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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 회원이 뽑은 2015년 뉴스타파 10대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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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 회원이 뽑은 2015년 뉴스타파 10대 보도

익명 (미확인) | 목, 2015/12/31-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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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대표적 화가 이중섭·박수근 화백 작품의 대규모 위작 의혹 사건과 관련해 법원이 1심과 2심에서 모두 위작이라는 결론을 내렸지만 정작 이를 뒷받침할 과학적 증거는 희박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2심 재판부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그림물감 분석에서 위작으로 볼만한 과학적 증거가 나오지 않은 감정 결과는 배제한 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예상된다.

통상적으로 미술품의 진위 여부는 안목감정, 과학감정, 자료감정을 종합해 판단한다. 안목감정은 해당 작가의 그림을 오래 접한 전문가가 직관으로 위작 여부를 가르는 것이다. 하지만 안목감정은 주관적이기 때문에 객관적인 과학감정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이중섭·박수근 위작 의혹 사건 재판에서 과학감정의 핵심은 물감의 성분인 산화티탄피복운모의 존재 여부와 그림에 기재된 서명이었다. 산화티탄피복운모가 들어간 물감이 1980년대에 개발돼 사용됐기 때문에 만약 위작 의혹을 받는 그림에서 이 성분이 검출된다면 진품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 2심까지 위작 판결이 난 김용수 씨 소장 그림들.

▲ 2심까지 위작 판결이 난 김용수 씨 소장 그림들.

산화티탄피복운모 존재 여부와 서명이 쟁점

이 때문에 지난 2012년 2심 재판 과정에서 피고인이자 위조 논란 작품 소장자인 김용수 씨의 변호인은 법원에 물감 성분 분석을 요청했고, 재판부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정을 의뢰했다. 국과수는 위작 논란 그림 17점에 대해 1차로 X선 형광기 분석을 했다. 그 결과 7점에서 산화티타늄의 성분인 티타늄과 운모의 주성분인 규소가 검출된다. 그리고 2차 X선 회절기 분석에서 산화티타늄이 검출된 동일 부위에서 운모도 검출되는지 확인했다. 그 결과 운모는 검출되지 않았다.

2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국과수 2차 감정 결과는 반영하지 않고 1차 감정 결과만을 토대로 “산화티타늄의 주성분인 티타늄과 운모의 주성분인 규소가 동시에 검출된다면 높은 확률로 산화티탄피복운모가 존재한다고 추정된다”고 판시했다. ‘추정된다’는 것은 산화티탄피복운모가 존재할 수도 있지만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위작 논란 그림 소장자 김용수 씨가 사기 혐의 등으로 기소된 형사사건에서 이렇게 추정을 근거로 유죄 결론을 내리는 것은 형사소송법은 물론 대법원 판결에도 배치된다는 지적이다.

대법원은 1987년 “형사재판에서 유죄의 증거는 형사소송법상 엄격한 증거여야 한다”며 “그 증명력도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의 확신을 생기게 할 수 있는 우월한 증명력을 가진 것이어야 한다”고 판결한 바 있다. 오길영 신경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형사소송법에 의하면 법관은 자유 심증을 할 수 있지만, 유죄 입증의 증거에 대해서는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없어야 한다”며 “단순히 추정되는 정도 가지고 유죄 입증의 증거로 사용됐다면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법원의 감정 의뢰를 받은 그림들에서 “산화티타늄이 검출된 부위에서 운모는 검출되지 않았다”는 감정 결과를 내놨다.

▲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법원의 감정 의뢰를 받은 그림들에서 “산화티타늄이 검출된 부위에서 운모는 검출되지 않았다”는 감정 결과를 내놨다.

추정되는 증거로 유죄 판결?

더군다나 국과수는 재판부의 사실 조회에 대한 답변에서 ‘산화티타늄이 피복된 운모’와 ‘산화티타늄과 운모의 혼합물’을 구별할 수 있는 장비를 보유하고 있지 않아 결과적으로 산화티탄피복운모 확인 시험은 불가하다는 입장을 전했다. 결국, 국과수의 감정 결과로는 위작 여부를 과학적으로 판단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이에 대해 2심 재판장은 공보담당판사를 통해 뉴스타파에 “판결문 외에는 할 말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서울중앙지검은 2005년 국과수에 필적 감정도 의뢰했다. 국과수는 진품에 있는 서명과 비교했을 때 “같은 필법으로 작성된 것으로 보기 어렵다”면서도 “객관적인 단정은 곤란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같은 필법으로 보기 어렵다”는 부분만 판결문에 인용했다.

재판부는 위작 여부 판단에 있어서 전문가들의 안목감정에 기댔다. 2005년 서울중앙지검의 요청으로 안목감정에 참여한 16명의 전문가는 대부분 “위작으로 보인다”는 의견을 내놨다. 16명의 전문가 감정단은 평론가와 교수 9명, 화가 4명, 화랑대표 3명으로 구성됐다.

하지만 국내 미술품 감정학 분야의 권위자인 한 미대 교수는 “작가에 대해 A부터 Z까지 연구한 사람만 그림의 진위를 얘기할 수 있다”며 “(그동안 이뤄진) 많은 사람의 논의가 전부는 아니겠지만, 상당 부분이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2013년 2심 판결 후 대법원은 3년째 위작 여부에 대해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대법원이 1, 2심 재판부의 결론을 그대로 유지할지 그 결과가 주목된다.

목, 2015/08/20-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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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도 4월 16일입니다.

세월호 참사 2주기인 지난 16일, 많은 비가 내리는 가운데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 참사 2년 기억, 약속, 행동문화제’ 가 열렸다.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1만 2천여 명의 시민들이 모여 늦은 시간까지 자리를 지키며,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미수습자들이 돌아오기를 염원했다.

월, 2016/04/18-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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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탐사저널리즘네트워크(GIJN)가 주최한 제 9회 국제탐사보도총회(GIJC)가 지난 10월 8일부터 11일까지 노르웨이 릴레함메르에서 120개국 9백여 명의 탐사 저널리스트들이 참가한 가운데 열렸습니다.

2년에 한 번 전 세계 탐사보도 전문 언론인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자신들의 보도 성과와 취재 기법을 공유하는 이 총회에는 올해도 뉴욕타임스와 프로퍼블리카, BBC, 가디언 등 유력 매체뿐만 아니라 3세계 탐사보도 전문 기자들도 대거 참가했습니다.

이번 릴레함메르 총회에선 나흘 동안 주제 별로 150여 개의 세션이 진행된 가운데, 지난해 4월 GIJN의 정식 회원사로 등록된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 /뉴스타파도 2개 세션에 공식 초청 받아 보도 성과와 조직 운영 사례를 발표했습니다.

뉴스타파 취재진은 전세계에서 최근 보도된 주요 탐사프로젝트를 소개하는 세션에서 해방 70년 특별기획 ‘친일과 망각’의 핵심 내용과 취재 과정, 보도의 파장 등을 소개했습니다. 또 탐사매체의 새로운 모델을 소개하는 세션에서는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의 출범 배경과 주요 보도물, 그리고 3만 5천 명의 안정적인 후원 모델을 유지해온 비결 등을 발표해 큰 관심을 모았습니다.

이번 총회는 자본과 권력의 영향에서 독립한 비영리 탐사매체가 저널리즘의 새로운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릴레함메르 총회의 주요 내용과 의미, 그리고 뉴스타파의 발표를 영상 리포트로 정리했습니다. 또한 이번 총회에서 뉴스타파와 함께 주목받은 독일 최초의 비영리 탐사매체 ‘코렉티브’를 직접 탐방해 설립 동기와 주요 활동 상황 등을 인터뷰 영상으로 구성했습니다.

월, 2015/10/1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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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0월 18일.

박정희 유신독재 반대를 외치는 마산 시민들의 시위가 격렬했던 당일 밤, 유치준(당시 51세) 씨는 실종됐다. 퇴근 시간이 한참 지나고 통금을 알리는 사이렌이 울리고 나서도 유 씨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당일 격렬한 시위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된 가족들은 다음날 경찰서와 의료원을 찾아가 수소문을 했지만 아버지를 찾을 수 없었다.

부산과 마산을 중심으로 부마민주항쟁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에 맞아 숨졌다. 며칠 지나지 않아 경찰 두 명이 유치준 씨 집을 찾아왔다. 경찰은 “아버지가 숨진 채 발견됐다”고 일러줬다. 경찰은 가족들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이미 부검에 가매장까지 한 상태였다. 아버지의 소지품에는 주민등록증이 있었다. 그런데 경찰은 뒤늦게 가족에게 아버지가 숨졌다는 사실을 알린 것이다. 박정희가 죽지 않았다면 가족들은 영원히 아버지의 행방을 모른 채 살았을지도 모른다.

도시락 안에서 뒤늦게 주민등록증을 발견했다고 이야기 하더라고요. 아버지는 회사 가실 때 항상 도시락을 들고 가셨거든요. 도시락 안에 주민등록증이 있을 이유가 없잖아요. 제가 어린 나이에도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니까요.

당시 열아홉 살이던 유치준 씨의 아들 유성국 씨는 “도시락 안에 주민등록증이 있었다”는 경찰의 말이 의아했지만 더 이상의 진실을 알 수 없었다. 너무 어렸고 시절은 엄혹했다. 그렇게 30년의 세월을 보낸 가족들은 2011년 지인의 소개로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를 찾게 된다. 그 곳에서 기념사업회 관계자들과 가족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 부마민주항쟁 당시 유일한 사망자인 고 유치준 씨의 가족들. 하지만 정부는 아직까지 유치준 씨를 부마민주항쟁 관련자로 인정해주지 않고 있다.

▲ 부마민주항쟁 당시 유일한 사망자인 고 유치준 씨의 가족들. 하지만 정부는 아직까지 유치준 씨를 부마민주항쟁 관련자로 인정해주지 않고 있다.

부마민주항쟁 기념 단체들은 1989년 부마항쟁 10주년을 기념해 자료집 한 권을 발간했다. 이 자료집에는 부마항쟁 당시 사건을 취재했던 기자들의 취재 보고 기록이 남아 있다. 거기에는 “50여 세로 보이는 노동자가 대림여관앞 도로변에서 죽어 있었다”는 내용이 비교적 자세하게 기록돼 있다. 시신이 발견된 장소, 나이, 옷차림 등이 모두 유치준 씨와 일치했다. 부마민주항쟁 당시 유일한 사망자의 신원이 처음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3년 5월 국회에서 부마민주항쟁 관련자의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부마항쟁보상법)이 통과됐다. 부마항쟁 진상규명과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부마민주주의재단 설립은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 시절 과거사에 대한 비판을 피하고 영남 민심을 달래기 위해 부마항쟁 관련 공약을 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법이 통과된 이후에도 1년 넘게 위원회 구성을 차일피일 미루다가 부마민주항쟁 35주년을 며칠 앞둔 2014년 10월이 돼서야 위원을 임명했다.

유치준 씨 가족은 부마항쟁 진상규명위가 설립되자 아버지를 부마항쟁 관련자로 인정해 달라고 신청했다. 하지만 가족들은 정부로부터 또 한번 상처를 받아야 했다. 위원회는 어떻게 구성돼 어떤 활동을 해온 것일까.

위원회 구성에 1년을 허비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위원 선정에서 또 한번 실망을 안겼다. 행정자치부 장관, 경상남도지사 등 당연직 위원 4명을 제외하고 박 전 대통령이 임명한 10명의 위원 중에 4명은 박근혜 선거 캠프 또는 인수위 출신, 2명은 박정희와 역사교과서를 옹호하는 인사들이었다. 위원의 3분의 2 이상이 이른바 ‘친박’ 인사들로 구성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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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마항쟁보상법상 본위원회에는 부산과 창원의 부마항쟁 관련 단체가 추천하는 2인이 반드시 위원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박 전 대통령은 기존에 수십년 동안 활동해온 기념사업회가 아니라 2013년 법률 제정 이후 설립 등기를 한 ‘동지회’라는 단체에서 추천한 인사들을 위원으로 임명했다. 부산동지회, 마산동지회는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 지지 기자회견을 했던 인사들이 가입해 있는 단체였다. 기념사업회 추천 인사들은 본위원회에서는 배제된 채, 2개의 실무위원회에만 위원으로 임명됐다.

진상규명위의 운영도 파행이었다.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은 철저히 비밀에 가려졌다. 기념사업회에서 추천된 일부 위원들이 제대로 진상규명을 해보려 애썼지만 역부족이었다. 기념사업회 추천 실무위원 4명은 지난해 10월 “더 이상 들러리 노릇을 할 수 없다”며 사퇴했다.

특히 진상규명위는 유치준 씨 사건과 관련해 당시 창원지방검찰청이 작성한 1장 짜리 검시사건부를 찾는 것 외에 조사의 성과를 얻지 못한 채 서둘러 ‘관련자 아님’으로 결정을 내리려다 기념사업회 추천 실무위원들의 반발을 샀다. 결국 유치준 씨의 가족이 신청을 철회했다.

▲ 1979년 10월 부마민주항쟁으로 부산과 마산에서 연행된 시민은 1600여명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지난 2014년 10월 부마민주항쟁 진상규명위가 출범한 후 관련자로 신청한 사람은 194명에 불과하다. 이 중 166명은 인용되고 28명은 기각됐다.

▲ 1979년 10월 부마민주항쟁으로 부산과 마산에서 연행된 시민은 1600여명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지난 2014년 10월 부마민주항쟁 진상규명위가 출범한 후 관련자로 신청한 사람은 194명에 불과하다. 이 중 166명은 인용되고 28명은 기각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탄핵됐지만 현재 진상규명위는 박 전 대통령이 임명한 위원들 그대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진상규명위는 오는 10월까지 진상조사를 마치고 내년 4월까지 보고서를 내게 돼 있다. 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임명한 위원 조차 현재 상태에서는 보고서를 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진상조사보고서가 자칫 국정교과서처럼 관련 단체들의 인정도 받지 못한 채 용도 폐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취재 조현미
촬영 정형민 김기철 김남범 오준식
편집 박서영 이선영
CG 정동우
그래픽 하난희

목, 2017/08/24-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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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스포츠토토, 빙상팀 창단 대가로 160억 벌었나?

최순실은 공공기관이나 대기업에 스포츠팀 창단을 압박해 이권을 챙기려 했습니다. 최순실 그룹이 개입해 가장 먼저 만들어진 스포츠팀은 스포츠토토 빙상팀. 그런데 뉴스타파 취재 결과 지난해 빙상팀이 창단되고 얼마 되지 않아 스포츠토토 발행규모가 대폭 늘어난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2) 스포츠토토 실소유주, “박 대통령을 누나라 불렀다”

스포츠토토 운영사인 케이토토에는 화려한 경력의 정관계 출신 인사들이 즐비합니다. 국회 수석전문위원, 기획재정부 차관보, 국회의원을 지낸 인사들이 요직을 맡고 있습니다. 고문 직함을 갖고 있는 케이토토 실소유주가 대통령은 물론 문고리 3인방과 친분이 있다는 증언도 나왔습니다.


클로징 멘트

그동안 드러난 여러 사례를 보면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일당은 거래를 하면서 대가를 분명히 지불한 걸로 보입니다. 삼성에는 세습을, sk에는 사면을 줬고, 롯데에는 면세점 문제와 검찰 수사 무마를 대가로 거래를 한 정황이 있습니다. 그리고 케이토토에는 스포츠토토 발행 총량을 비상식적으로 늘려주는 특혜를 주면서 빙상팀을 받아낸 것으로 보입니다.

이 과정에서 최순실의 개인 비서 역할을 한 김종 차관이 총대를 맸습니다. 스포츠토토는 그동안 사행성 시비가 끊이지 않았던 사업입니다. 박근혜대통령과 최순실 일당이 국가가 직접 도박판을 벌인다는 비판을 받는 이 사업을 이용해서 자신들의 뱃속을 채우는 비리를 저질렀다면 그것은 악랄한 권력의 막장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부디 특검이 스포츠토토에 얽힌 비리 의혹을 철저히 파헤쳐주기 바랍니다. 저희는 앞으로도 박근혜 정부와 최순실, 그리고 케이토토 간에 어떤 거래가 있었는지 계속 취재하겠습니다.

목, 2017/01/1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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