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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70년 특별기획]친일과 망각 3부 ‘부의 대물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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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70년 특별기획]친일과 망각 3부 ‘부의 대물림’

익명 (미확인) | 수, 2015/08/12- 20:29

뉴스타파는 해방 이후 최초로 친일후손들의 거주지를 추적했다. 사는 지역과 주택 형태를 파악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신분의 상태를 온전히 반영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재력이 있는지 가늠해볼 수 있는 척도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지난 8개월 동안의 거주지 추적 결과를 공개한다.

1. 친일 후손 거주지 475곳 확인

뉴스타파는 지난 8개월 동안, 친일파 후손 202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자료와 판결문, 그리고 친일재산조사위가 국가귀속한 친일 재산의 지번을 하나하나 확인해 친일 후손들의 소유 거주지 475곳을 확인했다. 지역별로 보면 서울과 경기도가 각각 300곳, 100곳으로 전체 84%가 수도권에 주택을 소유하고 있었다.

2. 강남 3구 거주 비율 절반 가까운 43%

서울의 거주지 300곳으로 한정해 살펴보면 강남구와 서초구, 송파구 등 이른바 강남3구의 비율이 130건으로 43.3%에 이른다. 절반 가까이가 강남 3구에 주택을 소유하고 있었다. 압도적인 비율이다.

주거형태로 보면 단독주택의 경우 한남동, 이촌동, 성북동, 평창동 등 전통적인 부촌에 많이 거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강남 3구와 경기도 분당지역에서 아파트를 소유한 사람은 144명으로 집계됐다. 친일파 후손들의 주거형태도 시간에 흐름에 따라 사대문 안 전통의 ‘강북’에서 신흥 부의 상징인 ‘강남’지역으로 이동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밖에 뉴스타파의 확인결과 23명의 친일파 후손들이 상가와 임대주택을 소유한 임대사업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상가 건물의 경우 선대로부터 상속이나 증여를 통해 부의 대물림이 이뤄지고 있었다.

3. 친일파 재산 여의도 150배인 4억3천만㎡ 추정, 어디로 갔을까?

친일파가 축적했던 토지는 1억3천만 평 그러니까 4억3천만㎡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현재 서울시 면적의 2/3 규모이고, 여의도 면적의 150배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이들 토지는 이후 제대로 국가에 귀속됐을까?

4. 친일파 재산 중 0.3%만 국가귀속 후 매각된 것으로 확인

해방 후 60년 지난 2006년부터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가 조사를 시작했다. 당시 조사위의 대상 토지는 5천 필지, 2,181만 ㎡였다. 친일재산 추정치 4억3천만㎡의 5% 수준이었다. 그리고 이 가운데 친일재산으로 결정 확정해 국가로 귀속한 토지는 1,300만㎡에 불과했다. 그리고 독립운동가 후손을 위해 쓰겠다며 매각된 것은 고작 135만 ㎡였다. 결국, 4억3천만㎡로 추정되는 친일 재산 가운데 0.3% 만이 매각 처리된 것이다. 해방 후 70년 동안 친일 청산을 제대로 진행하지 못한 결과로 읽힌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취재 동영상과 <친일과 망각> 특별 웹페이지를 보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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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 2015-08-03 11:39:35

 

 

 

 

[토요판]커버스토리 / 김무성과 아버지 김용주

더 상세히 드러난 아버지 친일행적
아들은 왜 미국에서 큰절을 했을까

미국 방문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여느 정치인이 아니라 집권여당의 대표이자 대통령 후보 지지도 1위이기에 더욱 그렇다. 커다란 몸집과 당당하던 태도는 태평양을 건너자 한없이 작아지고 말았다. 넙죽넙죽 올리는 ‘큰절’은 환영은커녕 비웃음만 사고 있다. 아프리카 추장 같다거나 아예 부채춤을 추라는 조롱마저 날아간다. 그런데도 그는 내년에 또 큰절을 하겠다고 한다. 그는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 김무성 대표 아버지의 친일 행적에서부터 발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자료를 뒤적여보기 시작했다. 아뿔싸. 선친 김용주의 과거 친일 의혹은 빠르게 지워져가고 있었다. 대신 절세의 애국자로 변모하고 있다. 친일이 애국으로 둔갑하는 현실을 막아보고자 김 대표 부친의 과거 친일 발언을 공개한다. 천황폐하를 위해 자식의 목숨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고약한 내용이며 A4 용지 3장 분량이다. 그런 부친의 과거를 바꾸려는 시도나 미국에서 하는 큰절이나 모두 한뿌리에서 나온 콤플렉스의 발현일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천황폐하 찬양…아들은 미국 장군묘에 “감사합니다”

▶ 김무성 대표의 선친 김용주의 일제 때 발언을 보면 그가 상당한 인텔리임을 알 수 있다. 일본의 고대사부터 메이지유신에 이르는 역사를 넘나들며 일본과 조선이 한민족 한뿌리임을 설파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발언의 귀결은 조선의 젊은이들이 태평양전쟁에 용감하게 나서라는 것이다. 화랑 관창처럼, 사육신 성삼문처럼 목숨을 바치라고 요구한다. 다만 그 충성의 대상이 일본 천황일 뿐이다. 천황을 위해 벚꽃같이 지라고 한다

미국을 방문중인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기행’을 보면서 “왜 저러지?”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정치부 기자들은 ‘국내 보수층의 지지를 다지려는 의도’라고들 많이 분석하는데, 선뜻 납득이 되지는 않는다. 김 대표는 이미 새누리당 지지층에서 부동의 1위 아닌가. 표를 얻으려면 왼쪽으로 가야지 왜 오른쪽으로, 오른쪽으로만 가는지 설명이 안 된다. 분명히 손해 보는 짓인데 말이다. 그래서 ‘아! 계산이 아니라 본능이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 김 대표가 초대 미8군 사령관 월턴 워커 장군의 묘 앞에서 큰절을 두번 올리고 나서 묘비에 묻은 진흙과 새똥을 직접 손수건으로 닦으며 “아이고, 장군님 감사합니다”를 연발했다는 기사를 보고 퍼뜩 든 생각이다. 이명박 대통령을 두고 ‘뼛속까지 친미·친일’이라고 평가한 친형 이상득의 말도 떠올랐다.

“그런데 저래도 되나?”라는 게 이어진 의문이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김무성 대표의 아버지 김용주(1985년 작고) 전 전남방직 회장 때문이다. 내가 알기에 김용주 회장은 일제 때 친일 행적이 분명한 사람이다. 해방 뒤에는 미군정청의 지원을 받았고 일본인들이 두고 떠난 ‘적산’ 전남방직을 전쟁중에 불하받아 부자가 되었다. 유시민 전 장관은 그런 가계도 때문에 김무성 대표를 ‘친일-반공-보수세력의 총아’로 지칭한 적이 있다. 그러니 김 대표는 심리적 부담 때문에라도 눈에 드러나는 친미 행위는 피해야 할 처지다. 그런데 영 반대로 가고 있어 의아해한 것이다.

 

 

 

 

 

 

한겨레는 2년 전 ‘친일행적’ 정정한 적 없어

하도 이상해서 네이버에 김무성, 김용주, 친일 등의 단어를 쳐놓고 검색을 해봤다. 내 눈이 의심스러웠다. 김용주 회장은 친일을 의심받기는커녕 절세의 애국자로 둔갑해 있었다. 각종 기사와 블로그 글들이 김용주의 친일을 해명하고 애국을 칭송하고 있는 거다. 2년 전쯤 분명히 같은 검색어로 찾아봤는데 그때하고는 하늘땅 차이였다. 글들을 클릭해서 읽어보고는 더 놀랐다. 그런 변화에 나 ‘김의겸 기자’가 적잖은 기여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2년 전쯤 ‘백년전쟁은 계속되는가?’라는 제목의 칼럼을 쓴 적이 있다. 김무성 대표를 거론하면서 “부친인 김용주는 일제 때 경북도회 의원을 지냈고, 조선임전보국단 간부로서 ‘황군에게 위문편지를 보내자’는 운동을 펼쳤다”고 비판한 것이다. 김 대표는 즉각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했는데 내 나름으로는 김 대표의 요구를 선선하게 받아줬다.

내 잘못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칼럼에서 “김 의원이 ‘빨갱이’란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고 표현했는데, 알고 보니 종북주의자, 좌파, 김정일의 꼭두각시라고는 했어도 빨갱이란 단어는 쓰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이 부분은 ‘확인 결과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습니다’라고 정정해줬다.

부친의 친일 행적 부분도 반론을 보도해주는 걸로 쉽게 합의를 봤다. 그래서 “이에 대해 김 의원은 ‘당시 경북도회 의원들은 조선인 농민들의 편에 서서 조선총독부의 정책을 비판하고 반대하였으며, 김 의원의 부친은 사재를 털어 조선인 한글교육 야학을 개설하고 일본 자본에 맞서 조선상인회를 설립하는 등 애국자적 삶을 살았고, 친일인명사전에도 없으므로 친일파가 아니다’라고 밝혀왔습니다”라는 반론보도 문구를 김 대표의 변호사와 함께 작성했다. 반론보도는 정정보도와는 성격이 다르다. 정정보도는 기자가 사실보도의 착오를 인정하고 내용 자체를 바로잡는 것이다. 그러나 반론보도는 양쪽의 주장을 독자가 판단할 수 있도록 상대방에게 방어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기자인 나야 사실관계가 틀림이 없고 친일파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지만 아들인 김무성 대표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을 테니 반론할 기회를 주는 게 공정하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또 칼럼을 쓸 당시는 김무성 대표의 행위(노무현 전 대통령의 엔엘엘(NLL) 발언 왜곡)에 분개했지만, 돌아가신 부친까지 끌어들인 건 나도 나중에 마음에 걸리던 차였다.

이런 곡절을 거쳐 ‘김무성 의원 부친 관련 반론 및 정정보도’가 지면에 실렸다. 그 직후 김 대표가 출입기자들에게 돌린 문자가 나한테도 한 다리 건너 전달이 됐다. 김 대표가 반론보도문의 성격을 자기한테 너무 유리하게만 해석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더 이상 보도가 확산되는 걸 막으려는 걸로 이해하고 그냥 넘어갔다. 그리고 잊고 살았다. 네이버 검색을 하다가 경악하기 전까지는.

2년 동안 생산된 기사나 블로그 글들의 제목을 몇 가지만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김무성 “우리 부친은 친일파 아닌 애국자”

-김무성 친일 논란 정리, 해촌 김용주 선생의 애국활동

-김무성 대표 부친, ‘해촌(海村) 김용주’ 선생…공작 속에 묻혀버린 ‘애국자’

-김무성 대표 아버지가 친일파가 아닌 13가지 이유!

-“아버지가 친일파라고…차라리 나를 모욕하라” 김무성 의원이 직접 말하는 ‘나의 개인사와 가족사’

2년 전만 해도 인터넷에는 김 대표의 가족사를 거론하며 친일 의혹을 제기하는 글들만 있었는데 이제는 생태계가 완전히 뒤바뀌었다. 김 대표의 적극적인 대응이 있었을 것이다. 김 대표는 어느 인터뷰에서 선친 문제와 관련해 “지금까지는 무시하거나 관용으로 대했지만 이제는 언론중재위에 제소하거나 고소 등 조처를 할 계획”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 하지만 대응이 방어 차원을 넘어서 아예 공세로 넘어간 모양새다. 친일파가 아니라는 해명을 넘어 애국자, 애국활동으로까지 미화되고 있다. 김 대표 쪽의 적극적인 언론 접촉과 논리 제공이 있었을 테고, 가까운 언론매체나 지지자들이 글을 양산했을 것으로 짐작이 간다. 이런 환경 변화에 힘입었는지 김무성 대표의 공식사이트에도 ‘나의 아버지’가 비중있게 소개되는데, 부제가 ‘나라와 민족을 사랑한 해촌 김용주’다.

경이로운 변화다. 게다가 내가 내보낸 ‘반론보도문’이 이런 세태 변화에 공헌하고 있다는 게 당혹스럽기 그지없다.

김 대표의 블로그에 들어가보면 이런 글이 실려 있다. “당시 한겨레가 사설을 통해 해촌 선생이 친일행적을 보였다고 보도하자 김 대표는 ‘당시 경북도회 의원들은~애국자적 삶을 살았다’고 강조하며 언론중재위원회에 정정을 요청했다. 결국 한겨레는 지난 2013년 10월 언론중재위 조정에 따라 <김무성 의원 부친 관련 반론 및 정정보도>를 냈다.” 정정을 해준 건 빨갱이 부분일 뿐인데 이는 거론조차 하지 않고 마치 친일 부분이 정정된 것처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글은 이어서 “해촌 선생의 친일 의혹은 특정세력의 명백한 정치 공작”이라고 주장한다. 기자인 내가 졸지에 공작 정치의 하수인이 되고 말았다. 김 대표 부친의 친일 의혹을 간단하게 거론하는 <오마이뉴스>의 어느 기사를 보니 중간에 엉뚱하게 내가 작성한 반론보도문이 끼어들어가 있었다. 그것도 원문이 아니라 첨삭이 된 문장이었다. 아마도 오마이뉴스 쪽에 기사 정정을 요구하며 그 반론보도문을 들이댄 모양이다. 내가 별생각 없이 합의해준 반론보도문이 나도 모르는 새 다른 언론의 재갈을 물리는 데 쓰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한겨레와 내가 조롱감이 되는 건 당연한지도 모른다. 어느 기사에서는 이런 치욕적인 글귀를 발견했다. “한겨레는 이전에도 김무성 대표와 관련된 기사에서 오보를 게재한 적이 있었다. 김무성 의원의 부친이 친일파라는 보도와 김무성이 ‘빨갱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는 허무맹랑한 글을 올렸던 적이 있다. 그래서 그때도 정정보도를 낸 적이 있었다.” 내가 허무맹랑한 기자가 되는 건 문제가 아닌데 회사마저 망신을 사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 후보 지지도 1위 여당 대표
선친의 친일행적 의식했다면
방미 중 발언과 행위 안 나왔을 것
친일 콤플렉스 떨쳐 버린건가
굴욕적 친미발언과 큰절이라니

“진정한 내선일체…충실한 황국신민
…야스쿠니 신사에 받들어질 영광”
‘미영 격멸’ 공직자대회 보도한
1943년 10월3일치 <매일신보>와
대회기록집에 김용주 상세 발언


A4 용지 3장 분량으로 드러난 김용주 발언

알고 보니 김무성 대표에게 반격의 기회를 제공한 건 나만이 아니었다. 배재정 민주당 대변인도 김 대표의 부친이 ‘친일인명사전에 대표적인 친일파로 등재됐다’고 논평을 냈다가 뒤늦게 동명이인임을 깨닫고 김 대표에게 사과를 하기도 했다. 친일인명사전에 올라 있는 김용주는 만주에서 활동하던 사람이니 전혀 다른 인물이다. 그러니 “김무성 부친 친일인명사전 민주당 거짓말! 사실 부친 김용주는 애국자” 등의 글들이 즐비하게 된 거다.

인터넷 경제전문지인 <스페셜경제>는 당시 “김무성 대표 부친 ‘친일 의혹’…거짓 속에 묻혀버린 진실. 알고 보니 애국자였다…친일 의혹 ‘명백한 공작’”이라는 단정적인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그 기사에서는 “아울러 배 대변인의 거짓 논평뿐만 아니라 한겨레신문 역시 친일 의혹에 대해 정정보도를 하면서 김 대표 부친의 친일 의혹은 사실무근인 것으로 드러났다”고 자신했다.

그래서 나는 이제 김 대표 선친의 친일 행적을 정면으로 문제 삼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내몰리게 됐다. 지난 2년 동안 사정을 몰랐을 때야 어쩔 수 없지만 알고 나서도 계속해서 침묵한다면 나는 역사 왜곡의 공범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친일을 감추고 싶어하는 것과 친일을 애국으로 탈바꿈하는 것은 너무도 다르다. 또 나와 내가 몸담고 있는 한겨레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뭔가 조처를 취해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린 거다.

나는 사실 김무성 대표 선친의 친일 행적을 뒷받침하는 최소한의 자료를 이미 2년 전에 확보하고 있었다. 김 대표가 “법적 대응에 임할 것”이라며 내용증명까지 보낸 판이라, 기존에 가지고 있던 1941년 12월9일치 <매일신보> 말고도 더 많은 자료를 찾아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언론중재위원회에 나가서 새로 입수한 자료를 언급하지는 않았다. 확전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식민지-미군정-전쟁-독재로 이어지는 뒤틀린 우리 역사에서 정리되지 못한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닌데 그 후손들을 다 문제 삼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정서에서다. ‘아버지는 아버지고 아들은 아들이다’가 아직도 기본적인 내 생각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게다가 김무성 대표가 여느 정치인인가. 집권 여당의 대표이고 대통령 후보 지지도 1위를 달리고 있다. 차기 대통령 자리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 있는 인물이다. 그가 선친의 친일 행적을 의식하고 있었다면 방미 중의 발언과 행위가 나오지 않았을 것으로 나는 생각한다. 친일 콤플렉스를 완전히 떨쳐버렸기에 긴장이 풀린 상태에서 굴욕적인 큰절이 나오고 “우리는 중국보다 미국”이라는 발언을 태연하게 뱉을 수 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니 ‘또 친일 타령이냐’거나 ‘웬 연좌제냐’는 얘기를 듣는 한이 있더라도 입을 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한 역사학자의 도움을 받아 찾아낸 건 <매일신보> 1943년 10월3일치 2면의 기사다. 징병제 시행을 고마워하며 미국과 영국 격멸을 결의할 목적으로 부민관 대강당에서 열린 전선공직자대회(全鮮公職者大會)를 다룬 기사로서, 제목은 ‘총후의 전열에 총립, 제2일 공직자대회에 멸적의 열화창일, 각 의원들의 열론’(銃後의 戰列에 總立, 第二日 公職者大會에 滅敵의 熱火漲溢, 各議員들의 熱論)이다.

이 자리에서 김 대표의 부친 김용주(일본명 金田龍周, 경북도회 의원)는 “징병제 실시에 보답하는 길은 일본 정신문화의 앙양으로 각 면에 신사(神社)와 신사(神祠)를 건립하여 경신숭조 보은감사(敬神崇祖 報恩感謝)의 참뜻을 유감없이 발휘”하도록 하여야 하며 “미영 격멸에 돌진할 것을 촉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사가 간단해서 더 구체적인 자료가 없을까 찾다가 이 대회 사무국이 1944년 1월에 발간한 <징병제시행 감사 적미영격멸 결의선양 전선공직자대회기록>(徵兵制施行感謝 敵米英擊滅 決意宣揚 全鮮公職者大會記錄)을 발견하게 됐다. 그 책자에는 김용주의 발언이 상세하게 실려 있다. 옮기고 보니 A4 용지로 3장이 넘는 분량이나 몇가지만 추려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이날 회의에서 첫번째 의제는 “징병제 실시에 즈음하여 그 완벽을 기함과 함께, 2천500만 민중에게 고마우신 성지(聖旨)를 철저하게 젖어들게 하도록 구체적 시책 의견”이었다.

김용주는 박수를 받으며 등단해 “먼저 가장 급한 일은 반도 민중에게 고루고루 일본 정신문화의 진수를 확실히 통하게 하고, 진정한 정신적 내선일체화를 꾀하여 이로써 충실한 황국신민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고 말하며 구체적 방책들을 제안한다.

그 가운데 하나는 “각 면에 신사(神祠)를 건립하여 모든 민중으로 하여금 신을 공경하고 신앙생활을 하게끔 하면 일본 정신의 진수에 철저히 젖어들게 할 수 있습니다”이다. 그는 이어 “앞으로 징병을 보낼 반도의 부모로서 자식을 나라의 창조신께 기뻐하며 바치는 마음가짐과 귀여운 자식이 호국의 신으로 야스쿠니 신사에 신으로 받들어 모시어질 그 영광을 충분히 인식하여 모든 것을 신께 귀일하는 신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신에 대한 신앙을 철저히 하여 현세의 신이신 천황께 귀일하는 것입니다”라고 주장한다. 조선의 부모들이 천황폐하를 위해 기꺼이 자식의 목숨을 바칠 수 있도록 면 단위마다 신사를 세워 신앙심을 고취시키자는 고약한 내용이다. ‘일본동맹통신사’에서 발간한 자료를 보면 김용주는 말만 내세운 게 아니라 실제로 대구신사를 건립하는 데 2천원을 기부한 것으로 나온다.

더 심한 건 신라시대 화랑 관창과 조선시대 사육신 성삼문의 사례를 들며 “우리는 이처럼 의용충렬한 선조를 갖고 있습니다. 그 자손인 자가 분투하여 굳건한 각오를 갖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라는 논리를 편다. 우리 조상들의 충성심과 의기를 오늘에 되살려, 일본 천황을 위해 떨쳐일어나자는 얘기다.

2년 전 김무성 아버지 김용주의
친일행적 비판한 ‘한겨레’ 칼럼
반론기회 줘 반론보도문 게재
그뒤 인터넷 포털에서 김용주는
친일은커녕 애국자로 둔갑했다

김무성 대표 쪽은 언론중재위에서
“매일신보 믿을 수 없다”고 반박
한데 그 아버지는 “매일신보가 반도의 민지 계발에 공헌한다”며
한글판 추가발행까지 제안하기도


김용주는 자서전에서 친일행적 숨겨

김용주는 이어서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의 한글판을 매주 1회 발행하자고 제안하며 그를 통해 “영미화란의 과거 수백년 동아침략의 실정 및 과거 현재에 통틀어 약소하고 전쟁에 패한 국가민족의 말로가 얼마나 참담하고 슬프고 애달기 짝이 없는 것인지를 명시하여 정부를 향하여 나아가는 길을 제시하고 일억 국민은 굳게 단결하여 죽어서라도 승리하겠다는 결심을 확고하게 해야 할 것”이라는 말로 연설을 맺는다. 김용주는 두번째 안건에도 등장해 발언을 한다. 안건은 “대동아전쟁 바야흐로 저편과 이편이 결전양상으로 바쁘고 어지럽고 맹렬하게 됨을 돌아보고, 더욱 미영격멸의 결의를 새롭게 하고 조선서 필승 신념을 고양하며, 전력증강, 전시생활의 확립을 한층 심화 철저히 하는 건설적 의견”이다.

그는 이 의제와 관련해 “반도 2천500만의 반수인 부녀자의 생산방면 활동”을 높이기 위해 “취사는 아침 밤 2번으로 하고, 점심은 도시락제로 할 것” “요릿집, 음식점 등 유흥음식 시간을 미영격퇴까지 당분간 2시간 이내로 제한할 것” 등을 제안하기도 한다. 위안부 문제를 거론하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으로 여겨질 정도다.

이 자료를 통해 <매일신보>를 바라보는 김무성 대표 부자의 시각차가 드러나 쓴웃음을 짓기도 했다. 나는 2년 전 칼럼에서 1941년 12월9일치 <매일신보>를 근거로 “김무성의 부친인 김용주는 조선임전보국단 간부로서 ‘황군에게 위문편지를 보내자’는 운동을 펼쳤다”고 썼다. 실제 그날치 신문 기사를 보면, 김용주는 대구부 욱정공립국민학교에서 열린 조선임전보국단 경북지부 결성식에 참석한다. 거기서 그는 ‘황군장병에게 감사의 전보를 보낼 것’을 제안했고, 이는 만장일치로 가결된다. 그리고 그는 조선임전보국단 경북지부 상임이사에 선출되는 걸로 나온다. 하지만 김무성 대표 쪽은 “<매일신보>가 당시 조선총독부의 기관지였고 당사자가 작성하지 않은 기고문조차 매일신보 기자가 임의로 작성해 보도한 사례가 있는 만큼 믿을 수 없다”고 언론중재위에서 반박했다. 그런데 그 아버지는 “<매일신보>는 반도의 민지(民知) 계발에 크나큰 공헌을 하고 있다”며 <매일신보> 한글판을 추가로 발행하자고까지 했으니 우리 역사의 씁쓸한 한 단면이다.

김용주도 해방 이전 자신의 행적을 숨긴다. 그는 작고 1년 전인 1984년 <나의 회고록: 풍설시대 80년>을 펴내는데, 일제 말 행적에 대해 이렇게 적어놓고 있다. “이러한 시국하에서는 만사에 있어 조심스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새삼스레 일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1943년부터는 일제 치하의 모든 면에서 스스로 후퇴하여 8·15 해방에 이르기까지 칩거생활로 들어간 것이다.” 1943년의 전선공직자대회(全鮮公職者大會) 발언은 깨끗하게 지운 것이다.

긍정적 평가할 대목도 있겠지만…

나는 이 자료로 인해 김용주 전 회장이 단박에 ‘친일파’가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김용주 전 회장의 일대기 가운데 후손들이 평가해야 할 대목 또한 많이 있기 때문이다. 조선인들이 교육받을 곳이 점점 줄어드는 것을 우려해 경영난으로 존폐위기에 처한 영흥학교를 새롭게 설립한 점이 그렇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 직전에 당시 주일공사였던 김용주가 맥아더 장군을 찾아가 5대 궁궐과 4대문 등을 하나하나 지도에 표시해가며 우리 역사 유물과 주요 문화재들을 보호해줄 것을 간곡히 요청했다고 하니 크나큰 공로다. 단지 이 자료를 계기로 있는 사실은 있는 그대로 보자는 거다. 시인 김수영이 ‘역사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 진창은 아무리 더러운 진창이라도 좋다’(<거대한 뿌리>)고 노래했듯이 친일과 독재라는 우리의 아픔을 받아들이고 끊임없이 고쳐나가려는 용기만이 우리를 진창의 역사에서 구원해줄 거라고 믿는다. 큰 꿈을 꾸는 김무성 대표가 그런 자세를 가질 때에라야 열강의 틈바구니를 헤쳐나가는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김의겸 선임기자 [email protected]

<2015-07-31> 한겨레

기사원문: ‘친일’ 김무성 아버지가 애국자로 둔갑하고 있다

※ 추가기

☞한겨레: 김무성의 집안…적산기업 불하 받아 전남방직 만들어

☞폴리뉴스: ‘친일파’ 김무성 부친, 애국자로 황당하게 둔갑

☞한겨레: 김무성 “좌파세력 준동…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 파문

☞한겨레: 김무성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발언에 현직 교사 항의 편지

월, 2015/08/03-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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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영화 <암살>의 '가상의 서사'가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이어지는 '현실의 역사'입니다.

 

밀양에 연대하는 이들은 잘 아실 것입니다만, 단장면 용회마을위 주민투쟁을 이끌어오신 구미현 어머님이 계십니다.

그 분을 아는 이들은 한결같이 그분의 헌신적인 활동과 반듯하고 온화한 인품에 존경하는마음을 갖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분에게는 무언가 그 세대 어르신들과는 조금 다른 이지적이고 또한 단아한 기품이 느껴집니다.

 

최근, 영화 <암살>이 1천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몰이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구미현 어머님의 조부이신 일우 구영필 선생(1891~1926)이 영화 <암살>의 밑그림이 되는 '의열단'의 실질적인 주도자이자 배후였으며, 친가와 외가 전원이 만주로 이주하여 전 재산을 처분하여 독립운동기지건설에 바쳤으며, 끝내 김좌진과 신민부가 만주 영고탑 지역에서 벌인 횡포에 맞서다 끝내 암살되셨다는 사실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 후로 일우 선생의 일가는 제 과오를 감추고자하는 김좌진 신민부 세력에 의해 '일제 밀정'이라는 끔찍한 모욕을 뒤집어쓰고 90년이 지난 지금까지 독립유공자 서훈조차 받지 못했습니다.

 

구미현 어머님의 부친 구수만 선생은 광주학생의거로부터 시작하여 오랜 시간동안 지하활동을 하셨고, 거듭된 구속과 끔찍한 고문 끝에 육신이 거의 망가져 불우한 여생을 보내야 했습니다.

 

구미현 사모님은 노년에 이르러서야 겨우 삶의 안정을 되찾았으나, 집 바로 뒷산을 지나가는 초고압 송전탑 건설에 맞서는 '밀양송전탑' 투쟁에 참여하여 끔찍한 국가폭력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이제, 90년을 기다려온 역사적 진실이 조금씩 세상 앞에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 가슴아프고도 놀라운 이야기를 널리 알려주세요.

 

<한겨레21>이 광복절 특집으로 구미현 사모님 3대의 비극과 고통을 정면으로 다루었습니다.

 

http://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40087.html

 

 

 

저작자 표시
화, 2015/08/11-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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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으로 보는 대한민국의 역사”가 유행한 적이 있다. 특정한 주제나 소재를 프리즘 삼아 그 사회와 역사를 반추해보는 것이다. 훈장은 국가와 민족에 헌신한 이에게 바치는 최고의 영예이다.

▲ 대한민국 훈장, 건국훈장 등 모두 12개 종류의 훈장이 있다.

▲ 대한민국 훈장, 건국훈장 등 모두 12개 종류의 훈장이 있다.

1948년 정부수립 이후 지난 68년 동안 대한민국이 수여한 훈장 건수는 모두 72만 건에 이른다. 전체 훈장 기록을 통해 바라본 대한민국 역사는 어떤 모습일까?

지난 4개월 동안 대한민국 서훈 72만 건 내역 분석

뉴스타파는 지난 넉 달 동안 대한민국의 전체 서훈 72만 건의 상세 내역을 샅샅이 찾고,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6천여 명을 새롭게 조사했다. 자료 조사와 현장 취재를 병행했다. 지난 4개월 동안 진행된 뉴스타파의 훈장 취재는 이런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대한민국 훈장의 역사는 독립운동과 민주이념 등 헌법 정신을 잘 구현하고 있는가?”

“친일파에게 가장 많은 훈장을 수여한 대통령은 누구일까? 그리고 왜 줬을까?”

“이른바 ‘셀프 훈장’을 가장 많이 받은 대통령은 누구일까? 그리고 몇 개나 받았을까?”

“왜 지금까지 정부는 훈장의 서훈 내역을 비공개해왔을까?”

▲ 지난 5월부터 뉴스타파는 민족문제연구소와 여러 차례 회의와 공동 분석을 진행하며, 서훈 72만 건을 취재했다.

▲ 지난 5월부터 뉴스타파는 민족문제연구소와 여러 차례 회의와 공동 분석을 진행하며, 서훈 72만 건을 취재했다.

뉴스타파는 220명 넘는 친일 인사들이 해방 후 대한민국 정부에서 4백 건 넘는 훈장을 받은 사실을 찾아냈다. 이 작업은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했다. 대한민국 서훈 72만 건과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와 민족문제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에 오른 친일파를 교차 분석한 결과다.

200명 넘는 친일인사, 대한민국 훈장 400건 받아

친일인사들에게 수여된 상훈의 전모를 확인해 공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 전체 명단은 뉴스타파 특별기획 ‘훈장과 권력’ 4부작 다큐멘터리와 뉴스타파 웹페이지를 통해 공개할 예정이다.

대한민국 국가 서훈자 명단에는 악질 친일경찰 노덕술도 있다. 뉴스타파는 그가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3개의 훈장을 받는 기록을 최초로 확인한 것이다. 노덕술은 일제로부터 훈7등 서보장을 받은 사실이 알려졌지만, 해방 후 대한민국 정부의 훈장을 받은 사실은 이전까지 알려지지 않았다. 또 A급 친일파에다 반민특위 1호로 체포된 박흥식도, 동족을 배반한 대가로 일제로부터 귀족 작위를 받은 민영휘도 각각 1977년과 1964년에 훈장을 받는다.

친일인사 훈장 수여, 박정희와 이승만 집권 시기에 집중

친일인사들에 대한 서훈은 이승만과 박정희 집권 기간에 집중됐다. 훈장 수여는 대통령 고유권한이다. 두 통치자가 친일인사들에게 무더기로 훈장을 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또 친일인사들은 훈장을 통해 무엇을 얻고자 했을까?

▲ 청남대에 세워져 있는 이승만과 박정희 동상

▲ 청남대에 세워져 있는 이승만과 박정희 동상

전두환 등 신군부 세력 훈포장 잔치도 추적

뉴스타파는 헌정질서를 파괴한 반민주 행위자들의 서훈 내역도 확인했다. 12.12 군사반란을 일으켜 권력을 찬탈하고 민주주의를 짓밟은 신군부 세력들의 훈장 잔치는 상상을 초월했다. 이들에게 국가의 이름으로 훈장을 수여한 행위는 과연 정당한 것일까?

▲ 12.12 군사반란 직후 촬영된 전두환 등 신군부 세력의 단체 사진, 사진에 등장하는 신군부 34명이 받은 102개의 서훈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 12.12 군사반란 직후 촬영된 전두환 등 신군부 세력의 단체 사진, 사진에 등장하는 신군부 34명이 받은 102개의 서훈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뉴스타파 취재진은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자료를 추적하고, 당사자와의 만남도 시도 했다. 지난 4개월의 취재 과정은 제대로 청산되지 않은 친일반민족행위와, 군사독재 하수인들의 뻔뻔한 민낯을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대한민국 훈장의 역사는 대한민국의 굴곡진 자화상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KBS가 못한 훈장 데이터 분석, 뉴스타에서 풀어내

당초 훈장 취재의 시작은 KBS였다. 지난해 1월 KBS 탐사보도팀 기자들은 정부를 상대로 3년 간의 소송 등을 통해 서훈 기록 72만 건 전체를 최초로 입수했다. 그러나 KBS 간부들의 반대에 막혔다. KBS 기자들은 지난해 광복70년 특집으로 훈장의 역사를 다룬 프로그램을 보도할 예정이었지만 결국 일부 내용만 나갔고 친일과 훈장 등 핵심 내용에 대한 방송 일정은 기약 없이 밀렸다.

“훈장과 권력” 7월 28일부터 4주 연속 방송

결국 KBS에서 훈장 취재를 맡았던 기자가 올해 2월 뉴스타파로 이직하면서 뉴스타파에 훈장 전담 취재팀이 꾸려졌다. 그리고 행안부가 공개한 60여만 건의 데이터와 뉴스타파가 자체 수집한 자료, 민족문제연구소와의 공동 분석한 결과물 등을 토대로 대한민국 훈장 데이터를 새롭게 구축했다.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 뉴스타파는 해방71년 특별기획으로 준비한 “훈장과 권력” 4부작을 7월 28일부터 8월 18일까지 매주 목요일 4주 연속 방송할 예정이다.

7월 28일 첫 방송으로 나갈 1부 ‘민주 없는 훈장’ 편에서는 헌정질서를 파괴한 독재세력에겐 관대했고, 민주인사들에게는 인색했던 대한민국의 서훈의 역사를 비판적으로 조명하고, 2,3부 ‘친일 훈장’ 편에서는 대한민국 훈장을 받은 친일인사들의 전체 명단을 처음으로 확인해 공개할 예정이다. 또 4부 ‘훈장의 수사학’ 편에서는 역대 대통령들이 서훈 행위를 통치의 수단으로 활용했던 이면과 각 훈장의 의미를 분석한 결과를 담아낼 예정이다.


공동기획 : 민족문제연구소
취재 최문호, 박중석, 송원근, 조현미
촬영 최형석, 정형민
데이터 최윤원, 김강민, 이보람, 연다혜
CG 정동우
편집 정지성, 박서영

월, 2016/07/25-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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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 의혹을 받고 있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부친인 해촌 김용주가 일제 말기인 1940년 대, ‘일제 군용기 헌납’과 ‘징병’을 독려하는 기명 광고를 낸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다. 또 1940년 이후 김용주는 일제의 침략전쟁에 협력하는 친일 단체의 주요 보직을 맡아왔으며, 지속적으로 강도 높은 친일반민족 발언을 한 사실이 당시 공식 문건과 신문 기사 등 문헌을 통해 확인됐다. ‘아버지는 애국자’라고 주장해 왔던 김무성 대표는 새로 발굴된 김용주의 친일 행적에 대해 아무런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부친 김용주의 친일 행적이 새롭게 드러났다.

▲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부친 김용주의 친일 행적이 새롭게 드러났다.

9월 17일, 민족문제연구소는 그동안 사료발굴을 통해 군용기 헌납과 징병을 독려하는 아사히 신문 광고 등 김용주의 친일 행위를 새롭게 입증할 다수의 일제 공문서와 신문 자료를 공개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이날 기자간담회를 열고 “김용주가 1920년대와 30년대 중반까지 야학과 신간회 활동 등 민족적 행보를 보인 것은 맞지만 1940년 이후부터 친일의 길로 들어선 것으로 파악된다.”고 밝혔다.

▲ 민족문제연구소는 9월 17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부친 김용주의 새로운 친일행적을 보여주는 자료를 공개했다.

▲ 민족문제연구소는 9월 17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부친 김용주의 새로운 친일행적을 보여주는 자료를 공개했다.

김용주, 일제 말 ‘군용기 헌납’, ‘징병’ 독려 기명 광고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김용주는 일제가 벌인 대동아전쟁이 극에 달하던 1943년과 1944년, 두 차례에 걸쳐 태평양전쟁 중인 일제에 군용기를 헌납할 것과 조선 청년들이 대동아전쟁에 적극 나설 것을 독려하는 광고를 아사히 신문이 조선에 배포하는 ‘남선판’과 ‘중선판’에 게재했다. 두 광고 모두 김용주 자신의 창씨명인 김전용주(金田龍周)라는 이름을 내건 기명광고다. 이에 대해 민족문제연구소 이준식 연구위원은 “본인이 적극적으로 (대동아)전쟁에 협력하고 있다는 것을 일제에 과시하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 김용주가 일제 말기 아사히 신문에 게재한 기명 광고들.

▲ 김용주가 일제 말기 아사히 신문에 게재한 기명 광고들.

김용주, 일제 징병제 관련해 “자식을 기뻐하며 바쳐라”

김용주는 1943년 서울 부민관에서 열린 전선공직자대회에 참석해 “진정한 정신적 내선일체화를 꾀”해 “충실한 황국신민이 될 것”을 우선적 과제로 밝혔다. 김용주는 또 전쟁에 동원되는 조선 청년들의 부모를 향해 “자식을 나라의 창조신께 기뻐하며 바치는 마음가짐”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하고, “귀여운 자식이 야스쿠니 신사에 신으로 받들어 모시어질 영광”이라 표현 등의 강도 높은 친일 발언을 했다.

▲ 전선공직자대회에 참가한 김용주는 내선일체와 황국신민, 천황의 귀일 등 징병을 독려하는 발언을 했다.

▲ 전선공직자대회에 참가한 김용주는 내선일체와 황국신민, 천황의 귀일 등 징병을 독려하는 발언을 했다.

당시 경북도회 의원 40명 가운데 전선공직자대회에 참석한 조선인 의원은 단 두 명으로 기록돼 있다. 바로 경북지역 대표적 친일파인 서병조, 그리고 김용주다.

이밖에 김용주는 여러 친일단체에도 주요 임원으로 참여했다. 일제가 조선인들의 전쟁협력을 최대한 이끌어내기 위해 조직한 ‘국민총력’과 ‘조선임전보국단’의 주요 보직을 두루 맡았다. 당시 경북도회 의원이던 김용주는 1941년 5월, 국민총력 경북 수산연맹 이사로 선출되고 같은 해 7월, 평의원으로 임명된다. 조선임전보국단 발기인이기도 했던 그는 1941년 12월, 조선임전보국단 경북지부 상임이사로 선출됐다. 당시 김용주와 함께 조선임전보국단의 경북지부 상임이사로 있던 서병조, 정해붕, 문명기는 지난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가 결정한 친일파 1,006명에 포함된 인사다. 민족문제연구소는 “김용주가 1937년 이후 해방될 때까지 10년이 조금 안 되는 기간 동안에 벌인 각종 친일행위는 적극적인 전쟁범죄행위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아래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부친 김용주 씨의 주요 친일 행적을 시기별로 정리한 타임라인이다.
민족문제연구소가 공개한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했다.


  • 해촌 김용주
    1905.7.29 – 1985.1.27
    자료제공 : 민족문제연구소
  • 1905. 7. 29.

    경남 함양군 함양면 신관리 출생

  • 1923.

    조선 식산은행 본점 취직

    6개월 만에 포항지점으로 전출. 경북 영일군 포항읍 이주 정착.

    ※ 식산은행 : 1918년 설립한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의 식민 경제 지배에서 동양척식회사와 함께 금융 측면에서 뒷받침했던 핵심 기관 중 하나.

  • 1924.

    ‘영일청년회’ 지육부장

    독서회 조직 및 노동야학 개설. 이후 교사로 참여

  • 1926. 5. 28.

    독서회를 조직했다는 이유로 경찰에 체포

    검사분국으로 송치(5.30)됐으나 이틀 만에 방면

    출처 : 시대일보(時代日報) 1926년 6월 3일 2면

  • 1926.

    삼일상회(三一商會, 철도화물운송업) 설립

    “삼일 민족운동의 정신을 본받는다는 뜻에서 붙인 것인데, 일찍이 민족의식에 눈떠 청년운동에 열중했던 나의 심혼을 표시한 그 상호는 다분히 의식적이고 민족적인 인상을 풍기었다. ”

    출처 : 김용주 회고록 “풍설시대80년” 중

  • 1927. 7. 22.

    신간회 영일지회 정치부 간사

    ※ 신간회(新幹會) : 1927년 2월 민족주의 좌파와 사회주의자들이 연합하여 창립한 민족협동 독립운동 단체

    출처 : 조선일보(朝鮮日報) 1927년 7월 25일 2면
    중외일보(中外日報) 1927년 7월 27일 4면

  • 1936. 3.

    포항 영흥학교 인계 경영 및 교장 취임

    출처 : 동아일보(東亞日報) 1936년 3월 24일 4면

  • 1936. 9. 20.

    경상북도 포항 읍회 의원(민선) 당선

    출처 : 매일신보 1936년 9월 22일 조간 4면

  • 1937. 5. 10.

    경상북도 도회의원(영일군, 민선)

    1945년 해방때까지 도회 의원 유지

    출처 : 조선총독부 관보 1937년 7월 6일
    매일신보 1937년 5월 12일 석간 1면

  • 1940. 2. 23.

    “국체명징관 내에서는 내선관계의 역사적 연원을 증명하는 자료를 진열하여 내선일체의 정신적 심도를 올려야.” 발언 – 12회 경북도희 회의 발언

    김용주 의원, 설치를 고려하는 국체명징관 내에서는 내선관계의 역사적 연원을 증명하는 자료를 진열하여 내선일체의 정신적 심도를 올릴 것.

    ※국체명징관(國體明徵館) : 국체명징(國體明徵) 즉, 황도정신(皇道情神)의 보급이라는 미명 아래 조선인들의 황국신민화와 내선일체를 촉진한다는 목적으로 세운 건물.

    출처: 동아일보 1940년 2월 27일 자 석간 7면(자료제공 : 민족문제연구소)

  • 1940. 2. 24.

    “충량한 황국신민으로서 내선일체의 이상에 향하고 있으므로 옛날과 같이 불온사상을 가진 자는 한명도 있지 않으므로 반도 교육에 일대 전환할 시기인 줄 생각한다.” 발언 – 제12회 경북도회 회의

    김용주씨 (포항) 반도인은 황도정신에서 황국신민으로서 충량한 내선일체의 이상에 향하고 있음으로 옛날과 같이 불온사상을 가진 자는 한명도 있지 않으므로 반도교육에 일대 전환할 시기인줄 생각한다.

    출처 : 매일신보 1940년 2월 26일(자료제공 : 민족문제연구소)

  • 1940. 7. 11.

    김용주 창씨개명

    金龍周(김용주) – 金田龍周(가네다 류슈)

    출처 : 조선총독부관보(朝鮮總督府官報) 1940년 12월 20일

  • 1940. 11.

    일본 기원 2600년 축전 기념식전 및 봉축회 초대받음

    1941년 친일파 김갑순이 발행하는 조선신문사가 발행한 명단 중 김용주 수록 게재
    1941년 9월 일본동맹통신사 발행 “흥아일본건국사”에 명단 중 김용주 수록 게재

    ※ 일본 기원 2600년 축전(紀元二千六百年祝典) : 1940년 11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일본기원 2600년 봉축식, 일본은 전시체제를 맞아 일본의 위대성을 대내외에 알리는 대대적인 선전활동을 벌였다.

    출처 : 기원 2600년 축전기념 광영록(紀元二千六百年祝典記念光榮錄) – 조선신문사(朝鮮新聞社), 1941.10, 46쪽(자료제공 : 민족문제연구소)

    일본내각관보 1941년 11월 21일 21쪽

  • 1941. 5. 17.

    국민총력 경상북도수산연맹 이사 선임

    水産團體도 結合, 翼贊體制를 整備, 慶北聯盟 結成式 擧行(수산단체도 결합, 익찬체제를 정비, 경북연맹 결성식 거행)

    ※ 국민총력 경상북도수산연맹 : 조선인의 황국신민화와 전쟁동원을 목적으로 조직된 조선총독부의 최대 관변단체인 국민총력조선연맹(國民總力朝鮮聯盟) 산하 단체

    출처 : 매일신보(每日新報) 1941년 5월 20일 석간 3면(자료제공 : 민족문제연구소)

  • 1941. 7. 16.

    국민총력 경상북도연맹 평의원, 도회의원 자격으로 임명

    1) 總力慶北聯盟, 新道議 網羅 後 最初 常會, 中心論題는 生活新體制(총력경북연맹, 신도의 망라 후 최초 상회, 중심논제는 생활신체제)

    2) 道會議員を評議員に加へ, 慶北, 聯盟役員の常會を開へ(도회의원을 평의원에 가입, 경북, 련맹역원의 상회를 개최)

    ※ 국민총력 경상북도연맹 : 조선인의 황국신민화와 전쟁동원을 목적으로 조직된 조선총독부의 최대 관변단체인 국민총력조선연맹(國民總力朝鮮聯盟)의 지방 조직

    출처
    1)매일신보 1941년 7월 18일 3면
    2)경성일보 1941년 7월 18일 2면

  • 1941. 9.

    대구국체명징관 1천원 헌납, 대구신사 2천원 헌납

    ※국체명징관(國體明徵館) : 국체명징(國體明徵) 즉, 황도정신(皇道情神)의 보급이라는 미명 아래 조선인들의 황국신민화와 내선일체를 촉진한다는 목적으로 세운 건물.

    출처 : 日本同盟通信社, 1941.9, 330~332쪽
    (皇統[皇紀]二千六百年記念誌)興亞日本建國史 ; 朝鮮銃後奉公錄(황통[황기]2600년기념지) 흥아일본건국사 ; 조선총후봉공록)(자료제공 : 민족문제연구소)

  • 1941. 9.

    조선임전보국단 발기인 참여

    ※ 조선임전보국단(朝鮮臨戰報國團) : 일제가 침략전쟁을 진행하면서 조선인들의 전쟁 협력을 최대한 이끌어내기 위해 조직한 전시체제기 최대의 조선인 민간조직

    조선임전보국단 경북지부 참여 주요 인물
    지부장 : 장직상 (중충원 참의)
    이사장 : 신옥(신현구) 중추원 참의
    상임이사 : 서병조(중추원 참의) 문명기(중추원 참의), 정해붕(중추원 참의), 김용주 등

    출처 : 朝鮮臨戰報國團發起人·役員 名簿, “朝鮮臨戰報國團槪要”(조선임전보국단발기인·역원 명부 “조선임전보국단개요”) 27쪽(자료제공 : 민족문제연구소)

  • 1941. 10. 8~10.

    친일파 문명기(중추원 참의)와 함께 영덕과 영천 지역에서 개로운동을 독려

    국민개로운동의 취지를 철저히 이해시켜 불노유한무직자(不勞有閑無職者)들을 적극적으로 동원하여 전시체제와 개로체제를 확립하도록 되었다. 중추원참의, 도의원 시찰일정은 다음과 같다.

    개로운동을 독려, 중추원참의, 도의들이 선두서
    文明琦一郞·金田龍周 氏, 동행자 森 職組 書記 10월 8일, 10월 10일 영덕·영천 양 군(兩郡)에
    (이하 생략)

    ※ 국민개로운동 : 일제가 전쟁 수행에 필요한 조선인의 노동력동원을 목적으로 조선인의 근로보국을 주장하면서 실시한 운동

    출처 : 매일신보 1941년 10월 7일 경상판 조간 3면(자료제공 : 민족문제연구소)

  • 1941. 12. 7.

    조선임전보국단 경상북도지부 상임이사 임명 및 ‘황군장병에게 감사의 전보를 보낼 것을 제안’ 발언 제안

    1) 臨戰報國團 慶北支部設立, 結成은 卄九日擧行(임전보국단 경북지부설립, 결성은 29일 거행)

    2) 一死報國을 盟誓, 臨戰報國團 慶北支部 結成式, 七日, 盛大하게 擧行(일사보국을 맹서, 임전보국단 경북지부 결성식, 7일, 성대하게 거행)

    출처
    1) 매일신보(每日新報) 1941년 11월 24일 3면

    2) 매일신보 1941년 12월 9일 석간 3면 (자료제공 : 민족문제연구소)

  • 1942. 1. 10.

    조선임전보국단 경상북도 사업부장 임명

    大邱府民號十機! -臨戰報國團 支部와 協力實現에 邁進(대구부민호 10기! -임전보국단 지부와 협력실현에 매진)

    출처 : 매일신보 1942년 1월 12일 2면

  • 1942. 2. 27.

    조선임전보국단 경상북도지부, 미국과 영국을 격멸한 군용기 5대 헌납

    기사에는 임전보국단 경북지부의 단체명이 나오지만, 김용주 등 경부지부 간부들의 이름은 등장하지 않는다.

    임보단서도 활동. 경북서 오기를 헌납

    경북 영일군은 애국기 헌납에 압도적인 성과를 보인 대표적인 지역의 하나이다. 태평양전쟁이 발발한지 불과 2달 후인 1942년 2월 경북 영일군에서만 총 8대의 군용기가 헌납되었다. 경북지역에서 2월말까지 30대 가량 헌납된 것을 감안하면 일개 군 단위의 실적으로는 놀라운 결과라 할 수 있다. 이후 8월말까지 전국에서 헌납된 비행기는 280여대에 달했다. 도청소재재지가 아닌 지방에서 헌납기 명명식이 거행된 곳은 5대 이상의 실적을 올린 함남의 원산과 경북의 영일 단 두 곳이었다.(출처 : 민족문제연구소)

    출처 : 매일신보 1942년 2월 27일 석간 3면(자료제공 : 민족문제연구소)

  • 1942. 3. 11.

    “북지방면에서 대동아공영권 건설을 위해 밤낮으로 악전고투를 계속하고 있는 장병들에게 도민을 대표하여 감사전보를 발송하자”고 제안 – 제15회 경북도회 회의 중

    尨大 豫算을 俎上에, 慶北道會 開幕(第15會), 劈頭 感謝電報 發送을 決議(방대 예산을 조상[도마 위]에, 경북도회 개막(제15회), 벽두 감사전보 발송을 결의)

    출처 : 매일신보 1942년 3월 13일 경상판 석간 3면(자료제공 : 민족문제연구소)

  • 1943. 9. 8.

    징병제실시에 대한 감사의 뜻을 결의하기 위한 광고를 기명으로 게재

    광고 왼쪽 두 번째 줄 金田龍周 (김용주) 게재

    (廣告)待望의 徵兵制 實施, 지금이야말로 정벌하라, 半島의 靑少年들이여((광고)대망의 징병제 실시, 지금이야말로 정벌하라, 반도의 청소년들이여)

    “대망의 징병제 실시, 지금이야말로 정벌하라, 반도의 청소년들이여… 난폭하기 짝이 없는 숙적 미영을 지금이야말로 물리쳐 멸망시키자. 징병제 실시에 대한 반도 동포의 간절한 요망을 드디어 구현했다. 반도 동포도 내지 장병으로 자리매김하여 당당히 대동아전쟁의 전열에 끼게 된 것이다. 우리 반도의 정예여. 일시동인의 천황의 위덕(大御稜威) 아래, 우리 반도의 인재가 빈틈없는 전우애로 미영 격멸의 전선에 서는 날이 온 것이다. 이 기쁨, 이 감사, 시정 30여년 역사에 전례가 없는 대전환이며 영광이다. 지금은 세계 대동란이 한창인데, 팔굉일우의 대이상을 내걸고 대동아의 천지에 깊숙이 진군하여 황국의 흥폐를 양 어깨에 짊어진 황군이 숙적 미영 격멸에 혁혁한 전과를 거듭하는 가을. 2천 5백만 반도동포, 특히 젊은 반도청년에 거는 기대가 실로 크다. 일억의 환호와 축복 속에 있는 반도의 젊은이들이여. 궐연히 일어나라! 결전이 자네들을 부른다.”

    출처 : 아사히신문(朝日新聞) 남선판(南鮮版) 1943년 9월 8일 4면
    아사히신문 중선판(中鮮版) 1943년 9월 8일 4면(자료제공 : 민족문제연구소)

  • 1943. 10. 2.

    경북도회 의원 자격으로 전선공직자대회(全鮮公職者大會)에 참석

    경북도회 의원 40명 가운데 조선인 참석은 2명. 친일파 서병조와 함께 김용주 참석

    “징병제 실시에 보답하기 위해 일본정신문화를 키워온 신사(神祠)를 건립해 감사의 뜻을 발휘해야 한다”고 발언.

    銃後의 戰列에 總立, 第二日 公職者大會에 滅敵의 熱火漲溢, 各議員들의 熱論(총후의 전열에 총립, 제이일 공직자대회에 멸적의 열화창일[맹렬히 넘치다] 각 의원들의 열론[열띤토론])


    김전용주 (경북도회 의원)씨가 징병제 실시에 보답하는 길은 일본정신문화의 양양으로 각 면에 신사(神社)와 신사(神祠) 를 건립하여 경신숭조 보은감사의 참뜻을 유감없이 발휘하도록 하여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귀축 미영 격멸에 돌진할 것을 촉진해야

    출처 : 매일신보 1943년 10월 3일 석간 2면(자료제공 : 민족문제연구소)

  • 1943. 10. 2.

    경북도회 의원 자격으로 전선공직자대회(全鮮公職者大會)에 참석해 징병독려, 천황께 귀일 등 발언

    황국신민이 되기 위한 5가지 구체적인 방안 발언, 특히 일본에 강제 징용 될 조선 청년들의 부모를 향해 “반도의 부모가 자식을 나라의 창조신께 기뻐하며 바치는 마음가짐”을 가질 것을 강조하는 발언

    가장 급한 일은 반도 민중에게 고루고루 일본정신문화의 진수를 확실히 통하게 하고, 진정한 정신적 내선일체화를 꾀하여 이로써 충실한 황국신민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그 구체적 방책으로 다음 5가지 항목을 들고 싶습니다. 첫째, 각 면에 신사(神祠)를 건립하여 모든 민중으로 하여금 신을 공경하고 신앙생활을 하게끔 하면 일본정신의 진수에 철저히 젖어들게 할 수 있습니다…(중략)그러므로 앞으로 징병을 보낼 반도의 부모로서 자식을 나라의 창조신께 기뻐하며 바치는 마음가짐과 귀여운 자식이 호국의 신으로 야스쿠니 신사에 신으로 받들어 모시어 질 그 영광을 충분히 인식하여 모든 것을 신께 귀일하는 신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신에 대한 신앙을 철저히 하여 현세의 신이신 천황께 귀일하는 것입니다.

    출처 : 徵兵制施行感謝 敵米英擊滅 決意宣揚 全鮮公職者大會記錄(징병제시행감사 적미영격멸 결의선양 전선공직자대회기록) 全鮮公職者大會事務局(전선공직자대회사무국) 1944년 1월(자료제공 : 민족문제연구소)

  • 1944. 7. 9.

    일제에 전투 비행기 헌납 선전 광고 기명 게재

    “결전은 하늘이다! 보내자 비행기를!”라는 제목의 비행기 헌납 광고 기명 게재
    왼쪽 두 번째에 김전용주 이름 나옴.

    “결전은 하늘이다! 보내자 비행기를!, 승리냐 죽음이냐의 결전
    시국은 확실히 승리냐 죽음이냐의 결전의 한 가운데로 돌입하고, 더욱이 적은 공군으로써 승패를 결정지으려고 한다. 이때를 맞이하여 우리는 혁혁한 전과의 그늘에서 산화한 고귀한 영령 또는 밤낮을 가리지 않는 적의 맹렬한 공습하에서 묵묵히 (조국)수호에 애쓰는 우리 아버지, 우리 아들, 우리 형, 우리 동생의,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고통과 그리고 “좀더 비행기를”이라고 외치는 필사의 요청을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 된다.

    출처 : 아사히신문 남선판 1944년 7월 9일 4면(자료제공 : 민족문제연구소)


8월 15일, 김무성 부친 김용주 ‘미화’ 평전 출간돼

김무성 대표 측은 부친의 친일 행적에 대해 지금까지 “부친은 애국자적인 삶을 살았다”며 “부친의 이름이 도용되거나 날조된 것이다”라고 주장해 왔다. 김무성 대표의 홈페이지에 마련된 ‘나의 아버지’라는 코너에는 “나라와 민족을 사랑한 해촌 김용주 선생”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 김무성 대표의 부친 김용주의 평전이 지난 8월 15일 출판됐다.

▲ 김무성 대표의 부친 김용주의 평전이 지난 8월 15일 출판됐다.

해방 70년을 맞은 지난 8월 15일에는 김무성 대표 부친 김용주의 평전 <강을 건너는 산>이 출판됐다. 평전이라고 쓰여 있지만 김용주의 친일 의혹과 관련해서는 단 한 줄도 다루고 있지 않다.

김용주 평전 표지에는 ‘광복 70주년 기획, 새로운 역사인물 찾기 ①’이라고 적혀 있다. 하지만 평전 어디에도 이 시리즈의 기획의도나 다음 편 인물, 다음편 출판 예정일 등이 언급되지 않았다. 출판사 측은 “다음 편 인물로 거론되는 분들이 있다”고 밝혔다.

김무성 대표 측은 또 “친일인명사전에 부친이 등재되지 않았기 때문에 친일파가 아니다”라고 주장해 왔다. 임경석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는 “해방직후 반민특위가 반민족 행위자로 7천 명 정도를 구상했지만,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는 1,006 명밖에 구상할 수밖에 없었다”며 “진상규명위에서 지정한 1,006명이 아니라고 친일파가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 8월 15일 출판된 김무성 대표의 부친 김용주 평전 <강을 건너는 산>

▲ 8월 15일 출판된 김무성 대표의 부친 김용주 평전 <강을 건너는 산>

김무성 대표의 ‘역사 전쟁’

김무성 대표는 수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좌파와의 역사 전쟁’을 외치고 있다. “진보 좌파 세력들이 건국 이후 대한민국 현대사를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굴욕의 역사라고 깎아 내리고 있다” (7월31일, LA 동포간담회)며 “좌파와의 역사 전쟁을 승리고 종식시켜야 된다” (2013년9월4일, 새누리당 근현대사 역사교실)고 주장해 왔다. 역사 왜곡 논란을 일으킨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를 “긍정적인 사관에 의한 교과서”(2013년9월25일)라고 옹호하는가 하면, 최근에는 “역사는 공과 과가 있는데, 이제는 공만 봐야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지난달 친일파 처단을 다룬 영화 <암살> 국회초청 상영회를 주관했다.

▲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지난달 친일파 처단을 다룬 영화 <암살> 국회초청 상영회를 주관했다.

뉴스타파는 ‘군용기 헌납’과 ‘징병 독려’ 기명 광고 등 새로 발견된 김용주 씨의 친일 행적과 관련해 김무성 대표 측에 입장을 서면을 통해 물어봤지만 답변을 듣지 못했다. 또 직접 찾아가 질의했지만 보좌진들은 기자를 막았고, 김무성 대표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취재: 박중석, 김경래, 김새봄
촬영 편집 : 최형석, 김남범, 신승진, 정지성, 윤석민, 박서영
타임라인 구성 : 임종헌, 최미정
자료 제공 : 민족문제연구소

목, 2015/09/17-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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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 대한민국’이 아니라 ‘헬 조선’

왜 ‘헬 대한민국’이 아니라 ‘헬 조선’일까요? 지금의 한국 사회가 조선시대처럼 ‘부(富)’뿐만 아니라 신분까지 대물림되는 사회로 퇴행하고 있다는 우려와 자조가 반영된 말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사실일까요?

자수성가로 부자 되기, 필리핀 보다 어렵다

우리나라의 10대 부자 가운데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 없이 스스로 부를 일군 ‘자수성가형’ 부자는 3명에 불과합니다. 각각 7, 8, 9 위에 오른 권혁빈 스마일게이트 회장, 김정주 넥슨 회장, 이중근 부영 회장이 그들입니다. 나머지 7명은 지겹도록 익숙한 이름들입니다. 이건희, 서경배(아모레 퍼시픽 회장), 이재용, 정몽구, 정의선, 최태현, 이재현이 그들인데요, 7명 가운데 6명이 범 삼성 가문과 현대 가문, SK 가문 출신입니다.

글쎄, 10명 가운데 3명이면 많은 건지, 적은 건지 잘 모르시겠죠? 그래서 뉴스타파는 해마다 전세계 부자들의 명단과 순위를 발표하는 포브스 자료를 토대로 13개 나라의 30대 부자들 가운데 자수성가형이 얼마나 되는지 분석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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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야 자본주의의 역사가 짧아서 그렇다 치고, 자본주의의 역사가 우리보다 훨씬 긴 일본이나 미국도 우리나라보다 자수성가의 비율이 훨씬 높습니다. 특히 미국은 최근 부의 세습과 양극화가 큰 사회문제가 돼서 대통령 선거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는 나라인데도요.

충격적인 것은 우리보다 경제 수준이 낮고 양극화가 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필리핀, 인도네시아, 태국, 인도보다도 우리나라의 자수성가 비율이 훨씬 낮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우리나라는 이 나라들보다도 자수성가로 부자되기 어려운 나라가 됐다는 뜻입니다. 전 세계로 시야를 넓혀봐도, 10억 달러 즉 1조 원 이상을 가진 억만장자 1,926명 가운데 자수 성가형은 1,191명, 65%에 이릅니다.

이 정도면 한국에서 왜 헬 조선과 ‘금수저’, ‘흙수저’가 유행어가 됐는지 이해할 만 하죠?

계층 상승의 가능성이 막힌 사회

계층 상승의 가능성은 거의 막힌 반면 하락은 쉽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중앙대 신광영 교수의 연구 결과를 보면, 나름대로 먹고 살만했던 ‘중간 계급’ (신광영 교수는 논문에서 학력과 직업, 소득이 일정 수준 이상인 사람들 ‘중간 계급’이라고 정의했다)이 어떻게 무너지고 있는지 드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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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에 중간 계급이었던 사람들 가운데 처지가 그대로 이거나 나아진 사람은 56%에 불과했습니다. 나머지 44%는 처지가 더 나빠졌습니다.

이러다 보니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포자기가 일반화되고 있습니다. 지난 8월 현대경제연구원이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 국민의 81%는 “개인적으로 열심히 노력해도 계층 상승 가능성은 낮다”고 대답했습니다.

박근혜 내각 자녀들의 직업…신분 세습의 단면

뉴스타파는 박근혜 정부의 내각, 즉 전현직 총리와 장관 38명의 자녀가 어떤 직업을 갖고 있는지 전수 조사를 시도했습니다. 이들은 한국 사회의 최상층 엘리트 집단인만큼, 그 자녀들의 직업을 보면 대한민국을 ‘헬 조선’으로 만드는 신분 세습의 단면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을 거라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자녀는 77명으로 파악됐습니다.이 가운데 미성년자와 학생이 32명이었고 나머지 45명 가운데 31명의 직업이 확인됐습니다. (공개 거부 7명, 미확인 7명)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카드를 클릭하면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국무위원 직위 자녀 이름 관계 생년 나이 현직장 분류 입사일 최종학력 특이사항 유학여부 지역
강병규 전 행자부 장관 2남 강태훈 아들 850321 31 미확인 미확인 용강중 용산고 2010.5.23 전역 서울용산구
강병규 전 행자부 장관 2남 강동훈 아들 940517 22 학생 학생
강호인 국토부장관 1남 강기현 아들 881003-1020016 28 네이버 계열사 대기업 계열사 ? 2011.8.26 전역 경기도과천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현 청와대 안보실장 3녀 25 이상 추정 미확인 미확인 서울중랑구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현 청와대 안보실장 3녀 25 이상 추정 미국 유학 (음악 전공) 유학 유학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현 청와대 안보실장 3녀 25 이상 추정 미국 유학(공학 전공) 유학 유학
김영석 해수부 장관 1녀1남 김지슬 880924-2476219 28 미국 플로리다 연방법원 법조 하버드대 로스쿨 유학 경기도고양시
김영석 해수부 장관 1녀1남 김지광 아들 920209-1001712 24 학생 학생 ? 2015 제대
김종덕 문체부 장관 1녀1남 김정우 아들 891018 27 학생 학생 홍익대학교 2012.12.20 전역 서울마포구
김종덕 문체부 장관 1녀1남 28 미국 유학 유학 유학
김현웅 법무부 장관 2녀1남 김건희 아들 901221 26 장애인 재활센터 중소기업 서울서초구
김현웅 법무부 장관 2녀1남 공개거부 공개거부
김현웅 법무부 장관 2녀1남 공개거부 공개거부
김희정 여가부 장관 1녀1남 권범준 아들 120525-3047411 4 미성년 미성년 부산연산동
김희정 여가부 장관 1녀1남 미성년 미성년
류길재 전 통일부 장관 2녀 류예솔 021018-4080818 14 미성년 미성년 경기도 성남시
류길재 전 통일부 장관 2녀 류진솔 900115-2076313 26 중소기업 중소기업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장관 1남 아들 10 미성년 미성년 서울서초구
박인용 안전처 장관 1녀 박솔 25 이상 추정 쇼핑몰 운영 자영업 경희대 경영대학원(2010졸) 유학
방하남 전 노동부장관 3녀 방아영 830508-2056511 33 미국 박사과정 유학 유학 서울 서초구
방하남 전 노동부장관 3녀 방민영 850313-2163114 31 (주) 000 에듀케이션 중견기업 유학
방하남 전 노동부장관 3녀 방유진 910301-2072724 25 미국 유학 유학 유학
서남수 전 교육부 장관 2녀 서경윤 830714-2076316 33 미확인 미확인 경기도과천시
서남수 전 교육부장관 2녀 서경진 850916-2231014 31 미확인 미확인
서승환 전 국토부장관 1남1녀 서민지 850421-2020014 31 삼성전자 사내변호사 법조 서울대 (대원외고) 부인이 사교육 대가
http://news.donga.com/rel/3/all/20130219/53129205/1
경기도성남시
서승환 전 국토부장관 1남1녀 서배선 아들 890805-1075710 27 00 병원 레지던트 의사 아주대의대(분당태원고)
유기준 전 해수부 장관 1남2녀 유승현 940809-2117118 22 학생 학생 23세 이하 서울강남구
유기준 전 해수부 장관 1남2녀 유현식 아들 961204-1117115 20 학생 학생 25세 이하
유기준 전 해수부 장관 1남2녀 유승연 900118-2117118 26 학생 학생
유일호 전 국토부장관 1남 유신혁 아들 820205-1066918 34 롤랜드버거 스트래티지 컨설턴츠 외국계 금융회사 고려대학교 2005.6.7 전역 서울송파구
유정복 전 행자부 장관/현 인천시장 3녀1남 유소령 870509-2030611 29 미국 유학 유학 유학 경기도김포시
유정복 전 행자부 장관/현 인천시장 3녀1남 유하령 940902-2253519 22 미국 유학 학생
유정복 전 행자부 장관/현 인천시장 3녀1남 유재연 020215-4253529 14 미성년 미성년
유정복 전 행자부 장관/현 인천시장 3녀1남 유재호 아들 020215-3253526 14 미성년 미성년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 1녀1남 유형은 851023-2079119 31 (주) 유00 중소기업 서울광진구
유진룡 전 문체부장관 1녀1남 유현진 아들 920902-1082814 24 학생 학생
윤병세 외교부장관 1녀 윤서영 880621-2050011 28 00 타임스 기자 언론 이화여대 유학 서울성동구
윤상직 산자부장관 1녀1남 윤수아 940627-2065022 22 학생 학생 서울서초구
윤상직 산자부장관 1녀1남 윤형석 아들 901125-1179315 26 학생 학생 2013.2.18 전역
윤성규 환경부장관 2남 윤종욱 아들 860314-1030915 30 학생(석사과정) 학생 서울강남구
윤성규 환경부장관 2남 윤종환 아들 891026-1030919 27 미학인 미확인
이기권 노동부장관 2녀1남 이쥬리 830501-2020315 33 중학교 교사 교사 서울동작구
이기권 노동부장관 2녀1남 이고운 870225-2853611 29 (주) 유00 중소기업
이기권 노동부장관 2녀1남 이창민 아들 990621-1068310 17 학생 학생
이동필 농림부장관 2남 이원희 아들 850930-1030616 31 미확인 미확인 2008.4.5 전역 서울서초구
이동필 농림부장관 2남 이준희 아들 921021-1076530 24 학생 학생
이완구 전 국무총리 2남 이병현 아들 790802-1074526 37 미 위스콘신대 졸업 뒤 현지취업 유학 뒤 현지취업 위스콘신 대학교 유학 서울강남구
이완구 전 국무총리 2남 이병인 아들 810110-1074510 35 김앤장 변호사 법조 미시건 대학교 유학
이주영 전 해수부장관 2녀1남 25 이상 추정 네이버 사내 변호사 법조 경북대 로스쿨 경남창원시
이주영 전 해수부장관 2녀1남 이재희 아들 840929 32 군법무관 법조 연세대 로스쿨 (대원외고)
이주영 전 해수부장관 2녀1남 미확인 미확인
정종섭 행자부 장관 2녀1남 정재은 25이상 추정 디엘에이 파이퍼 UK 법조 유학 서울서초구
정종섭 행자부 장관 2녀1남 정재원 아들 901006 26 학생 학생 유학
정종섭 행자부 장관 2녀1남 정승은 학생 학생 유학
정진엽 보건복지부장관 2녀 정지윤 831023 33 공개 거부 공개거부 서울성남시
정진엽 보건복지부장관 2녀 정지수 880808 28 공개 거부 공개거부
정홍원 전 국무총리 1남 정우준 아들 780125-1118015 38 서울중앙지검 검사 법조 2006 사법시험합격 서울대 전기공학부 서울서초구
조윤선 전 여가부 장관 2녀 박진성 940205-2075818 22 학생 학생 서울서초구
조윤선 전 여가부 장관 2녀 박정연 970805-2075919 19 학생 학생
진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 1녀1남 진명헌 아들 880703-1053017 28 미확인(서울대) 미확인 용산고/서울대 전기공학과 2010.1.24 전역 서울용산구
진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 1녀1남 진서영 891110-2053011 27 미확인(서울대) 미확인 대원외고/서울대 심리학과
최경환 기재부 장관 1녀1남 최규형 아들 840406-1076018 32 2011 (주) D00
2013 삼성전자
대기업 2013 입사 이중국적 유학 서울서초구
최경환 기재부 장관 1녀1남 최윤지 890908-2076011 27 2012 (주)인00
2013 (주)휴000
2014 골드만삭스
외국계 금융회사 2013-2014 입사 이중국적 유학
최문기 전 미창부 장관 2남 최정환 아들 780502 38 미국 뉴욕대 졸업 뒤 현지 취업 유학 뒤 현지취업 2001.10.22 전역
2003 미국 유학
2012 현지취업
유학 대전유성구
최문기 전 미창부 장관 2남 최영환 아들 801025 36 00 케미칼 중소기업 2002.5.19 전역
최양희 미창부 장관 1녀1남 최지수 830904-2 33 공개거부 공개거부 2013 결혼 서울서초구
최양희 미창부 장관 1녀1남 최지호 아들 860319-1409410 30 미국 일리노이 대학 연구원 유학 뒤 현지취업 2012.7.2 전역
병역특례 : LG전자 기술연구원
유학(2.5억 송금)
한민구 국방부 장관 1녀1남 한경훈 아들 821024-1067019 34 (주)에00 중소기업 서울동작구
한민구 국방부 장관 1녀1남 한지희 831124-2067014 33 2009 (주) 제00000000
2011 00여대 교직원
대학 교직원
현오석 전 기재부 장관 1녀1남 현낙희 800119-2055530 36 인천지법 판사 법조(판사) 2002 사법시험 합격 연세대 법학과(대원외고) 이중국적 유학 경기도성남시
현오석 전 기재부 장관 1녀1남 현낙승 아들 840215-1055521 32 미국 조지아텍 박사과정 유학 조지아텍 이중국적 유학
홍용표 통일부 장관 1남 홍성재 아들 980903-1018321 18 미성년 미성년 경기도성남시
황교안 국무총리 1녀1남 황성진 아들 841106-1351011 32 2009 00케미칼
2012 KT
대기업 2012.1 연세대 법학과 서울서초구
황교안 국무총리 1녀1남 황성희 860411-2466331 30 우리은행 금융권 2010.2
황우여 교육부 장관 2녀1남 황사라 79? 37 큐레이터 문화계 2011.7.16 결혼 인천연수구
황우여 교육부 장관 2녀1남 황모세 아들 800726 36 재미 목사 종교 2011.5.21 전역 유학
황우여 교육부 장관 2녀1남 황성결 85? 31 대학원생 학생
윤진숙 전 해수부 장관 미혼

최다수를 차지한 직업군은 법조인이었습니다. 31명 가운데 8명으로 25%가 넘습니다. 이밖에 대기업 혹은 대기업 계열사가 4명, 외국계 금융회사가 2명, 유학 뒤에 현지 취업한 경우가 3명이었습니다. 그밖에 기자와 교사, 대학교 교직원 등이 있었습니다.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안정된 직장을 가진 자녀가 31명 가운데 24명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나머지는 중소기업 6명이었고,인터넷 쇼핑몰 1명이었습니다.

장관들의 자식 농사 성공 비결

박근혜 정부의 총리와 장관들이 이렇게 자식 농사에 성공한 비결은 무엇일까요?

첫 번째 비결은 유학으로 추정됩니다. 대학생 이상이거나 직업이 파악된 58명 가운데 40%에 해당하는 22명이 유학 경험을 갖고 있었습니다. 일반 서민의 자녀와 비교하면 엄청나게 높은 수치입니다.

두 번째 비결은 사교육입니다. 전현직 총리와 장관 38명 가운데 22명, 즉 60%가 서울 강남 3구와 경기도 분당 또는 특목고에서 자녀들을 교육시켰습니다. 실제로 서승환 전 국토교통부 장관의 부인은 지난 2004년 발간된 한 사교육 관련 지침서에 자녀의 합격 수기를 기고했는데, 10년이 지난 책임에도 불구하고 내용을 보면 혀를 내두를 정도입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꾸준히 철학 교실에 다녔고, 서울대 심층 면접을 앞두고 특별 과외를 받았다.

엄마는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는 그날부터 수시로 학원 설명회에 쫓아다녀서 정확한 정보 입수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 사교육 1번지, 대치동 엄마들의 입시 전략 중

마지막 비결로 볼 수 있는 것은 잘 나가는 부모의 영향력입니다. 실제로 총리나 장관들의 인사 청문회 때마다 심심치 않게 자녀의 취업 특혜 의혹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최경환 기재부 장관입니다. 최 장관의 딸은 첫 직장으로 중소기업에 취업했지만 2년 사이 두 번의 이직을 거쳐 외국계 투자은행인 골드만 삭스에 입사해 26살 나이에 890만 원의 월급을 받게 됐습니다. 최 장관의 아들 역시 첫 직장으로 중소기업에 입사합니다. 이 중소기업의 사장은 최 장관의 고교 후배였습니다. 그리고 최 장관의 아들은 2년 뒤 삼성전자로 이직합니다. 최 장관의 자녀들이 이직한 시점은 모두 최 장관이 집권당인 새누리당의 원내대표였을 때입니다. 이주영 전 해수부 장관의 딸은 로스쿨을 졸업한 뒤 학교 추천 형식으로 네이버에 입사해 특혜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습니다.

‘신분 세습 → 가진 자들을 위한 정책’의 악순환

박근혜 내각의 자녀들이 이렇게 ‘잘 나가는’ 것, 이 사실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신분 세습의 단면을 보여준다거나 최상류층의 반칙을 시사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더 중요한 함의는 우리나라의 정책을 결정하고 공권력을 행사하는 자리를 특정 계층이 독식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책을 만드시는 분들, 그리고 공권력을 행사하시는 분들이 과거에는, 고도 성장기에는 대부분 농촌이나 어려운 계층에서 많이 나왔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알게 모르게 평등 지향적인 의식이 있었어요. 그것이 한국이 역동적으로 성장하는데 큰 도움을 줬다고 생각 합니다. 그런데 가면 갈수록 그런 분야에 굉장히 유복한 계층의 자녀들만 진출을 하게 되다 보니까 아예 공공 정책에서 그런 배려가 점점 없어지는 거에요. 악순환이죠. 그러다 보니까 정책이 더 가진 자들에게만 유리한 그런 정책이 되고 계층 간의 격차는 더 심화되고 그러다 보니 개천에서 용 나는 건 더 힘들어지고..빨리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않으면 한국 사회의 앞날은 정말 어두울 수 밖에 없습니다.

– 유종일 KDI 정책대학원 교수

목, 2015/11/19-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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