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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위기에 빠진 '세월호 특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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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위기에 빠진 '세월호 특별법'

익명 (미확인) | 수, 2015/11/04- 08:33

오늘의 출연자

  • 진행 : 안진걸 협동사무처장 (참여연대)
  • 고정출연 : 정태인 소장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 이슈손님 : 이태호 사무처장 (참여연대, 4.16연대 상임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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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팟 18회 / 위기에 빠진 '세월호 특별법'
 
역사교과서 국정화속에 잊혀질 수도 있는 세월호
 
어제(11/3)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고시강행에 대해 항의하는 기자회견이 열렸습니다. 많은 세월호 유가족들이 이른바 '국정교과서'에 대해 걱정을 많이 하십니다. 정부가 입맛대로 만드는 역사교과서가 생기면 세월호의 이야기는 아예 빠지거나 '해양 교통사고'로 기술되지 않을까요?
 
조사는 시작도 못한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작년 11월 7일 우여곡절 끝에 '세월호 특별법'이 통과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이제 진상규명을 잘할 수 있겠구나 생각했지요. 
2015년 1월 1일에 법이 시행은 되었지만 3월에 가서야 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 위원장과 상임위원 임명식이 진행되었고, 시행령 문제로 정부와 씨름하다 보니 5월 11일에 시행령 공포하고 8월이 되어서야 특조위 활동에 예산 배정과 지급을 시작했습니다. 
이제 겨우 활동한 지 2달이 되는 셈입니다. 
그런데 정부에서는 어떻게서든 특조위 활동을 축소 시키기 위해 특조위 활동은 올 연말까지, 길어도 내년 6월을 넘기지 말자고 하고 심지어는 이러 저런 핑계를 대며 예산도 대폭 축소했습니다. 
 
세월호의 진실은 아직 바다속에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에서 진행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인데 진상규명을 외치면 경찰 조사를, 참사 당일 '대통령의 7시간 부재'에 대해 얘기하면 명예훼손을 운운할 뿐입니다. 
참팟 18회는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과 함께 세월호 특조위 활동의 문제점과 진상규명의 쟁점에 대해 짚어 보고, 앞으로 4.16연대의 활동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 플레이어가 보이지 않는 경우 : http://www.podbbang.com/ch/8005?e=218177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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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07세월호.png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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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 안진걸 공동사무처장이
매주 화요일 오후 tbs FM "색다른 시선, 김종배입니다" - '안발장의 민생 이야기' 코너에 출연합니다.
 
4/26 방송은 "단통법 시행 1년 6개월.. 평가" 입니다.
"색다른 시선, 김종배입니다" 홈페이지 => http://www.tbs.seoul.kr/fm/different/
 
* 유튜브 바로가기 : https://youtu.be/7E1M_k5gqCc
 

수, 2016/04/27-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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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만의 민족공동행사가 남긴 숙제

 

 

이태호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장, 참여연대 정책위원장 

 

 

지난 10월 4일부터 6일까지 평양에서 열린 10·4선언 11주년 기념 민족공동행사에 남측 방문단의 일원으로 다녀올 기회를 얻었다. 이번 행사는 2007년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평양에서 10·4선언에 합의한 이후 남북이 공동으로 진행하는 첫 기념행사였다. 11년 전, 6·15선언실천민족공동위원회(6·15공동위원회)가 주최하는 민족통일대회의 실무자로 평양을 방문했던 필자로서는 감회가 남다른 여정이었다.

 

10·4선언을 위한 11년 전 ‘민간’의 노력들

 

2007년 6월, 남북관계는 결코 평온하지 않았다. 2005년 6자회담 9·19공동성명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미국이 방코델타아시아 북한자금에 대한 금융제재를 강행하고, 이에 반발한 북한이 2006년 제1차 핵실험을 실시하면서 위태로워진 상황이었다. 남북관계와 북미관계는 2007년 초 6자회담 2·13합의로 가까스로 제 길을 찾아가는 중이었다. 하지만 임기 말을 앞둔 노무현정부는 북의 최고위급과 한반도의 운명을 두고 담판을 벌일 기회와 시간을 점점 잃어가고 있었다.

 

당시 6·15공동위원회, 특히 남측위원회는 남북 당국 간 관계의 전진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초정파적 민간협력의 모범사례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부담을 지고 방북했다. 백낙청 상임대표의 연설문 한 문장, 우리 대표단의 건배사 한줄에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고, 모든 연설문도 반드시 남북 상호가 사전 검토해 행여 어느 한쪽에서라도 논란이 나오지 않게 했다. 심지어는 본 행사 주빈석에 야당(당시 한나라당) 의원 좌석배치를 갑자기 바꾼 북측에 원상회복을 요구하며 본 행사일정을 이틀간 연기하기도 했다. 초정파적 교류협력의 정신을 지켜내고자 한 것이다.

 

이렇듯 10·4선언이 도출되기까지 투여된 숱한 땀과 노력, 지난한 협상과정에는 당국의 노력 못지않게 민간의 숨은 역할이 있었다. 이 과정에서 시민참여형 통일운동에 대한 백낙청 당시 상임대표의 확고한 비전과, 남북한 주민들의 눈높이에 맞게 공동행사를 성사시키려는 집행부의 각별한 노력이 원동력으로 작용했다고 감히 단언할 수 있다.

 

일상화되어가는 남북 간 교류와 협력

 

하지만 노력한 보람도 없이 지난 10여년간 남북관계는 단절된 채 악화일로를 걸었고, 6·15선언과 10·4선언에서 합의된 사항들의 실천 역시 전면 중단됐다. 민간 주체들의 최소한의 교류와 협력마저도 대부분 차단됐다. 6·15남측위원회의 활동도 큰 제약을 받았다. 이 상황을 뒤바꾼 것은 지난 2016년 겨울 일어난 촛불혁명과 그 결과로 이루어진 정권교체였다. 그후 판문점선언을 통해 남북 정상은 “한반도에 더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며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리었음을 8천만 우리 겨레와 전 세계에 천명”했다.

 

4·27판문점선언과 9·19평양공동선언을 계기로 남북 간 협력과 교류는 일상화되고 있다. 이번 10·4선언 11주년 기념 민족공동행사는 새롭게 열린 한반도 평화와 남북협력 시대에 남과 북의 당국과 민간이 과연 어떻게 관계 맺고 협력할지를 모색하는 시금석 같은 행사였다. 이 여정에 참여하면서 보고 느낀 개인적인 소회와 더불어 이번 공동행사를 통해 확인되는 4·27, 9·19시대 남북 민간교류와 민관협치의 몇가지 주목할 만한 특징과 시사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평양=이태호

 

변화하는 북한, 이제 ‘시민참여형’ 민관협치가 중요하다

 

우선 이번 공동행사는 민간이 주도하고 가교역할을 했던 과거와 달리, 정당, 지방자치단체, 각계각층 민간이 함께 참여하고 당국이 주도하는 합동행사의 형식으로 진행됐다. 이미 당국관계가 상당한 폭으로 진전되어 관계개선의 추동력으로 작용하는 상황을 반영한 것이라 이해된다. 국면의 특징상 민간의 주도적 역할이 줄어든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오히려 남북관계가 일상화되는 조건에서 민관협치의 중요성이 커지고, 협동해야 할 일이 많아졌다고 이해하는 편이 바람직하지 않나 싶다. 새롭게 대두되는 과제는 새로운 조건에 맞게 공동행사에 참여하는 민간주체의 구성과 역할을 다변화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이번 방북단의 일원으로 통일국민협약 등 남북관계에 관한 사회적 대화와 합의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한 보수단체 대표들을 포함해, 과거에 참여하지 않았던 인사들도 일부 함께할 수 있었던 것은 진전이라 하겠다.

 

둘째, 북측의 태도가 과거와 달리 여러면에서 한결 여유롭고 융통성 있게 변하고 있음이 관측됐다. 그것은 남북관계의 개선으로만 설명하기 힘들고, 지난 10여년간 크게 발전한 북한 상황과도 연관이 있어 보인다. 2007년과 달리, 평양에는 여명거리를 비롯한 곳곳에 고층건물들이 들어섰고 각종 매대나 가게들이 크게 늘어났다. 전기공급도 한층 나아진 듯 보였고 무엇보다 핸드폰 사용인구가 급격히 늘어난 것이 눈에 띄었다. 주민들의 옷매무새와 얼굴표정이 훨씬 여유있고 다채로워진 것은 물론이다. 이번 행사 과정에서 과거 어느 때보다 북측 주민들과 접촉할 기회가 많았다는 것도 중요한 변화의 하나였다. 예를 들어 동물원과 자연사박물관 견학 중에는 남측과 해외 방문자들이 시설을 관람하는 동안 북측 주민의 출입을 통제하지 않았다. 남북공동행사가 소수의 엄격히 조율된 상징의식의 수준을 넘어설 가능성을 보여주는 단서라 하겠다.

 

셋째, 당연한 일이지만 남북공동행사의 준거점과 의제가 좀더 다양해졌고 남북 간 공유의 폭 역시 넓어진 것을 확인했다. 남북 간 최고위층의 합의에 평화체제와 비핵화, 군사적 신뢰구축과 군축 등이 포괄적으로 포함됨에 따라 민간 차원의 의제설정과 주장에서 긴장과 금기가 상당히 완화됐다. 한편 11년 전에는 6·15선언이 거의 유일한 남북정상 간 합의문서였고 ‘남과 북에 다같이 의의있는 날’ 역시 6·15 혹은 8·15 정도였다면, 이번 공동행사에서는 4·27판문점 선언과 9·19평양공동선언이 하나의 기준문서로 인용되거나 거론됐다. 앞으로 공동행사를 벌일 만한 ‘의의있는 날’에 4·27, 9·19를 포함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 됐다. 이는 민족공동행사의 의제설정과 조직화 과정을 도맡아왔던 6·15공동위원회의 역할 역시 재조정되어야 할 시점에 이르렀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해준다.

 

폭넓은 민간 주체가 참여하는 실질적 협치 구조가 필요

 

마지막으로 아쉬운 점을 지적하자면 이번 공동행사는 9·19선언 직후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급하게 치러졌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그 형식과 내용 면에서 지나치게 요식적이고 상징적인 수준에 머물렀다. 민족통일대회에서 채택한 호소문의 내용은 양 정상의 선언과 합의를 추인하고 그 순조로운 이행의 결의를 재확인하는 수준이었다. 참가단 구성에서 노무현재단 측 인사의 참여비중이 과도하게 높았고, 각계각층 인사의 참여는 제한됐다. 해외 측 참석 인사의 구성 역시 지나치게 북측에 가까운 인사들로 편중되어 있었다. 부문 간 상봉행사는 1시간 내외로 매우 짧았고 그 구성 역시 단조로웠다. 4·27판문점선언의 결과로 남북연락사무소가 개성에 설치되어 일상적인 민간교류협력의 창구로 기능하는 상황에서 민족공동행사를 사실상 유일한 접촉 창구로 삼는 현재의 방식은 지속 가능하다고 할 수 없다. 정부, 정당(국회), 지자체, 사회단체가 좀더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민족공동행사의 내용과 형식을 크게 바꾸지 않을 경우 이번처럼 요식행사로 굳어질 우려가 크다.

 

이번 공동행사는 남북관계가 일상화되고 제도화되어가는 과정에서 정부와 국회, 지자체와 시민사회가 어떻게 협력해나가야 할지 모색하는 첫 실험이었다. 공동행사라는 형식이 지닌 여러 제약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갈등 완화와 평화정착으로 나아가기 위해 필수적인 남북 민관협치 활동으로 이해하고, 민간 스스로 고도의 인내심과 목적의식을 발휘해 의제와 범위를 단계적으로 확장해나갈 필요가 있다. 다만, 공동행사 추진기구 자체의 강화를 꾀하거나 더 높은 수준의 연합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폭넓고 다양한 이들이 모여 비록 고르지 않더라도 다채로운 의견을 나누고 표출하도록 하는 것에 역점을 두어야 한다. 또한 사전 준비나 운영에서 당국만이 아니라 민간 주체가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협치 구조를 만들어내는 것도 숙제라 하겠다.

 

 ⓒ평양=이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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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18/10/10-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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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제작소에는 특별한 경험을 가진 연구원이 있습니다. 지속가능발전팀의 박흥석 선임연구원인데요. 박흥석 선임연구원은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에서 조사관으로 활동한 이력을 갖고 있습니다. 세월호 3주기를 맞아 박흥석 선임연구원을 만나 그간 하지 못했던, 그리고 하고 싶었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잘 보지 않던 TV를 켰다. 익숙한 얼굴에 나도 모르게 놀람의 감탄사가 나왔다. 동료 연구원이었다.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에서 활동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화면 속 그는 실없이 아재개그를 날리던 사무실의 모습과 사뭇 달랐다. 진지하게 세월호 이야기를 풀어내는 그의 눈동자에서 빛이 났다. 무엇 때문일까. 궁금해졌다. ‘홍보팀’이라는 명목을 내세우며 무작정 인터뷰 요청을 했다. 그는 흔쾌히 좋다고 했다.

하지만 질문지를 만들며 난관에 봉착했다. 무엇부터 물어야 할지 막막했다. ‘세월호’라는 사안이 무겁기도 했고, 잘못 접근하면 누군가에게 의도치 않은 상처를 줄 수도 있었다. 고민 끝에, 세월호 참사를 슬퍼하고 잊지 않으려 애쓰는 시민의 관점에서 질문을 던져보기로 했다.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어느 날, 박흥석 선임연구원(이하 박흥석 연구원)과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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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일상의 붕괴를 목도한 순간

“그날이 특별했던 사람은 많지 않았을 거예요. 참사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참사 당일 무엇을 하고 있었냐는 질문에 그는 ‘평소와 같은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실시간 생중계로 배가 가라앉는 걸 보면서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탑승객이 400명이 넘는데, 구조된 사람은 한 명도 없었잖아요. 말도 안 되죠. 애지중지 키운 아이들이 산 채로 수장되었는데, 부모님들은 얼마나 슬플까요. 항상 곁에 있던 아이가 사라진 거잖아요. 일상이 무너진 거죠.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한 게 한스러울 거예요.”

당시 박흥석 연구원은 한 지방자치단체장의 선거운동을 돕고 있었다. 자연스레 정부, 국가, 공권력에 관해 깊이 고민하게 됐다. 세월호 참사도 비슷한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었다.

“와우아파트 붕괴, 서해 훼리호 침몰, 대구 지하철 화재 등에서 정부의 대처는 한결같이 미흡했어요. 사고원인을 밝히는 과정도 표면적이었죠. 세월호도 마찬가지더라고요. 시간이 지날수록 과거를 답습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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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세월호 참사가 단순한 여객선 사고로 규정되어서는 안 된다고 힘주어 말한다. 배가 침몰하기 시작했을 때 정부가 적극적으로 구조에 나섰다면, 이와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이다.

“이전 사례와 비슷하게 흘러가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침 조사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특조위에 참여하기로 했죠. 하지만 발족 과정에서 문제가 많았어요. 세월호 특별법(4·16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은 2015년 1월에 제정됐는데, 그해 여름이 되어서야 첫 출근을 했거든요. 그래서 지방선거 이후에 1년을 반백수로 지냈어요. 가족들이 많이 고생했죠. 저도 돈 준다고 하면 무슨 일이든 닥치는 대로 했어요.”

특조위 활동은 눈엣가시?!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조위에서 그의 첫 역할은 이석태 위원장 보좌였다. 선체 인양이 거론되기 시작했지만, 특조위는 해양·조선·선박전공자를 찾지 못해 애를 먹었다. 보통 조선·해양전문가는 고액 연봉과 좋은 대우를 받게 마련인데, 특조위 활동은 기간이 정해져 있는 것은 물론 처우나 급여가 좋지 않았다. 더구나 해운업계의 가장 큰 고객은 해양수산부다. 특조위 활동 경력이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인식이 퍼졌다. 결국 평소에 틈틈이 인양 관련 공부를 해온 박흥석 연구원에게 관련 업무가 넘어갔다.

“저는 법학과 경제학을 전공했거든요. 선박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어요. 제대로 조사하려면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죠. 1년 정도 활동하면서 쉰 날이 20일도 안 돼요. 퇴근도 거의 밤늦게 했고요. 할 게 많았지요. 하지만 돌이켜보면 여전히 아쉬운 점이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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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그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일까. 특조위의 모든 조사관이 밤낮없이 진실을 밝히는 데에 몰두했다. 정부와 기득권에는 눈엣가시였을 터다. 때문에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와 같은 전철을 밟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왔다. 하지만 조사관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박 연구원은 특조위를 ‘불나방’에 빗대어 표현했다.

“많은 분이 우려하셨죠. 그래도 조사관들 사이에는 ‘그래도 시도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었어요.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죠. 반민특위 사례만 봐도 색깔과 이념 프레임으로 숨통을 끊어놨잖아요. 특조위도 비슷한 과정을 겪었어요. 특조위 내부 자료가 새누리당에 넘어간 적도 있고, 정부가 특정 단체에 활동 반대집회를 시키기도 했죠. 심지어 경찰서 정보과나 국정원이 조사관과 유가족 사찰까지 하더라고요. 심적 부담이 컸어요.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는 거잖아요.”

2016년 해양수산부는 선체조사 관련 예산을 따로 편성하지 않았다. 특조위가 먼저 선체를 정밀히 조사해야 한다며 예산 확보를 주장했다. 그러자 해수부는 인양 선체 정리 예산으로 40억 원을 편성했다. 선체조사와 선체정리는 분명 다르다. 하지만 기획재정부는 사용처가 같다며 특조위의 요구를 예산에서 삭감해버렸다. 또한 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특조위의 활동을 강제종료 시켜버렸다.

“특조위가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2015년 8월이에요. 그런데 정부는 특별법 시행일인 같은 해 1월부터 활동했다고 주장했어요. 1월에는 조사인력과 예산이 없었는데 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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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언제나 선(善)인가… 시민의 역량으로 감시해야

조사관들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꿈에 시달리다 벌떡 일어나기도 했고, 스트레스와 분함이 극도에 달했다. 특조위 활동 이전 생활로 돌아갔지만, 공간뿐이었다. 잘 지내는 것 같지만 여전히 날카롭고 아픔에 취약하다는 것이다.

박흥석 연구원도 많은 변화를 맞이해야 했다. 그는 자신이 좀 더 ‘무거워졌다’고 말한다. 여러 일을 겪으면서 내면의 심연을 봤다고나 할까. 좋게 말하면 마음이 쉽게 흔들리지 않는 것이고, 나쁘게 보면 공감이 어렵다는 말이다. 요즘은 세심한 감정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구조에 직접 뛰어드신 분들의 트라우마가 가장 심할 거예요. 국가가 짊어져야 할 것을 그분들이 다 감당하셨잖아요. 깊은 바다에 들어갔다 나오면 일정 시간 감압(잠수병 방지를 위해 몸에 용해된 불활성 가스를 제거하는 것)을 해야 해요. 하지만 구조에 참여한 잠수사들은 밖으로 나오자마자 물에 다시 들어갔어요. 후유증이 생길 수밖에 없죠. 더구나 차갑게 식은 아이들을 품에 안아 뭍으로 올라와야 하는데 얼마나 힘드셨겠어요. 신체적·심리적 치료가 절실했죠. 하지만 정부는 갖은 핑계를 대가며 그분들을 외면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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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故 김관홍 잠수사의 일이 안타까우면서도 그 심정이 십분 이해된다고 했다.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하지만 이내 목을 가다듬은 후, 국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다시 힘주어 말했다. 정상으로 돌려놓기 위해서는 시민의 목소리가 중요하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국가라는 게 선한 것처럼 포장돼 있지만 그렇지 않아요. 조건 없는 믿음은 버려야 해요. 언제 위협적으로 변할지 아무도 모릅니다. 시민의 역량으로 국가가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해요. 우리는 국가를 계속 감시해야 합니다.”

국가를 사랑하는 것을 강조한 나라보다 국가를 통제하는 것에 관심을 가진 나라가 그나마 ‘덜 나쁜’ 나라가 될 수 있었다고 말한 어느 헌법학자의 말이 떠올랐다. 해법은 결국 시민의 힘을 모으는 ‘연대’에 있지 않을까? 지난해 촛불집회에서 경험했듯이 말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진상규명 요구 서명에 650만 명의 시민이 참여했어요. 덕분에 특조위가 만들어졌고요. 이후 416연대라는 단체도 생겼고, 유가족협의회에 시민이 재정을 지원하는 등 여러 측면에서 연대의 움직임이 보였어요. 긍정적이죠. 하지만 좀 더 깊이 들어가면 아쉬운 점도 있어요. 단편적인 활동이 많았거든요. 연대체 간 갈등이 생겼을 때 조율할 수 있는 역할이 없었던 것도 아쉬워요. 사실 이런 건 정부가 제 역할을 하지 않는 바람에 피해 당사자들이 직접 나서서 생기는 일이거든요. 정부가 유가족 한 분 한 분 만나 잘 다독이고 서로 상처 주지 않게 해야 하는데 그 역할을 못 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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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체 인양됐지만, 여전히 풀지 못한 질문의 답 찾아야

“참사 당시에는 이민을 해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했어요. 하지만 이내 생각이 바뀌었죠. 도망가면 이준석 선장과 다를 게 없잖아요. 기울어진 이 나라의 균형이 바로 잡힐 수 있도록, 많은 사람과 방법을 찾아보면 좋겠다 싶었어요. 사회혁신에 그 답이 있다고 생각했고요.”

사회혁신이라니! 희망제작소에서 주야장천(晝夜長川) 외치는 그 가치 아니던가. 박흥석 연구원이 희망제작소를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시민의 역량을 강화하고 촉진하는 동시에 정부의 정책을 검토하고 대안을 찾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이것이 여타 연구소와 비교했을 때 희망제작소만의 강점이라고도 말했다.

“저를 비롯한 희망제작소 연구원 모두가 정부, 국가, 사회의 움직임에 대한 촉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를 놓치면서 어떻게 시민을 말하고 우리 사회의 비전을 만들 수 있겠어요. 촉을 세우고 잘 살피다 보면 거대 담론뿐만 아니라 구체적 실천과제도 끌어낼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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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그는 국가 운영방식 체질 개선이 시급하다고 꼬집었다. 집중되어 있는 권력을 나누고 중간중간 견제장치를 재배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민이 세월호 참사와 같은 아픔 속에서 공감의 끈을 놓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자신의 상황과 형편에 맞게 공감과 지지를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세월호가 뭍으로 올라오면 끝 아니냐는 분들도 있어요. 하지만 우리는 다시 질문해야 해요. 왜 인양했는지 살펴봐야 하죠. 미수습자를 찾고,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진상규명을 하고, 그 과정을 통해 교훈을 얻는 것이 인양의 목적이에요. 이 세 가지를 충족하지 못하면 인양은 끝난 게 아니에요. 그 과정에서 선체조사위가 확실하게 자기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은 물론, 시민은 잘 지켜보고 살펴야 해요. 필요할 때는 목소리도 내야 하고요.”

“국가의 범죄는 절대 권력을 지닌 소수 독재자들의 야욕과 그들에게 복종하는 다수 봉사자들의 협력에 의해 현실화 됩니다. 정신 나간 사람들 몇 명의 손으로는 이런 거대한 범죄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이 독재 권력의 전횡에 참여하거나 방관할 때에만 비로소 국가라고 하는 괴물이 힘을 발휘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 김두식 ‘헌법의 풍경’ 중


– 인터뷰 진행 및 정리 : 최은영 | 미디어홍보팀 선임연구원 · [email protected]

월, 2017/04/10-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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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2015년 4월까지

매주 목요일 오전 8시 <신율의 출발 새아침>(YTN FM 94.5)에

참여연대 안진걸 협동처장이 출연했습니다.

 

안진걸 협동처장은

이 방송의 [대한민국을 고발합니다] 코너에서

한국 사회의 불합리하고 개선돼야 할 사안을 다룹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신율의 출발 새아침 - 대한민국을 고발합니다]
통신비 및 단말기비 점검 (2015.04.16.)

 

YTN FM 신율의 출발 새아침 : http://radio.ytn.co.kr/program/program_main.php?s_mcd=0214

 

목, 2015/04/16-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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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출연자

  • 진행 : 참여연대 안진걸 협동사무처장
  • 특별출연 : 김윤철 교수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
  • 이슈손님 : 심상정 의원(정의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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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팟28회 / 진보정당의 살 길은? 왜 야권통합이 아니고 야권연대인가?

 

오는 4월 13일 수요일 제20대 국회의원 선거가 시행됩니다.

박근혜 정부 출범도 4년을 맞이하면서 유래없는 '대통령 주도의 서명운동', '국회 무시, 공안정국'이 판치고 있는 지금, 다가오는 국회의원 선거는 무엇보다 중요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안철수 탈당-신당 창당으로 '범 야권'의 모습은 혼란만 가중되고 있습니다.

 

참팟은 '신년특집-변화와 희망에 관한 인터뷰' 3탄으로 정의당 심상정 대표를 초대해 다가오는 총선의 전망과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 등으로 이루어지는 범 야권의 역할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다가오는 총선에서 야권의 역할, 심상정 대표가 얘기하는 진보정당의 전략에 대해 지금 들어보세요.

 

 

* 플레이어가 보이지 않는 경우 : http://www.podbbang.com/ch/8005?e=21890943

* 유튜브로 듣기 : https://youtu.be/ERCx6R8E7Ic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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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16/02/02-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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