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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셋째주, 제네바에서는 무슨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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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셋째주, 제네바에서는 무슨 일이?

익명 (미확인) | 목, 2015/11/26- 15:19

2015년 10월 셋째주, 제네바에서는 무슨 일이?

-2015년 제네바 자유권심의 후기

 

국제연대위원회 방서은

 

 제네바에 갔다온지 벌써 한달이 다 되어갑니다. 뉴스레터에 제네바 자유권 심의 후기를 쓰기로 해놓고 몇번이나 글을 지웠다 다시 썼다를 반복했는지 모릅니다. 자유권심의에 대한 개관으로 시작하는 보고서 형식으로도 써봤다가, 제네바에서의 하루 하루를 소개하는 기행문 형식으로도 써봤다가…이내 모두 다 마음에 들지 않아 휴지통으로 버려버렸습니다. 그리고 다시 자판을 두드리며 그냥 의식의 흐름대로, 독자의 수준을 상정하지 않고 제가 느낀 자유권심의와 유엔 매커니즘, 한국 시민단체의 국제연대에 대한 감상 정도를 나열해보기로 했습니다. 읽기도 전에 벌써 무척이나 산만하고 정신 없는 글이 될 것 같지요?

 

인터넷 검색창에 ‘자유권심의’라고 적고 검색키를 누르면, 지난 11월 6일 유엔에서 대한민국 정부에 내린 권고에 대한 기사들이 수두룩하게 검색될겁니다. 국가보안법 제7조를 폐지하라는 권고, 양심적병역거부에 대해 전면적으로 허용하고 양심적 병역 거부로 수감된 사람들을 즉각 석방하라는 권고, 포괄적인 차별금지법을 만들라는 권고 등등 유래없이 강한 권고가 나왔다는 기사들이 눈에 띄실겁니다. 그렇습니다. 유엔은 한국 정부에 유래없이 강한 권고를 내렸고, 몇가지 항목에 대해서는 1년 안에 이행현황에 대한 보고를 하라고 제안하였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유엔에까지 우리 정부의 무능함과 한국의 비참한 인권상황이 알려져서 창피하다고도 하였고, 어떤 사람들은 유엔이 뭔데 남의 나라에 이래라 저래라 하느냐고 핏대를 세우기도 하였습니다. 그 사이 정부는 이번 권고에 대하여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다가, 자유권심의위원회의 권고를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는 자체논평과, 기초적인 외교영어 마저도 오역하여 진의를 왜곡해버리는 수준이하의 행동으로 또한번 부끄러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자유권 심의

 

정부는 이번 자유권심의에 무려 39명의 인원을 파견하며 강한 인해전술의 의지를 보였습니다. 각 부처에서 거의 한 사람씩 담당자가 파견되었고, 덕분에 민변을 포함한 11명의 NGO들은 일당백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390명이 와도, 아니 정부부처 관계자 모두가 제네바에 왔다한들 정부 답변의 퀄리티는 단 3명이 온 것보다 더 나아질 것이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정부는 자유권심의위원회 위원들의 질의에 2010년 보고서에 나온 내용을 그대로 줄줄 읽었기 때문이지요.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우리는 우리 정부의 수준과 일개 부처 담당자가 할 수 있는 권한의 한계를 잘 알고 있었기에 그다지 놀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NGO들로써는 나와 있는 자료만으로 대답하는 정부를 대응하기가 훨씬 더 쉬웠기 때문에 고맙기까지 했습니다. 참고로 NGO들은 날밤을 새어가며 심의 하루 전날 자료까지 업데이트를 한 보고서를 위원들에게 ‘쪽지예산’ 밀듯이 밀어넣기 바빴습니다. 그런데 정부의 보고서 Reading contest에 위원들의 심기는 불편했나봅니다. 나이가 지긋한 위원은 “우리는 당신들이 제출한 보고서를 이미 다 읽었다. 우리가 질의하는 것은 보고서에 나와 있지 않은 내용이 궁금해서이다. 보고서를 그냥 읽는것은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다” 라고 ‘서양식’ 강한 경고의 메시지를 날리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2일간의 심의 내내 정부의 보고서 읽기는 계속되었습니다. 그것도 아주 천.천.히.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가 법적구속력이 없듯이, 유엔 자유권심의위원회의 권고도 법적으로 정부를 구속할 힘은 없습니다. 정부가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리면 그만이고, 국가보안법 7조를 폐지하라는 권고를 무시하고 7조를 폭넓게 해석한다해도 정부를 강제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다른 83개 NGO들이 1년 가까이 이번 심의를 준비한 것에 비하면 정말 숟가락 얻는 정도로 뒤늦게 합류했는데요, 그러면서 제네바에 있는 내내 든 생각이… ‘이거 왜하지?’ 였습니다. 정부는 권고를 무시해도 되고, 권고를 무시하고 있고, 앞으로도 권고를 쭉 무시할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날밤을 새어가면서 관광 한번 못하고 여기서 뭐하는 짓인지… 그런 의문을 배가 시킨 것은 같이 간  NGO 담당자들의 열정적인 모습이었습니다. 저 사람들도 권고가 법적구속력이 없다는 것을 잘 알텐데, 왜 저렇게 온몸 바쳐서 열심히 하는 걸까? 제 나름의 결론은, 그래도 없는것보다 있는것이 낫다.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도둑질 두번 할 걸 한번으로 줄이듯이, 유엔이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의미있는 것이겠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정부에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는 것이 어느 정도의 자기 억제 기제가 될지는… 상식의 영역에 맡기겠습니다.

 

민변 국제연대위원회는 국내의 이슈 중에서 국제연대가 필요한 영역이 있으면 국제연대의 섹터를 모색하고 방법을 고민하는 민변 소위원회입니다. 하지만 제가 제네바에서 유엔을 상대로 로비활동을 하면서 지금의 시스템으로 과연 제대로 된 국제연대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시민단체의 국제연대는 더이상 때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아니었습니다. 최근 미국 대법원의 동성애결혼 판결의 이면에는 다양한 단체들의 연대가 있었고, 국제 국내를 망라한 다양한 집단들의 연대가 아니면 거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매우 어려운 현실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국제연대는 더이상 국제연대위원회와 같은 작은 소그룹의 단독 영역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민변의 경우를 생각하면, 각 위원회에 국제연대를 담당하는 인력이 필요하고, 각 위원회의 이슈 중에서 국제연대로 풀어나가야 할 주제를 선정해서 국제연대위원회와 협력하여 국제연대를 활용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과정이 필수적입니다. 다른 시민단체에도 유엔을 비롯한 해외 단체와 교류하고 연대하는 방법에 대해 교육하는 등 국제연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지금의 어려운 환경에서 효율적으로 운동할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입니다.

 

법무부는 얼마 전 이번 유엔자유권위원회의 권고와 관련하여 보도자료 하나를 내보냈습니다. 보도자료는 권고에 대한 민변 이재화 변호사의 해석에 대하여 반박하는 내용으로 가득했습니다. 법무부는 보도자료에서, ‘자유권위원들이 대표단의 성의 있는 준비와 충실한 답변에 대해서 감사를 표시한 적도 있었고, 한 위원은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에서 인권선진국으로서 높은 위상을 가지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고 다만 국제사회의 기대수준이 높은 점을 양해해 달라’ 고 밝혔습니다. 법무부와 저는 2015년 10월 22일과 23일,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같은 옷 다른느낌’도 아니고 같은 말 다른 해석 수준을 넘어서, 다른 말 다른 해석인가 봅니다. 통역에 가장 신경을 썼다고 자평하던 법무부의 보도자료에 대해 Fact를 제시하는 것으로 이상 제네바 후기를 마치겠습니다.

 

“자유권 위원들의 감사 표시는 2시간의 거센 질의를 시작하기 전 한 외교멘트 수준이었고, 그 후 2시간 내내 엄청난 질의가 쏟아졌으며, 정부는 통역을 신경쓰느라 지나치게 천천히 답변하다가 시간내에 답변하지 못하였다. 한 위원의 마지막 말은, ‘대한민국의 인권은 같은 수준 국가 그룹의 기준으로 충분하게 보장된다고 할 수 없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부연하자면, 대한민국은 더이상 인권후진국 수준으로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높은 그룹으로 들어왔는데, 같은 그룹 국가들의 수준과 비교할 때 인권 상황이 형편없다는 뉘앙스였습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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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의 밤

목, 2015/11/26-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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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위원회 소식

 

변호사 박인숙

 

언론위원회 박인숙 위원입니다.

오늘은 제가 최근 시민들과 함께 모의 방송심의를 진행한 경과와 내용을 소개해 드리고, 좋은 방송을 이끌어내기 위한 관심과 노력을 함께해달라는 부탁을 올리겠습니다.

 

지난 5월 23일 수요일 저녁 7시에 합정동 국민TV 미디어협동조합 지하1층 국민카페 온에어에서 시민 방송심의위원회 ‘심의, 시민이 하면?’ 행사가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 주최로 열렸습니다.

 

3기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9명의 위원 전부가 50대 이상의 남성이어서 ‘젠더 불평등 심의’라는 논란이 일었습니다. 그 후 2018년 1월 말에 새롭게 출범한 4기는 이러한 논란을 극복하기 위해 다행히도 40대 위원과 여성 위원을 3인씩 포함하였으나 아직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한계를 넘어 시민의 눈높이와 상식에 맞는 심의를 구현하기 위한 대안 제시 차원에서 20대~60대 연령의 다양한 전문성을 가진 위원들로 시민 방송심의위원회를 구성하였습니다. 김진혁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전 EBS PD, 40대 남성), 박민 전북민언련 참여미디어연구소 소장(40대 남성), 석원정 성동외국인근로자센터 소장(50대 여성), 권보현 청소년 인권행동 아수나로 활동가(20대 여성), 엄주웅 민주언론시민연합 정책위원(전 방송통신심의위원, 60대 남성), 윤성옥 경기대 교수(40대 여성), 장은경 미디액트 사무국장(30대 여성), 한희정 국민대 교수(50대 여성)님과 함께, 제가 40대 여성으로서 민변 언론위원회를 대표하여 이 위원회에 위원으로 참여하였습니다.

 

이 날 총 네 건의 안건에 대해 모의 심의 형태의 재심을 진행하였습니다. 첫 번째 안건으로 세월호 수색을 도왔던 이광욱 잠수사 사망과 관련해 당시 MBC 뉴스데스크 박상후 MBC 전국부장이 ‘데스크 리포트’에서 “조급증에 걸린 우리 사회가 왜 잠수부를 빨리 투입하지 않느냐며 그를 떠민 건 아닌지 생각해봐야 할 대목”, “19세기에 개발된 장비로 20세기에도 사용하지 않았던 것을 21세기에 사용한다는 주장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한국인이 무섭다” 등 세월호 생존자 수색에 다이빙벨을 투입한 한국을 폄훼하는 일본 인터넷사이트 게시글을 인용한 것에 대하여, 당시 3기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행정지도인 권고를 결정했으나 이번에 시민 방송심의위는 ‘프로그램 정정·수정’ 및 ‘관계자 징계’를 결정하였습니다.

 

두 번째 안건으로 TV조선 장성민의 시사탱크에서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의 전신) 혁신위원회의 ‘공천 10% 청년 할당’ 제안에 대해 출연자가 ‘걸스카우트, 보이스카우트 정당’ 등의 표현으로 정치 주체로서의 청년을 비하하고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지방자치단체장이 구 통합진보당 출신 인사들이 주도하는 행사를 후원하니 ‘종북숙주당’이라는 비판을 듣는다고 발언한 것에 대하여, 3기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는 행정지도인 권고를 결정하였으나 시민 방송심의위는 관계자 징계 및 법정제재인 경고를 결정했습니다.

 

세 번째 JTBC 선암여고 탐정단의 동성 연인인 고교생의 키스 장면과 머리를 쓸어 올리는 장면에 대해 3기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방송심의규정 제43조 1항 어린이 및 청소년의 정서함양과 제27조 품위유지를 적용해 법정제재인 경고를 부과했으나, 시민 방송심의위 심의에서는 ‘문제없음’ 의견이 다수로 나왔습니다. 해당 심의에서 저는 “지난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이성간의 고등학생이 키스하는 장면에 대해서도 행정지도 결정을 한 적이 있는데, 3기 위원들이 동성애만을 문제 삼는 것은 아니고 고등학생들의 키스장면 자체를 문제 삼는다고 보인다. 왜 고등학생의 키스 장면을 문제 삼는지 이해할 수 없다. 법에서도 13세 이상의 자는 성적자기결정권을 갖고, 방송심의규정 제43조 제3항은 방송이 어린이와 청소년에 대한 사회의 관심과 이행의 폭을 넓히는데 이바지하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 드라마야말로 청소년들의 성과 사회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데 도움이 되는 좋은 드라마가 아닌가”라는 의견을 내었습니다.

 

마지막 안건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방중 성과와 관련해 출연자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문재인 대통령이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대한 4대원칙을 합의한데 대해 대담하는 과정에서 “떼놈이 지금 북한 핵 무기를 앞에 놓고 우리보고 거기에 절하라는 것 아닙니까”라고 발언한 MBN <뉴스와이드>에 대해, 즉시 사과하였다는 이유로 현 4기 방통심의위에서 ‘문제없음’으로 결론 났으나 시민 방송심의위는 다수 의견으로 법정제재인 ‘경고’를 결정했습니다. 저는 “떼놈 발언 후 출연자가 사과했지만, 이런 지적을 여러 차례 받다 보니 어떻게 할지 알게 된 것 같다. 우선 막말을 뱉고 진행자가 지적을 하면 사과하면 된다는 노하우를 가진 듯 보인다. 이런 부분을 고려해 조치하지 않으면 계속 이런 식으로 이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을 내었습니다.

 

저는 이날 시민위원으로 참여하기 전에 그 당시 방송을 시청하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①방송심의소위원회 회의록(안건상정), ②방송심의소위원회 회의록(의견진술 및 제재), ③전체회의 회의록(최종 제재 결정) ④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과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해설집’을 꼼꼼히 읽었습니다. 그리고 각 심의안건에 대해서 의견을 발표하였습니다.

 

인적 구성의 다양성을 최대한 살린 시민 방송심의위원회에서 기존의 결정과는 전혀 다른 결론이 도출되는 과정에서, 두 번째 안건에 대해 권보현 청소년 인권행동 아수나로 활동가(20대 여성)는 “‘소아적 발상’, ‘걸스카우트, 보이스카우트 정당’ 등이라고 하는 건 어린이, 청소년 혐오표현이다. 청소년, 청년은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하는 수동적인 존재라는 편견을 담고 있다.”라고 거침없이 자신의 의견을 말하였는데, 공감도 되면서 신선하기까지 했습니다.

 

우리 사회는 중요한 요직에 나이가 많은 남성을 앉히고 정해진 결론을 형식적으로 만드는 과정만을 갖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하게 한 좋은 자리였습니다. 현재 저는 SBS 시청자위원으로도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 행사를 통해서 좀 더 깊이 있게 방송통신위원회 심의에 대해서 생각하고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시청자위원으로서 방송심의규정을 늘 옆에 두고 방송을 볼 때에도 무엇을 좀 더 중점적으로 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위 행사를 시작으로 민주언론연합회는 ‘시민 방송심의위원회’를 온라인으로 이어가겠다고 밝히고 시민 방송심의위원회 페이지(http://www.ccdm.or.kr/xe/simin04)를 오픈하였습니다. 2018. 8. 8. 11차 안건인 MBN <뉴스8>(7/24)의 <타살설로 시끌> 보도에 대해서는 785명의 시민들이 심의 의견을 제출하였습니다. 재승인 심사에 벌점이 있는 ‘법정제재’가 779명으로 대부분을 차지했고 벌점이 없는 ‘행정지도’ 및 ‘문제없음’은 총 6명에 그쳤습니다. 앞으로도 시민 방송심의위원회는 계속될 것입니다. 공정하고 품격 있는 방송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The post [언론위] 언론위원회 소식 – 모의 방송심의 진행 경과와 내용 소개 appeared first on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 민변.

목, 2018/08/16-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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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생경제위원회 활동소식

 

 

1. 경제민주화

2015년도 이제 저물어 갑니다. 여의도에서는 19대 국회 마지막 일정을 앞두고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민생법안에 맞서 야권도 각종 민생법안을 발의하는 등 민생문제를 둘러싼 논쟁이 한창입니다.

 민변 민생경제위원회는 참여연대·청년유니온·경제민주화실현전국네트워크 등 각종 시민·청년단체와 함께 11월 11일(수) 국회 정론관에서는 정의당과 기자회견을 진행하였고, 12일(목)에는 국회에서 새정치민주연합과 간담회를 진행하는 등 정부의 민생악법을 막고 제대로 된 ‘진짜 민생법안’의 도입을 촉구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민생법안은 그 이름과는 달리 대다수 서민들의 삶의 질을 악화시키고 대기업의 경제력 독점을 막는 각종 규제를 완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민생경제위원회는 이름뿐인 정부·여당의 민생법안 입법을 저지하고 중소상공인·전월세거주자·저소득층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시킬 ‘진짜 민생법안’ 입법에 총력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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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민생위 외부 인사 강연

이번 11월에 민생경제위원회에서는 교수·국회의원 등 외부 인사분들을 모시고 민생경제 각 분야의 현안에 대하여 듣는 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

 11월 17일(화) 저녁 7시에는 부동산팀 주최로 서울대 김용창 교수님을 모시고 “도시계획제도와 시민단체의 과제”라는 주제로 강연을 개최합니다. 이어 11월 18일 저녁 7시에는 11월 민생위 월례회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을지로위원회 우원식 의원님을 모시고 정당과 시민단체의 연대모델, 경제민주화 사업의 중요성 등을 다룰 간담회를 개최합니다.

 민생경제위원회 일정은 민생경제위원회 위원 뿐만 아니라 민생경제 분야에 관심있는 모든 회원분께 열려있습니다. 관심있는 회원분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민생경제위원회와 관련된 각종 문의사항은 사무처 송아람 상근변호사(02-522-7284)로 연락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이상 민생경제위원회 소식이었습니다^^

 

목, 2015/11/12-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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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그 곳에서 발견한 학살과 고통의 흔적

성유리(김인숙회원의 자녀)

입시가 끝난 후, 엄마의 권유에 따라 제주평화기행이라는 프로그램에 등록했다.

사회와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건조해지지 않도록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가게 된 제주 평화기행은 내 생각과 달리 엄마와 나와 둘이 함께하는 프로그램이 아니었고, 얼 결에 민변 과거사위 분들과 함께 이행하는 행운을 얻게 되었다.

 

내가 알고있던 4.3사건이란

내가 제주 4.3사건을 가장 최근에 들은 것은 지나가듯 얼핏 본 알쓸신잡의 한 장면에서였다.

4.3사건이라는 명칭과 순이삼촌이라는 소설의 제목을 들었다. 딱 그 정도의 익숙함이었고, 그 프로그램 또한 마저 보지 않은 탓에 4.3사건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하는 상태였다.

‘대규모 학살에 가까운 살인이 있었다, 그 규모는 몇십에서 몇백에 이른다’

이 정도의 설익은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 탓에 처음 버스에 오르고 배부 받은 안내 책자를 읽었을 때, 큰 충격에 빠졌다.

‘남북전쟁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사건’이라는 표현이 주는 가늠할 수 없는 규모에 당황했다. 그렇게 많은 사상자가 생긴 사건을 나는 왜 모르고 있을까? 내가 이 정도로 무지한 걸까?

그 정도의 규모의 사건이라면 대한민국에 이 사건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이 없어야 하는 것 아닐까?

주위의 사람들 여럿에게 이 사건에 대하여 아는 바가 있는지 물었다. 다들 똑똑하고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지며 공부하는 사람들이었다.

규모를 1만 명 이상으로 대답한 사람은 1명, 6만 명 이상으로 대답한 국사를 전공한 사람 1명을 제외하고는 나와 같이 이 사건의 규모에 대하여 현실의 반의반만큼도 알고 있지 못했다.

4.3사건은 4.3일 하루에 일어난 일이 아니라 약 7여년에 걸쳐 1947. 3. 1~1954. 9. 21 대대적으로 일어난 민간인 학살사건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일부 희생자들끼리의 이념 대립 또한 있겠으나, 가장 많은 희생자는 아무것도 모르는 민간인이었고 이들이 민간이었다는 것을 사람들이 아는 것이 큰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기에 민간인 희생자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하고자 한다.

발단은 어린아이가 경찰이 타고 있던 말의 뒷발에 다친 일이다. 1947년 3월 1일, 행렬을 구경하던 어린아이가 말에 치여 부상을 입었다. 경찰은 어린아이가 다친 것을 몰랐고, 사람들은 다친 어린아이를 두고 떠나는 경찰의 뒤를 돌멩이를 던지며 쫓았다. 놀란 경찰은 긴급히 피신했고, 이를 본 경찰들은 총을 발포해 6명의 사상자를 냈다. 일제시대 때도 사람이 사망한 일이 없었다는 제주도에서 주민들은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그렇게 폭력을 거부한 사람들이 생겨났고, 그 와중 2명의 경찰 사상자가 나왔다. 소통이 안 된 환경 속 오해는 그렇게 불어났고, 분단을 바라지 않은 사람들은 폭도로 규정되어 사살 대상자가 되었다. 국가는 1000명을 죽이면 한 명의 폭도를 잡을 수 있다고 하며 대량학살을 자행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에 4.3사건을 쳐보면 다음과 같이 나온다.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하여 1948년 4월 3일에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 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을 말한다.’

이 설명이 틀리다고 할 수 없으나 충분하지 못하다. ‘무력충돌과 진압 과정’이라는 표현이 적절치 않은 경우가 대다수였기 때문이다. 대량학살당한 주민들은 대부분 민간인이었으며, 무력을 앞세워 정부에 반대한 인사들로부터도 오히려 도망다녀야했던 사람들이었다. 무력봉기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희생당했다고 보기 보다는, 엄청난 규모의 학살을 통해 그 속에 숨어있을지 모를 반대자들을 없애겠다는 국가의 방침에 따른 참혹한 살인이었고 슬픔이었다.

끝내 돌아오지 못한 이름들, 알려지지 못한 사람들

평화공원에 갔다.

위패봉안소에 가서 신분이 확인된 피해자분들의 위패를 보았다. 처음엔 그것이 위패인 줄 몰랐다.

약 14,000개가량이 있었기 때문이다. 만 명이 넘는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대량 학살이 일어난 현장에서 신분을 알기란 요원한 일이다. 마을 단위로 사라진 곳도 있다 하였고,

일가족이 몰살된 경우 또한 흔하다 했다. 그 가운데에서 신원이 확인된 사상자만 14,000명이라는 이야기다.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사람은 그 몇 배가 될 터였다.

면접 스터디에서 특히 중점을 두고 연습했던 사안 중 하나가 ‘한’생명의 소중함과 무거움이었다.

다수를 살릴 수 있다 하여도 죄 없는 한 사람의 목숨을 다수의 목숨과 교량하여 희생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모두 공감했다. 희생될 한 명의 사람이 나라고 생각했을 때, 과연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한’명의 생명권이 얼마나 엄중한지에 대하여 이야기하던 나날들이 불과 며칠 전인데 14,000명이 이름 하나 남기고 사라진 장소에 있다는 생각에 어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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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념 후 들어온 위패봉안실의 안내문. 14,000명이 넘는 희생자의 수가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아직도 트라우마를 겪으며 가족의 이름을 이 곳에 올리지 못하는 분들도 있다. 마을 단위로 사라진 경우, 그 들의 희생을 알릴 수 있는 생존자가 단 한명도 없기에 그들이 있었는지조차 우리는 알 수 없다.>

묵념 후 들어온 위패봉안실의 안내문. 14,000명이 넘는 희생자의 수가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아직도 트라우마를 겪으며 가족의 이름을 이 곳에 올리지 못하는 분들도 있다. 마을 단위로 사라진 경우, 그 들의 희생을 알릴 수 있는 생존자가 단 한명도 없기에 그들이 있었는지조차 우리는 알 수 없다.

위패에 새겨진 이름 하나하나를 보면 더욱 이 사람들이 실존했던 사람들이라는 것이 실감이 난다.

비슷한 이름이 함께 같은 지역자란에 적혀져 있었다. 돌림 이름을 지었던 우리나라의 관습을 생각해보면 이 들이 형제 혹은 남매일 터였다. 감히 그분들의 성명을 빌려 설명을 돕자면

고창수, 고창동.. 김치우, 김치현. 같은 지역의 사람인 것을 감안하면, 가족 단위로 희생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너무 어려 이름을 남기지 못한 아이도 있었다. 김영중의 자. 이런 식으로 이름마저 아직 남기지 못한 어린아이들의 위패가 적지 않았다.

이 많은 사람들이 어떤 죄목으로 희생당한 걸까? 당시 제주의 인구가 30만 명이라 했다. 공식적으로 1만 명 이상, 비공식적으로는 3만에서 6만, 8만까지 희생당했다는 주장이 있다. 이 수가 과연 희생당한 사람의 수가 맞는가?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사라질 수 있었을까?

로스쿨에서의 공부를 돕기 위해 예비교육을 실시하는 학교들이 있는데, 내가 다니는 로스쿨에서 예비교육을 하는 첫 번째 시간에 헌법 수업을 들었다. 인권이란 무엇인가에 관하여 배웠다. 당시 나는 4.3사건에 대하여 이 사건에 대하여 어떻게 쓸 것인지 고민하고 있었다.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고, 며칠이나마 기행을 통해 설명을 듣고 현장을 보고 느낀 내가 잘못된 사실을 전달해서는 안 된다는 의무감이 있었다. 때문에 인권이란 무엇인가를 알려주시는 교수님의 말씀에 더욱더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인권은 대체 무엇일까. 인간으로서 가지는 권리, 그중에서도 가장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권리인 생존권이 이렇게 무참하게 짓밟힐 수 있는 것일까.

교수님은 인권이란 개인의 자유에 대한 국가적 간섭 배제 요청권이라고 하셨다. 국가의 간섭으로부터 자기를 지키는 대 국가적 방어권이라는 것이다. 개인의 자유를 침해했던 주범이 국가였던 시절이 있었기에 생긴 개념일 것이다. 학부 때에도 분명 배운 개념인데, 제주를 다녀온 후 인권이라는 개념이 훨씬 더 무겁게 다가왔다. 제주에 그저 여행의 목적을 가지고 놀러 갔다면 이 표현이 가지는 무게를 알 수 없었으리라. 국가의 폭력 앞에 개인은 이렇게 무력할 수 있다. 본질적인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지켜지지 않았을 때의 현실은 이렇게나 참혹하고 슬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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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곳에 몰려서 살해당하기를 기다리는 모습. 모든 것을 포기하고 고개 숙인 모습과 절망 섞인 표정이 시신 없는 행방 불명자들의 비석 가운데에 나타나있었다. 이 들의 심정을 상상하고 이 들이 느꼈을 두려움을 공감하는 경험을 언제 또 해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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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한 재판을 받지 못한 채 마구잡이로 형무소에 갇혔던 사람들. 수장되기도 했고 피살되어 대규모로 땅에 묻히기도 하였다.>

영문도 모른 채 수감되어 사랑하는 가족의 소식조차 듣지 못하고 끝내 사망한 사람들.

남아있는 편지에서 이들에게는 너무나 현실이었을 순간을 공유할 수 있었다. 이때에 든 생각 또한 처음 위패봉안소에 갔을 때와 같았다. 이렇게 참담한 사건을 내가 모르고 있었구나. 많은 사람 또한 모르겠구나. 외부 사람들 중에는 4.3사건을 4.3폭동이라는 명칭을 붙여 부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사망한 사람들 대부분은 밤이면 급진적인 사상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숨어야 했고, 낮이면 경찰들을 무서워하며 도망가야 했던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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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한 날을 보면 집단적 사살이 이루어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들의 이름을 보고 나이를 보는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나보다 10살 이상 어린 아이들, 나와 같은 나이의 친구들. 시대의 아픔에 희생되기엔 너무나 이른 나이다. 이 시대의 많은 사람들이 동굴로 피해 겨울 날씨에 동사하고 굶주려 아사했다. 또는 운동장으로 불려가 무차별적인 총살을 당했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를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생존해있는 피해자분들이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을 극도로 꺼리시기 때문이다. 국가를 믿을 수 없는 것이다. 이들이 당했던 것은 국가폭력이었기 때문이다. 혹여나 또 붙잡혀갈까, 혹은 불이익을 당할까. 두려워서 말하기 힘든 것이다.

혹자는 너무나 큰 갈등의 크기 때문에 생존자분들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진상 규명이 이루어지기 힘들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이 사건엔 명칭을 붙이기 힘들 정도로 큰 고통과 두려움이 얽혀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의 현장을 생생하게 들려주실 수 있는 분들이 아직 있을 때, 용기 내주시는 분들이 있을 때 진상 규명이 이루어져야 한다. 더 이상 폭동이라고 부르지 않도록, 희생자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아파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유가족을 위로할 수 있도록.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라는 프로가 있다. 여기에 독일 사람들이 한국에 여행 왔을 때, 그들이 서대문 형무소에 가는 모습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좋게 여겼다. 국가폭력의 가해자가 되었던 나라의 후손으로서 비슷한 아픔의 현장을 보고 과거를 되새기며 평화의 가치를 되새기려는 자세를 봤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우리나라의 아픔에 대해 얼마나 많이 알고 있을까? 역사의 아픔의 현장을 보면서 이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갖는 다크투어가 더욱더 성행해야 한다. 실제로 사건이 일어난 현장을 보고 설명을 듣는 것이 삶을 살아가는 데 큰 영향을 줄 것이다.

이제는 볼 수 없는 얼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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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하나 하나에 모두 눈길이 가지만, 어린 아이의 사진을 보았을 때의 참담한 심정을 잊을 수 없다. 저 아이가 무엇을 알고 무슨 잘못을 해서 희생당한 것일까.>

평화박물관에서 본 희생자들의 얼굴.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눈시울이 붉어진 것을 보았다. 살아생전의 모습을 보는 것이 왜 이렇게 힘들고 아플까. 이 들이 저항도 못한 채 목숨을 잃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더욱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해야 한다. 많이 아파하고 유가족들을 위로해야 한다. 유가족들에게 가장 위로가 되는 것은 관심과 공감이다. 평화박물관에서 설명을 해주시는 가이드분을 보며 느꼈다. 몇 번씩 반복해서 4.3사건에 대해 설명을 하실 텐데 이야기하실 때 눈시울이 붉어지시는 것을 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이 사건을 아는 것을 원하셨고, 희생자들을 기억해 줄 것을 원하셨다. 이 사건을 돌아보며 이를 평화의 도구로서 쓸 수 있도록 우리가 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피해자들의 명예를 지켜주어야 한다. 명칭마저 지어지지 않은 이 아픈 역사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가 나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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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아름다운 바다를 볼 때에도 절벽마다 요새가 지어져있는 볼 수 있었다. 군사적 요충지로서 섬 전체가 요새화되었기에 제주도민들의 저항을 더욱 경계한 것일까. 1000명 죽이면 한 명은 폭도일 것이니 모두 사살하라는 명령을 내릴 수가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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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봉을 파는 강아지가 있는 아름다운 섬 제주도.

서울에 가자마자 순이삼촌 책을 샀다. 중단편 모음집 속 순이삼촌은 그리 분량이 길지 않다.

누구라도 부담 없이 금방 읽을 수 있다. 책을 읽으며, 혹은 읽고 제주 다크투어를 통하건 혹은 개인적으로 방문하건 학살이 일어났던 장소를 둘러보면 이분들이 얼마나 큰 공포를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생존자 할머님이 들려주신 총의 개머리판에 머리를 맞고 2년 만에 사망한 어린 동생의 이야기, 운동장에 수십수백 명이 모여 한꺼번에 총살 당한 이야기를 생생히 떠올릴 수 있다.

왜 제주도민들이 같은 날에 오열하며 합동 장례를 치르는지 알 수 있다.

이해관계를 떠나 한 명 한 명의 목숨을 기릴 수조차 없이 마을 단위로 사라져 존재조차 알 수 없는 주민들의 희생을 어떻게 글로 표현할 수 있을까.

왜 이 사건을 알리고자 다크투어를 기획한 사람들이 있는지, 왜 바쁜 시간을 쪼개어 진상조사를 해 나가는 사람들이 있는지 알 수 있다.

생존자 마을회장 할머님의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처음엔 상대가 미웠지만, 이제는 모두가 피해자라고 생각하신다고.

수많은 사망자와 행방 불명자, 유가족과 생존자들을 기억하고 위로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길 바라고

그분들이 말씀해주실 수 있을 때 진상조사가 활발히 일어나 조금이라도 더 정확한 역사를 기록할 수 있길 바란다.

화, 2018/02/27-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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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6. 16. 과거사청산위원회 신입회원간담회가 있었습니다.

그 이름하여 과거사위 입회원들과 배회원들이 함께하는 신선한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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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에는 신입회원들을 위한 뜨거운 환영과 배려, 그리고 아주 특별한 선물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장완익 변호사님께서 들려주시는 과거사위의 역사이야기가 바로 그것입니다. 과거사위가 만들어지게 된 배경부터 시작해서 그동안 과거사위가 걸어온 길을 함께 훑어보면서, 우리 위원회를 조금 더 알고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제29차 활동을 시작하는 시점에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마음을 새롭게 다잡았습니다.

 맛있는 음식, 다른 곳에서 듣기 어려운 귀중한 말씀, 그리고 좋은 사람들.

배도 마음도 따뜻하게 채워지는 점심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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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중희 위원장님 말씀처럼 우리 과거사위가 앞으로 더 재밌고 유쾌한 모습으로 자주 뵐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끝으로 지난 5년 남짓 과거사위와 함께하셨던 오지은 간사님께서 아쉽게도 과거사위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간사님께 그동안 수고 많으셨고, 정말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월, 2016/06/27-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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