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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기후변화와의 전쟁' 선포, 석탄화력발전소 강력 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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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기후변화와의 전쟁' 선포, 석탄화력발전소 강력 규제

익명 (미확인) | 화, 2015/08/04- 15:12



반가운 소식입니다. 청정 발전 계획(Clean Power Plan)은 지난해 6월 초안으로 발표됐는데, 발전 부문의 온실가스를 2005년 대비 2030년까지 30% 감축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올 여름까지 사회적 의견수렴을 거쳐 확정하겠다고 했고(굉장히 많은 의견이 취합됐다고 합니다), 미국시각으로 어제 공식 발표됐습니다. 결과적으로 목표는 32%로 더 강화됐습니다.


지난해 중국이 '대기오염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미국이 '기후변화와의 전쟁'을 선포한 셈인데요. 온실가스 배출 양대국이 긍정적인 신호를 준다는 것은 분명 고무적입니다. 그 메시지를 보면, 단순히 온실가스를 줄이는 차원이 아니라 대기오염 질환과 사망을 낮춰 공중보건을 강화하는 한편 에너지 효율 등 분야에서 좋은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미국의 연방 정부가 각자 상황에 맞게 목표를 달성을 해나갈텐데, 특히 석탄화력발전소에 대해선 배출성능기준을 도입해 효과적인 규제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온갖 기후변화 대책의 무용론을 내세우는 '기후 회의론자'에 맞서 이런 대책을 견지했다는 것은 높이 사야 할 것 같습니다.


다만, 미국의 기후 목표가 역사적 배출 책임에 맞게 보다 더 강화돼야 한다는 입장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중국 역시도 배출 정점이 (중국 정부가 목표로 제시한) 2030년 이전에 가능하다는 분석도 있구요. 따라서 이번 목표는 '최대치'가 아니라 '최저치'로 삼아야 하며, 계속 강화시켜 나가야 합니다. 북극 석유 탐사, 셰일가스와 같은 화석연료 개발을 중단해야 하는 과제도 남았습니다.


이지언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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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미국의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와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 간에 오간 말들을 지켜보면서 나는 두 나라에서 ‘정치’가 얼마나 타락했는지를 절감했다.
자신이 소유한 고급 골프코스와 사치스런 요리에 대해 말하는 트럼프의 말에선 한국과 미국의 수백만 저임금 노동자와 실업자들은 존재하지도 않는 듯했다. 그의 말은 단지 ‘미국 퍼스트’를 넘어서 ‘트럼프 퍼스트’를 떠들어대는 것으로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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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트럼프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은 전혀 이의를 달거나 꾸짖지 못했다. 그의 인종주의적인 발언이나 이민자들에 대한 차별적 정책, 북한에 대한 무분별한 위협에 대해 제동을 거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한국의 언론들은 모든 미국인들, 그리고 대다수의 한국인들이 트럼프의 우스꽝스럽고 위험한 정책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도했다.
나는 트럼프와 문재인 두 사람의 발언들을 보면서 ‘정치’는 정확히 어떤 것인지, 그리고 우리가 ‘정치’를 복원하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되돌아보았다.

정치란 무엇인가?
우리는 정치 문화를 개혁하고, 정책과 함께 지역사회와 도시, 그리고 국가 전체의 장기적 발전을 활발히 논의해야 한다. 시민에게 도움이 되는 담화, 정책을 입안, 이행, 해석하는 이들이 바로 반영할 수 있는 담화를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지난 30년간 한국에서 발전한 사회구조를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 미국에서 발전한 사회구조도 면밀히 살펴본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아마 정치 지도자들이 진보적 외양에 역행하는 모습을 보일 때가 더 많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이 과정은 수 년이 걸릴 수도 있다. 정치적 돌파구를 마련하고자 하는 지금의 노력이 끝나고 우리 사회를 이끌어갈 다음 세대를 교육지원하는 데에도 이와 비슷하게 충분한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정치는 평범한 시민의 삶과 완전히 동떨어진 요식적 공간이 되어 버렸다. 의미가 없고, 접근이 가능하지도 않다. 정치인은 자기들끼리 만나 외부인은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방식으로 자신의 필요와 관심에 대해서만 논한다. 시민 앞에서 연설을 하고 정기적으로 공식만남을 가지는 등 형식적 행동은 한다. 그러나 이는 자신에게 권한이 있으며, 권력자로서 지역사회를 향해 선의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질문을 받고 미리 준비한 답변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시민과 만나 이야기를 하는 건 지역사회 상황을 파악하고 의견을 들어 정책으로 만들고자 함이 아니다. 대중 홍보용 이미지를 다듬고 언론의 조명을 받기 위해서다.

이는 하나의 형식으로 굳어진 요식 행위일 뿐이며, ‘정치’의 원래 의미와도 맞지 않는다. 시민과 정치인의 우선순위에는 큰 간극이 존재하며, 이를 줄이기 위한 어떤 노력도 없다. 지역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정치인이 아니라 시민들이 더 잘 알지만, 지난 50년간 소비문화가 맹위를 떨치면서 시민들은 수동적 자세가 몸에 배었다. 정치인은 그저 고를 수 있는 상품이고, 기대했던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 다음 선거 때 폐기하면 된다고 생각할 뿐이다. 그러나 해결책을 제시하고 요구하는 능력이 자신에게 있음을 먼저 인지해야 한다. 정치인은 펩시콜라나 코카콜라처럼 광고를 통해 접하고 구매한 다음 소비해 버리는 상품이 아니라, 책임의식을 가진 시민과 끊임 없이 소통하고 압박을 받으면서 더 높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도록 격려하고 이끌어야 할, 강점과 약점을 가진 사람이다.

‘시민과의 만남’은 정치인의 권위를 돋보이게 하거나 언론에 좋은 모습으로 나오기 위한 기회가 아니다. 정책을 제안하고 논의하는 입안과정에서 뺄 수 없는 필수 과정이다. 치열한 논의와 정책 입안을 위한 의사결정은 특정 위원회 안에서 비밀스럽게 내려지거나 정치인, 기업인, 고위 관료가 특권계층을 위한 클럽에서 만나 술을 마시며 내려져서는 안 된다. 시민 또한 이 과정을 삶의 중요한 부분으로 인식하고 참여해야 하고, 도로 건설이나 교육예산 삭감 계획 등을 알고 있어야 한다.

정치 참여야말로 시민의 책임이라는 의식과 열의가 있다면, 정치를 개혁할 수 있다. 아무리 재능 있는 정치인이라도 혼자 힘으로 혁신을 이뤄낼 수는 없다. (먹방 동영상이나 프로그램을 보는 대신) 국회에서 논의되는 이슈가 무엇인지 시민이 알고, 국회에서 계류 중인 법안과 예산이 무엇인지 신문기사를 만들 만큼 일상에서 잘 따라가고 있다면, 진정한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이는 한국 문화, 특히 정치 문화가 변할 때에만 가능하다.

시민과 정치인의 관계는 환자와 의사 관계에 비유할 수 있다. 환자 대부분은 자신이 받는 치료에 대해 상세하게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이런 수동적 태도는 많은 경우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환자가 자신이 받는 치료의 원리와 기술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의사도 환자를 위해 치료 과정을 자세히 설명한다면, 치료 결과는 훨씬 좋아진다. 환자가 유의미한 반응을 보이고 과정에 참여했기 때문이며, 의사와 환자간 신뢰관계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의사 또한 환자가 해당 분야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의사의 전문성을 진심으로 존중하는 자세를 고맙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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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정치위기 극복 과정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오바마 미 대통령의 실수를 피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민주당이 의회에서 다수당 자리를 확보하고 변화를 위한 강한 열망이 있을 때 변화를 이끌라는 임무와 함께 대통령직에 취임했다. 그러나 그는 어려운 일이 아니라 쉬운 일에 집중했다. 정치적 이미지와 입지를 구축하는 데에는 놀라운 재능이 있었다. 그러나 투자은행이 행정부 정책입안 과정에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걸 바꾸기 위한 노력은 별로 기울이지 않았다. 심지어는 부시 행정부 때 금융위기를 초래했던 금융전문가 일부를 그대로 데려와 경제팀을 구성하기도 했다.

물론, 오바마는 자신이 영리한 결정을 내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굳이 갈등과 물의를 일으키지 않았고, 공화당에 손을 내밀어 무리 없이 정책을 처리하고 자신의 이미지를 개선했다. 그러나 중요 문제에 있어 명확한 태도를 취하지 않고, 인기가 떨어지는 위험을 무릅쓰지 않았다. 그 결과 월스트리트는 정치적 영향력을 더욱 키웠고, 오바마는 금융자본의 정부 장악을 숨기기 위해 시민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릴 진보정치의 마스코트로 전락했다. 결과는 재난에 가까웠다. 민주당의 정치 임무가 흐려지면서 결국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단초를 제공했다. 미국 시민은 민주당이건 공화당이건 별 차이가 없다는 걸 점차 느꼈다. 민주당이 더 이상 평범한 서민을 대변하지 않는다는 걸 유권자가 깨달았기 때문에 미국 우선주의로 강렬한 감정을 일깨운 트럼프의 작전이 성공할 수 있었다.

미국 민주당의 역사를 보면 현재 한국 정치에 관해 새로운 시각을 얻을 수 있다. 1980년대 미국 민주당은 시민과 (힘 잃은) 노조, 청년들 사이에서 지지율이 점차 떨어지고 있었다. 민주당 지도부는 동시대 유권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인식하지 못했고, 시민의 불안과 우려를 알지 못했다. 공화당에서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질러도 민주당은 표를 받지 못했다. 민주당이 더 이상 서민의 상황을 알지 못하고, 함께 한다는 느낌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때 빌 클린턴이 등장했다. ‘새로운 민주당’을 표방한 그는 새로운 전략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연설문에 민주적 개념과 원칙을 넣긴 했지만, 시민단체와 노조의 지지가 예전처럼 선거의 승패를 좌우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공화당이 그 동안 무시했던 산업에 손을 내밀어 그들을 돕겠다고 약속했다. 공화당이 석유기업이나 방산업체를 보호했다면, 민주당은 엔터테인먼트 산업과 IT 기업을 위해 나선 것이다. 전략은 효과적이었고, 클린턴은 정치인으로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이는 민주당이 평범한 시민을 대변하지 않고 공화당과 영역이 다른 재계를 대변한 변화의 시작점이었다. 민주당 의원들은 점차 투자은행으로 옮겨갔고, 기존 지지층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다.

이제는 많은 시민이 정치에서 소외되어 있다. 이들은 어떤 후보에도 표를 줄 가치를 느끼지 못하고, 어떤 정당에도 당원으로 등록하지 않았다. 민주당 등의 정당은 시민이 원하는 바를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고 선거철이 되면 표를 얻으려고 능력 있는 연설문 작가를 고용해 강렬한 감정을 일으키는 연설문에만 집중한다는 걸 경험상 알고 있다. 선거가 끝나면 정치인들은 기업 고객의 이익을 대변하는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자취를 감출 것이다. 정책입안 과정에서 민주주의는 없다. 서민을 위한 자리도 없다.

그러나 정치가 항상 이랬던 건 아니다. 민주당이 처음부터 진보당이었던 것도 아니다. 민주당이 정치인을 돕는 조직 이상의 정당이 된 시기는 1920년대 말이다. 당시 민주당은 지역사회의 일부가 되어 국민이 어려울 때 의지할 수 있는 정치 조직으로 성장했다. 선거철에만 나서는 것이 아니라 정기적으로 국민을 한 자리에 모으는 협력적 형태의 조직이었다. 완벽한 정당은 아니었지만, 사회에서 분명한 역할을 맡고 있었다. 시민에게 의미 있는 정당이 된 민주당은 보수 공화당이 소유한 부와 이것이 만들어낸 권력에 맞설 수 있었다. 서민의 상호 지원을 돕는 네트워크를 구축했고, 강력한 조직을 기반으로 권력을 가진 기업에 성공적으로 맞서며 진정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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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런 정당은 이제 미국과 한국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주류 정당은 있지만, 우리 일상과 관계가 없고 국민 대부분이 깊이 신뢰하지도 않는다. 특정 이슈 때문에 정당을 지지하는 유권자가 있겠지만, 대부분은 참여가 제한될 것이다. 진보 정당조차도 돈 쪽으로 기우는 결과가 발생했다.

정당의 기능이 무엇인지 심각하게 재고해야 할 때다. 정책입안 과정을 정당과 컨설턴트, 기타 이들과 관련된 기업이 장악하면, 헌법에 반하는 정치 환경이 만들어진다. 정책입안과 정책이행은 정부가 담당해야 한다. 충분한 자원을 갖추고 정책을 효과적으로 이행할 역량 있는 인재를 고용해야 한다. 정책입안은 정부와 국민이 해야 한다. 정당은 일반 시민이 참여하는 과정에서 하나의 역할만 할 뿐이다. 정당이 거대 관료조직처럼 되어 정책을 입안한다면, 정책입안 시스템을 통해 책임을 지우기 힘든 상황이 될 것이다.

시대의 이슈
해결할 이슈의 범위는 엄청나게 넓지만, 대부분 무시받고 있다. 문제 일부는 정책을 통해 해결 가능하지만, 다른 해결 방식을 필요로 하는 문제도 있다. 어떤 경우든, 시민의 앞에 놓인 복잡한 문제를 역시 복잡한 방식으로 해결 가능한 정치적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현재 우리에겐 금리 인상 혹은 인하, 정부조직 예산 증액 혹은 감액이라는 선택안밖에 주어지지 않는다. 정부 조직은 그 특성상 지역사회와 유리되어 있어서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예산을 집행할 능력이 없는 경우가 많다. 잠재적 해결책과 논의 주제의 범위를 확장하는 것이 앞으로의 성공을 위해 필수다.

예를 들어 보자. 계급 문제는 한국 사회의 중심 이슈지만, 정치인은 해결책을 강구하지 않는다. 소수 특권계층에 부가 집중되고, 이들은 엘리트 계층이 되어 법을 무시하고 가족을 위한 특권을 돈으로 산다. 한국민은 이런 사회문제에 관해 잘 알고 있지만, 계급 격차를 불러온 경제구조의 왜곡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부의 집중은 계급 격차를 가져왔고, 부유층이 자신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다른 사람을 어떻게 하대하며 ‘갑질’을 하는지 우리는 많은 사례를 보아왔다. 그렇게 하대를 받는 하위 계급이 증가하고 있다.

부유층 자녀는 가족의 끈을 이용해 인턴이나 일자리를 쉽게 얻는다. 대학 입학 또한 학생 각자의 능력보다 자녀를 엘리트 학교로 보내는 부모의 재력이 좌우한다. 이 문제는 앞으로 더욱 심각해질 것이며, 결국 사회 구조를 파괴할 것이다.

경제학적 문제 또한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GNP’나 ‘수출’만이 경제 성장을 측정하는 유일, 혹은 최선의 기준이 아니다. 요즘 이들 수치는 소수에게 집중된 부의 정도만을 보여주고 있다. 안타깝게도 서민을 대표한다고 주장하는 정치인들은 금융기관이 이끄는 경제를 지칭할 때 이들 수치를 인용한다.
이들 정치인은 서민의 상황을 공감한다고 주장하지만, 막상 서민의 삶을 도울 정책은 만들지 못한다. 이들은 자금의 상당 부분이 결국 대기업으로 향하는데도 낙수효과를 통해 서민에게도 조금은 돌아간다고 전제한다. 그러나 의도가 아무리 좋다 해도 전제 자체가 잘못됐다. 제한된 선택안 사이에서 억지로 결정을 내리는 것이 정치는 아니다. 이 틀을 벗어나야 한다. 우리 경제에 필요한 사항을 결정하고 서민의 필요에 집중한 경제를 만드는 것이 정치가 되어야 한다. 로봇이나 공장, 기업 채권과 파생상품 등 각종 금융상품이 아니라 사람, 그것도 모든 사람을 향한 투자가 우리의 최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

무역이 증대된다고 반드시 서민의 부가 증가하는 건 아니다. 은행은 단기 수익에 매몰되지 말고 장기 목표에 집중해야 한다. 은행이 주식채권과 연관된 어떤 투기행위도 못 하도록 금지하고, 국가 중요 프로젝트에 관해 뻔하지만 체계적이고 일관된 방식으로 자금을 제공하는 업무에 집중하도록 만드는 정책이 필요하다. 국가 프로젝트의 경우 규모가 크고 기간이 10~40년까지 늘어날 수 있으며, 재생 가능한 경제 참여에 기여해서 지역사회에 협동조합을 만들고 가차 없는 경쟁을 지양하면서 일자리를 주도적으로 창출하도록 도울 수 있다.

그런데 정치인은 국민을 위해 경제를 새롭게 조직하거나 제도적 변화를 통한 해결책을 제안하지 않고 있다. 탐욕을 부리는 ‘악당’을 공격하려는 경향은 있지만, 체제를 근본적으로 바꾸거나 피해자 다수의 힘을 모아 문제를 해결하도록 압박하기 위한 노력은 거의 없다. 대부분 정치인은 빈곤층이나 노동계층과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려 하지 않는다. 중산층도 무시하기 일쑤다. 사회 최상위층에 속한 경제 엘리트나 기업의 편의를 먼저 봐주고 그 다음에야 서민으로 눈을 돌린다. 그러나 이 순서는 반대로 바뀌어야 한다.

게다가 기후변화의 위협도 있다. 이제 과학계는 기후변화가 인류 최대의 위협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 한다. 다수의 생물종이 멸종하고 어쩌면 인간도 멸종할지 모른다. 농업을 완전히 혁신하고 해수면 상승에 대응하고 사막화를 늦추기 위해서는 수조 달러의 돈을 투자해야 한다. 그런데도 현 정부는 기후변화를 우선 과제로 삼거나 심각한 위협으로 보지 않는다. 기후변화는 국내 정치의 거의 모든 측면에서 하나의 요소로 확실히 고려해야 하며, 상대적으로 위해 가능성이 낮은 북한을 넘어서는 요소로서 안보정책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결론
뛰어난 교육을 받은 유능한 인재가 정부에 필요하다. 사회계급이나 기후변화 등의 난제를 피하지 않는 자신감과 용기를 갖추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 산업을 효과적으로 규제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기업은 이들 위협이 실재하지 않거나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만들기 위해 엄청난 돈을 지출했다. 그 결과 북한 핵무기만이 최대 위협이며, 계급격차와 기후변화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잘못된 인식이 존재한다. 한국의 정치가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교육과 정치 행동, 구체적 제안을 통해 이들 문제가 실재함을 인식해야 한다.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정부 혹은 각종 조직과 힘을 합치거나 이들의 목표를 알리거나 교육하는 과정에 폭넓게 참여하는 모습이 아직까지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참여가 가능하며, 그것이 도덕적 의무라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시험 점수가 목적이 아니라 시민 역량을 부여하기 위한 교육, 다른 사람의 이익을 갈취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기보다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함께 일하는 교육을 맛보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국민을 위해 일하고, 국민과 함께 일하는 걸 당연시 여기는 정부를 보여줘야 한다. 이런 노력은 하루아침에 결실을 이룰 수 없지만, 조금씩 시험적 노력을 하다 보면 다른 이에게 영감을 주어 진전이 일어날 것이다.

정당은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지만, 한국 사회가 진화함에 따라 정당의 역할도 변화한다는 걸 제대로 이해하고 나서야 한다. 서민의 필요에 집중하는, 보다 투명하고 책임 있는 정치 문화 및 경제가 최종 목표다. 가는 길에는 고통스럽고 많은 좌절과 희생이 따르겠지만, 목적을 이루고자 노력한다면 일상의 행동은 새로운 의미를 가질 것이고, 우리가 변화를 일으키고 있음을 확신하게 될 것이다.

토, 2017/11/11-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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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기후긴급행동이 17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정부의 그린뉴딜 정책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프레시안(최형락)

코로나가 잦아들기는커녕 세계 곳곳에서 재확산되는 기세다. 미세먼지 농도를 수시로 체크하는 게 지난해까지의 일상이었다면, 이제는 매일 신규 확진자수를 확인하고 재난 문자에 피로감을 느끼는 세상에 산다. 시간이 흐를수록 감염병도 문제지만 당장 먹고사는 문제가 더 무섭게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공중보건 위기는 어느 덧 경제위기로 치환됐다.

사람의 이동과 물류가 멈추자, 맑은 공기와 자취를 감췄던 동물들이 돌아온 ‘코로나의 역설’이 일어났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오래 지속될 것 같지 않다. 자연의 회복은 곧 경기 침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시장이 어떻게든 다시 굴러가도록 정부는 전례 없이 막대한 규모의 돈을 풀고 있다. 올해 세 차례에 걸친 추가경정예산만 60조 원에 달한다. 국민재난지원금, 위기 기업 구제, 고용을 비롯한 사회안전망 확충과 같은 명목의 경기 부양책이 동원됐다. 

‘오늘날 만약 신이 있다면, 그것은 경제 성장일 것이다.’ 이 명제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여전히 건재해 보인다. 적어도 한국의 상황은 그렇다. 정부의 위기 대응이나 재정 투입 방식은 생태적 위기를 불러온 기존의 방식에서 달라지지 않았다. 기업의 부담을 완화한다는 명목으로 온실가스, 그린벨트, 화학물질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고, 자동차 개별소비세 인하 조치를 연장하며, 국익을 앞세워 해외 석탄발전 건설 사업에 공적 재정을 퍼붓는 것과 같은 방식 말이다.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한국판 뉴딜’은 이런 회색 성장주의에 도전하는 프로젝트인가. 유럽연합의 그린딜이나 대선 레이스가 진행 중인 미국 민주당이 제시한 그린뉴딜은 공통점이 있다. 기후위기에 대응한다고 대충 얼버무리지 않는다. 2050년 전까지 유럽과 미국의 온실가스 순배출량을 제로(0)화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막대한 공적 재정을 투여해 경제 전반의 탈탄소 전환을 추동하겠다는 자금 계획도 동반됐다. 유럽은 그린딜에 향후 10년간 1조 유로(약 1,300조원) 투자하면서 친환경이나 유해를 끼치지 않는(‘do not harm’) 조건일 경우에만 재정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런 조건에 따라 화석연료는 물론 핵발전도 지원 대상에서 제외됐다.

반면 한국판 뉴딜의 핵심축의 하나로 그린뉴딜이 제시됐지만, 녹색의 구체적 목표와 규모가 무엇인지는 불명확하다. 화석연료 산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조치 없이 녹색 산업과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구호는 공허하다. 회색 경제를 강하게 눌러 구조적 전환을 촉진하지 않은 상태에서 녹색을 아무리 덧칠해봤자 겉치레에 불과할 뿐이다. 강력한 온실가스 감축 대책은 대규모 일자리 감소로 이어질 것이란 산업계의 으름장을 핑계 삼아 정부는 소극적인 기후변화 대책을 정당화시킨다. 뚜렷한 개혁 조치도 없고 녹색 투자 규모도 어정쩡한 한국판 그린뉴딜은 그래서 왜소하다.

세계는 코로나로 인해 기존과는 다른 전혀 새로운 일상을 맞았다. 위기의 시간 속에서 배운 게 있다면, 우리 사회가 마음만 먹는다면 집단적으로 방향을 바꾸고 이전과는 다르게 행동할 수 있는 역량이 있다는 사실이다. 만약 우리 사회가 현재 직면한 생태적 위기를 똑바로 바라볼 수만 있다면, 아직 기회는 남아있다. 뉴딜이 새로운 사회적 계약이라면, 코로나 이후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지는 행동하는 시민들의 몫이다.

이지언 환경운동연합 기후에너지 활동가

탈핵신문 2020년 7월호(79호) 칼럼

토, 2020/10/17-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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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 더는 방관할 수 없는 기후위기, 그 심각성을 논하다

대체 1.5℃가 뭐길래

금요일이었던 9월 20일, 사상 최대의 ‘기후 파업’이 진행됐다. 세계적으로 160개국 이상에서 4백만 명이 거리로 나와서 정부의 기후변화 대응을 촉구했다. 21일 한국의 12개 도시에서도 ‘기후위기 비상행동’ 시위가 열렸고, 서울에서만 5천 명 이상이 행진에 참여해 최대 규모의 기후 시위를 나타냈다. 상당수는 청소년이었는데, 이들은 “미래가 없어질 상황이고, 정부가 미래를 구하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황에서 왜 학교에 가야 하는가”라고 외쳤다. 지난해 스웨덴의 16세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금요일마다 등교 대신 의회 앞에서 ‘기후를 위한 결석 시위’를 벌인 뒤 청소년 기후 행동은 들불처럼 전 세계로 확산됐다. 기후 위기는 청소년의 책임이 아니라면서 어른들도 기후 파업에 동참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화석연료를 태우는 게 그렇게 나쁘고 우리 존재 자체를 위협하는 것이라면, 어째서 우린 똑같이 계속하는 걸까요? 왜 우리는 탄소 배출을 줄이지 않나요. 어째서, 실제로는 계속 늘어나는 걸까요?” 전 세계적인 청소년의 기후 시위를 촉발한 그레타 툰베리가 애초 던진 질문은 이렇게 단순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관심하거나 애써 외면했던 문제가 한 청소년의 순수하고 윤리적인 물음으로 환기됐고, 이것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다.

우리 존재 자체를 위협한다는 말은 뭘까. 인간이 지구 생태계에 회복 불가능한 영향을 가하고 있는데, 지구는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강하지 않다. 한계가 있다는 의미다. 오늘날 생물 멸종 속도는 과거보다 1만 배나 더 빨라졌는데, 이는 매일 200개 생물 종이 사라지는 수준이다. 토지 개발, 열대우림의 파괴, 유해한 대기오염, 곤충과 야생동물의 소멸, 해양 산성화와 같은 현상은 다가오는 재앙이 그저 SF영화의 소재가 아님을 말해준다. 과거 지구 역사상 다섯 번 있었던 대멸종은 자연적 기후 변화 때문이었는데, 온실가스 배출에 따른 ‘여섯째 대멸종’을 인간이 자초하고 있는 셈이다.

기후변화는 당장 체감하기 어려운 문제일까. 시간이 갈수록 혹독한 영향은 분명해질 전망이다. 한국에서도 110년 동안의 기상 관측 이래 가장 치명적인 폭염을 경험했다. 하지만 이조차 시작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가령 인위적인 지구온난화로 인해 발생한 열의 90%는 지금까지 해양으로 흡수됐다. 해양은 화석연료를 태워서 생긴 이산화탄소의 20~30%도 받아들였다. 일단 해수 온도가 상승하고 빙하가 녹는 속도가 서서히 빨라지면 태풍, 폭우, 해수면 상승과 같은 기후 재난의 빈도와 강도는 더욱 세질 수밖에 없다.

탄소 배출이 계속 늘어난다? 이것도 사실이다. 산업화 이전과 비교해 오늘날 지구 평균온도는 1℃ 상승했다. 마지막 빙하기에서 간빙기에 도달하는 데 약 1만 년 동안 지구 평균 기온이 4~5℃ 올랐다는 사실과 비교하면 무려 20배 빠른 속도다. 같은 기간 동안 280ppm 수준의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현재 415ppm 수준으로 늘어났다. 과학계는 기후가 되돌아올 수 없는 ‘찜통 지구’ 상태로 빠지지 않고 안전한 상태로 유지되기 위한 상한선을 1.5℃로 제시했다. 이는 2015년 196개국이 합의한 파리 기후협정의 목표기도 하다. 

유엔 ‘기후변화 정부간협의체’(IPCC)에 따르면, 1.5℃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온실가스 배출량이 늦어도 2020년 이전부터 하향 곡선을 그려 10년 뒤 현재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져야 하고, 2050년까지 순 배출 제로(0)에 도달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온실가스 배출량이 여전히 증가하고 있다. 2016년 파리 기후협정이 발효됐지만,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은 2017년 1.7% 증가했고, 2018년 2.7%로 더 가파르게 증가했다. 2019년 배출량도 큰 증가율을 나타낼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은 어쩌다 ‘기후 악당’ 국가가 됐나

이 지경이 되도록 각국 정부는 무엇을 한 걸까. 과학자들의 경고가 거듭됐는데도 말이다. 196개국이 지구 온도 상승을 1.5℃까지 억제하자고 합의했지만, 각국이 제출한 기후변화 대책 목표를 모두 달성하더라도 지구 온도는 3.5℃ 상승할 전망이다. 현재 정부가 마련한 온실가스 감축 정책이 매우 안일하고 미흡하다는 의미다. 지구적 기후 파업은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를 앞두고 각국 정부의 행동을 촉구하기 위한 것이었다. 안토니우 구테레쉬 유엔 사무총장은 이번 회의를 두고 “기후 대책을 ‘논의’(talk)하기 위한 회담이 아니다. 논의는 충분했다. 기후와 관련해 ‘협상하는’(negotiation) 회담이 아니다. 자연은 협상하지 않는다. 이건 기후 ‘행동’ 회담이다”라고 강조한 이유다.

청소년을 비롯한 수백만 명이 시위를 벌이며 정부의 행동을 촉구했지만, 각국 정상은 이에 응답하지 않았다. 회의를 주재한 유엔 사무총장은 앞서 1.5℃ 목표 달성을 위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0년 대비 2030년까지 45% 감축하고, 2050년까지 순 배출 제로(0)를 달성하는 수준의 계획을 수립해줄 것을 각국 정상에게 요청했다. 하지만 이번 회의에서 진전된 기후변화 대책을 제시한 국가는 소수에 불과했다. 정부가 기후위기에 대처할 의지도 능력도 결여됐음을 스스로 재증명한 셈이다.

3박 5일 일정으로 뉴욕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도 이번 정상회의에서 연설했다. 하지만 연설 내용은 실망스러웠다. 대통령은 “한국은 파리협정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이 고공행진을 보이며 계속 증가해 과거 국제사회에 약속한 2020년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고 정부가 얼마 전 인정한 사실과는 상반됐다. 과거 이명박 정부는 ‘저탄소 녹색성장’을 국가 비전으로 제시하며 2020년까지 온실가스를 30% 감축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런데 2017년 현재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은 7억 톤을 넘어섰고, 이는 정부 목표보다도 15.4%나 초과한 실적이었다. 녹색성장을 내세웠지만 석탄발전소 건설과 디젤차 구매 촉진을 통해 온실가스 배출량은 실제로 급증했기 때문이다. 국가 수장으로서 이전 정부가 행한 정책 실패에 대해서도 솔직히 인정하고 적극적인 정책 의지를 표명했어야 했다.

게다가 한국이 정한 2030년 중장기 온실가스 감축 목표도 미흡한 실정이다. 한국의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대해서는 국제사회가 1.5℃가 아닌 3℃ 수준의 온난화로 이어지는 목표라고 혹평한 바 있지만, 정부는 자화자찬에 빠져있다. 과감한 에너지 수요 억제와 효율 향상을 촉진하고, 재생에너지를 적극 확대하며 급증하는 석탄발전과 내연기관차의 조속한 퇴출을 위한 로드맵을 마련하는 진전된 정책 의지가 담기길 기대했지만, 이번 대통령 연설은 기존 대책의 반복에 그쳤다. 심지어 한국이 해외 석탄발전소 건설에 앞장서 ‘기후 악당’으로까지 불리며 국제사회의 따가운 눈총을 받는다는 것을 정부는 정말 모르는 것일까.

한국의 정치는 기후위기에 대해 너무 조용하다. 한반도의 온도 상승은 지구 평균보다 두 배나 더 빠르다. 폭염일수는 1980년대 8.2일에서 2010년대 15.6일로 90% 증가했다. 이대로 가다간, 기온·습도가 일정 기준을 넘어 체온 조절 기능을 방해하고 생명에 위협을 주는 ‘살인폭염’ 상태가 장기화될 수 있다. 한국은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 7위국이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온실가스 배출 증가율이 가장 높은 국가다. 지구적 기후위기에 대한 한국의 책임이 낮다고 할 수도 없다. 한국은 에너지와 곡물 자급률이 각각 6%와 23%에 불과한, 에너지와 식량 안보 취약국가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기후 침묵은 직무유기를 넘어서 중대한 범죄다. 외부로부터 강한 충격을 통해 변화를 강제당하기 전에 기후위기에 대한 능동적 준비와 대응을 착수해야 할 때다.

기후 파업 “우리 미래를 태우지 마세요”

기후행동 정상회의에서의 대통령 연설이 있은 뒤 한국의 청소년들도 기후 파업을 진행했다. “환경이 먼저다” “우리 미래를 태우지 마세요”와 같은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든 청소년 500명이 27일 서울 광화문에서 ‘기후를 위한 결석 시위’를 벌이고 청와대 앞까지 행진했다. ‘수능이나 중간시험보다 기후위기가 더 무섭다’는 청소년들의 목소리는 진심이었다. 정부와 국회가 청소년들의 절박한 외침에 응답할 수 있을까.

환경·인권·노동·청소년·농민·종교 등 시민사회로 구성된 ‘기후위기 비상행동’가 내세우는 요구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정부는 기후와 생태적 위기에 대한 비상사태를 선포해야 하며, 언론과 협력해 상황의 시급성에 대해 제대로 알려야 한다. 기후위기 대응을 국정 최우선 과제로 다루고 이에 역행하는 정책을 조속히 폐지해야 한다. 둘째, 온실가스 배출 감축 제로(0)를 위한 구속력 있는 정책을 입안해야 한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2030년까지 절반, 2050년 이전까지 ‘0’으로 감축하기 위한 정책을 내년 상반기까지 마련해야 한다. 셋째, 사회적 논의기구를 마련해야 한다. 위기의 양상이 광범위하고 복잡하면서도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기존 정부 정책결정이나 현행 국회 대의 방식에는 한계가 뚜렷한 만큼, 정부 권한을 위임한 논의기구를 마련하고 사회적 정의가 실현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불이 난 집에서 앉아있을 사람은 없다. 그런데 우리 ‘모두의 집’인 지구가 불타고 있는데도 정부 대책은 안일하기만 하다. 우리 세금은 기후 위기를 악화시키는 데 쓰이고 기후 침묵의 정치가 우리를 더욱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기후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국가의 모든 역량과 자원을 투여해 행동할 때다.

이지언

서울대학교 <대학신문> 기고

목, 2020/10/2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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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기요금 개편 방향으로 그간 제시된 연료비 연동제, 원가주의, 외부비용의 내재화, 거버넌스 개편 등 과제는 왜 하나도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는가?
● 이런 방향에 대해서 시민사회는 공감 또는 촉구하는 입장이었다. 사회적으로 민감한 비용 및 세금 이슈와 관련해 시민사회가 더 역할을 맡을 수 있고, 그럴 의지도 있다.
● 관건은 정부와 정치권의 태도와 의지다. 전기요금을 포함한 ‘에너지가격체계 개편’은 문재인 정부의 국정 과제 중 하나였다. 에너지기본계획에서도 개편 필요성과 방향이 매번 제시됐다. 그럼에도, 해당 과제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던 이유는 정부 의지와 원칙의 부재, 포퓰리즘에 기반한 정치권의 행태와 언론 보도의 책임이 가장 클 것이다.※교육용 전기요금 단가를 대폭 낮추는 ‘전기사업법’ 법안 발의(2020.09.01.)
● ‘전기요금 체계 개편 로드맵’은 주택용 누진제 개편으로 축소됐고, 정부는 ‘전기요금 인상 없는 에너지 전환’ 프레임에 갇히게 됐다.
● 정부가 전기요금 개편 책임을 계속 유예한 뒤 오히려 공을 공론화 기구로 넘긴 대목도 마찬가지다. 우려스러운 상황이다.“전력 도매가격을 전기 소매요금에 반영하는 ‘도소매요금 연동제’와 에너지 전환에 따른 환경비용 부담금을 별도로 부과하는 전기요금 체계 개편이 국민의 선택에 놓이게 됐다.국가기후환경회의는 지난 9월 19~20일 이틀에 걸쳐 전기요금 합리화 등 8과제를 주제로 중장기 국민정책제안 예비토론회를 개최하고, 분임당 10명으로 구성된 50개 분임에서 토론과 함께 1차 예비투표를 했다.전기요금 합리화에 대해서는 절반 이상이 전기요금 인상을 가져올 수 있다며 반대에 투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 전폭적인 동의를 바탕으로 전기요금 합리화를 추진하려던 정부로서는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전기요금 합리화 국민 선택에 달렸다’ <전기신문> (2020.10.04.)
● 연료비 연동제는 10년 전부터 실행을 검토하던 방안이다. 저유가 상황이니 도입에 유리할까. 반대로 유가가 오르면 다시 요금을 할인하자는 정책 판단이 나오지 않을까. 한전이 공언한 원가 공개, 2019년 수립된 3차 에너지기본계획에서 제시한 ‘외부비용 평가위원회’ 구성은 이행되었는가.

● 전기요금 개편 방향 관련 주로 합리적 시장 가격 마련에 초점이 맞춰진 반면, 에너지 기본권의 보장에 대한 강조는 상대적으로 소홀하다. 과도한 할인과 필수사용보장제 대상의 불합리한 기준은 바로잡아야 하겠지만, 전기요금 개편이 곧 ‘전기요금 인상’으로 인식되는 현 상황에서 에너지 복지와 기본권에 대한 원칙이 강조될 필요가 있다.
● 그린뉴딜이 단순한 에너지원의 전환이 아닌 막대한 공적 재정 투여를 통한 구조, 인프라 개혁과 일자리 창출, 사회 불평등 해소의 방향을 담은 대목이 기존의 녹색성장 정책과의 주요한 차별점일 것이다.
● 주택 에너지 효율과 단열 성능을 높이기 위한 그린 리모델링 사업은 공공 건물만이 아닌 주택 등 민간 건물로 더욱 확장해 추진하는 방안이 중요하다. 이런 정책이 우선돼야 전기요금 개편의 영향이 에너지 성능이 취약해 더욱 전기를 많이 쓰는 저소득층에게 전가되는 문제를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 환경비용이 당장 계측이 용이한 재생에너지와 탄소 배출권 비용으로 이해되고 이를 고지서에 표기하거나 분리 부과하자고 논의되고 있다. 하지만 매우 미흡한 수준인 환경 및 안전 관련 과세의 강화, 화석연료와 원전에 제공되는 다양한 보조금의 투명히 산정과 해체가 보다 더욱 강조되고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다.
● 전력산업기반기금을 개편해야 한다. 전기요금 개편이 이뤄지고 요금이 결과적으로 상승한다면, 기금 수입도 증가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기금의 목적이 혼재되어 있고 에너지 전환과 충돌되는 사업에 대한 지원도 계속된다는 것이다. 전기요금 개편과 함께 전력산업기반기금을 ‘에너지전환기금’으로 개편해야 한다.
● 전기요금 조정에 대한 공정하고 합리적 규제 체계 마련이 필요한데, 그간의 정책 관행과 전력 당국의 고질적 폐쇄성에 비추어보면, 투명성, 민주성, 공정성의 원칙을 확고히 한 독립된 거버넌스의 재구성이 더욱 강조될 필요가 있다.

대한전기협회 10월19일 제3차 전력정책포럼 전기요금 개편 관련 토론회 환경운동연합 이지언 활동가의 토론문

발표자료


전기요금 개편과 소비자 인식 변화(이서혜).pdf
2.33MB


그린뉴딜_활성화를_위한_전기요금정책이태의.pdf
2.76MB

목, 2020/10/22-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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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지구온난화 방지 달성을 위해 IPCC는 2050년까지 온실가스 순 배출량 제로의 필요성을 제시했고 이를 2050년 장기 저탄소 발전전략(이하 전략)의 수립 배경으로 설명하면서도, 정부는 전략의 비전을 ‘2050 탄소 중립을 목표로 나아가겠습니다’라는 두루뭉술한 표현으로 제시하고 있다.

국회 ‘기후위기 비상대응’ 촉구 결의안 관련 논의 과정에서 여야가 가장 논란을 벌였고, 올해 유엔 제출 전에 수정될 것인지 주목됐던 2030년 감축 목표의 강화에 대해서도 기존의 입장이 실망스럽게 반복됐다. 회복 불가능한 기후위기를 방지하기 위한 온실가스 배출허용량(탄소예산)이 급감하는 상황에서 당장 5년 내, 10년 내 확고한 탈탄소 경로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서, 정부는 5년 이후에서야 온실가스 감축 목표 상향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이마저도 ‘적극 검토’라고 모호한 단서만 달았다.

2018년 온실가스 배출량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고, 앞서 정부가 국제사회에 약속했던 목표보다 20% 수준 초과 배출한 상태다. 이런 정책 실패를 인정하는 한편 코로나 위기로 인한 배출 감소 효과와 그린뉴딜 등 신규 정책의 효과를 반영하는 과업을 정부는 계속 뒤로 미룬 채 30~40년 먼 미래의 목표만을 언급한다면, 공허한 선언의 재탕, 기존 기후변화 대응 실패의 반복일 뿐이다.

탄소중립은 분명 ‘도전적 목표’가 맞고, 어느 사회도 경험해보지 못한 전례 없는 구조적 변화를 요구하는 과제다. 정부는 1년 이상 전략 수립을 위한 의견수렴을 거쳤다고 하지만, 시민사회 요구에 대한 최소한의 피드백은 물론 어떠한 반영 없이 기존 정책 틀과 수단을 그대로 나열해 제시하는 데 그쳤다.

당장 5년, 10년 내 탈탄소 전환을 위한 정책 목표가 불분명한 만큼 이행 전략에서도 혁신적 정책 과제가 보이지 않는다. 재생에너지와 친환경차를 강조하지만, 현재 지배적인 석탄발전과 내연기관차의 퇴출 전략과 목표는 왜 없는가. 정부는 부족한 정책 의지를 ‘공론화’라는 명분을 앞세워 국가기후환경회의라는 기구에 위임한 채 본연의 책임을 미루고 있다.

온실가스 다배출 인프라와 경제 구조를 뜯어고치는 대신 정부가 제시하는 전략은 온실가스 배출을 어떻게든 지속하면서 몇 가지 상용화되지도, 검증되지도 않은 기술 공학적 해법을 강조하고 있다(탄소포집활용저장CCUS/대기직접포집DAC). 현재 승용차 중심의 교통량 증가는 내버려둔 채 내연기관차를 친환경차로만 바꾸고 ‘자율주행차’를 도입하는 게 우리가 바라는 사회상인가. 공공 투자를 통한 대중교통의 인프라와 서비스 개선을 통해 공공교통의 강화하는 방안은 고려조차 없다.

기후위기 대응에서 정부 역할은 무엇인가. ‘사회 전 부문이 참여하는 과감하고 긴급한 기후행동 실천’을 위한 사회전환은 필요하다. 기후위기 대책을 본격 펴지고 않았는데도 당장 화석연료로 분류되는 여러 산업과 업종이 위기를 맞고 고용 문제가 발생되는 현실이다. 화석연료는 퇴출하되 사회 안전망을 강화하고 새로운 양질의 녹색 일자리로 전환하도록 지원해야 한다. 위기가 가시화되고 대량 실직이 발생한 뒤는 늦다. 해당 산업의 노동자, 지역 공동체를 예상되는 피해자로만 규정할 게 아니라 전환의 주체로 바라보고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

2050 장기저탄소발전전략 공청회 자료 링크

금, 2020/11/20- 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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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경영센터가 발간하는 <비영리 거버넌스 인사이드 2020 겨울호>에 기고한 기후위기 대응 관련 2021 비영리 트렌드입니다.

2021 비영리 트렌드 | 가을호에 이어 겨울호에서도 비영리영역의 트렌드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코로나 19 이후 급변하는 상황 속에서 환경, 시민사회, 사회복지, 국제개별협력 분야에서 주목할만한 점과 이사회가 관심을 가져야 할 2021년의 변화에 대해 담았습니다.

생존의 위기로 다가온 기후위기

올해 전 세계를 덮친 코로나19는 가속화되는 생태적 위기와 기후위기의 다른 이름이었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봉쇄로 인해 화석연료 소비가 잠시 주춤해지자 사라진 동물과 맑은 공기가 돌아오는 ‘코로나의 역설’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일단 배출되면 대기 중에 수백 년 지속되는 온실가스 농도는 꾸준히 최고치를 기록하는 추세입니다. 한국에서도 기록적인 장마와 폭우로 인한 극심한 피해를 겪었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지구 온도는 국제사회가 합의한 산업화 이전 대비 1.5℃는커녕 3℃ 이상 상승할 전망입니다.

불과 1년 사이 기후위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오른 것은 사실입니다. 지난 10월, 문재인 대통령은 “국제사회와 함께 기후변화에 적극 대응하여 2050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나아가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앞서 국회도 만장일치에 가까운 합의로 ‘기후위기 비상대응 촉구 결의안’을 가결했고, 최근 2050년 탄소중립 달성 목표를 명시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탈탄소사회 이행 기본법’이 발의되는 등 후속 법제화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언론 환경에도 변화가 있었습니다. <한겨레>는 지난 4월 종합일간지 최초로 기후변화팀을 신설했고, 언론사의 기후변화 관련 기획과 연재 보도가 크게 늘었습니다.

기후행동의 세 가지 흐름

물론 이런 변화는 저절로 만들어진 게 아닙니다. 청소년을 비롯한 다양한 시민사회의 행동이 만든 변화였습니다. 청소년 기후행동은 전 세계 청소년들과 함께 지난해부터 ‘기후를 위한 결석시위’를 벌여왔고, 올해 3월 정부의 소극적 기후위기 대응이 위헌이라며 헌법 소원을 청구하기도 했습니다. 기후위기 대응 운동을 위한 연대기구인 ‘기후위기 비상행동’은 지난해 9월 세계 ‘기후 파업’을 맞아 출범한 이후 정부와 국회, 기업을 전방위적으로 압박하기 위한 행동을 벌여왔습니다. 

최근 기후위기 대응 운동은 기존 운동과 몇 가지 측면에서 다른 흐름을 나타냅니다. 첫째, 기후위기는 단순한 ‘환경 문제’를 넘어선 존재론적 위기이며, 사회와 정치 모든 영역의 행동과 변화를 요구한다는 점에서 기후 운동의 대중화가 필요합니다. 둘째, 기존까지 정부에 대한 온건한 개입이 오늘날 기후위기 대응의 실패를 불러왔다는 반성 속에서 최근 기후운동은 급진화되는 추세입니다. 기후위기를 막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절박함 속에서 결석이나 파업부터 화석연료 개발 현장의 기습까지 직접 행동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셋째, 기후위기 대응은 전례 없는 구조적 전환과 불평등 해소라는 목표를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는 점에서 연대의 확장을 요구합니다. 현재 기후운동 연대기구에 청소년, 환경, 인권, 노동, 농업, 종교, 과학 등 각계각층의 사회단체가 참여하며 열띤 토론을 벌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2021년 ‘기후위기 대응’을 중점사업으로

파리기후협정이 본격 출범하는 2021년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중요한 해입니다. 정부에 기후위기 대응을 최우선 국정과제로 설정할 것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시민사회도 태세를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많은 비영리단체들이 기후위기 대응을 2021년의 중점사업으로 정하고 주도적인 활동 목표와 계획을 수립하기를 기대합니다. 물론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단체에 담당 인력과 예산을 배정하는 일도 필수입니다. 아울러 ‘기후위기 비상행동’과 같이 대중적 기후운동에 동참하고 연대하기를 기대합니다. 12월, 기후위기 비상행동은 2021년 운동 목표와 전략을 논의하고 새로운 출발을 준비할 예정입니다.

이지언 기후위기 비상행동 집행위원장

금, 2020/12/11-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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