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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명예훼손 심의규정 개정에 반대하는 네티즌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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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명예훼손 심의규정 개정에 반대하는 네티즌 선언

익명 (미확인) | 수, 2015/08/19- 11:47
요약문: 
네티즌 입 막는 방심위의 사이버명예훼손심의규정 개정시도, 막아야 합니다. 네티즌 선언에 함께 해 주십시오.

 

사이버 명예훼손 심의규정 개정에 반대하는 네티즌 선언

 

네티즌 입 막는 방심위의 사이버명예훼손심의규정 개정시도, 막아야 합니다. 네티즌 선언에 함께 해 주십시오.

발표일자: 
2015/08/19
방심위 심의규정 개정 반대 네티즌 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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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글에서는 저번 글에 이어 2명의 탈북 보건의료 전문가와의 대화를 통해 북한 보건의료 제도 속 변화의 모습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화려한 겉모습 속에 어두운 면이 존재한다. 북한은 ‘무상치료제’를 적극적으로 선전하던데, 잠깐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이번 글에서는 저번 글에 이어 2명의 탈북 보건의료 전문가와의 대화를 통해 북한 보건의료 제도 속 변화의 모습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2보건의료 제도 속변화의 모습
ⓒ 조선중앙TV_련속참관기_영상 캡쳐

화려한 겉모습 속에
어두운 면이 존재한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지부, 김지은 한의사, 이혜경 약사
북한은 ‘무상치료제’를 적극적으로 선전하던데, 잠깐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무상치료제는 북한 당국에 ‘우리 정부는 오로지 당신 인민들을 위한 정부입니다’라는 것을 내세우기 정말 좋은 선전 도구예요. ‘돈을 내지 않고도 치료를 받을 수 있다’라는 것은 정말 매력적이죠. 그래서 북한 사람들은 ‘이런 사회주의 제도에서 내가 살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영광스럽다’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죠. 무상치료제는 북한 체제를 지탱하는 매우 큰 중심축이었어요.
말만 들었을 때는 북한의 보건의료 제도가 생각했던 것보다 좋아 보이는데요?
그런데 1990년대 들어 북한의 경제 상황이 악화되면서 무상치료제도 사실상 유명무실해졌어요. 생각해보세요. 평생 병원에서 무료로 치료받던 사람들이 갑자기 돈을 내고 치료를 받아야 하는 순간을 마주한다면, 어떤 기분일까요?

병원에 가도 필요한 약과 물품은 환자가 직접 구해와야 했어요. 그래도 돈이 있는 환자는 약을 구해 치료를 받을 수 있지만, 돈이 없는 환자는 그러지 못해 고통받았어요. 의사 역시 병원에 약이 부족하니 환자의 건강을 더 이상 책임질 수 없어 혼란에 빠지게 되었죠. 북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무상치료가 갑자기 중단된 것은 굉장한 충격이었어요.

경제난으로 무상치료제가 무너지면서 사실상 유상치료제로 변한거죠.

그런데 1990년대 들어 북한의 경제 상황이 악화되면서 무상치료제도 사실상 유명무실해졌어요. 생각해보세요. 평생 병원에서 무료로 치료받던 사람들이 갑자기 돈을 내고 치료를 받아야 하는 순간을 마주한다면, 어떤 기분일까요?

무상치료제를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병원에 약이 없어 환자가 필요한 약을 직접 구해야 한다… 얼핏 보기에도 모순적인 것 같아요. 그렇다면 환자는 치료받기 위해서 반드시 돈이 있어야 하나요?
지금의 북한 의료 분야는 공식적으로는 국영 의료 시스템이지만 비공식적으로는 민영화가 가속화되면서 시장화가 상당히 진행된 모습을 관찰할 수 있어요. 그러다 보니 병원 같은 국영 의료 기관의 의사뿐만 아니라 민간 영역에서 비공식적으로 활동하는 의사도 환자에게 돈이나 음식, 물품 같은 뇌물을 받고 치료하는 행위가 일상화되고 있어요.

무상치료제가 명목상으로는 존재하다 보니 병원에서도 대놓고 돈을 많이 받고 그러지는 않죠. 하지만 최근 북한 사람들 사이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은, 예전과 달리 돈을 더 주고서라도 제대로 된 치료를 받고 싶다고 생각한다는 것이에요. 그러다 보니 병원에 치료를 받으러 오는 사람이 전보다 줄었다고 해요. 왜 그런가 하니, 돈이 없는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병원에 가지만, 돈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의사를 직접 찾아가서 치료를 받는다는 것이죠.

지금의 북한 의료 분야는 공식적으로는 국영 의료 시스템이지만 비공식적으로는 민영화가 가속화되면서 시장화가 상당히 진행된 모습을 관찰할 수 있어요. 그러다 보니 병원 같은 국영 의료 기관의 의사뿐만 아니라 민간 영역에서 비공식적으로 활동하는 의사도 환자에게 돈이나 음식, 물품 같은 뇌물을 받고 치료하는 행위가 일상화되고 있어요.

병원 말고 또 다른 곳에서 진료를 봐주는 의사가 있다는 말인가요?
북한은 의사담당구역제또는 호담당구역제를 통해 의사가 일정 구역의 가구를 맡아 건강을 관리하고 있어요. 쉽게 말해, 의사들은 국가 소속으로 국가에서 나오는 약을 가지고 자신이 담당하는 환자들을 돌보죠. 그러나 의약품 공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다 보니 의사는 환자를 제대로 치료하지 못하고, 환자는 병원에 와도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했죠. 그러면서 환자들은 다른 병원의 의사나 병원에 근무하지 않는 의사들, 예를 들어 정년퇴직했거나 다른 이유로 직장에 나가지 않는 의사를 찾아가 따로 돈을 주고서라도 치료를 받기 시작했어요. 즉, 원칙적으로 A 환자는 B 병원의 C 의사에게 진료를 받아야 하지만, 치료를 잘한다고 알려진 D 병원의 E 의사나 병원에 묶여 있지 않은 민간의 F 의사에게 가서 치료를 받고 그 대가를 E 의사나 F 의사에게 지불하는 거죠.

이러한 모습은 국가에서 인정하는 시스템이 아니에요. 하지만 민간에서 공공연하게 볼 수 있는 현상이에요. 이것이 바로 북한 내부에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의료 시장화인 것이죠.

북한에서는 이런 현상 자체가 체제에 반하는 것이죠. 그러나 당국도 이런 현상을 눈감아 줄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인 거죠.

이러한 모습은 국가에서 인정하는 시스템이 아니에요. 하지만 민간에서 공공연하게 볼 수 있는 현상이에요. 이것이 바로 북한 내부에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의료 시장화인 것이죠.

국가의 통제 속에서도 민간에 의한 보건의료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상당히 흥미롭네요. 이는 북한의 보건의료 제도가 애초부터 부실하기 때문에 그런 건가요?
무상치료제나 의사담당구역제와 같은 기본 보건의료 제도 자체는 정말 잘 만들어진 제도예요. ‘환자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환자를 내 가족같이’와 같은 선전 구호처럼 의료인들은 자발적으로 자신의 피를 뽑아 환자에게 바칠 정도로 헌신적으로 일에 종사했어요. 하지만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의료인들의 월급과 배급이 끊기자 일단 먹고 사는 일이 시급한 과제가 되어버리면서 여러 좋은 제도가 무색하게 되어버렸죠. 그런 상황에서 의료인들도 현실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었고 제도가 부실하게 유지되는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이라고 봐요.
무상치료제와 의사담당구역제는 과거 수십년간 북한 체제를 지탱하는 핵심이었어요. 특히, 의사담당구역제는 그 취지만 놓고 보면 정말 좋은 제도는 맞아요. 하지만 이 제도가 가진 함정이, 개인에게는 어떠한 선택권도 없다는 것이죠.
ⓒ 연합뉴스 헬로포토

우리가 일상적으로 누리는 권리가
누군가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개인에게 선택권이 없다는 말이 잘 이해되지 않는데 자세히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한 가지 예를 들어 볼까요? 만약 가족 중 암 투병하는 환자가 있다고 한다면 암 치료를 제일 잘하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게 하고 싶겠죠. 한국은 환자가 비용을 지불할 능력만 있다면 적어도 자신이 원하는 병원에 가서 어떤 서비스를 받을지 선택할 수 있어요. 하지만 북한에서는 제도상으로 이런 선택을 생각해 볼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아요. “너는 A 지역에 살고 있으니까 B 병원에서 치료받아라.”라는 것이 당연하죠. 하지만 최근 북한에서는 사람들이 웃돈을 주고서라도 자기가 가고 싶은 병원, 자기가 원하는 의사에게 가서 치료받고 싶어 하고, 그게 점점 가능해지고 있어요. 이렇게 의료 영역에서도 북한의 변화를 관찰할 수 있는 거죠.
비공식적으로나마 환자가 원하는 의료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큰 진전으로 보이는데, 이런 변화 하나하나가 모이면 의료제도 전체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줄 수도 있겠군요.
이런 변화는 비단 환자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에요. 선택권은 환자에게도 있지만, 의사에게도 있겠죠? 예전만 하더라도 의사는 환자가 많이 오든 적게 오든 국가에서 배급이 나왔기 때문에 담당하는 구역의 환자만 돌보면 됐어요. 그렇지만 지금은 환자가 의사에게 치료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는 방식으로 변했기 때문에 의사는 전보다 더 열심히, 효율적으로 치료에 임하게 되었죠. 의사 입장에서, 예를 들어, A 환자가 오늘은 치료비로 10만 원을 가져왔지만, 치료를 잘해 돌려보내면 다음에는 20만 원을 가져올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에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려 노력하는 거죠. 의사는 환자를 자신의 단골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게 되죠. 의사 입장에서는 고객(환자) 관리나 서비스의 중요성과 같은, 그 사회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던 개념들이 점차 부각되면서 더 나은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는 것이에요. 저는 이런 것들이 앞으로 북한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 있어서 큰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 연합뉴스 헬로포토

질병 발병 상황을 보면
보건의료 현실을 알 수 있다

북한 사람들이 주로 걸리는 질병은 어떤 것들이 있나요?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자주 언급되는 감염병에 다 취약해요. 특히, 이런 감염병들을 치료할 수 있는 약이 부족해요. 국제사회를 통해 북한으로 결핵약 등 치료 약이 종종 들어가고는 있어요. 하지만 이러한 인도적 지원이 남북, 북미 관계라는 정치적 상황에 따라 이뤄지다가 중단되다가 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죠.
못 먹고 살던 시절에는 별난 것을 다 먹고 살다 보니 이에 기인한 질병이 많이 생겼죠. 강냉이송치옥수수를 먹고 남은 하얀 속대를 갈아서 가루로 만든 뒤 물에 개어 먹고 그러다가 위천공위에 뚫린 구멍이 생긴 사람도 종종 있었어요. 거친 음식으로 인해 소화불량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특히 많았죠.

최근 사람들이 잘 걸리는 병은 감염병이 많아요. 간염, 결핵 등… 이런 병은 근본적으로 제대로 먹지 못하고 위생 환경이 불결해서 걸리는 후진국형 가난병이죠. 만병의 근원이 영양 결핍과 비위생적인 환경이라고 할 수 있어요.

최근 사람들이 잘 걸리는 병은 감염병이 많아요. 간염, 결핵 등… 이런 병은 근본적으로 제대로 먹지 못하고 위생 환경이 불결해서 걸리는 후진국형 가난병이죠. 만병의 근원이 영양 결핍과 비위생적인 환경이라고 할 수 있어요.

최근에도 북한에서 아사하는 사람이 있나요? 2020년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발표를 보면 북한의 식량 부족이 심각하다고 하던데…
오늘날에는 북한에 못 먹어 굶어 죽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보면 돼요. 하지만 식단이 워낙 부실해 영양이 불균형적으로 공급되다 보니 저런 감염병이 계속 유행할 수밖에 없어요. 북한에서 비타민 섭취라는 것은 배부른 소리죠.
위생적인 측면에서 발병을 일으키는 원인은 어떤 것인가요?
북한은 경제난으로 인해 전기 사용이 여의치 않아 깨끗한 물 또한 쉽게 구할 수 없어요. 전기가 돌아가지 않으면 수도와 정화시설부터 작동이 중단되기 때문이에요. 어쩔 수 없이 정화되지 않은 수원을 이용할 수밖에 없어요. 온갖 감염병은 수질 오염으로 인한 위생 불결로 발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북한에서는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재래식 화장실이 일반적이며 화장실 근처에 우물이 있는 경우도 많아요. 화장실과 우물이 가까이 있다 보니 지하수가 오염될 수밖에 없죠.

이러한 감염병은 병을 앓는 사람뿐만 아니라 병을 앓았다가 완치된 사람, 그리고 건강한 사람도 균을 가지고 있는 보균자일 수 있어요. 육안상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균을 달고 다니는 것일 수 있죠. 그래서 끊임없이 균이 전파되고 병이 재발할 수밖에 없어요. 북한에서는 이런 것이 워낙 일상이다 보니 크게 신경 쓰지 않아요.

북한사람들은 감염병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생각하나요?
북한 사람들은 감염병에 대해서 내성이 있어요. 감염병에 대한 면역 체계를 갖췄다는 말이 아니라, 감염병이 돌아도 항상 그런 상황에서 살아왔기에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옴, 홍역, 콜레라, 간염, 결핵 장티푸스, 파라티푸스, 발진티푸스, 사스, 에볼라, 메르스, 그리고 코로나19 까지… 감염병은 끊임없이 북한을 위협했어요. 과거부터 끊임없이 감염병에 시달리다 보니 이제는 감염병에 대한 두려움 보다는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넘길 정도로 정신적 내성이 쌓인 것이죠.

ⓒ 연합뉴스 헬로포토

북한의 코로나19 상황은
아무도 모른다

그렇다면 코로나19에 대해서도 크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요?
감염병에 대해 매우 취약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북한 당국은 감염병 예방에 신경을 쓰고는 있어요. 그러나 현실은 제대로 된 치료조차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허다해요.

한 예로 결핵은 꾸준히 약을 먹으면서 치료만 잘하면 완치가 가능한 병이에요. 다만 치료 기간이 길어요. 결핵약은 비싸다고 볼 수는 없으나 북한 자체적으로는 결핵약에 대한 수요를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에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죠. 그래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계속 반복되는 거예요.

새로운 바이러스의 출현에 전 세계가 두려움에 떨고 있지만 아마 북한의 일반 사람들은 우리만큼 크게 놀라거나 겁먹지는 않았을 것이에요. 수많은 감염병에 끊임없이 시달려야만 했던 열악한 환경이 북한 사람들을 무감각하게 만든 것이겠죠.

이 때문에 우리가 코로나19로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만큼 북한 사람들이 불안해하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북한에서는 매년 감염병에 시달리는 것이 일상이기에 옆에서 사람이 죽으면 그냥 ‘죽는가 보다’하고 생각하죠. 슬픈 현실이지만요.

새로운 바이러스의 출현에 전 세계가 두려움에 떨고 있지만 아마 북한의 일반 사람들은 우리만큼 크게 놀라거나 겁먹지는 않았을 것이에요. 수많은 감염병에 끊임없이 시달려야만 했던 열악한 환경이 북한 사람들을 무감각하게 만든 것이겠죠.

북한은 최근까지 공식 발표를 통해 확진자 0명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더 이상의 상세한 정보는 공개하지 않고 있는데 북한의 열악한 의료상황을 고려할 때 이에 대해서 어떻게 보세요?
북한은 자존심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표현이 웃기긴 하지만 ‘말하기 싫어’, ‘자존심 상해’와 같은 그런 태도라고 봐요. 국제사회에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하고 도움이 필요하면 도와 달라고 요청하면 얼마든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텐데 굳이 ‘우리는 괜찮아’, ‘우리는 우월해’라는 식의 태도를 보이는 이유는 그것을 자존심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북한은 비교적 일찍, 2020년 1월부터 국경 차단과 주민 이동 통제를 시작했어요. 그렇다고 해도 북한의 주장처럼 확진자가 전혀 없다고 보기엔 힘들지 않을까 싶어요. 공개된 게 없으니 아무도 모르죠.

확진자가 있는지 없는지 확실하게 알 수 없는 상황이에요. 북한 사람들은 외부 사람과 연락할 경우 아무리 보안을 철저히 해도 당국에 의해 감시/감청당하거나 후에 검열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죠. 그래서 보통 통화나 편지 내용도 누군가 이 내용을 듣거나 볼 수 있다는 전제하에 만들어져요. 북한 쪽과 연락하는 외부 사람이 북한의 코로나19 상황에 대해 아무리 물어본다 한들 북한 사람들은 자신이 설령 알고 있는 정보가 있다 하더라도 그 내용에 대해 쉽사리 언급하기 힘들 것이에요.
보건의료 제도 속에서 피어나고 있는 새로운 변화를 통해 현재 북한 사람들이 경험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접해 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음 화에서 다룰 건강권과 북한 보건의료 개선을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도 기대가 됩니다.
화, 2020/06/23-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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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하!유스 하이라는 뜻앰네스티 유스 모임입니다!
코로나가 종식된 세상을 그린 그림을 들고 있는 앰네스티 유스 멤버들

코로나가 종식된 세상을 그린 그림을 들고 있는 앰네스티 유스 멤버들

 

유스 모임은 만 14~24세 유스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열린 모임입니다. 매달 첫 째주 토요일 진행되는 정기 모임을 중심으로 다양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유스 모임은 유스대표와 코어 멤버를 중심으로 운영됩니다.

안에는 정말 다양한 유스가 있습니다. 학교 밖 청소년, 미성년자,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지역 거주, 난민 유스… 유스 모임은 이러한 차이를 인지하며 차이가 차별로 변질하는 것을 막고자 합니다. 약속문을 함께 만들어 모임마다 읽고, 피드백 창구인 ‘주머니’ 를 통해 혐오 없고 안전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노력합니다.

 

앰네스티 유스 약속문

 

유스 모임에서 어떤 활동이 진행되었나요?

유스 모임에선 6월 오리엔테이션을 시작으로 코어 멤버 워크숍, 세 번의 정기 모임과 유코(운영 회의), 준비 모임 등을 진행했습니다! 준비 모임은 다가오는 정기 모임 주제에 대한 스터디와 기획을 준비하는 모임으로, 코어 멤버뿐만 아니라 모든 유스가 참여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19와 인권, 인권 전반, 기후위기와 비거니즘 등 코어 멤버가 선정한 주제로 정기 모임을 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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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온라인 모임이었던 9월 정기 모임은 기후위기와 비거니즘을 주제로 다양한 활동을 함께 했습니다. 기후 위기 영상을 시청하고 이와 관련된 퀴즈를 시작으로 축산업과 환경 파괴의 연관성을 다룬 다큐멘터리 <카우스피라시cowspiracy>에 대한 발제, 비거니즘 키워드 사다리와 편견 Q&A 시간을 가졌습니다. 마지막으로 느낀 점과 각자의 경험을 공유하며 메시지 피켓을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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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스 모임에서 앞으로 어떤 활동이 진행되나요?

성소수자, 인종차별, 페미니즘을 주제로 남은 2020년 정기 모임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10월 정기 모임은 성소수자를 주제로 진행됩니다. 정기 모임 외에도 다양한 활동을 기획 중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다음 “웰컴투유스” 시리즈 2편도 기대해주세요!

 

수, 2020/09/23-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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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인 소니아 응(Sonia Ng)은 자신의 실명을 걸고 홍콩 경찰의 성추행 혐의를 고발한 유일한 시위자다. 다른 시위자들도 익명을 조건으로, 홍콩 경찰이 체포 또는 구금 도중 부적절하게 더듬는 행위를 하거나 알몸 수색을 했다고 주장했다.

응은 기자회견을 통해, 시위 현장에서 체포되어 구금되어 있던 중 한 경찰관이 자신의 가슴을 쳤다고 밝혔다. 그녀는 이후 사람들로 가득 찬 대학교 강당에서 “나뿐만이 아니다”라고 밝히며, 다른 시위자들도 다양한 형태의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는 마스크를 벗고 자신의 신분을 드러냈다.

이제, 응이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전한다.

마스크를 벗고 카메라를 응시하는 소니아 응이 운동을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홍콩을 싫어했다. 이곳 사람들과 공통점이 별로 없는 것 같았고, 민주화운동이 진전 없이 지지부진하자 우리가 약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 모든 일을 겪고 나니, 이제는 나도 홍콩 시민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게 됐다.

경찰이 저지른 성폭력 피해 경험을 밝히고 난 후, 얼굴도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이 내게 힘을 주었다. 사람들은 나에게 카드를 보내주고, 곰인형을 선물하고, 수프나 케이크를 만들어주었다. 사람들의 애정 덕분에 나는 계속 나아갈 수 있었다.

다른 방법으로 나를 지지해준 사람들도 있었다. 8월 31일 산욱링(Sun Uk Ling)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을 때, 담당 경찰은 내게 옷을 벗어야 하는 2단계 몸수색을 진행했다. 그 자리에서 경찰에게 항의했던 사회복지사 한 분의 친절함은 앞으로도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그분 덕분에 수색 방법이 조정되었고, 나는 옷을 벗지 않을 수 있었다. 이날의 사건 덕분에 알게 되었다. 자신의 입장을 강하게 주장하고, 주변에 있는 약자들, 그리고 체포당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권리를 확실히 알게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나는 이런 사실을 폭로했다는 이유로 반발에 부딪혔다. 사람들은 나에게 “문란하다”고 말하거나, 내가 돈을 받고 성관계를 했다며 나를 비방하려 했다. 내게 “하룻밤에 얼마를 받느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거짓말을 한다고 의심했고 우리 가족들의 배경과 나의 정신 건강에 대해 떠들어댔다. 사람들은 내가 제기한 문제를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문제를 제기한 사람을 없애버리려고 했다.

경찰의 성폭력 문제를 폭로한 후, 처음 며칠 동안은 도망칠까 생각했다. 하지만 정면으로 마주하기로 했다. 평생 도망치기만 한다면 이 악순환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나보다 훨씬 더 심한 피해를 겪은 사람들도 알고 있다. 나는 경찰에게 물리적인 폭행을 당하지도 않았고, 실명하거나 이가 뽑히지도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부상당한 것에 비하면 내가 겪은 일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 사람들이 살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있다면, 나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경찰에 성추행을 당할 위험이 있으니 여성 시위대는 최전선에 나서지 말라고 제안하기도 한다. 결정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지만, 나는 여성들에게 앞에 나서지 말라고 충고하지는 않을 것이다. 시위에는 사람이 필요하다.

홍콩은 우리 모두가 사는 곳이다. 성별에 상관없이 용감하게 나서야 한다.

 

나는 이곳을 사랑한다. 이곳 사람들은 더더욱 사랑한다.
여전히 변화는 가능하다고 믿는다.

소니아 응

 

홍콩의 여성단체들은 여성인권옹호를 위해 매우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레인릴리(Rainlily)라는 단체는 여성들에게 ‘성폭력에 대해 폭로하는 것은 주저할 필요가 없으며, 그 폭로를 욕보이려는 말들에는 관심을 주지 말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며 훌륭히 일을 해내고 있다. 또한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도 알려주고 있다.

이번 운동 이후, 우리 사회에는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사람들이 홍콩에 갖고 있는 부정적인 인식에 맞서고 있다.

홍콩 사람들은 돈 밖에 모른다고 할 때, ‘저 많은 기부자들을 보라’고 말할 수 있다. 홍콩 사람들은 남에게 관심이 없다고 할 때, ‘낯선 사람의 죽음에 눈물짓는 사람들을 보라’고 말할 수 있다. 홍콩 사람들은 힘 있는 사람에게 굽실거린다고 할 때, ‘하나가 되어 맞서 싸우는 사람들을 보라’고 말할 수 있다.

홍콩이 중국 공산당에 맞서는 것이 계란에 바위를 치는 겪이라는 것은 분명 사실이다. 하지만 여기는 우리의 고향이고, 우리는 끝까지 투쟁해야만 한다. 이 운동 이후, 나는 진심으로 홍콩이 나의 집이라고 느끼게 됐다. 나는 이곳을 사랑한다. 이곳 사람들은 더더욱 사랑한다. 여전히 변화는 가능하다고 믿는다. 아직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고, 우리 가슴에 이 불꽃이 살아있는 한, 아직 기회는 있다.

 

 

온라인액션
홍콩: 경찰의 폭력을 즉각 조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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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19/12/12- 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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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젠더 활동가 메흘랍 자밀(좌)과 나이로비 카스티요(우)의 모습

트랜스젠더 활동가 메흘랍 자밀(좌)과 나이로비 카스티요(우)의 모습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을 기념해 국제앰네스티는 도미니카공화국과 파키스탄 출신의 활동가 2인에게 그간 마주했던 투쟁에 대한 이야기를 부탁했습니다.

나이로비 카스티요는 도미니카 트랜스젠더와 트랜스베스타이트 성노동자 커뮤니티COTRAVETD의 이사장입니다. 2004년 이 단체를 설립한 공동 설립자이기도 합니다.

메흘랍 자밀은 연구자이자 지역사회 교육자로, 파키스탄의 역사적인 트랜스젠더법(2018) 초안 마련을 도운 인물입니다. 이 법은 관련법 중 세계에서 가장 진보적인 것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는 힘겨운 상황 속에서 연대가 가져오는 막대한 위안과 힘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여러분의 성장 환경은 어땠는지 알려주세요.

나이로비저는 정말 끔찍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어린 나이에도 제가 여성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가족들은 절대 인정하지 않았어요. 결국 제가 열세 살이 되던 해 가족들은 제 성적 지향을 이유로 저를 내쫓았습니다. 저는 산토 도밍고 거리에서 노숙을 하며 향정신성 물질을 복용하기 시작했습니다. 트랜스여성이 되기까지의 전환 과정은 매우 힘겨웠습니다.

메흘랍저는 펀자브 주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대부분의 삶을 그곳에서 보냈습니다. 그러다 생활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러 고등교육을 받기 위해 도심 지역으로 이주했습니다. 지금은 지역사회에서 운영하고 파키스탄의 젠더 및 성소수자의 권리를 옹호하는 HOPE(‘긍정적인 기대만 가져라’)라는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젠더 이분법에 반대하고, 가부장제를 거부하고, 자본주의 전복을 모의하며 차이chai를 아주 많이 마시는 것이 제 일상입니다. 그냥 평범해요. 특별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지금까지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나이로비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것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사람들은 제가 여자 옷을 입는다며 “게이 자식faggot”이라고 불렀습니다. 많은 트랜스젠더들이 선택지가 없어 생계를 위해 성노동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제도권에서는 일자리를 구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포주 없이 혼자서 일을 시작했지만 다들 그렇듯이 많은 위험에 직면했습니다. 매일같이 경찰의 검문을 받았습니다. 경찰은 저를 폭행하고, 제 돈을 빼앗고, 그들과의 구강 섹스를 강요했습니다. 옷을 벗으면 그동안 당해온 부당대우로 인해 생긴 흉터가 모두 드러납니다. 각 흉터가 생긴 날짜와 시간까지도 정확히 말할 수 있어요.

 

배제와 낙인, 차별을 끝내기 위해 계속해서 싸워야 합니다.
사회적 배제는 우리의 인권 침해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나이로비 카스티요, 도미니카 트랜스젠더 및 트랜즈베스타이트 성노동자 커뮤니티COTRAVETD 이사장

 

메흘랍트랜스젠더, 그 중에서도 특히 저희 지역 출신 사람들은 언제나 불운한 희생자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우리가 억압당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그렇게나 알고 싶어하면서도, 정작 우리를 억압하는 제도에 맞서는 데는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가 이런 폭력을 매일 마주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조차 우리의 방식대로 발언할 기회를 전혀 얻지 못합니다.

 
현재의 상황에 저항하기로 마음먹은 순간에 대해 이야기해주세요.

나이로비활동가가 된 때 저는 29세였습니다. 도미니카공화국에서 연합여성운동Movement of United Women이라는 단체가 폭력이나 체포, HIV로 고통받는 여성 성노동자들을 지원하는 모습을 보고 우리도 이런 걸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저희 지역에는 트랜스젠더 문제를 다루는 단체가 없었습니다. 성노동자의 요구는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성노동자 단체를 결성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죠. 그렇게 2004년 COTRAVETD를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메흘랍하루에도 그런 순간들을 몇 번이나 겪는 것 같아요. 변화를 위해 싸우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할 때에만 가능합니다. 우리의 조직적인 활동은 동떨어지고 개인주의적인 인권 프레임을 중심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같은 사람들을 위한 정의를 요구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안젤라 데이비스Angela Davis의 말처럼, 집단 속에서 우리는 희망과 낙관이 잠든 저수지를 찾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룬 가장 큰 성과는 무엇인가요?

나이로비COTRAVETD을 이끈 것입니다. 저희는 어린 여성들이 자신의 권리에 대해 잘 알 수 있도록 교육 활동을 진행하고 군과 경찰의 트랜스젠더 인권침해 중단을 위한 인식 제고 및 교육 워크샵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마약을 복용하는 트랜스젠더 성노동자였던 제가 이 단체의 대표가 되고 약물 남용을 극복하기도 했다는 것이 큰 성과입니다.

 

저는 퀴어의 미래를 꿈꿉니다. 트랜스젠더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억압의 제도적 근원을 해결하는 강력한 정치적 문화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메흘랍 자밀, 조사관 겸 지역사회 교육자

 

메흘랍저는 제가 이룬 것보다 제가 하지 못한 일들에 더 호기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부장적인 가족 안에서 행복하게 살지 못한 것, 트랜스젠더 의제를 우익 정부에 이해시키지 못한 것처럼 말이죠. 제 존재 자체와 인간성을 끊임없이 말살하는 사회에 안주하지 못한 것에도 관심이 있습니다. 저는 제 실패를 통해, 제가 살아남고자 노력하고 있는 이 사회의 폭력성과 제가 저항하려는 폭력을 지지하는 구조에 대해 매일 새롭게 배워가고 있습니다.

나이로비도미니카공화국 공문서에 우리의 이름과 성 정체성을 반영할 수 있는 성 정체성 법이 필요합니다. 정부의 보호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는 것도 시급합니다. 메흘랍씨, 당신은 이 멋진 목표를 어떻게 달성할 수 있었나요?

메흘랍모두가 노력한 결과입니다. 트랜스젠더 법은 무엇보다도 성 정체성과 표현에 관한 자기결정권과, 차별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권리를 인정합니다. 변호사, 활동가, 연구자들로 구성된 저희 팀은 이 법안이 의회에 제출될 때 경제적으로 가장 소외되고 폭력에 취약한 성소수자 사회의 요구를 특히 대표할 수 있도록 쉬지 않고 노력했습니다. 파키스탄의 입법 절차는 아시다시피 매우 배타적이고 엘리트주의적이기 때문에 장벽을 허물고 진입하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경찰의 만행과 범죄조직의 폭력에 맞서 목숨 걸고 싸웠던 용감한 트랜스젠더 전사들이 있었기에 승리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전세계의 트랜스젠더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나이로비배제와 낙인, 차별을 끝내기 위해 계속해서 싸워야 합니다. 사회적 배제는 우리의 인권 침해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더 크게 목소리를 내고 의사 결정자들에게 영향을 미쳐 우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우리가 직접 선택한 이름으로 부를 수 있도록 스스로 힘을 가지고 행동해야 합니다.

메흘랍우리는 온몸 구석구석에 사회의 수치를 품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름다운 몸으로 태어나 우리의 신체에 대해 직접 결정할 권리를 요구했다는 이유만으로 처벌을 받습니다. 우리의 존재 자체가 폭력과 삭제, 증오로 얼룩져 있습니다. 이미 우리의 삶은 충분히 고통스러우니 스스로에게 고통을 주지는 맙시다. 자신과 주변 사람에게 친절해지고 서로 보살피는 문화를 만들어나갑시다. 그리고 변화를 위해 다 같이 행동합시다.

미래에 대한 가장 큰 꿈은 무엇인가요?

나이로비제 꿈은 우리나라에서 젠더 정체성 법이 통과되고, 고령이거나 갈 곳이 없는 트랜스젠더들과 HIV에 감염돼 가족들에게 거부당한 트랜스젠더들을 위한 쉼터를 만드는 것입니다. 트랜스젠더들이 더 이상 성 노동자가 될 필요가 없도록 다른 고용 기회들이 주어지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제 꿈입니다.

메흘랍저는 퀴어의 미래를 꿈꿉니다. 트랜스젠더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억압의 제도적 근원을 해결하는 강력한 정치적 문화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트랜스젠더 자매가 지구 반대편에서 비슷한 싸움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은 아주 소중한 경험입니다. 서로의 투쟁을 통해 더 많이 배울 수 있도록 다국적 연대를 만드는 것에 대해 더 많이 대화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국경을 넘어선 자매애를 통해 저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얻고 있습니다. 당신의 활동 이야기를 듣고 매우 큰 영감과 감동을 받았습니다. 정말 훌륭해요. 당신은 지역사회의 희망의 빛입니다. 소망이 모두 이루어지도록 기도하고 간절히 바라겠습니다. 더욱 큰 힘이 되기를!

이 글은 TIME에 먼저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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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20/03/31- 0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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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맹위를 떨치고 있는 지금, 북한은 ‘확진자 0명’이라는 발표를 통해 국제사회의 놀라움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북한의 발표를 접한 사람들은 그 신빙성에 의문을 표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은 북한의 보건의료 환경에 궁금증을 가지기도 합니다.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맹위를 떨치고 있는 지금, 북한은 ‘확진자 0명’이라는 발표를 통해 국제사회의 놀라움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북한의 발표를 접한 사람들은 그 신빙성에 의문을 표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은 북한의 보건의료 환경에 궁금증을 가지기도 합니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북한 보건의료 전문가 2명을 직접 만나 북한의 보건의료 상황에 대해 함께 짚어 보기로 했습니다.

북한의 보건의료 실태와 변화, 그 속에서 북한 사람들이 경험하고 있는 건강권을 살펴보면서 북한 보건의료 환경을 효율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남북한 1호 한의사
김지은
  • – 북한 청진의학대학 동의학부 졸업
  • – 북한에서 9년간 내과, 소아과, 임상의학연구소를 거치며 의사/한의사로 근무
  • – 2000년대 초반 한국 입국
  • – 한의사 국가시험 합격
  • – 現한의사
남북한 1호 약사
이혜경
  • – 북한 함흥약학대학 졸업
  • – 북한에서 12년간 약사로 근무
  • – 2000년대 초반 한국 입국
  • – 약사 국가시험 합격
  • – 통일학 박사
  • – 現약사

 

김지은 씨와 이혜경 씨를 언급할 때마다 항상 따라오는 수식어는 ‘남북한 한의사 1호’, 그리고 ‘남북한 약사 1호’ 입니다. 두 사람은 북한에서 각각 한의사와 약사로 일했습니다. 탈북 후 한국에 정착한 두 사람은 각각 한의사, 약사 국가고시에 합격해 자신의 전문분야에서 활발히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북한과 한국 양쪽의 보건의료 환경을 직접 경험한 전문 보건의료인과의 대화를 통해 북한의 보건의료 실태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1보건의료인의 삶을 통해 본보건의료 실태

한때, 눈 앞의 현실을 마주할수록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지부, 김지은 한의사, 이혜경 약사
북한에서 보건의료인으로 일하는 것은 어땠나요?
북한에서는 의사라 하더라도 한국처럼 여유로운 삶을 누리진 못해요. 북한의 의사는 일반 노동자와 같이 국가로부터 급여와 배급을 받고 살아요. 그래서 국가의 경제가 어려우면 의사의 생계도 어렵고… 때문에 제 생활도 정말 힘들었죠.

1990년대 중, 후반, 잘 알고 계시다시피 북한에서는 대기근으로 수많은 사람이 희생되었던 ‘고난의 행군’ 시기가 한창이었어요. 당시 저는 병원 소아과 의사였죠. 의사로서 어린아이들이 끊임없이 죽어 나가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을 지켜 보고만 있자니 그걸 견디기가 너무 어려웠어요.

병원 근무 후 퇴근할 때 집에 가면서 ‘내일 아침에는 어느 침대가 비어 있을까?’와 같은 생각에 괴로웠어요. 아침에는 ‘그 아이일까, 아니면 다른 아이일까?’하는 생각을 하며 출근했죠.

병원 근무 후 퇴근할 때 집에 가면서 ‘내일 아침에는 어느 침대가 비어 있을까?’와 같은 생각에 괴로웠어요. 아침에는 ‘그 아이일까, 아니면 다른 아이일까?’하는 생각을 하며 출근했죠.

약사도 비슷한 상황을 겪었겠군요?
국가에서 나오던 배급이 사실상 없어졌지만, 병원에 있던 약국에 나가 계속해야 했죠. 물론, 먹고 살기 위해 약사 일이 끝나면 다른 일을 찾아 나서야 했어요.

약사라고 하면 뭔가 잘 살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어요. 생계유지조차 힘들었어요. 한국식으로 말하면 투잡, 쓰리잡을 뛰어야 했죠. 저는 이런 상황을 표현할 때마다 ‘낮에는 사회주의 일(병원 약사)을 하고, 밤에는 자본주의 일(장마당 장사)을 했다’고 말해요.

비교적 최근에는 상황이 바뀐 것 같아요. 새로 생겨나기 시작한 시중 약국에서 일하는 약사는 그럭저럭 괜찮게 산다고 볼 수 있어요.

 

장마당의 활성화는 의약품
수급 구조를 바꿨다

배급제가 사라졌다고 했는데 병원에 들어가는 의약품도 중단되거나 줄어들었나요?
‘자급자족하라’는 당국의 지시가 내려와 산에 올라가서 약초를 캐 그것으로 약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병원에서는 건초말린 약초를 이용해 고려약한약을 만들어 필요한 약제를 어느 정도 수급할 수 있었어요. 경제난으로 ‘무상치료제’와 같은 의료 제도를 유지하기 버거워지다 보니 국가에서는 원래 병원 안에만 있던 약국을 병원 밖에도 만들어 사람들이 돈 주고 약을 살 수 있도록 했어요. 1980년대 말까지만 해도 모든 약국은 국영이었어요. 대략 2005년부터 평양을 시작으로 시중에 약국이 생겨나기 시작했어요. 이때부터 개인이 운영권을 가진 약국이 곳곳으로 퍼져 나갔죠.
결국 국가에서 필요한 약을 충분히 공급하지 못하니 민간에 의약품 수급을 맡기기 시작한 거군요?
시중의 개인 약국을 통해 약을 팔 때는 보통 ‘7·3제’를 기본으로 해요. 7·3제란 개인 약국에서 약을 팔면 수입의 70%는 국가에 바치고 나머지 30%는 약사가 가져가는 거예요 즉, 국가가 주도하는 장사이자 임대 개념으로 볼 수 있어요. 개인이 운영하는 약국이라고는 하나 한국처럼 온전히 개인이 약국의 모든 권리를 가지는 것이 아닌, 기본적으로 국가 소유의, 운영권만 개인이 가지는 약국이라고 보시면 돼요.
그러면 지금은 일반 사람들이 약을 구하거나 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다는 말인가요?
장마당이 활성화되면서 중국에서 많은 약이 들어왔어요. 이렇게 되자 나라에서 공급하는 약이나 자급자족한 약에만 의존하던 모습에서 장마당에서 약을 구하는 모습으로 변화하기 시작했어요.

최근 들어서는 장마당에서 일반 사람들이 약을 구하기 더 쉬워졌어요.

장마당이 활성화되면서 중국에서 많은 약이 들어왔어요. 이렇게 되자 나라에서 공급하는 약이나 자급자족한 약에만 의존하던 모습에서 장마당에서 약을 구하는 모습으로 변화하기 시작했어요.

여전히 의약품을 구입하는 것은 비용적인 측면에서 상당히 부담스러울 것 같은데… 그래서 그런지 북한에는 민간요법이 성행한다는데 어떤 약이 어떤 식으로 사용되는지요?
‘아편’과 ‘빙두’를 쉽게 구할 수 있어요. 아편의 경우 우리 선조들이 민간요법에서 사용한 것과 같이 지사제나 통증 완화의 용도로 많이 사용돼요. 빙두는 흔히 우리가 영어로 메스암페타민, 일본어로 히로뽕이라고 부르는 향정신성의약품이에요. 사람의 중추신경계에 작용하는 것인데 이를 투약할 경우 자극에 무감각하게 되죠. 아픈 사람이 이것을 복용하면 일단 통증이 다 사라지고 기분도 좋게 만들어주다 보니 사람들이 차츰 접하게 되었던 거죠.
아무리 치료 목적이라지만 마약에까지 손을 댄다고요? 그게 가능한가요?
북한은 동네 곳곳마다 역삼대마이나 양귀비아편의 재료가 심겨 있어요. 북한에서는 해당 작물을 재배하는 게 위법행위가 아닐 뿐만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서도 마약 사용에 대해 윤리적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생각 자체를 하지 못해요. 쉽게 접할 수 있고 저렴하다 보니 사람들은 이런 마약에 자연스럽게 손을 대게 되는 거죠.

오늘내일 죽느냐 사느냐 하는 상황에 처해있는 가난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아편이나 빙두를 사용하는 것에 부작용이나 윤리적 문제를 고민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사치와 같아요. 이들에게는 순간적인 고통을 당장 면하기 위해 사용되는 하나의 약일 뿐인 거죠.

한 단면만 보고
전체를 판단하기는 힘들다

무상치료제를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병원에 약이 없어 환자가 필요한 약을 직접 구해와야 한다… 얼핏 보기에도 모순적인 것 같아요. 의사와 약사는 이 상황에서 어떻게 일해야 했나요?
제가 일하던 병원 과에 6명의 의사가 있다고 하면 3명은 오전에 병원에서 진료를 보고 나머지 3명은 나가서 먹을 것을 구하고 그랬어요. 가끔 며칠씩 교대로 다른 지역으로 가서 물건을 사고팔거나 동네에서 순두부 등 음식을 만들어 팔기도 했죠. 그러다가 상황이 더욱 안 좋아지면서 감당할 수 없게 되니까 병원에 있던, 환자에게 써야 할 약을 돈 받고 팔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환자들이라고 해서 모두 다 아주 없거나 그러진 않았기 때문에 가끔 치료가 급한 환자가 의사를 보러 올 때는 뇌물을 가지고 오기도 했어요. 뇌물이라고 하지만 보통 두부, 통강냉이 같은 먹을 것 위주였죠. 어쨌든 그런 환경에서는 먹고 사는 게 최우선이다 보니 그런 식으로라도 생계를 유지해야 했어요.
의료인들은 나라에서 나오던 월급과 배급이 끊기자 당장 자기가 먹고살 방법이 없어졌어요. 환자 진료 이전에 자신의 생계부터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렸죠.

그렇다 보니 돈이나 먹을 것과 같은 뇌물을 건네줘야 환자에게 좋은 처방을 내려주는 식으로 바뀌고 있어요. 김정은 집권 이후에는 외부 지원이 전보다 늘어나면서 외국 약이 많이 들어갔어요. 하지만 이렇게 들어가는 약 중 상당량이 뒤로 빼돌려져 장마당으로 흘러 들어갔다고 알려졌죠. 결과적으로 보면 장마당으로 약이 흘러 들어가서 사람들이 필요할 때마다 돈을 주고 약을 구할 수 있게 되긴 했어요.

의료인들은 나라에서 나오던 월급과 배급이 끊기자 당장 자기가 먹고살 방법이 없어졌어요. 환자 진료 이전에 자신의 생계부터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렸죠.

생계를 위해 의료인들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 마주하는군요. 윤리적인 측면에서 이와 같은 모습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세요?
북한의 경제난이 심각하다 보니 여러 ‘비정상적인’ 행위들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는 모습이 빈번히 일어나고 있기는 해요. 하지만 한 단면만 가지고 전체를 판단할 수는 없다고 봐요.

북한의 의료인들이 부패하거나 인간성이 없다고 비난하기에는 그 사람들이 처한, 국가에서 나와야 할 월급과 배급이 끊긴 상태에서 맡은 일을 수행해야 하는 동시에 생계를 이어갈 방법을 모색해야 하는, 그런 열악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면 쉽게 평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는 의료라는 것은 마음이 할 수 있는 역할이 특히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봅니다. 물론, 의학 자체는 학문이에요. 하지만 의료 행위를 하는 사람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가에 따라서 그 행위가 얼마만큼의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가가 결정된다고 생각해요. 북한 의료인들이 가지고 있는 인간에 대한, 환자에 대한 마음가짐, 그것은 제가 볼 때 국제적으로도 높은 수준이 아닐까 해요.

보건의료인들의 삶을 통해 북한 의료 실태를 살펴보면서 환자뿐 아니라 의료인 역시 열악한 보건의료 시스템의 피해자일 수 있다는 점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다음 화에서 다룰 북한 보건의료 제도 속 변화의 모습에 대해서도 더욱 궁금해집니다.
화, 2020/06/16-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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