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연대’가 주관한다. 416연대 김혜진 공동위원장이 ‘세월호 이후 한국사회 무엇이 달라졌나?’라는 주제로 운을 떼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연대 집행위원장이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강문대 변호사가 ‘기업책임법의 필요성과 현재적 의미’에 대해 발표한다. 토론에서는 그간의 활동 영상을 상영할 계획이다.
세월호 참사의 원인은 무엇일까?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원인이 되지 않는 영역이 없을 것이다. 쌓이고 쌓여왔던 수많은 문제들이 낳은 결과이다. 그러나 이렇게 분석해서는 재발을 막을 수 없다.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의 조사가 마무리되지 않았지만 우리는 ‘청해진해운’과 경영진이 일차적인 책임주체라고 인식한다. 뿐만 아니라 이를 일상적으로 관리·감독해야 했던 행정당국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할 것이다. 기업은 수익을 실현하되 안전에 대한 책임을 다해야 하고 국민이 안전할 수 있도록 감독업무를 대행하는 것이 행정당국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한 반론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기본적인 책임주체가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거나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규제가 규제로서 작동하지 못하는 문제, 즉 처벌이 제대로 수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국에서는 2007년에 세칭 ‘기업살인법’이 제정되었다. 1987년 세월호와 유사한 참사가 발생한 후에 제정된 것이다. 캐나다나 호주 등의 국가에서는 이미 이전부터 관련법이 존재하고 있다.
지난 1년간 활발히 활동해 온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연대’의 목소리를 들어보고 세월호 참사와 같은 불행한 현대사를 쓰지 않기 위한 팁을 찾아보자.
지난 10월, 참여연대는 2014년 3차 회원모니터단 설문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이번 설문조사는 세월호특별법에 대한 질문과 참여연대가 다루는 주요 정책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으로 구 구성되었습니다.
조사 시기 : 2014년 10월 13일~10월 24일
설문 응답 : 총 308명(총 484명 중 63.7% 응답)
분석 수행 : 리서치뷰 한규용
1. 특검 후보자 추천에 유가족의 참여를 배제한 9월 30일 양당의 세월호특별법 합의에 대한 회원님의 의견은 무엇입니까?
회원모니터단 설문결과 ‘유가족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았으므로 국회에서 다시 논의해야 한다’는 의견이 71.4%로 ‘여야가 3번째로 합의한 만큼 받아들이고 존중해야 한다’는 의견 20.1%에 비해 세배 이상 높게 나타났습니다.
2. 세월호특별법 특별조사위원회가 가장 집중해야 할 과제는 무엇인지에 대해 물었습니다(복수응답)
설문 결과, ‘참사 초기 안전행정부, 국정원, 청와대 등 컨트롤타워의 역할과 책임’이라는 응답이 63.3%로 가장 높았습니다. ‘참사 초기 해경, 해군 등이 적극적으로 구조하지 않은 이유’가 55.2%로 뒤를 이었고, 그 외에 ‘과적, 급격한 변침 등 세월호 침몰의 직접적 원인’(28.2%), ‘국정원 실소유 의혹, 충돌설 등 각종 의혹 규명’(17.2%), ‘선박연령 완화 등 안전규제 완화의 원인과 경과’(15.3%), ‘유병언 전 청해진해운 회장의 정관계 로비 의혹과 민관유착 관계’(9.7%), ‘참사 초기 언론의 허위보도와 왜곡보도’(6.5%) 순으로 응답되었습니다.
3.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는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고, 진상규명이 이루어질 때까지 함께 노력하자는 취지로 ‘416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약속지킴이(416약속지킴이)’를 모집하고 있습니다. 회원님은 가입하실 의향이 있으십니까?
설문 결과 ‘가입하겠다’는 응답이 53.2%, ‘가입 하지 않겠다’는 응답은 31.5%였음. ‘기타’ 응답으로는 ‘내용·활동을 보고 판단하겠다’(7.8%), ‘생각해보겠다’(1.6%) 등이 있었습니다. ‘가입하겠다’는 응답은 50대 이상(59.3%), 자영업(69.2%), 학생·주부·기타(60.5%), 인천·경기(61.8%)에서 특히 높았습니다.
4. 공무원연금 개혁이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새누리당과 한국연금학회는 공무원연금을
43% 더 내고 34% 덜 받도록 대폭 삭감 조정하는 안을 내놓은 바 있습니다. 회원님의 의견은 무엇입니까?
설문결과 공무원연금 개혁에 대해 ‘공무원연금 개혁은 필요하지만, 그 방향과 적정수준 등에 대해 사회적 논의를 거쳐야 한다’는 의견이 74.7%로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났습니다. 한편, ‘재정 부담이 큰 만큼 새누리당과 한국연금학회의 안대로 삭감 조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13.3%, ‘공무원 노조의 의견대로 노후보장을 위협하는 연금개혁안에 반대한다’는 의견은 10.1%였습니다. ‘공무원 노조의 의견대로 연금개혁안에 반대한다’는 의견은 블루칼라(15.6%), 공무원·교사(31.9%)에서 비교적 높게 나타났습니다.
5. 군대 내 폭력이 심각한 상황입니다. 관련하여 다양한 개선 방안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회원님이 가장 시급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설문 결과, ‘외부에서 군대 내 폭력을 감시할 수 있는 제도(국방감독관 제도, 군 옴부즈만) 도입’이 52.6%로 가장 높았습니다. 다음으로, ‘군인의 인권과 의무를 법률로 규율하는 군 인권법 제정’(32.1%), ‘군대 내 위계질서에 종속되어 있는 군사법원 폐지’(18.5%), ‘국방부가 내놓은 병영개선안(GOP 근무 장병 면회, 신고포상제 등) 실시’(2.3%) 등의 순으로 응답되었습니다.
6. 고질적인 군대 내 폭력을 근절하기 위한 근본적인 해법으로 군 복무기간 단축이나 징병제 폐지-모병제 도입 등의 의견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회원님의 의견은 무엇입니까?
군대 내 폭력 근절을 위한 병역제도의 개편 방향에 대해 질문한 결과, ‘모병제로 점진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의견이 75.3%로 압도적으로 높았습니다. 그 외, ‘징병제 유지하되, 군 복무기간은 단축해야 한다’(9.7%), ‘징병제 유지하고 군 복무기간도 현행대로 유지해야 한다’(8.4%) 순으로 응답되었습니다.
7. 최근 검찰이 사이버명예훼손과 인격모독을 막는다며 인터넷(포탈 게시판 등)을 상시 단속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습니다. 이에 대한 회원님의 의견은 무엇입니까?
최근 검찰의 인터넷 상시 단속 입장에 대해, 응답자의 절대다수인 95.1%가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할 우려가 있어 검찰의 인터넷 상시 단속에 반대한다’고 응답하였습니다. 한편, ‘사이버명예훼손이나 비방이 많아지고 있어 검찰의 인터넷 상시 단속에 찬성한다’는 응답은 단 2.6%에 그쳤으며, ‘잘 모르겠다’는 응답은 2.3%였습니다.
8. 최근 정부가 담배값, 주민세, 자동차세 인상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특히 내년부터 담배 가격을 2,500원에서 4,500원으로 인상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는데요, 이에 대한 회원님의 의견은 무엇입니까?
정부의 담배값 인상안에 대해 ‘국민건강 진흥을 위한 목적이 아니라 세수확대를 위한 서민증세에 불과해 반대한다’는 응답이 80.5%로 ‘흡연율을 줄이고 국민건강 증진을 위한 담배값 인상에 찬성한다’는 응답 15.3%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았습니다. ‘흡연율을 줄이고 국민건강 증진을 위한 담배값 인상에 찬성한다’는 응답은 2001~2005년 회원가입층(20.0%), 무당층(22.8%), 중도성향층(24.5%)에서 전체 평균을 다소 상회했습니다.
9. 참여연대는 가계 부담 완화를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회원님은 참여연대가 어떤 과제에 더욱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가계 부담 완화를 위해 참여연대가 집중해야 할 과제에 대해 질문한 결과 ‘주거비 (전월세 상한제 도입, 공공임대주택 공급)’ 문제가 35%로 가장 높았습니다. ‘의료비(의료보험 보장성 강화)’가 30%로 뒤를 이었고 그 외에 ‘교육비(등록금, 사교육비 인하)’(19%), ‘통신비(핸드폰 요금, 단말기 가격 등 인하)’(15%) 순으로 응답되었습니다. ‘주거비(전월세 상한제 도입, 공공임대주택 공급)’라는 응답은 30대 이하, 화이트칼라, 인천·경기, 2011년 이후 회원가입층에서 특히 높았습니다. ‘의료비(의료보험 보장성 강화)’라는 응답은 여성, 2001~2005년 회원가입층에서 높게 나왔고, ‘교육비(등록금, 사교육비 인하)’는 40대에서 비교적 높게 응답되었습니다.
세월호 다큐 <업사이드 다운> 보스턴영화제, 하버드 법대 상영 – 관객들, 영화상영 후 안전사회 만들기에 대해 토론 – 가족들의 아픔과 상실감 공감하는 기회 제공 임옥 기자 김동빈 감독 NP photo 임옥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업사이드 다운>이 올해로 14회를 맞는 보스턴국제영화제에 초청되어 지난주 15일 영화제와 하버드 법대에서, 그리고 18일에는 매사추세츠 주립대학 등지에서 상영됐다. 이번 상영회에 관객들을 ...
더민주 20대 국회 당선자들 진도 팽목항 찾아 – 미수습자 가족들과의 간담회 및 해수부의 인양계획 점검 – 세월호 특조위 관계자, 조속한 인양과 특조위 활동 기간 연장 요구 안현준 NP photo 안현준 29일, 더불어민주당 20대 국회 당선자들이 진도 팽목항을 찾아 미수습자 가족들을 만나 간담회를 하고 해수부의 인양계획 등을 점검하는 시간을 가졌다. 간담회 자리에서 미수습자 가족들은 “미수습자 가족들은 ...
지난달 25일 민주당 전국대의원대회에서 7선 이해찬 의원의 당대표 선출보다 더 주목받은 사건이 있었다. ‘세월호 변호사’ ‘거리의 변호사’로 불렸던 초선 박주민 의원(45)이 1위(21.28%)로 최고위원에 선출된 것이다. ‘힘없는 자들의 힘’이라는 슬로건을 내놓고 당선된 박 의원의 선전을 놓고 ‘돌풍’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박 의원이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했을 때, 국회의원에 출마할 때도 그랬지만 이번에 최고위원에 나왔을 때도 고개를 갸웃거린 사람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평소 성향대로라면 민주당보다 진보 계열 정당을 택해야 했던 건 아닐까? 광화문에서 시민들과 함께 물대포를 맞던 그가 국회의원이나 최고위원 욕심까지 있는 사람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는데 하는, 그런 생각들 말이다.
반대로 그는 이런 질문도 많이 받았다. ‘서울대 법대-사시 패스’라는 엘리트 코스를 밟았음에도 공익소송에 매달리고 추레한 몰골로 집회·시위 현장에 빠지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좋은 대학 나왔고 사법시험도 붙어 변호사가 됐는데 왜 그렇게 사냐?”고 물었다. 자서전 성격의 대담집 <별종의 기원>에서 그는 이렇게 답한다.
“사람들은 제가 희생을 하면서 살아왔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제가 매우 욕심껏 살아왔다고 자평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모르거나 알더라도 다른 사람이 보기에 그럴듯해 보이는 삶을 살아갑니다. 저는 제가 원하는 것이라고 여겨지는 것을 달성하기 위해 매진하고 있습니다. 뭔가를 위해서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제 욕심껏 살고 있는 것입니다.”
철거민들과 구청을 찾았다가 문전박대를 당한 뒤 “내가 변호사였다면?”이라는 생각에 사법시험을 준비했다. 그는 “대부분 변호사가 되면 자신을 변호사란 존재와 등치시키지만, 나에게 변호사는 무언가를 하기 위한 직업적 도구”라고 말한다. 세월호 참사가 제대로 진상규명되지 않고 묻혀버릴 것이 두려워 정치권 입문, 그것도 현실적 힘이 있는 민주당을 택했다. 변호사도 마찬가지였지만, 국회의원도 최고위원도 어쩌면 그에게 목적이 아니라 도구에 불과했던 셈이다.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박 의원의 출마 당시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이렇게 말했다. “박주민 변호사가 국회의원이 된다고 해서 세월호 참사의 진실이 바로 밝혀진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16가족협의회의 모든 가족들은 박주민 변호사를 반드시 국회의원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것은 작지만 확실한 희망을 국회에 세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진: 포커스뉴스
■ 탁월한 승부욕을 가진 소년
박주민 의원은 1973년 서울 성북구 삼선교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공무원이었고 할아버지는 교장선생님이었다. 할아버지 퇴직 후 할머니가 운영하던 공장이 부도가 나면서 집안이 어려워졌다. 생후 백일도 안 돼 중랑구 신내동으로 이사를 가야했다. 당시 그곳은 시골과 마찬가지였다. 논밭이나 들판에서 뛰놀고 이 집 저 집 다니며 밥도 얻어먹고 해떨어지면 집에 들어가는 자유분방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도 공부에는 관심이 없었다. 책상 위에 올라가고 수업시간에도 돌아다니기 일쑤였다. 2학년 때 ‘예쁜 짝꿍’에게 잘 보이려고 더 까불고 장난을 쳤다가 “공부 못하고 깡패 같은 애 싫어한다”는 말을 듣고는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책에도 빠져들었다. 그 뒤로는 성적도 늘 최상위권을 유지했다.
중학교 졸업 후 그는 대원외고에 진학했다. 당시 높은 서울대 진학률로 이름을 높여가고 있던 학교였다. 나름 공부는 자신 있다고 생각했지만 첫 중간고사 때 같은 학년 700여 명 중 153등을 하면서 충격을 받았다. 학교에는 고급 승용차들이 마중 나오는 강남 출신의 학생들도 많았고 이미 영어나 수학을 2학년 과정까지 선행학습 한 이들도 많았다. 집에 과외를 시켜달라고 졸랐지만 과외가 금지됐던 시절이라 “공무원의 자식이 어떻게 과외를 하느냐”는 아버지의 핀잔만 들었다.
어쩔 수 없이 혼자 무식하게 공부했다. 화장실 가는 시간을 빼고는 종일 책을 붙들고 앉았다. 외모에 신경을 쓰면 공부를 멀리할까봐 3년 내내 거울을 보지 않았다. 여학생에 빠질까봐 땅만 쳐다보며 다녔다. 수학여행 때도 단어장을 들고 다녔다. 너무 무리한 탓에 장염을 달고 살았고, 건강도 안 좋아졌다. 고3 때는 오히려 대입시험을 망쳤다.
재수를 거쳐 1993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다. 장사꾼 기질이 있다고 믿었던 그는 경영학과에 가려고 했다. 어렸을 때 동네 구리선을 모아다 고물상에 팔고, 그 돈으로 산 장난감을 돈을 받고 빌려주기도 했다. ‘돈 버는’ 센스는 있다고 생각했다. 점수가 너무 잘 나온 탓에 벌어놓은 점수가 아까워 법대에 갔다. 변호사가 되겠다거나 하는 생각은 없었다.
막상 대학에 들어가자 그는 고교와 재수 시절을 많이 후회했다. 친구들과 사귀지도 못하고 공부에만 매달린 그 시절이 ‘흑역사’ 같았다. 대학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고 싶었다. 친절한 선배들에게 이끌려 법대신문사에 들어갔고 자연스레 운동권 학생이 됐다. 학생운동이 쇠퇴기였긴 했지만 농촌, 공장, 빈민촌, 철거지역을 다니며 연대활동을 벌였다.
4학년 때 그는 잊지 못할 경험을 한다. 신도림동의 작은 철거촌에 연대 활동을 나갔던 때였다. 철거민들이 구청장 면담을 요청했고, 함께 구청을 찾아갔는데 일방적으로 막혔고 면담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다. 성탄절 전야, 하루 종일 내린 눈이 머리에 수북이 쌓이도록 기다렸지만 허탕을 쳤다. 처절한 무력감을 느꼈다. 그때 처음 그는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변호사였다면 구청장이 거부하지 못할 최소한의 주선이나 조력이 가능했을 거다. 기왕 사회운동을 계속할 거라면, 변호사가 되어 어려운 사람들에게 힘이 되는 것도 괜찮을 거다.”
그는 군 제대 후 사법시험을 준비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공군 학사장교로 갔다. 성남에서 헌병소대장으로 근무했다. 당시 같은 부대에서 근무한 한 병사가 남긴 글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거지갑(박주민 의원의 별명)은 모든 소대원들이 공평하게 근무하기를 원했다. 초소 환경이 좋은 곳을 고참들이 독점하는 시스템을 고치려 했다.”
군에서 전역한 뒤 사법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고교 시절에도 그랬듯 목표를 정하면 거기에만 몰두하는 승부욕 덕에 1년 반 만에 시험에 통과했다. 어차피 공익 활동을 하는 변호사가 목표였기에, 사법연수원에서 시키는 공부는 거의 안 했다. 인권법학회 활동에만 몰두해 회장도 맡았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이나 참여연대 등에서 활동하는 선배 변호사들을 자주 만났다. 성적표를 전달하러 온 연수원 교수에게 그가 “졸업은 가능한가?”를 묻자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네 밑에 세 명은 있다.”
■ ‘거지갑’의 탄생
변호사 생활은 법무법인 한결에서 시작했다. 민변 계열 로펌이어서 회사에서 시키는 일만 하면 원하는 공익적 활동을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민·형사 소송, 금융 관련 프로젝트나 법률 자문 보고서까지 가리지 않고 일했다. 능력도 인정받았고 돈도 잘 벌었다. 당시 로펌에 실무수습을 나왔던 연수원 2년차 시보를 ‘열심히 쫓아다닌’ 끝에 마음을 얻어 결혼도 했다. 그가 항상 ‘짝꿍’이라고 부르는 아내 강영구 변호사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상근 변호사로 일한다.
6년차가 되자 책임감을 갖고 조직에 참여해야 하는 파트너 변호사가 되어야 할 시점이 왔다. 민변에서는 마침 상근직인 사무차장을 맡아달라고 했다. 아내의 조언을 받고 고민 끝에 사표를 냈다. 참여연대 활동을 하면서 알게 된 변호사들과 함께 공익변론에 주력하려고 법무법인 이공을 만들었다.
맡았던 공익 사건은 굵직굵직한 것만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가 <별종의 기원>에서 밝힌 생각나는 대로 적어봤다는 사건만도 G20 쥐그림 사건, 밀양송전탑 관련 경찰의 통행방해 손해배상 청구사건,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고발, 희망버스 참가자들을 위한 변론, 쌍용차 해고 무효 소송,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 재심 청구, 평택 미군기지 이전 반대와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반대 활동가들을 위한 변론 등 50건 가까이 된다.
주로 집회의 자유를 중심으로 한 ‘표현의 자유’와 국가기관의 인권 침해 관련 소송에 열정을 쏟았다. 평생 1건도 어렵다는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을 4번이나 받아냈다. 헌법재판소에서 야간집회 금지 위헌 결정을 받아낸 순간과 백남기 농민 진압 규탄 민중총궐기 시위 금지에 대해 집행 정지를 받은 사건이 많이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민변에서는 3년 연속 ‘접견왕’이었다. 집회나 시위에서 연행된 이들을 접견하러 가는 일을 가장 많이 한 사람에게 주는 상이다. 이런저런 통로로 쇄도하는 접견 요청에 귀찮아하지 않고 하루에 서너 군데도 다녔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때는 주말에도 쉬지 않고 다녔다. 하지만 “이상하게 힘들지 않고 보람차고 뿌듯했다”고 했다. 밖으로 떠돌면서 옷도 제대로 갈아입지 않고 다녔다. 남루한 행색으로 커다란 백팩을 들쳐 메고 어디서나 드러누워 쪽잠을 자는 그에게 붙여진 ‘거지갑’이라는 별명은 이때부터 생겨날 운명이었다.
세월호 참사는 삶을 다시 한 번 뒤흔들어 놓았다. 참사 두 주 뒤부터 안산에 거의 상주하다시피 했다. 유가족들과 대면하는 일이 쉽지 않았지만 그는 곁에서 의자 갖다 놓고 음식 나르는 일부터 도우며 조용히 다가갔다. 가족들에게 그는 “배운 티 내지 않고 어떻게 하면 우리를 아프게 하지 않을까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나중에는 가족들에게 “유가족보다 더 유가족 같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2015년 5월 박근혜 정부가 세월호 특별법과 특조위를 무력화하려 하자 유가족들과 함께 거리 농성에 나섰는데, 그때 경찰의 진압방패에 둘러싸인 채 주저앉아 고개를 숙이고 조는 모습은 그의 상징이 됐다.
‘세월호 변호사’로 2년 가까이 지내는 동안에는 거의 수입도 없었다. 그렇지만 이를 계기로 중대한 결심을 하게 된다. 바로 더불어민주당 입당을 통한 정계 입문이다. 세월호 특별법이 통과될 때까지 그는 유가족들과 국회 처마에서 4개월 가까이 노숙을 했다. 국회는 가까운 화장실조차 마음 놓고 이용하지 못하게 했다. 그 ‘문턱’들이 다시 한 번 그의 마음에 불을 댕긴 것 같다. 입당 인사에서 그는 “높은 문턱을 통해 국민을 거부하는 정치는 국민과 동떨어진 정책을 만들어낸다”며 “문턱을 낮추는 것, 그것이 민주주의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입당 기자회견 자리에 서기 2시간 전까지도 국회를 배회했다고 했다. ‘정치하려고 저런 거야’라는 말이 쏟아질 게 뻔했다. 그냥 그 자리에 설 수 있었던 것은 ‘약속’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입당 전 세월호 가족들에게 두 가지를 약속했다. “당선되더라도 세월호를 기억하고, 보좌진 중 한 명에게 전담토록 하겠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매주 일요일 가족 회의에 참여하겠다.” 사실 민주당은 특별법 제정 과정에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입당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현실적으로 총선에서 새누리당에 압승하면 당연히 ‘세월호 지우기’에 나설 게 뻔하다. 이를 막기 위해 가장 책임 있고 힘 있는 야당을 택했다.”
약속을 받고 간 건 아니지만 공천 마지막 날까지 공천을 받지 못했다. 입당하자마자 ‘너는 얌전히 있어라’ ‘비례대표는 안 된다’ ‘운동권은 안 된다’ ‘당에 약한 고리가 될 것이다’ 같은 악담을 당내에서 쉴 새 없이 들어야 했다. 민주당은 저울질 끝에 겨우 은평갑에 그를 공천했다. 뒤늦게 시작한 선거운동이었지만 그는 서울대 법대, 인권변호사 출신이라는 말도 제대로 꺼내지 못할 정도로 숫기가 없었다. 총선은 불과 24일 남았다. 명함에서 ‘대원외고’를 빼자고 했다가 ‘스펙’ 빼면 뭐로 승부할거냐는 핀잔을 받고 겨우 말을 삼켰다. 플래카드에 있는 ‘세월호 가족대책협의회 법률대리인’ 이력이 선거에 도움이 안 되니 빼자는 의견까지 나왔다.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세월호 가족들은 자신의 신분을 감추려고 세월호 추모 뱃지도 떼고 인형탈까지 쓰면서 선거운동을 물심양면 도왔다.
신기하게도 가장 늦게 출발한 캠프는 모든 게 순조로웠다. 박 의원은 “(세월호) 아이들이 도와준다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공천에 탈락한 이미경 의원은 선거조직과 사무실을 물려줬다. 김신호 국민의당 후보와 서울 지역 최초로 단일화도 이뤄냈다. 그렇게 그는 총선에서 과반이 넘는 득표로 당선됐다. 국회의원이 되고 첫 일정은 안산 세월호희생자 정부합동분향소를 방문하고 유가족들과 만나는 일이었다. 1호 법안 발의는 ‘세월호진상규명특별법 개정안’이었다. ‘사회적참사특별법’의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 지정부터 본회의 통과까지도 힘썼다.
■ 평범한 이웃을 위해 정치한다
박주민 의원은 국회에 입성한 뒤 6월4일 현재 본회의에 100% 출석했고, 상임위는 149번 중 147번 출석했다. 이런저런 핑계로 회의에 빠지는 의원들도 많지만 그는 특유의 ‘성실성’을 보여주고 있다. 대표 법안 발의는 9월11일 현재 107건으로 상위권이다. 의원실 벽면은 A4 크기로 축소한 포스터 91장으로 빼곡하다. 모두 박 의원이 주최하거나 참석한 각종 세미나와 토론회다.
국회의원이 된 뒤에도 ‘노숙’에 대비해 백팩에 치약·칫솔, 물티슈, 휴지 따위를 챙겨 다녔다. 때로는 세월호 가족들과 때로는 백남기 농민이 누워있는 서울대 병원에서 밤을 지샜다. 첫해 정치후원금을 모금하자 나흘 만에 1억5000만원의 한도액이 가득찼다. 이듬해에는 40시간 만에 꽉 채웠다. 10만원의 소액 후원금이 상당수였다. 그 후원금 사용 내역은 179페이지에 10원 단위까지 적어 제출했다.
하루에 10~12개의 일정이 빼곡하다. 법안 발의에 각종 집회나 토론회 참석, 강연과 방송 출연, 지역구 민원 해결과 행사 참여까지. 옷깃에는 국회의원 배지 외에도 세월호, 4·3 사건, 청소년 참정권 관련 배지가 달려 있다. 손목에도 각종 팔찌가 주렁주렁하다. 주황색은 스텔라데이지호, 노란색 두 개는 세월호 가족과 소녀상을 지키는 대학생이 줬다고 한다. 청년 기본법 제정,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개정,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도입 등에도 힘을 쏟고 있다. 그의 좌우명은 “역사의 수레바퀴를 1cm라도 돌리고 죽자”라고 한다.
그가 정치하는 이유는 ‘평범한 이웃’을 위해서다. “여행을 보냈는데 아이가 돌아오지 못했다. 제주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마을인데 주민의 절반이 전과자가 됐다. 갑자기 정리해고를 당했고 그 가운데 20명이 목숨을 끊었다. 아무 사전설명도 없이 주민에게 갑자기 나가라고 하고 땅을 수용하겠다고 한다. 이것이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일어나는 일일 수 없다. 처음부터 법과 제도를 잘 갖추어 놓으면 이런 불행한 일이 덜 생길 거라 생각했다.”(<별종의 기원> 중 요약)
사람들은 ‘일하는 국회의원’을 신기해한다. 늘 피로에 절어있는 것만 같은 구부정한 어깨에 축 처진 눈을 한 그를 보고 ‘거지갑’이라며 환호한다. “박주민 의원 같은 정치인이 민주당에 50명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는 그저 이렇게 말한다. “저도 부끄러운 모습이 많이 있다. 이 부끄러움을 과거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살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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