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콘텐츠로 건너뛰기

[언론보도] 돈보다 어업

지역

[언론보도] 돈보다 어업

익명 (미확인) | 금, 2016/02/05- 23:00

tvN 예능프로 ‘꽃보다 청춘’의 ‘포스톤즈’는 결국 아이슬란드의 오로라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정상훈·조정석·정우·강하늘, 네 명의 연예인들이 추위를 뚫고 간 그곳은 아이슬란드. 영국의 북쪽, 덴마크와 노르웨이의 북서쪽에 있는 북대서양의 섬나라다. 오로라는 물론 눈물 흘릴 만큼 아름다웠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이 나라에서 먹고사는 문제와 관련해 일어난 거대한 변화야말로 오로라만큼이나 눈물을 자아낼 법하다.

달콤한 금융자본의 유혹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그 거대한 변화를 겪은 아이슬란드 어부 발리 호스쿨드손의 이야기를 전한다. 어부인 그의 책장에는 리스크 관리와 국제금융 등 금융 관련 서적이 여전히 꽂혀 있다. 어부와 금융전문가라는, 두 개의 아주 다른 직업을 몇 년 사이에 옮겨가게 된 그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

호스쿨드손은 많은 건강한 아이슬란드 청년들이 그랬던 것처럼 어부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런데 2000년대 중반 갑자기 고기잡이를 그만두고 투자은행에 취직해 투자자문을 하게 됐다. 어부가 하루아침에 금융전문가로 변신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 다시 어부의 자리로 돌아와 있다.

그가 직업을 바꾼 10년 남짓한 기간 동안, 아이슬란드는 국가 시스템이 두 번이나 크게 변화했다. 어업이 핵심 산업이던 인구 32만 명의 소국은 하루아침에 글로벌 금융 허브 국가로 발돋움하며 전세계 큰손들의 놀이터가 됐다. 몇 년 만에 주요 은행 모두가 파산하고 자산 가치가 폭락하는 금융위기를 맞았다. 그리고 다시 어업국가로 돌아왔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오랫동안 아이슬란드의 가장 중요한 산업은 고기잡이였다. 그리고 아이슬란드는, 세계에서 가장 행복하게 사는 나라 중 하나였다. 유엔이 세계 각국의 삶의 질을 조사해 발표하는 인간개발지수(Human Development Index)에서는 늘 세계 5위 안에 들던 나라였다. 그런데 어느 날, 사회시스템이 바뀌면서 아이슬란드인들의 삶은 송두리째 변화하게 된다.

2000년대 초반 무렵의 일이다. 세계적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 등이 아이슬란드 은행들에 접근했다. 레버리지 차입, 인수·합병, 파생상품, 외환거래 등 그때까지는 낯설기만 하던 다양한 금융기법을 소개한 이 투자은행가들은 오랜 기간 섬에 갇혀 지내던 아이슬란드인들에게는 너무나 매력적으로 보였다. 아이슬란드인들이 받아들인 메시지는 단순했다. 고기잡이처럼 힘들이지 않고도 ‘쉽게 큰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이 큰 깨달음 이후, 아이슬란드는 외국 돈을 끌어들여 쉽게 돈을 벌어보기로 결정했다. 해외자본의 투자 관련 규제를 풀고 금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투자하기는 쉽고 이자는 높으니 해외투자자에게는 이렇게 매력적일 수가 없었다. 이미 국제적으로 유동성이 넘쳐 갈 곳을 찾아헤매던 시기였다. 국제 자금이 아이슬란드로 몰려들기 시작한다.

2003년 아이슬란드 3대 은행의 자산은 합쳐야 수십억달러(수조원)에 불과했다. 그런데 3년 뒤 이 3대 은행의 자산을 합치니 1400억달러(약 154조원)가 됐다. 전체 자금의 3분의 2를 외국에서 가져왔다. 영국에서는 아이슬란드에 투자하는 ‘아이스 세이브’라는 금융상품이 대히트를 기록한다. 얼음나라에 돈이 마구 쏟아져 들어왔다.

어부에서 투자자로

돈이 풀리자 자산 가격이 오르기 시작했다. 은행들은 넘쳐나는 현금을 국민에게 뿌렸다. 고기잡이만 알던 이들이 주식과 부동산에 투자할 수 있도록 아주 쉽게 대출을 해줬다. 2003년부터 4년 동안 아이슬란드 주식시장은 9배 성장했다. 수도 레이캬비크의 부동산 가격은 3배가 됐다. 아이슬란드 평균 가정의 자산도 3년 만에 3배가 됐다. 이 기간에 금융산업 활성화로 한 해 7% 이상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어부들은 이제 투자자로 변신해갔다. 어부들이 통화 차익거래를 알게 되고 그걸로 많은 돈을 벌었다. 은행에서 돈을 빌려 고급 주택과 주식을 사기만 하면 돈을 벌 수 있는데 고기잡이에 나설 이유가 없었다. 아이슬란드에서 발달한 학문 중 하나는 어업경제학이었는데, 아이슬란드 젊은이들은 더 이상 어업경제학을 공부하려 하지 않았다. 모두 금융을 배우겠다고 나섰다. 공대에서도 수학과에서도 금융공학을 개설했다. 청년들은 어업보다는 옵션가격 결정 모델에 심취했다. 아이슬란드 3대 은행에 취업해서, 세계적 투자은행가로 성장하겠다는 꿈을 키운다.

호스쿨드손이 어부 일을 그만두고 금융업에 뛰어든 것은 그 무렵이었다. 위험관리와 국제금융 책을 들여다보며 투자자문을 시작했다. 그는 회고한다. “한 농부가 찾아와 20년이나 된 농기계를 담보로 잡아 6만5천유로를 빌려달라고 했어요. 직장 상사에게 이야기했더니 그냥 주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그 2배를 원하면 2배를 줘도 된다고요.” 그는 당시를 높은 보너스에 눈이 멀어 광기에 동참했던 시기로 기억한다.

그 아이슬란드가 2008년 갑자기 국가부도를 선언한다. 은행들이 무분별하게 빚을 늘려놓았다가 상환 능력이 없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예금이 인출되고 지급불능 사태가 벌어진다. 사회는 혼란에 빠졌다. 파산 뒤 한 여론조사에서는 아이슬란드 국민의 3분의 1이 ‘이민을 원한다’는 결과가 나올 정도였다.

이때 아이슬란드는 다시 한번 정책 방향을 크게 전환한다. 다른 나라들이 금융위기 때 은행에 세금을 넣어 되살린 것과 반대로, 아이슬란드는 3대 은행을 모두 파산시킨다. 그리고 미국 등 다른 나라에서 금융사들이 부실 책임을 지기는커녕 금융위기 기간에도 고액 연봉과 보너스를 챙긴 것과 반대로, 아이슬란드 은행 경영자들은 부실에 책임을 지고 감옥에 가게 된다. 또 아이슬란드는 이번엔 거꾸로 외국 돈을 쫓아내기로 했다. 아이슬란드인들의 은행 계좌는 보호해주지만, 외국인들은 돈을 인출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막아버린다.

이렇게 하면 나중에 다시 투자받기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 실제 아이슬란드 투자자가 많은 영국 정부는 강력하게 반발한다. 글로벌 금융 허브 국가로 돌아가기는 아예 어려워질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슬란드 정부는 몇 년 만에 다시 한번 유턴을 단행했다. 금융이 아니라 어업으로 유턴을 한 것이다.

냄비와 솥으로 막은 채무 상환

이 시기 아이슬란드 정부로부터 상징적 정책이 하나 더 나온다. 위기 직후에 모든 고기잡이 장소를 개방하고 시민 누구나 하루 650kg까지 물고기를 잡고 팔 수 있게 규제를 푼 것이다. 돈에 대한 규제는 묶고 고기잡이에 대한 규제는 푼 셈이다. 몇 년 전 금융 규제를 풀었던 것과 정반대 방향의 정책이다.

다시 한번 진행한 유턴의 결과는 어땠을까. 놀랍게도 아이슬란드 사회는 다시 변화한다. 자산 가치는 추락하고 금융산업은 쪼그라들었다. 대신 시민들은 너도나도 주중 저녁 시간이나 주말에 물고기를 잡으러 몰려나온다. 몇 년 동안 추락하던 어업은 다시 아이슬란드의 주력 산업으로 자리잡았다. 어업이 아이슬란드 수출의 42%를 다시 차지하게 된다. 이 시기에 호스쿨드손도 투자은행을 떠나 다시 어부의 자리로 돌아갔다.

사실 아이슬란드인들의 삶의 변화, 호스쿨드손의 삶의 변화는 스스로 선택한 것이기도 하다. 아이슬란드 정부는 2009년 국가채무 35억유로를 영국과 네덜란드에 15년 동안 5.5%의 금리로 갚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국민 1인당 매달 100유로씩이나 되는 액수다. 위기를 맞은 은행들에 공적자금을 투입하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다른 나라 정부들이 대부분 채택한 계획이다.

그 계획을 무산시키고 지금의 길을 가게 만든 것은 아이슬란드인들이다. 세금으로 국가빚을 갚는 것을 반대한 아이슬란드인들은 금융위기를 초래한 정부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다. 2009년 초 수도 레이캬비크에서는 연일 최대 규모의 시위가 열렸다. 시위대가 냄비와 솥을 들고 두드리며 시위를 벌여 ‘프라이팬 혁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결국 당시 게이르 하르데 총리는 사퇴했다. 정부는 시위대의 요구대로 국민투표를 통해 채무 상환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2010년 3월6일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93%의 압도적인 다수가 채무 상환안을 거부했다.

한때 규제를 풀고 어부의 길을 버리고 일확천금의 꿈을 꾸어보겠다는 선택은 아이슬란드인들이 했던 것이다. 결국 그 꿈이 허황된 것이라 판단하고 어부의 길로 되돌아온 것도 그들이 했던 선택이다. 그 선택 과정에서 정치가 있었고 선거가 있었고 시위가 있었고 국민투표도 있었다. 그 선택을 뒷받침하는 정책을 놓고 치열한 논쟁이 있었다. 결국 그들이 선택한 정책과 사회시스템이 가동됐다.

그 결과 그들의 경제는 완만하지만 회복 중이다. 일확천금의 투자 비즈니스는 사라졌지만 어업과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들과 건강한 민주주의가 자라났다. 젊은 층은 자라나 H&M 같은 브랜드 쇼핑을 덜 하게 됐다. 대신 뜨개질 붐이 뜨겁게 일어났다. 뜨개질 산업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여기에 풍력·수력·지력 같은 재생에너지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조차 아이슬란드 경제가 건전하게 회복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 모든 것은 ‘호스쿨드손’들이 선택한 것이다. 그들은 금융전문가의 꿈을 꾸는 대신 어부가 되는 길을 다시 선택했고, 그 길을 가는 데 맞는 정책과 사회 패러다임을 선택했다. 그 과실을 얻으며 책임도 지는 중이다.

우리도 선택할 권리가 있다

경제는 빠르게 본궤도에 올랐다. 다만 금융 방식이 아니라 고기잡이의 방식으로. 쉽게 돈 버는 길을 포기한 대신, 땀 흘려 일한 만큼 보상받는 삶을 살게 됐다. 인생의 모든 것이 그렇듯이, 정책과 사회 패러다임도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는 포기해야 하는 법이다. 중요한 것은, 아이슬란드인들이 어떤 사회에 살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선택을 하는 순간 사회 패러다임이 달라지고 삶의 양상이 뒤바뀌었다.

한국 사회는 점점 더 굳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모든 게 주어진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헬조선’과 ‘흙수저’론도 그런 배경에서 나온 유행어일 것이다. 하지만 아이슬란드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늘 사람들에게는 선택권이 있고 변화할 수도 있다. 이를 깨닫는 데서 희망은 시작된다. 아이슬란드가 아름다운 것은 오로라 때문만은 아니다.

[ 한겨레21 / 2016.02.05 / 이원재 희망제작소 소장 ]

기사원문보기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

Plain text

  • 웹 페이지 주소 및 이메일 주소는 자동으로 링크로 전환됩니다.
  • 줄과 단락은 자동으로 분리됩니다.
  • 사용할 수 있는 HTML 태그: <a href hreflang> <em> <strong> <cite> <blockquote cite> <code> <ul type> <ol start type> <li> <dl> <dt> <dd>
이미지
무제한 수의 파일을 이 필드에 업로드할 수 있습니다.
50 MB 한계입니다.
허용된 유형: png gif jpg jpeg.
Enter the YouTube URL. Valid URL formats include: http://www.youtube.com/watch?v=1SqBdS0XkV4 and http://youtu.be/1SqBdS0XkV4.
CAPTCHA
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손배소·가압류는 그만, ‘노란봉투 톡톡쇼’ 19일 국회에서… “ ‘노란봉투법’에 힘을 실어주세요.” “잠자고 있는 ‘노란봉투법’이 싹을 틔우고 자라 튼실한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세요.” 오는 19일 […]
화, 2015/10/13- 19:31
291
0
  “단식 말고는 이제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일곱 번째 추석도 길거리에서 보냈다. 손해배상 재판 2심에서 패소한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이 진퇴양난에 빠졌다. 소송을 하지 않으면 […]
화, 2015/10/13- 19:28
403
0
월, 2015/10/12- 18:47
31
0
목, 2015/10/15- 10:14
38
0
    ▲ <사진=손잡고 제공>   임이랑 기자  |  [email protected] 【투데이신문 임이랑 기자】손잡고는 오는 19일 오후 3시 국회헌정기념관에서 “당신의 어깨를 톡톡, 노란봉투(Talk Talk)쇼”(이하 톡톡쇼)를 통해 국회의 문을 두드린다. […]
목, 2015/10/15- 16:28
209
0

올해로 민선 지방자치 20년을 맞는다. 기초지방자치단체는 주민의 피부에 와닿는 일상생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고민과 실험을 시도하면서 돌파구를 마련하고 있다. 혁신적인 실험으로 변화를 이끌어온 일부 성과들은 광역지방자치단체와 중앙정부로 확산되고 있다. 현장의 구체적인 요구와 고민을 풀어나가고 있는 생활임금제, 공공갈등조정관 제도, 동 복지허브화의 사례를 보자.

부천시·서울 노원구 등 생활임금 시행

경기도 부천시, 서울 노원구와 성북구 등은 2013년부터 생활임금을 시행하고 있다. 생활임금이란 근로자뿐 아니라 그 가족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주거비와 식료품비, 교육비, 교통비, 문화비, 의료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적정임금을 보장하는 제도다. 최저임금이 근로자 개인의 생활 보장에 맞춰져 있다면 생활임금은 가족까지 보장 범위를 확대한 개념이다.

부천시는 생활임금 논의를 가장 먼저 시작한 곳이다. 2011년 12월에 지역의 사회적 대화 기구 ‘지역노사민정위원회’에서 생활임금을 제안했고, 이후 공공부문 노동자 임금실태 조사를 바탕으로 2013년 12월 생활임금 조례를 제정했다. 지난달 고시된 부천시 2016년 생활임금은 시간급 6600원으로, 정부의 내년도 법정 최저임금 6030원보다 570원(9.45%) 많은 금액이다. 서울 노원구는 생활임금을 책정할 때 다른 시·도보다 높은 서울시 물가 수준을 반영한다. 노원구의 내년도 생활임금은 시간급 7370원으로 법정 근로시간 월 209시간 기준 154만2천원이다. 서울시 물가 수준을 반영한 생활물가 인상액 21만2809원과 고용노동부에서 발표한 상용근로자 평균 급여(266만111원)의 절반인 133만56원을 더한 금액이다. 서울 성북구는 2016년 생활임금을 서울시 물가수준 60%까지 반영해 시간급 7585원, 월 158만5천원으로 적용할 예정이다. 이는 정부의 내년도 최저임금보다 각 1340원(22.2%), 1555원(25.79%) 많은 금액이다.

8개 기초단체 시행중…20곳 시행 임박

최근 윤호중 국회의원(새정치민주연합)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국세청에 근로소득을 신고한 근로자 총 1618만7647명의 평균 월급은 264만원이다. 그러나 소득구간 중 가장 많은 근로자가 위치한 최빈구간의 평균 월급은 110만4167원이다. 우리 주변에 최저임금 수준의 월급을 받는 근로자가 매우 많다는 뜻이다. 생활임금은 이들을 대상으로 하며, 우선 해당 각 기초지자체 공공부문 종사자들에게 적용된다. 현재 생활임금제는 8개 기초지자체에서 시행중이고 20개 기초지자체는 조례 제정을 완료하였거나 입법예고한 상태다. 광역지자체는 서울시를 시작으로 경기도, 세종특별자치시, 광주광역시 등이 도입했다. 국회에서도 생활임금제 법제화를 둘러싼 열띤 논의가 진행중이다.

인천 부평구, 공공갈등조정관제 도입

지역에서 갈등이 불거졌을 때 이를 해결하기 위한 ‘공공갈등조정관 제도’ 역시 기초지자체에서 광역지자체로 확산되고 있다. 인천 부평구는 2011년 지자체 최초로 공공갈등조정관 제도를 도입했다. 당시 부평구는 도심을 지나는 고압송전선로 이전을 둘러싸고 이해관계자와 주민 사이에 시위와 농성, 법원 소송이 반복되는 악순환을 5년 넘게 겪고 있었다. 공공갈등조정관은 수차례의 주민간담회와 이해당사자 면담 등을 통해 갈등의 원인을 분석하고 의견을 조정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부평구는 송전탑 이전 설치 후 지중화(송전선로를 땅속에 매립)한다는 합의를 이끌어냈다. 서울시는 부평구 사례를 참고해 민선 4기에 지정했던 뉴타운 사업의 더딘 진행과 갈등을 공공갈등조정관 제도로 풀어가려 하고 있다. 경기 성남시도 2012년 공공갈등조정관 제도를 도입해 한국남동발전의 복합화력발전소 시설개선공사를 둘러싼 주민과 발전소 사이의 갈등을 중재했다. 위례신도시 신교통수단(트램) 설치 일정 변경과 관련된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주민 사이의 갈등을 조정하기도 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사회갈등지수 국제비교 및 경제성장에 미치는 영향’(2015)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회갈등지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5개 회원국 가운데 다섯째로 높다. 이를 관리하는 사회갈등관리지수도 비교 대상 34개 회원국 중 27위로 하위권이다. 공공갈등조정관 제도와 같은 행정적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서울 서대문구, 동 복지 허브화 사업 성과

서울 서대문구는 동주민센터가 행정기관이라는 통념을 깨고 각 지역의 복지 중심이 되는 ‘동 복지허브화’ 사업을 추진해 성과를 내고 있다. 지역의 사회복지 체계를 동주민센터 중심으로 운영하는 것이다. 서대문구의 동주민센터가 변화하게 된 계기는 2011년 시작한 ‘100가정 보듬기’ 사업에서 비롯됐다. 지역별로 긴급한 지원이 필요한 가정을 찾아 지역사회 내 후원자와 연결하는 사업으로, 후원자 발굴과 이를 연결하는 동주민센터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런데 사례를 발굴해야 할 사회복지사들이 행정 업무를 처리하느라 바빠 현장에 나가기가 여의치 않았다. 서대문구는 사회복지사들이 본연의 현장업무에 충실할 수 있도록 관행적으로 행해져오던 동주민센터의 업무를 조정했다. 주민등록등본과 같은 단순 민원서류 발급은 무인처리기로 대체하되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했다. 인터넷 발달로 간단한 민원은 시민들이 온라인으로 처리하는 추세이기도 했다. 동사무소에는 재난 안전 업무 등 최소한의 행정 업무만 남겨두고 청소나 교통, 민방위 등의 업무는 구청으로 이관했다. 동주민센터의 기능과 역할을 ‘복지의 거점’으로 전환시킨 것이다. 추가적인 예산 투입도 거의 없었다. 각 동마다 지역 주민이 참여하는 ‘동 지역사회복지협의체’를 통해 주민 스스로 복지 상황을 점검하고 개선할 수 있도록 했다. 모든 동네의 통장을 ‘복지 통장’으로 임명해 적극적인 참여를 독려하기도 했다.

보건복지부는 서대문구의 사례를 ‘복지전달체계 개편 우수사례 매뉴얼’로 만들어 전국적으로 확산시키고 있다. 지자체의 혁신 사례가 중앙정부로 확산된 것이다. 현장 중심의 고민과 노력이 관행을 뒤집고 새로운 모델을 만들 수 있었다.

지방세수 감소 불구 복지분야 지출 증가

1995년 시작된 민선 지방자치는 단체장과 의원 직선제에 이어 주민투표제와 주민소환제가 도입되는 등 외형적 제도는 잘 갖춰지고 있다. 그러나 강력한 중앙집권적 통제는 여전하다. 재정이나 인력, 제도 등 많은 부분이 중앙에 예속되어 있다. 국가 총세입 중 국세와 지방세 비중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8 대 2의 구조 그대로다. 중앙정부는 총액 인건비 제한으로 지방자치단체의 공무원 수까지 제한하고, 각종 지침으로 자치의 발목을 잡는다. 민선 지방자치가 ‘2할 자치’에 머무르고 있다고 비판받는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 사례들처럼 혁신을 시도하며 지방자치는 조금씩 발전하고 있다. 특히 이러한 실험과 변화는 참여와 소통을 주요 가치로 내세운 2010년 민선 5기 들어 본격화되는 추세다. 민선 5기에 부동산 경기가 침체하며 취득·등록세를 주요 재원으로 하는 지방세수가 감소했으나 복지 분야 지출은 증가했다. 때문에 많은 재원을 기반으로 하는 사업은 과감히 줄일 수밖에 없었다. 대신 한정된 예산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주민과 소통하고 기존 관행을 혁신하는 시도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서로의 경험과 고민을 나누는 협력도 확대되었다. 2010년 9월 출범한 목민관클럽이 대표적이다. 지역과 정당을 넘어 지속가능한 지역발전을 도모하는 지자체장들의 모임으로 서로의 고민과 혁신적 대안들을 나누고 있다. 공공갈등조정관 제도는 목민관클럽을 중심으로 확산된 정책 중 하나다. 주민과 소통하며 현장과 밀착된 생활자치를 열어가는 지방자치의 다양한 실험과 혁신이 지속될 수 있도록 중앙정부의 과감한 분권과 혁신을 기대한다.

[ 한겨레 / 2015.10.13 / 송정복 희망제작소 정책그룹 선임연구원 ]

기사원문보기

화, 2015/10/13- 18:00
184
0

[에너지경제 포토] 핵 싫어, 해 좋아

[에너지경제 민원기 기자]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4주기(3월 11일)를 앞두고 한국 YWCA 연합회를 비롯한 참가자들이  10일 오후 서울 명동 YWCA 앞에서 ‘탈핵 불의 날 캠페인’을 펼치고 광화문 원자력안전위원회까지 행진했다.

‘탈핵 불의 날 캠페인’은 핵 밀집도 세계 1위인 한국의 핵발전소 상황을 시민에게 알리고 노후 핵발전소 가동 중지와 신규 핵발전소 건설 반대 서명을 통해 우리 사회가 재생가능 대안에너지를 사용하는 사회로 나갈 것을 촉구하는 행사다.

▲보라색 비옷을 입은 여성환경연대 회원들이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저작권자 ⓒ 에너지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에너지와 환경이 미래경제다>

월, 2015/10/19- 15:56
464
0

10년 젊어진다고? 비싸게 산 화장품, 피부에 독 될 수 있다

<참조 – 여성환경연대 ‘화장품 속 유해물질 및 핸드메이드 화장품’>
[2015-05-14] 원문은 여기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바르기만 하면 젊어질 수 있어요.”

광고 속 스타의 말에 고민 없이 제품을 구입했다. 하지만 결과는 울긋불긋 피부트러블.

그제야 성분표시 라벨을 확인해보니, 유해화학성분이 눈에 띈다. 비싼 돈을 들여 나는 독을 샀다. 

화장품 속 유해물질은 피부 겉면에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피부를 통해 인체로 유입되기도 한다. 수많은 화장품 회사들은 주름제거, 미백효과 등에 더 효과적인 화장품 개발하고 신제품을 시장에 내 놓고 있다. 비싸게 구입한 이런 화장품들은 실제로 놀라운 효과를 발휘하기도 한다. 하지만 화장품 회사는 2~3년간의 유통보존기간을 보증해야하고 신속한 제품개발을 위해, 100% 검증되지 않은 화학 재료를 사용하기도 한다.

예쁘게 생긴 용기와 포장, 좋은 향, 아름다운 색깔 등의 마케팅에 구입하기보다 화장품의 원재료와 부작용을 고려한 신중한 구입이 필요하다. 화장품 용기에 기재된 성분표시를 주의 깊게 읽고 판매원에게 질문하거나, 인터넷과 관련 서적 등에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 피부 건강을 위협하는 화장품 속 유해물질은 뭐가 있을까.

◆ 방부제
파라벤류는 많은 화장품에 쓰이는 방부제로, 성분표시라벨에는 파라옥시안식향에스텔이라고 기입된다. 파라벤은 피부트러블의 원인 1위로 꼽히며 환경호르몬으로 의심받고 있는 물질이다. 2004년 영국에서의 연구 결과 파라벤 성분이 유방암 조직에서 발견돼 유방암의 원인으로도 의심받고 있다.

2005년 또 다른 연구에서는 메칠파라벤이 함유된 화장품을 바르고 자외선을 쬐면 피부노화가 촉진된다는 것이 확인됐다. 파라벤 외의 방부제인 이미다졸리닐우레아와 디아졸리디닐우레아, 쿼터늄15의 경우 파라벤류와 함께 쓰이면 우수한 방부효과를 나타낸다고 알려져 있으나, 포름알데히드를 방출하는 물질들로 주의해야 한다.

- 화장품 성분을 확인하세요!
메틸파라벤, 부틸파라벤, 이소부틸파라벤, 프로필파라벤, 에칠파라벤, 파라옥시안식향산에스텔, 이미다졸리닐우레아

◆ 계면활성제 
계면활성제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며, 샴푸, 비누, 각종 세정제, 치약, 일반 화장품 등에 사용된다. 물과 기름을 섞이게 하는 유화제로 세포막을 녹이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다른 독성 물질들이 피부 속으로 쉽게 흡수되도록 한다. 또한 다른 화학물질들과 쉽게 반응하여, 발암물질인 니트로사민을 형성하기도 한다.

심장, 간, 폐, 뇌 등에 일정수준을 유지하며 체내에서 5일정도 머무른다고 알려져 있다. 이 밖에도 디세틸디모늄클로이드 (샴푸, 린스, 트리트먼트), 스테알트리모늄클로이드 (크림, 팩, 린스, 트리트먼트, 헤어로션), 세틸황산나트륨(샴푸, 세안제) 등의 물질이 계면 활성제로 사용된다.

◆ 습윤제
트리에탄올아민(TEA), 디에탄올아민(DEA) 등은 화장품의 유화제나 촉촉함을 주는 습윤제로 사용되는 화학 성분들이다. 이 물질들은 화장품에 성분표기가 되지 않는 아질산염이나 포름알데히드계 방부제인 이미다졸리닐우레아, 쿼터늄15, 디엠디엠히단토인 등과 결합해 몸속에서 발암물질인 니트로사민을 형성한다. 또한 트리에탄올아민은 오랜 기간 사용할 경우 점막과 피부, 눈을 자극해 안과질환이나 모발, 피부 건조증을 포함한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다.

◆ 프탈레이트(phthalate)
프탈레이트는 플라스틱을 부드럽게 만드는 화학물질로, 화장품에 사용될 경우 내용물에 향을 고정시키거나 광택을 내는 데 사용된다. 총 10가지 종류가 있는데, 이 중 3가지(BBP, DEHP, DBP)는 환경호르몬 물질로 지정됐다.

프탈레이트는 입, 피부, 혈액, 호흡을 통해서 몸속으로 흡수된다. 남자의 경우에는 정자수의 감소, 정자의 건강 저하, 정자 자체의 DNA손상 등이 보고됐으면, 여성의 경우 자궁손상, 여성호르몬 과다분비로 인한 생식암 발병, 임신 시 태아에게 좋지 않은 영향 등의 피해를 입을 수 있다.

연구결과에 따르면,프탈레이트 화합물은 남성보다 여성에게서 평균적으로 더 많이 검출돼, 비교적 화장품이나 개인세정제의 다양한 사용이 많은 여성들이 환경호르몬에 더 노출돼있는 것으로 의심된다.

*환경호르몬
환경호르몬은 환경쓰레기, 농약 등의 유해 요소가 먹이사슬을 통해 사람의 몸속으로 들어와 진짜 호르몬처럼 작용하는 화학물질이다. 화장품 속에 들어 있는 환경호르몬이 몸에 들어 오면 성장프로그램을 방해하기도 해, 태아나 유아들이 노출되면 생식기에 이상이 생길 수 있다. 남자의 정자 수 감소와 불임증가, 유방암이나 자궁 암 등 환경호르몬의 영향은 크다.

◆ 인공색소
천연이 아닌 인공에서 나온 색소는 그 자체가 발암물질이 될 수 있다. 인공타르색소에는 대부분 비소와 납등의 중금속이 함유돼 있다. 또 타르색소 중에는 발암성 등의 이유로 식품첨가물에 사용이 금지된 경우가 많은데, 화장품에는 이런 색소 함유가 허용됐다. 의약품의 경우 내복용과 내복 금지용 색소가 구분돼 있으나, 화장품의 경우는 모두 바르는 것이라 여겨져 립스틱, 립글로스에도 타르색소가 사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 인공향료
모든 인공 향료는 석유추출물로 합성하여 만들어진다. 인공향료가 우리 몸에 들어와 호흡곤란, 알레르기 반응, 민감 반응을 유발한 사례가 빈번히 보고되며, 특히 독성물질인 톨루엔, 염화메틸 등도 사용되는 경우가 있다. 톨루엔의 경우 천식을 유발하고, 천식환자에게 발작을 일으키는 물질로, 신경독성 및 생식독성도 의심받고 있다. 또한 이 성분이 사용된 화장품은 벤젠에 오염될 수 있어 발암성이 있다. 과거 매니큐어나  향수, 헤어제품에서 발견돼 논란을 일으켰다.

◆ 건강하고 안전하게 피부 가꾸기
1. 화장품을 살 때 라벨을 확인한다.
2. 모르는 제품의 구성 물질에 대해 화장품 회사에 물어본다.
3. 매니큐어, 페디큐어는 가급적 피한다.
4. 신생아와 유아에게 파우더를 사용하지 않는다.
5. 각질제거를 위해서 흑설탕, 혹은 소다(탄산수소나트륨)를 물에 걸쭉하게 개어 얼굴에 부드럽게 문지른다.
6. 화장품과 비누, 팩, 향수 등을 손수 만들어 쓴다.
7. 합성세제 대신 EM효소 발효액, 소다, 식초를 사용한다.
8. 화장은 깨끗이 닦아낸다.
9. 세안 후 세안수건으로 톡톡 닦아준다. 피부를 문지르지 않는다.
10. 피부에 스팀을 쏘는 것은 절대 금지. 스팀의 열기는 과다 피지분비 초래하고 피부를 예민하게 한다.
11. 일주일에 한 번, 아무것도 바르지 않는다.
12. 일주일에 한 번, 천연 팩으로 적절한 영양을 공급하자.
13. 얼굴에 지압점을 눌러준다.
14. 환경호르몬 등 논란이 되는 의심물질들이 함유된 제품은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는 한 멀리한다.
15. 색소, 향료, 방부제, 프탈레이트가 들어간 제품은 피하자.
16. 샴푸나 린스, 트리트먼트 대신 비누와 식초, 구연산 등을 사용한다.
17. 임산부나 수유중인 사람, 노약자나 어린이는 가능한 염색을 하지 않는다.

키즈맘 신세아 기자 [email protected]

월, 2015/10/19- 17:02
352
0
[여성신문] 세상읽기
 장이정수 (여성환경연대 공동대표) 님의 글입니다.
[2015-03-13] 원문은 여기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삼시 세끼의 정치

어릴 적 쌀 장사를 하던 아버지의 가게 벽에는 ‘일하기 싫은 자는 먹지도 말라’는 글이 써 있었다. 일흔이 넘도록 일을 했던 아버지는 하루 세끼를 먹으면서 인간의 불행이 시작됐다고 믿으셨다. 우린 죄를 많이 져서 하루에 세 번이나 배고픈 것이다. 아버지 세대는 먹기 위해 전쟁을 치른 세대였다. 쥐꼬리만 한 수입으로 많은 식구를 먹여야 했던 어머니 역시 식구들 끼니 걱정으로 일생을 사셨다. 점심은 마음(心)에 점(点)만 찍을 정도로 간단히 먹어야 한다거나 1일 1식을 해야 한다거나 비만이 걱정인 요즘에도 어머니는 여전히 밥 걱정을 해서 자식들의 핀잔을 듣는다. 1인당 쌀 소비량이 65.1㎏으로 70년대의 절반으로 줄고 세계에서 가장 많은 유전자변형식품(GMO) 콩과 옥수수를 수입하고 농촌은 노인들만 남은 지금, 우리들에게 밥은 더 이상 하늘이 아닌데도 말이다. 쌀이 부족하면 수입하거나 빵을 사 먹으면 그만이다. 수고로이 밥을 짓는 대신 사 먹으면 그만이다. 밥상머리도 사라지고 집 밥도 사라지고 있다.

이 풍요의 시대에 여전히 삼시 세끼를 못 먹는 사람들이 많다. 청소년의 3명 중 한 명이 아침을 거른다. 절반이 자신의 몸에 불만을 갖고 실패로 점철되는 온갖 다이어트를 하면서 건강을 잃기 시작한다. 청년들은 편의점 패스트푸드로, 직장인들은 외식으로 1년에 20㎏의 식품첨가물을 먹는다. 내가 사는 동네의 파지 줍는 노인들은 1㎏을 주워야 80원을 받는다. 목숨을 걸고 무단 횡단하고 때론 남의 파지를 슬쩍하다가 멱살을 잡히기도 하고 식당이나 공장 청소를 해주면서 박스를 모아 하루 1만원을 번다. 일당 만원 벌이에 식당 밥은 언감생심이라 믹스커피로 끼니를 때우곤 한다. 우리나라가 결핵 발생률이나 증가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인 것이 노인들과 청년들 때문이라는 것은 이제 공공연한 사실이다.

 

▲ tvN 삼시세끼   ©삼시세끼 공식페이스북

 

이 풍요의 시대에 불을 피우고 낚시를 해서 밥을 지어 먹는 예능도 나왔다. 서울에서 왕복 20시간 거리의 만재도에서 ‘삼시 세끼’의 남자들은 먹기 위해 전쟁을 치른다. 물론 안사람은 밥을 하고 바깥양반은 물고기를 잡아야 하는 촌스러운 ‘성별 역할’도 있지만 불을 피우는 것은 바깥양반 유해진이다. 아들 역시 설거지에 집안일로 쉴 틈이 없고 게스트로 온 손님조차 마늘을 빻거나 주방 보조를 해야 한 끼 먹을 수 있다. 그리고 밤에는 오늘 반찬이 정말 기막혔다는 그런 대화를 나눈다. 고기를 낚지 못해 늘 빈손으로 들어오는 바깥양반이나, 한두 마리 생선과 텃밭의 푸성귀로 밥을 지어야 하는 안사람이 어떤 이에겐 ‘불어 터진 국수같이 불쌍한 경제’로 보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걸 보면서 저렇게 살아야 하는 게 아닌가, 저렇게 불 피우고 세끼 밥을 하며 살아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발생한 지 어느 새 4년이 됐다. 오염된 땅과 바다 사이에 표류하는 일본과 수명 끝난 원전을 다시 돌린다는 한국, 모든 걸 버리고 마당에 모여 앉아 다 같이 불 때 밥이나 먹이고 싶다. 그러면 인간성을 회복할 수 있을까. 정치가 별건가. 삼시 세끼에 정성을 들이는 것 아닐까.

<ⓒ2015 여성신문의 약속 ‘함께 돌보는 사회’, 무단전재 배포금지>
월, 2015/10/19- 16:29
387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