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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동아시아사 이해를 위한 일본 평화여행 in 큐슈 잘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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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동아시아사 이해를 위한 일본 평화여행 in 큐슈 잘 다녀왔습니다.

익명 (미확인) | 월, 2015/08/31- 22:29
해방70년, 강제징용과 피폭의 땅에서 생각하는 전쟁 그리고 평화
[2015 서울KYC 동아시아 이해를 위한 일본 평화여행 in 큐슈]


지난 8월8일부터 11일까지 3박4일의 일정으로 서울KYC회원 20명과 함께
일본의 강제징용과 피폭의 장소인 후쿠오카, 나가사키, 기타큐슈 지역을 다녀왔습니다.

1945년 전쟁은 멈추었고, 식민지 해방을 맞이하였지만,
70년이 지난 2015년 일제강점기 당시의 상처와 고통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입니다.
이런 상처와 고통을 어떻게 기억하고,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지 또 하나의 과제를 안고 온 여행이었습니다.
가장 뜨거웠던 일본을 뜨거운 가슴으로 만나고 온 기억을 사진을 통해 되짚어 봅니다.

여행첫날, 인천공항에 6시에 집결하여, 입국수속을 마치고, 8시 비행기를 탔습니다.
후쿠오카에 도착하여, 강제징용의 역사를 온몸으로 전하고있는 배동록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여행 내내 저희와 함께 해주신 재일조선인 2세 선생님이셨는데, 연세가 70대의 고령이었지만,
늘 뛰어 다니실 만큼 정정하셨습니다. 그러나 날이 너무 더워서 건강이 무척 걱정되었습니다.

답사 첫번째 장소는 지쿠호 지역의 [무궁화당]
지쿠호 지역 탄광에서 강제징용으로 끌려와서 가혹한 노동에 목숨을 잃은 조선인들의 유골은 방치되었고,

방치된 무연고묘를 2000년 지쿠호지역의 재일동포와 뜻을 함께 하는 일본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납골당입니다.
당시 이 납골당을 만들었던 분들이 함께 해주셔서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고향에 못가는 안타까움을 [고향의 봄] 노래를 합창했습니다.  



두번째 장소는 덕향추모비!
1936년 아소탄광 화재로 25명의 조선인이 목숨을 잃었고,
이후 노동자들의 동요를 막기위해 추모비를 세웠으나, 관리하지 않아 쓰러져가는 추모비를
1997년 뜻있는 일본인들과 동포들에 의해 지금의 모습으로 다시 세워졌습니다.

아소탄광은 전 총리였던 아소다로 집안이 운영하는 탄광으로
"창씨개명은 조선인이 원했다", "위안부결의는 조작이다"라는
망언들을 쏟아내기도 했습니다.

인적 드문, 주택가 공터에 자리잡은 덕향추모비
찾는 사람이 없는지, 잡초가 무성하게 자랐습니다.
외로운 추모비 앞에서 향도 피우고 한국에서 가져온 소주도 한잔 올렸습니다.
지금이라도 편히 쉬셨으면 하는 마음...
이름도 남기지 못하고 돌아가셨지만, 강제징용의 역사를 잊지 않겠다는 다짐도 해봅니다.  



세번째 장소는 보타야마를 지나, 타가와지역의 [한국인징용희생자위령비]로 갔습니다.
이곳은 미쓰이 타가와 탄광이 있던 곳으로 폐광한 후 석탄역사박물관을 만들었고,
가장 높은 곳에 한국인 강제징용자 위령비를 세웠습니다.
생전에 가장 낮은 곳에서 힘겹게 살았지만,
죽어서만은 가장 높은 곳에 영혼을 쉬도록 한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석탄역사박물관은, 조선인 강제징용, 강제노동의 역사를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저 높은 곳에 세워진, 위령비가 당시의 아픔을 말해주고 있을 뿐입니다.



지쿠호지역은, 탄광이 밀집되어 있던 곳으로 큐슈 강제징용 역사의 아픔을 잘 보여줍니다.
그중에서, 마지막으로 방문했던 휴가묘지에서 우리는 모두 할말을 잃었습니다.

보타이시(쓸모없는 돌)로 겨우 이곳이 묘지였다는 표식만 되어있는
조선인 무연고묘인 휴가묘지

집에서 기르던 개 고양이를 기억하는 묘비까지도 세우는 이곳에서!
조선인의 묘는 작은 돌들로 표시되어 단지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이곳을 아는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만 그 위치가 전해져 오는 곳이었습니다.
묘역표시인지, 그냥 돌인지 구분하기도 힘든 휴가묘역에서
실수로 돌을 밟기라도 할까봐 조심조심 걸으며,
배동록 선생님께서는 강제노역의 상황을 [신세타령]이라는 곡조로 증언해주셨습니다.

강제노역의 처참함과 고달픔, 배고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한 신세타령은
당시의 상황을 생생히 들려줬습니다.
듣는것만으로도 아픔이 느껴지고, 상상할 수 없는 고통에 모두가 숙연해졌습니다.  



새벽부터 시작한 첫날의 평화여행은 휴가묘지를 마지막으로 마무리 하였습니다.
가만히 서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던 그런 더운날,
저 한복을 입고 잊혀질지 모르는 역사를 얼마나 알리고 다니셨을까요?
낡아진 배동록 선생님의 한복 바짓단을 보니, 더워도 덥다고 할 수 없었습니다.



여행 두번째날은 나가사키로 이동하였습니다.
1945년 나가사키에 원폭이 떨어진 8월 9일!
조선인위령제는 나가사키 평화공원 '조선인위령비'앞에서 7시30분에 있어서
그 시간에 맞춰서 도착했습니다.

일본 남쪽의 가장 큰 항구도시 나가사키는
2차대전 당시 군수품, 선박, 무기등 전쟁물자를 생산하는 도시로, 두번째 피폭도시입니다.  
물론 이곳에는 많은 조선인들이 강제노역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1차 피폭이 되었고,
피폭된 이후 이곳에서 사고처리까지 하게 되어 2차 피폭까지 입게되었습니다.
일본은 원자폭탄의 유일한 피폭국이 일본이라고 하지만,
그 당시 피폭된 많은 수의 조선인들도 있었습니다.
재일조선인 피폭자의 인권을 지원하는 시민단체, 그리고 피폭자들이
이른 시간부터 많이 모였습니다. 정작 한국인들이 별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우리들은, 계단 한켠에 자리잡고 반핵평화에 대한 기원
그리고 조선인 피폭자들을 추모하는 마음, 그들을 잊지 않겠다는 마음을 손피켓에 담았습니다.



추모제 이후, 피폭도시 나가사키를 알기위한 필드워크가 시작되었습니다.
모리구치 선생님과 함께 나가사키 평화공원, 폭심지와 주변, 우라카미 성당 등을 답사했습니다.
모리구치 선생님은 고등학교 교사출신으로 은퇴 후 일본의 전쟁에 대한 반성과 책임을 요구하는
일본시민모임에서 활동을 하고있는 자원활동가십니다.







원자폭탄이 떨어졌을때의 상황과 복구된 지금의 모습을 모리구치 선생님의 꼼꼼한 해설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나가사키 형무소가 있던 평화공원 주변을 돌아보며,
피폭당시 떨어져나간 우라카미 천주당의 석탑, 형무소의 돌담의 흔적, 반공호 등등
70년전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현장을 직접 둘어보았습니다.

자료가 가득 든 무거운 가방을 메고, 따가운 뙤약볓 속에서
나가사키의 고통과 아픔, 일본의 씻을 수 없는 전쟁의 책임을 이야기 하시는
리구치 선생님 앞에서 모두가 숙연해졌습니다.  
더욱이 70세가 넘으신 모리구치 선생님이 피폭자였다는 사실에 우리는 잠시 할말을 잃었습니다.
본인이 전쟁의 피해자이기때문에, 더욱 생생한 증언을 할 수 있고.
그렇기때문에 일본의 전쟁 책임에 대한 역사적 사실과 비판에 더욱 울림이 있었습니다.




다음 장소는 스미요시터널입니다.
아직도 터널 위로는 도로가 놓여있어 이곳에 이런 터널이 있었을까
상상하기 힘든 곳에 터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일본 비밀 터널공장으로 미쓰비시 병기 스미요시 터널공장이었습니다.
이곳 역시 조선인들의 강제 노역을 통해 침략전쟁의 병기를 만들던 곳입니다.
처음엔 시원한 바람이 나와서 좋아했는데, 이곳의 용도를 알고 나니 오히려 서늘해졌습니다.



나가사키를 둘러보며 느꼈던 것중 하나,
일본은 원폭도시를 통해 전쟁 피해자의 모습만 보여줍니다.
전쟁가해국으로써의 책임과 반성은 나가사키 역사관에서도,
또 평화의 공원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유일하게 일본의 가해책임과 보상문제에 초점을 다룬 자료관이 있었습니다.
1995년 오카마사하루 목사의 뜻을 이어받아 만들어진
[오카마사하루 기념 나가사키 평화자료관]입니다.
뜻을 같이 하는 시민들에 의해 운영되는 이 기념관은
원폭의 참상을 초래한 원인이 극도의 잔학함을 만든 일본의 아시아 침략에 있다는 사실과
일본의 무책임한 태도를 알리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자료관입니다.
이곳에서 강제징용당시의 탄광 갱도의 모형, 당시의 피해자들의 참상등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빡빡한 일정이 모두 이렇게 진지했던것만은 아닙니다.

개항도시인 나가사키의 데지마지역에서 항구도 걸어보고,
약간의 여유도 느끼며 하루를 마무리하였습니다.


세번째 아침은 처음으로 호텔조식을 먹었습니다.
새벽비행기, 새벽출발 등으로 매번 간단하게 빵이나, 삼각김밥으로 아침을 해결했는데,
모처럼 호텔조식을 먹어보았습니다. (물론 처음이자 마지막!)

제대로 된 아침을 먹고 가야할 장소는 다카시마(高島) 입니다.
강제징용으로 끌려온 조선인과 전쟁포로들이 목숨을 걸고 강제노역에 시달렸던 곳이고,
군수품 생산과 수송등으로 재벌이 된 미쓰비시중공업이 있는 곳입니다.
다카시마는 하시마와 함께 이번 '메이지근대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이후
수많은 관광객이 찾아오는 곳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가는 길 곳곳에 [근대문화유산 세계문화유산등재]라는 현수막이 붙어 있었습니다.
이번에 등재된 세계문화유산중 일부는 강제징용의 현장임에도,
이런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인 공간이 어떻게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훼리를 타고 도착하여 기무라 선생님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한국어를 공부하셨다는 기무라 선생님은 한국어로 해설을 해주셨는데,
이분도 교사출신으로 모리구치 선생님과 같은 자원활동가이십니다.

우리가 갈 장소는 나가사키에서 강제노동으로 돌아가신 조선인 무연고 묘지인 공양탑입니다.
가는길에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우물을 만나고
그 바로 옆에 방치된 수직갱도도 눈에 보였습니다.
또 이제는 관광상품이 되버린 강제노역의 지옥섬 쿤칸지마(군함도, 하지마)도
멀찍이서 바라보았습니다. (한수산씨의 [까마귀]라는 소설에 보면 이 쿤칸지마가 무대입니다.)

군칸지마는 1년전에 예약을 해도 입도가 쉽지 않다는 관광지가 되어버렸습니다.
우리에겐 아픔의 공간인데, 일본인들에겐 근대유산(?)의 공간이 되버렸습니다.
각자의 기억이 이렇게 다를수가 있을까요?



조선인 위령비가 있는 공양탑을 찾아가는 길은 쉽지는 않았습니다.

숲속으로 들어가 낫으로 길을 만들어가며 찾아간 공양묘 주변은 한동안 인적이 없었던 것 처럼
주변에 풀들이 가득했었습니다.

각자 갖고 있는 장비들을 이용해서 주변 묘역을 정리하고,
각자 갖고 있던 음식들을 조금씩 내어서 제물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먼곳에서라도 편히 쉬시라며 모두가 한마음으로 제를 올렸습니다.
일본의 오봉이 얼마 안남은 날이라, 마치 조상님들께 차례를 지내듯
모두가 절을 하고, 이제라도 편히 쉴 수 있기를, 돌아가신 분들의 평안을 기원하였습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시작한 [고향의 봄] 노래는 그곳에 있는 모든이의 어깨를 들썩거릴만큼
눈물지게 했습니다.  



다카시마 공양묘를 나와 주변의 납골당과 다카시마 신사를 방문했습니다.

다카시마 신사의 위령비에는 어느순간 조선인의 이름이 빠졌다는 말씀을 들으니
죽어서도 차별받는게 너무 서러웠습니다.

다카시마를 나와 미쓰비시 조선소가 있는 곳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이곳에서는 또 얼마나 많은 이름없는 조선인들과 전쟁포로들이 목숨을 잃었을까요?
그리고 2차대전후 일본은 군수사업으로 재벌이 된 기업을 해체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미쓰비시는 주요산업을 갖고 있는 어마어마한 기업입니다.
조선소 앞의 아리랑 고개를 바라보면서 함께 해주셨던 기무라 선생님과 이별을 하였습니다.

어제의 모리구치선생님, 오카사마하루에서 만난 일본인들 그리고 기무라 선생님을 만나고 나니,
보통의 일본은 전쟁에 대해 무책임하다는 생각이었으나,
이번 여행에서 만난 일본인들을 통해 우리가 잠시 잊고 있었던 아픈 역사를
잊지 않고 기억해준 것이 너무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한일관계를 평화적으로 풀어가는데는 이런 일본의 시민들, 그리고 우리와 같은
시민들의 힘이 중요하다는것도 다시한번 느꼈습니다.



이렇게 3일째의 답사는 마무리하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참가자 교류회를 가졌습니다.
여행의 기억 그리고 각자의 이야기가 더해져 진솔한 시간이었습니다.  
의외로 우리 가까이에 강제징용의 피해자들이 많았다는것과
이 아픔의 역사가 과거가 아닌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것을 다시 한번 느끼는 시간이었습니다.
또 각각 활동하는 공간은 다르더라도, 역사를 해설하는 자원활동가로써
한국에 돌아가서 이 아픈 역사를 많은 시민들에게 알리고, 잊지 않도록 해야 겠다는 이야기 등등
일본 평화여행을 통해 마음은 분노와 안타까움, 고마움으로 요동쳤지만,
적어도 평화가 왜 필요한지는 몸으로 눈으로 가슴으로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8월 12일일 마지막날은 기타큐슈지역으로 갔습니다.

1901년 만들어진 야하타제철소, 뜨거운 용광로에 피땀을 흘렸을 조선인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경제의 큰 축으로 자리잡은 미쓰비시, 미쓰이, 스미토모 등등의  일본의 기업들 ..
그 누구도 당시 조선인의 노역에 대해선 책임지려 하지 않습니다.
그나마 최근 한국법원 판결에서 일본제철이 조선인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 판결을 내리긴 했지만,
많은 일본기업은 65년 한일조약을 근거로 배상책임을 지려들지 않습니다.
65년 졸속으로 맺은 한일조약이 원망스럽기도 합니다.

강제징용으로 많은 조선인들이 머물렀던 이곳에 학교가 만들어졌습니다.
후꾸오카 조선학교, 언덕배기 질척한 곳을 직접 일구어 만들었던 '우리학교'입니다.
일본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해 비싼 학비를 내야 하는 현실이지만, '우리학교'이기에 모두 감내하고 있었습니다.


이어서 관몬터널을 지나 혼슈에 있는 시모노세끼로 넘어갑니다.
복어그림이 크게 그려진 칸몬터널을 뚫을때 조선인들이 많이 희생되었다고 합니다.
저 터널을 지나 일본에서 제일 먼저 조선학교가 만들어졌다는 시모노세끼 조선학교를 둘러보았습니다.
조선학교를 지나 만난 곳은 지금은 오오츠보라고 하는 똥굴마을입니다.
지금은 모두 사라졌지만, 이곳에는 분뇨처리장, 화장터 등등 혐오시설물들이 많이 들어서 있어서
가장 힘없는 사람들이 모여살던 곳이었고, 그러다보니, 조선인들이 많이 모여살던 곳이었습니다.
곳곳에 조선식 문패라던가 당시의 배수시설의 흔적을 만날수 있었습니다.
40년째 이곳에 거주하신다는 엄선생님과의 만남을 뒤로 하고
마지막 장소인 시모노세끼 항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이곳은 대륙침략의 발판이었던 관부연락선이 닿는 곳으로
조선과 일본,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연결시키는 곳이었습니다.

이 항은 많은 군수물자도 실어날랐지만, 많은 조선인들도 이곳으로 실어날랐습니다.
시모노세끼는 관부연락선을 타고 제일먼저 도착하는 곳으로,
창고에 2~3일 감금되어 있다가 큐슈, 홋카이도 등으로 강제노동 현장으로 끌려가는 곳입니다.
얼마나 두려웠을까요? 얼마나 배고팠을까요? 얼마나 그리웠을까요?

일본 강제징용이 시작되는 출발점에서 이 평화여행을 마무리하였습니다.
시간은 흘렀고, 그 당시의 기억과 기록은 사라지고 있지만
우리들이 보고듣고느끼고 배웠던 것들은 다시 또렷해지고 있습니다.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3박4일동안 함께 해주신 배동록 선생님과
오랜 작별 인사 시간을 가졌습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건강하세요~



다시 관몬터널을 지나 후쿠오카 공항으로 갔습니다.

이제 서울로 갑니다. 내 소중한 가족있고, 내 소중한 사람들이 있는 서울로 갑니다.
가족을 만나러 갈 수 있음이 이리 큰 기쁨인줄 새삼 느낍니다.
그리고 지척에 가족을 두고도 못만났던 그때 그 사람들,
벗어나려고 해도 벗어날수 없었고, 죽으려 해도 죽음조차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
전쟁이 만들어낸 참혹한 현실이 70년 전 과거의 일만은 아니었습니다.
전쟁이 준 현실은 아직도 우리에게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일본의 아베총리는 전쟁을 모르는 세대가 더 많고 사과도 여러차례했으니
이젠 전쟁을 잊고 미래로 나아가자고 하면서도
유사시 전쟁도 할수 있는 법안 통과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과거의 일본의 모습을 통해 일본의 잔혹함을 직접 당한 역사이기에
이런 일본의 모습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습니다.

이번 평화여행을 통해,
아픈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아픈역사라도 기억하고 잊지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역사를 해설하는 자원활동가로서 이런 역할을 우리가 해야겠다는 생각도 함께 들었습니다.
최근 몇년간의 평화여행중 가장 힘든 여정이었지만, 가장 오래도록 가슴에 남을 여행이었습니다.
이런 여행을 만들 수 있도록 일본현지에서 강사섭외, 사전답사 등등
큰 도움을 주신 김향월, 김붕앙 선생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통역을 해주신 이기회 선생님도 고맙습니다.
 
그리고 배동록 선생님, 모리구치 선생님, 기무라 선생님!
서울KYC에서 평화여행 왔다며 많은 응원과 격려를 해주셨던 일본 현지의 동포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 인사 전합니다.



*사진제공 : 양승수, 신미정, 정연하, 이명난, 조인숙

Creative Commons Lice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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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공동성명 및 관계개선에 따른 사드배치 효과의 변화 ‘사드보복’의 환상과 사라지는 사드배치의 효과 최근 중국과 한국의 공동성명이 발표되면서 사드에도 불구하고 한·중 간 관계가 서로의 긴밀성을 더해가면서 협력관계를 강화해 나가고 있다. 이는 ‘사드보복’이라는 희망 섞인 상상에도 불구하고 모니터링을 통해 밝혀진 바에 의하면 2017년도 한·중 간 무역량이 늘어나고 있었다는 것과 통화스왑의 재계약을 통해 보다 선명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변화와 흐름들은 지난 번 올린 페이스북의 중국과 관련된 글에서도 그러하지만 성주투쟁위 내부에서는 어느 정도 공유되고 있는 지점들이기도 하다. 이런 흐름이 만들어지는 것은 미국중심의 경제블록과 중국 중심의 경제블록이 대립·경쟁하면서 교역량에서 세계 11위 권인 한국에 대해 미국은 다른 경제블록으로 넘어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 중국은 자신들의 경제적 영향권으로 견인하기 위한 전략들과 관계하고 있기 때문이며 이는 또한 미·중 간 세계통화를 둘러싼 주도권 경쟁의 문제가 얽혀있기 때문이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분명 이런 흐름들은 지금 우리들이 벌이고 있는 사드철회투쟁과 어떤 관계를 형성하고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동안 분명치 않던 한국과 중국 간의 관계의 방향이 조금씩 선명해 지면서 역으로 그 선명함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것은 지금까지 매우 또렷하게 동북아의 긴장을 만들어내던 사드의 배치효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드가 형성시키던 동북아의 긴장관계, 전쟁의 위험 등이 한·중 간 관계설정을 통해 상당부분 소멸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관계의 설정은 중국의 대 한반도 전략으로 보인다. 이는 박근혜 정부 초기 행보로 볼 때 당시 활발하게 진행되다가 어떤 요인에 의해 중지된 것으로 보이며 문재인 정부에서 다시 추진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그동안 사드를 통해 동북아와 한반도의 평화를 중심으로 투쟁해 오던 우리들에게도 동북아와 관련된 포괄적인 투쟁의 주요의제가 사라지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향후 중국과의 관계의 심화는 주한미군 주둔의 효과와 의미를 상실하게 만들 것이다. 그렇지만 주한미군의 철수가 생각처럼 한반도의 많은 문제들을 해결해 주지 않게 될 것이다. 이는 변화하는 세계자본주의의 관계 망으로 편입되고 포획되어 들어가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스스로를 향해있는 '기만' 일반적으로는 편하게 ‘기만적’이라는 수식어를 사용해서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가 다르지 않다는 점을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기만’은 우리들 스스로를 향해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즉 ‘투쟁’을 위해서 우리 스스로를 기만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는 사드투쟁의 전략적 의미를 유지하기 위해 문재인 정부가 이전의 정부와 다르지 않다고 주장해야 하고, 스스로도 그렇다고 고집하며 자기최면을 걸어야 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이솝우화의 ‘포도와 여우’의 이야기와 동일한 것일 뿐이다. 투쟁에서 평화와 같은 거대 담론과 의제가 사라지는 것은 거시적 투쟁을 하는 이들에게는 두려운 일이다. 권력의 성격에 대한 판단은 오로지 대중들의 몫이다. 그것은 옳다 그르다와 같은 범주의 문제가 아니라 대중들 스스로가 책임질 문제라는 의미이다. 많은 이들이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혼자만 그렇다고 생각하고 판단한다면 그것은 스스로의 고립된 판단기준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는 다른 이들이 가지지 못한 진리의 기준을 독점하고 그것에 의해 판단하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민주적 삶을 위한 예민한 감각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그것을 다른 이들과 동떨어진 진리에 대한 감각으로 이해해서는 곤란한 것이다. 이전의 정부는 전제군주적인 성격을 보여주었다. 강압적 방식으로 권력관계들을 유지시키려고 하였다. 결국 이런 것들이 사단이 나서 촛불집회가 일어난 것이고 탄핵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런 면에서 투쟁은 단순했다. 투쟁할 용기와 계기, 방식의 문제이기는 했지만 고도의 지능적인 판단이 요구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에 들어와서는 푸코가 말하던 ‘자율권력’과 같은 것들을 고민해야만 하는 지점에 맞닥트려 있다. 현상적 폭력과 강제는 사라지고 미시적 구조의 영역으로 포획되는 권력관계에 맞닥트리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또한 경제적으로는 중국과의 교역확대, 러시아와의 유라시아철도건설, 가스관공사, 북한과의 화해협력 등의 상황이 벌어지면서 자본주의가 가져다주는 문제들은 근본적으로 남아있으면서 ‘국가의 발전’과 같은 ‘희망찬 청사진’에 다른 문제들이 덮여버리는 사태가 발생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앞으로는 소수자의 문제들은 더욱 가려지고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게 될 것이다. 사드라는 주요고리의 소멸 사드가 만들어내고 있던 효과의 상실은 이것을 소위 ‘주요고리’로 하여 한반도의 모순을 해결하고자 했던 다양한 투쟁들의 근거 또한 사라졌음을 의미한다. 사드투쟁이 목적하던 동북아 긴장의 해소와 평화의 문제들은 중국과 한국정부의 전략적 대응과 변화를 통해 다른 의미들로 전환되어 버렸다. 강도의 손에 들려있던 망치가 이전의 세상을 망치로 부수고 창조하는 민주주의자의 손으로 까지 넘어간 것은 아니지만 경제적 이익을 누리려는 목수의 손으로 넘어간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공동성명에서 언급된 사드운용의 범위를 넘어갈 때, 미국의 압력에 의해 박근혜 정부와 같이 중국과의 관계 개선이 포기될 때 여전히 새로운 긴장형성의 문제들은 있지만 적어도 현재의 흐름을 뒤집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사드철회투쟁을 통한 세계평화와 같은 거대담론 투쟁의 의제가 소멸되고 있음은 분명해 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것들에 대한 우려와 걱정은 사드를 통해 한반도의 ‘주요모순’을 해결하려고 하던 통속적 맑스주의자들의 문제일 뿐이다. 즉 사드를 모순의 ‘주요고리’로 생각하던 이들에게 국한된 문제라는 점이다. 성주의 주민들에게는 여전히 사드가 가져온 삶의 문제와 안전, 건강의 문제가 남아있다. 그리고 사드에 인접한 이들에게 이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이다. 사드투쟁은 이제 밀양이나 청도의 송전탑투쟁과 같이 실질적 의미에서의 주요하게는 지역성을 통하여 모든 이들의 삶의 문제와 연결되게 되었다. 사라진 근거들을 가지고 거대의제를 담아낼 방법은 없다. 그렇게 진행하고자 한다면 고립과 친해지는 것을 배워야 할 것이다. 물론 이것은 지금까지 매우 친밀했던 것 이기는 할 것이다. 관성은 어느 정도 지속되겠지만 고립을 싫어하는 이들은 성주를 떠나갈 것이다. 하지만 우리들은 그들을 원망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본래 그런 자들이기 때문이다. 섭섭하다면 그것은 우리들의 오해일 뿐이다. 안타까운 것은 그들의 선한(?)목적이 많은 이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선함과 동일한 것으로 오해해 왔다는 점이다. 이제 ‘고리끼의 어머니’가 되어버린 ‘벌거벗은 인간’의 죽음을 목격해야 하는 시간 또한 다가오고 있다. 제국주의의 환상, MD체계 MD체계란 ‘기표(signifiant)’로서 의미를 방출한다. 즉 은행의 청원경찰이 입고 있는 제복의 의미이다. “지키고 있으니 침입하지 말라.”, “당신의 돈을 든든하게 지키고 있다.”는 신호를 방출하는 것이다. MD체계가 지키는 은행은 바로 월스트리트, 세계자본주의이다. 물론 이것은 라캉이 이야기하던 ‘기표의 물질성’이라는 의미로서의 힘을 가지고 있지만 기표외적 체계의 물리적 힘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체계들이 그 물질성을 통해 은행에 총을 들고 들어오는 강도는 막을지 모르겠지만 옆에 개업한 다른 은행의 영업능력과 전략을 차단하는 데는 한계를 가진다. 물론 지금까지 유엔의 동맹체계, 미국의 군사시스템이 그동안 세계자본주의를 위해 월스트리트의 안전을 지켜온 것은 분명하다. 물리력에 기반 한 침략과 수탈, 파괴를 통한 자기파괴의 자본주의, 즉 제국주의(imperialism)시대는 2차 세계대전의 종결과 함께 유엔체제로 상징되는 제국(empire)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이 체제는 자본주의 간의 전쟁을 통한 경쟁보다는 타협과 협상을 통한 이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이전의 제국주의와는 분명히 다르다. 물론 이 체제도 수많은 전쟁을 행하였다. 하지만 대전의 종결 이후 전쟁은 자본주의와 그 외부 사이에서 일어났다. 2차 대전 이후 일어난 전쟁은 거의 월남, 중동과 같은 비자본주의 체제와의 전쟁이며 자본주의 내부의 전쟁이 사라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안토니오 네그리나 마이클 하트의 생각처럼 ‘제국’의 내부로 세계가 자본주의로 모두 통합된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여기에는 ‘제국’의 외부도 분명히 존재하며 한 개의 덩어리라고 하기 보다는 몇 개의 블록으로 구획되어져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 중 하나의 자본주의 블록으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 중심의 아시아 경제블록을 MD체계와 같은 방식으로 대응한다는 것은 효과적이지도 않을 뿐 아니라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자신들의 방어력을 신뢰하도록 하고 강력한 물리력의 소유에 대한 신호는 변화하는 ‘제국’의 시대에는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한국이 미국의 충실한 ‘식민지’라면 지금의 체제를 벗어날 방법은 없겠지만 한국의 기업과 금융들이 월가의 고객들이라면 이제 그들은 좀 더 친절하고 많은 이익을 만들어주는 서비스를 통해 고객을 끌어들여야만 할 것이다. 제국주의의 존재에 대한 환상은 국가에게도 있지만 투쟁의 주체인 우리들에게도 존재한다. 거시적 투쟁에서 미시적 투쟁과 삶으로 세상은 미시적 권력관계들이 그물망처럼 형성된 자본주의의 포획시스템을 통해 지배된다. 이전처럼 하나의 주요고리를 잡아 올리면 모든 문제가 풀려나가는 일은 없다. 어쩌면 그런 것은 이전에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사드를 통해 동북아의 긴장을 형성시키고자 했던 미국의 전략은 무력화되고 있다. 사드의 배치는 박근혜 정부와 미국과 관계 속에 놓이게 되면서 분명 전쟁의 위기를 만드는 요소로 자리 잡았지만 그것이 한·중 간 관계의 변화에 따라 같이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시기, 그리고 일정정도 관성이 유지되는 시점에서 사드가 평화의 의제를 던졌고 배치에 반대하는 투쟁은 반전(反戰)의 의미를 가졌다. 하지만 이제 그런 의미들이 소멸되고 있는 것이다. 거시적 문제에서 미시적인 것들로 전환된 것이다. 오히려 전자파문제나 미군부대에 의한 주민피해, 이질적인 것들의 침입에 의한 불안 등이 주요한 문제들이 되어버렸다. 보이지 않는 것들, 들리지 않는 것들, 소리 없는 것들을 찾아내고 그것들과 연대하는 것이 중요하다. 소수자들의 연대, 미시적인 것들 사이의 접속이 요구된다고 할 것이다. 그것은 다양한 세상의 투쟁에 귀를 기울이며 작은 소리를 들어내는 능력을 요구하는 것들이다. 이미 우리들은 오랜 투쟁을 통해 이런 감각들을 만들어 왔다. 우리들의 투쟁 또한 다른 이들의 기억에서 조금씩 사라져 가면서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게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소리를 듣고 보는 이들이 또한 있다. 또한 그리고 우리들은 소리를 변환시키고 양태를 바꾸는 능력을 가져야만 한다. 그렇게 다양하게 성주의 토양 속으로 주민들의 삶의 영역 안으로 섞여 들어가야 한다. 평화와 반전의 거시적인 구호들을 앞세워 우리들은 성주주민들의 생활과 삶 속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외면해 온 것들도 있을 것이다. 또한 우리들의 거대한 의제를 통해 모든 투쟁을 사드투쟁 내부로 포획하려는 알지 못할 행위들 또한 있었을 것이다. 이제는 작고 소소한 많은 것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우리의 투쟁을 전개해야 할 지점에 이른 것 같다. 우리의 투쟁이 작아지면서 다른 투쟁과 동등함을 느껴가는 겸손함을 가질 수 있는 시점이 오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가 작아지고 왜소해 지는 것이 아니라 동동한 연대 속에서 더 많은 것들과 관계를 이루는 신체가 되어가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더욱 확장되는 투쟁의 힘을 의미한다. ‘투쟁의 전략적 전환’과 같은 거창한 말들을 사용하는 것도 어울리지 않는다. 그냥 변화하고 있는 상황을 진솔하게 들여다보는 것, 그리고 그로부터 투쟁을 생각하고, 준비하고, 만들어 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세상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 지를 들여다보는 것으로 출발하자.
월, 2017/11/06-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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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전쟁반대, 사드 철거 촉구하는 3보1배에 나서 http://worknworld.kctu.org/news/articleView.html?idxno=246719

월, 2017/11/06-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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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방한 반대, 전쟁반대·평화협정 체결 촉구" 시민사회단체 대표 50여명 모여 기자회견


시민사회단체 대표 50여명 모여 기자회견
월, 2017/11/06-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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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삼 씨의 49재를 앞두고 광화문 일대에서 한반도 평화와 사드 철회를 염원하는 '3보1배 평화기도회'를 했습니다. 내일은 고 조영삼 씨 49재를 지내고, 5대 종단 추모기도회가 열립니다. #3보1배_평화기도 #사드가고_평화오라
화, 2017/11/07-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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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그 날 (118) 미 국방부 피터 쿡 대변인이 “한반도 사드배치는 한국 정부와 계속 긴밀하게 협의하는 사안”이라며 “가능한 한 빨리 사드를 배치하길 원한다.”고 했다. 이것은 강대국의 협박이다. 청년들이 제작한 난로 4개를 시험 가동했다. 가스통을 사서 중간을 절단하고 연기가 잘 나가도록 막이를 대고 용접했다. 그리고 가스통 한쪽은 장작이 들어갈 구멍을 뚫고, 다른 한쪽은 연기가 나갈 구멍을 뚫었다. 뚜껑을 만들고, 고정시킬 네 개의 받침대를 용접하고, 연통을 세웠다. 재료비만 들여 청년들이 직접 만든 것이다. 이것이 성주촛불의 평화난로다. 충남 부여에서 신부와 신도들이 방문했다. 가수 임정득이 ‘불나비’를 불렀다.

화, 2017/11/07-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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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가 사드 부지를 현금 매입이 아닌 교환 방식으로 마련하며 세금 76억 9천만 원이 추가로 지출됐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화, 2017/11/07-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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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17/11/07-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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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촛불 473회차

화, 2017/11/07-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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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그 날 (119) 바람막이도 설치하고, 평화난로를 12개나 만들어 설치했다. 성주촛불은 월동준비를 끝냈다. 청년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 최고다. 이순신 장군에게는 12척의 배가 있었지만, 성주촛불에게는 12개의 평화난로가 있다. 조선일보가 검찰의 우병우 황제조사 장면을 촬영한 것을 보면, 조선일보와 tv조선은 우병우를 비롯한 친박세력을 제거하고 새로운 보수의 판을 짜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 같다. 친박세력이 강하게 반발할 것이고, 수구보수의 내부 분열이 시작될 것이다. 박근혜 퇴진과 사드배치 결사반대를 외치며 거리행진을 한 후 집회를 했다. 바레인에서 온 김정희가 광화문에서 20만 명이 모여 집회를 했는데 끝나고 쓰레기가 하나도 없었다며 대단하다고 발언했다.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제45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수, 2017/11/08- 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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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트럼프 시위에 다시 등장한 차벽, 촛불 이후 처음입니다.
수, 2017/11/08-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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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에서 정치개혁 목소리는 높았으나 멀리 울리지 않은 이유는 무능한 자들이 민주당을 시민으로부터 사수하였기 때문이다. 지방정치는 누군가의 아바타가 아니라 작더라도 주인된 모습을 드러내어야한다. 11월 10일 경북의 민주당원들은 늦가을 서리내린 처음의 길을 나서려한다. 새벽은 싸늘하겠지만. 함께하자. 당원동지 할일은 쌓여가는데, 한군데 고장이 나거나 시스템이 얽혀 눈앞이 캄캄해질때가 있다. 이때 우리는 사람을 부른다. 그리곤 그 사람에 대하여 깜짝 놀라게된다. 수수한 작업복으로 와서 겸손하게 상황을 정리하고 돌아서는 모습. 영웅도 아니고 구세주도 아닌 바로 이시대. 우리가 불러야할 사람. 바로 우리당원들이다..

수, 2017/11/08-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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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반대#김천촛불#사드철회#평화협정 - '김천촛불 365일 너머' 책자 출판 안내 지나 온 김천 촛불의 발자취를 돌아보고 다시 앞으로 나아갈 김천 촛불의 힘찬 발걸음을 응원하고자 김천 촛불 이야기를 담은 '김천촛불 365일 너머'를 출판하게 되었습니다. 책자는 김천 평화광장 촛불집회 안내천막과 전화 주문으로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판매 금액은 2만원이며, 판매 수익금은 사드반대 투쟁 후원금으로 사용됩니다. 책 구매로 김천촛불을 응원해주시고, 이후 김천촛불의 발자취에 함께해 주십시오!!

수, 2017/11/08-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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