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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진실을 짓밟는 이들과 세월호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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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진실을 짓밟는 이들과 세월호 참사

익명 (미확인) | 금, 2015/07/31- 14:56

진실을 짓밟는 이들과 세월호 참사


역사에는 야사가 있기 마련. 최근 몇 년 동안 역사에 기록될 만한 사건들이 많았다. 어쩌다 보니 태풍의 눈 같은 역사 속에 있었다. 인권운동이라는 같은 업계에 있다 보니 박래군과 나는 사건 들 속에서 자주 만났다. 대부분 선배인 그가 불렀고 때로는 내가 엉겼다. 야사를 함께 만들었고 가끔 술자리에서 소회를 나누며 웃기도 했다.


    ▲ 15일 오전 10시,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416연대 주최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박래군 상임운영위원(가운데)이 '416연대를 

        지켜주세요'라는 피켓을 들고 있다. ⓒ미디어스


희망버스 야사. 어떻게 처음 희망버스가 구상되었는지, 짚어 보니 그것도 우연 같다. 광주에서 1박 2일 회의 마치고 승합차 한 대에 우겨 타 서울로 올라오던 길이었다. 어디쯤인지 멈춰 점심을 먹을 때였다. 송경동 시인이 먼저 말을 건넸다. “김진숙 누이 어떻게 해야 하는 거 아녀요. 뭐라도 해 봅시다.” 당시 몇 일째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한진 중공업 크레인 농성이 장기화되고 있었다. 모두 김진숙님 안부를 걱정하고 있는 차였다.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어떤 형태일지 알 수 없었다. 누구 입에서 나왔는지 모르지만 기차를 타자, 버스를 타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송시인은 말 떨어지기 무서운 사람이다. “래군형은 통장을 만들고 박진은 글을 쓰고. 그렇게 사람을 모아 봅시다.”


박래군이 희망버스 통장에 이름을 내고, 오랫동안 법정에 서게 된 계기는 그것이었다. 그가 희망버스 법정에 서게 될 때, 가서 꼭 증언해주겠다고 했던 이유도 그래서다. 아쉽게도 다른 일들이 몰려, 박래군은 통장 개설 외에는 한 일이 별로 없었다. 검찰은 그날 자리를 사전 모의로 삼겠다고 덤빌지 모르지만… 단지 ‘우리 무엇이라도 합시다, 사람을 살려야 합니다.’는 마음이 모였을 뿐인데 말이다. 그렇다면 점심 먹은 모두를 형사 처벌하던지. 희망버스 타자고 선동 글 쓴 나는 왜 잡아가지 않는지. 어떤 경우든, 화살은 박래군이 먼저 맞았다. 대추리에서도 용산에서도 희망버스, 세월호에서도 그랬다. 현장에 함께 했던 동료들 마음은 그래서 더 아프다. 또 래군이 형이야…


    ▲ 인권 헌장 공청회 현장에서 박래군 소장은 밑도 끝도 없는 모욕과 구체적 폭력에 시달렸다. (사진=오마이뉴스)


세월호 참사 집회로 그가 다시 구속되었다. 실체적 법리는 사실, 소용없다. 집회가 차벽에 막히고 과격해 졌다. 과격해지지 않으면 이상하지 않는가? 사람들이 청와대 앞까지 간들, 도대체 무슨 위험이 있겠는가? 무릇 민주사회라는 것이 소란해야 하며 누구나 목소리를 자유롭게 내는 것이 아닌가. 민주사회 통치자들은 마땅히 귀를 열고 들어야 하는 것이다. 막힌 길 끝에서 누군가 경찰차를 흔들었을 것이다. 책임을 모두 박래군이 져야 하는가? 그가 속한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나 4.16연대가 집회 신고를 냈다 한들, 수 천 사람 행위를 다 책임질 수 없다. 책임져야 한다면 그를 구속시킬 것이 아니라, 왜 사람들이 그토록 청와대로 가려했는지 물었어야 한다. 무엇이 문제인가, 무엇이 문제라서 사람이 모이는가, 그렇다면 같이 해결해보자, 당신이 책임 있게 나설텐가? 라고 물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사회 통치자들은 틀려먹었다. 어떤 것이 책임인지 법정에서 따지려 들 뿐, 사회를 열어 듣지 않는다. 하긴 그러면, 박근혜 정부가 아니지. 역사를 거꾸로 돌리는 독재의 유산이라 누가 욕하겠는가.


박래군 구속 이후 많은 이들이 그를 부른다. 소중한 목소리다. 먼저 잡혀가 아직도 구속 중인 이들이 떠올랐다. 함형재, 김현식, 강광철 등 6명이 여전히 감옥에 있다. 얼마 전 집행유예로 석방된 이도 있었다. 작년부터 세월호 집회 구속자는 12명이다. 올 5월까지 연행자 수는  551명이다. 정부는 바다 속에 빠진 진실을 알고 싶어 거리로 나온 이들에게 죄를 물었다. 왜 궁금해 하는가? 왜 알려 하는가? 왜 정부에게 책임을 지라 하는가? 구속된 이들, 연행된 이들, 소환장 받은 이들, 거리에 나온 이들, 거리에 있지 못했으나 마음 아파 동동 거린 이들, 그런 모든 이들에게 진실을 알 권리는 죄가 되었다. 카카오 톡을 뒤졌고 휴대전화를 압수수색했다. 집회 현장에서 잡힌 현행범이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감시와 사찰이 일상화되었다. 참사의 피해는 자유의 억압으로 확대되었다. 이 막막한 바다에서 살아남을 방법은 무엇일까.



         ▲ `용산참사'와 관련 불법 집회 주도 등 혐의로 체포영장이 발부된 이종회, 박래군 용산참사 범국민대책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과 남경남 전철연 의장 등 수배자 3명이 2010년 1월 11일 오후 명동성당에서 경찰에 자진 출두에           

          앞서 열린 기자회견을 열고 입장 발표와 나온 유족과 관계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호송차에 오르는 모습 (사진=민중의소리)


맞벌이로 아이 키우는 김현식 구속은 벌써 5개월이 되어 간다. 남편 없는 빈자리를 채우며 종종거릴 아내와 아빠 얼굴 보지 못하는 아이가 떠오른다. 집회 현장이면 카메라를 들고 나타나던 함형재 구속 기간도 같다. 묵묵하던 그이는 한 뼘 구치소 창밖으로 어떤 풍경을 담고 있을까. 일산 킨텍스에서 환경미화업무 하던 강광철은 구치소에 들어간지 얼마 되지 않아 80세 넘으신 아버지 병세가 위독해 졌다. 그러나 그의 구속은 정지되지 않았고 아버님은 돌아가셨다. 경찰 방패를 뺏고 폭행했다는 것이 구속 이유였지만 그는 방패를 뺏지 않았다. 그의 행위는 영장실질심사 영상에 고스란히 담겨있었으나 인정되지 않았다. 다른 이들은 어떨까. 누군가의 아들이고 누군가의 남편이며 누군가의 친구였을 이들. 그들이 모두 감옥에 있다. 박래군과 같이. 어쩌면 우리는 모두 아직, 감옥에 갇히지 않았을 뿐이지 않을까. 세월호 참사로 사라진 304명과 그의 가족들, 살아나온 이들의 고통이 오늘도 이어지고 있다. 그들 곁에 서있었다는 이유로 구속되고 형사 입건 된 사람은 셀 수도 없다. 그들 가족, 염려하는 친구까지… 참사 범위는 하루가 다르게 확대되고 있다.

“모든 사람은 인권 및 기본적 자유가 침해되는 것을 막기 위한 평화적 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 국가는 이 선언문에 언급된 권리를 합법적으로 행사했다는 이유로 받게 되는 어떤 폭력이나 위협, 보복, 사실상 또는 법률상의 불이익, 압력, 기타 자의적 행위로부터 보호해야 하며, 이에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한다.”

1998년 12월 9일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인권옹호자 선언 일부다. 한국정부는 인권옹호자들에게 도전하고 있다.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자들, 기본권과 인권이 침해되는 것을 온몸으로 막는 자들에 대해 보복하고 불이익을 주고 있다.


박래군을 감옥에 보낸 날, 밤새 뒤척였다. 수면 무호흡으로 양압기 없으면 제대로 자지 못하는 그가 걱정되었다. 몇 해 만에 다시 감옥으로 아빠와 남편을 보낸 가족들 얼굴도 떠올랐다. 시골에 홀로 계신 어머니 심정은 어떨지…. 그러나 비단 그 때문만 아니었다. 박래군으로 인해 잊고 있던 얼굴들이 떠올랐다. 너무 잊고 있었구나, 함형재와 김현식들을…. 어쩌면 내일 당장 압수수색 영장 들고 우리 집 문 밀고 들어올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게 두려움인지 아닌지도 모르겠다. 감당하며 살아야지 생각할 때마다 새근새근 잠든 아이 얼굴을 들여다본다. 얼마 전부터 고장 난 압력밥솥도 생각났다. 고무 패킹을 갈아야하는데…. 다산인권센터 후원행사는 어쩌지…. 자유를 빼앗긴 다는 것, 일상이 툭하며 깨져 버리는 것.


      ▲ 2014년 5월 28일 KBS 앞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촛불(길환영 퇴진)에서 박래군 인권활동가가 "승리했다는 소식 듣고 

         싶다"는 유가족들의 말을 대신 전했다ⓒ미디어스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정권은 매번 바뀌었지만 박래군 구속은 으레 그래야 하는 일처럼 되돌이표다. 육십이면 은퇴하고 소설 쓰겠다는 그는 열 살 차이 나는 내게 종종 말했다. “나는 5년 남았다. 너는 10년 남은거야. 아니다. 너는 15년만 더 해라.” 그런 게 어디 있냐고, 퉁명스레 대답했지만 내 소원도 그것이다. 래군형이 매번 주장하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에로 소설’을 쓰면 독자로써 읽고 싶다. 어쩌면 그때, 부재를 감당한 누군가 감옥에서 소설을 읽을지도 모른다. 내 몫이어서 래군형이 다시는 감옥에 가지 않을 수 있다면 영광이겠지. 은퇴 전까지 역사에 남을 야사 몇 개 더 쓰고 싶다. 함께 쓰고 싶다. 그가 빨리 감옥에서 나와야할 이유이기도 하다. 60세까지 5년밖에 안 남았다. 후배 된 도리로 그를 좀 더 부려먹어야 한다.


박래군과 함형재, 김현식들은 빨리 돌아와야 한다. 물론 기다리는 것이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만은 아니다. 은혜처럼 하늘에서 쏟아지는 일감들도 기다리고 있다. 박근혜는 어서 그들을 과로의 세계로 석방하라!


2015. 7. 30. 미디어스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원문보기>

진실을 짓밟는 이들과 세월호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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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2주기가 다가오지만 진상규명은 요원하기만 합니다. 

정부와 여당은 국민들의 염원으로 만들어진 특별법을 무력화시키려 갖은 애를 다 쓰고 있습니다. 


봄은 다가오고 있지만 남북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차갑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한일합의 문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해결되고 있지 못한 상태입니다. 


문제를 제대로 알아야 어디서부터 무엇을 해야할지가 보입니다. 

그래서 (가)민주주의수호와 정치의제 해결을 위한 수원시민연대 고!고!고! 에서

'남북관계', '일본군 '위안부' 한일합의' '세월호'와 관련된 연속 강연회를 준비했습니다. 


모든 시민들에게 열려있는 강좌이니 많은 참여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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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16/03/24-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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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 예술의 독립성을 둘러싼 분쟁으로 아시아 영화제 교착상태에 빠져 – 영화인들, 자율성이 보장되지 않는 부산국제영화제 참석 거부 선언 – 집행위원장 자리 놓고 영화제 준비위와 부산시의 팽팽한 신경전 – 예술가들 완전한 자율권 없고 박 정권 하에서 표현의 자유 오히려 억압당해 – 한국영화산업, 재벌의 영향력 행사로 다양성 잃고 흥행성 영화들만 범람 뉴욕타임스는 2일 아시아 최대의 영화제가 정부의 ...
목, 2016/05/05-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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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 원인을 밝히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될 화물칸 차량 블랙박스 영상 파일을 뉴스타파가 단독 입수했다. 이 블랙박스 영상은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이하 세월호 선조위)가 민간 포렌식 업체에 의뢰해 복구한 것이다. 세월호 선조위가 민주당 김현권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이 민간업체는 지난 8월 말까지 세월호 선체에서 수습된 디지털 기기 265점을 인계받았고, 이 가운데 휴대전화 26개, 차량 블랙박스 8개, 노트북 2개 등에서 모두 43개의 메모리를 복구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뉴스타파는 이 가운데 ‘주차중 녹화’ 기능이 작동돼 세월호가 급격히 기울어지는 순간의 상황이 녹화된 블랙박스 4개의 영상 파일을 입수해 분석했다.

급격히 왼쪽으로 쏠린 차량들… 바닷물 차 들어오는 모습도

입수된 블랙박스 영상들은 모두 화물칸 C데크와 C데크 2층 트윈데크에 있던 차량 4대에서 나온 것들이다. 이 차량들의 선적 위치와 블랙박스 화각은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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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운데 트윈데크에 주차됐던 차량의 블랙박스에는 세월호가 급격히 기울면서 차체가 앞으로 튕겨져 나와 왼쪽으로 쏠려 내려가는 모습이 담겼다. 지금까지의 조사 내용 상 4월 16일 오전 8시 50분 무렵의 상황으로 추정되지만 블랙박스 화면 상의 시각은 4월 12일 오전 9시 무렵으로 표시돼 있다. 장비에 입력된 시각이 실제와는 큰 오차가 있는 것이다.

C데크 엔진 케이싱 벽면에 붙어 주차된 차량의 블랙박스는 선체 뒤편 모습을 화면에 담고 있다. 미동도 느껴지지 않던 화물칸에서 갑자기 바로 앞 트럭에 실린 화물이 슬그머니 오른쪽으로 밀리는가 싶더니 이내 주변 차량들과 멀리 보이는 트윈데크 위 차량들이 일제히 오른쪽으로 급격히 쏠리는 모습이 포착됐다. 선체의 진행 방향을 기준으로 하면 모두 왼쪽으로 쏠려 내려간 것이다. 이 무렵 시각이 해당 블랙박스 화면엔 오전 7시 28분쯤으로 돼 있어, 역시 실제와는 적지 않은 오차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블랙박스 속 또 다른 영상에는 바로 옆쪽 화물차량에 실렸던 박스가 툭 떨어지고, 이어 앞쪽에 있던 승용차 한 대가 튕겨져 나와 천장에 부딪히는 모습도 남아 있다. 이미 선체가 90도 이상 넘어간 시점임을 짐작할 수 있다. 곧이어 1분 뒤에는 멀리 트윈데크 쪽에서부터 바닷물이 빠른 속도로 차 들어오는 장면도 남아 있다.

C데크 정중앙 앞쪽에 주차됐던 차량의 블랙박스 영상에도 화물들이 충돌하는 소음이 들린 직후 주변 화물차들이 일제히 왼쪽으로 넘어지는 장면이 담겨 있다. 이 블랙박스 화면에는 시간 표시가 없고, 파일명에만 오전 8시 48분 58초라는 시간 정보가 남아 있었다.

마지막 4번째 블랙박스 영상은 C데크 좌현 벽 쪽에 실린 차량의 것이었다. 이번에도 화물 충돌음이 들려오더니 멀리서부터 차량들이 연쇄적으로 밀려 넘어지고, 곧이어 이 차량도 좌측 벽에 강하게 부딪힌다. 곧이어 벽면 쪽에서 상당한 양의 물이 분출돼 차량을 덮친다. 이때 화면에 표시된 시각은 오전 8시 49분 무렵이었다.

민주당 세월호특위 소속인 김현권 의원은 이번에 복원된 블랙박스 영상에 대해, “세월호 침몰 순간 화물칸에서 발생한 일을 포괄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대단히 소중한 1차 자료로서, 이를 복구해 낸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의 입장에서 보자면 대단한 쾌거”라고 말했다. 이어 “이 자료를 바탕으로 세월호 선조위와 전문기관들이 협력해 세월호가 급격히 기울어진 과정과 원인에 대해 어떤 의혹도 남기지 않을 수 있는 세밀한 조사가 진행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취재 : 김성수
영상취재 : 김기철
영상편집 : 정지성
CG : 정동우

금, 2017/09/15-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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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땡큐

무책임한 침묵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1981년 황석영과 김종률, 광주 지역 노래패는 5월18일을 그냥 지나 보낼 수 없었다. 그 전해 벌어진 항쟁을 기억하며 노래극을 만들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노래극에 삽입된 곡이었다. 계엄군에게 사살된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과 야학을 운영하다 사망한 노동운동가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에 헌정된 곡이었다. 둘은 연인이었다. 가사는 당시 서울 서대문구치소에 수감된 백기완의 시 ‘묏비나리’의 일부를 차용해 황석영이 붙였다. 곡은 이듬해 1982년 윤상원, 박기순의 유해를 합장하는 영혼결혼식에서 처음 공개됐다. 조악한 테이프에 녹음된 노래는 빠르게 번져나갔다. 5·18을 상징하는 노래가 되었다.


“당신 원통함을 내가 아오”


올해 5·18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에 대한 국가보훈처의 입장이 나왔다. 알아서 따라 부르든지 말든지, 였다. 기념식에 참석한 황교안 국무총리를 비롯한 정부 쪽 인사들은 합창이 되어 흘러나오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따라 부르지 않았다. 완고하게 다문 입은 벌어지지 않았다.


뒤질세라 항쟁 당시 계엄사령관이던 전두환은 말했다. “나는 발포 명령을 하지 않았다.” 그들의 침묵과 그의 말 사이 간격은 좁았다. 항쟁의 마지막 날 새벽, 옛 전남도청 옥상에 있던 대형 스피커를 통해 광주 시내에 울려퍼졌던 “광주 시민 여러분, 계엄군이 진주해오고 있으니, 시민 여러분은 도청으로 와주십시오.” 목소리의 주인공 박영순씨는 상무대 영창으로 끌려가 혹독한 고문을 받고 복역하다 6개월 만에 형 집행정지로 풀려났다. 그날 그녀는 마지막 방송을 한 뒤 내용이 적힌 쪽지를 삼켰다. 그 목소리를 들었던 이들은 죽기도 했고, 살아남기도 했다.


5·18의 어머니들이 세월호 어머니들을 안아주며 말했다. “당신 원통함을 내가 아오.” 통곡을 품은 자들이 서로를 위로했다. 그러나 입을 다문 자들과 입을 연 자, 그들은 5·18 광주에서 죽은 자, 살아남은 자들의 상처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4살 남자아이 목을 관통한 총상, 주검을 집에 가져와서도 숨진 사실을 숨겨야 했던 이들의 비참을 이해하지 못한다. 사살돼 암매장된 비무장 민간인과 국립현충원에 안장된 진압경찰과 군인 사망자를 바라보는 고통도 모른다.


그들이 침묵하거나 입을 놀리는 이유는 같다. 책임지지 않는 역사는 반복되기 때문이다. 그해 5월20일 <전남매일신문> 기자들은 사장에게 사직서를 낸다. “우리는 보았다. 사람이 개 끌리듯 끌려가 죽어가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러나 신문에는 단 한 줄도 싣지 못했다. 이에 우리는 부끄러워 붓을 놓는다.” 서슬 퍼런 시절에도 침묵이 부끄러워 펜을 놓았던 기자들이 있었다. 36년이 흘러 노래하지 않는 이 정부의 침묵은 어떤 부끄러움일까. 노래조차 부르지 못하는 곳에서, 노래는 주어다. 그러하기에 죽은 자가 앞서 간 길, 산 자들은 따라야 하지 않겠는가,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으로!


임을 위한 행진곡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2016.5.28  한겨레21 '노땡큐'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이 글은 <한겨레> 2014년 12월5일치에서 ‘5·27 도청 방송’이 확인된 박영순씨 사례와 위키백과의 <임을 위한 행진곡>을 인용했습니다.


원문보기 

무책임한 침묵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목, 2016/06/02-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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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장으론 처음으로 성주·김천 사드반대 투쟁현장 방문한 이재명 성남시장의 사자후
수, 2016/10/19-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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