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콘텐츠로 건너뛰기

백두산 통일기행

지역

백두산 통일기행

익명 (미확인) | 목, 2015/09/10- 14:40

 

백두산 통일기행을 다녀와서

- 통일위원회 양승봉 변호사

 

천지는 푸르다.

천지는 맑고 넓다.

그리고 천지는 슬프다.

 

2015. 8. 21.일부터 24일까지 3박 4일 동안 민변 통일위가 주관한 통일기행 백두산 탐방을 천낙붕, 이광철, 서중희, 양창영, 설창일, 김용민, 그리고 저를 포함하여 7명의 단촐한 식구가 다녀왔습니다.

photo_2015-09-09_14-39-24

 

이번 여행의 모토는 “가보자 북녘땅, 만나자 북녘동포”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행을 시작할 즈음은 남북이 극단적 대치를 한 후 협상을 막 시작한 때로 통일 기행 내내 우리는 인터넷을 확인하며 협상 결과를 주시할 수 밖에 없었던 아이러니한 상황이었습니다. 통일을 위해 한창 교류를 하고 미래의 청사진을 공유해도 시원찮을 판에 이런 극단적인 상황까지 남북 관계를 악화시켜 온 양쪽 수뇌부의 퇴행적인 행태가 참으로 아쉬웠습니다.

 

21일-송강하를 향하다.

 

말로만 듣던 백두산 천지를 간다는 설렘에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이른 아침 인천공항, 간단히 수속을 마치고 약 1시간 10여 분에 걸친 짧은 비행시간 후 심양에 도착하였습니다. 비자심사를 마친 후 가이드를 만나 심양공항을 배경으로 현수막을 내걸고 기념사진을 찍고 곧바로 백두산을 오르는 전초기지, 송강하라는 곳을 향하는 버스를 탔습니다.

 

우리를 안내한 가이드는 해박한 역사 지식을 자랑하는 59살의 조선생님이라는 조선족이었습니다. 조선생은 해박한 지식으로 여행내내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고 선생과 나눈 대화는 여행의 또 다른 맛은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선생의 할아버지는 경상북도 예천군 감천면 출신이라고 하였고 조선생은 딸 둘을 모두 훌륭하게 키워 큰딸은 중국에서 판사를 하고 있고 작은 딸은 한국의 대학에서 유학 중이었습니다.

 

가이드를 낀 여행이 그렇듯이 조선생도 버스에 타자마자 간단히 심양에 대하여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심양의 옛 이름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봉천으로 현재 1,200만명 정도가 살고 있는 중국 5-6위에 해당하는 매우 큰 도시였습니다. 그런데 도시가 평야지대에 위치하고 있어 한동안 달려도 산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심양에서 송강하까지 약 6시간이 넘게 걸린다고 하여 본격적인 도로주행을 앞두고 우리는 중국의 구멍가게에서 중국이 자랑하는 맛난 칭따오 10병과 안주를 샀습니다. 그런데 그 비용이 무려 75위안!! 우리 돈으로 약 15,000원 정도에 불과해 돈 쓸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맥주를 마시며 우리는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하였습니다. 그 때가 중국시간으로 오전 10시가 겨우 넘은 시간이었으니 우리는 취하면 애비도 몰라본다는 낮술을 점심 먹기 전부터 시작하는 소박한 호사?를 누렸습니다.

photo_2015-09-09_14-39-34

 

고속도로에 차량이 거의 없었지만 의외로 속도를 크게 내지 않아 약간 더디게 나간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양쪽에 옥수수밭을 지나 달리고 또 달려도 계속 옥수수밭, 한국에서라면 당연히 지루하고 따분했을텐데 여행이 주는 설레임은 지루함을 못 느끼게 했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많이 살아 어쩌면 우리 땅이 되었을 수도 있는 만주벌판을 거의 다섯 시간 가까이 달려 3시 40분 경 늦은 점심을 하였습니다.

photo_2015-09-09_14-39-38

 

점심 후 조선생은 이제부터는 고속도로를 벗어나 국도로 달린다 하면서 약 60km가 남았는데 세 시간 정도 가야한다고 하였습니다. 기껏 60km를 세 시간에 간다는 말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막상 도로를 달려보니 곧바로 이해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달린 길은 편도 1차, 왕복 2차선으로 된 좁은 도로였는데 그 도로를 달리는 모든 차량은 흡사 곡예를 하듯이 달렸고 여러 번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였습니다. 도로 곳곳에 경운기가 다니고 소를 비롯한 가축을 싣고 가는 트럭들, 그리고 차선을 무시하고 달리는 차량으로 도로의 모든 차량은 가다서기를 반복하였습니다. 우리가 목격한 가장 압권인 장면은 터널 내부임에도 양쪽 차선을 꽉 채워 일방도로처럼 3대씩 줄지어 달리는 광경이었는데 간담이 서늘했습니다.

 

송강하는 백두산 등정을 하는 관광객이 머무는 곳으로 이름도 왠지 멋지게 느껴집니다. 송강하를 거의 도착할 즈음 조선생은 1년에 약 300여 명의 중국인들이 백두산에 송이나 산삼, 약초 등을 채취하러 들어가 실종이 되어 결국은 돌아오지 못한다는 믿기 힘든 말을 해주었습니다. 백두산을 부산모수(父山母水)라고 칭하여 아버지의 산이라고도 한다는 데 그 산에서 해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실종되어 종적을 알 수 없게 된다고 하니 섬뜩한 느낌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조선생이 말했던 것보다 약 1시간 일찍 우리는 숙소인 그린 호텔에 도착하여 짐을 풀고 이동하여 간단히 저녁 식사를 마쳤습니다. 식사를 마친 우리는 연길에서부터 기차를 타고 오는 유가려 가족을 기다렸습니다. 아시는 분은 알겠지만 유가려는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사건의 피해자인 유우성의 여동생입니다. 여동생 유가려는 아버지와 고모, 그리고 2주 뒤 결혼을 할 남편과 함께 왔습니다. 유가려는 국정원 합동심문센터에서 2013년 4월 26일 석방된 후 오빠의 재판에서 어떤 과정을 통해 허위 진술을 하게 되었는지 조작 과정을 자세히 밝힌 후 2013년 7월 초 추방이 되었습니다. 반가왔지만 늦은 시간이라 간단히 맥주를 마시고 다음 날 점심때 만날 것을 약속하고 헤어졌습니다.

 

22일-천지를 보다

 

조선생은 백두산은 관광객이 너무 많아 늦게 출발하면 기다리다 지친다며 최소한 6시에는 일어나서 식사를 마쳐야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일찍 식사를 시작하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바지런한 한국관광객들이 한꺼번에 식당으로 밀려들기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우리 일행이 제일 단촐해 우리는 제일 일찍 백두산을 향했습니다.

 

백두산으로 가는 길도 설레임을 주었습니다. 곳곳에 작약나무가 부러져 있었고 길 양쪽으로는 예쁜 꽃이 피어있었습니다. 조선생은 백두산을 우는 아기 얼굴이라고도 부른다면서(언제 어떻게 표정이 바뀔지 알 수가 없다는 의미로..) 은근히 천지를 구경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언질을 하였습니다. 길 옆 곳곳에 늪처럼 보이는 웅덩이, 그리고 무성한 숲은 남한 땅에서는 보기 힘든 광경이었습니다. 우리가 지나는 그 곳이 바로 개마고원이었습니다.

백두6

 

40여 분을 달려 백두산 입구 매표소에 도달하였는데 가지고 간 현수막을 펼치지 못하였습니다. 중국 공안은 백두산 인근에서는 한글로 된 현수막을 펼치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심지어 가이드가 드는 안내 깃발에 사용된 한글도 현출시키지 못하게 한답니다. 중국은 백두산에서 한글이 현출되는 것에 대해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강한 제재를 한다는 것입니다. 백두산을 포함한 인근의 땅에 대하여 자신감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 아닌가하는 나만의 추측을 해보았습니다. 조상들이 제대로 대응을 못해 멋진 땅을 놓쳐 버렸다는 아쉬움이 다시 들었습니다.

 

매표소에서 표를 구입한 후 또 버스를 타고 백두산 천지를 향하는데 입장료와 버스표 가격이 무려 4만 원이 넘는 고가였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관광객들이 지불하는 돈이 모두 중국의 주머니로 향한다고 생각하니 참 아까왔습니다.

 

드디어 천지를 향해 버스를 타고 달립니다. 작약나무 숲을 지나고, 잡목을 스치고…나지막한 풀숲과 오밀조밀 이쁜 야생화를 굽이굽이 지나치면서 달렸습니다. 30분 정도 달린 후 우리는 드디어 천지를 향해 걷습니다. 일찍 서둘렀는데도 벌써 산에는 많은 사람들이 오르고 있습니다. 1,441개의 계단을 설레는 마음을 안고 한 걸음씩 밟고 올라갑니다. 날씨가 흐렸고 곳곳에 안개가 있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천지를 보기는 글렀구나하고 내심 포기를 하였습니다. 다음에 보면 되지…근데 언제 또 올 수 있으려나….흠흠

 

마침내 계단을 다 올라 천지를 내려다 본 순간, 잊을 수 없는 멋진 광경이 눈앞에 드러났습니다. 아 천지… 멋진 장면에 입이 다물어지는 사람도 있겠지만 저절로 입이 벌어졌습니다. 순간 뭉클하고 감동의 물결이 가슴을 스칩니다. 우리 일행 모두에게 감동의 물결이 스치는 것이 저절로 느껴졌습니다.

백두2

천지에 안 가본 사람들이 여행자랑을 하면 말을 섞지 말자고 하였습니다.–천지도 안가봤으면서–좋은 책을 일독을 권하듯이 저는 천지에 다녀온 후 지인들에게 천지를 권합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에게도 권합니다. 앞으로 2-3년 내에 송강하에 직항이 생길 예정이라고 하니 훨씬 편하게 구경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천지에 뛰어 내려가 직접 물을 만지고 싶었지만 접근을 금지시킵니다. 직접 접할 수 없어 아쉬웠지만 멀리서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마웠습니다.

백두4

 

백번을 가면 두 번을 본다고 해서 백두산이라고 한다던 농담부터 시작해서 3대의 덕이 모여야 천지를 볼 수 있다는 말까지…참 다양한 말들이 천지를 더 신비롭게 합니다. 우리는 구름이 걷히는 순간부터 해맑은 천지까지 멋진 모습을 모두 관찰하는 행운을 가졌습니다.

 

피곤한 일정이었지만 우리 일행 모두 천지를 보는 순간 참으로 들떠있었습니다.

 

중국에서는 백두산을 오르는 방향에 따라 서파, 북파, 남파…라고 일컫는데 우리는 서파로 올랐습니다. 서파에는 북한과 중국의 경계비가 서있고 비록 북녘 동포를 만나지는 못했지만 천지에서 허용된 북녘 땅만 조금 밟아보았습니다.

 

천지가 주는 웅장한 경관은 참으로 감탄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천지는 통일을 원하는 우리 동포의 염원을 모두 담을 만큼 크고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그 멋진 천지를 우리 땅이 아닌 중국 땅을 통해 구경을 해야만 하고 여전히 우리는 티격태격하고 있는 것이 너무나 아쉬웠습니다.

시간이 없다는 조선생의 채근에 아쉬움을 가득 남기고 천지를 떠납니다. 또 언제 올 수 있으려나…

백두5

 

천지에서 내려와 용암이 쓸고 간 흔적인 금강대협곡을 구경하였습니다. 백두산 바닥은 용암이 굳은 곳에 나무가 자라 뿌리가 야무지게 뻗지 못해서 곳곳에 나무가 쓰러져 있는 것이 보입니다. 사람이 다니는 곳을 빼고는 주변이 울창해 호랑이라도 튀어 나올 듯 합니다.

 

금강대협곡까지 돌아본 후 아쉬움을 두고 하산을 합니다. 매표소를 거쳐 강원도 식당이라는 곳에서 한국식으로 된 식사를 합니다. 그 곳에서 어제 약속했던 대로 유가려를 다시 만나 점심을 함께 하고 헤어졌습니다.

 

이제 통화로 향합니다. 통화로 가는 길도 약 4시간 정도 걸린다고 하여 서둘렀습니다. 피곤하였지만 주변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였습니다.

 

백산이라는 곳을 지나기 전에 본 석탄촌은 곳곳에 석탄이 쌓여 있었는데 아침에 석탄을 캐서 바로 성냥불로 불을 붙일 수 있을 정도로 높은 품질을 자랑한다고 하였습니다.

 

중국은 자연자원은 재생이 안되니 후손에게 자연자원을 물려주자며 될 수 있으면 개발을 늦춘다고 합니다. 백산이라는 곳은 석탄으로 유명한 곳이었다는 데 지금은 북한에서 석탄과 철광을 수입을 하고 있고 북한의 무산 철광을 수입해 철판으로 가공하여 돈을 버는 것은 일본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도요타에서 50년간 50억 불을 제공하기로 하고 철판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통화는 제약과 포도주가 유명하다고 하는데 통화 중심부에는 비류수가 흐릅니다. 비류수는 부여와 고구려의 경계로 물고기와 자라가 다리를 놓아 주몽을 구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곳입니다.

 

우리가 백두산부터 오랜 시간을 달려왔던 그리고 내일 달려갈 모든 땅이 모두 고구려의 땅이었습니다.

 

통화에서는 저녁에 북한식당인 “묘향산”에서 식사를 하였는데 식당을 가기 전 일행은 발맛사지를 받고 백두산을 오르느라 고생했던 발에 호강을 시켜주었습니다.

 

북한 식당은 이번 여행 중에서 가장 입맛에 맞는 음식을 우리에게 제공하였습니다. 하지만 술값이 너무 비싸서 놀라기도 하였습니다. 맥주 1병에 1만 원, 소주 1병에 4만 원, 설창일 위원장님이 기분좋게 한 턱 쏘셔서 맛나게 먹었습니다. 생각보다 중국인 관광객도 제법 있었고 흥에 겨운 우리나라 관광객들이 북한 가수들의 노래에 어우러져 춤을 추는 모습도 정겨웠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호텔에 짐을 푼 후 아쉬운 마음에 비류수, 통화의 강가를 7인의 낭인처럼 어슬렁거렸습니다. 통화는 상당히 깨끗하였는데 비류수 주변도 산책로가 잘 다듬어져있어 운치있었습니다. 산책을 마치고도 아쉬움에 호텔 옆 가게에서 양꼬치를 시켜 기어코 맥주를 한 사발씩 먹고 들어갑니다. 식사를 마친지 얼마 되지 않아 많은 주문을 할 수 없었는데 우리 7명이 주문한 양꼬치보다 옆자리에 앉은 대륙의 남녀 2명이 주문한 음식이 훨씬 푸짐하고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서비스하는 남자가 우리를 쏘아보는 눈빛이 예사롭지는 않았다는…

 

23일과 24일

 

백두산을 본 뒤라 비교적 여유가 있었습니다. 다음 날 천낙붕 변호사님의 제안으로 일정에 없었던 양정우 기념관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양정우 기념관 가는 도중 10시도 채 안된 시간이었는데 엄청난 폭죽소리가 들렸습니다. 놀란 우리들을 향해 조선생은 결혼식 축포라고 하면서 적게는 몇 십만 원부터 많게는 몇 백만 원씩 비용을 들여 폭죽을 쏜다는 얘기를 해주었습니다.

 

양정우는 동북일대에서 항일 무장 투쟁을 했던 사람으로 우리에게는 낯선 사람이었지만 중국에서는 기념관과 무덤을 둘 정도로 유명한 항일투쟁가였습니다. 그는 비교적 젊은 나이인 36세에 일본군과 대치하다 사살을 당하였는데 그와 함께 항일무장투쟁을 한 사람들 중 조선인이 많다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양정우 기념관을 잘 꾸며서 후손들이 기리고 있는 모습은 부러운 모습이었습니다. 양정우 기념관을 보면서 조국을 위해 헌신한 사람들에게 살아서 영화를 안겨주지 못한다면 죽어서라도 반드시 제대로 대접을 해줘야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양정우 기념관 관람을 끝내고 내일 비행기를 탈 심양을 향해 갑니다. 다시 4시간의 긴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맛난 맥주를 사서 낮술을 먹습니다. 비교적 한가한 일정이라 버스 안에서 변호사스럽게 자신이 겪었던 훌륭하신 판사님과 검사님에 대한 초보적인 뒷담화를 시작해서 어느 덧 우리 사회의 여러 현상과 제도에까지 소재를 넓혀가면서 맛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뿔사 재미난 이야기와 맥주로 배를 채우다 보니 저절로 생긴 뇨의는 우리를 매우 당황하게도 하였습니다. 참고로 버스기사님은 벌금의 두려움 때문에 우리의 요구를 묵살하고 결코 정차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백두7

 

심양에 도착하여 서시라는 시장의 양념파는 곳을 짧고 산만하게 구경하고 조선생님이 극찬을 하는 로벤교자라는 만두집으로 향합니다. 만두집이 하나의 건물로 되어 있을 정도로 유명하지만 그 맛은 한국에서 먹는 만두와 별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호텔에 짐을 풀었지만 우리는 택시를 타고 시내로 향합니다. 피곤하지만 한국으로 돌아가면 각종 서면이 기다린다….

 

시내에서 한가롭게 배회를 합니다. 인도가 참 널찍하니 사람이 많아도 산책하기가 수월합니다. 음악소리가 어찌나 크던지…..군것질도 하면서 산책을 합니다. 호텔로 복귀 후 친철하고 영리해보이는 아가씨가 서빙을 하는 대로변 양꼬치집에서 소박하고 즐겁게 맥주를 마셨습니다.

여행의 마지막 날 우리는 북릉이라는 곳을 방문합니다. 북릉은 황태극의 무덤으로 황태극은 후금을 세운 누르하치의 아들로 청이라 국가이름을 바꾼 사람입니다. 그는 1592년에 태어나 1643년에 사망하였는데 공교롭게도 우리가 임진왜란을 겪었던 해에 태어나 자신은 우리에게 병자호란을 일으켰던 사람입니다. 그가 죽을 때 앉은 채로 사망하여 청에서 새긴 용은 앉아 있는 형상이라고 하는데 여하튼 우리와 좋은 인연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북릉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비교적 잘 가꾸어 놓았습니다.

 

북릉을 가면서 생각보다 교통이 덜 혼잡하여 이유를 물었더니 출근시차제라는 것을 적용하여 직장의 아침 출근 시간을 조금씩 조절한다고 하였습니다.

 

조선생은 중국의 모습을 수탉의 모습이라고 묘사를 하면서 동북삼성은 닭의 모가지에 해당하는 중요한 곳이라고 하였습니다. 조선생은 기마민족이 말을 타고 움직이는 습성이 있다보니 성격도 급하다고 하면서 우리 민족도 기마민족이어서 성격이 급하고 우리나라의 버선코가 위로 굽은 형태로 되어 있는 것이 기마족이 말을 달릴 때 유용하도록 신발을 만든 것에서 유래하였다고 설명하였습니다.

 

북릉을 구경하고 중국에서의 마지막 식사는 한식당에서 하였습니다. 패키지 여행의 마지막에 한식을 주는 것은 만족을 느끼고 돌아가라는 의미인 것 같았습니다. 점심을 먹고 새로 지은 박물관으로 이동을 하였지만 막상 휴관을 하여 구경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박물관에는 삼부인과 청동단검과 비파형동검 등 우리가 교과서에서 봤던 물건들이 있다고 하였는데 문을 열지 않았으니 다음을 기약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공항에 도착하여 조선생과 헤어졌고 우리는 다시 사랑하는 가족이 기다리는 곳으로….

 

돌아오는 길에 항공사에서 무작위로 업그레이드를 해주는 서비스에 우리 일행이 모두 비즈니스석을 배정받는 호사를 누렸습니다. 비즈니스석을 배정받고도 이를 모른 채 언제 이런 자리에서 편하게 여행해보나..하는 생각으로 지나쳤는데. 그 자리에 앉아서 돌아올 줄이야…..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참 편합니다. 무지 편합니다. 잠이 안왔습니다.

백두8

 

여행을 마치며

우리가 3박 4일간 여행을 하면서 백두산 천지에 머문 시간은 매우 짧았고 중국 땅, 그것도 길에 뿌린 시간이 훨씬 길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여행에서 천지가 준 감동은 오래 남았습니다.

 

비록 중국 땅에서 본 천지지만 언젠가 우리 땅에서 오르리라.. 통일이 되는 날 천지에 한 번 더 오르리라…우리 일행은 천지에 많은 다짐을 남기고 왔고 천지에 그런 다짐을 둔 것만으로도 여행은 충분히 즐겁고 가치있었습니다. 더불어 좋은 사람들과 같은 하늘아래에서 3박 4일가 어울린 것 역시 소중한 추억이었습니다.

 

비록 북녘땅과 북한동포를 많이 접하진 못했지만 천지에 담은 희망으로 내일을 기약하면서 여행기를 마칩니다.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

Plain text

  • 웹 페이지 주소 및 이메일 주소는 자동으로 링크로 전환됩니다.
  • 줄과 단락은 자동으로 분리됩니다.
  • 사용할 수 있는 HTML 태그: <a href hreflang> <em> <strong> <cite> <blockquote cite> <code> <ul type> <ol start type> <li> <dl> <dt> <dd>
이미지
무제한 수의 파일을 이 필드에 업로드할 수 있습니다.
50 MB 한계입니다.
허용된 유형: png gif jpg jpeg.
Enter the YouTube URL. Valid URL formats include: http://www.youtube.com/watch?v=1SqBdS0XkV4 and http://youtu.be/1SqBdS0XkV4.
CAPTCHA
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민변 28차 정기총회 참가후기

- 자뻑, 성찰 그리고 희망 -

 

- 문현웅 회원(민변대전충청지부 사무처장)

 

# 자뻑

 

민변 회원들의 자뻑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시상식 때마다 ‘이 모든 영광을 동네 미용실 원장님께 드려요~~~.‘ 라든가, ’저는 밥상에 숟가락만 얹었을 뿐입니다.’ 뭐 이런 겸손의 소리나 가식의 소리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이 상을 받을 줄 알았다.’, ‘우리가 받을 상인데 TF팀을 구성하지 않아서 못 받았다.’, ‘나는 이 상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라는 자뻑의 말들만이 난무한다.

이 사람들아~~~헤눙이도 2009.에 ‘모범회원상’ 받았거든~~~나도 그때 내가 그 상을 받을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시유~~~호호호호

수상자

 

# 성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상식 내내 아니 정기총회 내내 작년 한 해 민변 회원으로서 나는 무엇을 하였는지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상을 받은 분들 뿐 아니라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 우리 민변 회원들 중 많은 분들이 현장에서의 고통을 함께 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우리 회원들의 빛나는 활동들로 인해 나는 다시 두 단어를 머리에 떠올리며 다짐해 본다.

‘법정만이 아닌 현장에서 함께 하는 변호사이길.’, ‘현장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함께 나누는 변호사이길.’…터진 입이라고 말은 잘 헌다…호호호호

IMG_0885

 

# 희망

 

터진 입이든 뚫린 입이든 입은 비뚤어졌어도 말은 바로 하자. 이번 정기총회는 1000번째 회원을 비롯한 신입회원들을 열렬히 환영하는 자리였다. 솔직히 말해서 민변 회원, 얼굴 보고 뽑습니까? 과거는 그렇지 않았는데(?), 요즘 새로 들어오는 회원들은 왜 그리 다들 예쁘고 잘 생겼는지 비주얼에서도 나날이 발전하는 민변을 보며 또다시 희망을 품습니다.

신입회원 여러분~~~돈 읎으믄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붙여 드시지 마시구유~~~선배들헌티 무조건 밥 사달라고 하시구유~~~사건 읎으믄 사건도 달라구 하셔유~~~여러분들이 우리의 희망이에유~~~호호호호

IMG_0604

수, 2015/06/10- 14:10
203
0

여성인권위원회 활동 소식

 

<학교비정규직 현황 및 파업 관련 워크숍 개최>

 

여성인권위는 지난 5월 월례회에서 전국여성노조 나지현 위원장님을 모시고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상황과 최근 진행된 총파업’ 라는 주제로 워크숍을 자리를 가졌습니다. 나 위원장님은 학교에서 근무하지만 교사도 학생도 아닌 영양사, 조리사 및 조리보조원 등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실태 및 관련 노동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고용안정과 근속인정, 정규직화 등을 통한 개선방향을 제시하였습니다. 참석한 여성인권위 위원들은 학교비정규직의 현실과 문제해결에 대해 깊은 공감을 나타냈으며, 학교비정규직의 신분과 근로조건을 규정하는 교육공무직법이 제정되어 학교비정규 노동자가 학교의 한 주체임을 분명히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데에 뜻을 같이 하였습니다.

IMG_2528 IMG_2542

<영화 ‘자, 이제 댄스타임’ 공동 관람과 조세영 감독과의 GV>

 2016년 6월 여성인권위 월례회는, ‘낙태’를 소재로 한 장편다큐멘터리 영화 <자, 이제 댄스타임>의 조세영 감독과의 대화 등으로 이루어진 워크샵으로 진행하였습니다. 위원들은 워크샵에 앞서 민변 대회의실에 모여 한층 업그레이드된 민변 장비^^를 통해 위 영화를 단체 관람한 후 감독과의 대화 시간을 가졌습니다. 국내 최초로 낙태 경험자들이 출연하여 대중에 얼굴을 공개한 위 영화를2011년부터 2014년까지 4년간 기획·제작·배급하는 과정에서 낙태라는 주제가 갖는 특수성으로 인한 여러 어려움들, 특히 출연자들과의 단계별 소통과정에서의 신뢰/갈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깊이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IMG_3571

< ‘2016년한국사회의 개혁과 입법과제’ 및 보고대회 -여성인권 분야에 대한 집필과 출간이 잘 마무리 되었습니다.>

민변은 2004년 이후 4년마다 새 국회 개원 즈음에 사법제도, 정치, 민생경제, 여성, 사회, 통일 등 다양한 분야의 법률안에 대한 입법방향을 제시하는 「한국사회의 개혁과 입법과제」를 출간해왔습니다. 올해, 2016년에도 20대 국회 개원에 맞춰 「2016년 한국사회의 개혁과 입법과제」를 출간하기 위한 출간 보고대회 및 토론회가 6. 22. 오후 2시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개최되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여성인권위는 위 출간물에 실릴 여성인권의 각 세부분야 – 가족법 분야, 여성의 재생산권(낙태 등), 여성노동 분야, 여성폭력과 성매매방지 분야, 공적분야, 이주여성분야의 원고를 각 팀을 비롯해 여성위 내에서 공동으로 집필하여 제출하였습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여성위의 이희영 위원이 준비위원을 맡아 여러 가지를 세심하게 챙기며 원고도 직접 집필하였고, 최종적으로 조숙현 위원장님이 감수를 맡아 마무리해주셨습니다. 여성인권위가 그간 4년간의 활동을 토대로 향후 여성인권의 주요한 이슈와 의제를 선정하고 그 고민을 담은 출간물인 만큼, 앞으로 개원하는 20대 국회에서 많은 국회의원들에게 읽히고 사용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여성위의, 다음 월례회는?!^^>

여성인권위 7월 월례회는 2016. 7. 21.(목) 늦은 7시, 민변 대회의실에서 열립니다. 올해의 중반을 넘어서는 시기인 만큼, 많은 분들이 참석하여 그동안의 상반기 여성인권위 활동을 돌아보고 하반기에 대한 계획을 보다 풍성히 하기 위한 의견 나누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경계성 장애인 성폭력 사건’ 및 일명 ‘하은이 사건’ 변호인단과 함께 월례회 이후에 워크숍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참석 부탁드립니다~

월, 2016/06/27- 18:04
203
0

통일위원회 활동소식

 

1. 개성공단 전면중단 대응 TF 구성

 통1

 

개성공단은 우수한 노동력과 기술력으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세계적 투자기관인 골드만 삭스는 남북경협의 가능성을 보고 통일한반도의 GDP는 30~40년후 세계 2위가 될 것이라고 예상하기도 했습니다.

 

남북상생과 공동번영의 상징이었고 날마다 통일의 작은 기적을 만들어 왔던 개성공단,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12년간 가꿔온 남과북의 기적을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많은 전문가, 시민사회단체, 언론 등에서도 이번 개성공단 중단을 ‘재앙’과 ‘대참사’에 비유하며 개성공단 중단이 앞으로 남북관계와 동북아에 몰고올 파장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에 통일위원회에서는 “개성공단의 전면중단을 반대한다.”는 민변성명을 통해 개성공단 중단은 정부가 2013년 북한당국과 체결한 ‘개성공단정상화합의서’ 제1항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행태이므로 이번 결정을 즉각 철회하고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를 위해 북측과 즉각적인 대화에 나설 것을 촉구하였고, 지난 2. 15(월) 민변 집행위원회에 ‘개성공단 전면중단 대응 TF’구성을 제안하여 매주 금요일 점심 회의를 통해 개성공단 전면중단에 대한 다양한 형태의 법적 대응, 여론전, 시민단체와의 연대투쟁 등을 적극적으로 기획해 나가고 있습니다.

 

2. 독일 통일기행으로 회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거꾸로 질주하는 남북관계의 마지막 브레이크였던 개성공단 마저 중단되고 한반도의 ‘통일’ 은 갈수록 짙은 안개 속에 가려져 그 형상조차 알아보기 어려운 요즘,

민변 통일위원회와 미군문제연구위원회(준비팀장: 김용민 변호사)는 우리 보다 앞서 통일을 이룬 “통일 독일”을 만나 통일이란 과연 어떤 것인지를 눈과 귀, 가슴으로 느끼고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대한 해법을 찾아보려 합니다.

 

특히 이번 독일 통일기행에는 “3가지의 특별함”이 있습니다.^^

 

첫번 째, 독일 현지 가이드를 담당해 주실 박사님은 우리모임 최병모 변호사님께서 강력 추천해 주신 분으로 독일 통일에 대한 역사, 방문지에 대한 역사와 그 의미에 대해 아주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계신 분입니다. 혹시 전에 가이드를 통해 독일을 다녀오신 분이 계실지라도 이런 특별한 가이드와 함께 하실 기회는 이번 단 한 번 뿐일 것입니다.^^

 

두 번 째, 독일 헌법재판소를 방문하여 우리보다 먼저 헌법에 의한 정당 해산을 경험한 독일 공산당 사례와 통합진보당 사례를 비교하고, 정당해산이 갖는 역사적 의의를 함께 고민하는 시간을 마련하려 합니다.

 

세 번 째, 가족과 참여하기에도 크게 부담없는 일정입니다. 물론 장시간 비행은 부담이 되실수도 있겠지만 전체 일정을 무리스럽지 않게 가져갈 예정이며, 특히 <헨델과 그레텔>의 배경이 되었던 ‘프라이부르크’와 하이델베르크성, 뮌휀, 백조의성처럼 아름다운 곳들을 방문할 예정 입니다.

 

모쪼록 장기간 일정이고 비용도 적지 않은 기행이라 충분한 고민과 결단이 필요하시겠지만, 민변 활동에서 이렇듯 아주 특별하고 의미있는 기행에 함께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은만큼 많은 회원 분들이 함께해 주시길 기대합니다.

아울러 독일의 사회와 현실을 폭넓고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해 매월 1회 준비모임을 진행할 예정이니 기행 전 시간을 내어 함께 하시면 기행정보나 배경지식을 얻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 첫번째 시간으로 3. 9(금) 12:00, 민변에서 서울대학교 독일학연구소 편저, 「시인과 사상가의 나라 독일이야기2_통일 독일의 사회와 현실」을 함께 강독할 예정이니 많은 참여 요청드립니다.

 

 통2

<방문예정지 : 베를린 장벽, 브란덴부르크문, 하이델베르크성, 프라이부르그 전경>

월, 2016/03/14- 11:24
198
0

광주전남지부 보고

광주민변의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 최기영 회원 (광주전남지부)

 

“아빠! 광주 민변의 시간은 멈추지 않지?”
“어? 어! 응. 그렇지.”
“근데,,, 히히히 멈췄어!”
“어, 시계가 멈췄더니 그걸 갖구 저러나봐. 건전지가 다됐나봐.”

 

서두른다고 하였건만 광주전남지부 창립 19주년 기념식에 늦어버렸다. 창립 기념 인사는 다 끝나버렸겠고, 강연 진행 중 일려나? 광주지방변호사회관 6층 대회의실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문이 열리자 강연자의 목소리가 바깥까지 들려온다. 강연자에 미안한 마음을 미소로 전하고 나니, 박상희 간사님이 웃음으로 다가오며 회의 자료와 떡이며 과일 등이 담긴 접시를 건네준다. 몇몇 눈이 마주친 회원들과도 눈인사를 나누고 빈자리를 휘, 둘러 찾았다. 광주지방변호사회 소속 변호사님들까지 30여 명이 열띤 강연을 듣고 있었던 터라 마침한 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님은 ‘말이 칼이 될 때 – 혐오표현은 무엇이고 왜 문제인가’라는 주제로 기념 강연을 하셨다. 마음 속 편견이 혐오표현으로, 구체적 차별행위를 넘어 중대한 범죄로, 마침내 집단학살로까지 진행되는 단계는 너무도 놀라웠고 이에 대한 유럽과 미국의 대응에 관한 비교법적 고찰도 많은 점을 시사해주었다. 심지어는 모성까지도 맘충이라 폄하하는 등 여성 혐오표현이 확대되고, 여성을 향한 중대 범죄까지도 나타나고 있는 현실을 상기하며 무거운 마음으로 경청하였다.

강연은 바로 임시총회로 이어졌다.
김정호 지부장님의 개회 선언 후 6대 지부장이었던 이상갑 변호사님은 인사말을 통해 정부의 감시자 · 비판자로서의 민변의 역할에 대하여 다시 한 번 강조하셨다.
우리 지부 7대 지부장이었던 임선숙 변호사님은 19주년을 맞이한 지부의 공로패 수상 소감을 밝히며, 변호사로서 남아있는 기억은 모두 민변과 함께 한 활동들이었다며 민변과 함께 바라는 바는 무엇이든 자신있게 해보라고 하셨다.
이어 상반기 주요 사업에 대한 홍현수 사무처장님의 보고가 있었고, 임시회의의 대미는 신입회원 가입 승인으로 장식되었다. 신입회원인 김문석 변호사님도 ‘광주 민변의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는 로고가 새겨진 벽시계를 선물 받았다.
뒷풀이는 2차로 간소하게 마무리 되었다. 지부 창립부터 19년, 지나간 세월과 활동에 대한 자부심 충만한 이들부터 새로운 열정과 포부로 가득한 이들까지, 우리는 빙 둘러 앉아 노래도 한자리씩 불렀다.

돌아가는 길에 24시간 편의점에 들러 AA건전지를 샀다. 주말이면, 광주 민변의 시간이 계속 흐르도록 건전지를 갈아야겠다.

The post [광주전남지부] 광주민변의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 광주전남지부 창립 19주년 기념식 appeared first on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 민변.

금, 2018/09/14- 09:54
197
0

[민생위] 민생경제 법률실무 강좌 후기

6회 변시 서려

웹자보 확정

2017년 5월의 어느 날, 민생위에서 회원들을 대상으로‘민생경제 법률실무 강좌’를 개최한다는 이메일을 받아보고 망설임 없이 6회차 전 강의를 수강신청 하였습니다. 올해 2월에 로스쿨을 졸업하고 민변에 가입한 이후 민생위 활동에 관심이 있었지만 여타 사정으로 민생위에 문을 두드려 보지 못하고 있었던 때에 민생위의 법률실무 강좌 개최 공지는 민생위와의 첫 만남을 주선해 준 고마운 소식이었습니다.

현재까지 총 6회차 강의 중 5회차 강의 까지 모두 수강하였는데 강의에 대한 저의 소감은 ‘대만족’, ‘민생위에 가입하고 싶어지게 하는 강의’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강사님들은‘법률실무 강좌’답게 실제 수행하신 사건들을 토대로 그 경험담과 현실에서 해당 법이 운용되고 있는 모습들, 의뢰인과 변호사들이 간과할 있는 실무적인 팁들을 가감 없이 공유해 주셨습니다.

Untitled-1

1회차에는 상가건물임대차와 권리금분쟁실무에 대하여 김영주 변호사님께서 강의해주셨습니다. 1회차 강의에서부터 신입회원들을 비롯한 많은 회원분들이 참석하셔서 강의에 대한 뜨거운 관심과 열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변호사님께서 가수 리쌍 소유 건물 내 곱창가게인 ‘우장창창’과 리쌍과의 분쟁을 이야기로 강의를 시작하면서 개정된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과 이와 관련한 쟁점들을 소개해주셨습니다. 또한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제10조에 기하여 임차인이 갱신요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데도 이를 간과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변호사가 이러한 점을 꼭 알려주어야 한다는 팁도 알려주셨습니다. 그리고 ‘권리금 폭탄 넘기기’에 관련한 생생한 현실 이야기를 들으면서 임차인의 권리금 회수기회의 법적 쟁점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회차에는 불공정거래 및 구제절차 실무에 대하여 한경수 변호님께서 강의해주셨습니다. 공정거래법에 대한 전반적인 구조와 개요를 알 수 있는 강의였습니다. 최근 노하우(Know-How)에 이어 노웨어(Know-Where), 즉 필요로 하는 정보가 어디에 있는지 신속하고 정확하게 찾아내는 능력이 중요해지고 있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습니다. 한경수 변호사님의 강의가 바로 공정거래와 관련한 실무를 다룰 때 어디에서 정보를 찾고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는지 알려주신 노웨어(Know-Where)를 전수해주신 강의였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 홈페이지에 있는 수많은 정보의 활용방법을 –예를 들어 홈페이지에 첨부되어 있는 의결서와 재결서를 통해 특정산업분야의 통계자료를 익힐 수 있다는 것-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공정거래 위반행위에 대해서 신고할 때 각 의결서에 대한 표준양식을 준수해야 한다는 실무적인 팁들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공정거래법이 전문적인 내용이 많아 처음에 접근하기가 어려운 법으로 알고 있었는데 한경수 변호사님의 명쾌한 설명으로 공정거래법 전반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DSC09605

3회차 강의는 가맹사업법 분쟁 실무 사례에 대하여 김종보 변호사님께서 강의를 해주셨습니다. 변호사님께서 실제 수행하신 ‘피자헛 계약해지’사건과 ‘미스터 피자 계약갱신거절’사건에 대해 생생하게 그 경과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 사건들에서 ‘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제 13조와 제14조, 동법 시행령 제14조와 제15조가 주로 문제가 되었습니다.

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제14조는 계약 해지 시 서면 통지 의무를 규정하고 있는데 피자헛 사건에서 본사가 가맹점에게 한 ‘이메일’ 통지가 본법의 ‘서면’통지에 해당되는지가 쟁점이 되었습니다. 계약 해지의 부당성을 다투기 위해 수많은 사실관계 중에서 문제가 될 만한 것을 예리하게 포착하여 그 부분을 법리적으로 다투는 변호사님의 소송수행 과정을 듣고, 또 배울 수 있었습니다. 또한 본사의 계약해지나 계약갱신거절에 대하여 임시지위를 정하는 가처분 신청을 하는 것이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대처 방법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맹점의 점주가 본사의 소위 ‘갑질’에 시달리고 있는 현실과 민생위 공정경제팀에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들에 대해 알게 되었고 또 저도 이 노력에 동참하고 싶게 하는 강의였습니다.

4회차 강의는 아파트 상가 건물 분양 및 하자 관련 분쟁 실무에 대하여 김남근 변호사님께서 강의해주셨습니다. 분양사의 허위 과장 광고 문제와 분양거래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정보제공의무 위반 문제, 일조부족, 소음 등 생활환경 문제와 아파트 하자 관련 법적 쟁점들에 대해 개괄적인 구조를 그려볼 수 있는 강의였습니다. 아파트 상가 건물 분양이나 하자 관련 분쟁에서 문제되는 특별법과 관련 쟁점에 대해 알 수 있었습니다. 또한 우리나라의 특수한 제도인 선분양제도의 연혁과 법적성격, 그리고 이에 대한 문제점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변호사님께서 분양제도가 불공정행위 문제와 연관 되어 있고 서민과 중산층의 주거복지를 실현하기 위해서 중요한 문제이기에 민생위의 금융부동산 팀에서 이에 대해 연구하여 실제 관련 소송에서, 또 정책과 제도 개선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을 소개해주셨습니다.

5회차 강의는 아파트 관리 분쟁 사례 및 판례에 대하여 김태근 변호사님께서 강의해주셨습니다. 입주자대표회의와 관리주체 강의부분에서 기본 개념인 집합건물 관리단과 입주자대표회의의 차이점을 알기 쉽게 설명해주셨습니다. 이어 공동주택관리법 전반에 대하여 소개해주시면서 집합건물의 소유 및 관리에 관한 법률과의 관계, 최신 판례와 법적 쟁점에 대하여 2시간 내에 실무에서 문제되는 거의 모든 것을 A부터 Z까지 압축적으로 전달해주셔서 매우 유익하였습니다. 특히 실제 판례사안을 퀴즈로 구성하여 답을 생각해보게 하시고 이어 법원에서의 판시내용을 알려주셔서 판례의 논리와 실제 사실관계를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민생위의 법률실무강좌를 통해서 민생위와 민생위 소모임(금융부동산팀, 공정경제팀, 조세재정팀)에서 하는 일들에 대해 알게 되었고 해당 강좌와 관련된 실무에 대해 많은 지식과 그 어디에서 들을 수 없는 유용한 팁들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민생경제 분야에서 약자와 서민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또 이를 위해 관련 소송이나 정책적, 입법적인 부분에서 고군분투하고 계신 변호사님들의 강의를 듣게 되면서 이에 관심을 갖게 되어 민생위에 가입하게 된 것이 저에게 가장 의미 있는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앞으로 민생위 변호사님들과 함께할 나날들이 큰 기대가 되는 신입회원의 민생위 법률실무 강좌 후기였습니다.

화, 2017/06/27- 15:22
193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