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걱정하나 줄이기 프로젝트 – 2017 Fact Check 편


최근 몇 해 동안 환경 문제는 우리 삶과 직결되는 위기로 다가왔다. 일본에서 지난 2011년 3월 11일 대지진으로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한 지 4년이 지났지만 불안감은 가시지 않았다. 최근 공개된 아사히신문과 후쿠시마 방송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후쿠시마현 주민의 70% 이상이 여전히 방사능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국내도 원전 문제가 계속 지적되면서 걱정이 커지고 있다. 특히 여성의 경우 방사능 오염으로 인한 식품 오염, 임신 시 받을 영향 등에 대해 우려가 높다.
여성과 환경은 떼어놓을 수 없다. 베이징행동강령 중 ‘여성과 환경’이 포함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앞서 1992년 유엔환경개발회의(UNCED)에서 채택한 ‘리우선언’과 ‘의제21’의 영향이 컸다. 리우선언은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루기 위해 환경관리와 관련된 의사 결정에 여성의 완전한 참여가 관건이라고 명시하고, 의제21은 24장에서 각국 정부에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여성의 역할을 강화할 것을 강조했다. 보다 구체적으로 생태계 관리 및 환경정책 과정에 여성들이 참여해 환경정책이 여성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고, 사회의 모든 측면에서 성평등 실현과 여성에 대한 폭력을 근절해야 한다는 게 목표다.
특히 베이징행동강령과 의제21의 24장은 여성과 환경은 공통적으로 천연자원의 악화가 여성의 무보수 노동을 증가시키고 소득 활동에서 밀어내는 결과를 가져와 환경오염이 여성과 어린이에게 더 영향을 끼친다고 지적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국민의정부 시절 이런 세계적 추세에 따라 ‘새천년 국가환경 비전’ 수립 및 지속가능한 발전정책을 총괄하는 대통령자문 지속가능발전위원회를 설치하고 2007년 지속가능발전기본법을 제정했다. 유엔 권고에 따라 적극적으로 ‘의제21’의 실천계획 수립 및 이행 평가를 위해 대통령 자문 지속가능발전위원회(PCSD)를 설치했다. 이 위원회는 참여정부까지 지속 발전돼 ‘지속가능발전법’으로 제정되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다음엔 기존에 있던 지속가능발전위원회를 환경부 소속으로 축소 개편하고 대체로 ‘저탄소 녹색성장비전’과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을 제정했다. 녹색성장을 국정 운영 키워드로 강조했지만 현장의 시민단체들은 환경 보호와 지속가능한 개발보다는 원전 확대, 4대강 사업 등의 사업에 치중된 개발 정책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현 정부인 박근혜 정부는 국정 키워드의 하나로 ‘환경복지’를 들고 고품위 삶을 보장하는 국민행복형 환경복지, 후손들도 행복할 수 있는 지속가능 미래형 환경복지,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생산형 환경복지 등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방점은 복지에 있고, 지나치게 투자와 경기 활성화를 강조하면서 성장 국가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환경문제는 보통 에너지 자원을 어떻게 쓸 것인가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이명박 정부 때 에너지정책은 화석연료를 줄이고 원자력과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을 높여서 가시적 성과를 도출했으나 대기업 중심의 지원으로 비판받았고 원전 확대 정책도 후쿠시마 사태 이후 국민 불안감이 커져 추진에 어려움을 겪었다.
박근혜 정부는 창조경제의 범위에 에너지를 포함해 스마트 그리드를 추진하고 있지만 눈에 띄는 성과는 없어 보인다. 되레 원전 노후화로 안전문제, 송전탑 건설 등의 문제로 에너지정책을 둘러싸고 정부와 시민단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갈등은 해결되지 않은 상태다.
정부의 각종 환경 에너지 정책을 살펴보면 여성에 대한 성별 고려는 거의 없다. 1990년대 중반부터 세계는 여성환경정책에 대해 관심을 가졌으나 우리는 여전히 여성에 대해 아토피, 수돗물, 새집증후군 등 생활환경과 관련하여 산발적으로 여성을 고려할 뿐 여성 환경 문제를 다루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려는 시도는 보이지 않는다.
결국 여성은 환경정책에 있어 소비자로만 존재하는 현실이다. 기존의 환경 및 지속가능 발전 관련 정책 결정 과정의 여성 참여가 매우 저조하다. 녹색성장위원회는 2014년 10월 국무총리와 민간위원을 공동위원장으로 하고 당연직 위원 16명과 민간위촉 위원 20명 등 총 38명으로 구성돼 있다. 당연직 위원 중 여성은 여성가족부 장관 한 명뿐이고 민간 위원 20명 중 4명, 전체 38명 중 여성은 총 5명(13%)에 불과하다.
또 2017년까지 정부부처 4급 이상 여성 관리자 비율 15%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2012년 40개 부처 일반직의 4급 이상인 여성은 9.3%에 불과하다. 각 정책 의사결정직에 여성이 태부족한 현실이다. 환경 분야도 다르지 않아 환경부의 정무직에는 여성이 아예 없고, 일반직 1959명 중 여성은 677명으로 34.6%, 별정직은 5명 중 여성은 1명뿐이다.
김혜정 환경운동연합 원전안전특위 위원장은 “방사능에 취약한 계층은 아이들과 여성이다. 1차 피해자는 아이들이고 그 다음은 여성들”이라며 “예를 들면 식품 방사능 오염 문제나 노후 원전 폐쇄 문제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이들이 젊은 엄마들이고 가장 민감한 계층도 여성들이다. 여론조사를 해봐도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60.8%가 원전 폐쇄를 원한다고 나왔는데 특히 30~40대 여성은 70~80% 이상이 원전을 반대한다. 한국의 탈핵운동, 방사능 감시 운동의 주축은 여성”이라고 말했다.
이안소영 여성환경연대 정책국장은 “여성이 환경정책을 결정하는 자리에 들어가면 여성들이 관심있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의제들이 많이 반영될 것”이라며 “건강이나 먹을거리, 삶의 안전, 탈핵운동도 열심히 하고 있고, 밀양 할머니들도 여성들이지 않나. 여성들이 삶을 안전하게 지키고 지속적으로 이어가는 걸 중시한다는 면에서 정책 결정자에 들어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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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제작소는 서대문구의 협치 현황을 살펴보고자 공무원 인터뷰와 설문조사를 진행한 바 있습니다. ‘민관협치 발전을 위한 행정의 우선순위 과제가 무엇인가’ 질문도 있었는데요. ‘변화를 수용하는 유연한 조직문화 만들기’라는 응답이 많았습니다. ‘공무원은 변화를 싫어한다’는 편견과 달리, 내면의 변화와 조직문화의 유연성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엿볼 수 있었는데요. 이에 협치 챔피언 교육은 팀장급 공무원과 3년차 이하 신입공무원이 함께 하며 서로의 생각을 모아보는 과정으로 구성됐습니다.
엉뚱한 생각이 만드는 협치
처음 강연에서는 한때 대선 출마로 유명세를 탔던 허경영 씨에 관한 언급이 있었습니다. 10여 년 전, 그의 공약이었던 모병제 시행, 출산수당 3천만 원 등은 모두 허무맹랑했던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일부가 현실이 되었습니다. 바로 이 부분에서 시사점을 찾을 수 있었는데요. 협치를 위해 아이디어를 모을 때 엉뚱한 생각도 많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머리를 맞대면 실현가능한 방향으로 다듬을 수 있습니다. 즉, 엉뚱한 생각이라고 해서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모든 아이디어와 생각을 모아 탄생하는 것이 협치인 것이지요.
협치, 무엇이 제일 힘들까?
협치만큼 어려운 것이 없다고 합니다. ‘책임 소재와 역할 불분명’, ‘다양한 이해관계자 개입으로 부정부패 가능성 증가’, ‘협치 위한 조직구성과 운영에 비용과 시간 소요’ 등 염려도 다양하지요. 하지만 강연자는 ‘지속가능발전 관점에서 가장 빨리 갈 수 있는 지름길이 협치’라고 말했습니다. 현지 법인화로 시민의 의견을 운영에 반영한 광주 신세계백화점, 많은 관광객 때문에 훼손된 바닷길을 살리기 위해 주민들이 나서 축제를 휴식하기로 한 진도 신비의 바닷길 축제 등 실제 혁신사례를 통해, 많은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면 부정부패는 오히려 감소하고 주민 스스로 지속가능발전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협치, 혁신 솔루션 No.1
“사회적 가치를 어떻게 합의할 수 있을까?”
우리는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 할 때 대부분 본인이 보기에 가치 있어 보이는 것을 권유하곤 합니다. 오후에 만난 강사는 이 부분을 지적하며 강의를 이어나갔습니다. 협치를 위해 서로 의견을 나눌 때 가장 먼저 떠올려야 하는 질문은 ‘누군가에게 가치가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입니다. 각자 다를 수 있는 가치를 정의하는 과정에서부터 대화와 소통이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를 통해 만들어진 공감은 협치의 출발점이 됩니다.
협치, 혁신 솔루션 No.2
“합의한 가치를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까?”
또한 강사는, 합의한 가치를 실행하기 위해 그 자체로 혁신적인 것 혹은 사업 진행을 위한 혁신의 기반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저마다 일하는 방식의 변화, 새로운 주체의 창의적 공공성, 각 주체간 협력을 위한 새로운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시민과 소통할 수 있는 새로운 워크숍 기법, 시각 차이를 좁힐 수 있는 퍼실리테이션 방법론 등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공무원의 역할이 행정업무, 정책수행, 설계 등에서 시민의 의견을 수렴, 중재, 반영, 설계하는 적극적 촉진자의 역할로 변화하고 있기도 합니다.
무작정 ‘답’을 찾기보다 ‘문제’가 무엇인지부터 정의해야
전통시장 활성화 사업 진행 과정에서 이해관계자 간의 문제를 파악하기 위해 활용했던 감정기복 시각화 사례에 대한 설명이 있었습니다. 시장현황 조사를 하면서 실제 시장 이해관계자의 감정기복을 선으로 표시하고 문제를 체크했는데요. 이를 통해 문제의 지점이 어디에 있는지 눈으로 확인하고 서로 소통할 수 있었던 예를 제시했습니다. 무작정 답을 찾기보다 문제를 어떻게 정의할지부터 생각하는 과정이 중요했습니다. 이외에도 당연한 것에 의문을 가지고 새로운 관점으로 문제를 바라보는 방법이 있었습니다.
이번 교육에서 가장 활기찼던 때는 레고타워 팀빌딩 시간이었습니다. 주어진 레고블록을 가장 높이 쌓되 의미를 잘 담아내는 팀이 챔피언으로 선정되는 미션이었는데요. 쌓기 전, 어떻게 쌓을지 함께 설계하고 역할 분담도 했습니다. 완성된 레고타워를 살펴봤는데요. 서대문구의 독립문을 의미하는 구조물과 Social의 의미를 담은 S라인 타워, 사람 중심의 행정을 하겠다는 의미로 사람을 배치한 건물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서대문구에 이런 것이 있다면?
마지막으로 서대문구에 도입되면 좋을 것 같은 외부의 제도나 활동, 조직문화·제도로 인해 불편했던 경험, 기타 떠오르는 아이디어에 관한 의견을 나누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금요일 야근 금지, 수요일 휴일을 금요일로 대체하는 방식, 유연근무제, 시차 출퇴근제, 집중근무제, 안식년, 올바른 회의문화 정착, 권위주의적 업무지시 탈피, 초과 근무하는 직원을 일 잘하는 직원으로 보는 인식의 전환, 원하는 근무부서 교환, 낮은 수준에서라도 민간협치 위한 사전기획단 구성, 보여주기식 업무 지양 등의 의견이 줄을 이었습니다. 협치에서도 큰 주제를 만들어 그것을 장기적으로 살폈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소소하고 별것 아닌 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부터 하나씩 바꿔나가면 지역사회의 혁신과 행정의 변화를 끌어낼 수 있습니다.
끝으로 교육과정에서 언급되었던 거버넌스 10계명을 소개합니다. 이 내용은 2013년 서울시 백서를 통해 공유된 바 있습니다.
1. 시민은 공공서비스의 공동생산자이다.
2. 정책을 입안할 때부터 거버넌스를 설계한다.
3. 이해관계자, 전문가 등 파트너를 발굴한다.
4. 거버넌스의 파트너를 신뢰한다.
5.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자주 만나 소통한다.
6. 참여 시민들에게 교육기회를 제공한다.
7. 거버넌스의 과정을 기록하고 공유한다.
8. 거버넌스 결과는 참여자에게 피드백 한다.
9. 새로운 거버넌스 방식을 제도화한다.
10. 거버넌스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그리고 교육에서 들었던 내용을 되새기며 한 줄로 요약해 봅니다.
“충분히 만나고 과정을 기록하고 공유하는 것에서부터 협치는 시작된다.”
– 글 : 조준형 | 지속가능발전팀 연구원 · [email protected]
– 사진 : 지속가능발전팀
[희망제작소 ‘좋은 일 찾기 연재 시리즈’ 1회]
‘미생’, ‘송곳’, ‘치즈인더트랩’의 공통점은?
요즘 웹툰을 드라마로 만드는 것이 유행인데, 드라마가 된 웹툰 중 가장 큰 관심을 끈 세 작품 ‘미생’, ‘송곳’, ‘치즈인더트랩’에는 상관관계가 있다. 미생은 정규직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한 대기업 신입사원의 이야기고, 송곳은 대형마트의 비정규직 해고에 맞선 투쟁을 그리고 있으니 ‘노동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공통적인 게 분명하지만, 대학생들의 이야기인 ‘치즈인더트랩’과의 관계는 뭘까? 그 고리를 이해하려면 책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괴물이 된 이십대의 자화상』(오찬호)의 한 대목을 인용할 필요가 있다.
“지금 대학생들이 왜 이렇게 고생을 합니까? 정규직이 되기 위한 것 아니겠습니까?”
사회학 강사인 저자가 ‘KTX 여승무원의 철도공사 정규직 전환 요구’를 주제로 진행한 수업에서 한 대학생이 했다는 말이다. 대학생들이 이토록 고생하는 것은 ‘정규직이 되기 위한 것’이므로 ‘계약직인 줄 알고 들어간’ KTX 여승무원들은 “날로 정규직이 되려고 하면 안 된다”는 요지다. 그러고 보면 좋은 학점을 받으려고, 장학금 타려고, 스터디도 하고 학회도 하려고 애쓰는 ‘치즈인더트랩’ 여주인공의 노력은 결국 ‘정규직’이 되기 위한 것이다.(남주인공은 기업 후계자라 입장이 좀 다르다.) 이렇게 우리 삶을 다룬 이야기들마다 ‘일’의 문제가 들어있다.
21세기 대한민국을 사는 우리는 ‘흙수저’를 물고 태어나 서럽고, 야근을 밥 먹듯이 해도 늘 빠듯해서 억울하고, 그나마도 쫓겨날까봐 불안하고, 치솟는 집세에 허덕이고, 어느덧 아무리 애써봐야 현상유지조차 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깨닫고 절망한다. 이런 모든 어려움은 더 나은 일자리를 찾지 못했기 때문일까? 일찌감치 더 ‘노오력’ 해서 높은 연봉을 받고 안정된 직장을 찾았으면 될 일일까? 정부는, 정치인들은 늘 ‘고용을 창출’하고 ‘청년 일자리를 만든다’고 하는데, 왜 좋은 일은 점점 더 찾기 어려워질까? 우리는 무엇을 원해야 할까? ‘정규직’이 더 많아지기만 하면 되는 걸까?
우리 사회엔 ‘좋은 일’의 상(像)이 없다
여기, 몇 가지 이야기가 있다. 어떤 일을 찾아야 할지 생각해 보기 위한 것들이다. 사실, 우리 사회에 ‘좋은 일’에 대한 상(像)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나마 하나 있는 것이 ‘정규직’이다. “그거면 됐지 우리 현실에서 뭘 더 바라야 하나?”, “비정규직 문제가 이렇게 심각한데 ‘정규직’마저 문제 삼는 의도가 무엇이냐?”는 비판도 물론 나올 것이다. 그럼에도 제안하려고 한다. ‘좋은 일’의 기준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고. 어쩌면 그 기준이 없어서 ‘좋은 일’을 찾지 못하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여기, 이 이야기들은 인터뷰 등을 통해 모은 실제 사례를 최소한으로 각색한 것이다. 일부는 한국여성민우회에서 지난 6~8월 진행한 20~30대 여성 인터뷰에 기반하고 있다. 이 이야기들로 과연 ‘정규직’이 ‘좋은 일’의 대명사일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볼 수 있겠다.
20대 후반 남자, “신입 공채 입사하고 보니 비정규직”
중견기업 신입사원으로 입사했다. 근로계약서에는 계약기간이 1년으로 돼 있다. 1년간 다양한 경험을 시킨 후 정식 부서 배치가 이뤄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선배들한테 “제가 비정규직인가요?”라고 물었다. “그건 아니지, 공채 사원인데”라고들 했다. 그렇지만 지식 포털에 물어보니 “근로 기간이 정해져 있으면 비정규직이 맞다”고 했다. 영 찜찜했다. 한 선배는 “예전에는 다 정규직이었다”고 했다. 청소, 경비, 구내식당 직원도 다 정규직이었는데, 조금씩 아웃소싱 돼 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보탠 얘기가 심각했다. “회사가 몇몇 부서 사업을 분리할 계획이라는데, 재수 없으면 하루아침에 하청업체 직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 말에 불안해하는 나를 놀리는 선배를 보면서, 내가 순진한 건지 저 선배가 순진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지식포털에 ‘정규직’이라고 검색해 보면 “이 일이 정규직인가요, 아닌가요?”라는 질문들이 즐비하다. ‘정규직’은 법적 용어가 아니다. 법적으로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이라는 개념만 있다. 그러니까 근로계약에 기간이 쓰여 있지 않으면 ‘정규직’인 셈이다. 김민아 노동법률원 새날 노무사는 “1990년대 이전에는 기간 제한이 없는, 즉 정규직 채용만 있었다”면서 “이후 기간제, 한시근로 등 ‘기간의 정함이 있는’ 근로계약이 생겨났고, 이를 제외한 나머지가 ‘정규직’으로 통하게 됐다”고 설명한다.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이라고 다 정규직일까? 지식포털에서 많이 보이는 질문 중 하나가 “채용공고에 무기계약직이라고 돼 있는데, 이건 정규직인가요?”다. 대답은 둘로 나뉜다. 노무사‧변호사 등 전문가일수록 “무기계약직은 정규직입니다”라고 딱 잘라 말한다. 그렇지만 현명한 네티즌들은 핵심을 꿰뚫는다. “정규직과 달리 차별받는 직군일 수 있습니다. 잘 알아보고 들어가세요.” 한국노동연구원 배규식 선임연구위원은 “우리 사회에서 정규직은 ‘고용안전이 보장되고, 연공주의에 따른 임금인상, 승급, 승진 및 기업복지의 혜택을 누리는 근로자’라는 인식이 있다”고 했다. 이 기준으로 본다면 정규직과 무기계약직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 그렇지만 이미 그와 같은 차이는 희미해져 가고 있다. 다음 사례를 보자.
30대 초 남자, “나만 낮은 연봉을 받고 있었다니!”
IT개발자로 몇 차례 이직한 끝에 지금 회사에 들어와 3년째 일하고 있다. 그런대로 만족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다른 직원들 연봉을 알게 됐다. 회사 인사담당자와 매년 1대 1로 연봉계약을 체결하는 완전연봉제에, 비밀유지원칙이 있기 때문에 그동안은 ‘회사가 알아서 정했겠지’ 하고 사인해 왔다. 알고 보니 내 연봉은 평균 이하였다. 황당한 건 IT업체인데 사무직 연봉이 개발자들보다 많다는 것이다.
연차들이 높기는 하지만 야근도 거의 안 하는데 돈을 더 받는다니, 이해할 수가 없다. 아직 그쪽은 호봉제가 적용돼서란다. “어차피 전부 완전연봉제로 전환될 것”이라며 신경 쓰지 말라는 사람도 있었다. 진짜 문제는 내 연봉을 비교할 기준이 없다는 거다. “억울하면 다음 계약 때 높이 불러!” 이런 말도 들었지만,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누가 나보다 많이 받는다”고 말하면 비밀유지원칙을 어겼다고 할 텐데, 무엇으로 연봉을 높여 달라 할지 생각할수록 구차해진다. 그냥 직장을 옮기는 게 나을 것 같다.
이 사람은 나름대로 안정적인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근로계약 상 ‘기간 정함’이 없다는 점에서는 분명 정규직이다. 그렇지만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생각에 이직까지 고민하고 있다. 문제는 완전연봉제 하에서 개인이 기업에 필적하는 협상력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노사가 합의한 연봉테이블이 있거나, 단체협상으로 매년 인상률 기준을 세울 수 없다면 말이다. 기업은 “개인의 실적이 뛰어나면 연봉 인상을 요구할 수 있다”고 하겠지만 한국 문화에서 쉬운 일이 아니다. 또, “회사가 어렵다”는 한마디면 협상 끝이다. 그에 반박할 만한 정보를 개인이 가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임금은 매년 제자리걸음에, 물가인상률과 비교하면 오히려 깎이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다시 호봉제’를 외치자고 할 수도 없다. ‘연공서열’이라는 말은 이미 구시대적인 것이 됐다. ‘능력에 따라 자유롭게 자리를 옮기면서 일하는 세상’이 더 지금 시대에 걸맞다는 인식 때문이다. 더 노력해서 전문적인 능력을 쌓았으면 제도의 보호 따위는 필요 없는 걸까?
30대 후반 여성, “전문직, 공공기관, 그렇지만 계약직”
연봉 4000만 원대. 통역대학원을 졸업하고 정부 기관에서 외신 홍보 담당 업무를 한다. 전문직 대우를 받기 때문에 비슷한 연차의 공무원보다 연봉이 약간 높다. 그렇지만, 매일 ‘계약직 직원’의 한계를 느낀다. 2년마다 팀의 존속 여부가 정부의 예산 배정에 따라 결정된다. 6년간 2년마다 계약을 갱신해 왔다. 심지어 얼마 후에는 나갔다가 시험을 봐서 다시 들어와야 한다. 그 때 다른 사람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전반적으로는 좋은 직장이다. 근무 강도나 환경도 만족스러운 편이다. “공무원이라 좋겠다.”, “공무원연금이 최고지!” 하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난처한 것도 감내할 수 있는 일이다. 계약직이라 상여금 등에서 전부 제외되는 것도, 그래서 연봉이 높아봐야 실소득은 비슷하다는 것도 치명적인 문제는 아니다. 그렇지만 언제든지 없어질 수 있는 팀에서, 언제든 나가라면 나가야 하는 계약직으로 일한다는 사실은 한 시도 잊을 수가 없다. 승진도 바랄 수 없다. 평생직장을 바라기 어려운 세상이라지만, 공무원들 속에 앉아 이런 불안을 느낀다는 건 분명 아이러니한 일이다.
이 여성은 전문성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안정한 고용 상태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전문직 대우’라는 것이 곧 ‘고용 안전을 보장해줄 필요가 없다’는 뜻으로 통한다면, 우리는 왜 많은 비용을 투자하고 노력해서 전문성을 갖춰야 하는 것일까? 물론, “사람마다 원하는 게 다른데 어떻게 판단을 하느냐”는 비판이 나올 만하다. 김용진 착학경영연구소장은 “아무리 좋은 직장도 바로 위 팀장이 괴롭히면 옮기고 싶은 직장이 된다”면서 “어떤 학력과 경력을 가졌는지, 어떤 업종인지, 지식노동자인지 육체노동자인지 등에 따라 원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에 ‘좋은 일’의 기준을 세우기란 지극히 어렵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 ‘좋은 일’을 한다고 답한 인터뷰 대상자도 있긴 있었다.
30대 초 여자, “무기계약직으로 시작하지만, 좋은 직장”
졸업 후 첫 취직을 했을 때 나름대로 만족했다. 해외 출장 기회도 있고, 전공도 살릴 수 있는 곳이었다. 작기는 했지만 전문성 있는 업종이니 열심히 배워 더 큰 곳으로 옮기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 안 가서 사장님이 회사를 두 개로 나눴다. 주 5일 근무제 적용을 피하려고 한 것이다. 제일 싫은 것은 ‘5분 지각하면 월급 1만원 까기’처럼 직원들이 다 싫어하는 규칙도 바꿀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만두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다가 커피숍 프랜차이즈에 입사했다. “아르바이트 하기는 시간이 아깝지 않니? 차라리 그 시간에 공부에 더 집중하지?”하는 말도 꽤 들었다. 아르바이트로 생각한 것이 아니었다. 다른 곳과 달리 전 직원 본사 채용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빠르면 2~3년 안에 점장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도전해 보고 싶었다. 무엇보다 학력, 성별 차별이 없다고 했다. 일해 보니 정말 없다. ‘능력’을 요구하기는 한다. 눈치도 빠르고, 체력도 좋고, 의욕적이어야 잘 할 수 있다. 적응 못해서 나가는 사람들도 꽤 된다. 그렇지만 열심히 일하는 것만으로 승진할 수 있다는 건 큰 매력이다.
주변에선 “그럼 정규직이야?” 하고 물었다. 처음에는 ‘무기계약직’이고 부점장이 돼야 진정한 ‘정규직’이 된다고 설명하면 걱정하는 표정도 짓는다. 그렇지만 그 차이가 당장 느껴지지는 않는다. 같은 직급끼리는 계약 형태가 동일하기 때문이다. 같은 일을 하는데 누구는 정규직이고 누구는 아닌 그런 차별은 없다. 연차‧출산휴가‧육아휴직과 같은 처우에도 차등이 없다. 성과급, 보너스도 임금에 따라 비율이 다를 뿐 모두 받는다. 첫 직장에서 분명히 정규직이었지만 이상한 점이 끝도 없이 많았던 것에 비하면, ‘무기계약직으로 시작했다’는 데 대한 불만은 없다.
대학 전공과는 다른 업종, 사무직이 아닌 일, 전문성 없이 시작할 수 있는 일,‘정규직’으로 입사하지 않았다는 점 등만 본다면 ‘좋은 일’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왜 만족한다고 했는지 납득되는 부분들이 있다. ‘정규직’이냐 ‘무기계약직’이냐는 자체가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정부에, 기업에 “어떤 일을 달라”고 할 것인가?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자. ‘좋은 일’의 기준은 무엇일까? 여전히 답하기 어렵다. 어쩌면 ‘좋은 일’의 기준이 없기 때문에 노동 관련법이 바뀐다고 해도, ‘노동 개혁’이다, ‘노동 개악’이다 정치권에서 싸워도 우리는 판단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해고가 쉽고, 임금은 줄어들고, 고용 불안은 커진 일자리, 즉 ‘나쁜 일자리’들이 많아지더라도 우리는 알아차릴 수 없는 것이 아닐까?
다음 회에서는 ‘정규직’의 의미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짚어보려고 한다. 이어서 노동시간‧삶과의 균형‧임금‧노동권‧존중 등, 일의 여러 측면에 대해 하나씩 이야기해볼 것이다. 함께 고민해 보자는 것이다. ‘좋은 일’의 기준은 있는지, 정부가, 기업이 “고용을 창출한다”고 할 때 어떤 일을 달라고 해야 할지를 말이다. 그래야 ‘미생’의 장그래도, ‘송곳’의 이수인도, ‘치즈인더트랩’의 홍설도 행복을 꿈꿀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노동 세계의 새로운 전선은 노동과 자본 사이가 아니라 좋은 노동과 나쁜 노동 사이에 그어져 있다.”
-토마스 바셰크, 『노동에 대한 새로운 철학』 중에서
글_황세원(연구조정실 선임연구원 / [email protected])
사진_이우기(사진작가)
*이 글에 실린 사진들은 희망제작소 연구원들이 일하는 모습과 사무공간을 찍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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