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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인터뷰] 박민제 변호사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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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인터뷰] 박민제 변호사 인터뷰.

익명 (미확인) | 목, 2015/09/10- 14:57

 

역대 인터뷰이 중에 가장 긴장한 모습의 박민제 변호사였습니다. 편하게 수다 떨 듯이 이야기하면 된다고 하는데도 간간이 떨리는 손과 목소리, 수줍어하며 빨개진 얼굴 때문에 나도 긴장하며 좀 더 진지하게 해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분이 국회와 청와대를 주름 잡고, 지금의 아내와 만난지 한 달 만에 프로포즈를 했다니 역시 사람 겉모습에 속아서는 안 되나봅니다^^

 

박민제

 

김지미 우리 인터뷰의 첫 공식질문이죠, 저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박민제 저는 다른 변호사님하고 다르게 평범한 사람인 것 같아요. 오히려 평범한 사람이 인터뷰를 하면 나중에 인터뷰를 하는 사람이 부담이 덜하실 것 같아서. 그래서 이번에 좀 컨셉을 바꾸시지 않으셨나(웃음). 저는 사법위원회 활동을 하고 있는 박민제 변호사입니다. 변호사가 되기 전에는 국민의 정부 때 국회에 입법비서관으로 있다가 참여정부 들어서면서 국회 쪽 업무를 해야 할 사람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그 티오로 해서 참여정부 행정관으로 들어가서 대통령 임기 끝까지 있다가 순장을 했습니다. 순장 아시나요? 대통령 임기가 끝남과 동시에 같이 묻혀버렸죠(웃음).

 

김지미 변호사님이 변시 3회시죠. 변호사로서는 2년차이지만 연식은 좀 되셔서(웃음) 변호사가 되기 전에 무슨 일을 하셨는지 상당히 궁금했는데 이거는 차차 물어보기로 하구요. 39살에 로스쿨에 들어가신 건데 뒤늦게 로스쿨을 들어가신 계기가 있을까요?

 

박민제 대통령 임기 끝나고 뭘 해야 하나 고민을 했습니다. 국회에서 다시 일해보자는 제안을 받아서 하룻밤을 꼬박 세면서 의원실로 다시 돌아갈까 고민을 좀 했었습니다. 그런데 가족들이 공부를 하는 것에 대해서 응원을 해 주셔서 로스쿨을 들어가게 됐습니다.

 

김지미 학부가 고대 법대이잖아요. 법대를 갔을 때는 고시에 대한 생각도 있었을 것 같은데 사회 첫발을 국회 입법비서관으로 내딛게 된 이유가 있나요?

 

박민제 고시에 대한 생각도 있었습니다.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죠. 근데 몇 번 시험을 봤는데 내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가 아는 분을 통해서 입법비서관 제의를 받았는데 입법이라는 게 정책을 제도화 하는 것이잖아요. 입법을 통해서 국민들한테 체감도 높은 정책이 구현될 수 있는 거니까. 사회적 의미가 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쪽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김지미 입법비서관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 건가요?

 

박민제 의원입법 관련해서 의원님 보좌하고 그러는 거죠. 제가 환경노동위원회와 국방위원회였었는데요, 거기에 환경노동위원회 관련 단체나 국방위원회 관련 단체 의견 수렴을 해서 입법이나 의정에 반영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을 했습니다.

 

김지미 입법비서관 시절에 변호사님이 관여했던 입법안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이 뭐가 있을까요?

 

박민제 고용보험법이나 모성보호법, 군인연금법 이런 것들이 있었습니다.

 

김지미 국회에는 몇 년 동안 계셨던 거에요?

 

박민제 2001년부터 2003까지 있다가 2004년에 청와대로 가게 되었습니다.

 

김지미 청와대에서는 어떤 일을 하셨죠?

 

박민제 청와대에 있을 때는 4개 부서에 있었습니다. 총무비서관실하고요, 시민사회비서관실, 정책조정비서관실, 그리고 정무비서관실에 있었습니다.

 

김지미 청와대의 인사시스템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는데 원래 이렇게 순환 보직을 맡게 되는 건가요?

 

박민제 전보제도가 1년 단위로 있었던 것 같아요. 국회에 대통령 비서실 대응하는 상임위가 운영위가 있어요. 처음엔 국회 운영위·예결위에 대해서 대응할 수 있는 인력이 필요해서 총무비서관에서 그 업무를 했습니다.

 

김지미 국회 경험이 있어서 총무비서관에서 시작을 하셨고 그럼 시민사회비서관실은 어떤가요?

 

박민제 시민사회비서관실에서는 시민단체 현안 이슈 같은 거 모니터링하고 점검하고요, 그 다음에 현안보고서도 쓰고, 그 다음에 자원봉사단체 지원하고 그랬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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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미 저희 회원들 중에 다양한 경험을 가지신 분들이 많은데 청와대에 있으셨던 분은 처음 인터뷰하는 거라 궁금한 게 많거든요. 참여정부 시절에 참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그 안에서 생활하시는 분은 어땠을까 싶기도 하구요. 청와대 행정관의 하루는 어땠나요?

 

박민제 보통 아침 8시쯤에 비서실장 주재 회의가 있어요. 그러면 그 전에 행정관들이 돌아가면서 회의에서 논의될 안건 같은 것을 미리 확인을 해요. 회의가 끝나면 지시가 내려집니다. 현안보고를 해라, 부처를 통해서 상세하게 알아봐라. 그런 현안들은 실시간으로 바로 보고가돼야 하구요, 대통령 공약 같은 장기과제는 시한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기간 내에 과제에 대한 보고를 완료해야 됐었고, 그 보고가 시한 내에 완료 안됐을 때는 국정상황실에서 빨리 그것을 마련하라고 하는 그런 것도 있었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 특별했던 것은 국가주요정책과 관련한 법안이나 예산이 좀 많이 소요되는 법안 이런 것들을 중점 관리 법안으로 선정을 먼저 했어요. 비서실하고 관련부처하고 같이 선정을 한 다음에 그 법안의 통과를 위해서 여러 부처와 같이 유기적으로 추진 체계를 구축하고 대통령님 주재 회의나 비서실장 주재 수석 비서관 회의 때 계속 보고를 했습니다. 아주 숨 가쁘게 진행이 됐었죠.

 

김지미 변호사님이 근무하실 때 주력했던 법안인데, 그게 결국은 법률이 돼서 지금 시행되고 있는 법안들이 있을까요?

 

박민제 로스쿨 법안(웃음).

 

김지미 직접 수혜를 받으셨군요.

 

박민제 그 로스쿨 법이 되게 어려웠어요. 박근혜 대통령이 그것을 사학법 하고 연결을 시켜서 끝까지 통과가 안 되다가 2007년도에 아마 통과가 됐을 거에요. 그런 법안도 있었고. 그리고 국가재정의 기반을 혁신하기 위한 국가재정법과 자원활동 인프라를 구축하고 지원하기 위한 자원봉사활동기본법 등이 있었어요.

 

김지미 아까 말씀하신 것 중에 입법이 정책을 제도화하는 것이라 중요하다는 부분이 굉장히 와 닿는데 최근 입법의 중요성에 대해서 공감을 하시는 분들이 많아져서 로펌들도 그 분야에 집중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공익입법운동을 시작하는 움직임이 있는 것 같아요. 저도 개인적으로 일반적으로 어떤 변화를 이끌어 내려면 결국은 제도로 구현이 되어야 하고 그 제도를 만들어내는 것은 법률이기 때문에 입법의 중요성에 대해서 많이 깨닫고 있거든요. 어떤 제도가 법률로 규정이 됨으로서 실생활에는 아주 큰 변화를 가져온 것이 있다. 그런 리딩케이스 같은 게 있을까요.

 

박민제 그것보다는 역사적 과제나 시대적 과제를 안고 살아야 될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짧지 않은 인생이니까 과제를 가지고 할 수 있는 역할을 찾는 것이 중요할 거라고 생각을 하는데, 제가 생각하기에는 기존에는 시민들이 권력의 객체에 머물렀던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 시대에서는 주체적 참여가 필요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시민들이 주체적 참여를 하기 위해서는 우선 입법과정에 참여가 필요하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러기위해서 입법과정에 제도적으로 시민참여를 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실질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이고, 그런 부분에서 앞으로 과제를 좀 찾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지미 입법 과정에서 시민들이 어떤 방식으로 참여를 할 수 있을까요?

 

박민제 시민들의 입법제안 같은 것들이 형식화 되지 말고, 공청회 제도나 이런 것들을 통해서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그런 기회가 부여되어야 되고 제도적으로 뒷받침 되어야 하겠죠. 또 지방자치가 실질적으로는 민주주의와 연결되잖아요. 민주주의가 지역의 삶의 제 영역으로 실현되는 것이 지방자치인데, 사실상 아직 자치입법 같은 경우에는 민주주의와 맥락이 닿아있음에도 불구하고 미비한 부분이 있어요. 그래서 자치입법 과정에서 특히 주민참여가 강화 될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김지미 이와 관련해서 ‘지방의회 입법활동의 현황분석과 개선방안 연구’ 라는 논문도 쓰셨죠? 이쪽에 관심이 많으신가 봐요.

 

박민제 네. 청와대에 있을 때에 업무경험을 바탕으로 썼었던 논문입니다.

 

김지미 대통령 비서실장 모범 표창도 받으셨어요? 이건 혹시 청와대에서 근무하면 다 받는 건가요?(웃음)

 

박민제 그건 아닌데, 대부분이 받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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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미 그럼 청와대에서 2004년부터 2008년까지 5년을 있으셨죠? 이건 개인적인 질문인데요, 노무현 전 대통령을 근거리에서 접해보신 분으로서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내가 옆에서 보니까 이 부분이 너무 훌륭하더라. 혹시 이런 점들이 있을까요?

 

박민제 단적인 것은 대통령이 참모들보다 더 뛰어나셨습니다. 항상 의제를 먼저 제시하고 그리고 참모들이 보고를 했을 때 문제점들을 파악하셨던 것 같아요. 보완할 부분까지도 지적을 해주시고 그래서 항상 참모들을 끌고 가셨던 것 같아요.

 

김지미 모든 의제에 대한 현안들을 다 꿰뚫고 있어야만 가능한 거잖아요.

 

박민제 네. 기억력과 정보 습득력이 엄청나셨죠. 가장 뛰어나셨어요. 그래서 참모들이 깜짝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저번에 보고했던 것을 그 많은 보고서를 보시면서도 금방금방 기억을 해내셨으니까.

 

김지미 청와대 근무 마치고 나오면서 가장 아쉬웠던 게 있을까요? 이것만큼은 꼭 해놓고 나오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거나.

 

박민제 민생현장에서 직접 접하면서 의제를 발굴하는 활동을 좀 더 강화했으면 좋았을걸. 그냥 부처 보고로 해서 너무 거기에 급급하지 않았나. 시민들과 직접 대화를 하면서 그분들이 필요한 의제와 입법들을 찾았어야 하지 않았나. 이런 아쉬움이 있습니다.

 

김지미 그렇게 일을 그만 두고, 다시금 예전에 꾸었던 법조인의 꿈에 다시 도전을 하셨잖아요. 가족들의 지지도 있었다고 했지만, 일단 로스쿨에 가볼까? 라는 생각은 변호사님이 먼저 하셨을 것 같은데 다시금 내가 법조인을 해봐야겠다 라고 생각하게 된 결정적인 동기가 있을 것 같아요.

 

박민제 학부 때는 시험을 통한 탈출의 개념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참여정부 임기 끝나고 나서는 탈출의 개념이 아니라 뭔가 사회구조에 대해서 법조인으로서 책임 있는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었던 것 같아요. 사회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었는데 그 양극화를 조금 해소할 수 있는 역할을 법조인이면 좀 더 충실할 수 있지 않을까.

 

김지미 입법 분야의 일을 해 보니까 내가 법률가가 되면 좀 더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겠다. 이런 생각을 하셨던 건가요?

 

박민제 네. 그리고 또 로스쿨 제도 취지가 기존에 법조인들이 안가는 직역에 많이 진출하는 의미가 있었어요. 그게 뭐 국회도 있겠지만 자치단체도 있었거든요. 지방자치단체 법치행정을 위해서 법률가가 할 부분이 많이 있었어요. 그런 부분에 대해서 생각도 많이 했었죠.

 

김지미 그런데 지금은 개업변호사로 살고 계시잖아요. 애초에 생각했던 길하고 조금 다른 건 아닌가요?

 

박민제 그래서 고문변호사 활동도 하고 있고요, 교육청 일도 하고 있고 그렇습니다.

 

김지미 서울특별시 교육청 행정심판위원 이거 말씀이시죠?

 

박민제 네. 그거 어떻게 아셨어요?

 

김지미 서울특별시 공익변호사, 대법원, 서울 북부, 남부, 동부 지방법원 국선변호인도 있어요(웃음). 코리아 부동산 아카데미 강사로 활동하고.(웃음)

 

박민제 이거 어떻게 아셨어요? 정보력이 무섭네요(웃음). 부동산 아카데미는 고등학교 선배가 저 몰래 올렸습니다. 지금 내려달라고 하려고요.

 

김지미 사법위원회 활동이 결국은 변호사님 예전에 했던 활동의 연장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민변 가입은 변호사 되시고 바로 하신건가요? 애초에 사법위를 딱 찍고 들어왔을 것 같은데.

 

박민제 네. 너무 거창하긴 하지만 제가 해야 할 시대적 소명 내지는 역사적 과제로 잡고 있는 것이 3가지가 있어요. 첫째는 시민이 권력의 객체가 아니라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그런 제도적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고요, 둘째는 패자가 부활할 수 있는 이런 걸 좀 마련하는 거에요. 기존에 부족한 것이 있으면 사회에서 기다려주지 않고 내치잖아요. 그런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일어설 수 있게 기다려주고 지원해 줄 수 있는 이런 부분이 필요하고. 세 번째는 국가권력에 의한 범죄를 좀 방지하자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사법위원회는 세 번째 국가권력에 의한 범죄를 방지하자는 거하고 닿아있는데, 저희 대통령님도 사실상 권력에 의한 희생을 당하신 거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대통령이 이렇게 희생을 당할 정도면 다른 국민들은 더 불안해하고 위험한 상황에 빠질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그걸 방지할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을 마련하는데 일조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사법위원회에 들어왔습니다.

 

김지미 그러면 국가권력에 의한 범죄를 방지하는 데 변호사님이 구상하는 어떤 방안 같은 것이 있을까요?

 

박민제 가장 먼저 검찰 개혁하고 국정원 개혁이 있을 수 있는데요, 제가 먼저 주안점을 두고 있는 것은 검찰개혁입니다. 참여정부 때도 검찰개혁을 하려고 했었는데 사실상 했다는 게 내버려 두는 이런 것이었죠. 그러니까 좀 독립화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실상 검찰권력이 정치권력하고 떼려야 뗄 수 없는 세력입니다. 자기들 승진이 청와대하고도 관련되니까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거였어요. 그냥 내버려 둔다고 해서 정치적 중립이 되는 게 아니었던 거죠. 그래서 검찰 권력을 견제하고 감시할 수 있는 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기구에는 검찰의 입김이 작용되지 않게 차단된 상태에서 우선 개혁기구를 마련한 다음에 그 기구를 발판으로 해서 검찰을 견제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참여정부 때도 공직자부패수사처 이런 법안도 내고 했지만 사실상 그 당시에도 검찰 흔들기가 많았어요. 또 국회에도 로비도 많이 하고 그랬었는데, 다음 정부에서는 검찰에 흔들리지 않는 이런 개혁기구를 마련해서 그 기구에서 검찰을 견제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어내고 법안을 마련해 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김지미 검찰개혁이라는 것은 사법개혁 분야에서 약간 해묵은 주제라고 생각될 정도로 검찰개혁 하자라는 이야기는 아주 오래 전부터 있어왔는데, 실질적으로 잘 안 되고 있잖아요. 검찰개혁에 대해서 공감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안 되는 이유가 뭐라고 보세요?

 

박민제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선 청와대의 검사 파견을 못하게 해야 할 것 같아요. 그게 자기들 승진이 청와대에서 낙점하게 되는 부분이 있으니까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도 청와대 파견이 금지되어야 할 것 같고. 그 다음에 정치권력에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공안부나 이런 것들이 폐지해야 할 것 같아요. 그 다음에 2원화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아까 말씀드렸던 공직자부패수사처처럼 공직자 비리 같은 경우나 정치사건 같은 경우에는 검찰과 독립적인 기구에서 담당할 필요가 있을 것 같고. 그 다음에 자치경찰제가 사실상 약간 아쉬운 점이 있었는데 그게 수사권하고 기소권 분리 문제가 사실상 조직 간의 다툼으로 변질된 것 같아요.사실상 그 취지가 아닌데 그게 좀 국민들에게 잘 못 알려진 게 있는데 사실상 그런 수사권·기소권 분리부분도 검찰개혁의 한 일환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지미 이러한 검찰개혁 과제가 산재해 있는데 하나도 된 게 없는, 검찰개혁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요인이 뭔가요?

 

박민제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유지할 수 있도록 외부세력이 지속적으로 견제하고 감시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또 작은 부분이긴 한데 기소독점주의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재정신청제도 같은 것을 개선을 해서 그 부분에 대해서도 개선점을 찾아야 될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김지미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예전부터 가져왔던 문제의식들도 상당히 있고 나름대로의 어떤 대안도 생각하고 계신데, 우리끼리 얘기지만 지금 민변 사법위 활동은 좀 약하다 싶은 감이 있어요.

 

박민제 제가 반성해야죠. 부족한 것이 많아서. 그런데 앞으로는 그 논의가 활성화 될 것 같아요. 대한변협 차원에서도 사법제도개혁특위가 꾸려졌더라고요. 그 다음에 아마 대선국면이 가까워오면서 공약부분에서 제시할 부분이 있고, 박근혜 정부에서는 사법 분야 공약이 거의 없었다고 알고 있거든요. 공약을 얼마나 이행했느냐 체크해야하는데 아예 공약이 없으니(웃음).

 

김지미 외부에서 볼 때는 사법개혁과 관련된 역할을 할 주체가 결국엔 민변 밖에 없지 않느냐 하는 기대가 있는 것 같은데 사법개혁과 관련해서 민변이 이런 활동을 했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하신 게 있나요?

 

박민제 저는 처음에 사법위 하면서 고정적으로 할 수 있는 역할이 주어진 것에 대해서 대단히 감사하고요. 그거라도 있으니까 한 달 동안이라도 뭔가 방향을 알고 준비할 수 있거든요. 제가 사법위에서 입법감시 업무를 하고 있는데요, 국회에 제출됐지만 잠자고 있는 사법개혁 법안들이 많은 것 같아요. 그런 법안들을 좀 깨워서 국회 법사위와 본회의에 통과될 수 있도록 저희가 여론도 조성을 하고 국회에 요구도 하고 그런 부분이 있을 것 같아요.

김지미 좋은 제안 같은데요. 저희가 입법감시 활동을 하고 있는데 사실 적극 반대하는 법안들 위주로 의견 표명을 하는 선에서 그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꼭 통과가 되어야 하는 법안들에 대해서 보다 적극적인 활동을 했으면 좋겠다는 말씀이시죠?

 

박민제 네. 제가 참여정부 때도 이렇게 했었거든요. 항상 중점관리법안에 대해서 어떻게 추진되고 있는지 체크를 했습니다. 단계별로 어느 단계에 있느냐를 체크를 한 다음에 장·차관님들이 그것에 대해서 국회에 찾아가서 국회의원 면담을 해서 관심을 가지고 통과시켜달라고 하실 수 있게 메모카드 같은 걸 만들었어요. 그 법안의 주요내용과 통과될 필요성 같은 것을 이렇게 조그만 메모카드로 만들어서 그걸 보시면서 국회의원한테 그 메시지를 전달하게 해드리고 그 다음에 장·차관님들이 어떤 활동을 하셨는지 매주 단위로 부처별로 보고하게 만들었거든요. 그렇게 하니까 그래도 임기 말에 열심히 하시더라고요(웃음). 저는 사법위 선배변호사님들이 토론할 수 있는 토론거리를 풍성하게 만들어 드리자는 생각이 컸는데 아직은 너무 부족해서 배우는 입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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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미 이제 변호사가 되신지 만 1년 정도 되었는데 어떠신가요? 변호사 되기 잘했다, 이런 생각 드시나요?

 

박민제 민변이 인권과 민주주의의 첨병이면서도 마지막 보루잖아요. 거기에서 제가 몸 담으면서도 초심을 잃지 않게 하는 그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제 자신을 위한 삶이 아니라 사회에 공헌하고 기여할 수 있는 이런 것들을 잊지 않게 해주고 거기에서 저 자신을 독려할 수 있게 해주는 점에 있어서 저한테 계속 채찍질이 되는 그런 것이 있는 것 같아요.

 

김지미 혹시 사법위 말고 관심 두고 있는 다른 위원회가 있나요?

 

박민제 지금 사법위도 벅차서(웃음). 사법위원회만 해도 할 것이 많아서.

 

김지미 사법위에 뼈를 묻겠다.

 

박민제 예에(웃음). 그렇습니다.

 

김지미 이제 개인사를 좀 물어볼게요. 변호사님이 워낙 말수가 없으시고 그래서 개인사에 대해선 아는 게 전혀 없어요. 우선 결혼은 하셨죠?

 

박민제 네. 했습니다. 2005년에 해서 10주년 됐습니다. 딸아이가 7살인데요, 로스쿨 입학시험 볼 때 태어났어요.

 

김지미 변호사님은 어떤 아빠신가요?

 

박민제 집사람이 엄하기 때문에 저까지 엄하게 하면 딸아이가 더 서럽게 울더라고요. 그래서 안 되겠구나. 나는 엄하게 하면 안 되겠다. 나라도 부드럽게 해야 되겠다. 딸이 짜증을 부릴 때 제가 집사람에게 전화해서 딸이 짜증을 부린다고 이야기했더니 고자질했다고 울더라고요(웃음).

 

김지미 척 봐도 엄하게 못하실 것 같아요. ‘아빠한테 그러면 안 돼’ 이렇게 혼내시는 게 아니라 사모님한테 ‘딸이 나한테 짜증 부려~’ 이렇게(웃음). 사모님은 어떻게 만나셨어요?

 

박민제 사모님이요? 아, 집사람이요?(웃음) 친척분이 장인·장모님 사는 아파트 라인에 같이 사셨어요. 그래서 소개를 시켜주셨어요. 재미없죠?

 

김지미 변호사님 굉장히 수줍음이 많고 그러시잖아요. 어떻게 결혼까지 이어지게 됐는지가 궁금하네요.

 

박민제 저는 만난 지 딱 4개월 만에 결혼했는데요. 그런데 잘한 결혼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복 받은 것 같아요.

 

김지미 첫눈에 보고 반하셨어요?

 

박민제 집사람은 계속 만날수록 좋았던 것 같아요. 더 이상 알아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을 해서 만난 지 한 달 정도 되었을 때 프로포즈를 했는데요. 걱정을 많이 했는데 집사람이 받아줘서.

 

김지미 의외로 추진력이 상당하시네요. 어떤 점이 그렇게 마음에 드셨나요?

 

박민제 평범한 답변인데요, 이해심도 많고 배려심도 있고 대화도 통하고 그래서. 제가 집사람 얘기를 잘 안하는데. 팔불출 같아서 보기가 안 좋더라고요.

 

김지미 사모님 이야기를 하면 자랑할 수밖에 없다는 말씀이군요(웃음). 이야기하기 힘들어 하시니 그럼 개인사는 이만 패스할게요. 오늘 자원활동가 두 분이 함께 했는데 혹시 물어보고 싶은 게 있으면 기회를 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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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홍(자원활동가) 늦은 나이에 로스쿨을 준비하면서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박민제 뒤늦게 공부하니까 그건 있더라고요. 이런 공부를 하면 나중에 어떻게 도움이 될까 이런 게 느껴지니까 공부가 더 재미있고 흥미 있고 지겹지 않게 했었던 것 같아요. 의미부여가 되고 합격이후를 생각하면서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박재홍 변호사님 동안의 비결이 뭐에요?

 

박민제 거의 듣지 못하는 질문입니다(웃음). 나이에 비해서 더 많이 보는 분들이 더 많으신데 굳이 얘기하자면 생각이 없어서일까요. 실은 고등학교 때의 얼굴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겁니다.(웃음)

 

김지미 마지막 질문을 드릴게요. 지금 하고 있는 뉴스레터 인터뷰는 우리 회원 아니신 분들도 많이 보시더라구요. 그런 취지에서 우리 박재홍씨도 뒤늦게 공부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렇게 늦게 공부를 결심한 분들을 위해 격려의 말씀이라고 할까요, 한 말씀 부탁드려요.

 

박민제 로스쿨 제도 취지가 사회의 다양한 경험을 쌓은 사람을 받아들여서 다양한 법률분쟁에 대응하게 만드는 이런 부분도 있잖아요. 저는 좀 뒤늦게 공부를 하고 다시 또 사회에 진출을 하게 됐지만 오히려 기존에 로스쿨 입학 전에 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해서 또 새로운 분야를 개척할 수 있고 역할을 할 수 있어서 사회적으로 의미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또 변호사가 되기 전에 내가 만약에 변호사였으면 저런 일을 할 수 있었을 텐데 생각했던 것들을 변호사가 돼서 실현할 수 있게 돼서 좋았습니다. 모든 만학도 여러분들 힘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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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중 ‘사실’이 아닌 것은 무엇일까요?

① 동성애는 에이즈를 퍼뜨리는 주범이다.
② 외국에서 동성애가 죄라고 설교하던 목사가 차별금지법 때문에 잡혀갔다.

 

정답은 ‘둘 다’입니다.
두 이야기 모두 사실이 아닌 거짓인데, 공중파TV에서 생방송 그대로 전파를 타고 전국 시청자에게 송출되었습니다. 지난 10월 ‘엄경철의 심야토론’에서 ‘동성애’가 주제로 편성되어 소위 혐오표현이 패널의 입을 거쳐 공영방송을 통해 확대 재생산된 셈입니다.

이 프로그램 방송 후, 언론연대는 KBS ‘엄경철의 심야토론’ 제작진에 △ 누군가의 존재·인권을 부정하는 것을 표현의 자유 영역으로 보는지 △ KBS는 인권 문제를 다룰 때 어떤 기준으로 패널 선정 등을 접근하는지 △ 팩트 체크나 허위·차별 발언 제지가 없었는데, 토론에서 사회자의 역할은 무엇인지 △ KBS는 내부 ‘공정성 가이드라인’ 에서 정한대로 출연자의 의도·신분 등을 얼마나 확인했는지 등을 공개 질의(<미디어오늘> 2018. 11. 9.자 보도)하였으며, 그 밖에 여러 시민단체와 언론의 비판이 이어졌습니다.

2. 새로운 시청자위원회 활동

지난 11월 시청자위원회 월례 회의에서도 언론연대 등의 비판에 호응하여 심야토론에서의 성소수자 혐오표현 문제, 팩트 체크 등의 부실 문제, 근본적으로는 제작진의 인권감수성 및 젠더의식 부재 문제 등을 지적하고 오는 12월 월례 회의까지 KBS 제작본부 측의 재발방지 대책 수립 및 위원회 보고를 요구하였습니다. 방송 외부에서의 비판과 견제를 ‘내부화’하는 제도적 도구의 역할을 수행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간단히 추가로 설명해드리면, 지난 9월 출범한 제29기 KBS 시청자위원회는 방송법상 의무 법정기구로(저도 민변의 추천을 받아 제29기 위원회에서 활동 중입니다), 방송 편성 및 프로그램 내용에 대한 직접적 견제와 감시를 위해 위원회의 의견을 제시하고 시정을 요구하는 회의체라고 보시면 됩니다. 공식적으로 ‘KBS 정상화’를 기치로 재출범한 2018년, 시청자위원회 역시 ‘무지개 위원회’란 표어 아래 구성원 다양화를 추구하며 언론·노동·경제·여성·소비자·장애인 등 여러 분야에서 위원을 선정하여 내부 비판과 견제를 시작했습니다.

3. 시청자위원회의 변화

그러면서 몇 가지 변화가 있었습니다.

먼저 이번 시청자위원회부터 매월마다 열리는 회의는 페이스북 라이브와 KBS 홈페이지 등을 통해 생방송으로 중계되고 녹화까지 됩니다. 비록 구독자는 소수지만, KBS 사장단 이하 임원진 및 제작진이 회의에 출석해서 답변하도록 하여 책임성을 높이는 효과가 있겠지요.

또한 기존의 시청자위원회가 관제/어용 위원회라는 비판과 성찰을 거쳐, 시청자위원회 차원의 ‘성찰과 연대 TF’를 구성하고 공영방송의 책무, 전국 각지에 소재한 지역 시청자위원회 및 언론 시민단체들과의 연대 방안을 모색 중입니다.

특히 지난 달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종북’과 같은 혐오표현 등에 대한 손해배상의무를 배척한 판결을 선고한 일련의 상황 하에서, 시청자위원회 등을 통한 감시와 견제 기능에 보다 주목할 수도 있을 겁니다.

4. 공영방송 KBS를 고민하며

KBS 정상화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임원진 등 구성원의 인적 적폐는 청산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지만 철밥통 공영방송의 구태의연한 ‘의식적’ 적폐에 대한 대응은 어떠한지 의문이기도 하죠. 유튜브로 대표되는 뉴미디어의 급성장과 대비되는 공중파 TV의 뚜렷한 쇠퇴(?) 경향과 ‘잃어버린 9년’의 후과가 겹쳐 나타나는 모양새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그 속에서 미미하지만(또한 부끄럽지만) 저도 민변의 추천(그리고 언론위원회 여러 위원 분들의 배려)을 받아 시청자위원회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2년의 임기 동안 KBS 시청자위원회와 민변 언론위원회 간의 구조적 연대 방안을 모색하고 공영방송의 사회적 책무성을 강화하는 데 일조할 수 있도록 고민과 노력을 계속해 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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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18/11/16-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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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영사관 앞으로 행진해도 될까요?

부산지부 정상규

저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국면에서 제가 소송대리하였던 부산시 동구 소재 일본영사관 앞 집회 금지 처분 효력정지 신청 사건에 관하여 몇 글자 써보려고 합니다. 때는 2016년 12월 29일 목요일 16시 경. 박근혜정권퇴진 부산운동본부(이하 ‘신청인’)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이틀 뒤인 31일 토요일 집회 때 서면에서 본집회를 한 후 일본영사관 앞을 지나 그 인근에서 정리집회를 하고자 집회신고를 했는데 부산광역시지방경찰청장(이하 ‘피신청인’)이 일본영사관 인근 100미터 구간에서의 집회는 금지한다는 집회 일부 금지 통고를 해 왔으니, 이에 대한 효력정지신청 소송대리를 맡아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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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TV

그간 일본영사관 앞에서는 작은 규모의 집회·시위가 있어 왔지만, 피신청인이 집회를 금지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피신청인이 이러한 반응을 보인 것은 아마도 집회 신고 하루 전 날인 12월 28일 한 시민단체가 일본영사관 앞에 설치한 소녀상을 부산 동구청이 강제로 철거하고 압수까지 한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일본영사관 앞에서의 대규모 집회·시위가 일본과의 외교적 마찰로 이어질 것을 우려한 이유로 보입니다.

집회신청서와 피신청인의 금지통고서를 보내달라고 하여 받아 보니, 신청인 측은 대규모 집회가 예정된 2016년 12월 31일뿐 아니라 이후 1주일 동안을 집회일시로 기재하여 일본영사관 앞을 포함한 장소에서 행진을 하겠다고 신고를 하였고, 이에 피신청인은 행진구간에 일본영사관 경계 지점으로부터 100미터 이내의 장소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하 ‘집시법’) 제11조에 따라 당해 구간에서의 행진을 금지한다고 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연말인 31일 토요일의 대규모 집회 이후에도 같은 장소에서 시민들이 집회의 자유를 누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였지만, 효력정지신청 사건에서 패소하여 12월 31일 토요일의 대규모 집회 시에 일본영사관 앞 경로에서의 행진이 금지된다면 신청인 측에 큰 타격이 될 것이라 판단하여, 우선 토요일 대규모 집회에서 행진이 가능토록 하는 점에 초점을 맞추기로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신청인 측에, 당해 구간 행진 예정시간으로부터 48시간이 되기 전에, 집회 개최일시를 ‘2016년 12월 31일 18시부터 22시까지’로 한정하여 재차 집회신고를 하도록 권유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집시법 제11조 제4호 다목에서는 ‘외교기관의 업무가 없는 휴일에 개최하는 경우로서 외교기관 또는 외교사절 숙소의 기능이나 안녕을 침해할 우려가 없다고 인정되는 때에는 외교기관의 경계 지점으로부터 100미터 이내의 장소라도 집회·시위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휴일인 토요일의 집회까지 제한할 수는 없다는 주장에 초점이 맞춰지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피신청인은 신청인 측의 새로운 집회 신청에 대하여 즉답을 하지 않았고, 다음 날인 30일 금요일 정오가 되어서야 재차 금지 통고를 해 왔습니다. 같은 이유였습니다. 일본영사관은 외교기관으로 집시법 제11조에 따라 그 100미터 인근에서의 집회는 금지되며, 주한 일본국 총영사뿐 아니라 부산 동구청장도 피신청인에 공문을 보내어 소녀상 설치단체와 일본영사관 간의 마찰을 예방하기 위한 경찰력 배치를 요청하였으며, 지난 12월 28일 소녀상 강제철거 당시 시민단체 회원이 부산시 동구청 공무원의 적법한 공무집행을 방해한 사례가 있다는 등의 이유였습니다.

저는 처분서를 받아보자마자 효력정지신청서를 작성하여 오후 2시 경 신청서를 전자 접수하였습니다. 당시 향후 2주간 부산지방법원이 휴정기를 갖는다고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금요일 오후 2시에는 대부분의 재판부는 재판 일정을 잡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휴가 전야에 전자 접수된 효력정지 신청서가 언제 재판부 배당이 되고, 언제 심문기일이 잡힐지 불분명한 상태였습니다. 당장 내일 집회를 해야 하는데 말이죠(더 큰 문제는 제가 내일부로 휴가를 가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짜고짜 제1행정부로 전화를 해서 재판부 배정 및 심문기일 지정을 요구하였습니다. 재판부도 사안의 중대성 및 시급성을 재빠르게 판단하고 재판부 배정, 상대방에 대한 신청서 송달 및 심문기일 지정을 하였습니다. 재판부가 얼마나 신속하게 일을 진행했던지, 아직 전자소송 시스템에서 재판부 배당이 되지 않아 재판부에서도 제가 제출한 신청서가 보이지 않는다면서 저에게 신청서를 이메일로 보내줄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제가 재판부에 신청서 등의 서류를 이메일로 보내줬고, 재판부는 이를 피신청인에게 ‘이메일로 송달’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우여곡절 끝에 오후 4시에 심문기일이 열렸습니다. 신청서를 접수한 지 2시간 만이었습니다.

심문기일에서 피신청인은 일본영사관 직원들이 토요일에도 나와서 근무를 하기 때문에 토요일을 휴일로 보기 어렵다는 다소 억지스러운 주장을 하였으나, 함께 신청인 측 소송대리를 맡은 부산지부 최성주 변호사님께서 일본어로 된 주한 일본영사관 홈페이지 화면을 출력해와 제시하자 피신청인 측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일본영사관 홈페이지에도 토요일을 휴일로 공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몇 차례 공방 후 심문기일을 마쳤습니다.

ⓒ연합뉴스TV

ⓒ연합뉴스TV

다행히도 그 날 저녁 7시 30분 경 신청인 측의 효력정지신청이 전부 인용되었다는 재판부의 전화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집시법 제11조 규정 중 ‘외교기관의 업무가 없는 휴일에 개최되는 경우’ 요건은 집회일시가 토요일 저녁이라는 점에서 당연히 인정되었습니다. 그러나 추가로 요구되는 ‘외교기관의 기능이나 안녕을 침해할 우려가 없다고 인정되는 때’라는 요건을 충족시킬 수 있었던 것은, 지난 2개월 간 신청인 측에서 주최한 수차례의 평화집회에서 보여준 시민들의 성숙한 시민의식 덕분이었음이 분명합니다.

이후에 부산지방법원은 두 차례에 걸친 같은 내용의 피신청인 측 집회 일부 금지 통고에 대한 신청인 측 효력정지 신청 사건에서, 선례가 있음을 이유로 ‘심문기일을 열지도 않고’ 전부 인용하고 있다는 미담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수, 2017/03/08-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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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인권위원회 소개 및 소식

 

새해가 시작되었으나 새로운 꿈을 꾸는 사람을 찾기 힘든 2016년의 시작, 우리 아동인권위원회는 회상하기조차 무서운 뉴스들로 분노하면서 찬찬히 활동을 해나갔습니다.

우선 2016. 1. 19. 올해의 첫 월례회가 있었습니다. 위원회 회원 거의 전원이 참석하여 심지어 민변 회의실에 앉을 자리가 없어 인사만 하고 돌아가시는 회원이 있을 정도로 열기 가득한 월례회였습니다. 우리는 올해 활동계획을 짜면서 너무 많은 일거리에 어깨가 무거우면서도 서로를 믿고 웃었습니다. 새해부터 잇달아 터진 아동학대뉴스 등으로 인해서 아동인권에 대한 주목이 예상되는 가운데, 우리 위원회는 이럴수록 차근히 공부하고 전문가, 활동가를 모시고 진행하는 간담회 등을 통해 할 일을 해나가기로 하였습니다.

2016. 2. 16. 2월 월례회가 있었습니다. 2월 월례회는 세이브더칠드런에서 뿌리의 집 원장이시고 특히 해외입양아들과 함께 활동해오고 계신 김도현 목사님을 모시고 ‘입양과 베이비박스’문제에 대해서 논의하였습니다. 여전히 ‘입양은 무조건 선한 일이고 입양특례법 때문에 입양이 어려워지고 그래서 아이들을 유기하게 되었다’라는 주장이 휩쓸고 있는 왜곡된 현실에서, 김도현 목사님은 ‘입양이 무조건 선은 아니며, 입양은 미지막 선택이어야 하고 그 이전에 아이들이 가정에서 양육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라는 주장을 펼치시느라 최전선에서 각종 공격과 원색적 비난의 대상이 되고 계십니다. 김도현 목사님이 말씀해주시는 해외입양아들의 기가 막힌 사례들을 들으면서 우리 위원회 회원님들은 답답한 현실에 가슴을 치면서 함께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동인권의 문제는 논리나 법리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눈물과 교감으로 활동하여야 함을 느끼게 된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우리가 뿌리의 집을 방문하여 해외입양아들과 함께 생생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소망을 전달드리면서 간담회는 끝났고, 김도현 목사님은 우리에게 책선물을 한가득 주시고 환하게 웃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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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 안경 닦는 척 하면서 계속 눈물을 흘리던 김수정 위원장, 괜히 분위기 띄운다고 공격적인 질문했다가 본전도 못 찾은 김영주 간사, 목이 메는지 고개만 끄덕이던 우리 변호사들, 그리고 입양아들의 슬픔을 교감하고 고통을 고스란히 함께 느끼시면서 활동중이신 우리 김도현 목사님

 

깊은 밤까지 간담회를 마치고 짐을 주섬주섬 싸고 있을 무렵, 민변 회장 후보님들이 방문하셨습니다. 특히 아동인권위원회는 신입변호사들이 많아 ‘변호사의 현실과 민변활동문제’, ‘부담가지 않는 민변활동’ 등에 대한 각종 질문이 쏟아졌습니다. 아동인권위원회는 신생 위원회이고 최근 엄중한 사건들이 터진 상황에서 아동인권분야가 원래 활동 영역이 넓고 힘든 면까지 있으니 특별히 지원해주실 것을 주문드렸고, 민변회장 후보님들은 모두 “그렇게 하겠다”라고 답하셨습니다(각 위원회마다 그렇게 답하셨을 듯합니다만, 어느 위원회보다 온마음으로 열심히 하는 우리 위원회 특히 지켜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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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 불꽃 튀는 경쟁을 하실 줄 알았으나 다정히 오셔서 싸움 붙여보려는 시도를 무색하게 만드신 민변회장 후보님들.

 

우리 아동인권위원회는 2016. 3. 18. 서울 북촌의 모처에서 1박2일로 워크샵을 진행합니다. ‘절대 공부는 안한다’라고 차마 말할 수 없는 워크샵이겠지만, 목표는 “웰빙과 위로”입니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맛있는 음식 많이 먹으면서, 일과 공부만 하느라 못했던 서로에 대한 이해와 게임능력 측정 등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혹시 워크샵부터 참여하는 것에 대해서 눈치를 보고 계신 분들이 있다면 걱정마시고 참여해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신입회원을 언제나 환영합니다.

 

관심있는 변호사님들의 많은 연락을 기다립니다. 저는 아동인권위원회의 친목, 개그,잡일을 담당하고 있는 간사변호사 김영주입니다(010-9881-5363).

 

 

 

 

월, 2016/03/14-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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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DS 대응 국제회의 참관

이승진 변호사

 

제가 민변을 가입한지 아직 몇 달이 안 되어서 신입회원의 특권인 기웃거리기를 좀 심하게 하고 있습니다. 민생경제위와 국제통상위의 각종 회의를 무분별하게 참석하면서 ‘저는 미국변호사입니다’, ‘외국에서 살다 와서 잘 모릅니다’, ‘일단 공부하겠습니다’ 따위의 핑계를 대고 묵묵히 참관만 하던 저를 다들 많이 참아주셨지만, 보다 못한 국제통상위 위원분들이 드디어 제게 작은 미션을 주셨습니다.

9월 10~11일 송도에서 유엔 국제거래법위원회(UNCITRAL)의 ‘회기간 아태지역 회의’가 열릴 예정이었는데, 주 안건이 국제통상위의 주요 관심사이자 요즘 ‘핫’한 투자자-국가 간 분쟁해결제도(ISDS)였습니다. 이에 앞서 9일 연세대 송도캠퍼스에서 각국의 시민사회단체들이 모여 사전 대책회의를 하기로 하였는데, 여기에 송기호 전 국제통상위원장님과 함께 저도 가서 참관하고 오라는 부담 없는(?) 미션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이렇게 위원회 활동소식도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UNCITRAL ISDS Reform Forum 시민사회 대책회의

ISDS는, 짧게 요약하자면, 외국인투자자가 투자대상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국가간 협정으로 만든 중재제도입니다. 민간인인 중재인들이 투자대상 국가의 사법부를 우회하거나 초월하여 비밀리에 판정을 하므로, 투명성도, 일관성도 없고, 외국인투자자에게 지나친 특권을 부여하는 제도라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ISDS의 구체적인 개념, 우리나라가 제기당한 ISDS 사건들, 이에 관한 우리 위원회 활동에 관해서는 6월 국제통상위 활동소식을 참고해 주십시오.)

ISDS 제도 개선 국회 Webinar

저는 사내변호사로서 대형로펌이나 대한상사중재원 등이 주최하는 세미나를 종종 참석하곤 합니다. 제 본 업무와 연관성이 별로 없어서 국제중재를 다루는 세션을 그 동안 주의 깊게 듣지는 않았지만, ISDS 판정의 일관성 문제를 개선하여 ISDS 제도를 강화하자는 방향으로 토론이 마무리 되었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이번 송도 시민단체 사전회의에는 뉴질랜드 오클랜드대학 교수 Jane Kelsey, 국제환경법센터(CIEL)의 Layla Hughes 등이 발표하였고 민주노총, 환경운동연합, 참여연대 등도 참여하였습니다. 저를 제외한 다른 분들은 서로 구면인지 반갑게 인사하셨지만 저는 처음에는 좀 ‘뻘쭘’했습니다. 하지만 하루 종일 진행된 회의에서, 그리고 점심시간 편안한 토론을 통해, ISDS에 대한 배경으로부터 다양한 개선안과 대응방법에 대한 세밀한 분석 등 정말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현재 유럽연합(EU)은 역내국간의 협정에 포함된 ISDS는 유럽연합법 위반이라는 유럽사법재판소의 판결과 ISDS에 대한 여러 비판적 목소리에 대응하여 국제투자법원을 신설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 ISDS의 개정을 담당하는 UNCITRAL의 제3작업반(Working Group III)도 절차적 개선만 다루고 결국 유럽연합에서 제안한 국제투자법원 제도를 지지할 것으로 분석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국제투자법원 역시 사법주권의 침해, 공공정책 왜곡 등 ISDS의 근본적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않기 때문에 절차적 개선을 통해 ISDS를 고착화하기보다 전면폐지를 주장해야 한다는 데 대체적인 합의가 이루어졌습니다.

저는 자차로 송도까지 갔기에 돌아오는 길에 송기호 변호사님을 모실 기회가 있었는데요. ISDS에 관하여 이것저것 궁금했던 것을 여쭙고 열심히 듣느라 길을 몇 번 놓쳐서 좀 먼 길로 돌아온 것 같아서 죄송했습니다만 여하튼 보람 있는 하루였습니다.

최근 미국이 재협상을 완료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서는 ISDS 조항이 아예 삭제되었습니다. 미국 투자자들이 해외에서 ISDS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면 해외투자를 안하고 미국에 투자를 할 것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으로 풀이되고 있는데, ISDS를 폐지하자는 시민단체들의 주장이 트럼프 정부의 발상과 역설적으로 일치한 경우입니다. 이런 예고된 미국의 태세 전환에도 불구하고, NAFTA 재협상과 거의 동시에 이루어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에서 정부는 ISDS의 미세한 조정밖에 없는 미심쩍은 결과만 가져왔습니다. 또한 최근 언론에서도 크게 다루는 ISDS 사건들에 대하여 정부는 투명한 정보공개를 극히 꺼리고 있어 우리 위원회에서는 다양한 경로로 정보공개를 독촉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ISDS 문제는 현재진행형으로 공부하고 대응할 일들이 많으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국제통상위에 참여하여 미션을 나누어 받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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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18/10/04-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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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편지

월, 2016/03/14-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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