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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격자들]꼰대와 콘크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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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격자들]꼰대와 콘크리트

익명 (미확인) | 화, 2016/01/19- 09:59

캐나다 쥐스탱 트뤼도 총리, 영국 토니 블레어 전 총리와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 스웨덴 구스타프 프리돌린 교육부 장관, 이들의 공통점은? 어린 나이부터 정치를 시작해 3,40대에 총리와 장관으로 활동했다는 것이다. 영국 하원의원의 평균 연령은 45세 정도라도 한다.

우리의 경우는 어떨까? 2012년을 기준으로 19대 국회의원 300명 중 60대 이상은 69명, 50대는 142명으로 5, 60대 이상인 국회의원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 30대 국회의원은 5명. 20대 국회의원은 한 명도 없다. 국회에서 20, 30대 젊은 층을 대변할 수 있는 같은 연령대의 의원들이 없거나 매우 적은 셈이다.

▲ 더불어민주당 전국청년위원회 부위원장 이동학 씨. 올해 35살인 이 씨는 지난해 4월 당내 청년위원장 선거에 출마했다가 주위 선배들로부터“벌써부터 청년위원장 선거에 출마하느냐”는 핀잔을 들었다고 한다.

▲ 더불어민주당 전국청년위원회 부위원장 이동학 씨. 올해 35살인 이 씨는 지난해 4월 당내 청년위원장 선거에 출마했다가 주위 선배들로부터“벌써부터 청년위원장 선거에 출마하느냐”는 핀잔을 들었다고 한다.

▲ 2015년 12월, 새누리당 청년혁신위의 주최로 청년 문제에 대한 정책점검회가 열렸다. 지난 일 년 동안 준비해 온 청년문제 해결 방안을 당내 선배들과 전문가들에게 점검받은 자리였다. 그러나 설익은 아이디어라는 혹평을 받아야 했다.

▲ 2015년 12월, 새누리당 청년혁신위의 주최로 청년 문제에 대한 정책점검회가 열렸다. 지난 일 년 동안 준비해 온 청년문제 해결 방안을 당내 선배들과 전문가들에게 점검받은 자리였다. 그러나 설익은 아이디어라는 혹평을 받아야 했다.

젊은 정치인이 국회에 극소수인 이유는 무엇일까? 뉴스타파 목격자들 제작진은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 등 기성정당에서 청년 당원으로 활동하는 이들을 만나봤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체계적이지 않은 당내 인재 양성 시스템과 청년 당원을 ‘어린애’ 취급하는 관행을 지적했다. 경륜을 앞세워 경험이 없다는 이유로 무시하는 ‘꼰대’의 ‘콘크리트 벽’이 굳게 존재한다는 것이다. 청년 당원들은 선거 때만 잠시 동원되는 ‘대상화’에 그친다는 것이다. 이번 4.13 국회의원 선거에서 과연 달라질 수 있을까?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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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곧 누군가가 유리천장을 깨길 바란다.”

미 대선에서 패배한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는 패배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힐러리의 패배는 여러 가지 충격을 남겼지만 무엇보다 여성들의 좌절이기도 했다. 미국에서도 그랬겠지만 한국 여성들에게도 커다란 상실감을 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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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 이용자들은 이런 말들을 남겼다. “아마 지구상에서 살아있는 정치하는 여자들 중 가장 대단한 여자일 텐데 그런 여자가 어디에나 있는 쓰레기 강간범 남자한테 진다.”

왜 패배했을까?

그런데 이상하다. 출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여성 투표자들 역시 힐러리에게 열광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2012년 선거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55%의 지지율을 보였던 여성들은 힐러리에게는 54%만 지지를 보냈다. 근소하지만 오히려 떨어진 셈이다. 반면 여성 비하 발언을 일삼고 성폭행과 성추행 혐의까지 받는 도널드 트럼프 후보의 여성 유권자 지지율(42%)은 2012년 공화당 미트 롬니 후보(44%)와 별 차이가 없었다.

백인 여성은 아예 반대였다. 53%가 트럼프를 찍었고, 43%가 힐러리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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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N 출구조사 자료. 파란색은 힐러리, 붉은색은 트럼프 지지를 의미한다. (이미지 출처: CNN)

여성뿐만이 아니다. 힐러리는 애초에 지지받을 것으로 예상했던 18~29세의 젊은층, 연소득 5만 달러 이하 저소득층, 흑인과 히스패닉 유권자층에서 오바마 때마다 지지율이 더 떨어졌다.

미국의 진보 성향 매체 <뉴리퍼블릭>은 이런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트럼프의 여성 비하보다 가정형편을 더 걱정하는 극빈층 여성들에게 힐러리의 셀리브리티 페미니즘은 들리지 않았다. 레이디 가가, 케이티 페리, 레나 던햄, 셰릴 샌드버그를 내세웠지만 이런 유명 인사들 때문에 노동 계급 여성들이 힐러리에게 투표하러 가지는 않았다. 유리천장을 깨는 것이 가족을 먹여 살리지는 못한다.”

패배에 대해 각종 분석과 말들이 쏟아지는 가운데, 힐러리는 지난 12일 대선 패배 원인을 뒤늦게 미 연방수사국(FBI)의 e메일 재수사 공개 탓으로 돌리고 나섰다.

수 많은 경합주 여론조사에서 앞서고 있었지만 e메일 재수사 때문에 떨어졌다는 것이다. 힐러리의 지지자들은 트럼프 당선에 항의하는 집회를 열고, 선거인단 투표에서 트럼프 표를 힐러리로 바꾸자는 청원까지 하고 있다. 힐러리 패배의 진짜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흙수저 출신의 우등생

힐러리는 1947년 일리노이 주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영국 웨일즈 출신 이민자였던 아버지는 작은 사업체를 운영했다. 편견에 가득 찬 인물로 부인과 자식들에게도 매우 가혹하고 비정한 인물이었다고 전해진다.

힐러리는 딸에게 “겁쟁이가 되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친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어머니는 힐러리가 미국 최초의 여성 연방 대법원 판사가 될 것이라고 믿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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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 dad, Hugh, was a World War II Navy veteran—and a lifelong Republican who worked hard and wasted nothing. He ran a business where he designed, printed, and sold draperies.

힐러리는 어렸을 때 우주비행사를 꿈꾸기도 했다. 그녀가 미 항공우주국(NASA)에 ‘어떻게 하면 우주비행사가 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보냈지만 ‘여자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답을 받았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본래 힐러리는 1964년 대선에서 ‘급진적 보수주의자’로 유명한 배리 골드워터를 지지하기도 하는 등 공화당 지지 성향이었다. 그러나 베트남 전쟁 등에 회의를 느끼면서 민주당 지지 쪽으로 돌아선다.

명문 웰즐리 여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힐러리는 학생회장으로 당선돼 졸업식 때 학생 최초로 연설을 맡기도 했다. 상투적인 졸업 연설 대신 여성·흑인 민권 문제 등에 진보적인 입장을 피력하면서 라이프지에 소개되는 등 주목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인생의 멘토라 할 수 있는 매리언 라이트 애들먼을 만난다. 애들먼은 미시시피 주 최초 흑인 여성 변호사가 된 인물이다. 클린턴은 애들먼을 본받아 평생 아동 권익 옹호에 관심을 쏟게 됐다고 한다.

가장 영향력 있는 퍼스트레이디에서 가장 유력한 대선 후보로

대학 졸업 뒤 예일대 로스쿨에 진학한 힐러리는 빌 클린턴을 만나 교제하게 된다. 1974년 빌 클린턴은 워터게이트 사건에 연루된 닉슨 대통령의 탄핵 조사단에서 일하도록 추천받았지만 연방 하원의원 선거에 출마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여자친구인 힐러리를 대신 추천했다.

탄핵조사단에서 경력을 쌓은 힐러리는 뉴욕이나 워싱턴 DC의 일류 로펌에서 일할 수도 있었지만 빌을 따라 아칸소주로 갔다.

두 사람은 1975년 결혼했다. 빌은 1976년 아칸소 주 검찰총장이 됐고, 힐러리는 아칸소주의 유명한 로펌인 로즈 법률회사에서 일하기 시작했는데 이 회사의 최초 여성 변호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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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 Bill and Hillary Clinton celebrate Mr. Clinton’s victory in the Democratic gubernatorial runoff in Arkansas. As first lady of Arkansas, Ms. Clinton was deeply involved in efforts to bolster the rigor of academic offerings in that state’s public school system. (사진 출처: AP)

1982년 남편이 아칸소 주지사 선거에 출마하면서 힐러리는 그동안 유지하던 자신의 ‘로댐’이란 성을 ‘클린턴’으로 바꾸기로 한다. 아칸소의 일부 유권자들에게 심한 불쾌감을 준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결혼 전의 성을 고집하는 것보다 빌이 주지사가 되는 것이 더 중요했다.

1992년 빌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힐러리는 최초의 석사 학위 이상을 가진 퍼스트레이디가 됐다. 과거 퍼스트레이디들은 보통 백악관 동관(east wing)에 사무실을 뒀지만 힐러리는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서관(West Wing)에 집무실을 뒀다. 대통령 선거 때 빌의 캠프는 “하나를 사면 하나는 공짜”라는 슬로건을 내세우기도 했는데 이후 그녀는 실제로도 가장 영향력 있는 퍼스트레이디로 평가받았다.

1993년 빌은 힐러리에게 국민의료보험 개혁을 맡겼다. 힐러리는 고용인이 피고용인의 의료보험을 보장하는 내용의 건의안을 만들었지만 민주당이 다수당이었음에도 부결됐다. 이 과정에서 빌 클린턴 대통령의 지지율은 40%대 이하로 추락했다.

빌의 르윈스키 추문과 탄핵이라는 시련을 겪기도 했다. 전통적인 퍼스트레이디와는 달리 적극적으로 여성·육아·보건의료 정책에 관여하는 힐러리에 대해 보수주의자들은 증오에 가까운 반감을 보이기도 했다.

정치인으로서 홀로서기는 빌의 대통령 임기 말인 2000년 뉴욕의 상원의원으로 선출되면서 시작됐다. 그러나 국방위원회에서 활동하면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에 찬성표를 던진 것은 훗날 두고두고 비판거리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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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원의원 재선에 성공하고 2008년에는 대선 출마를 선언, 유력한 후보로 꼽혔으나 버락 오바마라는 뜻밖의 복병을 만나 경선에서 패하고 만다.

오바마는 새 정부의 국무장관으로 클린턴을 지명한다. 국무장관 시절 공용 업무에 개인 e메일을 사용한 문제는 두고두고 그의 발목을 잡기도 한다. 2016년 힐러리는 버니 샌더스의 추격을 힘겹게 따돌리고 민주당 대선 후보로 다시 지명된다.

힐러리는 왜 비호감의 대명사가 됐나

힐러리의 정치행보를 돌아보면 오랫동안 대중의 관심밖에 벗어난 적이 없을 정도로 활동한 것 같지만, 그렇다고 눈에 확 띄는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딱히 이루어낸 것도 없으면서 내가 여성이니 나를 찍으라고 말하는 것 같다.”

미국에서 힐러리를 싫어하는 정서는 퍼스트레이디 시절부터 있었지만, 올해 대선 출마를 즈음해서는 더욱 심해졌다. 힐러리와 트럼프를 두고 ‘비호감 후보의 대결’이라 칭하거나 “근래 들어 이렇게나 미움 받은 민주당 대선 후보는 없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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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https://www.americarisingpac.org/)

힐러리에 대한 비호감은 그의 어중간한 정책이나 태도 때문일까? 배우 수잔 서랜든은 선거 직전 힐러리의 정책 때문에 그를 지지하지 않으며 녹색당 질 스타인 후보의 당선을 지지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서랜든은 “난 여자란 이유로 대통령을 뽑지 않는다. 그보다 생각해야할 것들이 훨씬 많다”면서 힐러리의 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힐러리는 최저 임금 15달러를 지지하지 않는다. 힐러리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지지한다. 힐러리는 다코타 액세스 송유관에 대한 입장이 없다. 힐러리는 GMO 표기에 반대한다. 힐러리는 대형 은행 해체에 반대한다. 힐러리는 로비스트들에게 선거 자금을 받는다. 힐러리는 구속력 있는 기후 조약에 반대한다. 힐러리는 이스라엘에 대한 무조건적 군사 지원을 지지한다.”

처음 퍼스트레이디로 백악관에 들어갔을 때 힐러리는 자신감 넘치는 진보주의자였지만 1994년 중간선거에서 패한 뒤 지나치게 조심하고 과도하게 타협하는 캐릭터로 점차 변모해갔다. 빌 클린턴 시절 주춧돌을 놓은 신자유주의 노선은 월가의 금융자본을 살찌우고 실리콘밸리를 풍요롭게 만들었을지는 모르지만 서민과 노동자들의 삶은 더 피폐해졌다.

그런 와중에 힐러리는 골드만 삭스에서 막대한 강연료를 받고, 기업들이 뭉칫돈을 쥐어주는 ‘슈퍼팩’으로 선거를 치렀다. 그런 반감은 여지없이 부메랑이 됐다.

올해 대선에서 저소득층, 시골과 소도시 유권자들의 지지율은 2012년 오바마 때보다 현저하게 낮아졌다. 저학력 백인들이 주류를 이루는, 버려진 폐공장들이 즐비한 미국의 전통 공업지대인 ‘러스트 벨트’ 5개 주들은 모두 트럼프를 선택했다.

힐러리에 대한 사람들의 반감은 단지 어중간한 정책 때문만은 아니다. 무언지 모르게 의뭉스스러워 보이는 그의 태도 때문이기도 하다.

여성의 지위 향상을 일군 대표 선수라고는 하지만 때론 이해할 수 없는 발언을 했다. 힐러리는 1992년 빌이 대선에 나섰을 때 “집에서 쿠키 굽고 차 마시는 대신 경력을 택했다”고 발언해 많은 전업주부들의 원성을 샀다.

30여년 전 변호사 시절에 여아 성폭행범을 유죄인 걸 알면서도 감형시켜준 걸 자랑하는 육성 테이프가 공개돼 곤혹을 치르기도 했다. 오랜 기간 아동과 여성 인권 향상을 위해 운동을 해 왔다는 그녀의 경력에 먹칠을 하는 꼴이었다.

말도 자주 바꿨다. 힐러리는 동성결혼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동성결혼이 화제가 되자 2013년 이후로 지지하는 입장으로 바뀌었다. TPP 역시 찬성하는 입장이었지만 뒤늦게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e메일 논란에서도 사건 그 자체도 문제였지만, 거짓말이 자주 들통 나 신뢰성을 잃었다. 힐러리가 대선 경선 기간 동안 ‘좌클릭’ 행보를 보였지만, 샌더스 돌풍을 의식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았던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변화의 아이콘에서 안정과 기득권의 표본으로

미국 대선이 트럼프의 승리로 끝나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은 뉴욕타임스에 한탄의 기고를 내놓았다. “사실 우리가 사는 나라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우리는 동료 시민들이 고위직에 앉을 자격이 없고, 성격적으로 건강하지 않고, 너무 무섭지만 우스꽝스러운 후보에게는 결국 투표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말 몰랐을까? 민주당 경선에서 힐러리를 궁지에 몰아넣기까지 했던 샌더스 돌풍, 공화당의 유력 주자들을 거의 패대기치다시피 하며 대선 후보 자리를 손에 넣은 트럼프의 돌풍은 둘 사이의 먼 거리만큼이나 공통점이 있다.

바로 도무지 반응 없는, 답답한 기존 정치체제를 뒤집을 수 있다는 일말의 가능성을 유권자들에게 보여준 것이다.

오바마는 2008년 대선에서 변화에 대한 희망을 보여줬지만 지금와 돌이켜 보면 그다지 달라진 게 없다. 반대로 공화당이 상하원을 잡도록 해 주기도 했지만 나아진 건 없다. 결탁한 정치 엘리트와 자본가들은 세상을 바꿀 마음이 없다.

“워싱턴에서는 아무런 변화도 실현되지 않았다. 미국의 국민들은 본인들을 그토록 경멸하는 소수 특권층에게 조국을 빼앗겼다고 느끼고 있으며 양극화는 점점 더 심화되고, 중산층의 근심은 날로 깊어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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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샌더스는 반자본주의 기치를 내걸고, 상위 1%와 월가 자본을 강하게 비판했다. 트럼프역시 세계화와 자유무역협정, 금융엘리트를 맹렬하게 공격했다.

샌더스는 소액기부를 통해 선거자금을 모집했고, 트럼프도 각종 기업과 로비스트로부터 선거자금을 받은 힐러리보다 훨씬 적은 액수의 선거자금으로 선거를 치렀다.

칼럼니스트 박권일은 이렇게 말한다. “이번 미 대선에서는 여러 지향들이 경합했고, 여러 이유에서 어떤 지향이 제도적 승리를 거뒀다. 그 지향을 한 마디로 말하면 현상유지가 아니라 변화였다.”

트럼프도 힐러리도 이전 대선의 민주당·공화당 후보보다 많은 득표를 하지 못했지만, 힐러리가 훨씬 더 많은 표를 잃었다. 그것이 결정적 패인이었다.

“진짜 위험한 정치인은 힐러리같은 정치인”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은 “당신이 미국인이라면 누굴 뽑을 것인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얘기한다.

“트럼프요. 저도 트럼프가 무섭습니다. 하지만 진짜 위험은 힐러리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사회에는 암묵적인 룰이 있는데, 트럼프는 그걸 깨뜨립니다. 만일 트럼프가 이기면 공화당과 민주당은 모두 기본으로 돌아가서 스스로를 다시 생각해볼 겁니다. 아마도 거기서부터 어떤 변화가 일어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힐러리 스스로도 많은 변화를 써 왔다. 그녀는 자서전 <살아있는 역사>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퍼스트레이디나 상원의원으로 태어나지 않았다. 민주당원이나 변호사, 여성 인권 옹호자로 태어나지도 않았다. 나는 20세기 중엽에 한 미국인으로 태어났다. 그 시기에 미국에서 태어난 것은 행운이었다. 과거 세대의 미국 여성들이 얻지 못했고 오늘날에도 세계의 많은 여성들이 감히 상상조차 못하는 선택의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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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힐러리는 어느새 변화보다는 안정과 기득권의 아이콘이 되고 말았다. 변화를 요구하는 오늘날 미국의 시대정신과는 점점 멀어졌다.

오늘날 한국 정치인들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다음 대선을 두고 모두들 ‘변화의 아이콘’이 되고 싶어 하겠지만, 이미 그들은 시민들의 마음속에서는 ‘그 나물의 그 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지는 않는지.

힐러리 캠프의 한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잘못한 일이 아무 것도 없다고 하는 것 자체가 우스꽝스럽다. 그녀는 잘못된 메신저였고, 모두들 얼마나 노동자 계급들이 얼마나 열 받았는지 잘못 판단했다.”

수, 2016/11/16-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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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유령이 세계를 배회하고 있다. ‘극우’라는 유령이. 이 유령은 ‘포퓰리즘’, ‘반(反)기성정치’, ‘분노’ 등 다양한 이름으로도 불린다. 분명한 건 이 유령이 하나의 세력으로 인정받아 국제사회를 휩쓸고 있다는 것이다. 

영국의 브렉시트, 필리핀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 당선,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당선 등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이 유령은 미풍에서 태풍으로 몸집을 계속 불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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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 내년 4월 대선에서 돌풍이 점쳐지고 있다. (이미지 출처: http://www.express.co.uk/)

이 태풍은 2017년 4월 프랑스 대선까지 휘몰아칠 전망이다. ‘프랑스의 트럼프’로 불리는 마린 르펜(48) 국민전선(FN) 대표가 유력한 주자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당 소속 프랑수아 올랑드 현 대통령의 지지율이 바닥을 치고 있는 가운데 프랑스 대선은 제1야당인 공화당 프랑수아 피용(62) 전 총리와 르펜의 대결로 치러지게 됐다. 현지 여론조사는 피용의 우세를 점치고 있지만, ‘르펜 바람’도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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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4월 프랑스 대선에서는 국민전선의 르펜, 보수세력인 공화당의 피용(가운데), 현직 대통령인 사회당 올랑드의 3파전이 예상되고 있다.

프랑스의 유럽연합(EU) 탈퇴, 자국 우선주의, 이민자 배제 등 극우 성향의 정책을 앞세운 르펜은 2014년 5월 유럽의회 선거를 시작으로 각종 선거에서 돌풍을 일으켜 왔기 때문이다.  ‘똘레랑스(관용)’로 상징되는 프랑스가 르펜을 선택할지 세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극우주의가 반짝 돌풍으로 끝날지, 새로운 물결로 봇물이 터질지 가늠할 수 있는 시험대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극우주의자 아버지의 정치적 상속자

르펜은 1972년 국민전선을 창당한 장 마리 르펜의 막내딸이다. 장 마리 르펜은 인종차별과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부정하며 프랑스 극우 세력의 기반을 닦은 인물이다. 

“가스실 이야기는 2차 세계대전의 소소한 세부사항 중 하나일 뿐”이라며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학살)를 부정하는 등 반(反)유대, 반(反) 이민에 확고한 입장을 보여온 극우전선은 똘레랑스의 전통을 자랑하는 프랑스에서 ‘이단아’로 취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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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역군인 출신인 장 마리 르펜(왼쪽)은 드골의 알제리 정책에 반발하면서 1972년 국민전선을 창당한 뒤 40년 가까이 당을 이끌었다. 그리고 2011년 당권을 딸인 마린 르펜에게 넘겼다.

하지만 장 마리 르펜이 각종 선거에서 2002년 대선에서 결선 투표에 오르며 프랑스 사회에 충격을 주는 등 2000년대 이후 주류 우파와 경쟁하는 위치에 올라섰다. 르펜은 아버지가 뿌린 씨앗을 꽃피우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변호사 출신으로 어린 시절 아버지 유세를 따라다닌 그의 정계 입문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1998년 지방의회 선거 당선되며 정치 이력을 시작한 그는 ‘아버지의 후광’ 덕분이라는 비판 속에서도 2004년 이후 유럽의회 의원 3선을 지내며 정치력을 쌓아왔다. 

정치인으로서 그의 정체성은 아버지와 떼려야 뗄 수 없다. 그는 유년 시절의 강렬한 기억을 묻는 말에 ‘다이너마이트’라고 답했다고 한다. 1976년 그가 8살이던 어느 날 밤, 집에 폭발물이 터지는 테러를 당했다고 한다. 

아버지가 국민전선을 창당 한 뒤 르펜을 포함한 세딸은 “파시스트의 딸’, ‘악마의 딸’이라고 불렸고, 변호사로 사회생활을 할 때도 르펜 집안이라는 이유로 따가운 시선을 받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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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린 르펜은 장 마리 르펜의 세 딸 중 막내이다. 왼쪽 사진에서 엄마의 품에 안겨 있는 것이 마린 르펜이다. 오른쪽 사진은 1974년 아빠 장 마리 르펜의 품에 안겨 있는 마린 르펜의 모습. (사진 출처: http://internacional.elpais.com/, http://www.dailymail.co.uk/)

그는 “정치가 목숨을 요구할 수 있다고 깨달았다”고 어린 시절을 회고하며 “살아남기 위해 강해져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고 이야기해왔다. 실제로 그는 국민전선에서 가장 열심히, 독하게 일해온 정치인으로 평가받는다.

유럽 우파 정치그룹의 리더로 성장…아버지 제명키도 

르펜이 세계의 주목을 한몸에 받게 된 계기는 그는 2012년 대선과 2014년 5월 유럽의회 선거였다. 2012년 대선에서 17.9%의 득표로 3위를 기록하는 돌풍을 일으킨 그는 유럽의회 선거에서 국민전선을 프랑스 제1당으로 끌어올렸다. 

반(反)유럽연합(EU)과 유로화 탈퇴, 반이민정책을 내세운 국민전선이 24.8%득표율로 중도좌파 집권 사회당(PS)과 중도우파 야당인 대중운동연합(UMP)을 제쳤다. 당시 유럽은 이를 두고 ‘쓰나미, 허리케인, 빅뱅’등으로 표현하며 당혹함을 감추지 못했다. 

2015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그를 “유럽 우파 그룹의 리더”라며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명’ 명단에 올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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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린 르펜과 그녀의 조카딸인 마리옹 르펜(오른쪽). 국민전선을 창당한 장 마리 르펜의 손녀이기도 한 마리옹 르펜은 빼어난 미모로 국민전선의 ‘포스터걸’로 주목을 받았으며, 프랑스 역사상 가장 어린 22살 때 하원의원에 당선되기도 했다. 또한 그녀는 마린 르펜 이후 당권을 넘겨받을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사진은 2015년 지방선거에서 의외의 선전을 하자 함께 기뻐하는 모습. (사진 출처: BBC)

그는 아버지의 유산을 물려받았지만 철저히 아버지와 선긋기를 통해 지금의 성공을 이뤘다. 2011년 당 대표 취임 뒤 그는 ‘악마’ 이미지를 세탁하는데 온 힘을 기울였다. 

“르펜은 르펜이고 마린은 마린이다. 나와 아버지의 역사관은 다르다” “국민전선이 프랑스인 전체에 호소하는 거대 대중정당이 되길 바란다”며 아버지의 극단주의와 거리를 뒀다. 

두번 이혼하고 세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이기도 한 그는 성차별주의자, 반유대주의자라고 불린 아버지의 악명을 지우면서 반이민, 반이슬람을 중심 의제로 옮겼다. 당내 인사들이 인종차별 발언을 하면 징계를 내렸고 급기야 2015년 5월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발언을 반복한 아버지를 당에서 제명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프랑스 최악의 경제 위기 속에서 세계화 반대, 보호 무역주의, 복지 확대 등 ‘좌클릭’ 정책을 연이어 내놓았고 재벌을 맹렬히 공격하며 노동계급과 실업자들의 지지를 끌어안았다. 20~40대 정치 신인들을 과감히 수혈해 ‘기성 엘리트 정치인 대 젊은 피’의 구도도 만들었다. 국민전선이 선거마다 선전하고, 그가 유럽 우파의 새로운 리더로 평가받게 된 배경이다. 여기에 연이은 유럽의 테러로 고조된 반이슬람, 반이민 정서가 르펜의 뒤에 자리 잡고 있다.

물론 세계는 그의 유연한 행보에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르펜은 2010년 이슬람교도의 거리 기도를 두고 ‘나치의 프랑스 점령’에 비유해 재판을 받기까지 했고, 여러 언론 인터뷰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트럼프 대통령을 존경한다고 밝혔다. 

아버지보다 다소 유연할 뿐, 극우파 정치인으로서의 그의 정체성과 극우 정당인 국민전선의 본질은 그대로라는 시선이다.

기득권 정치에 대한 불만이 정치적 동력

세계는 트럼프 대통령 당선과 르펜 열풍 등 소수의 극단적 주장으로 치부하던 세력의 부상에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정당과 언론과 지식인들도 각각 엇갈린 분석을 내놓고 있다. 문제는 이들의 부상이 단순한 일탈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모순이 곪을 대로 곪은 지금의 세계를 자양분으로 삼아 자라나고 있다는 것이다. 

앞부분에서 인용한 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은 19세기 자본주의 체제 모순을 뚫고 나왔다. 지금의 극우주의 열풍은 마르크스주의와 유사성을 찾을 수 없지만, 그 배경에는 세계화, 소득 불평등, 테러의 공포 등 사회경제적 모순이 자리 잡고 있다는데 유사점을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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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4월, 마린 르펜의 연설회에 참석한 한 지지자가 그녀를 대통령으로 만들자는 지지 피켓을 들고 있다.

주류 정치인들과 엘리트로 향하는 성난 민심을 트럼프나 르펜 등이 적극 대변하는 것이다. 르펜은 쉬운 문장으로  “정치 엘리트들이 나라를 망치고 있다”, “이민자가 아니라 프랑스인을 위한 복지제도가 필요하다” 저학력·저소득 노동자들과 실업자들의 분노를 자극하고 있다. “똑같이 낡은 인물들, 똑같이 낡은 공약들”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르펜의 앞에서 프랑스 기성 정치인들은 쩔쩔매는 상황이다. 트럼프에 패배한 힐러리 클린턴 역시 ‘엘리트·기득권 세력’으로 몰렸다.

문제는 르펜의 선전이 그의 당선 여부와 상관없이 똘레랑스의 프랑스를 이민자 혐오, 반이슬람주의 등으로 이끌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사회 역시 트럼프의 당선과 함께 흑인과 동성애자 등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폭력이 기승을 부릴 것이라는 공포에 휩싸여 있다. 노동자들의 분노를 엉뚱한 데로 돌리고, 세계가 힘들게 쌓아 올린 민주주의와 인권을 하루아침에 무너트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헬조선’이라는 자조 속에 ‘박근혜 대통령 게이트’로 요동치는 한국 사회 역시 “한국의 트럼프’., ‘한국의 르펜’은 없을 것이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수, 2016/11/30-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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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신문에 ‘을의 경제학’이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연재하고 있는 장흥배 님이 1월 10일 ‘시장은 어떻게 지배하는가’라는 주제로 쓴 글의 일부를 아래로 다시 소개한다..

최저임금제의 의의는 임금 최저선의 결정(이라는 영역)에서 시장에 대한 사회의 우위를 확인한 것이다. (중략) 문재인 정부하에서 최저임금제의 역사적 의미는 시장의 힘을 극복하려는 것이었지, 이에 굴복하라는 것이 아니었다. 촛불항쟁, 여야 대선주자들의 공약 경쟁, 이를 통해 들어선 정부의 정책 수립을 통해 탄생한 최저임금 1만원이 가리키는 정책 방향은 공룡 재벌에 의해 망가진 공정거래 질서의 복원, 만약의 고용 위기를 상쇄할 과감한 복지와 소득재분배, 부동산 지대경제의 청산 등이었다. 요컨대 시장과 경제를 16.4%의 최저임금 인상이 수용될 수 있는 환경으로 개혁한다는 것이 인상을 결정한 사회적 합의의 요구였던 것이다. 달리 보면 이 모든 과제에서 허탕을 치고 역진하는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무력화하는 온갖 꼼수로 나가는 것은 예정된 수순일 수밖에 없다.

좌절로 가는 최저임금 1만원 실험에서 남아야 할 교훈이 있다. 지배계급은 언제나 자신들의 계급적 이해에 따른 선택을 객관적인 시장의 힘에 의한 제약으로 위장한다는 것이다. (반작용적) 역효과 명제는 이를 통해 대중의 사고를 효과적으로 지배한다. 실상 신비한 시장의 힘으로 포장된 상자를 뜯어보면 재벌, 상가와 아파트 자산가, 상위 10% 고소득자들의 경제적 이권을 유지·확대하려는 (탐욕의) 이해가 대개의 내용물이다”

 

명쾌한 선언이다! 시장은 당연히 시민사회의 필요와 합의에 따라 작동하고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데 촛불의 이름을 앞세워 집권한 문재인 정부에서조차 한국 사회의 모습은 시장논리와 경제성과라는 미명으로 극소수의 기득권층 탐욕이 합리적인 것처럼 포장되고 이들에 의해 전일적으로 지배당하는 공간으로 변모하였다.

본인과 가족들의 패악행위 등으로 스스로 경영능력이 없음을 만천하에 노출한 조양호 대한항공 그룹회장의 경영권을 박탈하기 위하여 마땅히 이루어져야 할 연기금 등 공공투자 지분의 주주권 행사(stewardship)를 유보하면서 오히려 수구언론과 보수진영에서 이를 마치 사유재산권과 경영권의 침해하는 것으로 오도하는 것에 암묵적으로 동조하고, 명백하고 노골적으로 탈법과 불법을 저지른 이재용을 삼성이라는 한국 대표기업의 주주이자 경영자라는 단 하나의 이유로 구속을 면책하고 석방하였다. 결국 대한항공과 삼성이라는 거대한 기업집단들이 국민적 자산이 아니라 일개 가문의 전횡적 사유물이라는 것을 공인한 셈이다.

시민들에게서 수임한 개혁을 추진하는 대신 애매하게 삼성과 연대하며 황당하게 시장의 논리를 전면적으로 내세웠던 지난 세월의 참여정부에 이어, 역시나 이익 방어에 노련한 기득권의 간교와 교언영색으로 포장된 예의 시장논리에 포획되고 투항하면서,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최저임금제 실현과 노동시간 단축이라는 역사적 명제에서 말머리를 돌려 뒷걸음친 문재인 정부는 이제 더 이상 촛불과 시민을 정권의 명분과 장식용으로 운운해서는 아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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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pixabay

시장은 기본적으로 무죄이다. 문제는 시장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여 작동하는 기득권과 자본의 탐욕과 이를 정당화하는 논리와 이데올로기와 매카니즘, 그리고 이에 조응하여 형성되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친 구조가 문제이다. 이에 한걸음 더 들어가 시장이라는 일반적이고 포괄적인 용어를 시장, 시장가격, 시장기구(역할), 시장경제 등으로 다시 세분하여 들여다 보고자 한다.

경제학 사전에 의하면 시장은 일군의 공급자와 수요간에 성립하는 재화 내지는 용역의 교환 또는 매매의 관계 전체를 지칭하는 용어이다. 역사적 흐름으로 볼 때 상품경제가 발달하지 않은 시대에는 교환 내지는 매매 행위가 특정 장소에서 이루어졌으나, 상품경제가 일반화된 이후에는 구체적 매매 행위에 더하여 개념적 추상으로서 시장이 존재하면서 이를 바탕으로 형성된 관계와 범위의 내용이 특정 장소를 대신하게 되었다고 적고 있다.

아담 스미스 이래 경제학의 핵심은 가치에 대한 논쟁과 시장에서 가격이 형성되는 과정에 관한 것일 것이다. 개념으로서 가치와 시장 가격 간에 존재하는 괴리에 대한 관점과 해석이 지난 수백 년간 서구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경제 산업의 내용을 역동적으로 규정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경제학을 전공하지 않은 필자는 다만 기업인으로서 30여 년간 실물 경제를 체험한 바탕으로 경제와 시장에 대해 기존의 논쟁과는 다른 의견을 만용스럽게 개진해 보고자 한다.

육체라는 유기체적 형태를 지닌 인간에게는 의식주의 해결이라는 절대적 필요가 존재하며 어떠한 상황과 조건에서도 이를 충족하는 재화와 서비스가 제공되어야 비로소 해당 사회가 지속될 수 있다. 이를 해결하려는 국가단위의 시스템을 현대적 의미에서 복지의 사회안전망 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행히 수 차례의 산업적 혁명과정을 통하여 인류의 노동 생산성이 획기적으로 높아지고 기본적으로 의식주의 수요를 해결하면서, 이제 추가적으로 진행되는 생산(경제)활동은 역사의 흐름이라는 시간적 요소와 더불어 사회와 정치적 관계구조 속에서 상대적이며 개별적으로 형성되는 수요와 연동하여 다양하게 전개된다.

현장에서 물물교환과 단순한 매매가 이루어지던 시대를 지나 근대에 이르면 위에 언급한 다양한 형태의 시장과 사회적 권력구조 속에서 집단적 공급과 수요의 균형적 만남을 통하여 시장가격이 형성된다. 이때 시장이라는 구체적 또는 추상적 공간에서 현상적으로는 수급상황과 한계효용의 논리에 따라 가격이 형성되지만, 실현된 가격이라는 현상 뒤에는 생산 및 공급의 수단과 유통망 기반의 소유권을 둘러싸고 형성된 사회적 지위와 정치적 권력구조가 실제적인 힘으로 작동하게 된다.

현대의 대부분 경제학자들은, 알프레드 마샬이 제시하였듯이 일군의 공급과 수요에 의한 균형에 의해서 합리적으로 시장가격이 형성되고 호모 에코노미쿠스로 규정된 인간들에 의해 한계효용적이고 판단논리적인 행위에 의해, 기존에 형성된 가격선이 수학의 법칙처럼 이동한다고 곧이 곧대로 믿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시장가격과 변동은 사회평균 생산력에 의한 노동가치에 기반하되 혁신적 기제와 더불어 사회구조와 세력간의 힘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는 것이 현실적이다. 이에 더하여 체제의 주류집단이 주도하는 미디어 매체의 홍보와 문화적 환경 속에서 개별적 집단적 심리 욕구가 인위적으로 형성되면서 소비자들로 하여금 의도하지 않은 수요를 촉발하게 만든다.

권력구조에 따라서 전개되는 시장 현실과는 별도로, 이론적으로 이상적인 조건하에 수급 균형과 한계적 효용가치 이론이 작동하는 시장경제에서는 매체 또는 공간이라는 장소를 통하여 재화와 서비스의 공급지를 확인할 수 있으며 가격을 매개로 실제적인 수요가 보내는 신호를 확인하면서, 일차적인 수요와 공급에 대한 정보와 균형의 기능에 더하여, 경제적 유효 자원들을 가장 효과적으로 배분하고 결합시키는 역할과 기능을 갖게 된다고 믿는다.

이러한 관점에 서면 20세기 전체주의적인 극우 파시즘과 극좌적인 스탈린 시대의 경제체제를 경험하였던 빈 학파의 미제스와 하이에크의 신자유주의적 이론과 입장이 일면 타당하고 이해할 만한 것이다. 혹독한 시대적 경험을 겪은 빈 학파의 입장에서 보면 시장이 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핵심 사항으로 반드시 개인적 자유주의와 무제한적 사유재산권이 전제되어야 하며 국가의 역할을 상기 요소들을 보호하고 보장하는 것으로 제한해야 한다. 좀더 나가서는 인간의 자의적 판단을 배제하면서 시장에게 만능의 능력을 부여하여 신과 동등한 위치까지 올려 놓는다. 이제 시장 만능주의는 ‘반드시 시장에 복종해야 하며 다른 대안은 없다(TINA’)는 강력한 이데올로기로 발전해 나간다.

반면에 폴라니와 케인즈 등의 입장에 서면 자본가들의 지나친 탐욕으로 자유시장의 기능이 실패하고 독점의 폐해가 커져가면서 사유적 자본의 자기조정과 이익실현이라는 매카니즘이 망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생산을 무리하게 강행하여 한편에서는 과잉생산물이 누적되는 반면에 식민지를 포함하여 빈곤과 결핍으로 탈진한 시장의 과소소비 상황이 겹치면서, 이러한 공황적 상황을 정치권력의 강제이던 군사적 물리력이던 국가단위 또는 연합적 지역단위에서 폭력적으로 해결하는 과정으로 파시즘이 태동한 것으로 판단하게 된다. 한마디로 파시즘은 탐욕 때문에 실패한 시장 기능을 강제적으로 작동시키면서 발생하는 반동적 현상인 것이다. 따라서 민주적 절차에 따라 시민들의 선택에 의해 위임된 정치적 강제력으로 잘못된 시장질서와 왜곡된 산업구조에 개입하고 수정을 시도하는 것은 정당하고 마땅한 일이다.

상기의 두 가지 상반된 입장이 대치하는 가운데, 지난 백여 년간 경험을 통하여 되돌아 보면 시장기능과 시장경제의 역할은 결국 역사적 상황에 따른 사회적 정치적 관점과 입장의 문제로 다시 귀결된다. 마치 근대 정치철학의 출발점에서 공히 국가의 성립을 사회계약론으로 해석하면서도, 홉즈는 기존 질서의 권력자인 군주의 입장에 서고 로크는 신흥 유산자 계층의 편협한 이익을 옹호하는 논리를 전개하지만 루소는 모든 공민들의 참여와 합의에 의한 일반의지에 기초하여 근대적 민주주의를 주창한 역사적 경험을 되돌아 보게 한다. 판단의 기준은 ‘무엇과 누구를 위한 것 인가’ 이다.

이에 더하여 제3차 산업혁명이 진행되면서 제조업과 서비스업 간의 생산성 격차에 따른 보몰 효과가 나타나고 제2차 대전 이후 미국의 절대적 경제력에 의해 달러에 기초하여 형성된 기존의 통화시스템에 미국경제가 위축되는 과정에서 심각한 비대칭성이 형성되면서 고전적인 경제와 통화의 이론에 괴리와 변종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급기야 무형재를 중심으로 하는 제4차 산업혁명의 출현과정에서는 기존의 시장경제 이론인 재화 및 서비스의 배타성과 경쟁의 논리 및 수확체감의 법칙 등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금융과 산업변천의 경제사를 오랜동안 연구해온 건국대의 최배근 교수는 최근의 저작 ‘위기의 경제학? 공동체의 경제학!’을 통하여 (기존의) 경제학은 없다고 선언하기에 이른다. 그에 의하면 현재의 경제적 위기는 지난 시기 공업화에서 벗어나는 탈공업화 과정에서 새로운 출구를 찾지 못하면서 과다하게 금융산업에 의존하게 되었고 위에 언급한 달러 중심의 통화시스템과 금융산업이 미국의 패권과 결합하고 세계화를 통하여 전지구적 불균형과 극심한 소득불평등이 확대를 거듭하면서 양극화의 위기 상황을 초래하였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적나라한 현실이다.

인류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최교수는 인터넷 망과 ICT 기술의 기반을 전제하는 미래적 사회에서는 탈물질적인 무형재를 중심으로 전개될 것으로 예상하면서 이러한 무형재적 미래의 산업에는 혁신적 창의성과 자율성이 가치창출의 핵심을 이룬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기존 경제와 산업의 영역에서 지배적 형태였던 소모적이고 경쟁적이고 배제적인 방식에서 탈피하고 데이터와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협력과 공유라는 새로운 방식과 논리가 도입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혁신 역시 협력과 공동작업을 통해서만 실현가능하고 가치창출방식과 사업모델에도 다다익선의 가치체증의 법칙이 작동하면서 이타자리(利他自利)형 경제 모델과 법칙이 작동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교육 역시 타인과 경쟁적인 지식축적의 암기형에서 협력을 기반으로 더불어 함께 과제를 인식하고 문제의 해결을 찾아가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하며, 금융도 기축통화 중심과 중앙은행의 통제적 개입 방식에서 벗어나 블록체인과 플랫홈 공유를 통한 민주적이며 다원적인 시스템 도입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기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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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최배근 교수가 ‘공동체 경제학’이라는 이름으로 던지는 새로운 문제의식의 도전과 혁신적인 패러다임의 전망에 전적으로 지지하고 동의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사항을 보완하여 지적하고자 한다. .

우선 인간이 유기적 육체를 지닌 존재라는 조건으로 인하여, 자연재에 노동을 가하여 의식주의 수요를 해결하는 절대적 기초재와 인터넷 기반과 ICT 기술에 기반으로 새로이 형성되는 무형재를 구별하여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기초재 중에서도 의복은 대충 해결된 상태이지만 식량은 여전히 국가단위에서는 안보적 차원의 주제이고 개별적인 시민에게도 일상적으로 중요한 주제이다. 주거의 문제는 특히 투기가 극성을 부리는 한국사회에서는 사회 안전망으로서 복지의 핵심적 내용을 차지하면서 공공의 개입과 역할이 반드시 요구되는 영역이다. 양보할 수 없는 의식주의 전반적 영역에서는 고전 경제학에서 이야기하는 배타적 경합성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무형재 일반 역시 성격에 따라 섬세한 재분류가 필요할 것이다. 인간의 삶에 있어서 필요한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 및 제공의 효율을 드높이고 자유의 가능성을 제고하는 역할이 있는가 하면, 제한된 인생의 시간을 사이버 공간에서 허비하고 무의미하게 하는 낭비성 또는 중독성의 문제를 야기하는 측면이 있다는 것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경제는 시장에서 표현되는 단순히 수치로만 평가해서는 안되며 인간적 삶의 가치를 고양하는데 주어진 역할을 하여야만 한다.

따라서 최교수도 언급하였듯이 경제학 또는 시장의 개념을 단순히 과거형으로 고전적 해석과 영역에만 머무를 것이 아니라 이에 더하여 새로이 전개되는 조건과 상황에 응동하고 변화를 추구하고 내용을 확장하여야 한다. 마치 물리학에서 뉴톤의 법칙에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으로 그리고 또 다시 양자론으로 변신을 시도하듯이, 폴라니가 언급하는 복합사회(정치, 산업, 사회, 문화, 기술 등이 상호작용하는)속에서 조건과 상황에 따라 과거의 이론을 포괄하면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실험정신으로 접근해야 할 것으로 본다. 역시 중요한 것은 무엇을 위한 시장논리이고 누구를 향한 경제이론인가 라는 근본적 질문에 응답해야 하는 것이다.

인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 과학과 기술이라면 이도 역시 사회적 합의와 정치적 강제를 통하여 개입하고 전향적인 방향으로 유도하여야 한다. 과학과 기술에 중립성은 없다. 지난 칼럼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인터넷 환경이라는 공유재와 이를 기반으로 하는 공유경제를 명확히 구분해야 하며 구글과 폐북 그리고 우버 등에서 경험하였듯이 설령 이들이 인류에게 보편적인 편이와 효율성을 제공한다 하더라도 기술 특성상 어마어마한 운용의 과정과 성과를 개인과 특정 기업이 독점하는 것에는 매우 심각한 문제가 제기된다. 따라서 공유기반의 소유와 운용의 과정에 공공적 개입이 반드시 필요하며, 실현된 운용의 성과를 시민사회 또는 인류가 함께 향유할 때만이 명실공히 공유경제라는 용어를 비로소 부여할 수 있다. 지혜와 합의가 필요한 영역이다.

미래에 전개되는 산업사회에서는 로봇과 AI에 의해 대부분의 반복적인 육체노동뿐만 아니라 단순한 정신적인 판단과 관리업무도 대체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물론 진행 과정에서 새로운 직업과 일자리가 생기겠지만 숫자나 내용에 있어서 소멸되는 기존의 직업군을 모두 보충하고 대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점이 기존에 있었던 산업혁명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속도를 조절하여 실업의 충격을 완화할 수는 있겠지만 단기적인 해결책일 뿐이다. 기존의 산업과 체계에서 새로운 일자리가 자연스레 만들어질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적 행위이다.

근본적으로 기존적인 계약방식의 전일적인 직업으로 받아들이는 일자리의 개념을 바꾸어 가야 한다. 많은 학자들은 자본제 이전에 있었던 자기실현적 자영 형태의 농업과 수공업이라는 오래된 과거에서 새로움을 찾고자 한다. 미래 사회에서는 시장과 기업의 요구사항 대부분이 사회적 역사적 노동의 축적된 형태인 과학기술로써 해결될 것이다. 기존의 방식과 다른 ‘새로운 일자리’라는 개념의 도입은 기존 복지체계의 재구성, 기본소득의 도입 그리고 조세체계의 대변화를 요구하는 매우 광범하고 중요한 주제이기에 추후에 다시 언급해 보기로 한다.

결론은 인간들이 서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복합적 공간으로서 시민사회가 만능적 시장의 일방적 지배를 받아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동물들은 자연의 법칙에 지배를 받고 진화하면서 살아 남았지만, 인간은 언어와 대화라는 방식으로 인위적인 합의와 협력을 통하여 역사를 이루어 왔고, 대자적인 질문과 성찰을 통해 누적된 지식을 기반으로 발전을 이루고 자유의 범위를 확대하여 왔다.

시장은 신이 만든 만능의 법칙이 아니라, 인간들이 일구어낸 매우 소중한 인공적 성과물의 하나이며, 따라서 시장은 시민사회를 풍요롭게 하는 효율적 수단과 관계적 방식으로 작동해야만 한다. 시장이라는 이름과 논리로써 오히려 인간의 삶을 왜곡시키고 구속하려고 한다면, 정치적 영역에서 혁명을 일으켜서 폭군을 몰아내었듯이, 시장이라는 포장의 뒤에 숨어 있는 탐욕을 제거하고 기득권 체계를 전복시켜서라도 시장으로 하여금 시민사회에 풍요로운 삶의 조건을 제공하고 봉사하는 충복으로 역할을 다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시장은 인간사회에 봉사하는 유능하고 유용한 도구이어야 한다. 이것이 경세제민經世濟民이요, 제민지산制民之産의 요체이다.  2019-01-21.

목, 2019/01/24-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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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문재인 정부의 재정개혁 특위는 제 역할을 못한 듯 조용히 해산되었다.

이는 사회적 혁신과 가치를 표방하고 출범했던 현정부가 실제적인 개혁을 포기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언술적으로는 생애를 통한 복지 등 포용정책을 확대하겠다고 하지만 현재의 재정 수준으로는 어림도 없는 이야기일 뿐이다. 대저 역사의 변혁을 이루는 데는 조세정책이 성공의 여부를 가름하였다.

선택적 양수론揚水論을 정책적 수단으로 삼아 인간중심의 시민경제를 실현하려면 당연히 시민권력의 정부가 주도하는 변혁적 조세정책이 변화의 핵심적 근간을 이루어야 한다. 사회경제 운용의 기본적 원칙으로 자유와 시장을 기반으로 하되 물적 토대의 재구성을 통한 확대와 혁신, 지구 생태와 환경의 지속적 순환, 개인의 존엄과 사회의 상생적 가치를 융합해 내기 위해서는 조세 정책에 사회철학을 담아내는 큰 변화의 밑그림이 필요하다.

우선 국가운용에 필요한 재정적 자원을 제공해야 한다는 평면적이고 일차적 측면에서의 조세역할은 진부한 고전적인 주제로, 약한 정부를 지지하는 신자유주의적 경향과 강한 정부를 요구하는 케인즈적 입장이 충돌하면서 지난 수십 년 간 서구 정치의 논쟁적 내용을 장식하였다.

산업화의 진행으로 전통적 가족체계가 붕괴하고 독점적 자본주의가 성립되면서 풍요를 제공해 주던 시장이 수탈적 성격으로 전화되면서, 인간으로서 삶에 필요한 자원을 친밀성에 기초한 개인적 관계에 의존할 수 없으며 변화무쌍한 기업의 입지와 탐욕으로 변질된 시장에도 기대할 수 없는 조건에서, 정부가 일차적인 사회안전망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 현대국가 존립의 일차적 근거이다.

이에 모든 국민들에게 인간답게 살아갈 최소적 조건을 제공하지 못하는 정부를 주권자로서 시민들은 당연히 거부해야 하고, 정히 불가피하다면 전복시켜야 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인류의 희망으로 떠 올랐던 재분배 기능중심의 사민주의가 20세기를 거치면서 새로운 비전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오히려 기득권 체계의 유지강화라는 측면에 급급해지면서 제도적 한계를 분명하게 드러났다.

따라서 미래국가의 모습은 사회안전망과 순환적 재분배라는 기능뿐만 아니라, 물적 기반의 재구성을 통하여 혁신적 역동을 꾀하면서 인간적 가치와 존엄 그리고 사회적 상생과 자유 조건의 확대가 모두에게 일상적이며 지속적으로 작동하도록, 제도적 교량 역할로서 조세정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집행해 가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시민의 정부는 현존의 극심한 불평등과 불균형의 양극화를 해결하는 단초로서 산업과 경제운용 성과를 기간적 개념으로 파악하는 집중集中과 세대간을 넘어서 형성되는 축적蓄積이라는 두 개의 핵심적 문제점을 동시적으로 해결하는 정책적 방도를 준비하고 실천해야 한다.

 

일차적으로 양극화의 주범인 집중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살펴본다

부의 집중에 대응한 조세의 기본 방향은 누진적 세율의 적용이다. 우선 현재의 시장적 조건은 20 세기의 20 : 80 수준의 빈부격차를 훌쩍 넘어서 1 : 99 또는 0.1 : 9.9 : 99의 양상으로 악화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필자는 현재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소득과 재산의 5 분위 배수를 기준으로 하는 통계자료는 연속적 추이분석 이외에는 전혀 의미가 없다고 판단한다.

최상위 부자 및 공생하는 집단의 분포는 10 분위 배수의 통계와 최상위 1%가 갖는 부의 집중도의 자료가 제공되어야 비로소 현실 상황을 보다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으며, 국민순소득 중에 자본과 자산에 대한 배분율이 35-40 % 수준을 넘어서는 한국의 상황에서는 단순한 경제활동 소득의 분포를 넘어서 자산소득을 포함한 종합소득 분석의 통계를 도입해야만 유의미한 판단 자료를 얻을 수 있다.

누진적 소득세율에 대해서는 우선 서구의 전후 골디락스 시대인 1946-1970대의 80-90% 고율 경험에 대한 연구가 전제되어야 한다. 현재 한국에 적용되고 있는 최고 소득세율은 과거 80년대 레이건 시대의 공급중심과 낙수효과의 이론을 제공했던 레퍼 교수의 주장(레퍼곡선 이론)에 따라 매우 낮은 40% 선에 머물고 있으나. 이제는 공급이 아니라 순환과 수요 중심으로 경제정책이 이동해야 하는 시점이며 더구나 낙수효과가 허구임이 드러난 현재에 이를 더 이상 고집해야 할 근거는 전혀 없다.

반대로 세계에서 가장 경쟁적인 사회경제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북유럽의 경우에는 여전히 60% 이상을 적용하고 있으며, 불평등 연구의 대가로 알려져 있는 영국의 액킨슨 교수 역시 65%선이 불평등 완화의 최적 세율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최근 미국 민주당의 민주사회주의그룹(DSA) 의원들이 주장하는 최고세율 70%에 대하여 뉴욕시립대 크루그만 교수는 확고한 지지를 표명하며 뉴욕타임즈 기고를 통해 세법 연구 대가들의 성과와 결론을 소개하면서 75%가 경제를 최적화하고 선순환하는데 가장 이상적인 수치라고 밝히고 있다.

상기의 논쟁을 근거로 한국의 부의 편중이 세계 최악의 수준임을 감안한다면, 경제의 흐름과 운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 기술적 범위에서 한국 소득세의 최고 누진 세율을 현재 40% 에서 70% 수준까지 상향 조정할 이유와 근거가 충분하다. 이에 더하여 한국경제의 고질적 적폐인 부동산 투기를 잡기 위해서는 반드시 보유세를 실제 거래가격 기준 삼아 누진적으로 1-2% 수준까지 올려야 한다. 이는 조세의 수입효과 이전에 상생하는 공동체적 규범과 원칙의 문제이다.

법인세의 경우, 소득세와 이중과세라는 논쟁점이 있고 이미 자본의 이동에 국적이 없어진 세계화의 시대에 진입하면서 단위국가라는 국경을 넘어서는 매우 조심스런 주제이며, 국제적 수준의 합의와 기준 설정이 절실하다. 유엔과 같이 국제조세 행정기구의 설립이 시급한 사안이기도 하다.

다만 자본 자유도가 싱가포르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높고 자본시장에서 수익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우량 상장기업들의 외국인 소유지분이 대단히 높은 한국의 현실을 감안한다면, 외국투자자에 대한 배당세율을 현재 5% 수준에서 가능하다면 10% 이상으로 높여야 하며, 외국인 지분이 집중된 우량 기업들에 대한 선제적인 과세를 위해서, 예건데 연간 세전 수익이 1조를 넘는 기업에 대해 법인세를 추가적으로 과감히 높이는 방안도 연구해볼 만하다. 외국인 투자가 한국경제에 크게 기여하는 측면을 전적으로 인정한다 하더라도, 주식매매차익을 포함하여 발생한 자본 수익에 대해서는 당연히 합리적인 절차와 수준에서 적정한 과세를 하는 것이 국민경제적 주권의 입장에서도 옳다고 본다.

여기서 미래사회를 위하여 우리가 반드시 살펴보아야 할 매우 중요한 영역이 있다. 인터넷 망을 공유기반으로 사용하는 거대 ICT기업에 대해서는 예외적으로 높은 세율을 적용하는 것을 국제적으로 연대하여 연구해야 한다. 이러한 제안을 하는 배경으로 FAANG로 상징되는 ICT 기업중심으로 26명의 초거대 부자들이 인류의 절반에 해당하는 36억 명의 재산을 능가하는 현실을 이대로 지속적으로 허용할 수는 없는 일이다.

마침 국내 재야 재정학자인 이동욱 선생이 정규직 일인당 세전 부가가치액 기준으로 강력한 누진세를 적용하자고 주창하고 나섰다. 그의 생각을 단순하게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강력한 누진적 법인세율을 정규직의 고용에 연동을 하면, 이윤이 많은 기업은 정규직 고용을 확대하여 보다 낮은 법인세율을 적용 받을 것인지, 아니면 정규직 고용을 확대하지 않고 높은 법인세율을 적용 받을 것인지를 선택하게 될 것이다. 기업이 정규직의 고용을 확대하면 양질의 일자리가 증가하고, 노동소득이 증가하여 소득분배가 확대될 것이고, 기업이 정규직 고용을 확대하지 않는 경우에는 누진적 법인세가 증가할 것이므로 세수가 증가하고, 세수증가에 따른 세출증가를 통하여 소득분배를 확대하고 일자리를 더 만들 수가 있다. 법인세율을 정규직 1인당 평균부가가치(생산)를 기준으로 강력하게 누진화하면 좋은 일자리도 많이 생기고, 기업간 격차도 감소하고, 고용확대로 노동으로의 소득배분도 증가하고, 세수도 증가하여 소득분배는 획기적으로 확대될 것이다”

이동욱 선생의 정규직 고용과 연동한 누진적 법인세를 초과이윤을 실현하는 ICT 산업분야에 적용하자는 필자의 제안은 해당산업 분야가 인터넷 플랫홈을 무상으로 이용하여 상상을 초월하는 이윤을 남기는 반면에 실제로 고용 기여의 효과가 거의 전무하다는 점에 착목한 것이다.

예건데 해당 국가단위로 정규직 일인당 세전 수익이 1억을 넘는 경우 60%, 2억을 넘기는 경우 75%, 3억을 넘기는 경우 90%를 적용한다면, 그들이 이야기하고 주장하는 소위 공유경제가 단순히 플랫홈을 공동사용 하면서 형성된 편의성의 과잉 포장된 일면적 사고를 넘어서, 이에 발생하는 독점적인 초과수익을 강력한 조세정책을 통해 모두가 함께 향유할 수 있는 공공적 재원으로 환수하여야 비로소 참다운 공유재적 경제 질서가 실현될 가능성이 열리게 된다. 이 때 발생하는 조세수입이 e-Flatform 공유재라는 기반에서 형성되는 것을 감안하여 모든 국민들의 기본소득 등 공공재적 재원으로 활용해 봄직하다. 인류 전체의 미래를 위해 매우 중요한 주제이다. 마침 이 글을 통해서 이동욱 선생에게 깊은 경의를 표하고자 한다.

추가적으로 세금공제 제도에 대하여 살펴보자면, 세액 공제 제도는 초기에 정부가 정책적으로 부실하고 사회적 기능이 미약하여 산업, 교육, 복지 문화 등 정책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는 취약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좋은 취지로 도입되었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정부의 제도와 정책들이 점차 완비되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제 제도가 무절제하게 남발되고 과도하게 중첩되면서, 여기저기서 온갖 비리와 부패가 발생하고 보편적 원칙을 지켜야 할 세정 질서가 엉망이 되어가고 있다.

이에 가급적 공제제도를 폐지하고 (모든 공제제도를 완벽하게 없애는 것이 최상이다), 법정 세율과 실제 부과되는 세액이 가능한 일치되도록 노력해야 하며, 이에 따라 추가 유입되는 재정의 여력을 각 부처별로 정책적 목표와 용처에 맞추어 산업과 과학기술, 복지와 노동, 교육과 문화 등 모든 영역에 구체적 사안과 실적에 따라 직접 지원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이 마땅하다.

상기에 언급한 내용들을 적극적으로 실행하고 그래도 재원이 부족한 경우에는 필요한 만큼 소비세율을 높이는 등 과감한 조세개혁을 실시하여 조세를 포함한 국민부담율이 35% 수준에 이르러야 비로소 사회정책적으로 포용적 국가군에 진입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세대를 넘어 형성되는 축적에 대한 대응으로 사회적 상속이라는 주제를 살펴본다

2018. 11월 국무총리 산하에서 주관한 사회적 상속에 관한 토론회가 있었다. 당시의 문제제기는 참신하였지만, 개념과 용어가 전적으로 잘못 설정되어 사회적 상속에 대해 오해와 혼선을 야기했다. 당시 내용을 유추하면 사회적 상속이라는 용어 대신에 사회적 기부라는 이름을 사용했어야 한다. 사회적 상속과 사회적 기부는 사람과 원숭이만큼이나 엄청난 질적인 차이를 가진다.

사회적 기부 또는 기부 자본주의는 기득권 또는 개인소유적 물적 기반과 자산의 상속을 전적으로 인정하는 기존의 체제내적 개념에서 개인의 자비와 선의에 의해 일정 부분을 사회에 기부하도록 유도하여 기존의 신자유주의적 체제가 양산해낸 불평등과 불균형에 대한 저항을 일부 완화하거나 현실모순에 대하여 부정적 판단을 둔감시키는 조치이다.

반면에 사회적 상속은 개인의 일생 동안 이루는 성취를 시장경제의 원리에 의해서 유도하고 활성화시키는 원칙을 유지하면서도, 이러한 성취의 누적이 인연을 통한 타인 또는 혈통을 통한 가족들에게 상속되는 것을 원칙적으로 배제하고 종신 과정에서 이를 사회적으로 환원하는 개념이다. 해당 사회가 가지고 있는 경제적 물적 기반과 잠재력을 효과적으로 운용하기 위해 개인의 일생 동안 사적 소유라는 동기를 부여하고 시장경제의 활력기제로 활용하되, 사적 소유의 기간을 개인의 일생으로 한정하고 사후에는 해당 사회의 소유로 환원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기부와는 차원을 크게 달리하는 것이다.

마치 성서의 유대사회에서 이야기 하듯이 50년이 지나면 대희년이라는 관행을 통해 개인적인 부채를 면제하면서 사회적 물적 기반의 조건을 모두에게 공정한 새로운 출발점으로 되돌리는 과정과 유사하며, 또한 조선 초기 실시했던 과전제처럼 당시의 물적 기반인 토지를 사대부가 관직에 있을 때 보수(녹봉)의 대가로 할당하여 수조권을 부여하되, 사후에는 다시 국가에서 환수하는 것과 같은 원리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사회적 상속이라는 사상의 역사적 흐름에는 유토피아를 그린 토마스 무어에서 출발하여, 자연에서 나오는 일체의 자원은 모든 사람들의 소유에 해당한다는 토마스 페인의 생각, 팔랑주라는 산업생산의 공동체적 원리를 통해 현대적 사회보장제와 기본소득 개념을 제시한 샤를 푸리에, 케인즈와 함께한 소그룹 연구모임 막내였던 제임즈 미드 교수의 사회배당과 노동지분 개념 및 이를 지지하며 재산소유적 민주주의를 주장한 존 롤즈를 거쳐, 현재 하버드 대학의 종신교수인 로베르토 웅거에 이르러 구체적이며 실천적인 형태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잠깐 로베르토 웅거 교수(1947생)를 소개하면, 브라질의 명문가 출신으로 하버드 법대에 진학에 29세에 종신 교수직을 획득한 전설적인 인물로 미국의 비판법학계를 이끄는 주역의 한 사람이다. 오바마의 지도 교수로 후보시절 자문역을 맡았으나, 이후 오바마의 행보에 실망하여 공개적으로 지지를 철회하기도 하였으며, 브리질 룰라 대통령 시절에 전략기획장관을 맡아 우리에게 잘 알려진 볼사-파밀리아(빈민가정 생계지원 제도) 정책을 기획하고 책임진 경력을 가지고 있다.

그는 사유재산권이라는 법적 제도는 합리적 논리나 사회적 필요에 의해서 구성되었다기 보다는 역사적 과정에서 다양한 이해 관계가 얽히고 정치척 투쟁이 진행되는 가운데 우연히 형성된 측면이 강하다고 판단하면서, 사유재산권은 서로 다른 성격의 다기한 권리들이 우연히 묶여 만들어진 일종의 다발이라고 파악한다. 권리의 다발로서 사유재산권을 획득, 소유, 사용, 배제, 이전 및 상속 등으로 다시 세분하여 각각의 성격을 분리하여 해석하고자 한다.

본 글의 주제인 증여와 상속이라는 항목에 대해, 이는 기득권 체계를 강화시키면서 변화와 미래를 향한 전진에 저항하는 장애물로 파악하면서, 타인증여와 가족상속 자체를 기본적으로 부정한다. 웅거의 구상에 따르면, 증여와 상속 자산을 사회적으로 귀속시키면서 이를 통상적인 국가 재정에서 분리하여 향후 세대를 위한 ‘사회상속계좌’로 전환하며 이를 위하여 가칭 ‘중앙투자기금’이라는 이름 설립하여 국민연기금처럼 운용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증여와 상속의 재산을 사회로 귀속시켜 형성된 ‘중앙투자기금’의 목적과 용도는 기득권 체계에 묶여 있는 물적 기반을 해방시켜 모든 시민들의 일상적 경제활동을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지원하는 시민 모두의 자산으로 재구성하여 활용하자는 것이다. 이때 ‘중앙투자기금’을 거점으로 시민경제적 원칙에 따라 전문적으로 자금의 배분역할을 진행할 전문적인 자산운용회사라는 중간단계를 거쳐 현장에서 일상적인 경제활동을 하는 행위주체들, 개인 단체 법인 조합 연구조직 등에게 재원을 투입함으로써, 산업과 경제 활동 영역 전체를 세대에 거쳐 점차적으로 혁신 과정을 통해 재구성하고 확장하여 나가는 것이 그의 전망이다.

현재 생존해 있는 웅거는 여전히 문제의 수많은 저작들을 현재까지 저술하고 있으며, 한국에는 건국대에서 법철학을 가르치는 이재승 교수가 ‘주체의 각성 The Self Awakened’ 과 ‘민주주의를 넘어 Democracy Realized’를 번역 소개하였고, 중국청화대 교수인 추이 츠이안이 웅거의 여러 저술을 재편집한 ‘정치 Politics –운명을 거스르는 이론’ 등이 소개되어 있다.

핵심은 증여와 상속에 대한 적용세율로 역시 위에서 언급한 서구의 골디락스 시대에 적용되었던 최고 세율 80-90% 수준에서 검토되는 것이 합리적이다. 당시의 세율의 수준은 부의 축적에 대한 기여도 평가를 통해 합리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비록 시장경제의 활력과 확장이라는 동기를 부여하기 위하여 개인이 자유롭게 부를 취득하고 점유하고 소비하는 것을 인정하되, 개인이 획득한 부의 배경에는 역사적 흐름과 문화적 환경적 사회적 정치적 조건이 자리잡고 있으며, 이러한 조건적 배경의 공헌도가 80-90% 이라면 개인의 몫은 10-20%라는 논리적 개념이 확고히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다행히 한국의 현재 증여상속 세제는 매우 현실적이고 합리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중산층의 경우 자녀에게 상속재산을 내리 물려주는 과정에 전혀 무리가 따르지 않는다. 다만 1% 이내의 부유한 계층에 한하여 현존의 세법에 더하여 예건데 100억 규모가 넘는 증여와 상속 재산에 한하여 80-90%의 추가적인 누진 과세만 보태면 된다.

또 하나 반드시 지적해야 하는 사항은 기업상속 공제제도의 허구적 논리이다. 대한항공 일가의 행태에서 보듯이 개인과 가문의 일방적이고 전횡적인 경영지배는 군사적 또는 개발독재 시대에나 가능하며 추격이 가능했던 구시대의 산업전략으로 유효했던 측면이 있으나, 지식과 혁신이 주도하는 사회에서는 오히려 큰 장애물이 된다. 미래에는 기업 종사자 모두의 자발적 참여와 적극적 협업과 창의적 사고를 필요로 하고 경영과 소유에 있어서도 집단적 성격을 요구할 것이다. 이는 경영학에서도 이미 입증된 사실로 명령적 수직적 구조에서 수평적 다양성을 인정하는 자율체계 DAO (Diversified Autonomous Organization)로 전환하는 것이 정답이다. .

따라서 기업상속을 위한 공제제도는 구시대적 사고이며 기존의 기득권 유지를 위하여 미래의 무한한 가능성을 포기하자는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유념할 것!). 당연히 전면 폐지되는 것이 합당하다. 다만, 현금과 포트폴리오 형태로 존재하는 상속과 증여 자산은 곧바로 과세의 시행이 가능한 반면, 개인적 소유의 고정자산은 일시적 처분이 어렵다는 현실을 감안하여 당사자 선택에 따라 일정 법정이자를 적용하면서 20-30 년간의 분할적 상환방식이라는 기술적 유예조치의 도입이 필요할 것이다.

기업상속의 공제라는 제도의 핑계 거리인 경영권의 지속성에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는 해당 기업에 대해서는 해당 부처나 기관 또는 합의된 시민기구에서 기준과 상황에 맞게 직접 개입하고 지원하는 것이 정답이다.

결론이다. 원칙적으로 사회적 상속으로 형성된 재원은 주로 기존의 물적 기반을 재구성하는 과정을 통하여 모든 시민들이 참여하는 가운데 산업적 생산기반의 지속 혁신 확장이라는 영역에 집중적으로 투입하고 활용되어야 하는 반면에, 전통적인 조세개혁을 통하여 확보한 재정은 국가 운용의 필요 경비와 사민주의적 관점에 기반한 사회안전망과 복지재원에 주로 사용해야 한다.

전통적 조세의 개혁을 통한 재정을 형성하든, 사회적 상속제를 통해 재원을 확보하든, 인류가 현단계까지 형성해온 물적 기반과 조건을, 신자유주의에 의해 반인륜적으로 작동하는 기득권적 구질서로부터 탈구시켜, 인간의 존엄과 가치 그리고 사회적 공동선과 자유 조건의 영역적 확대를 재구성하여야 하며 지속적인 확장을 위해 혁신 기제가 일상적으로 작동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다음 장에서는 사회적 혁신 기제에 대해서 살펴 보고자 한다.

 

추신: 본 글이 완성된 즈음해서 마침 다른백년 이사인 서강대 김종철교수가 번뜩이는 통찰력을 담아내어 ‘금융과 회사의 본질’이라는 저서를 발간했는데, 내용 중 필자와는 다른 시각과 접근을 통해 개별화된 ‘사회적 상속’을 제안하고 있다. 향후 논쟁과 상합을 통하여 보다 발전된 내용물을 기대하여 본다.

목, 2019/03/14-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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