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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책읽기 후기 (박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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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책읽기 후기 (박선민)

익명 (미확인) | 수, 2015/09/23- 10:31

산체스네 아이들(오스카 루이스, 이매진)

 

2015.8.29

 

‘타임’지는 책이 나온 이래 10년간 최고의 책 리스트에 올려놓았고, 피델 카스트로는 “5만 편의 정치 팸플릿보다 가치 있다”고 평했다. 르포르타주의 고전이라 불리지만 이 책은 무려 790쪽이다. 읽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쉽게 읽기 어려운 책이다. 책읽기 모임이 아니었다면 읽어볼 엄두조차 나지 않았을 것이다.

 

<산체스네 아이들>은 1960년대 멕시코시티 빈민가의 가족이야기다.

오십대의 아버지와 네 명의 자식들이 생애사를 털어놓는다. 일종의 집단 자서전이다.

각자의 시각에서 살아온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그런데 이게 정말 지나치리만큼 솔직하다. 일상과 생활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황당하리만큼 성적으로도 자유롭다. 무지하고, 감정적이고, 폭력적이다. 그러면서 소박하고, 진지하다. 누군가의 삶을 돋보기로 들여다보는 건 고통스러운 일이다.

 

개인은 빈곤을 해결할 수 없다. 빈곤의 덫에 갖히면 옴짝 달짝 할 수가 없다.

정부가, 정치가, 노동조합이 제 역할을 하지 않는다면 삶은 제자리걸음이다. 심지어, 나빠진다. 더 나빠질 것이 없어 보이는 데 나빠진다. 빈곤은 사회구조적 문제다. 평생 가볼 것 같지 않은 나라 멕시코의 60년대 이야기에서 2015년 한국사회를 떠올리는 이유다.

 

역자 후기를 옮긴다. “내년이면 이 책을 번역해서 낸지 20년이 된다. 그동안 세상은 얼마나 달라졌는가(중략) 전 세계적 보수화의 물결 속에 자꾸만 감춰지고 움츠러들 뿐 빈곤의 문제가 해결됐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중략) 가난을 선택한 적도 없고 가난을 투쟁의 대상으로 삼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형편은 다시금 조명돼야 한다.” 역자후기가 쓰인 날짜는 ‘1997년 6월’이다. 이 책은 번역 된지 거의 40년이 되었다. 깜짝 놀랄 만큼 변한 게 없다.

역자가 오스카 루이스의 입을 빌러 인용한 C.P 스노의 말을 곱씹어 보는 것으로 후기를 맺겠다. “사람들이 이제는 빈곤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완전히 잊어버려 불우한 사람들을 느끼지도 못하고 그 사람들과 이야기하지도 못하게 돼버린 게 아닐까?”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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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손잡이 민주주의> 출판기념토론회

<양손잡이 민주주의>의 저자  최장집, 서복경, 박찬표, 박상훈과 함께
촛불집회와 정치, 민주주의에 대해 묻고 답하고 의견을 나누는 자리

* 사전에 <양손잡이 민주주의>를 읽고 질문 및 토론할 거리를 가져오시면
더욱 풍부한 자리가 될 수 있습니다.

일시 : 2017년 3월 4일(토) 오후 2시
장소 : 정치발전소
참가신청 : http://bit.ly/politicus_1
문의 : [email protected] / 카카오톡 @정치발전소

화, 2017/02/28-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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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골목길

서울KYC 회원들의 책읽기 소모임입니다.
역사, 소설, 평전, 정치교양, 인문학 등등
회원들과 함께 한권의 책을 읽고,
책속에서 느낀 각자의 다양한 생각의 나눔을 합니다.

변화의 바람이 느껴지는 4월
더 좋은 세상에 대한 희망으로, 함께 책읽기 합니다.

4월 생각의 골목길 안내

-일정 : 4월 19일 수요일 오후 7시 30분
-함께 함께 읽는 책 :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도시, 암스테르담/ 러셀쇼토 지음(책세상)
-장소 : 사무국(장소는 변경될 수 있습니다)
-신청 : 댓글 달아주세요. (사무국 연락 02.2273.2276)




*책소개

네델란드(Netherlands)는 어원상 '낮은 땅' 이라는 뜻이다.
이 나라를 비롯해 벨기에와 룩셈부르크까지 포함하는 북해 연안 저지대는
유럽 북부 지대를 흐르는 큰 강들이 바다로 빠져들어가는 길목이다.
초기 인류는 1100년 무렵부터 이 일대 질퍽한 늪지에 제방을 쌓고
토탄 습지에 수로를 파는 식으로 땅과 물을 분리시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한 세기 뒤에는 해수의 범람을 막고자 암스털 강에 댐을 건설했으니,
오늘 날 암스테르담의 중심을 이룰 뿐만 아니라
이 도시의 이름 자체가 된 '암스텔레담머'(Amstelredamme)였다.
"마리화나, 안락사, 성매매 합법화,
'암스테르담의 자유' 1천년 역사
자유는 끝없이 싸워 지켜야할 가치"

2008년부터 2013년까지 암스테르담에 있는 '존애덤스연구소(John Adams Institute)'의 소장으로
일하면서 암스테르담에 깊이 매료된 미국의 역사학자이자 저널리스트인 러셀 쇼토의 책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암스테르담 곳곳을 누비면서 직접 수집한
역사적인 사건들과 이야기를 경쾌하고 위트 있는 문장으로 전한다.

암스테르담의 전 시장 요프 코헌, 안네 프랑크와 어린 시절 함께 뛰놀았고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끌려가 죽음의 문턱에까지 다녀온 프리다 멘코,
1960년대에 '프로보운동'을 이끌었던 룰 판 다윈 등 역사의 산 증인과 나눈 인터뷰 내용들은
이 도시에서 화려하게 피어난 '자유'와 '진보'의 역사를 생생하게 구체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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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16/04/11-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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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와 한국 복지국가의 전망1)

 

윤홍식 | 인하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즐거운 당황스러움이라고 할까요? 대통령 선거 기간에 보여주었던 문재인 후보가 맞나 할 정도로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취임 일주일간 대통령이 보여준 행보는 지난 9년간 비민주적이고, 독선적인 국정 운영에 익숙했던 시민들에게는 당황스러운 즐거움을 선물했습니다. 국정교과서 폐기를 지시하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5.18 민주화운동의 기념곡으로 제창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물론 인천공항을 방문해 좌고우면 없이 비정규직을 단번에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부패한 검찰에 대해서는 민주적 통제가 무엇인지를 확실히 보여줄 것 같습니다. 백미는 지난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눈물을 흘리고, 유족을 껴안고 모두가 함께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한 것이었습니다. 막힌 속이 뚫리는 것 같았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을 제외하면 국정교과서 폐지,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검찰 개혁 등은 재정을 투여하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득권 세력의 저항이 있겠지만, 대통령이 결심하면 추가적인 재원이 들지 않고도 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한국을 어떤 복지국가로 만들어갈 것인가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입니다. 정치의 핵심은 그 사회가 생산한 잉여를 권위적으로 배분하는 것으로 생각했을 때 문재인 정부가 추구하는 한국 복지국가의 모습이야말로 문재인 정부의 성격과 성패를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준거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대통령 선거기간 동안 다양한 이념적 지향을 5개 주요 정당의 후보들이 저마다의 공약을 내놓고 치열하게 국민의 선택을 기다렸습니다. 사회복지의 관점에서 보면 취약계층에게 공적 복지를 집중해야 한다는 후보부터 보편적 복지를 지향하는 후보까지 다양한 선택지가 시민들에게 주어진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정작 대통령 후보들은 자신들의 공약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심지어 일부 후보들은 세출 구조 조정을 통해 복지공약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가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이 지난 4년 동안 입증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후보들은 마땅히 복지공약을 실천하기 위해 수반되는 재원마련 방안을 제시했어야 했습니다. 


아쉬웠던 점은 제시된 대통령 후보들이 지향하는 한국 복지국가의 상을 알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GDP 대비 사회지출을 OECD 평균 수준까지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에 후보들 간에 암묵적인 동의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그 속도를 어떻게 할지는 후보마다 큰 차이가 있습니다. 심상정 후보의 경우는 공적 사회복지의 지출을 매년 70조 가까이 늘리겠다고 공약하기도 했으니까요. 하지만 정작 사회복지지출을 확대를 통해 만들어가야 할 한국 복지국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공적 복지의 양을 확대한다는 것이 곧 한국 복지국가가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2016년 기준으로 그리스의 GDP 대비 사회지출은 27.0%로 모범적인 복지국가로 알려진 노르웨이의 25.1%보다 높고, 스웨덴의 27.1%와 거의 같습니다. 그러나 불평등을 측정하는 지니계수를 보면 그리스의 지내계수는 0.34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인 데 반해 스웨덴은 0.27, 노르웨이는 0.25로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수준입니다. 빈곤율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의 빈곤율은 15%인데, 반해 노르웨이와 스웨덴의 빈곤율은 8%, 9%에 불과합니다. GDP 대비 사회복지지출이 10.4%에 불과한 한국의 지니계수가 0.31이고, 빈곤율이 15.0%라는 점을 고려하면 공적 복지지출의 확대가 반드시 시민의 삶을 풍요롭게 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합계출산율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얼마나 지출하는가의 문제보다는 어떻게 지출하는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반적으로 좋은 복지국가는 소득보장보다 사회서비스에 상대적으로 더 많은 공적 지출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한국은 노인 빈곤 문제가 워낙 심각하고, 아동수당과 같은 보편적인 사회수당이 제도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현금급여를 확대하는 것은 필요한 부분이고, 이점에서는 모든 후보가 필요성을 공감하고 있었던 같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공적 복지를 확대하는 것만큼이나 확대된 공적 복지를 통해 한국 사회가 만들고자 하는 복지국가의 모습을 정확하게 설계하고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가 어떤 비전을 갖고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하지만 큰 기대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제가 다른 곳에서도 이야기한 것을 옮기면 문재인 정부는 좌파정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문재인 정부를 탄생시킨 ‘더불어민주당’은 노동자의 정당도 의회 민주주의를 통해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사회주의를 실현하고자 했던 유럽의 사민당도 아닙니다. 굳이 민주당의 이념적·정치적 기반을 이야기해야 한다면 지역적으로는 호남, 정치적으로는 이승만 정권 이래 지속되었던 독재정권에 대항했던 제도권의 자유주의적 민주화 세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외교안보 문제를 제외한 복지정책만 놓고 보면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은 심상정 후보는 물론이고 보수 후보였던 유승민의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유승민 후보가 조건 없이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하겠다고 공약했을 때 문재인 대통령은 재정문제를 이유로 장애인부터 단계적 폐지를 주장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재정여건을 고려해 아동수당을 단계적으로 추진하겠다고 했을 때 유승민 후보는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아동수당을 지급하겠다고 공약했습니다. 우리의 기대는 이러한 문재인 정부의 이념적 성격에 기초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민이 중도적 자유주의 개혁의 한계를 넘어 문재인 정부에게 혁명적 개혁을 요구하는 순간 시민은 ‘좌파 신자유주의’와 ‘좌측 깜빡이를 켜면서 우회전’했던 노무현 정부의 재림을 보게 될 수도 있습니다. 중도 자유주의 정부에게 좌파적 개혁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사슴을 말이라고 해서도, 말을 사슴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지식인과 시민사회는 어떤 정권이 집권하더라도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적 기능을 게을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유시민 작가가 이야기한 ‘진보 어용 지식인’이란 지식인과 시민사회 할 수 있는 역할이 아닙니다. 어용 지식인이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권력에 영합하는 지식인을 일컫는 말인데, 여기에 진보라는 말을 붙인 것은 진보 정권을 보수 세력으로부터 지키는 지식인 정도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그럴 리는 없겠지만) 문재인 정부가 이라크 전쟁과 같은 불의한 전쟁에 파병한다면 지식인과 시민사회가 어떻게 문재인 정부를 지지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문재인 정부가 노무현 정부처럼 국민연금의 소득보장기능을 약화시킨다면 지식인과 시민사회가 어떻게 동의하고 지지할 수 있겠습니까? 민주적 가치를 훼손하고, 평등한 분배를 추구하려는 정권에 대한 보수의 공격에 맞서 지식인, 시민사회와 정권이 함께 할 수 있지만, 민주적 가치와 진보적 가치를 위협하고, 훼손한다면 설령 좌파 정부라 하더라고 우리는 함께할 수 없습니다. 사슴은 사슴이고, 말은 말입니다.

 


 

1) 본 글은 한국사회복지학 제69권에 실린 편집인의 글 "어떤 기대를 해야 할까?"를 기초로 수정·보완해 작성한 글임

목, 2017/06/01-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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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이력서 사진’ 부착이 상징하는 것김경미 서울시 주무관 청년정책담당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당선이라는 결과를 지켜보며 그저 황망해하거나, 미국 정치도 망했군이라는 조롱으로 그쳐선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트럼프가 당선될 수 있었던 원인은 무엇일까. 그의 당선이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에 대한 배척으로 이어지면 어떡할까? 포용이 아닌 배제, 조화로움이 아님 분열의 에너지를 기반으로 한 정치 문화가 우리 사회에도 주 흐름이 되면 어떡할까. 이를 막기 위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뭐가 있을까.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그렇게 생각 서랍장을 막 뒤지고 있을 때, 문득 ‘이력서 사진 기재 금지, 어서 빨리 서둘러야 해’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트럼프 당선 그리고 ‘이력서 사진 기재 금지’. 요 몇 달, 둘 사이의 논리적 비약을 좁히지 못해 갑갑했다. 하지만 이번주 희미하게나마 둘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은 것 같다. 지난 1월27일 이슬람 7개국 국민들에 대해 90일간의 미국 입국 금지와 120일간 난민 수용 금지 등을 골자로 한 행정명령을 내린 트럼프 대통령과, 이에 대해 “우리가 지지하는 정책이 아니다”라며 난민기금 확대, 행정명령 무효화 소송 준비 등으로 반대 행동을 취하고 있는 애플, 구글 등 미국 기업들의 대응을 보면서다.

“모든 사람은 신 앞에 평등하다”는 자명한 진리가 미국 사회를 지켜내고 있는 제일 크고 중요한 기둥이라면, 이번 행정명령에 대해 ‘구글러는 함께다’라며 시위에 나선 구글 임직원들, 난민 1만명 채용 계획을 밝힌 스타벅스의 모습은 미국 사회 부분 부분을 지탱하고 있는 작은 지붕 같았다. 미국 기업들의 외국인 인력 비중이 높은 탓도 있겠지만, 이런 결정을 가능하게 한 기업문화와 이런 기업문화의 가장 끝에 있는 이력서 양식은 우리가 분명 참고할 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은 1967년 ‘고용상 연령차별금지법’ 제정 이후 기업 채용 과정에서 지원자의 사진은 물론 성별, 나이, 결혼 여부, 종교 등의 정보를 묻는 것이 법적으로 금지돼 있다. 이 법이 제정되기까지 여러 역사적 배경이 있었겠지만, 그 법의 범위가 이력서 사진 기재란까지 미칠 수 있었던 것은, 이력서에 기재된 사진 한 장이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하고,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가진다’는 대전제를 무너뜨릴 수도 있다는 문제의식 덕분 아니었을까. 신원 확인 이외 다른 용도가 없을 것 같은 이력서의 사진이 누군가를 손쉽게 배제할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흑인인권운동 등을 겪으며 잘 알게 된 것은 아닐까.

우리는 어떨까. 취업 사이트를 뒤져보았다. 많은 기업들이 지원자의 사진은 물론 부모 직업 등의 정보까지 요구하고 있었다. 그나마 기쁜 소식은 지난해 겨울, 서울시의회 기획경제위원회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체중, 출신지역, 부모의 학력, 직업과 재산상황 등을 이력서에 기재하는 것을 금지하는 조례 및 법이 통과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영계가 “사진 기재를 금지하면 신원 확인이 어려워져 공정한 채용에 걸림돌이 된다”며 반대하고 있어 최종 통과될지는 미지수라고 한다. 이 법을 발의한 국회의원과 정당, 그리고 이런 문제를 늘 예민하게 짚어왔던 언론사들은 어떨까 궁금했다. 홈페이지 등을 통해 확인해보니, 정의당과 녹색당은 당직자 채용 지원서에 사진 기재란이 없었고, 바른정당은 자유형식 이력서를 요구한 반면 더불어민주당, 새누리당, 국민의당과 많은 언론사들은 모두 사진 기재를 요구하고 있었다. 외모로 인한 차별 반대 등의 이유로 이력서 사진 기재 금지를 이야기하던 이들의 말이 정작 자기 앞마당까지 닿지는 못했던 거다.

트럼프 현상 방지와 이력서 사진 기재 금지. 미국 입국이 금지돼 공항에 억류되어 있던 미국 이민자들과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겠다는 미국 여러 기업들. 한국 취업 시장에 들어선 다문화가정 청년들과 외국인 노동자들과 이들이 마주할 이력서 사진 기재란. 이들 사이의 큰 간격을 설명해낼 재간이 나에겐 여전히 없다. 그럼에도 이 주제가 여전히 내 마음을 붙드는 이유는, 이력서 사진 기재 금지, 마음만 먹으면 우리 사업장에서 지금 바로 실천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2022046015&code=990100#csidxdf32c498f01dce19b0860e66e29a56b

금, 2017/02/03-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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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주 프로필 캐리커쳐

[지상강의 변화의 정치학] 24강. 에필로그

알린스키, 변화의 정치학

11. 에필로그

알린스키를 읽고 또 그를 이해하기 위해 다시 다양한 정치학자들의 책을 탐독하며 동료들 그리고 후배들, 무엇보다도 좋은 선배들, 선생님들과 토론했던 시간들은 사실 필자에게 위로의 시간이었다. 필자는 90년대 후반에 학생운동을 시작해서 30대 중반이 될 때까지 청년노동운동, 정당, 국회, 지방행정, 시민단체 등을 정신없이 거쳐 왔다. 세상을 조금이나마 나아지도록 만드는 방법을 찾기 위해선 닥치는 대로 경험하고 뛰어들어 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오래 동안 ‘죄책감’에 시달렸던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늘 격정적으로 ‘희망’과 ‘변화의 가능성’을 강변했지만 정작 바꾸고 싶었던 사회의 현실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고 그 과정에서 많은 동료들과 후배들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길을 지속하기보다는 현실의 생계와 고민을 택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이전에 ‘신념’과 ‘의지’에 가득차서 강변했던 그 모든 이야기들이 무색하고 창피하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가차 없이 다가온다. 괴로운 순간이다. 그리고 거대한 벽과도 같은 현실에 두려움을 느끼곤 한다. 이 모든 몸부림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여전히 우리 사회는 그들에게 고통을 주고 있고 세상이 나아지는 속도보다 나빠지는 속도가 더 빠른 것처럼 보이는데. 나에게 알린스키를 읽는 시간은 이런 고뇌에 대한 위로이자 한편 깊은 반성의 시간이었다. 알린스키가 날을 세워서 비판하고 질책했던 어리석고 조급한 운동가들의 모습은 바로 필자의 모습 그대로였다. 있는 그대로의 세상이 아닌 보고 싶어 하는 환상에 근거해 세상을 해석하고 사람들에게 강변하던 모습, 상대의 경험에 근거한 의사소통 보다 차이를 강조하며 쉽게 편을 가르고 목소리만을 높이며 공격적 언어로 상대를 매도하려 했던 태도, 실제로는 하찮기 그지없는 세상의 비밀을 아는 것처럼 젠체하며 음산한 평론이나 하며 비아냥거리던 습관…세상이 부조리하고 불평등하다고 분노하면 할수록 스스로는 더 편협해지고 강퍅해지기만 했다. 분노는 대상을 찾지 못해 가까운 주변으로 향하고 섣부른 성공에 대한 기대만큼 실망은 크게 마련이어서 내면은 황폐해져만 갔다. 필자가 그 방황의 순간에 알린스키를 만난 것은 작은 ‘구원’과도 같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렇다. 문제는 늘 스스로에게 있었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지금까지 걸어왔던 길을 추억의 저편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나의 추억을 아름답게 미화하기 위해 미래의 희망을 거짓으로 색칠할 수는 없다. 이제는 오랫동안 필자를 옭아매던 강박들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확신하지는 못하더라도 조금 여유로워 졌다고는 느껴진다. 세상은 쉽게 변하지는 않지만 ‘반드시’ 변화할 수 있는 곳이다. 체제 안에서 일해 가는 것은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확실한 변화를 만드는 길이다. 차이를 긍정하는 법을 배웠고 차이에도 불구하고 갈등하고 설득하며 또 과감하게 타협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게 되었다. 미래에 대한 무한한 낙관은 필요 없지만 또 크게 절망해야할 이유도 딱히 없다.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지혜에서 출발해서 딱 그만큼의 변화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여전히 많은 것을 다시 사랑할 수 있고 또 여전히 웃음을 잃지 않고 세상의 변화를 위해 일해갈 수 있다는 사실이다.

한편 이 글과 강의는 필자의 동년배 세대들에 대한 위로였으면 좋겠고 더 힘든 시기를 거칠지도 모르는 다음세대를 위해선 변화를 위한 작은 참고서 정도였으면 한다. 필자의 세대들 중에서 세상의 변화를 바랬던 많은 사람들은 뜻하지 않게 많은 상처를 받았던 경우가 많다. 선배세대들이 겪었던 믿었던 것들이 무너지는 절망보다 오히려 우리 세대가 믿을 것이 아무것도 없는 와중에 지푸라기처럼 환상을 부여잡고 왔던 것에 대한 후회가 더 클지도 모른다. 그 환상의 안개가 걷히고 나서 현실을 목도했을 때 안타깝게도 많은 동료들이 실제로 마음의 병을 앓아야 했다. 이제 그만 아파했으면 한다. 모든 아픔이 추억으로 풍화되지는 않겠지만 술자리의 가끔 내뱉는 넋두리 정도로 비켜두어도 된다고 생각한다. 후회라는 감정이 새로운 도전의 발목을 잡게 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우리세대가 했어야 하는 일보다 우리가 지금부터 다시 다음세대를 위해 시작해야 하는 일들을 더 많이 생각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다음세대에게는 어차피 필자의 경험보다 훨씬 더 다양하고 극적인 경험들이 기다리고 있기에 이 강의의 이야기들을 결코 ‘지침’ 따위로 삼을 필요도 없고 그럴리도 없다고 생각한다. 막 서른 살이 되었을 때 책 한권을 낸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이제부터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야할 20대들에게 미안하다는 사과를 책 말미에 붙였더랬다.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20대라고 말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 다시 책을 한권 썼을 때 말했다. ‘지금 당신들과 같이 걷고 있다고’. 이제 30대의 중간을 넘어 마무리해가고 있는 지금은 그냥 ‘다음세대를 믿는다’는 말을 건네고 싶다. 다음세대를 믿지 않고서는 필자가 하려고 하는 현재의 어떤 시도도 의미가 없어진다는 것을 새삼스레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더 굳건히 다음세대의 가능성에 믿음과 애정을 보내야 할 것이다. 이제 이 글을 마칠 때이다. 조금 감상적인 마무리였지만 그 나름대로 진심이었음을 이해해주기를 바란다. 알린스키의 말로 마무리하려 한다.

‘함께한다면, 우리는 우리가 찾고 있는 것들인 웃음, 아름다움, 사랑 그리고 창조의 기회를 일부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딘가에서 생활인이 되어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을 옛 동료들에게. 그리고 희망의 다른 이름인 다음 세대에게 존경과 애정을 보내며.

 

[조성주 공동대표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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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15/06/12-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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