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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한일협상]일본군 위안부 한일협상 폐기 촉구 경기,수원시민 행동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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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한일협상]일본군 위안부 한일협상 폐기 촉구 경기,수원시민 행동의 날

익명 (미확인) | 금, 2016/01/22- 16:17

피해 당사자들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내용을 협상이라고 내놓는 정부. 

역사적 아픔을 거래의 대상으로 전락시킨 정부.

나라가 힘이 없어 모진 시절을 죽은 것처럼 살아내야 했던 국민에게 

말도 안되는 협상으로 치욕감을 던져주는 정부. 

전혀 사과할 의지도 없는 일본에게 순순히 면죄부를 주는 정부.  

 

이 무능하고, 악질적인 정부는 도대체 어느 나라 국민을 위한 정부인가요? 

 

작년 12월 28일 졸속적으로 진행된 일본군 위안부 한일협상은 반드시 폐기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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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의 글(“일본군 위안부, 한국 시민의 힘 느꼈다”)에서는 종군위안부의 문제와 한국 민중운동의 승리에 대해 썼습니다만 이번에는 이전과는 반대 관점, 즉 정부측 관점에서 말해보려고 합니다. 이를 통해 이후의 한국 민중운동이 직면할 위기와 방해 등 여러 가지 곤란을 명확히 예상하고 대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먼저 종군 위안부의 문제를 간략히 개괄해 보겠습니다. 이전 기사에서는 자세히 서술하지 않았는데, 종군위안부가 탄행하게 된 배경을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종군위안부는 여성인권 침해행위

근대 이전, 칼과 창으로 싸우던 시대에는 종군위안부라는 존재가 없었습니다.  그 시대는 행군하는 군대가 가는 곳마다 그 지방의 여성을 강강하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근대에 들어와 종군위안부라고 말하는 조직이 생기가 되면서 적지 않은 군대의 행군선에서 강간당하는 여성은 현저히 줄어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종군위안부가 긍정될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이야기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위안부가 되는 여성에게 일의 내용을 확실히 설명한 후에 그 일의 내용에 합당한 충분한 댓가를 지불하지 않습니다.  설명도 없이 여성을 속이고, 심지어 강제 연행해서 위안부의 일을 하게 한다면 그것은 행군선에서 강강당하는 어떤 여성의 피해를 다른 여성에게 옮기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종군위안부가 인도적인 관점에서 고안되었다면 문제는 없습니다. 그러나 위에서도 지적했듯이, 당시의 일본 정부에는 그리 높은 인권의식이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무슨 목적으로 종군위안부를 만들었는가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2009년, 하토야마 유끼오 일본 수상은 오키나와의 미군기지 이전을 정치목표로 세웠습니다. 그가 이러한 결심을 하게 된 계기는 오키나와에서 일어난 한 가지 사건때문이었습니다. 

1995년, 오키나와 미군 기지 소속의 해병대원 2명과 미 해군 군인 총 3명이 당시 12세였던 소학교 6학년 소녀를 납치하여 3명이 돌아가며 강강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 사건으로 오키나와 현민의 반미감정과 반기지감정이 폭발했지만, 이 3명은 죄를 문책당하지 않고 본국으로 송환됐을 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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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일본 오키나와 현민들이 초등학교 소녀를 강간한 미군 해병대 사건에 대해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 출처: mbc)

이는 일미지위협정에 근거한 것으로,  공무 중인 미군이 일본국민에게 위해를 가해도 일본 법률에서는 재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과거 미군이 일본에서 범죄를 저지른 죄를 문책한 경우는 한 번도 없고, 실제로 공무 중이 아니었다고 해도 보통 재판받지 않고 처리되었습니다.

오키나와에 배속된 미군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렇지 않게 흉악한 범죄가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처벌되지 않는다고 확신해서 범죄행위에 가담하는 인간이 바로 가까이서 활개친다는 것은 지역주민에게는 공포이자 인권침해일 것입니다.

하토야마 총리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키나와의 미군기지 이전을 계획했던 것입니다.

그 지역에 주둔하는 군대가 현지 여성을 강간하는 것이 빈발하게 되면, 현재의 오키나와처럼 그 지역에 주둔하는 군대와 이를 강제한 정부가 분노의 표적이 됩니다. 다시 말해 점령 후 해당 지역의 통치라는 문제에서 현지인들의 반감을 사서는 통치하기가 어려워집니다.

이것을 피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종군위안부라고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종군위안부는 군대가 주둔하는 지역의 여성을 지키는 것 뿐 아니라 그 지역의 통치의 편이를 목적으로 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여성의 인권을 위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위안부가 될 여성을 속여서 데리고 간다든가, 강제연행해서 위안부 일을 하게 하는 등의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정치에 무관심한 일본인

정부 관료와 정치가들은 통치라는 문제를 고민합니다. 국정의 담당자는 자국의 정치권력이 미치는 범위, 곧 자국 영토를 가능한 한 원만하게 통치하려는 의도에서 움직입니다. 이는 국내 치안이 정부의 책무라는 근대정치학의 정의에서 당연한 일입니다. 

정치가와 관료가 국민의 입장에 선다면 극단적인 문제는 일어나지 않겠지만, 반대로 기계적으로 통치의 편이를 구한다면, 즉 정치가와 관료가 지배자의 관점에서 국민을 본다면, 시민운동을 억압하려고 할 것입니다.

실제 1960년 일미안보투쟁 당시, 키시 노부스케 총리는 국회를 포위한 33만명의 국민을 따돌리기 위해 진지하게 자위대 투입을 생각했습니다. 만약 이것이 실현됐다면, 천안문 사태 같은 일이 도쿄에서 일어났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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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아베 현 일본 총리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 당시 총리가 일본이 유사시 다시 무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내용의 미·일 안전보장조약 개정안을 통과시키자 이에 반대하는 일본 시민들이 도쿄 시내 국회의사당 앞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사진 출처: 마이니치신문)

그러나 당시 아카키 무네노리 방위청 장관이 “자위대가 출동해서 데모참가자 중 사망자가 생길 경우 항거행동이 전국규모로 확대해서 수습이 어려워진다”고 간언한 덕분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은 당시의 자민당 간부에게 이성이 있었다는 에피소드로서 회자되고 있습니다만, 아카끼 방위청 장관의 발언을 주의깊게 읽어보면, 자위대 출동을 저지한 것은 그것이 효과가 없기 때문이지, 결코 국민의 항거행동을 이해했기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만약 국민의 항거행동을 무력화시킬 더 좋은 방법이 있었다면, 그도 그 방법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60년 안보투쟁 이후에도 베트남 반전운동 등 반정부 투쟁은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나 80년대 이후 일본에서는 데모활동이나 정부에 대한 항거운동은 점점  줄어들어 지금은 ‘테러 준비법’ 등 인권탄압법안이 가결돼도 반대데모 참가자가 전혀 모이지 않습니다.

아마 수 십년 사이에 일본인은 정치에 무관심한, 인권탄압에도 둔감한 국민이 되고 말았습니다. 

왜 이렇게 됐을가요?

일본의 엘리트층은 자신들이 국민의 지배자라는 의식이 강하기 때문에 통치자의 관점에서 국민을 봅니다. 이러한 엘리트들은 국민의 데모활동이나 항거운동을 최대한 억제하려고 합니다. 

앞서 살펴본 키시 노부스케 총리는 국회를 포위한 국민을 자위대로 탄압하려고 했다가 그 방법이 효과가 없어 포기했습니다.

그러나 국민의 항거행동을 부수고 싶다는 욕구를 버린 것은 아닙니다. 항거운동을 무력화하기 위한 더 효과적인 방법이 모색되었고, 그 하나로서 실제 실시되었던 것이 노동조합의 합법적인 해체와 무력화입니다.

이 외에도 여러 방법이 시행돼 현재의 일본인은 서서히 정치에 관심을 잃고, 시민운동도 그에 비례해서 무력화되었습니다.

80년대 후반은 일한 쌍방에 상징적인 시기였습니다. 한국에서는 강한 국민운동이 전두환정권으로부터 민주화를 이끌어냈고 이어서 노동자대투쟁도 성공적으로 달성했습니다.

반면 일본에서는 노동조합 해체와 무력화가 이 무렵부터 본격화됐습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일한의 시민운동은 명암을 달리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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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촛불시민혁명은 한국 시민사회의 에너지를 보여준 사건이었다.

최근 한국의 촛불혁명은 공평무사해야 할 정부활동을 왜곡하고, 측근이 사익을 취하게 한 박근혜 대통령을 파면시켰습니다. 국민 항거행동의 승리입니다.

그렇지만 이를 탐탁치 않아할 관료도 있을 것입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냐면, 종군위안부 문제를 처리한 관료들에서 그런 징후가 엿보였기 때문입니다.

민의를 무시하고 약간의 돈으로 일본 정부와 합의해 일본 대사관 앞 소녀상을 철거하려는 것은 있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물론 한국의 관료  입장에서 민의를 무시하고서라도 일본과 합의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더라도 향후 일본과의 합의를 이행할 수 없게 될 경우 이는 한국 정부를 매우 곤혹스럽게 할 것입니다. 

일본 시민운동의 실패 경험 배우기를

제가 한국의 시민운동, 사회운동 관련 사람들을 만나면서 느낀 점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모두 사람들이 일본의 사정을 설명하는 저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준다는 점. 아마 이런 진지함이 촛불혁명을 성공적으로 인도한 원동력일 것입니다. 

그리고 시민운동과 사회운동을 약화시킨 일본 정부의 수법이 한국에도 도입될지도 모른다는 우려. 

일본에서 시민운동을 하면서 갈수록 그 세력이 위축되고, 나쁜 정치가 변하지 않는 것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여러 선배 운동가를 통해 그동안 일본정부가 시민운동을 무력화하기 위해 어떤 일을 해왔는지 듣곤 했습니다.

만약 한국 정부가 이런 일본 정부의 길을 모방한다면, 한국민들이 이룩한 민주화의 성과도 사라질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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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상과 관련해 한국 관료가 “민의때문에 어렵다”고 말한다면, 일본 관료가 “우리가 썼던 이런이런 방법이 있다”고 조언해준다면 어떨까요? 그럴 가능성은 충분히 있습니다. 

일본에는 ‘이긴 투구의 끈을 묶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승부에 이겨도 방심하지 말고, 다음을 준비하자는 의미입니다. 계속 이기기 위해서는 승자도 평소 노력을 계속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시민운동과 국민항거행동은 계속해서 이겨야 합니다. 이는 이웃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일입니다.

한국의 민중운동이 계속 승리하려면 일본의 시민운동의 실패 경험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목, 2017/07/06-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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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 2016-02-04 11:3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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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일 청산, 역사 정의 실현'이라고 적힌 조끼를 입은 한 시민이 태극기를 든 채 이날 무대 위에 설치된 높이 6m의 소녀상을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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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매, 우리가 다 기억하고 있제라!"

높이 6m의 소녀상이 세워진 '5월 성지'에 시민들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3일 오후 7시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옛 전남도청)에서 열린 시민문화제 '할매, 우리가 다 기억하고 있제라'에 참석한 시민들은 "일본군 '위안부' 굴욕 합의의 전면 무효화를 촉구"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광주 지역 예술인들이 주도한 이날 문화제에선 설치미술 작가 이성웅씨가 만든 높이 6m의 소녀상이 가장 눈길을 끌었다. 지난해 12월 말부터 공기를 채워넣은 형태의 소녀상 제작을 준비한 이씨는 자신의 기획을 주변 예술가들과 공유했다. 이후 이씨의 생각에 공감한 이들이 머리를 맞댔고 이번 문화제까지 준비하게 됐다. 또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도 이날 문화제를 위해 힘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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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여대 무용과의 박선욱 돋움무용단이 무대 위에 설치된 높이 6m의 소녀상 앞에서 '아리랑 변주곡'에 맞춰 무용을 선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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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는 이날 문화제 직전 <오마이뉴스>와 만나 "지난해 12월 28일, 할머니들의 의견이 하나도 담기지 않은 한일 양국 정부의 합의문이 나올 때부터 화가 치솟았다"며 "예술가로서 무얼 할 수 있을지 고민한 결과 제가 해오던 설치미술로 많은 사람들과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인터뷰 도중 "욕해도 되나?"라는 반문으로 분노의 마음을 표현한 이씨는 "바쁜 삶을 핑계로 큰 관심을 갖지 못했는데 약 한 달 동안 소녀상을 제작하다 보니 할머니들의 문제가 내 일처럼 느껴지더라"라며 "많은 분이 이 큰 소녀상을 보고 할머니들의 고통을 계속 기억해준다면 앞으로 이런 일은 되풀이 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저번 박 대통령에 이어, 이번 박대통령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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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대 위에 설치된 높이 6m의 소녀상 옆으로, 피해 할머니들의 삶을 담은 영상이 상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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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관련 사진▲  타악그룹 '얼쑤'가 높이 6m의 소녀상이 놓인 무대 위에서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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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문화제를 준비한 예술인들은 모두 자발적으로 무대에 올라 시민들 앞에서 공연을 선보였다. 사회를 맡은 연극인 오성완씨, 가수 김원중씨, 밴드 조아브로와 프롤로그, 타악그룹 얼쑤, 바리톤 이호민씨, 박선욱 돋움무용단 모두 대가를 바라지 않고 자신들의 재능을 내놓았다. 이날 모인 200여 명의 시민들은 '한일 합의 전면 무효', '위안부의 눈물, 거래 대상이 아닙니다' 등의 손팻말을 들고 예술인들의 공연이 이어질 때마다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사회자 오성완씨는 "거의 30년 만에 사회를 봐야한다는 의무감 때문에 잠 한 숨을 못잤다"며 "지옥같은 세월을 지나 먼 길을 돌아온 소녀들이 피묻은 치마를 감추고 방황할 때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침묵했다"고 고백했다.

이어 "이제라도 내 마음 한 편의 조그마한 죄스러운 마음에 희망의 씨앗을 던지고 오늘 많은 분과 그 뜻을 함께하고 싶다"며 "그리하여 많은 이들이 2016년 2월 3일 밤 9시 이후에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위안부라는 말을 검색할 수 있는 시간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국민을 대표해 외국과 협상을 진행해야 하는 정부가 당사자 할머니들의 동의를 구하지도 않고, 국민의 의사를 묻지도 않고 자기 편의에 따라 협상을 마무리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이해를 구하려는 모습을 보니 화가 났다. 70년 넘는 아픈 역사를 100억 원으로 치부하고 잊어버리려는 자세를 묵과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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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수 김원중씨가 무대 위에 설치된 높이 6m의 소녀상 앞에서 자작곡 '꽃을 심으리 그대 가슴에'를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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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제에 참석한 한 시민이 '위안부의 눈물, 거래대상이 아닙니다'라고 적힌 손팻말을 든 채 공연을 감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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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문화제에선 위안부 할머니들을 주제로 한 공연이 이어졌다. '바위섬'으로 유명한 가수 김원중씨는 자작곡 '꽃을 심으리 그대 가슴에'를 부른 뒤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 좋은 역사는 반복된다"고 강조했다.

"다른 박 대통령(박정희 전 대통령)이 일본과의 문제를 제대로 짚고 넘어가지 않았더니(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또 다른 박 대통령(박근혜 대통령) 때 이런 일이 생겼다. 이 추운 겨울 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여러분과, 이 자리를 준비한 예술인들 모두 대단하다. 정치인들보다 예술가들과 시민들이 훨씬 더 나은 것 같다."

소녀상 앞 가득 메운 촛불 "정부 정신 차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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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여대 무용과의 박선욱 돋움무용단이 무대 위에 설치된 높이 6m의 소녀상 앞에서 '아리랑 변주곡'에 맞춰 무용을 선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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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악그룹 '희희락락'이 무대 위에 설치된 높이 6m의 소녀상 앞에서 '홀로아리랑'을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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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 프롤로그는 직접 만든 노래 '소녀'를 부르며 위안부 할머니들의 고통을 표현했다.

맨발의 소녀의 그림자 뒤에서 저들은 무엇을 하는가/ 꼬옥 움켜쥔 두 주먹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아는가/ 하얀 나비의 피눈물을 누가 씻어주나/ 찢기고 찢겨진 치마 위에 피눈물 어찌할까/ 잊고 또 잊고 잊으려해도 잊을 수가 없네/ 지우고 지우고 또 지우려 해도 지울 수가 없네/ - 프롤로그 '소녀' 중

노래를 마친 프롤로그의 포컬 최성식씨는 "이 곡을 만들기 위해 하루 꼬박 날을 세우며 많은 자료를 읽었고, 정말 많이 울었다"며 "소녀상에 있는 작은새, 그림자, 하얀 나비, 빈 의자의 의미를 알게 됐고, 그 의미를 가사에 담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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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연이 끝난 후, 시민들은 무대에 올라 소녀상에 직접 '헌화(獻火, 촛불을 바침)'하며, 자신들의 마음을 표현했다.
ⓒ 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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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이 끝난 후, 시민들은 무대에 올라 소녀상에 직접 '헌화(獻火, 촛불을 바침)'하며, 자신들의 마음을 표현했다. 소녀상 앞의 빈 의자와 바닥은 시민들이 놓고 간 촛불로 가득찼다.

문화제에 참석한 주아무개(여, 43)씨는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들끓던 여론도 시간이 지나니 어느새 사그라지고 말았다"며 "오늘 문화제를 통해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게 됐고, 하루 빨리 할머니들의 얼굴에 미소가 번질 수 있도록 정부가 정신 좀 차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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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연이 끝난 후, 시민들이 놓고 간 촛불이 소녀상 앞을 가득 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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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기자

<2016-02-04>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5월광장 앞 6m 소녀상 "할매, 우리가 다 기억하제라"

※관련기사

☞뉴스1: 광주서 한·일 위안부 합의 무효화 촉구 시민문화제 개최

☞광주in: [현장in] '위안부의 눈물, 거래 대상 아냐'

☞뉴시스: 광주서 한일 위안부 합의 무효화 촉구 문화제 열려

목, 2016/02/04-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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