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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상의 표현의 자유 관련 판례 10선] 5.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시정요구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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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상의 표현의 자유 관련 판례 10선] 5.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시정요구 사건

익명 (미확인) | 화, 2015/08/25- 11:17

[인터넷상의 표현의 자유 관련 판례 10선]

- 다섯 번째 판례 :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시정요구 사건1) -*

 

1. 사건의 배경

甲은 포털사이트인 ○○의 블로그에 재활용 폐기물로 생산된 국내산 시멘트의 유독성에 관한 글을 게재하였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한국□□협회 등으로부터 이 게시글에 대한 심의신청이 제기되자, 이를 심의한 후 이 게시글이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정보통신망법’이라 한다) 제44조의7 제1항 제2호 소정의 불법정보인 ‘비방 목적의 명예훼손 정보’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2009. 4. 24.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이하 ‘방송통신위원회법’이라 한다) 제21조 제4호, 같은 법 시행령 제8조 제1항, 제2항에 근거하여 ○○에 대하여 이 게시글의 삭제를 요구하였다(이하 ‘이 사건 시정요구’라 한다). 甲은 이 사건 시정요구에 대하여 이의신청을 제기하였으나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2009. 6. 23. 이의신청을 기각하자, 2009. 8. 31. 방송통신심의위원회를 상대로 서울행정법원에 이 사건 시정요구의 취소를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으며, 서울행정법원은 2010. 2. 11. 甲의 청구를 인용하는 판결을 선고하였다. 이에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항소하여 항소심 계속 중이던 2010. 6. 8. 甲은 방송통신위원회법 제21조 제4호, 정보통신망법 제44조의7 제1항 제2호에 대하여 서울고등법원에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을 하였고, 서울고등법원은 2011. 2. 1. 그 중 인터넷 콘텐츠에 대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 및 시정요구의 법적 근거조항인 방송통신위원회법 제21조 제4호(이하 ‘이 사건 법률조항’이라 한다)2)에 대한 신청을 받아들여 위헌법률심판제청을 하여 헌법재판소에 이르게 된 것이다.

 

2. 헌법재판소 결정의 주요 내용

헌법재판소가 이 사건에서 내린 핵심적인 판시사항은 다음 두 가지이다.

첫째,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시정요구의 법적 성격이다. 이와 관련하여 공권력 행사의 주체인 국가행정기관인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시정요구는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 등에게 조치결과 통지의무를 부과하고 있고,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 등이 이에 따르지 않는 경우 방송통신위원회의 해당 정보의 취급거부‧정지 또는 제한명령이라는 법적 조치가 예정되어 있으며, 행정기관인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게 되는 결과의 발생을 의도하거나 또는 적어도 예상하였다 할 것이므로, 이는 단순한 행정지도로서의 한계를 넘어 규제적ㆍ구속적 성격을 갖는 것으로서 헌법소원 또는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공권력의 행사라고 봄이 상당하다고 보았다.

둘째, 인터넷 콘텐츠에 대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 및 시정요구의 법적 근거조항인 방송통신위원회법 제21조 제4호의 위헌 여부이다. 헌법재판소는 이 사건 법률조항 중 ‘건전한 통신윤리’라는 개념은 다소 추상적이기는 하나, 전기통신회선을 이용하여 정보를 전달함에 있어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최소한의 질서 또는 도덕률을 의미하고, ‘건전한 통신윤리의 함양을 위하여 필요한 사항으로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정보(이하 ‘불건전정보’라 한다)’란 이러한 질서 또는 도덕률에 저해되는 정보로서 심의 및 시정요구가 필요한 정보를 의미한다고 할 것이며, 정보통신영역의 광범위성과 빠른 변화속도, 그리고 다양하고 가변적인 표현형태를 문자화하기에 어려운 점을 감안할 때, 위와 같은 함축적인 표현은 불가피하다고 할 것이어서, 이 사건 법률조항이 명확성원칙에 반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그리고 헌법재판소는 이 사건 법률조항은 ① 불건전정보에 대한 규제를 통하여 온라인매체의 폐해를 방지하고 전기통신사업의 건전한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것으로 입법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된다는 점, ②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 하여금 불건전정보의 심의 및 시정요구를 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위와 같은 입법목적 달성에 적절한 방법이라는 점, ③ 이 사건 법률조항에 따른 시정요구는 정보게시자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을 최소화하고자 시행령에서 단계적 조치를 마련하고 있고, 시정요구의 불이행 자체에 대한 제재조치를 규정하고 있지 아니하며, 달리 불건전정보의 규제수단으로 표현의 자유를 덜 침해할 방법을 발견하기 어려우므로, 피해의 최소성 원칙에 반하지 않는다는 점, ④ 인터넷 정보의 복제성, 확장성, 신속성을 고려할 때 시정요구 제도를 통해 건전한 통신윤리의 함양이라는 공익을 보호할 필요성은 매우 큰 반면, 정보게시자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은 해당 정보의 삭제나 해당 통신망의 이용제한에 국한되므로, 법익균형성도 충족한다는 점 등을 이유로, 이 사건 법률조항이 과잉금지원칙에 반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3. 사건의 의의

이 사건은 소위 ‘최△△ 목사 사건’으로서, 인터넷 콘텐츠에 대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시정요구의 법적 성격을 최종적으로 확인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 사건의 배경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2011년 2월 1일 최△△ 목사 사건의 제2심 재판부인 서울고등법원은 사건심리 중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 및 시정요구제도의 법적 근거조항인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이하 ‘방송통신위원회설치‧운영법’이라고 함) 제21조 제4호에 대한 최△△ 목사의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받아들여, 헌법재판소에 동 조항의 위헌 여부에 대한 심판을 제청하는 결정을 내렸다.3) 담당 재판부는 위헌법률심판제청결정을 내리면서 명확성원칙 위반, 과잉금지원칙 위반 등을 그 이유로 제시하였다.

그런데 법원의 위 위헌법률심판제청결정의 내용 및 취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위헌법률심판제청결정의 계기가 된 당해사건(본안에 해당하는 사건)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당해사건은 바로 최△△ 목사가 자신의 블로그에 게시한 소위 ‘쓰레기 시멘트’ 관련 게시글이 한국□□협회 등의 명예를 훼손하는 불법정보에 해당되어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심의 및 삭제의 시정요구를 한 것이 행정소송법상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행정처분에 해당하는지 여부와 실제 이 사건에서 다투어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시정요구처분이 적법한지 여부가 문제된 사건이었다.

제1심 법원은 불법정보에 대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시정요구가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행정처분에 해당한다는 점을 인정하였고, 실제 이 사건에서 다투어진 시정요구처분은 관련 게시글이 ‘비방목적의 명예훼손정보’ 즉, 불법정보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에 위법하다는 판결을 내렸다.4) 하지만 방송통신심의위원회측이 항소를 하여 제2심에 계류 중이었는바, 소속계속 중 최△△ 목사측이 이 사건 시정요구의 법적 근거조항인 방송통신위원회법 제21조 제4호에 대해서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하였고, 담당 재판부가 이를 인용하면서 위헌법률심판제청결정을 하게 된 것이다. 담당 재판부의 위헌법률심판제청결정으로 인하여 분쟁의 양상은 ‘불법정보에 대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시정요구가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처분에 해당하는지 및 개별 명예훼손정보에 대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시정요구가 적법한지 여부’ 문제에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시정요구제도의 법적 근거조항인 ‘방송통신위원회법 제21조 제4호의 위헌 여부’ 문제로 전환되게 된다. 그리고 후자와 관련된 분쟁의 해결은 헌법재판소로 넘어 가게 되었고, 결국 헌법재판소의 이번 결정이 나오게 된 것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시정요구 사건에서 헌법재판소 결정의 의의는 다음과 같다.

첫째, 불법정보를 비롯한 인터넷 콘텐츠를 대상으로 하는 행정기관의 심의 및 시정요구에 대한 ‘행정소송법적 통제’가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하였다는 점이다. 이 문제는 현행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전신인 정보통신윤리위원회 및 동 위원회의 행정작용의 법적 성격과 관련한 논란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우선 과거의 정보통신윤리위원회에 의한 청소년유해매체물의 심의‧결정에 대해서는, 대법원이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처분에 해당한다고 판시한 적이 있다.5) 하지만 불법정보에 대한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심의 및 시정요구는 직접적인 법적 강제력이 없어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행정처분에는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 기존의 판례의 입장이었다.6) 그런데 기존의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심의기능과 기존 방송위원회의 기능 중 심의기능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출범한 이후, 최△△ 목사 사건의 제1심 법원은 불법정보에 대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시정요구에 대해서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행정처분으로 인정하게 된다.

그동안 정보통신윤리위원회뿐만 아니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측은 자신이 행하는 시정요구는 단순히 권고적 효력만을 가지는 비권력적 사실행위인 행정지도에 불과하여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행정처분이라고 볼 수 없다는 주장을 해왔다. 하지만 법원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구성과 조직, 권한, 법적 성격, 시정요구제도의 기본구조 등을 고려하여, 이용자(게시자)의 권익보호를 위해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행정처분성을 인정하였다. 비록 대법원의 판결은 아니지만, 최△△ 목사 사건의 제1심 법원이 기존의 판례와는 정반대로 행정처분성을 인정하였다는 것은 결국 불법정보를 비롯한 인터넷 콘텐츠에 대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 및 시정요구에 대해서 ‘사법적 통제’의 필요성을 인정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헌법재판소가 행정기관인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시정요구는 단순한 행정지도로서의 한계를 넘어 규제적ㆍ구속적 성격을 갖는 것으로서 헌법소원 또는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공권력의 행사라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단하여 최△△ 목사 사건의 제1심 법원의 입장을 지지함으로써, 이제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시정요구에 대해서는 행정소송을 통한 구제가 가능해지게 된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이러한 입장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시정요구 사건’과 같은 날에 선고된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서 2008년도에 일어난 소위 ‘조중동 광고불매운동’과 관련된 사건에서도 동일하게 선언되었다.7) ‘조중동 광고불매운동 사건’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일부 네티즌들이 포털사이트인 ○○ 내의 ‘▽▽’ 게시판과 ‘언론소비자주권 국민캠페인’이라는 인터넷 카페에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에 광고를 게재한 회사들의 이름과 전화번호 목록을 작성하고, 위 회사들에게 전화를 걸어 위 각 신문사에 대한 광고 게재를 중단할 것을 요구하자는 취지의 게시글을 작성하여 등록을 하였다. 포털사이트 ○○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이 사건 각 신문사에 대한 광고게재중단 캠페인과 관련한 게시글들에 대하여 심의를 신청하였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포털사이트 ○○이 심의신청한 게시글 중 일부 게시글들이 불법정보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여 포털사이트 ○○에 대해서 ‘해당 정보의 삭제’라는 시정요구(이하 ‘이 사건 시정요구’라고 한다)를 하였다. 이에 포털사이트 ○○은 이 사건 시정요구에 따라 당해 게시글들을 삭제하였다. 그러자 삭제된 게시글들을 작성‧등록한 이용자들이 이 사건 시정요구의 취소를 구하는 헌법소원심판을 헌법재판소에 청구한 것이다.

‘조중동 광고불매운동 사건’에서 헌법재판소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시정요구의 법적 성격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시정요구 사건’에서와 똑같이 헌법소원 또는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공권력의 행사라고 보면서, 동시에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시정요구를 공권력의 행사라고 보는 이상 이는 항고소송의 대상에 해당하는 행정처분이라 할 것이고, 이 사건에서 삭제당한 게시글들을 작성‧등록한 이용자들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시정요구에 의하여 표현의 자유를 침해받을 우려가 있으며, 관련 법령에 이용자들의 이의신청권을 규정하고 있는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이들 이용자들의 원고적격도 인정할 수 있으므로, 이들 이용자들은 이 사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시정요구에 대하여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고 판시하였다.

한편 최△△ 목사 사건의 제2심 법원인 서울고등법원도 이 사건 헌법재판소의 결정 이후 내려진 판결에서 제1심인 서울행정법원의 판결을 유지하면서 피고인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항소를 기각하게 된다.8)

둘째,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시정요구의 법적 근거조항인 방송통신위원회법 제21조 제4호에 대해서 명확성원칙, 과잉금지원칙에 반하지 않는다고 함으로써,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 및 시정요구제도에 대해서 합헌성을 인정하였다. 이 사건은 그동안 논란의 대상이 되어 왔던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 및 시정요구제도의 합헌성을 인정함으로써, 그 논란의 종지부를 찍었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그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헌법이론적인 측면에서 문제는 남아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즉 “사법부의 판단 이전에 행정기관이 일정한 표현물이나 정보의 불법성 여부에 대한 판단을 함과 동시에 그를 전제로 삭제 등의 시정요구를 통해 당해 표현물이나 정보의 유통을 금지하는 것”으로 정의를 내릴 수 있는 행정심의가 사실상 행정기관에 의한 검열의 위험성을 갖고 있지 않은가라고 하는 문제가 근본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가인권위원회가 2010. 10. 18.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의한 심의 및 시정요구가 사후심의에 해당한다고 할지라도 행정기관의 자의적 통제를 허용할 여지가 있어 사실상 검열로서 기능할 위험이 매우 높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정보통신심의에 대해서는 민간자율에 위임할 것을 제안한 것도 바로 이러한 맥락에 기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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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에 소개하는 판례와 해설은 커뮤니케이션 이해총서 「인터넷상의 표현의 자유 관련 판례 10선」(커뮤니케이션북스, 2015년)에 소개된 내용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 그리고 이 게시글은 오픈넷 홈페이지 하단에 있는 “별도 표시가 없는 한 오픈넷에 게시된 내용은 자유롭게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라는 이용허락표시와 달리 출판사의 출판권에 따라 이용이 제한될 수 있다.

1) 헌재 2012. 2. 23. 2011헌가13,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21조 제4호 위헌제청

2)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21조(심의위원회의 직무) : 심의위원회의 직무는 다음 각 호와 같다.
    4. 전기통신회선을 통하여 일반에게 공개되어 유통되는 정보 중 건전한 통신윤리의 함양을 위하여 필요한        사항으로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정보의 심의 및 시정요구.

3) 서울고등법원 2011. 2. 1. 2010아189,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

4) 서울행정법원 2010. 2. 11. 2009구합35924, 시정요구처분취소. 행정사건인 2009구합35924사건에서 피고인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이 사건 시정요구의 처분성 여부와 관련하여, “피고는 민간인으로 구성된 독립기구의 성격을 지니고 있을 뿐 행정청에 해당하지 아니하고, 설령 행정청이라고 본다고 하더라도 방송통신위원회설치‧운영법상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 등이 피고의 시정요구에 응할 의무가 없으므로, 이 사건 시정요구는 단순히 권고적 효력만을 가지는 비권력적 사실행위인 행정지도에 불과하여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행정처분이라고 볼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5) 대법원 2007. 6. 14. 2005두4397, 청소년유해매체결정취소.

6) 서울행정법원 2001. 5. 4. 2001구3555, 이용정지처분취소.

7) 헌재 2012. 2. 23. 2008헌마500,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21조 제4호 위헌확인 등.

8) 서울고등법원 2012. 5. 3. 2010누9428, 시정요구처분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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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황성기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오픈넷 이사장)

일제강점기 일본 조선총독부는 시국 불안정 등을 이유로 조선에 댄스홀을 허가하지 않았다. 1937년 잡지 삼천리에 실린 한 레코드 회사 소속 여성들의 ‘경성에 딴스홀을 허(許)하라’라는 제목의 기고는 조선총독부에 대한 탄원서 형식의 글이지만, 조선의 제도적 자유를 얻기 위한 노력으로 이해될 수 있다. 다른 나라의 도시에는 있는 댄스홀을 유독 조선에만 허가하지 않는 것을 통탄하며 댄스홀에서 춤을 추게 해달라고 청원하는 것이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상품 등의 정보제공에 관한 고시 개정안을 행정예고한 바 있다. 개정안의 주된 내용은 확률형 상품 판매 시 사업자가 공급 가능한 재화 등의 종류와 종류별 공급 확률정보를 소비자에게 제공하도록 하는 의무를 사업자에게 부과하는 것이다. 여기의 확률형 상품에는 게임의 확률형 아이템도 포함된다는 것이 공정거래위원회의 기본입장이자 입법의도이다. 그런데 공정거래위원회의 개정안은 매우 잘못된 정부규제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첫째, 게임의 확률형 아이템에 대해서는 개정안보다 매우 높은 수준의 확률정보 공개 자율규제가 이미 적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게임의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는 2015년 한국게임산업협회 주도 확률형 아이템 확률정보 공개 시작부터, 2018년 확률정보 공개대상 범위 확대 및 개별 아이템 확률정보 공개로의 일원화, 2018년 게임자율규제기구인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의 출범을 거치면서 발전하고 있다. 이와 같은 게임 분야에서의 자율규제를 정부규제로 전환하는 것은 역사의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제공되는 게임서비스에서 정부규제는 결코 만능이 아니고, 과거처럼 정부규제가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는 생각은 탁상공론에 불과하다.

둘째, 공정거래위원회의 개정안이 시행되는 순간부터 게임의 확률형 아이템 규제수준은 떨어져서, 소비자의 합리적 선택을 유도한다는 명분에 반하기 때문이다. 동일한 대상에 대해 높은 수준의 자율규제와 낮은 수준의 정부규제가 동시에 공존하는 경우, 전체적인 규제수준은 당연히 떨어진다. 수범자인 사업자 입장에서는 공권력에 의한 제재가 적용되는 정부규제만 준수하면 되지, 비용도 많이 드는 높은 수준의 자율규제까지 준수할 필요성이나 유인을 못 느끼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율규제가 적용되고 있는 영역에는 정부규제가 끼어들면 안된다. 사회적 요구에 비해 자율규제 수준이 낮은 경우에만 정부규제의 명분과 실효성이 생긴다.

셋째, 공정거래위원회의 개정안으로는 게임의 확률형 아이템 규제의 실효성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게임의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에 대해서는 독립적인 게임자율규제기구가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해서 그 준수 여부를 감시하고 있다. 일정한 규제가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규제의 준수 여부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위반자를 적발해서 제재를 가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모니터링기구, 위반 여부 심의를 위한 인적ㆍ물적 자원이 상당히 소요된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개정안의 준수 여부를 어떻게 모니터링하고 어떠한 세부기준을 갖고 위반 여부를 심의할지 등에 대한 계획을 들어본 바가 없다.

넷째, 자율규제도 ‘규제’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정부규제의 정당성 및 실효성 문제를 해소해 줄 수 있는 대체재 혹은 보완재 역할을 한다. 이러한 자율규제의 의미와 필요성을 정부가 먼저 나서서 부정하고, 이미 작동하고 있는 자율규제의 싹을 뿌리째 없애는 것은 오늘날의 스마트 시대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 구태의연한 모습이다. 아니면 최소한 자율규제에 대한 이해가 일천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국내 서버를 두지 않은 해외 사업자들의 경우에는, 정부규제도 속수무책이다. 오히려 의도치 않게 국내 사업자에 대한 역차별 문제만 발생시킨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자 시절부터 게임 규제는 산업계의 자율규제를 원칙으로 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히지 않았는가. 국회 입법조사처의 보고서에서도 게임 자율규제의 확대 필요성을 밝힌 바 있다. 산업계는 갈수록 스마트해지는데, 정부는 산업계의 흐름을 제대로 따라 가지 못하는 것 같아 무척 안타깝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개정안을 당장 철회해야 한다. “게임 자율규제를 허(許)하라!

이 글은 아시아경제에 기고한 글입니다. (2020.06.15.)

화, 2020/06/16-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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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은 서로가 서로의 메시지를 품앗이로 전달해줌으로써 누구나 무료로 매스커뮤니케이션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각자가 메시지 전달에 돈을 받으려거나 메시지 내용에 조건을 두어서는 안 된다는 이 상부상조의 약속인 ‘망중립성’이 최근 우리나라에서 위협받고 있습니다. 5G폰을 왜 지금 사면 안되는지, 인터넷은 왜 전화나 우편에 비해 무료인지, 인터넷은 왜 “쓴 만큼 내는 것”이 아닌지, 왜 한국 인터넷기업들이 한국을 떠나고 있는지, 왜 국내에서 넷플릭스와 페이스북 접속속도가 느린지 등등 실생활의 궁금증을 해소하면서 망중립성을 이해할 수 있는 만화를 소개합니다. (박경신 고려대 교수/오픈넷 이사)

[망중립성 특별기획 웹툰 1] 라이즈 오브 망중립성의 수호자

목, 2020/09/03-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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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2. 6. 고려대학교에서 열린 2019 한국인터넷윤리학회 추계학술대회 <뉴미디어와 인터넷 윤리>에서 오픈넷 손지원 변호사가 “가짜뉴스 규제론의 위험성”에 대해 토론했습니다.

[토론문] 가짜뉴스 규제론의 위험성

손지원 오픈넷 변호사

허위정보의 유포는 역사적으로 늘 존재하여 왔으며 새로운 경향이 아니다. 그러나 최근 허위정보가 ‘가짜뉴스’라고 이름 붙여지며 그 폐해가 더 문제시되는 것은 사회적 양극화와 더불어 인터넷과 기술의 발달로 인해 정보의 전파력, 영향력이 더욱 강해졌고 이로써 빠른 의제 선점, ‘정보 전쟁’이 보다 치열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허위정보는 일정한 폐해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허위정보를 악의적으로 이용하는 세력에 의해 사람들의 사상이 조작, 왜곡되고, 강자들의 권력을 공고화하는 수단으로 남용될 가능성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 강제 규제일 필요는 없으며, 또한 모든 표현물 규제 원칙이 그러하듯, 막연한 해악 발생의 가능성만으로 규제가 정당화될 수도 없다. 헌법상 표현의 자유의 중요성에 비례하여 설정된 더욱 엄격한 제한 원리, ‘명확성의 원칙’,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의 원칙’ 등이 준수되어야 한다. 그런데 과연 정치권에서 논의되는 가짜뉴스 규제들이 이러한 원칙을 준수하는 것일까.

우선, 규제 대상 정보의 정의 규정이 불명확하다. 가짜뉴스 규제 법안들은 대체로 “정치적 또는 경제적 이익을 위하여”, “거짓 또는 왜곡된 사실”을, “언론보도로 오인하게 하는” 내용의 정보를 규제 대상 정보로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적 또는 경제적 이익을 위하여”라는 목적은 지나치게 포괄적이고 추상적이어서 한정적 개념이 될 수 없다. 인간의 모든 표현행위는 수신자를 전제하고 이루어진다는 면에서 목적성을 띠고, 공적 사안에 대한 표현은 대부분 궁극적으로 자신이 추구하는 정치적 방향성이나 경제적 이익을 위해 이루어질 것이며, 오히려 이를 목적하지 않은 표현을 분류해내는 것이 더 어려울 것이다. “언론보도로 오인하게 하는 내용” 역시, 어디까지가 ‘언론’이고 ‘보도’인가를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마찬가지로 불명확하다. ‘언론보도’가 법에 따라 등록한 언론사만의 전유물은 아니기 때문에, 일반 시민 누구나 팩트 전달, 자료 분석, 기사 퍼나르기 등 ‘언론보도’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이고, 이 과정에서 근거가 부족하거나 오류가 있는 사실이 적시될 수도 있다. 개정안들에 따르면 타 언론사를 사칭함이 없이 일반 시민이 이러한 언론활동을 하는 것, 혹은 언론보도의 형식을 취하거나 기존 보도 이미지에 합성을 한 유머나 패러디까지 “언론보도로 오인”하게 하는 내용으로써 규제 대상으로 삼아 일방적으로 차단하고 형사처벌할 것인지가 불분명하다.

한편, ‘허위정보’가 무엇인지, 누가 이에 대한 판단을 내릴 것인지의 문제가 가장 큰 쟁점이다. ‘내가 하면 진짜뉴스, 남이 하면 가짜뉴스’라는 말이 떠돌 정도로, 같은 사안에 대해서도 모두가 서로의 반대 진영에서 나오는 정보들을 가짜뉴스라고 말하는 것이 일반적 세태가 되었다. 어떠한 표현에서 ’의견‘과 ’사실‘을 구별해내는 것부터가 매우 어렵고, 객관적인 ‘진실’과 ‘허위’를 최종적으로 판단하는 것 역시 어렵다. 대개 일정한 사실의 주장자가 당시까지 해당 사실의 ‘존재’를 증명하지 못하면 ‘허위’로 분류되는 경우도 많고, 사실의 존재는 증명하기 어렵거나 증거를 가진 측에 의하여 조작·은폐되어 끝내 증명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법원의 판결 역시 어떤 사실에 대하여 당시까지 진실 증명 혹은 유죄의 증명이 없다는 점만을 판단하는 것일 뿐, 어떠한 사실이 명백히 허위라거나 피고인의 범죄사실에 대한 결백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법원의 판결과 다른 사실이 드러나는 경우도 상당히 자주 일어난다. 한편, ‘허위정보’를 결정하는 주체가 방통위, 방심위, 선관위 등의 국가권력이 된다면 이는 곧 헌법이 가장 경계하고자 한 국가의 표현물 ‘검열’과 다름없다. 즉, 누구도 ‘허위’와 ‘진실’을 종국적으로 판단할 수 없기 때문에 내용의 ‘허위성’만을 이유로 표현행위를 함부로 규제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렇듯 가짜뉴스 규제 법안들은 대상 정보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문제가 많은데, 그에 대한 조치는 매우 광범위하고 강력하게 규정되어 있다. 개정안이 규정한 조치들은 ① 가짜뉴스를 유통한 자에 대한 형사처벌 규정, ② 가짜뉴스를 정보통신망법 제44조의7의 불법정보에 추가하여 방송통신위원회,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결정으로 유통을 금지시킬 수 있는 정보로 규정, ③ 정보통신망법 제44조의2 임시조치 대상 정보에 추가하여 이용자들의 신고로 차단할 수 있는 정보로 규정, ④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가 자신이 운영, 관리하는 정보통신망에 가짜뉴스가 유통되는지 여부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삭제, 차단할 의무를 부과하는 규정으로 나눌 수 있다.

그러나 위에서 논의한대로 ②와 같이 가짜뉴스를 행정기구의 판단에 따라 유통을 금지시킬 수 있는 대상으로 삼는 것은 헌법상의 명확성 원칙, 과잉금지 원칙을 위반할 소지가 높고, 이에 ‘형사처벌’을 규정하는 것은 위헌성을 더욱 가중시키는 것임은 두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또한 위에서 검토한 바와 같이 규제 대상 정보의 정의가 명확하지 않은 이상, ③, ④와 같이 가짜뉴스를 일부 이용자들의 신고나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의 판단에 따라 함부로 유통을 차단시킬 수 있는 대상으로 규정해서도 안 된다.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 즉, 정보의 유통을 매개하는 인터넷 사업자에게 유통 정보에 대한 모니터링 의무나 차단 의무를 부과하는 규율은 사업자가 제재의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논란의 소지가 있는’ 정보들을 차단하도록 하는 유인을 제공한다. 이는 결국 사업자들의 과차단, 과검열을 부추기고 합법적인 정보까지 차단되어 이용자들의 표현의 자유와 알 권리를 침해하는 결과로 이어질 위험이 높다. 또한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가 삭제, 차단할 수 있는 하나의 정보 단위에는 무수하고 다양한 표현 내용이 공존하며, 허위로 판정된 내용은 극히 일부분일수도 있다. 예를 들면 1시간 짜리 동영상에 허위정보가 5분 내외로 존재해도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는 동영상 전체를 삭제, 차단할 수밖에 없고 나머지 문제없는 표현들마저 부당하게 금지되는 결과가 초래되는 것이다.

최근 입법자들이 규제하고자 열을 올리는 ‘허위정보’의 실체는 과연 무엇일까. 우리나라는 이미 과도한 표현물 규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을 가진 허위정보는 현행법으로도 충분히 규율되고 있다. 특정 개인에 대한 허위사실의 유포로 개인의 인격권이 침해되는 결과를 가져오는 정보라면 명예훼손죄 법제와 임시조치 제도로 규율된다. 기존 언론의 가짜뉴스에 대해서는 언론중재법상의 정정보도 등의 제도가 있다. 선거의 영향을 미치는 허위정보 역시 공직선거법상 후보자에 대한 허위사실공표죄, 선관위의 선거법 위반 정보 삭제명령 제도로 규제된다. 금융 피싱 등의 정보는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 제2항으로 규율된다.

결국 현재 규제의 사각지대라고 말하는 ‘가짜뉴스’는 ‘사회통합을 저해하거나’, ‘사회질서를 혼란’하게 하거나 ‘공익을 해한다’는 추상적인 해악을 가진 공적 사안에 대한 허위정보인데, 이는 결국 일명 ‘허위사실유포죄’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1] 이유와 같은 취지 – 명확성 원칙 위반과 불명확성으로 인한 정치적 남용 위험 – 에서 위헌적이라고 평가될 수밖에 없다.

물론 재난 등의 상황에서 국민의 건강, 신체적 안전에 급박한 위해를 가져올 수 있는 허위정보나,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폭력을 선동할 수 있는 허위정보는 규제 필요성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보는 각각 특별한 법익을 보호하기 위한 규제 혹은 혐오표현 규제의 관점에서 논할 일이지, 일반적인 ‘허위정보’ 규제의 관점에서 논의될 것은 아니다.

2018년 1월, EU 집행위원회는 HLEG(the High Level Expert Group)라는 전문가 자문기구를 발족하고, 가짜뉴스와 온라인 허위정보에 대한 정책 및 대응 방안을 자문했다. 이에 따라 HLEG가 발행한 보고서[2]에서는, 어떤 형식으로든 공적, 사적 ‘검열’의 방식은 지양되어야 하며, 단기적 대응보다 장기적 대응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 보고서에서는 ① 온라인 뉴스의 투명성을 향상, ② 미디어 리터러시 함양, ③ 이용자와 언론이 허위정보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장치 마련, ④ 뉴스 미디어 생태계의 다양성과 지속성 보장, ⑤ 허위정보의 영향력과 조치에 대한 지속적 연구 장려를 주요 대응책으로 제시하고 있다.

진실은 권력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상의 자유시장에서 정보 간의 신뢰성 경쟁을 통해 스스로 그 자리를 찾아가는 것이다. 즉, 진실이 꽃피우기 위해서는 허위정보가 존재는 필연적이다. 허위정보가 사람의 사상과 사상의 자유시장을 왜곡한다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일방적인 정보 차단, 유포자 처벌과 같이 특정 사상을 탄압하고 사상의 자유에 직접 개입하는 강제적, 억제적 규제를 채택하는 것은 모순적이다. 정보의 바다에서 시민들이 스스로 보다 신뢰성 있는 정보를 가려낼 수 있는 안목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양질의 정보가 보다 많이 흐르도록 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진흥 정책 등의 장기적인 대응만이 가짜뉴스의 폐해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1]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 제1항 위헌소원 (2010. 12. 28. 2008헌바157, 2009헌바88)

[2] “A multi-dimensional approach to disinformation – Report of the independent High level Group on fake news and online disinformation” (European Commission, March 2018) https://ec.europa.eu/digital-single-market/en/news/final-report-high-level-expert-group-fake-news-and-online-disinformation

금, 2019/12/20- 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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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황성기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오픈넷 이사장)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에 대한 우리나라의 방역 및 대응은 현재 전세계적으로 모범적인 모델로 각광받고 있다. 우리나라의 코로나 대응전략은 투명성, 개방성, 민주성 등으로 요약될 수 있는데, 이러한 전략의 수행과정에서 개인정보의 활용은 필수적이다. 코로나19가 완전히 종식된 후에 우리나라의 감염병 예방에 관한 전반적인 시스템을 반성적으로 회고하고 성찰하는 시기가 올 것이다. 비록 현재까지는 세계적인 모범으로 각광받고 있지만, 100점 만점짜리 전략이나 시스템은 존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향후 시스템의 점검 및 개선에 있어서는 감염병 예방을 포함한 공중보건시스템과 개인정보를 포함한 프라이버시 보호의 문제를 균형있게 조화시킬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차원에서 감염자의 과거 위치정보를 국가기관이 제공하는 확진자 동선(이동경로) 공개 정책과 자가격리자의 격리장소로부터의 이탈 방지 및 감시를 위한 손목밴드 착용 강제 정책의 문제를 한 번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먼저 확진자 동선 공개 정책은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근거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보건복지부장관은 감염병 확산으로 인해 주의 이상의 위기경보가 발령되면 감염병 환자의 이동경로, 이동수단, 진료의료기관 및 접촉자 현황 등 국민들이 감염병 예방을 위하여 알아야 하는 정보를 신속히 공개해야 한다. 여기서 공개되는 정보에는 개인정보가 포함되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개인정보는 개인의 동일성을 식별할 수 있게 하는 일체의 정보를 의미하고, 성별, 연령, 이동경로, 이동수단, 진료의료기관 등은 서로 결합되어 개인을 식별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공개되는 개인정보의 범위이다. 예컨대, 확진자가 다녀간 장소와 날짜 및 시간대만 공개하면 되지 성별, 연령 등 개인을 구체적으로 식별할 수 있게 하는 개인정보는 공개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의 의문이 제기된다. 독일에서 우리나라의 확진자 동선 공개 정책과 비슷한 제도의 입법을 논의하다가 프라이버시 침해를 이유로 중단하고, 감염자의 휴대폰에 근접한 휴대폰에 자동으로 경고신호를 보내주는 방식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프라이버시 침해 문제에 대한 나름대로의 고민이 엿보인다.

다음으로 자가격리자의 격리장소로부터의 이탈 방지 및 감시를 위한 손목밴드 착용 강제 정책이다. 손목밴드 착용 강제 정책도 피부착자의 위치와 이동경로 등 위치정보를 실시간으로 파악하여 피부착자를 24시간 감시할 수 있도록 해 개인정보 침해 문제를 갖고 있다. 문제는 현재 법적인 근거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손목밴드 착용 강제는 불가능하다. 문제는 법률을 개정해서 도입하는 경우에도, 그 정당성에 대한 문제제기는 여전히 남는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자가격리 처분에 따르지 아니한 자에 대해서는 이미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의해 3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기 때문에(처벌 수준이 너무 낮은 것이 아니냐의 문제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이에 더해서 손목밴드 착용 강제까지 추가하는 것은 프라이버시에 대한 과도한 침해라는 문제제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손목밴드 착용 강제 정책이 제안됐을 때부터, 빅 브라더의 출현을 가능케 할 수 있는 강력한 시민통제장치들의 도입 유혹에 대해 경계하는 목소리도 분명히 존재했다.

결국 확진자 동선 공개 정책과 손목밴드 착용 강제 정책의 문제는 전체주의적 감시체제의 강화, 시민의 자유와 권리 수호 사이의 극단적인 대립 내지 양자택일의 문제는 아니라 하더라도 감염병 예방을 위한 개인정보의 활용 방식 및 범위와 관련해 고민하게 하는 화두를 던지고 있는 셈이다. 보다 심도있는 논의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글은 아시아경제에 기고한 글입니다. (2020.05.08.)

목, 2020/05/14-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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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오픈넷 이사)

역사는 항상 희극과 비극이 섞여 있는 회색 덩어리 같은 것이다. 역사로부터 배운다는 말은 보통 역사의 비극에 초점을 두고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상징한다. 그런데 비극으로부터 배우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다보면 비극에 갇혀 있을 수도 있다. 공산주의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결의만으로 가득 찬 사회는 자본주의의 착취로 나아갈 수 있고, 그 반대 벡터도 가능하며 양극단 사이에서의 진동이야말로 진정한 비극이 될 것이다. 비극의 관점에서만 역사를 볼 것이 아니라 비극이 실현되지 않은 경우의 수들, 즉 희극도 엄연히 역사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는 자세가 필요하다.

문재인 대통령을 공산주의자로 칭했다고 하여 명예훼손 유죄가 선고되었다. 과거에 공산주의자라는 칭호가 국민들에게 씌웠던 누명과 천형을 생각하며 종북몰이에 대한 경계심을 갖는 것은 올바른 일이다. 필자도 수년 전 이정희 의원에게 ‘종북’이라고 불렀다고 해서 민사 손해배상 판결이 난 것에 대해서 ‘국가보안법의 역습’이라고 자위했다. 진보적인 인사들이나 독재에 순응하지 않은 사람들을 부당하게 처벌하고 심지어는 정치에 무관한 사람들을 간첩으로 엮었던 역사를 생각해본다면, ‘종북’ 칭호는 상대를 공공의 적으로 간주하는 것이며 맹목적인 반공 사회의 사법적 피해자에 대한 혐오 표현이라고 볼 수 있었다. 분단사회의 질곡이라는 역사로부터 배우려면 저런 판결도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문재인 공산주의자’에 대한 형사처벌은 역사의 비극으로부터 너무 많이 배우려다가 역사의 비극 속에 갇히는 사례가 될 것이다.

명예훼손 형사처벌은 세계 각국에서 사문화하거나 폐지하자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명예란 도대체 무엇인가? 불특정 다수가 나에 대해 가지고 있는 평가의 집합, 곧 평판이다. 평판은 나를 고찰하는 사람의 사상과 의견의 영역에 속하기 때문에 내가 통제하는 것에 한계가 있다. 내가 아무리 천사처럼 살아도 아무런 이유 없이 나를 싫어할 수 있다. 그런데 내 평판이 훼손되었다고 해서 훼손의 씨앗이 된 말을 한 사람의 신체의 자유를 제약하는 것은 비례성에 어긋난다. 민사 손해배상으로 한정되어야 한다. 더욱이 명예훼손이 형사처벌의 형태로 존재하면 기소와 압수수색만으로도 피의자들의 삶을 피폐화할 수 있는 검찰은 쉽게 권력 연장의 도구가 될 수 있다.

역사의 희극은 더 이상 종북몰이가 먹히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 민중은 완전히 승리하지 못했지만 어느 정도 승리했다. 역사는 항상 그런 것이다. 그런데 역사의 비극, 즉 분단사회에서 진보 인사들이 받은 핍박에만 매몰되어 종북 발언, 공산주의자 발언을 형사처벌까지 하려고 든다면 그 역사의 다른 면에 갇힐 수밖에 없게 된다. 이 항소심 판결이 대법원에서도 유지된다면 이제 문재인 정권을 ‘독재’라고 불러도 나를 포함한 문재인 정권 지지자들은 할 말이 없게 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제 ‘공산주의’를 포함한 다른 진보적인 사상들, 즉 사회주의 등등은 우리 사회가 절대로 언급해서는 안 되는 극악의 지표로 남게 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판결을 절대로 진보적인 판결이라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유이다.

명예훼손으로 법정 구속된 종편 출신 송아무개 기자 사건도 마찬가지이다. 지금 송에게 쏟아지는 비난의 수위는 송의 디지털스토킹이 불러왔을 피해자에 대한 비난의 수위를 압도하고도 남는다. 피해자가 송의 ‘만행’을 먼저 알렸다면 피해를 막지 못했을까? 혹시 알리지 못한 이유는 거꾸로 송으로부터 명예훼손 고소를 당할 위험 때문 아니었을까? 우리가 피해자가 겪은 비극으로부터 배우려는 자세에만 매몰되어 형사처벌을 통한 검열에만 심취한다면, 소비자들의 이용후기가 위축되는 것은 물론 죄 없는 기업들의 블랙컨슈머리즘에 대한 고발도 같이 위축될 것이다. 역사로부터 배운다는 말은 항상 반만 옳다.

이 글은 한겨레에 기고한 글입니다. (2020.09.03.)

금, 2020/09/04-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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