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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고령자가 지배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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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고령자가 지배한다면?

익명 (미확인) | 목, 2015/12/31- 23:30

올 한 해를 돌아보며 ‘자유’라는 단어가 이만큼 수난을 당하던 시절이 또 있었나 싶은 생각을 했다. 꽤 오랜 기간 사회 현안에 대한 각종 토론 자리에 참석했지만, 올해만큼 ‘자유주의자’를 자처하는 이들을 많이 맞닥뜨린 시절은 없었던 것 같다.한국과 일본의 1인당 국민소득 변화 추이와 65살 이상 고령인구 비율 추이를 지켜보면 놀랍도록 닮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1970년부터 1995년까지 25년 동안의 변화를 보면, 일본의 1인당 국민소득은 1만달러가량에서 2만달러 수준으로 껑충 뛰어오른다. 동시에 65살 이상 인구 비율도 7%대에서 14%대로 2배가 된다(그림1·2 참조).

같은 기간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1천달러 미만의 미미한 수준에서 1만1천달러대로 훌쩍 뛰어오른다. 또한 65살 이상 고령인구 비율도 3%대에서 6% 근처로 2배 커진다. 재미있는 것은 1995년 한국의 위치다.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과 고령인구 비율은 거의 정확히 1970년 일본 수준에 있다.

일본에서 목격한 ‘제론토크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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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수치를 보자. 이번에는 1995년부터 2010년까지 15년 동안의 변화 추세다. 일본의 1인당 국민소득은 이제 2만달러 수준에서 4만달러 이상으로 훌쩍 커졌다. 65살 이상 고령인구 비율은 이 기간에는 14%가량에서 23%가량으로 다시 한번 크게 뛰었다.

같은 기간 한국은 어떨까? 1만1천달러 수준이던 1인당 국민소득은 2만달러 남짓으로 2배 뛴다. 그리고 65살 이상 인구 비율은 6%대에서 11%대로 2배가량 뛴다. 결과적으로 2010년의 한국은 다시 한번 1995년의 일본과 비슷한 위치에 서게 된다.

이 그래프대로라면 한국의 다음 10년, 15년도 단순하게 떠올려볼 수 있다. 일본의 길을 따라가는 것이다. 실제로 여러 예측을 종합해보면, 2030년 한국의 65살 이상 인구 비율은 2010년의 일본 수준이거나 그보다 더 높아질 것으로 추정된다. 또 1인당 국민소득은 2010년의 일본 수준보다는 낮지만, 현재보다 꽤 높을 것으로 추산된다.

한국의 미래를 일본에 빗대본 것은 2014년 일본에서 목격했던 ‘제론토크라시’(Gerontocracy)의 모습이 떠올라서다. 지난해 나는 일본에서 두 달 동안 지내며 일본 사회 이곳저곳을 살펴봤다. 센다이, 후쿠시마, 이시노마키 등 3·11 동일본 대지진 피해 지역을 둘러보기도 했다. 일본 사회의 역동성을 다시 불어넣으려 애쓰는 젊은 사회적 기업가들을 만나보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오구마 에이지 게이오대학 교수를 만나게 됐다. 오구마 교수는 <사회를 바꾸려면> 등의 저서로 유명한 인문학자다. 그런데 그는 일본 사회의 여러 문제를 설명하면서 제론토크라시로 단순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제론토크라시는 고령자 지배사회를 일컫는 말이다. 오구마 교수는 일본 사회를 민주주의 사회라고 부르기도 하고 자본주의 사회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실은 그 모든 것이 제론토크라시라는 내용에 덧씌워진 것에 가깝다고 말했다.

오구마 교수가 일본 사회를 제론토크라시라고 부르는 이유는, 일본 사회가 중앙부터 지역까지 촘촘하게 외부인과 사회적 약자에 대해 배제적인 고령자 지배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는 특히 3·11 동일본 대지진 뒤 피해 현장에서 그 지배체제의 민낯을 목격했다고 한다.

사실 일본 지역경제에서 제론토크라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려면 현미경을 들이대야 한다. 오구마 교수도 피해 지역 현장에 가서 직접 사람들을 만나며 그 구체적인 작동 방식을 알게 됐다.

일본은 1990년대 이후 ‘잃어버린 20년’을 맞는다. 경제는 저성장을 맞고 글로벌화로 기업들의 해외 아웃소싱이 일반화된다. 비정규직 비중이 빠르게 높아지기 시작하며 지역경제는 피폐해지는 과정이 진행된다.

고령자 ‘리더’가 ‘지배자’로 바뀌어가고

축소 및 노화되는 지역경제는 전국 각지에서 볼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일본 동북부 이와테현의 도시 가마이시는 한때 철강산업의 메카였다. 신일본제철의 주요 제철소가 자리 잡고 있던 곳이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제철소는 외국으로 옮겨가기 시작한다. 남아 있는 공장에서는 부산품 정도를 생산할 뿐이다.

정부는 이 지역에 공공일자리(Public Work)를 만들어 인구 유출을 막으려 한다. 정부가 지원금을 내어주면 그 돈으로 지역주민들이 공공사업에 고용되어 일하는 방식의 일자리 창출 정책이다. 그런데 대대적인 공공일자리 사업의 결과, 지역주민들이 의존적으로 변화해가기 시작한다. 공공일자리만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인구가 늘어나고, 공공일자리가 줄면 사람들이 떠나가고 그러면 공공일자리를 더 줄일 수밖에 없게 되는 악순환이 일어난다.

그 과정에서 정부는 지역사회의 배타적 제론토크라시를 인정하게 된다. 지역에서 활동하던 고령자들이 비즈니스 리더이자 지역사회 리더이자 지역 정치인으로까지 변신한다. 리더가 아니라 지배자로 바뀌어간다. 당연히 지역사회는 활력을 잃는다.

정부는 각종 지원 정책을 쏟아붓는다. 그런데 지원 대상이 개인이 아니었다는 데 문제의 시작이 있었다. 일본 중앙정부는 지역사회와 지방정부를 지원 대상으로 삼았다. 취지는 좋았다. 개인을 돕는 것보다 공동체를 돕는 것이 지역사회의 결속력을 강화하는 데 더 도움이 된다는 명분에서였다.

이런 방식으로 지원정책을 펼치다보니 지역을 지배하는 고령자들의 힘은 더욱 세졌다. 대부분 지역에 이미 지방정부나 공동체 지배구조를 주도하고 있던 고령의 지역 토호들이 있던 상황이었다. 이들은 원래 지방정부를 운영하고 지역사회 규칙을 정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를 넘어서서, 지역으로 들어오는 돈과 일자리를 배분하는 역할까지 맡게 된 것이다. 공공일자리를 누가 차지하느냐를 사실상 이들이 결정하게 됨에 따라, 결국 지역의 경제력까지 차지하게 됐다.

결과적으로 활력을 잃은 가마이시 지역은 제철소가 떠난 빈자리를 채우지 못하고 만다. 인구는 줄고 고령화가 진행된다. 9만 명이던 인구가 절반이 되었고 65살 이상 인구가 30% 이상으로 변화해간다.

오구마 교수는 이런 과정이 일본 사회의 전형적인 운영 방식을 보여준다고 본다. 산업화와 경제성장을 이룬 패러다임을 계속 이어가면서 다음 세대의 일본 사회를 운영하는 방식이다.

30년 불황·저성장 고착화의 원인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때 경찰관들이 무너진 건물에서 희생자의 주검을 옮기고 있다. 일본에서는 사회적 약자들이 배제되는 고령자 지배체제인 ‘제론토크라시’가 지진 복구 과정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이런 제론토크라시 체제가 갖는 잔인한 면이 눈에 띄게 드러난 것은 3·11 동일본 대지진 복구 과정에서다. 여러 경로를 통해 복구 과정에서 외국인, 장애인, 신규 거주자들이 지원에서 배제됐고, 여성과 청년들은 대피소 및 지원 물품 배정 등의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가 불가능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건강한 지역공동체라면 약자와 소수자를 먼저 배려했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피해 지역에서는 비상 상황이라는 이유 아래 경제성이나 환경영향평가 없이 대규모 건설공사가 마구 벌어졌다.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명분에서였다. 이들은 상당 부분 정부 지원사업의 일환이었다. 동일본 지역 곳곳에선 도로 복구공사와 해변의 대규모 방조제 공사가 벌어진다. 쓰나미를 막는다는 명분에서였다.

후쿠시마 지역의 방사능 제거 작업을 보자. 제목만 보면 첨단기술 공법을 동원할 것처럼 느껴지는 공사다. 하지만 사실 이 공사는 오염 지역의 땅에 있는 흙을 수십cm 파내 다른 곳으로 옮겨 보관하는 초대형 토목공사다.

이들 대부분이 정부 돈으로 진행되는 공사다. 공공일자리가 대거 나온다. 그 일자리를 배정하는 권한은 다시 고령의 지역 토호들 손으로 넘어간다. 그들이 고령의 지역 정치인과 고령의 정부 관료들과 통한다. 그들이 받아온 돈으로 젊은이들이 생존할 수 있게 나누어줄 수 있다.

문제는 이 모든 과정에서 지역주민 다수는, 특히 청년이나 여성이나 신규 이주자 같은 새로운 인구는 배제된다는 것이다. 이런 담합 구조 아래서 이것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새로운 사람들이 환영받을 리 없다. 전형적인 폐쇄적 제론토크라시 상황이다.

1980년대 이후 30년 동안 제론토크라시의 결과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30년 동안의 불황이었다. 저성장의 고착화였다. 집권 ‘자민당’ 보수정치의 일당지배였다. 일본 경제는 활력을 잃었다. 소니는 삼성에 밀렸고, 세계 2위 경제대국 자리를 중국에 내놓았다. 정치도 경제도 악명 높은 담합 구조가 됐다. 오랜 기간의 고령화 추세와 소득수준 향상, 그리고 사회 각 부문에서 기득권을 온존시키면서 가져온 사회적 결과다.

급기야 일본은 새로운 활력을 찾기 위해 위험한 국가주의를 만지작거리는 상황이 됐다. 헌법을 고쳐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들겠다는 기치로 국민을 결집시킨다. 혐한론과 반중 정서가 심해지면서 국수주의적으로 변해간다. 활력을 잃은 사회가 찾아가는 비뚤어진 출구다.

그게 바로 1995년 이후 2010년까지 일본에서 벌어진 일이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어쩌면 한국에서 앞으로 10년, 15년 동안 벌어지지는 않을지 두렵다. 고령화율과 1인당 국민소득 추이가 그 길을 따라가고 있듯이 말이다.

이미 조짐이 보이는 듯해 불안하다. 행정부의 최고 의사결정 회의체인 국무회의에는 50대도 끼어들기 힘든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 정당들은 노인층에 구애하는 정책을 궁리하느라 바쁘고, 아무리 개혁적인 법안이라도 노인층의 심기를 거스를 듯하면 바로 발을 뺀다.

노인층 심기 거스르지 않으려는 정치권

경제계도 마찬가지다. 2000년대 초반 이후 벤처기업가들이 혜성같이 나타나 한국 경제의 주요 리더로 등장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 기업 서열은 그대로 고착되는 중이다. 42살 이민화가 혜성같이 나타나서 메디슨을 이끌며 벤처기업협회를 만들고, 37살 전하진이 한글과컴퓨터를 이끌며 국산 소프트웨어의 개발을 외치며, 33살 안철수가 안철수연구소를 세우던 때가 불과 20년 전인 1995년이었다. 그 뒤를 이어 다음커뮤니케이션의 이재웅, 네이버의 이해진, 엔씨소프트의 김택진 등 30대 초반의 기업가들이 줄줄이 새로운 경제 리더로 등장했다. 그런 날은 다시 올 수 있을까?

어쩌면 한국에서 제론토크라시는 이미 시작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일본의 과거 30여 년을 되돌아보면, 한국도 이대로 가다가는 그 전철을 밟지 말라는 법이 없다. 지금이라도 무언가 충격이 필요한 때인지도 모른다. 고령자 지배체제를 넘어선 새로운 질서가 등장하도록 말이다.

[ 한겨레21 / 2015.12.31 / 이원재 희망제작소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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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2015/11/22-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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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시·소파·프라이팬에도…곳곳에 발암물질

기사입력 2015-11-15 21:51 | 최종수정 2015-11-15 22:13

<앵커 멘트>평소 발암물질에 노출되지 않기위해 신경 많이 쓰실 텐데요.그런데 집에 있는 접시나 소파, 프라이팬에도 발암물질이 함유된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엄진아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주부 김민선 씨는 지난 3월, 집안 내 독성물질이 어디에 얼마나 있는지 한 민간연구기관에 검사를 의뢰했습니다.

가구와 전자기기 등 107개 제품 가운데 접시와 소파, 피아노의자 등 60%에서 납 성분이, 30%에서 플라스틱의 일종인 PVC가, 20%에서 카드뮴이 검출됐습니다.

발암물질로 분류된 성분입니다.

<인터뷰> 김민선(주부/서울 송파구) : “유기농 같은 걸 먹고 있는데 설마 장판이? 설마 벽지가? 발암물질이란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일상 생활 속 발암물질은 약 5백여 종.

아직 공식 규정되진 않았지만 새로 그 유해성이 확인되는 성분도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프라이팬이나 아웃도어 의류 등에 방수코팅제로 주로 쓰이는 과불화합물, 일명 PFOA라는 것입니다.

미국은 내년부터 과불화합물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녹취> 고금숙(여성환경연대 팀장) : “특히 조리도구를 다루는 비중이 큰 여성들에게는 또 영향이 많은데요. 몸에 한 번 들어오면 반감기가 5년 정도 됩니다. 오래 체내에 머무르는 거죠.”

생활 속 발암물질에 노출된다고 모두 암에 걸리는 건 아니지만, 노약자들은 피하는 편이 좋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합니다.

KBS 뉴스 엄진아입니다.

엄진아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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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056&aid=0010248486&sid1=001&lfrom=kaka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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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15/11/23-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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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 수 감소’ 프탈레이트, 어린이 소변에서 검출

아토피 어린이 13명의 소변 내 프탈레이트 농도 일반 어린이의 2배, 미국 어린이의 4배

오마이뉴스|고금숙
입력 15.11.21. 20:48 (수정 15.11.21. 20:48)

유럽은 ‘가습기 살균제’ 비극도 없었지만 우리보다 일찍, 그리고 더욱 강력한 화학물질 관리법을 시행했다. 이른바 화학물질 등록과 평가, 인가에 대한 법(REACH, 아래 리치)이다.

이 법이 시행되기 전에는 유럽도 신규 화학물질을 우선 사용하다가 피해가 발생하면 그제야 규제가 따라오는 식이었다. 리치가 시행되면서 생태계와 인체 건강으로 화학물질의 안전성을 ‘간’ 보던 관행이 뒤집히게 됐다. 이제 신규 화학물질은 용도와 노출경로에 따라 구구절절 그 안전성을 입증해야 정식으로 시장에 나설 수 있게 됐다. 당연히 ‘데이터가 없으면 장사도 못하는 거야(no data, no market)’를 원칙으로 삼은 리치 법은 기업의 득달 같은 반발에 부딪혔다.

그때 등장한 것이 바로 ’드라큘라’였다. 유럽 내 시민단체들은 정치인과 시민들의 혈액을 뽑아 그 속에 든 유해화학물질을 검출했는데, 그 종류와 농도가 피가 주식인 드라큘라도 ‘노 땡큐’로 사양할 거라며 농을 쳤다. 결국 ‘깨끗한 피를 달라’며 생존을 위한 ‘먹부림’을 요구한 드라큘라의 공로로 리치는 무사하게 시행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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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큘라의 칫솔질 유해물질로 오염된 피를 마시고 이빨 닦는 드라큘라.
ⓒ Riccardo Cuppini (CC)
국내에서도 국립환경과학원이 일정 기간마다 시민들의 혈액과 소변 내 유해물질을 측정하여 공개한다.

올해 9월에는 지난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전국의 3~18세 어린이와 청소년 약 2400명의 혈액과 소변 내 유해물질을 검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어린이와 청소년의 체내 환경오염물질 농도는 어릴수록 높았고, 특히 납과 카드뮴, 그리고 환경호르몬인 프탈레이트 일부가 미국과 캐나다 어린이들에 비해 약 2~3배 높았다. 국립환경과학원은 “어린이는 성인에 비해 환경오염물질 노출에 취약하고 영유아기의 노출은 평생의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주의를 촉구했다.

이 결과가 나오자 올해 5월에 나온 어린이 교육용품 조사 결과가 퍼뜩 생각났다. 악기 케이스, 지우개, 문구 케이스, 줄넘기, 필통 등 어린이들이 만지고 노는 제품 48개를 조사한 결과, 조사 대상의 60%에서 프탈레이트가 검출되었기 때문이다.

프탈레이트는 바로 ‘남자의 정자 수가 줄어들었다, 불임과 성조숙증이다’할 때 언급되는 대표적인 환경호르몬으로, 화장품과 가정용 화학제품에 들어 있다.그 프탈레이트가 또한 PVC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어린이 교육용품에서도 이렇게 떡 하니 들어 있었다.

프탈레이트는 생식계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아토피에 영향을 주는 유해물질이기도 하다. 이 점을 고려해 서울 시내 6개 학교의 유해물질을 조사하면서, 아토피를 경험한 초등학생 13명의 소변에서 프탈레이트 농도도 함께 알아보았다. 워낙 조사비가 비싸서 13명 만을 참여했지만, 하나의 경향성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프탈레이트 중 가장 흔히 사용되는 DEHP, DBP, BBP의 대사체를 기준으로 아토피 어린이(본 조사), 국내 초등학생 조사, 미국 초등학생 조사, 그리고 다큐멘터리 <독성가족>의 결과를 비교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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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탈레이트 (DEHP) 대사물질 농도 아토피 어린이, 국내 초등학생, 미국 초등학생, 다큐먼터리 ‘독성가족’의 결과비교
ⓒ 여성환경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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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탈레이트 3종류 검출결과 비교 아토피 어린이, 미국 초등학생, 국내 초등학생 결과 비교
ⓒ 여성환경연대
그 결과 프탈레이트 농도가 국내 초등학생은 미국 초등학생의 약 2배, 그리고 아토피 초등학생은 미국 초등학생의 4배 정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프탈레이트 농도와 아토피와의 인과관계를 따질 수는 없다. 하지만, 아토피에 영향을 주는 유해물질이 바로 아토피에 걸린 어린이들의 몸 속에서 더 많이 발견됐다는 경향성을 볼 수 있다.

프탈레이트는 몸에 들어온 지 2~3일 만에 소변으로 배출되므로 새 집으로 이사를 하거나 매니큐어를 바르는 등의 활동으로 일시적으로 높아질 수 있다. 그러므로 체내 프탈레이트가 높게 검출되었다고 질병에 바로 영향을 주거나 건강에 이상이 생긴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기준치 이상의 프탈레이트에 노출되는 생활이 계속될 때, 그리고 아토피처럼 환경에 민감한 경우에는 건강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만약 유럽의 드라큘라가 여기 오면 뭐라고 할까. 이 땅에서도 유해물질로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피는 찾을 수 없었다고 불평할 것이다. 다행히도 올해부터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이 처음으로 시행되고 있고, 몇몇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유해물질을 제품에서 걷어내고 있으니 그래도 미래의 드라큘라 ‘먹거리’는 좀더 안전해지지 않을까.

프탈레이트와 중금속이 들어있지 않은 어린이 안심 제품은 발암물질 없는 사회 말든기 국민행동(http://nocancer.kr/nopvc)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월, 2015/11/23-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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