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콘텐츠로 건너뛰기

[기획주제1] 국제난민 문제의 특징과 경향: 인도적 위기, 정치적 무관심

지역

[기획주제1] 국제난민 문제의 특징과 경향: 인도적 위기, 정치적 무관심

익명 (미확인) | 월, 2015/11/02- 18:04

국제난민 문제의 특징과 경향: 인도적 위기, 정치적 무관심

 

송영훈 l  강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터키 해변에서 숨진 채 발견된 세 살배기 아일란 쿠르디의 모습은 2015년 가을 국제사회의 난민위기에 대한 무관심에 경종을 울렸다. 북아프리카에서 지중해를 통해 유러피언 드림을 이루고자 보트에 몸을 싣는 난민들과 말라카 해협을 지나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에서 새로운 피난처를 구하고자 하는 미얀마 로힝야족에 대한 소식들이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았지만 유럽과 동아시아 국가들의 국경을 열지는 못했었다. 아일란의 죽음 이후 독일을 비롯한 일부 국가들이 난민 수용에 적극적으로 나섰지만 그도 잠시 대부분의 국가들은 다시 국경통제를 강화하였다. 국제사회가 난민들의 인도적 위기 상황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보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나라에서 새로운 피난처를 구하고자 하는 난민들의 드림은 쉽게 실현될 것 같지 않아 보인다.

 

급증하는 난민, 장기화되는 난민위기

 

국제사회의 난민위기를 설명할 때 우리는 흔히 난민(refugees)과 국내피난민(internally displaced persons), 기타 다른 형태의 피난민들을 구분하지 않고 분쟁과 박해, 폭력과 인권유린 등으로 인해 고향과 고국을 떠난 사람들을 모두 난민이라고 한다. 그런데 엄밀히 구분하면 이들은 각각 다른 범주의 강제이주민(forced migrants)이며 그에 따라 그들에 대한 국제적 지원도 달라진다. 우선 난민은 제네바협약의 규정에 따라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사람이며, 이들은 국제난민협약이 정한 기준에 따라 지원과 보호를 받는다. 국내피난민은 고향을 떠났지만 국내의 다른 곳에서 대안적 피난을 구하는 사람인데 이들에 대한 지원과 보호는 본국 정부의 의지와 능력에 달려 있으나 매우 제한적으로 이뤄진다. 그리고 국제법과 피난국의 법규에 따라 난민인정을 신청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비호신청자(asylum seekers)도 있다.

 

1.jpg2.jpg

출처: UNHCR, Global Trends 2014

 

유엔난민기구(UNHCR)에 의하면 전 세계 강제이주민의 수는 2014년 말 기준 5,950만 명에 이른다. 이들 중 난민은 1,950만 명이며 이들 중 510만 명은 팔레스타인 난민이다. 또한 3,820만 명은 국내피난민이며 180만 명이 비호신청자이다. 이러한 규모를 개별 국가의 인구 규모와 비교하면 세계 24위에 해당한다. 2014년 한 해에만 1,390만 명의 강제이주민이 새롭게 발생했으며, 분쟁과 박해를 피해 집을 떠나 국내 혹은 국외에서 피난을 구하는 강제이주민들이 매일 42,500명에 이르며 이는 4년 전에 비하면 거의 4배에 해당하는 통계이다. 유엔난민기구 안토니오 구테레스 대표가 강조하듯이 난민발생의 규모나 그에 대응하는 국제사회의 부담이 전례 없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난민을 가장 많이 발생시킨 나라는 시리아(390만 명), 아프가니스탄(260만 명), 소말리아(111만 명)이다. 이들 세 나라 출신 난민의 수는 전 세계 난민의 53%에 해당하며 수단과 남수단 출신의 강제이주민까지 합하면 62%에 이른다. 콩고민주공화국, 미얀마,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이라크, 에리트리아 등도 난민 발생국 상위 10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 국가들에서는 모두 내전과 정부의 조직적 폭력 및 박해 등이 수년 동안 계속하여 발생하고 있다. 이 지역의 분쟁과 박해가 장기화됨으로써 난민을 포함한 강제이주민들이 고향으로 귀환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점차 낮아지고 있어 난민들의 인도적 위기는 장기화되고 심각해지고 있다.

 

1980년 이후 난민 발생국 상위 20위 안에 이름을 올렸던 국가들은 모두 50개이다. 이 중 앙골라, 수단, 콩고민주공화국, 부룬디, 소말리아 등을 포함한 12개 국가는 지난 35년 동안 최소 20회 이상 순위에 기록되었다. 최근까지 아프가니스탄이 항상 가장 많은 난민을 발생시킨 국가로 기록되었지만, 2012년부터 30년 만에 아프가니스탄 대신 시리아가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전쟁과 분쟁이 이들 국가에서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발생하였고 이에 따라 난민이 많이 발생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종전이 되고 국내불안정이 완화되어도 안전에 대해 위협을 느끼는 난민들이 본국으로 귀환을 선택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반면 난민을 가장 많이 수용하고 있는 나라는 터키(160만 명), 파키스탄(150만 명), 레바논(115만 명), 이란(98만 명) 순으로 대부분 시리아 난민의 유입의 영향이 컸다. 에티오피아 다음으로 요르단(65만 명)도 6위를 기록하였다. 상위 세 나라는 전체 난민의 30%를, 상위 10개 국가는 모두 전체 난민의 57%를 수용하고 있다. 그리고 상위를 차지하고 있는 국가들은 모두 시리아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으며, 시리아 난민의 95%가 이들 국가에 머무르고 있다. 이는 냉전 이후 난민들의 국제적 이동이 상당히 제한되고 있으며 고국과 인접하고 있는 국가에서 멀리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이들의 대부분은 난민캠프에서 국제사회의 인도적 지원에 의존하면서 생존을 이어가고 있다.

 

선진국들이 난민의 수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하소연을 하고 난민을 일부 수용하면서 인도적 원칙을 준수하는 것처럼 주장하곤 한다. 그런데 전 세계 난민들의 86%는 개발도상국가에 머무르고 있으며, 저개발국가들은 전체 난민의 약 25%를 수용하고 있다. 구매력평가 기준 일인당 국내 총생산(GDP PPP per capita) 1달러 당 난민 수용 부담을 고려하면 상위 30개 국가 모두 개발도상국가가 차지하고 있다. 전체 인구대비 난민 수용 부담을 고려하면 레바논과 요르단이 압도적으로 1위와 2위를 차지하고 있어 시리아 위기로 인해 난민 수용 부담이 가중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개발도상국의 난민 수용 부담이 증대되고 있다고 해서 선진국들이 난민 수용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유럽 국가들과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이 난민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이들은 냉전기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난민들을 자국으로 재정착시켰으며, 난민 발생국가의 전쟁과 분쟁을 해결하기 위하여 노력을 기울였다. 그런데 냉전 종식 후 난민의 정치적 가치가 감소하고, 1990년대 중반 유럽에서 난민위기가 발생하면서 이들은 다른 지역의 난민들을 유럽과 미국으로 정착시키기보다는 발생국 주변에 난민캠프를 설치하고 그 곳에 머무르도록 하는 전략을 선택하였다. 더욱이 유럽의 난민위기를 우선적으로 다루면서 아프리카를 비롯한 다른 지역의 난민위기 해결을 위한 재정지원도 축소하였기 때문에 이와 같은 현상이 2000년대 이후 계속 심화되고 있다.

 

난민문제의 본질적 해결이 어려워지면서 결국 25,000명 이상의 난민들이 한 곳에서 최소 5년 이상 거주하는 장기화된 난민 상황(protracted refugee situations)이 확산되고 있다. 본국의 불안정 요인이 해소되지 않고, 국제사회의 지원이 감소하면서 이러한 상황에 처한 난민들은 스스로 생존을 모색해야만 한다. 예를 들어 케냐의 다다브 난민캠프에 거주하는 소말리아 난민들은 스스로 캠프 안과 밖에서 경제활동을 해야만 한다. 캠프에서 나고 자란 청년들은 소말리아에 가 본 적도 없고 소말리아 정치에 대한 관심도 적다. 그들은 케냐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그런데 케냐 정부는 소말리아 내전이 해결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소말리아 난민들이 케냐 내에서 발생하는 테러를 감행하는 알샤바브 단체를 지원한다고 주장하며 이들을 본국으로 송환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대부분 20년 이상씩 국경을 떠나 캠프에서 생활을 한 이들이 본국에서 경쟁력 있는 사회구성원으로 생활할 가능성이 극히 낮다. 따라서 난민위기가 장기화되면 될수록 근본적인 난민문제의 해결이 더욱 어렵게 된다.

 

난민위기: 안보와 주권, 그리고 정치의 문제

 

전쟁의 역사만큼이나 난민의 발생과 국제사회의 인도적 활동의 역사도 오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난민위기는 해결되기 어려운가? 1951년 난민지위에 관한 제네바협약 체결과 1967년 난민지위에 관한 의정서 채택 이후에도 국제사회의 난민위기 해결을 위한 법적 제도의 보완은 꾸준히 이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민은 계속하여 증가하고, 국내피난민의 수는 더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처한 인도적 위기는 난민들의 그것과 다름이 없지만 국제사회의 체계적 지원과 보호활동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들은 난민과 관련된 문제들을 지나치게 법적, 인도적 차원의 문제로만 접근하는 시각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난민과 관련된 문제를 종합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난민’ 개인에게만 초점을 맞추기보다 구조적이고 정치적인 요소에 대한 이해를 겸해야 한다. 즉 난민들을 법적인 보호의 대상으로만 이해하기보다 그들로 인해 파생되는 정치적 현상에 대한 이해가 수반되어야 한다. 난민과 난민위기가 개념적으로 가지는 정치적 속성은 난민지위 부여과정에서의 개인중심, 난민의 발생과 수용으로 인해 발생하는 국제규범과 주권과의 갈등, 난민의 이동으로 인해 발생하는 안보위기 등을 중심으로 살펴볼 수 있다. 이 세 가지 속성으로 인해 난민문제의 인도적 위기를 정치적으로 안보적으로 이용하는 경향이 반복하여 나타난다.

 

첫째, 난민지위는 개인을 대상으로 인정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난민은 ‘인종, 종교, 국적, 특정사회집단의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박해를 받을 수 있는 사람으로서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국적국의 보호를 받기 원하지 않는 ‘개인’을 의미한다. 따라서 난민지위의 인정은 집단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개인별로 이뤄지는 것이다. 즉 시리아 국민이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에서 난민지위를 신청한다고 해서 모두가 난민으로서의 지위를 인정받는 것이 아니다. ‘국적’(nationality)이라는 해석 때문에 최근의 상황을 고려하여 시리아 국적을 가진 사람은 자동적으로 난민의 지위를 인정받아야할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난민 정의의 원인에 포함된 국적은 오히려 민족으로 해석되어야 하는 것으로, 시리아인들이 국가들 떠났어도 그들이 경제적 이주를 선택한 것인지, 박해를 피해서 떠나 온 것인지 수용국 정부가 따지게 된다. 물론 이에 대한 구분이 모호하고 어렵지만 난민지위가 개인별로 인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수용국가에서는 쟁점이 되는 사안이다.

 

둘째, 난민지위의 인정은 수용국가 정부와 발생국가 정부의 주권 및 정통성과 관련된 사안이어서 난민문제는 국가 간 관계의 영향을 받는다. 우선 정부는 자국 시민에 대한 일차적 보호책임이 있다. 따라서 난민지위의 인정은 발생국 정부가 시민보호의 책무를 다하지 못하였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것이어서 두 나라 간 외교적 갈등의 요인이 되기도 한다. 시리아 내전사태와 같이 국제적 긴급성이 인정되는 경우 주변 국가들이 시리아와의 외교적 고려에 앞서 난민을 잠정적으로 수용한다. 그런데 중국은 미얀마 정부와의 관계가 악화되었을 때 중국 내 미얀마 난민의 근본적 문제에 대한 해결을 촉구하지만 미얀마 정부와의 관계가 개선되었을 때 이 문제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으면서 미얀마 난민들의 일시적 체류를 허가한다. 또한 난민지위의 인정은 국제사회가 강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난민을 수용하는 국가의 정부는 국제적 기준에 맞는 절차에 의해 난민을 수용할 것인지 결정할 수 있으며 그러한 결정은 재정적 부담을 수반하기 때문에 개별 국가의 주권과 관련된 사항이 되는 것이다. 9월 22-23일 유엔난민 특별회의에서도 글로벌 쿼터제와 시리아 내 안전지대 설치 등 난상토론은 있어도 유엔과 국제사회가 유럽국가에게 난민수용을 강제하지 못한다.

 

셋째, 난민을 수용하거나 거부하는 결정은 국가마다 안보의 문제를 고려하기 때문에 달리 나타난다. 각국 정부는 대규모 난민의 유입을 국가안보의 심각한 위협으로 인식한다. 현재 유럽 국가들도 중동으로부터 유입되는 난민 행렬 속에 이슬람국가(IS) 대원이 포함되어 있을 것을 우려한다. 또한 대규모 난민의 유입은 정주민들과의 제한된 자원과 일자리 확보를 위한 경쟁을 유발하기도 하며, 정부 재정의 급속한 악화로 이어져 국내적으로 정치적 불안정이 확산될 것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소규모의 난민의 유입에 대해서 국가들은 포용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으나 하루에 15,000명이 넘는 난민이 계속 유입된다면 아무리 포용적인 독일 메르켈 정부라고 하더라도 국경에서 IS 대원의 적발을 위한 수사를 하는 등 난민문제를 안보 관점에서 다루게 된다.

 

난민의 문제가 안보와 주권의 문제와 밀접하게 관련이 되어있다고 하는 것은 이들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도적 책무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국제사회의 난민문제에 대한 인식은 인간의 존엄성을 누구나 동등하게 가지고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그렇기 때문에 법과 도덕적인 차원에서 난민들의 문제는 국제사회가 협력해서 해결해야할 일인 것이다. 그런데 난민의 이동이 안보와 주권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게 된다는 특징이 국제정치 현실에서 지니는 함의는 인도적 위기의 해결은 정치적 의지가 수반되어야만 이뤄질 수 있는 것이다. 독일 정부가 9월 초 유럽연합 내에서의 ‘망명쇼핑’을 방지하기 위해 최초 입국 국가에서 난민신청을 하도록 한 더블린 조약의 유예까지 선언하면서 시리안 난민 수용에 나섰지만, 그로부터 한 달 후 독일정부는 난민에 대한 현금지원 삭감, 난민신청 결격자 신속 귀국 조치 등 난민규제 강화를 추지하게 된 것도 이와 같은 난민위기의 속성을 반영한다. 정부의 인도적 원칙과 그에 따른 정책도 국내 정치적 반발이 거세진다면 국익과 안보의 차원에서 난민정책을 바꾸게 되는 것이다.

 

정치적 의지 없이 인도적 위기의 해결도 없다!

 

난민의 대모라는 칭호와 더불어 탈냉전 후 난민보호활동의 기반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를 받는 전 유엔난민기구 대표 사다코 오가타는 “난민은 죄인이 아니다. 난민을 만든 정치와 국가, 정부의 책임이다”라고 하였다. 그녀는 1990년부터 2000년까지 소용돌이의 국제정치 속에서 방탄조끼만 입고 내전과 분쟁의 현장을 찾아 난민 구호에 앞장섰다. 그런 그녀가 10년의 재임기간의 교훈으로 난민에 대한 지원과 보호활동은 인도적 규범과 동인에 의해서 이뤄지지만 난민위기의 본질적 해결은 지도자들의 정치적 의지(political will) 없이 이룰 수 없는 꿈임을 강조하였다.

 

난민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정치적 의지는 두 가지 차원에서 필요하다. 첫째는 난민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도록 국제사회의 지원과 이들의 재정착에 대해 정치적 결단이 요구된다. 시리아 난민위기가 국제적 수준의 협력이 필요하지만 우선적으로 유럽으로의 정착을 희망하는 피난민들이 최소한 난민지위 인정을 위한 절차를 밟을 수 있는 기회를 열어 주는 정치적 결단이 필요한 것이다. 개별 국가에 수용하는 것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동시에 시리아 난민캠프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원 규모도 늘릴 수 있어야 한다. 둘째는 난민발생을 야기하는 근본원인의 해소에 국제사회의 정치적 결단이 필요하다. 시리아 정부군과 반군, 그리고 IS까지 개입된 분쟁을 해결하지 않고서 시리아 난민위기의 근본적 해결은 불가하다. 최근 IS에 대한 국제사회의 공조 속에서 시리아 내전은 오히려 미국과 러시아의 역내 주도권 경쟁으로 더욱 국제화되고 정치적으로 복잡해지고 있다. 이 문제는 인도적 책무로만은 해결될 수 없는 지극히 정치적인 해결이 요구되는 것이다.

 

난민의 인간존엄성을 존중하고 이들의 인간안보를 해결하기 위해 국제사회의 인도적 노력이 확대되어야 한다. 그런데 국제사회의 현실은 문제해결을 위한 정치적 의지의 부재 속에 오히려 난민위기의 악화를 유발하고 있다. 아일란의 죽음이 국제사회의 인도적 책무를 자극하였듯이 이 기회가 각국 지도자들의 정치적 결단으로 이어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

Plain text

  • 웹 페이지 주소 및 이메일 주소는 자동으로 링크로 전환됩니다.
  • 줄과 단락은 자동으로 분리됩니다.
  • 사용할 수 있는 HTML 태그: <a href hreflang> <em> <strong> <cite> <blockquote cite> <code> <ul type> <ol start type> <li> <dl> <dt> <dd>
이미지
무제한 수의 파일을 이 필드에 업로드할 수 있습니다.
50 MB 한계입니다.
허용된 유형: png gif jpg jpeg.
Enter the YouTube URL. Valid URL formats include: http://www.youtube.com/watch?v=1SqBdS0XkV4 and http://youtu.be/1SqBdS0XkV4.
CAPTCHA
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20200227_이미지_참여자치연대성명.pnghttp://www.peoplepower21.org/files/attach/images/37219/971/656/001/5c5e5... style="vertical-align:middle;color:rgb(102,102,102);font-family:'나눔고딕', NanumGothic, ng;text-align:justify;background-color:rgb(255,255,255);" />

 

위장정당으로 국민 우롱하는 거대양당 규탄한다 

미래통합당은 위장정당 즉각 해산하고, 더불어민주당도 관련 논의 일체 중단해야

 

개정된 선거법이 적용되는 21대 총선이 50일 앞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사표를 줄이고 비례성을 강화하자는 애초의 취지는 오간 데 없고 위장정당이라는 꼼수와 반칙의 선거가 될 판이다. 위장정당 창당을 통해 개정된 선거법을 대놓고 무력화하겠다는 미래통합당에 이어, 최근에는 선거법 개정에 앞장섰던 더불어민주당마저도 위장정당 창당을 위한 실무 검토를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 원내 1,2당의 이같은 모습에 실망을 넘어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전국 19개 단체로 구성된 참여자치지역운동연대는 정정당당하게 공약과 정책으로 선거에 임하기보다는, 편법과 꼼수로 유권자들을 우롱하는 거대 양당의 행태를 강력히 규탄하며, 미래한국당의 즉각적인 해산과 민주당의 비례정당 논의 중단을 강력히 촉구한다. 

 

미래통합당은 선거법 개정 전부터 위장정당 창당을 운운하더니 지난 2월 중순에 보란듯이 위장정당(미래한국당)을 설립했다. 또한 정당보조금 지급기한에 맞춰 총선에 불출마를 선언한 의원들을 위장정당에 파견해 국가보조금 5억원마저 가로채는 뻔뻔한 행태를 보였다.이는 제1야당의 모습이라고 볼 수 없는 대국민 사기행위이다. 대놓고 세금을 편취하고, 편법으로 선거법 취지를 무력화하는 당이 과연 국민의 표를 얻을 자격이 있겠는가. 국민도 이런 기만에 속지 않을 것이다.

 

더불어민주당도 위장정당 설립과 관련된 일체의 논의를 중단해야 한다. 아직 위장정당 창당을 공식화하지는 않았지만 비공식적으로 실무 검토까지 진행한 것으로 알려진 지금, 민주당 일부 의원들 중심으로 ‘의병정당’, ‘민병대’라는 이름을 내세워 창당을 부추기는 실망스러운 행태를 보여주고 있다. 실제 투표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애초 정당이 확보한 의석수라는 건 존재하지 않음에도, ‘비례의석수 손해’라는 오만한 논리를 내세우는 것 자체가 적절치 않다. 무엇보다 민주당은 애초 야당들과 합의했던 비례의석수를 축소하고 이마저도 캡을 적용하는 등 불완전한 제도를 도입하여 지금의 위장정당 사태를 불러온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따라서 민주당은 통합미래당의 꼼수와 반칙을 정당화하는 위장정당 논의를 중단하고, 어렵게 이끌어 낸 선거법 개정 노력을 스스로 져버려서는 안 될 것이다.

 

21대 총선에 앞서 거대 양 당이 보여주고 있는 위장정당 창당과 옹호발언, 정당보조금 편취 등의 부끄럽고 탈법적인 행태는 한국 정치에서 반드시 사라져야 할 것들이다. 정치적 신뢰를 무너뜨리고 정치 혐오를 부추기고도 국민들을 속이고,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총선까지 남은 50일 동안 참여자치지역운동연대는 유권자를 기만하는 정당을 심판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공동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 성명 [http://bit.ly/32ua6Py" target="_blank" rel="nofollow">원문보기 / 다운로드]

목, 2020/02/27- 22:18
1
0

현재 국회에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위한 보험업법 개정안이 여럿 발의되어 있습니다. 법안의 내용은 실손보험 가입자의 편의를 위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 내지 제3의 기관을 중계기관으로 두어 민간 보험사가 진료내용까지 파악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는 민간보험사가 개인의 민감정보인 의료정보를 수집하여 상업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있어 매우 우려스러움. 또한 과도하게 집적된 정보는 추후 환자의 보험금 지급 거절, 보험 가입 거절 등의 수단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민간 보험사가 국민건강보험을 보완, 대체하는 구도를 만들게 된다는 것입니다. 소비자의 편의라는 명분에 숨어 민간보험사는 개인의 의료정보를 수집하고 이용하고, 건강관리서비스영역까지 영역을 확장할 수 있습니다. 이는 분명한 민영화 법안이며 국민건강보험 제도를 위협하는 일이고 건강권 보장의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기는 것입니다. 문재인 정부가 약속했던 비급여의 급여화를 통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에도 역행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에 시민사회단체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위한 보험업법 법 개정 추진의 문제점을 알리는 토론회를 개최할 예정입니다. 

 

보도협조 https://docs.google.com/document/d/1eStTktSpxw6gB3UzL7Zjiijrr3SKXxZSJl62... rel="nofollow">[원문보기/다운로드] 

생중계 https://youtu.be/HZNj6OvTTnk" rel="nofollow">참여연대 유튜브

 

SW20210602_보험업법개정안토론회.pnghttps://www.peoplepower21.org/./files/attach/images/37219/633/761/001/8c... />

 

월, 2021/05/31- 19:54
1
0

복지부의 부적절한 ‘이용자협의체’ 의료영리화 논의 중단하라

김부겸 국무총리가 지난 10일 기업들과의 모임에서 ‘규제챌린지’라는 이름의 규제완화책들을 발표했다. '기업들의 애로와 답답함을 풀어보겠다'며 15개 항목을 발표했는데 이 중 무려 5개가 의료영리화 사안이었다. 여기에는 원격의료와 신의료기술평가 규제완화가 포함되었다. 그리고 오늘(6/17), 보건복지부가 ‘이용자 중심 의료혁신 협의체’(이하 ‘이용자협의체’)라는 임의의 테이블을 열어 원격의료와 신의료기술평가 규제완화를 논의할 예정이다. 정부가 임기 막바지에 공공의료 강화가 아니라 의료영리화를 전방위적으로 밀어붙이는 모양새다. 노동시민단체들은 다음과 같이 입장을 밝힌다.

 

첫째, 감염병 재난 빌미로 한 기업과 대형병원 돈벌이 위한 원격의료 추진 중단하라. 

코로나19를 통해 우리는 환자를 돌볼 병원도 부족하고 인력도 극히 부족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런데 정부는 공공의료 개혁은 하지 않고 ‘원격의료’라는 오답을 꺼내들고 있다. 원격의료로는 중환자를 돌볼 수 없고 감염병 환자를 치료할 수 없으며, 응급·분만치료도, 취약계층 의료공백도 해결할 수 없다. 코로나19 시기 비대면 진료는 재난 상황에 어쩔 수 없이 한시적으로 허용되는 것이지 제대로 된 진료가 아니다.  불완전한 원격진료 기술로는 대면진료를 대체할 수 없고, 제대로 보완도 할 수 없다. 대면진료 사각지대는 공공의료기관 확충과 방문진료로 해결해야 환자를 충분히 이해하고 돌보고, 치료할 수 있다. 대기업과 대형병원이 주도하는 상업의료인 원격의료와 약 배송은 공공의료·돌봄 강화와는 정 반대로 약물에 의존하는 지금의 3분 진료 행태를 더 심화시키는 길이다. 한국처럼 민간의료기관이 95%인 상업적 의료체계의 나라에서 원격의료가 허용되면 의료의 시장성은 극대화될 것이고 일부는 돈벌이를 하겠지만 환자들은 의료비 상승과 왜곡된 의료체계에 놓일 수밖에 없다.

 

둘째, 환자 생명·안전 직접 위협하는 신의료기술평가 규제완화 중단하라.

기업들은 신의료기술평가 제도가 중복규제라며 규제완화를 오랫동안 주장해왔고 정부는 이에 동조하고 있는 상황이다. 식약처는 의료기기가 잘 작동하는지 정도만 평가한다면, 신의료기술평가는 그 기기를 사용한 수술·처치 등의 의료행위가 환자에게 부작용이 없고 안전한지, 임상에서 효과가 있는지를 평가한다. 신의료기술평가를 없애거나 완화해 새로운 의료기술을 쉽게 통과시키면 의료기기·줄기세포 업체 등은 엄청난 이득을 보겠지만 환자들의 생명과 건강은 지킬 수 없게 된다. 기업들이 왜곡하는 대로 한국에만 있는 규제도 아니다. 주요 선진국들은 대부분 이 제도를 운영하고 한국보다 더 오랜 기간 엄격하게 평가하고 있다. 정부는 평가 기간을 계속 단축하고 있을 뿐 아니라 평가기준도 점점 완화하고 있다. 또 체외진단기기는 아예 평가 대상에서 제외시키려 하고 있다. 정부는 이런 기술들을 병원에서 먼저 사용해보고 문제가 있는지 사후 평가하겠다는 방침이다. 병원에서 치료받는 환자를 임상시험 대상으로 삼겠다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이미 무너지고 있는 평가제도를 복구하기는커녕 기업들이 원한다는 이유로 없애거나 더 규제를 풀겠다는 것은 시민의 건강과 안전보다 기업 이윤 우선의 정책이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셋째, 복지부는 ‘이용자협의체’에서의 의료영리화 논의를 중단하라.

보건복지부는 정부의 원격의료와 신의료기술평가 규제완화 등의 정책을 ‘이용자협의체’에서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이용자협의체는 지난해 보건복지부가 의사 진료거부 사태 이후 의사협회와 ‘의-정협의체’를 구성했을 당시 의사들의 목소리만 귀담아 듣는다는 비판을 무마하기 위해 만들었으나, 정부가 임의로 구성했을 뿐 법적인 근거도 없고 대표성을 부여받은 기구도 아니다. 그런데도 이처럼 심각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수많은 시민들에게 영향을 미칠 중대사안을 이 협의체에서 논의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 결국 정부가 시민사회단체들과 협의했다는 형식적 절차적 정당성만을 쌓기 위해 근거 없이 임의로 구성한 협의체를 부적절하게 활용하는 것에 불과하다. 지난 1년 동안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이용자협의체’는 폐쇄적으로 운영되어 왔다는 점에서, 이 협의체 논의가 민주적인 절차적 정당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기도 어렵다. 우리는 이런 식으로 의료영리화를 밀어붙이는 행위를 분명히 반대한다. 

 

정부는 최근 시민들의 공공의료 강화 염원을 무시하고 알맹이 없는 내용의 ‘5년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그리고 이제 의료영리화 추진에 적극 나서려 한다. 규제챌린지에 포함된 인체유래물연구 규제완화, 의료기기 제조사내 임상시험 허용  등은 시민의 건강권을 침해하는 내용이다. 또 민간보험 활성화를 위해 공공데이터를 넘겨주고,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병원 인수합병 등도 국회 논의를 앞두고 있다. 쏟아지는 의료민영화에 한숨이 나올 지경이다. 문재인 정부에 경고하건대 기업을 위한 의료영리화는 시민의 심판으로 돌아갈 것이다. 이를 모두 즉각 중단하여야 한다.

 

2021. 06. 17.

의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

 

가난한이들의 건강권확보를 위한 연대회의, 건강권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노동건강연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참의료실현청년한의사회), 건강세상네트워크, 기독청년의료인회, 대전시립병원 설립운동본부, 한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연합회, 건강보험하나로시민회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전국공공운수노조, 국민건강보험노동조합, 전국의료산업노동조합연맹, 전국농민회총연맹,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전국여성연대, 빈민해방실천연대(민노련, 전철연), 전국빈민연합(전노련, 빈철련), 노점노동연대, 참여연대, 천주교빈민사목위원회,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평등교육 실현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사회진보연대, 노동자연대, 장애인배움터 너른마당, 일산병원노동조합, 학교급식전국네트워크, 약사의미래를준비하는모임, 행동하는의사회, 성남무상의료운동본부, 건강보험심사평가원노동조합, 전국정보경제서비스노동조합연맹, 경남보건교사노동조합

 

공동성명https://docs.google.com/document/d/10B0Fj83KR18-l53WYx2DPWd-vsfIIecheM2j... rel="nofollow">[원문보기/다운로드]

목, 2021/06/17- 23:12
1
0

종부세⋅양도소득세 후퇴시킨 더불어민주당 규탄 기자회견

 

취지 

  • 지난 6/18일 더불어민주당은 표결을 통해 1주택자에 대한 종합부동산세는 상위 2%를 대상으로 부과하고, 1주택자의 양도소득세 비과세 기준을 12억 원으로 완화하는 정책을 당론으로 결정했습니다. 

  • 주지하듯이 현재 우리나라 자산 격차는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더불어민주당은 조세형평성을 위해 도입된 종합부동산세 대상을 축소하고, 불로소득을 환수하기 위한 양도소득세의 비과세 대상을 확대하겠다고 밝힌 것입니다. 현재 1주택자의 경우, 실거주 목적 등을 이유로 각종 공제되고 있어 실제 과세되는 세금은 미미한 수준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의 결정은 불평등 해결은 커녕 투기를 부추기고, 조세부담의 형평성에 어긋나는 시대착오적입니다. 

  • 이에 시민사회단체는 부자감세를 추진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의 행태를 강력히 규탄하며, 종합부동산세⋅양도소득세 완화 정책 중단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하고자 합니다.  

개요 

  • 제목 : “주거불안에 시달리는 서민들 외면하고, 부자감세 추진하는 더불어민주당 규탄한다”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소득세 후퇴시킨 더불어민주당 규탄 기자회견

  • 일시 : 2021년 6월 21일(월) 오후 1시 30분 

  • 장소 : 더불어민주당사 앞 

  • 주최 : 참여연대⋅민변 민생경제위원회⋅민달팽이유니온⋅전국세입자협회⋅주거권네트워크⋅한국도시연구소

  • 프로그램 개요 

사  회 : 김용원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 간사)

발언1 : 박정은 (참여연대 사무처장)

발언2 : 이원호 (한국도시연구소 책임연구원) 

발언3 : 이한솔 (민달팽이유니온 활동가)

발언4 :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문의 :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 (02-723-5056 [email protected])

 

보도협조 https://docs.google.com/document/d/1xBL8RF1LhVkTtsrXm7n2yIJGmWubLP78OFEX... rel="nofollow">[원문보기/다운로드]

 

월, 2021/06/21- 01:01
1
0

기본자산, 정말로 그게 최선입니까

김공회 경상국립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기본자산제의 매력

‘성년이 된 모든 시민에게 일정액의 자산을 지급하자!’ 매력적인 주장이다. 일단, 느낌이 확 온다. 코로나19로 모두가 어려운 중에도 부동산 가격만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요즘, 상대적 박탈감과 취업난에 허덕이는 우리 청년들에게는 특히 더 소구력이 높을 것도 같다. 이 돈으로 무엇을 할까? 사업을 벌일까? 여행을 갈까? ‘간’이 작은 이들은 그 돈을 금융기관에 넣어두고 곶감처럼 조금씩 빼 먹으며 훗날을 도모할지도 모르겠다.

 

국가가 모든 시민에게 ‘기본자산’을 지급하자는 주장이 최근 인기를 얻고 있다. 일정 연령, 이를테면 만 20세에 도달한 모든 청년을 대상으로 하니, 기본자산제는 순차적으로 모든 국민이 혜택을 볼 수 있는 제도다. 지난해 4월 총선에서 정의당이 ‘청년 기초자산제’를 제1공약으로 내놓을 때만 해도 큰 주목을 받진 못했다. 하지만 그 사이에 불평등 연구로 유명한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가 신작 『자본과 이데올로기』에서 ‘보편적 자본지원’이 라는 제안을 내놓았고, 올해의 4ᆞ7 보궐선거에서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기본자산제를 본격적으로 채택하기에 이르렀다.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의 ‘청년출발자산’, 변성완 부산시장 예비후보의 ‘부산형 청년기초자산제’가 그것이다. 기본자산제는 내년 3월 대통령선거에서도 주요한 쟁점이 될 전망이다. 이미 김두관 의원과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각각 ‘국민 기본자산제’와 ‘기초자산제’를 내놓고 서로 ‘원조’ 경쟁을 펼치고 있을 정도다.

 

이렇게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기본자산제, 과연 무엇이고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기본자 산은 우리에게 조금 더 익숙한 기본소득과 어떻게 다른가? 기본자산이 오늘날 자산불평등을 해소 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될까?

 

기본자산의 이상 - 기본자산 제안이 제기하는 문제들

왜 기본자산인가? 기본자산제가 제기하고, 또 해결하고자 하는 고유의 문제는 무엇인가? 이 질문 은 크게 두 측면에서 살필 수 있다.

 

무엇보다 기본자산은 그것의 수혜자에게 삶의 가능성 영역을 넓혀주리라 기대된다. 이런 성격 때문 에 기본자산의 직접 수혜자는 보통 청년으로 상정된다. 상당액의 목돈을 받고 그 처분에 대해 스스로 결정할수 있으려면 나이가 너무 적어선 안되고, 동시에 그런 결정이 해당 개인의 삶에서 가급적 큰의미를 갖게 하려면 나이가 너무 많아도 안 된다. 기본자산은 본격적인 사회생활에 돌입하는 청년에게 지급되는게 제격일 것이다.

 

청년기의 실패 때문에 평생을 낙오자로 사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실패’라고 불릴만한 시도조차 해보지 못한 채 청춘을 흘려보내는 이들도 많다. 누군가에게 이것은 자발적 선택의 결과일 수도 있지만 돈이 없어 그런 선택을 강요받는 경우도 많다. 그런 청년에게 기본자산을 준다면 어떨까? 이를테면 만 스무살이 되는 모든 청년에게 5천만원을 준다면? 이제 그는 거액의 등록금이 드는 대학에 갈 수도 있고, 장기간 해외여행을 떠날 수도 있으며, 직접 사업체를 꾸릴 수도 있다. 미국의 법학자 브루스 애커먼은 기본자산제의 대표적인 현대적 주창자 가운데 한 명이다. 1990년대 말 그는 만 21세 청년에게 8만 달러의 ‘사회적 지분 급여’를 주자고 제안했는데, 그 배경엔 미국의 살인적인 대학등록금이 있었다.

 

옹호자들은 기본자산제가 자산불평등 완화에도 특효약이라고 주장한다. 소득불평등이 문제라곤 하지만, 소득보다 훨씬 더 불평등하게 배분되어 있는 게 자산이다. 더욱이, 자산불평등은 소득불 평등을 낳는 주요한 원인이다. 그러니 후자에 대한 문제제기는 ‘결과’를 시정하자는 것이지만 전자 에 대한 문제제기는 ‘원인’을 제거하는 의미가 있다. 끝으로, 자산은 세대를 거듭해 이전되기도 한 다는 점에서 자산불평등은 단순한 소득재분배보다 심원한 차원의 조치로써만 시정이 가능하다. 아마도 이상의 이유로 많은 이들에게 자산불평등을 문제 삼는 기본자산제가 소득불평등을 시정을 꾀하는 다른 제안들-특히 기본소득제-에 비해 ‘화끈하게’ 다가가는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자산불평등이 소득불평등의 주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이고 그러한 자산불평등은 상당 정도 자산 세습의 결과라는 점에서, 기본자산제는 거의 언제나 상속에 대한 문제제기를 동반한다. 실제로 김두관 의원과 정세균 전 총리 모두 상속ᆞ증여세 를 목적세로 전환해 기본자산 재원으로 삼겠다고 밝히고 있다. 피케티 또한 보편적 자본지원을 위해 자산보유세와 상속세를 강화하자고 제안한다.

 

기본자산의 현실 - 꼭 기본자산이어야 하는가?

기본자산 제안의 의의를 이상과 같이 청년의 삶의 가능성 확장 및 불평등 완화에서 찾는다면, 그것을 마다할 이유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현실은 어떨까? 앞의 절에서 구별한 기본자산의 두 가지 의의를 조금 더 전개해보자.

 

아참, 논의가 더 진행되기 전에 밝혀둘게 있다. 지금 ‘자산’이라고 하는 것은 실은 그냥 ‘목돈’이다. 경제학적으로 자산과 소득의 구별은 지극히 형식적인데, 개인에게 들어오는 모든 현금의 흐름은 소득이고 그러한 소득이 곧장 지출되지 않고 축장되거나 금융기관에 예치되면 자산이 된다. 따라서 엄밀히는 ‘기본자산’도 그냥 ‘소득’이다. 어쨌든 통상 적인 소득보다는 액수가 큰 돈이 기본자산이겠다.

 

기본자산이 청년의 가능성을 넓혀준다고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자산, 곧 목돈이 갖는 독특한 기능 때문이다. 등록금이 비싼 상급학교에 진학하거나 예기치 않은 질병에 걸렸을 때, 우리는 목돈을 필요로한다. 집을 살 때, 아니, 월세방 이라도 얻으려면 거액의 보증금이 필요하다. 외국으로 배낭 여행을 가기 위해 돈을 모아본 이들도 많으리라. 사업을 하려고 해도 적지 않은 돈이 필요하다.

 

과거엔 목돈을 직접 손에 쥐지 않으면 위와 같은 일들은 아예 할 수 없었다. 1976년에 도입된 ‘근로 자재산형성저축’ (일명 ‘재형저축’) 제도가 엄청난 호응 속에서 성공할수 있었던 것도 그래서다. 지금은 다르다. 목돈을 사전에 마련해두지 않아도 위 일들을 할 수있다. 대체로 금융제도와 복지제도의 발달 덕택이다. 요즘엔 대학 졸업 뒤에 학자금대출 원리금을 갚느라 고생한다는 말은 있어도 단 돈 몇만원이 모자라 등록금을 내지 못해 휴학했다는 얘기는 거의 들을수 없게 되었다. 돈이 없어도 사업아이템이 확실하고 계획서만 잘 쓰면 정부나 지자체로부터 상당액의 초기자금을 지원받을 수도 있다. 자동차나 기타 고가의 내구재도 판 매기업이나 금융기관의 할부금융제도 덕분에 당장은 큰 돈 들이지 않고 손에 넣을 수 있다. 목돈이 점차 불필요해지고 있는 것이다.

 

자산보다는 소득

현대인에게 필수적인 것은 자산보다는 소득, 안정적이고 정기적인 소득의 흐름이다. 정부나 지자체, 각종 공적ᆞ시민적 기구들로부터의 무상 지원은 논외로 하더라도, 금융제도의 발달 덕택에 거의 모든 일시적 목돈 지출은 장기간에 걸친 원리금 상환 프로그램으로 변환될 수 있다. 국가장학제도와 같이 정부가 이를 도모하기도 한다. 자, 생각해보자. 누구나 인생의 어떤 국면에서 크게 한 번은‘도박’을 할 수 있다. 꼭 젊은시절에 하란 법도 없다. 그러니 기본자산이 필요하다면, 그 시기가 반드시 청년기여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그러한 도박을 포함해, 한 사람이 평생 쓰게되는 지출액의 평균은 대동소이할 것이다. 그 액수가 계산될 수 있다면, 우리는 그 지출액을 저평균적인 개인의 일생에 걸쳐 그의 소득흐름을 고려해 아주 안정적으로 펼쳐놓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만 된다면, 이젠 소득만이 중요할 뿐이다. 인생의 도박을 언제 감행하든 거기에 드는 거액의 비용은 장기간에 걸쳐 조금씩 지불할 수 있다.

 

이론적으로 기본자산은 언제나 정기적인 정액의 소득 흐름으로 변환이 가능하다. 예컨대, 기본자산으로 받은 1억원을 다양하게 지출하는 대신 금융기관에 맡겨두고 앞으로 60년(=720개월) 동안 매월 정액의 현금을 받는 계약을 금융기관과 체결할수 있겠다. 이때 월 수령액에는 1억원에 붙은 이자도 포함될 것이므로, 월 수령액은 1억 원을 720으로 나눈 값(약 13만 9천 원)보다는 클 것이다. 이자율을 연 3%로 가정하면, 월 수령액은 30만 원이 된다. 거꾸로도 마찬가지다. 앞으로 60년 동안 매월 30만원의 정기적인 소득 흐름은 연3%의 이자율 아래서 1억원의 현재 가치를 갖는다. 이 상의 추론은 기본자산제와 기본소득제는 이론적으로 동일하게 설계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1)

 

물론 현실은 이론과 다르다. 무엇보다 기본소득과 기본자산을 소비자 입장에서 만족스럽게 변환해줄 금융기관은 없을 것이다. 이를테면 위 예에서, 1억원을 수탁한 금융기관은 3% 대신 2%로 적용이자율을 낮추고자 할 것이다. 이 경우 월수령액은 24만원에도 못미칠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건 금융제도가 발달함에 따라 양자의 상호전환이 가능해졌다는 사실이다. 제도 및 그것을 뒷받침하는 기술적 여건이 발달함에 따라 전환 과정에서 기관과 개인 간의 시차도 좁혀지고 있다. 과거엔 그런 전환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했고, 그 때문에 개인이 스스로 자산을 확보하고 있어야만 가능한 일들이 많았던 것이다.

 

자산불평등은 어찌할 것인가?

자산(=돈)이 그 고유의 기능을 잃고 있다. 대체로 1990년대 이후 우리 경제의 발달 추이로부터 이를 알아채지 못하기란 쉽지 않다. 근로 대중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던 재형저축 제도가 1995년에 폐지된 것도 그런 흐름의 일부라고 이해할 수있다. 이젠 전세보증금을 마련하기 위해 미리 허리띠를 졸라맬 필요가 없다.

 

하지만 여전히 자산은 중요하지 않은가? 어쨌든 자산불평등은 심각하고, 또 그것은 소득불평등을 낳는 핵심 원인 가운데 하나 아닌가? 만약 그렇다면, 자산불평등 완화를 위해 기본자산제의 필요성도 인정될 수 있지 않을까?

 

이 대목에서 자산이란 무엇인지를 다시금 생각해 보는게 유용할 것 같다. 보통 자산은 토지나 건물, 원재료ᆞ제품, 현금이나 각종 금융상품 등 다채로운 형태를 취한다. 꼭 소유를 해야하는 것도 아니어서, ‘삼천리 금수강산’은 우리 한국인의 소중한 자산이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쓰시던 만년필’과 같이 지극히 개인적이고 추상적인 의미를 갖는 자산도 있다. 이렇게 자산에는 다양한 형태가 있고, 또 의미가 있다.

 

그러나 ‘자산불평등’이라는 맥락에서 자산이란 그저 화폐적 가치로써만 고려된다. 바로 그것이 문제다. 화폐를 포함한 금융자산은 상관이 없다. 문제는 비금융 자산이다. 저 만년필이나 토지를 어떻게 화폐로 변환할 것인가? 결국 의미 있는 것은, 해당 자산이 발생시킬 수 있는 일시적 또는 장기적 현금흐름의 현재가치(=가격)일 터이다. 이에 따르면 만년필이나 시골 야산 등은 거의 가치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니까 흔히 말하는 자산불평등에서 아버지의 유품이나 가치가 낮은 시골 야산은 전혀 문제가 아니다. 자산의 물적 양이 아니라 자산이 발생시 키는 소득의 크기가 중요하다. 시골 야산 1만평보단 서울 강남의 1평이 중요하다. 결국 여기서도 또다시 문제는 ‘소득’이다. 자산이 소득을 낳고, 그러한 소득이 소득불평등을 심화시킨다. 따라서 자산불평등 완화란, 자산에서 유래하는 소득을 줄이는것, 그 편중성을 낮추는 것에 다름아니다. 이는 무엇보다 그러한 소득에 높은 세율을 누진적으로 적용함으로써 해소할 수 있다. 이것이 피케티의 방식이다.

 

자산에서 발생하는 소득을 줄이는게 핵심이라고 했다. 자산소득에 높은 세율을 적용해 자산의 소득발생 능력을 제한하는 것만으로도 자산불평등의 문제는 상당 정도 해소된다. 이러한 세제가 영구적 이라면 그것은 자산의 수익률, 즉 그것이 낳는 미래 현금흐름의 현재가치를 낮춤으로써 자산의 가치(=가격)를 즉각적으로 떨어뜨릴 것이다. 요컨대 자산소득에 높은 세율을 적용하기만 해도 자산가치 하락을 통해 소유권의 변동이 전혀 없이도 자산불평등이 완화되는 효과를 내는 것이다. 그런데 피케티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는 개인이나 법인이 보유한 자산의 가치에 의거해 별도의 보유세제까지 제안하고 있다. 이쯤 되면, 개인이든 법인이든 자산을 소유하고자 할 경제적 유인 (incentive) 자체가 크게 줄어들 것이다.

 

이상의 논의는 기본자산제를 보는 색다른 시점을 제공한다. 기본자산이 (자산)불평등 완화에 기여 하는 것을, 개인에게 지급될 저 기본자산액의 기능 이라고 여기는 게 보통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기본자산을 시민들에게 나누어주기 이전에, 즉 위의 자산소득이나 자산소유에 대한 세제를 강화하는 과정에서 자산불평등은 결정적으로 누그러지는 것이다. 자, 그렇다면, 현재의 상속ᆞ증여세제 강화 또는 자산소득ᆞ자산소유에 대한 세제의 신설ᆞ강화를 통해 걷힌 재원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남는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기본자산제가 내포하는 문제들

물론 그 돈을 기본자산이 됐든 기본소득이 됐든, 아니면 그 어떤 형태로든 개개인에게 나눠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최선일까?

 

논의를 자산 영역에만 한정하자. 저 돈을 이를테면 만 25세가 되는 모든 청년에게 1억원씩 나눠 주는 것이 최선이라고 보긴 어렵다. 우리 청년은 저 돈을 어떻게 써야할까? 여행? 그게 그렇게까지 중요한 일인가? 창업? 그걸 모두가 해야하나? 신규창업 기업의 평균 존속기간이 얼마나 되는지 아나? 주거? 그 돈으로 집을 어떻게 사나? 전월세 보증금 정도라면 지금도 저리대출이 되는데? 아, 청년인데 꿈도 안꾸냐고? 대체 왜? 그건 고정관념이다. 청년이든 노년이든 그냥 잠만 잘 자도 된다.

 

둘째, 사람들이 기본자산제에 대해 거의 공통적으로 걱정하는게 하나 있다. 우리 젊은이들이 그걸 들고 도박장에 가거나 주식시장이나 코인에 투자(?)하면 어쩌겠냐는 거다. 그런데 그것이 이상한 가? 이것이야말로 오늘날 자산(=목돈=여윳돈)의 궁극적이고도 거의 유일한 의미 아니겠는가? 다시 강조하건대, 과거 자산이 가졌던 고유한 의의들은 이제 거의 사라졌고, 자산의 거의 유일한 의미는 투자를 통한 소득창출이라는 것으로 수렴되고 있다. 그러니 우리의 청년이 기본자산 1억원을 가지고 주식이나 코인을 하는 것에는 조금도 이상할 게 없으며, 그것을 금지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다. 그리고 평균적ᆞ장기적으로 시장의 평균수익률 이상을 거두는 것이 개인에게 매우 어려운 일이라면, 저 기본자산은 증권사나 은행에 맡겨두는 게 가장 합리적인 선택일 것이다. 이렇게, 오늘날 자산 보유를 통해 사람들이 궁극적으로 얻고자 하는 것이 소득이라면, 국가는 그들에게 그냥 적정한 소득을 보장해 주면 되지 않을까? 왜 굳이 자산을 준다는 것인가?

 

셋째, 기본자산은 불평등 해소에 기여하더라도 그 정도는 매우 제한적일 것이다. 어차피 나눠줘 봐야 이런저런 경로를 거쳐─주요하게는 금융시장 을 거쳐─기본자산으로 풀린 돈은 결국 시장에서 힘이 센 이들에게 흡수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자산불평등 해소는 자산의 보유 및 그로부터 유 래하는 소득에 대한 과세를 강화함으로써 주로 이루어질 수있다. 피케티 등의 연구가 보여준대로 자산소득이 불평등에 기여하는 것은 소득 최상위층, 아무리 넓게 잡아도 인구의 5% 안쪽에서의 일이다. 이 범위를 벗어나 있는 사람들의 소득은 대부분 노동소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을 모두 ‘고만고만한’ 자산소득자로 만들어주는게 자산불평등 완화인가? 우리 정치권에서는 이 점을 보다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적할 것은, 기본자산제는 국가균형 발전에 역행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코로나19 위기 와중에도 수도권 집중은 극에 달하고 있고, 그것이 우리 경제와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목돈을 손에 쥔 지방의 청년이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개인차를 고려하더라도, 청년 인구의 수도권으로의 유출이 가속화되리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맺음말 - ‘기본’이 되는 사회를 향하여

이상의 논의에 따르면, 기본자산제는 단순히 최선이 아닌 정도가 아니라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정책이다. 그런데도 그것이 이토록 정치권 안팎에서 인기를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그 직관성과 단순성이 큰 매력 포인트일 것이나, 급속한 경제와 사회의 발전과 변화의 결과 개인에게 자산의 의의가 이미 크게 축소되었는데도 여전히 과거의 관념에 많은 이들이 사로잡혀 있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가 아닐까 한다. 오늘의 경제 현실에 맞는 접근이 필요하다.

           

다른 한편, 기본자산제의 인기는, ‘기본’ 시리즈의 유행이라는 최근 우리나라 정책 영역의 트렌드의 일부이기도 하다. 직접적으로 이는 우리 사회가 ‘기본’이 안되었음을 방증하는 것이리라. 아무리 최첨단 기술로 무장한 삼성이 업계를 호령해도, 우리 경제 전체가 선진적이라고 하긴 어렵다. 아니, 삼성조차도 반도체는 잘 만들지만 자사의 노동자를 대하는 방식에선 여전히 후진적인 면모도 보이고 있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최근 ‘K-방역’의 성공이 보여주듯 어떤 면에선 세계 최고 수준을 달성했지만, 여전히 많은 영역에서 발전의 여지가 크다. 사회정책은 그런 부분 가운데 하나다.

 

결국 오늘의 글로벌 경제환경,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의 위상에 맞는 ‘기본’을 갖추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첫 번째 과제가 아닐까? 사람들이 ‘기본’ 시리즈에 호응하는 것은 바로 그런 의미에서일 것이다. 이에 비해 기본소득이나 기본자산은 이름에 ‘기본’이 들어갔지만, ‘기본 갖추기’의 한 방편일 뿐이다.2) 지금 우리에게 맞는 ‘기본’은 무엇일까? 다.


1) 계산에는 금융감독원에서 제공하는 ‘현재가치 계산기’를 이용했다. 다음 사이트에서 변수들을 바꿔가며 미래 기본소득의 현재가치를 계 산해볼 수 있다. http://fine.fss.or.kr/main/fin_tip/cal/cal03_03.jsp.

2) 기본소득 및 기본자산의 성격에 대한 보다 본격적인 논의는 김공회 (2020), 「긴급재난지원금은 기본소득의 마중물인가? 기본소득(론)의 과거, 현재, 미래」, 『마르크스주의 연구』 제17권 제3호, 106-131쪽 참조.

일, 2021/08/01- 22:40
1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