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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인터뷰] 박민제 변호사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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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인터뷰] 박민제 변호사 인터뷰.

익명 (미확인) | 목, 2015/09/10- 14:57

 

역대 인터뷰이 중에 가장 긴장한 모습의 박민제 변호사였습니다. 편하게 수다 떨 듯이 이야기하면 된다고 하는데도 간간이 떨리는 손과 목소리, 수줍어하며 빨개진 얼굴 때문에 나도 긴장하며 좀 더 진지하게 해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분이 국회와 청와대를 주름 잡고, 지금의 아내와 만난지 한 달 만에 프로포즈를 했다니 역시 사람 겉모습에 속아서는 안 되나봅니다^^

 

박민제

 

김지미 우리 인터뷰의 첫 공식질문이죠, 저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박민제 저는 다른 변호사님하고 다르게 평범한 사람인 것 같아요. 오히려 평범한 사람이 인터뷰를 하면 나중에 인터뷰를 하는 사람이 부담이 덜하실 것 같아서. 그래서 이번에 좀 컨셉을 바꾸시지 않으셨나(웃음). 저는 사법위원회 활동을 하고 있는 박민제 변호사입니다. 변호사가 되기 전에는 국민의 정부 때 국회에 입법비서관으로 있다가 참여정부 들어서면서 국회 쪽 업무를 해야 할 사람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그 티오로 해서 참여정부 행정관으로 들어가서 대통령 임기 끝까지 있다가 순장을 했습니다. 순장 아시나요? 대통령 임기가 끝남과 동시에 같이 묻혀버렸죠(웃음).

 

김지미 변호사님이 변시 3회시죠. 변호사로서는 2년차이지만 연식은 좀 되셔서(웃음) 변호사가 되기 전에 무슨 일을 하셨는지 상당히 궁금했는데 이거는 차차 물어보기로 하구요. 39살에 로스쿨에 들어가신 건데 뒤늦게 로스쿨을 들어가신 계기가 있을까요?

 

박민제 대통령 임기 끝나고 뭘 해야 하나 고민을 했습니다. 국회에서 다시 일해보자는 제안을 받아서 하룻밤을 꼬박 세면서 의원실로 다시 돌아갈까 고민을 좀 했었습니다. 그런데 가족들이 공부를 하는 것에 대해서 응원을 해 주셔서 로스쿨을 들어가게 됐습니다.

 

김지미 학부가 고대 법대이잖아요. 법대를 갔을 때는 고시에 대한 생각도 있었을 것 같은데 사회 첫발을 국회 입법비서관으로 내딛게 된 이유가 있나요?

 

박민제 고시에 대한 생각도 있었습니다.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죠. 근데 몇 번 시험을 봤는데 내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가 아는 분을 통해서 입법비서관 제의를 받았는데 입법이라는 게 정책을 제도화 하는 것이잖아요. 입법을 통해서 국민들한테 체감도 높은 정책이 구현될 수 있는 거니까. 사회적 의미가 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쪽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김지미 입법비서관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 건가요?

 

박민제 의원입법 관련해서 의원님 보좌하고 그러는 거죠. 제가 환경노동위원회와 국방위원회였었는데요, 거기에 환경노동위원회 관련 단체나 국방위원회 관련 단체 의견 수렴을 해서 입법이나 의정에 반영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을 했습니다.

 

김지미 입법비서관 시절에 변호사님이 관여했던 입법안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이 뭐가 있을까요?

 

박민제 고용보험법이나 모성보호법, 군인연금법 이런 것들이 있었습니다.

 

김지미 국회에는 몇 년 동안 계셨던 거에요?

 

박민제 2001년부터 2003까지 있다가 2004년에 청와대로 가게 되었습니다.

 

김지미 청와대에서는 어떤 일을 하셨죠?

 

박민제 청와대에 있을 때는 4개 부서에 있었습니다. 총무비서관실하고요, 시민사회비서관실, 정책조정비서관실, 그리고 정무비서관실에 있었습니다.

 

김지미 청와대의 인사시스템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는데 원래 이렇게 순환 보직을 맡게 되는 건가요?

 

박민제 전보제도가 1년 단위로 있었던 것 같아요. 국회에 대통령 비서실 대응하는 상임위가 운영위가 있어요. 처음엔 국회 운영위·예결위에 대해서 대응할 수 있는 인력이 필요해서 총무비서관에서 그 업무를 했습니다.

 

김지미 국회 경험이 있어서 총무비서관에서 시작을 하셨고 그럼 시민사회비서관실은 어떤가요?

 

박민제 시민사회비서관실에서는 시민단체 현안 이슈 같은 거 모니터링하고 점검하고요, 그 다음에 현안보고서도 쓰고, 그 다음에 자원봉사단체 지원하고 그랬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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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미 저희 회원들 중에 다양한 경험을 가지신 분들이 많은데 청와대에 있으셨던 분은 처음 인터뷰하는 거라 궁금한 게 많거든요. 참여정부 시절에 참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그 안에서 생활하시는 분은 어땠을까 싶기도 하구요. 청와대 행정관의 하루는 어땠나요?

 

박민제 보통 아침 8시쯤에 비서실장 주재 회의가 있어요. 그러면 그 전에 행정관들이 돌아가면서 회의에서 논의될 안건 같은 것을 미리 확인을 해요. 회의가 끝나면 지시가 내려집니다. 현안보고를 해라, 부처를 통해서 상세하게 알아봐라. 그런 현안들은 실시간으로 바로 보고가돼야 하구요, 대통령 공약 같은 장기과제는 시한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기간 내에 과제에 대한 보고를 완료해야 됐었고, 그 보고가 시한 내에 완료 안됐을 때는 국정상황실에서 빨리 그것을 마련하라고 하는 그런 것도 있었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 특별했던 것은 국가주요정책과 관련한 법안이나 예산이 좀 많이 소요되는 법안 이런 것들을 중점 관리 법안으로 선정을 먼저 했어요. 비서실하고 관련부처하고 같이 선정을 한 다음에 그 법안의 통과를 위해서 여러 부처와 같이 유기적으로 추진 체계를 구축하고 대통령님 주재 회의나 비서실장 주재 수석 비서관 회의 때 계속 보고를 했습니다. 아주 숨 가쁘게 진행이 됐었죠.

 

김지미 변호사님이 근무하실 때 주력했던 법안인데, 그게 결국은 법률이 돼서 지금 시행되고 있는 법안들이 있을까요?

 

박민제 로스쿨 법안(웃음).

 

김지미 직접 수혜를 받으셨군요.

 

박민제 그 로스쿨 법이 되게 어려웠어요. 박근혜 대통령이 그것을 사학법 하고 연결을 시켜서 끝까지 통과가 안 되다가 2007년도에 아마 통과가 됐을 거에요. 그런 법안도 있었고. 그리고 국가재정의 기반을 혁신하기 위한 국가재정법과 자원활동 인프라를 구축하고 지원하기 위한 자원봉사활동기본법 등이 있었어요.

 

김지미 아까 말씀하신 것 중에 입법이 정책을 제도화하는 것이라 중요하다는 부분이 굉장히 와 닿는데 최근 입법의 중요성에 대해서 공감을 하시는 분들이 많아져서 로펌들도 그 분야에 집중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공익입법운동을 시작하는 움직임이 있는 것 같아요. 저도 개인적으로 일반적으로 어떤 변화를 이끌어 내려면 결국은 제도로 구현이 되어야 하고 그 제도를 만들어내는 것은 법률이기 때문에 입법의 중요성에 대해서 많이 깨닫고 있거든요. 어떤 제도가 법률로 규정이 됨으로서 실생활에는 아주 큰 변화를 가져온 것이 있다. 그런 리딩케이스 같은 게 있을까요.

 

박민제 그것보다는 역사적 과제나 시대적 과제를 안고 살아야 될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짧지 않은 인생이니까 과제를 가지고 할 수 있는 역할을 찾는 것이 중요할 거라고 생각을 하는데, 제가 생각하기에는 기존에는 시민들이 권력의 객체에 머물렀던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 시대에서는 주체적 참여가 필요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시민들이 주체적 참여를 하기 위해서는 우선 입법과정에 참여가 필요하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러기위해서 입법과정에 제도적으로 시민참여를 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실질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이고, 그런 부분에서 앞으로 과제를 좀 찾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지미 입법 과정에서 시민들이 어떤 방식으로 참여를 할 수 있을까요?

 

박민제 시민들의 입법제안 같은 것들이 형식화 되지 말고, 공청회 제도나 이런 것들을 통해서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그런 기회가 부여되어야 되고 제도적으로 뒷받침 되어야 하겠죠. 또 지방자치가 실질적으로는 민주주의와 연결되잖아요. 민주주의가 지역의 삶의 제 영역으로 실현되는 것이 지방자치인데, 사실상 아직 자치입법 같은 경우에는 민주주의와 맥락이 닿아있음에도 불구하고 미비한 부분이 있어요. 그래서 자치입법 과정에서 특히 주민참여가 강화 될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김지미 이와 관련해서 ‘지방의회 입법활동의 현황분석과 개선방안 연구’ 라는 논문도 쓰셨죠? 이쪽에 관심이 많으신가 봐요.

 

박민제 네. 청와대에 있을 때에 업무경험을 바탕으로 썼었던 논문입니다.

 

김지미 대통령 비서실장 모범 표창도 받으셨어요? 이건 혹시 청와대에서 근무하면 다 받는 건가요?(웃음)

 

박민제 그건 아닌데, 대부분이 받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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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미 그럼 청와대에서 2004년부터 2008년까지 5년을 있으셨죠? 이건 개인적인 질문인데요, 노무현 전 대통령을 근거리에서 접해보신 분으로서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내가 옆에서 보니까 이 부분이 너무 훌륭하더라. 혹시 이런 점들이 있을까요?

 

박민제 단적인 것은 대통령이 참모들보다 더 뛰어나셨습니다. 항상 의제를 먼저 제시하고 그리고 참모들이 보고를 했을 때 문제점들을 파악하셨던 것 같아요. 보완할 부분까지도 지적을 해주시고 그래서 항상 참모들을 끌고 가셨던 것 같아요.

 

김지미 모든 의제에 대한 현안들을 다 꿰뚫고 있어야만 가능한 거잖아요.

 

박민제 네. 기억력과 정보 습득력이 엄청나셨죠. 가장 뛰어나셨어요. 그래서 참모들이 깜짝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저번에 보고했던 것을 그 많은 보고서를 보시면서도 금방금방 기억을 해내셨으니까.

 

김지미 청와대 근무 마치고 나오면서 가장 아쉬웠던 게 있을까요? 이것만큼은 꼭 해놓고 나오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거나.

 

박민제 민생현장에서 직접 접하면서 의제를 발굴하는 활동을 좀 더 강화했으면 좋았을걸. 그냥 부처 보고로 해서 너무 거기에 급급하지 않았나. 시민들과 직접 대화를 하면서 그분들이 필요한 의제와 입법들을 찾았어야 하지 않았나. 이런 아쉬움이 있습니다.

 

김지미 그렇게 일을 그만 두고, 다시금 예전에 꾸었던 법조인의 꿈에 다시 도전을 하셨잖아요. 가족들의 지지도 있었다고 했지만, 일단 로스쿨에 가볼까? 라는 생각은 변호사님이 먼저 하셨을 것 같은데 다시금 내가 법조인을 해봐야겠다 라고 생각하게 된 결정적인 동기가 있을 것 같아요.

 

박민제 학부 때는 시험을 통한 탈출의 개념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참여정부 임기 끝나고 나서는 탈출의 개념이 아니라 뭔가 사회구조에 대해서 법조인으로서 책임 있는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었던 것 같아요. 사회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었는데 그 양극화를 조금 해소할 수 있는 역할을 법조인이면 좀 더 충실할 수 있지 않을까.

 

김지미 입법 분야의 일을 해 보니까 내가 법률가가 되면 좀 더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겠다. 이런 생각을 하셨던 건가요?

 

박민제 네. 그리고 또 로스쿨 제도 취지가 기존에 법조인들이 안가는 직역에 많이 진출하는 의미가 있었어요. 그게 뭐 국회도 있겠지만 자치단체도 있었거든요. 지방자치단체 법치행정을 위해서 법률가가 할 부분이 많이 있었어요. 그런 부분에 대해서 생각도 많이 했었죠.

 

김지미 그런데 지금은 개업변호사로 살고 계시잖아요. 애초에 생각했던 길하고 조금 다른 건 아닌가요?

 

박민제 그래서 고문변호사 활동도 하고 있고요, 교육청 일도 하고 있고 그렇습니다.

 

김지미 서울특별시 교육청 행정심판위원 이거 말씀이시죠?

 

박민제 네. 그거 어떻게 아셨어요?

 

김지미 서울특별시 공익변호사, 대법원, 서울 북부, 남부, 동부 지방법원 국선변호인도 있어요(웃음). 코리아 부동산 아카데미 강사로 활동하고.(웃음)

 

박민제 이거 어떻게 아셨어요? 정보력이 무섭네요(웃음). 부동산 아카데미는 고등학교 선배가 저 몰래 올렸습니다. 지금 내려달라고 하려고요.

 

김지미 사법위원회 활동이 결국은 변호사님 예전에 했던 활동의 연장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민변 가입은 변호사 되시고 바로 하신건가요? 애초에 사법위를 딱 찍고 들어왔을 것 같은데.

 

박민제 네. 너무 거창하긴 하지만 제가 해야 할 시대적 소명 내지는 역사적 과제로 잡고 있는 것이 3가지가 있어요. 첫째는 시민이 권력의 객체가 아니라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그런 제도적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고요, 둘째는 패자가 부활할 수 있는 이런 걸 좀 마련하는 거에요. 기존에 부족한 것이 있으면 사회에서 기다려주지 않고 내치잖아요. 그런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일어설 수 있게 기다려주고 지원해 줄 수 있는 이런 부분이 필요하고. 세 번째는 국가권력에 의한 범죄를 좀 방지하자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사법위원회는 세 번째 국가권력에 의한 범죄를 방지하자는 거하고 닿아있는데, 저희 대통령님도 사실상 권력에 의한 희생을 당하신 거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대통령이 이렇게 희생을 당할 정도면 다른 국민들은 더 불안해하고 위험한 상황에 빠질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그걸 방지할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을 마련하는데 일조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사법위원회에 들어왔습니다.

 

김지미 그러면 국가권력에 의한 범죄를 방지하는 데 변호사님이 구상하는 어떤 방안 같은 것이 있을까요?

 

박민제 가장 먼저 검찰 개혁하고 국정원 개혁이 있을 수 있는데요, 제가 먼저 주안점을 두고 있는 것은 검찰개혁입니다. 참여정부 때도 검찰개혁을 하려고 했었는데 사실상 했다는 게 내버려 두는 이런 것이었죠. 그러니까 좀 독립화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실상 검찰권력이 정치권력하고 떼려야 뗄 수 없는 세력입니다. 자기들 승진이 청와대하고도 관련되니까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거였어요. 그냥 내버려 둔다고 해서 정치적 중립이 되는 게 아니었던 거죠. 그래서 검찰 권력을 견제하고 감시할 수 있는 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기구에는 검찰의 입김이 작용되지 않게 차단된 상태에서 우선 개혁기구를 마련한 다음에 그 기구를 발판으로 해서 검찰을 견제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참여정부 때도 공직자부패수사처 이런 법안도 내고 했지만 사실상 그 당시에도 검찰 흔들기가 많았어요. 또 국회에도 로비도 많이 하고 그랬었는데, 다음 정부에서는 검찰에 흔들리지 않는 이런 개혁기구를 마련해서 그 기구에서 검찰을 견제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어내고 법안을 마련해 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김지미 검찰개혁이라는 것은 사법개혁 분야에서 약간 해묵은 주제라고 생각될 정도로 검찰개혁 하자라는 이야기는 아주 오래 전부터 있어왔는데, 실질적으로 잘 안 되고 있잖아요. 검찰개혁에 대해서 공감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안 되는 이유가 뭐라고 보세요?

 

박민제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선 청와대의 검사 파견을 못하게 해야 할 것 같아요. 그게 자기들 승진이 청와대에서 낙점하게 되는 부분이 있으니까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도 청와대 파견이 금지되어야 할 것 같고. 그 다음에 정치권력에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공안부나 이런 것들이 폐지해야 할 것 같아요. 그 다음에 2원화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아까 말씀드렸던 공직자부패수사처처럼 공직자 비리 같은 경우나 정치사건 같은 경우에는 검찰과 독립적인 기구에서 담당할 필요가 있을 것 같고. 그 다음에 자치경찰제가 사실상 약간 아쉬운 점이 있었는데 그게 수사권하고 기소권 분리 문제가 사실상 조직 간의 다툼으로 변질된 것 같아요.사실상 그 취지가 아닌데 그게 좀 국민들에게 잘 못 알려진 게 있는데 사실상 그런 수사권·기소권 분리부분도 검찰개혁의 한 일환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지미 이러한 검찰개혁 과제가 산재해 있는데 하나도 된 게 없는, 검찰개혁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요인이 뭔가요?

 

박민제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유지할 수 있도록 외부세력이 지속적으로 견제하고 감시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또 작은 부분이긴 한데 기소독점주의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재정신청제도 같은 것을 개선을 해서 그 부분에 대해서도 개선점을 찾아야 될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김지미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예전부터 가져왔던 문제의식들도 상당히 있고 나름대로의 어떤 대안도 생각하고 계신데, 우리끼리 얘기지만 지금 민변 사법위 활동은 좀 약하다 싶은 감이 있어요.

 

박민제 제가 반성해야죠. 부족한 것이 많아서. 그런데 앞으로는 그 논의가 활성화 될 것 같아요. 대한변협 차원에서도 사법제도개혁특위가 꾸려졌더라고요. 그 다음에 아마 대선국면이 가까워오면서 공약부분에서 제시할 부분이 있고, 박근혜 정부에서는 사법 분야 공약이 거의 없었다고 알고 있거든요. 공약을 얼마나 이행했느냐 체크해야하는데 아예 공약이 없으니(웃음).

 

김지미 외부에서 볼 때는 사법개혁과 관련된 역할을 할 주체가 결국엔 민변 밖에 없지 않느냐 하는 기대가 있는 것 같은데 사법개혁과 관련해서 민변이 이런 활동을 했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하신 게 있나요?

 

박민제 저는 처음에 사법위 하면서 고정적으로 할 수 있는 역할이 주어진 것에 대해서 대단히 감사하고요. 그거라도 있으니까 한 달 동안이라도 뭔가 방향을 알고 준비할 수 있거든요. 제가 사법위에서 입법감시 업무를 하고 있는데요, 국회에 제출됐지만 잠자고 있는 사법개혁 법안들이 많은 것 같아요. 그런 법안들을 좀 깨워서 국회 법사위와 본회의에 통과될 수 있도록 저희가 여론도 조성을 하고 국회에 요구도 하고 그런 부분이 있을 것 같아요.

김지미 좋은 제안 같은데요. 저희가 입법감시 활동을 하고 있는데 사실 적극 반대하는 법안들 위주로 의견 표명을 하는 선에서 그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꼭 통과가 되어야 하는 법안들에 대해서 보다 적극적인 활동을 했으면 좋겠다는 말씀이시죠?

 

박민제 네. 제가 참여정부 때도 이렇게 했었거든요. 항상 중점관리법안에 대해서 어떻게 추진되고 있는지 체크를 했습니다. 단계별로 어느 단계에 있느냐를 체크를 한 다음에 장·차관님들이 그것에 대해서 국회에 찾아가서 국회의원 면담을 해서 관심을 가지고 통과시켜달라고 하실 수 있게 메모카드 같은 걸 만들었어요. 그 법안의 주요내용과 통과될 필요성 같은 것을 이렇게 조그만 메모카드로 만들어서 그걸 보시면서 국회의원한테 그 메시지를 전달하게 해드리고 그 다음에 장·차관님들이 어떤 활동을 하셨는지 매주 단위로 부처별로 보고하게 만들었거든요. 그렇게 하니까 그래도 임기 말에 열심히 하시더라고요(웃음). 저는 사법위 선배변호사님들이 토론할 수 있는 토론거리를 풍성하게 만들어 드리자는 생각이 컸는데 아직은 너무 부족해서 배우는 입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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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미 이제 변호사가 되신지 만 1년 정도 되었는데 어떠신가요? 변호사 되기 잘했다, 이런 생각 드시나요?

 

박민제 민변이 인권과 민주주의의 첨병이면서도 마지막 보루잖아요. 거기에서 제가 몸 담으면서도 초심을 잃지 않게 하는 그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제 자신을 위한 삶이 아니라 사회에 공헌하고 기여할 수 있는 이런 것들을 잊지 않게 해주고 거기에서 저 자신을 독려할 수 있게 해주는 점에 있어서 저한테 계속 채찍질이 되는 그런 것이 있는 것 같아요.

 

김지미 혹시 사법위 말고 관심 두고 있는 다른 위원회가 있나요?

 

박민제 지금 사법위도 벅차서(웃음). 사법위원회만 해도 할 것이 많아서.

 

김지미 사법위에 뼈를 묻겠다.

 

박민제 예에(웃음). 그렇습니다.

 

김지미 이제 개인사를 좀 물어볼게요. 변호사님이 워낙 말수가 없으시고 그래서 개인사에 대해선 아는 게 전혀 없어요. 우선 결혼은 하셨죠?

 

박민제 네. 했습니다. 2005년에 해서 10주년 됐습니다. 딸아이가 7살인데요, 로스쿨 입학시험 볼 때 태어났어요.

 

김지미 변호사님은 어떤 아빠신가요?

 

박민제 집사람이 엄하기 때문에 저까지 엄하게 하면 딸아이가 더 서럽게 울더라고요. 그래서 안 되겠구나. 나는 엄하게 하면 안 되겠다. 나라도 부드럽게 해야 되겠다. 딸이 짜증을 부릴 때 제가 집사람에게 전화해서 딸이 짜증을 부린다고 이야기했더니 고자질했다고 울더라고요(웃음).

 

김지미 척 봐도 엄하게 못하실 것 같아요. ‘아빠한테 그러면 안 돼’ 이렇게 혼내시는 게 아니라 사모님한테 ‘딸이 나한테 짜증 부려~’ 이렇게(웃음). 사모님은 어떻게 만나셨어요?

 

박민제 사모님이요? 아, 집사람이요?(웃음) 친척분이 장인·장모님 사는 아파트 라인에 같이 사셨어요. 그래서 소개를 시켜주셨어요. 재미없죠?

 

김지미 변호사님 굉장히 수줍음이 많고 그러시잖아요. 어떻게 결혼까지 이어지게 됐는지가 궁금하네요.

 

박민제 저는 만난 지 딱 4개월 만에 결혼했는데요. 그런데 잘한 결혼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복 받은 것 같아요.

 

김지미 첫눈에 보고 반하셨어요?

 

박민제 집사람은 계속 만날수록 좋았던 것 같아요. 더 이상 알아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을 해서 만난 지 한 달 정도 되었을 때 프로포즈를 했는데요. 걱정을 많이 했는데 집사람이 받아줘서.

 

김지미 의외로 추진력이 상당하시네요. 어떤 점이 그렇게 마음에 드셨나요?

 

박민제 평범한 답변인데요, 이해심도 많고 배려심도 있고 대화도 통하고 그래서. 제가 집사람 얘기를 잘 안하는데. 팔불출 같아서 보기가 안 좋더라고요.

 

김지미 사모님 이야기를 하면 자랑할 수밖에 없다는 말씀이군요(웃음). 이야기하기 힘들어 하시니 그럼 개인사는 이만 패스할게요. 오늘 자원활동가 두 분이 함께 했는데 혹시 물어보고 싶은 게 있으면 기회를 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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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홍(자원활동가) 늦은 나이에 로스쿨을 준비하면서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박민제 뒤늦게 공부하니까 그건 있더라고요. 이런 공부를 하면 나중에 어떻게 도움이 될까 이런 게 느껴지니까 공부가 더 재미있고 흥미 있고 지겹지 않게 했었던 것 같아요. 의미부여가 되고 합격이후를 생각하면서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박재홍 변호사님 동안의 비결이 뭐에요?

 

박민제 거의 듣지 못하는 질문입니다(웃음). 나이에 비해서 더 많이 보는 분들이 더 많으신데 굳이 얘기하자면 생각이 없어서일까요. 실은 고등학교 때의 얼굴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겁니다.(웃음)

 

김지미 마지막 질문을 드릴게요. 지금 하고 있는 뉴스레터 인터뷰는 우리 회원 아니신 분들도 많이 보시더라구요. 그런 취지에서 우리 박재홍씨도 뒤늦게 공부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렇게 늦게 공부를 결심한 분들을 위해 격려의 말씀이라고 할까요, 한 말씀 부탁드려요.

 

박민제 로스쿨 제도 취지가 사회의 다양한 경험을 쌓은 사람을 받아들여서 다양한 법률분쟁에 대응하게 만드는 이런 부분도 있잖아요. 저는 좀 뒤늦게 공부를 하고 다시 또 사회에 진출을 하게 됐지만 오히려 기존에 로스쿨 입학 전에 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해서 또 새로운 분야를 개척할 수 있고 역할을 할 수 있어서 사회적으로 의미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또 변호사가 되기 전에 내가 만약에 변호사였으면 저런 일을 할 수 있었을 텐데 생각했던 것들을 변호사가 돼서 실현할 수 있게 돼서 좋았습니다. 모든 만학도 여러분들 힘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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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최영도 변호사님 유작 출간 기념회 참석 후기

민경한 변호사

 

11월 1일 민변에서 지난 6월 별세하신(80세) 모임의 창립회원이고 회장을 지낸 최영도 변호사님의 유작 ‘아는 만큼 보이고, 보는 만큼 느낀다(보정판)’ 가 출간되어 이를 기념하는 자리에 참석하였다. 젊은 회원들은 별로 보이지 않고 중진 회원들이 많이 참석하였다.

사무처에서 참석후기를 부탁했을 때 내가 최변호사님 생애나 예술 세계에 대해 많이 알지 못해 망설이다가 몇 가지 인연이 떠올라 승낙하였다. 내가 초대, 2대 지부장을 지낸 민변 광주, 전남지부 개소식 때(1999. 9.) 당시 민변회장인 최변호사님이 사무총장 등과 광주까지 내려와 축하해 주고 뒤풀이 까지 함께 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변협 인권이사(2013, 14년)때 보수적인 집행부에서 인권사업을 하기가 무척 힘들었는데 최변호사님이 오래 전, 보수적인 변협 집행부에서 인권이사로 고생하신 경험담을 들려주며 자주 격려해 주셨다. 돌아가시기 전날 장주영 변호사와 강남 세브란스 병원에 문병을 갔는데 무척 고통스러워하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최변호사님을 멘토로 최변호사님을 닮으려고 노력하며 최변호사님 일대기를 쓰고 있는 한양대 박찬운 교수가 최변호사님의 법률가로서의 삶과 예술세계와 활동을 PPT로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기억에 남는 것은 최변호사님의 인생의 전환점이 된 1971년 1차 사법파동을 주도하며 작성한 속칭 ‘사법권 독립선언서’와 판사 사직서 사본을 지금까지 간직하여 최근에 유족들이 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에 기증했다고 한다. 이어서 위 책과 작년에 ‘아잔타에서 석불사까지’를 출간한 출판사 편집자인 서울법대를 나와 서울음대 대학원을 나온 김세중씨가 위 두 책의 편집 과정의 뒷얘기와 최변호사님의 예술세계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아주 디테일한 퀴즈 3문제를 냈는데 회원들이 잘 맞추어 최변호사님이 과거에 출간한 책을 선물로 주었다.

 

2부에선 최변호사님 고교 후배로 최변호사님의 사랑을 많이 받은 이덕우 변호사님, 최변호사님과 티벳, 돈황 등 여러 곳을 함께 여행한 박용일 변호사님이 패널로 참석하여 최변호사님과의 인연과 여러 에피소드를, 소설가인 정소연 변호사는 책에 대한 소회와 편집의 어려움 등을 얘기해 주었다. 최변호사님은 여행 시 밤에 숙소에서 당일 행적을 정리하고, 사진 뒷면에 일시, 장소, 설명을 적어놓으신다고 했다. 문화‧예술에 대한 감상과 수집, 저술, 여행 등 왕성한 활동과 풍부한 예술적 소양, 인문학적 향취를 지닌 최변호사님이 너무 부러웠다.

 

 

대체로 법조인들은 음악, 미술, 문화재, 예술서적 저술 등에 대해 관심을 갖기 어렵고 예술적 향기가 부족한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최변호사님은 40여회, 52개국, 310곳의 유적지를 다녀온 뒤 여행기를 남겼고, 오랫동안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 수집한 토기 1700여점을 국립 중앙박물관에 기증하여 2층 기증관에 ‘최영도실’이 마련되어 있다고 한다. 클래식 음악과 미술, 문화재 등 문화 전반에 걸쳐 조예가 깊고 전문가 못지않은 실력과 안목으로 각 분야마다 기행문 ‘앙코르, 티베트, 돈황’, 클래식 음악 에세이 ‘참 듣기 좋은 소리’, 아시아 고대 문화유산 답사기 ‘아잔타에서 석불사까지’, 이번에 서양미술을 총결산한 ‘아는 만큼 보이고, 보는 만큼 느낀다’를 출간하셨다. 최변호사님은 어릴 적부터 유복하고 문화생활에 친숙한 가정에서 자라 예술적인 DNA가 풍부하고 자연스럽게 예술적 소양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호프집에서 뒤풀이를 하면서 최변호사님과의 인연이나 에피소드를 얘기하며 고인에 대한 추모의 시간은 계속되었다. 내가 우스개로 후배들에게 ‘최변호사님을 롤 모델로 삼을 수도 없고 롤 모델로 삼지도 마라. 보통 변호사들은 음악, 미술, 문화재, 전문가적 저술 중 한 개도 제대로 하기가 어려운데 여러 분야에서 전문가 수준인 최변호사님이 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렇게 예술적 소양을 갖고 활발한 활동을 하면서도 민변 회장, 참여연대 공동대표,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을 지내면서 인권신장과 민주화에 공헌하셨으니 너무 부럽고 멋지게 살다 가신 선배 변호사님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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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18/11/09-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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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위원회 활동소식

강남역 8번출구 앞에서 기다립니다.

 

아침 여섯시가 되면 이내 시끄러워 집니다. 잠이 모자라지만 주변을 지나는 사람과 자동차가 쏟아내는 소음을 이겨내기 어렵습니다. 주섬주섬 일어나 비닐을 걷어내고 밤새 구부정했던 몸을 폅니다. 축축해진 침낭을 넓게 펼치고 농성장 안을 정리합니다.

 

아침 선전전을 합니다. 일터로 향하는 시민들에게 전단을 건네고 직업병 피해자의 사진이 붙은 피켓을 듭니다. 마이크를 잡고 우리가 길바닥에서 먹고 자는 이유를 알리기도 합니다. 인근 도시락 가게에 가서 따뜻한 국이 포함된 도시락을 사 옵니다. 아침을 먹는 동안 낮 지킴이 당번이 도착하면 반갑게 맞습니다. 그들에게 농성장을 맡기고 강남역을 떠납니다. 그날의 일정에 따라 법원으로 혹은 사무실로 갑니다.

 

저녁 시간이 되면 다시 농성장에 옵니다. ‘이어말하기’ 프로그램에 초대된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합니다. 인근 식당에서 배달 주문한 음식으로 저녁을 해결합니다. 농성장에 앉아 오는 사람들을 맞이하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와중에 짬짬이 소송 준비도 하고 글도 씁니다(전자소송 시스템은 제게 축복입니다).

 

저는 3년차 변호사이자 3년차 활동가입니다. 사법연수원 졸업 후 바로 ‘반올림’이라는 시민단체에서 상근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주로 산재 피해노동자 상담, 산재신청 대리, 산재소송 대리, 전자산업 노동건강권 관련 연구를 해왔지만, 한달 전 부터는 강남역 8번출구 앞에서 노숙 농성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로써 한달이 지났습니다. (매일 농성장에서 자는 것은 아닙니다. 당번제를 운영하는데 마침 오늘 밤은 제가 당번입니다. 비가 오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황상기 아버님도 함께 노숙을 하십니다. 영화 ‘또하나의 약속’의 실제 주인공인 그 분입니다. 8년 전, 삼성반도체 백혈병 문제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딸의 영정을 안고 거리로 나섰던 그 분이 이제는 아예 거리에 자리를 깔고 눕습니다. 삼성LCD 뇌종양 피해자인 혜경씨와 어머님도 함께 하십니다. 물론 쉽지 않은 선택이었습니다. 아니, 반올림으로서는 다른 선택을 하기 어려운 상황에 내몰렸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삼성은 지금 이 문제를 원점으로 되돌리려 하는데, 삼성의 입만 바라보는 언론들은 마치 이 문제가 다 해결된 것처럼 보도하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가 처음 불거졌을 때, 삼성은 일부 피해자들을 개별적으로 찾아가 돈으로 회유하려 했습니다. 산재신청 하지 말 것, 산재소송을 취하할 것, 반올림과 만나지 말 것 등을 조건으로 위로금 명목의 금원을 지급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한 회유를 힘겹게 이겨낸 피해가족들과 활동가들이 모여 반올림이 만들어졌습니다. 반도체 공장의 유해성을 밝혀 냈고, 피해노동자 여덟 분의 산재인정도 이끌어 냈습니다. 세권의 책, 두편의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결국 삼성이 먼저 반올림에 대화 제안을 하면서, ‘삼성반도체 직업병 문제 해결을 위한 교섭’이 시작되었습니다. 작년 5월에는 삼성전자 권오현 대표가 공개적으로 사과와 보상, 재발방지대책 수립을 약속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올해 9월, 삼성은 교섭 약속을 파기하고 자체적이고 한시적인 보상절차를 강행했습니다. 삼성이 직접 보상 기준과 내용을 정하고,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심사 까지 하겠다고 합니다. 보상 신청자들에게는 합의 내용을 외부에 알리지 말라고 했습니다. 황상기 아버님을 처음 대했던 때와 같습니다. 일년 전에는 조정 절차를 강행하며 반올림에게 “조정에 참여해 성실하고 투명하게 논의하길 바란다”고 했던 삼성이, 지금은 그 조정 절차 마저 노골적으로 무시하고 있습니다. 직업병 예방 대책에 대하여도 ‘내부 관리시스템 강화’만을 앞세울 뿐입니다. 결국 모든 것을 자체적으로 알아서 하겠다는 태도입니다.

 

덕분에 ‘삼성반도체 직업병 문제’를 둘러싼 최근 상황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언론은 이 문제를 어렵고 복잡하게 만들려 애쓰지만, 사실 하나의 질문에 대한 찬/반이 있을 뿐입니다. “이 문제의 해결을 오롯이 삼성전자에게 맡겨도 되겠는가, 과연 그것을 문제의 ‘해결’이라고 할 수 있는가.”

 

반올림이 노숙농성까지 벌이며 말하고자 하는 것도 결코 무리한 내용이 아닙니다. 여전히 노동자들의 질병은 회사와 무관하고 자신들의 안전관리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강변하는 삼성에게 직업병 예방 대책을 맡길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삼성 공장에서 건강을 잃고 가족을 잃은 피해자들을 다시 삼성의 보상창구에 세워 또 무언가를 입증하도록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고, 그들에게 삼성이 일방적으로 정한 보상액을 내밀며 합의를 종용해서는 더더욱 안되다는 것입니다. 결국 지금 삼성이 강행하고 있는 보상절차로는 절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이는 ‘개별적인 회유 절차’ 혹은 ‘문제 은폐 절차’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의 올바른 해결을 바라는 이들에게는 그저 상식적인 수준의 주장일 뿐입니다. 그래서인지 많은 분들이 농성장을 찾아 주십니다. 농성장에 필요한 물품이 없는지 묻는 분들도 많습니다. 딱히 필요한 것은 없습니다. 이미 한달여 를 도심 한복판에서 보내며 가을과 겨울을 나기에 필요한 것들은 얼추 갖춘 것 같습니다.

 

다만 사람이 더 필요합니다. 더 많은 사람이 이곳으로 모여 농성장과 황상기 아버님, 김시녀 어머님의 마음이 더 따뜻해 지면 좋겠습니다. 강남역 8번 출구 앞입니다. 기다리겠습니다.

노동

목, 2015/11/12-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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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보건위원회 활동소식

– 서희원 변호사

“환경오염과 환경보전은 우리 시대에 가장 중차대한 사회문제의 하나로 등장한지 이미 오래다. 오늘 우리가 직면한 환경논쟁은 경제성장과 맞물린 가장 어려운 문제 중의 하나로서 다른 누구에게 맡길 수도 없는 우리 스스로가 풀지 않으면 안 될 과제다…(중략)… 개발우선론에 편들든 또는 환경보전론에 귀 기울이든, ”우리가 땅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땅이 우리를 잠시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라는 시애틀 주장의 말을 새겨 들어야 한다. 하나뿐인 지구, 환경오염으로 성난 지구, 오늘의 우리들과 미래의 자손들이 영원토록 살아갈 터전이기에 우리 모두가 소중하게 다루어야 한다.” (헌법재판소 1998. 12. 24. 89헌마214 결정 중 이영모 재판관의 반대의견)

2018년 한 해는 참 많이 덥고 또 많이 추웠습니다. 1973년 기상관측망이 설치된 이후 가장 추웠던 연초, 이례적으로 짧았던 장마 기간을 거쳐 관측 사상 최초로 영상 40도를 넘는 한여름을 지나왔습니다. 개발과 자본의 효율 앞에 황폐해진 지구가 정말 성난 것이 아닌지 걱정이 앞섰던 한 해, 환경보건위원회 소속 변호사님들은 환경권을 보호하고 환경오염으로 인한 피해구제를 위한 다양한 활동들을 이어왔습니다.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부합하지 않고 환경영향평가법상 절차적·실체적 하자가 있는 삼척화력발전소 전원개발사업 실시계획승인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하였고, 유해물질이 검출된 생리대 제조회사명과 제품명을 공개하였다가 손해배상청구를 당한 시민단체를 대리하여 여성 건강을 지키기 위해 피해자를 공개모집하고 개선을 촉구한 행위가 소비자 권익보호활동의 범위 내에 있음을 주장하며 재판부를 설득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메르스 환자 관련 손해배상소송, 설악산국립공원 오색케이블카 사업 관련 소송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활동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변론 활동 이외에도 환경 피해를 호소하는 현장을 방문하여 주민들과의 간담회를 진행하고, 소송 이외에 환경분쟁조정 절차 등을 활용한 피해구제 방안을 다방면으로 고민해오고 있습니다.

새로이 환경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가입한 (저를 비롯한 ^^) 후배 변호사들을 위한 ‘환경법률 스터디’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환경법률 일반에 대한 판례 연구와 함께 실제 소송을 진행하셨던 선배변호사님들의 경험담까지 들을 수 있는 기회입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2019년 환경보건위원회는 녹색법률센터 등 환경 관련 다른 단체와의 연대사업을 보다 활발히 하려 합니다. 새로이 위원회 활동 분야로 추가되었던 ‘보건’ 분야에 대한 역량 강화도 충실히 해 나갈 계획입니다.

환경보건위원회는 우리와 미래의 자손들이 영원토록 살아갈 터전을 지키는 일에 함께 하실 회원님들의 참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관심은 있었지만 지금까지 활동에 참여하지 못해 참석을 망설이는 분이 있으시다면, 올해 첫 모임(1월 17일 목요일)에 함께해주시면 어떨까요? 아담하고 정겨운 환경보건위원회 정기회의에 모두 초대합니다! [가입문의: 환경보건위원회 간사 서희원 (02-522-7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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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19/01/11-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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