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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격자들]꼰대와 콘크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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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격자들]꼰대와 콘크리트

익명 (미확인) | 화, 2016/01/19- 09:59

캐나다 쥐스탱 트뤼도 총리, 영국 토니 블레어 전 총리와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 스웨덴 구스타프 프리돌린 교육부 장관, 이들의 공통점은? 어린 나이부터 정치를 시작해 3,40대에 총리와 장관으로 활동했다는 것이다. 영국 하원의원의 평균 연령은 45세 정도라도 한다.

우리의 경우는 어떨까? 2012년을 기준으로 19대 국회의원 300명 중 60대 이상은 69명, 50대는 142명으로 5, 60대 이상인 국회의원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 30대 국회의원은 5명. 20대 국회의원은 한 명도 없다. 국회에서 20, 30대 젊은 층을 대변할 수 있는 같은 연령대의 의원들이 없거나 매우 적은 셈이다.

▲ 더불어민주당 전국청년위원회 부위원장 이동학 씨. 올해 35살인 이 씨는 지난해 4월 당내 청년위원장 선거에 출마했다가 주위 선배들로부터“벌써부터 청년위원장 선거에 출마하느냐”는 핀잔을 들었다고 한다.

▲ 더불어민주당 전국청년위원회 부위원장 이동학 씨. 올해 35살인 이 씨는 지난해 4월 당내 청년위원장 선거에 출마했다가 주위 선배들로부터“벌써부터 청년위원장 선거에 출마하느냐”는 핀잔을 들었다고 한다.

▲ 2015년 12월, 새누리당 청년혁신위의 주최로 청년 문제에 대한 정책점검회가 열렸다. 지난 일 년 동안 준비해 온 청년문제 해결 방안을 당내 선배들과 전문가들에게 점검받은 자리였다. 그러나 설익은 아이디어라는 혹평을 받아야 했다.

▲ 2015년 12월, 새누리당 청년혁신위의 주최로 청년 문제에 대한 정책점검회가 열렸다. 지난 일 년 동안 준비해 온 청년문제 해결 방안을 당내 선배들과 전문가들에게 점검받은 자리였다. 그러나 설익은 아이디어라는 혹평을 받아야 했다.

젊은 정치인이 국회에 극소수인 이유는 무엇일까? 뉴스타파 목격자들 제작진은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 등 기성정당에서 청년 당원으로 활동하는 이들을 만나봤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체계적이지 않은 당내 인재 양성 시스템과 청년 당원을 ‘어린애’ 취급하는 관행을 지적했다. 경륜을 앞세워 경험이 없다는 이유로 무시하는 ‘꼰대’의 ‘콘크리트 벽’이 굳게 존재한다는 것이다. 청년 당원들은 선거 때만 잠시 동원되는 ‘대상화’에 그친다는 것이다. 이번 4.13 국회의원 선거에서 과연 달라질 수 있을까?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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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선6기 목민관클럽 제12차 정기포럼이 2016년 3월 24일~25일 1박 2일 동안 광주 남구에서 열렸다. 이번 포럼의 주제는 ‘청년’으로, 25명의 단체장과 150여 명의 관계 공무원들이 청년문제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 지혜를 모았다.

 

문화수도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청년문제를 고민하기에 앞서 참가자들은 국립아시아문화전당으로 향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2004년부터 건립이 추진되었고, 지난 2015년 11월 25일 정식 개관한 곳이다. 연면적 16만1237㎡(약 4만 평) 규모로 아시아 문화예술기관 중 최대를 자랑하며, 국립중앙박물관보다 약 1.2배 크다. 총 7030억 원이 투입됐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5・18 민주항쟁의 중심지였던 구 전남도청 자리에 세워졌다. 민주・평화・인권에 관한 역사적 장소를 보전하고 그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옛 전남도청 건물을 살리면서 90%이상의 시설은 지하에 건설되었다. 하지만 중앙을 넓게 파내어 광장을 만들고 그 주변에 건물을 배치했기 때문에 지하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중앙광장에 해당하는 아시아문화광장에 서면, 옛 전남도청사 건물을 리모델링한 민주평화교류원을 시작으로 어린이문화원, 문화정보원, 문화창조원, 예술극장 등 크게 5개의 시설이 자연스럽게 관람객을 감싼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아시아 문화 교류와, 문화자원 수집・연구, 콘텐츠의 창・제작, 전시, 공연, 아카이브, 유통이 한 곳에서 모두 이루어지는 세계적인 복합문화기관이다. 대한민국을 넘어 아시아 문화 수도를 꿈꾸는 광주의 꿈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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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문화 연구와 전시, 공연 공간

이후 들른 문화정보원은 아시아 문화 관련 자료를 수집, 전시하고 연구를 수행하는 공간이다. 문화정보원에는 라이브러리파크와 특별기획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건립 아카이브 등을 볼 수 있다. 특히 라이브러리파크는 전시관람과 체험 등을 하나로 묶은 새로운 형태의 문화 공간이다. 도서관, 박물관, 갤러리, 극장 등의 역할을 모두 담당한다. 라이브러리파크는 아시아를 주제로 전시역사, 비디오아트, 실험영화, 사진, 퍼포먼스아트, 공연예술, 소리와 음악, 디자인, 근현대건축, 이주, 도시, 전자상가, 크리에이터 등 13개의 주제 전문관을 운영 중이다. 다양하게 수집된 아시아 문화자료들은 문화예술인들의 창작 활동을 돕고, 국제유통 관계망을 통해 창작 콘텐츠들이 아시아와 세계로 진출할 수 있도록 장을 마련한다.

포럼 참가자들은 방선규 전당장의 안내로 몇 곳을 둘러보았는데, 동대문 디자인플라자 외벽 마감재로 사용된 파사드가 눈에 띈다. 옛 노래나 광고사진들을 모아 놓은 곳, 아시아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공간도 보인다. 앞으로 아시아 각 국가별 기획전시를 통해 문화예술 창작활동을 지원할 계획이란다. 더 넓은 공간에 펼쳐진 자료들은 문화예술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새로운 창작의 모티브를 얻을 수 있을 듯 하고, 일반인들에게도 우리의 이웃, 아시아 국가들의 문화들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듯하다.

새로움 잉태하는 문화 인큐베이터

다음으로 들른 곳은 문화창조원이다. 이곳은 창·제작 센터와 복합전시관을 갖춘 문화 창조의 산실이다. 문화·예술가들이 새롭고 실험적인 작품을 기획하고 만들 수 있도록 창·제작 센터에는 디지털 에이브이(AV), 기계조형 등 첨단장비와 시설을 갖춘 총 4천㎡ 면적의 스튜디오, 융·복합 콘텐츠 기획과 문화기술(CT)이 접목 가능한 연구·개발(R&D) 실험실 5개가 마련돼 있다. 전시관 6개가 있는 복합전시관은 축구장 1.3배 규모(9,352㎡)로 창·제작 센터에서 만들어진 작품이 전시된다고 한다.
복합1관에 들어서니 온몸에 전해지는 강한 전자음과 함께 바닥에는 거대한 계단무늬 패턴이 어지럽게 흘러간다. 참가자들은 신발을 벗고 패턴 위를 걸어 볼 수 있는데,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란다.
정신없이 어디론가 흘러가는 우리의 자화상을 보여주는 듯한 료지 이케다의 ‘테스트 패턴’을 빠져나와 복합2관으로 들어선다. 복합2관에서는 최근 문화전당 레지던시에서 제작된 작품으로 구성된 특별 전시 ‘플라스틱 신화들’이 진행된다. 3층의 톱니바퀴 모양 구조물에 마련된 방 30곳에는 아시아의 과거, 현재, 미래, 신화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 전시돼 있다. 팔만대장경의 목판을 플라스틱판에 새기는 로봇 팔 ‘피타카’의 판각 퍼포먼스와 독일 훔볼트 박물관에 소장 중인 캄보디아의 유물을 3D 스캔해 프린팅한 오브제 등 실험적인 작품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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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문화원 옥상에 올라 문화전당을 바라보니 넓은 공원이 펼쳐져 있다. 건물을 지하에 설치한 대신에 옥상은 시민들이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으로 꾸민 것이다. 지하 건물에는 자연광을 비추기 위해 만들어진 채광정이 있다. 야간에는 역으로 빛을 내뿜어 또 다른 야경을 선사한다니 기회가 되면 꼭 다시 보고 싶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정식개관한지 4개월 남짓 된 공간이라 아직 곳곳이 비어 있다. 짧은 기간에도 불구하고 아시아문화전당에서 잉태된 작품들은 호평을 받고 세계 곳곳에서 전시요청이 들어오고 있다고 한다. 아시아문화의 창작공간으로 자리매김하겠다는 전략과 비전을 이루길 기대한다.

근대역사문화의 본고장, 광주 양림동

근대문화거리하면 대구 중구 근대골목투어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이와 쌍벽을 이루는 곳이 있으니 바로 광주 양림동이다. 버드나무가 많은 곳이어서 양림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 동네는 처마선이 고운 전통한옥과 이국적인 서양식 벽돌집이 공존한다. 목민관포럼 참가자들은 이틀째 현장방문 일정으로 100년 넘은 근대문화 유산을 간직한 양림동으로 시간여행을 떠났다.

웃음이 묻어나는 펭권마을

먼저 양림동 주민센터 바로 뒤편에 위치한 펭귄마을이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니 예사롭지가 않다. 담벼락엔 아기자기한 작품들과 벽시계를 비롯한 20~30년 된 온갖 잡동사니들이 걸려 있다. 골목길을 빼곡히 채우고 있는 벽화 등의 작품들 대부분은 주민들이 직접 만들었다고 한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펭귄시계점이다. 오래된 고장 난 벽시계부터 손목시계, 양은냄비 등 각종 잡동사니들을 모아 놓으니 그럴듯한 작품이 되었다. 펭귄마을이 탄생한 건 마을 촌장인 김동균씨의 아이디어란다. 허름한 집들이 많은 탓에 빈집들이 생기고 쓰레기가 쌓이기 시작했다. 주민들이 합심해 쓰레기를 치우고 나니 빈 공간을 가꿔보자는 의견이 나왔고, 그렇게 펭권 텃밭이 만들어졌다. 이를 계기로 골목골목에 작품들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펭귄마을이라는 이름은 다리가 불편한 마을주민들이 걷는 뒷모습에서 펭귄이 떠올라 이름 붙였다고 한다. 골목 곳곳엔 ‘유행 따라 살지 말고 형편 따라 살자’, ‘술과 밤이 있는 한 남녀 사이는 친구가 될 수 없다’ 등 재치있는 글귀들이 방문객에게 웃음을 선사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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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2년 한미통상조약 체결이후 이 땅에 선교사들이 몰려들었는데, 그 중 한 곳이 양림동이다. 당시 양림동 뒷산은 몹쓸 병에 걸려 죽은 사람의 시신을 내다버리는 풍장 터였다. 모두들 외면하던 그 땅에 선교사들이 자리를 잡은 것이다. 선교사들은 사재를 털고 본국에서 후원을 받아 학교를 짓고 병원을 세웠다. 그러자 배고프고 몸이 아픈 이들이 몰려들었다. 그렇게 양림동은 ‘서양촌’이라 불리며 광주의 근대문화의 전환점이 되었다.

선교사와 근대문화의 흔적

현재 양림동에는 ‘양림교회’라는 이름의 교회가 3개나 된다. 교단이 분리되며 생긴 일이다. 기장, 통합, 합동 혹은 언덕 위, 정원, 계단 교회 등 수식어를 붙여야 한다고. 그 가운데 통합양림교회 옆에 있는 오웬기념관을 들렀다. 오웬은 선교와 의료봉사에 헌신하다 1909년에 급성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오웬과 그가 존경했던 할아버지를 함께 기념하기 위해 올린 건물이라고 한다. 1914년에 지어진 이 건물은 교회 행사는 물론 크고 작은 강연회와 음악회, 영화, 연극, 무용 등의 공연을 벌이며 근대 광주의 신문화 보급소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마을의 가장 높은 언덕엔 윌슨(한국명 우일선) 사택이 있다. 윌슨 선교사가 고아와 환자들과 함께 머물고자 지은 집이다. 광주에 있는 가장 오래된 서양주택이다. 그는 당시 사람들이 꺼려하던 한센병 환자들 치료에 정성을 다했다고 한다. 그 집으로는 좁아서 1912년 광주한센병원을 지었고 전국에서 환자들이 몰려들자 나중엔 여수에 애양원까지 개척하게 되었다. 윌슨 사택은 현재 인근 호남신학대학교에서 기도처로 이용되고 있다. 사택 주변엔 100년 가까인 된 피칸나무와 흑호도나무들이 여럿 보이는데, 당시 어린 아이들의 영양상태가 좋지 않아 선교사들이 미국에서 옮겨와 심은 나무라고 한다. 인근엔 400년 된 호랑가시나무가 있는데, 가시달린 초록잎에 빨간 열매가 열린 모습이 가시면류관을 쓰고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닮았다 하여 선교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윌슨 사택과 수령 400년 된 호랑가시나무를 지나니 선교사 유진벨이 세운 수피아여학교가 나온다. 유진벨은 1907년 선교부 직원의 자녀들을 가르치다 다음해 남학생을 위한 숭일학교와 여학생을 위한 수피아여학교를 세웠다. 교정엔 3・1운동 기념 동상이 서 있는데, 동상 밑에는 3・1운동 당시 옥고를 치른 23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태극기를 들고 시위 군중의 맨 앞에 서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다 일본군의 칼에 왼팔이 잘리자 오른손으로 태극기를 들고 흔들었다던 윤형숙의 이름이 윤혈여로 기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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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의 멋과 예향의 고장

양림동엔 전통 한옥은 아니지만 근대에 지어진 한옥이 여러 채 자리 잡고 있다. 이장우 가옥과 최승효 가옥이 대표적이다. 그 중 이장우 가옥에 들렀다. 1899년에 건축된 이장우 가옥은 당시에는 보기 힘든 솟을대문까지 갖춘 부잣집이다. 당시 상류층 살림살이를 엿볼 수 있다. 전통 한옥과 달리 마루에 유리문을 덧대 한기를 막았고, 일자형이 일반적인 남부지방 건축양식과 달리 ㄱ자 형태다.
전통 한옥마을을 둘러보는 사이 사람의 신명을 두드리는 소리로 창조한다는 ‘얼쑤’팀의 타악 공연이 한바탕 펼쳐진다. 전통악기를 현대적 의미로 놀이와 연주로 재해석하는 ‘얼쑤’팀의 공연은 전통 한옥과 묘하게 어울린다.
양림동엔 전통한옥뿐만 아니라 쓰러져 가던 한옥을 리모델링하여 전시공간으로 탈바꿈한 한희원 갤러리도 있다. 공사장에서 발판으로 쓰였던 철재다리를 재활용한 대문이 인상적이다. 갤러리는 카페처럼 꾸며 놓았는데, 한옥이 전시공간으로 참 잘 어울린다는 느낌이 든다.

펭권마을부터 선교 유적지, 전통한옥과 한옥 갤러리까지 양림동을 한 바퀴 돌고나니, 마음 한곳이 따스하게 다가온다. 100년 전 광주 근대문화의 출발점이 되었던 양림동의 근대문화유산들은 박물관에 박제된 채 남겨진 공간이 아니라 현대인의 삶속에 적절히 녹아 있다는 느낌이다. 바쁘게 흘러가는 현대의 삶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100년 전 시간 여행을 통해 오늘의 모습을 비춰보는 공간으로 양림동을 추천하고 싶다.

글 : 송정복 | 목민관클럽팀 선임연구원 · [email protected]

* 참고자료.
“새해맞이 문화 나들이를 떠나볼까?”, 『문화포털』, 2016.1.8.
“광주에 열린 새로운 문화의 광장”, 『한국관광공사 블로그』, 2015.11.26
“광주 양림동 골목길에 살아 숨쉬는 ‘근대 100년’”, 『한국일보』, 2016.3.9.

화, 2016/04/19-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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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비례대표 10번 김종석 교수(홍익대 경영학과)가 10대 초 중반 시절, 경기도 용인과 충남 아산 일대 농지와 임야를 위장 전입을 통해 매입한 사실이 뉴스타파 취재 결과 확인됐다. 김 교수는 부친이 자신의 이름으로 땅을 사주는 과정에서 일어난 것이라며 자신은 몰랐다고 해명했다. 또 조만간 문제의 땅을 모두 처분하겠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1967년에서 1972년 사이에 경기도 용인과 충남 아산 일대의 논과 밭, 임야 약 10만㎡를 사들였다. 총 6필지 중 4필지를 살 때 주소지를 해당 농지 근처로 해놨다. 당시 김 교수의 나이는 10대 초 중반으로, 실제로는 서울에 거주하며 경기 중학교와 경기고를 다니고 있었다. 김 교수가 농지 매입 당시 주소를 실제 거주지인 서울 용산구가 아닌 농지 인근 옮긴 것은 위장전입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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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석 교수가 1972년 농지 매입 당시 기재한 주소지. 주소지를 용인군 이동면 천리로 해놨다. 위장전입에 해당한다.

▲ 김종석 교수가 1972년 농지 매입 당시 기재한 주소지. 주소지를 용인군 이동면 천리로 해놨다. 위장전입에 해당한다.

 

경기도 용인의 해당 주소지를 찾아가 만난 실거주 주민은 한 곳에서 수십년 째 살고 있지만 김종석 교수를 전혀 모른다고 말했다. 마을에서 평생을 살아온 이장 역시 김종석 교수를 모른다며, 해당 주소지에 그가 실제 거주했을 가능성은 없다고 말했다.

김 교수가 위장전입을 통해 사들인 땅은 공시지가가 발표된 1990년부터 따져볼 때 적게는 2배, 많게는 7배까지 올랐다. 경제력이 없는 10대에 매입한 10만㎡의 땅은 김 교수의 아버지가 사준 것으로 파악된다. 김 교수의 아버지는 검사 출신으로 1960년대 대검 수사국장을 지냈고, 유신 시절이던 1970년대 유정회 의원 2번 등 3선 의원을 지냈다.

3선 국회의원이던 아버지로부터 형제들과 함께 토지 25만㎡ 상속

김 교수는 2014년 아버지로부터 땅을 상속 받았다. 경기도 용인과 충남 아산 일대의 논과 밭, 임야 약 25만㎡를 동생 3명과 함께 물려 받았다.

김 교수가 이번 총선에서 선관위에 신고한 재산은 모두 30억 6천 6백만 원이다. 이 가운데 어릴 때 아버지가 대신 사주거나 후에 상속 받은 부동산의 신고 가액은 약 9억 2백만 원이었다. 결국 김 교수 재산의 ⅓ 가량이 아버지로부터 직접 이어져 있는 셈이다.

취재진은 김 교수가 연구원장으로 재직 중인 새누리당 여의도연구원에서 그를 만났다. 김 교수는 영상 인터뷰는 거절했고, 카메라 없이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는 “아버지가 자신의 명의로 땅을 사는 과정에서 위장 전입을 한 것으로 보인다”며 자신은 당시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제의 땅은 조만간 모두 처분하겠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3월 초 새누리당 공약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기회의 공정성을 강조하며 흙수저와 금수저를 없애겠다”고 말한 바 있다.

김종석 교수는 경기중, 경기고, 서울대를 졸업하고 미국 프린스턴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또 1991년부터 홍익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7년 전경련 산하 한국 국경제연구원장, 2015년에는 새누리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장을 맡고 있는 등 친 기업 성향을 대변해온 보수 경제학자다. 이번 20 총선에서 김 교수는 안정권인 새누리당 비례대표 10번으로 선정돼 아버지에 이어, 2세 정치인의 길을 걷게 될 것으로 보인다.


 

취재 : 박경현
촬영 : 정형민
편집 : 박서영

목, 2016/03/31-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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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지역구의 국회의원이 누구인지 기억하시나요? 좋아하는 정치인이 있으신가요? 혹시 원래 정치인은 나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시지는 않나요? 정치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낮고, 정치 생산성도 바닥이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또 많은 분들이 정치가 바뀌어야 세상이 바뀔 것이라는데 동의하십니다. 정치가 바뀌려면, 좋은 국회의원이 필요하겠지요. 누가 그런 사람일까요? 희망제작소는 시민 여러분과 함께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직접 찾아보기 위해 ‘누가 좋은 국회의원인가? 시민 100인이 함께하는 노란테이블 시즌2’를 열었습니다.

10월 24일 ‘대의민주주의와 좋은 대표’를 주제로 사전 공개세미나를 진행했습니다. 참가자 중에는 정치나 사회 문제 관련 토론회에 처음 참석해보셨다는 분들이 절반이나 됐습니다. 좋은 대표, 좋은 정치를 바라는 서로의 생각과 마음을 확인하고 인사를 나눴습니다. 2주 뒤인 11월 7일, 70여 명이 다시 모여 한국 정치의 문제를 논의하고, 좋은 국회의원의 조건에 대해 뜨겁게 토론했습니다. 10대부터 70대까지, 서울, 대구, 부산, 여수, 원주 등 전국 각지에서 모인 토론자들과 나눈 이야기를 정리했습니다.

▲10월24일 사전 세미나 모습

▲10월24일 사전 세미나 모습

발견하기
시민토론회에서는 먼저 무엇이 현재 정치, 정치인들이 문제인지를 확인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참가자들은 한국 정치의 가장 큰 문제로 소통부족, 지역주의라는 키워드를 꼽았습니다. 그 다음으로 ‘가진 자들의 국회의원, 계파정치, 흑백논리, 비전문성, 진영논리’를 선택한 분이 많았습니다. 소통부족이라는 키워드로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습니다. 국회의원들이 국민의 대변인으로서 국민들의 의견에 귀 기울이지 않고, 공공선이나 장기적인 비전을 추구하기보다는 근시안적으로 정책을 추진하거나 자신의 재선이나 사익 추구에만 몰두하고, 특권 의식에 젖어 있다는 비판이 이어졌습니다. 한국 정치의 여러 문제가 정치인들의 국민과의 소통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문제의식에 공감대가 형성된 것 같았습니다.

지역주의가 문제라고 꼽은 한 20대 남성 참가자는, “(고향에서) 어르신들의 특정 정당에 대한 지지가 너무 완고하다. 그 당이라면 지역에서 당선되기는 아주 쉬워서 해당 당 의원들에게 좋은 동기부여가 되지 못한다. 그러다보니 정치인들이 이상적으로는 국민을 위해 정치하는 것이 제1목적이 되어야 하는데 자신의 권력유지나 기득권 유지가 제1의 목적”인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40대 남성 참가자는 “투표소 가면 형님아우 하면서. 그런 지역주의가 문제다…어디서는 깃발만 꽂아도 된다. 그러다보니까 부정부패가 심각하다”고 지적했습니다.

▲문제발견 키워드를 이용해 토론하는 모습

▲문제발견 키워드를 이용해 토론하는 모습

논의하기
사실 어떤 키워드 하나를 고를 수 없을 많은 문제가 아닌 것이 없다고 혹독하게 평가하신 참가자분들도 있으셨지요. 어느 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비판, 정치권에서 새겨들어야 할텐데 말입니다. 이렇게 시민들이 직접 모여 우리 정치의 문제점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좋은 정치를 이야기하는 것이 변화의 시작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어서 이번 토론회의 주요 문제인 ‘좋은 국회의원’의 조건이 무엇인지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참가자들이 재미있게, 구체적으로 논의해볼 수 있도록 모의 국회의원 투표를 진행해봤습니다. 여러분도 한번 투표 해보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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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민주화 실현과 민생안정을 강조한 1번 후보(1959년생, 남성), 현역 3선 의원으로 지역개발 예산 확보에 앞장서왔고, 지역 개발 공약을 앞세운 2번 후보(1949년생, 남성), 사회적경제, 소상공인 지원을 강조한 3번 후보(1977년생, 여성). 검사출신으로 정치개혁을 강조한 무소속 4번 후보(1974년생, 남성)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후보를 지지하시겠습니까? 그 후보를 선택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모의투표
토론회 현장에서는 30대 여성으로 사회적 경제 정책을 내건 3번 후보가 가장 많은 표(25표)를 받았습니다. 경제민주화를 강조한 1번 후보가 2위였고(21표), 무소속의 4번 후보가 3위를 차지했습니다(16표). 현역 3선 의원인 2번 후보가 가장 적은 표(7표)를 받았지요.

여기서 몇 번 후보가 가장 많은 표를 얻었다는 것보다 중요한 건, 투표의 이유를 이야기해보는 과정이었습니다. 내가 선택한 후보가 어떤 면에서 ‘좋은 국회의원’인지 이야기하고, 테이블별로 좋은 국회의원의 조건을 모아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참가자분들이 가장 많이 선택한 키워드는 다양성이었습니다. 진정성, 정당일체감, 성별(균형, 다양성), 정치소신, 국가발전도 많은 선택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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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 후보는 무엇보다 ‘다양성’과 ‘소통 능력’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습니다. 다른 후보들이 이미 국회에 있을 법한 인물들이라면, 3번 후보는 여성, 사회적 경제와 같은 새로운 가치의 제시, 소수 정당의 후보라는 점에서 다양성을 실현하는 정치인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의견이었습니다. 한 20대 남성 참가자는 3번 후보를 지지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제가 20대라 그런지, 젊은 정치인에게 끌리네요. 3번을 뽑았고요, ‘헬조선’이라는 말을 쓰는 걸 보니 다른 후보들에 비해 젊은 세대의 마음을 좀 읽고 있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취업도 잘 안되고 7포 세대라는 말이 나올 만큼 기본적인 욕구 충족조차 쉽지 않은 세상이죠. 그래서 조선에다 헬을 붙여서 생겨난 신조어가 ‘헬조선’이에요. 현재 청년들은 패배감에 젖어있어요. 그들을 보듬어주고 그러는 것이 국가경쟁력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좋은 국회의원의 조건으로 소신, 실천력, 진정성 등의 키워드를 선택한 분들 중에 1번 후보를 선택한 분들이 많았습니다. 1번 후보는 노동자 출신으로 경제민주화 정책을 강조했는데요. 경력과 정책의 일관성이 돋보이고 이 점에서 진정성, 실천력이 높을 것이라는 긍정적 평가가 나왔습니다. 노동자, 상고 출신, 유일한 군필자라는 점에서 다양성을 가진 후보라는 의견도 있었지요. 반면 여당 후보임을 강조하며 자신의 인맥을 과시한 것, 국회의원 개인이 실현하기 어려운 공약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부정적이라는 의견도 이었습니다.

4번 후보를 지지한 참가자들은 1번 후보의 지지자들과는 조금 다른 의미에서 정치소신과 도덕성을 중요하다고 이야기하셨습니다. 한 참가자는 “양당구도, 아니면 지역 구도를 깨 갰다는 소신을 가진 정치인이 있다면 이 문제가 좋아질 수 있을 것 같다. 수직적 정당 구조 깨 갰다는 쓴 소리 내는 정치 소신 있는 정치인이 있다면 극복이 가능할 것 같다. 요즘 정치, 소신 없는 정치가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또 다른 분은 “여당 대표, 재벌 총수 구속 했다는데, 정권이나 정당 눈치안보고 자기 소신껏 할 수 있는 사람이 편견이 없는 사람이다. 재벌 총수 구속하고, 정치 개혁했기 때문에 이 사람은 절대 출세 못한다. 자기 옷을 벗을 수도 있지만, 그런 걸 각오하고 부정을 제거하기 위해서 노력한 이런 소신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눈치 보지 않고 정치개혁을 하다가 탈당했을 것이라는 긍정적 평가와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나왔기 때문에 뽑지 않는 다는 반대 의견도 나왔습니다.

2번 후보가 가장 적은 표를 받았는데요. 행정가 출신의 3선 의원이며, 지역구 의원으로서 지역 정책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많은 분들이 그의 실천력을 높게 평가했지만, 세대교체가 필요할 것 같다는 의견을 말씀해주셨습니다. 지역구 의원이 지역구를 챙기는 것은 당연하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국회의원이 국가적 차원의 정책에 집중해야 한다는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게 나왔습니다.

좋은 국회의원의 기준 논의하기
가상후보에 대한 참가자들의 평가는 매우 다양했지만, 어느 후보를 지지했든 공통적으로 나온 의견은 좀 더 다양한 국민의 목소리를 수용할 수 있는 다양성과 소통능력을 가진 사람, 국회의원으로서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진정성과 정치소신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어떤 한 사람의 후보가 이 모든 조건을 갖고 있기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각 정당에서는 시민들이 바라는 이런 가치를 수용하고, 후보 공천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각 테이블에서 토론과 합의를 통해 모아진 이상적인 국회의원 후보의 특징은 30대 후반의 여성으로 엄마와 주부로서 생활의 문제를 잘 알고, 시민운동을 통해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해 활동해온 인물이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지역주의 중심의 정당구조, 국민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는 국회를 바꾸기 위해서 사람보다 제도를 바꾸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제도 변화 역시 중요한 문제입니다. 좋은 국회의원은 ‘올바른 시스템을 만들 사람’이라고 답한 10대 참가자의 말입니다. “정치를 바꾸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건 사람이기도 하지만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시스템을 바꾸기 위해서는 사람이 바뀌어야 한다. 그렇다면 자기 기득권을 내려놓을 수도 있고, 지금보다 더 나은 시스템이 뭔지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이 국회의원이 되어야 한다.”

▲ 시민토론회에 참가자들

▲ 시민토론회 참가자들

10대 참가자의 발언처럼, 국회를 개혁하려면 좋은 국회의원이 필요합니다. 지금 정치권의 논의대로라면 내년에 구성되는 20대 국회라고 크게 달라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희망제작소가 시민들과 함께 좋은 대표가 누구인지 토론해보는 자리를 연 이유입니다. 시민들이 직접 좋은 국회의원 좋은 정치의 모델을 제시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좋은 정치인, 좋은 정치에 대한 생각은 매우 다양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가요? 더 많은 시민 여러분들과 함께 누가 좋은 국회의원인지 토론하고, 희망찬 변화를 상상할 수 있길 기대해봅니다.

글_황현숙(연구조정실 위촉연구원 / [email protected])

월, 2015/11/23-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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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6일, 인권운동가 박래군이 구속됐다. 세월호 참사 1주기 집회 등을 불법 주도했다는 혐의였다. 구속 당시 그는 4.16연대 상임운영위원을 맡고 있었다. 그는 25년째 인권운동을 해오고 있다.

밀양 송전탑, 평택 대추리, 용산 참사, 쌍용차 농성, 강정 해군기지, 세월호 참사 등 대한민국의 굵직한 사회문제부터 장애인, 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들이 있는 현장에는 늘 그가 있었다. 그가 25년 째 인권운동을 펼쳐왔던 원동력은 뭘까

▲ 대추리 황새울평화기념관에 있는 2006. 3. 6 촬영된 사진, 당시 박래군은 ‘대추 초등학교에 대한 경찰의 행정대집행 시도에 맞서고 있었다.

▲ 대추리 황새울평화기념관에 있는 2006. 3. 6 촬영된 사진, 당시 박래군은 ‘대추 초등학교에 대한 경찰의 행정대집행 시도에 맞서고 있었다.

지금까지 박래군은 4번 구속됐다. 2006년 평택 대추리에서 2번, 2009년 용산 참사 현장에서 1번, 그리고 올해 세월호참사 1주기 추모집회에서다.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말한다. “박래군을 가둔다고 해서 인권을 가둘 수 없다”고. 그리고 박래군은 한국 인권운동의 상징과도 같다고 말한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그를 ‘종북 좌파 운동권’이라고 비난한다. 그동안 박래군과 인연을 맺었던 이들로부터 그의 삶을 들어봤다.

이번 <사람 곁에 사람, 박래군>의 내레이션은 가수 요조가 맡았다.


글 구성 김근라
연출 박정남, 권오정

월, 2015/08/10-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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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20대 총선에 나선 정당은 모두 몇 개일까? 모두 21개였다. 유권자 가운데 정확히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고, 정당 이름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다. 아래 그래프는 민언련이 총선 동안 주요 언론들의 각 정당별 보도양을 분석한 것이다. 기성 언론들은 주로 거대 정당에만 관심을 뒀다.

▲ 3월 25일부터 4월 2일 사이 민언련이 분석한 주요언론(신문6개, 지상파3개, 종편4개)의 정당별 보도량, 새누리당이 압도적이다. 원내 정당인 정의당 조차 2.%대에 머물렀고, 녹색당은 0.2%였다.

▲ 3월 25일부터 4월 2일 사이 민언련이 분석한 주요언론(신문6개, 지상파3개, 종편4개)의 정당별 보도량, 새누리당이 압도적이다. 원내 정당인 정의당 조차 2.%대에 머물렀고, 녹색당은 0.2%였다.

기성 언론들이 거대 정당에만 관심을 두는 사이, 뉴스타파 <목격자들>은 기성언론이 주목하지 않은 정당의 후보들, 그 중에서도 청년 후보 2명과 이번 총선을 같이했다. 노동당 비례대표 1번 용혜인(25살) 씨와 경기도 수원을에 민중연합당 후보로 출마한 박승하(33살) 씨다.

▲ 지역을 돌며 선거운동을 하는 박승하 씨, 이번 총선 동안 하루 평균 300명을 만났다고 한다. 승하 씨가 속한 민중연합당은 올해 2월 창당한 연합정당이다

▲ 지역을 돌며 선거운동을 하는 박승하 씨, 이번 총선 동안 하루 평균 300명을 만났다고 한다. 승하 씨가 속한 민중연합당은 올해 2월 창당한 연합정당이다

 

▲ 노동당 비례대표 1번으로 나온 용혜인 씨, 25살로 최연소 비례 후보였다. 노동당은 진보신당의 후신이다.

▲ 노동당 비례대표 1번으로 나온 용혜인 씨, 25살로 최연소 비례 후보였다. 노동당은 진보신당의 후신이다.

승하 씨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지금까지 16년 동안 알바와 비정규직을 해왔다. 스스로 ‘흙수저’를 자칭한다. 기성 정치가 대변하지 못하는 사람들, 가난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위해 총선에 나섰다고 한다. 승하 씨의 선거 전략은 대화다. 총선 동안 하루 평균 300명을 만났다고 한다. 그러나 낯선 정치인 승하 씨를 바라보는 유권자들의 반응은 그리 신통치 않았다.

▲ 박승하 씨는 선관위의 양해를 얻어 고가도로 밑에 천막을 설치해 선거운동기간 임시 사무소로 사용했다.

▲ 박승하 씨는 선관위의 양해를 얻어 고가도로 밑에 천막을 설치해 선거운동기간 임시 사무소로 사용했다.

승하 씨는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에 15평 남짓 다세대 주택에서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보증금 800만 원에 월세 40만 원이다. 어머니는 횟집에서 주방 일을 한다. 승하 씨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사업이 실패하면서 생활이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승하 씨는 고등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학비와 생활비를 보태기 위해 알바와 비정규직 일을 해왔다. 공사장, 대형마트, 주유소, 식당, 산림청 간벌 작업까지. 그의 명함 뒷면에는 16년 동안 어디에서 얼마를 받고 일했는지, 이력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 승하 씨의 후보 공식 명함 뒷면, 지금까지 일했던 알바와 비정규직 일자리가 빼곡하다.

▲ 승하 씨의 후보 공식 명함 뒷면, 지금까지 일했던 알바와 비정규직 일자리가 빼곡하다.

승하 씨의 어머니는 아들의 총선 출마가 마뜩치 않았다고 말했다. 아들의 출마가 무모해 보였고, 가진 것도 없이 거대한 기성 정치의 벽에 도전하며 몸부림 치는 모습이 안쓰러워 차마 볼 수 없었다고 했다. 어머니는 선거 운동 초기에는 아들의 선거 운동을 일부러 외면했고, 선거 사무소에도 들르지 않았다. 그런데 선거 중반 이후 아들과 함께 선거운동을 시작했다. 난생 처음 선거운동이었다. 명함을 건네는 어머니의 모습이 몹시 어색했다. 어머니는 아들이 제발 무사히 선거를 마쳤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했다.

▲ 승하 씨의 어머니가 거리에서 유권자들에게 아들의 명함을 건네고 있다.

▲ 승하 씨의 어머니가 거리에서 유권자들에게 아들의 명함을 건네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 최연소 후보인 혜인 씨는 2년 전 세월호 참사 당시 ‘가만히 있으라’는 침묵 시위를 제안했다. 세월호 참사는 혜인 씨가 정치에 뛰어들게 한 시발점이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은 ‘총선 후보’인 혜인 씨가 가장 해결하고 싶은 현안이다. 혜인씨는 SNS를 중심으로 소통하며 선거운동을 했다.

▲ 4월 9일 세월호 2주기 행사에 참여한 용혜인 씨가 거리 행진을 하고 있다. 그는 SNS를 통해 소통하며 선거운동을 했다.

▲ 4월 9일 세월호 2주기 행사에 참여한 용혜인 씨가 거리 행진을 하고 있다. 그는 SNS를 통해 소통하며 선거운동을 했다.

승하 씨와 혜인 씨, 이 두 청년의 총선 성적표는? 물론 예상대로다. 혜인 씨가 속한 노동당은 전국 정당투표에서 0.38%(득표수 91,795)를 얻었고, 승하 씨는 지역구에서 1.98%(득표수 2,145)을 얻어, 꼴찌였다.

현행 선거 체제가 1등이 모든 것을 다 차지하는 승자 독식 구조라고 하지만 2, 3등은 물론 꼴찌라도 의미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승자보다 더 아름다운 패자를 볼 수 있는 것도 선거의 묘미다. 선거를 민주주의 꽃이라고 불리는 이유일 것이다.


취재작가 : 박은현
글 구성 : 정재홍
연출 : 김한구

토, 2016/04/16-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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