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방지법 제정안, 사이버테러방지법 제정안, 공공 서비스 축소와 민영화 확대의 근거가 될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제정안, 재벌과 대기업에게 특혜에 특혜를 더 얹어주는 기업활력제고특별법(원샷법) 제정안, ‘쉬운 해고, 비정규직 기간연장, 실업급여 수급조건 악화, 간접고용 파견 전면화’를 초래할 5개 노동관계 법률 개정안 등 참여연대는 12월 마지막날까지 ‘박근혜 악법’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했습니다.
어제(3/23)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법센터는 토론회 <대선 1년, 검찰공화국을 말하다>를 진행했습니다. 이번 토론회는 대선 이후 지난 1년을 돌아보며 점차 심화되는 ‘검찰공화국’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되었습니다. 민변 사법센터 장유식 소장이 좌장을 맡고, ‘검찰 정치권 수사의 공정성’에 대해 최영승 한양대 법전원 겸임교수가 발제하고 민변 사법센터 이창민 검경개혁소위원장이 토론을, ‘검찰주의적 행정의 문제점’에 대해 유승익 한동대 연구교수가 발제하고 김은지 시사IN 기자가 토론을, ‘검찰공화국을 어떻게 견제할 것인가? 야당과 시민사회의 대안’에 대해 이관후 건국대 교수가 발제를, 이지현 사무처장이 토론을 맡았습니다. 발제자와 토론자들은 모두 작금의 검찰공화국 세태가 “87년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 최대 적신호”에 비견될 정도로 심각하며, 여전히 검찰개혁과 시민사회의 권력감시가 필요하다는데 입을 모았습니다.
첫번째 발제자인 최영승 겸임교수는 검경수사권이 조정되었으나 검사의 권한은 여전히 막강하고, 지난 1년을 돌이켜볼 때 검사의 수사 방법 자체가 반인권적이고 저급했다고 비판했습니다. 주변 옥죄기 · 먼지떨이식 수사 · 연일 보도되는 ‘파란 압수수색 상자’ 등, 임의수사 원칙, 불구속 수사원칙은 형해화되고 강제수사가 수사의 원칙으로 뒤바뀌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두 차례의 중앙당 압수수색, 윤미향 의원 사건의 1심 판결 등에서 드러난 피의사실 부풀리기 의혹, 증거인멸과 도주우려가 없는 이재명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등 민주당 인사를 중심으로 한 검찰의 수사와 달리 김건희 여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등 여권 관련 사건에 대한 수사 미진 등을 비교하며 검찰 수사의 정치적 편향성도 비판했습니다. 수사 대상이 여/야, 권력자/비권력자, 검사/비검사 여부에 따라 나누어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불공정하게 ‘기울어진 양팔 저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어선 살해 혐의 북한 어민의 송환 등 전 정부의 정책적 영역까지 사법 잣대로 재단하는 행태도 비판했습니다. 이에 대한 개선책으로 경찰이 수사하고 검사가 기소하는 원칙의 제도화, 공수처의 검사 견제와 더불어 검사의 징계 처분에 파면을 추가, 궁극적으로 법왜곡죄 도입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제시했습니다.
토론자인 이창민 민변 사법센터 검경개혁소위원장은 발제에 동의하며 검찰의 ‘파란 압수수색 상자’가 일상화된 현실을 비판했습니다. 또한 곽상도 전 의원의 50억원 뇌물 혐의 사건은 무죄를 선고한 판결문을 자세히 살펴봐야 사실관계 전모를 파악할 수 있는 반면, 불구속 기소된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혐의와 세부적인 내용들에 대해서는 국민 대다수가 자연스레 알게 될 정도로 검찰과 언론의 연합이 있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렇게 검찰이 피의사실 흘리기 등 잘못된 수사관행으로 시민의 재판정에서 유죄판결을 먼저 이끌어 내려는 것은 수사 대상의 정치적 생명을 단절하기 위한 목적이 아닌지 의심스럽다며 여야에 대한 검찰 수사의 불공정한 잣대를 비판했습니다. 이창민 소위원장은 법왜곡죄 도입은 물론, 징계에 의한 검사 해임 또는 파면 등 발제자의 개선책에도 공감했습니다.
두번째 발제자인 유승익 한동대 교수는 ‘검찰주의적 행정의 문제점’을 발제하며, 실체적 진실과 관계없이 검찰이 원하는 대로 사건을 형성하는 ‘사건 생산자’로서의 검찰이 행정을 장악하여 행정부를 검찰사법화하고 있다고 깊은 우려를 표했습니다. 검찰 편중 인사, 시행령 통치, 재난 대응 등에 있어서 검찰이 과거와 달리 지난 1년 동안 ‘주요 플레이어’로 등장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유승익 교수는 과거 특정 정치계파의 인사를 일컬었던 편중 인사와 달리 지금은 검사라는 단일 집단 구성원을 중심으로 편중 인사를 보이고 있으며, 인치를 법치와 혼동한 채 법률가에 의한 지배가 법치국가라고 착각하는 윤석열 대통령의 인사정책기조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런 기조는 행정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대표적으로 10.29 이태원참사가 발생한 후에 판사 출신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아무 대응도 하지 않은 것은 직접적인 고의 과실이 있냐만 따지는 법률가적 인식과 검찰주의적 행정이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친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유승익 교수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검찰주의적 행정이 견제장치를 무력화해 행정시스템 전체를 회복불가능한 형태로 파괴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지난 1년간 행정부까지 확대된 검찰 네트워크가 사법부와 입법부까지 진출하는 초유의 사태를 눈앞에 두고 있어, 87년 민주화 이후 한국 민주정치에 가장 위험한 적신호가 켜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토론자인 김은지 시사IN 기자는 검찰주의적 행정이 향후 더더욱 문제가 될 것이고, 특히 검사 출신 사외이사 임명 등 경제권력에 대해 영향을 미치고 있는 사례를 들며 발제자의 의견에 공감했습니다. 또한 각 지역에서 총선을 준비하는 검사 출신 후보자들에 대한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면서 검사라는 특정 직군이 행정, 입법까지 권력을 갖게 되면 더 큰 문제를 낳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상명하복 문화에 더해 검사와 검사 아닌 자 · 적법과 합법 등 모든 사안을 흑과 백으로 나누는 특유의 이분법적 시각을 교육받은 검사가 정치적 트레이닝 없이 정치에 진출했을 때 벌어지는 상황을 목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된 원인의 하나로 문재인정부 검찰개혁의 한계점을 언급하면서 어떤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바뀌지 않는 불가역적 개혁을 위해 무엇이 부족했는지 반성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다만 역설적이게도 현재의 상황이 검찰개혁에 대한 시민들의 요구를 모아내는 계기가 될 수 있으며, 비록 그 과정이 힘들어도 시민의 시선에서 검찰개혁에 대해 정명하고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마지막 발제자인 이관후 건국대 교수는 현재 정부 요직에 임명된 검사들에 대해 단순히 검찰출신임을 넘어 소위 특수부나 윤석열 대통령 등과 사적 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핵심 권력을 차지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3대 개혁”을 위해 금융, 노동, 교육부까지 검사를 파견했고, 9급 공무원부터 대통령까지 수사해본 검사들은 자신들이 모든걸 제일 잘 안다는 자만 하에 정부 요직을 차지했으니 ‘최고의 엘리트들의 지배 하에 국운이 융성할 것’이라고 반어적으로 비꼬았습니다. 현 정부는 이를 ‘법치주의’ 라고 주장하지만, 이관후 교수는 일반적 정치학의 관점에서 법치주의란 독립된 입법부가 입법하고 / 행정부가 집행하며 / 집행 여부의 적법성을 독립된 사법부가 판단하는 것임을 의미하지, 검사들이 사법정의를 실천하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고 반박했습니다. 또한 검찰이라는 특수한 법률가 집단의 행정 통치 상황에서 가장 우려되는 지점은 국가가 정책과 행정의 목적 달성 여부가 아니라 집행 과정에서의 부정부패 예방에만 관심을 두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특히 사회복지 분야는 본질상 부정수급 문제가 일부 불가피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지만, 시급한 복지 혜택을 부여한 후 부정수급을 해소하는 과거의 방식과 달리 부정수급의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아예 선제적으로 ‘일소’하여 결과적으로 복지총량이 축소되고 사회적 약자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습니다. 또한 법무부가 산하에 이민청 설립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 인구 관리라는 국가 행정 전반에 걸친 영역이 검사들의 영향권에 편입되는 것을 강하게 경고했고, 내년 총선에서 검사 출신들의 입법부 장악 우려도 언급했습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는 과거 검찰권을 견제하기 위해 사법적 제도를 활용했으나 실패했던 경험에 비춰, 법률적 정면대응이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정치적 책임을 묻는 방식을 구사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관후 교수가 언급한 적극행정 실종의 문제에 대해, 이지현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역사적으로 효과가 없다는 것이 검증되었음에도 윤석열 정부가 복지 사각지대 발굴 중심 정책을 고집하는 것도 역시 검찰주의적 사고에 기반했기 때문이라고 부연했습니다. 아울러 10.29 이태원 참사에 대해서도 정치적, 도의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정부에 대한 다른 의견과 생각을 보장하기는커녕 집회 시위나 표현의 자유 등 국민 목소리의 통로까지 막아내고 있어 검찰공화국이라는 이름조차 아까울 지경이라고 밝혔습니다. 또한 윤석열 정부에서 계속되는 노조 파업에 대한 탄압, 정부 보조금과 무관한 노조 조합비 회계장부 제출 요구, 시민단체에 대해 부당한 이익 갈취라며 악의적 프레임을 씌우는 등의 사례를 열거하며 노동시민사회 탄압을 비판했습니다. 역설적으로 윤석열정부 1년은 정치의 역할에 대한 중요성이 가장 강조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인 만큼, 민주적 정치를 바로세우기 위한 활동에도 힘을 낼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좌장을 맡은 장유식 민변 사법센터 소장은 사법제도적 접근에 대해서는 신중하고 꼼꼼하게 판단하되, 정치를 복원하며 국민적 지지와 호응을 얻어나가는 시민단체의 활동이 검찰권의 견제 방안이라는 이지현 사무처장의 의견을 다시 언급하면서, 검찰공화국을 견제하기 위한 실천을 조직하는 노력을 전방위적으로 해나가야 한다고 조언하며 토론을 마무리했습니다.
윤석열정부는 검찰 및 검사 출신 인사들을 연이어 정부와 공공기관 · 권력기관 요직에 임명하고, 권력기관들에 대한 지배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검찰과 경찰 등은 야권 정치인 및 유력인사들,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언론 및 노동계, 시민사회단체들에 대한 광범위한 수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언론사 지면에 하루가 멀다하고 검찰 수사 관련 단독보도들이 경쟁적으로 나오고, 정치권은 이를 두고 다투면서 양당간 협치는 요원해지고 있습니다. 반면 여권 인사나 대통령실 주변 인사들의 의혹에 대해서는 수사를 미루거나 석연치 않게 무혐의 처분하는 등 수사 공정성 문제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대통령실과 법무부 인사라인 등이 모두 검사 출신으로 도배되면서, 국가수사본부장으로 임명되었던 검사 출신 정순신 변호사의 자녀 학폭 가해 및 소송전 등 논란을 사전에 검증하지 못하는 등 인사 검증 문제도 불거지고 있습니다.
검사 중심 인사들이 주축이 된 행정은 역설적으로 검찰수사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위협하고 있고, 국정운영 자체도 논란을 자초하고 있습니다. 한편 국회에서는 여당 당대표 선거에 대통령실 개입이 논란이 되고, 검찰이 제1야당 당대표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체포동의가 부결되는 등 의회정치도 크게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와 민변 사법센터는 대선 1년을 맞아 윤석열정부의 행보를 되돌아보는 토론회를 개최했습니다. 검찰 수사와 검찰 중심 국정 운영이 가져온 난맥상에 대해서 돌아보고, 시민사회와 국회의 역할은 무엇인지 대안을 모색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2. 일시 및 장소 : 2023. 03. 23. 목 14:00 / 참여연대 2층 아름드리홀
한동훈 장관 사과하고 ‘검수원복’ 시행령 입법취지 맞게 재개정해야 졸속입법한 국회, 형사사법개혁특위 재가동해 추가입법 서둘러야
어제(3/23) 한동훈 법무부장관과 검사 6명이 제기한 검찰 수사권축소 관련 개정 검찰청법(소위 ‘검수완박’)에 대한 권한쟁의심판에 대해 헌법재판소(이하 헌재)가 각하를 결정(2022헌라4)했다. 헌재는 한 장관의 심판 청구에 대해서는 청구인 적격이 없다고 했고, 검사들에 대해서는 청구인 적격은 인정했으나 헌법상 권한 침해 가능성이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 검찰의 수사권·소추권은 국회의 입법행위로 그 내용과 범위가 형성된 ‘법률상 권한’인 만큼 법률개정행위로 침해될 ‘검사의 헌법상 권리’ 자체가 없다는 것이다. 이로써 수사권조정 과정을 둘러싼 논란이 일단락 되었지만, 궤변에 근거한 심판청구로 혼란을 야기한 한 장관의 책임은 간과하기 어렵다. 헌법과 국회를 존중해야할 행정부의 일원임에도 입법부에 반발한 이번 권한쟁의 심판제기와 모법의 취지를 보란듯이 훼손했던 ‘검사의 수사개시 범죄 범위에 관한 규정(이른바 ‘검수원복’)’ 개정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하고, 입법취지에 맞도록 시행령을 재개정해야 한다.
헌법에 검사의 영장 신청이 명시되었다는 점만을 근거로 확대 해석해 수사권은 헌법상 권한이라던 검찰의 오랜 궤변이 헌재의 결정을 통해 부인되었다. 검사의 영장 신청 조항은 검사의 수사권을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강제수사 남용 가능성을 통제해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며, 수사권은 물론 소추권까지도 검찰청이란 조직의 헌법적 권리가 아니라 입법 사항이라는 점이 재확인된 것이다. 임명직 공무원에 불과한 법무부장관과 검사가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 입법권에 맞선 무모한 시도의 당연한 결말이다. 검찰과 법무부는 더 이상 헌법적 권한 운운하며 무리한 주장을 되풀이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한 장관은 헌재의 결정에 ‘공감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장관 개인의 감정적 공감 여부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장관의 본분과 직무이다. 헌법과 법률에 따라 정책을 수행해야 할 행정부의 일원으로써 이번 권한쟁의심판 등으로 혼란을 야기한 것에 대해 사과하고, 입법과 헌재 결정의 취지에 따라 검사의 직접수사 개시 범죄 범위를 축소하도록 위헌적 시행령을 재개정해야 한다.
아울러 국회 역시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더불어민주당은 검찰개혁에 대한 국민적 지지에도 불구하고 집권여당 시절 제대로된 개혁을 미루다가, 대선 패배 후 뒤늦게야 수사권 조정 법 처리 속도에만 집착해 ‘등’과 ‘중’ 논란을 일으킬 만큼 허술한 법안의 졸속추진으로 논란을 자초했다. 법사위에서의 눈가리고 아웅식 ‘위장탈당’은 헌재조차도 부당성을 인정했다. 국민의힘 또한 관련 의장 중재안에 합의까지 했음에도 윤석열 당선자의 눈치를 보고 일방적으로 파기해 국회 권위를 스스로 손상했고, 형사사법개혁에 책임있는 대안을 내놓지도 않았다. 헌재의 이번 결정을 계기로 국회는 형사사법체계 논의에 대한 책임을 더욱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공전하고 있는 국회 형사사법개혁특위를 재가동해, 미완의 수사기소 분리 등 검경개혁을 완수하고 권력기관 간 견제와 균형을 달성해야 할 것이다.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의 집권 이후 검찰공화국이 현실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검찰 등 권력기관 개혁은 여전히 시급한 과제이며, 여야를 가릴 문제가 아니다.
지난해 6월 필자는 본지에 윤석열 정부 소득보장제도의 전망과 과제에 대한 짧은 글을 쓴 바 있다. 한편으로는 문재인 정부 소득보장 부문의 성과와 한계를 평가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윤석열 대통령의 선거공약과 정부 출범 후 제시한 국정과제를 비교하였다. 굳이 요약하자면 지난 정부에 비해 새로울 것 없이, 팬데믹 시기 소득 위기를 타개할 청사진조차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현 정부 소득보장제도에 대한 우려였다. 어느덧 1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다. 최근까지 국민연금이나 실업급여 등 일부 제도조정을 위한 시도가 있었으나 윤석열 정부의 성과라고 평가할 수 있는 것은 아직 없는 상태이다. 정부는 국정과제 발표한 지 1년 넘게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행계획도 발표하지 않고 있다. 이번 정부 들어 정부 씽크탱크라고 할 수 있는 정책기획위원회가 폐지된 상태에서 정부의 공식 자료로 확인할 수 있는 정책의 구체적인 진행 과정과 성과는 제한적이다. 이 가운데 올해 초 보건복지부의 대통령 업무보고가 있었다. 윤석열 정부가 2022년 5월에 출범했으니 이번 복지부 업무보고는 사실상 국정과제 이행을 위한, 윤석열 정부만의 고유한 세부 플랜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이 글에서는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 내 소득보장 분야의 진행 상황을 복지부 업무보고를 통해 점검하고 평가하고자 한다.
본격적으로 논의에 앞서 개념을 짚을 필요가 있다. 많은 사회과학 연구와 칼럼, 정부보고서에서 소득보장 혹은 소득보장제도라는 개념을 활용하지만, 소득을 보장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소득보장제도에 포괄되는 정책에는 무엇이 있는지 등에 대해 합의는 없다. 통상 소득보장은 통상 질병, 실업, 사고 등으로 인한 소득의 중단 혹은 상실이 발생할 경우 시장에서의 일차분배를 재분배하는 사회보장제도의 일부 혹은 그 기능을 일컫는다. 따라서 소득을 보장하는 정형화된 제도나 정책프로그램으로 명확히 구분할 수 있다기보다 다양한 노동-경제사회정책들이 소득을 정책적으로 재분배하기 위해 수행하는 활동과 성과를 의미한다. 그럼에도 혹자는 소득보장‘제도’를 사회보장(통상 개념적으로 사회보험과 공공부조, 사회복지서비스의 총체)과 혼용하여 쓰기도 하고, 연금과 각종 수당 및 현금성 급여(대표적으로 생계급여)만을 소득보장‘제도’로 간주하기도 한다. 시중의 사회보장 관련 교과서에서도 김태성 서울대 교수의 기여와 소득/자산조사 여부를 활용한 소득보장제도 분류법 정도가 소개되는 데 그치고 있지만 이 또한 개념적 엄밀성이나 역사성, 학계의 통상적 인용 등을 가진 설명은 아니다(이에 따르면 다양한 보편적 수당제도, 사회보험, 공공부조가 이에 해당된다). 필자도 작년 윤석열 정부 소득보장제도를 전망하면서 개념적 엄밀성을 고려하지 않고 국민연금, 기초연금, 기초생활보장, 근로장려금 정도를 소득보장으로 ‘퉁’쳤음을 고백한다. 향후 소득보장 혹은 소득보장제도의 이론적 개념화, 세부 구성, 범위, 타 제도와의 관계 등이 학술적으로 충분히 검토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논의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위해 우리는 ‘소득보장’을 어떤 제도로 구현할 수 있다고 보는지 정부의 입장(?)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많은 문서들이 있지만 그나마 가장 확실한 기준으로 삼을만한 것은 정부가 법률에 근거하여 작성한 ‘사회보장기본계획’이 아닐까 한다. 2014년 발표한 1차 기본계획에 따르면 소득보장은 국민연금, 사적연금, 그리고 기초연금(구 기초노령연금)으로 달성되는 것으로 보았고 주로 연금과 같은 노후소득보장 관계정책과 일부 농어촌 주민들 대상 소득보조 사업이 언급되는 수준에서 논의되었다. 2019년 2차 기본계획에서는 소득보장을 노후소득보장과 근로연령층 소득보장으로 더 세분화하였다. 이에 따르면 노후소득보장은 공적연금, 퇴직연금, 기초연금, 생계급여를, 근로연령층 소득보장은 고용보험, EITC, 기초생활보장제도 내 자활급여 등으로 구성된다. 다만 국회예산정책처는 2020년 편찬한 보고서에서 소득보장분야를 ‘취약계층대상 소득보장’(생계급여, 자활급여, 장애인연금 및 장애(아동)수당)과 ‘노후소득보장체계’(기초연금, 국민연금, 특수직역연금, 퇴직연금, 농지연금)로 소득보장의 범위를 재조정하였다(근로연령층 소득보장은 고용 분야 분석으로 이관). 다만 여기서 일부 재정사업들(출산크레딧, 실업크레딧, 농어업인 보험료 지원, 공무원 및 군인연금의 국가보전금 등)도 소득보장에 포함하였다. 확고하다고 볼 수 없고 다소 불명료한 점은 있지만 필자는 최대한 정부의 이러한 분류법에 기초하여 출범 2년을 맞은 윤석열 정부의 소득보장제도의 성과와 과제를 검토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소득보장 관련 국정과제의 성과는 고사하고 그간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문제점은 없었는지, 향후 어떤 구체적 실행계획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턱없이 부족했다. 2023년 복지부 주요 업무 추진계획을 살펴보자.
일단 그간의 추진 성과가 지나치게 부족하다. 작년 보건복지부는 업무보고를 통해 문재인 정부 기간 새로운 소득보장제도(아동수당 도입, 생계급여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노인 및 사회서비스 일자리 확대 등)를 도입하고 대상 및 보장 수준을 대폭 강화함으로써 시장불평등에도 불구하고 불평등을 개선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올해 복지부는 소득보장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그리고 주요 정책성과로 약자 복지 기반 마련과 생애주기별 취약 대상맞춤 돌봄을 확대하였고, 건보료 부과 체계 개편, 코로나19 대응, 바이오헬스 글로벌 도약 가능성 확인을 제시하였다. 다른 많은 성과가 있어도 굳이 넣지 않았던 건지 모르겠지만 복지부가 밝힌 윤석열 정부 보건복지 주요 성과는 이게 전부다. 그나마 작년 9월 안상훈 사회수석이 발표하여 아직까지 논란이 되고 있는 ‘약자복지’도 긴급복지 및 자립수당 확대, 국공립어린이집 확대 및 시간제보육개편, 노인재택의료센터 도입, 발달장애인돌봄대책 마련, 부모급여 도입 정도다. 이 가운데 소득보장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기존 양육수당을 확대하여 만 2세 미만 보호자에 매월 최대 70만원을 추가로 지급(단 보육료 바우처만큼 감액)하는 부모급여 도입 정도인데, 이마저도 아동수당법이 법사위에 계류되어 있어 실제 집행이 될지, 언제 어느 정도 될지는 미지수다. 역대 최대 인상폭(5.47%)이라고 홍보한 기준중위소득도 사실상 그간 기재부 반대로 매번 무산됐던 것을 이번 정부 들어 ‘21년 합의한 로드맵대로 이행하는 수준에 그친 것이다. 상병수당 도입논의는 ‘시범사업 중’(25년 6월까지 예정)이라는 말 하나로 거의 모든 걸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특이사항이 없다. 생계급여 선정기준도 현행 기준중위소득 30%를 35%로 상향할 ‘목표’를 가지고 있다고 언급하는 수준에 그쳤고, 재산기준 완화나 의료급여 부양의무자기준개선도 올해 8월에 나올 예정인 ‘기초생활보장종합계획(’24~‘26)’에 반영하겠다는 정도의 계획을 제시한 정도다. 실업급여와 육아휴직 급여확대에 대해서는 일부 논의가 진행되었을 뿐 검토단계에 들어가지도 않은 것으로 보인다. 국민들, 특히 저소득계층의 소득 위기를 어떻게 보호했는지 매년 비슷하게 반복되는 성과조차 내세우지 않고 오로지 계획과 검토만이 있을 뿐이다. 그나마 기초연금을 최대 40만원으로 인상하겠다는 국정과제는 매년 물가상승률만 반영해도 몇 년 안에 달성될 것이기에 아이러니하게도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더라도 임기 말까지는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윤석열 정부의 가장 왕성한(?) 소득보장 개선 노력은 국민연금개혁 논의로 모아질 것으로 보이나 개혁이 아니라 개악이라는 논의가 지배적이다. 현 정부의 연금개혁에는 기금(돈) 운영만 있을 뿐 정작 국민의 안정적 노후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에 대한 고려는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 공약으로 대통령 직속 공적연금개혁위원회를 설치하여 자신의 연금개혁의지를 공론화하겠다고 밝혔으나, 국정과제에서는 국회 설치로 선회하여 논란의 중심에서 피해가는 전략을 선택하였다. 이에 현재 4월 종료 예정인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가 운영되고 있지만, 언론을 통해 일부 조정안이 확대 보도되는 등 논란만 확산되었을 뿐 정작 연금개혁 당사자를 대상으로 하는 공론화위 활동은 불투명한 상황이다. 이 와중에 국민연금 기금운용위는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최근 기업범죄 전문 검사 출신을 연기금 상근전문위원으로 임명하는가 하면 노동계 기금위원을 특별한 사유 없이 해촉하였고, 찬반토론을 무시하고 안건을 상정하여 수탁자책임전문위원을 줄이고 이를 복지부 장관이 임명하겠다며 표결처리를 강행하였다. 박근혜 정부 당시 삼성물산 합병사건을 계기로 2020년 이후 기금의 거버넌스와 민주주의를 공고히 하기 위한 제도적 노력을 단 3년만에 와해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프랑스가 엄청난 대중적 공분에도 불구하고 연금개혁을 강행한 바를 배워 우리도 소득대체율을 낮추고 보험료를 올리는 연금개혁을 달성하자는 주장을 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이건 비교 대상이 아니다. 프랑스는 정년을 연장하여 수급개시연령을 늦추자는 것으로, 사실은 수급개시연령이 아니라 정년연장, 즉 보다 오래 일하라는 정부의 개혁안을 대중들이 거부하는 것이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실질은퇴연령은 OECD 국가 중 가장 길지만, 근속연수는 가장 짧은 국가이다. 젊을 때부터 다닌 안정적 직장에서 빨리 퇴직하면서 부득이 노인이 되어서 저임금 일이나마 놓지 못하는 나라라는 것이다. 당해연도에 걷은 보험료와 세금으로 당해에 연금을 지급하기 위해 연금보험료 28%를 걷어 소득대체율 60%(우리는 각각 9%, 42%)의 제도를 운영하는 프랑스의 연금개혁을 보고 우리도 개혁하자는 것은 마치 다이어트를 위해 운동을 더 하라는 걸 보고는 영양상태가 좋지 않은 사람의 음식을 빼앗는 것과 다름없다. 기만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국민연금기금의 기본 목적은 가입자의 안정적인 노후연금 지급에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제도의 지속을 진정으로 바란다면 적정한 노후소득을 보장하기 위해 어떠한 재정운용 전략을 가져야 하는가와 같은 인식의 흐름이 당연하다. 그러나 정부는 적정 노후에 대한 고려 없이 연기금 고갈과 재정안정화만을 반복적으로 강조할 뿐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국민연금의 제도적 기반이 훼손되거나 불안하다고 인식될수록 기금운용의 실질적인 지배권을 가지려고 욕망하는 기재부 등 재정권력과 민간 금융권은 반사이익을 얻는다. 실제 민간 금융회사들의 재정적 지원을 받는 일부 연구집단들은 지속적으로 연기금의 고갈을 강조하고 국민연금이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제도로 완전히 탈바꿈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이런 것을 보면, 정부와 재정안정화론자들은 국민연금기금을 쌓아두기만 하고 활용 가치가 낮아 소위 경제 전체에 사중손실을 유발하는 수괴 정도로 여기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본다. 연기금의 지속가능성을 지속적으로 공격하는 논의는 국민연금이 노후소득보장이 아니라 재정안정이 목적이라고 대중들을 현혹시키는 데 매우 유용한 도구로 기능한다. 하지만 연기금 및 연금제도의 지속가능성은 단순히 기금투자수익률이나 보험료의 문제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인구구조와 노동시장의 문제라는 점은 명확하다. 전세계 가장 낮은 출생율과 그에 따른 빠른 속도의 고령화라는 제약조건 속에서 기금의 적극적인 사회적 보호의 역할을 방관한 채 기금을 보호해야 한다는 재정 관료들과 재정안정화론자들의 주장은 사실상 국민연금제도를 포기해야 한다는 주장에 다름 아니다. 기금고갈에 대한 공포가 확산되고, 연금논의가 세대갈등으로 번져가는 지금의 상황은 제도에 대한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 들어 올해도 어김없이 기금재정재계산이 발표되었고 상당한 사회적 논란만 가중된 채 뚜렷한 해법이나 논의의 진전은 나오지 않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연금과 노동시장에 대한 청년들의 불만을 일부 양분삼아 집권에 성공한 현 정부는 정작 논의를 국회로 넘긴 채 위원회의 민주성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자기 사람 심기에 바쁜 무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글은 2년 차를 맞는 윤석열 정부가 국민의 불안한 삶을 어떻게 얼마나 보호했는가를 살펴보기 위해 쓴 글이다. 대체로 이런 종류의 글은 성과의 과오를 판단하고 더 나은 개선을 도모해야 한다는 정도의 내용으로 구성한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의 소득보장 성과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 평가할 내용이 부족하다. 무엇인가를 했다면 그걸 평가하면 될 일이지만, 뭔가를 별로 하지 않은 상태라면 평가도 궁색할 수밖에 없다. 정부 초기부터 윤석열 정부에 대한 최대의 우려는 무능이었다. 초기에는 주로 대통령 개인의 정치 및 국정운영 경험 부족이 집중적으로 거론되었다면, 지금 시점에서는 정권 자체의 무관심이 문제가 아닐까라는 우려를 하게 된다. 약자복지라는 이상한 용어를 내세웠지만 정작 긴급복지, 자립수당, 기준중위소득에서 소폭 인상하고 기존 양육수당을 일부 확대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데 그쳤다. 의료급여 부양의무자기준도 개선을 추진하겠다는 막연한 계획만 있을 뿐이다.
어느 정부 때나 그랬지만 정권이 바뀌면 취약계층들은 일말의 희망을 갖는다. 특히 소득과 건강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위기가구라면 그러한 희망만이 거의 유력한 탈출구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아직 그러한 희망은 구체적으로 실현되지 못한 것으로 보이며 그나마 미약한 계획만이 있을 뿐이다. 남은 집권 기간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계획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그러는 사이 박스를 주워 생계를 유지하는 노인과 밥을 굶는 아이, 단칸방에서 맞는 고독사, 병원에 가지 못하는 장애인, 경제적 이유로 극단적 선택을 하는 뼈아픈 사례들을 목격하게 될 것이라는 걸 부정할 수 있을까. 팬데믹이 휩쓴 가계의 불안은 과거 가족 동반자살이라는 말로 포장되었던 자녀살해, 가족살해, 자살이라는 극단적으로 파괴적인 모습으로 여전히 언론에 등장하고 있다. 모든 정권이 동일한 정책목표를 가지고 유사한 성과를 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백번 양보하여, 정부가 국민의 소득을 안정적으로 보호하는 데 능력이 부족할 수는 있다. 이는 다른 많은 정책자원들을 활용하면 대체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무관심은 다른 문제다. 부디 이러한 우려가 기우이기를, 그리하여 남은 집권기간 동안 말잔치로 끝나지 않고 위험에 처한 국민들을 따뜻하게 보호하기 위해 무언가라도 하는 국정을 펼치기 바란다.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total fertility rate)이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있다. 여성이 평생동안 아이를 낳는 수를 의미하는 합계출산율은 2022년에 0.78명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 결과는 사회적으로 상당한 충격을 주고 있고 이에 대응하여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사회정책이 제안되고 있다. 하지만 한 개인의 결혼과 출산 결정은 한 개인의 생애과정의 맥락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에 반해, 현재 주요하게 나타나는 관련 정책들은 출산 시기나 그 이후에 주로 초점이 맞추어진 경향이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
이 글은 출산에 맞추어진 초점을 그 이전의 단계, 즉 성인 이행기(the transition period to adulthood)에맞추어 보고자 한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에서 성인 이행기가 길어지고 있고, 여기에 가중된 자립의 어려움으로 인해 결혼과 출산이 늦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 글의 접근이 실제 결혼과 출산 결정 유보 상황을 적절하게 설명하는 것이라면, 합계출산율을 높이고자 하는 정책은 비단 출산과 그 전후 시점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개인들의 성인 이행기에도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즉, 성인 이행기 청년의 자립을 지원하여 결혼과 출산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여기서는 오늘날 아동·청소년기에서 성인기로 나아가는 과정, 즉 ‘성인 이행기’가 길어지고 있는 현상에 대해 설명하고, 결혼과 출산에 대한 인식 변화에 대해서도 간단히 살펴볼 것이다. 이를 통해 향후 저출산 정책과 청년 정책의 방향에 대해 제언하고자 한다.
길어진 성인 이행기: 교육기간, 혼인연령, 출산연령의 예
성인이 되는 것은 한 순간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는 만19세가 넘으면 법적으로 성인이 되지만, 이 연령이 지났다고 해서 그 사람이 당장 성인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자신이 성인이 되었다고 느끼는 것은 아니다. 일례로, 한 조사에서 우리나라 청년들의 성인 자각을 조사하였을 때 20대 초반의 성인 자각은 매우 낮은 편이었고, 20대 후반에 들어서야 절반 이상이 자신을 ‘가끔’ 혹은 ‘항상’성인이라고 느낀다고 하였다(유민상 외, 2022). 이는 이 시기가 아동·청소년기에서 성인기로 전환되는 과도기적 시기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아동·청소년기에서 성인기로의 전환기 혹은 이행기(transition period)가 나타나고, 길어지는 현상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경제 선진국들에서 유사하게 나타나는 특징이 있다.
아네뜨(Arnett, 2000)는 이러한 시기를 새로운 성인기 혹은 발현 성인기(emerging adulthood)라고 불렀는데, 아동·청소년기에서 성인기 사이에 새롭게 등장한 시기라고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아동·청소년기에서 성인기로 급격하게 전환되는 것이 아니라 교육과 훈련을 받으며 안정된 직업을 탐색하는 시기가 등장한 것이다. 예를 들어, 과거 법적으로 성인 연령이 되면 바로 노동시장에 나가거나 결혼을 하여 아이를 낳고 가족을 부양해야 했던 시기가 근래에 들어 대학교육이나 훈련을 받고 직업생활을 하고 조금 늦게 결혼과 출산을 하는 시기로 변화하게 된 것이다.
성인 이행기가 길어지는 현상은 우리나라의 저출산 현상을 이해하는 데 있어, 그리고 성인 이행기의 자립을 지원하는 국가 수준의 청년 정책의 출현을 이해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하다. 다음은 길어진 성인 이행기를 보여주는 지표와 이를 어렵게 만드는 지표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1) 길어진 교육 기간
현대 산업사회는 과거에 비해 긴 교육이나 훈련을 요구하고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해서 오랜 교육을 필요로 하는 직종이 많아지고 있고, 최근에는 대학원 학위를 추가적으로 필요로 하는 직업들도 생겨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는 이러한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경쟁적으로 대학 입학 경쟁에 뛰어들고 있고 높은 고등교육 진학률로 나타나고 있다. 1980년대 10% 남짓하던 대학진학률(고등교육 진학률)은 2020년대 70%를 넘어서고 있다. 그 이상의 역량을 쌓기 위해 방학이나 휴학 기간 중 추가적인 경쟁도 늘어나는 추세이며, 휴학과 졸업 유예 등으로 이러한 시기를 더 늘리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2) 늦어진 혼인 시기
혼인 시기도 점차적으로 늦어지고 있다. 1990년에 여성의 평균 혼인 연령은 24.78세였으나 2021년에는 31.08세로 높아졌고, 2022년에는 31.3세로 계속 증가 추세에 있다. 연령별 혼인율을 보면 이러한 변화가 더 잘 눈에 띈다. 1990년대 여성의 혼인은 20대 후반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었으나 2022년에는 30대 초반의 혼인율이 가장 높아졌다. 여전히 여성들은 사회가 주는 결혼과 출산에 대한 연령 규범의 부담을 안고 있겠지만 실제로는 이전보다 늦게 혼인을 하거나 아예 혼인을 하지 않는 방식을 통해서 탈표준화되고 있다. 이러한 탈표준화의 방향에 결혼이나 출산을 빨리 하려는 움직임은 잘 보이지 않고 있고, 반대로 결혼과 출산의 시기를 늦추거나, 아예 하지 않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은 특징적이라 할 수 있다.
3) 늦어진 출산 시기
혼인 시기가 늦어지면서 출산 시기도 함께 늦어지고 있다. 2000년에만 하더라도 여성은 평균적으로 20대에 결혼하고 출산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여성들은 30대 초반에 결혼하고 첫 아이를 낳는 경우가 가장 많아지고 있다. 다만 이 시기의 다른 청년들은 결혼과 출산을 하지 않는 상태로 인생 경로의 탈표준화를 경험하고 있기도 하다. 모두가 같은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선택적으로 결혼을 하지 않거나,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를 낳지 않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4) 성인 이행기 지연 요인으로서의 높은 니트 비율
이상에서 살펴본 것은 우리나라의 청년들은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까지 시간이 더 필요해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음 단계로의 시간이 연장된 이유는 인생을 즐기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까지가 더 험난해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만약,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 힘들어졌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타당하다면, 우리나라 청년들이 자주 경험하게 된 니트 상태(NEET: not in employment, education or training)의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탈표준화되는 인생 경로
지금까지 길어진 성인 이행기를 보여주는 지표와 이를 어렵게 만드는 지표에 대해 살펴보았다. 과거에는 결혼과 출산이 인생의 중요한 단계이며 개인이 따라야 하는 사회 규범으로 작용하였다. 이는 많은 이들이 결혼이 적합하다는 사회적 시기에 따라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하는 동기 혹은 추동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일반적 단계 혹은 표준화된 단계는 점차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결혼과 출산이 필수적인 생애 과업으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자신의 인생 과업으로서 결혼과 출산에 대한 인식은 변화하고 있다.
여성가족부에서 2020년에 시행한 「청소년종합실태조사」 자료를 보면, 13-24세의 청소년들은 ‘결혼은 반드시 해야 한다’에 대해 39.1%만이 ‘그렇다’고 응답하였다. 이는 2017년 51.0%에 비해 12%p 가량 하락한 수치이다. 특히 남자는 42.9%, 여자는 34.8%를 기록하였는데 이는 결혼에 대한 인식 변화가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에게도 나타나는 변화라는 걸 보여준다. ‘결혼을 하더라도 반드시 아이를 가질 필요는 없다’에 대해서는 60.3%가 동의하였다. 이는 2017년 조사 결과인 46.1%에 비해 증가한 수치이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청소년들이 ‘반드시’ 결혼이나 출산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생각을 점차 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의 청소년들에게는 점차적으로 결혼과 출산이 필수가 아닌 ‘선택’의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청년들의 결혼과 출산에 대한 인식 역시 ‘선택’의 영역으로 옮겨가고 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서 2016년~2021년까지 시행한 「청년사회·경제실태조사」 자료를 보면, 2016년 결혼과 출산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청년들은 전체의 50%가 넘었으나, 2021년 조사에서는 30%대로 줄어들었다. 대신 결혼과 출산을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는’ 청년들의 비율이 가장 많아졌다. ‘결혼할 필요 없음’과 ‘자녀를 가질 필요 없음’은 각각 6.6%와 7.3%로 아직은 소수에 불과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결혼과 출산은 반드시 해야 할 인생 과업은 아니지만, 기회가 되면 선택할 수 있는 여전히 선호되는 선택지라는 것이다.
요컨대 모든 사람이 결혼과 출산을 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수가 원하고 있으므로 여전히 결혼과 출산에 대한 지원은 필요하다. 다만 이를 선택하지 않는 사람들까지 변화시키려고 하기보다는 결혼과 출산을 선호하지만 이를 충족시킬 수 있는 조건과 환경에 있지 않은 사람들을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표준화된 인생경로를 강요하지 않고, 다양한 인생경로를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삶의 질 지원 정책으로의 전환이 필요한 시기이다.
저출산 정책과 청년 정책의 방향
이 글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저출산 정책은 더 생애주기적 관점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고, 생애주기적 관점에서 성인 이행기 동안의 자립 지원을 통해 결혼과 출산을 선택할 수 있도록 보완해야 한다. 성인 이행기에 있는 청년들이 자립을 하고, 그 이후 새로운 사회적 결속과 재생산을 위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관련 정책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그동안 이는 청년 정책의 영역도 아니었고 저출산 정책의 영역도 아니었으나, 이제는 함께 고민하고 실행해야 할 정책 영역이 된 것이다. 청년 정책에서 성인 이행기 자립을 지원하고, 저출산 정책에서 그 이후의 재생산과 관련된 지원을 담당하되 서로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청년 정책에서 모호하고 상징적으로만 다루어졌던 성인 이행기 자립에 대한 개념적 명확화와 실행 방안 정책화가 필요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다양한 정책 방향을 검토해볼 수 있다. 첫째, 성인 이행기 니트 청년의 지원이 필요하다. 성인 이행기가 지연되는데 일조하고 있는 니트 상태와 관련하여, 청년들이 니트 상태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사업이 더 확대되고 전문화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니트 상태에서 벗어나는 정책은 개인이 가진 권리 차원에서 제공될 수 있도록 구성되어야 하며, 권리적 차원의 정책지원은 유럽의 청년 보장(youth guarantee)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둘째, 성인 이행기 자립 시기를 앞당겨주는 지원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대학 학자금 대출을 갚느라, 그리고 결혼자금을 마련하느라 길어지는 시간을 줄여주는 것을 고려할 수 있다. 대학 졸업 후 학자금 상환을 위해 긴 시간을 쓰는 청년들을 위해 보편적인 무료 대학 교육을 상상해볼 수 있고, 교육 시기의 장학금과 생활비와 같은 지원금(stipend), 주거비 지원도 함께 고려해볼 수 있다. 이는 고등교육으로 인해 소요되는 비용을 상환하기 위해 쓰는 시간을 앞당겨줄 것이다. 셋째, 성인 이행기에 대한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다. 이는 기존에 개인과 가족의 지원에 의해 지원되고 투자되었던 교육, 결혼, 출산에 대한 부담을 사회적 부담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는 불균등하게 가족의 투자와 지원에 의해 큰 영향을 받았던 성인 이행기의 자립이 사회적 지원을 통해 보편적으로 균형 있게 이루어지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현 청년세대의 자립을 지원하여 결혼과 출산을 선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아이를 갖기 위해 고려해야 할 장기적 부담(자녀에 대한 교육/취업/결혼 지원)을 줄여주는데 기여할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과 같이 길어지는 성인 이행기는 단순히 개인적 변화가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나타나는 거대한 변화이다. 이는 특정 세대를 탓하고 출산을 강요하는 것으로 해소되기 어렵다. 힘든 성인 이행기를 경험한 청년들, 그리고 그 이후 단계를 위해 노력하지만 힘겨움을 느끼고 있는 청년들에게 국가를 위해 아이를 낳으라는 캠페인은 의미 없게 들릴지도 모른다. 이에 대한 사회정책적 함의는 “사회정책이 국가적 이익과 사회적 효용을 위하여 개인에게 결혼과 출산에 대한 선택을 강요하는 메시지를 던질 것이 아니라, 국가가 개인이 원하는 삶의 형태로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그러한 환경 속에서 자신이 선택한 인생에서 보다 나은 삶의 질을 누리도록 지원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이 자신의 인생에서 원하는 방향을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선택한 경로에 대해 지원해주는 방향으로 정책이 발전되길 기대한다.의 문제가 아니라, 장애인을 포함한 우리 모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1) 이 글은 2023년 2월 22일 보건복지부 ‘제1차 미래와 인구전략 포럼’에서 발표된 ‘성인 이행기 청년의 결혼, 출산 인식과 함의’를 토대로 작성되었다. 해당 발표는 ‘유민상, 신동훈, 신영규, 박미희(2022). 청년 사회 첫 출발 실태 및 대응 방안 연구II: 성인 이행기 청년의 자립. 세종: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보고서를 요약한 것임을 밝힌다
참고문헌
김기헌, 유민상, 배정희, 신동훈, 정지운(2021). 니트 등 비경제활동 청년층의 노동시장 유입을 위한 정책방안 연구. 세종: 고용노동부
여성가족부(2020). 2020 청소년종합실태조사. 서울: 여성가족부
유민상, 신동훈, 신영규, 박미희(2022). 청년 사회 첫 출발 실태 및 정책방안 연구II: 성인 이행기 청년의 자립. 세종: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Arnett, J. J. (2000). Emerging adulthood: A theory of development from the late teens through the twenties. American psychologist, 55(5), 469
2023. 4. 6.(목) 10시, 국회 소통관 선거제도 개혁에 관한 보수-진보 시민사회 공동기자회견 <사진=참여연대>
4월 10일부터 선거제도 개혁방안을 놓고 국회 전원위원회가 예정된 가운데 범시민사회단체연합 ·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4월 6일(목) 오전 10시,국회 소통관에서 더불어민주당 김영배 의원의 소개로 <국회는 비례성 강화와 지역구도 완화 위한 선거제도 개혁방안 논의하라> – 선거제도 개혁에 관한 보수-진보 시민사회 공동기자회견을 개최합니다.
2023년 1월 18일, 범시민사회단체연합 ·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초당적 정치개혁 진보·보수 시민사회 공동 기자회견’을 통해 △표의 등가성(비례성) 보장과 승자독식의 기득권 구조 타파, △특정 정당에 의한 지역 일당지배 체제 해소, △정당 공천의 문제점 개선 및 유권자의 참여권 확대 등 선거제 개혁의 3대 원칙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이후 이들 단체는 위 3가지 원칙에 입각해 각 단체의 기본 입장과 국회에 발의된 선거법 개정안에 대해 의견을 나눴고 아래의 합의를 이뤘습니다.
첫째, 국회의원 선거제 개혁에 있어 소선거구제를 유지할 경우,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고, 비례대표 의석은 획기적으로 늘려야 하며, 위성정당 방지 장치를 제도화해야 한다.
둘째, 다인선거구제를 채택할 경우, 대선거구제(5인 이상)를 도입하되 농어촌 및 인구희소 지역은 예외를 둘 수 있다(다만 1인 선거구는 불가). 이 경우에도 비례대표 의석은 늘려야 하며, 연동형과 병립형을 모두 검토 대상에 올릴 수 있다.
셋째, 첫째와 둘째 방안 모두 권역별 개방형 명부제, 지역구 비례 동시등록제를 검토할 수 있다.
국회 전원위원회가 4월 10일부터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혁에 대해 본격적인 논의를 예정하고 있지만, 기존 선거제도 개혁에 대한 평가와 개혁의 방향에 대한 국민적 의견 수렴이 여전히 미진하고, 정치개혁특위가 전원위원회에 제출한 세 가지 방안 역시 비례성과 대표성 확대라는 선거제도 대원칙에 비춰 매우 미흡합니다. 따라서 정개특위 의결안에 국한하여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기보다 이후 예정되어 있는 유권자 공론조사 등의 과정까지 고려해 선거제 개혁 방안에 대해 충분히 숙의 토론해야 합니다. 이에 범시민사회단체연합 ·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혁 논의의 원칙과 방향으로 삼아야 할 기준과 절차 등을 제시하고자 공동기자회견을 개최했습니다.
기자회견문
국회는 비례성 강화와 지역구도 완화 위한 선거제도 개혁방안 논의하라
대량의 사표를 발생시키고 민의를 왜곡하여 거대 양당의 기득권과 망국적 지역주의를 재생산하는 승자독식의 국회의원 선거제도는 오랫동안 우리 정치의 후진적 대립주의와 극단적 진영주의, 민심과 유리된 계파정치의 원인으로 지목되어 왔다. 획기적인 선거제도 개혁으로 한국 정치를 근본부터 바꿔야 한다는 열망은 더이상 거스를 수 없는 국민적 요구이다.
국회가 오는 4월 10일부터 20년만에 전원위원회를 개최, 선거제도 개혁에 관한 본격적인 토론을 시작한다. 지난 1월 18일, 보수 시민사회단체들의 연대체인 범시민사회단체연합과 진보 시민사회단체들의 연대체인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국회의원 선거제의 개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할 원칙으로 표의 등가성 보장과 승자독식의 기득권 구조 타파, 특정 정당에 의한 지역 일당지배 체제 해소, 정당 공천의 문제점 개선 및 유권자의 참여권 확대 등 3대 원칙에 합의하고 천명한 바 있다.
그러나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3월 22일 최종 제안한 세 가지 선거제도 결의안은 이러한 선거제도 개혁의 대원칙에 비추어 볼때 비례성과 대표성을 높이는 데 미흡해 보여 우려된다. 특히 비례대표 의석의 확대와 위성정당을 방지할 대안이 구체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 문제이다. 따라서 제 국회의원은 전원위원회를 진행함에 있어 비례성과 대표성 확대의 한계가 뚜렷한 3개 결의안에 국한하여 논의해서는 안된다. 소속 정당의 유불리나 자신의 지역구를 지키려는 사사로운 이익이 아니라 국회 개혁의 대원칙에 가장 걸맞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진중하게 고민하고 국민 앞에 제안해야 할 것이다.
한편 선거제도는 주권자 국민이 자신을 대리할 대표를 구성하는 과정으로, 그 제도를 개편하는데 있어서 심도 깊은 토론과 국민적 대화의 과정이 필요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다. 비록 현실적으로 선거구 획정의 법정 시한을 맞출 수 없을 정도로 지체되긴 했으나, 이제라도 국민 여론을 수렴하기 위한 공론조사를 시작하게 된 것은 다행이다. 다만 현재 제시된 로드맵 만으로는 시일이 촉박하고 성급하여 얼마나 내실 있게 조사될 것인지 낙관하기 어렵다. 또한 이렇게 도출된 결과가 국회의 논의과정에 어떻게 반영될 것인지에 대해서도 공개된 바가 없다. 비록 획정 시한은 준수하기 어렵게 되었지만, 그런 만큼 국회는 국민들의 의사가 논의 과정에 충실하게 반영될 수 있도록 향후 절차와 일정을 잘 조율해야 할 것이다.
선거개혁에 단 하나의 정답은 없다. 지향해야 할 원칙과 지켜야할 절차가 있을 뿐이다. 진보-보수 시민사회는 이런 원칙과 절차를 거쳐 도출된 대안이 국민에게 희망을 줄수 있는 정치를 가져오기를 희망하며, 비례성과 대표성의 강화라는 당초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충족해야 할 최소한의 조건에 대해 아래와 같이 제안한다.
첫째, 국회의원 선거제 개혁에 있어 소선거구제를 유지할 경우,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고, 비례대표 의석은 획기적으로 늘려야 하며, 위성정당 방지 장치를 제도화해야 한다.
둘째, 다인선거구제를 채택할 경우, 대선거구제(5인 이상)를 도입하되 농어촌 및 인구희소 지역은 예외를 둘 수 있다(다만 1인 선거구는 불가하다). 이 경우에도 비례대표 의석을 늘려야 하며, 연동형과 병립형을 모두 검토 대상에 올릴 수 있다.
셋째, 첫째와 둘째 방안 모두 권역별 개방형 명부제, 지역구 비례 동시등록제를 검토할 수 있다.
국회는 보수와 진보 시민사회가 당파와 이념을 초월하여 마련한 위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앞으로 예정된 선거제 논의 일정에 최선을 다해 임해야 한다. 선거 개혁의 성패는 국회가 얼마나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열고 다가가느냐에 달려 있다. 국민의 열망에 답하고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는 국회가 될 수 있도록, 국회 또한 여야의 정략적 이해관계를 뛰어넘어 합의된 개혁안을 마련하라.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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