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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파스, 여섯 번째 뉴스 한 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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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파스, 여섯 번째 뉴스 한 접시

익명 (미확인) | 월, 2015/08/17- 00:00

1.누가 그들을 용서했는가

“사실 한국에선 ‘성공한 사람들의 7가지 습관’ 같은 책 읽을 필요 없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 배울 점은, 이완용 일대기에 다 나와 있습니다. 스펙쌓기, 인맥다지기, 시세읽기, 기회잡기 등.”
-역사학자 전우용 (트위터 @histopian)

광복 70년, 대한민국은 왜 아직 ‘민족반역자’가 성공하는 사회일까요?

2.인디고서원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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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1.그리스 사태 초간단 정리

“그렉시트? 트로이카? 무슨 소리야…?”
3분 안에 이해하는 그리스 사태 한 접시!

2.최저시급 협상의 전말

1차 인상안에서 사용자측이 30원을 양보한 반면, 노동자측은 1600원을 양보하는 미덕을 보였습니다.

지난 밤 사이 최저임금이 결정됐네요. 2016년 시간당 최저임금은 6,030원입니다. 이 금액은 노동자위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공익위원과 사용자위원이 투표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3.[타파스카드]방사능 물, 마셔도 괜찮아?

낙동강 큰빗이끼벌레를 마시는 부산시민들을 위해, 두산이 국민세금으로 비싼 바닷물을 준비했습니다!

“정말 안전하다면 그 수돗물, 님들이 다 드셔보시라규…”

금, 2015/07/10-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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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타파스클립: 역사교과서 국정화

“역사에 관한 일은 국민과 역사학자들의 판단이라 생각합니다.”
– 2004년, 한나라당 대표 박 모

2) 타파스 클립: 호갱의 역사

전투기를 산다더니 전투기(錢投機: 돈을 하늘에 던지는 비행기)를 사 왔다던… ‪

수, 2015/11/18-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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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위주로 쓰여진 우리의 독립운동사. 그 속에서 독립운동의 한 축을 담당했던 여성들은 거의 조명받지 못하고 보조자로 평가절하됐다.

드물게 소개되는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은 대개 ‘남성과 동등하게 독립을 위해 싸웠다’는 단순한 측면이 부각됐다. 여성 해방, 남녀가 동등한 조국을 꿈꾼 여성독립운동의 또다른 함의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 특집을 통해 남성에 가려진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발굴하고 그 독자적 의의를 조명하는 한편, 여성 독립운동의 다양한 카테고리를 소개하려 한다.

수, 2015/11/18-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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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의 여성 비행사,
대한민국 공군의 어머니,
그리고 독립운동가 ㅡ 권기옥 의사의 치열했던 삶.

월, 2015/11/23-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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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타파스 클립 : 평등의 연금술

“꿈과 노력을 팔팔 끓이다가, 세금을 간에 맞게 넣어 잘 저어주면 흙수저를 금수저로 바꿀 수 있다.”고 <평등의 연금술>에 쓰여있군.

…그러나 부자들에게만 세금특혜를 끼얹는다면? 사교육비 바람에 불이 꺼진다면?

2) 타파스 다큐 <잊혀진 이름, 여성 독립운동가> 1편 권기옥 : 독립을 향한 날갯짓

한국 최초의 여성 비행사,
대한민국 공군의 어머니,
그리고 독립운동가 ㅡ 권기옥 열사의 치열했던 삶.

3) 타파스 클립 : 이제는알고싶다 – KBS의 사라진 특종

KBS가 만들었으나, 내보낼 수 없던 그 방송.
간부들이 방송 불가, 원고 삭제를 요구한 그 이야기.
이제는 알고싶다.
각하가 총애한 귀인, 기시 노부스케.
그는 누구인가.

월, 2015/11/30-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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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의 이념과 사상을 정립한 역사가이자 혁명가, 단재 신채호.
그 위대한 영웅의 모습 뒤에는 이제껏 그의 부인으로만 알려진 가려진 독립운동가, 박자혜가 있었다.

대한제국의 궁녀에서 간호사가 된 그녀는 조선총독부 의원에서 근무하던 중 1919년 3.1운동에 참여했다 부상당한 학생과 시민들을 마주하게 된다. 이후 간호사들의 독립운동단체인 “간우회” 조직하고 만세 시위에 참여했다. 당시 일제의 조선인 감시 보고서는 그녀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과격하고 언변이 능한 자.
병원 간호사 전원을 동요시킨 주모자.

신채호와의 결혼 후 나석주의 동양척식주식회사 폭탄 의거를 비밀리에 돕기도 한 그녀는 신채호 선생의 부인이기 이전에 일제 강점기 애국정신이 투철했던 또 하나의 독립운동가였다.

<박자혜 선생 이력>

1919년 <간우회> 조직 만세시위를 벌임
1920년 베이징에서 독립운동가 신채호와 결혼
1926년 나석주의 동양척식주식회사 폭탄 투척 지원
1943년 사망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2009년 7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

토, 2015/12/05-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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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려진 독립운동, 박자혜

‘단재 신채호의 아내’로만 기억된, 조선의 독립운동가이자 간호사

박자혜 열사의 이름을 다시 찾아서

2) 나라사랑교육 INSIDE

강사: 북한은 김일성 동상 앞에서 인증사진을 찍어서 동사무소에 제출해야 정식으로 결혼을 인정받습니다. 학생 여러분~ 이런 나라에 살고 싶어요?

(새터민: 거짓말입니다. 결혼 등록 자체가 동사무소 안 갑니다.)

2012년부터 국가보훈처가 초중고생에게 실시하고 있는 나라사랑교육의 실태입니다.

월, 2015/12/14-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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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정부 27년 간의 역사를 온전히 떠안은 여성, 정정화. 가흥에서는 엄항섭 일가와 이동녕 선생을 모셨으며 남경에서는 백범의 어머니 곽낙원 여사와 그의 아들을 돌봤다.

1940년, 중경에 정착한 임시정부는 다시 항일 투쟁의 중심에 섰고 정정화는 한국애국부인회 등 여성단체에서 활약하며 중국에서 나고 중국에서 자란 아이들을 위해 선생님으로도 활동한다.

모국의 산과 들, 모국의 냄새 모국의 마음을
얘기로만 듣고 자라난 아이들이었다

나는 틈만 나면 독립된 그들의 조국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얘기해주었다

어쩌면 그것은 내가 나에게 들려주는
내 나라의 이야기였는지도 모른다.

– 수당 정정화 <장강일기> 중에서 –

독립자금을 모으기 위해 압록강을 여섯 번 건넌 그녀는 불굴의 정신으로 조국의 독립을 이끈 독립운동가였다.

토, 2015/12/19-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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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일신여학교 재학 당시 차별적인 식민 교육에 항거해 동맹 휴학을 주도하는가 하면 항일여성운동의 전국적인 통일기관인 ‘근우회’에서 활동하며 개혁적인 여성해방과 민족해방의 길을 모색했던 박차정. 서울지역 11개 여학교를 비밀리에 조직해 1930년 1월 대규모 학생시위를 주도한 박차정은 이 사건의 배후로 지목돼 서대문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른다.

이후 중국으로 망명한 박차정은 1930년 의열단에 합류했고, 이를 이끌던 독립운동의 거두 김원봉과 결혼해 사랑과 혁명의 길을 함께 걷는다. 1935년, 의열단 등 좌우 독립운동단체 5개를 통합한 조선민족혁명당이 창당하자 박차정은 남경조선부녀회를 결성해 조선 여성들이 총단결하여 민족독립과 여성해방을 쟁취할 것을 독려한다. 이는 박차정이 오랫동안 추구해온 이념이었다.

우리 조선 부녀를 현재 봉건적 노예제도 하에
속박하고 있는 것도 일본 제국주의이고
또 우리를 민족적으로 박해하고 있는 것도 일본제국주의이다.
우리들이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지 않는다면
우리 부녀는 봉건제도의 속박 식민지적 박해로부터 해방되지 못한다.

-남경조선부녀회 선언문 中-

1938년 조선의용대 창설 후 부녀복무단 단장으로 활약하며 항일투쟁의 선봉에 선 박차정은 1939년 2월, 곤륜산 전투에서 총상을 입고 그 후유증으로 1944년 34살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자주독립과 민주혁명을 이룬 통일조국이라는 박차정의 못다 이룬 꿈은, 그러나 김원봉 또한 보지 못했다. 연합국의 힘으로 해방된 조국은 미군정의 주도권 하에 있었고 소용돌이치는 해방정국 안에서 독립운동가 김원봉은 친일경찰 노덕술에 체포돼 참을 수 없는 수모를 당한다. 역사의 모순이 빚어낸 참상이었다.

분단과 이념의 대립 속에서 지워진 역사. 박차정은 사후 50년이 지난 1995년에서야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 받았고, 김원봉은 광복 70주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남과 북 그 어느 곳에서도 독립운동가로 살았던 삶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금, 2016/01/08-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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