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I, 미정부 미국내 은닉된 ‘전두환 불법자금’ 한국으로 직접 보낸다
[팟캐스트] 꼰대가 되어버린 민주화운동의 선두주자 ─ 386 세대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 퇴근 후에 넥타이를 풀고 찾아와 / 옛 추억에 잠겨 노래 한곡 워어어어 / 케케묵은 노래들을 불러대며 울어대네 / 아름다운 젊음이여 흘러간 내 청춘이여 / 너희들이 정녕 민주화를 아느냐 / 이 손으로 일군 민주주의 대한민국 / 요즘 어린 것들은 몰라도 한참 몰라 /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 밤섬해적단, < 386 sucks >
제목이나 가사 모두 도발적인 이 노래는 2010년에 나온 밴드 ‘밤섬해적단’의 ‘386 sucks’이다. 이 노래 속의 386세대는 과도한 자부심에 휩싸여 젊은 세대에게 훈계만 늘어놓는 존재다. 사실 새로운 내용도 아니다. 386세대에 대한 비판이 들린 지는 이미 오래다. 언젠가부터 젊은 세대의 눈에 비친 386세대는 과거의 영광에 매여 달라진 현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꼰대’일 뿐이다.
정치권의 386세대는 후배 세대로부터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며 전락해버린” 정치세력이며 “후배 세대의 사다리를 걷어차”고 “새로운 비전 제시에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 옛 ‘386’ 세월무상…”길을 비켜달라” 30대 정치 신인에 압박 받아, 한겨레, 2015년 7월 15일) 민주화와 새로운 시대의 상징이었던 이들은 어쩌다 ‘꼰대’로 불리며 혁신의 대상, 냉소의 대상이 되었을까.
20대가 만드는 팟캐스트 <서복경의 정치생태보고서> 6화는 386세대의 등장 배경과 변화 과정을 면밀히 살펴본다. 그저 이 집단 자체만의 문제라고 비난만 해서는 갈등 해소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386세대에 속하는 게스트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과 진행자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교수, 그리고 20대 방송팀원 두 명이 함께 386세대의 공과를 이야기했다.
민주화의 주역, 386 세대
‘386세대’라는 말은 90년대에 처음 등장했다. 90년대 당시 30대, 80년대 학번, 60년대 생인 세대를 당시 유행한 386컴퓨터에 빗대어 부른 것이다. 나이를 먹어가며 386은 이제 486을 거쳐 586이 되었다. 일각에서는 10년 단위로 이름을 바꿔야 하는 불편을 줄이기 위해 이제는 앞 숫자를 빼고 ’86세대’라고 부르자 하기도 한다.
사실 386세대라는 용어는 명확한 개념은 아니다. 서복경 교수는 “1993년 기준으로 대학 진학률이 30%밖에 되지 않았다”며 386이란 용어가 또래 모두를 “대학생, 대졸자로 만들어버린다”는 점에서 부정확한 개념이라고 봤다. 이철희 소장 역시 “그 당시에 태어난 모두를 386으로 묶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 소장은 본인은 386세대를 “80년대 운동권이었던 사람들 중 정치권에 진입한 사람”이라는 좁은 의미로 한정해 사용한다고 했다.
386세대는 그야말로 민주화를 이뤄낸 세대다. 1980년 5.18 광주 민주화항쟁 이후 폭발적으로 일어난 학생운동은 이후 80년대 전 시기를 거쳐 지속됐다. 그 절정이 1987년이었다. 1987년 6월 10일부터 29일 사이엔 전국 24만여 명이 참가한 국민대항쟁기간이 이어졌다. 마침내 6월 29일 직선제 개헌을 핵심으로 하는 6.29선언으로 민주화가 이뤄졌다. 그 중심에 대학생이던 386세대가 있었다. 386세대 이전에도 비슷한 운동세대로 4.19세대(1960년), 6.3세대(1965년) 등이 있었다. 그러나 386세대는 이들에 비해 운동을 함께 한 기간도 길었고 규모도 압도적으로 컸다. 무엇보다 민주화를 성취했다. 이들의 자부심과 연대감이 클 수밖에 없는 이유다.
민주화 이후의 386세대
민주화 이후 30여년이 흘렀다. 대학생이던 386세대는 어느새 대학생 자녀를 둔 가장이 됐다. 가장 급진적이었다고 하는 386세대, 그들이 사회의 주역이 된 이후의 한국은 얼마나 나아졌을까. 이철희 소장은 매우 부정적이었다. 대표적으로 386세대를 만나볼 수 있는 곳인 정치권을 중심으로 이들에 대한 비판을 이어갔다.
386세대는 2000년을 전후해 본격적으로 정치권에 들어갔다. 16대 총선이 있던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른바 ‘젊은 피 수혈론’을 주장했다.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은 이때 대거 발탁했다.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의장 출신인 오영식, 이인영 의원, 임종석 서울시 정무부시장, 학생회장 출신인 송영길 전 인천지사, 우상호 의원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정치권에 새 바람을 몰고 오리란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카리스마적 리더십과 진정성으로 민주화에 크게 기여한 인물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5년이 흐른 지금 386세대 정치인들이 거둔 성적은 초라하다.
이철희 소장은 386 정치인들이 “실력이 없기 때문”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하며 크게 세 가지 문제점을 꼽았다. 우선 이렇다 할 사회적 의제를 던지지 못한 점이다. 이 소장은 이들이 “자신들이 정치권에 서 할 게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아젠다로 만들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고 평했다. 다음은 당 내에서 뚜렷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90년대부터 원내에 진출한 386그룹은 어느덧 당내 중진급이 됐다. 그런데 이들은 그 수가 적지 않음에도 “당내 개혁 분파로서의 역할도 하지 못했다”는 게 이 소장의 냉정한 평가다. 이철희 소장이 제기한 386그룹의 마지막 문제는 바로 눈에 띄는 인물이 없다는 점이다. 이 소장은 “정통 학생운동 세력이라고 하는 전대협 세력의 본류”에서 나온 인물이 한 명도 없다며 아쉬워했다. 현재 새정치민주연합의 유력 대선후보, 당권후보 모두 대표적인 운동권 그룹과는 거리가 멀다.
민주화를 이뤘다는 우월의식이 386을 꼰대로 만들어
386정치인들이 이토록 무능하단 평가를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서복경 교수는 운동세력의 목적 자체가 “기존의 체제를 폐절하는 데 있었지, 건설하는 데 있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한 현실정치에는 새로운 시스템을 건설하는 데에 필요한 경험이나 지식이 필요한데, 운동세력은 기존 체제를 흔드는 게 우선이었기에 그 부분은 약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에게 왜 새로운 체제 이후를 생각하지 않았느냐 질책하는 것은 쉽지만, 당시의 한국 사회를 생각해보면 이해가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철희 소장은 냉정한 평가를 이어갔다. 그는 “그들이 (학생운동할 때) 배운 것과 그들이 정치권에 뛰어들었을 때 시대가 요구하는 것에 미스매치가 있었다”며 어쩔 수 없는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이 미스매치를 적극적으로 맞추는 것이 바로 정치”라며 정치적으로 변하지 못한 386 정치인들을 지적했다.
이철희 소장은 이어 386 정치인들이 현실의 요구에 따라 적극적으로 변하지 않은 이유를 짚었다. 이 소장은 “그 근저엔 우리가 학생운동을 해서 민주화를 ‘이뤘다’는 엄청난 우월의식이 있다”고 말했다. 이미 이 사회에 기여한 바가 많다는 ‘우월의식’이 대중의 요구에 맞게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노력을 게을리 하게 만든 요인이라는 것이다.
청년세대와 386세대
이철희 소장이 말하는 이 ‘우월의식’은 정치권 밖에서도 386세대가 반감을 산 가장 큰 요인이었다. 특히 청년 세대의 386세대에 대한 반감은 이 우월의식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방송에 출연한 <정치생태보고서>의 팀원 한민금 씨(23)는 “‘왜 우리처럼 나가서 행동하지 않느냐’는 말을 들으면 반감부터 생긴다”고 말했다. 또 다른 팀원인 오태환 씨(25)는 “‘요즘 애들은 패기가 없다’는 식으로 단순하게 판단하고 말하는 태도가 바로 세대갈등의 원인인 것 같다”고 했다. 제작진이 사전에 만난 20대 청취자들도 “먹고 놀아도 취직 잘 되던 시기의 기준으로 현재를 판단한다”, “젊은 세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 같다”는 등의 비슷한 불만을 쏟아냈다.
젊은 세대의 이러한 비판에 대해 이철희 소장은 우선 386세대의 반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청년들이 처한 어려운 사회경제적 상황을 만든 책임 역시 386세대에게 있다”면서 먼저 “젊은 세대에게 미안하다고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청년세대가 처한 어려운 조건을 바꾸려면 정치가 중요하며 그러기 위해선 청년세대의 역할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청년세대들이 눈총과 지탄을 무기로 욕을 하고 화를 내야 정치가 달라진다”며 청년세대들에게 유권자로서 감시와 요구를 멈추지 말아줄 것을 당부했다. 더 많은 이야기는 방송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방송 링크: www.podbbang.com/ch/9418)
글: 정치발전소 팟캐스트 팀원 이선욱, 이심지
새누리당 나경원 의원의 딸 김 모 씨가 지난 2012학년도 성신여대 실기 면접에서 사실상 부정행위를 했지만 최고점으로 합격한 것으로 드러나 부정 입학 의혹이 일고 있다.
김 씨는 면접 과정에서 ‘자신은 나경원의 딸’이라며 본인의 신분을 노출하는 말을 했지만, 학교 측은 김 씨의 부정행위가 정신 장애에서 비롯된 단순 실수라고 감싼데 이어 실기 면접 준비를 소홀히 한 김 씨에게 또 다른 편의를 제공한 것으로 드러났다.
다운증후근으로 인한 지적 장애를 가진 김 씨는 지난 2011년 10월에 열린 성신여대 수시1차 특수교육대상자 전형을 통과해 이듬해인 2012년 현대실용음악학과에 입학했다. 특수교육대상자 전형은 장애인 학생에게 공평하게 교육받을 기회를 주기 위해 만든 제도. 당시 성신여대에서는 모두 21명의 장애인 학생이 응시해 김 씨 등 3명이 합격했다.
그러나 당시 나경원 의원의 딸을 면접 심사했던 이재원 성신여대 정보기술(IT)학부 교수는 “면접에서 김 씨가 ‘저희 어머니는 어느 대학을 나와서 판사 생활을 몇 년 하시고, 국회의원을 하고 계신 아무개 씨다”라며 자신의 어머니가 나경원 의원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말했다는 사실을 털어놨다.
이 교수는 “마치 우리 엄마가 이런 사람이니까 나를 합격시켜 달라는 말로 들렸다”며 “김 씨가 지적 장애가 있는 걸 감안하더라도 부정행위는 부정행위”라고 말했다.

장애인 전형이 있는 다른 대학에서는 응시생이 자신의 신분을 노출할 경우 부정행위로 간주해 실격 처리한다.
그러나 실기 면접 심사위원장을 맡은 교수는 오히려 나 의원의 딸을 두둔했다고 이 교수는 전했다. 심사위원장은 바로 나 의원의 딸이 지원한 실용음악학과장 이병우 교수. 이병우 교수는 “저 친구가 장애가 있다. 그래서 긴장을 하면 평상시 자기가 꼭 하고 싶었던 말만 하는 버릇이 있어서 그런 거니까 이해해주자”고 말했다고 한다.
김 씨를 실격 처리할 이유는 또 있었다. 실기 면접에서 드럼 연주를 준비한 김 씨는 반주 음악(MR)을 틀 장치가 없어 연주를 하지 못한 채 면접 시간을 넘겼다. 이에 이병우 교수는 면접장에 나와 있던 교직원들을 시켜 카세트를 수배했고, 25분여 뒤 김 씨의 실기 면접을 재개했다.
성신여대 실용윽악학과의 재학중인 한 학생은 “시험 볼 때 미리 제출하는 MR의 파일 형태가 지정돼 있으며, 만약 오류가 나거나 플레이가 안될 경우 혼자 연주를 하던지 아니면 퇴장당한다”고 말했다.



유력 정치인의 딸이 아니었다면 받기 힘든 특혜라는 설명이다. 성신여대는 나경원 의원의 딸이 실용음악학과에 응시한 그 해에 장애인 전형을 처음 도입했다. 공교롭게도 같은 해 5월, 당시 한나라당 최고의원이었던 나경원 의원이 성신여대 초청 특강을 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장애인 전형 모집요강이 확정 발표됐다.
이후 나 의원은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나섰고, 선거 3일 전 딸이 성신여대 특별전형 실기면접에서 최고점을 받았다. 그리고 이 학교 실용음악학과에서는 지금까지 더 이상 장애인 입학생이 나오지 않고 있다.
김 씨의 입학을 적극적으로 도운 의혹을 받고 있는 이병우 교수는 이듬해 열린 2013 평창 동계 스페셜 올림픽에서 음악 감독을 맡았다. 당시 스페셜 올림픽 위원장은 나경원 의원이었다.
뉴스타파는 나 의원의 딸이 대학에 입학하는 과정에서 정말 부정이 있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성신여대 측에 이메일을 보내고, 이병우 교수와 심화진 성신여대 총장, 나 의원을 직접 찾아갔지만 아무런 해명을 들을 수 없었다.

취재: 황일송
촬영: 김남범
편집: 정지성
“내년은, 정치권에서 맘대로 만든 객관식 답안 중에서 국민들이 욕을 하며 차악을 고르는 기성정치 관행이 철퇴를 맞을 것입니다.
스마트폰을 든 국민들이 서로 소통 연대하며 공통의 주장과 요구를 만들어 관철해낼 것입니다. 그게 바로 대한민국 ‘혁명적 변화’의 시작이고 중심입니다.”

차기 대통령 선거로 향하는 이재명 성남 시장의 기세가 무섭다.
지난 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정치집단의 이합집산이 아닌 국민혁명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선언한 이 시장은 주요 여론조사에서 최근 석 달 사이 지지율을 두 배 가까이 끌어올리며 야권의 유력 차기 대선주자로 발돋움하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13일 내놓은 정기 여론조사에서 이 시장은 지지율 5.2%로 오세훈 전 서울시장(5.1%)을 따돌리고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 5위를 기록했다.
한국갤럽의 10월 정기조사에서는 처음으로 지지율 5%의 벽을 넘어서며 전체 5위를 기록했다. 이 시장은 안철수 국민의당 전 상임공동대표, 박원순 서울시장과 2위 군을 형성하고 있다.
선두를 다투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과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와는 아직 격차가 적지 않지만,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나 손학규 전 더민주 상임고문 등 여야의 거물 정치인은 모두 따돌렸다.
지방자치단체장으로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지 6년 만이다.
이 시장은 중앙정부가 예산삭감이라는 칼날을 휘두르는 상황에서 청년배당ㆍ무상교복ㆍ공공산후조리 등 차별화된 복지정책을 관철시켜 내 골리앗과 싸우는 다윗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이 시장에게 다윗의 다섯 물맷돌이 돼 주고 있다.
‘문재인 대세론’ 속에 대선 흥행의 불쏘시개 역할로 그칠지, 뒤집기 한판을 펼치며 반전 드라마를 써낼지 이 시장의 향후 행보에 관심이 쏠린다.
붉은 진달래에 가슴 시렸던 ‘공돌이’
이 시장은 초등학교 끝으로 공장 노동자가 됐다. 가난은 그를 쉽사리 놓아주지 않았지만 그가 삶을 끌어갈 수 있게 하는 힘을 키울 수 있게 했다.
1964년 경북 안동의 한 산골에서 산전(山田)을 일구며 생활하는 빈농의 집에서 태어난 이 시장을, 지독한 가난은 내내 따라다녔다. 더 나은 삶을 찾아 부모님이 7남매를 데리고 경기 성남의 상대원 시장 뒷골목 반지하 단칸방으로 옮겨온 뒤 이 시장은 목걸이 공장, 고무 공장을 거쳐 상대원공단의 냉장고 공장 ‘공돌이’가 됐다.

중학교 진학은 엄두도 낼 수 없었던 이 시장은 “식어버린 밥과 딱딱하게 굳은 오뎅조림을 목구멍으로 밀어 넣으며 일했다”는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기기도 했다.
그는 “공장 앞산에서 온 산을 뒤덮은 채 무더기로 붉게 피어난 진달래가 눈에 들어왔다. 숟가락을 집어 던지고 눈앞에 펼쳐진 붉은 파도 속으로 뛰어들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러나 여느 공돌이처럼 시커먼 공장철문을 넘을 용기는 내지 못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야구 글러브 공장에서 일하다 프레스 기계에 왼쪽 팔목 뼈 하나가 잘리는 사고로 평생 왼팔이 구부러지는 장애까지 안았다. 열일곱 사춘기에 접어들자 장애인이라는 사실과 희망 없는 현실을 탓하며 두 번이나 스스로 삶을 등지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
살아남은 그는 죽을 힘으로 살기로 작정하고 공부했고, 중ㆍ고교 검정고시를 거쳐 1982년 중앙대 법대에 장학생으로 입학할 수 있었다. 공장에서 일하며 받았던 월급 8만원보다 많은 매달 20만원을 장학금으로 받았다. 집에 생활비를 보태고 공장에 다니던 다른 형제들의 공부도 도울 수 있었다. 생애 처음으로 맛본 ‘성공’이었다.
1986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이 시장은 “판•검사가 돼 이제 정말 잘 먹고 잘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출세길 버리고 인권변호사 투신
잘 먹고 잘살겠다던 다짐은 1987년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만나면서 그 의미가 달라진다. 이 시장은 사법연수원 시절 가입한 노동법학회에서 변호사이던 노 전 대통령의 강연을 들은 것이 계기가 됐다. ‘저렇게도 살 수 있나’라는 것을 처음 느꼈다고 한다.
88년 연수원에서 잘릴 각오로 ‘정기승 대법원장 인준 반대 성명서’를 쓰게 되면서 평생의 힘이 되는 동지들도 생겨났다. ‘87년 체제’가 만들어지던 격변기이던 당시 연수원 동기이던 문병호 국민의당 전 의원, 정성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뜻을 같이 했다.
연수원을 마친 1989년 이 시장은 판ㆍ검사 임관이라는 미래가 보장된 길을 포기하고, 사실상의 고향인 성남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한다. 문 전 의원과 정 의원도 각각 인천 부평, 경기 의정부로 갔다.
이 시장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혼자였다면 두렵고 불안했을 텐데, 동료를 보면서 ‘그렇지 않다(외롭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연수원 시절을 회고했다.

이 시장은 서민을 위한 무료변론, 양심수와 시국사건 변론 등에 나서는 한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활동에서 힘을 쏟는다. 1995년 훗날 성남참여연대로 이름을 바꾼 성남시민모임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며 시민운동에도 투신했다.
2002년 분당 파크뷰 개발 특혜 비리를 언론에 폭로했다 구속되는 등 탄압을 받았다. 이 시장은 “소년노동자의 기억은 저의 근육에 박히고 힘줄에 스미고 핏줄로 흘러 오늘날 저를 밀어가는 힘이 됐다. 공장 프레스에 눌려 더는 펴지지 않는 굽은 팔을 펴보려던 그 상처 가득한 소년노동자의 마음이 노동에 대한 합리적 보상과 대우가 주어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길에 저를 서게 했다”고 말했다.
이 시장이 정치에 뛰어든 직접적인 계기는 2004년 성남 시립의료원 건립 운동이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전국 최초로 주민이 발의한 시립의료원 조례가 시의회에서 47초 만에 날치기 폐기되는 것에 항의하다가 공무집행 방해 혐의로 수배된 적이 있다”며 “(숨어 있던)교회 지하에서 시장이 돼 직접 시립의료원을 만들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한 차례 낙선의 고배를 마신 이 시장은 2010년 당선된 뒤 다짐대로 성남 시립의료원 건설을 시작했다.
중앙정부에 맞서는 복지 지자체장
이 시장은 재선을 하는 동안 청년배당ㆍ무상교복ㆍ공공산후조리 등을 내놓으며 복지정책을 상징하는 인물로 떠올랐다. 잇단 복지 정책에 제동을 거는 중앙정부와 맞서면서 전국적 인지도를 갖춘 대중 정치인으로 부상했다.
보수 진영에서는 청년배당 등에 대해 복지 포퓰리즘이라며 맹공을 퍼부을수록 정치인으로서의 이 시장의 주가는 높아지는 모양새다.

이 시장이 손에 쥔 무기는 SNS다. SNS는 보수언론의 허위보도, 왜곡조작에 해명하고 싸울 유일한 보호수단이라는 게 이 시장의 생각이다. 여느 자치단체장과 달리 SNS를 통해 생각을 거침없이 쏟아낸다. 그는 페이스북과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등에서 20여만명의 팔로워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복지정책 논란이 한창이던 때 이 시장은 “박근혜 대통령은 증세 없는 복지를 한다고 전 국민에 사기 쳐서 대통령이 되고는 국가 빚은 사상최대로 늘리고 꼼수 서민증세에 애들 분유값 지원까지 줄이고 있다. 시기질투심으로 유치한 ‘증세 없는 복지 금지법’ 만들 생각은 버리고 ‘공약 이행 강제법’이나 만드는 게 어떤가”라고 일갈했다.
SNS상에서는 이 시장의 발언을 속 시원하다는 뜻의 ‘사이다’로 추켜세우며 열광적 지지를 보내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 시장은 SNS를 정치적 기반으로 삼아 야권의 차기 대선 주자로 부상하고 있다. 이 시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닮았지만, 그 보다 영리하고 치밀한 정치인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내년 대선 도전 여부에 대해서는 “당장은 정권 교체를 위해, 축구로 치면 야권 핵심 지지층의 욕구를 대변하는 중앙수비수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 시장은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정치는 일인경기가 아닌 집단경기”라며 “팀원으로서 팀 안에서 각자 역량과 소질에 맞는 역할을 나누어 맡고 각자의 역할을 존중하며 최선을 다하는 것이 먼저다. 팀이 이겨야 MVP도 있다”고 적었다. 중앙수비수로서 차기 대선이라는 큰 경기를 대비한 조율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이 시장이 당장은 중앙수비수로 시작하지만 장기간 이어질 대선 경선 레이스에서 어떤 포지션으로 자리를 옮길지는 알 수 없다.
이 시장은 “지는 것도 습관이다. 철저하게 준비해 이길 수 있는 싸움을 해야 한다. 일단 준비를 잘해야 한다. 나도 그렇다. 지금까지 그랬고, 앞으로 뭘 하더라도 대충하지는 않을 거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청년 여러분,
우리(이 글은 저와 구예린 아시아인스터튜트 연구원이 함께 쓴 글입니다)는 손에 촛불과 직접 만든 포스터를 들고 광화문광장에 모인 여러분들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대학생도 있었고, 고등학생, 심지어 중학생도 있었습니다.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법치와 책임정치를 요구하는 모습은 매우 숭고했습니다. 거기에는 정치의식의 맥박이 뛰고 있었습니다.

언론들은 평화로운 시위를 칭찬했고, 이제 한국은 민주주의 모범국가가 됐다고 추켜세우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고, 그의 절친 최순실이 철창에 갇혔다고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이제 새로운 도전이 남아 있습니다.
반동으로 끝난 시민혁명들
1960년 4월 26일에도 한국에서 어떤 대통령이 사임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학생들과 시민들의 요구에 밀려 사임했을 때, 학생들은 환호했고, 새로운 민주정부가 들어설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학생들은 정세에 어두웠고, 앞으로 어떤 정부를 세우고, 어떤 정책을 추진할지에 대한 분명한 계획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승만 사임 이후의 권력공백기를 틈타 누군가가 권력 찬탈을 노린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장면 정부는 분명한 비전이 없었고, 위험한 정치게임에만 몰두했습니다. 그 결과는 잘 알고 있을 겁니다.
박정희라는 영리한 젊은 장군이 군대 내 불만세력을 규합해 1961년 5월 16일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그 후 수 십년 동안 한국의 민주주의는 질식당했습니다.

혹은 1980년 서울의 봄을 떠올려 보십시오. 3김의 정치적 분열은 결국 전두환 장군의 야만적 통치로 귀결됐습니다.
1987년에도 3김은 분열했고, 결국 노태우 장군이 집권했습니다. 한국 현대사를 잠시만 들여다보면, 시민들의 수많은 민주화 투쟁이 정치인의 분열, 그리고 정치적 기회주의자의 득세로 실패하곤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물론 한국은 그후로 꾸준히 발전했습니다. 그렇다고 더 이상 과거처럼 실수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순진한 생각입니다. 박근혜를 몰아내는 것이 결코 최후의 목표가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정경유착 해체를 위한 첫걸음일 뿐입니다.
한국이 처한 상황
한국경제는 무역에 크게 의존하며, 식량과 에너지를 수입합니다. 올해에는 심각한 경기침체가 예상됩니다. 언론은 애써 감추고 있지만, 이미 해운업, 조선업, 그리고 철강업이 붕괴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하는 일이라곤 근근히 버티는 산업에 국민의 혈세를 뿌려 겨우 유지하는 정도입니다. 그건 결국 실패하고 말 것입니다.
한국은 사드배치에 대한 보복으로 경제교류를 빠르게 줄이려는 중국, 그리고 관세 등 보호무역주의를 추구하는 미국의 트럼프정부 사이에 끼여 있습니다. 부모세대가 믿어 의심치 않았던 완전자유무역체제는 붕괴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더군다나 트럼프정부는 한국에 보수정권을 세우기 위해 혈안이 돼 있을지도 모릅니다.
트럼프 주위에는 중국의 군사적 위협을 강조하는 매파가 가득합니다. 신임 국방장관 제임스 마티스는 중국을 미국의 직접적 위협으로 간주하고, ≪중국에 의한 죽음(Death by China)≫이라는 논쟁적인 책을 쓴 무역보좌관 피터 나바로는 미국이 겪는 모든 어려움을 중국의 불공정무역 탓으로 돌립니다.
어쩌면 여러분은 박근혜 대통령이 물러나면 사드계획도 철회될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에 맞서 한국을 미일 동맹으로 묶으려고 갖은 수를 다 쓰고 있습니다.
사드는 드론, 헬리콥터 등 한국이 구매하는 미국 무기 세트의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한국은 2014년 78억 달러의 미국 무기를 산 최대 고객이었습니다. 미국 경제가 어려워질수록 한국에 대한 무기 구매 압력은 더욱 커질 것입니다.
한국 청년들의 처지
한국의 학생들은 진정으로 자기 나라의 발전에 관심이 많지만, 사실 잘못된 교육시스템이 그들을 망치고 있습니다. 인문학은 고등학교와 대학의 커리큘럼에서 사라졌고, 많은 젊은이들이 지루함을 참아가며 경영, 경제, 회계학 수업을 듣습니다.

아무리 삼성그룹이 경영 전공자를 찾더라도, 만약 여러분이 좋은 정부와 건강한 사회를 갖고 싶다면, 정치철학, 역사, 문학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특히 인문학은 지금과 같은 정치적 혼란을 극복하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어떻게 권력을 견제하고, 책임있는 시민성을 만들며, 독재의 위험을 피할 수 있을지 알고 싶다면, 플라톤과 공자, 베버와 맑스를 읽으십시오. 또 그들을 읽는 방법도 배워야 합니다.
지금 듣고 있는 경영학 수업은 지금과 같은 정치적 위기를 극복하는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어쩌면 부모세대들, 그러니까 1960년, 1979년, 1987년의 시민항쟁에 참여했던 그 세대들은 지금의 젊은세대보다 철학과 윤리학,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전략에 더 밝았습니다.
혹시 이번 촛불집회 이후에 함께 모여 정치개혁과 정부의 본질 등에 대해 토론해본 적이 있나요? 한국의 민주주의가 어디로 가야 하고, 어떻게 국민을 섬기는 정부를 만들지 밤늦도록 토론한 적 있나요?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 또는 홉스의 ≪리바이던≫을 읽으면서 책에다 빼곡이 메모를 한 적이 있나요?
만약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꼭 그렇게 하십시오. 다시 한 번 정치인에게 속지 않으려면 젊은이들이 정치와 정부, 공공정책의 원리를 제대로 확실히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촛불시민은 위대하다고 부추기는 언론의 감언이설을 조심하십시오.
오마이뉴스나 프레시안 같은 언론도 상당히 상업화되면서 날카로움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기사는 심층 분석보다는 호기심을 자극하는데 더 몰두합니다. 그래야 수입이 생기니까요.
그러나 호기심만 자극할 뿐 세상이 진짜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말하지 않습니다.
대중매체와 전자 콘텐츠, 그리고 SNS는 정부의 무능과 부패를 감시할 기회를 줬습니다. 그렇지만 이들 매체는 한국사회를 병들게 하는 부패에 눈을 감고 있습니다. 이들 매체는 24시간 내내 최순실 사태를 보도함으로써 정작 한국을 위태롭게 하는 경제적, 사회적, 환경적, 외교적 도전에 대해 알지 못하게 합니다.
보수매체든, 진보매체든 의회를 통과한 법안, 정부지원금을 받고 법을 집행하는 기관에 대해서는 거의 보도하지 않습니다. 언론이 정책에 대해 말해주지 않으니, 우리도 알 길이 없는 것입니다.
예컨대 이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이들이 갈취한 금액은 이명박정부에서 4대강사업에 쏟아부은 21조 원 또는 자원외교에 낭비된 수 십조원에 비하면 적은 편입니다. 그런데도 이명박 대통령은 멀쩡하고,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됐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명박의 경우 정부 관련 기관을 중간에 끼고 정책결정을 했기 때문에 대통령 개인의 비리가 감춰졌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이 새누리를 보수정당, 민주당과 정의당을 진보정당으로 착각합니다만, 정치인이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서는 안 됩니다.
기후변화, 또 다른 위협
혹시 촛불집회를 할 때, 바깥 공기가 매우 나쁘다는 것을 눈치챘나요?
박근혜정부는 대기 관련 규제를 없애고, 공장 감독관을 축소했습니다. 그 공장들은 앞으로 20년 동안 암과 수많은 질병을 야기할 미세먼지를 배출하는 곳입니다. 지금 우리들은 헌법 10조에 규정된 ‘행복추구권’을 박탈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의 스모그가 매일 중국에서 건너온 오염물질과 결합됩니다. 지금은 중국의 오염이 한국보다 심하지만, 중국은 향후 10년 동안 태양광과 풍력 발전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OECD국가 중 재생에너지 사용비율이 가장 낮고, 오히려 화석연료 사용이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그러나 이번 촛불집회에서 이 문제는 20번째 의제에도 들지 못했습니다. 유일한 의제는 박근혜 탄핵이었습니다. 마음 속에 갖고 있는 의제가 20개는 되는지 궁금합니다.
지난해 12월 얼마나 이례적으로 따뜻했는지 아십니까? 물론 여러분의 어머니가 아침 출근 때마다 매우 추우니 꼭 껴입으라고 말해주곤 했겠지만, 그것은 진실이 아닙니다.
진짜 진실은 서울이 지난해 12월처럼 따뜻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왜 그럴까요? 수많은 과학자들이 화석연료, 환경파괴로 인한 생태지옥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를 복구하려면 천 년이 걸릴지도 모릅니다.
기후변화는 한국을 사막으로 만들 것입니다. 벌써 중국 베이징은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고, 북한의 땅도 황폐해지고 있습니다. 가까운 미래에 해수면 상승은 부산과 인천을 삼켜버릴지도 모릅니다.
정치인이 이런 진실을 말하지 않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여러분까지 이에 대해 눈감는 것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외에도 수많은 의제가 있을 것입니다. 예컨대 기술문명에 대한 과도한 의존, 초경쟁문화에 따른 가족과 공동체의 붕괴 등 우리가 당면한 문제는 차고 넘칩니다.
손 잡고, 행동하라!
여러분들에겐 한국과 세계를 바꿀 힘이 있습니다. 우리의 운명은 여러분들에게 달려 있습니다. 하지만 위에서 말한 문제들은 단순히 촛불집회를 하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수 십 년의 싸움이 필요할지 모릅니다. 그러니 일단 호흡을 고르십시오.
우선 고등학교 시절부터 체화된 과도한 경쟁에서 벗어나십시오. 동료와 힘을 모아 서로 돕는 따뜻한 공동체를 만들어야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유연하게 생각하십시오.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십시오. 부모의 시선, 대중매체의 시선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산업화와 소비주의의 낡은 이데올로기에서도 벗어나야 합니다.
기존의 시스템은 실패했습니다. 스스로 학습해야 합니다. 설사 진보적이라고 평가되는 정치인의 말이라고 하더라도 의심해 보시기 바랍니다. 정치인의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그들을 판단하십시오. 특정 경제시스템을 절대선 또는 절대악이라고, 또는 어떤 나라를 영원한 적 또는 동지라고 제단하지 마십시오.
규칙을 지키고, 열심히 공부하면 좋은 직장을 얻고 잘 살게 될 것이라는 부모의 말을 거부하십시오. 그것은 다 거짓말입니다.

설사 당신이 아직 선거권이 없더라도 당신의 행동으로 이 사회를 바꿀 수 있습니다. 이 나라를 바꿀 사람은 바로 여러분입니다.
당신이 무엇인가를 요구하지 않는데, 대통령이나 재벌회장님이 당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결정할 가능성은 제로입니다. 젊은이에게 투자하는 것이 한국을 발전시키는 길임을 적극적으로 설득하십시오.
권위 또는 권위있는 인물에 기대지 마십시오. 그런 권위가 없더라도 당신이 바꿀 수 있습니다.
정치인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지 마십시오. 그들은 자신의 권력을 당신을 돕는데 쓰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당신을 돕는 것이 자신의 권력 유지에 도움이 된다면, 즉시 발벗고 나설 것입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정치인이 아니라, 우리 자신입니다.
“사람들은 리더가 아니라, 기적을 일으킬 메시아를 원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투표장에서 우리의 문제를 일거에 해결해 줄 초인을 뽑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초인은 절대, 어떤 경우에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대신 밤낮으로 여러분이 뽑은 정치인들을 관찰하고 감시해 보십시오. 그러면 작은 변화가 생길 것입니다.
당신을 이끌 리더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거울을 보십시오. 거기에 당신이 찾던 사람이 있을 겁니다.
열정적인 풀뿌리운동이 정치인을 움직이고, 세상을 진보시킵니다. “차분하게, 조직하라(don’t get mad; organize!)” 이 말처럼 한국 젊은이에게 필요한 말도 없을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촛불집회는 과거와는 달랐습니다. 여전히 변화를 위한 시간이 남아 있습니다.
앞으로 어떤 사회를 만들지 장기적인 관점에서 고민하십시오. 여러분의 부모세대들은 더 이상 정치에 관심을 갖지 않고, 안주하다가 실패했습니다. 그들은 한국이 이미 선진국이 됐다고 착각합니다. .
여러분은 리무진 뒷자석에 몸을 기댄 정치인이나 재벌회장님과 달라야 합니다. 변화의 주인공이 되십시오. 용기를 가지십시오. 상상하고, 확신하십시오.
더 나은 한국을 만들 수 있다는 상상과 확신을 멈추지 마십시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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