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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간섭합시다, 적극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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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간섭합시다, 적극적으로

익명 (미확인) | 수, 2015/09/23- 23:30

좋은 민주주의는 좋은 대표를 필요로 한다. 적어도 대의민주주의에서는 그렇다. 좋은 대표를 어떻게 뽑느냐에 대해 인류는 오랫동안 다양한 실험을 해왔다. 최종적으로 선택된 것은 민주적 선거다. 이 제도에서는 대표자를 뽑되, 이 대표자가 유권자들의 이익과 의견에 상반되는 행위를 계속할 경우 그를 탄핵하거나 다음 선거에서 갈아치울 수 있다. 이것이 현대 대의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다.

정책과 입법보다 지역 민원

그런데 여기에도 한계가 있다. 선출된 대표자에 대한 견제는 대부분 형식적이고 실효성이 없다. 탄핵은 상당히 어렵다. 다음 선거에서 벌을 주는 것만으로는 시간이 너무 늦거나 징벌이 충분하지 않다. 가장 큰 문제는 다음 대표자도 역시 비슷한 사람이 되는 경우다. 이것이 지금 한국 정치에서 가장 큰 문제다.

국회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는 형편없다. 19대 국회에서 형사처분으로 의원직을 잃은 사람이 17명이고, 현재 재판 중인 의원도 17명에 달한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더 문제다. 불법 정치자금 수수, 입법 로비, 성폭행, 자식의 취업 청탁 등 비리의 종합선물세트다.

현재 성폭행 혐의를 받고 있는 심학봉 의원은 도덕성과 직무능력이 별개라면서 일을 잘하면 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국회 본연의 일은 잘하고 있는 것일까? 총선을 앞두고 열린 국정감사는 행정부에 대한 감시보다 정쟁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사실 지금 국회의원들의 마음은 국정감사보다는 지역구에 가 있을 것이다. 다시 당선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정치를 잘하면 다시 당선되지 않을까? 엄밀히 말하면 별 상관이 없다. 여기에 한국 정치의 함정이 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야는 모두 국민에게 정치를 돌려준다는 명분으로 국민이 참여하는 공천 방식을 제시했다. 새누리당은 오픈프라이머리를,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회는 100% 국민경선을 도입한다고 한다. 국민에게 공천권을 돌려주면 과연 정치가 좋아질까?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지금도 의원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은 지역구 관리다. 재선을 결정하는 것은 정책과 입법이 아니라 지역 민원을 얼마나 잘 해결하느냐, 지역 예산을 얼마나 잘 따오느냐에 달렸다. 총선에서 유권자들이 보는 공보물도 대부분 이 내용으로 채워진다. 정치적 비전과 한국 사회에 대한 비판적 통찰은 중요하지 않다. 일단 지역구 활동을 잘해야 입법 활동도 눈에 들어온다. 후자만 강조해서는 “뽑아놨더니 자기 잘난 척만 하고, 동네에는 코빼기도 안 비친다”는 평을 듣기 십상이다.
현역들이 지역구에 ‘올인’한다고 하면, 새로운 인물들은 어떤가? 이번 19대 국회에서도 적지 않은 인적 교체가 이뤄졌다.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을 합쳐 90명의 비정치권 외부 인사가 공천됐다. 초선 의원 비율도 56%에 달했다. 그래도 국회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정치 신인·소수 정당을 더 많이 국회로

정치 신인들의 당락은 정치적 능력보다는 학력과 경력에 크게 좌우된다. 새누리당 공천에 관여했던 사람은 “정치를 잘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도 총선에서 떨어질 것 같아 공천을 못 받는 경우가 있고, 정치를 잘할지는 모르겠지만 스펙이 좋고 전문성이 있어 공천을 한 경우가 있다”고 실토한다. 새정치연합의 한 의원은 “정치를 해보니 오히려 중요한 것은 전문성이 아니라 소통 능력”이라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하지만 이런 기준이 공천에 반영될 가능성은 적다. 이것이 우리 정치의 현재다.

문제는 앞으로도 개선될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선거를 통한 대의민주주의의의 장점은 좋은 대표를 뽑고 나쁜 대표를 솎아내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 정치에서는 20대 총선을 치러서 더 나은 국회가 될 가능성이 별로 없다. 새로 물갈이를 해도, 비정치인이 들어가도, 결과는 거의 같을 것이다. 암담하다.

선거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비례대표를 늘려 지역구 선거의 영향을 덜 받는 괜찮은 정치 신인을 많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또 두 거대 정당의 틈바구니 속에서 제대로 대표되고 있지 않은 계층, 세대, 사회적 문제를 제대로 반영할 수 있는 소수 정당과 정치인들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맞다.

그런데 어렵다. 비례대표를 늘리려면 의원 정수를 늘리거나 지역구 의원 수를 줄여야 한다. 의원 정수 확대는 다수의 국민들이 반대한다. 많은 정치학자나 시민사회에서는 국회의원을 늘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하지만, 현실의 벽은 실로 높다. 그렇다면 지역구 의원 수를 줄이는 것은 가능할까? 선거법 개정이 국회의원들의 손에 달려 있는 한, 토끼 머리에 뿔이 날 때쯤에 일어날 일이다.

결국 답은 하나다. 시민이 좋은 대표를 뽑는 수밖에 없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간과하고 있었던 대의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그런데 좋은 대표는 그냥 뽑히지 않는다. 참여민주주의만큼이나 선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시민이 필요하다. 투표를 열심히 한다는 것과는 다르다. 비슷비슷하게 나쁜 후보들을 놓고 투표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가?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시민이 공천 과정에서부터 개입해야 한다. 좋은 후보를 공천하고 나쁜 후보를 공천하지 말라고 정당에 요구해야 한다. 한국 시민사회는 이미 그렇게 해본 경험이 있다. 2000년 총선에서 일단 나쁜 후보를 걸러내려는 시도가 있었다. 주로 도덕성을 중심으로 88명의 부적격 명단을 발표했다. 이 중 59명(67%)이 공천받지 못했다. 부적격 명단 중에 공천된 후보를 대상으로는 낙선운동을 벌여 15명(68%)을 낙선시켰다. 수도권에서는 20명의 낙선 대상 중에서 1명만이 당선될 수 있었다.

1987년 민주화를 기점으로 보면 13년 만에 시민사회가 그만큼 성장해서 ‘정치의 꽃’이라 불리는 선거에서 처음 제 목소리를 낸 것이다. 그로부터 다시 15년이 지났다. 총선시민연대에 참여했던 많은 사람들이 지금 정치권으로 들어갔다. 시민사회는 오히려 더 위축된 것처럼 보인다.

이야기합시다, 바로 지금

바로 지금이 시민의 정치 참여가 질적으로 한 단계 올라설 때다. 시민들이 직접 공천과 선거에 개입해야 한다. ‘나쁜 후보 걸러내기’라는 부정적·소극적 시도를 넘어서, 좋은 후보란 어떤 후보인지 기준을 제시하고, 그런 후보를 공천해달라는 긍정적·적극적 주장을 펼쳐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선거의 진짜 의미다. 여론조사를 통해 이뤄지는 아래로부터의 공천은 선거에 대한 많은 역사적 탐구를 볼 때 요식행위에 불과하다. 선거의 진짜 효용은 출마한 후보자들 중 누가 좋은 대표인지, 그 기준은 무엇인지에 대해 시민들이 모여 토론함으로써 스스로 정치의식을 고양시키는 데 있다. 이것이 민주주의가 가진 진짜 힘이다. 선거가 비슷비슷한 나쁜 사람들을 계속 재생산하는 제도라면 이것을 민주주의라고 부를 수 있을까?

선거를 앞두고 벌어지는 ‘시민들의 토론, 좋은 대표에 대한 비전 제시, 정당에 대한 요구, 자기 성찰’이야말로 선거를 통해 정치가 나아질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이다. 단기적 이익을 좇는 사람들의 선호는 공적 대화를 통해 변화할 수 있다. 지역구에 예산을 따오는 후보, 동네 산악회에 와서 머리 한 번 더 숙이는 후보, 학력이 좋고 인물이 훤한 후보가 아니라, 좋은 입법과 좋은 정치를 하는 후보를 어떻게 고를지, 그리고 그런 후보를 어떻게 정당에 요구할지를 이야기할 때다. 바로 지금.

[ 한겨레21 / 2015.9.23 / 이관후 희망제작소 연구조정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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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17/11/10-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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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 평] 김성주 신임 이사장 취임을 계기로 국민연금공단의 변화를 기대한다.

7일 국민연금공단 신임 이사장으로 김성주 전 국회의원이 임명됐다. 김 신임 이사장은 국민연금 제도와 기금에 대해 폭넓고 전문적인 식견을 갖춘 인물로 평가할 수 있다. 19대 국회 내내 보건복지상임위에 있으면서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하락 중단 및 가입자 중심의 기금운용체계 개편 법안을 대표 발의했고, 노후빈곤 해소와 공적연금 강화를 위해서 적극적인 활동을 해왔다. 김 이사장 임명으로 문형표 전 이사장 구속 이후 10개월에 걸친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공백 상황은 일단락됐다. 현재 국민연금공단은 제도와 기금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을 해소하고, 국민 노후를 책임지는 기관으로서 다시 자리매김하기 위한 개혁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여러 모로 신임 이사장에 대해 거는 기대와 책임이 클 수밖에 없다.

올해 국민연금공단은 설립 30주년을 맞았다. 한 세대가 지난 세월이지만 제도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는 여전히 바닥이다. 공적연금 축소와 사적연금 활성화라는 과거 정부들의 정책 기조에서 국민연금은 성숙되기도 전에 만신창이가 됐다. 국민 노후 생활의 안정이라는 제도 본연의 목적인 아닌 기금을 유지하고 키우기 위한 재정안정화가 최우선적인 목표가 됐다. OECD 국가 중에서 노인빈곤율은 압도적으로 1위이고, 지금 이대로라면 앞으로도 개선의 여지는 보이지 않는다. 이렇듯 국민연금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에는 과거 잘못된 정부 정책의 문제도 컸지만 정부 정책 집행기관이라는 무기력에서 한 번도 벗어나지 못한 국민연금공단의 책임도 있다.

김성주 신임 이사장의 취임을 계기로 국민연금공단이 새롭게 변모하기를 기대한다. 단순히 법과 규정에 순응하기보다 국민들의 편에 서서 잘못된 정부 정책을 바꾸고, 제도개선에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마침 기회도 좋다. 새 정부 역시 과거 잘못된 정책기조를 바꿔 국민 노후를 안정하기 위해 국민연금 강화를 주요 국정과제로 삼고 있다. 사회적 합의를 통한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상향, 사각지대 해소, 기금운용체계의 민주성과 투명성 강화, 장기 재정 안정을 위한 국민연금기금의 공공인프라 투자 등 이 모든 것은 국민연금 강화와 신뢰회복을 위해 매우 중요한 과제들이다. 대부분 국회 논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법 개정사항이지만 실질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뒷받침해야하는 것은 공단의 역할이다. 이를 위해 공단에 복지부, 시민사회단체가 함께 참여하는 제도개선 기구를 만드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또 현재 진행되고 있는 4차 재정추계에서 실질적인 지원을 맡는 공단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 재정추계위원회의 추계 결과가 나오게 되면, 이어 제도발전위원회, 기금운용발전위원회에서 제도와 기금 전반에 대한 개선 논의를 거쳐, 2018년 하반기에 최종적으로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안이 발표될 예정이다. 과거 재정추계마다 국민연금은 홍역을 치러야 했다. 제도 본연의 목표인 적정한 노후소득보장에 대한 논의는 실종되고 수십 년 후의 ‘기금고갈’, ‘재정안정’, ‘보험료 인상’에 대한 얘기만 판을 쳤다. 국민을 불안하게 하고, 제도에 대한 불신만 야기했다. 각 위원회가 오로지 재정안정에만 초점이 아니라 급여 적정성을 포함한 제도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개선 대안을 만들 수 있도록 공단이 적절한 역할을 해야 한다.

끝으로 기금운용에 대한 불신을 해소하고 정치와 시장으로부터의 독립성을 확보하는 것 역시 시급한 과제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관련해 국민의 소중한 노후자금인 국민연금이 재벌의 편법적인 경영권 승계에 악용되었다는 것은 매우 충격적인 일이었다. 다시는 그러한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공단은 기금운용의 투명성과 민주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관련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정비해야 한다. 향후 정부의 기금운용체계 개편안이 발표되면 종합적인 논의가 있겠지만, 그 이전에라도 기금운용의 의사결정과 세부 투자내역 공시 강화, 주주권행사 및 사회책임투자 강화 등 규정 및 지침 개정만으로 가능한 것은 먼저 시행되어야 한다.

아무리 비난받더라도, 또 미덥지 못해도 국민의 노후에서 국민연금이 차지하는 역할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없다. 국민연금이 불안하면 국민의 노후가 불안하다. 이제 다시 국민연금을 국민의 품에서, 신뢰 속에서 키워 가자. 김성주 새 이사장의 취임을 계기로 국민연금공단의 진정한 변화를 기대한다.

2017년 11월 7일

공적연금강화 국민행동

(www.pensionforall.kr)

금, 2017/11/10-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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