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교육에 대한 거대 담론으로의 접근이 아니라 평생교육 현장에서의 문제제기와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한국에서의 시민교육이 빈곤한 이유는 무엇인가?” “시민교육을 대하는 기관의 가치와 철학은 무엇인가?” “평생교육 현장에서는 시민교육을 어떻게 풀어낼 수 있을까?”
희망제작소는 정부, 기업, 시민사회가 경계를 넘어 서로 협력하는 거버넌스(governance)를 지향하며 다양한 연령, 주제, 방법을 포괄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운영해 왔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2011년 7월 수원시 평생학습관 운영 수탁기관으로 선정되어 운영을 맡아 오고 있습니다.
2017년 서울KYC 근현대사 아카데미 "광장민주주의를 찾아서" 첫번째 현장답사는 세월호가 뭍으로 올라온 목포신항을 찾았습니다.
2014년 4월16일, 세월호의 아픔은 여전히 우리 모두의 아픔이기도 합니다. 우리 모두의 아픔이기도 하지만, 또 우리 모두가 위로해야 할 세월호의 아픔이 목포에 있습니다.
서울에서는 제법 먼곳에 위치한 목포이지만, 이곳에 3년 넘게 계신 세월호의 가족분들이,우리가 기억하고 함께 행동하겠다는 연대감을 느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목포로 출발했습니다.
5월20일 아침 7시 20분 서울역앞에서 출발한 버스는 12시가 넘어 목포시내에 도착했습니다. 목포시내 가로수 사이사이에 걸려있는 세월호 추모 현수막을 보는 순간 코끝이 찡해왔습니다.
목포신항에 도착해, 4.16가족협의회의 경빈이 어머니이신 전인숙님의 도움으로 [세월호 유가족 간담회] 시간을 가졌고, 김건우 학생의 학생증을 가슴에 달고 계신 아버님과 이야기를 나눌수 있었습니다.
세월호참사 후 세월호가 인양되기 직전까지 동거차도에서 세월호를 지속적으로 감시했던 이야기, 정부가 수사를 미루고, 진실을 은폐하는 동안, 유가족분들은 진실을 알기위해 선박과 해양사고에대해 박사급이 되었다는 농담 섞인 말씀에 가슴이 아프기도 했지만,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동거차도에 계셨던 유가족과 미수습자 가족분들은 세월호가 인양된 후 이곳 목포신항으로 와서 매일 아침 7시부터 세월호 참사를 알리기도 하고, 또 매일 정해진 시간에 세월호가 거치된 곳에서 발굴작업과 선체 조사 과정을 참관하는 일 등등, 정신없이 하루가 지나간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그러다 문득문득 내 아이가 보고 싶으면 하늘을 올려다 보며, 별이 된 내 아이를 다시 한번 떠올리신다합니다. 그 말씀을 듣는데 건우 아버님 가슴에 있는 건우의 학생증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2017년 5월9일 새정부가 바뀌고 무엇이 달라졌는지도 여쭈어 보았습니다. 해양수산부 직원들의 태도가 예전과 달라졌다는 말씀에 지난 정부는 누구를 위한 정부였던가 하는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이분들이 받은 정신적 상처가 걱정이 되었습니다. 정신적 치유가 필요한 것은 다 느끼지만, 거기까지 신경쓰실 여력이 없는 듯 했습니다.
아이들의 마지막 사진이 있는 곳에서 흐믓한 얼굴로 내 아이와 그 친구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건우 아버님의 모습을 보며,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별이 된 아이들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세월호에는 아직 미수습자가 남아 있습니다. 그곳 목포 신항에도 미수습자의 가족과 유가족이 함께 있습니다. 사고 후, 세월호에서 내 아이를 발견했을 때, 아직 찾지 못한 가족들에겐 미안하고, 그럼에도 내 아이의 주검이라도 찾아서 감사하고.. 당시의 이 묘한 감정은 무엇으로도 설명하기 어렵다는 건우 아버님의 말씀....
그로부터 3년이 지난 2017년 세월호가 뭍으로 올라온지 며칠 되지 않아, 미수습자로 남아 있던 9명의 조은화, 허다윤, 남현철, 박영인 학생, 그리고 고창석, 양승진 선생님, 권재근 권혁규, 이영숙님.. 이분들 중 고창석 선생님들 시작으로 허다윤, 조은화 학생이 가족품으로 돌아왔고, 얼마전 이영숙님으로 추정되는 유골이 DNA감식까지 마친 상태라고 합니다. 아직 다섯분의 미수습자가 세월호에 있습니다. 하루빨리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건우 아버님께서 해주셨던 "여러분들 때문에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라는 말씀을 해주셨는데, 오히려, 이렇게 버텨주셔서 고맙습니다. 라고 말씀 드리고 싶었습니다.
세월호를 바라보며 우리가 잊기 않겠다고했던 약속, 그리고 세월호의 진실이 밝혀지고 책임자가 죄값을 받고, 또 안전한 사회가 될 수 있도록 함께 행동하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새해가 밝았습니다.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새로운 각오를 다지셨나요, 아니면 포털사이트를 기웃거리며 신년운을 점쳐보셨나요? 새해 벽두부터 내 의지를 다하려는 마음과 운에 기대려는 마음이 경쟁합니다. 마침 일어나고 있는 명리학 붐을 살펴보며 새해 우리의 공부는 어떠해야 하는지 생각해봅니다.
마음공부부터 자격증 취득까지. 4인 4색 공부 계획
‘공부 중독’ 사회라 말하지만 정말 자신이 원하는 공부를 하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50대 중년 여성, 자칭 방황전문가, 종교인, 중국인 유학생까지. 4인 4색의 2016년 공부계획을 들어봅니다.
[분투의 기록]
마지의 신 메뉴, 피자를 부탁해
살래청춘식당 <마지> 청년들의 첫 번째 이야기. 단순히 음식을 잘 만들고 못 만들고의 문제가 아니다. 이건 자신의 한계를 또 하나 넘어서는 일.
[혁신·교육思考] 청소년 통일교육
시뮬레이션, 체험, 토론, 프로젝트 연구.
위축되고 경직된 통일교육의 활성화를 위해 세계시민교육의 일환으로 학교안팎에서의 다차원적이고 자유로운 교육이 필요하다.
[현장에서]
망망대해의 쪽배는 좀 더 튼실해졌다
주변 상황도, 내 안의 어린아이도 그대로입니다. 그럼에도 중심잡기는 더 쉬워졌고, 스스로 고요해질 수 있습니다. 고마운 책들과 아름다운 사람들과 함께.
근현대사 아카데미 "광장민주주의를 찾아서" 7월은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주제로 했습니다.
방송대학교 변은진 선생님과 함께 3.1운동 전후, 조선을 둘러싼 국제정세의 변화와 근대적 변화에 대한 민중들의 열망을 살펴보며 1919년, 3.1운동은 무슨 목적으로, 왜 어떻게 일어났는지 이야기 나눈 실내교육!
세계만방에 조선인의 독립의지를 알리고 학생, 농민, 노동자 등 그야말로 "민중"들의 집단적 참여로 독립운동은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공화주의"를 정착하는 계기가 되었고 만주와 연해주 무장독립운을 촉발하고, "정부"를 만들기 위해 준비하는 "임시"정부! 최초의 공화제 정부가 탄생하게 됩니다.
그런데, 서울에서도, 천안에서도, 광주에서도 3.1운동이라고 하면 좀 어색합니다. 실제로,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것은 3월1일이었지만,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지속되어온 것은 그 이후로도 계속이기 때문이죠. 3.1운동이라는 명칭은 분명한 한계가 보입니다.
3.1운동 이후, 우리 스스로 어떤 나라를 만들것인가?라는 질문에 왕정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공화주의"에 기초한 근대 국가를 만들겠다는 것이 모두의 염원이었습니다. 독립운동이기도 하면서, 새로운 나라 만들기에 대한 절절한 외침! 거리로 쏟아져 나온 국민들의 참여와 외침이 지금 대한민국을 만든 기본임을 확인합니다.
3.1운동을 주제로하는 답사는 온국민 모두가 알고 있는 천안! 그리고 당시 무자비한 학살이 벌어진 화성 제암리 입니다. 답사에 함께했던, 김예경 회원의 후기를 공유합니다.
광장 민주주의를 찾아서 - 김예경 회원(도성길라잡이)
#작년에 이어 한국의 근현대사를 배우러 ‘역사를 둘러싼 도시의 기억’을 찾아다닌다. 올해는 도시가 이룬 '광장 민주주의'를 배우기로. 이 땅엔 시민이 이뤄낸 민주주의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지난 겨울 ‘한 촛불’로 살았던 감동은 주체적인 시민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었다. 5월은 촛불혁명의 시작 세월호가 있는 목포, 6월은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난 정읍, 7월은 임시 정부를 낳은 3.1운동의 흔적을 찾아 천안과 화성제암리를 찾았다.
#천안 독립기념관에 조선 총독부가 해체 된 잔해들이 보관되어있다. 조선 총독부가 있었던 남산 구간을 사랑하면서 네거티브 문화유산 문제를 궁금했었는데, 분해된 조선 총독부를 보고 있자니 고민은 여전히 진행형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한민국 정부수립의 주역중 한분인 이동녕 선생 생가, 유관순 열사 생가, 유관순 열사가 자란 매봉교회를 차례로 찾았다. 역사의 위인을 단편적, 추상적으로 알다가 현장에서 만나니 실재로 다가온다. 일본 제국주의로 나라를 빼앗긴 백성들은 선교사들을 통해 독립운동의 의지를 함께 꿈꾼다. 종교적 신념으로 목숨건 독립운동에 나선 믿음의 선조들과 만남은 나를 숙연케했다. 기독교인으로나는 사회의 문제에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가 쉽지 않은 물음 앞에 다시 섰다.
#천안에는 ‘망향의 동산'이 있다. 대일항쟁기에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강제동원되어 망국의 서러움과 고난 속에서 고향을 그리며 숨진 재일동포를 비롯한 해외동포들의 안식을 위해 세워진 곳이다. 위안부 할머님들도 계시다. 수천개의 위패와 묘를 바라보면서 말을 잃었다. 억울하고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이한 영혼들의 영면을 빌었다. 위안부 문제를 최초로 증언한 ‘김학순 할머님'을 조문한것이 특별한 기억이었다. 이들의 죽음이 나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위해 2년의 답사가 필요했다.
#화성 제암리에서 형성된 기독교와 천도교가 수원, 화성지역 민족운동세력과 제휴하여 만세시위를 모의하며 3.1운동을 주도한다. 이를 알게된 일제는 민족 운동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는 기독교, 천도교인을 근절하기 위해 제암리교회에 이들을 모아 놓고 학살을 감행한다. 이것이 제암리 학살이다. 이땅에 행해졌던 학살의 현장을 밟는 것은 고통스럽다. 하지만 암흑의 역사를 찾아다닌 두해의 시간에서 배운것은 이 땅엔 ‘희망'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누리는 자유는 수없이 고귀한 목숨과 바꾸었다는 사실, 여전히 자유를 향한 투쟁이 멈추지 않는 나라를 사는 자랑스러움.
#‘천박한 시민'이 되지 않기 위해서 역사를 배운다.
근현대사아카데미에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특히, 강사 섭외에 도움 주신 천안KYC, 수원KYC 고맙습니다.
천안에서 만난, 한마음고등학교 구자명선생님, 매봉교회 목사님 고맙습니다. 천안 지역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 인상적이었습니다.
화성에서 만난, 박대진 선생님! 일부러 일정까지 변경해서 저희를 반갑게 맞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 생존자들의 아픔을 기억해야한다" 마음에 담아갑니다.
끝으로! 근현대사아카데미를 사랑하는 우리 회원들과 지인여러분! 역사의 무게에 때론 짓눌리기도 하지만, 담담하게, 온전히 받아들이고자 애쓰는 모습에 늘 감동입니다. 함께 했던 그날의 기억. 잘 저장해두겠습니다. 9월까지 계속계속 함께 만나러 가봅시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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