여 본인확인조치를 전제한 아이디 및 IP 주소의 수집·공개 등 일정한 조치 의무를 강제하고 있는 본 법안은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의 영업의 자유, 직업 수행의 자유를 침해함. 동시에 게시판 이용자들의 자유로운 의사표현을 바탕으로 여론을 형성·전파하고자 하는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의 언론의 자유도 침해함.
또한 이용자들이 본인확인절차를 거치기 위하여 제공하는 본인확인정보와 IP 주소는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의 보호대상이 되는 개인정보에 해당함. 이용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로 하여금 이용자의 본인확인절차를 전제로 한 아이디 정보와 IP 주소의 수집·공개를 강제하고 있는 본 개정안은 게시판 이용자가 자신의 개인정보에 대한 이용 및 보관에 관하여 스스로 결정할 권리인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침해함. 나아가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의 수집·확인 의무에 그치지 않고, ‘공개’를 강제하여 제3자인 다른 불특정 다수의 이용자들이 게시자의 정보를 파악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 기존의 본인확인제보다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의 침해의 정도가 더욱 중하다고 할 것임.
인터넷상 불법정보의 유통의 폐해를 방지하고 건전한 인터넷 문화를 조성할 수 있는 규제 조항들이 있음에도, 모든 국민을 잠재적 범죄자와 같이 취급하여 인터넷에 글을 쓰고자 하는 모든 이용자들이 사전에 신원정보를 제공하여 확인절차를 거치게 하고 일부 정보를 공개하도록 하는 것은 목적달성에 필요한 범위를 넘는 과도한 제한을 하는 것이며, 달성될 수 있는 공익도 분명하지 않음. 즉, 본 개정안은 헌법상 비례의 원칙에 위반하여 표현의 자유, 개인정보자기결정권, 직업수행의 자유 등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위헌적 법안으로 폐기되어야 함.
헌법재판소는 2021. 2. 25. 재판관 5:4의 의견으로, 형법상 사실적시 명예훼손죄(형법 제307조 제1항)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2017헌마1113, 2018헌바330(병합) 형법 제307조 제1항 위헌확인 등).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위헌소원 및 폐지에 앞장서 온 오픈넷은 진실을 말한 경우에도 형사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미투 운동 등 각종 사회 부조리 고발 활동을 위축시키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는 현실을 도외시한 헌재의 이번 결정에 유감을 표한다.
결정요지에서 헌재의 다수의견은 ‘사회적으로 명예가 중시되나 명예훼손으로 인한 피해는 더 커지고 있는 우리 사회의 특수성, 징벌적 손해배상이 인정되는 입법례와 달리 우리나라의 민사적 구제방법만으로는 형벌과 같은 예방이나 위하효과를 확보하기 어려워, 입법목적을 동일하게 달성하면서도 덜 침익적인 수단이 있다고 보기 어려운 점’, ‘공익적 목적이 있을 때 처벌하지 아니한다는 형법 제310조가 공적인물과 국가기관에 대한 비판을 억압하는 수단으로 남용되지 않도록 하고 있어 표현의 자유 제한을 최소화하고 있다는 점’, ‘본 조항이 위헌으로 결정되면 개인이 숨기고 싶은 병력·성적 지향·가정사 등 사생활의 비밀이 침해될 수 있는 점’, ‘타인으로부터 부당한 피해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손해배상청구 또는 형사고소와 같은 민·형사상 절차에 따르지 아니한 채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가해자의 명예를 훼손하려는 것은 가해자의 책임에 부합하지 않는 사적 제재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는 점’, ‘개인의 약점과 허물을 공연히 적시하는 것은 민주적 의사형성에 기여한다는 표현의 자유의 목적에도 부합하지 않는 점’ 등을 고려하면 본 조항은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설시했다.
그러나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없기 때문에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유지되어야 한다는 부분은 헌재가 징벌적 손해배상이 ‘악의적’으로 ‘허위사실’을 적시한 경우뿐만 아니라 ‘진실’을 말한 경우에도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다면 민사 손해배상의 대원칙을 넘어선 ‘징벌적’인 배상이 필요한 대상으로 전제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는 점에서, 지나치게 명예 보호에만 치우친 판단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개인이 당한 피해사실을 고발하는 것은 사법 절차에 따라야만 하고 사적 제재를 해서는 안 된다’거나, ‘개인의 약점과 허물을 공연히 적시하는 것이 표현의 자유의 보장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설시 역시 ‘표현의 자유’의 진정한 의미를 몰각하고 있다. 사람이 자신이 저지른 행위에 대해 ‘법적’ 처단을 받는 것과 ‘사회적’ 평가를 받는 것은 별개의 책임 영역이다. 또한 성희롱 등 법적 처단의 대상이 아니지만 비판받아 마땅한 부조리한 행위도 사회에 무수히 존재하고, 복잡한 사법 시스템을 활용할 여력이 없는 서민 피해자들도 많다. 타인의 잘못된 행위를 알리는 표현 활동은 행위자가 이로 인한 사회적 비난이 두려워 자신의 행위를 시정하도록 하여 피해를 구제하거나 제3의 피해도 예방할 수 있다.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도 자신의 행위 역시 사회적 감시와 공개적인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경각심을 심어주어 사회구성원들이 공론장에서 좋은 사회적 평가를 유지하기 위해 각자의 행동을 반성하고 교정하도록 만든다. 공적 인물과 국가기관에 대한 비판뿐만이 아니라, 미투 운동이나 학교폭력 피해사실 고발과 같이 사인(私人)의 비위를 고발하는 행위도 중요하게 보호받아야 하는 이유다. 민주주의 사회는 이렇듯 사회구성원들이 각자에 대한 평가를 교환하는 공론의 과정을 통해 발전하고 이것이 바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목적이다.
한편, 다수의견은 ‘오로지 공익을 위하여’라는 위법성 조각사유가 위축효과를 막지 못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전부 위헌으로 결정할 경우 ‘사생활의 비밀에 해당하는 사실’을 적시한 경우를 처벌할 수 없기 때문에 본 조항을 유지할 필요성이 있다고 설시했다. 그러나 이는 현재 사생활의 비밀과 전혀 관련없는 사실을 고발한 경우에도 본 조항으로 처벌되어 과도하게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는 현실을 간과한 설시다.
이번 헌재 결정의 4인의 반대의견에서는 본 조항의 위헌성이 명확히 지적되었다. 유남석, 이석태, 김기영, 문형배 재판관 4인은 ‘진실한 사실을 적시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법질서에 의해 부정적으로 평가되는 행위로 보기 어렵고, 진실한 사실의 적시로 손상되는 것은 잘못되거나 과장된 사실에 기초한 허명에 불과하여 형사처벌이 정당화될 정도의 반(反)가치성이 없는 점’, ‘향후 재판절차에서 형법 제310조로 공익적 목적이 인정되어 무죄 판단을 받을 가능성이 있더라도 본 조항의 존재 및 공익성 입증의 불확실성으로 표현행위에 대한 위축효과를 막을 수 없는 점’, ‘진실한 사실을 토대로 토론과 숙의를 통해 공동체가 자유롭게 의사와 여론을 형성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근간’이며, ‘진실한 사실이 가려진 채 형성된 허위·과장된 명예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위축효과를 야기하면서까지 보호해야 할 법익이라고 보기 어려운 점’ 등을 고려하면, 본 조항은 과잉금지원칙에 반하여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다수의견과 소수의견에서 공통적으로 추론할 수 있는 것은, 해당 조항을 정당화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진실한 사실이더라도 개인이 숨기고 싶은 병력·성적 지향·가정사 등 사생활의 비밀을 공개하는 행위에 대한 처벌 필요성이다.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왔다. 국회가 헌재의 유력한 위헌 의견과 국제사회의 권고를 반영하여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폐지하고 공익적 목적없이 타인의 사생활의 비밀을 침해하는 사실을 공개한 경우에만 처벌하는 보완 입법을 통해 사실적시 명예훼손의 폐해를 시정해나가길 바란다.
2021년 2월 25일
사단법인 오픈넷
문의: 오픈넷 사무국 02-581-1643, 010-5109-6846,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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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 26일 헌법재판소는 청소년의 스마트폰에 유해정보 차단수단을 강제로 설치하게 하는 전기통신사업법과 시행령 조항들, 일명 “청소년 스마트폰 감시법”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헌재 2020. 11. 26. 2016헌마738). 청소년과 청소년의 부모인 청구인들을 대리하여 4년 넘게 헌법소원을 진행한 사단법인 오픈넷은 청소년의 프라이버시와 개인정보자기결정권, 그리고 부모의 교육권을 침해하는 스마트폰 감시법에 대한 헌재의 합헌 결정에 유감을 표한다.
2015년 4월 16일부터 시행된 전기통신사업법 제32조의7은 이통사가 청소년과 전기통신서비스 제공에 관한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 청소년유해매체물 및 음란정보에 대한 차단수단을 제공하여야 한다고 하고 있으며, 동 법 시행령 제37조의8은 이통사가 계약 체결 시 차단수단의 종류와 내용 등을 고지하고 차단수단을 설치하도록 강제하고 있고, 계약 체결 후에는 차단수단이 삭제되거나 차단수단이 15일 이상 작동하지 아니할 경우 법정대리인에게 통지하도록 하고 있다. 차단수단이라 함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말하며, 현재 이통사가 제공하는 앱들이 주로 설치되고 있다.
청소년 스마트폰 감시법의 가장 큰 문제는 이통사가 청소년이나 부모의 의사와 상관없이 차단수단을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며, 차단수단의 삭제 또는 비활성화 여부를 확인해서 부모에게 통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이통사는 차단수단을 통해 청소년이 스마트폰으로 어떤 정보를 검색하고 접근하는지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차단수단의 작동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청소년의 스마트폰을 상시 감시해야만 한다. 이로 인해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청소년의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하고, 청소년과 법정대리인의 개인정보를 수집, 보관, 이용하기 때문에 개인정보자기결정권도 침해한다. 또한 차단수단에 의해 유해정보뿐만 아니라 합법적이고 교육적인 정보도 차단되어 청소년의 알 권리를 침해하며, 차단수단 설치 여부에 대해 청소년 및 법정대리인의 선택권을 인정하지 않아 부모의 자녀교육권을 침해한다.
그런데 헌재는 이동통신사업자의 차단수단 제공의무에 대해 “차단수단을 제공받는 자의 의사에 반하여 이를 설치하여 줄 의무까지 포함되어 있다고 해석하기는 어렵다”고 하면서, 시행령에서 차단수단의 설치 ‘여부’를 확인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이통사에게 차단수단 설치의무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였다면 이렇게 규정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고, 차단수단이 삭제되거나 15일 이상 작동되지 않을 경우 법정대리인에게 통지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것도 차단수단 설치에 동의한 경우에만 적용되는 것으로 이러한 절차가 차단수단 설치의무가 포함된 것임을 전제로 하고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하였다. 따라서 이통사에게 차단수단 “설치” 의무가 없다고 하면서 차단수단 제공의무 관련 조항들에 대한 청구는 각하해버리고 통지 조항에 대해서만 판단했다.
헌재의 입장에 의하면 이통사의 차단수단 제공의무는 “제공”에 그칠 뿐 청소년이나 법정대리인의 동의가 없는 설치는 의무가 아니다. 하지만 이는 이통사들이 스마트폰 감시법 입법 이전에도 차단수단을 “제공”해왔으며, 입법 이후에는 부모나 청소년의 동의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차단수단을 설치하고 설치가 안 된 경우 계속 문자 등을 보내왔다는 점을 간과한 판단이다. 그리고 방송통신위원회는 2016년 법정대리인이 차단수단 이용 거부 신청을 할 수 있게 하는 단서를 신설하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여, 차단수단 설치의무의 문제점을 자인한 바도 있다. 이처럼 헌재가 가장 중요한 쟁점을 심판대상에서 제외해 판단을 회피했다는 점은 매우 실망스럽다.
그리고 헌재는 시행령의 통지 조항에 대해 설치에 동의하여 차단수단을 설치한 경우에만 적용된다고 전제하면서, “청소년이 청소년유해매체물등 차단수단을 삭제하였는지 여부나 차단수단이 작동하지 않도록 하였는지 여부 등은 해당 청소년의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에 속할 뿐 아니라, 청소년유해매체물등을 대하는 해당 청소년의 성향이나 태도 등을 유추할 수 있는 자료로서 청소년의 실명 등의 자료와 결합하여 개인의 동일성을 식별할 수 있게 하는 개인정보에 해당”하기 때문에 통지 조항이 청소년의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및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제한한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통지 조항만으로는 과잉금지원칙에 반하지 않기 때문에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및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렸다.
청소년의 프라이버시와 개인정보자기결정권 침해뿐만 아니라 현재 시중에 나와 있는 차단 앱 다수는 유해정보 차단을 넘어 스마트폰 사용 모니터링, 위치 조회 등 청소년을 감시하는 기능들을 갖추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감시 기능을 갖춘 앱은 보안이 취약한 경우가 많아 해커들의 표적이 되며, 청소년을 개인정보 유출, 해킹 등의 보안 위험에 노출시키고 있다. 감시 소프트웨어를 통신기기에 강제로 설치하도록 하는 법은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데, 이는 감시 앱의 안전성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온라인상 유통되는 청소년유해정보의 경우, 이미 전자적 표시의무 등 필터링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이 적용되어 있고 이러한 정보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본인확인을 요구하고 있으며, 이때 사용되는 필터링 기술은 차단 앱들이 사용하는 것과 대동소이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동일한 차단수단이어서 굳이 추가 소프트웨어의 설치를 강제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오픈넷이 제기한 이런 문제에 대해서 헌재는 아무런 판단도 하지 않았다는 점도 실망스러운 부분이다.
청소년의 인권을 침해할 수 있는 차단수단 설치는 청소년과 청소년에 대해 1차적 교육권을 갖는 부모(법정대리인)의 동의, 그것도 차단수단의 기능, 효과, 보안 취약성 등에 대한 충분한 정보에 기반한 동의가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다. 이를 간과한 청소년 스마트폰 감시법은 “청소년 보호라는 명분에 치우쳐” 국가가 청소년의 스마트폰 사용까지 챙기고 간섭하는 것을 허용하는 “전근대적이고 국가주의적일 뿐만 아니라 행정편의주의적인 발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치의무가 없다고 보아 대부분의 쟁점에 대한 판단을 회피한 이번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
2021년 1월 4일
사단법인 오픈넷
문의: 오픈넷 사무국 02-581-1643,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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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보안관은 사라졌지만 감시는 계속된다 (슬로우뉴스 2015.11.16.)
지난 12월 23일 헌법재판소는 사단법인 오픈넷이 2017년 12월 1일 모욕죄로 재판중인 청구인을 대리하여 청구한 형법 제311조 모욕죄 위헌소원에 대해 6:3으로 합헌 결정을 선고했다(2017헌바487). 강자에 대한 정당한 비판을 가로막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와 모욕죄 폐지 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오픈넷은 이번 합헌 결정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
헌재 다수의견은 모욕죄에 관한 헌재 선례 중 2012헌바37 결정 이유의 요지를 인용하면서 모욕죄는 사람의 가치에 대한 사회적 평가인 외부적 명예를 그 보호법익으로 하고 있고 명예훼손죄와는 달리 구체적 사실의 적시를 요구하지 아니하는 등 일반인이라면 금지되는 행위가 무엇인지를 예측하는 것이 현저히 곤란하다고 보기 어렵고 대법원이 모욕의 의미에 대하여 객관적인 해석기준을 제시하고 있으므로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또한 모욕죄가 표현의 자유를 다소 제한한다고 하더라도 표현행위가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로 볼 수 있는 때는 위법성조각사유가 적용되어 처벌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모욕죄의 형사처벌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는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혐오 표현에 대한 직접적인 형사처벌조항 등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모욕죄가 혐오 표현에 대한 일종의 제한 내지 규제로 기능하고 있는 현실적인 측면과 대법원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는 모욕죄의 피해자가 될 수 없다고 판시하는 등 표현의 자유가 지나치게 위축되지 않도록 심판대상 조항을 해석·적용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선례를 변경할 필요가 없다고 판시했다.
형법 제311조의 모욕죄에서 ‘모욕’이란 사실을 적시하지 아니하고 단순히 사람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추상적 판단이나 경멸적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준은 너무나 추상적이어서, 일반인, 심지어 판사조차도 어떤 표현이 모욕적인지 아닌지를 명확히 판단하기 어렵다. 극소수의 공개된 모욕죄 판례들을 보면 명백한 욕설이 아닌 한, 타인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 표명에 대해 모욕죄를 인정하는 분명한 기준이나 일관성을 찾을 수 없다. 뿐만 이번 결정에서 반대의견을 낸 3인의 재판관(유남석, 김기영, 이미선)도 ‘모욕’의 범위가 지나치게 광범위하여 “상대방의 인격을 허물어뜨릴 정도로 모멸감을 주는 혐오스러운 욕설 외에도 타인에 대한 비판, 풍자·해학을 담은 문학적 표현, 인터넷상 널리 쓰이는 다소 거친 신조어 등도 모욕죄로 처벌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에서 모욕죄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와 함께 강자에 대해 부정적이거나 비판적인 언사를 하지 못하도록 약자의 입을 막는 도구로 남용되어 왔다. 특히 인터넷 시대에 들어와서는 모든 표현의 흔적이 사이버 공간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까닭에 고소와 처벌이 쉬워져 2014년부터 2019년 사이에 사이버 명예훼손·모욕죄 발생건수가 약 2배 증가했으며 이 숫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그 중 다수는 국회의원, 공무원 등 공인과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기업, 전문직, 연예인 등에 대한 비판이 차지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작년 나경원 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자신과 관련된 기사에 ‘나베’, ‘매국노’, ‘국X’ 등의 악성 댓글을 게시한 170개의 아이디를 모욕 혐의로 고소한 바 있으며, 오픈넷이 법률지원한 사건은 불기소 처분을 받았지만 유죄 판결을 받은 사건도 있었다. 그리고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라는 이유로 최종적으로 불기소 처분이나 무죄 판결에 의해 처벌받지 않는다고 해도, 모욕죄로 고소 당하면 일단 피의자 신분으로 수사를 받아야 한다는 것 자체가 일반인들의 법 감정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표현의 자유에 심각한 위축 효과를 불러온다.
반대의견도 “모욕죄의 형사처벌은 다양한 의견 간의 자유로운 토론과 비판을 통하여 사회공동체의 문제를 제기하고 건전하게 해소할 가능성을 제한한다… 뿐만 아니라 다원성과 가치상대주의를 이념적 기초로 하는 현대민주주의 사회에서 모욕이라는 광범위한 개념을 잣대로 표현의 허용 여부를 국가가 재단하게 되면, 언론과 사상의 자유시장이 왜곡되고 정치적으로도 악용될 우려가 있다. 또한 국가형벌권의 행사는 국가권력행사 중에서 가장 강력한 힘이고 대상자에게는 가혹한 강제력에 해당하므로 그 행사는 최소한의 행위에 국한되어야 한다. 단순한 모욕행위에 대하여는 시민사회의 자기 교정기능에 맡기거나 민사적 책임을 지우는 것으로 규제할 수 있다”고 보았다.
2011년 UN 인권위원회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일반논평 34호에서 사실적 주장이 아닌 단순한 견해나 감정표현에 대한 형사처벌은 폐지할 것을 규약 당사국들에게 권고한 바 있다. 견해나 감정표현만으로는 국가 형벌권이 개입할 만한 중대한 해악이나 권리 침해가 발생한다고 보기 어렵고 모욕적·비하적 견해나 표현도 소수의견의 지적대로 때로는 정당한 분노를 드러내어 사회정의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비교법적으로도 모욕죄를 폐지하는 것이 세계적 흐름이다. 잉글랜드, 웨일스, 아일랜드, 몰도바, 루마니아 등은 모욕죄에 대한 형사처벌 조항을 전부 폐지했고, 우리나라 모욕죄의 기원이라 할 수 있는 독일에서도 일반 모욕죄는 피해자가 주도하는 사소(私訴)에 의해 처리된다.
다수의견은 모욕죄가 혐오 표현에 대한 일종의 제한 내지 규제로 기능하고 있다고 지적하지만, 반대의견처럼 혐오 표현은 별도의 법률을 통하여 규율될 수 있는 것으로써, 반드시 표현의 자유를 광범위하고 과도하게 제한하는 모욕죄를 통해 규율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타인에 대한 부정적 감정표현을 형사처벌하여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위축시키는 모욕죄에 다시 한 번 면죄부를 준 이번 결정에 깊은 유감을 표하며, 오픈넷은 이에 굴하지 않고 모욕죄 폐지 운동을 지속해나갈 것이다.
2020년 12월 30일
사단법인 오픈넷
문의: 오픈넷 사무국 02-581-1643,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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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욕죄 합의금 장사 대응 매뉴얼] 민사편 / 형사편
지난 8월 14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제5민사부는 국정원, 경찰청, 검찰청 등에 의해 영장 없이 무단으로 개인정보가 수집된 에스케이텔레콤(SKT), 엘지유플러스(LGU+), 케이티(KT) 이동통신 3사의 이용자들이 대한민국을 상대로 제기한 국가배상청구소송 항소심에서 1심과 마찬가지로 원고들 패소 판결을 선고했으며, 이에 사단법인 오픈넷은 즉시 상고하여 본 소송은 현재 대법원에 계류중이다. 본 소송은 “수사기관의 권한 남용에 의해 통신자료가 제공되어 해당 이용자의 개인정보에 관한 기본권 등이 침해”된 경우에는 그 책임을 해당 수사기관에 직접 추궁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한 대법원의 판결(대법원 2016. 3. 10. 선고 2012다105482 판결)에 따라 제기되었다. 그런데 실제 소송에서 하급심은 통신자료 제공의 위법성을 다툴 기회를 박탈하였으므로 대법원은 이를 시정할 필요가 있다.
통신자료란 이용자의 이름, 주민번호, 주소, 전화번호, 아이디, 가입일 및 해지일 등의 개인정보를 말한다. 현행 전기통신사업법 제83조 제3항은 수사기관 등이 “수사, 재판, 형의 집행 또는 국가안전보장에 대한 위해를 방지하기 위한 정보수집을 위하여 [요청]”할 경우 통신자료를 제공할 수 있다고 되어 있고 피고인 수사기관들은 이 조항을 근거로 자신들의 행위가 합법적임을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통신자료제공 요청이 적법했기 때문에 권한남용이 없다고 주장하는 피고가 그 요청의 적법성을 증명해야 할 책임이 있고, 이를 증명할 가장 확실한 방법은 통신자료제공요청서를 증거로 제출하는 것이다. 그러나 피고가 제출을 거부했기에 1심 법원은 원고들의 신청을 인용해 문서제출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피고는 항고하였고 대법원에 의해 그 명령은 무효화되어, 원고들이 요청의 적법성을 확인할 방법이 없게 되었다.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확보할 가능성도 있긴 하지만 정보공개청구는 여러가지 다양한 사유로 거부될 수 있고 실제로 대부분 공개를 거부당했다. 피고가 ‘통신자료제공요청서’로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면서 그 문서를 제출하지 않는 부당한 상황에서 1심과 2심이 원고가 피고의 권한남용을 입증하지 못했다고 패소 판결한 것은 매우 불공정하다. 이번 사건에서 대법원은 원심의 판단을 취소하고 충분한 자료를 바탕으로 재판을 제대로 다시 하라고 명령해야 한다.
통신자료 제공 제도 자체의 문제에 대해서는 여러번 지적한 바 있다. 이 제도에 근거해 그동안 수사기관들은 영장 없이 국민의 개인정보를 무차별적으로 제공받아 왔으며, 2013년~2018년 통계에 따르면 한해 평균 약 8백 9십만개 이상의 계정(아이디 또는 전화번호)에 대한 통신자료가 제공되었다. 이는 인구수 대비 17.3%에 달하는데, 대략 국민 5명 중에 1명은 자기도 모르게 수사의 대상이 된 것이다. 올해 7월 한국을 방문한 유엔 프라이버시권 특별보고관 조셉 카나타치(Joseph Cannataci)는 영장 없는 통신자료 제공 건수가 다른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보다 훨씬 많다고 하면서 이에 대한 사법적 감독체계가 필요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헌법 제12조 제3항은, “체포·구속·압수 또는 수색을 할 때에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여야 한다”고 하여 영장주의와 적법절차의 원칙을 천명하고 있다. 영장주의는 국민의 기본권을 강제로 침해할 때는 반드시 법관이 발부한 영장이 있어야 한다는 헌법상 원칙이며 특히 형사절차에서는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통신자료는 이용자의 개인정보이며, 개인정보를 대상으로 한 조사ㆍ수집ㆍ보관ㆍ처리ㆍ이용 등의 행위는 모두 기본권인 개인정보자기결정권에 대한 제한에 해당하므로 통신자료 요청 및 제공에는 영장주의가 적용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그리고 적법절차의 원칙은 형사절차뿐만 아니라 모든 국가작용 전반에 적용되는 것으로, 이로부터 당사자에 대한 적절한 고지, 의견 및 자료제출 기회 부여와 같은 중요한 절차적 요청이 도출된다. 그런데 통신자료 제공 제도는 통신자료 요청 및 제공이 이용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이루어지고 있고, 이용자가 전기통신사업자에 의한 통신자료 제공을 저지하기 위해 그 과정에 사전 개입할 수 있는 절차가 전혀 없으며, 사후적으로도 통지를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통신자료제공은 영장주의와 적법절차의 원칙에 위반하는 위헌적 제도이며 이런 제도를 수사 단계에서 광범위하게 활용하는 것은 명백한 권한 남용이다.
위헌적인 통신자료제공 제도에 대해 2012년 헌법재판소는 통신자료 취득행위는 임의수사에 해당하여 공권력의 행사가 아니고, 통신자료 제공 요청에 응할 것인지 여부는 전기통신사업자의 재량에 맡겨져 있어 기본권 침해의 직접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하면서 매우 유감스럽게도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한편, 2016년 3월 대법원은 통신자료를 제공한 기업은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고 판결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신자료제공에 대한 민사소송과 행정소송이 이어지고 있고, 시민사회는 헌법소원(2016헌마388)도 재차 청구한 상황이다. 현재 심리중인 2016헌마388 헌법소원에 대해 2016년 국가인권위원회는 “통신자료 제공 제도는 개인정보 수집 목적과 대상자 범위가 지나치게 넓고, 사전 또는 사후에 사법적 통제가 이루어지지 않으며, 정보주체가 자신의 개인정보 제공 사실을 인지할 수 있는 통지 절차가 마련되지 않아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의견을 제출했으며, 2017년에는 유엔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과 국제 정보인권 단체들이 헌법소원을 지지하는 의견을 헌법재판소에 제출했다. 그리고 통신자료 제공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사법적 통제 장치 마련 등을 골자로 하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과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이 19대 국회에 이어 20대 국회에도 다수 발의되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법원은 1심에서도 2심에서도 통신자료제공이 되었다는 것만으로는 수사기관의 위법행위를 인정할 수 없다거나 권한남용을 인정할 수 없다는 단 한 문장을 내세워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했다. 피고행위의 위법성을 입증할 자료를 피고가 가지고 있고 제출을 거부하는 상황에서 말이다. 그리고 입증책임 법리에 의하면 원고가 통신자료제공이 된 사실을 입증해서 피고행위의 위법성이 추정되므로 피고가 권한남용이 없었음을 증명해야 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법원은 이에 대해 아무런 판단을 하지 않았다. 오픈넷과 참여연대의 노력으로 2015년부터 이동통신사들은 통신자료 제공 여부를 확인해주고 있으니 판사들도 한 번 확인해보기를 권한다. 본인이 자신도 모르게 통신자료 제공을 당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면 이렇게 나태하게 재판을 진행할 수는 없을 것이다. 민사소송법 제423조는 판결에 영향을 미친 헌법ㆍ법률ㆍ명령 또는 규칙의 위반을 상고 이유로 규정하고 있으며 1심과 2심 판결에는 명백한 헌법 위반이 존재한다. 기본권 수호의 최후의 보루인 대법원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2019년 11월 22일
사단법인 오픈넷
문의: 오픈넷 사무국 02-581-1643,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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