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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이제는 평화] 아베 안보법제 밀어붙이기…일본의 4가지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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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이제는 평화] 아베 안보법제 밀어붙이기…일본의 4가지 과제

익명 (미확인) | 수, 2015/09/30- 09:32

2015년은 해방과 한반도 분단 70년이 되는 해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한반도의 평화는 여전히 요원해 보입니다. 70년 전, 일본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의 비극은 핵무기가 인류에 미치는 재앙적인 영향을 생생하게 보여주었지만 갈등과 대결, 군비경쟁의 악순환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북한의 핵 위협, 그에 따른 미국 핵 자산의 한반도 진입과 일본의 재무장, 그리고 여기에 대응하기 위한 중국의 군사력 확충까지 한반도를 둘러싼 국가들의 군비 경쟁은 70년이 지난 지금 당시보다 더 심각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이 불안하고 위험한 악순환의 고리를 언제까지 그냥 두어야 할까요?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과 '참여연대'는 이 악순환의 출발 지점인 정전체제의 한계를 진단하고, 한반도에 살고 있는 시민들의 안녕과 평화를 보장하는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2015, 이제는 평화' 연재를 시작합니다. 다양한 분야의 필진을 통해 현안에 대한 분석과 대안, 국방·외교 분야를 바라보는 평화적인 관점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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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안보법제 밀어붙이기…일본의 4가지 과제

[2015, 이제는 평화] 아베가 망친 일본 민주주의, 선거로 바로 세워야

가와사키 아키라 피스보트 공동대표

 

 

지난 9월 19일 새벽 참의원 본회의에서 안보 법안이 '통과' 됐다. 국회 앞에 모인 사람들의 목소리, 전국에서 펼쳐진 시위와 여론 조사에서 나타난 국민의 반대, 야당의 항의 등 이 모든 것을 무시한 강압적인 방법에 의한 통과였다.

 

이 법제는 그 내용뿐 아니라 그것을 통과시킨 정치적 절차 자체가 전후 일본의 평화주의와 민주주의를 뿌리째 흔들어 놓았다. 시민단체들은 물론 많은 학자, 지식인, 저널리스트들은 이미 이를 경고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법안 '통과'라는 사태를 맞았다. 앞으로 일본 국민과 정책 입안자가 당면할 4가지의 과제를 짚어보고자 한다.

 

첫 번째 과제는 이 '법안 성립'의 유효성을 묻는 것이다. 이 법안이 헌법에 위반된다는 것은 많은 학자들이 이미 지적해 왔다. 또 표결 강행이 무효라는 법률가의 지적도 있다. 향후 '위헌 소송'이 제기되어야 한다. 법원에서의 철저한 위헌 심사를 통해서 손상된 일본의 입헌주의를 바로 세울 필요가 있다.

 

두 번째 과제는 아베 정권의 정치적 책임을 묻는 것이다. 40년 넘는 기간에 걸쳐서 역대 내각이 유지해 온 헌법 해석을 한 내각의 각의 결정으로 대전환하고 각계의 반대론을 무릅쓰고 법안을 무더기로 강행 처리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베 정권에 대해 국민이 나서 심판을 내릴 필요가 있다. 내년 여름 참의원 선거에서 바로 이 문제가 핵심 쟁점이 되어야만 한다.

 

세 번째 과제는 이 법제의 시행과 운용을 둘러싼 문제다. 이 법제로 인해 자위대는 미군 등과 함께 해외에서 무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그것이 어떻게 실시될지는 정부의 운용에 달린 문제이지만, 국민의 감시와 국회의 관여에 의해서도 크게 좌우될 것이다.

 

더욱이 이 과제는 다음의 두 가지 차원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한다는 명목으로 자위대가 출동해 무력행사를 하는 시나리오의 경우다. 이런 경우를 "우리나라(일본)의 존립이 위협 받고 국민의 생명, 자유 및 행복 추구의 권리가 뿌리째 흔들릴 명백한 위험이 있는 사태"로 한정하고 있으나, 한편으로는 "국가를 방위하기 위한 무력행사 자체를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라고도 되어 있어 그 범주가 애매하다. 과연 개별적 자위권의 발동 이외에 어떤 상황에서 그런 일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정부는 이 점을 분명히 밝히지 못하고 있다. 지속적으로 추궁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른 하나는 자위대의 이른바 '평시' 활동 범주를 확대하는 것에 관해서다. 안보법은 지금보다 훨씬 다양한 경우에 자위대가 전면에 나설 수 있도록 하였다. 이로써 "전쟁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이 안보법제를 추진해 온 측의 주장이다. 그러나 일본에서 법 제도가 바뀌었다고 중국, 북한, 국제 테러 등의 위협이 줄어들 리 만무하다. 문제는 일본이 실제로 어떻게 행동하는가이다. 그 행동 여하로 위협은 오히려 높아질 수 있고, 충돌이나 전투의 위험성이 높아지기도 한다.

 

센카쿠 열도(尖角列島, 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에서, 자위대는 보다 신속하게 행동할 수 있게 된다. 남중국해에서는 미군과의 공동 경계 활동 차원에서 자위대가 평시 미 함정을 방호하는 것이 가능하게 된다. 또한 분쟁지에서 임무 수행을 위해 무기를 사용하는 것도 가능하게 되어 그 사용 기준이 곧 책정될 것이다. 이들 운용을 잘못하게 되면 자칫 자위대의 행동으로 '방아쇠를 당기고,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될 것이다. 비록 전쟁이 발발하지 않은 상태라도 사실상의 전사자는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위기감을 갖고 향후 정부의 행동을 감시해야 한다.

 

일본 헌법 9조는 비군사적 수단에 의한 문제 해결을 국가의 기본 원칙으로 선언하고 있다. 전쟁 방지의 기본은 외교적, 평화적 해결이다. 그것은 몇 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과제는 명문상의 개헌 문제이다. 안보법제에 대한 비판 중에는 헌법의 조문을 바꾸지 않고 헌법 '해석'을 변경하는 것만으로 이를 추진했다는, 그 방법에 대한 비판이 강했다. 향후 '자위대가 해외에서 활동하게 됐으니 이제 현실에 맞춰서 헌법을 바꾸자' 식의 '점진적' 개헌론이 불거질 가능성이 있다. 원래 아베 자민당은 헌법을 개정하는 것을 중요 과제로 강력히 제기해 왔다. 따라서 아베 정권이 명문상의 개헌 행보를 가속화할 것이란 점은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어느 과제도 그 논의와 의사 결정 주체를 정부와 국회만으로 해서는 원만히 해결되지 못한다.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 국회 앞 그리고 전국에 번졌던 시위의 물결은 일본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 움직임은 세계적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21세기 일본의 향방을 좌우하는 이들 중요 과제에 관해서 국민적 논의와 함께 참여 민주주의의 발전이 요구된다.

 

 

* 가와사키 아키라 씨는 반핵 및 평화운동 활동가로 도쿄대학교 법대를 졸업한 뒤 군축 및 평화운동 싱크탱크인 '피스데포'에서 1998년부터 2002년까지 활동했습니다. 현재는 '피스보트'의 공동대표와 집단적 자위권 문제 연구회 대표를 맡으며 아베 정부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한 정책들을 비판하는 연구와 저술 활동을 활발히 해나가고 있습니다. 이번 칼럼은 9월 19일 '집단적자위권문제연구회' 홈페이지에도 게재됐습니다. 필자의 동의를 받아 중복 게재합니다. (☞일본어판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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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17/11/13-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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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명이 참가하는 백일장, 경찰은 왜 막았을까

참여연대가 청와대 100미터 집회금지에 헌법소원을 낸 이유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참여연대 집회시위의 자유확보 사업단장)

 

집회의 자유는 우리 사회가 민주적 공동체로 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전제다. 그것은 정당이나 국회가 외면해 버린 우리들의 의견과 주장과 이해관계들을 담아내어 정치와 정책에 반영하게끔 하는 가장 유력한 수단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집회의 자유는 힘 없고 돈 없고 제대로 된 언로마저 갖추지 못한 수많은 을들이 가진 유일한 정치수단이다. 대부분의 서민들은 언론매체를 이용하거나 정치권에 로비하는 수단을 갖지 못 한다. 그런 사람들이 세상을 장악한 정치권력이나 경제권력에 대항하여 자신들의 목소리를 드높일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피켓을 들며 함성을 지르며 도로 위를 행진하는 것뿐이다. 그래서 헌법재판소는 집회의 자유를 두고 "소수의 보호를 위한 중요한 기본권"이라고 단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의 헌정사는 이런 원칙과는 너무도 멀리 떨어져 있다. 수많은 인권목록 중 과거 권위주의 정권에 의하여 처참할 정도로 억압받았던 것이 바로 이 집회의 자유다. 그것은 대중들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민주주의의 수단으로 이해되기는커녕, 체제를 위협하고 안보를 저해하며 국가발전을 저해하는 절대악으로 간주되었다.

 
 
물대포와 무차별적인 채증의 현장 
 
지난 정권들에서 가장 적나라하게 국민을 억압하였던 공안통치의 수단이 집시법 위반자에 대한 처단이었고, 가장 폭력적으로 국민들의 입과 귀와 눈을 막았던 것이 바로 집회·시위에 대한 무차별적이고 야만적인 폭력진압행위들이었다. 최루탄과 백골단과 닭장차의 과거와 차벽과 물대포와 무차별적인 채증의 현재가 조금의 변화도 없이 이어지는 공간이 바로 이 집회·시위의 장소였다.
 
참여연대가 최근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한 절대적 집회금지구역의 문제는 이런 반인권적 통치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현행 집시법은 대통령관저, 국회의사당, 각급법원·헌법재판소 등과 같은 건물은 물론 국회의장이나 대법원장·헌법재판소장의 공관까지도 그 주변 100미터 이내에서는 그 어떠한 집회도 할 수 없는 절대공간으로 만들어두었다. 그래서 국회가 법을 잘못 만들어 억울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그 법의 개정을 요구하려면 국회의사당 담장으로부터 100미터 이상 떨어진 곳에 겨우 모일 수 있을 뿐이다. 차문을 검게 칠한 승용차로 쌩 지나가버리는 국회의원은 물론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국회의원보좌관조차도 채 볼 수 없는, 그래서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그 먼 곳에서 들리지 않는 신문고를 두드려야 하는 지경인 것이다.
 
요컨대 이 제도는 국민들이 정치의 주체임을 부정하고 그들을 오로지 통치의 대상으로만 내몰고자 하는 폭력의 권력이 담겨 있다. 실제 국회든 대통령이든 혹은 법원이나 헌법재판소 마찬가지로 그 모든 국가기관은 주권자인 국민의 대변자이자 국민에 봉사하는 자이다. 그럼에도 정작 국민의 고통과 하소연이 생생하게 보이고 또 들릴 수 있는 공간은 아무에게도 개방하지 않는다. 민주주의를 말하고 대의제를 강변하지만, 실제 국민들이 필요한 바로 그 곳에서는 눈 감고 귀 막는 기이한 행태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들 관저나 공관에서 중요한 국가일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 효율성을 위해서는 외부로부터 방해받지 않는 것이 바람직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의 집시법은 그 필요성의 정도를 넘어도 한참 넘어 있다. 외국의 경우 공관 주변에서의 집회를 금지하는 사례도 더러 있다. 독일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 독일마저도 의회나 헌법재판소 주변에서의 집회를 금지하는 규정을 두고 있으면서도 실제로는 큰 문제가 없는 한 승인절차를 통해 집회를 할 수 있게 한다. 
 
그래서 독일의 경우에는 집회금지구역이라기보다 사실상 집회규제구역 정도의 의미만 가진다. 집회에 대해 엄격한 대응으로 비난받는 영국의 경우에도 이미 2011년에 국회의사당 주변에서 일부 집회를 금지할 수 있게 한 규정을 폐지하였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거기서는 법원 주변에서의 집회를 통제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 또한 절대적 금지가 아니라 그때그때의 구체적인 사정에 따라 개별적으로 집회를 하지 못하게 하거나 혹은 집회의 시간이나 장소, 방법등을 바꾸게끔 유도·조정한다.
 
한마디로 대부분의 민주사회에서는 관공서 주변에서는 아예 집회를 하지 못하는 금단의 구역으로 만들어놓은 우리 집시법같은 제도는 없다. 아니 있을 수가 없다. 집회라는 것이 주권자인 국민이 그 심부름꾼인 국가기관이나 정치인들에 대하여 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주된 목적이라고 한다면, 의당히 관공서 주변은 집회에 개방되어야 하며, 그들의 몸짓과 목소리가 정치인들이나 공무원들의 눈과 귀에 가닿아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겨울 우리는 촛불을 들고 청와대를 향하였다. 물론 그때도 경찰은 집시법을 들면서 청와대는 물론 광화문 주변도 얼씬하지 못하게 막았다. 겨우 법원의 가처분결정이 있었기에 그나마 청와대에 비교적 가까운 지역까지는 갈 수 있었다. 그리고는 그 뿐이다. 법원은 여전히 이 100미터 룰을 인정한다. 그 대통령이 탄핵되고 새 정권이 들어선 지금에조차도 우리의 집회시위의 자유는 법원의 문턱에서 그 존재의미를 상실해 버리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 경호보다 집회의 자유가 우선이다 
 
참여연대의 헌법소원은 이런 현실에 대한 단호한 저항이다. 지난 2016년 청년참여연대는 청와대 연풍문 앞에서 30여명이 대통령에게 보내는 상소문 백일장을 개최하겠다는 집회신고를 하였다. 여기에 그 어떤 물리적 힘의 행사나 질서를 교란할 수 있는 요소는 없었다. 그럼에도 경찰은 대통령경호를 내세우며 절대적 집회금지구역을 정한 집시법을 들고 나와 백일장을 못하게 막았다. 
 
의당 참여연대는 이런 집시법규정이 위헌이기에 법원에 위헌법률심판의 제청을 해 달라는 청구를 하였다. 하지만 법원은 이를 일언지하에 기각해 버렸다. 법원의 눈에는 이 절대적 집회금지구역이 소위 민주국가에서는 통용될 수 없는 인권침해적 규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사실도, 그 규정이 실제로는 정권의 안보를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어 왔다는 역사도, 혹은 적폐와 국정농단의 정권을 위한 바람막이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현실도 전혀 주목할 사항이 아니었던 것이다.
 
대통령의 경호를 위하여 국민의 기본권인 집회의 자유를 억압할 수는 없다. 오히려 대통령의 경호를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보장하여야 하는 것이 집회의 자유이다. 이런 자명한 헌법명령이 있음에도 경찰도 법원도 현행 집시법의 문제에 대해서는 눈 감아 버렸다. 적어도 우리 경찰과 법원에 관한 한 '데모'를 폭력적으로 진압한 권위주의적인 통치의 방식은 여전히 힘을 발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이렇게 잘못된 집회시위 관리의 방식은 지난 정권이 그러했듯 적폐의 온실 역할을 한다. 대중들의 목소리를 정치권력으로부터 분리시키고 후자가 전자 위에 군림하며 통치하는 잘못된 통치방식을 구조화하기 때문이다. 대중들의 항의가 들리지 않고 대중들의 몸짓이 보이지 않은 통치자는 문자 그대로 정치의 마다가스카르섬이 되어 버린다. 세상의 민심에 둔감하며 세상의 흐름에 벗어나 있는, 그래서 권력을 국민들로부터 얻어내지 못하고 스스로 권력을 자가발전하며 적폐를 쌓아가는 자폐적 존재가 될 뿐이다. 마치 마다가스카르섬이 외부의 생태계와 접촉하게 되는 주요한 방법이 거센 태풍이 불어 올 때인 것처럼, 그들은 대중의 집회가 폭동이거나 혁명이 될 때에야 비로소 자기 권력을 되돌아볼 수 있을 뿐이다.
 
실제 주요 공관 주위에서 그 어떤 집회도 할 수 없게 한 집시법 제11조에 대해 헌법재판이 제기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국무총리공관 주변에서 집회를 하였다는 혐의로 기소된 사건은 이미 헌법재판소에서 공개변론까지 거치고 최종 선고만 남겨두고 있다. 그럼에도 참여연대가 이 사건에 대해 또 다시 헌법소원을 제기한 것은 또 다른 의미를 가진다.
 
우리는 이미 지난 촛불집회에서 우리의 시민적 역량을 전세계에 과시한 바 있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들이 집회와 시위에 대하여 덮어씌웠던 누명들 - 불온하고 폭력적이고 전복적이며 용공종북좌파적 성향의 것이라는 – 이 하나같이 허위의식이었다는 것, 집회와 시위는 부패한 정권, 대의하지 못하는 정치인, 폭력을 일삼는 권력자에 대한 우리 시민들의 단호한 응징이라는 것, 그리고 그를 통하여 우리는 관용과 배려와 연대의 민주적 공동체를 구성해 나갈 수 있다는 것 또한 우리는 행동으로 드러내었다. 이번의 헌법소원은 이러한 각성을 헌법의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우리 국가 사회에 선언하는 작업이다.
 
인권과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시민들의 각성이 헌법재판소에 자리한 법률관료들의 고정관념을 제때에 깨쳐나가기는 그리 쉽지 않은 일이긴 하다. 그러나 비교법적인 관점에서도, 시대정신의 차원에서도 그리고 우리 시민들의 민주적 역량의 수준에 비추어보아도 더 이상 존재근거를 찾기 어려운 이 잘못된 악법을 더 이상 유지하려는 법판단은 그리 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헌법재판소의 조속한, 그리고 통쾌한 결정을 기대한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 게재한 글입니다.
목, 2018/01/18-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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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핵 위협, 일본의 재무장과 한미일 군사동맹 강화, 중국의 군사력 확충까지 한반도를 둘러싼 국가들의 군비 경쟁과 군사적 긴장은 점점 고조되고 있습니다. 이 불안하고 위험한 악순환의 고리를 언제까지 그냥 두어야 할까요? <프레시안>과 <참여연대>는 악순환의 출발점인 정전체제의 한계를 진단하고, 한반도에 살고 있는 시민들의 안녕과 평화를 보장하는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이제는 평화'를 연재를 진행합니다. 다양한 분야의 필진을 통해 현안에 대한 분석과 대안, 국방·외교 분야를 바라보는 평화적인 관점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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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 국민들은 왜 평화협정을 부결시켰나?

[이제는 평화] 그들은 물었다…누구를 위한 평화인가?

 

최재훈 경계를넘어 활동가 

 

 

흔히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사람들이 투표할 때 잠재 의식 속에 자리한 위험 회피, 혹은 이익 확정 심리에 따라 왠지 부정적인 느낌을 주는 '아니오'보다는 '예'를 선택하는 경향이 높다고 주장한다. 지난 6월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에서 "영국이 유럽연합 회원국으로 남아야 하는가"라는 애초의 투표 문항이 치열한 논쟁을 거쳐 막판에 "영국이 유럽연합의 회원국으로 남아야 하는가, 유럽연합을 떠나야 하는가"라는 두 가지 안 중 찬성하는 쪽에 X 표시를 하는 방안으로 바뀐 것도 바로 그런 이유가 컸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기술적이고 심리적인 분석일 뿐, 개별 투표에 얽힌 복잡한 정치, 사회, 경제적 배경이나 유권자들의 심리 상태를 고스란히 반영해주지는 못한다. 콜롬비아 정부와 콜롬비아 무장혁명군(이하 FARC) 사이에 체결된 평화협정의 찬반을 묻기 위해 현지시각으로 10월 2일에 치러진 국민투표가 반대 50.21%, 찬성 49.78%라는 아슬아슬한 차이로 부결된 것이 딱 그런 예다.  

 

평화협정의 부결로 인한 내전의 존속과 재발 가능성이라는 위험에도 과감히 반대표를 던진 국민들의 심리를 과연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더라도 무장 반군과는 절대 타협할 수 없고, 끝까지 그들을 잡아서 처벌해야 한다는 정의감의 발로였던 걸까? 이도 저도 아니면, 투표일을 전후로 허리케인 매튜가 찬성 여론이 강한 카리브 해 지역을 강타하는 바람에 유례없이 투표율이 낮아진 요인 때문일까? 

 

지긋지긋한 내전, 힘겨운 합의, 그리고 반전 

 

그나마 다행인 것은 국민투표의 부결이 곧바로 내전의 전면적인 재발로 이어질 가능성은 지금으로선 극히 낮아 보인다는 점이다. 후안 마누엘 산토스 대통령은 앞으로도 휴전을 계속 유지한 채 지난번 협정에서는 제외됐던 또 다른 반군인 콜롬비아 민족해방군(이하 ELN)까지 포함한 새로운 평화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한 상태다. 국제사회도 그런 그에게 노벨 평화상까지 안겨주며 내전 종식과 평화 정착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 2일(현지 시각) 평화협정 국민투표가 부결된 이후 후안 마누엘 산토스 콜롬비아 대통령이 대국민 연설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FARC 반군 측 또한 “(이제) 우리에게 유일한 무기는 말(words)”뿐이라 거듭 다짐하며 정글에서 나와 현실 정치 참여를 통한 변화를 추구해나가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평화를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의 지속’이 아닌, 모두가 그 가치를 받아들이고 유지하기 위해 힘쓰는 소중한 그 무언가로 만들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위에서 제기한 질문들의 답을 찾아 나설 필요가 있다. 콜롬비아 국민들은 왜 국민투표를 부결시켰던 걸까?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콜롬비아 내전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내전이다. 일반적으로는 FARC가 창립되고 무장투쟁을 시작한 해인 1964년을 내전의 출발점으로 삼아 그 기간을 52년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엄밀히 볼 때 콜롬비아 자유당과 보수당 세력 간의 피비린내 나는 유혈극(La Violencia)이 벌어졌던 1948년부터 내전의 불길은 이미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당시 두 정당은 1958년 대타협을 통해 '민족전선(Frente Nacional)'이라는 권력 분점의 해결책을 찾았다. 그러나 그들이 공산주의자 색출이라는 핑계로 농촌에 군대를 보내 농민들을 학살하고 강제로 토지를 빼앗는 과정에서, 그에 대한 반발로 생겨난 농촌 기반의 반군이 FARC, 도시 성직자와 학생운동가 중심의 반군이 ELN이었다.  

 

그 과정에서 살해된 사람들의 수는 1948년부터 지금까지 약 45만 명, 1964년으로 기준을 좁혀도 무려 25만 명에 달한다. 인구의 약 15%에 해당하는 700만 명에 가까운 주민들이 전쟁을 피해 고향 땅을 등진 국내 난민(IDP) 신세가 되었다. 

 

이번에 부결된 평화협정은 바로 그런 지긋지긋한 내전을 끝낼 수 있는 결정적인 기회였다. 쿠바와 베네수엘라, 칠레, 노르웨이의 중재 아래 2012년 9월부터 공식적으로 시작된 협상은 수많은 난제와 서로 간의 뿌리 깊은 불신, 간간이 터져 나오는 무장 충돌 소식 등으로 인해 몇 차례나 좌초될 뻔한 위기를 넘긴 끝에 올 8월 24일 아바나에서 역사적인 합의에 도달했다.  

 

이어 9월 26일 콜롬비아의 까르따헤나에서 중남미 12개국 정상과 미국의 존 케리 국무장관이 지켜보는 가운데 산토스 대통령과 FARC의 지도자 로드리고 론도뇨가 내전에 사용된 총알 탄피를 녹여 만든 펜을 들고 협정문에 서명하는 것으로 대장정의 마침표를 찍는 듯했다. 

 

그러나 며칠 뒤, 세계를 놀라게 한 충격적인 결과가 뒤를 이었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최대 72%에서 최소 54%로 우세하던, 그래서 심지어 반대 운동 지지자들조차 "(결과와 상관없이) 양심을 보여주기 위한 투표를 하라"고 호소해야 했던 높은 찬성 여론이 삽시간에 뒤집혀 버린 것이다.  

 

콜롬비아 국민들은 왜 평화협정을 부결시켰을까?  

 

그것은 바로 국민투표가 시간이 지날수록 평화협정에 대한 찬반 투표가 아닌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는 데 있다.  평화협정의 찬반을 묻는 절차는 2014년 대통령 선거에서 사실상 이미 한 차례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 당시 산토스 대통령은 협정의 추진과 마무리를 위해서는 자신이 꼭 재선돼야 한다며 표를 호소했다. 반대편에는 협정 반대 운동을 주도해온 전직 대통령이자 현 상원의원인 알바로 우리베 전 대통령이 강력히 밀던 오스카르 이반 술루아가 후보가 있었다. 

 

결과는 결선투표에서 6%의 안정적인 표차로 산토스 대통령의 당선. 그때 이미 국민들은 평화협정에 손을 들어준 셈이었다. 그러나 그 후 국영 에너지 기업 ISAGEN을 비롯한 주요 국유기업의 민영화와 판매세 인상, 경기침체 장기화, 식량 가격 상승 등 잇따른 실정으로 인해 취임 초기 80%에 육박하던 산토스 대통령의 지지율은 지난 5월 21%까지 곤두박질쳤다.

 

게다가 그가 정리해고를 쉽게 하는 등 반(反)노동자적 법률들을 계속 도입하는 바람에 오늘날 콜롬비아에서는 정규직 신규 취업자 1명당 비정규직이 9명씩 늘어나고 있다. 그런 상황에 저항하는 노조와 활동가들을 상대로 군경을 동원한 강경 진압과 납치, 살해가 대통령이 노벨평화상 수상자라는 영예가 무색하게 지금도 하루도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다. 

 

평화협정이 아닌 정권 찬반 투표로 변해간 국민투표 

 

산토스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을 교묘히 파고든 건 우리베 전 대통령이 이끄는 평화협정 반대 세력이었다. RCN과 Caracol 같은 국내 거대 방송사들을 장악하고 있던 그들은 한편으로는 평화협정이 각종 잔학 행위의 책임이 있는 FARC 반군에게 무조건적인 면죄부를 부여함으로써 "테러리스트들에게 나라를 팔아먹는 행위"라는 정치선전을 퍼뜨렸다. 

 

다른 한편으로는 산토스 대통령의 무능과 실정을 집중적으로 부각함으로써 이번 국민투표를 사실상 산토스 대통령과 그의 정책 전반에 대한 지지를 묻는 투표로 변질시켜버렸다.

 


▲ 12일(현지 시각) 콜롬비아 수도인 보고타에서 평화협정 체결 촉구 시위가 열렸다. ⓒAP=연합뉴스

 

이런 분석은 투표율과 득표율을 분석한 결과로도 그대로 입증된다. 내전의 피해와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을 수밖에 없는 농촌 지역에서는 찬성표가 당연히 더 많았던 반면, 보고타와 메델린, 칼리, 부카라망가, 바랑끼야 같은 노동자와 빈민이 밀집한 도시 지역에서는 반대표가 훨씬 더 높게 나오거나 산토스 대통령이 2014년에 얻었던 득표율보다 찬성표가 더 적게 나온다든지, 아니면 기권하는 유권자들이 속출했던 것이다. 

 

문제는 오늘날 콜롬비아에서는 도시 빈민들이 인구의 다수를 차지한다는 점이다. 오랜 내전 동안 지역의 대지주와 목장주들이 고용한 용병과 우파 민병대들에 의해 강제로 땅을 빼앗긴 농민들이 일자리를 찾아 대거 도시로 밀려들었기 때문이다. 

 

열악한 주거, 교육 환경에 높은 실업률로 인해 갈 곳 없는 청년들을 마약과 범죄에 끌어들인 갱단이 도시 곳곳에서 활개를 친다. 그들을 단속한다는 명분으로 군인과 경찰들이 툭하면 총질을 해대는 곳에서 살아가는 빈민들에게는 일상이 곧 전쟁일 수밖에 없다. 당장 눈앞에 닥친 문제에는 관심 없는 정부가 추진하는 평화협정을 위해 굳이 투표소를 찾는 수고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37.44%라는 유례없이 낮은 투표율(2014년 대선 결선투표율은 47.9%)을 손에 쥐고 '6만 표만 더 얻었더라면'하고 탄식하는 협정 지지자들의 안타까운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러나 당초 협정 지지여론이 85%에 달했던 남서부 지역(허리케인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있었다)에서까지 투표율이 극히 저조했던 현상에 대해 애먼 허리케인 탓만 할 건 아니라고 본다. 

 

반군에게 면죄부를 부여하지 말라? 

 

그렇다면 상당수 언론이 원인으로 제기한 '반군들에게 면죄부를 부여하는 데 대한 국민적 반감'에 대해서는 어떻게 봐야 할까?  

 

내전이 끝나면 반군들이 반납한 총을 녹여 수도 보고타와 유엔 본부가 있는 뉴욕, 협상이 이뤄졌던 쿠바에 각각 기념비를 세운다는 깨알 같은 계획까지 포함되면서 그 분량만 무려 297쪽에 달했던 이번 평화협정의 골자는 무장 해제, 농촌 개발, 정치 참여 보장, 불법 마약 근절, 희생자 보상 및 배상이었다.  

 

그중 중간 간부급 이하 반군들의 사회 복귀를 위해 처벌을 면해준다는 내용은 전체의 극히 일부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진실과 화해 위원회의 선례를 준용해 스스로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사망자나 실종자들에 대한 진실을 낱낱이 털어놓는 사람에 한해 사면을 해주는 대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더 엄하게 처벌한다는 게 핵심이었다. 

 

내전으로 인해 살해되거나 실종된 가족과 친지가 있는 피해자 단체들이 협정을 그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지지했던 것도 바로 그 '사과와 진실'이라는 두 단어가 협정문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우리베 전 대통령과 반대파들은 피해자 가족들의 억울한 심정을 주된 반대 근거로 들먹이면서도, 정작 그들의 목소리에는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우리베 자신도 지주였던 아버지가 반군에 희생당한 피해자 가족임에도 말이다. 애초부터 피해자들의 심경 따위엔 관심조차 없었고, 자신들도 반군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은 인권침해의 가해자였기 때문이다.  

 

도시의 산업자본가들을 지지기반으로 하는 산토스 대통령은 석유와 광산업 등에 외국 자본의 투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내전 종식을 간절히 바랐다. 대지주와 축산, 농산업 자본을 지지기반으로 하는 우리베 등도 내전 종식을 간절히 원하는 건 똑같았다. 다만 그것은 협정처럼 평화적인 방식이 아니라 군대와 민병대를 동원한 반군의 완전한 박멸을 통해서 이뤄져야 한다는 게 그들의 속내다. 그래야 현재 반군이 장악하고 있는 땅까지 대지주들과 농업 자본가들이 몽땅 차지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한 때 재임 시절(2002~2010년)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으로 한 배를 탔던 우리베와 산토스를 가르는 차이도 바로 거기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월, 2016/10/24-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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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민주주의를 창조하라

■ 주최

희망제작소

■ 후원

서울특별시 생활속민주주의학습지원센터

■ 교육기간

2017.09.20 ~ 2017.11.08

■ 목차

들어가며

1부. 광장에서 일상으로
– 1장. 아테네 직접 민주주의의 재소환
– 2장. 민주주의라는 파도에서 서핑하기
– 3장. 지역으로부터 꿈틀대는 변화
– 4장. “내가 주인이다”

2부. 대화를 한다고 소통하는 것은 아니다
– 5장. 민주적 대화의 기본, 상대의 말 경청하기
– 6장. 세상을 바라보는 눈 ‘언어’
– 7장.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 결정에 부처

나가며. ‘살아 있는 민주주의’

부록.
– 서울특별시 민주시민교육에 관한 조례

금, 2018/02/23-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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