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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인터뷰] ‘노동자들의 변호사’ 권두섭 변호사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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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인터뷰] ‘노동자들의 변호사’ 권두섭 변호사를 만나다.

익명 (미확인) | 화, 2015/10/27-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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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21일 오전, 대림에 위치한 공공운수노조 건물이 시끌벅적해졌습니다. 민주노총 법률원의 원장으로 임하고 계신 권두섭 변호사님을 만나기 위해 모여든 인파 때문인데요. 이 날 인터뷰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민변 자원활동가 14기 다섯 분이 오셨습니다. 인터뷰를 진행할 저와 간사님들까지, 총 8명의 눈과 귀가 권두섭 변호사님을 향하게 된 것이죠.

민주노총 법률원 10주년에 맞춰 출간되었던 「노동자의 변호사들:대한민국을 뒤흔든 노동사건 10장면」에도 잘 소개되어 있듯이 법률원은 한국사회 굵직한 노동사건을 도맡아 하고 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권두섭 변호사님은 초대 구성원으로써 법률원의 시작부터 지금까지의 역사를 함께 해 오신 분이십니다.

마치 노동법 강의와도 같았던 이번 회원 인터뷰. 한 번 들여다보실까요?

 

노동변호사로서의 삶

 

조영신 : 먼저 법률원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권두섭 : 법률원이 생긴 건 2002년 2월 1일입니다. 형식적으로 보면, 법률원은 민주노총의 정책연구원처럼 부설기관으로 되어 있는데요, 현재 금속노조와 공공운수노조에 개별 법률원이 있고, 지역에는 광주에도 법률원이 있습니다. 금속노조의 지역사무소로 창원에 경남사무소가 있고, 올해부터는 충남에도 법률원이 문을 열었습니다. 전교조에는 강영구 변호사님이 가 계시고, 사무금융노조에는 차승현 변호사님이 가 계십니다. 이 분들 또한 법률원 소속이에요.

이렇게 흩어져 있는 것 같지만 재정은 하나로 통합이 되어 운영되고 있습니다. 변호사 수만 21명 정도이고, 전체 구성원은 45명입니다.

 

조영신 : 「노동자의변호사들」에 보면 변호사님을 인터뷰하며 당황하는 최규석작가의 모습이 나오기도 해요.

 

권두섭 : 너무 재미가 없어서 그래요(일동 웃음). 미국영화에 나오는 것 같이 드라마틱하게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기 힘들고, 말을 재미있게 하지 못하는 편이에요.

 

조영신 : 한 편으로 ‘노동변호사’라는 표현에는 어느 정도 과격하기도 하고, 목소리에 힘을 넣어 발언을 하는 사람이 떠오르는데 변호사님은 그런 부분과는 거리가 멀어 보여요. 조용한 성격 때문에 힘들었던 점은 없나요.

 

권두섭 : 그건 편견이에요. 노동조합이라고 하면, 경험해보지 못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붉은 머리띠에 조끼를 입고 주먹을 쥔 팔을 들어올리는 모습을 떠올리기 마련이지요. 투쟁하는 모습만을 떠올려요.

실제로 한국처럼 노조를 하기 어려운 곳의 경우, 독립운동을 한다는 마음으로 노조활동을 해야 합니다. 사회적으로 반노조 인식이 강해서 그런 것이죠. 그러다보니 ‘과격’과 같은 편견을 갖게 된 것이죠. 노조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에요. 저도 제 조용한 성격 때문에 힘들었던 적이 없었고요.

 

노사정 ‘대’타협? 그 속을 들여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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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신 : 2015. 9. 15. 노사정 합의가 이뤄졌죠. 그 이후 전반적인 노동계의 분위기가 궁금합니다.

 

권두섭 : 박근혜 정권이 들어선 이후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정부에 민원을 넣은 적이 있었어요. 그 민원사항이 언론에 보도된 적이 있는데, 이번에 노사정 야합에서 합의됐던 내용들이 다 전경련의 요구사항들이에요. 그 요구사항을 그대로 관철시키는 내용이었던 것이죠.

야합이 있은 후 며칠 뒤에 새누리당이 그 내용을 골자로 노동법개정안을 발의했어요. 그대로 통과된다면 노동법이 무력화되고 노조가 무력화되는 한국사회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나라의 노조조직률은 10%밖에 안돼요. 것도 노조가 강력해서 미조직노동자에게까지 단체협약이 적용될 여지가 있는 상황도 아니죠(프랑스의 경우 노조와 사용자가 체결한 단체협약을 지자체의 결정으로 지역에 확대적용이 가능하다). 즉, 노조조직률이 낮은데다가, 노조가 단체협약을 맺는다 하더라고 같은 사업장에서 일하는 미조직노동자들에게는 적용될 여지가 없는 거예요. 결국 노사정야합의 내용이 그대로 관철된다면 더 쉬운 해고, 더 낮은 임금, 더 많은 비정규직을 양산할 뿐이고 노동법과 노조가 무력화되는 상황이 만들어지겠죠.

 

조영신 : 노사정 합의의 내용이 무엇인지 점점 궁금해지는데요, 먼저 그러한 합의가 나오게 된 배경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권두섭 : 2014년 12월에 고용부가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내놓았습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고용불안정으로 인한 노동기본권 보장, 간접고용의 경우 사용자의 책임이나 차별적인 임금 등 비정규직과 관련한 문제들이 굉장히 많아요. 그런데 정부에서 내놓은 종합대책이라는 것의 내용을 들여다보니 이러한 문제들을 개선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비정규직을 대량 생산하기 위한 내용들만 가득했어요.

그리고 2015년 상반기에 단체협약시정지침이라는 것이 노동현장에서 공공연하게 돌았어요. 그게 갑자기 왜 나오게 됐냐하면, 그 기사 기억나실지 모르겠네요. ‘고용세습조항’이 단협에 들어있다는 내용으로 연일 신문에 보도됐던 적이 있죠. 실제로 들여다보면 그런 단협을 가지고 있는 노조가 없어요. 정년퇴직한 노동자들의 자녀에 대해서는 그 회사에 지원했을 때 가산점을 준다? 그런 조항은 없어요. ‘산재로 사망한 유족에 대해 일자리를 알선해준다’는 내용이 주로 있을 뿐이죠. 이 조항은 대법원에서도 효력이 있다고 판결한 바 있어요. 적법한 단협조항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노동부가 교묘하게도 ‘위법은 아니나 경영권을 저해하기 때문에 불합리한 조항’이라는 식으로 지침을 만들고, 현장에 이러한 단협이 있는지 조사하고 개선하도록 지도하라고 한 거예요.

속된 말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고 합니다. 현장에서 지침을 가지고 들어오는 것은 주먹을 휘두르는 것과 같아요. 그 부당성을 다퉈 법원으로 가더라고 판단받는 데에는 수년이 걸리니까 법은 멀기만 하죠. 그런 ‘주먹’같은 지침을 내려서 관련 단협 조항들이 현장에서 유지되는 것을 막고, 이미 체결된 경우에는 그 조항을 없애도록 하는 움직임을 보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지난 9월 15일, 노사정 야합이 있었고, 그 이틀 뒤에 새누리당이 법안을 발의했죠. 이렇게 일련의 움직임을 가지고 나온 결과인 것입니다.

 

조영신 : 이미 이전부터 노사정 합의를 위한 준비과정이 있었던 거네요. 도대체 그 합의의 내용은 무엇인가요.

 

권두섭 : 가장 큰 문제가 되는 부분은 역시 ‘해고’부분입니다. 노동법 교수님들이 늘 하는 이야기가 있어요. 노동법을 보면 근로기준법부터 시작해서 몇 천 개의 조항들로 이뤄져 있는데, 그 중에서 노동자들이 마지막으로 지켜야 하는 것이 있다면 근기법 제23조,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할 수 없다’는 내용이라는 것이죠.

 해고제한조항이 없는 노동법은 의미가 없습니다. 이 조항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표적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입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조직화하기 위해 15년 전부터 엄청난 노력을 해 왔습니다. 그런데도 조직률이 늘지 않아요. 1.5%~2% 정도밖에 안됩니다. 기사를 봐도 현재 투쟁하고 있는 노조는 대부분 비정규직 노조인 것 같지요? 그런데도 그 정도밖에 안됩니다. 생겼다가 깨지고, 또 생겼다가 또 깨지기를 반복해서 그래요. 쉬운 해고가 가능하기 때문이죠.

이번의 야합은 정규직노동자도 그렇게 하겠다는 거예요. ‘저성과자해고’라는 이름으로, 공정한 평가기준을 만들겠다고 말하죠. 노동현실을 모르는 판사나 일반국민들은 ’그래, 사용자가 꼭 저성과자들을 다 안고가야 하는 것은 아니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죠. 그럴듯하게 보일 수 있어요.

실제로 현장에서 성과를 평가하는 기준들을 보면, ‘리더십, 업무적극성, 원만한 소통, 창의적인 마인드’ 같은 것들이에요. ‘물건을 몇 개 팔았냐’와 같이 실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은 극소수죠. 대부분은 주관적인 평가가 이뤄질 수밖에 없어요. 이러한 평가는 사측이 일방적으로 하는 것이다 보니, 결국 공정한 평가기준이라는 것이 애초부터 불가능하다는 것으로 귀결됩니다.

게다가 모든 평가라는 것은 언제든지 하위권자를 발생시켜요. 예를 들어 사측이 100명을 구조조정하겠다고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60점 이하인 사람을 100명 만들어낼 수 있어요. 6개월 정도 교정기회를 주겠다(연수와 같은 식으로 교육을 시키겠다)고 하는데, 재평가를 했을 때 또 그 점수를 받으면 근기법 23조의 ‘정당한 이유’가 있다는 식으로 해석해버리는 것이죠. 평가기준이 공정했는지는 알 수가 없어요. 노동사건을 15년간 해 왔지만, 평가가 부당한 것을 다퉈서 이건 적은 거의 없습니다. 평가한 사람의 머릿속을 들여다 볼 수는 없기 때문이죠.

 

조영신 : 그런 경우 법원에서는 어떻게 판단을 하나요.

 

권두섭 : 법원은 대량관찰방식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노조 간부들을 승진시키지 않아서 부당노동행위가 문제됐던 사건에서 주로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승진에서 누락된 사람 100명 중 노조간부나 조합원이 60명이고, 그 회사의 노조 조직률을 보니 1000명 중 600명이 가입했다고 칩시다. 그러면 법원은 승진누락률이 노조조직률에 비해 높지 않으니까 괜찮다고 봐요.

반대로 조직률은 20%(1000명중 200명)인데, 승진누락자는 60명이다. 그러면 균형이 맞지 않는다고 해서 부당노동행위라고 보는 것이죠.

결국 사용자 입장에서 보면, 법원이 말하는 ‘균형점’에 해당하는 인원에 조합원들을 적절히 섞기만 하면 돼요. 법원이 취하는 대량관찰방식에 따르면, 균형만 이뤘다면 공정한 평가에 의한 것인지 불공정한 평가에 의한 것인지를 판단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죠.

 

조영신 : 하지만 이러한 합의의 내용은 근기법 23조에 위반되는 불법적인 지침일 뿐이지 않나요.

 

권두섭 : 해고된 노동자 100명이 있다면 그 중 몇 명이나 소제기를 할까요. 아주 극소수의 노동자들만 가능합니다. 비용도 필요하고 시간도 필요하니까요.

부당하게 평가가 이뤄져서 해고됐다고 해도 그 사건이 법원에서 다뤄질 가능성은 굉장히 낮습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노동부가 지침을 만들어서 법보다 가까운 주먹으로 접근하는 것이죠. 90%의 미조직 노동자들은 그냥 당할 수밖에 없어요.

9월 13일에 합의하고 15일에 도장을 찍었는데, 야합 직후 사용자들이 모인 간담회 자료를 보니, 이미 저성과자해고제도 가능해졌다고 교육을 하고 있더라고요. 노동자들에게는 이러한 지침이 법처럼 강제돼요. 그래서 우려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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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신 : 그렇군요. 노사정합의의 다른 내용들도 말씀 부탁드립니다.

 

권두섭 : 해고 다음으로 문제되는 부분은 취업규칙에 대한 내용이에요.

취업규칙이 중요한 이유를 쉽게 설명하자면, 노조가 있으면 단협이 있죠. 그런데 노조조직률은 10%밖에 안되니 나머지 90%는 모두 취업규칙의 규정에 따를 수밖에 없어요. 설사 노조가 있어서 단협을 체결했다 해도 단협조항은 보통 100개 정도밖에 안되니까, 노동조건의 상당수는 취업규칙이 규정하게 되는 것이죠.

이번 야합에서는 이러한 취업규칙을 불리하게 변경하는 데에 동의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어요.

근기법 제94조에서는 취업규칙을 불이익하게 변경하는 경우 집단적 동의를 받게 되어 있죠. 과반수노조가 있으면 노조의 동의, 없으면 노동자 과반수의 동의를 받아야 해요. 그것도 노동자들이 전체 모인 상태에서 사용자가 취업규칙 개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 후 사용자가 배제된 상태에서 자유롭게 논의하고 찬반을 결정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한 과정을 고치지 않은 불이익변경은 무효에요.

물론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다면 이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된다는 게 법입니다. 이에 대해 판례는 엄격하게 제한적으로 해석해요. 일례로, 한 공기업에서 수년간 적자가 누적되자 정부가 지침을 바꾸라고 요구해서 공기업이 취업규칙을 개정했어요. 이에 대해 대법원은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없다고 말합니다. 즉, 수년간 적자가 누적되었다 하더라도 사측의 일방적인 취업규칙 개정의 경우 사회통념상 합리성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죠.

그런데 이러한 판례의 태도를 확대해석해서 마치 이러이러한 경우에는 합리성이 있으니까 이러한 요건을 갖추면 동의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사측이 일방적으로 취업규칙을 불이익변경할 수 있다고 해석하면 안돼요. 그러면 90%의 미조직노동자, 특히 중소영세사업장의 노동자들에게는 심각한 타격이 될 수 있으니까요. 결국 근기법 제94조는 노동자들을 지켜줄 수 있는 유일한 절차규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를 무력화시키려고 하는 것이 이번 야합의 골자로 들어가 있으니 반대할 수밖에 없죠.

 

조영신 : 그렇군요. 취업규칙과 해고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는데요, 그 밖에도 이번 노사정 합의 내용 중 알아야 할 부분들이 있을까요.

 

권두섭 : 임금피크제와 비정규직 연한 연장, 파견도급구분 기준 정도의 내용이 더 있습니다.

먼저 임금피크제의 경우, 정부는 정년을 연장하면서 임금피크제를 병행하는 방안을 내놓고 있어요.

예를 들어 58세부터 정년이 2년 연장된다면 200%의 임금이 늘어야 해요. 그런데 임금피크제를 적용한다면 계속 임금이 깎여서 결국 깎이는 임금이 200%인 상태가 되죠. 노동자 입장에서 보자면, 일을 2년 더 하는데 임금은 계속 깎여서 무료노동을 하는 셈이 되요.

그러니까 반발이 있을 수밖에 없어요. 영미법의 경우 아예 정년제도를 무효라고 봅니다. 연령차별로 보기 때문이죠. 독일이나 프랑스의 경우에는 연금수급연령이하로 정년을 두면 다 무효에요. 연금을 받을 수 있는 나이의 정년은 용인해주는 셈이죠. 이 국가들의 연금수급연령은 70세 정도입니다.

한국의 경우 현재 연령수급연령이 61세죠. 그런데 58세부터 60세까지가 임금피크가 적용되는 연령대에요. 사실, 58세까지 일하는 노동자도 소수죠. 대부분은 ‘사오정’이라고 해서 40대에 구조조정으로 명예퇴직이나 희망퇴직, 정리해고로 쫓겨납니다. 정년까지 고용이 보장되지 않는 실상인데 이런식으로 정년을 연장해줄테니 임금피크게 하자고 여론을 호도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다음으로 비정규직 대책의 경우, 이번에 야합에서 내놓은 방안은 비정규직 연한을 4년으로 연장하는 내용이에요. 고용부에서 여론조사를 했다고 합니다. 80~90%의 계약직노동자들이 연장하는 정부정책에 동의했대요. 그래서 질문을 살펴보니, ‘2년하고 짤릴래요, 2년 연장해서 4년 일할래요’의 수준이더라고요. 그러면 당연히 연장을 선택하겠죠.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서 해당 조항의 본래 취지는 비정규직으로 고용해서 2년보다 더 고용하려면 정규직으로 전환시키라는 취지입니다. 그런데 취지대로 잘 되지 않고 있다면 정규직전환을 강제하는 수순을 밟아야 상식적이죠. 설문의 내용도 ‘2년 후 정규직 될래요, 아니면 2년 더 연장해서 비정규직으로 4년일할래요(그런데 4년 후 짤릴 수 있어요)’라고 했어야 해요.

노동통계하는 분들의 말에 따르면, 기간제법 시행 이후 미미하긴 하지만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경우가 있었어요. 보통 무기계약직, 즉 ‘중규직’으로 전환되는 경우가 많지만요. 그런데 야합의 내용대로 된다면, 이제 사측이 절대 전환시키지 않겠죠.

2년 일하다 짜르고 또 사람 뽑으려하니, 이제야 기존에 뽑았던 사람들이 일을 좀 할 만 하니까 교체하는 셈이 돼서 부담이 있었는데, 4년으로 연장되면 그런 부담이 적어지잖아요. 결국 전환률이 줄어드는 것은 불 보듯 뻔하죠. 결과적으로 이것은 기간제 노동자의 희망고문 기간만 늘이는 셈입니다.

마지막으로 파견도급구분기준에 대한 내용을 말씀드릴게요. 이 부분은 민변에서 의견서를 발표하기도 했던, 굉장히 심각한 내용을 답고 있어요. 현재 재벌회사들이 공공연하게 시행하고 있는 사내하청을 완전히 합법화시키자는 내용이거든요.

현대기아차, 삼성, 에스케이, 포스코 등 재벌회사들은 거의 다 불법파견으로 걸려있는 상황이에요. 결국 재벌들이 민원을 넣어서 만든 법안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불법파견을 완전 합법적 도급으로 둔갑시키는 안입니다.

 

노사정 ‘야합’의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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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신 : 들어보니 근기법 제 23조, 94조에 정면으로 위반되는 것으로 보이는 내용도 있고, 기간제법의 취지에 맞지 않는 내용들도 많아 보이는데요. 무효화될 수 있는 가능성은 없을까요.

 

권두섭 : 야합의 내용은 합의사항일 뿐 법적효력이 없기에 법적으로 무효화될 수가 없습니다. 구체적인 케이스가 있을 때만 대응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기업이 저성과자 해고를 했다고 칩시다. 해고된 노동자가 법원에 소제기를 했습니다. 이 경우 사측이 주장할 것은 뻔합니다. ‘노사정이 합의한 사항대로 한 것이다’고 주장하겠죠. 만약 법원이 ‘이러한 해고도 가능하다’고 해석해버리면, 입법화되기도 전에 판례법으로 굳어지게 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노동부에서 용역을 준 연구자료들을 보면, 근기법 개정을 요구하게 되면 모든 논의가 그 조항으로 블랙홀처럼 빨려드니까 지침을 통해 완화해야 한다고 나와요. 또 그 지침이 노동현장에서 정착하면 법원에서도 받아들이게 되어 판례가 나오니, 국회의 입법절차를 거치지 않고도 입법을 한 효과를 볼 수 있게 되니 유리하다고 판단하는 것이죠.

 

조영신 : 법원에 이번 합의에 손을 들어주는 판례를 내놓을 것으로 전망하시나요.

 

권두섭 : 그런 판례가 나오면 안되겠죠. 하지만 장담을 할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조영신 : 새누리당이 발의한 근기법 개정안이 이번 회기에 통과될 것으로 예상하시나요.

 

권두섭 : 잘 모르겠습니다. 최대한 민변 노동위원회 중심으로 TF팀을 꾸려서 입법의견서를 내며 대응을 하고 있습니다. 민주노총에서도 11월 14일에 총궐기를 예정하고 있고, 법안이 상정되면 총파업에 돌입하겠다고 발표한 상태입니다. 국회에서 어떻게 처리될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영신 : 지난 노사정 합의 때, 한국노총 조합원이 몸에 신나를 붓고 분신을 시도해서 많은 사람이 안타까워했었는데요. 노사정 합의사항이 법원의 판단에 영향을 줄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하다면, 왜 민주노총이 그 합의 테이블에 나가지 않는 것인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권두섭 : 민주노총에서는 대의원 결정으로 노사정 합의에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해 왔습니다다.

기본적으로 노사정위원회라는 것은 그 취지에 맞게 사회적 대화기구 혹은 교섭기구로서 운영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노조의 힘이 강력해야 하고, 합의가 됐을 때 국회에서 관철 될 수 있는 정치적 세력화가 되어 있어야 하죠. 독일의 경우,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로 집권이 가능할 정도로 노조의 힘이 강력합니다. 그래야만 균형성 있는 합의가 가능해지는 것이고요.

그런데 한국사회의 현실은 그렇지가 않아요. 노동자가 사실상 들러리로 이용됩니다. 논의의 내용자체를 봐도 그렇지 않습니다. 노동자들에게 불리한 것들이 가득한데, 그 논의 테이블 자체가 균형을 잃은 상태이니 들어가 봤자 뻔한 진행이 아니겠습니까.

민주노총이 설사 들어가 강력하게 반대를 했더라도 정부는 한국노총을 끌어당겨 합의를 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국 총연맹과 총연합이 정부가 하려는 노사정 합의의 외피를 씌워줄 뿐인 것이죠.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국회 내의 특별기구라든지 여러 통로를 이용해서 정부와 노정교섭을 하자는 요구를 해오고 있습니다. 노사정 위원회에 참여하지 않는 것은 위의 이유일 뿐입니다.

 

조영신 : 이렇게 노동계에 시급한 현안들이 많이 있는데요. 민변회원인 변호사들이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이 있을까요.

 

권두섭 : 일단 한국사회에서 노동자가 힘을 가지려면 노조를 많이 만들어야 합니다. 조합원으로 가입하는 것이 아무렇지 않은 일이 되어야 합니다.

최근 삼성반도체 직업병 문제가 큰 이슈가 됐었죠. 그런 일이 생기기 이전에 삼성에 자주적인 노조가 있었다면 막아낼 수 있지 않았을까요. 환기시설도 없는 작업공간에서 무슨 냄새인지도 모른 채 무방비상태로 노출되어 작업을 했던 수많은 노동자들도 노조가 있었다면 환경개선을 요구하고 현장조사를 요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대응을 통해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을 것 아닙니까.

민변의 천 명이 넘는 변호사들이 어디 가서라도 ‘우리 사회에는 노조가 필요합니다’라고 말하고 다녀줬으면 좋겠습니다. 아무래도 변호사들이 말하면 설득력있게 들릴 수 있지 않을까요. 설이나 추석같은 명절에 고향에 내려가서도, 무슨 모임에 가서도 노동에 대한 주제가 나오면 ‘그래서 노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해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대화를 하지 않다보니 우리 사회가 이렇게 극단적인 불균형 상황이 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노동자들이 천막을 치고 하늘로 올라가는 것 아닐까요. 대화가 안되니까요. 일방적으로 탄압만 받으니까요.

왜 노조는 그렇게 극단적으로 투쟁만 하냐고 비판할 게 아니라, 우리 사회 구성원이 모두 노조를 만들어서 길가는 사람 중 70~80%는 모두 조합원이 되는 사회가 되길 바랍니다.

뭐, 민변 노동위원회는 워낙 현장에서 발생하는 현안이나 노동개악 문제에 대응활동을 열심히 하고 계시니 더 바랄 것도 없습니다. 계속, 지금까지처럼 잘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일동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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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권두섭변호사님과의 노동법 강의와 같았던 인터뷰가 마무리되었습니다.

아! 함께 강의를 들었던 민변 14기 자원활동가 분들과 간사님들의 질문타임이 있었네요. 그럼 못 다했던 이야기를 마저 들어보겠습니다.

 

 14기 자활 강한성 : 삼성의 경우 대외적으로 무노조경영을 천명하고 있고, 노조 결성시 불이익을 주는 기업으로 유명합니다. 노조결성의 권리를 뺏겠다고 대놓고 말하는 기업인 것인데, 법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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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두섭 :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상 부당노동행위입니다. 명백한 지배개입행위이죠. 2년이하의 징역 혹은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해당하는 범죄행위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범죄행위를 공공연하게 해도 처벌이 안된다.

예전에 삼성 모계열사에서 노조설립을 하려고 민주노총에 찾아온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삼성이 노조를 만들려 한다는 사실을 비밀에 부치기 위해 저와 산별노조에서 한 명, 총연맹의 조직가 한 명, 이렇게 총 세 명만 그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노조설립신고증 나올 때까지 공개하지 않으려고요.

그렇게 준비를 해서 설립신고를 딱 했는데, 바로 미행이 따라붙었습니다. 설립신고 내려면 노조위원장 이름을 써야 하는데, 그걸 보고 바로 안 것이죠.

당시 고대 총학생회의 도움을 받아 조합원 간부들이 총학생회실에 머물렀습니다. 왜냐면, 삼성에서 조합간부들을 회유하기 시작하거든요. 우리끼리는 이걸 두고 ‘납치한다’고 말해요. 중국에 데리고 가기도 하고, 그 분들은 강원도에 갔다 오셨다고 하더라고요. 그 과정에서 돈이 오갈 수도 있고, 협박이 있을 수도 있고요.

설립신고를 하고 나서 3일 안에 설립신고 결과가 나와야 하는데 반려가 된 거예요. 우리는 강남구청에 접수를 했었는데, 우리가 접수하기 20분 전에 중구청에 회사 과장 몇 명이 신청한 노조설립신고가 접수돼버렸던 것이죠. 그렇게 비밀유지를 하고 있었는데 말이에요. 시간조작 의심을 강하게 가졌고, 소송까지 준비했어요.

그런데 조합원들이 사라졌어요. 부당노동행위를 다투려면 주체가 있어야 하는데, 그 주체들이 사라진 거예요. 또 지배개입증거를 찾아 입증을 해야 하는데, 주체가 사라지면 검찰이나 노동부가 맡아야 해야 하지만, 안하죠 그 사람들이.

보름쯤 지나서 조합 간부들로부터 연락이 왔어요. 미안하다고. 같이 못해서 미안하다고. 결국 노조설립이 와해됐어요.

14기 자활 김서영 : 국내에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계신데요, 이분들에 대한 지원현황을 물어보고 싶습니다. 또한 우리나라 기업이 외국에 나가면서 인권문제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고 알고 있는데요. 이에 대한 국내 법률가들의 활동이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권두섭 : 이주노조는 몇 달 전에 설립신고를 받았죠(무려 10년 만에 받아냈다).그런데 아직은 조직화가 잘 되지 않고 있습니다. 결국 개별 사업장에서 노조를 만들어야 하는데 잘 되지 않는 것이죠. 이주노동자들에게도 근기법이 적용이 됩니다. 법원이 판례를 통해 그렇게 말했어요.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려있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현장에서 실제로 그 보호를 받는 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노조가 있어야만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어요. 하지만 생각만큼은 잘 조직이 되지 않고 있네요.

그리고 민변 노동위원회에는 이주노동팀이 있고 국제노동팀도 있습니다. 이 곳에서 한국 기업의 외국에서의 사례나 한국 내 이주노동자에 대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 분들에게 상담과 법률지원을 하는 법률가 지원단체들도 많고, 법제도 개선을 위한 활동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유진 간사 : 사법시험 보기 전부터 노동변호사가 되겠다는 생각을 하셨나요.

 

권두섭 : 아니오~ 어떻게 하다보니까(일동 웃음).‘ 내가 그 때 그 자리에 없었다면’이라는 말을 많이 하지요? 저도 그런 생각이 듭니다.

연수원에서 노동법학회를 했어요. 어떻게 하다 보니 거기서 총무를 하게 됐고요. 나이 때문이에요. 딱 중간나이라서요. 그리고 그 때 처음으로 민주노총 부당노동행위고발센터로 상담활동을 나가게 됐습니다. 일주일에 세 번을 나갔는데, 그 당시가 99년, IMF 직후였어요. 상담을 나가보면 줄이 저 끝까지 늘어져 있어요. 끝나면 밤 9시가 넘고요. 원래는 학회원들이 돌아가면서 갔었는데, 주로 총무들이 땜빵을 하거든요. 결국 자주 가게 된 것이죠. 그러다보니 익숙해지고, 그러면서 노동변호사를 해야겠다는 어렴풋했던 생각이 자연스럽게 뚜렷해진 것 같아요.

 

이유진 간사 : 민변 공공의료팀 활동도 하셨던데, 의료쪽에도 관심이 많으신가요.

 

권두섭 : 민주노총의 모든 산별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공공의료문제에도 같이 대응을 해 왔던 거예요.

 

14기 자활 강한성 : 노동자들의 처우와 관련한 제도를 봤을 때, IMF때 정리해고가 합법화되고 이제는 저성과자 해고까지 합의가 되는 등 갈수록 사용자들에게만 유리한 세상이 되고 있는 것 같아요. 우리가 긍정적인 미래를 볼 수 있을까요. 밖에서 볼 때는 너무 답답하거든요.

 

권두섭 : 안에서 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엄청난 희열을 느낄 때도 있었어요. 소송에서 이겼을 때도 그렇고, 노조가 투쟁을 통해 부당한 부분을 시정했을 때도 그랬죠. 예를 들어 재능교사노조가 설립신고 받을 때 처럼요. 그 당시에 한 달 반 정도 집회하고 투쟁을 통해 설립신고를 받아냈거든요. 그 전까지는 학습지교사와 같은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은 노동자성이 인정되지 않아 노조 신고가 잘 안됐었거든요. 대한항공조종사노조가 만들어졌을 때에도 굉장했어요. 당시 조종사들이 김포에 있는 모처에 모여있었는데, 새벽에 비행기가 뜨질 못하니까 노동부장관이 갑자기 노조설립을 하라고 했던 거예요. 그래서 벽두새벽에 부랴부랴 노조설립증 들고 사진찍고, 공항으로 가서 일 시작했었죠. 청원경찰법, 복수노조 등등 걸려있는 골치아픈 법리들이 굉장히 많았는데 파업 한 번에 그렇게 된거죠. 기뻤어요.

그런데 그 뒤로는 노동자들 투쟁이 너무 힘들어졌습니다. 수 백 억의 손배가압류에 고통 받는 노동자들이 많아요. 내가 노조에 가면 늘 하는 이야기가 있어요. 투쟁은 끝나도 재판은 끝나지 않는다고요. 철도노조 파업의 경우에는 2002년에 파업을 했는데, 지금까지도 재판이 진행 중이에요.

결국 변호사들은, 간접적이지만 그 고통을 지속적으로 느낍니다. 기일이 잡히는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그 옛날에 있었던 현장이 떠오르는 거죠. ‘아오 손배가압류. 아오 수 백 억!’이러면서 영원히 고통 받는 거죠.

이런 고충이 있어요. 결론적으로 내부에서도 답답하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뭐 희망을 가지라는 것은 아니고, 법률가가 가장 필요한 곳이 어디겠어요. 인권이 보장되지 않고 소수자가 보호되지 않는 곳 아닌가요. 결국 법률가들이 해야 할 일이 많아진 거죠. 법률원의 변호사들에게도 자주 말해요. 노조가 희망도 없고 힘드니까 그만둬야 겠다는 생각은 말이 안된다. 그렇게 힘들고 어려운 상황일수록 노동권이 보장받지 못해 고통받는 노동자가 많다는 이야기니까 내가 해야 할 역할이 더 많다고 생각하라고 말해요. 쉽게 전망이 없다거나 희망이 없다고 이야기해 버릴 것은 아닌거죠.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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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활동가 인터뷰

인터뷰/정리: 노우리, 은연지, 이상은, 정태영

 

석면 광산, 반올림 사건, 월성 1호기 원전 사건. 제각기의 사안처럼 보이지만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국가나 기업이 국민의 건강하게 살 권리를 침해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상황에 좌절하지 않고 모두가 건강하게 살 권리를 위해 부지런히 뛰는 한 공익변호사가 있다. 바로 박애란 변호사다. “부모님 고향의 예쁜 별, 나무, 산을 보며 자랐다”고 소개를 대신한 그는 “그런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을 보장받으며 일할 수 있는 세상”을 자연스럽게 꿈꾸게 됐다고 말했다. 7월 7일 오후, ‘럭키 세븐’이 두 번이나 겹친 날답게 유쾌하고 정감 가는 인터뷰였다.

 

[어릴 적부터 꿈꿔온 공익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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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계기로 공익변호사가 되셨는지 궁금해요

박애란 변호사(이하 박): 맨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된 게 언제부터인지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인 것 같아요. 저희 집이 대가족이었어요. 부모님, 형제들,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모시고 10명이 바글거리며 살았죠. 그중 마르크스 철학을 전공하시고 지금은 교수인 삼촌이 한 분 있어요.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제 기억에 삼촌이 매일 친구들을 집에 데려와서 운동권 활동 하면서 집에 와서 세미나를 했어요. 노동자, 권리 이런 얘기들을 어려서부터 접하면서 자연스럽게 그런 게 당연히 정의라고 생각하게 된 거죠. 그런데 나중에 보니 굉장히 소수의 사람만 그렇게 생각하고 살더라고요. (웃음) 근데 저는 이미 그런 쪽 일을 해야겠다고 어렸을 때부터 생각했던 것 같아요.

 

다양한 공익인권 분야 중에서도 환경보건이라는 분야를 하게 된 계기가 있으세요?

: 저희 부모님 고향이 섬이었는데요. 그곳의 예쁜 별, 나무, 산 이런 자연을 보며 자라다보니 자연환경이 파괴되는 게 너무 싫더라고요. 특히 저는 무서운 게 싫고 건강하고 쾌적하게 살고 싶거든요. 그런데 자꾸 개발하면서 환경을 파괴하면 어떤 재해가 생길지 모르잖아요. 예를 들어 우리나라가 원전 숫자가 단위면적당 세계1위예요. 그런데 앞으로 원전사고가 세계 어디서 일어날지 확률적으로 계산했을 때 한국이 1위래요. 누구나 건강하게 살고 싶지 아프면서 살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잖아요. 그래서 누구나 건강하게 살 권리에 대해 생각하고 살 것 같고요. 또 민변 환경위원회 분들이 너무 좋기도 하고요.

 

[가리왕산과 석면광산,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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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소송은 승소하기 어렵다고 들었어요. 혹시 겪으셨던 패소 사건이 있나요?

박: 힘든 일이 많이 있어요. 겪었던 일로는 가리왕산 사건이 있겠네요. 가리왕산은 초년생부터 다년생 주목이 분포하고 있는 아름다운 산이에요. 정부가 산림유전자원 보호구역으로 지정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2018년 평창올림픽 활강 경기장으로 사흘 사용하겠다고 복원 계획도 세우지 않은 채 공사를 시작한 거예요. 그래서 민변에서 2014년에 공사중지가처분신청을 했었죠. 제가 맨 처음 민변에서 맡은 사건이기도 해요. 그런데 가리왕산 사건에서는 주변 주민들이 가리왕산에서 얻는 환경 상 이익을 입증하지 못해 패했어요.

 

가리왕산 사건에서 문제가 됐던 것은 원고적격이었어요. 외국에서는 자연물에도 원고적격을 인정하고, 일정한 조건을 갖춘 단체가 대리하게 해요. 가리왕산 자체가 소송이 가능했다면 피보전권리에 대한 고민은 필요가 없었겠죠. 이 부분은 앞으로도 생각해봐야할 문제라고 봐요.

 

충남 청양군 폐석면광산 관련해서도 활발한 활동을 하셨던데, 관련한 얘기가 듣고 싶어요.

박: 일단 우리나라에 석면광산이 얼마나 있는지 모르시죠. 서울 면적의 10배 정도, 전 국토의 6%가 석면광산이에요. 석면광산이 다 충청남도나 강원도에 있다 보니까 그런 사실조차 잘 알려져 있지 않아요. 석면이 1급 발암물질이거든요. 이것이 최근에야 알려졌고 석면안전관리법도 2011년에서야 제정되었어요. 그 전에 석면광산에서 개발이 이루어진 경우 관리도 안 되고 있죠. 또 주민들에게 지질도 공개도 투명하게 하지 않았고요.

 

참고로 저희는 학교에서 석면마감재를 못 쓰게 한 이후로 학교를 다니게 한 세대거든요. 그래서 석면이 뭔지 제대로 본 사람이 별로 없어서 특히 심각성을 몰랐던 것 같아요.

박: 제가 있는 특위가 맡고 있는 사건은 충청남도 청양군 강정리의 석면광산이에요. 거기는 광산 위에서 폐기물 처리장을 운영하고 있어요. 폐기물 차량이 오가면서 석면이 날리고, 그로 인해 주민들이 석면폐증, 진폐증, 폐암 같은 걸로 고생하시고 계세요. 충남 산하의 특별위원회(충청남도 청양면 강정리 석면 폐기물 문제해결을 위한 특별위원회)가 만들어졌는데 제가 위원으로 들어가게 되었죠.

 

거기 주민 분들은 바로 옆에 산에서 그런 일이 있는데, 먼지 날리지 말라고 이 성분들을 바닥에 뿌려놓고 사세요. 나중에야 석면 원석 성분을 바닥에 깔고 썼다, 이렇게 아신 거죠. 이런 것들이 빨리 정리가 되어야 하는데 너무 무관심 속에 방치되어 있어 안타까워요.

 

특위가 최근 이 폐기물 처리 업체가 최종처리업 관련해서 청양군수를 상대로 낸 폐기물 처리 사업계획서 부적정 통보 처분 취소 소송에서 기각 판결을 이끌어냈고, 기존에 하던 사업인 중간처리업 관련해서도 청양면에 직무이행명령을 내리도록 권고해서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죠.

 

직무이행 명령은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인가요?

박: 충청남도에서 청양군한테 폐기물처리업이나 석면을 관리하는 것을 위임을 해준 상태에요. 청양군이 석면광산에 대해 실태조사를 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는 거죠. 지금 몇 년이 지났는데 실태조사 같은 것도 한 번도 못한 상황이에요. 그런데 이번에 충청남도에서 직무이행 명령을 받아줘서 청양군한테 직무를 이행하라고 명령을 내린 거죠. 이걸 청양군이 받아주면 실태조사도 할 수 있고 그곳에 조사목적으로 들어갈 수도 있게 돼요. 사실 이전에 들어가려고 몇 번 시도해봤는데 번번이 막혔어요. 영장이 없었으니까요. 지금 그래서 여러 가지 혐의가 짙을 때는 영장 받아서라도 갈 수 있으니 그런 방법을 검토 중이에요. 이후에 실마리가 조금이라도 풀리기를 바라고 있어요.

 

월성원전 1호기 수명연장무효소송에서 승소하시기도 하셨다고 들었어요. 오랫동안 실패만 하면 지속이 안 될 텐데, 한 번씩 이길 수도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라고 생각 들었어요.

박: 네! 월성 원전 사건을 하면서 선배 변호사님들께 많이 배우며 일을 도와드렸어요. 어쨌든 월성원전 1호기 이겼을 때 정말 기분은 정말 좋았습니다. 눈물 흘렸어요. 저는 변호사로 활동한 시기가 길지 않아 아직까지는 괜찮은 것 같습니다.

 

[노동환경과 산업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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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위 활동 외에도 요새 주력하고 있는 일이 있으신가요?

박: 저는 환경쪽에 관심이 많아서 지금 박사과정으로 환경법을 전공하고 있기도 해요. 이제 논문을 써야 하는데, 환경법에 대해 법철학적인 관점에서 검토를 해보고 싶어서 논문주제를 잡고 있어요. 또 노동법에도 관심이 많은데 특히 산업재해에 관심이 많아요. 산업재해가 크게 보면 결국 노동환경이 잘못 되어서 벌어진 일이잖아요?

 

산업재해 관련해서 제가 하고 있는 사건이 반올림과 함께,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가 다발성 경화증, 유방암을 앓고 계시는 두 분의 대리를 하는 것이에요.

 

다발성 경화증 사건은 언론에도 많이 나왔죠. 다발성 경화증은 뇌에 중추신경에 수초라는 부분이 손상이 되면서 몸에 이상이 나타나는 질병인데 병소의 예측이 어려워요. 손발이 마비될 수도 있고, 실명이 될 수도 있죠. 김미선 님은 17세에 일을 시작해서 3년간 일한 뒤 다발성 경화증에 걸렸는데, 거의 실명이 되셨어요. 산재를 신청하셨고, 1심에서 승소했는데 근로복지공단의 항소로 2심을 진행 중이에요. 유방암 같은 경우는 삼성반도체의 하청업체에서 발생한 사건인데, 현재 작업환경측정 결과보고서에 대해 문서제출이 이루어져 역학조사 보고서와 비교 분석하는 일을 했어요.

 

두 사건을 대리하며 드는 생각은, 노동자들이 최우선으로 제 몸 하나만큼은 지킬 수 있어야 하지 않나요? 그런데 위험한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제대로 교육도 이루어지지 않아서 어떤 물질이 자신의 몸에 어떻게 유해한지도 모르고, 작업환경 측정자체도 너무 부실하게 일부 물질에 대해서만 되어있고요. 각 기관마다 어떤 유해 물질이 발생하는지 꼼꼼하게 조사해서 안전 장비 등을 제대로 갖추게 해야 하고, 또 그렇게 문제가 터지면 문제 사실을 제대로 공개하고, 사과하고, 재발방지대책을 세우고 하는 과정이 필요하죠. 그런데 기업 쪽에서는 작업환경 측정 결과가 업무상 비밀이라고 공개를 안 해요. 법원에 문서 제출 명령을 신청하고, 정보공개 청구를 하고 해서 문서를 받아보게 되어도 정작 중요한 화학물질은 다 가려져서 오는 경우가 많고요.

 

특정 상품의 제작과정이 산재를 유발할 가능성이 높은 위험한 과정이라면, 즉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면 상품화되면 안 되는 것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들어요.

박: 제가 보니까 여러 가지 문제가 있는데 LCD사업장 같은 경우에는 클린 룸이라고 해서 먼지가 조금도 들어가면 안 되기 때문에 방진복 입고 작업을 해요. 그러다 보니까 환기도 안 되고 해서 안 좋은 것들을 자꾸 흡입하게 되죠. 그러다보니 다들 병 얻고 나서 ‘돈 없어서 이렇게 위험한 일 한 게 한이 된다.’고 말씀하세요. 가슴 아프죠.

 

또 이게 단순한 문제가 아닌 경우가 많아요. 어떤 피해자 같은 경우는 산재 신청할 때 괜히 이러다 회사 망하게 하는 거 아닌가 하는 걱정도 하시고,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마음에 넘어가는 경우도 있거든요. 그래서 노조가 있는 건가보다 생각했죠. 사업장이랑 인간관계 끊기고 싶지 않을 때, 개인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사건이 있을 때 노조가 많은 일을 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노조의 관점에서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도 느꼈던 것 같아요.

 

[공익전담변호사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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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전담변호사로서의 삶은 어떻다고 생각하시나요?

박: 저는 제가 하고 있는 소송이나 이런 일들이 너무 좋은 게, 하는 일들이 정말 의미 있게 느껴져요. 또 ‘무슨 사건을 해라’ 위에서 떨어지는 구조가 아니고, 제가 하고 싶은 사건이 있어서 그걸 하겠다고 말씀드리고 하잖아요. 그러니까 열정이 더 생기고 가슴이 뜨거워지는 기분을 느껴요. 어떻게든 이걸 해내야 된다는 생각이 들고요. 공익변호사라는 직업의 단 맛을 봐버린 것 같아요.

 

그래도 공익변호사가 하는 일이라는 게 최전선에서 싸워야 하는 거잖아요. 상대편의 옳지 않은 행동을 보면서 화가 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화라는 게 에너지도 되지만 오래 가지고 있으면 지치기도 하는데, 일을 지속하게 하는 힘이 무엇일까요?

: 저도 상대편이 밉지만 그 상대편의 실체가 없을 때가 많아요. 구조나 시스템 같은, 보이지 않는 것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 경우가 대다수라는 거죠. 기업이나 국가는 선의로 벌인 일이라고 해도 그게 나쁜 결과를 일으킨다면 제도적으로 잘라내야죠.

 

그리고 힘든 일이 많이 있지만 맘 맞는 변호사님들끼리 모여서 같이 화내고 술 먹고 이러다가 풀고 힘내고 해요. 특히 민변 환경위에 좋아하는 변호사님들이 많이 계십니다. 제가 맨 처음 가입을 했을 때부터, 권위의식 하나 없이 편하게 대해주시고. 사람들이 너무 좋으니까 같이 만나서 일하는 과정이 전부 좋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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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공익 변호사 쪽을 생각하는 예비 로스쿨생들에게 전하고 싶으신 말이 있으신가요?

박: 저는 공익변호사 생활에 되게 만족하면서 지내고 있어요. 물론 이 활동이 지속 가능할까, 이런 고민들은 항상 있어요. 그 부분에 대한 고민은 계속 안고 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것만 각오하시면 일은 너무 재밌고 좋은 사람들도 훨씬 많이 만날 수 있어요. 그리고 변호사이기도 하지만 활동가로서도 일하는 셈이니까 성격적으로 그런 것이 맞기만 하면 엄청 재미있을 것 같아요. 추천합니다.

월, 2017/07/24-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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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인터뷰]‘겨울에 자란 나무처럼소라미 변호사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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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겨우내 뿌리를 보존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합니다. 그 힘으로 나무는 움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습니다. 선선한 바람마저 서운한 여름의 끝자락. 13기 자원활동가들이 종로구 창덕궁길 공감사무실에서 소라미 변호사님을 마주했습니다. 12년 동안 공익변호사로 길을 걸어온 소라미 변호사님의 이야기는 겨울나무처럼 단단했습니다. 그리고 그 단단함은. 법의 테두리에서 밀려난 이주민. 여성 등 수많은 이들에게 움을 틔워낼 공간이 되었을 것입니다. ‘사람의 귀함’을 법의 언어에 담아내기 위해 쉼 없이 걸어왔던 소라미 변호사님. 그 단단하고, 따뜻한 발걸음 만나보시죠.

 

이우균 : 일단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소라미 변호사 : 저는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에서 올해로 12년째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소라미라고 합니다. 공감에서 잔소리를 맡고 있고요, (웃음) 황필규 변호사님은 저를 마님이라고 하시죠. (웃음)

 

우 : 간단하지만 간단하지 않은 질문부터 드려볼게요. 왜 법조인의 길을 가기로 결심하셨나요?

 

소 : 어렸을 때 막연하게 법조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 이유는 대단한 건 아니었고, 아버지가 주입시켜준 꿈이기도 했어요. (웃음) 제가 공부를 곧잘 하니까, 여자가 차별받지 않고 사회생활을 하는 데 좋은 직업이 법조인인 것 같다, 이런 이야기를 중학교 때부터 해주셨어요. 이태영 변호사님 이야기를 들려주시기도 했고요. 사실 대학에 들어갈 때 법대를 가진 않았어요. 다른 과를 선택했고, 공부보다는 동아리나 학생회 활동을 했죠.

 그렇게 졸업할 때가 되어서 다시 진로고민을 했을 때, 막연하게 생각했던 건,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 그리고 ‘그 일을 하면서 내가 보람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 딱 두 가지밖에 없었어요. 공부를 너무 안 해서 전공을 살려서 뭘 하기는 어렵겠다는 현실적인 판단도 있었고요. (웃음) 아무튼 의미 있는 일, 보람 있는 일, 그리고 ‘내가 어렸을 때 법조인이 되고 싶었지!’ 이런 막연한 생각들이 일치되면서, ‘아 그래 지금부터라도 내가 고등학교 때처럼 공부를 하면 사시에 합격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굉장히 무모한 생각으로 뒤늦게 학사편입을 해 다시 법대 3학년으로 돌아가서 사시 공부를 하기 시작했어요. 그렇죠, 간단하지 않아요. (웃음)

 

우 : 더 간단하지 않은 질문을 드려야 할 것 같은데요, (웃음) 졸업하시고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활동을 하고 싶다고 하셨는데 그게 지금 하고 계신 공익변호사라는 직업과 연관이 될 것 같아요.

 

소 : 제가 연수원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만 해도 공감 같은 단체가 없었어요. 그래서 당장 공익활동을 전담하는 변호사가 되겠다는 구체적인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고, 다만 좀 보람 있는 일도 할 수 있는, 좋은 선배님들이 많이 계시는, 예를 들면 민변 활동도 많이 하시는 변호사님들이 계신 사무실에서 일을 하면서, 나중에 공감과 같은 단체를 만들면 좋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마침 제가 수료한 2003년 12월, 연수원 2년차 마지막 겨울에 ‘낮은 곳에 임하는 용기로 소외된 희망을 되살린다’라는 엄청난 문구로 공채 공지가 뜬 거예요.

 당시 아름다운재단 안에 공익변호사 팀을 만들겠다는 취지로 변호사를 공채한다는 공지였는데, 그 문구가 너무 멋있는 거예요. 그런데 아무리 읽어봐도 뭘 하는 곳인지는 잘 모르더라구요. (웃음) 어떻게 할지 고민을 많이 하다가 그곳에 지원하게 됐습니다. 사실 연수원 수료하고 바로 공익활동을 전담하는 변호사로 일을 하는 게 좋을지 아니면 내가 일정 기간 변호사로서 실무 경험도 쌓고 트레이닝을 받고 그 다음에 돌아와서 하는 게 좋을지 고민을 많이 했죠. 몇 분 선배님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봤는데, 의견이 반반인 거예요. “하고 싶은 일이면 바로 시작하는 게 좋다, 나중에 돈맛을 알면 돌아오기 되게 힘들다” 조언해주시는 선배 변호사님도 계셨고, “지금 당장 가서 네가 과연 뭘 얼마나 할 수 있겠느냐, 일정 정도 실무를 쌓고 가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조언해 주시는 분도 계셨어요.

 그런데 당시 제가 아름다운재단에는 선발이 되었고, 다른 데는 다 선발이 안 되었어요. (웃음) 그래서 뭐 필연적으로, 공감 창립 멤버로 일을 시작하게 된 거죠. 저로서는 당시에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고, 어떻게 해야 할지 확신이 있는 상황에서 공감 활동을 시작한 건 아니었지만, 일을 하면서 느낀 것은, 우리 조상님이 3대 덕을 쌓았나 보다, (웃음) 제가 공감을 창립하는 멤버로 같이 일할 수 있었던 게 매우 큰 행운이었다고 생각해요.

 

우 : 왜 행운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소 : 왜냐하면 우리가 많이 자랑하듯이 (웃음), 공감이 한국사회에서 최초로 설립된, 공익활동을 전담해 비영리로 운영하는 변호사 단체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받은 장점이 많죠. 저희 실력이나 능력에 비해 과분하게 인정도 받고, 주목도 많이 받고. 그래서 공감이 빠른 기간 안에 안착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게다가 지금은 저도 모르는 사이에 공익활동 전담으로 일하고 싶다는 후배들이 굉장히 많이 생겼죠. 후배들 만나서 공감 이야기를 해줄 때마다 막중한 책임감을 느껴요. 그리고 이런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게 다 창립 멤버로서 일을 해왔기 때문이라는 걸 아니까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우 : 공감이 국내 최초의 공익인권법단체라서 유리한 점이 많았다고 하셨지만, 저는 민변에 와서, 공익변호사 활동이 참 쉽지 않다는 점을 많이 느꼈습니다. 민변 소수자위원회에서 진행하는 일들이 계획대로 잘 안 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민변처럼 규모가 큰 변호사단체도 잘 안 되는 일이 많은 것을 보면, 공익변호사로서 현실적인 어려움들이 많으셨을 것 같아요. 활동하면서 겪게 되는 어려움이 어떤 게 있으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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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 제가 최근에, 곧 다음 주 월요일에 국회에서 있을 정책세미나 발표 준비를 하는데.. 갑자기 너무 맥이 빠지는 거에요. 인신매매 피해자 식별을 위한 제도개선 관련 세미나인데, 사실 그 이슈에 대해서 제가 공감 활동 시작하면서 거의 한 10년 동안 이야기를 해왔거든요. 그런데 하나도 바뀐 게 없어요. 실태도 바뀐 게 없고, 법제도개선하자고 이야기하는 것도 계속 똑같아요. 그런데 그 이야기를 또 해달라고 요청이 온 거에요. 해야죠. 해야 하는데, 너무 이야기하기가 싫은 거야. (웃음) 지난 10년 사이 어쩜 이렇게 하나도 바뀔 수가 없을까 싶은 거죠.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해서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늘어난 것도 아니에요. 여전히 소수의 사람들, 소수의 단체, 소수의 변호사들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거죠. 그런 게 힘들어요.

 공감에서 일하는 다른 변호사님들도 마찬가지지만, 하나의 제도를 바꾸고, 실태를 바꾼다는 게 변호사 한 명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국회에서 그런 제도를 개선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외부 시민단체와 함께 해야 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왜 이런 걸 국회에서 안할까 의구심을 갖고 제도 개선에 대해 지지를 해주어야 국회도 관심을 가질까말까 하는데.. 그렇지 못한 이슈가 굉장히 많거든요. 그런 현실의 벽을 느낄 때가 많죠. 내가 열심히 법안 만들고, 내가 열심히 기자들에게 이야기하고, 발표문 쓰고, 국회 가서 토론하는 것만으로 되지 않는 구나를 느낄 때가 많아요. 그럴 때 많이 힘들죠.

 

우 : 그런 허탈함을 극복하시는 방법이?

 

소 :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많지만, 개중에 한 두 개씩 바뀔 때가 있어요. (웃음) 그 힘으로 하는 거죠. (웃음) 예를 들면, 제가 입양인들과 함께 입양법 바꾸는 활동을 한 적이 있어요. 한국사회에서는 입양을 막연하게 좋은 것, 부모에게서 버림받은 아이들 혹은 부모가 양육할 수 없는 아이들에게 새 가정을 찾아주는 아름다운 것, 사회적으로 선한 것으로 바라보는 인식이 있었잖아요. 저도 마찬가지였고요. 그런데 저희 사무실로, 20~30년 전에 해외로 입양되었다가 돌아오신 분들로 구성된 입양인 당사자 운동 단체 분들이 찾아오셨어요. 그 분들이 한국의 입양제도가 얼마나 입양인의 인권, 아동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인지, 본인들이 30년 전에 입양될 때 얼마나 불법적인 방식으로 입양되었는지, 그리고 현재 입양인들이 한국으로 돌아와서 친부모를 찾는 데 얼마나 어려움이 많은지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셨어요. 그 분들은 “한국에서 입양은 사라져야 할 것이다”고 말씀하셨죠.

 저는 굉장히 충격이었어요. 제가 가졌던 입양에 대한 생각과 그 분들이 들려주시는 입양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다른 거예요. 그래서 입양에 대한 법을 다시 보게 되었고, 애초에 아이들이 한국에서 살 수 있게, 출생한 가정에서 살 수 있게 돌보지 않았던 우리 한국사회의 현실, 그동안 아동복지정책의 잘못된 점을 알게 되어서 같이 활동을 하기 시작했어요. 그 결과 2011년도에 법이 통과되었어요. 이게 그나마 제가 했던 여러 가지 활동 중 변화를 이끌어냈던 점이고

 재미있었던 건 당시가 이명박 정부였는데, 이명박 정부가 저희와 같은 입장을 취하기가 되게 어렵잖아요, (웃음) 그런데 입양 이슈에 대해서는 의외로 정부가 약간 비슷한 입장을 취한 거예요. 당시 정부가 입양 문제에 대해 굉장히 수치스러워했어요. 한국이 여전히 해외에, 미국으로 입양 보내는 아이가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는 등 이런 수치에 대해서 정부가 부끄러워했고, 국제사회로부터 지적도 많이 받았던 거예요. 그래서 ‘아 이건 좀 바꿔야 한다’는 정부 입장이 있었던 데다가 다행히 당사자 분들이 목소리를 많이 높여주셨고, 거기에 저희가 같이 끼어서 법적인 언어로 바꾸어서 일하니까 빠른 시간 내에 급속도로 제도 개선이 일어났던 거죠. 굉장히 재미있게 일을 했어요. 그런 한 두 가지 사례들이 힘이 되는 거죠. 당장은 아니어도 여러 가지 상황 변화에 따라서 언젠간 또 바꿀 수 있겠구나 희망을 가지는 거죠.

 

이하나 : 현재 주력하고 계시는 여성인권과 아동인권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나요?

 

소 : 공감에서 2004년에 활동을 시작할 때 멤버가 변호사 4명이었는데, 남성변호사님 세 분과 저였어요. 그래서 ‘여성인권은 제가 하겠습니다’라고 선점을 했어요. 제가 여성인권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특별한 게 있는 것 같진 않고, 그냥 자연스럽게.. 제가 스스로 여성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고, 여대 다니면서 학교에서 여성주의 운동의 영향을 받은 것도 있고, 다른 이슈보다 조금 더 ‘이건 내 문제다’라고 생각이 든 부분이 있었죠.

 공감 활동을 시작할 당시에 사무실로 이주여성단체와 성매매 피해 여성 지원 단체들의 요청이 많이 들어왔어요. 저희가 맨 처음에 변호사를 파견하는 활동을 했는데, 제가 거의 첫 해에 성매매 피해여성 지원하는 단체로 일주일에 이틀 출근을 하고, 이주여성단체는 일주일에 하루 출근하는 방식으로 단체들과 같이 활동을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굉장히 자연스럽게 공감에서 여성인권이슈를 제가 계속 맡아서 활동해 오게 되었죠.

 아동인권 관련해서는.. 저희가 처음부터 아동인권이슈를 한 건 아니었고, 조금 전에 말씀드린 입양 이슈 관련 활동을 한 것이 계기가 되었어요. 입양이 결국에는 한국의 아동복지체계 안에 그 위치가 있거든요. 부모가 돌볼 수 없는 아이들을 어떻게 공적으로 돌볼 것인가의 문제를 다루는 법이 아동복지법이고, 입양과 관련된 특별법이 있는 건데, 아동복지법을 보니까 제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공백이 많은 거예요.

 그래서 입양의 문제를 통해 아동복지법 체계의 문제점을 알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아동이슈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지금도 저희가 아동인권을 다 하는 건 아니에요. 입양 문제, 그 다음에 이주 아동의 문제. 제가 공감에서 이주 이슈나 이주 여성 쪽을 다루니까 이주 아동과 관련된 사례도 지원 요청이 들어오면서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미혼모 이슈와도 연결이 되고, 아동학대 문제 등과도 관련해서 활동을 조금씩 넓혀 온 게 있죠. 게다가 최근에는 제가 4살 아이의 엄마가 되고 보니 아이들의 문제가 더 남다르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하 : 다양한 이슈와 분야들에서 활동해오셨는데,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의뢰인이나 사건은 무엇이었나요?

소 : 아동인권에 관해서는 앞에서 말씀 드린 입양 문제였고요, 여성과 관련해서는.. 많이 있을 수 있겠는데, 최근에 지원했던 사례로 말씀드릴게요. 잘 안 된 사건이에요. 캄보디아 여성 두 분이 비닐하우스 농장에서 일하다가 농장주로부터 거의 1년간 지속적으로 성폭행 당했던 사건이에요. 저희 사무실로 지원 요청이 왔을 때에는 이미 검찰 불기소 결정이 난 다음에 항고하는 과정이었어요. 너무 억울한 사건이었어요. 제가 봤을 때에는, 당사자들과의 면담, 신고 경위나 여러 가지 상황을 보면 농장주가 잘못한 게 맞는데, 처벌해야 되는데, 우리가 항고심부터 결합해서 결국에는 항고 기각, 재정 신청마저 기각되어서 결국 잘 안 됐어요. 그 분들이 너무나 많이 우셨고..

성폭력 사건은 초기 사건 대응이 중요하거든요. 피해자 진술의 일관성, 신빙성 하나로 가해자를 처벌해야 하는데, 이 분들이 초기 대응을 잘 못하셨어요. 갑작스럽게 농장에서 구출되어 바로 2~3일 동안 경찰에서 수사를 받았는데, 수사 과정에서 대략적으로 특정했던 사건 발생 시점이 나중에 검찰로 가면서 다 뒤집힌 거예요. 결국 진술이 일관적이지 못해 이 분들은 완전히 못 믿을 사람들로 결론이 난 거죠. 당시 검찰 기록을 보면, 제가 조서만 읽어봤는데도 검사가 막 화를 내는 게 느껴질 정도였어요. 피해 여성분들은 자기들이 피해를 인정받고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을 거란 생각으로 쭉 조사를 받았던 건데, 검사가 엄청 다그치니까, 마지막 검찰 조사 받을 때에는 통역해주었던 분이랑 같이 울어버렸대요.

그렇게 꼬인 사건을 항고부터 하려니까 쉽지는 않더라고요.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이분들이 쓰신 진술서 중에, 자기는 한국에 와서 돈 벌어서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고 싶었는데 왜 자기한테 이런 일이 생기는지 모르겠고, 자기는 여기 와서 완전히 다 망가졌다고 표현하신 내용이 있었어요. 그 진술서도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그래서 이 사건이 최근에 기억에 남아요.

농업 이주 여성들 사건을 할 기회가 많지는 않아요. 이런 사건들이 드러나기가 쉽지 않거든요. 보통 이주 여성이 고소고발을 하면 계속 일할 수 없을 가능성이 크고, 다른 농장으로 사업장을 변경해줄 가능성도 보장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잘못하면 한국에서 일할 기회만 없어진다고 생각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고용허가제 구조 하에서는 농장주, 사장 등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한 이주 여성노동자들이 자신의 피해 사실을 말하기가 어려워요.

비록 많진 않지만, 들어온 사례들을 보면 피해 여성의 입지가 굉장히 취약해요. 일단 비닐하우스 농장은 밀폐되어 있고 외부로부터 차단된 공간이죠. 게다가 피해 여성분들한테 농장주는 하느님 같은 존재였대요. 농장주가 자기들을 고용하겠다고 해서 한국에 들어올 수 있었다는 거죠. 한국에서 버는 한 달 100만 원 정도의 월급이 캄보디아에서는 1년 치 임금보다 높아요. 그러니까 이 분들한테는 한국에서 일하는 게 엄청난 일이고, 또 처음 한두 달은 농장주가 친절하게 대해주니까, 농장주 이름을 무슨 아버지라고 핸드폰에 입력해놓을 정도로 믿고 신뢰했던 사람인거죠. 그런 구조적인 취약함, 경제적인 취약함, 고용허가제 하에서 사업장 변경이 어려운 점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거죠.

이 분들이 한 일을 보니까, 성적 착취뿐만 아니라 농장주 집에 가서 설거지하고 빨래하는 게 일상적인 일인 거예요. 그런 식으로 1년 넘게 지속적으로 피해를 당해 오신 거죠. 이런 피해가 사실은 구조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한 두 사람의 문제는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 놀랐어요.

2

하 : 한국 사회에서 이주민들에 대한 혐오가 점점 심해지고 조직화되어가고 있어서, 이주민 관련 활동을 하시는데 어려운 점이 많을 것 같아요. 이런 혐오 문제를 해결하고 인식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소 : 이주민에 대한 혐오라.. 법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일까요? 저는 이자스민 의원실과 ‘이주아동권리보장법’을 제정하는 활동을 몇 년 동안 해왔어요. 그리고 작년 2014년 12월에는 의원실에서 법안 발의를 했고요. 그런데 그 후에 이 법안에 반대하시는 분들이 조직적으로 이자스민 의원실에 전화로 항의하고, 팩스를 보내고, 홈페이지에 댓글 다는 등의 반대운동을 했어요. 이로 인해서 이자스민 의원실의 업무가 마비될 정도였죠.

사실 저는 반대운동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구체적으로 보지는 않았어요. 맘 상할까봐. (웃음) 주위에서 하시는 이야기를 듣고 놀랐던 건, 예전에는 이런 반대운동을 하는 분들이 소규모였거든요. 예를 들면 국제결혼 피해자 모임에 속한 남성분들 정도요. 이분들의 모임이 있어서 결혼이주여성의 인권을 보장하자는 국회의원들 활동이 있으면 조직적으로 오셔서 피켓팅도 하고, 공적으로 발언도 많이 하시고 그랬어요.

그런데 이게 굉장히 확산되었다고 하더라고요. 일반 주부들이 모여 있는 엄마들 카페에서도 이 법안 이야기를 하면서, ‘아니 우리 아이들에게 지원할 것을 어떻게 세금도 안 내는 이주 아동들에게 지원할 수 있느냐’는 식의 논리로 반대하신다고 하더라고요.

이게 뭘까. 좀 고민이 되더라고요. 제가 보기에 이 논리는 결국 일베의 논리와 같거든요. 일베들이 무임승차한다는 취지로 소수자 인권, 여성 인권 이야기하는 데마다 반대하는 논리거든요. ‘왜 우리가 낸 세금으로 그들에게.’ 이런 논리가 의외로 확장력을 가지면서 그냥 일반 사람들도 가만히 듣고 보면 뭔가 억울한 느낌을 받는 거죠. 거기에 삶이 경제적으로 각박해지고 박탈감이 전반적으로 팽배한 현실에서, 내 것을 뺏긴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 같아요.

저는 또 이게 사회 전반적 분위기와 맞물리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신은미·황선 통일토크콘서트에 한 고등학생이 사제폭탄을 던진 사건 같은 경우에 나왔던 반응들이요. 그 사건은 사실 굉장히 무서운 것이잖아요. 그런데 사회적으로 그 행동을 잘했다고 영웅시하는 분위기가 있었고, 이에 대한 정부의 코멘트도 이상하게 나왔어요. 이 현상을 문제적으로 바라보고 이것을 사회적 문제로 인지해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애초의 종북 콘서트가 문제였다는 방식으로 말이죠. 마치 이런 관점을 허용하고 묵인하고 방조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혐오는 법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기보다, 전체적인 인식의 문제, 그런 논리를 확산시키고 조장하는 정권과 언론의 태도가 바뀌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하 : ‘왜 내 세금으로 저 사람들을 지원해주어야 해?’라는 논리는, 이 나라의 ‘시민’에 이주민들을 포함하지 않는 논리인 것 같아요. 그래서 저희가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생각했던 것은 ‘시민’ 개념이 좀 더 확장되어야 하지 않을까. 변호사님께서는 시민 개념이 어떤 식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소 : 그런 인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아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는데요. 이주민들이 정말 세금을 안낼까요? 직장을 다니게 되면, 일단 근로소득세를 내죠. 그리고 우리나라의 세금 부담 비율이 직접세보다 간접세가 더 높아요. 간접세가 한 70% 정도를 차지하거든요. 이주민들이 마트에 가서 장을 본다든지, 생필품을 산다든지 하면 거기에 다 부가가치세가 붙는 것이거든요. 그러니까 한국에서 사는 이주민은 직접, 간접의 세금을 부담할 수밖에 없어요.

 그러면 공동체 개념을 확장할 필요가 있는 거죠. 예전의 국적·민족 중심의 공동체 개념에서 벗어나, 어쨌든 한국에서 같이 주민으로 살아가고 있고 세금 부담도 같이 하고 있는 사람들을 국적과 민족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배타적으로 대해야 할 것인가 재고할 필요가 있어요. 이러한 배타적인 시각은 이주민에 대한 편견과 오해에서 비롯되는 것이거든요. 이 부분은 사실 국회나 정부도 크게 입장이 다르지 않아요. 예를 들어, 저희가 이주아동 권리보장 기본법을 제정할 때의 일이었어요. 사실 이 법은 너무 당연한 것이거든요. 아이들은 자신들의 부모나 태어날 곳을 선택한 게 아니잖아요. 한국에서 태어나고 보니까 부모가 미등록 이주노동자인 것이죠. 그런데 그 이유로 아이들은 신분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공교육이나 의료보험 등에서 계속해서 배제되죠. 결국 이주아동 권리보장 기본법은 아이들만이라도 우리가 비준한 유엔 아동권리협약에 따라서 건강하게 발달·성장하고, 교육받을 수 있고, 병원에 갈 수 있게 보호해주자는 취지의 법이거든요. 너무나 당연한데, 이게 왜 통과가 안 되는지 모르겠어요.

 이 법의 제정에 대한 반대 논리가 법무부에서 나왔어요. 법무부는 아이들을 보호하면, 그들의 부모까지 보호해야 하고, 그렇게 되면 모든 불법체류자들이 다 아이를 낳고 한국에 정착하려하지 않겠는지 우려해요. 이런 악용 가능성을 이유로 이 법의 제정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을 계속하죠.

 법무부는 이 법의 제정이 ‘공익’과 충돌한다고 말해요. 여기서 법무부가 말하는 공익은 출입국관리를 말하는 것이거든요. 공익과 사익이 충돌한다는 말인데, 저는 이게 너무 충격적이에요. 아동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사익이고, 출입국관리를 제대로 하는 것은 공익이기 때문에 공익이 앞선다는 논리가 저는 너무 무서운 논리라고 생각해요. 출입국관리법을 준수하는 것이 이주아동의 권리를 보장해야하는 것보다 앞설 수 있을까? 이런 법무부의 인식이 외국인 혐오를 조장하고, 또 묵인한다고 생각해요. 초과 체류나 미등록 체류이기 때문에 인권보장도 안 된다는 법무부의 입장은 외국인 혐오 세력의 논리와 크게 다르지 않거든요. 저는 법무부가, 정부가 이런 입장을 견지하는 한 외국인 혐오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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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 변호사님께서 ‘법적인 관점의 해결이 어려워도 인권적 관점의 해결을 도모한다.’라는 말씀을 하신 인터뷰를 봤어요. 법적인 관점과 인권적 관점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또 양자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어떤 것일까요?

 

소 : 제가 그런 말을 했다고요? (웃음) 저는 공익 변호사, 인권 변호사, 공감이나 민변에서 활동하는 변호사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인권의 문제를 법의 언어로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양자의 균형을 맞춘다기보다는, 기존의 법에 담겨있지 않은, 혹은 기존의 법에 충분히 담겨있지 않은 목소리, 예컨대 소수자의 인권이나 입양인의 인권 등과 같은 관점을 법에 새롭게 담아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기존의 법은 현재의 소수자들의 인권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거나 침해할 수 있어요. 그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보면 법과 인권이 충돌한다고 말할 수 있죠.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가 일을 시작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궁극적으로 법과 인권이 충돌하는 것은 아니에요. 인권의 문제가 법에 반영될 수 있도록 더 열심히 활동해야 하는 거죠.

 

하 : 공감의 10년 기록이 담긴 ‘우리는 희망을 변론한다.’가 출간되었는데요. 그동안 공감이 이뤄낸 성과와 가장 큰 보람은 무엇일까요.

 

소 : 공감이 계속 존재해왔다는 것?(웃음) 사실 저희가 맨 처음 시작을 했을 때, ‘몇 년이나 가겠어?’하고 반신반의했거든요. 왜냐하면 후원금으로 운영비와 사업비를 충당한다는 것이 굉장히 생소했고, 거기다 일반적으로는 ‘돈을 잘 버는’ 변호사가 후원을 받는다는 것도 낯설었거든요. 다른 가난한 인권시민단체처럼 후원금으로 보수를 받으면서 활동한다는 것이 가능할지 의심이 들었어요. 그래서 저는 공감의 성과는 문 안 닫고 12년 동안 잘 해오고 있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웃음)

 그리고 최근 2, 3년 사이에 저희가 제일 보람을 느끼는 것은 공익법 활동을 하는 후배들이 많아졌다는 것이에요. 희망법도 생겼고, 어필도 생겼고, 또 공익활동을 전담해서 일하겠다는 변호사들이 굉장히 다양한 방식으로 등장했거든요. 시민단체의 상근 변호사가 된다든지, 홀로 단체를 꾸리는 변호사님도 생기고. 예전에는 ‘민변 방식’의 공익법 활동밖에 없었다고 하면, 공감이 생기면서 새로운 방식의 공익법 활동이 등장했고, 지금은 더 다양해진 것이죠. 또 공익법 활동이 사회적으로 점점 확산되는 상황에서 공감이 선배 역할을 하고 있구나, 우리가 후배들의 울타리가 되어 주고 있구나 하는 것에서 굉장히 큰 보람을 느끼고 있죠.

 

하 : 한국 사회에서, 특히 젊은이들이 ‘공감력’이 부족한 것 같아요. 한국 사회의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

 

소 : 저는 공감하는 일이 굉장히 어려운 일 같아요. ‘공감’이라는 이름을 가진 단체에서 일하고 있는데, 일을 하면 할수록 이 공감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깨달아 가는 것 같아요. 우리가 정말로 누군가의 입장이 되어볼 수 있겠어요?

4

 실제로 제가 일하면서 마주하는 사람들, 관계 맺는 사람들에게 제가 정말로 공감하고 있는가 되물었을 때 한계를 많이 느끼거든요. 변호사라는 직업은 의뢰인의 사건을 법적으로 검토해야 하기에 의뢰인에게 공감하면서도 동시에 객관적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변호사라는 직업의 특성상 100%의 공감은 어려운 것 같아요. 그래도 계속해서 확인하는 거죠. 저 분이 정말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구나, 내가 쉽게 접근하거나 생각할 문제가 아니구나 하는 점을 깨닫는 것이죠.

 저는 젊은이들이, 자신의 문제가 자신만의 책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할 일, 해야 하는 일을 열심히 하시되, 내 문제가 어디로 연결되어 있는지는 보는 정도의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어요. 사회적 이슈에 관심을 가지시고, 학교에서 그런 활동을 하거나, 신문을 보시거나 하면서요. 이런 것들을 보면서 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덜 지치게 되지 않을까, 좀 더 길게 힘을 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하 : 마지막 질문입니다. 민변 회원 분들께 한마디만 해주세요!

 

소 : 제가 돌아보니까 연차가 낮았을 때에는 선배들이 저를 도와주고 챙겨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많이 했는데, 어느새 제가 선배 변호사가 되었더라고요. 깜짝 놀랐습니다. 저는 후배 변호사님들과 많이 친해지고 싶어요. 제가 공감에서 하는 일에 대해 궁금하거나 같이 하고 싶으시면 언제든 연락을 주시고, 찾아도 주십시오!

화, 2015/08/25-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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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인권변론센터 사람들, 이들이 궁금해요!

 

이혜정: 새로운 집행부 뉴스레터에 영광의 첫 손님으로 공익인권변론센터가 선정됐습니다. 요즘 인트라넷의 ‘이것이 궁금해요’와 ‘이 주의 변론’ 코너가 아주 인기가 좋고 덕분에 홈페이지 인트라넷도 좀 활성화가 된 것 같아요. 그런데 그 이면에 있는 공익인권변론센터에 대해서 잘 모르는 회원들이 많아요. 센터가 어떤 일을 하고, 누가 일하고 있는지, 각자 자기 소개 부탁드릴게요.

송아람: 저는 민변이 첫 직장이고 2014년 10월부터 근무를 했습니다. 사무처에서 변론팀장으로 일을 하다가 이제 센터가 새롭게 만들어지면서 센터로 옮겨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이수연: 네 저는 이수연입니다. 입사한지는 4년 5개월 정도 됐구요. 민변에 온 뒤로 제가 인복이 좀 있는 거 같아요. 처음에 이혜정 변호사랑 함께 일을 했는데, 이번에 공익변론센터에서 같이 일 하게 된 구성원들을 보면서 ‘아! 나에겐 인복이 있구나.’, 남자친구는 없지만 인복은 있구나, 그래서 너무 좋습니다.

송상교: 네.센터 소장입니다.(웃음) 2008년부터 2010년까지 3년 동안 사무차장으로 일을 했었구요. 올해 2월부터 다시 또 이번엔 사무차장이 아닌 센터 소장으로, 민변 최초의 소장으로서 일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조영관: 네, 안녕하세요. 조영관이구요, 저는 5월부터 변론센터에서 반상근으로 월요일과 수요일와서 일을 하고 있구요. 주로 이제 회원들한테 보내는 이 주의 변론하고 이것이 궁금해요를 만들고 있고, 그외에 변론센터에서 진행하는 사건들이나 업무들을 나누어서 하고 있습니다.

공인인권변론센터 탄생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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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정: 공익인권변론센터가 만들어지고, 이번 총회에서 소개도 됐는데 아직 공익인권변론센터를 잘 모르는 분들이 더 많아요. 센터가 만들어진 계기나 과정을 간단히 설명해주세요.

송상교: 갑자기 생긴 건 아니고, 사실 몇 년 전부터 민변 안에서 회원 1000명 시대가 되고 민변도 30주년을 맞으니‘뭔가 질적 도약을 해보자’ 이런 논의들이 많이 있었죠. 그 과정에서 ’민변이 제일 잘 하는 건 변론 아닐까, 맨날하는 거니까’, 해서 변론을 특화시켜보자, 변론센터를 일단 가장 먼저 특화시켜서 그걸 통해 시민들과 점점 소통을 해보자, 이렇게 얘기가 됐던 겁니다.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우여곡절도 있었어요. 민변이 사실 맨날하는 게 변론인데 갑자기 또 무슨 변론센터냐, 무엇을 위한 것이냐에 대해서 회원들 사이에 논의가 있었어요. 어떻게 보면 이것은 이 변론센터가 눈으로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어떤 것을 할 수 있을 것인지 아무도 예상하기어려웠던 것 같고, 우리 준비하는 사람들조차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아요.

변론을 잘 하자는 것 외에 후배 회원들을 양성해보자는 고민도 오랫동안 있었어요. 공익변론센터를 만드는 과정에서 민변의 젊은 회원들을 영입해서 양성해보자, 이런 논의도 있었죠. 아직까지는 우리 역량이나 재정이 녹록치 않은 부분이 있어서 약간 보류됐고, 그런 부분들을 장기적인 과제로 놓고, 민변의 변론을 잘 기획하고, 그것으로 시민들과 소통하고, 민변의 변론자료를 잘 축적해보자, 그래서 회원들이 수준 높은 변론을 하도록 지원을 해보자, 이런 걸로 압축이 되는 거죠.

이혜정: 지금 센터가 개설되면서 교육팀이 없어졌잖아요, 신입 회원들과 기존의 회원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사업도 중요한데교육사업에 대한 문제의식이나 계획도 있나요?

송상교: 센터가 만들어지면서 교육업무를 센터가 할 것이냐 말 것이냐 줄다리기가 좀 있었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젊은 회원들이 많아지기 때문에 민변의 변론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도 그 젊은 회원들, 민변 회원들에 대한 계속 끊임없는 교육이 필요한 거죠.

그래서 교육도 센터의 중요한 일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고요. 예전 교육팀에서 신입회원 단기연수를 몇 년째 했었는데 오랫동안 변론을 해왔던 변호사들이 실무적인 팁들을 중심으로 강의를 하셨던 것이 반응이 무척좋았던 거 같아요. 민변 회원들이 변론과 관련해서 공익인권의 내용을 법정에서 잘 표현할 수 있는 스킬이나 증거신청의 방법 같은 실무적 지식에 대한 목마름이 많이 있구나, 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기적인 교육 외에도 그런 변론교육은 강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제일 큰 고민은 회원에 대한 교육 외에 시민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법률적인 정보를 제공하거나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일들 같아요. 그게 참 제일 어려운 부분이더라고요.

구체적으로 공익인권변론센터가 하는 일은?

 

이혜정: 지금 센터가 진행하고 있는 대표적인 소송은 무엇이 있나요?

송상교: 센터 1호 소송으로 저희가 시민청구인을 모집해서 통신자료 무단수집 헌법소원을 했고, 그게 1호 소송이에요.

송아람: 사실 변론팀이 외부에서 요청받은 것도 많이 하잖아요. 강정마을 구상금 청구 사건하고, 민중총궐기 집회 주최자 손해배상 소송 두 건을 연달아 했고요, 그 외에 우남찬가 사건이라든지… 그 정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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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정: 현재 센터에서 진행 중인 중점사업을 간단히 소개해주세요.

송아람: 일단은 저희가 시민들과의 소통도 중요한 사업 중 하나로 생각하고 있어요. 기본적으로는 센터 이메일로 상담 내용과 자료를 받는 걸 원칙으로 하고 있고요. 전화 상담으로는 한계가 있어서 전화상담은 원칙적으로 하지 않고 있어요. 센터가 4월 말에 개소를 했는데 그 뒤에 30건 정도 왔더라고요 그 중에 지금 민생위 공정경쟁팀에서 하고 있는 대한항공 지연발착 손해배상 청구 사건이나, 한동안 화제가 되었던 우남찬가 사건 등을 민변 사건으로 지정을 해서 기금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조영관: 공익변론센터는 민변이라는 회원조직에서 만들어진 공익센터이기 때문에 회원들을 위한 사업들을 같이 고민하고 있어요. 그래서 처음 만들었던 이 주의 변론인데요, 회원들이 변론에 도움이 되는 자료를 공유하고 회원들이 했던 변론을 소개하고 있어요. 또 신입회원들이 많아지면서 예전처럼 선배들이 알고 있는 노하우가 자연스럽게 모임 내에서 공유되지 않고 있어요. 그래서 신입 회원들이나 노하우를 공유할 수 있는 채널을 만들기 위해 ‘이 주의 변론’ 안에 ‘이것이 궁금해요’ 라는 코너도 만들었습니다,

또 다른 중점사업으로는 디지털 도서관 구축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민변이 30년 가까운 시간동안 해왔던 변론 자료들이 회원들한테 충분히 공유되지 못했고, 또 디지털 시대가 됐으니까 지금까지의 자료들을 잘 정리해서 회원들의 변론활동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방법이에요.올해 안에 런칭을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혜정: 민변에 좋은 자료가 참 많아요, 민변 자료를 통해서 저의 시각으로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던 교수님들과 다른 실무진들의 의견을 접하기도 하거든요.

조영관: 저희가 디지털도서관에 어떤 내용을 담을지 계속 논의하고 있는데 변론 기록을 가장 우선시 하지만 민변이 가지고 있는 토론회 자료집, 노동위원회에서 발간하는 노동판례비평, 4년에한 번 나오는 개혁입법과제 같은 정기발간물도 변론에 혹은 민변 활동에 도움이 되는 자료들이기 때문에 그런 자료들 포함해서 이번에 그 디지털 도서관을 구축하려고 합니다.

인트라넷 스타 <이 주의 변론>&<이것이 궁금해요>

 

이혜정: 공익인권변론센터가 연재하는 <이 주의 변론>이나 <이것이 궁금해요> 인기가 높다고 하는데, 혹시 회원들로부터 반응이 돌아온 적도 있나요?

조영관: 어, 폭발적이죠.(웃음) 정말 ‘이 주의 변론’ 올린 것 중에 조회수가 90 정도 올라간 것들이 있어요. 제가 알고 있기로 민변 회원이 1000명인데 30% 정도가 인트라넷을 사용하신다면 300명이죠? 조회수 90이면 거의 한 1/3이 보셨다는 뜻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회원 분들 중에서 아직 인트라넷을 사용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은데, 인트라넷에 접속을 하시면 저희 <이 주의 변론> 게시판과 <이것이 궁금해요> 게시판이 있어요. 궁금한 점을 게시판에 올려주시면 저희가 매주 나가는 ‘이 주의 변론’에 소개하고, 내용에 따라서는 저희가 전문가를 직접 찾아서 답변을 받아서 올리기도 하고 있구요. ‘이 주의 변론’은 얼마 전 양심적 병역거부 무죄 사건처럼 회원 분들이 진행하지 않았어도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사건들은 회원들의 변론에 도움이 되는 판결이라고 생각이 되면 공유하기도 해요.

민변 회원이 굉장히 많은 소송들을 하고 있거든요. 저희 센터를 통해서 잘 수합이 안 되는 경우들이 있어요. 회원 분들이 진행하셨다가 의미가 있는 혹은 공유하고 싶은 판결이 있다고 하면 저희 민변 공익변론센터 이메일 [email protected]여기로 알려주시면 저희가 엄격한 선별 과정을 거쳐서 회원들에게 소개를 할 예정입니다.

송상교: ‘이 주의 변론’이나 ‘이궁’이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지만 기존의 자료들을 잘 조직해서 소통하게하는 의미가 있죠. 센터가 민변 변론의 허브가 되어야겠다, 그런 고민을 하고 있어요. 민변하고 연대 활동을 많이 하셨던 진보넷의 장여경씨 같은 분도 저번 운영위원회에서 “아니 민변에서 이렇게 많은 변론을 하고 있습니까” 하고 물어보시더라고요. 그 중에서 몇 퍼센트나 우리 회원들이 공유가 되고 있을까요? 가만히 살펴보면 너무 많은 땀들이 거기에 응축되어 있는데 이런 것들을 가능한 범위 내에서라도 회원들과 공유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좋은 판결이든 나쁜 판결이든 회원들이 한 번 보고 자기가 하는 변론에서 ‘응용해봐야겠다’라고 할 만한 것들이 담겨있는 거면 최대한 소통을 해야겠다고 생각한거죠. 아마 회원들이 그런 자료에 대한 욕구가 있었던 것도 같아요.

이혜정: <이 주의 변론>이나 <이것이 궁금해요>의 선정 기준이 있나요?

조영관: 입소문이죠.(웃음) 저희가 지금까지는 각 위원회나 저희 변론센터 내에서 알음알음으로 회원 분들이 진행하시는 사건에 대해서 정보를 받아서 소개하고 있고요 간혹 가다가 이 주의 변론을 읽으시는 분들 중에 본인의 사건을 소개해달라고 의뢰해오는 경우도 있어요.

회원을 위한 공익인권변론센터 사용설명서!

 

이혜정: 그러면 지부 회원이나 신입 회원들이 ‘나도 민변의 공익변론활동을 접하고 싶다’고 하면 어떻게 참여할 수 있을까요?

송상교: 센터가 만들어진 후에 민변의 변론을 배분하고 지원하는 기능은 많이 확대된 것 같아요. 저를 포함해서 상근자가 네 명이 있고 민변의 회원들이 같이 할 만 한 사건들은 최대한 회원공지를 해서 많이 알리고 있거든요. 요즘은 실질적으로 참여하실 분들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때로는 우선지원 순으로 하기도 해요.

그런데 아쉬운 게 사실 개인적으로 말씀을 나눠보면 민변 변론에 참여하고 싶은 욕구가 있으셔도 막상 기회가 되면 손드는 건 되게 쑥쓰러워하시는 거 같아요. 민변 변호사들이 샤이하다 이런 평도 예전부터 있었거든요.(웃음)

제 생각에는 이런 사건을 해봐야 어떤 느낌인지도 알고 다음에도 참여할 수 있다고 봐요. 이수연 간사님께서 관리하고 있는 공익인권변호사단이 있습니다. 기존의 민변이 집회라든가 이런 접견 상황이 생기면 변호사 접견을 하고 그랬었는데, 그것을 좀 더 확대하고, 또 간단한 집회 혹은 표현의자유로 인해서 기소된 분들의 변론을 맡는다거나, 이런 일상적인 공익인권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틀입니다. 저희가 신청기간을 정해서 신청을 받긴 했지만 언제든 센터로 연락을 하시면 공익인권변호사단에 가입하실 수 있고, 저희가 일상적으로 드리는 사건에 참여하실 수 있는 기회가 있어요.

또 민변의 공익인권 기금이 있어요. 그리고 회원 누구나 자신이 공익인권변론을 하고 싶을 때 내 사건을 민변 사건으로 해다오, 의뢰인이 여러 가지 경제적 어려움이 있거나 한 상황이니 기금을 지원을 해다오하고 신청할 수 있는 제도가 있거든요. 필요한 변론들을 할 수 있는데 요긴한 근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제가 보기엔 유용한 거 같아요. 총회 자료집에 민변 변론규정이 있구요, 거기에 보면 신청서가 있어요. 그다음에 또 표현의 자유 사건 같은 경우에 표현의 자유 기금 규정과 신청서가 따로 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이용하시면 되고 궁금하시면 전화하시면 되죠. 522-7283.

공익인권변론센터의 애로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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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정: 센터가 개소한지얼마 안 됐지만 혹시 애로사항이나 힘든 부분은 없으셨어요?

조영관: 저는 민변에서 처음 일을 하는 거거든요. 상근하시는 분들은 민변에서 일을 하셨거나 오랫동안 해보셨던 분들인데…. 저는 4월달부터 공익인권센터에 월요일, 수요일 들어오는데 정말 깜짝 놀랐거든요. 일이 엄청 많고, 송아람 변호사 같은 경우는 거의 전화를 계속 붙잡고 있고…

사실 변론센터를 만들고 가장 필요한 것들은 공익 변론의 기획인데, 사실 기획을 하려면 일상의 여유들이 좀 있어서 좀 둘러보고, 뭐가 좋을지 고민도 해보고, 같이 머리도 맞대고, 토론도 해보고 해야 하거든요. 지금 공익변론센터가 생긴 지 한 3개월 정도 되는데 당장 해야 하는 일이 너무 많아서 차분하게 기획한다거나, 하는 짬을 만들지 못하고 있는 게 제일 아쉬운 부분이죠. 그건 좀 개선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송아람: 사실 조영관변호사님 말씀처럼 공익변론센터의 가장 큰 존재 이유는 기획소송을 활성화하는 거예요. 그런데 여기 앉아있는 사람들이 기획소송 거리를 찾아내기는 굉장히 어려우니까 저는 시민들께 공익소송이 될 만 한 것들을 제보 받는 형식을 굉장히 중요시 하거든요. 사실 이메일이나 편지나 전화로 상담을 하다 보면우리 입맛에 맞는 사건은 그렇게 많지 않고, 그렇다고 또 완전히 ‘딱 봐도 상대할 사건이 아니다’ 이런 것도 많지 않고 대부분 사건은 그 어딘가 하나에 걸쳐있는 경우가 많아요.

사실 그런 사건은 민변이 해오지는 않았는데, 이제 공익변론센터라는 게 만들어졌으니 회원분들도 그런 사건들을 좀 접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민변에서 약간의 기금이라도 지원해주고 적절하게 사람을 붙여서 공익 사건 등으로 어려운 상황에 있는 분들을 우리 모임을 통해서 도울 수 있다, 이런 느낌을 주고 싶은데 그 매치시키는 작업을 생각보다 굉장히 어려워요.

그리고 저희가 제보하신 사건이 민변이 맡아서 진행하기에 부적절하다고 판단했을 때 그걸 또 말씀을 드려야 하는 것도 굉장히 어렵죠. 사실 시민들 기대에 어긋나는 답변을 드려야 하는 게 어려워요

송상교: 사실 송변호사가 우리 중에는 상담을 제일 많이 하시고, 제일 열정을 가지고 하고 있어요. 시민들하고 소통해서 의미 있는 소송을 기획하는 그 자체가 의미 있는 시민에 대한 인권지원 활동이죠.

센터가 생긴 지 몇 달 안 됐지만,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참 커요. 어쨌든 센터가 만들어지니까 회원들도 거기에 대해서 기대를 하고, 또 시민들도 크게 기대를 하는데, 아직까지는 과도기인 것 같아요. 공익인권변론센터가 앞으로 어디로 갈지는 모르겠는데 아직 사무처 업무도 함께하고 있는 상황이고, 매우 급하지만 실무적인 일들을 해야 될 게 아직 많이 있어요.

센터가 기본적인 역량 축적 단계를 넘어서 일 년에 서너건 정도 의미 있는 기획소송을 지속적으로 하는 상태가 되면 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가 자리를 잡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거 같아요. 이 센터가 앞으로 자리를 잡으려면 시민이나 시민단체를 통해 현장에서 나오는 사례들로 소송을 기획할 수 있어야 하고 변호사들끼리 앉아서 신문 본다고 되는 일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앞으로 더 시간을 내서 시민들을 만나고 현장에도 가보고 단체들도 방문해보려고 합니다.

회원들도 자그마한변화지만 ‘이주의 변론’ 같은 게 생기면 좋잖아요. 회원들이 변론에 대해서 평소에서 생각들을 많이 하세요. 술자리 같은 데서 ‘이런 변론 해보면 어떨까’, 이런 얘기들을 많이 하시는데 그런 것들을 센터로 주시면 저희가 그런 것들을 고민하고 기획하는데 큰 힘이 될 거 같은데 아직까지는 ‘쌍방향 소통이라는 게 쉽지 않구나’, 그런 생각을 많이 해요.

민변의 공익인권변론센터, 그 의미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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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정: 공익변론을 하는 곳이 공감도 있고, 희망을 만드는 법도 있고, 회원들은 아니지만 변협에 이런 공익재단도 있죠. 이런 곳들이 요즘 많이 늘어나는 추세인 것 같아요. 민변의 공익변론센터가 다른 곳과 차별화된 지점은 무엇일까요?

송상교: 기존의 공익 전담 변호사 그룹들과는 서로 상호보완, 상호협력관계인 것 같아요. 기존의 공익전담변호사그룹은 다양한 분들이 모여서 구체적인 공익인권의 주제를 중심으로 활동을 하시잖아요.민변은 하나의 시민사회단체, 인권단체로서 특정한 주제에 집중하기보다 우리 사회의 전체적인 인권을 위해서 역할을 하는 것이고, 민변에 가장 많은 정보가 축적되고 가장 많은 변론이 여기를 중심으로 이뤄져요.

그래서 민변에 공익인권변론센터가 만들어짐으로 해서 기존의 공익인권전담 변호사 그룹들에게는 변론의 정보를 제공하고 소통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민변이 자체적으로 센터에서 특정 주제를 특화를 해서 할 것인지도 우리가 면밀히 살펴봐야 할 거 같아요. 공익변론의 공백 부분이 있다면 일이 잘 시작될 수 있도록 초기 세팅을 할 것인가 이런 고민이 우리한테 놓여있는 과제인 것 같아요.

이혜정: 변론센터가 회원, 시민과의 접점에서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한 계획은 어떤가요?

개인적인 아이디어로는, ‘이주의 변론’을 반기별로 묶어 회원들에게 배포하거나, ‘이궁’도 계속 자료를 축적해 ‘변론팁’이라는 소책자를 만들어도 좋을 것 같아요.

송상교: 지금은 낮은 단계의 축적을 하는 상황인 거 같고요. 이런 축적들이 지금 당장은 큰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여도 쌓이면 대단히 큰 자산이 되는 것이라고 봅니다. ‘이주의 변론’ 같은 코너도, 예컨대 민변이 연말이 되면 ‘올해의 판결’ 이런 거 하잖아요 좋은 거, 나쁜 거. 사실 예전에는 민변 11월쯤 되어서 뭐가 있지 막 찾아보고 이랬는데 <이주의 변론>이 3월부터 계속 쌓이면 매주 올라오는 것을 확인함으로써 제대로 된 판결을 선정할 수 있을 거예요. 마찬가지로 이제 우리가 ‘이궁’ 이런 것 중에 궁금한 변론의 팁이라든가 이런 것들을 모아서 변론 매뉴얼을 만들어볼 생각이에요. 형사, 민사, 각 주제별로 했던 거.

그런 것들이 일정 단계가 되면 의미 있는 매뉴얼이 되고 매년 업데이트가 되겠죠. 디지털도서관도 이번에 처음으로 틀이 만들어지는 건데 사실 틀만 만들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자료가 계속 쌓여야죠. 이주의 변론 같은 것들이 자연스럽게 거기로 들어가게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리고 민변이 제일 못하는 게 사실 뭔가 알리는 거예요. 활동가들도 민변이 제대로 무슨 활동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는데 어떻게 하면 시민들에게 ‘아, 민변이 이렇게 많은 활동을 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게끔 민변의 활동을 알리고, 시민들의 얘기를 들을 수 있을까 그게 가장 큰 고민이에요.

이혜정: 그러면 이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회원이나 시민에게 당부드리고 싶은 말 등 가볍게 정리하고 마무리 지을께요.

이수연: 소장님 말씀대로 위상도 더 높아지고 일도 더 많아질 텐데 거기 사업들이 원활하게 잘 진행될 수 있도록 변호사님들 돕는 제 역할도 많이 무거워질 거 같아요. 역량도 부족해서 굉장히 걱정도 많이 되는데… 변호사님들과 함께 잘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송상교: 제가 사실 다른 인터뷰에서도 정부법무공단 얘기를 많이 하거든요. 처음에는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였는데 계속 같은 일을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엄청난 힘을 발휘하는 괴물같은 조직이 되어버렸고, 대법원 판결도 바꿔내고 있는 상황이에요. 이제 역량 있는 변호사 개인의 힘으로는 돌파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여럿이 모여서 조직화된 활동을 해야 이런 것을 넘어설 수 있는 논리를 만들고 정보를 축적할 수 있다는 거죠. 저는 그래서 센터가 중요하다고 봐요.

그러다 보니까 많은 분들이 센터에 기대를 하시는데, 센터가 많은 우여곡절을 거쳐서 만들어진 거라서 개인적으로도 부담이 돼요. ‘말아먹으면 안 되는데, 뭔가 좀 성과를 남겨야 하는데’ 라는 생각이 들고 조바심이 많이 나요. 그런데 한 편으로는 ‘성과주의에 빠지면 안 되겠다’라는 생각도 되게 많이 해요. 몇 년이 될지 모르겠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 ‘센터가 의미 있는 활동이었구나’라고 평가받는 게 중요한 거지 지금 당장 의미 있는 가시적 성과를 내는 게 중요한 게 아닌 거죠. 그래서 회원 여러분도 함께 좀 호흡으로 보시고 많이 도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송아람: 저는 회원들께서 좋은 사건이라고 생각이 되시는데 여러 가지 사정으로 변론하는데 망설이고 계신다라든지 아니면 민변 회원으로서 좋은 공익활동 해보고 싶다 하시면 언제든지 센터로 전화 주시면 최대한 같이 할 수 있는 방안 찾아볼 테니 언제든 전화 주시면 좋겠습니다.

익명: 서울지방변호사협회 프로보노지원센터가 얼마 전에 생겼는데, 유수의 로펌이 여기에 매달 얼마씩 기금을 후원하는 시스템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가 조금 더 성장하고 그 기능을 조금 더 충실하게 또 하려면 지속적인 투자가 이뤄져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민변에서 말씀하셨던 신입변호사 교육프로그램 등을 센터에서 진행하려면 예산도 있어야 하고 인력도 충원되어야 해서 간단치만은 않거든요. 지금은 어렵게 빠듯하게 첫발을 떼고 있지만 이런 취지들을 잘 읽어 이해하신다면 훌륭하신 선배님들의 따뜻한 후원과 이런 게 현실적으로 좀 이루어져야 되지 않나, 이런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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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정 : 갑자기 지원이 막 몰려들 것 같은데요(웃음). 이상 오늘 인터뷰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월, 2016/06/27-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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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 변 대 담: 선배에게 길을 묻다

민변 회원이 1,100명에 이르렀다. 누군가는 아프니까 청춘이라지만 아픈 청춘을 겨우 버텨냈더니 혹독한 청년 변호사의 삶이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티도 낼 수 없다. 난 변호사니까. 그런데 또 막막하다. 이럴 때 따스한 봄밤의 북두칠성 같은 길잡이가 나타나 길을 헤매지 않도록 안내해주고, 속내도 시원스레 얘기해 주는 선배가 있었으면 정말 좋겠다. 민변 회원이 늘어난 만큼 같은 고민, 같은 궁금증을 가진 후배들이 부쩍 늘어났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준비했다. 선후배 대담, “선배에게 길을 묻다”

chapter1. 선배 [先輩] : 지위, 나이, 덕행, 경험 등이 자기보다 앞서거나 높은 사람

태양마저도 녹아버릴 것 같은 타는 여름의 한 가운데에서 선·후배 변호사 4명이 어색하게 마주 앉았다. 류신환, 조숙현(연수원 30기) 변호사와 이 두 선배를 만나러 온 후배 심재섭(연수원 44기), 김경은(변시 5회) 변호사는 민변에 대해서도, 선배들에 대해서도, 변호사의 업무와 일과에 대해서도 궁금한 것들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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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섭(이하 심): 저는 홍대 앞에서 사무실을 개업했습니다. ‘법률사무소 단’이라고, 딸 이름을 따서 지었습니다. 임신 중이었던 아내랑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합정동 카페거리 근처까지 갔는데 비가 내려서 거리 분위기가 참 운치 있고 좋더라고요. 그런 동네라면 출근할 맛이 나겠다, 이런 생각이 들어서 아내랑 “여기로 하자”고 결정했습니다.

아직은 철이 없어서 그런지 수입에 대해 크게 마음이 초조하거나 하진 않습니다. 선배 변호사들이 종종 “수임료를 이 정도는 받아야 한다” 같은 조언을 해주시는데 아직 수임료나 수입 면에서 그 정도에 미치지는 않습니다. 강문대 사무총장님이 커피를 사주시면서 “자네, 월급 500만 원은 가져가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뭔가 잘못된 거다”라고 하시더라고요. 아직까진 계속 잘못되어있는 거 같습니다(웃음)

류신환(이하 류): 저는 공익법무관 생활을 하고 2004년부터 변호사 활동을 시작했거든요. 저는 취업을 해서 고용변호사로 시작했어요. 저는 고용이 안 되면 개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내가 개업해서 잘 할 수 있었을까?’라고 생각해보면 아니었을 거 같아요. 지금은 내가 개업을 하면 잘 할 것 같은데, 그때는 아니었어요. 이렇게 말하면 조금 미안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사실 개업 변호사로 시작하는 게 아니라 취업을 하는 것으로 시작하면 변호사 생활을 시작하는데 있어서 어떤 버팀목 같은 게 있는 것과 같아요. 심 변호사가 나보다 훨씬 더 독립적으로 잘 크고 있는 거지.

김경은(이하 김): 저는 변호사시험 5회 합격하고 대한변협에서 연수를 받다가 지금은 법무법인 향법에서 실무수습으로 3일째 일하고 있어요. 지금 현재로서는 고용으로 취직을 생각하고 있는데 변호사님 말씀 들으니까 저도 개업 쪽으로 생각이 기우는 거 같네요.(웃음)

저는 여성위원회 활동 하면서 조숙현 변호사님을 많이 만나 뵙고 있어요. 그런데 민변의 선배 변호사들을 만나고 대하는 것이 어렵더라구요. 잘못했을 때는 ‘혼나면 어떡하지?’하는 생각도 들고….

조숙현(이하 조): 그럼 혼나면 돼.(일동 웃음)

김: 그게 무서우니까…….(웃음) 아무튼 민변 선배님들과 어떻게 하면 친해질 수 있는지 궁금해요.

조: 그게 어렵지. 여성위 엠티를 안와서 그래요.(웃음) 우리가 힘든 일을 하고 있으니까 마음이 안 좋고, 회의 때 모니터링 하면 이상한 댓글들 읽고 있어야 하고, 그러니까 회의 때는 표정들이 안 좋아져요. 그런데 MT나 송년회 같은 친목 행사 자리에서 후배들을 보면 평소에 사건들을 통해서 만나는 것보다 편하죠. ‘실수하면 어떡하지’ 하는 건…… 실수를 안 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실수를 하면 지적도 받고, 선배들도 다들 그렇게 실수하면서 컸어요.

김: 최근에 강남역 사건 관련해서 선배 변호사께서 저한테 경찰에 제출한 서류의 복사를 맡기셨어요. 그런데 제가 컴퓨터에 파일로 저장되어있는 서류를 굳이 복사해서 가지고 있어야 하는지 이해를 못해서 그걸 안 한 거예요. 그러다가 갑자기 그 분이 경찰에 제출한 서류의 사본이 필요하다고 하시더라고요. 이런 실수를 하고 나면 저 때문에 선배 변호사들의 일이 많아지니까 죄송한 생각이 들어요.

조: 그럼 ‘최종 제출본의 사본을 내가 꼭 갖고 있어야하는구나’라는 사실을 하나 배운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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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 사실은 변호사라는 게 사건들이 쌓여가면서 시야가 더 넓어지는 거 같아요. 우리가 이전에 법률공부를 하고 실무공부를 하고 했지만 그건 그야말로 공부 수준에 있는 거고 이게 내 걸로 만들기 위해서는 현실에서의 숙련이 필요한 거죠. 변호사 업무 했을 때 많아봐야 1년에 몇십 건이나 하겠어요? 그 중에는 법률적인 내용이 서로 겹치는 사건도 많고, 변호사가 하는 일 중엔 굉장히 간단하고 단순한 업무도 많잖아요. 사실은 우리가 배웠던 많은 법적 이슈들을 실제로 경험하는 건 많지 않다고요. 제일 좋은 건 내가 사건을 맡아서 깊이 공부하는 거죠. 그 사건과 연관된 다른 판례들을 열심히 공부해보고, 이 사건에서 이 부분을 어떻게 하면 결과가 어떻게 달라질지 스스로 깊이 있게 공부하는 것이 제일 좋은데 또 공부나 경험이 부족하면 그것 자체도 쉽지 않잖아요.

그래서 저는 법률신문 추천해요. 판례공보는 판례 자체니까 잘 안 들어오잖아요. 그런데 법률신문은 기사 형식으로 제공하니까 좀 더 실감나고 흥미 있게 읽을 수 있어요. 법률신문 일주일에 두 번 나오는데 굉장히 많은 사건들이 나오거든요. 그걸 잘 공부하면 베스트지만 이런 사건이 있구나, 이런 법적 문제가 있구나 하는 것만이라도 차곡차곡 쌓아두면 몇 년이 지나면 어느새 자기가 확 달라져있는 걸 느낄걸요.

chapter2. 자랑과 멀미

심: 저는 선배님들 자랑하는 게 되게 듣고 싶어요. 사실 저는 자랑하는 걸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후배들 만나면 엄청 뻥튀기 하면서 허풍을 치기도 하고요. 가끔 판결 잘 받은 거 있지 않습니까. 그런 거 사무실 책상에 쓱 올려뒀다가 “아니 뭐 이런 걸” 하고 시치미 떼고 그래요(웃음). 저는 아직 젊고, 후배들하고 나이 차이도 많이 안 나는데도 가끔 후배가 어린애처럼 보일 때가 있더라고요. 그런데 민변에서 강연하시는 선배님들은 저한테는 정말 높은 선배님인데 꼬박꼬박 존댓말 해주시고, “원래 그런 사건이고 저는 그저 열심히 했을 뿐”이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모두 이렇게만 말씀하시면 어떻게 ‘드라마’가 탄생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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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사건이 잘 마무리되어도 내가 잘해서 좋은 결과를 얻었다는 생각은 잘 안 드는 거 같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일을 하면서 ‘결과가 잘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좀 더 많이 드는 사건은 ‘내가 뭔가 부족하지 않았을까?’ 라는 걱정이 많이 들고요.

지금까지 일을 하면서 기분 좋은 경험으로 남아있는 건 이혼사건이었는데 4살 정도 되는 아이를 남편이 데리고 있으면서 아이를 못 만나게 하는 상황이었어요. 엄마는 이 아이를 데려오고 싶다는 의지가 굉장히 강했고요.

우리나라 재판 경향이 이혼소송과 별거 기간 중에 양육하고 있는 측이 주양육자가 되도록 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처음에 사전처분 자체에서 굉장히 이례적으로 면접교섭을 길게 하면서 재판 결과 엄마가 양육자 지정을 받았어요. 처음 사건을 시작할 때 이 사람의 모습은 아이를 뺏기고 힘든 결혼생활을 보냈던 것 때문에 너무 핼쑥하고 초췌했거든요. 재판이 애가 5살 때 시작해서 초등학교 입학할 때 끝났어요. 근데 아이를 데리고 오고 나니까 얼굴이 정말 화사하게 피는 거예요. 그 사람 재판 끝나고도 2년에 한 번씩 찾아오고 그랬어요. 어떤 사람의 인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게 되게 기분 좋았어요.

심: 그러고 나면 자랑하고 싶은 생각 안 드세요? 저는 무죄 판결 받으면 연수원 교수님들한테 자랑하고 그러거든요. 검찰 교수님한테 교수님 어제 누구 검사 장난 아니었다고 위로해달라고, 잘 키웠다고 칭찬해주시라고 그러고. 저희 아내는 법조계가 아니니까 내가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잘 모르거든요.

조: 사건이 하나 끝나고 나면 그 사건 관련 기록을 볼 때마다 멀미가 나요. 사건이 상고심쯤 가면 사건 자료를 보면서도 그렇고요. 가끔 여성위에서 옛날에 있었던 사건을 가지고 월례회를 할 때가 있는데 끝난 지 얼마 안 된 사건을 보면 속이 울렁울렁하고 그래요.

chapter3. 민변은 괴로워(?)

심: 변호사로서 일하면서 민변인 걸 드러내는 게 불편했던 적이 있나요? 전 가끔 관공서를 갈 일이 있거나 그러면 신경 쓰이거든요.

류: 전 직장에 있을 때 큰 기업들이 클라이언트일 때가 많았어요. 그때 우리 사무실이 민변 계열의 사무실, 민변 회원이 많은 사무실이라고 인식되는 게 싫었어요. ‘민변=반 기업’이라고 사회적으로 오인되는 경우도 있었다고 느꼈기 때문에. 그럴 때는 위축됐죠. 민변이 아니라고 거짓말하지는 않지만 언급을 안 할 때가 많았어요.

심: 요즘은 그냥 검색 같은걸 많이 하더라고요. 작년에는 특히 더 민감했는데, 사건 하나하나가 아쉬운 상황에서 할아버지들이 검색해 보시고 전화하시고 그랬거든요. 최근엔 그런 전화 하시는 분들은 어차피 나한테 사건을 의뢰할 분이 아니라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조: 어차피 변호사 업무를 하면서 민변 관련된 사람만 만나는 건 아니니까요. 나는 민변 활동을 비공개로 하는 회원들도 존중해요. 민변 활동을 공개적으로 하면 직장을 떠나야 할 수도 있으니까. 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정도의 활동을 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류: 오히려 그런 경우도 있지 않나? “민변 변호산데 이런 식으로 해도 되냐” 라는 식으로.

조: 나는 공익 사건을 무료 혹은 저가로 생각하는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게 공익적인 의미가 있다는 이유로 무조건 무료 변론을 해야 할 필요는 없어요. 그 사람이 지불할 만한 능력이 있으면 당당하게 요구해야 해요. 정말 사회적 의미가 있어서, 그 사람 개인이 아니라 사회적이거나 제도적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서 돈을 받지 않더라도 그 일을 하겠다는 결의가 있다면 하면 돼요. 하지만 나한테 너무 무리가 되면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해요. 특히 어느 정도 지불능력이 있는 공익 재단들이 장애, 여성, 아동, 노동과 관련된 일이라는 이유로 긴급한 구조가 필요한 영역이 아닌데도 무료자문을 너무 당연하게 여기는 경우가 많아요. 저는 그런 식으로 변호사들의 공익활동이 이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혜정(이하 이): 혹시 공익 사건을 하면서 사람들로 인해 실망하거나 상처받은 적은 없나요? 제가 최근 그런 일이 있어서요. 촛불집회 사건이었는데, 1심에서 유죄 받은 것을 제가 항소심 맡아 정말 열심히 해서 결국 무죄를 받았어요. 그런데 이 사람은 1심이 어떻고, 자기는 집회에 참여 안했다는 등 유독 집착이 심한 분이어서 법정에서도 제 서면과 다른 얘기를 하고…무죄는 받았지만 1심, 2심 모두 그 사람이 집회참여는 증거로 인정했는데 그게 잘못 됐다고 무죄 받고도 언성 높이며 따지는 거예요. 고맙다는 말은커녕 실랑이를 하게 되니 제가 참다 못 해 전화를 끊었어요. 그러고 나니 심장이 막 뛰고 한동안 일도 손에 안 잡히고…

조: 아니, 그거를 당연하게 생각한 사람이 이상한 거고. 내가 이렇게 엄청난 일을 했다는 걸 알려줘야 돼요.

이: 제가 아직 도량이 안 돼서 그런 사람을 못 다루는 건가 싶기도 하고요.

류: 그런 사람에게는 보답을 못 받는다는 걸 알아야 해요. 그 보답은 그 사람이 아니라 이 사회의 다른 사람들이 줄 거예요. 보답을 바라는 건 인지상정이지만, 그 보답을 다른 사람들이 받는 보통의 방식으로 받기를 바란다면 그런 보답은 기다려도 오지 않아요. 대신 다른 방식의 보답은 오죠.

심: 가끔은 너무 화가 나서 욕이라도 하고 싶은데, 상대가 제가 민변 변호사라는 걸 알잖아요. 내가 상대에게 욕하는 게 ‘민변이 일반인한테 욕을 한다’ 이런 상황이 될까봐 고민이 들어요. 한 번은 이런 적도 있었어요. 간사님 그 진상 있었잖아요?

김서정: 제가 출근 일주일 쯤 됐을 때였는데, 북한 해외식당 탈북 종업원 사건으로 한창 시끄러울 때였거든요. 야근 할 때는 사실 사무처로 오는 전화 안 받아도 되는데, 혼자 야근하다 무심코 전화를 받은 거예요. 그런데 그 분이 너무 진상인 거죠. 끊으면서 화가 나서 아무도 없는 줄 알고 혼잣말로 욕을 했는데 마침 심 변호사님이 들으셨어요.

심: 그 사람이 다시 전화를 했길래 제가 받아서 욕을 좀…… 했었나? 근데 끊고 고민이 되는 거예요. ‘아, 이게 내 사무실이 아니었는데……’ (일동 웃음) 그리고 몇 주 뒤에 채희준 위원장님이 탈북자들, 납북자 가족들과 인신구제청구소송 건으로 면담을 하셨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저는 분명히 부당한 일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민변의 선배 변호사님들은 ‘허허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어가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조: 이런 경우에 일일이 대응하며 에너지를 소모할 필요가 없어요. ‘전화 끊겠습니다’ 하고 끊으면 돼요. 시민들이 진보에게 요구하는 수준이 도덕적 너무 높아요. 사소한 걸로 트집이 잡혀서 이상하게 내가 사랑하는 조직에게 피해를 줄 수 있거든요. 그런 상스러운 말에 똑같이 대꾸를 해봐야 나만 힘들어요. 우리가 왠지 상대방 말이 안 끝났는데 끊으면 안 될 것 같잖아요? 그럴 필요 없어요. 욕하면 끊으면 돼요.

chapter4. 우리 서로 친해지길 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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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 사실 민변에 있는 변호사님들은 되게 훌륭하다는 선입견이 있잖아요. 그런데 그런 생각도 사실 편견이죠, 편견. 막연한 존경심 같은 것으로 선배들을 대하다 보니까 어려웠던 것 같아요. 저 선배들이 기대하는 후배가 되고 싶은데 아무도 없는 방에 혼자 나를 까발려놓고 보면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 거지. 아직도 그런 사람이 아니고 앞으로도 그런 사람이 되지 못할 것 같고. 뭔가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인 것 같고. 그래서 자꾸 회피하고 싶고, 그런 것들이 관계를 더 어렵게 하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지금 돌아보면, 민변에서 민변 회원으로 활동을 한다는 게 꼭 정해진 객관적 기준을 충족해서 인격적으로나 업무적으로 훌륭한 사람들만 하는 것은 아니에요. 어느 면에서나 훌륭하신 분들도 있지만, 꼭 그런 분들만 있는 건 아닌 거죠.

조: 어떤 면에선 다들 훌륭하신 분들이에요. 그런데 그게 어떤 이상향의 존재는 아니라는 거죠. 사람에 대해서 어떤 이상향을 상정해놓고 그 사람을 바라보면 그 사람이 가진 인간적인 부족함이나 그 분이 잘 모르는 어떤 부분에서 갖고 있는 잘못된 생각에 굉장히 큰 배신감을 느끼고 그 사람의 모든 걸 다 부정할 수도 있거든요. 그 선배들은 하나하나가 훌륭한 점이 있어요. 그런데 그게 모든 부분에서 다 그런 것은 아니다, 그런 거죠.

류: 솔직하게 소통하는 게 참 중요한데, 예를 들면 지금 우리 사이에 나이나 경험의 차이가 있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금 소통할 준비가 되어있어요. 나이든 세대가 젊은 세대와 소통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그런데 이건 일방적인 열림이고 (젊은 후배들한테) 어떻게 다가가는 게 좋은지 잘 모르죠. 생각이 다르고 경험이 다르고 마음 터놓는 게 다르기 때문에 조금 더 노력해야 하는 게 분명하지만 어쨌든 민변 선배들도 후배들이 먼저 다가와주기를 원할 수 있어요. 그걸 알아차려준다면 선배들과 관계를 이어가는 열쇠를 얻은 것과 다름없죠. 우리의 마음을 알아차려준다면. 알아줬으면 좋겠네.(웃음)

조: 어떻게 하면 ‘꼰대’ 소리 듣지 않으면서 후배들하고 친해질 수 있을까. (선배 변호사들도) 그게 고민이죠.(웃음)

심: 저는 선배 변호사 분들이 어려워서, 카톡하시면 사무실 직원 통해서 지금 선배님 통화 가능하신지 여쭤보고 답장하고 그랬거든요. 뭔가 먼저 말씀드리는 게 어렵기도 하고, 또 제가 그 분들이 얼마나 바쁘신지 눈에 보이는데 그냥 연락드리기가 죄송스럽기도 하고요.

조: 후배들이 ‘다나까’ 말투로 이야기하고 경직되게 대하면 좀 거리감을 느끼고, 나한테 다가오지 말라는 메시지로 느껴져요. ‘저 친구는 나이 많은 우리랑은 어울리고 싶지 않구나’(웃음) 하는 마음도 있고.

내가 생각하는 민변의 좋은 점 중 하나는 말이 통하는 사람들이랑 일상적인 이야기까지 함께 나눌 수 있다는 점이에요. 말이 통하는 사람들이 사실 많지 않거든요. 그런데 민변에서 말 통하는 사람들과 정기적으로 만나서 내가 만난 진상 의뢰인들이나 잘못된 정부정책도 욕하고, 아이 키우다 아이랑 싸운 이야기도 하고요, 정기적으로 만나 정말 모든 걸 다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 생기는 거죠. 최근 들어 후배들이 특히 깍듯하게 대하는데, 내가 나이가 들었나 싶기도 하고 불편해요.

가끔 그냥 무작정 찾아와서 제가 하는 일을 물어보는 친구들이 있어요. 로스쿨 학생이 찾아온 적도 있고, 중학생이 찾아온 적도 있었고. 제 친구 아이들이 중학생 쯤 되면서부터 직업 탐방을 할 때 저를 찾아오는 친구 아이들이 많았거든요. 그게 아니더라도 대개는 부모님을 통해서 찾아오는데. 그 아이는 그냥 나를 검색을 해서 나한테 메일을 보낸 게 너무 기특한 거지. 사실 메일 내용이 다짜고짜 자기가 언제 언제는 연락이 안 되고 문자로만 연락할 수 있다고 그러는데…(웃음) 그런데 그게 너무 예쁜 거예요. 보통 다른 아이들은 부모의 소개로 만나서 면담을 했었지만 직접 알아서 메일을 보내는 그 용기가 너무 좋다고 생각해서 그 친구를 만났었죠.

두 분도, 저희 둘보다 더 위의 선배들에게도 아 저 선배님하고 밥 한번 먹어봤으면 생각이 들면 그냥 메일을 보내요. ‘인사드리고 싶어요’라고 하면 정말 바쁘면 ‘나중에 연락해라’ 라고 하시지 그냥 거절하지는 않으시니까 너무 어려워할 필요 없을 것 같아요.

이: 사실 오늘 후배님들이 선배님 만난다고 많은 질문을 준비했는데 한정된 시간 때문에 이쯤에서 마무리해야 할 것 같아요. 아쉽긴 하지만 다음을 기약하고 마지막으로 각자 소감 한 마디 부탁드릴게요.

류: 저는 언론위원회에서 초년차 후배님들과 얘기를 나눌 기회는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후배들과는 그럴 기회가 없었거든요. 오늘 해보니까 ‘소통의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실 이제 민변 회원이 많으니까 그런 소통이 좀 어려울 수는 있지만 오늘 얘기를 나누고 나니까 ‘나오길 잘했다’ 이런 생각이 들어서 좋았어요.

조: 선배 자격으로 인터뷰 섭외 연락을 받았을 때 ‘훌륭한 사람들이 많은데 왜 굳이 나를…?’ 이런 생각을 했어요. 제가 생각하기에 저는 민변 회원들 중에 중간에서 조금 아래, 이 정도의 활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그 정도가 조금 더 편했을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드네요.(웃음) 오늘 이야기 해보니 ‘후배들이 생각보다 어려워하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는 십년 차는 별로 멀게 느끼지 않고 있었거든요. ‘내가 조금 더 편하게 다가가야 되는구나’ 싶고요, ‘후배들이 생각보다는 나를 더 어렵게 여기는구나’ 하는 반성도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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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저는 민변 활동도 열심히 하고 싶고 선배 변호사 분들하고도 가까워지고 싶긴 한데 선배 변호사 분들을 대하는 데 약간 부담감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오늘 두 분 말씀을 들으니까 ‘내가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구나, 먼저 다가가야 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심: 저는 제가 두 분 선배님 년차가 될 때까지 민변 활동을 하고 있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요. 그다지 큰 재미도 없고요.

조: 그게 재미있는 거예요.(웃음) 이만한 재미가 있는 데가 없어요.

류: 다른 재미있는 게 없어요, 변호사 활동에.(웃음)

심: 그래서 ‘재미있게 해야지, 노력을 더 해볼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오늘 두 분과 말씀 나누면서 보니 크게 부담 갖지 말고 자연스럽게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함께 가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너무 초조하게 생각하지 말아야 겠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신입회원들이 늘어나면서 민변도, 회원도 이전과는 다른 방식의 소통이 필요함을 느낀 차에 서로 좀 더 가까워지기 위해 오늘의 자리를 마련했다. 처음의 어색함은 온데간데없이 쏜살같은 시간이 얄미울 정도로 민변의 선후배는 살가웠고, 서로 간의 할 말이 너무 많아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후배들은 서로 약속이나 한 듯이 다음 날 너무도 좋은 자리에 참여하게 되었다며 감사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서로를 위해 한 걸음 다가가려는 노력, 이것이 진정한 소통이 아닐까 한다.

혹시 또 다른 소통의 자리나 참여의 기회를 원하는 회원이 있다면 출판소통팀에 문의해주시길!

금, 2016/08/12-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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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 고향과 나름의 이유를 가진 이주민들이 우리 곁에서 살고 있습니다. 단일한 배경과 같은 기억을 가진 사람들끼리 사는 것은 이제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른바 우리는 문화 다양성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 다양함이 서로 어울려 조화롭게 돌아가는 사회를 ‘다문화 사회’라고 합니다. 다문화는 단일한 문화를 내세우는 것에 대치되는 상태 혹은 그 태도입니다.

1990년대 말, 국제결혼과 외국인 근로자의 이주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한국 역시 문화 다양성의 사회로 진입했습니다. <재한외국인처우개선법>, <다문화가족지원법> 등의 법률이 만들어지고,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설립 등 각종 정책이 쏟아졌습니다. 2006년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된 다문화정책은 이제 10년이 되어갑니다. 희망제작소는 새로운 시민으로 우리 곁에 찾아온 이주민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과 ‘함께’ 살아가려는 방법을 모색하고자 다문화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연구의 일환으로 지난 10월 말 두 이주여성을 만났습니다. ‘남양주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통번역사로 일하고 있는 이주여성 나랑체첵(몽골어 통번역, 6년째 근무) 씨와 주영애(중국어 통번역, 3년째 근무) 씨입니다. 나랑체첵 씨는 2004년에, 주영애 씨는 1997년에 한국에 왔습니다.

우리도 한국인이에요

사람들은 두 사람을 한국인으로 대하고 있을까? ‘혹시’하고 물은 대답은 ‘역시나’였다.

“말을 안 하면 잘 몰라요. 입을 열면 외국인이냐고 묻죠.” (나랑체첵)

유창한 한국어 실력으로 인사를 하던 주영애씨는 외국인이냐는 질문이 난감하다고 했다.

“저는 이미 귀화해서 한국인인데, 중국에서 왔다는 이유로 다들 외국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말하는 사람은 나쁜 뜻이라고 생각 안 하지만, 듣는 입장에선 상처가 되더라고요.” (주영애)

두 사람은, 요즘 많이 회자하는 다문화 가정, 다문화 아동, 다문화인이라는 말에 대해서도 할 얘기가 많은 듯했다.

“다문화라는 것은 여러 문화가 어우러진다는 아름다운 의미입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못 사는 국가의 여자들이 한국에 와서 결혼 못 하는 남자들과 결혼하는 것’이라고 인식되는 것 같아요. 끌어안아야 하는 짐, 부담처럼 보이는 것 같아서 아쉽습니다. 저는 20년 가까이 한국에 살고 있고, 또 한국인으로 살고 싶은데 말이에요.” (주영애)

주영애 씨와 나랑체첵 씨는 그동안 진행된 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지금은 그곳의 직원이 되어 일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다문화사업에 대한 의견을 들을 수 있었다.

“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생긴 지 10년이 되었거든요. 저는 센터가 처음 생길 때부터 이용해왔어요. 센터는, 열악한 환경에서 코리안드림을 위해 한국에 온 사람들을 끌어안기 위해, 그리고 그들을 한국 사람답게 만들기 위한 곳이라고 봐요. 그런데 자국민도 잘 챙기지 못하면서 왜 외국인에게 예산 낭비하냐고, 역차별 아니냐고, 한국인들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는데 왜 이주여성 일자리만 지원하냐며 반대의견이 나올 때는 너무 속상합니다.” (주영애)

▲ 남양주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 홈페이지(namyangjusi.liveinkorea.kr)

▲ 남양주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 홈페이지(http://namyangjusi.liveinkorea.kr)


눈치, 성과 압박, 해고의 두려움… 한국의 사회생활

구제대상으로 들어와서 한국 사람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것이 아니라, 당당한 사회일원으로 참여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안 보는 것 같다며 주영애씨는 토로했다.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일하게 되면서 왜 외국인에게까지 일자리 주냐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어요. 당시에는 소극적으로 대처했는데요. 속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각각의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일하는 외국인 직원은 1~2명이지만, 한국인 직원은 더 많다고요. 즉, 우리 같은 사람들 일자리가 한 개 생기면, 한국인들 일자리도 덩달아 더 많이 늘어나는 게 아닌가’라고요.” (주영애)

곱지 않은 시선에다 엄청난 경쟁률까지 뚫고 하게 된 통번역사 일이 할 만한지 물었다. 녹록지 않다는 표정이 두 사람의 얼굴을 스쳤다.

“통번역사 제도는 2009년부터 시작됐어요. 현재 전국에 300여 명의 (이주여성)통번역사가 있는데, 근무 기간이 짧아요. 우선 한국인들 속에서 적응하기가 어려워요. 행정업무 처리하기도 어렵고, 통번역 외에 센터의 다른 사업도 해야 하고요.” (나랑체첵)

‘일자리는 좋은데, 사회생활 자체가 어렵다’고 나랑체첵씨는 표현했다. 더 자세히 말해달라고 했다.

“우리는 눈치 없다는 말을 많이 들어요.” (주영애)

“그건 저도 인정해요.(웃음)” (나랑체첵)

한국의 사회생활에서 규정이나 매뉴얼보다 중요하다는 ‘눈치껏 잘하기’. 이들에게는 생소하고 어려운 문화인 것이다.

“직장 문화가 다르다는 것을 느껴요. 중국이나 몽골은 수평관계인데, 한국은 수직관계인 거 같습니다. 눈치로 배워야 하는 게 많아요. 이런 부분은 아직도 어렵죠.” (주영애)

“저는 행정적인 부분이 제일 어렵고 힘들었어요. 뭐 하나 하려면 기획서, 보고서 등 써야 할 게 엄청 많아서 처음엔 엄청 어려웠어요. 물론 하면서 엄청 성장했지만요.(웃음)” (나랑체첵)

눈치로 시작된 이야기는 일자리 처우 개선까지 이어졌다. 6년째인데 막내처럼 일해서 답답한 점, 최저임금이 안돼서 8시간에서 7시간 근무로 바뀌었지만 업무량은 여전하다는 점, 그런데도 성과는 전년 대비 늘 좋아야 한다는 점, 평가를 통해 하위 10%는 재계약에서 탈락하기 때문에 압박도 많다는 점 등 대한민국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이야기였다.

무엇보다 꿈에 그리던 ‘사무직’이고, ‘배울 수도 있는’ 일인데 유지하기 어려운 게 안타깝다고 두 사람은 말한다.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 사는 주영애 씨는 출근하는 데만 2시간 남짓 걸린다. 무려 4시간 가까이 걸리는 시간을 감수하며 일을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그는 한국 오고 20년 동안 안 해본 일 없을 정도로 고생했다며 눈시울을 붉히더니 대답했다.

“전문직을 선호해서 이곳으로 왔어요. 단순히 경제적인 것만 고려했다면 안 왔을 거예요. 지금까지 일한 곳 중 여기 급여가 제일 적으니까요. 그간 한국 생활을 하며 어려움을 겪은 한 사람으로, 다른 다문화가족에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주영애)

“한국 처음 왔을 때 남편의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았어요. 남편은 좋은 사람 찾아가라고 했지만, 나는 젊었으니 닥치는 대로 열심히 하면 되지 않겠느냐 말하고 정말 열심히 일했어요. 하지만 어려운 건 어려운 거더라고요. 그러다 통번역사 기회가 와서 정말 기뻤어요.” (나랑체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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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선배로 이끌고 다독여주기

한국생활에 적응하는 것은 무척 어려웠지만 자신들은 그 단계를 넘어 여기까지 왔으니, 자신과 같은 길을 걸어갈 이주여성을 돕는 일을 하고 싶고 또 잘할 수 있다고 했다.

“결혼이민자들의 입장을 잘 알고 있고, 시행착오도 먼저 겪었으니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크죠. 또 그들 입장에서도 우리가 다가가는 게 더 편하지 않을까요? 제 도움을 받은 사람이 고마워하거나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 저 자신이 쓸모있는 사람으로 느껴져요. 그게 가장 큰 보람이고,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죠.” (나랑체첵)

“저는 (통번역사 일을 한 지) 만 3년 차에 접어들었는데 그동안의 저 자신을 평가하자면, 놀랄 만큼 많은 성장을 했다는 거예요. 가장 값진 건 한국에서 직장다운 직장을 처음 가지게 된 거죠. 이전에 15년 일했던 것 이상의 의미가 있어요.” (주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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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양주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 ‘다문화가정 서포터’ 회의 모습. 서포터들은 이주여성들이 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돕는다.

두 사람은,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겪었지만 한국에 잘 정착해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자신들의 이야기가 다른 이주민들에게 힘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제가 느끼는 보람은, 고통의 시기를 겪고 있는 이들이 잘 정착할 수 있도록 앞에서 줄을 끌어주는 것 같은 느낌에서 비롯되는 것 같습니다. 또한 이 사람들에게 제가 교훈이 될 수 있다고 봐요. 어떻게 하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을까 보여주는 것입니다.” (주영애)

경기도의 경우, 이주여성의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이용률은 18% 정도다. 두 사람은 숨어있다시피 하는 여성들을 발굴해서 연결하고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은행, 버스 이용 등의 생활 지원을 하고요. 프로그램에도 참여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있어요. 제일 중요한 건 잘 안아주고 다독여주는 것인데, 제가 결혼이민 선배다 보니 정보도 많이 주려 하고 잘 이해해주니 많이들 따라오시더라고요.” (나랑체첵)

“작년부터 검정고시반을 맡아서 하고 있어요. 15명이 참여해서 11명이 초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졸업장을 수여했는데요. 다들 마치 대학 학사학위를 받는 것처럼 기뻐하시더라고요. 덩달아 저도 뿌듯했죠.” (주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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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양주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 ‘검정고시반’ 주말 스터디


실질적으로 무언가 할 수 있도록

결혼이주여성들이 목말라 하는 정보 대부분은 취업과 관련된 것이라고 한다. 취업도 중요하지만 언어나 한국의 문화를 먼저 익히는 게 필요한 것이 아니냐는 시각에 관해 물었다.

“물론 언어도 중요하죠. 하지만 오셔서 맞벌이해야 하는 분들도 있어요. 빨리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겠죠. 그분에게 중요한 것은 언어보다 돈인 거죠. 이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그 사람의 사정이고 상황이라고 생각했으면 해요. 그리고 돈을 벌다 보면 한국어가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되기 때문에 결국 언어를 배우러 오게 돼요. 이 지역만 해도 (이주여성의) 50% 이상이 일자리가 필요하다고 해요.” (나랑체첵)

그렇다고 돈을 달라거나 특별한 것을 지원해달라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무언가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또한 이것은 이주여성의 가정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데에도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주여성이 일자리 찾기는 어렵고, 그렇게 되면 남편이 혼자 돈을 벌어야 해요. 하지만 한국에서는 혼자 돈 벌고, 거기에 아이까지 있으면 힘들어요. 가정에 불화가 생길 가능성도 크고요. 이주여성들은 점점 자신이 없어지고, 한국 사회에서 일어설 기회가 없어지는 거죠.” (나랑체첵)

“아이가 있는 분들은 긴 시간 일하지 못합니다. 시간 짧은 것, 아르바이트 같은 것을 하고자 해요. 그래서 시간을 탄력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일자리가 필요하다고 봐요.” (주영애)

높은 취업 욕구보다 준비와 노력이 부족한 이주여성들도 물론 있다. 두 사람은, 당장은 아니어도 장기적으로 실질적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꾸준한 취업 지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결혼이민자분들이 아예 문제가 없는 건 아니에요. 결혼이주여성이 도망가는 사례 등은 좋지 않은 여론을 만들고 큰 화젯거리가 돼요. 하지만 잘하고 계신 분들도 많아요. 저는 모든 게 단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몇 년이 지나면 적응하고 한국 사람이 되잖아요. 가끔 다문화정책이 잘 되고 있나 의문이 들 때가 있는데요. 숫자와 실적에만 매몰되기 때문이죠. 실제 도움이 되지 않는 사업을 한다거나, 매번 오는 사람들만 지원받을 때도 그렇죠. 많은 사람이 동등하게 지원을 받을 수 있어야 해요.” (나랑체첵)

다문화 체감도 높이고 다름 인정하는 태도 필요해

우리 사회가 보여주는 다문화에 대한 인식은 이중적이다. 인터넷에 난무하는 자극적이고 부정적인 댓글들이 보여주는 한 면과 공식적으로 나타나는 대체로 신중하고 호의적인 인식조사 결과가 또 다른 한 면이다. 2015년 서울서베이를 보면, 자녀의 외국인과 결혼, 외국인 친구, 외국인 이웃 등에 대한 태도는 종합적으로 60%가 호의적이었고, 결혼이민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 해소에는 50.9%가 긍정적이었고, 일자리를 뺏긴다는 우려는 40.5%였다. 여기에 대해 주영애 씨와 나랑체첵 씨는 여전히 낮은 다문화 체감도를 높이고 다름을 인정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람은 다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다름을 인정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결혼이민자들이 이렇다저렇다 이야기하지 말고, 그 상태 그대로 다름을 인정해주고, 다르면 이상하게 취급하는 시선만 아니었으면 해요. 그리고 잘 적응해서 성공하고, 잘 살아가는 본보기라고나 할까, 이런 사례를 자주 보여줬으면 좋겠어요.” (주영애)

“저도 예전에는 외국인인 걸 숨기고 싶을 정도로 조용히 지낸 적이 있어요. 시선 자체가 차가워서 자꾸 주눅이 들었어요. 물론 지금은 숨기지 않고 말하죠. 이건 제가 지금 당당하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갑자기 당당해지는 것은 어려운 일이에요. (나랑체첵)

주영애 씨는 공교육에 진입하지 못하는 중도입국자녀가 너무 많다며, 이들을 잘 끌어안고 한국문화에 잘 융화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회와 역할을 주고 함께 성장할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옆집에 베트남 사람이 와서 살지만 모르는 경우도 많아요. 다문화가 무슨 상관이냐고 하지만 학교와 직장을 살펴보면 다문화가족 출신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저출산시대라고 하는데, 다문화가족은 다둥이인 경우가 많아요. 여기에 중도입국자녀들도 있는데, 이 아이들이 적응 못 하는 경우가 수두룩해요. 사람들이 체감을 못 하는 게 이런 것들이 잘 알려지지 않아서인 것 같아요. 중도입국자녀가 한국사회에 문젯거리로 전락한다고 생각해보세요. 나만 안전하면 된다고 하지만, 안전지대가 없어질 수도 있어요. 이들이 나중에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지 않게 하려면 지금 잘 해야 합니다.” (주영애)

이들이 우리 사회에서 차별과 배척의 시선만을 느낀 것은 결코 아니었다. 제도와 지원에 대한 고마운 마음도 있지만, 무엇보다 따뜻했던 것은 처음 접했던 한국인들의 도움이었다.

“제 아이 역시 중도입국자녀예요. 적응을 굉장히 힘들어했어요. 지금 같으면 다문화가족지원센터 등을 이용했겠지만, 10년 전에는 그런 게 없었잖아요. 그러다 한국 아주머니와 대학생들이 외국인 근로자와 학생들에게 한국어 가르치는 행사가 있다고 해서 아들과 함께 갔어요. 열정적으로 가르쳐주는 걸 보고 ‘한국 사람들이 무조건 외국인을 싫어하는 게 아니구나’, ‘뜨거운 가슴을 가지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엄마 말은 안 듣던 아들이 그때 한국어 가르치던 누나 말은 잘 들어서, 지금도 연락을 하더라고요.” (주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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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 다를 수밖에 없다

이 인터뷰가 희망제작소 뉴스레터에 실린다고 하자, 나랑체첵 씨는 어떤 사람들이 독자냐고 물었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관심 가진 분들이라고 답하니, 그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덧붙이고 싶다고 했다.

“이주민들도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따뜻한 시선으로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다르다는 걸 인정하고 눈치가 없어도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웃음) 한국 사람처럼 행동하길 바라는 것도 좋지만, 그렇다고 일률적인 행동을 기대하지는 않았으면 해요. 우리는 다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요. 같아지려 해도 시간이 걸리지만, 같아지려 하는 게 맞는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우리 (이주민들의) 문화도 존중해주길 바라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그런 한국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나랑체첵)

이주민을 만날 때마다 우리는 늘 한국인이냐고 묻는다. 하지만 그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와 앞으로 살고 싶은 나라가 어떤 곳인지 먼저 물어야 한다. 이주민들이 한국에서 살면서 많은 시간 고민하는 것은, ‘한국인이냐, 아니냐’보다 ‘쓸모있는 사람이 되는 것, 성장하는 것, 보람을 느끼고 이 사회에서 희망을 찾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혼란스러운 시절을 살아가는 여느 한국인의 모습,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인터뷰 진행 : 이은경 사회의제팀 팀장 · [email protected]
녹취 및 정리 : 이은경 사회의제팀 팀장 · [email protected]
녹취 및 정리 : 최은영 미디어홍보팀 연구원 · [email protected]

* 인터뷰 참여자의 요청으로 개인 사진은 게재하지 않습니다.

월, 2016/11/07-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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