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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조치변호인단, 훗카이도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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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조치변호인단, 훗카이도를 가다.

익명 (미확인) | 화, 2015/08/25- 17:06

긴급조치 변호단 2차 워크숍

- 강제동원, 홋카이도를 가다

 

 2015년 8월 그 해, 홋카이도의 여름은 뜨거웠다.

 

 <첫째 여정>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한 서린 홋카이도, 아직도 서러운 숨결이 느껴지는 듯하다.

 - 이선경

 

 나에게 있어 홋카이도라는 지역은 겨울에 눈이 많이 오고 온천시설이 잘 되어 있는, 겨울 관광지로 좋은 장소 정도의 의미만 있었다.

 

그 홋카이도에 강제징용되어 희생된 분들의 유골이 아직도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남아있다는 소식도 이번 워크숍 준비 모임에서 처음 알게 되었을 정도로 나는 홋카이도와 우리 민족의 과거사에 대해 무지하고 또 무관심한 사람이었다.

 

그런 상태로 비행기에 올랐던 나에게, 창 밖에 펼쳐진 삿포로의 풍경은 다소 당혹스러운 것이었다. 그것은 전형적인 농촌마을이었다. 반듯하게 정리된 논과 밭 사이에 빨갛고 파란색 지붕을 가진 집들이 늘어서 있는 한적한 농촌 풍경은, 그곳이 그 끔찍한 강제징용의 현장이라는 사실을 믿기 어렵게 만들었다.

 

비행기에서 내려 버스에 오르자, 이번 워크숍의 가이드 김영환 선생님이 버스가 이동하는 동안 간단히 강제징용 희생자들의 유골반환 운동의 경과에 대해 설명해주셨다. 1997년부터 시작하여 한국과 일본, 중국 등 여러 동아시아 지역의 학자와 시민단체가 모여 10여 차례의 학술대회를 거치면서 공동으로 유골발굴을 해왔고, 이는 궁극적으로 동아시아 평화를 모색하기 위한 활동들이라고 하면서, 우리가 방문할 장소들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있는 현장들이라고 하였다.

16일  삿포로별원 - 강제징용 간담회

 

버스로 한참을 달려 101구의 유골이 안치되어 있는 본원사 삿포로 별원 납골당에 들어서니 가장 안쪽 구석에 초라한 유골함 3개가 놓여있었다. 본래 일본의 장례절차에 따르면 한 사람의 유골이 하나의 유골함에 담겨 있어야 하는 것이므로, 삿포로 별원에 101명의 유골이 있으면 총 101개의 유골함이 있어야 하는 것이지만 1997년도에, 일제시대 강제징용 노동자들에게 노동을 시켰던 지자키 공업의 요청에 따라 삿포로 별원은 무연고 유골이라는 이유로 유골을 모두 합골해 버렸고, 그 때문에 현재 3개의 유골함 안에 101명의 유골이 섞여있다고 하였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최소한의 예우조차 받지 못하고 있는 강제징용 희생자들의 서글픈 상황들이 담담히 다가왔다. 부디 고국으로 돌아가서 햇볕 잘 드는 곳에서 편히 쉬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묵념을 하고 돌아섰다.

 

한 가지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2003년 유골 발굴 당시 발굴된 유골이 강제징용 희생자 유골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근거 중 하나가 유골의 발을 감싸고 있던 발싸개 때문이었다는 것인데, 신발이 아닌 천으로 된 발싸개를 신고 있는 것을 보고 이것은 일본인이 아니라 강제징용 희생자의 유골임을 확인하였다고 하니, 당시 강제징용 희생자들에 대한 처우가 얼마나 열악하였는지 짐작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16일  삿포로별원 - 납골당 2

 

반가운 소식은 현재까지 홋카이도에 남아있는 미봉환 유골 150구 중(삿포로 별원과 사루후쓰, 비바이 탄광 등에 흩어져있다고 한다) 120구가 올해 9월 한국으로 봉환된다고 한다. 무엇보다 올해 유골봉환은 9. 11.부터 9. 20.까지 9박 10일 동안 진행되는데, 당시 강제징용자들이 끌려왔던 3,500km를 되짚어 서울까지 가는 여정이라고 하였다.

 

이번 유골봉환은 역사적인 의미가 큰 행사이므로 당연히 한국과 일본 양국 정부가 주최가 되어서 진행될 것이라고 생각하였으나, 정부와 전혀 관계없이 순수 민간 차원에서만 이루어진다고 하였다. 2004. 12. 노무현 정부 때 고이즈미 총리에게 유골봉환을 요청한 이래 정부차원에서 유골봉환이 활발하게 진행되었으나, 이명박 정부로 바뀌면서 정부가 유골봉환에 의지를 보이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현재에는 부득이 순수 민간 차원에서만 유골봉환이 진행되고 있다고 하였다.

 

물론 유골봉환의 최대 걸림돌은 강제징용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일본정부의 태도라고 하겠다. 일본 정부는 강제징용이 일본 정부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진행되었음을 입증할 수많은 자료 앞에서도 끝내, 강제징용은 민간기업 차원에서 자체적으로 이루어진 일이므로 일본 정부는 유골봉환을 비롯하여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주장을 되풀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일본 정부만을 탓하고 있을 수 있는지… 힘이 없어 자국민이 이 혹한의 땅에 강제로 끌려와 노예처럼 일하는 것도 막아주지 못했던 우리나라는,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하고서도 그 유골을 봉환해오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고 있다. 국민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하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켜주는 것이 국가의 존재이유일 것인데, 과연 우리 정부는 강제징용 희생자들을 위하여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기만 했다.

 

 <둘째 여정>

차별은 조선인만의 몫이 아니었다. 홋카이도의 자연인 아이누를 만나다.

 

- 성춘일

 

8월 17일, 홋카이도 이튿날이 밝았다. 워크숍의 설렘과 고단함을 채 풀기도 전에 오타루 외곽, 해안가에 위치한 청어 잡이 박물관에서 둘째 여정을 시작했다. 가파른 언덕을 굽이굽이 두어 번 올라가자 오래된 낡은 집 한 채가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청어 잡이 어부들의 숙소로 사용되었던 집을 박물관으로 꾸며서인지 박물관 내부와 외부에 전시된 물건은 화려하거나 형식에 치우치기 보다는 100여년 전 어부들의 소박한 삶의 모습을 들려주고 있었다. 박물관 옆에는 해안가 절벽으로 이어지는 아담한 뜰이 펼쳐져 있고 바닷바람에 살랑거리는 풀밭 위, 녹슨 크고 작은 닻과 낡은 고기잡이 도구들이 어부들의 고단한 일상을 전하고 있었다.

 

연세가 제법 있어 보이는 부부가 전시관을 운영하고 있었다. 입장표를 사서 신발을 벗고 건물 내부를 천천히 둘러보는데 두터운 가죽장갑과 눈 위에서 신는 신발이 이곳이 겨울왕국임을 실감하게 했다. 남자 성인용 지게, 여자 성인용 지게, 아이들이 메는 지게를 보니 이곳 주민들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생계를 위해 청어 잡이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2층에는 당시 주민들의 의상을 걸어 놓고 방문객들이 자유롭게 입어 볼 수 있도록 했다.

 

점심시간이 다 되어 갈 무렵, 아이누족인 가와무라 켄니치(아이누 이름 : 신리츠 에오리)씨가 운영하고 있는 아이누민속박물관에 도착했다. 켄니치씨는 아이누 전통복장 입고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이 박물관은 켄니치씨의 조부가 만든 것으로, 일본 정부가 세운 학교에서 아이누 아이들의 교육을 맡길 수 없다며 아이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설립했다가 현재는 켄니치 씨가 이어 받아 아이누의 역사, 전통, 풍습을 알리는 민속박물관으로 운영하고 있다. 아이누들의 배, 의상, 그릇부터 낚시, 사냥도구까지 다양한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켄니치씨는 아이누의 역사, 전통, 풍습 등에 대해 자세히 얘기해 주었다. ‘어머니’를 뜻하는 아이누의 ‘하루코노’라는 단어는 원래 식량을 만드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고, ‘아버지’는 돈 버는 사람을 의미한다고 한다. 가족의 호칭에 가족 구성원의 역할이 녹아 있어 신기했다.

17일  아이누민속박물관 1

 

아이누족은 일본 정부가 금지하기 전까지 연어잡이와 수렵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는 민족이었다. 그런데 일본 정부가 메이지유신 이후 홋카이도를 점령하더니 홋카이도 전체를 일본 정부의 관할 하에 두면서 아이누족들은 일정한 구역에서만 거주할 수 있도록 하고 아이누들의 생활수단이었던 연어잡이와 수렵을 금지했다.

 

일본 정부는 홋카이도를 다스리기 위해 일본 본토 주민들을 이주시켰다(둔전병으로 근무하는 일본인에게 일정 면적의 홋카이도 땅을 나누어 주어 유인함). 아이누들이 농사를 지으면 홋카이도 땅을 나누어 주겠다고 하였으나, 농사를 지어본 경험이 없는 아이누들은 농사를 지을 수 없었고 결국 이들은 자신들의 터전을 모두 빼앗기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일본 정부는 아이누들이 자신들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물론 아이누 전통의 결혼식을 올리는 것도 금지했다. 또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이누족들의 호적에는 출생지역(아이누 거주지역)을 별도로 표기한 결과, 아이누 거주 지역 출신들은 공직 진출을 금지당하거나 교육 기회가 제한되는 등 많은 차별을 받았다고 한다. 현재 출신 지역 표기제는 없어져 눈에 보이는 차별은 사라졌지만 보이지 않는 차별은 여전하다고 한다.

 

아이누 사람들은 몇 년 전 일본정부를 상대로 본래 자신들이 주인이었던 홋카이도를 돌려달라고 반환소송을 제기했다가 패소했다고 한다. 수렵민족인 아이누들에게는 아메리카 인디언들처럼 자연을 소유한다는 인식이 희박했고, 문자도 없었던 탓에 땅에 대한 소유관계를 표시한 공부 자체가 없었다. 고도 문명의 발명품인 글자로 표기된 문서를 가지고 다투는 법적 소송에서 이들의 패배는 어쩌면 예정된 결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억센 모기마저도 정겨워진 숲 속 고겐사에서의 깊은 밤

17일  고겐사2

 

점심을 해결한 후, 북쪽으로 한참을 달려 슈마리나이 댐 부근에 위치한 고겐사에 도착했다. 고겐사는 현재 ‘동아시아 공동워크숍’의 개최 장소이자 홋카이도 역사교육의 학습장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고겐사가 평화교류와 역사교육의 장소로 변모한 것은 1976년 도노히라 요시히코 씨가 고겐사 본당에서 죽은 이들의 이름, 나이, 사망 연원일이 적힌 다량의 위패를 발견하면서부터이다. 위패에는 조선인으로 보이는 것도 있었다고 한다. 이후 그는 승려로 활동하면서 위패의 주인공들이 어떻게 죽음을 맞게 되었는지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들의 죽음이 슈마리나이 댐 공사와 철도 공사 도중 희생된 사람들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학습장 내부 각 벽에는 유골 발굴 작업과 유골 반환을 위한 각종 활동이 담긴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현재 밝혀진 바에 의하면 슈마리나이 댐 공사와 철도 공사로 희생된 이는 210여명 정도인데 그 중 40여명이 조선인이었다고 한다.

 

저녁을 먹기 전 슈마리나이 댐을 둘러보기로 했다. 어둠이 조금씩 밀려오는 시간, 일본 최대의 인공호수인 슈마리나이 호수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여름을 잊게 만들 정도로 제법 매서웠다. 거대한 댐의 수문이 물길을 가로막고 서 있고 10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거대한 콘크리트 기둥 탑이 수문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 탑은 슈마리나이 댐 공사 도중 사망한 수백 명의 희생자를 위로하기 위해 세운 탑인데, 정작 탑에는 희생자들을 기리는 희생자들의 이름 대신 ‘순직자 위령탑’이라는 이름과 댐을 건설했던 우류전력 사장 아다치 다다시 이름만이 새겨져 있다. 슈마리나이 댐 공사로 희생자가 많이 발생하자 이 지역 사람들이 우류전력에 이들을 위로하는 위령비라도 세워 줄 것을 요구했는데, 위령비 세울 돈 조차 아까웠던 아다치 다다시는 자재를 운반하기 위해 건설했던 교각의 기둥을 옮겨와 이 탑을 세웠다고 한다.

 

일본 각지는 물론 우리나라와 중국에서까지 강제로 끌려와 새벽 4시부터 밤 9시까지 강제노역에 시달리다 죽어간 사람들에게 위령비 세울 돈조차 아까워했으니 이들이 당시 노동자들에게 얼마나 혹독하게 대했을지 상상이 되었다. 슈마리나이 댐 공사의 참혹함은 이 공사장 집단합숙소의 이름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당시 사람들은 슈마리나이 댐 공사장 근처에 있는 집단합숙소를 어항에 들어간 문어가 다시 나올 수 없는 것처럼 이 합숙소에 잡혀 들어간 자는 살아서는 나올 수 없다는 의미로 ‘타코베야(문어방)’라고 불렀고, 사람들 사이에서 이 타코베야는 죽음과 공포의 대명사였다고 한다.

 

저녁식사 후, 고겐사에서 위패가 발견된 후 위패의 주인인 유골 발굴 작업과 한‧일 교류를 통해 수십년 동안 유골 봉환운동을 했던 오노데라 마사미(小野寺正巳)교수님과 야마자키 다다시(山崎忠司) 선생님으로부터 슈마리나이 공사 현장의 참혹함은 물론 유골 봉환 운동에서의 에피소드 등 유골 봉환활동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야기는 밤이 깊도록 계속 이어졌다.

17일  변호단회의

 

앞이 잘 보이지 않아 지팡이를 짚어야 하는 힘든 몸을 이끌고 고겐사에 도착한 직후부터 슈마리나이 댐, 조선인 유골 매장지까지 우리를 안내해 주신 오노데라 교수님, 일흔 셋의 연세에도 유골봉환 운동을 계속하고 계신 야마자키 다다시(山崎忠司) 선생님, 누가 알아주어서가 아니라 살아남은 누군가는 꼭 해야 할 일이기에 묵묵히 수십 년 동안 자신들의 활동을 이어가고 두 분의 모습은 마음에 큰 울림을 남겼다. 밤이 깊어가는 것도 잊고 한 잔 한 잔, 비워지는 술잔은 늘어만 간다. 그리고 우리들의 추억도.

 

 

<셋째 여정>

새하얀 메밀밭 한 가운데서 굳은 도약을 외치다.

 

- 이동준

 

고겐사(光顯寺) 조릿대 묘표전시관에서의 숙박. 겨울이면 기온이 영하 41도까지 내려간다는 슈마리나이답게 새벽의 추위가 제법 매서웠다.

 

일본 남자들은 “매일 아침 나에게 된장찌개를 끓여줘요”라고 청혼한다는 우스갯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어디선가 진짜 일본된장국 냄새가 발길을 이끌었다. 모두들 한솥밥을 떠서 둘러앉아 정겹게 식사하면서 돈독한 정을 나누었다.

 

고겐사를 떠나면서 우리는 9월 본국 봉환 예정인 희생자들의 유골을 살피고 위령의 의미를 담아 묵념하는 시간을 가졌다. 70여년의 긴 세월 동안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유골로 남아있는 희생자들의 원혼을 떠올리니 가슴 한 켠이 아파왔다. 이제는 고국으로 돌아가 편히 잠드실 수 있기를 기원하며 다음 달에 돌아오시는 길 또한 밝혀드릴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하였다.

18일 아침  유골

 

버스를 달려 슈마리나이(朱鞠內) 호수가에 도착하였다. 동양 최대의 인공호가 보여주는 절경에 감탄사가 나왔지만 잔뜩 찌푸린 하늘과 세찬 물살이 강제징용 희생자들의 슬픔을 담은 듯 느껴져서 이내 숙연해졌다.

 

삿포로 시로 이동하는 길에는 광활한 메밀밭이 계속되었다(농업은 홋카이도 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일본의 총 경작 가능한 땅의 4분의 1이 홋카이도에 있다고 한다). 우리는 백은의 언덕이라 명명된 사진촬영지 및 시마다야란 회사의 계약 농장터에서 단체사진을 남겼다. 새하얗게 펼쳐진 메밀밭을 보며 아름다움을 느끼는 한편으로 그들이 가진 풍요로움에 대해 부러운 마음 역시 들었다.

18일  메밀밭2

 

이어서 방문하게 된 곳은 다카도마리의 한 공동묘지였다. 슈마리나이 댐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후카가와시 다카도마리 공동묘지에는 2명의 조선인을 포함한 5명의 피해자가 묻혀 있었고 그들을 기리기 위한 위령비가 만들어져 있었다. 그들 외에도 더 많은 희생자들이 그 인근에 매장되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매장 추정지 위로 일반인들의 공동묘지가 들어서 있어 발굴 작업이 어렵다고 하여 몹시 안타까웠다.

 

이어서 이치조지(一乘寺)와 부설 다도시(多度志) 보육원을 방문하였다. 보육원은 이치조지의 주지스님이 서양식 어린이집을 모티브로 하여 만든 공동육아 어린이집의 모델이었는데, 서양식 종탑과 일본 특유의 견고하고 단정한 목재구조의 건물이 인상적이었고, 해맑은 아이들의 미소는 발길을 돌리기 어렵게 하였다. 벽면에는 매해 어린이들의 졸업 작품으로 공동 제작된다는 대형 판화가 걸려 있어 눈길을 끌었다. 많이 인상적이었는지 보육원을 떠난 뒤에도 동심을 가득 담은 어린이들 특유의 그림체가 자꾸만 머리에 남았다.

 

강제징용이 이루어지던 시절엔 하루가 걸려도 당도하지 못하던 길을 이제는 반나절이면 왕복할 수 있게 되었다. 이토록 우리의 문명은 그 외관(外觀)이 눈부시게 진보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내면(內面)은, 특히 과거사 문제에 있어서는 한국도 일본도 야만(野蠻)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자꾸만 과거로 회기하려 하고 있다. 수십 년이 지나서도 계속 야만과 대치해야하는 작금의 현실에 맞서 우리는 계속해서 투쟁하고 마침내는 승리할 것을 다짐한다.

 

변호사는 단순히 “타인의 송사(訟事)”만을 대리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삶”을 대리하면서 몇 배의 인생을 살아간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번 워크숍은 보고 듣고 느끼는 시간을 거쳐 우리가 힘이 되어드리고자 하는 그분들의 삶에 조금이나마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보고 듣고 느껴서 담은만큼 무거운 마음을 금할 길 없지만, 변호단이 “일시적인” 부침을 겪고 있는 지금, 단단히 심신을 다잡고 도약할 수 있게끔 해주는 뜻 깊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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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지부 소식

조애진 변호사

 

◎ 부산퀴어문화축제 참가

2018. 10. 13. 부산 해운대 구남로에서는 제2회 부산퀴어문화축제가 열렸습니다. 작년과 달리 올해는 우리 민변 부산지부에서 ‘법률지원’을 목적으로 단독 부스를 설치․ 운영하였습니다. 인천 퀴어문화축제때 보수기독교단체가 축제참가자들에게 언어적, 물리적 폭력을 행사한 일이 있었던 터라, 부산퀴어문화축제 기획단이 특별히 걱정을 많이 하고 있었고, 인천과 같은 불상사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부산 민변 회원들이 적극 나서게 되었습니다.

금년에도 해운대구청은 축제 행사용 부스설치를 위한 도로점용을 불허했습니다. 이에 대해 부산기독교 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 민주노총 부산본부, 부산에서 활동하는 진보정당 등 많은 단체에서 해운대구청의 처분을 규탄하는 성명서를 냈고, 우리 민변 부산지부도 “해운대구청은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중단하고, 제2회 퀴어문화축제의 평화로운 개최를 보장하라”라는 제목으로 성명서를 발표하였습니다.

이처럼 많은 이들의 노력으로, 제2회 부산퀴어문화축제는 큰 사고 없이 성황리에 끝났습니다. 물론 아쉬웠던 점도 많았습니다. 축제를 방해하려는 혐오세력은 올해 더 크게 행사를 준비하였고 빵빵한 음향시설을 갖춘 초대형 무대를 해운대 구남로에 설치하였습니다. 때문에 몇몇 변호사님들은 행사장소를 오인하여 혐오세력의 행사에 다녀오시는 해프닝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혐오와 차별의 목소리로는 해운대 구남로에 펼쳐진 성소수자들의 자긍심과 다양성의 축제를 결코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많은 ‘엘라이’들이 성소수자와 함께 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자리였고, 민변 부산지부도 그 자리에 함께 할 수 있어서 기쁘고 자랑스러웠습니다.

* 부산지부 회장님과 사무국장님이 부스에 부산민변 무지개 깃발을 설치중

 

 

 

◎ 젠더위원회 페미니즘 독서모임

민변 부산지부 젠더위원회는 올해 최대의 화두가 ‘미투운동’이라는데 공감하는 회원들의 제안으로 2018년 초에 만들어져 활발한 활동을 해오고 있습니다. 첫 사업으로 ‘페미니즘 독서모임’을 추진하여 8월에는 <페미니즘의 도전-정희진>, 9월에는 <사랑은 사치일까-벨훅스>, 10월에는 <이갈리아의 딸들-게르드 브란튼베르그>를 읽고 토론을 하였고, 11월에는 <빨래하는 페미니즘-스테파니 스탈>을 읽고 이야기를 나눌 예정입니다.

 

◎ 차별금지법 제정연대 활동

뿐만 아니라 민변 부산지부는 ‘차별금지법제정연대(부산)’에 회원조직으로 참여하여 다양한 소수자 지원활동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4월에는 수영구의회의 인권조례 개악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에, 5월에는 경찰의 성소수자인권단체에 대한 과잉 정보수집을 규탄하는 기자회견 및 부산에서는 처음으로 열린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 날-아이다호 데이”를 기념하는 아이다호 문화제에 참여하는 등 바쁜 재판 일정 속에서도 적극적인 참여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 나가며…

민변 부산지부는 지역사회에서 민변의 역할과 소명에 대해 항상 고민하면서 지역의 시민단체, 진보정당와 연대하고, 성소수자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를 지원하는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젠더위원회의 설치를 필두로 하여 앞으로 다양한 위원회 구성을 통해 더욱 활발한 활동을 해나갈 것입니다. 민변 부산지부의 활동에 대하여 전국 회원님들의 많은 관심과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The post [부산지부] 부산지부 활동소식 – 부산퀴어문화축제 참가 외 appeared first on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 민변.

수, 2018/11/14-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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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위원회 활동 소식

– 이지영 변호사

1. 삼성에 맞서다 – 삼성노조파괴대응팀의 시작

2018년 2월 검찰은 이명박의 다스소송비 대납건으로 삼성전자 본사와 서초동 사옥을 압수수색하다 우연히 노조와해 정황이 담긴 외장하드와 문건 6,000건을 확보했습니다. 문서 이름은 이른바 “마스터플랜”. 2013년 심상정 의원이 폭로한 “S그룹 노사전략 문건”과 사실상 같은 것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삼성의 모든 노조를 파괴하려는 전략서같은 것이지요. 4월, 노동위에 “삼성노조파괴대응팀”이 만들어졌습니다. 이번에야말로 삼성의 노조파괴범죄를 단죄할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으로 노동위(그리고 민생위) 변호사들이 모이게 되었습니다.

 

2. 지속적인 관심 – 언론모니터링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지는 기사를 매일 모니터링하기로 했습니다. 지금까지 주말을 포함해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언론모니터링을 하고 있습니다. 대응팀 내부만이 아니라 노동위 전체 텔레그램 방에서도 공유하고 있습니다.

 

3. 변호사로서 싸우다 – 고소고발 및 기자회견

대응팀에서 제일 먼저 한 것은 4월 23일 중앙지검 앞에서 “S그룹 노사전략 문건”에 대해 다시 고소·고발하고 삼성의 무노조경영 폐기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연 것입니다. 2013년 심상정 의원이 폭로한 “S그룹 노사전략 문건”은 삼성의 악랄한 노조파괴 범죄의 증거였으나, 무혐의처분되었습니다. 2018년 “마스터플랜 문건”이 발견된 것은 5년 전 “S그룹 노사전략 문건”을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같은 날 삼성전자서비스의 불법파견 판정번복, 부당노동행위 무혐의의견 등 고용노동부와 삼성의 유착의혹에 대한 수사촉구서도 제출하였습니다. 5월 1일엔 이정미 의원실이 주관한 ‘삼성그룹 노조파괴 국정조사’ 추진 기자회견에 참석했습니다. 15일에는 민주노총이 주관한 기자간담회에 참석했습니다. “S그룹 노사전략 문건”, 불법파견, 부당노동행위, 염호석 열사 장례방해에 대한 수사경과와 검찰수사 10대과제를 선정하여 발표하였습니다. 17일에는 청와대 앞에서 검찰수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졌습니다. 18일에는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에 염호석 열사 장례방해 사건에 대한 진정서를 제출하고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대응팀은 경찰, 검찰, 국회, 청와대를 가리지 않았습니다. 7월 4일 삼성과의 유착이 드러난 고용노동부 공무원들을 직접 고발하고, 수사를 의뢰했으나, 9월 공소시효 만료를 앞두고 수사를 진행하지 않는 검찰에 대해 며칠 전 8월 22일 중앙지검 앞에서 수사촉구 기자회견까지 열었습니다.

 

4. 머리를 맞대고, 함께 싸우다 – 토론회와 공동 집회

8월 17일에는 국회에서 삼성의 조합원들과 함께 “삼성노조파괴 현장증언대회 및 부당노동행위 제도개선 토론회”를 열었습니다. 삼성지회,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삼성웰스토리지회, 삼성테크윈지회 동지들이 직접 삼성의 노조파괴 범죄를 생생하게 증언하였고, 대응팀에서는 그동안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법원, 검찰, 노동부의 태도를 비판하고, 입법안을 내놓았습니다. 그 자리에는 고용노동부 노사관계법제과장이 직접 나왔지만, 노동부의 획기적인 태도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였습니다. 7월 11일에는 당시 반올림 농성장 철거 전이라 농성장에서 민변노동위, 금속노조법률원, 노노모, 철폐연대 등 법률단체 공동집회를 열었습니다.

 

5. 투쟁은 계속된다 – 성과와 과제

외부적으로는 삼성전자서비스지회와 삼성사측 사이의 직접고용합의가 있었고, 반올림도 삼성과의 조정안을 받고 농성장을 철거하는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대응팀의 고소고발 결과 수사가 진행되기도 하고, 노조·시민단체와 연대하여 기자회견을 열고 언론에도 보도되었습니다. 염호석 열사 장례방해 사건은 대응팀의 진정 결과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의 조사결정이 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삼성의 최모 전 전무, 송모 전 노동부보좌관, 김모 전 경정 등이 부당노동행위로 구속되어 재판중이지만, 법원은 부당노동행위의 구속영장청구 15건 중 11건을 기각하고, 피해자인 노조의 기록열람등사도 허가하지 않고 있습니다. 대응팀의 활동이 한시적일 수 없는 이유입니다.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삼성의 노조파괴범죄를 제대로 처벌하고, 고통받고 있는 노동자들의 피해를 회복하며, 무엇보다 삼성에서도 제대로 노동조합 활동을 할 수 있을 때까지 대응팀의 활동은 계속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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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18/08/30-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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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퀴어문화축제 참가 후기

이승경 변호사

지난 9월 8일, 인천에서는 처음으로 퀴어문화축제가 열리는 날이었습니다.

이미 서울을 비롯하여 전국의 많은 지역에서 퀴어문화축제가 열리던 차에, 인천에서도 드디어 퀴어문화축제가 열리게 되었는데, 첫 단추를 꿰는 단계에서부터 어려움에 부딪치게 되었습니다.

인천퀴어문화축제 개최를 반대하는 측에서는 인천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이하 ‘조직위’)측에서 이미 합법적으로 집회신고까지 마친 집회를 아예 원천봉쇄하기 위하여 시작단계부터 꾸준히 반대 집회 및 선전전 등으로 행사 개최를 방해하여 왔고, 결국 인천광역시 동구청은 조직위측에서 행사장소로 정한 동인천역 북광장에 대한 사용 신청을 불승인하게 되어 반대세력 측에서는 마치 퀴어문화축제를 개최하는 것이 불법인 것처럼 여론을 호도하였습니다.

이에 조직위측에서 민변 인천지부에 법률자문을 요청해와 법률조력을 하게 되었습니다.

퀴어문화축제 개최를 반대하는 측에서는 집회금지 가처분 신청까지 하였으나, 민변 인천지부의 법률조력을 통하여 행사 전날인 9월 7일 기각 결정이 나왔고, 조직위측은 인천지방경찰청 및 인천중부경찰서측에 충분한 경찰 인력을 파견하여 평화롭고 안전한 행사를 보장해줄 것을 요청하였고, 경찰측은 최대한 많은 경찰 병력을 투입하여 행사의 안전을 보호해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인천퀴어문화축제에 앞서 개최되었던 서울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반대 집회가 있더라도 경찰측의 보호를 통하여 평화롭고 안전한 행사가 가능할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드디어 9월 8일 행사 당일 오전, 인권침해 감시 등 집회 법률지원을 위하여 행사 장소인 동인천역 북광장에 도착하였으나 분위기는 심상치 않았습니다.

조직위측에서 합법적으로 집회 신고한 북광장을 반대세력이 전날부터 무단점거하여 집회를 진행하고 있었고, 무대 및 부스 설치를 위한 트럭조차 진입할 수 없도록 길목 곳곳에 무단으로 차량이 주차되어 있었습니다.

당시 경찰은 반대세력의 불법 집회가 있을 경우 해산시키겠다고 조직위측에 약속하였으나, 행사 진행을 위한 차량들이 진입을 시도하면서 길을 가로막고 있는 불법주차차량을 견인하려고 할 때마다 반대세력측에서 몰려와 차량 밑에 들어가고 견인차량 앞에 드러눕는 등 방해하였고, 경찰은 집회장소를 불법점거하고 있는 반대세력을 제대로 해산시키지도 못하여 행사의 정상적인 진행이 거의 불가능한 사태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거리행진을 위해 나온 참가자들이 행진을 막고 있는 반대세력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

당시 반대세력의 인원수에 비하여 경찰측 인원이 많이 부족하여 경찰측은 북광장 한쪽 구석만을 확보하였고, 그 좁은 장소로 퀴어문화축제 참가자들을 모았으나, 반대세력측에서 폭력적으로 경찰벽을 뚫고 안쪽으로 진입을 시도하였고, 안쪽으로 뚫고 들어온 반대세력들과 퀴어문화축제 참가자들이 서로 섞여 있는 상황에서도 경찰측은 인력부족으로 방어벽이 무너질 우려가 있다며 반대세력들을 바로 연행하거나 해산시키지 않고 조금씩 이들을 밖으로 내보내는 정도의 소극적인 대응을 했습니다.

오전부터 와 있던 퀴어문화축제 참가자들과 스탭들은 사실상 외부와 고립된 상태가 되었고, 밖에서 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하기 위해 광장으로 향하던 참가자들은 경찰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반대세력에 둘러싸여 폭행 및 폭언 등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피해를 고스란히 받았습니다. 구체적인 피해 사례를 살펴보면, 참가자들이 안쪽으로 들어오거나 대치하는 과정에서 반대세력에게 옷을 찢기거나, 폭행을 당하거나, 심지어는 깨물리거나 안쪽에 전달하려던 음식 등을 빼앗기거나 갖고 있던 깃발을 훼손하는 등 수많은 혐오범죄가 자행되었습니다.

경찰벽 안에 고립되어 있던 참가자들과 스탭들에게 음식물 등을 전달할 수도 없어 어려운 상황이 계속되었으나, 이러한 상황에서도 참가자들은 부스에서 판매하려던 굿즈들을 좌판을 벌여 판매하기도 하였고, 음악을 틀어놓고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나름 흥겹게 작은 퀴어문화축제를 즐기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오후가 되어 퀴어문화축제의 백미인 퍼레이드를 진행하려고 시도하였는데, 반대세력 측은 참가자들의 퍼레이드를 막기 위하여 몸싸움은 물론 퍼레이드 차량의 진입을 방해하기 위해 타이어 펑크까지 내고 깃발을 훼손시키는 등 온갖 불법행위를 자행하였으나 여전히 경찰은 소극적이었고 안전한 퍼레이드를 위한 통로 확보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지난한 대치를 거쳐 경찰이 통로를 확보하여 불과 20분이면 충분히 갈 수 있던 거리를 무려 5시간 정도나 걸려 가게 되었고, 우여곡절 끝에 정식으로 폐회 선언을 하고 제1회 인천퀴어문화축제는 끝나게 되었습니다.

현재 서울을 비롯하여 대구, 부산, 제주, 전주 등지에서 퀴어문화축제가 개최되었고 거의 매번 반대 집회는 있어왔으나 이번 인천의 경우처럼 아예 무대 및 부스 설치 자체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반대세력의 폭력이 도를 넘어 행사 자체가 파행된 것은 처음이라고 합니다.

이에 조직위측은 9월 10일 인천퀴어문화축제 혐오범죄 조장한 인천지방경찰청장과 동구청장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였고, 각종 피해사례를 접수하여 향후 고소고발을 진행하기로 하였습니다.

민변 인천지부는 민변 소수자위원회와 공동법률지원단을 구성하여 인천퀴어문화축제 집회 방해등 각종 피해사례와 관련한 고소고발 및 인권위원회 진정 등을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아울러, 인천은 일부 종교단체의 반대로 인하여 전국 광역지방자치단체 중 유일하게 인권조례가 제정되어 있지 않은 곳으로, 이번 사태와 관련하여 더욱 더 적극적으로 인권조례제정운동에 나서야 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P.S. 10월 3일에는 인천 구월동 로데오거리에서 인천퀴어문화축제 혐오범죄 규탄집회가 열렸고, 이날은 다행히 경찰이 지난번의 일을 교훈으로 삼아 상대적으로 좀 더 대응이 잘 되어 이른 시간부터 반대세력을 막는 노력을 했고, 거리행진 등 집회 안전 보호가 비교적 잘 이루어져 9월 8일과 같은 큰 충돌은 없이 집회가 마무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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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18/10/04-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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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자인권위원회 활동 소식

 

지난 달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은 취임사에서 ‘평등권 실현과 혐오·․배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차별금지법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민변은 그동안 차별금지법의 제정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꾸준히 내왔으며,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범시민사회·인권단체 연대체인 차별금지법제정연대에 2012년 출범 당시부터 함께 해왔습니다. 이번 소수자인권위원회 소식에서는 2018년 진행 중인 차별금지법 제정 논의와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의 활동 소식을 전해드리려 합니다.

 

1. 차별금지법 제정 유예, 만 10년의 역사

차별금지법은 헌법상 평등권을 실현하기 위한 법률로서, 차별의 개념, 국가·지자체등의 차별시정의무, 차별금지의 구체적 내용, 차별의 구제 등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차별의 사유와 영역을 포괄적으로 규율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포괄적 차별금지법이라고도 불립니다. 현대사회에서 차별의 예방과 시정 문제가 매우 중요하고 또 단일 사유를 기반으로 한 차별금지법만으로는 현실의 복합적인 차별 상황을 다루는데 한계가 있다는 문제의식이 발전하면서, 많은 국가에서 이러한 포괄적인 형태의 차별금지법을 제정하여 시행하고 있습니다. 영국의 평등법, 독일의 일반동등대우법, 캐나다의 인권법 등이 이러한 성격의 대표적인 법률들입니다.

 

2006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차별금지법의 제정을 권고하고 2007년 차별금지법안들이 처음 발의한 이후 1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한국사회에서 차별금지법은 아직 만들어지지 못했습니다. 10년 간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해온 목소리들은 ‘동성애에 반대한다’, ‘이슬람과 난민은 한국에 들어와서는 안 된다’, ‘차별금지조항으로 인해 청소년의 임신출산이 조장된다’는 내용들로, ‘어떠한 사회구성원들은 법을 통해 평등권을 보장받아서는 안 된다’는 반(反)헌법적인 주장들입니다. 그럼에도 그동안 정부는 차별금지사유를 둘러싼 ‘사회적 합의’가 부족하다거나 ‘사회적 논란’이 있어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반복함으로써, 이러한 반헌법적인 주장들을 경청할 가치 있는 하나의 ‘사회적 의견’으로 승인하여주었습니다. 결국 누군가의 반대가 있다면 인권과 평등이라는 가치도 꺾일 수 있는 것이고, 어떤 사회구성원을 차별하거나 모욕하는 주장이 있어도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니 받아들여야 한다는 신호가 10년 넘게 사회에 울려퍼지게 되었고, 그 효과가 2018년 현재 인권 관련한 각종 법·제도·정책의 추진을 가로막고 전국의 인권 조례를 폐지하며 각종 차별과 혐오을 선동하는 힘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2. 제정 유예 국면을 넘어 평등한 사회로,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재출범과

이처럼 차별금지법 제정이 유예되어온 10년의 역사는 그저 하나의 법을 보류한 것이 아니라 차별과 불평등의 구조를 적극적으로 승인하고 더욱 공고하게 만들어온 과정이었습니다. 혐오를 앞세운 주장들의 눈치를 보느라 차별금지법 제정이 유예되고, 이것이 다시 인권과 관련한 모든 법·제도·정책의 추진을 가로막는 지금의 국면을 적극적으로 넘어서지 않으면 우리 사회의 인권, 평등의 가치는 계속 후퇴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쌓이게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2017년 초 차별금지법제정연대(https://equalityact.kr)가 재출범하게 되었습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재출범 선언 기자회견

 

2018년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장애, 여성, 이주난민, 성소수자 등과 관련된 각종 반차별 집회에 함께 하고, 영역별·지역별 간담회를 진행하며, 2018년도 새로운 차별금지법안을 준비해왔습니다. 2018년 10월 현재 118개 시민·인권단체가 차별금지법제정연대에 함께 하고 있습니다. 전북, 대구경북, 부산, 광주, 충남 등 전국 각지에서도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는 지역 연대체들이 결성되어 활동을 시작했거나 그 결성을 위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5. 1. 메이데이 평등의 행진

 

6. 10. 난민문화제 평등의 행진

8. 29. 차별금지법제정을 위한 첫 번째 토론회 <차별금지법, 궤도에 올리다>

 

3. 10.20 차별금지법 제정촉구 평등행진 “우리가 간다”

21대 국회에서는 아직 차별금지법안이 발의되지 않았습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그동안 각계 간담회와 토론회, 자문 등을 거치며 2018년도 법안을 준비해왔으나 국회는 아직 소극적인 분위기입니다. 그동안 차별금지법과 각종 인권법들을 발의하였다가 항의를 받고 법안을 철회하는 경험을 해왔기 때문입니다.

이미 많은 국가들이 제정하여 시행하고 있는 기본법인 차별금지법을 비롯하여 인권 관련 법들을 제대로 발의하지도 못하고 있는 현재의 상황은 심각하게 비정상적입니다. 지금은 그러한 차별과 혐오의 목소리에 휘둘릴 필요가 없다는 것, 우리 사회 각계각층과 시민들은 모든 사회구성원들이 평등권을 보장받는 사회를 지지한다는 것을 강하게 보여주는 것이 필요한 때인 것 같습니다.

이를 위해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10월 20일(토) 14:00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평등행진 <우리가 간다>”를 엽니다. 광화문에서 국회까지 행진하며 ‘모두가 존엄한 평등사회’를 위해 차별금지법을 요구하는 사회구성원들의 목소리를 모아내는 집회입니다. 10월 20일 전에는 평등행진을 지지하는 각계각층의 평등선언이 준비되고 있습니다.

민변 깃발 아래 평등선언과 10.20 평등행진에 함께 합시다. 12:30 세종로 사전대회로 열리는 2018 Refugees Welcome 문화제부터 함께 해주세요! 세계인권선언 70주년인 올해를 모두의 존엄과 평등을 재선포하는 원년으로 만들어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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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18/10/04-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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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사청산위원회 뉴스레터: 부위원장의 일기

이동준 변호사

명절과 공휴일로 여유롭던 시절은 가고 몰아치는 기일 속에 모두가 바쁜 10월입니다. 과거사청산위원회(이하 ‘과거사위’)의 인재들이 격무에 시달리느라, 이번엔 부득이 재주 없는 부위원장이 뉴스레터를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일기를 쓰듯이 10월의 월례회를 돌아보면서 최근 과거사위의 활동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월례회가 있는 날, 30분 정도 일찍 회의실에 도착해서 월례회 자료집을 검토합니다. 혹시라도 확인하지 못한 사무처 일정이 있는지, 오늘의 안건들은 어떻게 논의하는 것이 좋을지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전차회의록 외에도 유독 별첨 자료가 많은 날입니다. 입법의견서 검토가 예정되어 있고, 내부세미나도 예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식사가 도착하고 위원님들이 한 분 한 분 도착하시고 서로 안부를 묻습니다. 10월 월례회는 11명이 모여서 회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사무처 보고 및 공지를 살핍니다. 이번 달 25.에 와인과 함께하는 신입회원 간담회가 예정되어 있어서, 부위원장들이 와인을 찬조하기로 하였습니다. 저희가 신입회원님들을 환영하는 마음 호수만하니 와인으로 보낸들 그에 미치지 못하겠지만 성심성의껏 준비해서 즐거운 자리가 되는데 일조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어서, 위원회 보고사항을 하나 둘 짚어봅니다. 긴급조치 관련 헌재결정에 대한 토론회가 주 보고사항 중 하나였는데, 과거사위는 긴급조치 변호단과 공동으로 이번 달 17일에 토론회를 예정하고 있었습니다만 부득이 그 일정을 다음 달 6일로 변경하게 되었습니다. 실제 계속 중인 사건들을 위한 준비 차원에서 개최되는 토론회이기에 실속있게 진행되서 피해자들 구제에 큰 힘이 되어주길 희망합니다.

오늘 월례회에서는 이상희 변호사님을 단장, 김성주 변호사님을 간사로 하여 “부적절한 서훈 취소자 명단에 대한 정보공개청구 거부처분 취소소송” TF팀이 창단하였습니다. 정부는 2018. 7. 10. 제30차 국무회의에서 ‘80년대 간첩조작사건 관련자 등에 대한 부적절한 서훈을 대대적으로 취소하였다’고 발표하였습니다. 우리 위원회와 인권의학연구소는 2018. 7. 17. 위 부적절한 서훈 취소의 국무회의 내용 및 취소 대상자의 명단과 구체적인 취소 사유 등에 대하여 정보공개를 청구하였으나, 행정안전부는 2018. 7. 30. 서훈취소 대상자 명단은 비공개 대상 정보라는 이유로 거부 처분을 하였습니다. 이에 우리 위원회는 인권의학연구소와 함께 정부의 정보공개거부처분에 대한 취소소송을 제기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우리 위원회는 그 동안 과거사의 청산을 재심이나 손해배상 등 피해자를 중심에 두고 다루어왔으나, 이제 그 외연을 확장하면서 ‘과거사 사건의 가해자에 대하여 어떤 조치가 필요한지’의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이고자 합니다. 이번 서훈 취소자 명단에 대한 정보공개청구 거부처분 취소소송은 그 시발점이 될 것입니다.

인권보고대회 준비의 건입니다. 과거사위는 이번 인권보고서에서 여섯 개의 주제를 다루고자 하는데, 진화위법 개정논의는 김성주, 양성우 변호사님이, 제주 4.3 사건은 김세은, 천지륜 변호사님이, 긴급조치사건은 저와 홍자연 변호사님, 일본군위안부사건은 서채완, 박지현 변호사님이 과거사사건에서의 사법농단은 권태윤, 이찬숙 변호사님, 형제복지원 사건은 이선경변호사님이 수고해주시겠습니다. 가급적이면 신입 위원님들이 기존 위원님들과 팀을 이루어 진행을 해보고자 하였습니다. 올해의 인권상황을 기록하고 평가하기 위한 인권보고서인만큼 신입 위원님들이 위원회 활동을 차근차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과거사위는 1월경으로 난징 워크샵이 계획되어 있습니다. ‘리지샹 위안소유적 진열관’과 ‘난징대학살 기념관’을 방문할 예정입니다. 난징 리지샹 위안소 유적진열관은 2015년 12월 1일 정식 개관하였는데, 박영심 할머니가 이곳 두 번째 건물 19번방에서 3년 동안 위안부 생활을 했다고 증언을 하자 중국 정부가 직접 나서 할머니의 증언과 여러 기록을 바탕으로 난징 중심부에 유적 진열관을 마련했습니다. 난징대학살은 1937년 12월 일본군에 의해 자행된 전쟁 범죄로, 중국 통계 기준 40일 사이에 30만 명의 중국인이 살해된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이 벌인 가장 끔찍한 만행입니다. 난징대학살기념관에는 ‘历史可以宽恕 但不可以忘却. 前事不忘 后是之師(용서할 수는 있지만 잊어서는 안 된다, 과거를 기억해 미래의 스승으로 삼아야 한다)’라는 문구가 적혀있습니다. 과거를 기억하고 피해자를 추모하면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노력할 것인지 고민하고 다짐하는 기회를 가지고자 합니다.

과거사위는 이처럼 역사적 사건의 순간을 기억하며 다짐을 새로이 하고자, 날짜를 맞춰서 성명을 내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10월 17일은 박정희가 한국적 민주주의를 정착한다는 명목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한지 46년 되는 날입니다. 유신, 긴급조치 시대는 헌법이 유린당하고 민주주의가 부정되어 전 국민이 독재정권에 고통받던 때였습니다. 그런데 국정농단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이어진 사법농단의 충격에 과연 지금은 얼마나 달라졌는가 의심해보게 됩니다. 과거사위는 사법농단을 규탄하며 사법부의 각성을 촉구하였습니다. 10월 유신 성명에도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오늘의 내부세미나는 ‘4.3 수형인 재심사건 결정문 함께보기’입니다. 실제로 사건을 진행하신 김세은 변호사님이 생생한 목소리로 사건의 진행에 대해 설명해주셨습니다. “제주 4.3 사건”은 1947. 3. 1.을 기점으로 1948. 4. 3.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 9. 21.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그 진압 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입니다. 제주 4.3 사건이 진행중이던 1948. 가을부터 1949. 7. 사이에 군법회의에서 유죄판결을 받고 수형생활을 한 피해자들이 무죄를 다투며 재심을 청구하였는데, 재심대상판결의 존부와 본안판단가능성, 재심사유의 존부 등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준비기간을 포함하여 2년 넘게 각고의 노력을 한 끝에 본건은 재심개시 결정을 받게 되었고 이달 말에 1회 공판기일을 앞두고 있습니다. 김세은 변호사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본안에서도 파이팅입니다. 이어지는 다음 월례회의 세미나는 부위원장 권태윤 변호사님이 진행하시는 형제복지원 사건 현황과 연대방안입니다. 형제복지원 사건도 최근 검찰과거사위원회의 비상상고 권고 등 기대할만한 움직임이 관측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힘을 보태주실 신입 회원들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서둘러서 진행했는데도 어느덧 시간이 이렇게나. 헤어질 시간이 되었습니다. 서둘러 마치는 느낌인데 오늘의 일기는 여기까지 써야할 것 같습니다.

차기 회의는 2018. 11. 20. 7시 민변 회의실, 여러분, 다음 회의 때 만나요!
회장님 참관이 예정되어 있는 건 비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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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18/10/22-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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