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콘텐츠로 건너뛰기

[동향1] 사회복지부문 전문가주의의 성찰

지역

[동향1] 사회복지부문 전문가주의의 성찰

익명 (미확인) | 금, 2015/07/10- 18:06

사회복지부문 전문가주의의 성찰

 

강혜규 l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

 

논의의 배경

 

  전문가주의(professionalism)는 ‘직업과 그 기능, 전문 지식에 강한 자부심과 탐구심을 가지며 사회적 책임을 자각하는 일’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전제할 때, 전문직의 추구를 통해 결과하고, 전문성과 전문직‧전문인력에 대한 인정과 존중이라는 순기능을 낳는다. 그러나 타 (전문)영역과의 경직적 배타성, 편협성이라는 역기능을 초래하기도 한다. 전문성은 서비스의 품질을 높이기 위하여 필요하고, 일과 인력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척도이지만, 그 일과 인력의 사회적 승인 및 보상과 연계된다는 점에서 직역이기주의를 위한 논의처럼 부정적 시선이 수반되기도 한다.

 

  한국의 사회복지 전문가주의는 ‘사회복지사’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왔다. “20세기 초 사회사업가를 전문직화하려 했던 미국에서조차 전문직과 전문성에 대한 논의는 지금까지 계속되고, 한국에서도 사회복지사 직종의 전문직화 프로젝트가 진행되어 사회복지실천 영역에서 일차적인 전문직으로서의 위상 정립을 위한 노력이 이루어져왔으며, 사회복지사의 교육, 자격, 권한 강화를 위한 다방면의 조치들이 줄곧 시도되었다(김영종, 2014: 378)”.

 

 전문가주의를 둘러싼 문제의식은 점차 다양하게 부각되고 있다. 그 내용을 요약해보자면: 첫째, 제도 중심의 사회복지 공급은 ‘사회복지사’라는 전문직의 역할과 기능을 강조하고, 변화하는 사회복지(서비스) 공급 환경에서는 전문직을 둘러싼 다양한 양상이 발생하고 있어, 사회복지사 전문성의 실체와 범위, 타 전문직과의 관계 등에 대한 근본적인 논의가 필요하다(이는 이 글을 작성하게 된 한국사회복지학회 춘계학술대회 기획주제 발표의 미션이었다). 둘째, 한국 사회복지부문의 전문가주의는 매우 미약하다. 즉 전문직으로서 사회복지사 집단의 사회적 입지, 보상은 한층 강화되어야 한다. 셋째, 수요자중심의 서비스 패러다임이 강조됨에 따라 소비자주의적 역량 강화를 지향하는 담론, 전문가주의의 공급자중심적 속성을 거부하고 이용자중심의 자립생활을 지향하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논의들이다.

 

  전문가주의의 양태는 인력의 직무 수행(전문역량의 확보, 역량 발휘 여건), 직무에 상응하는 보상(사회적 인정)의 상호 영향을 통해 사회복지 실천 현장에서 체감되는 서비스 품질의 다차원적 속성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학술적 논의를 넘어서는 실천적 관점의 검토가 필요하다. 사회복지를 둘러싼 변화와 논쟁이 지속되고 있는 우리의 상황을 반영하여, 현실적합성이 높고 미래지향성을 담보한 전문가주의의 성찰이 요청되는 것이다.

 

사회복지 제도와 실천 여건: 변화의 맥락

 

  한국 사회복지실천 현장의 문제는 매우 복합적이다. 이는 사회복지의 역사적 발전과정과 정책 추진, 제도화의 지향과 구조(운영주체의 분포), 인력 운용(적정 규모 및 역량 확보)의 요소, 서비스업무의 절차 규정, 지원시스템, 조직․인력․업무의 관계 문제, 관계자의 인식, 문화, 관행, 소통구조, 재정방식을 비롯한 제도적 여건이 함께 작용하기 때문이다.

 

  한국사회는 유동적 근대사회(복지국가의 쇠퇴, 개인화와 관계의 불안정성 증가, 가치의 다원화, 생산보다 소비 중시)의 문제들과 함께 전근대성의 폐해가 잔존하면서 사회적 위험의 속성을 더 악화시키는 문제를 동시에 안고 있다. 급속한 근대화가 진행되면서 전근대적 속성을 충분히 해체시키지 못하여, 비합리적 결정구조, 지역과 혈연등의 연고주의 등이 여전히 잔존하고 있는 것이다(최명민, 2014: 114~115).

 

사회복지서비스 공급체계의 다중 구조와 분절성

  민간 복지전달체계를 중심으로 한 사회복지사업의 운영은 영역별, 서비스유형별 분절현상이 뚜렷하며 ‘다중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우리의 사회서비스 제도는 제도 형성의 시기, 재정지원방식의 변화를 감안하여 다음과 같이 다섯가지 유형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이들은 다음 표와 같이 각각 복지서비스, 사회서비스, 보험 등 차별적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사회서비스 제도의 설계 과정에서, 재정지원방식 등 제도 운영 원리에 따라 ‘분절적인 추진체계’가 마련되어, 사회서비스 욕구를 중심으로 제도가 수렴되거나 통합적인 서비스 제공체계가 조성되는 데 한계로 작용하기도 한다. 또한 바우처사업을 위시한 사회서비스 정책이 추진되면서, 새로운 서비스는 사회서비스이고 기존 서비스는 (이질적이고 구태의연한) 복지서비스로 차별적 인식이 확산되었으며, 이는 민간 복지전달체계의 혼돈을 가중시키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사회서비스’임에도 불구하고 차별적으로 인식되고 있는 서비스제도들은 제도 형성과정과 사업운영 특성에 따라 이질적인 문제와 정책적 쟁점이 나타나고 있어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 전통적 입소형 시설사업의 경우 일방적인 공급자지원의 전형으로서, 입소자 인권, 운영자 비리문제 빈발해 왔으며,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을 통해 개선 기반을 마련해왔으나, 실제 서비스 현장에서의 근본적인 변화 방안 모색이 요청되고 있다. 둘째, 지역사회 기반의 이용 시설‧프로그램운영 유형에서는 지방이양된 시설운영비 지원방식과 각종 이용자지원사업의 병행으로 공급체계의 비효율, 사업 중복 문제가 제기되고, 비영리의 운영원칙과 지역사회의 참여-공동체에 기반한 서비스 정신이 훼손되는 시장원리의 서비스 병행에 따른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셋째, 이용자 지원 사업으로서 개별 제도화된 사회서비스사업, 돌봄 사회서비스 바우처사업의 경우, 서비스 품질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과 고용의 안정성 문제가 상존하고, 이용자와 공급자간 담합등 공급자와 이용자의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고 있으며, 공급자 규제가 약화됨에 따라 서비스 이용의 형평성(공급기관의 creaming), 서비스 품질관리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넷째, 유관부문 서비스사업의 경우 중앙부처에 따른 대상별, 기능별 사업이 분절적으로 운영됨에 따라, 동일 대상-욕구에 대하여 유사한 서비스제도 도입, 중복운영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이와 같이 사회서비스 유형, 특성에 따라 사회복지 실천 현장에는 다차원의 해법을 모색해야 할 다양한 문제가 공존하고 있다.

 

이용자지원제도 도입으로 인한 문제양상의 질적 변화

  2000년대 중반 이후 바우처사업,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도입 등을 통한 이용자지원 제도의 대거 도입은 한국의 사회복지실천 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 양상의 질적 변화를 초래하였다.

 

  이전과 다른 방식의 사회서비스 제도가 추진되면서 해소되지 않은 기존 과제가 여전히 존재하며, 새로운 쟁점도 제기되고 있다.

 

  첫째, 주요 욕구에 대응하는 서비스를 어떻게 대처하고 제도화 할 것인가가 그간의 과제였다면, 이제는 돌봄영역의 유사제도가 다수 도입됨으로써, 제도간의 기능조정, 역할 분담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고민하게 되었으며, 이전의 생활시설중심의 서비스에서는 시설입소자의 적절한 보호가 중점 과제였다면, 다양한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 이용자 편의성, 통합적 제공시스템 마련, 수요자의 주도성, 권익을 존중하는 제도적 요소의 반영이 주요한 과제가 되었다.

 

  둘째, 사회서비스 제도 운영에 시장원리가 반영되고, 이용자의 자부담, 추가구매를 가능하게 한 바우처사업과 함께, 서비스사업의 지방이양과 새로운 국고지원제도 도입이 병행되었다. 다수의 개인, 민간사업자의 진입으로, 사회서비스 제공기관의 ‘사회적’서비스에 대한 책임성이 저하되었으며, 공급자, 이용자의 도덕적 해이 사례가 새로운 쟁점이 되고 있다. 이전에는 제도 확대를 위한 재정(국고지원) 확대가 주요한 정책적 관심사였다면, 이제는 다각화된 재정 원천으로 인한 관리체계의 문제 즉, 사회서비스사업에 대한 지자체 책임성 저하, 기존 비영리 복지기관의 수익사업 치중으로 인한 기능 변모 등이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셋째, 우리 사회의 고용안정성 문제는 보편적으로 약화되는 상황에서 돌봄 사회서비스 제도가 대거 도입되며 사회복지분야의 저임금 불안정 돌봄일자리 확대에 기여하였다. 또한 사업자간 출혈 경쟁으로 인한 서비스 품질 저하, 소규모‧영세사업자의 확대 등 사업운영의 지속성 확보 방안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서비스 품질 향상 방안과 추진체계 마련이 현안 정책과제가 되고 있다.

 

  넷째, 지금까지 공공부조-복지서비스의 행정체계 개선이 정책적 초점이었다면, 지역사회 단위 서비스 전달체계의 통합성 제고, 수요자 욕구중심의 통합적 시스템 마련이 현안 과제가 되었다.

 

사회서비스의 더딘 제도화와 민간전달체계의 과부하

  이와 같은 변화 과정에서 포착되는 한국적 특성은 사회서비스의 더딘 ‘제도화’로 인하여, (제도화 이전) 서비스 공급의 상당한 역할을 민간 시설‧기관이 감당하도록 해왔고, 이는 제도적 부실의 문제를 그대로 전달체계의 문제로 인식하게 하는 결과를 나았다는 점이다. 공공의 책임성 측면에서의 검토가 필요하다.

 

  기본적인 사회서비스 제도 기반이 없는 상태에서 ‘어떤 대상에게, 어떤 서비스를 어느 정도 제공할 것인가’가 자원 동원의 부담과 함께 오롯이 민간 시설‧기관의 역할로 남겨져 왔고, 이는 부실한 서비스 문제에서 정부와 지자체의 책임은 가볍게, 민간 전달체계의 부담은 과하게 인식하게 하는 주요한 원인이 되었다고 생각된다.

 

  한편,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장애인활동지원제도를 위시하여 특정 욕구에 체계적으로 대응할 틀을 갖추고 운영하는, 이른바 ‘사회서비스의 제도화’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는데, 이는 국가의 책임성, 형평성(대상자 내, 지역 간), 서비스의 지속성 및 일관성(표준화)은 향상된 반면, 사회복지시설‧기관의 자율성, 재량적 서비스 향상의 여건은 오히려 어려워지고 있다는 딜레마를 지닌다.

 

공공중심의 전달체계 개편

  2006년 지자체 주민생활지원 기능 강화를 시작으로 전국 시‧군‧구(읍‧면‧동) 중심의 복지행정 기능 개편이 추진되었다. 2010년 사회복지통합관리망의 개통, 2011년 지자체 복지담당공무원 증원, 2012년 희망복지지원단 운영을 통한 통합사례관리 추진, 2014년 동 복지기능강화 시범사업 추진 및 복지담당공무원 증원 결정까지 지자체 복지행정을 중심으로 한 공공의 복지행정 및 서비스 기능 강화가 최근 10년여 지속되었다.

 

  이에 따라 사회복지사 자격소지자를 채용하는 사회복지직 공무원은 2005년 2월 현원 7,100명에서 2014년 3월 현원 14,344명으로 2배 가량 증가했으며, 행정직등을 포함하는 전체 사회복지담당공무원(27,513명)의 절반을 넘어섰다. 향후 3년간 복지사각지대 발굴‧지원과 찾아가는 서비스 강화를 위하여 6천명 확충 추진이 예정된 바, 공공행정부문의 사회복지 전문직에 대한 수요는 크게 확대된 것이고, 이는 사회복지사의 전문성에 대한 조직적 신뢰가 향상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지자체 행정에서 사회복지직 공무원이 담당하는 업무가 자산조사 및 급여관리 행정에서, 클라이언트의 대면 상담 및 서비스연계지원, 사례관리 등의 공공서비스 영역으로 확대됨에 따른 전문직의 실질적인 수요로 볼 수 있다.

 

개정 사회보장기본법 이후 복지영역의 확장

  2013년부터 시행된 개정 사회보장기본법은 사회서비스의 개념 도입과 함께 보건, 고용, 교육, 주거, 문화, 환경까지 아우르는 영역 확장, 실질적인 정책수행 기반 확대를 촉진하고 있다. 정부가 사회보장사업으로 확인한 360개 사업 중 전통적인 사회복지사업으로 인식하는 보건복지부 소관사업은 140개(38.9%)였으며, 여성가족부(44개), 국가보훈처(37개), 고용노동부(36개), 교육부(21개) 등 21개 부처가 사회보장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국정과제에는 이와 관련한 전문인력의 신설 혹은 확충도 제시된 바 있는데, 문화복지전문인력, 주거복지사의 도입, 직업상담사, 학교 폭력전문 상담·치료인력의 확대 필요성도 제기되는등 사회복지 영역, 실천 현장의 확대는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2006년 사회적기업육성법 제정 이후 2012년 협동조합기본법이 제정되었고, 최근 사회적경제기본법 제정이 추진되고 있는데, 이 역시 사회복지실천 영역과 맞닿는 혹은 이미 사회서비스 공급 주체들을 포괄하는 기반으로서, 주목할 내용이다. 국내 사회적경제 규모는 사회적기업 1,165개(’14.9), 마을기업 1,119개(’13.12), 농어촌공동체회사 720개(’13.12), 자활기업 1,340개(’13.12), 협동조합 5,601개(’14.9) 등 총 1만여개가 존재하며, 지원 국가 총예산은 7,524억원으로 알려진다(이철선, 2015). 사회적기업의 상당수가 사회서비스의 제공 사업을 실시하고 있고, 자활기업, 사회적협동조합의 경우도 사회서비스를 주요 사업 영역으로 설정하고 있어, 사회적경제 방식의 실천 현장의 확대가 예상되고 있다.

 

사회복지 실천 패러다임의 변화와 전문성

  다음은 이와 같은 다중적인 사회서비스 공급 구조에서 요구되는 차별적인 전문성의 내용을 검토해보고자 하였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이들 서비스는 사업의 기반형성과 착수의 시기가 다르고, 각 영역의 성장과 변모도 상이하다.

 

  먼저 전통적 입소형 시설사업에서는 보호‧돌봄 서비스가 중심이 되면서, 취약한 클라이언트의 일상생활 유지와 자립능력 향상을 위한 기술이 주로 요구된다. 90년대부터는 지역사회 기반 이용시설이 확대되며, 지역사회 참여, 재활 및 자립지원, 자활 지원, 아동보육서비스의 활성화가 이루어져, 다양한 복지욕구에 대응하는 서비스 프로그램 개발‧운영 역량, 지역 복지의 수요 진단 및 자원 관리, 자활 지원등 고용-복지연계서비스의 역량이 요구되었다. 또한 보육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확대되었다. 2000년대 후반에는 재가 돌봄서비스의 제도화와 서비스 제공기관으로서의 진입이 개방되면서, 대인 돌봄서비스 기술(노인요양, 장애인 활동지원, 아동돌봄 등), 치료, 재활 등 전문서비스 기술을 중심으로 한 전문화가 정책적으로 주목되었다. 또한 유관부문의 복지서비스 확대, 사회적경제 주체의 사회서비스 공급이 진행되면서, 전문성에 대한 요구 영역도 확대되었다. 다양한 욕구의 포괄적 진단, 통합적 서비스 제공을 위한 서비스 설계, 자원동원‧연계 등 사례관리의 요구 증가, 분야별 서비스의 전문화 요구 증가(정신보건, 상담 등), 지역기반 사회서비스 공급을 위한 창업‧관리 기술, 지역 공동체 형성등의 지역복지 실천 역량 등이 이와 관련하여 이전보다 강화 필요성이 높은 전문 역량 및 직무영역으로 판단된다.

 

전문가주의의 과제

 

  지금까지 살펴 본 바와 같이, 급변하는 사회복지 실천의 제도적 환경으로 인하여 사회복지사를 중심으로 한 한국의 전문가주의는 불안의 요소들이 확대되고 있다.

 

  첫째, 사회복지실천 현장에서 사회복지사의 수는 전체 인력 중 약 1/3을 점하고 있으나, 점차 그 입지는 축소되고 있다. 이는 사회복지사 활용에 대한 법적 규제의 약화와 함께 사회복지영역의 확장, 사회복지사 이외의 인력 확대가 함께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라 판단된다.

 

  둘째, 변화하는 복지환경으로 인하여 전통적 전문가주의 ‘속성 모델’에 근거한 전문직 정의, 입증의 의미가 약화되고 있다. 선행연구들에서 분석‧예측한 바와 같이, 한국 복지실천 현장에서 시장기제와 소비자중심주의를 반영하는 사회서비스의 제도화가 추진되었으며, 이와 동반한 신공공관리의 기제들의 강화가 모색되고 있다. 또한 “한국사회의 거대구조인 시장경제의 맥락, 정부입법과 개입의 본질, 사회운동의 영향 등 사회복지실천 외적 요인에 의해 강력하게 영향을 받을 것이고 그에 따라 기대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사회복지실천의 역할과 지형이 짜여질 수도 있다(김인숙, 2005: 130)”는 예측, “전문직과 전문가의 역할이 조직 시스템 안에 내장되는 경향이 가속화되어, 전문가들은 조직 논리(비용, 표적, 지표, 품질모델, 시장기제, 가격, 경쟁 등)에 귀속되거나 순화되는 경향(김영종, 2014: 382~383)”을, 실천 현장을 통해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셋째, 더구나 한국 복지영역의 전문직화를 위해 주력해 온 사회복지사 자격제도도 여러 측면에 의해 도전받고 있는 바, 현장의 수요를 초과하는 사회복지사의 양산, 등급제와 교육내용의 실효성에 대한 문제로 인하여 전문자격 “인증”의 신뢰도가 저하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사회복지전문직은 전문성을 약화시키는 힘과 강화의 필요성 요구에 동시에 노정되어 있어, 이를 새로운 방향 설정으로 극복해갈 것인지, 어떤 정향의 전문직화가 바람직한지를 찾는 것이 당면한 과제”(김영종, 2014: 398~396)로 지적된다. 전문가주의를 둘러싼 다차원의 변화들은 모든 준비를 새로운 전환점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정도의 거시적, 미시적 과제를 던져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적자원의 개발(교육-훈련-자격화), 공식적 임무부여(법-제도), 노동시장(채용-업무), 사회적 인식의 변화가 병행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사회복지 실천 영역의 확대에 따른 대처가 급선무라 할 수 있겠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성 혹은 전문직을 사회복지영역의 우산 아래서 인정하는 방안, 사회복지사라는 단일 전문직의 분화(전문사회복지사 혹은 핵심영역별 사회복지사)를 모색하는 방안 등이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그 사전 작업으로서 사회복지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전문직의 속성을 재정리하여, 전문직의 지평을 넓힐 필요가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선행연구에서도 검토된 바와 같이, 공공-민간 복지현장의 관리자, 경영자로서의 역량은 이미 그 수요가 매우 높으며, 지역복지 현장은 기존 지역사회조직가의 활동 영역과 실천기술을 확대하는 업그레이드된 지역활동가의 수요가 확대되고 있다. 요양보호사, 보육교사, 지역아동센터 등 방과후돌봄 인력 등 이미 사회복지실천 현장에 함께하고 있는 전문인력에 대한 관점을 정비하는 일도 시급할 것으로 생각된다.

 

  전문성의 본질이 해당 분야의 수요, 클라이언트의 욕구‧문제‧위험에서 출발한다고 할 때, 실질적인 요구의 특성과 필요성이 확인되어야 하며, 전문역량을 발휘하고 있는지 입증되어야 하며, 발휘가 가능한 실천 여건(전문직 업무에 대한 규정과 근무여건)이 마련되었는지, 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호응하는지도 점검되어야 할 것이다.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

Plain text

  • 웹 페이지 주소 및 이메일 주소는 자동으로 링크로 전환됩니다.
  • 줄과 단락은 자동으로 분리됩니다.
  • 사용할 수 있는 HTML 태그: <a href hreflang> <em> <strong> <cite> <blockquote cite> <code> <ul type> <ol start type> <li> <dl> <dt> <dd>
이미지
무제한 수의 파일을 이 필드에 업로드할 수 있습니다.
50 MB 한계입니다.
허용된 유형: png gif jpg jpeg.
Enter the YouTube URL. Valid URL formats include: http://www.youtube.com/watch?v=1SqBdS0XkV4 and http://youtu.be/1SqBdS0XkV4.
CAPTCHA
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숫자가 된 사람들 “선생님들요, 듣고 계십니까?”

 

최현숙 ㅣ 구술생애사 작가

 


“집으로 돌아가 소중한 사람에게 자신이 겪은 고통들을 안도하면서 또 열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꿈, 그러나 믿어주지 않는, 아니 들어주지도 않는 꿈이다. 가장 전형적이고 잔인한 것은 상대방이 몸을 돌리고 침묵 속으로 가버리(는 것이다.)”

 

_프리모 레비(아우슈비츠 생존 작가)의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중

 

1987년 ‘형제복지원‘이 처음으로 사건화 됐을 때, 서른하나의 나는 이제 막 사회운동을 시작했다. 30~40년 독방감옥을 사는 비전향장기수들에 관한 활동으로 바빴다. 당시는 ’노동자 대투쟁“으로 일컬어지는 사회운동의 폭발적 시기였다. 나도 운동진영도 그 뉴스를 접했을텐데 주목하지 않았다. ‘운동 외 공간’, ‘정치 외 공간’이라며, 사건과 사람들을 배제했다.

 

2013년 10월 10일, ‘살아남은 아이들의 낮은 목소리’라는 제목의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 증언대회’. 8090세대 여성노인 구술생애사 작업 막바지로 바빴고, 다른 일들에 말리지 말아야 했다. 핑계는 많았다. 나는 특정 사건이나 집단의 사람들보다는 ‘주변 아무나 중 누군가’를 구술 작업의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다행히 ’형제복지원‘에는 여러 단체와 활동가들이 붙어 있는 듯 했다. 게다가 ’폭력’은 내게 가까이 가기에 가장 버거운 주제다. 그러니 그 증언대회는 안가도 됐는데, 가졌다. 가면서도 ’그냥‘이라며 거리를 두었다. 그런데도 행사장을 나오면서부터 붙잡은 증언 자료집을 다 읽을 때까지 놓을 수 없었다. 그들이 당한 폭력을 읽는 것만으로도 실물적 통증이 느껴져, 몇 번을 쉬어 가며 읽었다. 증언자의 얼굴과 눈과 목소리와 사연들. 그럼에도 책과 함께 덮어 밀어두었다. 그 쪽에 대해서는 간간히 소식을 확인하고 있었다.

 

2015년 6월 24일 ‘숫자가 된 사람들’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구술기록집)의 북콘서트가 있다는 소식을 페이스북을 통해 알았다. 일정에 메모는 했고, 안 갈 핑계를 떠올렸다. 남성노인 구술생애사 작업이 후기 쓰기에서 막혀있었다. 진도가 막힌 채, 장애여성 구술사작업에까지 말려있었다. 그런데 최재민(‘장애와 인권 발바닥 행동’ 활동가)이 카톡으로 불렀고, 기다렸다는 듯 불려가졌다.

 

“수용소에 대한 진실을 재건하기 위한 가장 실질적인 자료가 생존자들의 기억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 기억은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동정심과 분노를 넘어 비판적인 눈으로 읽혀야 한다. ...... 포로들이 자신이 놓인 비인간적인 조건들 속에서 자신들의 세계에 대해 총제적인 관심을 갖기란 힘든 일이다.”

_“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중

 

피해자들의 증언은 더없이 감사하고 소중하다. 부당한 권력자들이 만든 역사가 아닌 피해자들이 증언하는 역사가 필요하다. 또한 안에서의 고통과 더불어, 바깥에 던져지고서야 오히려 확연하게 차올라오는 수치심과 무력감을 함께 헤집어야 한다. 그것은 타인들의 수치심과 모멸감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들을 피해자로만 놓는 것은 그들을 다시 벽에 가두는 것이고, 타인들 또한 각자의 벽 속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니 증언의 속을 헤집고 너머를 추적해야 한다. 그들이 ‘피해자’나 ‘생존자’에 머물지 않기 위하여, 우리가 동정이나 규탄에 머물지 않기 위하여.

 

끌고 간 자도 끌려간 자도 인간이다. 가두는 자도 갇히는 자도, 폭력과 갈취를 행하고 당한 자도, 모두 인간이다. 박인근은 악마가 아니다. 기회를 쫓다가 혹 기회에 닿으면, 인간은 모두 아이히만이나 박인근이 될 수 있고 혹은 지존파가 될 수 있다. 구태여 악마를 지목하자면 돈과 권력에 대한 부당한 욕망이 악마다.

 

‘부랑아’와 ‘인간쓰레기’라며 그들을 거둬간 경찰과 박인근에게, 그 ‘쓰레기들’은 승진과 돈으로 재활용되었다. 당시 대통령 전두환에게 ‘사회정화와 질서유지’는 부당한 정권을 정당화시켜주는 명분이었다. 그는 박인근을 “거리에서 거지를 없앤 훌륭한 사람”이라며 칭찬했다. ‘단속과 배제’의 담론은, ‘정상과 비정상’ 이데올로기의 연장이다. 그 연장을 묵인한다면 우리도 결국 그 포승줄에 묶인다.

 

이에 대항하여 고통 받는 약자에 대한 연대가, 길이라면 유일한 길이다. 그렇더라도 궁극의 정의나 해방은 없다. 유감스럽게도 역사는 되풀이 되고 있다. 형제복지원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계속 된 ‘오래된 미래’다. 부당한 권력에 맞서는 것은 의로운 인간의 과제이지만, 그것은 끝없는 싸움이고, 자신과의 싸움도 병행된다. 누구에게나 자신과의 싸움이 가장 절박하다. 나침반의 바늘은, 온 몸을 떨고 있을 때라야 북쪽을 가리킨다.

 

시설을 나온 한종선은 “복지원 생각이 날 때마다 머릿속에 ‘칼’이라는 단어가 메아리쳤다”고 한다. 2012년 봄 그는 칼 대신 피켓을 들었고, 끝까지 버티겠단다. 황송환 역시 ‘탈출하면 세상 사람들을 눈에 뵈는 대로 다 때려죽이고 싶었‘고, 이제는 ‘보상도 필요 없고 오로지 진실을 밝히고 싶’단다. “선생님요, 듣고 계십니까?”라고 절규하는 그가 어느 쪽 마음을 붙들고 가느냐는, 안에서나 밖에서나 그들만의 책임이 아니다.

 

잔인함과 참혹함은 뿌리도 터전도 같고 열매도 통한다.

인간을 동물로 만드는 잔혹함 속에서도 인간은 여전히 인간이다.

 

 

잔인함과 참혹함은 뿌리도 터전도 같고 열매도 통한다. 일상의 삶이 그렇고, 폭력이 압축된 공간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한 사람, 한 사건, 한 사회 안에 가해와 피해는 뒤엉켜 공존한다. 피해자들이 그렇듯, 가해자들도 얼굴과 맥락이 있는 사람이다. 순진무구한 피해자와 악마 같은 가해자로 구도를 설정하는 한, 우리는 형제복지원의 진실 뿐 아니라 각자의 진실에 가까이 갈 수 없다. 그것은 현황을 위조하고 방조하며 도피하는 일이다. 중대장 소대장 총무 조장 등은 가해와 피해에 얽혀있었다. 참혹한 피해자들에게는 가해자의 잔인함이 전이된다. 경계선은 직선이 아니며 둘둘 뒤엉키고 뭉개져 있다. 매 순간의 처지와 입장이 있을 뿐이다. 생존을 위해서는 힘에 굴종할 수밖에 없었다. 굴종을 거부한 김계원들은 맞아 죽었다. 최승우가 본 ‘쌀가마니를 뒤집어 쓴 채 리어카에 실려 가는 여섯 개의 다리들’을 포함해 사망자 551명은, 굴종을 거부했거나 폭력에 목숨을 놓았다. 직면을 피하지 않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처절하고 두려운 것인가를 보여주는 홍두표는, 형제복지원을 제2의 고향이라며 여전히 근처를 떠나지 않고 싸우고 산다. 그의 직시와 그의 하느님을, 나는 도무지 대면할 수도 감당할 수도 없다. 그들이 당한 폭력과 고통을 내가 이해한다고 말할 수 없듯이.

 

인간을 동물로 만드는 잔혹함 속에서도 인간은 여전히 인간이다. 안에서도 일상의 삶이 있었고, 질긴 인연은 형제복지원 전에서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진다. 하안녕에게는 ‘수수한 사랑’과 언니들과 마음씨 좋은 운전교육 소대장이 있었다. 정신병동 침대에 묶인 채 밤새 하염없이 ‘바위섬’을 부른 미친 여자가 있었고, 잠을 포기하며 그 줄을 풀어 준 여자가 있었다. 다시 끌려갈까봐 그녀는 지금도 길거리의 간판과 숫자들을 외운다. 홍두표에겐 ‘이것이 아니었다면 살 이유도 살 수도 없었다’는 한 모금의 물을 준 사람이 있었다. 김희곤에겐 구출을 도와 준 신발공장 기술자 염 아저씨가 있었고, 도망자에게 기차표와 김밥과 옷을 준 사람들이 있었다. 복지원 안에서 늘 손을 잡고 다닌 김상명과 형주는, 27년 만에 증언대회장에서 다시 손을 잡았다. 인생이 집약된 서류철을 들고 다니는 김영덕은 잃어버린 생애를 추적하고 자신을 버린 사람들과의 관계를 홀로 복원하고 재구성하며 산다. 김철웅은 대여섯살에 떠난 엄마가 수십년 만에 자신을 안아주자, 세상을 다 얻었다고 한다. 아버지의 폭력을 피한 가출에서 형제복지원에 끌려간 이향직은, 아버지와의 화해에 실패하고 장인장모를 모시고 산다. 최승우는 하나밖에 없는 동생을 복지원에서 만나야했고, 출소 후 동생은 자살했다. 복지원에서 만난 초등학교 때 담임은 승우를 돕지 않았고, 그는 복지원 내 중학교의 교장이 되었다. 첫 기억이 고아원에서 시작된 홍두표는 만 37세가 되어서야 시설을 벗어났다. 이후에 그를 도와준 사람들은 술집 형들이나 자갈치 할매였다. 동생과 함께 끌려가 합창단을 했던 이혜율은, 동생과 구슬치기도 하고 벌레와 쥐와 지네를 잡으며 놀았다. 한 때 주말이면 후원자의 집에 다녀오기도 했다. 혜율은 여성피해자들의 아픔을 더 드러내고 싶고 끝까지 파헤치는 시나리오를 쓰고 싶단다. 박경보는 함께 수용된 소아마비 형으로부터 끊임없이 도망쳤지만, 그 형을 찾아 또 끊임없이 더 큰 위험 속으로 들어갔다. ‘엄마‘라는 소리를 배울 나이에 고아원에 버려진 경보는, 형제복지원에서 만난 준오를 동생으로 입적시켰다. 자살 1년 전부터 트라우마가 몰려 온 준오는 늘 머리맡에 칼을 놓고 잤다. “우리 준오 이야기를 꼭 써주세요’, 경보의 말이다. 호적을 살리려고 가족을 찾아 헤맨 그에게 찾은 가족은 더 큰 상처였다. 죽음과 자살을 늘 옆에 두고 산 김희곤은 자신의 끝을 자유죽음(자살)으로 정했다고 한다. 각자도생의 이기와 전략들에서 노인과 장애인들은 더 밀려났다.

 

사건은 일어났고 따라서 또다시 일어날 수 있다. 이것이 내가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것의 핵심이다.

_“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중

 

2012년 봄, 원한의 칼 대신 홀로 국회 앞에서 피켓을 들고 있던 한종선이 있었고, 그를 지나치지 않은 전규찬이 있었다. 기억의 고통과 혼돈을 무릅쓰고 구술한다는 것은, 그들 안에압축된 모멸감과 수치심을 덜어내는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폭로와 증언을 위한 구술은 그 이야기가 사람들의 귀에 꽂히고 사회의 구체적 변화가 확인될 때라야 혹 내적 해방이 될 수 있다.

 

그들은 증언했고 우리는 들었다.

월, 2015/08/10- 17:07
189
0

아동학대범죄자는 ‘마땅히’ 처벌받았는가?

이세원ㅣ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박사과정

들어가며

 

 우리나라 정부는 2000년 ‘아동학대를 심각한 사회문제로 규정하며 이에 대한 보호 및 아동안전에 대한 제도적 지원을 공고히 할 것’을 목적으로 하여 아동복지법을 전면 개정하였다. 그러나 최근 언론을 통해 알려진 소금밥 사건, 울산 계모 사건 등 극악한 아동학대 사건 등은 우리사회가 아동학대를 더 이상 ‘사회문제’가 아닌 ‘사회범죄’로 보아야 한다는 합의에 이르게 하였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에 의해 집계되고 있는 아동학대사례는 2001년 2,105건에서 2013년 6,796건으로 매해 증가하고 있으며, 안재진 외(2011)는 아동학대 발생률을 25.3%로 추정하고 있을 정도로 아동학대는 우리사회에 있어 심각한 이슈이다.

 

 따라서 아동학대 피해자에 대한 대응은 물론이거니와 재학대를 방지하기 위해서도 학대행위자에 대한 대응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지금까지 학대행위자에 대한 강력하고 실효적인 대응은 형사처벌이 거의 유일하다고 볼 수 있는데, 2013년 아동보호전문기관이 학대로부터 아동을 보호한 건수는 6,796건이었으나 당해 연도 학대행위자 최종조치결과 형사고소·고발은 544건에 그쳐 우리사회에서 아동학대 행위자에 대한 사법적인 대응이 매우 소극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014년 9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하 아동학대범죄 특례법)은 ‘아동학대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아동학대범죄가 발생한 경우 긴급한 조치 및 보호가 가능하도록 제도를 마련함으로써, 아동학대에 대한 강력한 대처와 예방을 통해 아동이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하도록 하려는 것’에 목적을 두고 제정되었다. 아동학대범죄사범에 대한 형사처벌은 적법절차를 통한 실체적 진실 발견으로, 가해자에 대한 적정한 형벌을 구현하는 사후 조치이자 예방적 조치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이처럼 아동학대 발생건수의 증가와 최근 언론보도를 통해 공개된 아동학대 사범에 대한 엄벌의 필요성에 관하여 국민적 공감대 형성의 토대가 마련되고, 아동학대에 대한 처벌규정을 강화하는 아동학대범죄 특례법이 시행된 지금, 지난 15년간 아동학대 사건의 형사처벌 내용과 경향을 분석함으로써 아동학대범죄자들이 ‘마땅히’ 처벌받아 왔는지에 대해 살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아동학대범죄의 처벌규정은 강화되었으나, 실형은 25%에 불과 벌금은 15년째 그대로

 

 2000년 아동복지법이 전면 개정되면서 금지행위에 대한 벌칙조항의 대폭적인 개정이 이루어져, 1981년 제정 시에 비해 징역형의 상한은 최대 10배가 되었고 벌금형의 상한은 최대 30배까지 올라갔다. 또한 2006년 아동복지법 개정 시에는 벌금형의 상한이 최대 2배로 가중되었다. 이에 현행법상 아동을 매매하는 행위, 음행을 시키거나 음행을 매개하는 행위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며, 이 외 신체·성·정서·방임학대 등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되어있다.

 

  [그림 1]과 [그림 2]는 2000년에서 2014년 상반기까지 아동복지법위반으로 처벌받은 아동학대범죄의 형사판결문 중 484사례(피고인 579명)를 분석한 결과이다. 2000년과 2001년에는 벌금형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징역형의 비율이 훨씬 높았으나 그 이후부터는 벌금형의 비율도 최대 약 35%까지 증가하였다. 또한 징역형 중 실형과 집행유예의 비율을 살펴보면, 2001년과 2014년을 제외하고 실형의 비율은 약 15~40%비율이고, 집행유예의 비율은 매해 형사처벌의 1/3 이상이다. 2002~3년의 경우는 전체 판결 중 약 70%의 피고인이 집행유예로 처분 받은 것으로 나타나 실제로 실형을 처분 받는 비율은 상대적으로 낮았다. 전체 피고인의 수에서도 실형은 144명(24.9%), 집행유예는 312명(53.9%), 벌금형은 123명(21.2%)으로, 집행유예 처분 비율이 가장 높고 벌금형의 경우도 상당한 것으로 분석된다.

 

 실형은 비교적 낮은 비율에 불과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전체 144명 실형 처분자의 평균기간은 36개월이며, 실형의 평균 개월 수가 2000년부터 15년 동안 증가하지 않아 처벌이 강화되었다고 볼 수 없다. 벌금 역시 전체 평균 약 270만원으로, 아동복지법 2006년 일부 개정시 최대 2배까지 벌금상한액이 증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15년 동안 벌금액수의 증가추세는 보이지 않아 실제에 있어서는 피고인에 대한 처벌에 변동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우리나라 1인당 GDP가 2000년은 약 $11,347이고 2014년은 약 $25,931로 2.3배 증가했지만 15년간 벌금의 액수는 거의 변동이 없었다는 사실은 2000년 당시 벌금 체감도에 비해 2014년 벌금 체감도가 훨씬 가볍게 느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여지가 있다. 그렇다면 여론에만 편승하여 단순히 처벌규정의 상한만을 상향하는 것은 실제 큰 의미가 없었음을 알 수 있다.

성학대 부가 처분은 잘 준수되었을까?

 

 법률에서는 아동성학대 가해자에 대해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 신상정보 등록과 공개·고지, 성범죄자에 대한 위치추적 전자장치 등의 부과 처분을 규정하고 있는바, 성학대 부가 처분 준수여부를 살펴보았다.

 

 우선,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시행 2010. 4. 15.]에서 성폭력범죄자에 대한 수강명령 또는 성폭력 치료프로그램의 이수명령이 의무규정으로 되어 있으나, 본 연구의 판결문 분석 결과,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아동복지법 제17조 제4호 위반 성학대와 연루된 피고인 81명 중 48명만이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명령을 받았으며, 법률에서는 300시간이라는 상한선만 제시하고 있을 뿐이어서 선고된 이수 시간은 최소 40시간 최대 300시간으로 편차가 크다. 다만, 2010년 강제조항 시행 이후로 해가 거듭될수록 성학대 가해 피고인에 대한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명령 부가율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또한 구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시행 2008. 2. 4.]에서 청소년 성폭력 범죄자에 대한 신상정보 등록 및 공개·고지가 피고인의 의무임을 규정하는 강제조항으로 개정되었으나, 2008년부터 2013년까지 신상정보의 등록을 명하고 있지 않는 경우도 많으며, 공개·고지 명령은 약 28% 수준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판결문에서는 대체로 공개·고지 명령의 예외 사유를 ‘피고인에 대한 공개 및 고지명령으로 인하여 기대되는 이익 및 예방 효과와 그로 인한 불이익 및 부작용 등 제반사정을 종합하면, 피고인의 신상정보를 공개 및 고지하여서는 아니 될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판단된다’라고 적시하고 있는데, 이는 아동복지법위반 사범에 대한 처벌 및 예방 효과 보다는 피고인의 가족들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더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성범죄자에 대한 위치추적 전자장치(이른바 전자발찌) 부착 명령은 2008. 10. 28. 시행된 법률인 구 특정 성폭력범죄자에 대한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에 관한 법률 제5조에 의하여 검사가 전자장치 부착명령 청구와 법원의 결정에 따라 가능하다. 각 판결문에서는 검사의 전자장치 부착명령 청구 여부를 확인할 수는 없으나, 전자장치 부착 명령은 단 11명에게만 내려졌다.

 

상소 결과와 양형 요소 분석: 성인대상 범죄의 양형 감경요소가 아동학대사범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것인가?

 

 579명 중 상소(항소 및 상고)가 이루어진 경우는 256명으로, 1심사건 전체 피고인의 44.2%에 해당하였다. 이 중 2014년 현재 상소가 계속 중인 경우 22건(8.6%)을 제외하면, 원심을 파기한 상소인용률은 34.8%인데, 그 대부분인 32%는 피고인의 항소가 받아들여진 경우이다. 즉 실형을 감량한 경우가 27명(10.5%), 실형이 집행유예로 감경된 경우가 대부분으로 41명(16%), 그 외 집행유예 기간의 축소와 벌금액의 감액 등으로 원심보다 피고인의 처벌이 가벼워졌다. 그러나 검사 측 주장이 인용되어 형이 강화된 경우는 15년간 5건에 불과했고, 그 중에서도 집행유예가 실형이 되거나 실형기간이 늘어난 경우는 단 2건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판결문에서는 피고인에 대한 양형의 이유에서 불리한 정상과 유리한 정상을 나누어 판시하고 있는데, 피고인에 대하여 아동학대의 상습성, 반성하고 있지 않은 점 등을 불리한 양형요소로 판시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그러나 피고인에게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되는 경우는 반성, 초범인 점, 피고인과 피해자의 건강상태, 합의 등 그 사유도 여러 가지였고 경우의 수도 비교적 빈번하였다.

 

 물론 시행중인 여타의 다른 범죄 양형기준에서 특별양형인자로 경미한 상해, 심신미약 등과 일반양형인자로 상당 금액의 공탁, 진지한 반성, 처벌불원 등은 피고인에 대한 감경요소로 고려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처럼 일반적으로 다른 성인 대상 범죄의 양형 감경요소로 고려되는 사유들이 무비판적으로 아동학대사범에 대해서도 적용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은 이루어져야 한다. 아동학대 사건의 경우 아동학대의 가해자 대부분은 아동과 함께 동거하고 있는 부모라는 특수성을 감안하여 아동학대를 훈육이 아닌 범죄로 인식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부담하도록 하여, 장래의 재학대를 방지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피고인에 대해 유리한 정상으로 고려된 요소 및 예를 검토해 보면, 우선 반성에 관한 것인데, 불과 몇 회의 공판기일에서 피고인이 제출하는 반성문 등을 통해서는 그러한 반성이 진심에서 우러나온 반성인지 중형을 피하기 위한 거짓인지를 분간하기 어렵고, 아동학대는 수년 동안 고착화된 가해자의 양육관 및 환경과도 관련이 있으므로 교육․상담이나 치료 없이 개선되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또한, 범죄전력이 없고 우발적인 학대의 경우 감경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재학대’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이 학대사건 이전의 범죄전력을 고려하는 것도 중요하나, 이 사건 이후에 또 다른 학대가 일어날 것인가 즉 ‘재범’에 대한 가능성에 초점을 두어야 할 것이며, 음주나 피곤의 상태는 수시로 찾아올 수 있다는 점에서 우발성은 인정되지 않아야 한다.

 

 특히 합의는 감형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었는데, 피해 아동 혹은 피고인의 처나 가족이 처벌을 원치 않고 합의를 한 경우 대부분 감형되었다. 그러나 피해아동이 학대 상황에서 가해자의 권위와 물리력에 억눌려 항거불능의 상태에서 학대를 받았듯이, 피해아동이 가해자와의 합의를 같은 이유로 종용받을 수 있음이 충분히 예상된다는 점에서 피해아동과의 합의를 이유로 감형을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또한 피해아동의 또 다른 부모 혹은 가족이 피고인과 합의를 하였다는 것은, 당사자인 아동의 의견을 무시했다는 점과 그 가족은 아동을 학대 상황에 놓아둔 또 다른 아동학대의 공범자일 수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끝맺으며

 

 신고된 아동학대사례에서는 가해자의 대부분이 부모이나 판결문에서는 절반정도로 나타나 아동학대 가해자가 부모인 경우 매우 소극적인 법적대응을 하고 있는 것으로 추론할 수 있었다. 더불어, 아동학대는 행위의 특수성상 암수 범죄가 많을 것으로 추측되는 상황에서, 공식적으로 집계된 사례조차 고소·고발된 수는 10%미만이며, 그 중 불입건, 불기소처분 등으로 인해 유죄판결을 받은 수는 더 적다. 이를 통해 아동학대가 여러 단계를 거치면서 사건이 ‘사라져’ 버리고, 아동학대에 대한 인식이 ‘희석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거의 매년 극악한 아동학대 사건 발발로 피고인 엄벌에 대한 여론이 높아졌고, 이에 2000년 아동복지법 전면개정 이후 2006년 일부개정을 통해 법정형이 강화되었다. 그러나 15년 동안 아동복지법위반 피고인 중 실형을 받는 비율은 평균 20%대에 불과하였고 실형 평균 기간도 증가하지 않았다. 벌금형의 결과 또한 벌금형 상한을 가중한 개정입법의 의도와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에도 역진적인 것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아동학대 가해자에게 형사처벌만이 능사는 아니고 최우선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아동학대는 중대한 강력 범죄이며 앞서 언급한 형벌의 양면적인 기능뿐만 아니라 점점 증가하고 있는 재학대율을 고려한다면, 적정한 형사처벌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인식과 판결이 확립되어야 한다. 영국의 경우 아동학대 사건 대부분은 가해자와 피해자를 격리시킴으로서 추가적인 아동학대를 막고 피해 아동들의 트라우마를 해소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징역형을 선고하며, 가해자가 피해아동의 유일한 보호자인 경우에만 피해아동에 대한 방임 등의 문제를 고려하여 예외적으로 집행유예를 선고한다.

 

 따라서 첫째, 아동보호전문기관 및 수사기관과 사법기관자들이 아동학대 사건의 중대성을 인식하여야 하고, 관련 법률 개정 시 아동학대사범에 대한 온정적 양형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법정형 상한이 아닌 법정형 하한을 상향하여야 한다. 둘째, 아동학대범죄의 경우 더욱 충실한 양형심리가 필요하기 때문에, 최근 법원에서 시행하고 있는 양형조사관에 의한 양형조사제도는 그 활용여지가 커 보이는 바, 아동학대 사건의 경우 사회복지 전공의 외부전문가를 필수적으로 포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셋째, 아동학대범죄에 대한 형사처벌이 중요하다고는 하나 학대행위에 대한 교정과 개선 없는 형사처벌은 무의미하다. 그러므로 현행 성학대 부가처분의 실시 여부 및 내용 등에 대해 명확한 기준을 두는 한편, 다른 유형의 학대범죄 피고인에 대해서도 법률상 명확한 기준에 의거한 적합한 부가처분이 활용되도록 법적제도의 구비와 실천현장의 노력이 필요하다. 넷째, 아동학대에 대한 판결문상 법집행 담당자의 인식이 상이한 것으로 나타난 바, 수사기관 및 사법기관에서 아동학대사건의 기소 여부 혹은 형벌 여부 등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 및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피해 정도, 아동학대에 사용한 도구 등 가해 방법과 경위, 피해아동과의 관계, 피해아동의 진정한 의사, 상습성 등을 객관적으로 고려하여 아동학대 사건이 보편타당하게 판정될 수 있어야 한다.

 

 아동복지의 가장 주요한 원칙은 가정이 아동에게 가장 바람직한 환경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어린 아들을 피고인이 양육하여야 하므로 피고인과 아들 사이에 이 사건으로 인하여 지워지지 않을 응어리를 만드는 것이 피해자인 아들에게도 좋지 아니하다’며 우리사회는 아동학대가해자인 부모에게 중한 형사처벌을 내리지 않아 왔다. 그러나 교정되지 않은 아동학대는 끝이 나지 않고 재학대의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더 악화된 상황으로의 전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적절한 형사처벌은 ‘필요한 경우’ 수반되어야 한다. 아동학대는 단언코 범죄이며, 가정보호 원칙은 가정이 아동에게 안전할 때 이행될 수 있도록 지원되어야 한다.

 

참고문헌

안재진·강상경·김혜란·신혜령·유조안·이봉주·이은주·황옥경, 2011, 『아동학대 실태조사』, 서울: 보건복지부, 숙명여자대학교 산학협력단.

보건복지부·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2014, 『전국아동학대현황보고서』, 서울: 보건복지부.

금, 2015/07/10- 13:38
253
0

사회보장기본법, 복지를 죽이는 법인가?

 

김남희 l 참여연대 복지조세팀장, 변호사

 

사회보장기본법, 법 이름만 들어보면 사회보장의 기초를 다지는 법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지금 사회보장기본법이 적용되는 현실을 보면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사회보장기본법은 복지를 깎거나 축소시키는 상황에 대해서는 무기력하며, 오히려 복지를 늘리거나 확대하는 상황에 대해서는 칼날을 들이미는 것이 현실이다. 과연 사회보장기본법은 복지를 위한 법인가, 복지를 죽이는 법인가? 이 글에서는 사회보장기본법이 어떤 문제가 있는지 그 실제 적용례를 살펴보고 문제점을 검토해보고자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주도한 사회보장기본법의 전면개정

 

현행 사회보장기본법은 1995년에 제정된 사회보장기본법을 2012. 1. 26. 전부 개정한 것을 토대로 하고 있는데, 이 전부 개정은 박근혜 대통령이 의원시절이던 2011년 2월에 대표발의하여 그 발의내용이 거의 그대로 수용되어 국회에서 통과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발의할 당시 제안이유는 다음과 같다.

 

최근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인구구조의 변화, 산업구조의 변화, 세계경제의 위기 등으로 인한 사회·문화 및 경제적 환경이 변화하면서 선진각국은 소득보장형 복지정책으로 인하여 재정압박에 시달리고 있으며 국민 개개인도 생애주기별로 노출되는 다양한 위험을 자력으로 감당하기 어려워지는 등 전통적인 복지국가형태는 더 이상 존립하기 어려워지고 있음.

 

이에 따라 아직 복지국가의 초기단계에 있는 우리나라도 서구 선진복지국가의 경험으로부터 우리나라의 상황에 맞게 선제적이고 적극적인 복지정책적 체질 개선이 필요해짐. 소득보장형의 복지국가에서 국가의 보호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저소득층뿐만 아니라 나머지 모든 국민도 평생 동안 생애주기별로 겪게 되는 다양한 위험에서 벗어나도록 소득 및 사회서비스를 함께 보장하여 평생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 맞춤식 생활보장형 복지국가로의 전환이 요구되고 있음.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현행법이 기본법으로서 사회보장의 추진방향을 제시하고 있지 아니하고 사회보장 관계 법률들이 흩어져 있어 여러 행정부처에서 관장함에 따라 사회보장정책을 일관성 있게 수립하고 효과적으로 집행하는데 연계성이 결여되는 등 현행법으로는 사회보장정책을 통할하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어려움.

 

따라서 모든 국민이 평생 동안 겪는 다양한 사회적 위험에 대하여 사회정책과 경제정책을 통합적으로 접근하여 국민의 보편적·생애주기적인 특성에 맞게 소득과 사회서비스를 함께 보장하는 방향으로 사회보장제도를 확대·재정립함으로써 한국의 상황에 맞는 새로운 중장기 사회보장정책의 비전과 미래지향적인 발전방향을 제시하여 건강한 복지국가를 설립하려는 것임.

 

복지체질개선, 생애주기별 복지, 맞춤형 복지, 한국적 복지국가… 좋은 말인지 아닌지는 좀 아리송하다. 어쨌든 박근혜 대통령은 2012년 대선 당시 이 법의 통과를 자신의 성과로 내세우며 “저는 한국형 복지모델로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를 추진하겠다는 생각으로 사회보장기본법 전부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일관성 있는 복지정책을 위해 설계를 잘해야 합니다.”라고 대선후보자 TV토론에서 발언하기도 하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내 아버지의 꿈은 복지국가의 건설”이라며, 모든 노인에게 20만원 지급, 4대 중증질환 전액 국가보장 등 보수정당의 후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의 복지공약을 내세우며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유명무실한 사회보장위원회

 

사회보장기본법의 핵심은 사회보장위원회의 설치이며(사회보장기본법 제20조), 사회보장위원회의 기능과 역할이 이 법의 주요한 내용 중 하나이다. 사회보장위원회는 사회보장 증진을 위한 기본계획과 사회보장 관련 주요 계획, 사회보장급여 및 비용 부담, 국가와 지자체의 역할 및 비용분담, 사회보장 전달체계 운영 및 개선에 대한 내용을 심의하고 조정하는 중요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사회보장위원회는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복지부장관, 기획재정부장관, 행정자치부장관, 고용노동부장관, 여성가족부장관 등 14개 정부부처의 장과 다수의 민간전문인들이 위원으로 참여한다(사회보장기본법 제21조). 부처 간의 칸막이를 허물어 복지정책과 제도를 효과적으로 개선하겠다는 취지로 보인다.

 

그런데 이렇게 야심차게 출발한 사회보장위원회는 그동안 무엇을 했을까?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현재까지 사회보장위원회 전체회의는 단 9차례 개최된 것이 전부이며, 그나마도 보건복지부가 사전에 올린 안건을 형식적으로 통과시키는 거수기 역할을 한 정도이다. 사회보장 증진을 위하여 부처 간의 통합을 이루겠다는 사회보장위원회의 역할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진주의료원 폐원 사태와 무기력한 사회보장기본법

 

박근혜 취임한지 하루만인 2013. 2. 26. 경남도는 진주의료원 폐업방침을 발표하였으며, 같은 해 5. 29. 폐업을 공식발표하고 6. 11. 경남도의회가 진주의료원 해산조례를 날치기 통과시켜 버리기까지 하였다. 공공병원으로 막대한 국비가 투입되어 새로 지어진지 채 몇 년도 되지 않아 지자체가 적자를 이유로 공공병원을 폐원한 어이없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이에 참여연대와 보건의료단체연합은 2013. 6. 3. 진주의료원 폐업 결정에 대해 사회보장위원회가 사회보장기본법에 의한 조정권한을 행사할 것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보건복지부장관과 국무총리에게 사회보장위원회 소집청원서를 제출하였다. 사회보장기본법에 따르면 지자체의 장이 사회보장제도를 신설하거나 변경할 경우 신설변경의 타당성, 기존제도와의 관계, 사회보장 전달체계에 미치는 영향 및 운영방안에 대하여 보건복지부장관과 협의하여야 하고, 그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사회보장위원회가 이를 조정하도록 되어 있다(사회보장기본법 제26조). 또한 사회보장기본법은 사회보장의 정의를 사회보험과 공공부조, 사회서비스라고 하고, 그 사회서비스의 한 영역으로 보건의료 분야도 포함시키고 있다(사회보장기본법 제3조 제1호, 제4호). 그런데 진주의료원 폐업결정 과정에서 홍준표 지사와 경남도는 보건복지부와 협의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보건복지부가 폐업방침 발표 이후 두 차례에 걸쳐 신중한 처리를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음에도 이에 따르지 않고 바로 폐업을 강행하였으므로, 지자체와 국가의 사회보장 역할 분담에 대하여 조정하는 사회보장위원회가 개입하여야 할 사안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보건복지부는 2013. 8. 29. 다음과 같은 공문을 보내 사회보장위원회 소집을 거부한다.

 

사회보장기본법 제26조의 사전협의는 사회보장제도의 신설, 변경시 제도의 타당성 및 기존 제도와의 관계 등을 검토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으며, 개별 기관의 설립이나 폐지를 대상으로 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됩니다. 이에 따라 귀 단체에서 청원한 진주의료원 폐업 관련 사회보장위원회 소집을 하지 아니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진주의료원은 연간 내원환자가 수만 명에 달할 정도의 규모가 큰 공공병원이었고 신종플루가 발생했을 때 환자를 받는 지역의 유일한 병원이었다. 진주의료원 폐원은 역사상 최초의 공공병원 강제폐업으로, 경남도는 수백 명의 환자가 입원한 상태에서 진주의료원 폐업을 강행하였고, 진주의료원에서 강제퇴원당한 환자가 사망하는 등 반인권적인 상황이 발생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보건복지부와 사회보장위원회는 공공의료에 어마어마한 타격을 입히는 이러한 상황에 대하여 “개별 기관의 폐지”에 불과하여 사회보장위원회에서 다룰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사회보장기본법이 박근혜 공약이던 장애인 24시간 활동보조를 가로막다

 

이처럼 무기력했던 사회보장기본법이 적극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한 것은, 놀랍게도 지자체들의 복지정책을 가로막기 위해서이다. 최근 대구시에서는 화재, 가스, 호흡기이탈 등에 따라 중증자애인 사망사고가 수시로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최중증 독거, 취약 장애인 등을 대상으로 24시간 활동보조인을 지원하기로 하였다. 대구시는, 지자체의 장이 사회보장제도를 신설할 경우 보건복지부장관과 협의하도록 하는 사회보장기본법 제26조 제2항에 근거하여 24시간 활동보조 계획을 보건복지부장관에 협의신청을 하였으나,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에 대하여 추가협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고 사회보장위원회 제도조정소위원회를 개최하여 최종적으로 위 사업에 대하여 불수용한다는 통보를 하였다. 문제는 대구시 뿐 아니라 인천광역시, 광주광역시, 경상북도, 강원도 등 다른 지자체에서 추진하던 중증장애인 24시간 활동보조 계획 역시 번번이 사회보장기본법상 사회보장제도 협의, 조정 제도에 걸려 추진이 중단되거나 보류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지자체가 독자적인 복지사업을 추진하는데 사회보장기본법이 결정적인 장애가 되고 있는 것이다.

 

사고 발생시 혼자서 움직일 수 없는 중증장애인의 사망사고가 수없이 발생하고 있으며, 장애인의 생존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도 중증장애인 24시간 활동보조 도입은 하루가 시급하다. 심지어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집 85페이지에는 “중증장애인 활동지원 24시간 보장”이 공약으로 포함되어 있다. 물론 그 공약은 지켜지지 않았고, 박근혜 대통령이 자랑스러운 성과로 내세운 사회보장기본법은 지자체가 중증장애인 활동보조를 추진하는 것조차 가로막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사회보장기본법에 근거하여 지자체가 추진하는 복지정책을 가로막는 현상은 점점 더 심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사회보장기본법 시행령 개정안이 공고되었는데, 사회보장위원회 산하 전문위원회를 기획조정, 사회서비스, 사회보험, 공공부조 전문위원회에서 기획, 제도조정, 평가, 재정·통계 전문위원회로 변경하는 내용(시행령안 제12조)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사회보장위원회가 사회서비스, 사회보험, 공공부조 등 사회보장의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제도를 조정하고 평가하는 일을 중심으로 운영될 것이라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사회보장기본법의 문제점 : 지방자치제도와 국민의 기본권 침해

 

살펴본 것처럼 사회보장기본법은 현재 사회보장제도를 통할하는 역할은 하지 않고 지자체가 독자적인 복지정책을 추구하는 것을 감시하고 억제하는 통제기능으로만 활용되고 있다. 이는 헌법상 보장된 지방자치제도와 국민의 행복추구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위헌적인 측면이 있다.

 

헌법과 지방자치법은 주민의 복지증진 사무가 지자체의 역할임을 명시하고 있으며(헌법 제117조 제1항, 지방지치법 제9조) 헌법재판소는 “지방자치제도라 함은 일정한 지역을 단위로 일정한 지역의 주민이 그 지방주민의 복리에 관한 사무, 재산관리에 관한 사무, 기타 법령이 정하는 사무(헌법 제117조 제1항)를 그들 자신의 책임 하에서 자신들이 선출한 기관을 통하여 직접 처리하게 함으로써 지방자치행정의 민주성과 능률성을 제고하고 지방의 균형적인 발전과 아울러 국가의 민주적 발전을 도모하는 제도”라고 판시한 바 있다. 즉 지방자치의 주된 기능으로 주민의 복지증진이 있고, 지방자치제가 이를 지자체의 책임하게 민주적으로 처리하게 하는 제도라면, 지자체가 독자적인 복지정책으로 주민의 복지를 증진시키는 것은 지방자치제도의 핵심이자 주요 목적이다. 그런데 사회보장기본법을 근거로 지자체의 복지정책을 가로막는 것은 명백한 지방자치제도 침해이며 위헌적인 것이다.

 

또한 사회보장기본법은 국민의 생존권,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등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다. 장애인 24시간 활동보조는 중증장애인의 생존과 직결된 것이며 생존은 국민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헌법 제35조)의 가장 기본이다. 사회보장기본법이 장애인의 최소한의 생존권 보호조차 가로막는다면, 이 법은 위헌적인 법률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사회보장기본법, 과연 복지를 죽이는 법인가? 이 법을 발의한 박근혜 대통령에게 묻고 싶다.

일, 2015/05/10- 16:06
236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