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콘텐츠로 건너뛰기

[목격자들]비온 후 맑음, 해밀학교

지역

[목격자들]비온 후 맑음, 해밀학교

익명 (미확인) | 월, 2015/11/30- 07:05

강원도 홍천에 위치한 다문화 학생들을 위한 기숙형 대안학교인 ‘해밀학교’. 가수 인순이씨가 지난 2013년 자신과 같은 다문화 학생들을 위해 설립한 이 학교에는 필리핀, 중국, 일본, 베트남 등 여러 국가의 다문화 아이들 15명이 동거동락하며 학교 생활을 하고 있다. ‘해밀’은 비온 후 맑게 갠 하늘을 뜻한다고 한다. 이곳의 아이들은 세상에서 얻은 상처를 치유하며 하루하루 성장해가고 있다.

1. ‘다름’이 조화를 이루는 학교

내년이면 졸업을 하게 되는 열일곱 살 은미. 은미는 일본인 엄마와 한국인 아빠 사이에서 태어났다. 평소에도 표정에서 웃음이 사라지지 않을 정도로 긍정적이고 친근한 성격이지만 이곳에 오기 전에 다니던 일반 학교에서는 ‘일본’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식은땀을 흘릴 정도로 난처한 경험들이 많았다.

▲ 일본인 어머니와 한국인 아버지 사이에 태어난 심은미(17), 졸업을 앞둔 은미는 졸업 후에도 자신이 해밀학교에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을지 고민 중이다.

▲ 일본인 어머니와 한국인 아버지 사이에 태어난 심은미(17), 졸업을 앞둔 은미는 졸업 후에도 자신이 해밀학교에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을지 고민 중이다.

일본을 얘기할 때마다 친구들이 저를 보는 시선이 힘들었어요. 친구들이 쪽발이라고 놀리기도 했고, 또 너희 나라로 가라는 욕도 많이 들었어요.
– 심은미

어머니의 국적이 필리핀인 기호도 해밀학교에 오기 전에는 같은 학교 친구들로부터 놀림받기 일쑤였다. 그 정도가 심해지던 어느날 친구들이 자신을 ‘필리핀 쓰레기’라고 불렀던 순간을 기호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은미나 기호 뿐만이 아닌 이곳 해밀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들 대부분은 이렇듯 우리와 다르다는 이유로 크고작은 상처를 지닌 채 이곳에 모였다. 아이들은 이곳에서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리고 그 다름을 존중한다. 세상을 조화롭게 살기 위해 서로 다름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배운다.

▲ 필리핀 어머니와 한국인 아버지 사이에 태어난 정기호(15). 해밀학교에서 자신의 가치를 존중받는 학교 생활을 하고 있다.

▲ 필리핀 어머니와 한국인 아버지 사이에 태어난 정기호(15). 해밀학교에서 자신의 가치를 존중받는 학교 생활을 하고 있다.

2. 내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깨우치는 교육.

해밀학교에서는 다른 학교에서는 보지 못하는 특별한 교육이 있다. 아이들이 교사들과 함께 일년 내내 텃밭을 일구는 것이다. 파종부터 시작해 퇴비를 주는 것, 가을이면 수확하는 일까지 모두 학생들의 몫이다. 책에서 보고 배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농사를 지어가며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매년 11월이 되면 학생들은 직접 수확한 배추, 무 등으로 김장도 한다.

▲ 지난 11월 중순, 해밀학교 아이들과 교사, 지역주민들은 올 한해 손수 키워온 배추, 무 등으로 김장을 했다.

▲ 지난 11월 중순, 해밀학교 아이들과 교사, 지역주민들은 올 한해 손수 키워온 배추, 무 등으로 김장을 했다.

서로 돕는다는 것의 소중함을 배우고 개개인의 가치를 일깨워주는 교육을 통해 해밀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자존감을 가질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서로의 생각을 색깔로 표현하는 수업내용 뿐 아니라 결과 보다는 과정을 중시하는 교육을 통해 아이들은 주입받지 않고 스스로 생각하고 성장하며 ‘나’에 대해 고민한다.

▲ 미술에 재능이 있는 최미란(16), 엄마가 필리핀 출신인 미란이는 이곳에서 자신의 꿈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었다.

▲ 미술에 재능이 있는 최미란(16), 엄마가 필리핀 출신인 미란이는 이곳에서 자신의 꿈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었다.

3. 해밀학교 졸업 후, 아이들은 계속 행복할 수 있을까?

▲ 2013년 첫 문을 연 ‘해밀학교', 이제 곧 첫 졸업생을 배출한다. 졸업 후 아이들은 일반고로 진학을 하거나 대안학교로 진학한다고 한다.

▲ 2013년 첫 문을 연 ‘해밀학교’, 이제 곧 첫 졸업생을 배출한다. 졸업 후 아이들은 일반고로 진학을 하거나 대안학교로 진학한다고 한다.

내년 2월이 되면 해밀학교는 개교 후 첫 졸업생 5명을 배출하게 된다. 졸업 후 아이들은 다시 일반 학교에 진학하거나 지금처럼 대안학교에 진학할 수 있다. 하지만 아이들은 졸업이 두렵기도 하다. 자신에게 상처를 던져 준 세상으로 돌아가는 일이 아직은 쉽지 않은 것이다. 해밀학교에서 보낸 3년의 시간, 아이들은 이 시간을 통해 충분히 치유받고 성장했다. 그러나 이 아이들이 이곳을 떠나도 이곳에서 만큼 행복할 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우리 사회는 이 아이들의 상처를 보듬고 서로 다름을 인정할 충분한 준비가 되어있는가?


취재작가 박은현
글 구성 김초희
연출 박정대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

Plain text

  • 웹 페이지 주소 및 이메일 주소는 자동으로 링크로 전환됩니다.
  • 줄과 단락은 자동으로 분리됩니다.
  • 사용할 수 있는 HTML 태그: <a href hreflang> <em> <strong> <cite> <blockquote cite> <code> <ul type> <ol start type> <li> <dl> <dt> <dd>
이미지
무제한 수의 파일을 이 필드에 업로드할 수 있습니다.
50 MB 한계입니다.
허용된 유형: png gif jpg jpeg.
Enter the YouTube URL. Valid URL formats include: http://www.youtube.com/watch?v=1SqBdS0XkV4 and http://youtu.be/1SqBdS0XkV4.
CAPTCHA
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또다시 등록금의 계절입니다. 설 연휴를 앞뒀지만, 많은 대학생들의 마음은 편치 않다고 합니다. 여전히 아르바이트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비싼 등록금 때문입니다.

등록금 관련해서 어제도 엄마랑 얘기를 했었는데 ‘어떻게 할 거냐’라고 했을 때 ‘대출받아야지’… 아르바이트로 등록금에 보태는 건 어림도 없어요. 3개월 동안 일해서 등록금에 보탤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애초에 등록금의 새 발의 피도 안돼요.
– 강태영/ 한양대 4년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후보 당시 ‘반값등록금’ 공약을 내걸어 대학생들의 표심을 샀습니다. 그리고 집권 3년 차인 지난해 12월, 교육부는 지하철과 시내 버스, KTX, 영화관 등에 ‘반값등록금’ 공약이 실현됐다는 광고를 게재했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반값등록금’ 공약은 실현됐을까요?

2016020501_01

박근혜 정부는 현재 ‘소득연계형 반값등록금’ 정책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 학부모의 재산과 소득 수준에 따라 차등적으로 국가 장학금을 지급해 등록금을 낮춘다는 것입니다. 장학금 지급은 한해 70여만 원에서 최대 480만 원까지로, 모든 학생들이 조건없이 ‘반값 등록금’ 혜택을 보는 것은 아닙니다.

더욱이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 시절, 저소득층인 1분위 2분위에 속한 학생의 경우 전액 지원을 약속했지만 이마저 지켜지 못했습니다. 현재 정부에서 지급하는 국가장학금은 소득분위 1,2분위인 경우는 480만 원, 3분위는 360만원 입니다. 2014년 사립대학교 한해 평균 등록금이 733만 가량인 점을 비춰볼때, 1~3분위에 속해야만 ‘반값등록금’ 혜택을 받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1~3분위에 해당되는 대학생들은 전체 대학생 320여만 명 중 18%에 불과합니다. 대학생 5명 가운데 1명만이 ‘반값등록금’ 을 선별적으로 지원받은 셈입니다.

2016020501_02

한 증권사에서 발간한 ‘2016 대한민국 증산층 보고서’를 볼까요. 가령 평균 2억 상당의 주택과 중형차를 소유하고, 월 소득이 375만 원의 가정의 학생이 경우, 정부계산대로 하면 소득 7분위에 해당합니다. 소득 7분위는 한해 67만원 정도를 지원 받는 데 그칩니다. 한 해 내야 하는 등록금의 10% 수준으로 이들 학생에게 ‘반값등록금’은 다른 나라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체감도가 그렇다는 이야깁니다.

하지만 정부의 설명은 다릅니다. 교육부는 2011년 기준 등록금 총액 14조원의 절반인 15년 7조 원 규모의 액수를 지원하기에 평균적으로 50%를 경감했다고 주장합니다. 이를 두고 ‘반값등록금’을 실현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학생들 모두의 등록금을 반으로 낮추진 않았지만 총액의 셈법으로 절반으로 줄였기 때문에 ‘반값등록금’이 실현됐다는 것입니다.

▲ 대한민국의 대다수 대학생들은 비싼 등록금 부담은 물론 주거난과 취업난 등 3중고를 겪고 있다.

▲ 대한민국의 대다수 대학생들은 비싼 등록금 부담은 물론 주거난과 취업난 등 3중고를 겪고 있다.

우리나라 대학의 80%를 차지하는 사립대학의 한해 평균 등록금 액수는 733만 원 가량으로, OECD 국가 중 미국에 이어 두번째 높습니다. 등록금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높지만, 취업률은 최저 수준입니다. 상당수 학생들은 졸업과 동시에 대출 빚더미에 앉을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 “반값등록금이 실현됐다”는 정부의 홍보 광고,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논란은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취재작가 : 이우리
글.구성 : 김초희
연출 : 박정대

금, 2016/02/05- 17:25
513
0

2016년. ‘붉은 원숭이의 해’ 병신년 새해가 밝고 한달이 지났습니다.

‘4.13 총선’은 두달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19대 국회가 4년의 임기를 채우는 동안 시민들의 삶은 어떻게 변했을까요? 지난 총선 전보다는 조금 나아 졌을까요?

witness4_preview_01

뉴스타파 <목격자들>의 권오정 피디가 지난 2주 동안 부산, 대구, 광주 시민들에게 경제와 정치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들어봤습니다.

목, 2016/02/11- 18:59
86
0

2016년. ‘붉은 원숭이의 해’ 병신년 새해가 밝고 한달이 지났습니다. ‘4.13 총선’은 두달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19대 국회가 4년의 임기를 채우는 동안 시민들의 삶은 어떻게 변했을까요? 지난 총선 전보다는 조금 나아 졌을까요?

2016021200_01

이번주 <뉴스타파 목격자들>에서는 시청자 여러분께 경제와 정치에 대한 시민들의 생각을 전해드리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난 2주 동안 부산, 대구, 광주를 찾아, 70 여 명의 시민들을 만났는데요. 이들에게서 어떤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을까요?

아, 제 소개를 깜빡 했네요. 저는 뉴스타파 <목격자들>의 듬직함을 맡고 있는 막내 권오정 PD라고 합니다.

처음으로 간 곳은 바로 대한민국 ‘제2의 도시’. 부산입니다. 여러분들은 부산하면 어떤 것이 떠오르나요?

2016021200_02

도착하고 나니 허기도 졌겠다, 먹거리가 풍성한 시장부터 생각이 나더라고요. 지난해 인기를 끌었던 영화 <국제시장>의 ‘꽃분이네’가 떠올랐지만, 부산하면 이곳을 빼놓을 수 없죠. ‘자갈치 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자갈치 시장까지는 택시를 이용했습니다. 수많은 시민들의 발이 돼주고 하루 열 시간 넘게 차 안에서 라디오를 들으며 세상 소식을 접하는 택시 운전사님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을까요?

2016021200_03

기득권 층이 욕심을 조금 버리면 되는데 기득권 층이 욕심을 못 버린다 아닙니까. 남을 안 울리고는 내가 일어서기가 힘들죠. 지금은 남을 울려야 내가 일어서죠.

운전사님의 말이 메마른 우리 삶의 현실을 너무 잘 반영한 탓일까요. 가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2016021200_04

2016021200_05

바다가 보이고 갈매기가 보이니 비로소 부산에 온 거 같네요. 게다가 기타치는 할아버지까지… 제가 본 부산은 여전히 낭만이 가득합니다.

2016021200_06

명성에 걸맞게 자갈치 시장은 꼬막과 꼼장어 등 온갖 해산물이 가득했습니다. 시장 안 회센터는 몇 년 전 리모델링도 하고 ‘친절’, ‘투명’ 상거래로 새롭게 단장했습니다.

2016021200_07

자갈치 시장의 ‘아지매’들은 20년 이상 장사를 해온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수십 년 생선 좌판으로 자식을 대학에 보내기도 하고 생계를 꾸려왔죠.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들이닥친 불경기에 많이 힘들다고 합니다.

2016021200_08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장사가 잘 안돼요?
– 그래도 안 돼. 돈이 없으니까 안 사. 손님들이 돈이 없으니까 그냥 왔다갔다 봐봐라 한 번.

지난달 0%대인 소비자물가상승률만 보면 상인들의 이런 성토가 의아할 수 있지만 그건 단순한 지표에 불과합니다. 서민들이 실제 피부로 느끼는 ‘장바구니 물가’는 고공 행진 중이기 때문입니다.

2016021200_09

지금은 사람들 주머니 사정이 어려워서 주머니가 안 열려요. 옛날에는 10만 원 쓰기도 쉽게 썼는데 지금은 2, 3만원 한정된 금액에서만 쓰고 그래요. 물가가 자꾸 올라가니까 소비자도 겁이 나서 사러 올 수가 없는 거야… 물가가 오르니 쉽게 물건을 사지 못하는 소비자들 어떻게 좀 잘살 수 있는 방법 없을까요? 괴롭다 진짜..
– 정풍옥/자갈치 시장 상인

평소에는 보이지 않다가, 선거만 다가오면 ‘민생’을 앞세워 얼굴 내미는 지역구 정치인들에 대한 원망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2016021200_10

부산은 새누리 정치인들이 하고 있는데 굉장히 어렵죠. 선거 때나 하면 찾아오거든요 얘기합니다. 저희들은 간절하다는 이야기밖에 안 해요. “제발 도와주십시오”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그러면 민생 이야기 합니다. 민생에 대해서 정말 신경 많이 쓰겠다. 그런데 민생에 대해서 민자도 안 나옵니다 실제로. 부산 대구 전라도 광주 공천만 받으면 당선이 되니까. 일을 안 하잖아.

이런 부산 시민들의 원망 섞인 목소리를 정치인들이 들어야 할 텐데요.

2016021200_11

또다른 지역. 광주 시민들의 생각은 어떨까요? 부산과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시민들은 ‘편 가르는 정치’보다‘ 지역을 위한 일꾼’을 원했습니다. 정치인들은 이 같은 시민들의 마음을 알고 있을까요?

내가 지금까지 야당을 믿어왔는데. 야당 사람들이 너무 자기 밥그릇 챙기기만 바쁘니까. 차라리 그럴 바에는 새누리당 찍고 싶어.
– 나양수(55세)/ 장사 30년

2016021200_12

야당이 광주가 터전이라고? 아무리 터전이라도 잘해야지. 믿을 수는 없어. 사람들이 지금은 다 안 속아. 때로는 새누리당 찍고 싶어 때로는.
– 조효자 / 장사 36년

140개국 가운데 하위권인 ‘94위’. 정치인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 순위입니다. 국민 10명 중 8명은 ‘입법부 즉 국회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조사도 있습니다. 부산, 광주를 오가며 직접 들어본 민심이 이런 수치와 크게 다르지 않네요.

2016021200_13

힘들어진 삶이지만 재래 시장에서 홍어를 파는 아주머니께서 “한 점 먹어보라”며 후한 시장 인심을 보여주기도 하셨습니다. 참고로 저는 홍어를 좋아합니다.

2016021200_14

진짜 맛있다. 진짜 맛있어요. 남는 거 없어서 어떡해요?
– 아이고메~ 쬐까 남겨 묵지 20원 남길 거 10원만 남기면 되지

고마움을 뒤로하고 저는 마지막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고향. 대구로 갔습니다. 아시다시피 대구, 경북 지역은 지난 19대 총선에서 27개 의석 모두 새누리당에 돌아갈 정도로 여당 강세 지역입니다.

2016021200_15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하시는 분들도 많은데
– 네네. 접니다.
이제 막 진박이네 그런 말들이 있는데 실제로 대구에서는 어때요?
– 대구에서도 아무래도 좀 그런 거는 새누리당을 찬성해줘야 합니다.

현 정부를, 박근혜 정부를 살려줄 건 살려주고 말이지. 이래야 하는데 (국회의원들이) 서로 물고 쥐어뜯고 하니 안 되는 거야, 뭘 더 대통령이 무슨 일을 어떻게 해요.
– 이일우(80세) / 대구 동구 을 주민

그런데 이곳 대구에서도 최근에는 지역 시민은 뒤로한 채 밥그릇 싸움만 하는 국회의원들을 향해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친박이냐 비박이냐 상관없이 실제 새누리당이 이 지역을 크게 독점적으로 정치적 지배권을 가져왔지만 그런 경제적인 문제, 민생의 문제를 해결한 적이 단 한 번도 없고 여전히 대구가 각종 경제지표에서 가장 꼴찌에 있는 지자체이다 이것 자체가 (전) 경제부 장관이라는 사람이, 사실상 책임이 가장 큰 사람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다 이런 거죠. 사실은- 그걸 말이라고 하나 똥이라고 하나 그러니까 말똥이지 – 말이라고 하나 똥이라고 하나 말똥이지.
– 이춘곤

지금 조금씩 의식들이 바뀌고 있어요 젊은 층에선 이번만큼은 투표 잘해야 한다 그런 여론은 많이 형성되고 있는데 막상 투표장 가면 그게 과연 될까…
– 김용희 / 장사 21년

2016021200_16

와 뉴스타파. 이런 언론들이 많아 나와야 하는데~
우리 젊은이들이 이런 식으로 바꿔 나가야 해요.
이대로 있어선 절대 안 돼요.
사장님 주신 음료수 받고 힘내서 열심히 돌아다니겠습니다.

이불 상점 사장님께서 주신 음료수와 격려의 말씀을 뒤로 하고 저는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2주간 부산, 대구, 광주를 돌아다니며, 시민들의 바람을 ‘응답함’에 담았습니다. 이 응답함에는 이런 글귀가 많았습니다. 정치인들이 잘 귀담았으면 좋겠네요.

2016021200_17

“모든 사람들이 삶의 이유를 찾고 ‘내 삶’이 있는 날까지”
“좌절이 아닌 희망을 이야기 할 수 있는 나라로(특히 상식이 좀 통하는 사회로)”
“서민들이 행복할 수 있게 행정부와 국회의원들 모두 정쟁을 삼가고 좋은 정책을 펴주시기를 부탁드려요”
“추운 날씨에도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분들, 소녀상을 지키는 대학생들, 세월호 유가족들, 고공농성 중인 노동자들에게 봄이 오기를”

대부분의 시민들은 ‘모두가 잘 먹고 잘 사는 세상’ 같은 어쩌면 당연한 것을 꿈꾸고 있었습니다. 곧 봄입니다. 두 달 뒤 뽑힌 20대 국회는 우리 삶에 희망을 가져다 줄까요?

2016021200_18

취재작가 박은현
글 구성 김근라
연출 권오정

금, 2016/02/12- 18:49
432
0

우리나라 대학의 시간강사는 7만 명 남짓. 이들이 전체 강의 중 28%를 담당한다. 대학은 시간강사에 많이 의존하고 있지만, 이들은 여전히 고질적인 고용 불안과 열악한 처우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 2010년 조선대 시간 강사에 죽음을 계기로, 시간강사의 처우를 개선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그 뿐이었다. 2011년 12월 ‘고등교육법 일부 개정 법률안’ (일명 시간강사법)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시행이 세 차례 유예됐다.

교육부는 전임 교수 한사람이 담당하는 학생비율을 높이려는 취지로 각 대학에 ‘전임교원의 강의 담당율’을 높이도록 유도하고 있지만, 정작 일선 대학은 전임 교원을 늘리는 방식이 아닌 시간 강사를 ‘해고’하는 방식으로 대처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 뉴스타파 <목격자들>에서는 대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에도 점점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는 ‘시간강사’의 현주소를 조명했다.


뉴스타파 홈페이지 업로드 : 2016년 2월 19일(금) 오후

목, 2016/02/18- 19:33
57
0

독일과 이탈리에서 유학하며 활동해온 성악가 김상진 씨는 2014년 말 서울대 음대 성악과 시간강사 채용에 합격했다. 김 씨는 귀국해 지난해 1년 동안 서울대에서 학생들에게 성악 실기를 가르쳤다.

김상진씨 공연사진

사진설명 : 김상진 씨는 유학 기간에 이탈리와 독일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다. (사진 가운데 공연하는 김 씨의 모습)

서울대 음대의 갑작스런 신규 강사 채용 공고, 1년만에 무더기로 ‘해고’당해

그런데 서울대는 지난해 12월 돌연 음대 강사를 새로 모집한다는 공고를 냈다. 비록 1년 단위로 매년 계약하는 시간강사이지만, 그동안 서울대에서는 관행적으로 최대 5년 동안 재임용해왔는데, 이번에는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이다. 김씨는 1년 만에 사실상 해고된 것이다.

천막농성안 김상진씨와 전유진씨

사진설명 : 서울대 성악과 강사 김상진 씨와 전유진씨가 서울대 본관 앞에서 천막 농성을 하고 있다.

그동안 서울대 음대가 시간강사 임용기간을 최대 5년으로 정한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성악과의 경우 학생 지도의 연속성을 위해서다.

“성악 기술을 자기 몸에 익숙하게 만드는 데에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1년 배우고 또 다른 사람한테 2년 배우고 또 1년 배웠다가는 좋은 성공을 거둘 수가 없어요. 그래서 학생이 그 기술을 다 배울 때까지 (시간강사) 임기가 4년 내지 5년 이렇게 이어져 왔거든요”

– 김상진 / 서울대 성악과 시간강사  

서울대 측은 시간강사 채용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였다고 하지만, 수많은 강사들이 1년 만에 강의실에서 쫓겨나게 됐다.  새 학기가 2주 앞으로 다가왔지만, 김상진씨는 여전히 학교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서울대 본관 앞에서 천막 농성 중이다.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의 이상한 교과개편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에서 강의를 하던 시간강사 채효정 씨는 지난해 12월, 대학측으로부터  한 통의 이메일을 받았다. 그동안 자신이 담당했던 세 강좌 중 두 개는 이번 학기에 개설되지 않고 한 강좌는 아예 폐지가 된다는 내용이었다.

강의비개설 통보메일

사진설명 :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시간강사 채효정 씨지난해 크리스마스 이브날,  대학교 측으로 받은 이메일

 

채효정씨

사진 설명 : 채효정 씨가 맡았던 강좌 중 학교 측의 융복합 지원을 받았던 것도 있지만 폐지되거나 이번 학기에 개설되지 않았다.

채 씨 뿐만이 아니다. 이런 식으로 지난 2년 동안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에서 없어진 과목이 200개에 이른다. 대부분이 시간강사들이 맡았던 강의였다. 대학 측은 교육 철학에 부합하는지, 커리큘럼은 적합 한지 파악해 교과개편은을 한 것이라고 해명하지만, 강사들은 전임교수 확보율을 높이기 위해 꼼수를 쓴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교육부는 각 대학에 전임교수의 강의 담당 비율을 높일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상당수 대학들은 전임 교수를 추가로 채용하지 않은 채 시간강사를 해고하는 방식으로 전임교수의 강의 담당 비율을 높이고 있다.   

서울대 본관앞 천막농성 사진

사진설명 :  시간 강사 등 비정규직 교수는 언제든 대체 가능한 ‘보따리 장수’가 아니라 대학 구성원의 하나라는 인식 전환과 합당한 대우가 필요하다.

우리나라 일반 대학에서 시간강사는 6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이들이 전체 강의 중 28%가량을 맡고 있다. 대학 강의에서 상당한 역할을 맡고 있지만, 여전히 ‘보따리 장수’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불안정한 고용과 열악한 처우에 시달리고 있다.

취재작가 박은현

글 구성 정재홍

연출 남태제

금, 2016/02/19- 19:14
763
0

설 연휴 마지막 날인 지난 2월 10일. 이날 개성 공단의 입주 기업에 소속된 800여 명의 남측 근로자들은 오랜만에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렸습니다. 박근혜 정부가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를 빌미로 개성공단 가동 전면 중단을 전격 발표한 것입니다. 그 다음날 북한은 개성 공단에 상주해있던 남측 인원 전원을 추방했습니다.

witness46preview_01

불과 하루사이 일어난 일입니다. 대비할 겨를도 없었습니다. 출고를 기다리던 완제품은 물론 숙소에 있는 옷가지 하나 챙겨 나올 시간도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말그대로 ‘날벼락’을 맞은 셈입니다.

보름에 한번, 주말에만 잠깐 (남쪽으로) 내려오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주 생활처가 개성입니다. 그런데 못가지고 나왔어요. 입던 옷, 아들 졸업선물로 사둔 시계, 평소 먹던 혈압약 조차도.
– 신윤순 (개성공단 입주 S 기업 남측주재원)

많은 이들이 생활 터전을 잃은 것도 모자라 일자리까지 잃게 됐습니다.

지난 연휴 공단에서 철수하고, 회사에서는 그 다음주 월요일에 바로 권고사직을 받았어요. 당장 일자리를 알아봐야 하는데…
– 서성길 (개성공단 입주 M 기업 남측주재원)

<뉴스타파 목격자들>은 그들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습니다. TV에서 신문에서 말하지 않는 ‘개성공단 사람들’의 못다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목, 2016/02/25- 17:43
148
0

설 연휴의 마지막 날. 개성 공단의 입주 기업에 소속된 800여 명의 남측 근로자들이 오랜만에 개성을 떠나 가족과 함께 설 연휴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2월 10일 갑자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렸습니다. 사흘 전 북한이 쏘아올린 ‘장거리 로켓’ 발사를 이유로, 박근혜 정부가 개성 공단 가동 전면 중단을 발표한 것입니다. 그 다음날 북한은 개성 공단에서 상주하는 남측 인원 모두를 추방했습니다. 불과 하루 사이 일어난 일입니다.

▲ 전면 중단과 추방선언 이후 개성공단에서 빠져나오는 차량들

▲ 전면 중단과 추방선언 이후 개성공단에서 빠져나오는 차량들

출고를 기다리던 완제품은 물론 숙소에 있는 옷가지 하나 챙길 시간도 없었다고 합니댜. 보름에 한번, 주말에만 잠깐 내려오는 이들에게 주 생활 공간은 개성공단이었습니다. 입던 옷, 아들 졸업선물로 사둔 시계, 평소 먹던 혈압 약도 챙길 시간이 제대로 없었습니다.

▲ 2007년부터 본격 가동하기 시작한 개성공단에는 북측 근로자 5만 4천여 명이 고용돼 일하고 있었다.

▲ 2007년부터 본격 가동하기 시작한 개성공단에는 북측 근로자 5만 4천여 명이 고용돼 일하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만난 개성공단에서 일했던 기업인들과 근로자들은 하나같이 뜻밖의 이야기를 합니다.

(정부의 개성공단 중단 발표 후) 우리가 짐을 싣고 나오려 하는데 북측 애들이 많이 가져가라고, 챙길 수 있는 만큼 챙기라고…
-김현윤 (개성공단 입주기업 남측재주원)

데리고 있던 여직원에게 8개월 출산휴가를 줬어요. 3월 1일부터 다시 출근하게 돼 있었는데, 얼굴도 못본 거에요. 애는 잘 낳았는지 못 낳았는지, 참…
-최명호 (개성공단 영업기업 ‘한강산업’ 남측주재원)

2013년도에 잠깐 문이 닫혔을 때도, 6개월만에 개성에 가니까 아는 아기 엄마 하나가 얼굴이 반쪽이 됐더라고. 북한에서 정치하는 사람들은 안 좋아하지만 근로자들 생각하면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어져요.
-한상호 (개성공단 영업기업 ‘늘푸른’ 직원)

이번 개성 공단 중단으로 공단 내 입주한 124개의 기업체 뿐만 아니라 그 기업체를 대상으로 식당과 세탁소 등을 운영하던 영업기업 70개, 5000여 곳이 넘는 협력 업체들이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됐습니다. 남측 근로자 800여 명도 상당수 권고사직을 받는 등 생계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지난 연휴 공단에서 철수하고, 회사에서는 그 다음주 월요일에 바로 권고사직을 받았어요. 당장 일자리를 알아봐야 하는데…
-서성길 (개성공단 입주기업 ‘문창’ 남측주재원)

▲ 대책회의를 갖고 있는 개성공단 남측 주재원 근로자들. 이들 800여 명도 상당수 권고사직을 받는 등 생계를 걱정할 처지에 놓였다.

▲ 대책회의를 갖고 있는 개성공단 남측 주재원 근로자들. 이들 800여 명도 상당수 권고사직을 받는 등 생계를 걱정할 처지에 놓였다.

우리에게 개성공단을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지난 8년 동안 개성공단에서 입주했던 업체의 대표는 지금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야, 잘있어라. 다시 한번 만나자. 건강해라. 이런 말이라도 하고 나왔으면 한이 없을 거예요. 8년 넘게 같이 생활하다가 이렇게 한마디 인사도 없이 헤어질 수 있다는 건 내가 입은 재산 상의 손실 못지 않게 가슴 아픈 일입니다.
-박남서 (개성공단 입주기업 ‘컴베이스’ 대표)

4년 가까이 개성공단관리위원회의 기업지원부장으로 개성에 머물렀던 김진향 교수는 이러한 현상을 ‘작은 통일’이라고 말했습니다. 개성공단의 설립의 산 증인인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역시 개성공단에서 통일의 가능성을 봤다고 말합니다. 정세현 전 장관은 ‘초코파이’를 이야기했습니다.

(북측 근로자들에게) 초코파이를 주는데 포장 껍질이 안 나오는거야. 다 자식이 있는 부모들입니다. 어디에 숨겨서 제 새끼들 먹이고 싶고. 그걸 먹은 북한의 어린이가 남조선의 과자를 먹고 적개심에 불타서 남조선을 해방시키기 위해 수령님 명령을 받들어서 총 칼 들고 남침하자 생각이 들겠어요? 그렇게 서서히 경제적으로 한덩어리가 되면 그게 경제 통일이고, 그러면 정치 통일의 조건이 충분히 되죠.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2016022601_04

10년을 공들인 개성공단 사업은 다시 제로 상태로 되돌아갔습니다. 다수 언론은 ‘안보 위협이 있는데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논리로 중단을 찬성합니다. 박근혜 정부가 내세운 개성공단 전면 중단의 목적은 북한에 대한 제재와 압박입니다. 지금 누가 더 큰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일까요? 이번주 뉴스타파 목격자들에서는 적게는 4년, 많게는 10년 가까이 개성공단을 생활터전 삼아 살아왔던 이들이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취재작가 : 이우리
글.구성 : 김근라
연출 : 박정남

금, 2016/02/26- 18:52
331
0

일본인 저널리스트 이토 다카시는 지난 20년 동안 일본이 식민지로 삼았던 아시아 국가들을 취재해왔다. 그는 한국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북한 지역도 취재했다.

뉴스타파 <목격자들> 제작진은 지난 2월 일본에 있는 그의 작업실을 방문해 오랫동안 보관돼있던 테이프를 확인했다. 그 테이프에는 14명의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이 담겨 있었다. 대부분 북한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피해 여성들이었고, 1992년부터 2015년까지 취재한 내용이었다.

뉴스타파 제작진은 이토 다카시가 작업해왔던 북한 ‘위안부’ 할머니들 8명의 영상 증언을 두차례에 나눠 방송하기로 했다. 그의 영상에는 일본군으로부터 성고문을 당했던 북한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이 들어있다. 이 증언은 지켜보기가 힘들 정도로 끔찍했다. 심지어 일본군의 고문을 받고 숨져간 동료의 이름까지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 故 정옥순 할머니(1920~1998) 할머니의 몸에는 일본군이 저지른 성고문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할머니는 14살의 나이에 중국 혜산에 있는 일본군 병영에 ‘위안부'로 끌려갔다. 98년 12월에 숨졌다.

▲ 故 정옥순 할머니(1920~1998) 할머니의 몸에는 일본군이 저지른 성고문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할머니는 14살의 나이에 중국 혜산에 있는 일본군 병영에 ‘위안부’로 끌려갔다. 98년 12월에 숨졌다.

▲ 리경생 할머니 (1917~2004) “열두살 난거 성노예 생활이 뭔지 아나? 아, 조그만 아이 가지고 그러니까 아래가 다 파괴돼요.” - 리경생 할머니는 12세에 일본군 ‘위안소'로 끌려갔다.

▲ 리경생 할머니 (1917~2004) “열두 살 난거 성노예 생활이 뭔지 아나? 아, 조그만 아이 가지고 그러니까 아래가 다 파괴돼요.” – 리경생 할머니는 12세에 일본군 ‘위안소’로 끌려갔다.

▲ 김영숙 할머니(1927~2010) “임신을 했더니 일본군이 저년을 써먹어야 되겠는데 나이도 어리고 인물도 곱고 써먹어야 되겠는데 저년을 자궁을 드러내 파라고 했어요.” 김영숙 할머니는 13세에 끌려갔다.

▲ 김영숙 할머니(1927~2010) “임신을 했더니 일본군이 저년을 써먹어야 되겠는데 나이도 어리고 인물도 곱고 써먹어야 되겠는데 저년을 자궁을 드러내 파라고 했어요.” 김영숙 할머니는 13세에 끌려갔다.

뉴스타파 <목격자들>은 북한지역에 있던 일본군 ‘위안소’에서 벌어진 성고문의 잔혹함이 여실히 드러나는 북한 ‘위안부’ 할머니들의 생생한 증언을 이번 주부터 다음 주까지 2편에 걸쳐 공개한다.

방송 : 3월 4일(금요일) 저녁 뉴스타파 홈페이지 업로드

목, 2016/03/03- 18:33
499
0

사람이 갖고 있는 잔악함의 끝은 어디일까

일본 저널리스트 이토 다카시가 99년에 담은 북한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을 듣고 제작진에게는 이같은 물음이 생겼습니다.

이토 씨는 일제가 저지른 전쟁범죄에 피해를 입은 아시아 각국의 사람들을 20년 넘게 취재해왔습니다. 한국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북한 지역도 취재했습니다. 특히 99년에 이토 씨가 영상에 담은 북한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에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일본군의 잔악함이 여과 없이 담겨있었습니다.

▲ 이토 씨는 1992년부터 2015년까지 북한 ‘위안부' 할머니 14명의 증언을 영상에 기록했다.

▲ 이토 씨는 1992년부터 2015년까지 북한 ‘위안부’ 할머니 14명의 증언을 영상에 기록했다.

북한의 ‘종군위안부 및 태평양전쟁피해자 보상대책위원회’에 따르면 북한에 거주하는 일본군 ‘위안부’는 2000년 10월 기준, 218명으로 추산됩니다. 그러나 북한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이야기는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뉴스타파 <목격자들>은 일본군 ‘위안소’에서 벌어진 참상을 보다 더 자세히 알리기 위해 이토 씨가 담은 북한 ‘위안부’ 할머니의 증언 영상을 2주에 걸쳐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북한 지역에도 일본군 ‘위안부’가 존재하는 사실이 알려진 것은 1992년 故 리경생 할머니(1917~2004)의 공개 증언을 통해서였습니다. 리경생 할머니는 12세의 어린 나이에 일제 순사에게 끌려가 일본군의 ‘위안부’가 됐습니다.

“도교상이라는 놈이 “여기서 대일본제국의 천황폐하에게 몸 바쳐 말 잘 들으면 너를 잘 돌봐주겠다”고 말하고 그 장교 놈이 한 며칠 와서 그렇게 성노예 생활을 시작하더구먼. 이제 12살 난 게 어머니 품에서 어린양 노릇하던 아이가 성노예 생활이 뭔지 아나? 그놈이 들이대니까 아이 아래가 다 파괴돼요. 온통 구들바닥에 피가 쏟아지고 이래도 군인들이 쭉 들어와서 성노예 생활을 하다가…”
– 리경생 할머니

▲ 故 리경생 할머니(1917~2004). 12세에 경상남도 창원에 있는 군수공장에 끌려갔다.

▲ 故 리경생 할머니(1917~2004). 12세에 경상남도 창원에 있는 군수공장에 끌려갔다.

일본군이 ‘위안부’에게 했던 고문과 만행은 차마 입에 담기 힘들 정도로 반인륜적이었습니다. 리경생 할머니는 자신이 열여섯 살에 임신이 되자 일본군은 그의 배를 가르고 태아를 꺼낸 뒤 자궁을 들어냈다는 만행을 자행했다고 증언했습니다.

2016030401_03

“일본군이 배에 아이 있다고. 임신했다고 ‘저년을 써먹어야겠는데 나이도 어리고 인물도 곱고 써먹어야겠으니 저년 자궁을 들어내 파라'”
– 리경생 할머니

리경생 할머니의 최초 증언 이후 북한 지역 곳곳에서 자신도 일본군 위안부였다는 증언이 이어졌습니다.

2000년 북한 단체인 ‘종군위안부 및 태평양전쟁 피해자 보상대책위원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0대의 어린 나이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사람은 70%나 됐습니다. 강제 연행된 경우가 96명으로 44%, 일자리를 미끼로 유인당한 경우가 74명으로 34%, 나머지는 빚에 팔리거나 근로정신대에 모집됐다가 위안부가 됐습니다. 이 가운데 43명이 공개적으로 증언했습니다.

“철부지 13살이 뭘 압니까. 하나도 모릅니다. 그 성기가 들어갑니까? 안 들어갑니다. 그러니까 주머니에 있던 칼을 꺼내더니 잡아 둘러 매쳐놓고 그 칼로 쭉 잡아 찢습니다. 그렇게 하곤 자기 할 노릇을 했는지 까무러쳐서 나는 모릅니다. 벗지 않곤 말이 되지 않아.”
– 김영숙 할머니(1927~2010) 13세에 ‘위안소’ 끌려감

▲ 故 김영숙 할머니(1927~2010). 13세에 중국 심양에 있는 ‘위안소'에 끌려갔다.

▲ 故 김영숙 할머니(1927~2010). 13세에 중국 심양에 있는 ‘위안소’에 끌려갔다.

일본군들에게 ‘위안부’ 할머니들을 고문하는 것은 일종의 ‘놀이’였다는 증언도 있었습니다. 성고문을 당한 지 수십 년이 흘렀지만, 정옥순 할머니(1920~1998)의 가슴과 아랫배에는 당시에 겪었던 고문의 상흔이 고스란히 남아있었습니다.

▲ 故 정옥순 할머니(1920~1998). 14세에 양강도 혜산시 일본군 병영에 끌려갔다.

▲ 故 정옥순 할머니(1920~1998). 14세에 양강도 혜산시 일본군 병영에 끌려갔다.

“이 고문을 받을 때는 완전히 정신을 잃었어요. 문신을 독약으로 하는데 어떻게 정신을 안 잃어. 살이 다 헐었어요. 바늘 쏙쏙 들어간 자리죠. 이거 봐. 그 자리에서 열두 명이 죽었는데…”
– 정옥순 할머니

‘위안부’가 되기를 거부하기라도 한다면 그 순간 돌아오는 것은 일본군의 가차 없는 학살이었습니다.

“한 처녀가 “차라리 내가 죽는 게 낫지. 너희 개 같은 놈들한테 이렇게 맨날 이 단련을 받겠나?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하니까 일본군이 “어 좋다.” 그 다음에는 가마니를 하나 끌어다 놓고 졸병을 시켜서 “모가지 잘라라.” 모가지 잘라 가마니에 넣고 “팔 잘라라.” 팔 잘라서 가마니에 넣고. “다리 잘라라.” 다리 다 잘라 담고 몸뚱이도 그저 몇 토막을 쳐서 가마니에 다 주워 담는 것을 보고 그걸 보고는 처녀들이 다 악악 소리치고 그 자리에서 다 죽어 널브러졌습니다.”
-리경생 할머니

이런 광기 어린 일본군의 학살에 죽어 나간 ‘위안부’는 수없이 많았습니다.

“한 400명 데려다 놓고 하룻밤에 40명씩 타면서 아이들이 아래 하초가 깨져서 피를 쏟다가 죽은 아이들이 수백 명 됐다. 내가 말을 안 들으니까 팬티만 입혀서 이 하초를 쇠막대기로 다 지졌다. 왜 말 안듣냐고 지지고… 말 듣겠느냔 하고 또 지지고. 그렇게 아래 하초가 다 데여서 번직번직하니 거기 껍데기가 쭉 벗겨졌는데 군인들이 40명씩 또 달라붙더라.”
-정옥순 할머니

일본군이 ‘위안부’를 개만도 못한 취급을 해가며 저지른 학살은 ‘엽기’ 그 자체였습니다.

“계집애들이 말을 안 듣는다고 못판에 못을 300개를 심었어요. 그게 못판에 팬티가 다 찢기고 하초에 닿으니까 살에 구멍이 뚫려서 국숫발 같이 피가 팍팍 뿜어요. 그렇게 15명을 죽여 놓고서는 “너희 계집 애들도 말 안 들으면 이렇게 죽인다. 말 안 듣는 계집애들 죽이는 건 개 죽이는 것보다 아깝지 않다” 그렇게 말했다. 내가 피 눈물이 나와.”
-정옥순 할머니

리상옥 할머니(1926~2005)는 ‘위안소’에서 목숨을 걸고 탈출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그곳에서 겪은 성고문과 함께 끌려간 동네 친구가 일본군에 의해 학살당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나랑 같이 온 탄실이, 영순이. 하루는 신음소리가 나길래 보니까 사람이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어요. 내 방이 아니고 남의 방이니까. 그런데 그들이 죽는 것을 보고 ‘아, 이제는 이렇게 죽는 거다’하고 몇 달 지나갔어요.
리상옥 할머니

▲ 故 리상옥 할머니(1926~2005). 17세에 평안남도 순천시에 있는 일본군 부대에 끌려갔다.

▲ 故 리상옥 할머니(1926~2005). 17세에 평안남도 순천시에 있는 일본군 부대에 끌려갔다.

리상옥 할머니는 그 당시 후유증으로 임신을 할 수 없게 됐습니다. 평생을 홀로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60년동안 홀로 떠안고 온 상처를 치유받지 못한 채 2005년 숨졌습니다.

어느 누가 자식도 하나 없고 그런 삶을 살 수가 있나요? 당신네도 아들딸 있겠지요. 나는 아무도 없이 나 혼자 살았어요. 나는 이제 다른 것 바랄 거 없어요. 당신네가 준 모욕 보상하라요. 왜 못하나요. 60년이 됐어요. 60년. 생각해보세요. 나도 남들이 잘사는 거 보면 부럽고 얼마나 가슴이 터져오는지 알아요?
리상옥 할머니

2016030401_07

한국의 ‘위안부’ 할머니들처럼 북한의 ‘위안부’ 할머니들도 한 분, 두 분 세상을 떠나고 있습니다. 이 같은 할머니들의 증언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단지 남한만이 아닌 한반도 전체가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임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금, 2016/03/04- 19:17
580
0

This is an English version of “My Wish,” a documentary produced by “Witness” and uploaded on the website of the Korea Center for Investigative Journalism (Newstapa) on Jan. 26, 2016.

Haksoon Kim, who appears in the documentary, was a “comfort women” survivor and made the first testimony as a South Korean comfort woman victim in 1991.

This documentary is a recount of her interview made in July, 1997, five months before her death.


Subtitle by Sewol Ferry Worldwide supporters Translation Team

Korean Version(LINK)

화, 2016/03/08- 18:51
254
0

지난주 뉴스타파 <목격자들>은 故 정옥순, 故 리경생, 故 김영숙, 故 리상옥 할머니 등 북한 거주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일본군 ‘위안소’에서 당한 성고문에 대한 증언 영상을 공개했다. 이번주 ‘슬픈 귀향 2부’에서는 또 다른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4명의 이야기를 공개한다. 여기에는 아래 사진 속에 등장하는 故 박영심 할머니도 있다.

▲ 한국에도 많이 알려진 사진이다. 가장 오른쪽 만삭 소녀는 故 박영심 할머니의 1944년 ‘위안부' 피해를 당하던 당시 모습이다. 할머니는 17세에 일본군에 강제로 끌려가 ‘위안부’ 생활을 강요당했다. 박영심 할머니는 99년 이토 다카시에게 고통스런 과거를 증언했다.

▲ 한국에도 많이 알려진 사진이다. 가장 오른쪽 만삭 소녀는 故 박영심 할머니의 1944년 ‘위안부’ 피해를 당하던 당시 모습이다. 할머니는 17세에 일본군에 강제로 끌려가 ‘위안부’ 생활을 강요당했다. 박영심 할머니는 99년 이토 다카시에게 고통스런 과거를 증언했다.

‘슬픈 귀향’ 2부에서는 한반도에서는 유일하게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진 일본군 ‘위안소’의 현장을 공개한다. 북한 함경북도 청진에 위치한 ‘은월루’와 ‘풍해루’가 그 곳이다.

▲ 일본군 ‘위안소'였던 ‘풍해루'의 1999년 당시 사진이다. 함경북도 청진시 방진동에 위치한 이 ‘위안소'는 2015년에 철거돼 현재는 밭으로 변했다. 수많은 조선인 소녀들의 삶이 처참하게 유린당한 일본 군 ‘위안소'는 현재 남북한 통틀어 ‘은월루' 한 곳만 남아있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역사적 증거가 사라지고 있다.

▲ 일본군 ‘위안소’였던 ‘풍해루’의 1999년 당시 사진이다. 함경북도 청진시 방진동에 위치한 이 ‘위안소’는 2015년에 철거돼 현재는 밭으로 변했다. 수많은 조선인 소녀들의 삶이 처참하게 유린당한 일본 군 ‘위안소’는 현재 남북한 통틀어 ‘은월루’ 한 곳만 남아있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역사적 증거가 사라지고 있다.

이 ‘위안소’에서는 2, 30명의 조선인 어린 소녀들이 강제로 끌려와 일본군에게 능욕을 당했다. 국내 언론에서는 처음으로 공개되는 영상이다. 일본 저널리스트 이토 다카시가 99년, 2015년 두 차례에 북한을 방문해 촬영했다.

방송 : 3월 11일(금요일) 저녁 뉴스타파 홈페이지 업로드

목, 2016/03/10- 17:07
201
0

북한 함경북도 청진시 방진동에 1층짜리 건물 ‘은월루’가 있다. 현재는 진료소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에는 전혀 다른 용도로 쓰였던 곳이다. 1936년에 세워진 은월루는 해방 전까지 일본 군의 ‘위안소’였다. 현재 일본군의 ‘위안소’는 남북한 통틀어 은월루, 단 한 곳 뿐이다.

1999년만해도 은월루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풍월루’라는 이름의 또 다른 일본군 ‘위안소’가 있었다. 이 두 ‘위안소’ 모두 일본군 군속을 지낸 조선인 윤두만이 일제 해군의 지휘를 받아 만들었다. 일본군 일반 병사들은 은월루, 고급 장교들은 풍월루를 찾았다고 한다.

▲ 북한 함경북초 청진시 방진동에 위치한 은월루다. 1936년에 세워진 은월루는 해방 전까지 일본 군의 ‘위안소'였다. 현재는 진료소로 사용되고 있다. 현재 일본군의 ‘위안소’는 남북한 통틀어 은월루, 단 한 곳 뿐이다.

▲ 북한 함경북초 청진시 방진동에 위치한 은월루다. 1936년에 세워진 은월루는 해방 전까지 일본 군의 ‘위안소’였다. 현재는 진료소로 사용되고 있다. 현재 일본군의 ‘위안소’는 남북한 통틀어 은월루, 단 한 곳 뿐이다.

뉴스타파 <목격자들>은 이 두 곳의 영상을 입수해 공개한다. 또 지난 주에 이어 또다른 4명의 북한 거주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증언도 함께 공개한다. 일본 저널리스트 이토 다카시가 1999년, 2015년 두 차례 북한을 방문해 담아온 영상이다.

2016031101_02

북한에서 일제와 일본군이 ‘위안부’ 전쟁 범죄에 직접 개입한 사실을 입증하는 자료가 발견됐다. 1938년 일제 육군성 법무과가 작성한 ‘군 위안소 종업부 모집에 관한 건’에는 현지 부대 사정에 따라 군 ‘위안소’를 운영한 것으로 나와있다.

이놈들이 와서 하는 행위가 뭐냐 접수에 와서 먼저 그 앞에 전시된 ‘위안부’ 사진들을 쭉 봅니다. 자기가 지정된 그 번호에 가서 줄을 서게 됩니다. 복도에 있는 놈들이 시간을 보다가 시간이 지나면 못 살게 문을 걷어찹니다.

신낙천 / 함경북도 청진시 방진동 주민

1944년에 연합군이 촬영한 이 사진은 일본군 ‘위안부’가 얼마나 잔악한 피해를 입었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만삭 소녀가 북한 거주 ‘위안부’ 故 박영심 할머니다. 이토 다카시는 1999년 박영심 할머니를 만나 인터뷰했다.

▲ 故 박영심 할머니는 일제가 항복한 뒤 연합군에 포로로 붙잡혔다. 오른쪽 임신한 소녀가 박영심 할머니다.

▲ 故 박영심 할머니는 일제가 항복한 뒤 연합군에 포로로 붙잡혔다. 오른쪽 임신한 소녀가 박영심 할머니다.

북한 거주 일본군 ‘위안부’는 218명으로 조사됐다. 이들이 끌려가기 전에는 식모, 보모, 가사노동 등의 직업을 가졌던 조선의 평범한 소녀들이었다. 이 평범한 소녀들은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일종의 군수품 취급을 당했다.

박영심 할머니는 17세에 중국 난징의 일본군 ‘위안소’에 끌려가 3년동안 ‘위안부’ 생활을 강요당했다. 그 뒤에는 싱가포르에서 1년, 미얀마 전쟁터로 끌려가 2년. 모두 6년동안 지옥 같은 곳에서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야 했다. 일본군의 만행에 저항하면 돌아오는 것은 더 큰 고통과 상처였다.

▲ 故 박영심 할머니(1921-2006)는 17세에 ‘위안소'로 끌려갔다.

▲ 故 박영심 할머니(1921-2006)는 17세에 ‘위안소’로 끌려갔다.

일본군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콱 쨌지요. 뭐 피 많이 나왔습니다. 그래도 중국 병원이 있어서 이거 가서 꿰매고… 상처가 한 50cm 될 것 같아. 그 일본놈이 정말 만행을 한 생각하면… 17살 먹었다고 해도 아기입니다. 아기. 정말 생각하면 때려죽여도 시원찮습니다.
故 박영심 할머니

▲ 故 곽금녀 할머니(1924-2007)는 17세에 ‘위안소'로 끌려갔다.

▲ 故 곽금녀 할머니(1924-2007)는 17세에 ‘위안소’로 끌려갔다.

장교들이 들어와서 막 안고 그런 거 막 싫다 그러니까 이 손을 잡아당겨서 비틀면서… 나이 16살 먹은 아이가 알긴 합니까. 자궁이라는 건 조그맣고 하니까 그런 다음에 처음 깨서 보니까 아래 피투성이가… 걷지를 못하고 그렇게 악독한 행동을 해놓고서는 자기 잘못을 빌지 못하고. 여자 20명이 다 그랬습니다. 16살, 17살 먹은 소녀를 끌어다가…
故 곽금녀 할머니

일본군 ‘위안부’는 매독 예방주사를 맞아가며 일본군에 희생당했다. 강한 독성을 지니고 있는 매독 주사의 부작용은 불임이다.

▲ 故 로농숙 할머니(1920년 생. 생사 불명)는 16세에 ‘위안소'로 끌려갔다.

▲ 故 로농숙 할머니(1920년 생. 생사 불명)는 16세에 ‘위안소’로 끌려갔다.

주사 이름이 606호라 그래요. 그런데 그것 맞으면 아이가 안 생긴다고 해서 놓더구먼요. 한 주에 한 번도 놓고 한 달에 두번도 놓고 그렇게 해요. 그 주사 맞으면요 한 30분은 정신이 없어서 드러누워 있어야 해요. 군복을 입고 들어와서 주사를 놓아요.. (일본군이) 제일 많이 올 때가 일요일, 한 30명 씩 오는 날도 있고…
– 故 로농숙 할머니

북한의 ‘일제의 조선 강점 피해조사위원회’는 일제와 일본군이 ‘위안소’를 설치하고 조선 여성 등 아시아 각국에서 20만 명을 강제로 끌어와 일본군에게 ‘성봉사’를 제공했다고 밝혔다. 일제의 침략전쟁이 활발했던 일제 강점기 당시에는 일본군 ‘위안소’가 동아시아 곳곳에 있었다. 1942년 일제 육군성 과장회의 업무일지에는 당시 일본군 ‘위안소’가 중국과 동남아시아, 태평양 등에 400여 곳이나 설치돼 있다고 기록돼 있다.

▲ 故 유선옥 할머니(1923-2003)는 17세에 ‘위안소'로 끌려갔다.

▲ 故 유선옥 할머니(1923-2003)는 17세에 ‘위안소’로 끌려갔다.

‘위안소’에서 어디 일절 나가지도 못하게 한단 말이야. 말 안 들으면 이렇게 죽인다 하는 식으로 모가지 툭툭 잘라서 우리 앞에 주고 벤 건 가마에 넣어다 삶더구먼. 삶아서 너네 한 모금씩 먹으라고 먹이더라고 강제적으로 먹여줘요.
故 유선옥 할머니

수많은 피해자들의 증언과 증거 기록이 있지만, 일본 정부는 여전히 일본군이 ‘위안부’를 강제로 연행한 증거가 없다고 강변하고 있다. 그리고 99년 이토 씨가 처음 방문했을 때 남아있던 일본군 ‘위안소’인 ‘풍해루’는 16년 만에 사라져 밭으로 변해있었다. ‘은월루도 눈에 띄게 훼손되었다.

2016031101_08

일제 강점기, 그 누구보다 피눈물을 흘리며 평생을 살아온 북한 ‘위안부’ 할머니들은 고통스러운 증언을 남긴 채 하나 둘 세상을 떠나고 있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당시 지옥 같은 나날들을 회상하며 세상에 이야기를 내놓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는 무엇일까.

2016031101_09

난 다른 거 없습니다. 그저 요구하는 건 보상을 우리 죽기 전에 해주는 것을 바랍니다. 그것도 국민 기금으로 하지 말고 나라의 돈으로 하라. 나라가 할 일이지. 국민이 무슨 상관이 있습니다. 정말이지 가슴이 막 터져오고 또 터져오고 내 배가 찢어진 것 생각하면 어떻게 할지 몰라.

– 故 박영심 할머니

금, 2016/03/11- 15:24
686
0

1년 전 이맘 때였다. 경상남도는 무상급식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경남도민과 학부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홍준표 도지사에 대한 주민소환 운동까지 일어났다.

새학기를 앞둔 2016년 3월부터 중단됐던 무상급식이 재개됐다. 그러나 여전히 학부모들은 불안하다 언제 또 다시 급식이 중단될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현행 무상급식은 관할 지자체가 조례를 통해 시행돼, 지자체의 ‘선택 사항’으로 남겨져 있기 때문이다. 언제라도 지자체가 무상급식을 중단할 수 있는 상황이다. 학교 급식 관련 전문가들은 국가에서 무상급식을 의무화하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witness49-preview-01

중단 1년 만에 다시 재개된 경남도의 무상급식은 앞으로 어떻께 될까? 뉴스타파 목격자들이 경상남도의 무상급식 재개의 현장을 다녀왔다.


 

뉴스타파 홈페이지 공개 : 3월 18일(금요일) 업로드
매주 토요일 밤 11시 시민방송 RTV

 

목, 2016/03/17- 17:36
55
0

2016년 3월부터 1년 동안 중단됐던 경상남도 무상급식이 재개됐다. 그러나 학부모들은 여전히 불안하다. 언제 또 다시 급식이 중단될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현행 무상급식은 관할 지자체가 조례를 통해 시행돼, 지자체의 ‘선택 사항’으로 남겨져 있기 때문이다. 언제라도 지자체가 마음만 먹는다면 무상급식을 중단할 수 있는 상황이다.

▲ 올해 전국 1만 1,630개 초,중,고등학교 학교 가운데 74.3%가 무상급식을 하고 있다.

▲ 올해 전국 1만 1,630개 초,중,고등학교 학교 가운데 74.3%가 무상급식을 하고 있다.

학교 급식 관련 전문가들은 국가에서 무상급식을 의무화하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올해 전국 1만 1,630개 초,중,고등학교 학교 가운데 74.3%가 무상급식을 하고 있다. 아이들이 먹는 밥이 더 이상 어른들의 정치 논리에 휘말리지 않기를 엄마들은 바라고 있다.

witness49-02

중단 1년 만에 다시 재개된 경남도의 무상급식은 앞으로 어떻께 될까? 뉴스타파 목격자들이 경상남도의 무상급식 재개의 현장을 다녀왔다.

관련 방송 : 어떤 이상한 아저씨의 급식 이야기 (2015년 4월 20일)


취재작가 : 이우리
글.구성 : 이화정
연출 : 서재권

금, 2016/03/18- 16:20
350
0

다음주 부터 제2차 세월호 청문회가 예정돼 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어느덧 700일이 지났다.

이번 총선 국면에서 세월호 참사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져 가고 있다. 2016년 현재,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이 생활했던 ‘416교실’의 존치 여부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witness50-preview-01

세월호 참사가 불러온 아픔과 그 의미를 잊지 않기 위해 수많은 시민들이 찾았던 ‘교실’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이번주 뉴스타파 <목격자들>은 한국 사회가 세월호 참사를 바라보는 시선이 어떻게 옮겨졌는지 ‘416 교실’을 통해 돌아본다.

witness50-preview-02

‘교실’은 ‘416연대 미디어위원회’의 다큐멘터리 프로젝트 [망각과 기억] 여섯개 작품 중 하나다. 연출은 영화 ‘어머니’ ‘슬기로운 해법’ ‘당신과 나의 전쟁’ 등 다수의 시사 다큐멘터리 영화를 연출한 태준식 감독이 맡았다.

목, 2016/03/24- 18:27
169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