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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인터뷰] 조지훈 변호사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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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인터뷰] 조지훈 변호사를 만나다.

익명 (미확인) | 목, 2015/11/12-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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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미 오늘 인터뷰의 주인공은 조지훈 변호사님인데요. 자기 소개부터 부탁드릴게요

 

조지훈 저는 연수원 38기이고 현재 법무법인 다산에서 일하고 있는 조지훈입니다.

 

김지미 조변호사님에 대해서 찾아봤더니 처음엔 전자계산학과를 다니시다가 다시 법대를 들어가셨더라구요.

 

조지훈 네. 처음엔 수원에 있는 경기대 전자계산학과에 들어갔었는데요, 들어가고 나서 학과공부는 전혀 안하고 동아리 생활만 하다가 3학년 때 동아리연합회 부회장, 4학년인 96년도에 총학생회 부회장을 하면서 연세대 투쟁, 그것 때문에 구속이 됐었어요. 1996년 8월에 구속이 돼서 99년 2월에.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나왔어요. 6개월 정도 있었죠. 민변 다른 선배님들에 비하면 아주 짧은 기간이었죠.

 

김지미 1심에서는 실형을 받으셨던 거죠?

 

조지훈 네. 실형 1년 받았었어요. 그때 변호해주셨던 분이 해마루에 계신 박세경 변호사님이에요.

 

김지미 우리 회원 중에 그런 분들이 있어요. 민변의 변론을 받다가 민변 회원이 되신(웃음).

 

조지훈 그런 인연이 있었죠. 출소하고 났더니 제적이 되어 있어서 군대를 공익근무요원으로 다니면서 수능 공부를 했어요.

 

김지미 법대를 가야겠다고 생각한 건 직접 재판의 과정도 겪어보고 그러면서 필요성을 느끼셨던 거에요?

 

조지훈 공대 출신이고 한겨레 신문 정도만 보던 때인데, 형사절차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니까, 전혀 예견할 수가 없는 거잖아요. 내가 어떤 지위인지도 전혀 몰랐고. 그게 좀 컸었던 것 같아요.

김지미 되게 답답했을 것 같아요.

 

조지훈 네. 그때는 경찰한테 엄청 맞았어요. 끌려갈 때도 맞고, 경찰서에서도 엄청 맞았고. 지금 생각해보면 왜 계속 맞고 있었나(웃음). 저는 연대 안이 아니고 밖에 있었는데 밖에서 들어가다가 연행됐던 거죠. 신촌 지하철역에서 연행돼서 교차로까지 맞으면서 왔었어요.

 

김지미 가담 정도에 비해서 형이 많이 나온 것 같네요(웃음). 1심에서 1년이 나왔으면.

 

조지훈 그때는 모든 걸 직책으로 판단해서 총학생회 부회장이라는 게 컸죠.

 

김지미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하셨다고 했는데 어떤 동아리였어요?

 

조지훈 민속연구회라고. 탈패였는데요. 탈춤이나 장구나 이런 것들은 전혀 못치고(웃음) 그래서 형들이 이상한 거 쥐어주면서 그냥 너는 앞에 나가라, 그러면서 인생이 어떻게 보면 꼬인거죠.

 

김지미 그러다가 한양대 법대는 언제 들어가신 거에요?

 

조지훈 00학번이요. 27살에 들어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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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미 군대까지 다녀오고. 늦은 나이에 대학을 다시 가게 됐는데 특히나 이과생이 법학이라는 학문에 적응하기가 굉장히 어려웠을 것 같아요.

 

조지훈 저는 적응하는 데만 1년 6개월 정도 걸린 것 같아요. 대규모 강의도 경험이 없고, 1년 반 정도는 내가 왜 여기에 왔나하는 생각을 했죠.

 

김지미 늦은 나이에 법대를 가신 건 당연히 고시를 염두에 둔 결정이었을 것 같은데요. 한양대에 가서는 학생운동이나 이런 쪽에는 관여 안하셨어요?

 

조지훈 그 땐 직접 관여하지는 않았어요. 학생회 활동을 하던 친구들하고 같이 고시공부를 했죠.

 

김지미 적응이 너무 어려웠다 라고 하는 것 치고는 2004년에 졸업을 하시고, 2006년에 합격을 하신 거니까 비교적 단기간에 붙었다고 볼 수 있는데, 공부 열심히 하셨나봐요.

 

조지훈 운이 좋았어요. 04년에 졸업하고 그 다음해에 1차, 그 다음해에 2차를 붙었으니까요.

 

김지미 조변호사님이 38기 노동법학회장이잖아요. 제가 37기 노동법학회였는데, 38기 노동법학회장이 굉장히 훈남이다 라는 소문이 있었어요(웃음).

 

조지훈 그런 잘못된 소문이.(웃음)

 

김지미 학생 때 가지고 있었던 지향을 이어가는 의미에서 학회활동을 하신 거겠네요.

 

조지훈 연수원 가서 다들 그렇겠지만 연수원 공부가 많이 안 맞았어요. 연수원 공부에 매달리기에는 나이도 많았고. 그리고 저희 학회에 좋은 친구들이 많았어요.

 

김지미 노동법학회가 맥이 끊겼다고 하더라고요. 저희 회원 중에도 예전부터 열심히 활동하시던 분들은 다 노동법학회 말씀을 하시거든요., 그래서 노동법학회 맥이 끊긴 게 참 안타까워요. 연수원 수료 후에 바로 다산으로 들어가신 거죠?

 

조지훈 네. 제가 다니던 경기대가 수원에 있었고 그래서 그때 사건이 터지면 대부분 다산에서 변론을 해 주셨어요. 우연찮게 저희 노동법학회 지도교수님이셨던 노정희 교수님이 또 다산 출신이세요.

 

김지미 변호사님이 활동하시는 걸 보니 ‘인권재단 사람’ 감사도 하시고 약간 특색있는 게 성남에 있는 ‘이로운재단’에 발기인으로 참여하시고 지금까지 이사라는 직책을 가지고 계시던데 이로운 재단은 어떤 일을 하는 곳인가요?

 

조지훈 아름다운 재단이 전국단위의 재단이라면 이로운 재단은 지역 재단이라고 할 수 있어요. 미국 같은 경우에는 그런 재단이 각 카운티마다 있어서 큰 역할을 하는데요, 그런 걸 모태삼아서 지역에서 기부와 나눔을, 아름다운 재단의 지역판을 만들어보자. 그래서 시작을 하게 된 거죠.

 

김지미 여기에는 어떻게 처음부터 참여를 하시게 된 거에요?

 

조지훈 저희 집이 성남이에요. 거기에서 지역 시민사회단체 분들을 만나면서 같이 하게 됐죠.

 

김지미 ‘이로운재단’은 지금 잘 운영이 되고 있는가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기부를 하고 나눔을 실천하는 이런 모토로 운영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우리나라가 어쨌든 기부문화가 굉장히 취약하잖아요. 그리고 지역에서만 기반해서 활동을 하면 범위가 좁아질 수밖에 없는데 성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조지훈 아직 성공이라고 보기에는 좀 그렇지만 일단 성남에 기업들이 많잖아요. 판교테크노밸리나 이런 곳에 있는 기업들한테 기부를 받고 있고 그 다음에 성남시와 같이 거버넌스를 형성해서 만들어 가려고 하는 단계예요. 그래서 지금은 청년 문제를 지역재단 차원에서 어떻게 할 것이냐에 대한 공모사업을 대대적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김지미 얼마 전에 성남시에서 청년수당 주겠다는 얘기도 한참 이슈가 됐었고, 성남에서 청년문제에 굉장히 신경을 많이 쓰고 있는 것 같네요,

 

조지훈 네. 이런 사업들이 자리를 잡아서 시장이 바뀌더라도 유지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으면 좋겠어요.

 

김지미 변호사님 예전 이력도 있고 수혜를 받았던 입장이기도 해서 아무래도 시국사건, 집시, 노동 쪽으로 변론을 많이 하시게 되겠네요.

 

조지훈 네. 그런데 아시겠지만 노동사건이 그렇게 많지는 않아요. 민주노총 법률원에서 주로 담당을 하셔서. 아무래도 국가보안법 사건, 집시법 사건을 많이 하죠.

 

김지미 국가보안법 사건은 조금 후에 애기를 하기로 하고, 보니까 집단소송을 꽤 하신 것 같더라고요. 비료담합 관련해서 농업인들 대리해서 2만 8천명 규모의 집단소송을 하신 것도 있고, LPG 담합과 관련해서 개인택시 운전자 만 명을 대리해서 집단소송 하신 것도 있고. 집단소송도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활성화가 되어 있지 않잖아요. 인용되는 경우도 잘 없고.

 

조지훈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나라 집단소송이 제도적으로 보장되지 않았기 때문에 되게 어려운거죠. 원고 2만 8천명 개별로 입증을 해야 되는 거니까요. 비료담합이면 2만 8천명의 비료 구매량, 손해액 이런 것들이 다 특정이 되어야 해서, LPG 담합도 마찬가지고. 그런 게 너무 어렵고 담합행위에 대해서는 손해액추정 이런 것들을 적극적으로 해야 되는데 아직 법원이 다른 민사사건이랑 동일하게 취급을 해요.

 

김지미 담합이 있었다는 결정이 나오더라도 그것과는 별개로 손해입증은 또 해야 한다는 말씀이시죠.

 

조지훈 네. 그냥 일반 민사와 거의 동일한 기준으로 판단을 하고 있어서 그런 점이 제일 어려운 것 같아요. 그리고 담합 같은 경우는 기업들이 어떻게 대응을 하냐면, 행정소송으로 시간을 무조건 끌어요. 행정소송에서 담합이 맞냐, 안 맞냐 이거 판단 받는 것만도 몇 년이 걸리는 거에요. 그렇게 결정이 되면 다시 민사가 시작되는 거죠. 그래서 말씀하신 사건들이 2010년. 2011년 사건들인데 아직까지 진행 중이에요.

 

김지미 길고 어려운 싸움을 하고 계시네요. 변호사님 하면 피해갈 수 없는 게 국가보안법 사건일 텐데 특히 내란음모 사건 정말 고생 많이 하셨잖아요. 내란음모 사건 변호인단 중에서도 조지훈 변호사님이 제일 고생 많이 했다라는 얘기를 여기저기서 많이 들었어요. 간사를 맡으셔서 실무를 거의 도맡아 하셨잖아요. 민주변론에 박치현 변호사님이 변론기도 쓰셨는데 그 내용도 굉장히 흥미진진했거든요.

 

조지훈 제가 실무담당을 하게 된 이유가 사건이 수원 남부서라서(웃음). 제 사무실과 되게 가깝고 영장실질심사를 수원지법에서 하고, 그래서 피해갈 수 없었던 거죠. 제 담당 직원은 다음부터 이런 사건 또 오면 회사 나가겠다 이런 얘기를 하고(웃음). 내란음모사건은 진짜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간사변호사 실무를 제가 하게 됐는데 모두 다 열심히 하셨어요. 김칠준 변호사님도 여러 가지 경험을 했지만 이번처럼 변호인단이 체계적으로 조직적으로 움직인 경우는 처음인 것 같다고 하셨으니까요. 저는 이런 대규모 변호인단으로 한 사건은 거의 처음이었으니까 그게 좀 달랐던 것 같아요.

그리고 워낙 여론이 안 좋았고 저도 처음에는 워낙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아서 언론의 얘기가 맞나 이런 생각이 들었을 정도니까요. 그런데 증거기록을 다 분석하면서 이게 진짜 아니구나 하는 걸 계속 깨달아 가는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이른바 제보자라고 하는 사람에 대한 증인신문. 그 분은 저도 아는 사람이었거든요. 제가 통합진보당 경기도당 당기위원장을 했었는데 그 사람이 당기위원이었어요, 김칠준 변호사님은 더 잘 알고. 그래서 그때 신문과정이 뭐랄까 같은 사람인데 완전 다른 사람을 보는..기분이 이상했어요.

그 사람이 김칠준 변호사님하고 저한테 그런 식으로 쳐다보지 말라고 대놓고 그래서 김칠준 변호사님께서 정말 화가 나셔서 큰 소리 치고 그랬었죠. 인간이 저렇게 될 수 있나하는 철학적인 고민까지 하게 되더라고요.

 

김지미 저랑 같이 사는 사람도 그랬지만 조변호사님도 거의 이혼당할 뻔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집에 들어오지를 않으니까(웃음).

 

조지훈 설변호사님이 저한테 한 번 그러던데요. 자기는 그래도 자주 들어가는 거라고, 조변호사는 더 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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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미 말씀하신 것처럼 사건을 직접 하는 사람은 기록을 보면 볼수록 이거 진짜 아니구나 하면서 점점 사건에 빠져들고 어떤 사명감도 생기고 그렇지만 어쨌든 집에 있는 사람은 모르잖아요. 이게 큰 사건이고 언론에도 나오고는 하지만 이해받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어떻게 이해를 시키셨어요?

 

조지훈 끝날 때까지 이 재판의 역사적 의미와 무게에 대해서(웃음). 와이프가 경기대에서 학생회 활동 같이 했던 동기에요. 그래서 그런 부분에 대해서 이해는 좀 하죠.

 

김지미 이해 안 되던데요(웃음).

 

조지훈 이해는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참는 거죠. 분노를 관리하고 참는 거죠.(웃음)

 

김지미 처음에는 다산에서 쪽잠을 자다가 나중에는 아예 숙소를 잡았잖아요. 그리고 조변호사님하고 설변호사하고 몇 분은 거의 상주하다시피 거기서 지내셨잖아요. 그런 식의 작업을 하는 사건은 저도 처음 봤거든요. 또 변론기를 읽어보면, 대규모 변호인단을 꾸리더라도 이름만 올려놓은 사람들이 많고 실질적으로 수행을 하는 사람은 소수인데 이 변호인단은 참여한 사람이 모두가 다 역할을 갖고 일을 했던 유일한 변호단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한다 이런 내용이 있거든요. 어떻게 해서 변호인단이 그렇게 잘 운영이 됐을까요?

 

조지훈 일단 변호인단 구조를 김칠준 변호사님, 천낙붕 변호사님, 심재환 변호사님 이 세 분을 대표단 그룹으로 하고, 저랑 설변호사님이랑 박치현 변호사님이랑 하주희 변호사님 포함해서 5-6명이 실무단 변호사, 그리고 나머지 변호사님들은 각자 역할을 나눠서 그런 체계가 잘 잡혀있었어요. 그리고 대표단 세 분이 잘 이끌어 주셨던 것 같아요.

 

김지미 제가 들은 것 중엔 구글드라이브를 통해서 여러 명이 하나의 서면을 동시에 작업을 했다라고 하던데 이건 윤영태 변호사님의 공이었던 거죠?

 

조지훈 네. 윤영태 변호사님의 역할이 아주 컸어요. 윤변호사님이 IT 쪽으로 아주 해박하셔서 디지털 증거와 관련해서도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김지미 디지털 증거의 증거능력 관련해서 최근에 저도 관심이 많이 생겼어요. 디지털 증거는 사실 왕재산 사건이나 일심회 사건 같은 국가보안법 사건을 통해서 이론이 정립된 측면이 있거든요. 이번에 내란음모 사건도 녹음파일과 관련해서 치열하게 다투신 걸로 알고 있는데 그 부분과 관련해서 디지털 증거의 증거능력을 다투는 것이 왜 중요한지 얘기해 주신다면요?

 

조지훈 저도 이전에는 큰 고민 없었는데 국가보안법 사건은 디지털 증거가 많이 나오거든요. 일반사건에서는 파일 같은 디지털 증거 관련해서 다투는 경우는 많지 않잖아요. 그런데 실제로 다퉈보면 약점이 나오더라고요. 내란음모사건에서도 녹음을 디지털 녹음기로 했는데, 그 중에 2개는 해쉬값 자체가 틀렸어요. 해시값의 동일성이 인정이 안된 거에요. 우리가 동의했으면 그냥 넘어갈 문제인데, 부동의 하니까 해쉬값을 다 맞춰보는 거죠. 그런데 기재된 해시값 자체가 다른 거에요. 그렇게 해서 2개는 증거능력이 인정이 안 되었어요.

 

김지미 해쉬값이 다르다는 건 증거로 낸 파일이 원본과 동일한 파일이라고 볼 수 없는 거잖아요. 그런데 검찰에서 그걸 그냥 증거로 냈다는 거죠.

 

조지훈 네. 그런데 기술적인 과정에서 오류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해쉬값 자체가 다른 것은 심각한 결함이잖아요. 이런 것을 발견하려면 디지털 증거는 정말 꼼꼼히 봐야 한다. 많이 문제 됐던 것은 암호를 푸는 복호화 과정인데, 복호화 과정 자체를 통제 안 한 것은 위법하다는 판결은 계속해서 나오고 있어요. 그런 것들이 의미가 있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김지미 조금 더 이야기를 해 보자면 국가보안법 같은 시국사건을 통해서 디지털 증거의 증거능력에 대해서 문제점을 인식하신 분들이 점점 많아지고 최근 카톡이나 국정원 해킹 등 정보인권 관련해서 굵직한 사건들도 생겨서 지금 민변에서 정보인권위원회 준비모임을 하고 있고, 조변호사님도 참여를 하고 계시죠. 그래서 형사사건에서 동영상이나 녹음 파일, 디지털 사진 같은 것들이 증거로 나왔을 때 첫 대응을 이렇게 해야한다는 팁을 알려주신다면.

 

조지훈 처음에 디지털 증거, 녹음파일이나 디지털 사진 이런 거에 대해서 부동의 의견을 밝히면 많은 판사들이 그래요. 그럼 이게 그 현장을 찍지 않았다는 얘기냐. 이게 조작됐다는, 위변조 됐다는 얘기냐. 위변조 되지 않았으면 왜 부동의 하느냐 이렇게 물어보는 거에요. 그럴 때는 디지털 증거는 본질적으로 조작이나 변개에 아주 취약한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위변조가 되지 않은 증거능력 있는 증거라는 입증을 먼저 검사가 해야하는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부동의 하는 거다 그렇게 해야 되는 거에요. 동영상을 찍었으면 촬영한 사람, 파일을 저장하고 복사한 사람을 다 불러서 증거의 연속성, 무결성이 지켜졌는지 봐야 하는 거고. 동영상 파일이 해당 캠코더에 저장된 원본이 아니라고 하면 해쉬값에 따라서 연속성이나 동일성이 보장되어야 하는 거고. 이런 것들을 법정에서 다 밝혀야 되는 거거든요. 그걸 요구해야 해요.

 

김지미 그러면 어떻게 하랴는 얘기냐, 국과수에 보내서 감정이라도 하라는 말이냐, 감정 비용을 피고인에게 부담하게 하겠다는 식으로 협박 아닌 협박을 하는 판사도 있거든요. 그때는 어떤 식의 답변을 해야 할까요?

 

조지훈 만약 녹음파일이라고 한다면 녹음자를 출석시켜야 하고 그것을 다른 디지털 저장 장치에 넘길 때 있었던 사람들이 다 나와야 하는 거죠. 저희 내란음모사건 때 그래서 녹음자들이 다 나왔거든요.

김지미 저도 처음에 디지털 증거에 대한 자료를 보면서 해쉬값이 뭐지? 무결성이 뭐지? 어떻게 하라는 거지? 되게 막연했거든요. 디지털 증거가 증거능력을 가지기 위한 요건에 관해서 짧게 얘기해주시면.

 

조지훈 과정상의 자료의 동일성 인정되어야 되는 것이죠. 수집절차, 복제하는 절차, 그리고 증거로 제출되는 절차. 디지털 파일이라는 것이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0101, 이렇게 이진법으로 되어 있는 자료이기 때문에 위변조가 너무 용이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그걸 봉쇄할 수 있는 조치가 취해졌느냐 그게 요건의 가장 기본 뼈대라고 저는 이해하고 있어요.

가장 간편한 게 해쉬값을 추츨해서 원본하고 사본의 해쉬값이 같으면 동일성이 인정이 되는데, 그렇지 않았을 경우에 녹음자 아니면 경찰이 채증한 거면 채증한 사람, 이걸 또 저장한 사람 각각 다 불러서 이게 무결하게 계속 원본 동일성이 유지되는지가 입증이 되어야지만 증거능력이 있다라는 거죠.

 

김지미 사실 이건 민변 변호사들 아니면 싸울 수가 없는 부분이고, 최근에는 우리 회원들 사이에서도 이거 어떻게 해야 되는 거야 물어보시는 분들이 꽤 계시거든요.

 

조지훈 왕재산 사건 이후에 천낙붕, 이광철 변호사님 위주로 이런 문제의식이 있으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지금 디지털정보위원회 준비모임을 진행 중에 있습니다. 이 분야에 관심이 있거나 공부하고 싶으신 분들이 오시면 많이 배우고 굉장히 유익할거예요. 그리고 지금시기에 굉장히 필요한 작업인 것 같아요. 증거능력에 대한 문제만이 아니라 정보인권 관련해서 카톡도 있고 해킹도 있고 사실 산재해 있는데, 민변에 대응할 만한 단위가 없어서 내년에 정식 위원회 발족을 목표로 하고 있고 선배들의 노하우도 배울 수 있는 좋은 모임입니다. 많이 참여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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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미 내란음모 사건 얘기로 다시 돌아오면 기록을 보면서 진짜 이건 아니다는 생각을 하셨는데 1심에서는 모두 유죄가 나왔잖아요. 몇 달 동안 집에도 못 들어가고 엄청 고생을 했는데 결과가 그렇게 나왔을 때 상실감이 굉장히 컸을 것 같아요.

 

조지훈 네. 멘붕상태였죠. 아직도 생생해요. 1심 판결을 법정에 가서 들었고, 김칠준 변호사님이 선고 후에 바로 나와서 그 자리에서 즉흥연설을, 거의 절규를 하셨죠. 그래서 그 장면이 아직도 생생한데, 한쪽에서는 우리가 너무 쉽게 봤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런 식으로 판단할지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거죠. 또 한편으로 항소심에서 더 크게 칼을 갈아서 붙어야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김지미 1심에서 전력을 다했기 때문에 항소심 가서 특별히 더 할 것이 있을까 생각이 언뜻 드는데, 항소심에서 뭔가를 할 만한 게 더 있었나요?

 

조지훈 역사적인 무게도 있지만 기록도 방대하고 증인신문도 저희가 조금 부족했던 게 주5일 재판이었잖아요. 그래서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지 못했던 거에요. 그러니까 우리의 논리체계나 변론의 실질적인 내용이 구조적으로 체계적으로 짜임새 있게 탁 다가가지 못했던 그 부분은 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항소심에서는 거기에 좀 더 집중을 했던 거였죠.

 

 

김지미 언뜻 생각해 봐도 변호인단은 그렇게 많은 숫자임에도 불구하고 주5일 재판을 하다보니까 정리가 안 되는데, 재판부는 당연히 정리가 안 될 것 같거든요. 그래서 어쩌면 이 판결을 그래도 조금 뒤집을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더 들었을 것 같아요.

 

조지훈 1심 판결문 자체가 비약이 있는 부분이 분명히 있었기 때문에 항소심에서 충분히 할 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특히 내란음모를 인정하는 부분에 있어서. 그래서 항소심에서는 음모를 깨는데 있어서, 윤영태 변호사님이 아이디어를 주셔서 음모에 관한 하급심 판결을 다 뒤졌어요. ‘음모’자 들어가는 모든 하급심 판결을 다 뽑아서 그거를 의견서로 제출했죠. 그게 음모부분에 대해서 법리적으로 깨는 근거가 됐고, 또 하나는 일본에 이른바 삼무판결, 예전 오키나와 투쟁 때 했던 음모와 관련한 아주 중요한 판결들이 많아서 그걸 조사해서 제출했어요. 그게 법리적으로 큰 근거가 됐었죠.

 

김지미 그런데 항소심에서 내란음모는 무죄가 됐지만 내란선동은 유죄가 됐단 말이죠. 모르는 사람이 듣더라도 내란음모는 무죄고 내란선동은 유죄라는 게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되는 것 같은데 그게 결국에는 대법원까지 확정이 돼서 그 사건은 종결이 됐는데, 그런 엄청난 큰 사건을 끝내고 났을 때의 감회랄까 이제는 정리가 좀 되셨나요?

 

조지훈 개인적으로 쭉 정리해 볼 시간은 없었는데, 그 이후에 계속 재판을 하다보면 문득문득 내가 많이 좀 성장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사건을 겪으면서 재판을 대하는 태도와 관점 그 다음에 변론기술이라면 기술 이런 것들이 아직도 많이 부족한데 문득문득 이런 큰 여러 가지 다양한 것을 볼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을 가졌구나 이런 생각이 들어요.

 

김지미 변호사라는 직업이 혼자서 하는 직업이잖아요. 보통은 내가 혼자 서면 쓰고 혼자 재판 나가고 그러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하는지를 알기가 쉽지 않은데 변호인단 활동을 하면 배우는 것도 굉장히 많은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의 변론 스타일이나 증인신문 할 때 태도 이런 것들 보면서도 굉장히 많은 공부가 될 것 같거든요.

 

조지훈 설변호사님에게 많이 배웠습니다. 증인신문을 능숙하게 잘 하시더라고요.

 

김지미 마치 제가 이 대답을 유도한 것 같네요.(웃음). 그럼 이쯤에서 피해갈 수 없는 개인사를 또 여쭤보면. 아까 살짝 사모님하고 학생시절에 만났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조지훈 네. 알게 된 건 94,5년도부터 알게 됐는데, 결혼은 2006년도에 했지요.

 

김지미 2006년이요? 2차 시험을 본 해이신 것 같은데요.

 

조지훈 2차 시험 보기 1달 전에 결혼을 했어요.

 

김지미 시험보기 한 달 전에요? 시험을 포기하셨나요(웃음)?

 

조지훈 많은 사람들이 제 청첩장을 보고 얘는 포기했구나 이렇게 봤죠.

 

김지미 2차 시험을 끝내고 했어도 됐을 텐데..아무래도 피치 못할 이유가 있었겠네요.(웃음)

 

조지훈 우리 첫째요.(웃음) 첫째 딸 생일이 2006년 10월 11일인데, 그 다음날 2차 발표가 있었어요. 복덩이죠. 산부인과에서 와이프랑 있어서 저는 합격자 명단도 못 봤어요. 신림동에 있는 후배가 됐다고 알려줘서 알았죠.

 

김지미 출산과 합격 중 어느 쪽에 더 마음을 졸이셨어요? 예정일이 거의 같았을 텐데.

 

조지훈 제 와이프가 출산 전에 너무 아팠어요. 저희가 참 무식해서 자연분만 좋다고 그래서 늙은 거는 생각지도 않고 그거 한다고 고집을 부렸던 거에요. 그래서 아프다고 하는데 산부인과 가면 안 좋다고 해서. 엄청 고생했어요. 출산하기 몇 주 전부터 일어나지 못했어요. 출산하고도 6개월 동안 못 일어났어요 골반 쪽에 문제가 있어서. 그래서 출산하러 갈 때도 친구들 불러서 들고 이동하고 그랬었어요. 그래서 2차 발표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죠.

 

김지미 그렇게 무사히 아이도 태어나고 다음날 바로 합격도 하고 진짜 복덩이네요. 아이가.

 

조지훈 요즘 말을 참 안 들어서(웃음).

 

김지미 2006년이면 지금 10살 됐겠네요. 그럼 아이는 1명이신가요?

 

조지훈 저희 사무실 이름이 다산이기 때문에 거기에 부응하느라 2010년에 둘째를 낳았지요. 저희 사무실은 변호사님들도 다 다산이에요(웃음).

 

김지미 사모님은 학교 때 알고는 지냈지만 본격적으로 사귄 건 그때는 아니었나 봐요?

 

조지훈 제가 학교를 그만두는 그 때쯤부터 해서 연애를 10년 정도 했어요. 제 공부 뒷바라지를 지금의 와이프가 해 줬거든요. 그래서 지금도 제가 꼼짝을 못해요. 뒷바라지 다 해줬더니 당신이 지금은 뭐라도 된 줄 아냐? 부터 해서 나없었으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말이야 막 이래요(웃음).

 

김지미 변호사님들 인터뷰 하다보면 사모님들 훌륭하신 분들이 많더라구요. 오세범 변호사님은 사모님을 가리켜서 ‘장비’같다고 표현하셨어요.(웃음) 그러면 사모님은 변호사님의 성인 이후의 거의 모든 걸 다 알고 계시는 것과 마찬가지네요.

 

조지훈 네. 그래서 제가 사람들에게 잘 공개하지 않아요(웃음).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자기가 입 뻥끗하면 너는 끝난다 이러고 있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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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미 저희 회원행사에 한 번 같이 오시죠(웃음). 변호사님은 지금 정보인권모임 말고는 위원회 활동을 특별히 하시진 않으시죠?

 

조지훈 네. 수료하고 노동법학회장 출신이라서 노동위원회 해야 된다 이런 얘기 들었었는데 사무실이 수원이라 모임에 참석하는 게 쉽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디지털정보인권위에 주력을 하려고 하고 있어요.

 

김지미 어느덧 7년차 중견변호사가 되셨는데 요즘 정세가 참 암울하잖아요. 이럴 때 민변이 이런 역할을 해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신 게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조지훈 7년차 중견변호사인데, 저희 다산에서는 아직도 막내에요. 제 후임이 오세범 변호사님이라(웃음). 제 주위에 지인들이 제가 민변 회원이라고 하면 그것 자체로 되게 높이, 아 정말 고생 많다 이렇게 해주는 분들이 많거든요. 시민들이 민변에 바라는 요구는 되게 높은 것 같아요. 특히 지금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민변이 한 발 더 치고나가는 역할을 해야 되지 않나. 지금도 잘 하고 있지만, 더 뭔가 시민들의 쌓인 분노를 어떤 지식인의 목소리, 전문가의 호소 이런 것을 모아서 반 발짝씩이라도 더 치고 나갈 필요가 있지 않나. 그런 바람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내란음모, 정당해산을 쭉 다 겪었잖아요. 내란음모 할 때 어떤 변호사님이 내란음모까지 터졌으면 재네들 다 한 거다, 이보다 더 할 게 있겠나 했는데 정당해산까지 갔잖아요. 지금 정권은 로드맵이 있는데 저도 그렇지만 지식인들이 대부분이 김대중, 노무현 10년의 역사가 있는데 그렇게까지 되지는 않을 거다 이런 게 있었던 것 같아요. 한홍구 교수님이 하신 얘기 중에 예전에 국정원 과거사위 할 때 자기 밑에서 열심히 도와준 담당자가 있었는데 알고 보니유우성 사건에서 증거 위조한 과장이라는 거에요. 정말 우리가 잘못한 게 이 정도 하면 청산이 될 줄 알았는데 그건 정말 환상이었다. 인적 청산에 대해서 우리가 너무 무지했거나 너무 방관했다 이런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는데 그게 냉철한 진단인 것 같아요.

 

김지미 민변의 역할이 커질수록 어쨌든 회원들을 믿고 가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그런 차원에서 앞으로 조변호사님의 적극적인 활동을 기대하겠습니다. 오늘 좋은 이야기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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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특별한 일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

 

인터뷰 | 조준희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간사

기록 및 정리 | 이경민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간사

 
 
 
신체적, 정신적 차이가 차별과 배제의 원인이 될 수 없고 모두가 사회 구성원으로 존중받아야 한다. 하지만 국가는 오래 전부터 신체적, 정신적 장애를 가진 사람을 시설로 보내 격리시킴으로써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장을 사전에 차단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여기, 장애인을 평범한 사람으로 바라보는 한 사람이 있다. 바로 김예원 변호사다. 김예원 변호사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 중 법이 필요한 사람들을 직접 찾아다니고 있다. 그리고 더 많은 당사자들을 직접 만나기 위해 2017년 초 1인 법률 사무소를 개소하였다. 장애인을 나와 함께 더불어 사는 사람으로 생각하며 장애인 인권 증진을 위해 오늘도 발로 뛰고 있는 김예원 변호사를 만나보았다.
 

자기소개 부탁한다

현재 장애인권법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김예원이라고 한다. 연수원을 수료하고 재단법인 동천에 있었고, 이후 서울시 장애인인권센터에서 3년 정도 일했다. 
 

공익활동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사법 연수생들은 2달 정도 연수를 하게 되어있다. 일종의 실습인 것이다. 당시 몇몇의 연수생들과 함께 여태 해보지 못한 활동을 해보자고 의견을 모아 시민사회단체를 찾아갔다. 그렇게 몇몇 연수생이 난민, 장애인, 이주외국인, 성폭력 등 관련 단체로 흩어져 활동을 했다.
 
그런데 막상 현장에 가보니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했다. 인권침해가 상시적으로, 장기간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권력관계로 인해 문제제기를 못하는 수준이었다. 개인이 해결하기에는 구조적인 어려움이 명확했다. 이 상황을 목도한 연수생들이 어떻게 하면 좋을지 매주 만나 회의를 했다. 결국 그냥 지나칠 수 없다고 의견을 모아 공익전담 변호사를 세우기로 했다. 
 

공익전담변호사를 세우는 과정은 어땠나? 

당시 연수원 동기가 약 1,000명이었는데, 단순하게 일인당 1만 원만 걷어도 3명의 월급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연수원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 팜플렛을 만들고, 거리홍보도 했다. 다행히 공감대를 얻어 약 3억 6천만 원을 모았고, 3명의 공익전담변호사를 책임질 수 있게 되었다. 그 3명이 현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의 류민희, 김동현 변호사와 세월호 관련 활동을 열심히 했던 배희철 변호사다. 
 

여러 분야 중 특별히 장애인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 

사실 앞서 소개한 공익전담변호사를 세우는 과정에서, 나는 당사자가 되기보다는 펀드레이징을 역할을 담당했다. 연수원 수료 이후에도 개인적으로는 공공기관에 가고 싶었다. 그러다 우여곡절 끝에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설립한 재단법인 동천에 입사하게 되었다. 동천은 공익법률지원 등 법률을 통한 사회공헌활동을 주로 하는 곳이다. 하지만 그것 역시 어떤 숭고한 뜻을 가지고 들어간 것은 아니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보자면, 나는 태어날 때 의료사고로 한 쪽 눈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장애인이지만 개인적으로 장애인라고 생각하며 살지 않았다. 개인적 특수성일 수 있지만 나는 기득권(?)이었기 때문이다. 공부도 잘했고, 합기도, 검도, 호신술을 배워 힘도 셌다. 결국 장애인 권리를 보호하는 인권변호사의 길로 들어선 계기는 내가 장애인이기 때문에 경험한 차별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차별과 배제를 경험한 사람들의 사건들을 직면했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차별과 배제를 경험한 사람들의 사건, 어떤 사건들이었나?

2012년 원주 사랑의 집 사건이 있었다. 워낙 유명한 사건이라 검색사이트에 ‘원주 사랑의집’, ‘원주 장목사’라고 검색하면 사건 내용이 나올 정도다. 당시 사건을 접했을 때는 이미 장애인 21명 중 4명만이 생존해 있었고 나머지는 생사를 확인할 수 없었다. 그 중 한명도 직장암 말기로 곧 사망했다. 생존자 중 한 명은 여자인데도 주민번호 뒷자리가 1로 시작하더라. 생일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청력이 너무 떨어져서 청각장애 신청을 하러 갔는데 청각을 잃은 것이 아니라 귀지가 3센티나 쌓여 듣지 못했던 것이었다. 여러 가지로 정말 심각한 상황이었다. 이후 생존자들이 지역사회 안에서 잘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그 과정을 지켜보았다. 너무 다행스럽게도 그분들이 지역사회에서 행복감을 느끼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홍천 실로암 사건’ 역시 기억에 남는다. 그곳에 계시던 한 분은 지적장애만 낮은 정도로 있던 상태였는데 입소한지 일 년 만에 사망했다. 욕창 때문에 엉덩이뼈가 보일정도로, 어떤 보호도 되고 있지 않았다. 반면 시설장은 횡령은 기본이고, 여기저기 관광을 다니며 제대로 시설을 관리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들을 경험하면서 장애인들의 인권을 지원하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장애인권법센터를 만들기 전에도 계속 공익활동을 해오고 있었는데, 특별히 독립단체를 설립한 이유는 무엇인가? 

로펌에서 일할 때도 의미 있는 사건들이 많았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사건이 이미 많이 진행된 상태에서 로펌까지 온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건이 일어나는 즉시 개입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피해자들이 여러 과정을 거치면서 감정적으로 소진되어 지친 상황에서 마지막으로 찾아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피해자를 직접 만나기 힘든 경우도 더러 있었다.
 
이후 당사자를 직접 만나면서 일을 하기 위해 서울시 장애인인권센터로 이직을 했다. 서울시 장애인인권센터는 피해자 등이 신고를 하면 개입하는 구조였다. 이전 보다는 피해자들을 만날 수 있는 계기가 많았고, 그렇게 3년 정도 일했다. 다만 서울시에서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사건이 서울시라는 공간에 한정될 수밖에 없었고, 전화로 초기신고를 받기 때문에 도움이 정말 필요하지만 전화로 신고할 수 없는 상황에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신고를 할 수 있는 분들은 자기 옹호체계를 조금이라도 표현 가능한 분들인데, 발달장애, 장애여성, 장애아동은 그야말로 사각지대에 있다. 특히 아동 같은 경우가 너무 열악하다. 아동이 자신의 상황에 대해 직접 목소리를 내기 어렵고, 주변의 옹호체계에 기댈 수밖에 없는데 그 옹호체계가 가해자라면 더욱 답이 없다. 그래서 피해자들을 직접 찾아가야겠다는 생각에 장애인권법센터를 설립하게 되었다.
 

장애아동의 경우가 가장 열악하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인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아동은 자신의 상황에서 대해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 장애아동은 더욱 심각하다. 그리고 장애아동의 인권을 대변하고 지원하는 단체가 거의 없기도 하다. 
 
또한 장애아동의 권리보호는 사회적 인식개선과 제도 설계가 필요한 영역이다. 예를 들면 중증장애아동 중에는 주기적으로 석션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의료인이 없다는 이유로 학교 내에서 석션을 못한다. 결국 중증장애아동은 일반학교에 입학하기 어렵다. 반면 일본은 간호사 입회가 가능하고 통합교육이 가능하다. 우리나라에도 법은 있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현재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법률 검토를 하는 중이다. 
 
<사진=장애인권법센터>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다면? 

특별히 어떤 사건을 꼬집어 말할 수 없지만, 예은이(가명) 사건이 기억에 남는다. 13살 예은이가 엄마 핸드폰을 가지고 놀다 핸드폰을 깨트리고 혼이 날까봐 집을 나갔다. 이후 강화도에서 예은이를 발견했는데, 예은이는 노숙인 상태였으며, 눈에 초점을 잃었고, 성폭력 흔적도 있었다. 예은이가 강화도까지 간 상황은 다음과 같았다. 예은이가 집을 나간 후에 엄마가 이용하던 채팅앱에 접속을 해서, 집을 나왔다고 하니 성인남성들이 재워주겠다고 하며 예은이에게 접촉을 한 것이다. 그런데 정작 가해자는 처벌을 받지 않았다. 왜냐면 우리나라는 만 13세 이상이면 성적자기결정권이 있다고 보는데, 예은이는 13세 이상이었고, 법원은 이것을 성매매로 본 것이다. 그래서 처벌이며 피해보상에서 패소하였다. 안타까운 사건이다.
 
성적자기결정권을 부여하는 것은 의미가 있으나, 문제는 성적자기결정권 부여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에 대한 이해 없이 형식적인 부여만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성폭력 교육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관계적 교육이 부재하고 기술적인 것만 가르치고 있다. 성폭력 상황에서는 위계, 권력 같은 것들이 중요하게 작용하는데도 말이다. 아무튼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심각한 피해에 이를 때까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또한 장애여성이 성폭력을 당할 때 자기효능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우리사회에서는 장애인은 비정상이라고 보고 장애인이 배제와 차별을 경험하는 경우가 많은데, 성폭력 가해자는 피해자에 대한 칭찬과 치켜세움 등을 통해 그루밍(길들이기)을 한다. 그렇다보니 피해자가 성폭력을 당하는 경험을 하면서도 이 상황이 거부해야 하는 폭력인지, 자기효능감을 느끼는 것인지에 대한 판단이 흐려지는 경우가 많다.
 

장애인 권리 옹호운동을 하면서 느끼는 한국사회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인식은 사람마다 달라 한마디로 말할 수는 없다. 예전에는 대부분이 장애인을 ‘불쌍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불쌍하지만 나랑 엮이고 싶지는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사회가 파편화되는 과정에서 장애인에 대한 인식도 변해간다고 느낀다. 
 
교육을 통한 인식 전환도 필요하겠지만 같이 부딪히는 경험이 더욱 중요하다. 가령 통합교육이 이루어지는 과정 속에서 나와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는 경험 말이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사회는 장애인은 시설에 수용되어야하고, 사회와 분리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 살기 바쁜, 척박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약자가 약자를 혐오하는 풍토가 심해지고 있다.
 

그런 사회의 인식을 직면하게 되면 절망스럽지 않나?

그렇다. 편견에 부딪힐 때 가장 어려움을 느낀다. 장애를 경험하지 못하고, 아니 경험이 없으면서도 완고한 편견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더욱 그러하다. 그리고 장애인은 으레 그래야 한다는 사회구조적 문제에 부딪힐 때도 참 답답하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하고 있는 일을 보면서 ‘좋은 일’을 한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나는 이 일이 적성에 맞고, 즐겁게 할 수 있기 때문에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숭고한 일을 하는 사람처럼 대한다. 장애인이 나와 다른 사람이 아니라고 여기는 사회라면 내가 하는 일은 그렇게 ‘특별한 일’이 아니지 않겠는가.
 

현재 아이가 2명이고 셋째를 임신했다고 들었다. 일가정 양립의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

남편이 최대한 도와주려고 하나 직장에 다니기 때문에 물리적인 한계가 있다. 그래서 내가 아이들의 양육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가장 큰 문제는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는 점이다. 객관적으로 아이들과 함께 보내야 하는 시간이 있는데, 그런 면에서는 일종의 타임 푸어다. 그래도 센터를 꾸리는 일은 자영업이다 보니 시간을 유동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장점은 있다.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스트레스가 되지 않아 버틸 수 있는 것 같다.
 

앞으로의 계획은? 

사람들을 만나면 앞으로 국회의원이나 관료가 되려고 인권운동을 하냐는 질문을 가끔 받는다. 전혀 그렇지 않다. 나는 이 일을 재미있게 오래 하고 싶다. 그리고 뜻이 맞는 동역자를 만나면 더욱 좋겠다. 그래서 현재도 열심히 연대하며 일을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장애인을 특별한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예 ‘어떤 태도로 대해야겠다’는 생각을 버리면 좋겠다. 사람에게 집중해 달라. 인간 대 인간으로 상호작용하면 다를 것이 없다. 장애라고 인식할수록 차이가 깊어지고 이것이 차별이 된다. 
월, 2018/01/01-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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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이 ‘한살림’을 만났습니다. 건강한 먹거리에 관심을 가진 많은 분들에게는 퍽 익숙한 이름일 겁니다. ‘한살림’은 생명을 살리고 지구를 지키며, 모두 어우러져 사는 세상을 위해 노력하는 생활협동조합입니다.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해 한 걸음을 내딛는 ‘한살림’과, 그 안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교육들을 만나보겠습니다.

 

생산자와 소비자, 더불어 건강하게

2016년 올해 30주년을 맞이하는 ‘한살림’은, 사람과 자연, 도시와 농촌이 생명의 끈으로 이어져 있다는 생각을 가진 생활협동조합입니다. 자연을 지키고 생명을 살리는 마음으로 농사를 짓고 물품을 만드는 생산자들, 그런 생산자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동시에 믿고 이용하는 소비자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생각이 바탕이 되어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직거래운동을 펼치는 것이 생활협동조합 ‘한살림’의 가장 대표적인 활동입니다. 

‘한살림’을 통해 직거래되는 농산물과 생산품은 ‘국내 생산물’을 우선으로 합니다. 특히 유기농 ‧ 무농약 ‧ 저농약 재배 농산물, 생산협동체, 사회적 기업에서 생산하는 물품들 위주로 거래되고 있습니다. 항생제, 성장촉진제를 사용하지 않은 건강한 먹거리의 유통이 ‘한살림’이 추구하는 ‘지구를 살리고 생명을 살리는’ 첫 번째 방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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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살림이 실천하는 교육

한살림에서는 유기농산물 직거래 활동 이외에도 많은 활동들이 이루어집니다. 생명사상을 연구하고 ‘도서출판 한살림’을 운영하는가 하면, 조합원 혹은 일반 시민들을 위한 생태, 환경, 주민자치 등 여러 분야에 대한 연구와 강좌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한살림 연수원’을 별도로 운영하며 한살림만의 고유하고 독특한 정신을 계승한 ‘마음살림’ 교육 과정과, 조직원들의 역량 강화를 위한 연수를 진행하기도 합니다. 한살림 중앙 조직 차원뿐만 아니라 지역별 한살림 지부에서는 생활협동조합의 조합원들이 참여할 수 있는 생산지 방문이나 아이들 생명학교를 운영하기도 합니다. 나아가 지역의 특색에 맞춘 크고 작은 다양한 강의들을 진행하며 여러 형태의 교육 기회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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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소년 겨울 생명학교(왼쪽), 딸기 생산지 방문 프로그램(오른쪽)

한살림에는 조금 남다른 조합원 가입 방법이 있습니다. 방문, 온라인 등의 방법뿐만 아니라, 한살림이 마련한 다양한 강의를 수강하면 조합원으로 가입할 수 있습니다. 교육을 접목한 한살림만의 독특한 가입 방법입니다.

또한 한살림은 조직을 넘어 우리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교육으로 확장하고자 힘쓰고 있습니다. 시민운동의 일환으로 생명과 생태를 다루면서 동시에 ‘한살림’의 가치가 녹아 있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지역사회와 함께 하는 생태 프로그램들을 통해 우리 사회에 생명의 소중함을 알리고, 이 프로그램을 수강한 사람들이 각자 리더로 성장하여 그 사람들이 다시 지역에 생명의 소중함을 알리게 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집니다. 이를 통해 우리 사회에 환경보호와 생명의 소중함에 대한 공감대가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입니다.

건강한 가치에 대해 함께 배우고 함께 성장하는 이 모든 과정이, 바로 ‘한살림’이 추구하는 교육의 모습입니다.

 

농촌과 도시가 함께 배우고, 함께 살아가는 세상

한살림은 농촌과 도시가 생명의 끈으로 이어져 있다는 생각으로, 농민 생산자들과 도시 소비자들이 서로 믿고 의지하는 사회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단지 생산물 구매를 통해 맺어지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를 배려하고 따뜻한 인정을 공유하는 가족이 될 수 있도록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1987년부터 진행된 ‘생산지 방문 프로그램’을 통해, 소비자들은 생산지에서 감자를 캐고, 메뚜기를 잡고, 사과를 따거나 밤을 줍는 등 직접 생산 과정을 배웁니다. 이렇게 체험한 생산 과정 그 자체가 아이와 어른 구분 없이 전 세대를 아울러 자연을 이해하고 느끼는 좋은 교육 프로그램이 됩니다. 여름 방학과 겨울 방학에 진행되는 어린이 생명학교를 통해서는, 아이들이 자연에서 마음껏 뛰놀고 동시에 자연의 가치를 몸으로 체험하고 있습니다.

 

공동체 문화를 통한 삶의 배움

한살림이 앞장서 공유하는 우리의 전통문화는,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함께 하는 삶’을 배울 수 있는 또 하나의 기회입니다. 1989년 충북 음성 성미마을에서 시작한 단오잔치는 매해 이어져 2013년에 11개 한살림 생산지에서 개최되었고, 1988년 11월 처음 개최한 가을걷이잔치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전통 문화를 공유하면서 농촌과 도시가 함께 살아가는 농촌공동체문화가 바로 한살림과 우리 이웃의 손을 통해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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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살림과 함께하는 단오잔치(왼쪽), 강원도 횡성군에서 진행된 ‘손모내기’ 활동(오른쪽)

한살림을 구성하는 가장 기초적이자 핵심적인 단위라 할 수 있는 ‘마을모임’. 그 자체가 역시 배움의 터전입니다. 삼삼오오 지역에서 모인 조합원들이 함께 배우고, 음식을 나누고, 육아 이야기를 나누는, 편안하면서도 유익한 모임입니다. 이 마을모임을 통해 조합원들은 한살림 소식을 공유하기도 하고, 물품을 전달하는 아주 기초적인 활동들을 합니다. 더불어, 마을모임 안에서 생산지 방문을 기획해 실천하기도 하고, 홍보활동을 직접 펼치기도 합니다. 게다가 어느 한 마을모임에서는 함께 비누 만들기를 배우다가 이렇게 만든 비누를 제품으로 생산하기도 했다고 하니, 마을모임은 교육의 터전이 생산지로 변형되는 창조적 모델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다들>이 만난 사람, 곽금순 한살림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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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 대표님에게 평생교육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나요?

교육은 변화를 이끌어내는 가장 큰 힘이 됩니다. 저 또한 일반 조합원으로 시작했지만, 한살림의 다양한 교육을 듣고 활동을 하며 지금에 이르게 되었죠. 변화를 이끌어내는 교육에 있어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교육이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차원이 아니라 감동과 깨달음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음 속으로 깨달음을 얻는 순간, 그 분야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 그리고 자신의 내면으로부터의 변화가 시작되거든요. 제 삶을 돌이켜봤을 때, 깨달음을 얻은 순간들마다 진정한 의미의 학습을 할 수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에게 평생교육은, 말하자면 ‘깨달음의 순간’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네요.

대표로서 한살림을 자랑해주세요!

자랑할 점이 참 많은데요(웃음). 조직을 이끌어나가는 대표의 입장에서 말씀드리자면…. 한살림은 55만 명의 조합원과 22개의 지역 생활협동조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다들 특징이 달라서 합의를 이루어내는 일이 어려울 때도 있지요. 하지만 그런 일들을 함께 추진하고 이뤄내는 것이 ‘함께 어울림’의 힘입니다. 외국에서도 한살림에 대해 많이 궁금해 하기도 하고 배워가는 경우도 많습니다. 생활협동조합이니만큼, 거칠게 말하자면 생산자와 소비자로 나뉜 구조라 할 수 있는데요. 한살림처럼 이렇게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어우러져 지내는 사례가 드물지요. 55만 조합원의 거대 조직임에도 한살림이 견고히 유지될 수 있는 것은, 우리만의 가치와 철학이 토대가 되어 여러 일들을 함께 논의하고, 이를 통해 합의를 이루어가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올해 한살림이 탄생 30주년을 맞이했거든요. 올해 말 쯤, 앞으로 새로이 나아가야 할 비전을 수립하고 이를 발표할 예정이니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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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살림에서 하고 싶은 교육 프로그램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한살림에서는 무엇보다 건강한 먹거리를 만들어 내는 농업을 중시합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GMO의 상용화, 식용화 증가라는 문제를 핵심 사업으로, 국민들이 관심을 가지고 함께 나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서울시 녹색위원회 위원이기도 한데요. 작년에는 방사능 관련 먹거리를 주제로 하는 토론회를 개최하기도 했었고, 올해는 GMO문제로 토론회를 개최하자는 의견을 냈어요. 꼭 한살림의 이름을 걸고 하는 일이 아니더라도, 먹거리와 관련한 다양한 주제로 시민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싶습니다. 서울시평생교육진흥원과 손잡고 건강한 먹거리 교육과 관련한 캠페인을 진행하고 싶은 욕심도 있네요(웃음).

서울시평생교육진흥원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안해주신다면?

지역 사회 안에서 질 높은 교육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유인 체계가 되는 것이지요.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는, 나이가 들어도 꾸준히 학습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은 것 같아 아쉽습니다. 예전에 독일에 간 적이 있는데요. 주민자치센터 등 일상적인 장소에서 노인들이 모여 학습 소모임에 참여하는 등 교육적인 활동을 활발하게 진행하는 것이 굉장히 인상적이었거든요. 좋은 강의를 제공하는 것이 우리 사회에 학습하는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는 출발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더 나아가 주민자치센터를 개방하는 등 일상에서 학습에 접하기 쉬운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도 좋겠지요. 이렇듯,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다양한 기반과 기회를 서울시평생교육진흥원에서 많이 마련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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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16/02/26-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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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참여팀] 참여연대의 자원활동가는 상근 활동가들과 손발을 맞춰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입니다. 10대 청소년부터 일흔이 넘으신 어르신까지 다양한 연령대와 학생, 주부, 직장인, 은퇴자 등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자원활동가들의 숨은 활약을 자원활동가 인터뷰를 통해 알려드립니다.

 

"생각을 실천으로 옮기기 위해 참여연대의 문을 두드렸어요."

 

참여사회연구소 자원활동가 김고운님

 

 

참여연대 자원활동가 김고운
참여사회연구소 자원활동가 김고운님 ⓒ참여연대

 

 

햇빛이 쨍쨍하던 연휴의 마지막 날, 자원활동가 김고운님을 만났다. 지하철역 출구 앞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지나가는 사람들 속에서 알아보지 못하면 어쩌나 잠시 걱정했었다. 하지만 이름처럼 고운 모습으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열심히 필자를 찾던 김고운님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바로 서로를 알아볼 수 있었다.

 

대학교 졸업 막바지에 다른 고운님은 참여연대 참여사회연구소에서 자원 활동을 하고 있다. ‘참여사회연구소’라는 이름이 너무 좋았다는 고운님은 그곳에서 기사 브리핑이나 매달 열리는 포럼 준비를 위해 의미 있는 기사를 선별하고 요약·정리하는 활동을 한다. 포럼이 열릴 때는 포럼내용을 속기로 기록하는 일을 맡는다. 최근에는 참여사회연구소의 계간지 『시민과 세계』개편 과정에서 대학생의 취향을 반영하기 위해 고민 중이다. 고운님은 이전에 『시민과 세계』와 같은 학술잡지를 읽은 적이 많지 않았다. 그런데 같이 활동하는 참여사회연구소의 간사님께서는 대학생 때 다양한 학술잡지를 통해 사회 문제나 관련 이론들을 많이 배우셨다고 한다. 그래서 더 많은 대학생들이 좋은 콘텐츠로 가득한 『시민과 세계』를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간사님과 함께 『대학 내일』같은 잡지도 보면서 신선하다 싶은 내용이 있으면 참고 중이다.

 

처음 참여연대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은 고운님에게 꽤 큰 용기를 필요로 했다. 머릿속에서는 항상 여러 생각들이 존재했지만,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조금 무서운 일이었다. 어떤 사안에 대한 관심이나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을 때 그것만으로 ‘어떤 사람’으로 규정되거나, 자기만의 주장이 강한 사람으로 비춰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특히, 고운님이 대학에 입학하던 때는 대선이 있어서 정치적으로도 민감한 해였기에 보다 조심스러웠다. 그래서 늘 한 발 뒤에 물러서 있었지만, 그렇게 계속 물러서 있는 것이 옳은 일 같지는 않았다. 자신의 생각을 만들며 다듬어가야 할 필요성을 느꼈고, 생각을 실천으로 옮겨야겠다는 생각에 용기를 내어 참여연대의 문을 두드렸고, 지금까지 자원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참여연대에는 각종 사회 문제들에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많은 분들이 있다. 고운님은 그분들이 그저 자기주장만 센 사람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사회의 여러 사안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알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참여연대에서 함께 활동하는 사람들의 의견은 다양했고, 그 다양함이 불편한 게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것들을 배울 수 있는 기회였다고 한다. 또한, 참여연대 간사님에게서도 많이 배웠는데, 참여사회연구소에서 신문 기사를 선별하고 정리할 때 간사님들이 기사주제와 관련한 내용을 조목조목 알려주시고, 스스로도 자연스레 어떤 사안에 대해 정리할 시간이 주어져서 특히 좋았다고 한다.

 

고운님은 현재 로스쿨 입시를 준비 중이다. ‘법조인’하면 흔히 생각되는 재판 관련 업무가 아니라, 좋은 법에 대한 개정 혹은 입법 운동에 관한 공부를 하고 싶어서 로스쿨 진학을 희망하고 있다고 한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에 대한 틀을 잡아가는 과정에 참여연대에서의 자원 활동이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언젠가 또 한 번 고운님을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며, 바쁜 틈에도 인터뷰에 응해주신 고운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작성 자원활동가 이성민 (계속해서 자라고 싶은 대학생)

목, 2015/05/28-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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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에 장난기 서린 웃음을 가득 담고 누구에게나 성큼 손 내미는 유쾌한 청년’

강산애 산행에서 만난 전귀정 후원회원님의 첫인상입니다. 강산애 총무를 맡고 있기도 했지만, 산행에 처음 참가하는 회원에게 먼저 다가가서 세심하게 챙겨주며 배려하는 친화력이나, 긴 다리로 성큼성큼 산을 오르는 활기찬 모습에서 선뜻 나이를 가늠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전귀정 후원회원이 직업군인으로 30여 년을 일했고, 곧 퇴직을 앞두고 있다는 걸 알았을 때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이나 직업의 경직된 그늘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오히려 언제나 자유분방한 청년 같은 에너지를 가득 품은 그가 궁금했습니다.

후원기획팀(이하 후원) : 희망제작소와 언제 첫 인연을 맺으셨나요?

전귀정 후원회원(이하 전) : 2011년 춘천에서 근무할 때였어요. 희망제작소 후원회원 행사인 ‘희망탐사대’가 춘천에 온다고 해서 참가신청을 하고 후원회원이 되었습니다. 두 자녀가 모두 대안학교에 다니고 있어서 평소 시민단체에 관심이 많았어요. 희망제작소가 어떤 곳인지 자세히 알고 싶어서 신청했던 게 시작이었지요. 그때 전명국 후원회원님도 처음 만났는데요. 강산애를 소개해주셔서 자연스레 산행에 참여하게 됐어요. 그러다 2016년에는 1004클럽 회원이 되었습니다.

후원 : 강산애 활동은 어땠나요?

: 강산애 회원이 늘어나면서 활기를 띠고, 뭔가를 해보자는 기운이 가득 차 있을 때 참여하게 됐어요. 너무 좋았죠. 좋은 사람들과 풍성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헤어지는 시간이 아쉬울 정도였어요. 강산애에는 3무 규칙이 있어요. 나이와 지위, 학벌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일을 떠나면 수평적이고 평화로운 관계를 선호하는 욕구가 제 안에 강하게 있어서 강산애랑 잘 맞았던 것 같아요. 강산애를 담고 있는 희망제작소가 더욱 아름답게 보였죠.

지난 연말, 촛불이 뜨겁게 타오르던 광장에서 전귀정 후원회원님의 또 다른 모습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하얀 소맷자락을 휘감으며 광장 한가운데에서 평화의 춤을 추는 전귀정 후원회원님의 모습은 마지막 남은 그늘 한 자락까지 다 털어버린 듯 강렬하고 자유로웠습니다.
전귀정 후원회원님은, 광화문광장뿐만 아니라 함께 활동하는 평화의 춤꾼들과 자비를 들여서 광주 5.18 묘역, 제주 4.3 묘역을 찾아서 아픈 역사의 상흔을 위로하는 춤을 추었습니다.
‘나를 포함해서 우리 모두 그분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그래서 용서와 평화를 기도하며 춤을 추었다’는 전귀정 후원회원님. 자신도 그곳에서 마음을 비우고 새롭게 채우는 과정을 경험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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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 : 춤은 어떻게 시작하셨나요?

: 올해로 35년 동안 일을 했는데요. 10년 전부터 퇴직을 하면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제 나름대로 세 가지 원칙을 세웠는데요. 첫 번째는 월급을 받는 직장생활은 하지 않는다, 두 번째는 이제까지 한 번도 해보지 않았거나 두려워했던 일에 도전한다, 세 번째는 모든 걸 새로 시작하자는 것이었지요. 춤, 노래 이런 건 제가 두려워했던 거였어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거쳐야 하는 일이 아닌가 해서 용기 내어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후원 : 춤출 때 어떤 느낌인가요?

: 나 자신에게 몰입하다 보면 순간순간 느껴지는 감동이 있어요. 부암동에 연습실이 있는데 한번은 수업 시간에 35년 직업을 회고하면서 춤을 추었어요. 그때 굉장히 뭉클하고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났어요. 내 마음이 이끄는 대로 움직인다는, 자유롭고 깊은 느낌이 저에게도, 주변에서 보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먹먹한 울림을 주었던 것 같아요.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전귀정 후원회원님은 내년 2월 퇴직을 앞두고 있습니다. 1년 동안 사회적응 기간을 보내면서 서울시50플러스센터에서 요리를 배우고, 희망제작소 모금전문가학교를 수강하고, 여행도 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쌓고 있습니다. 먹고 살아가기 위해서 하는 일을 흔히 ‘업’이라고 합니다. 평생직장의 신화가 사라지고 이직과 전직이 흔해진 세상에서 한 가지 업에 35년이라는 시간을 오롯이 보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전역지원서를 수백 번 썼다 찢었다’는 전귀정 후원회원님은 이제 인생 전반기를 마치고, 제2의 인생을 치열하게 준비하고 있습니다.

후원 : 앞으로 계획은?

: 일단 내년 2월에 퇴직할 때 기념으로 뭔가 의미 있는 나눔을 하고 싶어요. 인생의 한 매듭을 그렇게 지었으면 좋겠고, 그런 나눔이 나머지 생에서 꾸준하게 이어질 수 있는 기반을 만들고 싶어요. 장기적으로는 아직 희망사항이지만 고향 인근에서 포도농사를 짓고 싶어요.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준비할 생각입니다.
퇴직을 준비하면서 가장 많이 고민한 것은 ‘나는 어떤 사람인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에 관한 것이었어요. 일하는 동안은 눈앞에 일들에 얽매여서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거든요. 자유, 희망, 나눔. 앞으로는 이 세 단어를 마음에 품은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 글, 사진 : 커뮤니케이션센터 후원기획팀

수, 2017/10/11-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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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사회의 시선으로 한국의 사회권 현실을 바라보다

_유엔 사회권 위원회 한국 심의 대응 NGO대표단

 

인터뷰 및 정리: 조준희 |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간사

참석자: 김남희 참여연대 복지조세팀장·변호사

류미경 |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국제국장

류민희 |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

 

(좌측부터 시계방향으로 류민희 변호사, 류미경 민주노총 국제국장, 조준희 참여연대 간사, 김남희 참여연대 복지조세팀장) ⓒ 참여연대

 

지난 10월 9일, ‘유엔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규약 위원회(UN Committee on Economic, Social and Cultural Rights, 이하 사회권 위원회)’는 한국 기업의 인권침해 대응,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노조할 권리 보장을 핵심 과제로 하는 한국의 사회권 개선을 위한 최종 권고문을 발표했다. 핵심 과제 외에도 재분배적 재정정책을 포함한 사회지출 증액 가속화,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 제한 폐지, 모든 아동에 대한 보편적 출생등록제도 보장, 군형법상 동성애 처벌 조항 폐지, 부양의무자기준의 완전한 폐지, 주택임대차 계약갱신권 보장, 낙태의 비범죄화 등 구체적인 권고를 다수 제시하였다.

사회권 위원회의 이번 권고는 4번째를 맞는 사회권 위원회의 한국정부 심의 결과물로서, 한국의 사회권 증진을 위한 구체적인 방향과 요구가 국제사회로부터 제시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사회권 위원회가 한국 상황에 대해 이같이 구체적인 권고를 내릴 수 있었던 배경에는 지난 가을부터 이어져온 74개 인권·시민사회·노동단체의 노력이 있었다. 이번 복지톡에서는 74개 단체를 대표하여 제네바 심의 현장에 다녀온 7명의 NGO대표단 중 류민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 류미경 민주노총 국제국장, 김남희 참여연대 복지조세팀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자기소개 부탁한다

류미경: 민주노총 국제국장으로 일하고 있는 류미경이라고 한다. 이번 사회권 심의에서는 사회권 규약 중 6,7,8조(노동할 권리, 공정하고 우호적인 노동조건, 노조할 권리)와 관련하여 대응에 참여했다.

 

류민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에서 일하고 있는 류민희 변호사라고 한다. 이번 사회권 심의에서는 반차별 조항, 여성 관련 조항에 대한 준비를 했다. 이번이 네 번째 조약기구 심의에 참여하는 것이라 대표단의 제네바 안내 역할도 맡았다.

 

김남희: 참여연대 복지조세팀장을 맡고 있는 김남희 변호사라고 한다. 사회권 관련 단체들이 제네바에 모두 갈 수 없어서, 참여하지 못한 단체들이 다루는 이슈들을 담당했다. 사회보장권과 교육권, 문화권 등이 주요내용이었다.

 

이번 사회권 심의 준비과정을 소개해준다면?

김남희: 2016년 7월, 이번 4차 사회권 심의를 위한 정부 측 보고서가 사회권 위원회에 제출되었다. 이어서 2016년 가을부터 한국 심의 대응을 위한 NGO모임 활동을 시작했다. 이때부터 올해 2월까지, 정부 보고서에 대한 반박보고서를 공동작업해 유엔 측에 접수했다. 

사회권 위원회가 3월 경 정부보고서와 반박보고서를 바탕으로 질의목록(list of issue)을 발표했고 다시 정부는 질의목록에 대한 답변을 7월 유엔에 제출 했다. NGO모임은 정부답변에 대한 반박과 질의목록을 중심으로 한국 현실을 알리는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만들어 8월 말 유엔에 제출하고 본 심의를 준비했다.

 

이번 심의 대응을 위해 74개 단체가 모였다고 하는데, 준비 작업은 어떻게 진행되었나?

김남희: 74개 단체가 모두 모여서 작업을 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참여연대, 민주노총, 인권운동사랑방,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등 몇몇 단체가 주로 모여 준비를 담당했다. 참여단체들로부터 각 의제에 대한 의견을 받고, 그것을 위의 몇몇 준비 단체들이 취합하여 하나의 보고서로 만드는 방법으로 작업을 진행했다. 

동일한 범주에 있는 단체라도, 각 단체마다 강조하는 지점이 달라 그런 것을 조정하는 것이 어려운 작업이었다. 가령, 건강권이라는 주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도 에이즈 환우회에서는 에이즈 환자의 건강권 문제를, 장애인 단체에서는 장애인 건강권 침해 문제를 강조한다. 그래서 우선 사회권 위원회에서 제시한 질의목록을 중심으로 내용을 구성해나갔고, 참여단체들에게 보고서 내용을 확인받는 방식으로 조정해 나갔다.

 

류민희: 참여연대가 이번 사회권 심의 대응에 있어서 사무국 역할을 맡아줬다. 한국 시민사회의 좋은 전통이라고 생각하는 점인데, 이렇게 규모 있는 단체가 이런 국제적인 심의과정을 잘 모르거나 익숙하지 않은 단체에 안내를 하고 의견을 받아 종합적인 한권의 보고서로 만드는, 전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방식의 책임성 있는 역할을 맡았다. 이런 역할을 그동안 참여연대나 민변,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공익법센터 어필 등이 맡아왔다. 정말 고생하는 역할이지만, 국제담당자가 없는 작은 단체들로서는 이런 전통이 있어서 조약 심의에 참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9월 제네바에서 진행된 본 심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본 심의는 어떤 절차를 통해 이뤄지나?

김남희: 한국 심의는 9월 20~21일 양일에 걸쳐 진행되는데, 그 전에 국가인권위원회와 NGO가 공식적으로 발언할 수 있는 ‘파트너와의 미팅’자리가 9월 18일 진행되었다. 이 자리에서 NGO모임이 준비한 보고서의 주요내용을 발표했다. 그리고 18일부터 본심의가 진행되는 기간까지 사회권 위원들을 접촉하며 한국의 이슈에 대해 알리는 활동을 벌였다.

 

류민희: 가장 하이라이트는 비공식 브리핑인 런치 브리핑이었다. 한국 심의를 담당하는 위원들을 초대해 주요의제를 전달하는 자리다. NGO대표단에 참여하신 분들이 다들 선수(?)들이라 효과적으로 진행할 수 있었다. 엘리베이터 피치라는 말이 있지 않나.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는 시간처럼 짧은 시간에 핵심만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광고용어인데, 우리 대표단도 그 용어처럼 짧은 브리핑 시간동안 각자 분야에 대한 핵심을 잘 전달했다.

 

류미경: 제출한 보고서만으로 위원들이 세세한 한국 상황을 파악하는 데에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다. 그래서 이렇게 현지에서 개별 브리핑을 통해 핵심을 전달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할 말은 많은데 시간은 짧다보니, 의제를 늘어놓는 것보다는 핵심적인 의제를 반복적으로 전달, 강조하는 게 주효했던 것 같다. 역할을 미리 세세하게 계획한 것이 아님에도 각자 맡은 분야의 이야기를 적절하게 안배해서 이야기했고, 각 분야별 연결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등 팀워크가 잘 맞았다.

 

ⓒ 사회권위원회 심의 대응 한국NGO모임

 

이틀 간 이뤄진 본심의에서 정부 측의 공식 발언이 있었다. 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자.

류민희: 현지에서 위원회와 정부 사이의 대화를 흔히 상호적 대화(interactive dialogue), 건설적 대화(constructive dialogue)라고 표현한다. 발언자와 위원이 서로 논쟁하고 비난하는 자리가 아니라 상호 간 대화를 통해 더 나은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이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한국정부 측 발언 방식은 상호적 대화를 위한 발언이 아니라, 정해진 스크립트를 읽어 내려가고, 정해진 스크립트 내에서만 답변하는 방식이었다. 위원들이 정부 측 발언 내용에 대해 재질문을 던져도 처음 읽었던 스크립트를 재차 읽어 내려가는 식이다. 이번 심의에 여러 부처에서 정말 많은 공무원분들이 참석했는데 각자 본인 분야에 대해 말 그대로 ‘상호적 대화’를 진행했다면 좋았을 텐데 그 점이 아쉽다.

 

김남희: 어느 정도 책임감을 갖고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라기보다 한국 정부의 정해진 답변을 수동적으로 전달하는 역할로 대표단을 꾸린 느낌이었다.

 

류미경: 각자 기억에 남는 정부 측 발언을 이야기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노조할 권리와 관련해서, 한국에서 파업노동자가 형사처벌이나 손배가압류로 고통 받는 문제는 유엔이나 ILO에서 지속적으로 언급되는 사안이다. 이번에도 한 위원이 파업권 행사에 제약이 많다고 지적하며 이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물었는데 정부 측 대표는 “정당한 쟁의행위는 헌법과 노동법에 의해서 보호하고, 불법행위에 대해서만 처벌을 한다. 노조는 불법을 자제하고 기업은 지나친 가압류를 자제하도록 지도해 나가겠다”는 답변을 했다. 정부가 파업권을 촉진하기 보다는 제약하는 위치에 서 있다는 점을 드러낸 답변이었다. 다음날, 위원이 “합법파업의 조건 자체가 너무 까다로운 것 아닌가”라고 질문의 취지를 정리해 재질문을 던졌는데 정부 측 대표는 전날 답변의 문구 하나 바꾸지 않고 “정당한 쟁의행위는 헌법과 노동법에 의해 보호하고...(중략).., 노조는 불법을 자제하고 기업은 지나친 가압류를 자제하도록 지도해 나가겠다”로 이어지는 답변을 하더라. 아마 질문했던 위원도 황당했을 것이다. 그래서 최종권고에는 마치 정부의 반복된 답변에 운이라도 맞추듯이 “당사국은 파업권 침해에 이르는 행위를 자제하고-”로 이어지는 권고가 내려졌다. 정부가 쓴 표현방식을 그대로 가져와 정부의 책임성을 요구한 것이다.

 

류민희: 차별금지법 역시 매번 심의에서 주요하게 다뤄지는 이슈다. 차별금지법 제정이 안 되고 있는 한국 상황에 대해 위원이 질문하자, 정부 측은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답변을 내놨다. 그런데 사실 “동성애자가 성적지향을 이유로 해고당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하십니까”와 같이 질문을 풀어서 던지면,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비율이 81%까지 나오는 등 우리 사회에 어느 정도 합의가 존재한다. 위원이 이 설문 결과를 제시하자 정부 측은 “한국에는 다양한 여론조사가 있다”는 답변을 하더라. 사실 사회권은 규약 당사국의 정부가 주도적으로 만들어 나가야하는 것인데, 그런 식의 답변 때문에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는 최종권고가 나온 것 같다.

 

김남희: 주거권과 관련해서 임차인의 주거권 보호장치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하자, “임차인의 주거권과 집주인의 권리보호가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일종의 한국정부가 자주 쓰는 관용적 답변이 나왔다. 그런데 사회권 규약을 다루는 위원회에서 임차인의 주거권과 집주인의 재산권이 동등한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닌데, 그저 늘 하는 정치적 수사를 사용해 답변한 점이 너무 아쉬웠다. 이주민의 출생등록 보장에 대한 지적에도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아 검토가 필요하다는 답변을 했는데, 사회권 위원들은 아동의 보편적 권리를 보장하는 문제가 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사안인지 황당해 했다.

 

류미경: “사회적 합의”가 마치 만병통치약인 것 같다. 정부가 자주 쓰는 논리다.

 

보통 조약기구 심의에서 정부 측의 대응은 이런 방식으로 이루어지나?

류민희: 보통 이런 식이다. 다른 나라의 심의를 볼 기회도 많은데, 다른 나라 대표단은 대표단 규모가 작더라도 할 수 있는 말은 다 하고 간다. 그야말로 사회권 위원들과의 상호적 대화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어떤 질문을 해도 같은 답변이 돌아오는, 마치 벽을 보고 심의하는 것은 한국정부 심의의 특징 같다. 정제되지 않은 답변이 불러올 수 있는 오해의 우려는 이해하지만, 그래도 좀 다르게 할 수 있었을 것 같다.

 

류미경: 한국에 앞서 심의를 받은 콜롬비아만 하더라도 스크립트를 읽지는 않았다. 실제로 콜롬비아 정부가 자국에서 어떤 노력을 하는지와는 별개로, 심의 과정에서는 질문에 대해 동문서답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부족한 점은 부족한대로 인정한다. 그리고 그 부족한 점을 해결하기 위해 심의를 받는다는 점을 인지한다는 듯, 자국 정부의 노력과 함께 국제사회도 힘을 보태달라는 솔직한 답변을 하더라. 반면 한국 정부는 사회권 규약의 이행 여부와 노력보다는 한국의 현재 법제도에 대한 소개를 하러 온 느낌이었다.

 

김남희: 사실 사회권이 완벽하게 보장되는 나라는 없다. 그래서 사회권 심의는 어떤 부분이 취약하고, 어떤 부분이 시급한지 정부와 국제사회가 함께 점검하는 자리다. 그런데 정말 한국 정부는 그런 대화가 아니라 한국의 법제도를 소개하는 정도의 발언만 했다.

 

류미경: 예를 들면, 특수고용직 노동자의 노동3권 보장에 대해서, 한 위원이 사용자와 노동자의 정의를 확대해서 특수고용직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해야하지 않느냐는 지적을 했는데 정부 측의 답은 “사용자란...(중략)... 근로자란...(중략)...”이라며 근로기준법 조항을 그대로 읽어 내려가는 것이었다.

 

김남희: 시간지연을 위한 전략이 아닌지 의심되는 경우도 많았다. 어차피 심의 시간이 총 6시간으로 한정되어 있으니 발언을 길게 하면 질문을 받을 시간이 줄어든다.

 

류미경: 그렇다. 듣는 사람이 답답할 정도로 천천히 이야기하는가 하면, 불필요하게 반복적으로 자기소개를 하기도 하더라.

 

이번 사회권 위원회의 최종권고는 언론에서도 중요하게 다뤄졌다. 최종권고 내용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류민희: 심의 과정에서 쟁점으로 다뤄지고 정부 측 답변이 부실했던 내용을 중심으로 골고루 담겼다. 성소수자 인권과 관련해서는, 그동안은 보통 표현의 자유, 결사의 자유 등 자유권과 관련된 부분이 강조되어 왔는데 사실 성소수자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피해는 사회권과 관련된 것이 많다. 예를 들면 차별로 인한 정신건강 문제, 사회보장 영역에서의 성소수자 차별 등이다. 이번 권고에서 성소수자 인권 중 사회권 부분이 새롭게 제시되었다는 점은 의미가 크다. 이번 권고를 통해 정부도 성소수자의 사회권 침해를 자신들이 해결해야할 문제로 인식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류미경: 문재인 정부는 노동존중사회를 지향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노동존중사회를 자칭하면서도 정작 노조할 권리를 정부의 핵심 과제로 내세운 적은 없다. 일자리 창출에 대한 정책이 우선시 된다. 그래서 이번 최종권고에서 세 가지 우선 과제 중 하나로 노조할 권리를 제시한 점은 의미가 크다. 사회권 규약이 제시하는 수많은 권리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역할이 크지만 이에 앞서 모든 사람들이 단결하여 집단적으로 힘을 발휘할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점을 짚어준 권고라고 생각한다. 노조할 권리는 흔히 ‘enabling right’라고 이야기한다. 어떤 권리를 실현하기 위한 전제가 되는 권리, 즉 권리의 기본이 되는 권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부분이 강조된 것이다.

그리고 한국 재벌이 해외에 나가서 기업활동을 벌일 때 생기는 인권침해에 대한 대안도 제시되었다. 최근의 추세는 인권침해 이후 구제를 제공하는 것뿐 아니라, 인권침해를 미리 예상하고 예방하는 ‘예방책임’이 강조되고 있는데 이 점을 권고한 것이다.

 

김남희: 인상적이라고 생각하는 권고는 재분배적 재정정책을 포함한 사회지출 증가를 추진하라는 권고였다. 문재인 정부는 복지예산을 늘리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는데, 이에 대해 야당은 ‘퍼주기’ 프레임을 씌워 공격하고 있다. 이번 권고에서는 한국의 열악한 사회권 현실에서 더 적극적인 국가의 의무가 필요하다는 점을 재확인 시켜준, 복지예산 지출에 대한 근거를 마련해준 것이라 의미가 있다. 그 밖에도 부양의무자기준 완전폐지라든지, 주거권에 대한 구체적 권고 등 한국의 시민사회단체들이 노력해 온 부분에 대한 권고가 포함된 것도 의미가 크다.

 

추후 이런 국제적인 심의에 대응할 때 고려할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그리고 국제사회의 권고가 실제 한국의 사회권 개선으로 이어지려면 어떤 노력이 동반되어야 하나?

김남희: 이번 심의에서 개인적인 아쉬움이 있다면, 원전과 건강권에 관련된 질의가 나왔는데 이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했고 최종권고에도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국의 원전 문제는 국제적으로도 관심을 받은 이슈여서 질의가 나온 것 같다. 그런데 사회권 위원회가 제시한 질의목록에 포함되지 않은 부분이라 준비가 부족했던 것이다. 그래서 질의목록에 포함되지 않은 문제 중에도 국제적으로 관심을 가질만한 의제는 충분히 대비를 하고 심의 대응에 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사회권과 환경과의 관계가 최근 유엔 내에서 관심을 많이 받고 있는데 이러한 부분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

 

류민희: 우선 차기 심의 전까지 이번에 나온 권고를 국내 사회권 운동에서 적극 활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사실 최종권고 문서는 국내운동에서 활용하지 않으면 그저 인터넷에 떠도는 수많은 텍스트 중 하나에 불과하다. NGO대표단이 최종권고를 번역해서 보도자료를 배포한 것도 그런 노력 중 하나였고, 앞으로도 보도자료에 다 담지 못한 행간의 의미를 최대한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려고 한다. 차기 심의가 있을 때까지는 이번 권고 이행을 위한 운동을 충실히 전개해야 할 것이고, 다음 심의까지도 이행되지 않은 부분들을 중심으로 차기 심의를 준비해야 한다.

 

류미경: 이번 심의는 한국이 4번째 받는 사회권 심의였다. 그런데 1차부터 4차까지의 권고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내용이 크게 다르지 않다. 그만큼 한국이 사회권 위원회의 권고를 충실히 이행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그래서 이번 4차 권고를 토대로 운동을 벌이는 것만큼이나 1차부터 3차까지 제시된 권고가 충실히 이행되지 못했다는 점을 문제 삼는 작업도 필요하다.

 

김남희: 정부가 심의에서 보여준 태도를 보면, 과연 권고 내용을 진지하게 받아들일지 의문이다. 하지만 촛불혁명으로 출범한 정부인만큼, 이번 권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이행하기를 바란다. 시민사회에서도 끈질기게 감시하고 요구할 것이다. 더불어, 단순히 행정부뿐만 아니라 입법부도 정부가 권고사항을 이행하는지 감시하고 필요한 법제도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사법부 역시 사회권 규약을 실질적인 재판규범으로 인정하는 등 구체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번 사회권 심의와 권고가 갖는 사회적인 또는 개인적인 의미를 이야기한다면?

류민희: 내가 새정부의 입장이라면 이번 권고가 반가울 것 같다. 정말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를 이렇게 정리해서 제공해주니 말이다. 정부도 이번 사회권 심의를 단지 회피, 변명의 자리가 아니라 비틀어진 정상점을 재조정할 수 있는 계기로 삼기를 바란다.

 

류미경: 그렇다. 조약기구 등 국제사회 심의에 임하는 정부의 태도가 바뀌었으면 한다. 앞서도 이야기했듯이 한국 정부는 항상 이런 심의에서 “사회적 합의가 무르익지 않아 어렵다”는 말을 책임회피용으로 사용하곤 한다. 그런데 거꾸로 생각해보면,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내기 위해 정부가 이번 권고와 같은 국제사회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하는 것 아닌가. 정부는 사회권 규약의 이행여부를 단순히 지켜보는 주체가 아니라 사회권 규약 이행을 위해 가장 적극적으로 노력해야하는 주체라는 점을 새겨야 한다. 그런 태도의 전환이 필요하다.

 

김남희: 문재인 정부는 실제로 사회권 증진을 위한 몇몇 정책 목표를 제시한 바 있다. 그런데 그 이행에 있어서 예산낭비 프레임을 동원하는 야당의 공격을 받고 있다. 그래서 정부 입장에서는 오히려 이번 권고를 “국제사회의 요구”로 삼아 적극 활용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전까지 사회권 관련 운동을 하면서 한국의 법제도 내에서 해결이 안 될 경우 좌절감을 느낄 때가 많았다. 그런데 이번 심의에서 사회권 위원들이 보편적인 기준을 바탕으로 한국의 상황을 ‘문제’로 진단하는 것을 보니 그동안 국내에서 진행했던 사회권 운동이 굉장히 합당하고 의미 있는 것이었음을 다시 확인받는 것 같았다. 그런 의미에서 활동가로서도 가치 있는 경험이었다.

수, 2017/11/01-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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