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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327] 교과서 전쟁, 야권이 놓치고 있는 것은… : 한국판 '보이텔스바흐 합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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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327] 교과서 전쟁, 야권이 놓치고 있는 것은… : 한국판 '보이텔스바흐 합의'가 필요하다

익명 (미확인) | 수, 2015/10/28- 12:36

 

교과서 전쟁, 야권이 놓치고 있는 것은…

[시민정치시평] 한국판 '보이텔스바흐 합의'가 필요하다

 

장은주 영산대학교 교수

 

정부와 여당이 뜬금없고 어처구니없는 '역사 전쟁'을 시작했다. 가장 기초적인 수준의 정치적 합리성도 기본적인 양식도 없다. 역사학계 전체를 좌파라고 매도하질 않나, 자신들이 검정한 교과서가 주체사상을 가르친다고 생떼를 쓰지 않나, 막가파도 이런 식의 막무가내 몽니는 부리지 않을 것 같다. 이번 전쟁이 시작된 데 대해 합리적으로 추정할 수 있는 이유는 딱 하나밖에 없다. 이건 그냥 최고 권력자의 정치적 신원(伸冤) 투쟁,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어찌 보면 우스꽝스럽기도 하지만, 지극히 위험한 정치와 교육의 사사화(私事化)다. 나라 꼴이 이게 뭔가 모르겠다.

 

새정치민주연합을 비롯한 야권이 저항하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어쩐지 길거리에 나온 어린 학생들만도 못한 인식으로 이 사태에 대처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대뜸 '역사 왜곡'이 문제란다. 아직 만들어지지도 않은 교과서가 역사 왜곡을 할 것이라서 반대한단다. 일단 논리적 허점부터 너무 분명해서, 당장 반박당하고 말았다. 그래도 계속해서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부친이 친일을 했던 사실을 덮자고 이 모든 사단이 났다는 둥 하면서 열을 올린다.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지만, 정치적으로는 결국 모종의 음모론 이상이 되기 힘들 텐데도 자꾸 집권세력의 이념전쟁 프레임에 갇히려고만 한다. 어찌 이리도 무능한지 모르겠다.

 

박 대통령이 자신의 신원투쟁을 멈출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현실적으로 교과서 국정화를 막을 마땅한 제도적-정치적 수단도 없는 것 같다. 야권은 '노동 개악' 같은 다른 중요한 의제들을 제쳐 놓고 마냥 이 문제에만 매달릴 수도 없는 노릇일 터인 데다 제대로 싸움을 이끌 것 같아 보이지도 않는다. 결국 우리 시민들이 나서 정부 여당이 국정화 방침을 철회하도록 계속 압력을 가하는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반대의 초점을 좀 더 예리하게 다듬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뜬금없이 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겠다는 집권 세력이 이번 전쟁을 시작하면서 가지고 들어가는 강한 교육적 시각이 하나 있다. 바로 교과서를 통해 어린 학생들이 '올바른 역사'를 알도록 가르쳐야 한다는 근본 시각이다. 그 올바른 역사가 무엇이든, 이런 시각이 지닌 가장 심각한 문제는 배우는 학생들의 존엄성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학생들은 그저 교과서와 교사에 의해 일방적으로 특정한 방식의 사고와 지식을 주입받는 철저하게 수동적인 존재로만 전제된다. 학생들이 아직 미숙하기는 해도 온전하게 존엄한 시민으로 대우받아야 한다는 점이 완전히 무시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우리 야권이나 시민사회의 일부처럼 계속 역사 왜곡이나 '친일 미화' 따위에만 반대의 초점을 설정한다면, 이는 사실 집권 세력과 동일한 근본 시각을 공유하게 되는 것일 수도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어린 학생들이 국정 교과서 따위를 통해 기성세대가 원하는 방향의 생각을 갖도록 하겠다는 그와 같은 '주입식 교화 교육'에 대한 발상은 사실 집권 세력이 가령 전교조가 현재의 검인정 교과서로 학생들을 좌경화시킨다고 비난할 때에도 바탕에 깔고 있는 교육관이다. 그러나 이것은 무엇보다도 민주공화국의 기본 이념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그런 발상은 결국 교육을 특정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 근본에서 학생들을 저마다 불가침의 존엄성을 지닌 인간으로 대우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자신의 삶과 생각의 참된 주인이 되고, 그리하여 참된 시민이 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번 역사 전쟁의 격렬한 외양 뒤에서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되는 가장 중요한 지점은 바로 이것이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에서 진짜로 심각한 문제는 단순히 역사 왜곡이나 친일 미화가 아니라, 그것이 우리의 헌법 정신을 부정하고 자라나는 학생들의 '민주적 시민성'을 왜곡할 것이라는 데 있다. 그것은 미래의 시민들을 저마다 독립적이고 비판적인 사유를 할 수 있는 당당한 시민으로서가 아니라 지배세력의 세계관과 가치관을 내면화한 '신민(臣民)'으로 길러내겠다는 은폐된 정치적 욕망의 표현일 뿐이다. 이는 결국 우리 학생들이 미숙하다는 이유로 그 인간적, 시민적 존엄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 때 수많은 어린 생명을 앗아갔던 그 '가만히 있으라' 교육을 더 강도를 높여 계속하겠다는 것이다. 우리는 바로 여기에 초점을 두고 싸워야 한다.

 

교육에서 어떤 사안에 대한 한 가지 시각만을 강요하고 대안적 관점들을 숨기는 것은 결국 피교육자를 독립적이고 비판적인 사유를 할 수 있는 인간적 주체로서가 아니라 조작 가능한 '사물' 같은 존재로 여기는 것이다. 어리더라도 우리 학생들의 인간적, 시민적 존엄성을 인정한다면, 교육은 역사 문제든 다른 사회 문제든 다양한 시각과 논점을 제시하고 토론과 논쟁을 통해 그들이 스스로 세상과 삶을 보는 눈을 기를 수 있도록 돕는 데에 그 기본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바로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다. 소모적인 역사 전쟁이나 이념전쟁에 몰두할 것이 아니라, 우리는 지금이라도 민주공화국에서는 역사 문제처럼 사회적으로 또 정치적으로 민감하고 이견이 분분한 문제들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에 대한 구성원 모두가 신뢰할 만한 원칙을 찾아내는 일에 나서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결정적인 모범 사례가 있다. 통일 전의 분단국가 독일에서도 교육 문제를 두고 우리와 비슷한 사회적 갈등이 있었다. 좌우 진영은 서로에 대해 '의식화' 또는 '우민화' 교육을 그만두라며 날 선 이념전쟁을 치렀더랬다. 이 와중에 1976년 독일의 한 소도시 보이텔스바흐(Beutelsbach)에서 좌우 진영을 망라하는 정치가, 연구자, 교육자가 함께 모여 치열한 토론 끝에 우리나라에서는 '민주 시민 교육'이라고 부르는 '정치 교육'의 원칙을 합의해 내었다. 바로 '보이텔스바흐 합의(협약)'다.

 

이 합의에 따르면, 정치 교육은 △일방적인 주입식 교화 교육을 금지하며(강제 또는 교화의 금지), △학문과 정치에서 일어나는 논쟁을 교육에서도 그대로 재현하고(논쟁성에 대한 요청), △학생들이 정치적 상황과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제대로 이해하고 그에 따라 정치적인 행위 능력을 기르게끔(분석능력 및 학생의 이해관계 중심) 해야 한다. 이 합의는 단지 독일에서만이 아니라 많은 다른 민주 국가들에서도 중요한 민주 시민 교육의 원칙을 제시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가령 영국에서는 아예 교육법 안에 유사한 원칙들을 담았다.

 

이 합의는 그 핵심에서 학생들의 인간적, 시민적 존엄성에 대한 존중의 정신에서 나온 것이다. 일방적인 주입식 교화교육을 지양하고, 특히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들에 대해서는 사회적 논쟁을 교실에서 재현하는 방식으로 교육해야 한다는 것은 결국 학생 스스로가 판단하고 결정하며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끔 성장시키겠다는 정신의 표현이다. 정치보다 교육적 관점이 우선해야 한다는 인식의 표현으로, 우리 헌법에 명기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원칙'도(흔히 정치적 사안에 대한 회피의 원칙으로 오해되지만) 바로 이 점을 지시한다고 해야 한다.

 

정치권, 특히 야권에 권고하고 싶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시도에는 단호히 반대하되, 엉뚱한 역사 전쟁 프레임에 말려 허우적거리지 말고 올바른 프레임을 설정하여 시민사회 및 학계 등과 함께 한국판 보이텔스바흐 합의 같은 것을 이끌어낼 수 있는 초정파적 합의기구 같은 것을 만드는 데 앞장서라고 말이다. 핏대 서린 이념전쟁에 계속 휘말리기보다는 그런 식으로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 야권이 우리의 소중한 미래 시민들과 민주주의를 걱정하는 진정성과 성숙한 문제 해결 능력을 가졌음을 입증하는 더 나은 길일 것이다. 솔로몬 재판에서 진짜 아기 엄마는 아기를 반 토막 내서 나누어 갖자는 제안에 동의하지 않음으로써 진짜임을 증명했다. 자칫 나라를 죽일 수도 있는 이 치졸한 역사 전쟁의 프레임은 따르지 않고 조용히 거부함으로써 진짜 '애국 세력'임을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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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내용은 참여연대나 참여사회연구소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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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국민의 힘으로 세워졌습니다.
정부가 하지 못한 일을 먼저 나서서 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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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18/08/30-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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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큐멘터리 ‘백년전쟁’ⓒ민족문제연구소

역사가 법정에 섰다. 처음부터 성립되지 않는 재판이었다. 역사의 문법과 법의 문법은 다르기 때문이다. 김민철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김민철 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는 일례로 2004년 반민족처벌법 제정 당시를 설명한다.

“역사학자들은 처벌 대상을 ‘한일병합의 공으로 작위를 받은 자’로 정하며, 작위 자체가 병합의 공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법률가들은 병합이 되면서 그들이 무슨 공을 세웠는지 증명하라고 하더라.”

역사와 법의 영역은 엄연히 다르다. 그럼에도 역사를 법 앞에 세운 이는 다름 아닌 정치였다.

이승만 명예훼손 혐의로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의 제작진 김지영 감독과 최진아 PD는 법정에 섰다. 2012년에 나온 ‘백년전쟁’은 한국 근현대사 100년을 독립운동가, 친일파와 그 후손들의 전쟁으로 보고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의 어두운 과오를 다뤘다.

‘백년전쟁’은 뉴라이트의 역사왜곡에 대응하기 위해 제작됐다. 1995년경부터 시작된 이승만 바로세우기 운동에 이어 2000년 뉴라이트가 친일 인사 찬양 운동을 시작했다. 그 중심에 이승만이 있었다. ‘백년전쟁’은 건국의 아버지, 독립운동가로 알려진 이승만의 친일행적과 비위행위를 드러냄으로써 그를 역사의 법정에 세웠다. 해당 영상은 유튜브 합계 200만 조회 수를 기록하며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이에 이승만의 양자 이인수 박사 등 유족들은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2013년 제작진을 검찰에 고소했다. 검찰은 이승만의 미국 박사학위 취득 과정, 친일 활동과 독립성금 전용 의혹 등에 대해서는 불기소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영상에서 이승만이 1920년 샌프란시스코에서 ‘맨 법(Mann Act·성매매, 음란행위 기타 부도덕한 목적으로 가족이 아닌 여성과 주 경계를 넘는 행위를 처벌하던 1900년대 미국 법률)’ 위반으로 체포, 기소됐다는 부분이 문제가 됐다. 제작진은 해당 사례로 이승만이 하와이 주민들이 힘들게 모은 독립성금을 낭비했음을 보여주고자 했다. 하지만 검찰은 이를 허위사실로 보고 기소를 결정했다.

피고인들은 국민참여재판을 선택했다. 지난 2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재판장 김태업) 심리로 해당 사건 2회 공판 겸 선고기일이 진행됐다. 이날 재판은 증인신문, 피고인 신문, 검찰·변호인 최종 의견진술, 배심원 판결, 재판부 선고 순으로 진행됐다. 오전 10시에 시작된 재판이 다음 날 새벽 2시에 끝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정치 재판의 서막

검사는 이 사건은 “정치적 사건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번 재판은 이승만을 평가하기 위함이 아니라 허위 사실을 찾기 위함이라고 했다.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 했던가. 재판 내용은 아닐지라도 김 감독과 최 PD가 피고인 신분으로 법정에 서게 되기까지는 다분히 ‘정치적’이었다.

2013년 3월 청와대 오찬에서 조부의 친일을 옹호한 이인호 전 KBS 이사장이 “‘백년전쟁’은 국가 안보 차원에서 주의 깊게 봐야 한다”고 말하자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잘 살펴보겠다”고 화답했다.

박 전 대통령의 이 한 마디에 모두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보수 언론들은 해당 영상물에 ‘좌파 딱지’를 붙이기 시작했다. 청와대는 교육부에 ‘백년전쟁 대응방안’ 마련을 지시했다. 국정원은 전경련을 통해 이승만 찬양 영상 제작비를 지원했다. 김 감독은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이인수씨의 고소로 검찰에 사건이 접수되자 사건의 정치적 양상은 더욱 빛을 발했다. 서울중앙지검은 해당 사건을 형사1부에 배정해 조사하던 중 공안1부로 재배당했다. 검찰이 통상 형사부에서 다뤄지는 명예훼손 사건을 간첩을 조사하는 공안부로 넘겼다는 사실은 이 사건을 이념적 문제로 바라본 결과가 아닐까 싶다. 사건을 4년 넘게 끌던 검찰은 이례적으로 공소시효를 10여 일 남기고 기소했다.

법정에서 역사를 논하다

오후 증인신문 과정은 근현대사 수업시간을 방불케 했다. 이승만에 대해 상반된 평가를 하는 두 교수가 양측 증인으로 나왔다. 오후 4시 종료 예정이던 증인신문이 저녁 7가 다 돼서야 끝이 났다. 옛날이야기는 언제나 흥미진진하지만 막상 사료를 따지고 들면 역사는 수학만큼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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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만 전 대통령ⓒ뉴시스

이번 재판의 쟁점은 이승만이 미국에서 맨법(성매매나 음란행위 등 부도덕한 목적으로 여성과 주 경계를 넘는 행위를 처벌하도록 한 법) 위반으로 수사와 재판을 받았는지 여부를 가리는 것이었다.

증인으로 나온 두 교수는 재판장에서 1900년대 초 이승만의 행적에 대해 강연을 펼쳤다. 검찰 측 증인으로 나온 오영섭 연세대 이승만연구원 교수는 “미주지역 독립운동 세력 사이의 알력 다툼 속에서 경쟁 세력이 이 전 대통령을 음해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반면 김민철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는 “이승만과 김노디의 부적절한 관계는 많이 알려졌다. 여러 사료들을 바탕으로 이 같은 감독의 해석은 합리적이라고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상반되는 두 교수도 동일하게 인정한 부분이 있었다. 역사학계에는 이승만과 김노디의 당시 행적에 관한 연구가 없다는 것이다. 사생활과 관련된 부분을 연구하는 것을 꺼려하는 학풍 때문이라고 말했다. 학계 다수가 인정하는 정설이 없다는 뜻이었다.

검찰과 변호인은 증인 신문 과정 틈틈이 배심원단에게 자신들의 주장을 개진했다.

검찰은 영상 속 “1920년 6월 이승만이 샌프란시스코에서 맨법 위반 혐의로 붙잡혔다. 이승만은 이민국에서 집중조사를 받고 기소됐다. 그로 인해 21일로 예정된 주민 환영회가 취소됐다.이승만은 하와이로 가서 재판 받게 해달라고 사정했고 하와이에서 기각 결정을 받았다”는 내용이 허위사실이라고 주장했다.

검찰은 해당 내용이 나오는 2분 30초 분량의 영상을 컷, 자막, 이미지 등을 모두 분류해 사실 여부를 물었다. 어느 사료를 보고 이것을 사실이라고 생각했는지 증명하라고 했다.

이에 변호인단은 상당한 근거를 바탕으로 해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승만이 수사·재판을 받았다는 직접 증거는 구할 수 없었지만 로버트 장이 집필한 저서 ‘하와이의 한인들’과 김노디의 이민국 진술서, 이승만의 해명서, 당시 미국 형사절차법의 특성 등이 정황 증거가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검사 측도 변호인 측도 100년 전 미국에서 있었던 일을 단언할 수는 없었다. 역사는 띄엄띄엄 남아있는 사료에 역사학자의 해석이 가해지면서 완성된다.

검찰은 신문 과정에서 역사의 ‘객관성’을 강조했다. ‘백년전쟁’은 이승만의 부정적인 측면만 조명했고 긍정적인 측면은 담지 않았기 때문에 객관적이지 않다고 주장했다. 또 이민국 문서 같이 공문서만이 객관적인 자료라고 인정했다. 공인된 사실일 때만 그를 바탕으로 표현의 자유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백년전쟁’은 역사적 사료가 아니라 다큐멘터리 영상물이다. 제작진은 영상을 통해 이승만의 비위 행위를 드러내기 위해 학계에서 주목하지 않은, 내용들을 대중에 알렸다.

오전 증인신문에 출석했던 강성률 광운대 교수는 다큐멘터리라도 객관적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어떤 사실을 카메라로 잡을 것인가 선택하는 것부터 감독의 주관이 들어간다. 카메라 거리, 앵글 등 촬영부터 객관적일 수 없다”며 “결국 감독의 주관을 객관으로 최대한 포장해서 보여지는 것이 다큐멘터리다”라고 설명했다.

역사, 국민이 심판하다

재판의 모든 절차가 끝나고 국민 배심원들은 3시간에 걸쳐 토론했다. 평소 1시간 반이면 만장일치로 결정이 모아진다고 하던데. 배심원들은 판결의 무거움을 안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국민이 판단의 주체가 된 법정은 친절한 공간으로 변했다. 국민참여재판의 분위기는 평소 재판과는 확연히 달랐다. 방청객들이 있긴 하지만 평소 재판은 판사, 검사, 변호사 그들만의 세상이다. 앞에 놓여 진 마이크는 장식품일 뿐. 그들은 아주 작은 목소리로 법률 용어를 속사포처럼 쏟아낸다. 피해자, 피고인에 대한 배려 따위는 없다.

하지만 국민참여재판에서는 판사도, 검사도, 변호사도 국민 배심원을 이해시키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다. 법률 용어의 의미부터 법률 해석의 배경까지 쉽고 천천히 설명했다.

모든 재판들이 이렇게 진행되면 얼마나 좋을까? 쉬운 설명을 통해 국민 누구나 재판과정을 이해하고 결과를 판단할 수 있게끔 말이다. 사법부에겐 ‘우리가 이렇게 기소하고 이렇게 선고했으니 너네는 받아들이기만 해’와 같은 권위적인 태도가 아니라 국민들을 설득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다음 날 새벽 1시 55분 국민 배심원 9명은 김 감독에 대해 1명이 유죄, 8명이 무죄 판결을, 최 PD에 대해 2명이 유죄, 7명이 무죄 평결을 내렸다. 재판부 역시 이들의 결론을 참작해 무죄를 선고했다.

<2018-08-30> 민중의소리

☞기사원문: [법정르포] 역사가 법정 위에 섰다··· 배심원들이 외면한 이승만의 ‘명예’

※관련기사

☞뉴시스: 이승만 다큐 ‘백년전쟁’ 감독·PD, 명예훼손 혐의 ‘무죄’

☞한겨레: 이승만 비판 다큐 ‘백년전쟁’ 제작진 명예훼손 혐의 무죄

☞법률뉴스: [판결] ‘이승만 명예훼손 혐의’ 백년전쟁 감독·프로듀서, 국민참여재판서 “무죄”

☞아시아경제: 이승만 비판 다큐멘터리 ‘백년전쟁’ 감독·PD 국민참여재판 1심 “무죄”

☞헤럴드경제: ‘백년전쟁’ 감독ㆍ프로듀서 ‘이승만 명예훼손’ 혐의 무죄

☞투데이신문: 이승만 비판 다큐멘터리 ‘백년전쟁’ 제작진, 국민참여재판서 명예훼손 무죄

☞금강일보: 백년전쟁 무죄…이승만 사생활·친일행적 다뤄

목, 2018/08/30-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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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문화          □ 언론·사회 

금, 2018/08/31-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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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인사이드, 오늘은 김순흥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장과 함께합니다.

1. 오늘은 8월 15일 제73주년 광복절입니다. 광복절의 의미가 갈수록 퇴색돼 가는데 광복절의 의미에 대해서 말씀해주시죠.

2.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장으로 활동하고 계시는데요. 민족문제연구소는 어떤 활동을 하나요?

3. 광복 73년이 지나도록 국가로부터 서훈을 못 받는 독립유공자가 많고, 받은 사람들도 서훈의 등급이 부당한 게 많다고 하는데요.

4. 잘못된 역사 교육과 이를 바로 잡기 위해서 진행되고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면 소개해주시죠.

5.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일제의 잔재들이 많이 있을 것 같은데요. 우리 생활 속에 남아있는 일제의 잔재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6. 지난해부터 광주 곳곳에 있는 친일잔재를 청산하기 위해 ‘광주 친일 잔재 청산 특별팀’을 꾸렸었는데요.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7. 몇 차례 회의는 진행됐지만, 여전히 문제 해결에 소극적인 모습이 보인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8. 당연한 질문 같지만,‘광주 친일 잔재 청산’의 가장 큰 목적은 뭔가요?

9. 광복절만 되면 건국절 논쟁이 시작되는데요. 올해도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10. 앞으로의 계획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2018-08-15> KBC광주방송 

☞기사원문: 모닝730 피플인사이드> 김순흥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장

금, 2018/08/17-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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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의 기부·기증으로 건립된 ‘시민의 박물관’ 식민지역사박물관
김승은 “단순한 전시품 아닌 하나하나가 다 사연있는 역사의 증거”
“강제징용·위안부 피해자 한 맺힌 소송을 재판거래 대상으로… 황망”

[법률방송뉴스] 경술국치일인 그제(29일) 민족문제연구소가 서울 용산에 식민지역사박물관을 개관했다는 소식 전해드렸는데요.

박물관 설립에 실무적으로 산파 역할을 한 김승은 민족문제연구소 학예실장을 만나 이런저런 세상 얘기들을 들어 봤습니다.

‘LAW 투데이 인터뷰’, 신새아 기자입니다.

[리포트]

지난 2011년 박물관 건립위원회가 성립되고 그동안 1만명 넘는 시민들이 보내준 성금.

그리고 시민들의 자료 기부와 기증으로 건립된 식민지역사박물관.

어느 하나 사연 없는 자료, 의미 없는 전시물은 없다는 게 김승은 민족문제연구소 학예실장의 말입니다.

[김승은 학예실장 / 민족문제연구소] “강제동원 피해자가 자신한테는 한 장 밖에는 남지 않은 사진, 유일하게 남겨진 엽서 한 장, 이런 것들도 기증을 해주셨고 이렇게 하나하나 이 자료 안에 너무 많은 역사가…“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라는 엄혹한 시절, 친일과 항일.

같은 시대, 서로 다른 길을 살다 간 삶들을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는 김승은 학예실장.

[김승은 학예실장 / 민족문제연구소] “식민지역사박물관은 우리가 일제 강점기에 겪었던 다양한 삶 속에서 친일과 항일이라고 하는 두 삶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그런…”

사연 없는 전시품이 없다고 했는데 헤지고 낡아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이 깃발도 임신 8개월에 남편이 전장에 끌려나간 식민지 조선 여인의 한이 켜켜이 서린 깃발입니다.

[김승은 학예실장 / 민족문제연구소] “저 깃발을 ‘청춘만장’이라고 불렀대요. ‘마치 이제 죽으러 가는 길에 앞세우는 만장기 같다’ 라고 해서 그렇게 불렀다고 합니다. 결국에는 돌아가셔서 돌아오질 못하셨어요. 이 ‘장행기’를 남편의 유품처럼 보관하고 계시다가…”

강제 징집 얘기는 자연스럽게 장제징용과 위안부 얘기로 이어졌습니다.

[김승은 학예실장 / 민족문제연구소] “그렇게 해서 동원한 인원들이 노무자도 있고 학병도 있고 그리고 거기에는 ‘근로정신대’ 라고 하는 이름으로 어린 소녀들도 동원했고… 우리가 분노하고 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

사연 없는 기증품이 없다는 얘기를 다시 하며 김승은 실장은 일본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 얘기를 꺼냈습니다.

[김승은 학예실장 / 민족문제연구소] “그냥 집에 그냥 단순히 보관했던 자료들이 아니라 저 자료를 내보이면서 내 피해와 우리 가족이 겪었던 그런 고통들을 얘기하면서 저분들이 일본정부를 상대로 다 재판투쟁을 하셨던 분들이에요…”

돌아가실 때까지, 돌아가시면 그 후손들이 뒤를 이어 싸워왔던 일본 정부와 전범기업들을 상대로 한 강제징용·일본군 위안부 피해 소송.

대한민국 정부는 그러나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김승은 학예실장 / 민족문제연구소] “더 화가 나는 것은 피해자들이 스스로 자신의 피해를 밝힐 때까지 일본정부는 그렇다 해도 한국정부도 절대 피해자들을 먼저 나서서 보살피거나 그 피해를 밝히려고 노력하거나 그러지 않았다는 거에요”

그 한 맺힌 소송을 ‘양승태 사법부’가 법관 해외 파견 증원 따위를 위해 ‘박근혜 청와대’와 재판거래 대상으로 삼은 황망한 현실.

선하고 차분했던 김승은 실장의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김승은 학예실장 / 민족문제연구소] “그런데 본인들의 피해를 적극적으로 나서서 밝히는 것을 이제는 국가가 나서서 막고 있다는 것이 바로 이번에 양승태 사법부의 이 재판거래에 정말 분노를 참을 수 없는…“

그리고 우리 법원이 사건을 뭉개고 있는 사이 이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소송에 참여한 피해자는 단 두 명만 생존해 있습니다.

[김승은 학예실장 / 민족문제연구소] “이거는 일본정부도 아니고 한국정부가 전범기업의 편에 서서 이것을 한일관계의 문제로 얘기를 하면서 끊임없이 지연시켰다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 이거는 정말 뭐라고 얘기를 할 수 있을지…”

한 맺혔지만 어디 남기지 못한 이야기, 전하지 못한 이야기들.

이런 이야기들을 기록하고 전하는 것, 그것이 식민지역사박물관의 설립, 그리고 존재 이유라는 것이 김승은 실장의 말입니다.

[김승은 학예실장 / 민족문제연구소] “이 박물관에서는 그런 분들의 그 남기지 못한 이야기 그리고 다 말해지지 못한 역사에 대해서 시민들에게 더 널리 알리고 그리고 그것을 기억하고 그리고 제대로 된 역사로 기록하는…”

인터뷰 말미 발걸음은 민족문제연구소가 펴낸 친일인명사전 전시관 앞에 이르렀습니다.

엘리트일수록, 법조계도 그런 면에서 친일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 김승은 실장의 말입니다.

[김승은 학예실장 / 민족문제연구소] “일제의 사법기관에서 검사가 되거나 그리고 판사가 되어서 평생을 이제 법관으로 있으면서 독립운동가를 재판을 하고 그 사법제도 안에서 살았던…”

청산하지 못 한 역사는 과거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현실 속에서 끊임없이 반복 재현된다는 것이 김승은 학예실장의 말입니다.

사법농단 재판거래 파문을 철저히 수사해서 사법농단 부역자들의 민낯을 남김없이 철저히 드러내고 합당한 대가를 치르도록 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법률방송 신새아입니다.

<2018-08-31> 법률방송뉴스

☞기사원문: “남기지 못한, 그러나 남겨야 하는 이야기”… 식민지역사박물관과 나, 김승은 학예실장 인터뷰

금, 2018/08/31-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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問全斗煥氏

 

夫妻回顧錄(부처회고록)

憤鬱又長歎(분울우장탄)

不恥焉如此(불치언여차)

衆言罰未完(중언벌미완)

 

전두환 씨에게 묻소

 

두 夫妻가 함께 회고록을 펴내니

분하고 답답한 맘 또 장탄식하네

부끄러워 않음 어찌 이와 같은가

罰이 미완성이라 많은 이 말하네.

 

<時調로 改譯>

 

夫妻의 회고록에 憤鬱하여 또 장탄식

부끄러워하지 않음 어찌 이와 같은가

罰함이 미완성이라 많은 사람 말하네.

 

*夫妻: 부부(夫婦)  *回顧錄: 지나간 일을 돌이켜  생각하면서 적은 기록 *憤鬱:

분한 마음이 일어나 답답함 *長歎: 긴 한숨을 지으며 깊이 탄식하는 일. 장탄

식(長歎息)  *如此: 이러함  *衆言: 많은  사람의  *未完: 未完成. 아직 덜 됨.

 

<이우식 지음>

일, 2018/09/02-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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戊戌年國恥日

 

恥辱皆忘久(치욕개망구)

邦亡百八年(방망백팔년)

無量分斷苦(무량분단고)

鐵壁孰能穿(철벽숙능천)

 

戊戌年의 國恥日에

 

수치와 모욕 다 잊음도 오래

나라 망한 지 어느덧 百八年

헤아릴 수 없는 분단의 괴롬

견고한 벽을 뉘 능히 뚫으랴.

 

<時調로 改譯>

 

치욕을 잊음도 오래 亡國 어언 百八年

헤아릴 수도 없는 둘로 갈라진 괴로움

남북의 견고한 벽을 누가 능히 뚫으랴.

 

*國恥日: 나라가 수치를 당한 날. 흔히 우리나라가 일본에게 國權을 강탈당한 날인

1910년 8월 29일을 이른다 *恥辱: 수치와 모욕 *無量: 정도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음 *鐵壁: 쇠로 것처럼 견고한 벽. 쇠로 벽이란 뜻으로, 잘 무너지거나 깨뜨

려지지 않는 대상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방비가 매우 튼튼함을 비유적으로 이름.

 

<이우식 지음>

일, 2018/09/02-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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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병대 기동대 지원 자격]

 

안전놀이터 기본 조건

 

1.신체 등급 1~2등급 현역대상자

2.신장 175cm 이상

3.시력(나안) 0.8 이상

4.2종소형면허 혹은 원동기 자격증 소유

 

2종소형면허와 원동기 자격증이 필수인 이유는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헌병 기동대에서는

배기량이 1,500cc 인 모터사이클을 운용하고 있습니다.

자동차급이기 때문에 함부로 탔다가는 위험합니다.

 

안전공원 우대 조건

 

1.자동차 운전면허 를 취득한 사람을 우대

(원동기 자격증 포함)

2.태권도, 합기도, 유도, 특공무술, 검도, 킥복싱 등

무도 1단 이상자를 우대

3.자동차정비기능사 이상 자격 취득자를 우대

 

☆선발 형식: 100% 모병제 선발

 

멋지고 품위있는 헌병 기동대에 한번 지원해보세요!-

 

그리고 헌병 기동대라는 자부심으로 열심히 복무하고

계신 국군 장병 여러분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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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18/09/03- 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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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국정교과서 지지 홍아무개 교수… 교육부 “학회 보고 결정,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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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부, 국정교과서 현장검토본 공개 교육부가 지난 2016년 공개한 국정교과서 (중학교 “역사 ①, ②”, 고등학교 “한국사”) 현장검토본. ⓒ 유성호

김상곤 교육부 장관은 지난 6월 8일 ‘국정화진상조사 백서’를 공개하면서 다음처럼 말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시도는 권력의 횡포이자, 시대착오적인 역사교육 농단이었다. 국정화가 교육부를 중심으로 추진됐던 게 사실이며, 정부의 과오에 대해 국민들께 깊은 사과를 드린다.”

하지만 이 발언이 나온 지 한 달 뒤인 지난 7월, 교육부와 경기도교육청이 국정교과서의 ‘핵심 설계자’를 자처한 인사에게 국가교육과정 연구책임자를 맡긴 사실이 처음 확인됐다.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관한 대국민 사과를 내놓고도 관련 인사를 ‘교육과정 작업’에 투입한 것이다. 이 연구는 2022 개정 교육과정에도 영향을 주는 것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김상곤 ‘국정화 사과’ 뒤 한 달, 교육부의 황당 행동

2일 교육부 관계자 증언과 기자가 입수한 문서 내용에 따르면, 경기도교육청은 지난 7월 홍아무개 교수(고려대)를 연구책임자로 하는 ‘국가교육과정 전문가포럼’ 계약을 맺었다.

이 사업은 경기도교육청이 실무를 맡고 있지만, 교육부가 특별교부금 6000만 원을 지원하는 등 사실상 교육부가 계획, 주도해온 교육과정 사업이다. 홍 교수에 따르면 홍 교수를 책임자로 한 이 연구엔 한국교육과정학회 인사 등 10여 명이 참여하고 있다. 이 학회 유효회원은 100명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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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 교수가 주도하는 “국가교육과정 전문가 포럼” 안내문. ⓒ 윤근혁

지난 8월 24일, 홍 교수는 해당 연구사업 일환으로 ‘2018년 제1차 국가교육과정 전문가포럼’을 열기도 했다. 고려대에서 열린 이 포럼의 주제는 ‘학교교육과정 자율화를 위한 국가교육과정 개선 방안 모색’이었다. 이 자리엔 교육부 교육과정 담당 관리들을 포함해 230여 명이 참여했다.

눈길을 끈 건 개회사를 한 뒤 발표에 나선 홍 교수의 기조 발제 내용이었다. 주제는 ‘학교 교육과정 학생 선택권 확대 방안’. 박근혜 정부 당시 ‘교육과정 자율화와 학생 선택권을 제한한다’는 지적을 받아온 역사교과서 국정화 과정에서 주요하게 목소리를 낸 인사가 문재인 정부에서 ‘교육과정 자율화와 학생 선택권 확대’를 말한 것이다.

국정교과서 보고서를 보낸 교수에게 연구책임을?

홍 교수가 과거 교육부에 건넨 ‘정통 한국사교과서의 확보를 위한 방안과 과제'(2014. 12.) 보고서를 보면, 그는 당시 검정교과서에 대해 색깔론을 제기한 뒤 국정교과서 발간을 제안했다. 지난달 28일 만난 홍 교수는 기자에게 이 문건이 “국정교과서 핵심플랜을 제시한 것”이라고 자평했다.

홍 교수는 이 보고서에서 “현재 (역사)교과서들은 북한 역사교과서를 표절했다고 할 정도로 역사관이 많이 닮아 있다”면서 “북한식 사관을 가진 재야 사학자들에게 (검정교과서 집필을) 맡겨둔다면 공교육을 책임진 교육부는 제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홍 교수는 “교과목의 적용 범위가 필수일 경우 국정(교과서)이 맞다”면서 “한국사의 경우 검정과 국사편찬위 발행 정통 한국사 공존→정통 한국사의 적용으로 나아가는 것도 바람직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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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 교수가 교육부에 2014년에 보낸 이른바 “정통 한국사교과서의 확보를 위한 방안과 과제” ⓒ 제보자

또 홍 교수는 지난 2014년 8월 교육부가 연 ‘한국사 교과서 발행체제 개선 토론회’ 자리에서나, 이 보고서 등을 통해 유관순 열사가 기존 고교 검정 <한국사>교과서에서 빠졌다는 사실을 공식 지적했다. 이후 교육부는 이 사실을 TV광고로 활용하는 등 국정교과서 홍보에 나서기도 했다.

이 보고서에 대해 홍 교수는 “내가 먼저 교육부에 제안한 것”이라면서 “원고료를 받았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이 보고서 제출 전에 진행된 위 토론회에 나와 ‘교과서 발행 구분 준거와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 방안’이라는 제목으로 주제 발표를 하기도 했다.

기자가 입수한 ‘올바른 역사교과서 지지 확보 방안'(2016. 9.)이라는 교육부 내부 문서를 보면 역사교육정상화추진단은 ‘국정교과서 지지교수’로 전국에서 홍 교수 등 5명을 지목한 뒤 “10월, 차관 면담”이라고 적어놓기도 했다.

교육부 “학회 보고 연구 맡겨”… 홍 교수 “국정교과서 지금도 지지”

현직 고교역사 교사인 김육훈 전 역사교육연구소장(전 역사교과서국정화진상조사위원)은 지난 1일 기자와 한 인터뷰에서 “박근혜 정권 당시 역사교과서 국정화 주장을 선도적으로 제기했던 사람이 교육과정 연구의 책임자이며 나아가 ‘학생선택권 신장 방안’을 연구한다는 것이 참 어처구니없다”면서 “교육당국이 이 사실을 알고도 진행한 일인지 묻고 싶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교육부 교육과정 관련 부서 관계자는 지난달 27일 기자와 한 전화통화에서 “우리는 홍 교수를 보고 정책연구를 맡긴 것이 아니라 교육과정학회를 보고 맡긴 것”이라면서도 “홍 교수가 교육과정학회장이란 것을 뒤늦게 알았다. 꼼꼼하게 못 살펴본 점은 불찰”이라고 해명했다. 홍 교수는 올해 1월부터 학회장을 맡아왔다.

홍 교수도 기자와 직접 만나 “교육부가 나한테 연구를 준 게 아니라 내가 학회장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책임자) 일을 하는 것”이라면서 “내가 국정교과서를 지금도 지지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번 교육과정 포럼 참여도 일관적 애국의 측면”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홍 교수는 “진영논리에 따라 나를 배제하라는 것은 ‘왜 블랙리스트를 작동 안 시키느냐’라는 논리와 똑같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2018-09-03>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자칭 국정교과서 ‘핵심 설계자’에게 국가교육과정 연구책임 맡긴 교육부

월, 2018/09/03-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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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18/09/03-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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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 부위원장 김희원의 거짓말에 대한 김점구의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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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 부위원장 김희원은 민족문제연구소의 문제를 제기하는 나(독도수호대 대표)를 음해하기 위해 독도수호대 회원을 사칭하며, ‘독도수호대가 정관 공개를 거부했다’는 허위의 주장을 하며, 독도수호대와 나에  대한 명예훼손을 하고 있다.
.
김희원은 9월2일자 내 페이스북에 “회원에게 정관 공개를 거부한 이유가 뭔지 궁금하네요. 왜 회원에게 공개 안하시나요”라는 허위의 글을 게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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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김희원은 독도수호대 회원이 아니다.
독도수호대와 인연은 독도탐방행사에 참가자로 동행했던 것이 유일하다.
8월 17일 가입신청을 했으나 현재 미승인 상태이고, 첫회 회비 미납상태다. 회비가 납부되면 정식 회원 자격이 부여된다.
그러나 회비를 납부하기도 전에 독도수호대에 대한 허위의 주장을 한 것을 볼때 정상적인 회원 가입이라 볼수 없고, 해당 행위를 했으므로 가입을 보류할 수 할 수 밖에 없다.
만약, 독도탐방 행사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회원이라고 주장한다면, 민족문제연구소가 주도한 시민역사관 건립에 참여안 발기인, 기부자 모두는 회원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민족문제연구소는 이들을 회원이라고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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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으로
김희원은 독도수호대에 정관 공개를 요청한 사실이 없다. 당연히 거부한 사실도 없다.
김희원이 해수부에 공개청구했으나 해수부는 자체 판단으로 비공개했고, 독도수호대에 공개여부를 물은 사실(정보공개법에서 정한 제3자 의견 조회)이 없다. 당연히 “정관 공개 거부”도 성립할 수 없다.
김희원은 ‘독도수호대가 공개 거부’라는 주장만 할 뿐 어떠한 증거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아니 거부한 사실이 없으므로 증명은 불가능하다.
이로써 민족문제연구소 부위원장 김희원의 거짓말은 명명백하게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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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김희원은 왜 독도수호대 회원을 사칭하며 ‘정관 공개 거부’라는 거짓말로 독도수호대와 나를 음해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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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민족문제연구소 문제를 제기하는 내 입에 재갈을 물리고, 민족문제연구소 문제가 확산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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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에서는 이미 민족문제연구소의 문제를 제기하는 전 운영위원장을 제명했고, 현 간부는 서울 소재 지부장을, 자칭 지부장은 전남 소재 지부장을 각각 고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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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원은 1만 3천여 회원이 속해있는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이고, 김희원의 허위 주장은 일개 개인의 의견이라고 볼 수 없다.
따라서 나는 김희원의 허위 주장이 ‘민족문제연구소가 독도수호대를 상대로 명예훼손을 하고 있다’는 결론에 이를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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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민족문제연구소 설립 초기부터 회원이다.
자기 아버지의 친일행적을 만천하에 고발한 임종국 선생의 진실을 향한 확고한 신념과 의지를 민족문제연구소의 정신이라고 생각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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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금 민족문제연구소 상근자와 운영위원은 어떠한가?
문제를 해결하기는 커녕 거짓말을 일삼고 일부 운영위원은 작당한 듯이 문제를 제기하는 회원을 중상모략하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이미 내가 민족문제연구소의 문제를 제기하는 이유가 “………….”(때가 되면 밝힌다)라며 허위 주장을 한 사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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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요구한다.
민족문제연구소와 김희원 부위장은 독도수호대와 나를 상대로 하는 허위주장에 대해 공개사과하고, 그 사과문을 홈페이지에 게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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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사과를 하지 않고 원상회복 조치를 하지 않는다면 명예회복을 위해 모든 수단을 강구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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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9.4

화, 2018/09/04-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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奉告人君(봉고인군)

 

一國興亡路(일국흥망로)

人君左右之(인군좌우지)

難題南北解(난제남북해)

最重不相欺(최중불상기)

 

삼가 나라님께 아뢰오

 

한 나라가 흥하고 또한 망하는 길

나라님이 좌지우지하는 것입니다

어려운 문제를 남과 북 함께 풀되

서로 안 속이는 게 가장 重합니다.

 

<時調로 改譯>

 

한 나라의 흥망은 人君께 달렸습니다

어려운 문제일랑 남북이 더불어 풀되

속이지 아니하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奉告: 받들어  고함. 또는  삼가  아룀  *人君: 나라님.  임금  *左右之: 좌지우지(左之

右之).  이리저리  제 마음대로  휘두르거나  다룸  *興亡: 잘되어  일어남과  못되어

어짐 *難題: 難問題. 해결하기 어려운 일이나 사건 *最重: 가장 귀하고 중요함.

 

<2018.9.4, 이우식 지음>

화, 2018/09/04-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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敢問人君敎育部長官任命

 

四方多傑物(사방다걸물)

擢擧豈如斯(탁거기여사)

衆歎號回撤(중탄호회철)

祈望再考思(기망재고사)

 

교육부 장관 임명에 대해 감히 나라님께 여쭙소

 

사방에 뛰어난 인물 많기도 하건만

발탁해 重用함 어찌 이와 같습니까

많은 이 탄식하며 撤回 부르짖으니

거듭 考慮하기를 빌고 또 바랍니다.

 

<時調로 改譯>

 

사방 傑物 많건만 擢擧 왜 이러합니까

많은 이 탄식하며 임명 撤回를 외치니

거듭해 고려해 보길 빌고 또 바랍니다.

 

*敢問: 쉽게  대하기  어려운  상대에게  거북함이나  두려움을  무릅쓰고 물음. 또는

그 물음  *人君: 임금.  나라님  *傑物: 뛰어난  물건.  뛰어난  사람이나  잘난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擢擧: 발탁(拔擢)하여 중용(重用)함 *如斯: 이러함 *回撤:

철회(撤回). 이미 제출(提出)하였던 것이나 주장(主張)하였던 것을 다시 회수(回

收)하거나 번복(飜覆)함 *祈望: 빌고 바람 *考思: 고려(考慮). 생각하고 헤아려 봄.

 

<2018.9.4, 이우식 지음>

화, 2018/09/04-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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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구, 명칭 직권변경 위해 변경안내 공고… 대체 도로명으로 ‘고려대로’ 등 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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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북구(구청장 이승로)가 ‘친일 잔재 청산’을 위해 ‘인촌로’의 도로명 변경을 추진한다.

인촌은 고려대 설립자 김성수의 호로, 그는 일제의 징병·학병을 지지하는 글을 싣는 등 친일 행각을 벌여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등록된 인물이다. 지난해 4월 대법원은 김성수를 친일반민족행위자로 판결했고, 정부는 지난 2월 국무회의를 통해 그가 1962년에 받은 건국 공로훈장을 취소했다. 인촌로 명칭 변경은 그동안 시민사회에서 꾸준히 제기돼 온 문제다.

성북구는 “대법원 판결과 정부의 훈장 취소에 따른 조치이자 항일독립운동가단체연합회 등의 부적합한 도로명 변경에 대한 요구를 적극 수용한 것”이라며 “정부는 훈장 취소 및 생가와 동상 등 5곳의 현충시설 해체를 진행한 바 있다, 성북구도 시민사회의 요구 등을 반영해 인촌로 변경을 본격적으로 추진, 친 일 적폐 청산에 기여하기로 했다”라고 밝혔다.

인촌로는 6호선 보문-고대병원-안암-고대앞사거리 구간(폭 25m, 길이 약 1.2km)의 도로로 종속도로 190개, 건물번호는 1527개가 해당 도로에 포함돼 있다. 2010년 정부의 도로명 및 건물번호 기준의 주소체계 시행에 따라 해당 도로에 인촌로란 이름이 붙었다.

성북구는 “명칭 직권변경을 위한 첫 단추로 9월 초 도로명 변경안내문을 공고하고 주민의견을 수렴하겠다”라며 “이후 도로명주소위원회 심의를 거쳐 주소사용자를 대상으로 서면동의를 받을 계획이다, 추후 도로명부여 세부기준의 검토과정이 남아 있으나 우선은 지역적 특성을 감안한 ‘고려대로’ 등이 대체 도로명으로 거론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인촌로를 사용하는 건물의 지역주민, 외국인, 사업자 등을 포함한 주소사용자의 과반수 동의가 필요하다”며 “도로명 변경의 타당성을 알리고 시민의 적극적인 참여와 호응을 이끌어내기 위해 ‘도로명 인촌로 변경추진 기획팀(T/F)도 운영하겠다”라고 덧붙였다.

이승로 성북구청장은 “만해 한용운이 성북동으로 거처를 옮긴 후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이 일대에 거주하며 성북구는 항일운동의 핵심 역할을 했다”라며 “단순히 도로명 변경의 의미를 넘어 엄혹한 일제치하에서도 광복의 희망을 잃지 않았던 독립운동 정신을 기리는 각오로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강조했다.

앞서 광주 서구는 친일 장교출신인 김백일의 이름에서 유래한 ‘백일로’를 ‘학생독립로’로 변경한 바 있다(관련기사 : 친일 인사 이름 딴 광주 ‘백일로’ 사라진다).

<2018-09-04>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친일파 도로명’ 인촌로, 8년 만에 이름 바뀌나

화, 2018/09/04-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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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역사박물관 개관 기념 답사 동행기] 이방인이 아니면 들어갈 수 없는 땅, 용산

용산은 오랜 시간 ‘남의 땅’이었다. 1882년 임오군란 당시 청나라 군대가 주둔한 것을 시작으로 여러 번 주인이 바뀌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군이, 일본이 물러간 뒤에는 미군이 주둔했다. 그리고 지난 6월, ‘전 주인’이었던 주한미군사령부가 경기도 평택으로 이전하면서 비로소 용산은 대한민국의 품으로 돌아왔다.

주한미군사령부의 이전과 함께 용산의 역사적 가치를 되살리기 위한 움직임도 일고 있다. 최근 국가보훈처는 백범 김구 선생을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의 묘역이 자리 잡고 있는 효창공원을 독립기념공원으로 만들자는 방안을 밝혔다. 지난 8월 29일에는 숙명여대를 사이에 두고 효창공원 건너편에 ‘식민지역사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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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 식민통치의 흔적이 남겨진 용산에 세워진 “식민지역사박물관” ⓒ 김경준

지난 1일, 식민지역사박물관은 개관 후 첫 행보로 용산에 얽힌 일제 침략의 역사를 시민들과 함께 짚어보는 ‘특별답사’를 진행했다. 답사에는 30명이 넘는 시민들이 참여했다. 뜻 깊은 이번 답사에 기자도 동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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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민지역사박물관 개관 기념 특별답사에 참여한 시민들의 모습 ⓒ 김경준

일제에 의해 ‘군사기지’가 된 용산

일제강점기 당시 용산은 ‘군사기지’였다. 용산의 군사기지화는 1904년 일제가 러일전쟁을 준비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일제는 이곳을 군용철도인 경의선의 분기점으로 설정한 뒤, 각종 군용시설물을 설치했다.

용산에는 제20사단 제39여단 보병 제78연대·기병 제28연대·야포병 제26연대·제40여단 보병 제79연대 등 일본군 4개 연대가 주둔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에 주둔하고 있는 이들을 지휘하기 위해 1908년 10월에는 ‘조선주차군사령부’가 설치됐다.

▲ 용산 연병장에서 관병식을 벌이는 일본군대의 모습 ⓒ 민족문제연구소 제공

이후 상주군 편제로 바뀌면서 1918년 6월부터는 ‘조선군사령부’로 개칭됐다. 조선군 사령관은 한반도 전역에 배치된 일본군을 지휘하는 총사령관으로 조선총독에 버금가는 권세를 누렸다. 조선군 사령관 출신으로 조선총독에 부임한 사례도 적지 않았다. 2대 조선총독이었던 하세가와 요시미치, 7대 조선총독 미나미 지로, 9대 조선총독 고이소 구니아키 등이 대표적이다.

지금의 용산우체국 옆으로 200미터가량 곧게 뻗은 도로의 끝에 조선군사령부 청사가 있었다. 해방 후에는 미군기지가 조성되면서 자연스레 청사가 멸실됐다고 한다. 청사는 없어졌어도 당시의 흔적을 증명하는 콘크리트 벙커 건물은 여전히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아직까지는 미군이 완전히 철수하지 않은 상태라 단단한 출입문으로 막혀 안을 들여다볼 수조차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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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산에 있던 조선군사령부 청사의 모습 ⓒ 민족문제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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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 조선군사령부 청사가 있었던 자리엔 미군기지가 들어서 있다. 지난 6월, 주한미군사령부가 경기 평택으로 이전했지만 아직 이곳의 출입구는 굳게 닫혀있다. ⓒ 김경준

코앞에 그 흔적이 있지만, 보지도 못하고 돌아서야 하는 발걸음은 무거웠다. 현장해설을 맡은 이순우 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실망하는 답사단원들에게 “그래도 과거에는 사진도 못 찍게 하고, 이 근처도 못 오게 했었다”라면서 위로의 말을 건넸다.

조선군사령부 건너편에는 조선총독관저도 있었다. 일반적으로 총독 관저하면 남산 왜성대 부근에 있었던 통감 관저나 조선총독부 뒤편 경무대를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용산에도 또 다른 총독 관저가 있었다.

하지만 이곳은 역대 조선총독 그 누구도 집무 혹은 거주공간으로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유지관리비용이 지나치게 많이 들고, 시내와 멀리 떨어져 업무상 불편이 크다는 게 이유였다. 대신 연회를 위한 공간 혹은 일본 황족 및 서양 귀빈을 위한 숙소로 드문드문 활용됐다고 전해진다. 총독 관저는 한국전쟁 당시 반파되면서 철거됐다. 총독 관저가 있던 터 역시 미군기지 안에 있어 그 흔적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

쇼핑객·여행객으로 분주한 용산역 광장… 그 속에 숨은 사연

답사단이 용산역 광장에 도착했을 때, 광장은 주말을 맞아 쇼핑객과 관광객 그리고 먼 길 떠나는 열차 승객들로 북적였다. 지금은 평화롭기 짝이 없는 공간이지만, 이곳 역시 알고 보면 한 많고 사연 많은 공간이다. 침략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전장으로 떠나는 일본군 병력들이 모두 이곳에서 출정식을 거행했기 때문이다.

징용·징병으로 끌려간 강제동원 피해자들 역시 이곳에서 그리운 고국 땅, 가족과 눈물의 작별을 해야만 했다. 최소 100만 명이 넘는 조선인이 용산역 광장에 모여 열차를 타고 군함도, 사할린, 쿠릴열도, 남양군도로 끌려갔다.

가슴 아픈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한 시민단체들의 노력으로 지난해 8월에는 용산역 광장 한 켠에 ‘강제징용 노동자상’이 세워졌다. 답사단 일행이 노동자상을 둘러싸고 광장에 얽힌 구슬픈 사연을 듣는 동안, 지나가는 시민들도 관심 갖고 노동자상 옆의 안내 문구를 읽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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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8월에 용산역 광장에 세워진 “강제징용 노동자상”. 일제강점기 당시 용산역 광장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전장으로 끌려가기 위해 집결했던 장소였다.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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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제징용 노동자상 앞에서 설명을 듣고 있는 답사단원들의 모습 ⓒ 김경준

철도노동 순직자들을 위한 위령제의 진실

철도 건설과 함께 용산을 철도 행정의 거점으로 삼고자 했던 일제는 용산역을 중심으로 철도관리국, 철도병원, 철도구락부, 철도원양성소 등 철도 관련 시설을 대거 조성했다.

용산역 맞은 편에 있는 낡은 건물은 1928년에 지어진 ‘용산 철도병원’이다. 철도공사 도중 다친 노동자들을 치료할 목적으로 지어진 이 병원은 해방 후 중앙대학교에서 위탁 경영하다가 중앙대병원이 흑석동으로 이전하면서 빈 건물로 남게 됐다. 답사에 참여한 한 시민의 입에서 “만날 지나다니면서 도대체 무슨 건물일까 궁금했었는데…” 하는 읊조림이 나지막하게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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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8년에 세워진 “용산철도병원”. 해방 후 중앙대에서 위탁 경영하다가 현재는 주인 없는 빈 건물로 방치되고 있다. ⓒ 김경준

이순우 연구원은 “이 건물은 2008년에 등록문화재로 등재됐으니 철거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계속 빈 건물로 방치할 수는 없을 테고, 옛 서울역사 건물처럼 시민들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활용해야 할 것”이라고 정부 당국의 관심을 촉구했다.

용산역에서 이촌역으로 향하는 길 중간에는 철도선형과 서빙고로 도로가 만들어낸 원뿔 모양의 지형이 나타난다. 과거 이곳엔 ‘용산철도공원’이 있었다. 일제는 1915년 철도공원 안에 철도순직자조혼비(鐵道殉職者弔魂碑)를 세우고 매년 순직한 철도노동자들을 위한 조혼제(위령제)를 지냈다.

현재 이 비석은 존재하지 않지만, 위령제의 전통은 지금까지도 이어져오고 있다. 이 연구원은 “유족들 입장에서야 가족에 대한 위령제를 지내는 게 당연한 일”이라면서도 “위령제를 지내는 전통이 일제 때부터 시작돼 이어져 왔다는 사실은 기억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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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 철도공원이 있었던 자리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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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산철도공원이 있던 자리에서 “철도순직자조혼비” 사진을 소개하는 이순우 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 ⓒ 김경준

개성에 있던 비석은 왜 용산으로 왔을까

용산역 뒤편에 있는 철도회관 입구에는 존재조차 잘 알려지지 않은 작은 비석이 있다. ‘연복사탑중창비'(演福寺塔重創碑)다. 조선 태조 이성계의 공덕으로 건립된 연복사 오층불탑의 건립 내력을 담은 비석이다.

본래 이 비석의 소재지는 경기도 개성이었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선지 일제에 의해 용산의 철도구락부 구역으로 옮겨졌다. 이후 이 비석은 한동안 학계에서 소재불명으로 알려졌었다. 그러나 2012년 우연히 길을 가다 이 비석을 발견한 한 시민이 블로그에 포스팅하면서 그 존재가 세상에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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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산역사 뒷편 철도회관 입구에 자리잡고 있는 “연복사탑중창비” ⓒ 김경준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서울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던 비석이 긴 세월 동안 소재불명이었다는 사실도 우습지만, 자신이 있던 자리에서 강제로 쫓겨나 엉뚱한 곳에서 방치돼야만 했던 비석의 신세도 처량하기만 했다. 일제에 의한 우리 문화재 수난사의 한 대목을 보여주는 증거라 하겠다.

생태공원보다는 역사공원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올해 광복절 경축식이 열린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은 과거 조선에 주둔한 일본군이 연병장으로 사용하던 공간이었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오늘 광복절을 기념하기 위해 우리가 함께 하고 있는 이곳은 114년 만에 국민의 품으로 돌아와 비로소 온전히 우리 땅이 된 서울의 심장부, 용산”이라며 경축식을 용산에서 거행하는 까닭을 밝혔다. 그리고 미군이 떠나간 자리에 “미국 뉴욕의 센트럴 파크와 같은 자연생태공원을 조성하겠다”라고 천명했다.

미군기지 자리에 도심 속 생태공원을 조성하겠다는 구상에 이견을 제시하고픈 생각은 없다. 그러나 용산을 식민지 침략의 역사를 기념하는 공간으로 활용하겠다는 메시지가 없었던 점은 못내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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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T 용산지사 뒷편에 위치한 서울교 원불교당. 일제강점기 당시 이 자리엔 용광서(龍光寺)라는 절이 있었는데, 침략전쟁을 수행하다 죽은 전몰장병의 유골을 안치했던 사찰이었다.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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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영삼거리 앞에 위치한 구 경룡관(京龍館) 터. 1921년에 세워진 경룡관은 일본인 전용극장이었다. 일제 말기에 성남극장으로 이름을 바꾸었는데, 해방 이후까지도 같은 이름으로 운영되다가 2003년에 폐관했다. ⓒ 김경준

용산은 일제 식민통치의 상징과도 같은 지역이다. 생태공원 조성에 앞서 용산에 깃든 치욕의 역사를 기념하는 역사공원 조성이 우선돼야 한다. 아픈 과거를 기억하면서도 미래를 향해 나아가자고 다짐하는 뜻에서 미군이 떠나간 바로 그 자리에 진실과 화해를 위한 기념공원을 조성하는 건 어떨까. 식민통치의 본산이나 다름 없던 용산에 식민지역사박물관을 세운 이유가 그렇듯이 말이다.

<2018-09-03>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붐비는 용산역 광장, 그 속에 숨은 한맺힌 사실

화, 2018/09/04-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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